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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출가생활의 결실에 관한 경 5

디가니까야 5회 
출가생활의 결실에 관한 경 5

빠알리대장경(디가니까야)
디가니까야 5회 출가생활의 결실에 관한 경 5
Buddhastudy 2020. 10. 13.

아자따삿뚜 왕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한 때 저는 ‘산자야 벨랏티뿌따’라는 수행자를 찾아갔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산자야 벨랏티뿌따 존자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아 그 결실을 통해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나아가 여러 수행자들에게 보시함으로써 고귀하고 신성한 과보를 받습니다.



존자여, 존자도 이와 같이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저에게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산자야 벨랏티뿌따 존자가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여, 만약 대왕이 제게 ‘저 세상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리고 만약 제가 ‘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저 세상이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다’고도 하지 않고, ‘저렇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도 ‘다르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대왕이 제게 ‘저 세상이 없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다’고도 ‘저렇다’고도

‘아니다’라고도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도

‘다르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대왕이 제게 ‘저 세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또는 ‘저 세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다’ ‘저렇다’ ‘아니다’‘아닌 것이 아니다’ ‘다르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산자야 벨랏티뿌따 존자에게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물었는데,

그는 회의주의론을 펼쳤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는 망고나무에 대해 물었는데 빵나무를 설명하고

빵나무에 대해 물었는데 망고나무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찌 나의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수행자나 바라문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존자의 말을 기뻐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는 세존께 같은 질문을 드립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을 저에게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대왕께서는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여기 대왕의 하인이 한 사람 있다고 합시다.

충직한 하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무슨 일에도 순종하고 유쾌하게 일하며

그대의 심기를 헤아리기 위해 항상 그대의 안색을 살핍니다.



어느 날 하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공덕의 과보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로구나.

마가다국의 주인 아자따삿뚜 왕도 인간이고 나도 역시 인간인데,

좋은 공덕으로 좋은 과보를 받은 왕은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신처럼 마음껏 누리고 즐기지만

나는 그의 감각적 욕망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공덕을 지어야겠다.

그러니 나도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리라.‘



대왕이여, 그리하여 그 하인은 출가수행자가 되어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며

절제하고 자족하고 멀리 여읨을 즐깁니다.



그런데 대왕이여, 만약 그대가

그대의 하인 중에 한 명이 출가수행자가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시 그를 데려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무슨 일에도 순종하고 유쾌하게 일하며

그대의 심기를 헤아리기 위해 항상 그대의 안색을 살피라고 명령하시겠습니까?“



대왕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하고

그를 반기며 의복과 음식과 거처와 필요한 약품을 마련해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제가 대왕께 알려드리는 첫 번째 출가생활의 결실입니다.“

===


'빠알리대장경(디가니까야)'의 다른글

lokāyata ㅡ 순세파[順世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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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kāyata ㅡ 순세파[順世派]
    정형화된 문장들   1 
lokāyata - Name of a branch of brahmin learning (D.i.11, etc.); the name signifies that which pertains to the ordinary view (of the world) - i.e., common or popular philosophy - much the same as lokakkhāyika (popular philosophy).
 

순세파[順世派]


고대 인도의 자유사상가의 한 사람인 아지타 케사 캄발린이 주장한 유물론ㆍ쾌락지상주의의 설을 신봉하는 학파. 아지타의 4원소설은 영혼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정통 브라만 사상의 아트만을 부정하는 한편, 당시 사람들이 가장 중대시한 업보의 유무의 문제에 관해서도 선악 행위의 보답은 일체 부정하고 도덕도 종교도 필요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내세를 인정하지 않고, 업보를 부정하고 현세의 쾌락을 지상으로 하는 사상을 산스크리트어로 로카야타(lokāyata)라고 하며, 불전은 <순세외도>라고 번역하는데 후세에는 차르바카(Cārvāka)라고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순세파 [順世派]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육사외도(六師外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아지타 케사캄바린

육사외도(六師外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육사외도 (六師外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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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개념 

서기전 500년 무렵 인도에서 활동하던 6명의 자유사상가를 불교 입장에서 가리키는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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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육사외도(六師外道)[cha-tīrthika(산스크리트어, 이하 ⓢ로 표기), 
cha-titthiyā(팔리어, 이하 ⓟ로 표기)]는 
붓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으며, 
『베다(Veda)』의 전통과 공개적으로 단절하고, 바라문교주1의 지배 질서와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이들을 ‘육사’가 아닌 ‘육사외도’라 한 이유는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단의 사상가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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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원 및 변천
불교가 흥기할 무렵인 서기전 6~5세기의 인도는 사회적 · 사상적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인도에 침입한 아리안족의 정착이 마무리되면서 농업 생산의 증대와 더불어 상공업이 발달하여 도시의 발전을 촉진하고,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도시에서는 상공업자들이 화폐경제에 의해 큰 부를 축적하였으며, 길드와 유사한 조합을 구성하고 완전히 도시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제까지는 제사를 관장하는 브라흐마나(ⓢbrāhmaṇa)와 정치를 관장하는 크샤트리야(ⓢKṣatriya)가 사회의 지배자였지만,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상공업자와 서민인 바이샤(ⓢvaiśya)에 의해서 기존의 카스트 제도는 질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사정을 배경으로 『베다(Veda)』의 전통과 공개적으로 단절하고 바라문교(Brahmanism)의 지배 질서와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많은 자유사상가들 · 종교 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다. 들이 바로 어원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닌 사문(沙門, ⓢśramaṇa, ⓟsamaṇa)이다.

이들은 유물론, 쾌락주의, 숙명론, 도덕 부정론, 회의론, 고행주의와 같은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불교의 문헌들에서는 이들이 62가지로 분류되어 ‘62견(見, ⓢdvāṣaṣṭi-dṛṣṭi, ⓟdvaṭṭhi-paṭipadā)’이라 하고, 그 가운데 특히 유력한 6명의 지도자를 칭하여 ‘육사외도’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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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푸라나 캇사파
푸라나 캇사파(ⓢPūrana Kāshyapa, ⓟPūraṇa Kassapa)는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더라도 악을 행한 것은 아니며, 제사, 보시, 수양 등을 해도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선악의 행위는 도덕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일종의 무도덕주의(無道德主義) 또는 도덕 부정론(道德否定論)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은 당시 도시 문화의 도덕적 난숙함과 그에 따른 도덕적 퇴폐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나중에 강물에 들어가 자살하였다고 전한다.

막칼리 고살라
막칼리 고살라(ⓢMaskarin Goshālin 또는 Maskarin Goshālīputra, ⓟMakkhali Gosāla)는 모든 생명체가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나 그들이 청정하게 되고 해탈하는 것은 원인도 조건도 없다는 우연론(偶然論)을 주장하였다. 그는 사람의 행위나 운명은 모두 자연계의 운행이 정한 약속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며, 그대로 방치해 두면 840만 대겁(大劫)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경과하여 저절로 해탈에 도달한다고 하는 숙명론(宿命論, fatalism)을 주장하였다.

초기 불교의 문헌들에서는 이것이 ‘윤회를 통한 청정(ⓟsaṃsāra-suddhi)’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는 인간의 노력이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결정론(決定論, determinism)을 옹호하였다. 그는 생명체가 땅 · 물 · 불 · 바람 · 허공 · 득 · 실 · 괴로움 · 즐거움 · 태어남 · 죽음 · 영혼이라고 하는 12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엄격한 고행(苦行)[ⓢtapas, ⓟtapo]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가 세운 교단을 ‘아지비카(Ājīvika)’라고 한다.

아지타 케사캄바린
아지타 케사캄바린(ⓢAjita Keshakambala 또는 Ajita Keshakambalin, ⓟAjita Kesakambalin)은 인간이 흙 · 물 · 불 · 바람의 4원소로 구성되어 있어서 죽으면 각 원소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이 생전에 짓는 종교적 · 도덕적 행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상은 철학적으로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이요, 인식론으로 보면 감각론(感覺論, sensationalism)이요, 실천적 측면에서 보면 쾌락주의(快樂主義, hedonism)의 입장에 서 있었다고 생각된다.

파쿠다 캇차야나
파쿠다 캇차야나(ⓢKakuda Kātyāyana, ⓟPakudha Kaccayāna)는 땅 · 물 · 불 · 바람의 4원소 외에 괴로움 · 즐거움 · 생명을 추가하여 7요소를 설했다고 한다. 또한 7요소는 불변하기 때문에 비록 사람을 죽이더라도 칼은 이 7요소의 간격을 통과했을 뿐이며 살인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소만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고방식은 후세의 바이셰시카(Vaiśeṣika)로 계승 · 발전되어 갔다.

산자야 벨랏티풋타
산자야 벨랏티풋타(ⓢSamjayin Vairatīputra, ⓟSañjaya Belaṭṭhiputta)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거나 서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을 주장하였다. 한편 그는 회의론(懷疑論, skepticism)의 입장도 취하였다. 즉 내세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대해서는 확정적인 대답을 제시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뱀장어와 같이 잡기 어려운 답변(Ⓢamarā-vikṣepika, Ⓟamarā-vikkhepika)’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사조는 어떠한 의미에서 붓다의 무기(無記, Ⓢavyākṛta, Ⓟavyākata)와 4구부정(四句否定)에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니간타 나타풋타
니간타 나타풋타(ⓢNirgrantha Jnātiputra, ⓟNigaṇṭha-Nātaputta)는 자이나교의 개조인 마하비라(Mahāvīra)이다. 니간타(Nigaṇṭha)는 오래전부터 있던 한 교단의 명칭이었으나, 그가 이 파로 들어간 뒤에 그의 설을 고쳤으므로 자이나교가 성립되었다. 그는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부정주의(不定主義, syādvāda) 또는 상대주의(相對主義, anekāntavāda)를 내세웠다.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엄격한 고행(苦行, ⓢtapas, ⓟtapo)의 실천을 강조하였으며, 죽이지 말고 훔치지 말고 음행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않고 소유하지 말라고 하는 오대서(五大誓, ⓢpañca-mahā-varata)를 제정하였다.

그의 세계관은 세계가 영혼(jīva)과 비 영혼(ajīva)으로 대별된다고 보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 특징이다. 그리고 비 영혼은 운동의 조건(dharma), 정지의 조건(adharma), 허공(ākāśa), 물질(pudgala)의 4실체(asti-kāya)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는데, 때로는 별도로 시간을 부가하는 경우도 있다.

현황
자이나교를 제외하면, 이들 자유사상가들의 교단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아지비카만은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시대까지 불교와 자이나교와 함께 유력한 교단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후대에 자이나교에 흡수되었다.

한편 자이나교는 마하비라의 시대에 이미 유력한 교단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후 불교와 함께 바라문교에 대항하는 혁신적 종교의 양대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서기전 3세기에 자이나교는 동인도에서 서인도의 구자라트(Gujarat)와 라자스탄(Rajasthan)으로 이주했다. 현재도 이 지역의 상인 계층을 중심으로 수백만의 신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육사외도는 비록 유물론, 쾌락주의, 숙명론, 도덕 부정론, 회의론, 고행주의와 같은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베다(Veda)』의 전통과 공개적으로 단절하고 바라문교의 지배 질서와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는 측면에서 공통된다. 육사외도로 대표되는 이단적 · 혁신적인 사상 조류는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불교가 태동하던 당시에 커다란 소용돌이로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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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디가 니까야(Dīgha-Nikāya)』-「브라흐마잘라 숫따(Brahmajāla-sutta)」, 「사먄냐빨라 숫따(Sāmaññaphala-sutta)」
  • 『장아함경(長阿含經)』-「범동경(梵動經)」, 「사문과경(沙門果經)」
  •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Continuities and Discontinuities(David J. Kalupahana, Delhi: Motilal Barnasidass, 2006)
  • A History of Pre-Buddhistic Indian Philosophy(Benimadhab Baruna, Delhi: Motilal Banarasidass, 1970)
  • Early Buddhist Theory of Knowledge(K.N. Jayatilleke, London: George Allen & Unwin Ltd, 1963)

주1
불교에 앞서 고대 인도에서 경전인 베다의 신앙을 중심으로 발달한 종교. 우주의 본체 곧 범천(梵天)을 중심으로 하여 희생을 중요시하며 난행고행과 조행(操行) 결백을 으뜸으로 삼는다.  
김한상

반드시 출가해야 해탈하는가 < 수행 < 불교신문

반드시 출가해야 해탈하는가 < 수행 < 수행·신행 < 기사본문 - 불교신문
반드시 출가해야 해탈하는가
수행
입력 2003.10.15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앵무라는 바라문이 볼일이 있어 왕사성의 어느 거사 집에 가서 기숙하고 있었다. 앵무 바라문은 그 거사에게 ‘때때로 찾아 뵙고 존경하며 가르침을 받을만한 스승’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거사는 서슴없이 부처님을 천거했다. 이에 앵무 바라문은 부처님이 계신 죽림정사로 찾아가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여쭈었다.

“도를 닦으려면 집에 있으면서 하는 것이 좋습니까, 집을 나와서 하는 것이 좋습니까?”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 집에 있느냐 혹은 집을 나오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 있거나 나오거나에 관계없이 삿된 행(邪行)을 하면 나는 그를 칭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삿된 행을 하는 사람은 바른 지혜를 얻지 못하며 법다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 있거나 나오거나에 관계없이 바른 행(正行)을 하면 나는 그를 칭찬한다. 왜냐하면 바른 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 지혜를 얻으며 법다움을 알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큰 공덕과 이익을 얻으려면 집에 있는 것이 좋습니까, 집을 나와서 하는 것이 좋습니까?”

부처님은 출가 강조한 적 없어 진실한 수행여부가 더 중요

“그것은 일정하지 않다.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 큰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동을 하면 큰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공덕이 없다. 또 집을 나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은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어서 삿된 행동을 하면 큰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공덕이 없다. 그러나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 큰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실천하면 큰 과보를 얻고 큰 공덕이 있다. 또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사람이 작은 재앙이 있고 다툼이 있으며 원망과 미움이 있더라도 바른 행을 실천하면 과보를 얻고 큰 공덕으로 얻는다. 이것은 진실이며 허망한 말이 아니다.”-중아함 38권 152경 〈앵무경(鸚鵡經)〉

- 출가생활이란 가정과 가족을 떠나 수행에 전념하기 위한 최상의 선택이다. 부처님도 수행을 위해 출가를 했고, 수많은 제자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가수행을 결행하자 부처님은 한때 외도들로부터 ‘과부들의 눈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출가수행자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의 눈물도 늘어난 데서 생긴 일이었다. 특히 산자야의 제자 사리불과 목건련이 250명의 추종자와 함께 개종을 하자 외도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캄바라라는 외도는 이를 막기 위해 마나기라는 여제자를 거짓으로 임신시켜 부처님을 모함하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출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부모와 가족의 동의를 받도록 권하기까지 했다. 출가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일종의 고육책이었다.이 경전은 바로 그 무렵에 설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목할 점은 여기서 부처님은 결코 ‘출가지상주의’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가르친 해탈이란 올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출가라는 형식이 아니라 누가 더 진실하게 수행하느냐 하는 내용에 있다. 실제로 〈증일아함경〉 3권 청신사품에는 우바새로 법을 증득한 사람이 40명이나 거명되고 있다. 우바이도 30명이나 된다. 이는 법의 증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증거들이기도 하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불교신문 1973호/ 10월17일자]
[불교신문 1973호/ 10월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