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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8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마지막 장 ‘공자와 中華民國’

(4) Namgok Lee | Facebook

Namgok Lee
19 April at 07:15
  · 
크릴의 공자 마지막 장 ‘공자와 中華民國’을 읽었다.

쑨원孫文의 제5權(西歐의 삼권분립 이외에 감찰원과 고시원을 두어 5권분립을 주장)의 기초가 되는 고시제도는 공자가 제안한 것이 아니지만, 공자가 그 기초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공자는 ‘올바른 사람을 승진시키고 덕망있고 유능한 사람의 손에 정치를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역설하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또 적절한 교육을 통하여 행정책임을 맡을 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관료로 선발하는데 있어서는 인격과 능력 이외의 어떤 요건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였는데 고시제도는 이 원칙을 실천에 옮기려는 시도였다.
쑨원은 유럽과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성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못하다고 확신하였으며 그것은 주로 잘못된 인간평등관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공자나 제퍼슨(미국 독립선언 기안자, 대통령 역임)과 마찬가지로 세습적인 귀족정치를 신봉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공자나 제퍼슨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인간은 본래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실현될 수 있는 평등이란 기회균등 뿐이다. 
“개인 간의 지능과 능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절대평등을 고집하기 위하여 뛰어난 사람을 억눌러 버린다면 인류는 진보는커녕 퇴보할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평등을 논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진보를 원할 때는 그 평등이란 자연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것이지만,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평등이란 정치적 지위의 평등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쑨원은 모든 사람이 보통 선거를 통하여 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동등한 힘을 가져야 하지만, 반면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공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자격을 갖출 수 있는 동등한 기회는 부여되어야 하지만, 그 자격은 고시제도를 통하여 시험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쑨원은 “모든 관리 지망생은 –그 관직이 선거에 의한 것이건 임명에 의한 것이건 간에, 또 지방관이건 중앙관이건 간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확인받기 위하여 먼저 중앙  정부가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안을 제시하였다.
그런 제도에는 정치적 조작이 개재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쑨원은 시험의 관장권을 독립된 정부 기관 즉 고시원에 부여함으로써 이 위험성을 극소화하려고 생각하였다.
이런  쑨원의 구상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지만, 정치나 행정이 구체적인 사람에 의해 집행되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항상(恒常)적 테마임에는 분명하다.

여러 테마들이 있다.

지금의 우리를 생각하게 된다.
1. 교육을 통한 자질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 균등이 지금의 체제 안에서 가능한가? 신분세습제도는 사라졌다지만, ’합법적 불공정‘이 지배하는 현상을 어찌할 것인가?  
2. 지적 능력은 공정한 고시제도로 시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덕성은 어떻게 시험할 수 있는가?
3. 고시원 같은 독립된 기관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나 문화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또 선거로 뽑는 경우 주권자인 선거인단의 높은 선별력이 전제되는데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2023/04/24

Namgok Lee - 사회적 대합의를 이루고 연합정치를

 
어제 신뢰하는 후배가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
통화하는 중에 ‘패배(敗北)주의가 심하다’는 말을 했다.
아마도 낡은 것들의 상쇄(相殺)과정이 새로운 것들의 발흥(發興)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감들을 표현하는 말로 알아들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 새로운 문명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나 세력이 백가쟁명(百家爭鳴)하며 새로운 구심을 형성하지 못한채 의미 있는 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하는데서,
낡은 것들의 상쇄 과정이 그대로 사회나 국가의 쇠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패배(敗北) 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어떤 역사에서도 낡은 것에서 새 것으로 그렇게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패배주의 대신에 실사구시와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백가쟁명은 좋은 것이다. 다만 그 깊이가 있기를 바란다.
그 깊이는 실사구시하는 과학과 철학
그리고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려는 도덕적 성찰이다.

‘소아적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것이다.
지금은 ‘활사개공(活私開公)’의 시대다. 아직 공(公)이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선구적 입장이라면 스스로 먼저 공(公)을 열어가야 한다.
이 공(公)을 열어가는 사람이라면 패배주의와는 인연이 없다.
소아를 넘어선 곳에 새로운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3) Namgok Lee - ‘우리는 거칠게나마 앞으로 항진(航進) 중입니다.’ 패배의식이나 절망감을 호소하는 분들에게... | Facebook

Namgok Lee
  · 
‘우리는 거칠게나마 앞으로 항진(航進) 중입니다.’
패배의식이나 절망감을 호소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양(兩) 극단(極端)을 거칠게 두들겨가며 
시대(時代)의 중(中)을 찾아 국내외의 험한 파도를 헤쳐가고 있습니다.

무거운 운명의 짐을 지고 이만큼 건너오지 않았습니까?
이제 좀 더 나아가면 됩니다.
과거는 과거의 담론이 있고, 현재는 현재의 담론이 있습니다.
이것을 뒤섞지 않고 볼 수 있는 집단 지성이 성숙하는 과정입니다.
포퓰리즘과 팬덤 정치의 미로(迷路) 속에서도 성숙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스스로 망하는 자를 돕는 일은 없습니다.

국격(國格)이 무시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그 원인은 내정(內政)의 퇴행(退行)에 있습니다.
스스로가 존엄할 때, 누구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이제 퇴행적 편가름과 낡은 담론과 도덕적 해이를 일신(一新)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적 대합의를 이루고 연합정치를 뿌리내려야 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은 결정적인 기로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담론과 도덕과 전략을 갖춘 새 정당이 역사적 과업 성취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내년 총선이 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각자가 자기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패배의식이나 절망감 대신에 나부터 우리부터 사소취대(捨小取大)하는 정신을 가지면 됩니다.
소아(小我)를 내려놓고 대아(大我)를 선택하면 됩니다.
서로 내가 아니라 동지(同志)를 세우려고 하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서는 길입니다.

2023/04/17

Namgok Lee | 크릴의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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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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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릴의 공자 15장 ‘유교와 서구민주주의’를 읽고 있다.

근대 서양에 중국의 유교를 전한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가서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중국의 전통 사상과 접했고, 그것을 서양에 전했다.
원래 목적인 선교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근대 서양에 중국의 사상 특히 공자 사상을 전한 가교 역할을 한 것이야말로 그들이 역사에 남긴 큰 공적이었다.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 목적의 수행을 위해 “주자철학(신유학)과 공자 도덕철학을 결합하고 있는 긴밀한 유대를 파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신을 통하여 그토록 열광적으로 유럽에 보고한 유교가 17,8세기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된 정통 유교가 아니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흔히 신유교라고 불리는 그 정통유교는 복합적인 학설로서 공자사상을 구체화시킨 점도 많지만, 불교의 요소를 받아들인 정교한 형이상학적 철학체계이다. 그러므로 공자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으며 예컨대 볼테르 같은 유럽인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도 없었거니와 명석하고 비판적인 정신을 가진 예수회 선교사들의 마음을 끌지도 못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독자적인 형이상학체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유교 경전을 연구하면 할수록 당시 유행하고 있는 철학이 원시 유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개종자는 유교를 배신하였다는 비난을 받자 자신은 전혀 그런 일이 없으며 ‘후세 유가들’의 ‘왜곡된 유교’보다는 가톨릭 안에 공자의 가르침과 더 가까운 교의가 있음을 발견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마테오리치의 말이다. “이  책(유교경전)들을 모두 주의 깊게 조사해보면 이성의 빛과 상반되는 것은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과 조화되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 책들은 서구 어떤 철학자들의 저술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요점을 정리해보자.
중국철학은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으며 그들이 주로 보고한 것은 그들이 최선으로 생각한 것 즉 공자 개인의 사상과 초기 유교 사상이었다. 이 철학은 성격상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영향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세상에서 온 혁명의 복음처럼 환영받았다. 그러나 얼마 뒤에 유럽인들은 유교의 후세 형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군주권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공자 철학의 일부를 전도시킨 것이었다. 동시에 그처럼 높이 찬양되었던 중국정치에는 적어도 전제정치의 특성이 실제로 많다는 것이 강조되었으며, 실제 중국 예찬자 가운데는 전제정치의 모범으로 중국을 찬양한 사람도 있었다. 공자의 덕성도 중국정치의 미점도 모두 예수회 선교사들이 선전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발명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와 동시에 예수회 선교단도 철저하게 불신되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된 끝에 1773년 교황의 명에 의해 해산되었다.  환상은 철저히 깨졌으며 ‘중국의 꿈’은 사라졌다. 18세기 서양은 중국에 대한 관심과 존경이 그처럼 높았지만, 18세기 말 이래로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이 일련의 기이한 사건 결과 프랑스혁명이나 미국혁명의 배경을 추적하는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이 중국사상이 민주주의 철학의 성장에 기여한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었다.>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간 예수회 선교사들이 동서 문명의 가교 역할을 한 것과 같은 일들이 원래의 선교 목적보다 더 큰 역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일들은 긴 역사를 볼 때 너무나 많다.


Namgok Lee
1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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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가페 정원!!!


Namgok Lee
1 d
  · 
크릴의 공자를 읽고 있다. 
제14장 승리(勝利)의 일부분을 발췌한다.

“한무제(漢武帝)의 치세(유교의 왜곡) 이후 약간의 기복은 있었지만, 유교는 정부의 후원을 계속 받았으며 때로는 너무 지나칠 정도의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그 결과로 유가를 자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유교는 때때로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백성을 억압하는 데조차 이용되었다. 어느 시대건 정부가 학문을 후원하면 사상의 표준화 경향이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한무제 같은 황제들이 유교를 후원함으로써 유교를 지배하려고 노력한 것도 결코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누가 누구를 삼키느냐?’는 것은 긴 역사의 안목으로 봐야 한다.
정치에 끼친 유교의 영향은 시대에 따라 강도가 달랐지만, 그 영향은 구석구석 스며들었고, 대체로 민주주의라고 할만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정부란 백성의 만족과 복리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비판은 물론 전복되는 것조차 당연하다는 이론이 2천년간 이처럼 일반화되었던 대국(大國)은 아마 유례가 없을 것이다.
민주정치를 위한 공자의 출발은 괄목할만한 것이었지만, 그 후 그가 제시한 원리에 추가된 것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원리 자체도 충분치 못하였다. 민주정치가 효과적으로 구현되려면 일반 백성들이 군주를 선택하는데 효과적인 발언권을 가져야하며 이 목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창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것이 발전되지 못하였으며 다른 곳에서 이것이 성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있고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 문제를 고찰하려면 유럽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제 15장 유교와 서구 민주주의)”
마르크스 주의는 러시아 혁명 과정과 만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변모하면서  한 때 세계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였으나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 생명력을 잃었다, 중국에 와서는 중국의 현실과 만나 변모하였다. 마오쩌뚱,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에 이르고 있다. 
유교의 2천년 역사에 비하면 중국 공산당의 역사는 짧은 것이다.
요즘 공자를 들어올리고는 있지만, ‘누가 누구를 삼킬 것인가?’라는 크릴의 흥미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 같다.
☆ 7년전  아시아 경제신문에 유학의 왕초보가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공자의 메시지'를 써봤군요.
이진홍님의 댓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진홍
https://cm.asiae.co.kr/article/2016113013282113027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CM.ASIAE.CO.KR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입력2016.12.01 


국가는 인간과 사회의 진화를 가로막는 직간접의 범죄와 부정과 부패를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기구입니다. 개방을 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면 덩샤오핑(鄧小平)의 말대로 창(窓)을 열면 파리 모기와 온갖 벌레가 함께 들어오듯 여러 부정적 현상들도 나타나게 됩니다.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할 정도의 시 주석의 노력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지향하는 이상만은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 또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들입니다. “법제로 다스리고 형벌로 질서를 유지하면, 인민들이 형벌을 면하는 데 급급하여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제2편 위정)


“송사를 듣고 판결을 함에는 나도 다른 사람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제 12편 안연)


위의 구절들은 국가와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고금을 통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최고 최선의 인권 보장은 좋은 정치와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범죄자의 인권 보장을 포함한 근대 서양의 형벌 제도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와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는 것은 오래된 동양의 이상주의에 더 부합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목적을 가진 당(黨)이나 국가일수록 그 절차나 과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남곡의 인문의 창]시진핑 주석에게 드리는 글(3)


물론 저 같은 촌부(村夫)가 짐작할 수 없는 많은 고충이 거대한 국가를 경영하는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존중합니다만,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자본주의 국가의 불평등이나 차별 같은 실질적인 수많은 합법적인 인권침해보다 오히려 중국의 정치범 탄압이나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더 이슈화되는 것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시 주석님,


마지막으로 민족문제와 새로운 문명에 대해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와 5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그 자체로 세계국가입니다. 미국이 이민(移民)에 의해 몇 백 년 동안에 인위적으로 형성된 세계국가라면,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 수많은 분열과 통일을 경험해 온 세계국가입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로 '이념의 종언'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불완전한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주의를 이념이라고 하면 성립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념을 '우주 자연의 리(理)에 부합하는 인간의 관념'으로 해석한다면, 그런 이념의 시대는 온 적이 없습니다. 이제 와야 합니다.


중국에게는 패권다툼이라는 현재의 세계질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의연히 대처해야겠지만, 그 힘의 원천은 내부에 진정으로 리(理)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권력은 총구(銃口)에서'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질서는 '이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와 제자의 대화입니다.


"위나라 임금께서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신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명(名)을 바로 세울 것이다."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이 '정명(正名)'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정하지 않음'은 공자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정명' 또한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시대정신을 가장 바르게 실현할 수 있는 종합철학을 세우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정명'은 진정한 의미의 '이념'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제 인간과 자연 ·인간 상호간·물질과 정신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이 우주 자연의 '리'에 부합하는지가 엄청난 파국적 위기와 함께 근원적으로 물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중국 공산당이 진정한 이념정당으로 진화하여 민족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함으로써 미래에 도래할 세계정부의 모델을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 민족의 자치와 분권을 최대한 확대하면서,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협력 통합하는 실험은 중국 같은 나라가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동시에, 지구적 인류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지금의 소비와 소유 중심의 문화를 정신적 예술적 가치나 욕구가 증대되는 생태적 삶의 문화로 전환하는 새로운 문명의 선두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실에서 더욱 절실한 요구로 됩니다. 8500만명의 중국 공산당원들이 이런 문명적 전환을 시도한다면 인류에 대한 최대의 기여로 될 것입니다.


과거 혁명 시기의 '조사 없이는 발언권 없다'라는 실사구시의 전통을 넘어, '생활 없이는 발언권 없다'는 자각이 중국공산당의 자율적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혁명의 길입니다.


존경하는 시진핑 주석님,


저의 글을 이제 마치려 합니다. 너무 잘 아시고 실천하고 계시는 것들에 대해 촌부의 중언부언을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중국과 중국 인민을 사랑하고, 시 주석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라는 것을 헤아려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2023/04/14

Namgok Lee '인문운동, 좌우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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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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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논어산책에 다녀왔다.
어제 퇴원한 뒤라 좀 염려도 되었지만, 광주 벗님들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 오히려 가쁜하다.
입원 해 있는 동안 9년전 쓴  페북 글이 올라와서, '인문운동, 좌우를 잇다'는 주제로 다음 글을 소개했다.
====
"대기업을 비롯해 기업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도입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간관계ᆞ동기부여ᆞ생산성 향상 등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가지 않으면, 진정한 '인문'을 왜곡하게 된다.
나는 진정한 인문이란 인간의  진화를 억압하고 있는 '물신'과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효율과 이익을 위해, 이른바 인간관계를 그런 목적과  관련해서  원할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문학을 이용하는 것은 그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되기 쉽다.
기업의 인문학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라는 것이다.

수조원, 수십조원이라는 재산은 사실상 개인소유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본인들의 생각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사회적 자산이다.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인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산을 어떻게 사회와 인간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를 연구 실천하는 것이 '인문'이다.
이렇게  나아갈수 있다면 대단히 진취적인 기업문화가 탄생할 수 있고, 훌륭한 기업가가 탄생할 것이다.
그러한 기업ᆞ기업가는 시장의 인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사회의 평화적 진화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인문운동'이다.

사실은  '인문운동'이 절실한 곳은 노동계를 비롯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이른바 진보 진영이다.
  • '새로운 인간상(물신으로부터 해방된)'
  •  '새로운 행복관' 
  •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경쟁이 아닌 자기실현의 노동에 의한 생산성
  • '인간 진화의 과학적인 신념' 
  • '즐거운 삶' 을 위해 
인문운동과 사회적실천이 결합해야 하는 것이다.
일정한 물질적 안정과  한단계 높아진 문명을 향한 정신적 자산은 새로운 주체의 양대기둥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자본의 인문학과 노동의 인문학이
 '인문운동'의 차원에서  만날 수 있다면, 이것은 거대한  '새로움'이 될 것이다."
===

인문운동과 사회적실천이 결합
자본의 인문학과 노동의 인문학의 만남


2023/04/08

230408 Namgok Lee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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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8
Namgok Lee
1 d
  · 
유가(儒家)로서 학문을 시작하였으나 유가와 절연(絶緣)하고 독자적인 학파를 형성한 묵자가  유가를 격렬히 비판한 배경이 된 것은 유가 가운데 유교의 진정한 원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거나 거기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정치적인 출세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에만 몰두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던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와 동시에 공자의 사상과 행태에 만족하지 못한 묵자의 급진성(공자는 이런 사람을 狂者라고 부른 것 같다)을 현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공자보다 더 높이 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급진성이 비록 평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감각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인류 보편사(人類普遍史)의 진행에서는 그 영향력이 공자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국소적이다.

그 중요한 차이를 H.G.크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묵자는 자기가 누구보다도 세상의 악을 고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며, 공자와 달리 다른 사람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나 판단의 여지를 허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자신의 말을 들어보자. “나의 가르침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가르침을 버리고 스스로 생각하려는 것은 추수를 포기하고 낟알을 줍는 것과 같다.”
묵자는 빈곤, 무질서 및 전쟁을 비롯한 이 세상의 죄악을 엄격한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각 집단의 구성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지도자와 일치되어야하며” 각 집단의 지도자는 다시 그 상급자와 일체가 되는 방식으로 최종적으로는 천자(天子)에게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가운데 다음 구절을 연상케 한다. “통합국가의 헌법을 제정하는 원리는 모든 지도자는 하급자에 대해 권위를 갖고, 하급자는 상급자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공자는 사유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였지만, 진리의 고정된 척도는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는 책임을 맡겼고 그것도 각자의 자유에 일임하였다.
그러나 지적(知的) 자유에는 필연적으로 정신적 노고가 따르기 때문에 인간은 대체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자가 인간의 정신에 제공한 것은 ‘평화가 아닌 검(劍)’이었다.
제자 가운데 공자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따라서 공자의 시체가 식자마자 제자들이 아늑한 지적 안식처를 세우고 그 안에서 성전(聖典) 및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성인의 권위를 찾기 시작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크릴의 맹자에 대한 다음의 언급도 시대를 넘어 오늘의 유사(類似) 진보주의자들을 돌아보게 한다.
<맹자는 당시의 비교적 우수한 유가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지만, 유가 특유의 약점 즉  상류사회를 선망하는 속물(俗物)이었다. 그의 생활이나 여행은 사실 극히 사치스러웠지만 그는 훨씬 더 사치스러운 왕후(王侯)들을 크게 선망하였다.
맹자는 정의만 구현된다면 자기도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이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지위나 사치를 경멸하고 덕(德)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척하였지만, (햄릿에 나오는) 귀부인처럼 도에 지나친 항의를 많이 하였다.>


Namgok Lee
1 d
  · 
'일미진중함시방'
내 마음 안에는 내가 싫어하고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들어있다.
몸이 안좋으니까 잘 보인다.
공자가 일관한 것은 오직 '수기修己' 였다는 것.
그의 모든 외적 활동은 그것의 자연스러운 외화外化.
공자 사상이 그 숱한  풍랑과 왜곡을 겪으면서도 고전古典으로 살아남아 미래를 열어가는 메시지로 작용하는 핵심.

Namgok Lee
3 d
  · 
H.G.크릴의 공자를 읽으면서 드는 단상 하나.
맹자 대(代)에 오면 유자들 가운데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당당하게 유세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맹자는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조언할 때는 그들을 경멸해야 한다.”고 말하며, 
순자는 “진정한 군자는 천지와 동격이기 때문에 훌륭한 유자가 극도의 궁핍한 처지에 빠져도 왕후는 감히 그와 명예를 다툴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들의 자존감을 높였다.
그런데 어떻게 포악한 군주들이 유자들이 ‘혁명’을 설교하는 것을 그대로 두었으며, 극단적인 모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였는가?
군주들이 전(全) 중국(中國)을 차지하려는 각축전에서 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경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맹자는 수십 대의 수레와 수백명의 종자를 거느리고 여행하였고 제후(諸侯) 사이를 전전하면서 식록(食祿)을 받았다.
물론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면 뛰어난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맹자는 당시 사람들이 인격을 수양하는 유일한 목적이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단 목적을 달성하면 주의주장은 더 이상 불필요한 것으로 내던져 버린다고 말하고 있으며 순자도 자기 자신이 유가이면서도 그가 속유(俗儒)라고 부른 자들을 통렬히 비난하였다.
일찍이 공자는 ‘예(禮)’의 자구(字句)에 얽매여 그 정신을 망각하는 것을 특별히 경고하였으며, ‘도(道)’에 뜻을 두고 있는 척하면서 개인적인 쾌락과 출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였다.
논어 옹야 편에 자하라는 제자에게 소인유(小人儒)가 되지말고 군자유(君子儒)가 되라고 당부하는 말이 나온다.
군자(君子)의 특성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는 말이다.
실제로 인간은 어느 한 쪽으로만 되어 있는 경우는 없다. 다만 이(利)와 의(義) 어느 쪽에 더 끌림이 있는가는  인간을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한다.
공맹시대의 유자를 요즘 말로 하면 폴리페서(polifessor) 쯤 될 것이다.
맹자나 순자 정도 되는 당당한 폴리페서(polifessor)도 드물지만, 소인유(小人儒)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
내가 보기에는 진보냐 보수냐 하는 차이보다 군자유(君子儒)와 소인유(小人儒)의 차이가 더 본질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적어도 의(義)에 끌림이 더 강한 지식인이나 정치인이라면 그가 보수건 진보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기들을 넘어설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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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6 d
  · 
1905년 시카고에서 출생한 미국의 학자 H.G.크릴이 ‘개혁가 공자’를 서술하고 있다.
이런 시도야말로  인류 보편의 사상적 거인으로서 또 위대한 개혁가로서 공자의 진면목을 밝히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한다. 
“공자가 주장한 개혁이 과연 ‘민주적’이었다고 말해도 좋은지, 또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 ‘민주적’이었는가?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19세기말 및 20세기의 산물이며 최근에 확대된 인류의 경험 뿐 아니라 자연과학 사회과학 및 산업화 등과 같은 현대적 혁신에 크게 기초를 둔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처했던 상황이 현대민주주의 옹호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크게 상이相異하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사상 사이의 相致點(상호일치점)이 있다면 오히려 특별한 흥미를 자아낸다.
매리앰(C.E.Merriam)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 차별보다는 우애 원칙에 근거한 개성의 보호 및 함양의 중요성, 근거도 없이 또는 과도하게 인간차별을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 특권의 폐지.
2. 인류의 완벽성을 부단히 지향하는 것에 대한 확신.
3. 국가의 수익은 본래 집단적인 수익이므로 크게 지연되거나 지나친 차별없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전사회에 분배되어야 한다는 가정.
4. 사회의 방향과 정책의 기본적인 문제에 관해 최후 결정을 대중이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결정을 표현하기 위한 절차를 인정하고 그 결정이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5.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합의 과정을 거쳐 의식적인 사회변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
이 가운데 4개의 항목은(4번을 제외한 모두) 기본적으로 공자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 분명하고 어떤 것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도 있다.
투표와 관련된 나머지 한 항목이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공자는 대중이 정치를 좌우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에서더 지적하였지만 고대 중국에는 투표라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다. 프랑스 혁명이 한참 진행중이었던 1791년 프랑스 헌법이 제출되었을 때, “보통선거안을 부결하는 것이 무산계급은 문맹이고, 투표를 하려면 일정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변호될 수 있었다면” 기원전 500년경 공자가 중국의 정치를 농민계급에게 넘길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공자가 이상적인 교육상태나 그 비슷한 상황이라면 대중이 정치를 좌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지의 여부다. 이것은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을 종합하여 정치 권력에 관한 그의 의견을 체계적인 서술로 제시해보자.(공자가 결코 이런 것을 제시한 일은 없는 것 같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정부의 고유한 목적은 전체 백성의 복리와 행복이다.
이 목적은 정치에 가장 유능한 사람이 국정을 담당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위정자의 능력은 가문, 재산 또는 지위와 필연적인 관련성이 없으며, 오직 인격과 지식에 달려 있다.
인격과 지식은 적절한 교육의 산물이다.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교육은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교육을 받은 결과 가장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사람을 전체 국민 가운데서 선발하여 정치를 위임해야 한다.
이것은 백성 전체가 정치를 좌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결국 일종의 귀족정치 제도이지만, 가문이나 재산에 의한 귀족정치가 아니라 덕망과 능력에 의한 귀족정치이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자의 태도에는 가장 유능한 사람이 임용되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없다는 결함이 있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공자의 제도에는 전체 백성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치란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론은 확실히 백성들에게 막연하나마 ‘이론상’의 거부권을 부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의 형태나 제도적인 장치의 중요성은 과소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형태나 제도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데도 필요한 정신이나 철학보다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진리는 (또는 적어도 진리의 이해는) 부단히 발전 또는 개화 과정에 있으며 모든 사람이 진리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신념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반면에, 진리를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실재로 생각하는 철학은 모두 정치적 전체주의의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도 명백해졌다.
(중략)
공자가 절대론의 입장이 아니라 진리의 부단한 탐구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진리를 말하지도 않았고, 절대적인 가치척도를 제시하지도 않았으며, 그들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도록 교육하였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하여 목숨을 뺏고 뺏기는 권력투쟁이  공자의 제자를 자처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다는 것은 얼마나 빗나간 것인가?
서양의 학자가 본 공자가 그 유명한 주자(朱子)가 본 공자보다 훨씬 공자의 진실에 가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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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1 April at 08:45
  · 
크릴의 공자를 읽고 있다.
개혁가로서의 공자를 논하는 장(章)의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공자의 교육론이 혁명적 성격을 띄었다는 것은 여러 다른 주장들 예컨대 노자나 한비자와 비교해볼 때 뚜렷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혁명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공자 당시에 그의 정치적 주장에 아무도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공자가 개혁가로서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잘 말해준다. 맹자와는 달리 공자는 결코 폭군을 죽여야 한다거나 제왕과 농민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직선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전체적인 운동은 시작도 되기 전에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1세기 뒤에 맹자가 아무 탈 없이 직선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기초를 쌓았던 것이다. 이것은 확고한 방침에서 나온 것 같은데, 부패한 정부 아래 살고 있는 사람은 기회가 오면 용감하게 행동할 용의를 갖고 있어야 하지만 말을 할 때는( 그 자체로는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없기때문에) 다소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공자는 표명한 적이 있었다. (憲問 편)”
이 글을 읽으면서 이와 상반되는 상황이 요구되는 시대나 사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극단적 상황에 극단적 대응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이 극단적 대응 또한 또 다른 극단(極端)이기 때문에 결코 그 자체가 안정되고 평화로운 개혁을 이루기가 어렵지만, 그 후에 나타날 건강하고 조화로운 개혁을 예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악순환으로 전체가 붕괴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렇게만 된다면 역사는 거칠게나마  순항(順航)할 것이다.
사후(事後)에는 보이지만, 진행 중일 때는 모르는 일들이 역사 속에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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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6 March at 09:57
  · 
이수태 저 ‘공자의 발견’에 이어 H.G.크릴 저 ‘공자, 인간과 신화’를 두 번 째 읽고 있다.
크릴에게서 학자의 진면모(眞面貌)를 느끼게 한다. 
나는 논리적인 성격도 있지만, 직관적인 성향이 강해서 학자의 길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요즘은 학자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사람들과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오늘 읽다가 ‘예언자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것은 백발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는 코멘트 앞에서 혼자 웃는다.
나는 80이 다 되었지만, 흑발(黑髮)이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예언자의 길을 갔어도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사이비 예언자의 유혹에서 아예 생래적으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 색깔이 아닌 말과 행동으로 사이비 예언자를 감별하는 능력은 다소나마 갖추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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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알라딘:공자의 발견 脫朱子 論語學 이수태

알라딘: 공자의 발견




공자의 발견 
脫朱子 論語學
이수태 (지은이) 바오 2015-11-17

정가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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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포인트 137
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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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의 저자 이수태의 새 저작. 논어라는 텍스트를 넘어 철저하게 공자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논어 속의 단편들이 지닌 다양한 메시지들의 내적 연관과 교호를 통해 공자라는 컨텍스트를 엮어내고 있다. 아울러 논어에 대한 진지하고 엄밀한 탐구를 통해 공자의 3대 관점이나 위대한 개념들의 탄생을 제시한다.

저자는 본문 속의 여러 글들에서 공자의 목소리를 논어라는 고전 속의 텍스트로만 가두어 두지 않고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당면한 많은 문제에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식론적 단초를 제공한다. 저자는 오랜 세월 공자의 진의를 왜곡하고 가려 왔던 주자의 턱없는 논어 해석은 이제 수사학의 영역에서 종말을 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수기'와 '불이과', '양단을 넘어서'로 이루어진 공자의 3대 관점을 제시한다.

모두 5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은 공자에 대해 비교적 평이하고 개괄적인 차원의 글을 묶은 것이다. 제2장은 공자의 3대 관점으로, 주자가 잘못된 공자 이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졌는가를 밝히고 있다. 제3장은 논어가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제4장에서는 논어 단편에 대한 해석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종합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공자라는 인물을 좀 더 긴 역사 앞에 세워 놓고 그 모습을 추적해 본 글들을 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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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5

Ⅰ.젊은 공자
1. 젊은 공자17/2. 낯선 방문자들22/3. 사마천과 공자28/4. 공자와 소년33/5. 성인에의 꿈38/6. 세기의 대화43/7. 자로와 세례자 요한50/8. 공자와 예수, 너무나도 닮은 그들55/9. 공자, 그는 과연 누구인가?61/10. 오늘날의 공자, 어디에 있나?74/11. 논어, 언제까지 한문 공부의 차원에만 머물 건가?79

Ⅱ. 공자의 3대 관점
1. 수기修己85/2. 불이과不貳過117/3. 양단兩端을 넘어서138

Ⅲ. 논어 깊이 읽기
1. 아이러니165/2. 화이부동169/3. 순수함과 순진함176/4. 덕이란 무엇인가?180/5. 음악 마니아 공자의 음악 이해192/6. 경제의 본질은 굶주림이다197/7. 말과 글, 그 거짓되기 쉬운 도구203/8. 명예욕을 어떻게 볼 것인가?207/9. 어짊仁213/10. 정명225/11. 위대한 개념들의 탄생229/12. 학이편의 비밀243/13. 아! 옛날이여254/14. 펼치는 일과 간직하는 일261/15. 의로운 사회와 어진 사회267

Ⅳ. 논어의 무덤?<논어집주論語集注>
1. 논어에 여색女色이? 275/2. 주자는 없었다 282/3. 논어의 무덤, <논어집주> 287/4. 나의 논어 해석에 대한 나의 입장 304

Ⅴ. 수사洙泗의 본류를 찾아서
1. 주나라의 신비331/2. 무왕과 백이숙제339/3. 공자와 주공345/4. 공자의 관중 평가352/5. 공자와 양호359/6. 최술崔述 이야기379/7. 공자가 <춘추>를 짓다?386/8. 논어와 제자백가393/9. 논어 편집자를 말한다400/10. 공자적 입장에서 본 노자407/11. 공자,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었을까?428

추록·논어와 나434
-부록448
공자 연표/공자 제자 일람/중국 역대 왕조/주周나라의 변천 /공자 생존 시 주요국 세계世系/공자 생존 시 노나라 삼환三桓 세계世系/춘추시대의 중국/춘추시대의 중원 제후국/ 춘추시대의 노나라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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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번의 책은 확실히 논어라는 ‘텍스트’를 넘어 공자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같은 텍스트를 경유했으면서도 이번의 책은 논어 단편이 지닌 다양한 메시지들의 내적 연관과 교호를 통해 공자라는 ‘컨텍스트’를 엮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본다. 공자의 진의가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일관된 목적이었다. 주자의 턱없는 해석은 이제 수사학洙泗學의 영역에서 확실히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왜냐하면 <논어집주>가 건재하게 유통되는 한 공자는 저 2500년의 혼곤한 잠을 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자와 주자는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다. 주자를 살리기 위하여 공자가 계속 죽어 있을 수 없다면 우리의 남은 선택은 분명하다. …… 이번 책을 내는 목적은 분명하다. 나는 논어에 관한 한 이제 <논어집주> 800년의 역사는 단호히 종막을 고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논어는 다시 번역되고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25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공자의 진짜 육성을 듣고, 그 육성이 답이 없는 오늘의 현실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기 위해서도 그것은 불가피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머리말 중에서

논어와 공자에 초점을 맞추고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내 나름대로 그 희유한 전적과 기이한 인물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미미하게나마 그 자구가 읽히고 어렴풋하게나마 그 인물의 자태가 눈에 들어오는 환희의 순간, 내 시야 속에 주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자는 없었다! 이것을 나는 증언해 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경험에 입각하여 나는 망설임 없이 선언하는 바, 누구든 주자의 옷자락을 잡고 논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한 그는 결코 공자라는 저 희유한 인물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본문 중에서




저자 소개
지은이: 이수태

최근작 :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300개의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화두들>,<공자의 발견> … 총 19종 (모두보기)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서울사대부고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들어가 32년간 한 직장에서만 복무하며 대전지역본부장, 일산병원 행정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9년 「한국 가곡의 재인식 문제」로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격월간 에세이스트사가 제정한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강화도에 집필실을 마련하여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는 한편, 특히 수사학(洙泗學)을 연구하고 강연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관련 저작, 『논어의 발견』(1999), 『새번역 논어』(1999) 『공자의 발견』(2015), 수필집으로 『어른되기의 어려움』(2002) 『누룩곰팡이의 노래』(2004)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2012) 『영원한 공직』(2013) 『300개의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화두들』(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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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25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공자의 참된 목소리를 흔들어 깨웠던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의 저자 이수태의 새 역작!

여기, 공자의 참된 목소리가 있다!

1999년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을 출간하여 “주자류의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창적인 해석과 정확하고 유려한 한글 번역”으로 한국의 경학계와 언론의 찬사를 받았던 저자 이수태가 논어 관련 신작을 출간했다. 이전에 출간한 두 권의 저서가 주자의 그릇된 해석에 뒤덮여 온 논어를 구제하여 그 원음을 되살리는 것이었다면, 이번 신작 <공자의 발견>은 논어라는 ‘텍스트’를 넘어 철저하게 공자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번 신작은 논어 속의 단편들이 지닌 다양한 메시지들의 내적 연관과 교호를 통해 공자라는 ‘컨텍스트’를 엮어 냈다는 점에서 논어 연구에서 일대 진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논어에 대한 진지하고 엄밀한 탐구를 통해 이제까지 어떤 연구자도 보여 주지 못했던 ‘공자의 3대 관점’이나 ‘위대한 개념들의 탄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논어 연구가 이제 완숙함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본문 속의 여러 글들에서 공자의 목소리를 논어라는 고전 속의 텍스트로만 가두어 두지 않고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당면한 많은 문제에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식론적 단초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논어, 탈주자 시대의 선언

저자가 논어를 연구하는 단 하나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공자의 진의가 살아나야 한다는 것, 즉 공자의 참된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저자는 논어를 해석하면서 엄격한 사료 비판과 가혹하리 만큼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해 “공자가 무덤에서 나와 틀렸다고 말해도 물러서지 않을 만큼 자신 있는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오랜 세월 공자의 진의를 왜곡하고 가려 왔던 주자의 턱없는 논어 해석은 이제 수사학洙泗學의 영역에서 종말을 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마디로 “논어, 탈주자 시대 선언”이다. <논어집주>가 여전히 건재하게 유통되는 한 공자는 저 2500년의 혼곤한 잠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진짜 육성을 듣고, 그 육성이 수많은 답을 요구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기 위해서라도 논어의 탈주자 시대 선언은 불가피한 절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자의 3대 관점을 제시하다

모두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제2장 ‘공자의 3대 관점’이다. ‘수기修己’와 ‘불이과不貳過’, ‘양단兩端을 넘어서’로 이루어진 ‘공자의 3대 관점’은 이제까지 그 어떤 논어 연구자도 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기’에서는 수기야말로 ‘모든 것, 즉 배움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공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불이과’에서는 ‘무지와 과오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또 ‘양단을 넘어서’에서는 인간 사회에서 흔히 접하는 급진성과 결곡함,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 가운데와 하찮음의 문제를 공자의 관점에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양단을 넘어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이토록 중요한 공자의 관점들이 간과되어 온 것은, 주자가 공자 특유의 관점이 반영된 최고 수준의 단편에서 줄줄이 해석을 그르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의 간략한 구성과 내용

모두 5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젊은 공자’는 공자에 대해 비교적 평이하고 개괄적인 차원의 글을 묶은 것이다. 대부분의 글이 기존의 낡은 공자관을 시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2장은 앞서 언급한 ‘공자의 3대 관점’이다. 이 글은 이번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글로써 주자가 잘못된 공자 이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졌는가를 밝히고 있다. 제3장 ‘논어 깊이 읽기’는 논어가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신영복 선생의 화이부동和而不同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4장 ‘논어의 무덤-<논어집주>’에서는 논어 단편에 대한 해석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종합하고 있다. 제5장 ‘수사의 본류를 찾아서’에서는 공자라는 인물을 좀 더 긴 역사 앞에 세워 놓고 그 모습을 추적해 본 글들을 묶은 것이다. 마지막에 수록한 ‘추록-논어와 나’는 저자와 논어와의 인연에 대한 글로 저자의 논어와 공자에 관한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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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d
이수태 저 ‘공자의 발견'을 읽고 있다.

그는 공자의 3대 관점으로 <①수기(修己) ②불이과(不貳過)③양단(兩端)을 넘어서>로 요약 이해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副題)처럼 주자학(朱子學)으로 집대성된 ‘왜곡된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찾고 그것을 현대에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많이 공감하는 바가 있다.
나는 주자학(朱子學)도 모르고, 공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논어를 읽었기 때문에 대칭적 비교가 없이 논어를 연찬하면서 읽었다.
나증에 보니 공자의 사상이 그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져간 유학(儒學)과 다르다는 것, 어떤 점에서는 심한 왜곡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한편 7장에 나오는 다음 문장은 내가 논어를 통해 공자 사상의 기본으로 읽혀졌던 문장이다. 공자가 스스로 밝힌 자기정체성 즉 호학(好學)의 ‘학(學)’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 수태 선생도 이 문장을 대단히 중시한다.
그러나 그 관점이 나와 좀 다르다.
이 다름은 ‘논어’에 접근하는 각각의 경로와 경험의 다름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다름이야말로 논어 또는 공자 사상의 생명력을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내 나름의 해석이다..
“내가 아는 것이 있을까? 나(인간)는 실재(사실 그 자체)를 알 수 없다(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자신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필터를 거쳐 인식할 뿐이다). 그러나 누가 물어오더라도 모른다고 피해버리지 않고(불가지론이나 회의론에 머물지 않고) 영위(零位)에 서서(무지의 자각을 바탕으로) 그 양 끝을 두들겨(철저 검토) 끝까지 (진실을) 밝혀 가보겠다.”
이 수태 선생의 해석이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 없다. 못난 사람이 있어 내게 물어오면 나는 막막하다. 나는 단지 그 양단을 두드려주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무지(無知)의 자각과 탐구태도(연찬)’에 방점(傍點)이 찍혔다면, 이 수태 선생은 ‘그 양단을 두드린다’에 방점(傍點)이 찍힌다.
‘무지(無知)’라는 표현이 겸사(謙辭)가 아니라 실제를 말하고 있다는 것, 공공여야(空共如也)가 비부(鄙夫)를 수식하는 말이 아니라 공자를 수식하는 말이라는 것은 나와 관점이 같다.
그러나 공공(空空)을 보는 관점이 좀 다르다. 나는 공자의 탐구 태도의 출발점으로 보고, 그것을 영위(零位)에 서려는 즉 무지의 자각에 서려는  태도로 보았다. 
고기양단(叩其兩端)의 양단(兩端)을 보는 관점은 비슷한데, 나는 철저 탐구의 연찬태도에 방점이 찍히는데, 이 수태 선생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떠올린다. ‘줄탁동시’의 ‘탁(啄)’의 역할에 주목한다. 
나와는 방점이 좀 다른 곳에 찍히지만, 이 해석도 존중한다.
사람이 깨달아가는 주체는 그 자신이 주체다. 어떤 스승도 ‘탁(啄)’이라는 보조적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敎)의 바탕이다.
나는 공자의 무지(無知)를 학(學)의 출발점으로 보았고, 이 수태 선생은 ‘양단을 두들기는 것(叩其兩端)’을 가르침의 기본으로 보았다.
이 둘 다 공자의 사상과 실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공자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그 동안 사회를 정체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해온  오래된 유학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 절실한 현실적인 테마는 양극단(兩極端)이 정치무대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을 넘어서기 위해 인식과 실천의 방향을 근본에서 바꾸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외교와 내치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에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양단(兩端)의 진폭이 너무 크거나 그 바뀜이 거친 것이 문제다.
우리는  짧은 기간의 압축적 변화(산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과 군사독재를 벗어난 제도의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이런 정치문화를 선진화시키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을 겪을 것이다.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다.
심리적 내전에 가까운 양극단의 충돌을 비극적 결말의 출발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양극단의 진폭을 줄이고 변화 과정의 거칠음을 부드럽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넘어서야할 테마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심경을 어제 광주포럼에서 함께 나누었다.
실제로 그런 국민적 자각이 크고 넓어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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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논어를 원체 기초적인 학습 과정이 없이 접했다보니, 내 책이 출판된 이후 여러 책들을 보며, 그 역사적 배경이나 사람들을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열댓 권 정도는 읽은 것 같다.

그 가운데 다음 세 권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이수태 저 ‘공자의 발견- 脫朱子論語學’, H.G.크릴 저 ‘공자-인간과 신화’ , 리링 저 ‘논어, 세 번 찢다’

이수태 선생의 책을 먼저 보기 시작한다.
‘탈주자논어학脫朱子論語學’이라는 부제(副題)에 걸맞게 70여개의 장(章)을 주자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정통 유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하고, 주자 뿐 아니라 중용이나 맹자에 대해서도 공자를 왜곡했다고 보는 점은 나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공부의 양(量)이나 깊이는 나와 비교가 안된다.
나는 아무런 기초적 학습과정이 없이 논어를 ‘연찬’ 식으로 읽다보니, 나중에 주자(朱子)의 관점과 많이 다른 것을 발견했지만, 그는
논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해서 보는 나름의 관점이 있다.
나도 논어를 15년 정도 읽다보니 나름의 일이관지하는 관점이 생긴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런 느낌이 논어가 일목요연하게 보여오는 점은 있지만, 그것은 공자와는 별개의 자신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맹자도 주자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 안목이 생길수록 더욱 더 ‘연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읽다보니까, 이 수태 선생의 관점도 처음 볼 때보다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오늘 읽은 대목의 하나인데, 주자(朱子) 류(流)와 크게 다른 점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자공이 말하기를, “만일 백성들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 말하기를, “어찌 인이라고만 하겠느냐? 반드시 성(聖)이라고 할 수 있다. 요순 같은 사람도 오히려 그렇게 못함을 걱정하였을 것이다. 무릇 인(仁)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서고 싶은 곳에 남도 세워주며,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것을 남도 이루게 한다. 가까운 자신을 가지고 남의 처지를 미루어 보는 것이 인(仁)의 올바른 방향이라 이를 수 있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의 해석이 아주 다르다.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세워주고, 자신이 달하고 싶으면 남을 달하게 한다.’와 비슷하게 대부분의 책들이 해석하는데 대해, 저자는 ‘스스로 서기를 바라서 남을 세우고, 스스로 통달하기를 바라서 남을 통달시킨다.’로 해석한다.
이런 해석에는 저자가 일관되게 바라보는 공자가 있다.
자신을 뒤로 하고 오히려 남을 앞세우니 인(仁)이 아닌가? 라고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지만, 이 문장이 저자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이타주의가 엎어놓은 이기주의에 불과하듯, 그것은 인(仁)이 아니라 탐욕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공자가 경계한 말로 저자에게는 다가온다.
공자는 베푸는 일을 근본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남을 위한다는’ 욕망들이 직접적으로 발현되는 한 그것은 아무것도 개선시킬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보고, 세상을 향한 그런 직접적 욕망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변화시키는데 더 근본적인 실천을 대부분 가로막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고 이 장(章)을 읽는다.
나도 일정한 부분에서 저자와 공감하는 바가 있다.
내가 말했다면 <‘남을 위한다는’ 허위의 욕망들이 선차적으로 작동한다면> 정도로 말했을 것이다.
나선형 순환의 오랜 경로를 거치며, 결국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면 ‘자기혁명과 세계 혁명은 하나’, ‘자기혁명 없는 세계혁명은 허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가 역사 상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예수’와 ‘공자’로 보는 것도 그가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관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즘 담론(談論)과 도덕(道德)이 동반 붕괴하는 현상을 보면서 일면식도 없지만, 이 수태 선생과 이런저런 생각들을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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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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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知 天 命
알 지
하늘 천
명령 명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으로, 나이 50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상세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나이 쉰에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해 5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여기서 '천명을 안다'는 건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이며, 마흔까진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50세가 되면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인 성인(聖人)의 경지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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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1 h  · 

불혹不惑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으로.

천명을 안다는 말을 인간의 인식이나 의지 너머의 '무엇'을 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집을 극대화할 위험이 크다.
전제군주나 독재자 또는 혹세무민(詐欺)하는 사이비 종교인이나 도사에게만 아편과 같은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과대망상이나 아전인수의 몽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지천명을 자기 분수分數를 아는 것으로 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도 불혹을 지나 겨우 도달한 세계로 말하고 있다고 본다.
요즘 말로 하면 'n분의 1'을 자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 '1' 속에는 'n'을 공통분모로 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n=1이라는 형이상학적 담론도 많다.
그러나 잘 못 나가면  앞에 말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과 의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하더라도  미지로 남겨두고,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자유로운 삶으로 이끈다.
불혹이 뜻을 세우고(志) 자립(立) 하는 과정을 거치며 중심을 잡아가는 강剛의 단계라면, 지천명은 유柔로 접어드는 성숙의 단계다.

이순과 종심소욕불유구로 이어진다.
 공자가 스스로 쓴 이력서를 나는 이렇게 보고 있다.
이 이력서에 대한 나의 이해도 여러 차례 변했다.
공자의 진의와는 별개로 결국 나의 관점이 변한 것일 뿐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치매가 오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