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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2

도덕경 - 위키백과, 老子道徳経 일어 한역

도덕경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도덕경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도덕경》(중국어 간체자道德经정체자道德經병음dàodéjīng 이 소리의 정보듣기 영어Tao Te Ching)은 노자(老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도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노자(老子)》로도 불린다. 노자는 이 저서에서 전체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無爲)의 삶을 살아갈 것을 역설하였다.

도덕경의 내용[편집]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의 장(長)이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10장). 이런 사고는 만물의 형성·변화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예정된 목적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노자의 말에 나타난 사상은 유심론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펑유란은 도에 대해서는 사고방식은 일종의 유물론으로서 무신론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도(道)는 자연(自然)을 법(法)한다'(55장)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자기 의지를 갖추고 자연계를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설명한 것이다. 이 이론은 유가(儒家)의 천인감응(天人感應)적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자가 보인 인생관은 "유약한 자는 생(生)의 도(徒)이다" (76장). "유약은 강강(剛強)에 승한다."(36장)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그러면서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때문에 도에 가깝다"(8장), "천하의 유약하기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78장) 등의 구절에서 보듯이 어디까지나 문명과 나를 내세우지 않고 뭇 세상과 조화롭게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의 방식을 권한다. 그러한 사상을 겸하부쟁((謙下不爭) 이라고 하는 말로써 환언(換言)하고 있다.

노자는 또 "도(道)는 일(一)을 생하고 일은 이(二)를 생하고 이는 삼(三)을 생하고 삼은 만물을 생한다."(42장)고 하는 식의 일원론적인 우주생성론을 생각하고 있었다.

道는 노자, 장자 등 이른바 道家의 전유물이 아니고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들 사이에서 상용되던 단어이다. 道의 개념 내지 의미는 학파와 사상가에 따라 매우 넓은 스펙트럼으로 나타나지만 대체로 정치, 윤리, 전쟁, 인생, 우주 등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을 지향한다. 일반적으로 도는 有의 사건으로부터 추상되는 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노자의 道는 無이다. 無를 단순히 有가 아닌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有이므로 無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노자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無를 알았을까? 도덕경은 聖人이 無를 알아가는 旅程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때 聖人은 단순히 無를 알아가는 여정에 오른 사람들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독자를 聖人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도덕경의 목표이다.

無는 有가 아니므로 聖人에게 무엇인가 ‘어두운 존재’로 다가온다. 이에 聖人은 무에 투신(投身)함으로써 ‘無의 운동’을 일으키고, 이를 통하여 無에 동화되고 無를 닮고 無를 안다. 따라서 無를 아는 것은 無의 운동의 결과이다.(1장 玄之又玄) 無의 운동은 無知無欲과 無爲로 이루어진다. 無知는 無를 지향하는 활동이며, 無欲은 無로부터 끊임없이 玄의 깨달음을 얻는 사건이며, 無爲는 그 깨달음이 성인의 일상적인 삶으로 드러나는 사건이다. 玄은 無에서 비롯하는 새로운 자아로서 굳이 정의하자면 ‘無에서 나온 無’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경험과 이성과 의지를 동원하여 有를 하는데, 이때 의지는 경험과 이성을 이끄는 주체의 방향성이다. 그런데 경험과 이성으로는 無를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은 無를 알기 위해 오히려 경험과 이성을 부정(否定)하고 그 결과 의지까지도 부정한다. 이때 聖人은 단순한 ‘나’로 머물면서 無 안에 잠기게 된다. 聖人은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無를 지향하는 의지를 얻고 이로써 無를 안다. 이런 이유로 無를 지향하는 의지를 無知라고 한다. 이때 성인은 욕구(欲)로부터 초연한 새로운 자아(玄)의 깨달음을 얻는데(1장 常無欲以觀其妙) 그 無欲의 깨달음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노자는 ‘알 수 없는 그 존재’에 道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노자의 道는 확실히 사람과 어떤 종류의 교감을 나누는 ‘神的인’ 존재이다,

無知는 聖人이 道를 사랑하는 활동이며 無欲은 道가 聖人을 사랑하는 활동이다. 이 두 활동은 동시적인 사건으로서 하나의 짝을 이루기 때문에 둘을 함께 묶어서 無知無欲(2장)이라고 한다. 누구든지 道를 사랑하면 道는 반드시 그를 사랑한다.

無知無欲의 활동이 聖人의 삶으로 드러난 것을 無爲라고 한다. 聖人은 無知無欲에 근거하여 無爲를 실천하는데 이것은 그가 얻고 있는 신적인 자아(玄)의 본성에 따른 것이다. 無爲自然의 自然은 바로 이 신적인 본성을 가리킨다. 聖人은 욕구에 일방적으로 복종하거나 규범으로 욕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본성에 따라 힘들이지 않고 욕구를 다스린다. 이것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천하와 만물을 완전하게 다스리는 결과를 낳는다. (10장 愛民治國)

道德經의 德은 無知無欲과 無爲를 통틀어 일컫는 용어이다. 德은 또한 ‘道를 실천하는 일(行)’이다. 無知無欲이 道의 뿌리라면 無爲는 道의 줄기와 가지라고 할 수 있다. (69장 深根固柢長生久視之道) 無知無欲을 실천하지 않으면 결코 無爲를 실천할 수 없다. 聖人은 無知無欲의 內的 운동을 우선한다. 無爲自然의 外的 활동은 내적 운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無知無欲을 거들떠보지 않고 無爲自然을 찬미하지만 물론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는 경험과 이성에 기초한다. 그런데 無의 운동은 경험과 이성을 초월하므로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노자는 부득이하게 比喩(parable)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도덕경은 대부분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 도덕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無의 운동은 매우 쉽고 단순하며(70장 吾言甚易知 甚易行) 無의 운동을 통하여 모든 비유의 의미가 저절로 밝혀진다.

지금 말하는 비유는 직유(simile), 은유(metaphore), 상징(symbolism), 類推(analogy), 寓話(allegory) 등 우회적 표현법을 모두 포함한다. 비유를 풀어내려면 반드시 道를 실천해야만 한다. 따라서 道를 실천하지 않고 도덕경을 해석하기는 아예 불가능하다. 道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道의 실천을 도외시하고 무모하게도 道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그들이 내놓은 도덕경 해설서들 중 그 어떤 것도 도덕경 전체를 모두 포괄하지 못하며 그나마 내용의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도덕경의 비유는 그 자체로 독자들이 道를 실천하기를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1]

도덕경의 판본[편집]

오늘날 우리가 도덕경으로 규정한 판본은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정리한 것이며, 이를 소위 왕필본 혹은 통용본이라고 부른다.

1973년도에 중국 장시성에서 발견된 고분 마왕퇴(BC 168년 추정)에서 발굴된 백서본에 담겨있는 문장들은 왕필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불어 마왕퇴에서 발견된 도덕경 판본은 중국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편집한 통용본보다 연대가 훨씬 앞섰다. 다시 말하자면, 왕필본의 저본이 바로 백서본인 셈이며, 왕필이 정리하기 이전에 중국의 여러 사서에 인용된 판본도 이 백서본인 셈이다. 백서본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백서본 갑본으로서 전국시대 말기(BC 247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을본은 한나라 초기(BC 195년 이전)에 제작된 판본으로 추정된다.[2]

1993년 중국 화북성의 곽점촌에서 발견된 곽점본(혹은 죽간본, BC 300년 추정)은 백서본에는 있는 중요한 시문들이 많이 빠져있으나, 백서본에는 없는 내용 일부가 있어 새로운 텍스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곽점본과 백서본의 주요한 차이는 다음과 같다.

  1. 곽점본은 대나무에 쓰인 반면에 백서본은 비단에 쓰였다.
  2. 곽점본의 내용 상당수가 백서본에는 없으며, 백서본에 없는 내용 일부가 곽점본에 있다. 곽점본은 2,000여자로 백서본의 40% 정도의 분량이다.
  3.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의 내용에는 조금씩 추가된 것들이 있으며 문장 형태가 말끔해지는 경향이 있다.
  4. 백서본에는 전사과정의 기본적인 오류와 원래는 주석이었으나 옮기는 과정에서 본문으로 들어간 오류 등이 확인된다.
  5.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이 더욱 반 유가적인 경향을 보인다.
  6. 백서본이 곽점본에 비하여 정치술수적인 내용을 더욱 많이 지니고 있어, 백서본 성립 시기에 유행한 황로학의 영향을 받아 통치술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7. 백서본은 음양사상을 받아들여 기화론적 우주생성론의 내용을 담고있다.

처음으로 도덕경을 상하로 나눈 사람은 전한 말기의 학자 유향이다. 완결편 도덕경 주석서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하상공'(혹은 '하상장인')이 지은 하상공장구가 있다. 후한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하상공장구는 당나라 시기까지 가장 유행한 판본으로 양생론적 성향이 강해 초기에는 도교도들에 의해 많이 읽혔으나 이후 당나라 시대까지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 되었다.[3]

왕필은 18세이던 243년에 노자도덕경주를 완성하였고, 이후 그의 저서는 위나라의 재상 하안에 의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당나라때까지만 해도 그의 구석서는 하상공장구에 비해 덜 읽혔으나 송나라때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주요한 판본으로 여겨지게 됐으며, 이 지위는 명,청대에 더욱 확고해져서 백서본 출토 이전까지 무려 천년 이상 동서양 도덕경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4] 그러나 그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을 유가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많았기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백서본과 왕필본의 다른점은 다음과 같다.

  1. 백서본은 장절구분이 거의 없이 이어 적혀있었으나, 왕필본은 장절구분이 잘 되어있다.[5]
  2. 백서본은 덕경이 도경보다 앞에 놓이나, 왕필본은 도경이 덕경보다 앞에 놓인다. 다시 말하면, 백서본은 덕도경이라고 불릴 수 있고, 왕필본은 우리가 익히 들언대로 도덕경이라 읽는다.
  3. 왕필본의 장절구분을 기준으로 하면, 백서본은 24-22-23장과 41-40-42장, 66-80-81장의 순서로 구성되어있다.
  4. 백서본은 왕필본에 비해 시대 특성상 (가차자)가 많이 쓰였고, 따라서 그 글자들의 해석이 복잡하다.
  5. 백서본은 왕필본에 비해 허사가 많이 남아있어 왕필본의 끊어읽기 문제를 다소 해결해준다.

곽점본과 백서본 그리고 왕필본의 차이만 보아도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전설처럼 노자가 함곡관을 넘으면서 도덕경 5,000여 자를 남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도덕경은 일거에 성립된 것이 아니고 고대부터 전국시대 말기를 거치면서 발생한 여러 생각과 사상들이 응축되어 성립된 책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복잡한 성립과정은 도덕경 안에 여러 모순된 사상이 뒤섞여 존재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도덕경에 모순과 여러 사상이 뒤섞여 있는 만큼, 여러 사상가와 학자마다 도덕경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는데, 하상공장구는 양생술을 위한 음양사상의 기본 경전으로서 여겼고, 왕필주는 도덕경에 담긴 형이상학적인 면모를 흠모하여 신비주의학적으로 여겼으며, 그 외에도 여러 학자와 사상가들이 저마다 무위자연주의, 반유가주의, 반법가주의, 음양가 사상, 무정부주의, 병가 사상들의 근간이 되는 저서로 여겼다.

한국으로의 유입[편집]

삼국시대 이후에 이미 도덕경은 읽혔을 것으로 추정되나 해설서로 남은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은 아래와 같다.[6]

대부분 왕필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9]

이후 몇가지 한국어 번역이 시도되었다.

각주[편집]

  1.  남충희 저, 바른풀이 老子道德經(2018). 렛츠북.
  2.  이석명 역, 백서 노자(2003). 청계. ISBN 89-88473-60-4
  3.  이석명 역, 노자 도덕경 하상공장구(2005). 소명출판. ISBN 89-5626-180-6
  4.  임채우 역, 왕필의 노자(1998). 예문서원.
  5.  도덕경 체계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 현종대인 742년이다.
  6.  전반적으로 다루는 책은 금장태 저, 한국유학의 노자 이해(2006). 서울대학교 출판부. ISBN 89-521-0702-0이 있다.
  7.  민족문화대백과의 '순언'
  8.  민족문화대백과의 '노자주해'
  9.  노자강의, 기세춘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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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 덕경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노자"(Mawangdui 실크 스크립트)
장춘관태청전의 『노자도덕경』( 무한시 )

노자 도 덕경은 중국 의 춘추 시대 의 사상가 노자가 썼다고 전해지는 책. 단순히 노자 ' 와도 도덕경 ' ( 번체자 : 도덕경 ; 간체자 : 도덕경 _ _ _ _ _ 또, 노자 5천언·5천언과도. 소코」와 늘어선 도가 의 대표적 서적. 도교 에서는 『도덕진경』이라고도 한다. 상편(도경)과 하편(덕경)으로 나뉘어 아울러 81장으로 구성된다. Zh-Tao Te Ching.oga 

성립·전래 편집 ]

전설상의 노자도덕경 편집 ]

노자는 초의 사람. 은군자로서 둘레 의 도서관 사서  맡고 있었다. 공자 는 낙양을 향해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어느 때 둘레의 국세가 쇠퇴하는 것을 느꼈고, 소의 등을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하코다니 세키를 지날 때, 세키모리의 윤희(인키, 중문판 )의 요구에 따라 상하 두 권의 책을 썼다. 그것이 현재에 전해지는 '도덕경'이다. 그 후 노자는 세키를 나와 그 끝을 아는 것은 없다.

문헌학상의 노자도덕경 편집 ]

그러나, 현재의 문헌학에서는, 전설적인 노자상과 「도덕경」의 성립 과정은, 적어도 의문시되고 있다.

우선 노자가 공자의 선배였다는 증거는 없다. 전설 에서는 노자의 해는 수백세였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전술한 공자가 노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 장자 '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장자'의 기술은 우화 가 많고, 이것도 그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장자』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점에서 보면, 노자의 이름은 당시(기원전 300년 전후) 이미 전설적인 현자로 알려져 있었다고 추측된다. 다만, 장자 이전에 서적으로서의 「노자도덕경」이 존재했는지는 의심스럽다. 『도덕경』의 문체나 용어는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유명한 ' 대도 폐해 인의 있음 '의 한 문장이 있지만, '인의'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묘자 이후 이다 .

한편 ' 한비자 '(기원전 250년 전후)에는 '도덕경'의 인용이 있다(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위작설도 있다).

현재 유력한 설에서는 『장자』에서 언급되고 있는 전설적인 현자의 노자는 『노자도덕경』의 작가가 아니고 『도덕경』은 이후의 도가학파에 의해 집필·편찬된 것이다. 라는 것이다.

전래 편집 ]

  • 출토 자료로서는 곽점 1호 초묘 에서 출토한 잔간(郭店楚簡)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마왕퇴한묘 에서 출토한 2종류의 첩서 (『老子帛書』甲・乙)가 있다. 갑본은 유방 의 '방'을 피탐 하지 않고 한 이전의 것이다. 이와 같이 을모토 쪽은 파손이 적다.
  • 본문 및 주석서로는의 왕弼에 의한 『노자 쏟아짐』과 한의 가와카미 공(카쇼코)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실제로는 아마 6조 시대의 것)  노자 가와카미 공주』가 대표적 무슨. 왕弼과 河上公과는 본문에도 차이가 있다. 당대 초의 후지 에 의한 편집으로 여겨지는 노자 고문도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당나라의 현종 황제에 의한 『개원 어주도덕경』이라는 것도 있다. 부분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서는 한대의 엄준에 의하면 '노자지귀'가 있다. 그 외에도 중국에서 역사상 다수의 주석서가 만들어져 근대 이전에 만들어져 이름만으로도 전해지고 있는 전적이 수백 있다. 근대, 세계적으로 고전으로 인식되고 나서는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내용 편집 ]

형식 편집 ]

『노자도덕경』은 5천수백자(전본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로 구성된다. 전체는 상하 2편으로 나뉘며, 상편(도경)은 “길의 길로 해야 하는 것은 항상 길에 없는(도가도, 비상도)”, 下篇(덕경)은 “상덕은 덕과 하지 않고, 시를 덕덕(上徳不徳, 是以有徳)'로 시작한다. 『도덕경』의 서명은 상하편의 최초의 문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를 취한 것. 다만 마왕퇴첩서에서는 덕경이 도경 이전에 와 있다.

상편 37장, 하편 44장, 합계 81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은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장 분할은 이후의 주석자에 의한 것. 68장으로 나눈 주석도 있다. 한편, 81장보다 많이 나누는 것이 문의가 취하기 쉽다는 의견도 있다.

'도덕경'에는 고유명사는 하나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단문으로 되어 있는 것, 고유명사가 없기 때문에, 도가의 속담을 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노자 사상 편집 ]

노자

노자의 근간의 사상인 무위자연 이란, 자연과의 융합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는 가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한다」라고의 사상. 일부의 편향된 해석에서는 이것은 정치사상이며, 아래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인민은 무지한 채 살려 두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하는 사상과의 해석도 있다 .

 불상현 사민
 불계 또한 없다.)
 불가능한 욕망 사심 부족 (원할지도 모르는 것들도 보지 않으면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
 )
(민은 공허한 의식 밖에 없어도 배는 포만하고,) 약경지 강경
 골 (마음은 약해도 뼈육은 완강하다.
 ) 아무것도 원하지 말아라.)
 사부 지자 불감야(지식인은,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시키지 말아라.
 ) 반드시 하늘은 낫다.)(도덕경 3장)

또 노자에 있어서는 유교적 가치의 비판 내지 상대적 시점의 제시를 마음껏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인의와 선과 지혜, 효행과 자비, 충성과 솔직함은 현실에는 그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 대중이 되기 때문에 거리가 존재하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필요 없는 개념 이라고 말한다.

  大廢 有仁義  (위대한 '길'이 버려 처음으로 인의가 나타난다.) 智慧出 有大
  偽
백부, 이모, 백모의 육친의 사이가 나쁠 때에 한해 효행이나 자비가 대접된다.) 國家昏亂 有正
  臣솔직히 황제를 포기하는 정신이 인식되게 된다.)(도덕경 18장)

“기근이라는 것은 해의 순환에 의한 이상 기상으로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다. 그러나 민중의 생활을 파괴하는 기근은, 군주가 자신의 소비 때문에 세수의 눈 감소를 참지 못하고, 기근으로 모두가 곤란하다 있을 때 세금을 더욱 무겁게 하여 여분으로 빼앗으려는 《 식세》에서 발생하는 것이다.多 是以饑)」

“ 하늘 의 행동에 있어서는 뭔가 부족하면 남은 곳에서 보충되어 전체의 밸런스가 유지된다. 그런데 인간의 제도는 그렇지 않다. 결핍한 인민으로부터 높은 세금을 다 벌써 벌써 남아 있는 군주에게 드리겠습니다.어딘가의 군주가 그 남은 재력으로, 천하 만민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준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유도의 군주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이봐 ( 텐노미치 손유애이익부족 인노도칙 불연손부족이후봉 유물

“강대한 패권국가의 군주는 자신의 말로 착취할 수 있는 가축과 같은 인간의 수를 늘리고 싶으니까,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다. 라고 초강대국에 굴종해, 신매의 산단을 하고 있을 뿐이다.결국, 전쟁이나 평화라고 하는 것은 군주들의 의지의 싸움만으로, 민중을 뭔가 아무것도 생각해 하지 않으니까, 뭐 마음대로 하면 좋겠다( 대국자 불과욕 겸 축인 소고자 불과욕 인사인 남편 모두 얻게 욕심 )”(제61장) 

“도의에 의해 군주를 보좌한다면 군사력의 강대함에 따라 천하의 사람들을 순종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와 주위에 이바라가 자란 것처럼 반항하는 세력도 일어나게 되어, 전쟁은 결국, 진행되면 진행할수록 자신도 상처가 가는, 이바라의 길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이도 사인 주 불이병 강대천하 이사 호환 사노쇼 토모

“전쟁이 능숙한 장군은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것이 아무 것도 싸우지 않는 「불쟁지덕」이라고 하는 것이며, 사람들의 힘을 이용하는 요령이며, 천도를 배려한 방책으로, 성인 군자의 정치 이념이다(선태자 불분與善用人者爲之下是謂不爭之徳 是謂用人 是謂配天 古之極也)」

「성인은 언제나 사심을 가지지 않고, 백성 전체의 마음을 스스로의 마음으로(하고, 정치의 결단을) 한다.(성인 항무심 이백성지심위심)」(제49  )

"재해의 원인은 가상 적국이 되는 라이벌이 없어져 방심해 버리는 것이 가장 크다. 강력한 라이벌이 없어지면 본래 활용해야 할 인재, 제안, 발명, 만물을 살리는 지혜 등 군주가 보물 해야 할 것이 시대에 맞지 않는 무용의 장물 로서 배척되어 회복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진보이며, 그 쌓아 올리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 나오미 시라지 병무 )」(제73장)

"어패류를 많이 튀긴다고 해서 모아 두어도 오래 저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곧 썩어 버린다. 계승되었다고 하는 예는 없다.다른 제후나 도적이 보물을 목표로 빼앗기러 오기 때문이다.이미 지위도 높고, 충분히 재산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잠시 쓰고, 한층 더 욕망의 덩어리가 된다, 그런 일로는 자신으로부터 묘구멍을 파고, 만절을 더럽히게 되자.세상에서 충분히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그 후는 은퇴하고 세상의 사람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은혜를 위해서  것이다 게 하늘 이 정한 인생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 간『노자・갑서』)

“세상의 직함과 인생은 어느 것이 중요합니까.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정도의 돈이나 물건이 있는 것인가. 매우 사랑하면, 반드시 무리를 하고, 많은 비용을 들게 된다.많은 부를 너무 많이 모으면, 반드시 그 부를 빼앗긴 사람들의 원한과 증오도 집중한다.따라서 일은 어느 정도로 만족하고 이상한 욕심을 내지 않으면 드물게 치욕을 받지 않고 어느 정도로 간절히 보고 굳이 위험에 밟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일이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다( 명함신학부모, 신추화학 다 득매망원병 심애필대비 다랑필후망 책」・양서 『노자・오토모토』 제44장)

늙은 노인의 생각에 대해 편집 ]

「노자 첩서 갑·을」에서는, 「갑 편덕」, 「을편도」의 편명의 순서로 되어 있다. 「길」・「덕」의 차례가 된 것은, 1세기부터 3세기의 무렵으로 되어, 그 무렵, 장별도 행해졌다고 한다[1 ] . 또, 노자 되는 인물이 살았을 시대와 『노자도덕경』이 만들어진 시대에는 열림이 있어, 이 책은, 그 계보에 해당하는 제자가 후년에 두른 것이라고 하는 설이나, 노자는 3명 있었다는 설이 있다. '길'의 내용에 대해서도 철학적 인 구부터 독단적인 처세술 구까지 혼재하고 있다. 그 때문에, 노자인 인물이 살아 저작했을 시대보다, 옛부터 전해지고 있던 속담이나 명언을, 「노자」의 편집자는, 그 저작에 도입했다고 하는 견해  있다 [ 2 ] . 또, 낡은 노자도덕경은, 5천자 밖에 없는 것에도 불구하고, 「갑편 덕」, 을편 「길」의 순서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게 구성된 것은 책의 내용이나 책의 장 나누기가 그 원인이 되지 않았다고 추찰되고 있다. 노자도 덕경이 태어난 경위에 대해 생각했을 때, 옛부터 전해지고 있던 속담이나 명언을 작성한 인물들이 있고, 그 편집이나 해설을 한 인물이 「덕편」을 형성해, 거기서 말한 길의 사상을 증폭한 형태로 ‘갑편 덕’, 을편 ‘길’의 형태로 편찬한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된다. 낡은 구성을 역전시켜, 현재와 같은 「길」로부터 시작되어 「하편 덕」의 형태로 정착시킨 것이, 노자도덕경이라고 생각되는 요인의 하나에는, 제18장의, 「대도 폐해 인의 있어」의 구는, 묘코와 동시기인가, 혹은 그 후배와 동시기의 편자가 작성한,이라고 보여지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3 ] .

중국 의 낡은 책은 그 대부분이, 한 명의 저자만으로 쓴 것이 아니라, 시대를 변천해, 다수의 저자의 손에 의해 추기 편집되어 갔다고 되어 있다 . 그 문류의 사람들은, 차례차례로 그 원본에 써 넣어 간 것을, 전체로서 재구성해, 그것을 그 발단자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다[4 ] . 그 때문에, 노자도 덕경에 있어서의 「길」의 개념에 대해서 보는 경우, 최초의 저자인가, 그 사상에 준한 다른 저자의 사상을 맞춘 것을, 노자 도덕경에 있어서의 「길」로서 검토해 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노자 첩서에 적용한 경우 현행의 '하편 덕'을 필두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건언보다의 인용」이라고 적혀 있는 부분이, 꽤 오래된 「노자」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노자의 「길」의 구분 편집 ]

노자도덕경의 경우 '길'에 대한 설명은 4종의 사상 ·인물로 구분할 수 있다.

보편적 법칙으로서의 길 편집 ]

길과 무위를 동일시해 생각한다. 또한 길을 '코끼리'가 아니라 '물'로 본다. 제21장에서는 길은 소리도 없고 형태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 하는 "물"에 빠져들었을 때, 사람은 희미해지고, 그것을 무엇보다 크게 느끼는 것이다 [5] .

근원적 ​​실재로서의 길 편집 ]

길은 무와 유의 반복운동 중에 전체적인 실재 로서 표상된다. 반은 길의 움직임이 되고(40장), 길은 순환운동을 영원히 계속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6] .

처세술로서의 길 편집 ]

권모적이고 처세술 밖에 없는 길. 제3장의 “민족의 뜻을 약화함으로써 그들의 뼈를 견고하게 해준다. . 36장, 48장, 57장, 59장에도 비슷한 처세술이 있다 [7] .

정치 사상으로서의 길 편집 ]

다른 정치사상과 상대하는 정치이념 밖에 없는 길. 제18장의 「대도 폐해 인의 있음」의 구는, 묘코  동시기인가, 혹은 그 후배와 동시기의 편자가, 작성했다고 생각된다 [3] . 또 제57장에 있는 성인은 ‘ 무사 ’에 의해 성인으로서의 ‘나’를 성취한다는 엄선이 무위자연과 일체가 된다는 것과 별차원의 관계에 있다. 여기서는 사실상 성인의 존재 등은 거의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8] .

「상편도」에만 특유의, 제가에의 대항의식에 대해서 편집 ]

스미코는 하늘이 의지를 가진다는 「천지」설을 주장했다. 노자는 「천지불인」으로 하여 천도자연설을 생각해냈다 [9] .

평소의 길 편집 ]

제1장의 ‘길의 길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항상 길에 있지 않고’라는 구는 유가의 설과 같은 인의 등 사람이 해야 할 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10 ] .

정의 자산은 “천도는 멀고 인도는 가까이”라고 인도와 천도를 구별하고 있다. '논어'에는 '아버지의 길', '선왕의 길', '충창의 길', '천하의 길', '학의 길', '고가 길' 등의 용례가 있다[11 ] .

천제 편집 ]

제4장의 「길은,… 만물의 종인 것과 같거나 … 12] . 황제는 일반적으로 신앙받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13] . 이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지배자인 왕이 섬기고 있다고 한다 [14] .

인의 편집 ]

제5장의 ‘천지불인’의 구는 ​​유가의 ‘인의에 근거하여 민중을 다스리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되고 있다[14 ] .

제18장의 「대도 폐해 인의 있어」의 구는, 묘코와 동시기인가, 혹은 그 후배와 동시기의 편자가, 작성했다고 생각된다. 묘코는 오로지 인의를 주장했다 [3] .

「상편도」에만 특유의 사상상의 모순점에 대해 편집 ]

천지 편집 ]

상편에서는 종종 "천지"와 "길"을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15] . 서두의 「무명은 천지의 시작」이라고 하는 구와 비교했을 경우, 무는 길에 해당해, 천지는 만물이 된다. 그 때문에, 상편에 있어서의 「천지」와 「길」을 동일하게 하는 사상에는, 모순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편에는 천지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고 '만물'이나 '천하'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천하'라는 단어는 '세계'로 번역되어 있다. [16] [17] .

황제 편집 ]

제4장의 「길은,… 만물의 종인 것과 같거나 … ] . 황제는 보통 '천제'로 번역된다. 이 경우 '제'와 '하늘'이 동일해진다는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자 편집 ]

제5장의 ‘성인은 인하지 않고 백성을 비정하게 다룬다’라는 구절은 67장의 ‘나에게 삼보가 있어, 한마디로 자위’라는 말과 다르다. 또 49장의 “성인은 선인도 불선인 사람도 각각에게 존중하고 사랑하며 모두 버리지 않는다[ 19] 라는 말과는 크게 다르다.

길 편집 ]

제18장의 「대도 폐해 인의 있음」의 구로, 「대도」라는 용례는 하편에는 나오지 않는다. 또, 「길」이 「길」을 말한다면, 길이 폐기될 수 없기 때문에, 이 구에는, 내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제7장의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언제까지나 있다”[ 20]라는 구절을 “길”에 비추어 해석하면 “하늘은 영원하지 않고 땅은 언제까지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석이 된다.

제25장의 「도대, 천대, 지대, 왕대」의 구에 있어서, 정치에 무위 자연을 말함에도 불구하고, 군주를 대로서 승인하고 있는 것은 모순되고 있다, 라는 견해가 있다 [21] . 또, 「길」의 관점에서 보면, 「도대, 천대, 땅대, 왕대」 중에서 대라고 명명해 의미가 있는 것은, 「길」만이다는 것이 된다[22 ] .

제25장의 「유물혼성」에서 길은 물건이 아니라 코끼리이다.

「건언」에 보는, 실재로서의 길 편집 ]

길은 이 현상계를 넘은 곳에서 현상계를 생기게 하여 변화시키는 일자로서 생각되고 있다. 그것은 모든 현상을 그렇게 보여주는 원리로서의 성격과 우주 생성론적 발생의 근원자라는 성격 의 2면이 융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3] .

「건언」이라고 하는 것은, 하편의 최초의 쪽에 나오는 「노자도덕경」보다 옛부터 있었다고 하는, 속담 등을 기록한 서적이라고 되어 있다. 이 속담이나 명언은, 노자 본문을 구성하는데 인용되고 있는 곳으로부터 하면, 「노자 하편」을 편집한 인물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된 노자의 전설의 책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는 것 수 있습니다. 「건언」이란, 영구적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말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다. [24] [25] [26] .

「건언」에 의하면, 실재로서의 길은, 순환 운동을 영원히 계속하고 있다 [6] . 모든 존재 는 "  "로 "  "에서 태어났습니다. '유'가 '무'로, '무'가 '유'로, 운동하여 (태어나) 가는 모습은 반(순환)이다. (제40장).

'길'은 하나를 낳는다. 하나는 둘을 낳는다. 만물은 그늘(무위)을 짊어지고, 양(유위)을 안는다. 오키는 조화( 균형 )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길은 전체에 대하여 약한 힘으로 일하고 있다(42장).

「길」은 숨은 것으로, 이름이 없다. 대상(무한의 코끼리)은 형태가 없다. "길"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든 것에) 원조를 주고, 게다가 (그들이 목적을) 성취하도록 시키는 것이다[27 ] . 이 원조는 덕과도 자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상덕(道徳)은 덕처럼 보이지 않는다. (제38장).

불언의 교에 대해 편집 ]

불언의 가르침과 무위의 이익은 세상에서 그것에 필적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여겨진다. (제43장).

불언의 가르침에는 다음의 3종류가 있다.

  • 권모가에 의한 불언의 처세술. 스스로를 성인으로 삼고 자신의 태도를 보고 인민 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 무위 자연의 삶 방식에 의한 타인에게의 불언의 설교. 시정 자의 입장에 있는 자가 무위자연의 삶을 정치에 도입하고, 자신의 삶을 인민의 견본으로 하는 것.
  • 길의 일 속에 느껴지는 불언의 가르침. 예를 들어, 물을 보고 사람이 무언가를 배웠다면, 말로 물이 무위의 가르침을 가르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말을 초월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불언의 가르침으로 한다[ 28 ] [29] .
자비의 가르침에 대해 편집 ]

사람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한다(제49장)는 사람들의 고통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 “성인은 선인도 불선한 사람도 각각에게 존중하고 사랑하며 모두 버리지 않는다[ 19] 라는 말에는 길의 덕과 합일한 자비의 가르침 이 나타나 있다. 에는 '나에게 삼보가 있어, 하나에게 말하는 자'라는 말이 있다.

「길」에 상정되는 인격성 편집 ]

고대 중국 에서 하늘 은 초인적인 우주의 통치자로 절대적으로 보였다. 중국이 하늘을 경외하게 된 것은, 기원전 1700 년경 부터의 것으로 여겨진다 [30] . 또, 연상 시대(전 1500년경)에는, 사람들은 귀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멸망하지 않고, 귀신이 된다고 여겨졌다 [31] .

노인들에게 '길'과 '하늘'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32] . 그러나 노자는 제4장에서만 신격화된 천제의 존재에 의해 세계의 질서가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말하고 있다[18 ] . 그리고, 52장에 말하는 「천하의 어머니」는, 「하나」의 일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33] . '암'이 아니라 '어머니'로 여겨지는 곳에서 여기에는 어떤 인격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39장에서 '  '은 이 세상에서 일하는 묘한 '  '으로 여겨진다 [34] . '악마'는 사후 영혼이 된 인간을 가리키는 경우 여기에서의 '신'은 다르마에게 인격적인 면을 인정한 초기 불교[35]의 '제불' 에 해당 하도록 도 볼 수 있다.

영향 편집 ]

'도덕경'이 장자 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후의 장자 학파(『장자』외편・잡편)나, 도가 (『도난코』 등)에는 영향을 주고, 장자와 노자의 사상은 「노장 사상」으로서 통합 되게 된다 했다.

지의 부정사상은 한비자 등 법가 의 우민정책에 인용됐다. 무위에 의한 치세의 사상은 한대의 장량 · 진평 · 조삼 등에 실천되었다. 노장사상 은 문화면에서 큰 영향을 중국이나 일본에 미쳤다. 배우 의 분야에서는 장자 에게 상을 얻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19세기 이래 『도덕경』은 유럽 각국어에 잇따라 번역. 테라다 토시히코 의 에세이에 독일어 로 『노자』를 읽고의 친숙함에 대해서 기재가 있어 [36] , 소수이지만 전전은, 인테리층 사이에서 유럽문의 번역주가 인지되었다. 전후, 영어권의 문헌을 통해 타오붐이 일본 에 전해져, 고전 중국에의 새로운 대처로서 널리 지지되었다.

이츠쓰 슌히코 영역으로 『노자 Lao-Tzu The way and its virtue』( 게이오 기학 대학 출판회 , 2001년)가 있다(일본어 번역은 아래와 같다).

관련 항목 편집 ]

도교

주·출처 편집 ]

  1.  『노장 읽기』 코단샤 1987년 P74 미네야 쿠니오
  2.  『세계의 명저 4 노자 장자』 중앙 공론사 1978년 P14 오가와 환수
  3. ↑ c “중국의 고대 철학” 코단샤 2003년 P145 우노 철인
  4.  『노자・장자』 코단샤 학술 문고 1994년 P165 모리 미키 사부로
  5.  『세계의 명저 4 노자 장자』 중앙 공론사 1978년 P17 오가와 환수
  6. b 『노장을 읽는다』 코단샤 1987년 P114
  7.  『노장 읽기』 코단샤 1987년 P134 미네야 쿠니오
  8.  『노장을 읽는다』 코단샤 1987년 P116
  9. ^ "Lao Tzu: The Great River of Oriental Thought" by Diyong Society, 1993, P26, 작성자: Xu Kangsheng
  10. ^ "중국 고전 문학 시리즈 4" 1973 P3 노트 1 진구지
  11. ^ "Lao Tzu: A Great River of Oriental Thought" by Diyong Society, 1993, P31, by Xu Kangsheng
  12. ^ "중국 고전 문학 시리즈 4" 1973 P5 노트 3 진 구지
  13.  “중국의 고대 철학” 코단샤 2003년 P132 우노 철인
  14. ↑ b 「초보자・클래식스 중국의 고전 노자・장자」카도카와 학예 출판 2004년 P45 노무라 시게오
  15.  『 초보자·클래식스 중국의 고전 노자·장자』 카도카와 학예 출판 2004년 P48 노무라 시게오
  16. ^ "중국 고전문학 시리즈 4", 43장, 진구지, 1973
  17. ^ 「세계」라는 말에는 의식의 무한하게 통한 곳이 있지만, 「천지」에는 신체적 자기로부터 해탈할 수 없는 한정관념이 있다.
  18. ↑ b 『노자』 중앙공론사 1973년 P13의 주오가와 환수
  19. ↑ b 『노자』 중앙공론사 1973년 P96의 주오가와 환수
  20.  『노자』 중앙공론사 1973년 P18 오가와 환수
  21.  『중국의 고대 철학』 코단샤 2003년 P155 우노 철인
  22.  대가 붙으면 무한한 의미가 더해지는 경우가 있다. (출처 “노자” 이와나미 서점 2008년 P200 주11 꿀집 쿠니오
  23.  『중국 고전 문학대계 4』평범사 1973년 P488 해설
  24.  『세계의 명저 4 노자 장자』 중앙 공론사 1978년 P117의 주 오가와 환수
  25. ^ 또, 낡은 책에서는, 「건언」을 언급하고 있는 제41장은, 현행의 제40장(길의 움직임에 대해 접하고 있는 핵심 부분)의 앞에 와 있다. (출처 “노자” 이와나미 서점 2008년 P193 주1 꿀집 쿠니오)
  26.  「건언」에 의한 인용은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는 불확실하다(출전『중국 고전 문학대계4』1973년 P22 주2 가나야 치지). 내용에서 보면 43장 정도까지가 명언집인 것처럼 보인다. 42장에는 “나도 가르침의 아버지로서 흉포한 자는 좋은 죽음을 하지 말라는 속담을 말하자”고 편집자 자신을 적는다. 고라는 단어는 무위자연과 일체가 되지 않은 느낌이 들고, 좋은 죽음으로 향하는 가치관은 무위자연에 걸린 죽음으로 표현해야 할 곳인 것으로 보인다.
  27.  『세계의 명저 4 노자 장자』 중앙 공론사 1978년 P114 오가와 환수
  28.  『노자』 이와나미 서점 2008년 P207 주5
  29. ^ 대자연의 법칙은 무언 속에도 끊임없이 인간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출처 “마음의 발견 과학편” 주식회사 경제계 1971년 P138 타카하시 노부지)
  30.  이러한 하늘에 대한 경건은 유교 시대에 천도로 발전했다. (출처 “타오=길의 사상” 코단샤 2002년 P31 하야시다 신노스케)
  31. ^ "Lao Tzu: A Great River of Oriental Thought" by Diyong Society, 1993, P112 Xu Kangsheng의 저서 "바다 제외"
  32.  『세계의 명저 4 노자 장자』 중앙 공론사 1978년 P22 오가와 환수
  33.  『노자』 중앙공론사 1973년 P101의 주오가와 환수
  34.  『노자』 이와나미 서점 2008년 P187 주2
  35.  『불제자의 고백 테일러 가터』 이와나미 서점 1982년 P252주303 나카무라 모토
  36.  바뀐 이야기」―「전철로 노자를 만난 이야기」, 이와나미판 「데라다 토시히코 전집 제4권」소수

참고 문헌 편집 ]

외부 링크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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