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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6

이윤선 - 김상준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읽으며

14010101-03062022000.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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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읽으며 달포 전 어느 술자리에서 김교수 가 내 손을 잡고 한 얘기가 있다. 장 군에게 무슨 세부 전공이 있겠나. 모든 것을 통할(統轄)하는 것이 장 군이지 음! 이분네가 사람 보는 눈 이 좀 있구만 하하하, 그랬는데 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저작을 보고 알게 되었다. 에둘러 스스로를 지칭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김장군! 내 말이 맞지 않소? 장자의 붕새를 몬 순 지역의 바람 혹은 태양으로 읽어 내고 북명에서 남명으로의 종축을 통해 문명의 횡축을 추적한 시선 말 이요. 이를 붕새의 양 날개라고 했 다. 사실 오래전 유사한 추적들을 몇 군데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이를 몬순과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은 처 음 접했다. 아마 내 과문 탓일 것이 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 혹은 생태 적 현상으로 호명하는 남동풍이니 북서풍이니 하는 언술을 새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종축은 문화권 문명권별로 여러 개 혹은 수십 개 설정할 수 있다. 저자 는 말한다. 동아시아 중심의 종축에 붕새가 있고, 서남쪽을 향해보면 또 하나의 붕새 가루다가 있다. 그뿐이 겠는가. 용과 봉황, 뱀과 나가 (Naga) 등 수많은 종횡의 대칭이 있다. 그가 길을 열었으니 이제 누 군가 대칭성 회복의 기제들을 소환 하고 추적하게 될 것이다. 사회과 학, 자연과학 따위면 더욱 좋다. 다 만 영감 가득한 이 책의 핵심, 문명 의 진로에 대해 내가 언급하기는 어 렵다. 내 수준을 훌쩍 넘어서기 때 문이다. 또 하나의 길을 찾은 어떤 젊은이들처럼 더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 길 없던 시절, 혼인하 여 큰아이를 낳고 이름을 붕(鵬) 이라 지었던 만용을 만회하기 위해 서라도, 일찍이 동학의 최제우에서 증산의 강일순으로 혹은 흰그늘의 김지하 등으로 어쩌다 꼬리를 무는 북명(北溟)의 성근 성운(星雲)을 올려다볼 따름이다
===
⥭⥒⚒<⁣⇆ ⥯⑿⶯> 붕(鵬)새의 날개
===
⥭⥒⚒<⁣⇆ ⥯⑿⶯> 붕(鵬)새의 날개
말이 맞지 못하야 이 날밤 삼경시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래보
니 청룡주작(靑龍朱雀) 양기각(兩旗
脚)이백호현무(白虎玄武)를응하야서
북으로펄펄삽시간에동남대풍(東南大
風)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기폭판
(旗幅版)도 떼그르르 천동(天動)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
이 떨어지는지라~ 판소리 적벽가 중 동
남풍 부는 대목이다. 적벽대전 눈 대목
의하나, 긴박한장면이기에자진모리로
노래한다. 이 바람 아니었으면 주유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맞아 어찌 화공(火
攻)을 펼 수 있었겠는가.
우리네 이름으로 흔히 마파람이라 한
다. 배산임수를 정향(定向)으로 맞은편
에서 불어오니 맞바람 이고 동쪽으로
살짝 비꼈으니 샛마 다. 새파람과 마파
람의 틈바귀, 남도말로 새다구 바람이
다. 봄철부터 비를 데리고 오는 바람이
기에 비올바람 이다. 반대로 북에서 내
려오는 바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격이
니 하누바람 이다. 샛마 와 대칭되는
서북풍이라 흔히 늦하누 라 한다. 이러
한 바람의 들고남이 비와 눈 혹은 가뭄
과 동행하는 몬순(monsoon)지대에 우
리가 속해 있다. 어찌 계절풍뿐이겠는
가. 철마다 해 뜨고 지는 길이와 각이 달
라지는것이며, 북두칠성기울어순환하
는 이치가 다르지 않다. 고대 이래 이것
은 신화와 전설로 은유되기도 하고, 철
학과 과학으로 표명되기도 했다. 다만
숨겨져 있으니 일각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각양으로 표명되었으나 선뜻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붕새의날개, 문명의진로>의시선
그런데 말이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아카넷, 2021)라는 책을 펼치다
가 무릎을 쳤다. 노숙과 함께 주유를 찾
아간 공명은 남병산에 올라 칠성단을 쌓
고 제를 지냈는데, 김상준 교수는 한해
륙 어느 산에 올라 칠성단 쌓고 제를 지
냈던 것일까. 청명하던 하늘에 동남풍
불어닥쳐 조조의 백만대군 무찌르듯 그
의언어는화살이되고화선(火船)이되
어 종횡무진 지구별의 여러 지축을 울리
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징검징검 바람
거슬러 팽창하는 서양의 어딘가에 대고
불화살을쏘아대기시작한것이다. 나같
이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렵
다. 북명(北溟)에서남명(南溟)으로흐
르다 다시 되돌아 흐르는 몬순의 바람만
이 아니다. 그 위에 일출 일몰의 길이를
조절하는 태양이며 구만장천 지구별 전
체를 날개짓하는 장자의 붕새를 포착했
으니 천리안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참
고로 북쪽의 하늘바다 북명이나 남쪽의
하늘바다 남명, 곤(鯤)이라는 물고기나
붕(鵬)이라는 새들 모두 장자의 창작물
이다. 김교수의 눈초리가 옹골찬 것은
횡축의 문명 흐름에서 종축의 붕새를 읽
어내는 섬세함에 있는 것 아닐까. 급기
야 저자의 새로운 적벽대전에서는 서양
의 팽창근대를 뒤집어엎는 새로운 문명
의전장(戰場), 내장(內張)근대의승전
을 예고하기에 이른다. 아니 이미 깃발
을 올리는 중이다. 내장근대, 안(in)으
로의 확장(pand) 이라는 뜻일 텐데, 유
럽내전체제와동아시아평화체제, 군현
과 봉건, 무(武)와 문(文), 중심과 주변
은 물론 태평천국의 난에서 동학혁명까
지 종횡무진 추적하다가 중국 내전, 베
트남 전쟁, 우리 민족상잔의 전쟁, 전염
병과기후위기, 500여년을관통하는어
딘가에 도달한다. 그 지점에 코리아 양
국체제가 있고 붕새의 양 날개가 있다.
천 쪽에 가까운 대작을 어찌 한 페이
지 칼럼에 담아낼 수 있겠는가. 다만 몇
군데대화들이귓전을맴돈다. 대항해시
대 낙차 창출의 연속과정이 서구의 팽창
근대가지속된기술이었다. 팍스브리태
니카의 시대,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중국도 군사적 정복을 통해 낙차 를 만
들어 정복하려는 욕망이 있었지만 실패
했다. 우리가 아는바 구체적인 근대의
기점은아편전쟁이다. 하지만저자는근
대의기점을혁명적으로올려잡는다. 세
계 역사학계가 근대화=서구화=문명화
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 도식을 폐기한
지오래되었다는설명도덧붙인다. 마찬
가지로 문명화=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공식도 부정한다. 총생산과 인구 두 부
분의 증가율이 두드러지게 커지는 시기
를 기점 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
아시아 내장(內張)근대와 서양 팽창근
대라는 대립항을 도출하고 붕새를 중심
으로 하는 동아시아 부상의 당위를 설명
하고싶었을것이다. 이쯤에서김교수가
이리 말하지 않겠나. 그리 꼼꼼하게 읽
다니.... 그러면 내가 대답한다. 다 먹
어 봐야 맛을 압니까. 손가락 끝에 찍어
보기만 해도 하하하... 이리 대답하면
책을 다 읽지 않았거나 듬성듬성 훑었다
는 것을 혹시 숨길 수 있으려나. 아니 그
것보다는 저자도 얘기했듯 서문의 종합
발제만 가지고도 붕새의 날개짓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사례
야 두고두고 읽어나가면 될 일이다. 권
두에 길을 잃었던 나에게, 이제 그 나이
에도달한오늘의젊은이에게 라는표제
를 붙였다. 헤드라인에는 <도덕경> 22
장을 인용하였다. 멀리 돌았기에 온전
하고, 굽었기에곧다 그래서일까. 멀리
돌아 굽어 생각하면 어렴풋이 보인
다. 반어법이나 변증법보다는, 주역의
대대성(對待性) 회복으로 읽는 것이 옳
을 것이다. 서양의 팽창에서 동양의 내
장으로 전진하는 것이 진보요, 다시 무
(武)에서 문(文)으로 이행하는 것이 형
류세형(形-流-勢-다시形)의 순리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죽
은 시인의 사회 인 우리 현실의 쪽팔
림 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퇴행하는 역사일지라도 그것이 일
시적이라는 안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재구성했던 갱번론 과 물골론 을
덧붙여 술안주 삼을 수 있으려나.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남명 이르렀던 태
양이 북명 향하는 어느 계절, 동남풍
예비하는 그의 형창설안(螢窓雪案)을.

===
⥭⥒⚒<⁣⇆ ⥯⑿⶯> 붕(鵬)새의 날개 말이 맞지 못하야 이 날밤 삼경시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래보 니 청룡주작(靑龍朱雀) 양기각(兩旗 脚)이백호현무(白虎玄武)를응하야서 북으로펄펄삽시간에동남대풍(東南大 風)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기폭판 (旗幅版)도 떼그르르 천동(天動)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 이 떨어지는지라~ 판소리 적벽가 중 동 남풍 부는 대목이다. 적벽대전 눈 대목 의하나, 긴박한장면이기에자진모리로 노래한다. 이 바람 아니었으면 주유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맞아 어찌 화공(火 攻)을 펼 수 있었겠는가. 우리네 이름으로 흔히 마파람이라 한 다. 배산임수를 정향(定向)으로 맞은편 에서 불어오니 맞바람 이고 동쪽으로 살짝 비꼈으니 샛마 다. 새파람과 마파 람의 틈바귀, 남도말로 새다구 바람이 다. 봄철부터 비를 데리고 오는 바람이 기에 비올바람 이다. 반대로 북에서 내 려오는 바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격이 니 하누바람 이다. 샛마 와 대칭되는 서북풍이라 흔히 늦하누 라 한다. 이러 한 바람의 들고남이 비와 눈 혹은 가뭄 과 동행하는 몬순(monsoon)지대에 우 리가 속해 있다. 어찌 계절풍뿐이겠는 가. 철마다 해 뜨고 지는 길이와 각이 달 라지는것이며, 북두칠성기울어순환하 는 이치가 다르지 않다. 고대 이래 이것 은 신화와 전설로 은유되기도 하고, 철 학과 과학으로 표명되기도 했다. 다만 숨겨져 있으니 일각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각양으로 표명되었으나 선뜻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붕새의날개, 문명의진로>의시선 그런데 말이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아카넷, 2021)라는 책을 펼치다 가 무릎을 쳤다. 노숙과 함께 주유를 찾 아간 공명은 남병산에 올라 칠성단을 쌓 고 제를 지냈는데, 김상준 교수는 한해 륙 어느 산에 올라 칠성단 쌓고 제를 지 냈던 것일까. 청명하던 하늘에 동남풍 불어닥쳐 조조의 백만대군 무찌르듯 그 의언어는화살이되고화선(火船)이되 어 종횡무진 지구별의 여러 지축을 울리 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징검징검 바람 거슬러 팽창하는 서양의 어딘가에 대고 불화살을쏘아대기시작한것이다. 나같 이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렵 다. 북명(北溟)에서남명(南溟)으로흐 르다 다시 되돌아 흐르는 몬순의 바람만 이 아니다. 그 위에 일출 일몰의 길이를 조절하는 태양이며 구만장천 지구별 전 체를 날개짓하는 장자의 붕새를 포착했 으니 천리안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참 고로 북쪽의 하늘바다 북명이나 남쪽의 하늘바다 남명, 곤(鯤)이라는 물고기나 붕(鵬)이라는 새들 모두 장자의 창작물 이다. 김교수의 눈초리가 옹골찬 것은 횡축의 문명 흐름에서 종축의 붕새를 읽 어내는 섬세함에 있는 것 아닐까. 급기 야 저자의 새로운 적벽대전에서는 서양 의 팽창근대를 뒤집어엎는 새로운 문명 의전장(戰場), 내장(內張)근대의승전 을 예고하기에 이른다. 아니 이미 깃발 을 올리는 중이다. 내장근대, 안(in)으 로의 확장(pand) 이라는 뜻일 텐데, 유 럽내전체제와동아시아평화체제, 군현 과 봉건, 무(武)와 문(文), 중심과 주변 은 물론 태평천국의 난에서 동학혁명까 지 종횡무진 추적하다가 중국 내전, 베 트남 전쟁, 우리 민족상잔의 전쟁, 전염 병과기후위기, 500여년을관통하는어 딘가에 도달한다. 그 지점에 코리아 양 국체제가 있고 붕새의 양 날개가 있다. 천 쪽에 가까운 대작을 어찌 한 페이 지 칼럼에 담아낼 수 있겠는가. 다만 몇 군데대화들이귓전을맴돈다. 대항해시 대 낙차 창출의 연속과정이 서구의 팽창 근대가지속된기술이었다. 팍스브리태 니카의 시대,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중국도 군사적 정복을 통해 낙차 를 만 들어 정복하려는 욕망이 있었지만 실패 했다. 우리가 아는바 구체적인 근대의 기점은아편전쟁이다. 하지만저자는근 대의기점을혁명적으로올려잡는다. 세 계 역사학계가 근대화=서구화=문명화 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 도식을 폐기한 지오래되었다는설명도덧붙인다. 마찬 가지로 문명화=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공식도 부정한다. 총생산과 인구 두 부 분의 증가율이 두드러지게 커지는 시기 를 기점 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 아시아 내장(內張)근대와 서양 팽창근 대라는 대립항을 도출하고 붕새를 중심 으로 하는 동아시아 부상의 당위를 설명 하고싶었을것이다. 이쯤에서김교수가 이리 말하지 않겠나. 그리 꼼꼼하게 읽 다니.... 그러면 내가 대답한다. 다 먹 어 봐야 맛을 압니까. 손가락 끝에 찍어 보기만 해도 하하하... 이리 대답하면 책을 다 읽지 않았거나 듬성듬성 훑었다 는 것을 혹시 숨길 수 있으려나. 아니 그 것보다는 저자도 얘기했듯 서문의 종합 발제만 가지고도 붕새의 날개짓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사례 야 두고두고 읽어나가면 될 일이다. 권 두에 길을 잃었던 나에게, 이제 그 나이 에도달한오늘의젊은이에게 라는표제 를 붙였다. 헤드라인에는 <도덕경> 22 장을 인용하였다. 멀리 돌았기에 온전 하고, 굽었기에곧다 그래서일까. 멀리 돌아 굽어 생각하면 어렴풋이 보인 다. 반어법이나 변증법보다는, 주역의 대대성(對待性) 회복으로 읽는 것이 옳 을 것이다. 서양의 팽창에서 동양의 내 장으로 전진하는 것이 진보요, 다시 무 (武)에서 문(文)으로 이행하는 것이 형 류세형(形-流-勢-다시形)의 순리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죽 은 시인의 사회 인 우리 현실의 쪽팔 림 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퇴행하는 역사일지라도 그것이 일 시적이라는 안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재구성했던 갱번론 과 물골론 을 덧붙여 술안주 삼을 수 있으려나.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남명 이르렀던 태 양이 북명 향하는 어느 계절, 동남풍 예비하는 그의 형창설안(螢窓雪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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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우 - 김상준의 [붕새의 날개]를 읽고

김상준의 <붕새의 날개>를 읽고

김상준의 <붕새의 날개>를 읽고

[프레시안 books] 우리에게 또 다른 근대가 있음을
황광우 작가, 인문연구원 동고송 이사 | 
 기사입력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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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새, 붕새를 타고 세계사 1000년을 조망한 이가 있다. 김상준(경희대 교수), 그는 대학 재학 시절 강제로 징집을 당하여 보안대에서 고문을 당했다. 팔이 마비되었다. 1986년엔 평자와 함께 노동운동 활동가로서 <민중의 함성>(거름 펴냄)을 썼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전술 핵무기의 실상을 폭로하였던 리포터(muckraker)였다. 1987년 6월엔 부평에서 군중의 시위를 이끌었던 실천가(revolutionary)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 세계사 호(號)의 진로가 이상하게 가고 있음을 간파한 김상준은 뉴욕으로 날아가, 문명의 진로를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문명 탐색은 끈질겼다. 30년 후 그가 타고 다닌 한 마리 새를 우리에게 내놓았다. 신화의 새, 붕새였다.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 살았다. 이름을 곤이라 하였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다. 이름을 '붕'이라 한다.

김상준이 붕새를 타고 소요하며 조망한 세계사의 시간대는 자그마치 1000년이다. 누군들 동양과 서양의 세계사를 모르지 않겠지만, 김상준의 조망은 특이하였다. 동양과 서양의 두 세계사를 하나의 보따리에 집어 넣어버린 것이다.

붕이 남쪽 깊은 바다로 갈 때면 파도가 일어 삼천 리 밖까지 퍼진다.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여섯 달 동안 구 만 리 장천을 날고 내려와 쉰다.

과연 김상준이 타고 다닌 붕새는 구만 리 장천을 날도록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을까? <장자> '소요유'에서 붕새를 비웃었던 매미와 비둘기는 이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이하 <붕새의 날개>)에서는 이영훈의 뉴라이트들이 된다. 그들 역시 김상준의 소요를 이렇게 비웃고 있을 것이다. "제까짓 게 보긴 뭘 봐? 헛것을 본 게지." 김상준은 뉴라이트의 매미와 비둘기를 위해 먼저 한 장의 통계표를 제시한다.(이영훈이 늘 요구하는 것이 데이터요, 통계이다) 서기 1000년부터 오늘까지 세계 GDP 총량에서 각국의 GDP가 점하는 비율을 그린 도표이다. 네덜란드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이 만들었고, 유네스코가 공인하였다. 뉴라이트의 매미와 비둘기를 위한 최상의 서비스였다.


▲ 주요국의 세계 GDP 점유율 변화.

그림은 어렵지 않다. 도표 X축의 맨 오른편에는 2030년 중국과 미국이 점하게 될 GDP 점유율이 그려져 있다. 중국이 19%, 미국이 18%이라는 거다. 뭐야? 지난 1960년 미국이 27%, 중국이 4%를 점하던 것과 비교하였을 때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거 맞나? IMF에게 물었더니 IMF도 고개를 끄덕인다. IMF 역시 2021년 미국이 22조, 중국이 16조를 점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미국 인구가 3억 5000명이고 중국 인구가 14억 명이니, 경제전문가가 아닐지라도, 미국과 중국의 GDP 역전은 2030년 이전에도 발생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앵거스 매디슨이 작성한 도표의 특징은 주요 국가의 GDP 점유율을 1000년의 시간대에서 그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X축을 따라 왼쪽으로 시선을 이동하자. 중국과 서유럽의 GDP 점유율이 역전하는 시기가 1860년대였다. 인도의 점유율이 급강하기 시작한 것은 1770년대였다. 그 이전의 시기엔 인도가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이었음을 도표는 보여주고 있다. 콜럼버스가 왜 인도를 찾아 항해하려고 했던지,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인도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친 것인지, 도표는 시원하게 보여준다.

이제 붕새를 타고 다닌 김상준의 '사유'(Thought)를 따라가 보자.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서세동점'의 시기(1800년대~1900년대)는 김상준의 사유에 의하면 근대세계사의 일부였다. 서구가 주도한 이 200년의 역사를 김상준은 '서구 주도 근대'(westernizing modern age)의 시기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서구가 과학기술 문명을 앞세워 전 지구를 식민지화하고, 전 인류를 수탈하던 시기 말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시대는 바야흐로 서구 주도가 소멸되고 있는 시기이다. 서양과 비서양이 공존, 협력하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시기, 이 시기를 '후기 근대'(late modern age)라 부르자고 김상준은 제안한다. '후기 근대'의 시대엔 식민지도 없고 직접적 수탈도 없다. 팽창(Expansion) 문명이 내장(Inpansion) 문명으로 전변하는 변화의 시기다.

김상준의 '사유'는 계속 전개된다. 그렇다면 '서구 주도 근대'의 시기 이전의 역사를 무엇이라 부를까? 이 시기를 '초기 근대'(early modern age)라 부르면 어떨까? 보통 근대라고 하면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를 말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도 총생산과 인구가 두드러지게 성장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있었고, 이 시대를 역사학자들은 '초기 근대'(early modern age)라고 부르지 않던가?

봉건신분제가 붕괴해야 근대가 온다. 그런데 봉건신분제는 유럽보다 동아시아에서 훨씬 일찍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중국 송나라가 선두이다. 그래서 김상준은 이 시기 중국에서 '초기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본격적인 '초기 근대'는 중·조·일 삼국이 평화의 시대를 구가했던 17세기~18세기이다.

유럽의 '초기 근대'는 '대항해와 아메리카 발견'의 시기 즉 16세기이다. '초기 근대'에서 '서구 주도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가 바로 18세기 '계몽주의'의 시기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1757년 인도의 플라시 전투 이후에서 1839년 아편전쟁의 발발까지를 '초기 근대'에서 '서구 주도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보자. 그렇다면 유럽의 '초기 근대'는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300년이고, '서구 주도 근대'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200년이다.

김상준이 이 근대사 담론을 가지고, 말을 걸고 싶어 하는 이들은 아직도 '근대화=서구화'라는 도식에 꽁꽁 붙들려 있는 매미들, 뉴라이트이다. 김상준은 말한다.

"세계 역사학계에서는 '근대화=서구화'라는 도식을 폐기한 지 이미 한참 되었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아도 '근대화=서구화'라는 논리는 아주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화=서구화'라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부정해야죠.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지우고, 서양 사람처럼 되어야 근대고, 근대화가 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근대화=서구화=문명화' 이 도식대로라면 서구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미개'인이고, 서구화 이전의 시대는 '미개'시대라는 뜻이 됩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한번 주입되면, 서구가 아닌 사회의 과거는 한낱 부정하고 지워야 하는 과거가 됩니다. 죽자 사자 자기를 부정하고 오직 서구가 되기 위해, 서구를 쫓아가야 합니다."

김상준은 이어 말한다.

"'서구화=문명화' 도식과 '문명화=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주장이 1990년대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에 합류했습니다. 미국의 '신우파 기독교 운동'을 그대로 카피한 한국 기독교 종파의 일부와 일본 우파 학계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그대로 카피한 한국 학계 일부가 1990년 초반에 탄생했지요. 한국의 뉴라이트는 미국과 일본의 우파 운동을 베낀 '2중 복제'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뿌리가 없는 존재입니다."

서양이 앞서 있으면 동양이 배우고 동양이 앞서 있으면 서양이 배운다. 이것은 역사의 상식이다. 유럽의 르네상스는, 아랍어로 기록된, 잃어버렸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자기 역사의 연속성과 정체성 위에서 가능하다. 이것은 자명한 진리이다. 수용하는 주체가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수용한다는 말인가?

김상준의 붕새 소요를 반가워할 시인이 있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외친 김수영 시인이다. 1950년 어느 날, 우리에게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 앞에서 김수영의 영혼은 황홀하였다.

그렇듯이, 우리에게 또 다른 근대가 있음을 나는 김상준으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임란 이후의 조선사가 '초기 근대'이고, 강화도 수호조약 이후 일제 강점기가 '서구 주도 근대'로 해석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늘 괴로워했다. 단절된 역사, 잃어버린 전통의 문제로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식민지 지식인 이광수는 조선의 청년들이 서구의 과학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근대화는 서구화였다. 지금 서구화를 통해 거만의 물질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으나, 우리들의 영혼은 여전히 초라하고, 불안하다. 그만 따라 배우자."

내가 뒤늦게 복학하여 만난 이가 이영훈이다. 나는 씨의 논리 앞에서 오랫동안 고민하였다. 조선인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철도를 놓아준 것은 일본인이었다는 주장 앞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박정희 개발독재의 정당화로 이어진다. 오랫동안 나는 신음하였다.

친일파가 우리에게 던진 미끼가 '근대화'였다. 친일파의 후예들이 우리 국민에게 던진 미끼가 '경제 성장'임을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성장주의의 술에 취해 살고 있는 시대에서 성장주의가 아닌 다른 가치를 제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정희 독재의 비인간성을 욕하기는 쉬웠으나 박정희 개발독재를 그리워하는 대중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2006년 <철학콘서트>(생각정원 펴냄)를 쓰고, 2015년 <역사콘서트>(생각정원 펴냄)를 쓰고, 2017년 <촛불 철학>(풀빛 펴냄)을 쓰면서 밤을 새워 고민하였던 문제가 '성장을 넘어선 가치'의 탐색이었다.

<붕새의 날개>는 뉴라이트와 벌이는 담론 싸움에서 막강한 우군이 될 것 같다. 21세기에 들어와 '서구 주도 근대'가 가고 있다는 김상준의 해석은 아직껏 '근대화=서구화' 도식에 붙들려 있는 뉴라이트에게 이념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결정타가 될 것이다. <근대화=서구화=문명화> 이 낡은, 시대착오적 사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뉴라이트, 너희야말로 양(New Right)의 탈을 쓴 늑대(Anachronistic Right)가 아닌가?

나는 이곳 광주에서 'After 30 years'라는 주제의 강연을 많이 하였다. 30년 후가 되면 동아시아 3국의 경제권이 북아메리카 경제권을 추월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게 되어 있는 우리의 미래이다. 지난 19세기를 영국이 이끌었고, 지난 20세기를 미국이 이끌었다. 2030년이 오기 전에 세계 경제의 주도권은 동아시아가 쥔다. 그런데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붕새의 날개>가 제기하는 물음도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붕새의 효용을 칭송하며 글을 맺겠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두꺼운 책은 죄악"이라고 말하였다. 900쪽이 넘는 <붕새의 날개>는 다르다. "두꺼운 책도 선일 수 있다"이다. 플라톤의 <국가>가 지식인을 위해 마련한 앎의 향연이었듯이, <붕새의 날개> 역시 한국인을 위해 준비된 문명 담론의 향연이다. 어서 와 거장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1. 하멜(보시우스) : 이곳(조선)은 철학자들만이 통치하는 플라톤적 공화국이다.(99쪽)

2. 재닛 아부-루고드 : 몽골제국이 형성한 아프로-유라시아 네트워크는 '13세기 세계체제이다.(129쪽)

3. 월라번 : <하멜표류기>에는 인종주의(racism)가 없다.(143쪽)

4. 토마스 홉즈 :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인간에 대해 서로 늑대가 되며, 그러한 상태에서의 삶은 고독하고(solitary), 빈궁하고(poor), 끔찍하고(nasty), 거칠며(brutish), 짧다(short).(202쪽)

5. 안드레 군더 프랑크 : 서구는 번성하던 아시아 교역망에 탑승한 무임 승차자였다.(282쪽)

6. 카를 마르크스 : 광대한 식민지 획득을 통한 자원 확보, 인클로저를 통한 '토지 없는 노동력'의 확보, 이것이 영국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이다.(287쪽)

7. 김상준 : 1980년 광주항쟁 역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봉기였다는 점에서 해월과 동학혁명의 전통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던 공수부대를 물리쳐 몰아내고 광주에서 형성된 '완벽한 평화와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가 그것을 입증한다.(341쪽)

8. 슈펭글러 : 1차 대전의 당사자인 유럽에서는 전재의 참혹함을 경험하면서 기존 유럽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일어났다.(448쪽)

9. 월러스틴 : 소련, 동구권 모두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일부였다.(483쪽)

10. 칼 폴라니 : 인류학적 시각에서 보면 경제체제는 호혜경제, 국가재분배경제, 시장경제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시장경제가 지배적이고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재분배경제가 지배적이다.(484쪽)

11. 애덤 스미스 : 농업에 기초한 내부 시장 확대와 평화로운 국제교역을 강조했지 군사력에 의한 식민지 약탈이나 패권적 지배를 지지하지 않았다.(603쪽)

12. 케넌 : 미국에는 언제나 외부에서 단일한 악의 중심을 찾아서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여기에 돌리는 흥미로운 경향이 있다.(618쪽)

13. 홉스봄 : 1945~1973년의 시간대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보편적인 사회적 전환이 일어났다.(679쪽)

14. 피케티 :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불평등이 21세 들어 극점에 이르고 있다.(680쪽)

15. 월러스틴 :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다극화 균등화가 시스템 자체의 질적 변형을 가져온다.(691쪽)

16. 제러미 리프킨 :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본질적으로 통제권의 분산을 선호한다.(761쪽)

17. 프란스 드 발 : 이기적 본성론은 한동안 인간 본성에 관한 지배적인 생물학적 시각이었다. 도덕성이란 인간 본성의 얄팍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껍데기 이론은 무너졌다. 공감 능력, 이타성, 협동력의 증거들이 엄청나게 쌓여왔다.(770쪽)

18. 수잰 시마드 : 숲은 나무들을 연결하고 소통하게끔 해, 마치 지능이 있는 유기체와 같다.(777쪽)

19. 레베카 솔닛 : 재난 속에서 가려지고 묻혀 있던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가 되살아난다.(819쪽)

20.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인류는 최초로 나의 존재, 나의 가치, 나의 욕망 자체를 대상화하고, 나를 부정하여 새로운 자아에 이른다고 하는 인류 재탄생의 기적을 경험했다.(866쪽)

2021년 6월 1일

빛고을에서

알라딘: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알라딘: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김상준 (지은이)아카넷2021-04-16






정가
45,000원
Sales Point : 1,432

8.7 100자평(2)리뷰(1)
968쪽
책소개
서양 근대의 팽창문명의 질서로부터 후기 근대의 내장, 공존, 평화 문명 질서를 향한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제시한다. 짧게는 근대 500년 역사의 대전환을 밖으로 확장하는 서구의 팽창문명과 안으로 성장하는 동아시아의 내장문명의 변증법으로 풀어냈다.

2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의 부상과 그 마지막 10년 이래 중국의 급속한 굴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중 관계가 과거 미소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세계 속에서 동아시아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가 경탄한 한국의 촛불혁명과 K방역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등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문명전환의 담론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명의 상에 대한 선명한 비전을 제시한다.


목차


책머리에: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서

서론: 붕새의 날개
〈종합발제〉 역사의 새의 시간 비행

제1론 『장자』 붕새와 형-류-세-형′
거대한 새: 풍파 3천리, 장도 9만리
강수량의 문명사
문명전환의 5단계: 변증법적 순환과 상승
제2론 동아시아의 안과 밖
붕새 지리학
동아시아: 대륙/바다, 건조/습윤, 1몬순/2몬순
붕새와 가루다의 계절풍 운동과 문명의 교류
제3론 서세동점의 내력
대항해, 동아시아로 가자!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서세동점의 밑천이 되다
유럽의 팽창과 거대한 낙차의 창출
시베리아 서세동점

제1부 形
〈발제〉 동아시아 내장근대의 원형

제1론 근대세계사와 동아시아
〈근대화=서구화=문명화〉라는 신성한 공식
세계가 변하다
근대세계사의 3단계론: 초기근대, 서구주도근대, 후기근대
콜럼버스 이전의 글로벌 임팩트
‘근대’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제2론 동아시아 소농체제와 내장근대
『하멜표류기』에는 인종주의가 없다
‘내장’은 안으로(in) 확장한다(pand)는 뜻
동아시아 내장근대의 특성
동아시아 소농농법의 친환경성
제3론 동아시아 평화체제와 유럽 내전체제
동아시아 평화 200년간에는 전쟁이 없었는가
동아시아와 유럽의 전쟁과 평화는 왜 엇갈렸는가
종교전쟁과 유럽내전
리바이어던, 또는 ‘예외를 결정하는 자’
유럽내전의 심리학과 종말론
포스트 전국시대: 계몽철학자들이 바라본 동아시아
유럽 내장근대의 뿌리
제4론 동아시아 유교체제: 문과 무, 군현과 봉건
유교는 어떻게 폭력을 길들였는가
폭력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유교 성왕론
만리장성은 왜 세워졌는가
유교 공화주의
유교 반폭력 사상과 성적 평등주의의 미래
동아시아 유교국가의 4가지 유형

제2부 流
〈발제〉 서세동점과 동아시아의 대응

제1론 ‘두 근대’의 충돌과 동서 대분기
세계는 동아시아의 과거에 왜 다시 주목할까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까닭
동아시아는 스스로 붕괴하지 않았다
세계로 퍼져나간 유럽내전
제2론 내장근대의 미래와 과거
17~18세기 동아시아 번영의 비결
전쟁에 지고서도 안일했던 청나라
제3론 태평천국혁명과 동학혁명의 미래성
태평천국의 강령
동학혁명군의 민관공치, 세계 혁명사상 전대미문의 사건
동학혁명의 미래성
동아시아의 전통에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생명과 평화의 가르침,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
제4론 내장근대 체제전환의 유형: 중심-주변, 문-무, 군현-봉건
동아시아는 서세동점에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천하도〉, 중심-주변 세계관의 조선 버전
도쿠가와 막부의 내장성 재평가
봉건제, 군현제, 공화제
신해혁명과 프랑스혁명, 어느 쪽이 더 세계사적 사건일까

제3부 勢1
〈발제〉 동아시아 전쟁체제

제1론 동아시아 팽창근대의 논리와 심리
역사는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가
『문명론의 개략』의 논리와 심리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 팽창근대의 전략가
정화의 남해원정과 서구의 대항해의 차이점
제2론 팽창근대와 전쟁체제
세계대전, 팽창근대의 필연적 귀결
총력전 체제와 조숙한 전쟁국가 일본
이시와라 간지의 ‘세계최종전쟁’
제3론 전쟁체제 속의 동아시아
두 번의 조일전쟁과 러시아혁명
2중의 대립선과 비운의 삶: 김산과 김경천
제4론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자본주의는 권력현상이다
파시즘, 후발 팽창근대의 공격적 만회운동
‘지정학’의 계보
팽창적 제국으로 변모해간 소련

제4부 勢2
〈발제〉 동아시아 냉전체제

제1론 동아시아 냉전의 안팎
적대의 내면화
법정에 선 카를 슈미트, 팽창근대의 세계사를 정당화하다
일본 ‘전후 민주파’ 인식의 공백지대
‘근대 국민국가의완성’을 넘어
제2론 중국내전, 베트남전쟁, 코리아전쟁
이 전쟁들은 피할 수 없었나
맥나마라의 베트남전 회고
승자 없는 전쟁
분단체제: 내전적 적대의 지속
제3론 내장근대 완성의 우회로, 냉전 종식과 동아시아의 부상
팽창근대, 한계에 이르다
냉전의 최전선, DMZ
세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는가
동아시아의 평화적 부상과 냉전의 종식
애덤 스미스적 발전노선과 동아시아 내장형 발전노선의 친화성
제4론 미중 관계와 코리아 양국체제
미중 전쟁은 불가피한가
군산복합체는 영원한가: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의 경고
역주행: ‘기본합의’에서 전쟁위기로
또다시 역주행을 반복할 것인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다
코리아 양국체제와 한조수교
노자 『도덕경』이 가르쳐주는 코리아 양국체제의 지혜

제5부 形′ 문명의 진로
〈발제〉 후기근대와 내장적 문명전환

제1론 후기근대, 근대세계사의 제3단계
대전환
후기근대란 무엇인가
후기근대의 되감기와 상전이
상방(전방)전환력 vs. 하방(후방)전환력
제2론 대파국인가 대전환인가 Ⅰ: 사회경제적, 정치군사적 차원
거대한 변화는 분명한 사실이 되었다
불평등의 심화: 제2의 인클로저
지구 차원의 소득격차 감소: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대분기에서 대수렴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평화적으로 계속될 수 있을까
‘도광양회’는 책략이 아니다
지정학 시대의 종언
제3론 대파국인가 대전환인가 Ⅱ: 기후환경적 차원과 ‘후기근대 신과학’
인류세와 기후위기
과학의 경고
지구는 말할 수 있는가
환경 문제와 중국 문제
기후위기는 대전환의 핵심동력으로 작용한다
후기근대 신과학
500년 유럽내전의 종식과 ‘적이 사라진 세계’
다섯 개의 콘트라스트: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제4론 ‘지구선택’과 인류문명의 내장적 전환
문명이란 무엇인가
인구와 생산의 증가 추세가 꺾이고 있다
‘축의 시대’와 문명의 시선 전환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엇을 돌아보게 했는가
제도 혁신과 코로나19
‘1 대 99 사회’와 기본소득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재난 속에 출현하는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
재난의식과 ‘지구선택’
내장사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북구 사회 모델은 먼 나라 이야기인가
내장사회가 돌아가는 전체 모습
‘능력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벽에 부딪힌 팽창 욕망의 기이한 출구: ‘지구탈출’과 ‘인간탈출’
제5론(총결) 붕새의 날개, 거대한 뿌리, 문명의 진로
마지막 고개, 마지막 질문
거대한 전환, 거대한 뿌리
문명과 낙차
내장의 귀환
동아시아와 내장문명
잃어버린 열쇠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들
포스트모더니즘
희망의 신호
희망의 원리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12~13이 책은 ‘동아시아 근대사’라는 입구로 들어가 ‘인류사’라는 출구로 나옵니다. 서세동점으로 오랜 시간 곤경에 처했던 동아시아가 오늘날 다시금 당당한 위상을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부의 포식이 아니라 내적 자기증식에 기초했던 내장적(內張的) 발전양식, 생활양식의 뿌리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내장적 저력의 재발견과 귀환은 이... 더보기
P. 112얼마 전 이들 ‘뉴라이트’ 운동의 학계 구성원을 이루는 분들이 몇 모여서 자신들의 평소의 소신을 대담하게 펼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냈더군요. 저는 이 책을 읽고 정말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특성에 대해서는 몽땅 비하하고 일본과 서구 문명에 대해서는 무조건 찬양하여 숭배하고 있습니다. 미리 역사를 흑백과 우열로... 더보기
P. 172~173동아시아의 내장(內張)근대란 이렇듯 대륙과 바다, 그리고 습윤과 건조의 교류와 공존을 통해 대단히 광대한 범위에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대륙/바다, 습윤/건조의 광대한 상호작용이 바로 붕새를 날게 했던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합니다. 이러한 내장적 질서가 오랜 시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동아시아 전체가 평화공존의... 더보기
P. 217유교 국가론의 바탕을 이루는 ‘민유방본’의 철학은 당시 유럽의 계몽철학자들에게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마 오늘날의 독자들은 과거의 유럽이 동아시아의 유교 체제를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전인수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역사를 볼 때 과거를 자기 시대의 눈으로가 아니라 당... 더보기
P. 258그렇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오랜 기간 안정, 평화, 번영을 누리며 존속했던 유교형 내장주권체제의 역사적 경험을 눈을 비비고 새롭게 다시 보고 창조적으로 재해석해야만 하는 때가 아닐까요? 유교 내장주권이 서구 팽창주권의 힘 앞에 패배했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패배는 영영 잊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 패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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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상준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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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2001~). 1980년 서울대학교 사회대 입학 후 학생운동으로 강제 징집되었다 만기 제대하고, 1992년까지 인천, 구로의 공단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1993년 뉴욕으로 유학하여, 뉴스쿨에서 석사학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사회학, 2000)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미지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를 구상하다』,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진화하는 민주주의: 아시아·라틴아메리카·이슬람 민주주의 현장 읽기』, 『코리아 양국체제: 촛불혁명과 체제전환』 등이 있고, 시민의회론, 성찰윤리론, 중층근대론, 중간경제론, 비서구 민주주의론, 후기근대론, 동아시아 내장근대론, 내장적 문명전환론 등의 새로운 학술 담론을 제기해왔다. 접기

최근작 : <주제 속 주희, 현대적 주희>,<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감성적 근대와 한국인의 정체성> … 총 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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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포스트휴먼 지식>,<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작품집 1>,<나노기술의 미래로 가는 길>등 총 407종
대표분야 : 고전 21위 (브랜드 지수 163,45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내장’과 ‘팽창’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관점으로 써내려간
동아시아가 주역이 되는 근대의 세계사이자 문명사

동서와 고금을 가로질러 ‘대전환’을 종합 분석하여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속화한 문명전환의 방향을 제시하다

서양 우위의 ‘동서(東西) 대분기’는 사라지고 동아시아와 서양이 대등한 관계로 만나는 ‘동서 대수렴’의 시간이 왔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는 서양 근대의 팽창문명의 질서로부터 후기 근대의 내장, 공존, 평화 문명 질서를 향한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제시한다. 짧게는 근대 500년 역사의 대전환을 밖으로 확장하는 서구의 팽창문명과 안으로 성장하는 동아시아의 내장문명의 변증법으로 풀어냈다. 2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의 부상과 그 마지막 10년 이래 중국의 급속한 굴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중 관계가 과거 미소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세계 속에서 동아시아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가 경탄한 한국의 촛불혁명과 K방역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 이후의 체제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문명전환의 핵심고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문명전환의 담론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명의 상에 대한 선명한 비전을 제시한다. 인류사의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는 상징으로 제시된 『장자(莊子)』 속 ‘붕새’는 시베리아 최한극과 태평양 최열극을 매년 주기적으로 오가는 동아시아 계절풍이자 내장적 문명화의 전환력이다. 수평적 협력을 통한 생활력, 생산력의 확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문명의 특성은 글로벌 기후위기, 불평등의 심화, 신냉전과 냉전과학, 무한생산·소비로 불거지는 ‘대전환’의 양상과 함의를 밝혀 현 인류가 맞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또한 동아시아의 후진성과 한반도의 주변성을 걷어내고 냉전의 청산과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높다란 시선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다.

세계 속에서 크게 높아진 동아시아의 위상과 새롭게 조명된 ‘대분기’의 실체
평화 시기에 강점을 보였던 동아시아 내장체제의 강점이 부각

‘붕새의 날개’가 보여주는 문명전환의 진로는 ‘내장(內張)의 귀환’이다. 근대세계사 500년을 내장과 팽창의 변증법으로 분석한 결과다. 정복과 지배의 팽창성이 우위에 섰던 기존 인류 문명의 근본적 속성이 협력과 우애를 바탕으로 하는 내장의 공존과 평화의 문명으로 수렴된다는 전망이다. 근대사, 문명사, 인류사 3중의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인류의 존망이 걸린 작금의 대전환에서 동아시아 근대 세계가 보여준 내장 문명의 뿌리를 깊이 인식하고 문명의 행동 원리로 삼자는 것이다.

17~18세기 동아시아의 ‘200년의 평화’ 동안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19세기 들어 ‘유럽의 100년 평화’ 시기에 동아시아는 전란에 빠져드는 역(逆)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이 시기는 외부의 포식을 바탕으로 팽창적인 문명 원리로 나아간 서양과 동아시아의 내장 문명이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서구의 팽창근대를 여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가 모종의 종교적 적대감을 바탕으로 하는 침탈적 성격을 드러낸 것과 달리 정화의 남해 원정은 식민지화 없이 조공의 망을 넓히는 데서 동아시아의 내장적 문명의 성격을 드러낸 것도 두 문명 간 차이를 나타낸다.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세운 성벽인 만리장성(萬里長城)도 동아시아 문명의 내장성을 증거하는 예로 풀이된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 축조되어 누대에 걸쳐 완성된 만리장성은 내중국(한족)과 외중국(유목민족)을 가르는 경계였다. 한족의 왕조는 유목 왕조의 터전이 되는 외중국을 문명의 바깥으로 보고 정복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권을 제한했다. 또 초원제국은 통일제국의 만리장성 너머의 경계 안으로 내습했지만 금나라와 청나라의 경우처럼 그것이 성공적일수록 오히려 중국화되는 역설을 보였다. 이를 내장과 팽창의 관계로 본다면, 팽창이 내장에 포섭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는 19세기에 벌어진 동서양의 우세 역전과 격차 심화를 일컫는 역사학계의 용어다. 문명화를 이끈 서구 세력이 근대 이후를 주도했으며 이러한 ‘서구주도근대’에 대한 인식은 20세기까지 표준적인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들어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동아시아의 부상’이 가져다준 관점의 전환이 대분기의 현상을 새롭게 주목하게끔 했다. 미국의 역사사회학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동아시아가 서구의 ‘문명화의 빛’의 수혜자가 아니라 거꾸로 서구가 번성하던 아시아 교역망에 최후로 탑승한 ‘무임승차자’였고 미국의 중국사학자 케네스 포머란츠가 중국의 강남지역과 영국을 비교한 연구 등 서구 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론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세계가 경탄한 한국의 촛불혁명과 K방역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동아시아의 뿌리 깊은 공화·민주의 전통 위에 탄생한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

내장 문명의 원리는 유교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에 바탕을 두며 철저한 비판적 대면을 통해 그 정수를 걸러내고 재구성된다. 동아시아 내장근대의 가치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평화’에 대한 지향이다. 동아시아에서 유교는 문(文)으로 무(武)를 통제했고 성왕론(聖王論)을 통해 세습 군주의 권력을 순치하는 기능을 했다. ‘국가의 기본이 오직 민의 복리와 안녕에 있다’는 민유방본(民唯邦本)의 전통의 바탕에서 비롯한 대중유교로서의 동학(東學)은 ‘생명과 평화의 가르침’의 사상으로 주목된다. 동학혁명 당시 혁명군의 기율로서 전봉준이 제시한 ‘4대명의(四大名義)’는 억압된 농민들의 혁명이 평화주의로 잘 규율된 것임을 예증한다. 지은이는 이러한 평화적 공(公)사상이 3·1운동, 반독재민주화운동, 4·19혁명, 6월항쟁, 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자발성에 기초한 사회적 협력의 강화가 팬데믹 이후 문명전환의 방향이자 행동의 지침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발전해온 공화제와 민주제의 전통은 서구 사회보다도 뿌리 깊어 사회의 단단한 토대가 된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유럽의 프랑스와 영국이 공화제 혁명의 성공 이후에도 여러 차례 ‘왕정복고’가 반복된 것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민(民)의 수평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된, 곧 군현제(중앙집중적 군주제)의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의 공화제 혁명은 ‘역류 현상’ 없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전국(戰國)시대가 조기 종식된 이후 진나라에 들어선 군현제 아래서 봉건적 신분이 해체되는 한편, 유교 문인들의 공화주의적 전통(유교 문인공동체 공화주의)이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성공적인 방역 대응(K방역)은 전 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지은이는 K방역의 저력은 한국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 정신의 결과이며, 이는 촛불혁명에서 보여준 사회적 협력 의식, 민주적 참여 의식이 바탕이 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전체주의적 감시사회’나 ‘유교적 순응주의’로 낮춰보는 유럽 발 시각은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라고 진단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적 방역으로 주목받는 국가들에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대만 등 유교를 배경으로 내장적 전통을 지닌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 이후의 체제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평등과 효율을 결합한 혼합체제로 수렴, 수평적·평등적인 북구의 내장형 사회에 주목

동아시아와 서양(유럽)이 만나면서 벌어진 힘의 상호관계는 형(形)-류(流)-세(勢)-형 다시(形′)라는 하나의 순환적 흐름이 교차하는 변화 과정으로 풀이된다.(5개 부의 구획도 이를 따른다.) 내장적 사회의 원형(形)이 되는 초기 근대의 동아시아 소농체제에서 서구 팽창성이 세계를 압도하는 시기를 거쳐(流-勢) 후기근대의 세계는 내장형 사회로 수렴된다는 것이 ‘붕새의 날개’가 전망하는 인류사 전체의 흐름이다.

형 다시(形′)로 설정된 후기근대는 서구 패권의 200년이 저무는 미·소 냉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다. 내장문명이 세계적 차원에서 완성되는, 세계가 근대의 역사를 ‘되감는’ 역사적 이력(hysteresis)의 시간대이자 문명사적으로는 ‘두 번째 축의 시대’이다. 지은이는 팽창근대가 팽창의 극한에 이르는 후기근대에는 팽창근대와 내장근대의 분열선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분열선도 함께 사라진다고 전망한다. 자본주의는 순수한 경제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사, 정치, 경제적 권력이 결합된 권력체제인 ‘권력자본주의(power capitalism)’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제성장 지상주의, 대결적 대외관계 등에서 팽창근대의 성격을 공유하였고 내장적·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사조나 운동과 ‘선한’ 자본주의 흐름들도 존재하는 만큼 팽창근대/내장근대로 인류의 문명사에 접근하는 일은 자본주의/사회주의 구분을 넘어서 ‘대수렴’의 인식과 전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대수렴’의 방향은 내장성의 강화이며 그 형태는 혼합경제이다. 후기근대에는 수평적·개방적이며 평등적·평화적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하여 수직적·대립적이며 차등적·대립적인 힘을 약화하는 만큼 내장성이 강화된다. 혼합경제는 시장경제와 재분배경제, 호혜경제가 공존하는 체제이며 주류 경제학 내부에도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혼합경제로의 경로를 통해 진화 중이며 이러한 내장형 사회의 본보기가 되는 것은 북구 노르딕 국가들이다. 책은 20세기 이후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사회의 발전 양상을 또 하나의 내장적 패러다임의 사례들로 포착한다.

북구 노르딕 사회는 팽창근대의 노선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멀리 벗어난 서구의 나라들이다. 시민적 연대가 견고하고 사회적 합의가 강고하며 높은 재분배 정책을 펴는 까닭에 수평적이고 평등적인 경향이 강하며 국가 간 관계는 중립, 자위, 평화 노선을 오랫동안 견지한 내장형 사회였다. 팽창근대의 주도국이 될 만한 인구와 지정학적 위치를 갖추지 못했기에 안으로 꾸준히 내실을 기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여 내장적 체제의 모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또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강국이면서 패권국가는 아니지만 무역강국이라는 점을 공유한다.

미중 관계가 과거 미소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적이 사라진 세계와 팽창근대의 종식, 상호 공존의 길 견인하는 중국

내장형 사회로 ‘대수렴’이 이루어지는 후기근대는 여러 다극적 힘들이 서로 복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균형을 이루어가는 세계이다. 강대국 간의 ‘힘(power)’의 관계도 분산적이 되고 그 ‘힘’도 더는 과거처럼 ‘팽창적’이지 않고 ‘내장적’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은이는 ‘패권다툼 논리’에 불과한 핼퍼드 매킨더나 앨프리드 머핸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지정학에 근거한 사고도 종식되리라 전망한다. 또 지배적 미디어를 통해 심심찮게 되풀이되는 이른바 미중(G2) 간의 ‘신(新)냉전 시나리오’는 실제 세계의 움직임과도 다르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체제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과 교류 확대를 원하는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이슬람권, 인도권, 동남아시아 등 비서구권 전반의 국가들이 접면 확장에 훨씬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이 주도하여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경제벨트로 묶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유라시아 지역의 ‘중간지대’에 속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어 지금껏 무력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의 ‘굴기’가 지금까지 성공적인 까닭은 서양의 제국주의가 장밋빛 ‘문명화’를 약속한 팽창적 패권의 길과 다른 내장적 경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중간지대의 낙후된 지역과 분야에 사업을 집중하고 정보기술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큰 비중을 할애하여 ‘녹색성장’에 부합한다(제러미 리프킨)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은이는 중국이 이러한 내장적 공존 노선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여 미중 관계가 안정된다면 세계의 내장화는 큰 걸림돌을 걷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냉전의 종식은 적이 사라진 세계를 뜻한다. 미국에게는 소련이라는, 소련에게는 미국이라는 ‘절대적인 적’이 존재함으로써 냉전체제는 존립 가능했다. 이러한 적대는 16세기 종교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종교전쟁이 유럽내전으로 그리고 세계내전(세계대전)으로 확대해간 500년 팽창근대의 역사를 이어온 심리적 동기는 팽창 대상에 대한 모종의 적대감에서 비롯한다. 이 강력한 힘은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가 서로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던 것에서 ‘최종 심판’이라는 성스러운 과업에 저항하는 세력을 적으로 삼고 비유럽 세계의 식민지화를 수행한 동력으로 이어진 ‘심리적이면서 신학적인 메커니즘’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부역을 이유로 전범재판에서 선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교묘히 일깨운 것도 유럽공법, 유럽문명이 ‘지구의 입법자(Der Nomos der erde)’이며 팽창근대의 문명을 변호하는 논리였다. 이러한 적대를 바깥 세계로 돌린 ‘근대의 초극’ 사상은 일본의 ‘전후 민주파’의 논리가 되고, 식민지 근대화론은 ‘침략전쟁과 지배가 불가피했다’는 그들의 논리를 베낀 것에 불과하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펴나간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문명전환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한 자원소비적 성장 방식의 한계 절감, 길항하는 관계 전체를 살피는 기후변화 대응 주문

기후위기는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하며 여러 문제가 중첩해 나타나는, 대전환과 대파국의 귀결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기후위기는 지구가 보내는 엄중한 경고로 전문가들은 ‘여섯 번째 대멸종’을 예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IPCC의 보수적 예측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 지구온도가 1도 상승한 데 반해 2100년에는 4도 올라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이 자기회복과 순환할 틈을 주지 않는 인간의 과도한 약탈에서 비롯한 것으로 인간에 대한 자연의 우위(낙차)가 인정되고 자연은 가장 근원적인 타자로 머물던 팽창근대의 사고법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로 신자유주의 이후 끊긴 반핵, 환경운동의 흐름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그린 뉴딜’에 대한 요구가 전방위로 모이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이 널리 확장되었다. 이는 일부의 뛰어난 스승,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특별한 영혼과 사고 속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적 차원에서 수많은 다수의 마음속에서 동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제 서구와 비서구가 공히 봉착한 문제는 과거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힘을 어떻게 약화시키고 해체하여 내장화할 것이냐다. 지은이는 기후변화 대응운동 일각에서 “이미 늦었다”고 자포자기하는 비관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고 여러 힘이 묶여 길항하는 관계 전체를 살피자고 제안한다. 탄소배출의 실제적 감축도 이런 관계의 전체 구조를 바꿔 갈 때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 연구의 집대성이자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네 화자 간 다성적(polyphonic) 대화로 풀어낸 학술적 탐사보고서

지은이 김상준 교수(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는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뒤늦게 학문을 시작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시민의회론, 중층근대론, 비서구 민주주의론 등 새로운 학술 담론을 제기해 왔으며 동아시아의 유교문명을 인류 문명 재편의 주동적 요소로 그려낸 『맹자의 땀 성왕의 피』는 성균관유교학술원 저술상과 문광부 우수도서를 수상했다. 지은이는 1990년대 초반 소련동구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변화하는 세계와 수십 년에 걸친 큰 희생 위에 이룬 민주화가 뒷걸음질 치는 한국의 상황 모두에 분명한 전망과 시야를 얻지 못한 것을 두고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열쇠’를 찾기 위해 본질적인 세계 변화의 방향을 30여 년에 걸쳐 탐색한 학문 여정을 1차적으로 종결짓는 ‘탐사보고서’이다. 제사에서 지은이가 밝히고 있듯, 지금 자신의 청년 시절 나이에 도달한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다. 이 탐사보고서는 한편으로 참신한 글쓰기 실험이기도 하다. 지구의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네 화자 간 다성적(polyphonic) 대화로 글을 전개하여 창조적 사유와 비판적 검토의 폭과 깊이가 확장, 심화된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