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30

Sejin Pak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머리글

(2) Sejin Pak -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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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창의 <공공철학 이야기>를 지난 주 (9월 중순)에 읽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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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커공부방이라는 독서모임에서는 일주일에 한 쳅터 씩 나가기로 하고 제 1장인 <원효>에 대해 읽을 계획이었는데,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머릿글>이 꽤나 길고, 읽어보니 중요해서 그 <머릿글>과 책의 <후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실제로 이 두 부분은 읽어보면 이 책을 읽기 위해 잘 읽어두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 그런데 이 두 부분은 <저자> 김태창 선생이 쓴 것이 아니고 두 일본인이 쓴 것이다. 실제로 김태창 선생이 글로 쓴 것은 없고, 일본에서 일어로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것을 우선 원광대 교수 야규 마코토가 일어 글로 옮기고, 서경대 교수 정지욱이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머릿말>은 일본에서 김태창 선생과 <공공철학 대화>로 오래 동인 협력해왔던 카타오카 류 (일본 동북대학) 교수가 (일어로) 쓴 것이다. 그러니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걸처 만들어진 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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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왜 두 일본인이 위의 두 부분을 썼고, 왜 그 글들이 중요한가에 대해 써보려고 하는데, 우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책의 길고 긴 제목이다.:
(1)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2) 한 삶과 한 마음과 한 얼의
(3) 공공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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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부분부터 시작하자면,
- 지난 번에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할 때 나는 이 책을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철학사>같은 책이라고 말했고 실제 각 쳅터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한국의 역사적인 사상가들이니,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는 머릿글과 후기를 읽고 왜 이 책이 <한국철학사>가 아닌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 우선 이 책에서는 <한국 철학>이라는 말이 없고, 제목과 책 안에 나오는 <한 삶>, <한 마음>과 <한 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들을 <한 사상>이라고도 짧게 말하지만, 거기에 나오는 <한>은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고 놀랍다. 머릿 글에 나오는 설명에 의하면 한반도에 수천년을 흐르는 일종의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민족이나 국가 중심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에도 다르지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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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부분에 대하여:
- 이 책의 내용은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일어로 나눈> 말을 글로 옮기고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왜 그런가> 저자 (발표자) 김태창에 의한 직접적인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저자에 의한 서문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한 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중요할 것 같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설명이 없다. 그런데 머릿 글과 후기를 쓴 두 일본인이 이 이야기는<일본인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머리 글을 쓴 타카오카 류 교수에 의하면 <한 사상>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일본인들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거울으로서의 역사>라는 표현을 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일본(인 들)이 <한얼>을 부정하고, 억압하고, 말소하려고 했던 역사가 있어서, <한사상> 이야기를 들으므로서 그런 것들에 대한 반성이 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한 사상>이야기들은 일본 비판이 목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러니 일본인의 반성이라면 비판을 들어서 이 반성이 아니라 <무언가 깨달는 것이 있어서의 반성>이라고 생각된다. 그 깨달른 것이라는 것이 (3)의 <공공철학하기>의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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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공철학하기>의 이야기
- 이 책은 제목이 <공공철학>인데 저자에 의한 <공공철학>에 대한 설명이 없다. <공공철학>이 무엇인가를 재대로 설명하자면 시간이 걸린다. 또 동시에 여러 곳 (다른 책들) 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어있으니 머릿글에서 되풀이 하지는 않고 (!) 필요한 만큼 만 말하겠다고 카타오카 류 교수는 머릿 글에서 말한다.
-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관 중심>의 <공공>이 아니라 <민 중심>인, <개인을 살리는> <공공>이라는 것인데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 중심>이라고 한다. 이 과제를 <활사개공>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는 것이다. 일본발의 <멸사봉공>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공공하는> 또는 ,공공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리더적인 인간 모델>로 보고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뽑아서 본다는 것이다 이야기 대상의 인물들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뽑는 것이지만, 일본인에게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인 들에게도 역시 <우리 나라> 사람 (철학자)들의 이야기로 만 받아드리지 말자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다. 말이 되나? 나에게는 되는 것 같다. 나라나 민족을 초월하는 이야기라면 ,한국인 모두가 하는 것처럼<한국철학>이라고 부르면 포인트가 틀리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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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Namgok Lee - 탐욕에 대하여. 예리한 통찰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711~712p | Facebook

Namgok Lee - 탐욕에 대하여. 예리한 통찰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711~712p |

탐욕에 대하여.
예리한 통찰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711~712p





름으로 진리를 말하지 않았습니까?,
1다 지나간 일.......사부님은 민망해 하는 베노를 그 자리
'에 남겨 두고 내 손을 끌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잡깐 걷던 사 부님이 한숨을 쉬면서 이런 말을 했다.

'베노는 탐욕의 희생 자이다. 탐욕은 곧 번뇌이다만, 베렝가리오나 레미지오의 탐 육과는 유가 다르다. 학승(부처합)들에게 그러하듯이 베노에게 도 지식에의 탐욕이 있다. 지식 자체에 대한 탐욕.....이 지 직이 울타리 저쪽에 격리되어 있을 동안 베노는 거기에 접근 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붙잡았다. 말라키아 는 지식에 대한 탐욕과 베노라는 인간을 잘 알았다. 말라키
•아는 서책을 되찾고 베노의 입을 막는, 일석이조의 묘수를 쓴 것이다. 너는, 사람들이 접할 수 없는 바에, 그런 지식의 보고를 관리하는 일에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탐욕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사부님 이신 로저 베이컨의 지식에 대한 갈망은 탐욕이 아니었다.


그분은 당신의 지식을 쓰시되, 하느님 백성의 삶을 개선시키 는 데 쓰셨다. 따라서 그분은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은 구하 지 않으셨다. 그러나 베노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채우고, 제 비천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지식을 갈망한다.

다른 수도사들 중에는 이 갈망 때문에 육(치)을 탐하는 자가 있기도 하고,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자, 혹은 이단을 지키고 자 하는 용사로 변하는 자들도 있다. 탐욕이라고 해서 꼭 육
(12)의 탐육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나르 기는 탐욕스러운 위인이다. 베르나르는 정의에의 왜곡된 탐욕에 사로잡혀 있 다.그 탐욕은 왜곡되어 결국 권력에의 탐욕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신성한, 그러나 그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신성
하지 못한 교황은 부(화)에의 탐욕에 사로잡힌 자이다. 식료 계 레미지오? 이자는 소득적부터 제 몸으로 제험함으로써 저 자신을 변용시키고, 참회하려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던 자이 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에의 탐욕에 사로잡혀 있을 게다. 베 그는 서책에 대한 탑욕에 지나친 집착을 보인다. 제 씨앗을 땅에 흘린 오난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무릇 모든 탐욕이 그 려하듯이, 베노의 탐욕은 참으로 불모스러운 것,. 세상과 인 간에 대한 사랑과는 아무 인연도 없는 것인 법이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부 님은 내 말은 못 들은 척하고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대상에 계 절이 될 만한 것을 바라는 것이 참사랑이다.!


「베노 주도사는 이제 제 손에 들어온 서책의 선을 지킨답
지코 그 책을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서책의 선은 읽히는 데 있다. 서책은 하나의 기호를 밝히 는 또 하나의 기호로 되어 있다. 기호는 이렇게 모여서 한 사 상(흑축)의 모습을 증언하는 게다. 이를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아무런 개념도 낳지 못하는 기호를 담고 있을 뿐이 다. 따라서 그런 서책은 벙어리나 다를 바가 없다. 이 장서관 은 원래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만 이제는 그 서책을 묻어 버리고 있구나. 이 장서관이 부정과 죄악의 수채 구멍이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레미지오는 제가 배신 을 했다고 얘기했지. 베노도 그렇다. 베노도 배신을 했다. 참 으로 지긋지긋한 하루였구나. 피가 튀고 이 세상 귀퉁이가 우르르무너지는 것 같은 하루였다. 이 하루가 어찌 이리도 길었던고, 종과 성무 시간이다. 어서 들렀다가 자리에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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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욕도 욕망




불일(不一)이라야 불이(不二)가 산다 / 조성택 <불교평론 2008

불일(不一)이라야 불이(不二)가 산다 / 조성택 < 권두언 < 기사본문 - 불교평론



불일(不一)이라야 불이(不二)가 산다 / 조성택
기자명 조성택
입력 2008.04.28

조성택 (본지 주간 / 고려대 철학과 교수)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키워드 중의 하나는 불이(不二)라는 말이다. 불이란 ‘둘이 아니며’ 따라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깨달음과 무명이 다르지 않고 성(聖)과 속(俗)이 다르지 않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바로 불이의 세계관이다.



초월적 열반관(涅槃觀)을 부정하고, 저 너머의 구원이 아닌 지금 여기 서 있는 자리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대승불교의 정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무아(無我)가 단순한 철학적 개념에 머물지 않고 자비라는 실천 윤리가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하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세계관이 있어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승의 정신이란 바로 불이적 세계관의 실천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또한 불교인들이 자신의 성찰과 세상을 바라보는 입각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거기에는 불이의 철학, 불이의 세계관이 바탕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크고 작은 불교 단체나 모임의 이름에도 “불이(不二)”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둘이 아니며” “다르지 않다”는 불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한국의 불교계에 보편적 일상화가 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 한국 불교의 난맥상의 한 원인은 바로 이 불이라는 개념의 오용, 남용에 있다.

불이(不二)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줄임말이다. 따라서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할 때에는 “같지 않다”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며 ‘무명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말에는 당연히 그 중생과 부처가 다르며, 무명과 깨달음이 엄격히 구별되어야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와 구별되는 나의 ‘중생성’(不一)이 철저히 인식될 때 중생이 곧 부처라는 불이의 존재론적 세계관이 가능한 것이다.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해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지금 있는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한국의 많은 불자들이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생과 부처가 다르며, 무명과 깨달음이 다르며, 성(聖)과 속(俗)이 다르다는 ‘불일(不一)’의 정신이다.

‘번뇌 즉 보리’라는 것 또한 깨달음을 어떤 초월적인데서 찾지 말고, 구원을 밖에서 찾지 말라는 것인데도 세간적, 생물학적 욕망의 번뇌를 그대로 발산하면서 불이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 믿는 것은 착각을 넘어 사기요 자기기만이다. 불이는 깨달음의 경지요, 부처의 경지이다. 이 경지를 중생의 경지로 착각하는 것이요, 그 착각의 근저에는 정신적 나태함과 방종을 수행의 경지로 호도하는 자기기만이 자리 잡고 있다.

흔히 현대 한국 불교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출가자들의 비윤리적 파계 행위도 이러한 착각 혹은 의식적 호도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불교 전통에서는 7세기 원효와 근대 한국 불교의 경허 등이 보여주는 파계 행위를 불교적 깨달음과 세간적 윤리 간의 일정한 긴장 관계를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기보다 파계가 오히려 깨달음의 경지를 도리어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한마디로 단정 짓기 어려운 불교적 깨달음의 본질적 문제, 이를테면 마음의 자유는 행위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등등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중요한 것은 원효나 경허의 경우를 자신의 행위의 방종이나 정신적 나태함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선의 정신에서 모방은 곧 정신적 죽음이 아니던가? 계율을 방편이고, 비유하여 뗏목이라고 하지만 뗏목을 버리는 것은 강을 건넌 다음이다. 뗏목을 버려야 한다고 강을 건너기도 전에 뗏목을 버린다면 허우적거리다 익사하는 일밖에 더 있겠는가? 또한 진정한 무상계(無相戒)란 형식적 율법주의의 폐기이지 마음의 청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불일(不一)은 다(多)의 세계로서 구별의 세계요, 언어와 이성의 세계이며 현실의 세계이다. 한편 불이(不二)의 세계는 일(一)의 세계로서 차별과 언어 이전의 세계요, 이성 너머의 세계이다. 따라서 불일불이(不一不二)라고 하는 것은 언어와 언어 이전, 이성과 이성 너머를 다 긍정하며 포괄하고자 하는 불교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 불교가 종교이면서 철학이요, 철학이면서 종교일 수 있는 그 근거가 바로 불일(不一)과 불이(不二)의 세계를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가 그 다른 어떤 종교보다 현대 사회에 더 적절한 가르침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언어와 이성의 세계인 불일(不一)을 전제한 불이(不二)의 세계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불일(不一)이 전제되지 않는 불이(不二)의 세계가 일종의 폭력일 수 있고 정신적 전체주의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성(理性)과 언어의 사용을 부정하고, 개별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불이(不二)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라고 하는 것은 서양 중세의 역사 속에서 흔히 보아온 바다. 불교의 경우 불이(不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수행의 엄격성과 필요성이 없어지게 될 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 대한 이성적 판단의 중요함이 없어지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현대 한국 불교에서 본다.

선가(禪家)의 어록(語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불이(不二)의 세계이지만, 그 깨달음의 세계 이전의 치열한 불일(不一)의 세계가 전제되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선지식들은 중생과 부처가 본래 하나라는 확신이 철저했던 만큼 부처가 못 되는 자신의 현실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 철저한 현실 인식의 기반 위에 철저한 자기 부정과 엄격한 수행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깨달음은 “다반사(茶飯事)”요, “아침에 세수하다 코 만지기”라는 불이적 표현의 레토릭에 속아 부처와 우리가 다르다는 불일(不一)의 현실을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이의 오용과 남용의 폐해는 비단 수행의 나태함의 문제만이 아니다. 진짜와 가짜, 이를테면 불교적인 것과 비불교적인 것, 혹은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부처님과 무당집의 귀신이 구별이 되지 않고, 만행(萬行)이 만행(漫行)과 구별되지 않고, 멍청함(昏沈)을 무심(無心)의 경지로 착각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 불교의 한 모습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한국 불교의 난맥상은 비단 이러한 몇몇 ‘특별한 경우’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입시철이 되면 모든 절에서 합격 기도를 하고 수험 당일에는 대규모 기도회를 열어 시루떡을 갖다 놓고 내 아들 내 딸을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를 한다. 수험생 부모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방편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진정 한국 불교가 중생에게 방편을 베푼다면 우리의 아들딸들이 더 이상 이런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가 입시 경쟁에서 이기는 일만이 아님을 깨우쳐 주는 일일 것이다.

또한 불교가 여타 종교와 다르고 부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것은 부처님은 하나님처럼 “전지전능” 하지 않고 세속의 일에 “감 놓고 배 놓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속과 인간의 일이 움직이는 이치가 어떤 절대자의 권능과 도움에 달려 있지 않고 우리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불교의 출발점이 아닌가?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선가(禪家)의 레토릭은 자신 외에 어떠한 절대적, 초월적 권위도 부정하는 철저한 “인간주의”의 선언이 아니었던가? 현대 한국의 불교인들은 절대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절대자의 처분과 권능을 기다리는 다른 종교인들을 흔히 비판하지만, 그러면서 닮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류를 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외재적 신을 내면의 마음으로 바꾸어 놓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불교였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에게 달려 있지 어떤 다른 ‘힘’의 작용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준 것이다.

고전적 힌두이즘이라 할 브라흐마니즘의 제식주의와 다신교적 인격신의 전통을 부정하고, 행위의 도덕적 인과율과 연기의 법칙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것이 바로 불교였으며, 또한 서양 근대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성의 발견이란 것도 바로 불교의 인간주의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선언한 사르트르나 모두 절대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불교의 인간주의에서 영향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불교의 발견이 곧 그들에게는 헤브라이즘적 신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신을 표방하지 않는 불교의 인간주의에서 서양인들은 곧 인간 이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의 기독교 신학이 불교에서 많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받고 있다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서양인들의 불교관이 일정하게 제한된 관점인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을 서양 전통의 이성과 동일시함으로써 마음을 인간 이성 내의 영역으로 국한시켜 버린 느낌이 있다. 하지만 불교 전통에서의 마음이란 인간 이성을 포함하되 이성 너머의 것 또한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근대 서양에서의 불교 이해가 일정한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 근대정신을 이루는 한 축에는 불교의 가르침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동양이 서양의 근대정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밑바닥에 흐르는 불교로부터의 가르침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불교가 20세기 초의 근대화를 뒷받침하는 동력이 될 수 없었던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역사적 상황이 있다. 하지만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근대화에 성공한 지금에도 한국 불교가 여전히 전통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데에는 우리 불교인들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외에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현대 한국 불교의 난맥상의 한 이유가 바로 불일(不一)이 전제되지 않은 불이(不二)라는 개념의 오용과 남용에 있다고 본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지 않고, 불교적인 것과 비불교적인 것을 구별치 않고, 나아가 아무거나 방편이라 한다든지 엄격한 수행의 중요성을 우습게 여기는 그 태도의 이면에는 불이(不二)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색즉시공”의 진정한 의미는 다음에 잇따르는 “공즉시색”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왜냐하면 현실의 삶이 무의미한 것으로 무화(無化)되지 않는 것은, 현실적 삶이 공(空)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색즉시공) 공(空) 또한 구체적 삶을 통해서만 구현된다는 것(공즉시색)이 바로 지혜의 완성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불이(不二)의 진정한 의미는 불일(不一)이 전제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불이(不二)의 진정한 의미는 불일(不一)이라는 현실태에 대한 철저한 반성적 자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진지한 불자라면 누구나 “불교적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계율을 지키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만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문제 삼고자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불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나날이 경험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불교적 해답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다. 불교 교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부닥치는 문제들에 어떻게 하는 것이 “불교적”인 해결인가를 잘 모르겠다는 데서 오는 어려움을 말한다.

“모르겠다”라는 정직함이 해결의 시작이다. 불일(不一)이라는 현실에 대한 치열한 자각이 없는 불이(不二)는 공화(空華)와 같은 환영(幻影)일 뿐이기 때문이다. ■

2003년 가을

『涅槃宗要』 <三事門>의 불일불이(不一不異) 화쟁론: 체상․총별․법신 유․무색론(法身有無色論)에 대한 원효의 논의를 중심으로

『涅槃宗要』 <三事門>의 불일불이(不一不異) 화쟁론: 체상․총별․법신 유․무색론(法身有無色論)에 대한 원효의 논의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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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course of Hwajaeng of ‘Neither identity nor difference’ in Doctrinal Essentials of Mahāparnirvāṇa-sūtra: Wonhyo’s discussion on Noumena and Phenomena, Totality and Distinctness, and the Question of the Existence of Form in Dharmakāya in Focus

동아시아불교문화

약어 : 동아시아불교문화

2018, vol., no.36, 통권 36호 pp. 163-192 (30 pages)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연구분야 : 인문학 > 불교학 > 지역불교및불교사연구

김태수 /Kim taesoo 1
1서울대학교

초록

원효(元曉, 617~686)는 『涅槃宗要』 「열반문」 <三事門>에서 제시된 체상(體相)·총별(總別)에 대한 논의와 ‘법신 색의 유무(有無)’ 문제에서 관점에 따른 비일비이(非一非異)적 화쟁방식을 보인다. 이는 『涅槃宗要』 서두에서 제기한 『大般涅槃經』 종지인 ‘여래비장(如來祕藏)의 무이실성(無二實性)’ 법문으로부터 분화된 논의를 체상․총별․유무 등의 두 가지 문[二門]으로 교차시킨 후 다시 일심문(一心門)의 측면에서 여래비장 법문으로 회통시키는 구도이다.
법신·반야·해탈이라는 삼사의 관계 또한 여래가 비장한 무이실성이나 법신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본 관점적 불일불이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체상(體相)·총별(總別) 등의 측면에서 관점에 따른 법신·반야·해탈의 삼사(三事) 또는 삼법(三法), 삼덕(三德) 간의 상의 상관적 관계로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전개된 논의 또한 불일불이(不一不異)적 회통구조를 드러낸다.
‘법신은 색이 있는가?’에 관한 논의에서도 ‘법신은 무색이지만 법신[體]의 무한한 속성을 드러내는 상의 측면에서는 유색으로 포섭된다’는 논리로 모순을 풀어나가는 불일불이론을 나타낸다. 이로써 ‘유색․무색에 관한 서로 다른 주장들은 비일비이의 여래비장 법문을 근거로 모두 도리가 있는 것’으로 화쟁된다.
논지전개 방식은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각 주장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관점적 화쟁 양태를 보인다. 상대를 설복시키려는 논법과 다르기에 논증식의 구조를 취하기보다는 5지나 3지 형식을 변형한 주장·이유·경증이나 주장·예증·적용(法喩合) 등이 개합적으로 활용된다. 한편, 저술의도의 차이로 인해 이유(hetu) 또한 부정인(anaikāntika-hetu)으로 되기 쉬운 포괄적 이유를 사용하여 차별적 입장으로부터 공통적 근거를 마련하는 특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三事門>의 불일불이(不一不異) 화쟁론은 엄밀성을 요구하는 논증식과 달리. 교차배어(交差配語)를 활용한 연역적 개합논법을 통해 상이한 견해를 상호연계적으로 회통하는 긍정적 의미순환론으로 볼 수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 |

불일불이(不一不二) |

불일불이(不一不二)
2004-06-25     김형훈
불가(佛家)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불이(不二)라는 게 있다.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근원은 하나라는 의미다. 꽤 유명한 절엔 서로 이름은 다르게 부르지만 불이문(不二門)이 존재한다. 금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으로, 이 곳을 통과하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세워뒀다.

그런데 불이는 원래 불일불이(不一不二)에서 나왔다. ‘다르지 않다(不二)’를 말하려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같지 않음(不一)’을 알아야 한다.

원효는 불일불이를 「금강삼매경론」에서 쉽게 설명한다. “열매와 씨가 하나가 아닌데, 이는 그 모양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르지도 않은 것은 씨를 떠나서는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고 했다. 씨와 열매는 별개이므로 다르지만(不一), 열매는 자신의 유전자에 씨를 남기기 때문에 둘도 아니다(不二)는 표현이다.

지역문화는 어떤가. 불일불이를 불가에서가 아닌 현실세계에 적용한다면 지역문화를 바라보는 해답을 얻게 된다. 각 지역의 문화를 인정할 때만이 한국의 문화를 얘기할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흔히 건축을 ‘인간을 담는 그릇’이라 한다. 인간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들을 한다. 때문에 건축은 민족과 나라마다 틀리고, 제주 건축의 상징인 초가 역시 뭍지역의 그것들과 전혀 다르다.

그런데 행정에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 듯 하다. 제주시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한라문화예술회관 현상설계의 예만 들어보자. 제주시는 응모자격 중 최근 5년이내에 문화시설 용도로 연면적 6000㎡이상의 실적이 있는 업체로 한정했다. 사실상 제주도내 건축인들은 참여할 수 없는 조건이다.

왜 그랬을까. 그건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제주건축문화를 바라보는 인식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 일이다. 지금까지 이런 조건으로 인해 도내 건축인들은 제 땅에 남들이 그린 건축물만 보고 살아왔다. 건축은 하나이지만(不二), 제주 건축은 다른 지방의 건축과 다를 수밖에(不一) 없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행정도 그걸 알아야 한다.

<김형훈·교육체육부장 대우>

간헐적 팬데믹 시대의 양상과 불교의 대안 이도흠 * 2020 불교와 사회

불교와 사회(The Journal of Buddhism and Society)

. Buddh. Thought Cult. 2020; 12(1):1-31


간헐적 팬데믹 시대의 양상과 불교의 대안
이도흠 *

Aspects of the Age of Intermittent Pandemics and the Buddhist Alternatives
Doheum Lee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

Received: May 29, 2020; Revised: Jun 22, 2020; Accepted: Jun 26, 2020

Published Online: Jun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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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한 팬데믹이 세계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간헐적 팬데믹 시대를 맞아 생태계, 세계체제, 국가체제, 사회와 개인, 종교계로 나누어 양상을 살피고, 불교의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하였다. 생태계의 경우, 1만 년 동안 4도 가량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근 1백년 만에 1도가 상승하면서 38%의 생물이 멸종위기에 놓이고, 대형 산불, 역대 급의 홍수, 폭설, 가뭄, 폭염, 한파, 태풍이 일상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전 세계가 탄소제로를 목표로 글로벌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하며,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생태론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세계체제는 지금 각자도생하며 경쟁을 하고 있는데, 화엄의 상즉상입(相卽相入)과 화쟁의 논리를 통하여 전 세계가 같은 가치를 가지고 공존공영하는 세계체제를 수립한다. 한 예로, 아라비아나 사하라 사막 혹은 우주 공간에 부자 국가들이 재정을 지원하여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짓고, 초연결시스템이나 마이크로웨이브 전송시스템을 활용하여 대륙별로 공급한다. 상위 10%가 절반 이상의 부를 점유하고, 한 기업 안에서 소득 차이가 300배에 달한다. 이제 자본주의 체제와 결별하고 대안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국가는 상호주관적 자비심의 구현체로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생태복지국가로 거듭 나며, 토지, 물, 지식, 데이터, 로봇은 공유부(common wealth)로 설정한다.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대중들은 서로 경쟁과 이기심, 탐욕을 조장하고 있다. 이제 개인은 타자를 위하여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고, 사회 또한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간헐적 팬데믹 시대를 맞아 절은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작은 절 지향, 초연결사회의 노드로서 절의 위상 정립 등 여섯 가지의 혁신을 해야 한다.

Abstract


The pandemic caused by Coronavirus 19 is driving change in the world. In the age of intermittent pandemics, I analyzed the aspects of these realities by dividing them into a ecosystem, world system, state, society and individual, and religious circles. And I looked for alternatives from the viewpoint of Buddhism.

As for the ecosystem, the average temperature of the earth has risen by 1 degree in the last 100 years. As a result, 38% of living things are on the verge of extinction, and large forest fires, floods, heatwaves, droughts, and typhoons have become commonplace. Accordingly, the paradigm should be shifted to an ecology of ‘neither-one-nor-two(不一不二)’, and the state should pursue a global new deal policy aimed at zero carbon within 10 years.

The world system is dominated by the isolationism of selfish survival.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Hwayen Buddhist mutual penetration of things without hindrance and Hwajaeng Buddhism, the world must establish a system in which the world co-exists with the same values. For example, in the Arabia and Sahara desert, or in outer space, rich countries provide financial support to build large-scale solar power plants, and supply them to each continent using a hyper- connected system or a microwave transmission system.

The top 10% occupy more than half of wealth, and the difference in income is 300 times within a company. Now, we must break away from the capitalist system and aim for an alternative society. The state is reborn as a free and just ecological welfare state, and land, water, knowledge, data, and robots are set as common wealth.

As inequality intensifies, the public promotes competition, selfishness, and greed with each other. Now, the individual must turn to a life of the wisdom of contentment with less gain(少欲知足), and society must restore the community.

In the age of intermittent pandemics, the temple must do six innovations, such as the orientation of a small temple with the unity of zen meditation and labor, and establishing the status of the temple as a node of a hyper-connected society.
Keywords: 간헐적 팬데믹; 코로나 바이러스 19; 생태론; 글로벌 그린 뉴딜; 기후위기; 소욕지족(少欲知足)
Keywords: Intermittent Pandemics; Coronavirus 19; Ecology; Climate Crisis; Global Green New Deal; The Wisdom Of Contentment With Less Gain(少欲之足)

Ⅰ. 머리말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한 팬데믹이 세계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2020년 6월 1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총 609만 2,816명의 감염자와 371,665명의 사망자를 낳은 채 멈추지 않고 퍼지고 있다(https://coronaboard.kr/). 전 세계에 공포가 드리우고, 세계화는 중지 상태이며, 각국의 경제는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집회와 의례는 거의 금지되고 많은 사람이 격리상태다. 이를 대체한 원격 회의, 예배와 법회, 강의, 진료가 활성화하고, 배달이 급증하고 있다. 수많은 공장이 멈추고, 상당수의 자동차가 운행을 중지하자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하늘이 맑아지고 야생동물들이 돌아왔다. 석유/석탄산업이 좌초산업으로 전락하고,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인류는 4∼5년 주기로 새로운 팬데믹을 맞을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는 인류세(Anthropocene)/자본세(Capitalocene)의1)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으며 생명과 환경의 위기, 기후위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겹쳐 있다. 이를 필자는 간헐적 팬데믹 시대(the age of intermittent pandemics)라 명명한다. 이 시대를 맞아 생태계(ecosystem), 세계체제(world system), 국가체제, 사회와 개인, 종교계로 나누어 양상을 살피고 불교의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한다.

Ⅱ. 코로나 이후 사회의 양상과 전망

1. 생태계

지구 생태계는 이미 임계점을 넘은 위기 상태다. “지구촌은 매년 36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고, 이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https://ourworldindata.org/).” “1만 년 동안 4도 가량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근 1백년 만에 1도가 상승하였다(성규환, 2020. 1. 30.).”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대형 산불, 역대 급의 홍수, 폭설, 가뭄, 폭염, 한파, 태풍, 빙하의 소멸, 미세먼지 등 기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2019∼2020년 사이에 일어난 호주산불로 1,860만 헥타르가 불타고 34명이 죽고 10억 마리의 동물이 죽었으며, 몇몇 종은 멸종위기에 처했다(Wikipedia, ‘2019-20 Australian bushfire season’).”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온도가 30도가 넘게 오르고 산불이 끊이지 않는다. “영구 동토층은 약 1500 페타그램의 탄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1조 5,000억 톤의 탄소와 맞먹는다.··· 갑작스러운 영구 동토층의 해빙은 탄소를 비롯해서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 효과가 훨씬 강력한 메탄가스를 방출한다(심재율, 2020. 2. 7.).” 만약 현재의 상황이 더 악화하여 임계연쇄반응(criticality chain reaction)이 일어난다면, 지구촌은 회복이 불가능한 파국을 맞을 수 있다.

“2018년에 3억 5,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생산되었고(https://www.statista.com/)”, “2010년에만 480만 톤에서 1,27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Jenna R. Jambeck, 2015: 768).” 플라스틱 조각이나 비닐을 슴새를 비롯한 새와 거북이, 고래나 상어 등이 먹고 제대로 날거나 헤엄치지 못한 채 굶주려 죽어간다. 플라스틱은 햇빛을 받아 나노 상태로 분해되는데, 이를 플랑크톤이 1차적으로 먹고, 먹이사슬을 통해 물고기로 전해지고 결국 큰 물고기나 인간의 몸에 축적된다.

강물의 오염도 심각하다.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모든 강의 약 1/2에서 2/3 정도가 낮은 수준이지만 병균에 오염되었으며, 10분의 9 정도의 강이 낮게나마 염분에도 오염되었다(UNEP, 2016: XXXI).” 강의 오염은 생명의 죽음을 부르고 결국 인간의 질병과 죽음도 야기한다. “2013년에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명 이상이 주혈흡충병(schistosomiasis)의 치료를 받았으며, 무려 15억 명이 토양 전달 장내 기생충에 감염됐다. 이 모든 질병들은 대부분 배설물과 관련이 있으며, 이 또한 대다수는 인간이 물에 쓰레기를 버렸기 때문이다(ibid: 17).”

생태계 변화로 지구상의 생명들은 6차 대멸종으로 가고 있다. 지금 “1초 동안 0.6헥타르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하루에만 100여 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앨 고어, 1994: 128).” “국제자연보존연맹(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은 전 세계 과학자 1,700명이 참가하여 조사한 44,838종의 대상 동식물 가운데 38%인 16,928종이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발표하였다(Jean-Christophe Vié, 2008: 16).”

2. 세계 체제

코로나는 심각한 모순 상태에 있던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 체제에 결정타를 날렸다. 코로나 이전부터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율과 생산성의 저하, 소비의 둔화, 부채의 증가로 장기침체 상태에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불을 댕겼다. 바이러스의 고속도로임이 확인되면서 세계화는 일시 중단 상태다. 대량실업이 진행되고 부채가 대폭 증대하고 대다수 국가가 역성장을 거듭하면서 공황으로 치닫고 있다.

“자본은 총이윤을 늘리기 위하여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을 상승시킨다. 이렇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할수록 필연적으로 일반이윤율의 점진적 하락을 가져오며, 이런 경향은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끊임없는 발전에 대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한 고유한 표현일 뿐이다(카를 마르크스, 2014: 284-285).”2) 실제로, “1869년에 46%였던 이윤율이 계속 떨어져 지금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10% 이하이고 계속 하향세다(Esteban Ezequiel Maito, 2014: 9).” 단순화시키면 1869년에 1만원 투자하여 4,600원을 벌었다면 지금은 1,000원 벌기가 어려우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자로 내놓아야 한다. 몇 년 더 지켜보아야 하지만, 지금의 장기침체는 이윤율과 생산성의 저하, 부채 증가, 소비둔화가 어우러져 비롯된 것으로 일시적이거나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자본이 기술개발, 새로운 시장의 창출,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의 유연성 강화, 금융사기를 통한 합법적 수탈 증대, 공간의 재조정 등의 상쇄요인을 총동원하였음에도 일시적 반등은 있었지만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에 가장 큰 변수는 부채다. 국제금융협회(IIF)가 2020년 4월 6일에 발행한 『세계 부채 모니터: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세계 경제의 퓨즈를 조명하다(Global Debt Monitor: COVID-19 Lights a Fuse)』에 따르면, “전 세계 부채 총액이 255조 달러(약 28경 9,425조 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전 세계 GDP의 322%에 달한다(IIF, 2020. 4. 6.: 1).” “세계의 정부 부채는 78조 146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세계총생산(GWP) 91조 9800억 달러의 84.96%에 달한다(http://worldpopulationreview.com).” 이 부채는 줄기는 커녕 시간당 500만 달러 이상 늘고 있어 부채가 GDP나 GW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다. 문제는 금융위기 이후에는 개도국이 아니라 G7과 같은 선진국의 부채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에 따른 공적 자금 투자와 복지확대로 정부 부채가 대폭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윤율이 저하하면서 자본은 이윤을 높이기 위하여 신자유주의 체제의 구조조정, 노동의 유연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에 더욱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하여 실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인공지능이 남긴 부스러기 일을 하는 고스트 워커(ghost worker)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를 맞자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각국이 외부적으로는 각자도생을 추구하고 경제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국제적 협력체계는 실종되었다. 초국적 금융자본과 의료장비와 물품의 국제적 협업과 공유는 붕괴되고, 각국이 자국 생산과 소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진국을 자처하던 유럽과 미국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인종차별이 만연하고 있다. 공론장이 붕괴되고 가짜뉴스가 진실을 대체하고 페스트 시대나 통할 주술적 담론이 난무한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지 않고 독선과 독단을 행하는 미국과 브라질, 러시아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견제는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3. 국가 체제

코로나 이전이든 이후든 국가의 여러 양상을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극단화한 불평등과 GDP를 넘어서거나 육박하는 정부 부채다. 지금 불평등은 점점 극대화하고 구조화하고 있다. 2018년 현재 한국의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8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09년의 44.38%에서부터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박근혜 정권 말기인 2016년의 47.76%,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에 48.79%, 2018년에 48.86%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한국노동연구원, 2020, 2: 88). “상위 10%가 부동산 양도차익 63%, 주식 양도차익 90%, 배당소득 94%, 이자소득 91%를 독식하였다(김유리, 2019. 10. 8.).” 이는 정부가 공개하거나 계량화할 수 있는 수치로 전체 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 부동산, 현금, 소유물 등 총자산을 포함하면 불평등은 더욱 극심하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불평등이 가장 큰 모순으로 부상하였다. “슈퍼 갑부 8인의 재산이 세계 인구 절반인 36억 명과 비슷하다(이윤정, 2017. 1. 16.).”, “상위 1% 부자는 40년 동안 전 세계 하위 50%가 벌어들이는 소득의 2배 이상을 벌었다(World Inequality Lab., 2017).”, “인류의 절반은 하루에 5.5달러도 벌지 못한다(World Bank, 2020).”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의 2020년 6월 현재 통계를 보면, 세계 주요 국가의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43.3%, 일본 41.6%, 중국 41.4%, 미국 46.8%, 러시아 45.5%, 영국 35.5%, 프랑스 33.3%, 독일 36.8%, 스페인 34.9%에 달한다(World Inequality Database).” 2018년 기준 CEO와 일반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의 차이는 미국 265배, 인도 229배, 영국 201배, 독일 136배, 중국 127배에 달한다(www.statista.com). 지니계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0.620에 이르며, 멕시코 0.458, 미국 0.390, 영국 0.357, 한국 0.355, 일본 0.339, 독일과 프랑스 0.289, 스웨덴 0.282, 덴마크 0.261에 이른다(https://data.oecd.org).

여기에 코로나가 덮치자 수치만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나라들이 경기침체와 마이너스 성장, 대량실업을 겪고 있으며, 불평등은 더욱 극대화하였다. IMF는 2020년에 미국 –8.0%, 독일 –7.8%, 프랑스 –12.5%, 이태리 –12.8%, 영국 –10.2%, 러시아 –6.6%, 일본 –5.8%, 중국 1.0% 등 전 세계의 경제가 평균 4.9%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IMF, 2020. 6.). 이는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가장 악화된 수치다. 역성장으로 대량해고가 발생하면서, 불평등은 더욱 극대화하였으며, 남성보다 여성이, 백인보다 유색인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확진자 수가 30만 명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총 2,28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2020년) 3월 넷째 주(22∼28일)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665만 건, 그 1주일 전 328만 3,000건으로 불과 2주만에 약 1,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배정원, 2020. 4. 5.).”

이런 상황을 맞아 각 나라는 바깥으로는 고립주의를 강화하면서 내적으로는 검역과 방역에 주력하면서 국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대신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대다수 국가가 빅브라더와 빅마더(the big mother)를 혼합한 전체주의로 다가가고 있다. 국가는 방역을 빌미로 빅데이터와 스마트폰, 여러 도청이나 감시 프로그램을 연결하고 활용하여 국민에 대한 감시와 사찰,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의 무의식과 욕망을 엿보고 이를 SNS와 미디어를 통하여 조작하여 더욱 부드럽게 관리하고 조정하고 있다.

반면에, 시민사회에는 공포의 유령이 드리우고 있다. 이 와중에 생명권력은 주권권력과 동맹을 맺으며 막대한 권력과 자본을 획득하고 있고, 기존의 주권권력과 훈육권력의 동맹에 생명권력이 가세한 거시권력은 공포를 기반으로 더욱 강력하게 시민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훈육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얻고 있다. 국가는 한편에서는 자본과 연합하여 원격의료, 원격강의, 생명관련 사업의 시장을 확대하고, 한편에서는 탈출구를 모색하면서 기본소득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디지털 혁명, 그린뉴딜,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를 서두르고 있다.

국가의 감시와 사찰 강화와 시민들의 공포가 결합하면서 민주주의의 토대인 공론장은 심각한 상황으로 붕괴되었다. 주술적 담론과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반향실효과(echo chamber effect)가 증대하였다.

4. 사회와 개인

신자유주의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개인은 신자유주의적 탐욕을 내면화하고, 사회는 점점 더 이기심과 경쟁을 증대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으로 살기 어렵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요인은 불평등의 극대화다. 불평등은 비단 빈부격차로 인한 부자와 빈자의 갈등과 대립, 투쟁으로 그치지 않는다. 불평등은 개인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해치고 사회를 오염시킨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람들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 대신 경쟁과 힘에 의해 해결하는 전략을 선호하게 된다(리처드 윌킨슨, 2008: 321).”, “불평등이 심해지면,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사회통합이 줄어들며 사회적 관계의 질은 내려가고, 범죄와 폭력은 증가하고, 스트레스가 증가하여 건강은 나빠지고 평균 기대수명이 떨어지며, 사람들 사이의 신뢰수준은 내려간다(같은 책: 315).”, “소득 불평등이 높을수록, 적대감, 인종적 편견이 심하고 여성의 지위도 낮다(같은 책: 68).”, “불평등사회는 수감자의 수가 더욱 많으며, 정신질환과 비만 수준 역시 훨씬 높고, (···) 당연한 결과로 평균소득을 조절한 후 더욱 평등해진 사회에서는 아동 복지가 좋아졌고 스트레스와 약물 사용이 줄어들었으며 유아사망률 또한 낮아졌다(Richard Wilkinson & Kate Pickett/클라우스 슈밥, 2016: 150).”

이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가장 급격한 변화가 나타난 곳은 노동 분야다. 온라인 서비스, 배달앱이 활성화하고 임시직과 프리랜서가 증가하며 ‘프레카리아트’(precariat: precarious+proletariat)가 더욱 늘어나며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에 더하여 재택근무와 비재택 근무, 숙련노동과 비숙련노동 사이의 격차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서민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관광산업 종사자들은 급격한 소득의 감소나 실업, 생존위기 등을 겪고 있다.

반면에 개인들은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재택근무, 온라인 회의와 수업, 종교의례와 모임이 일상화하였다. 오랜 동안 격리되자 시민들은 두려움을 일상화하고 스트레스를 증대하지만, 코로나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지향하고 있다. 시민들은 집에서 묵상하면서 여기저기 여행하고 비싼 것들을 소비하며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것보다 ‘지금 여기의’ 삶에 행복해하면서 자신과 가족에 충실한 것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임을 깨닫고 있다. 이런 삶이 단지 석 달 만에 석유 값을 반토막내고, 전 세계의 대기를 청정하게 하고 사라졌던 동물들이 돌아오게 하였으며,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을 해야만 유지되는 자본주의 체제도 휘청거리게 하였다.

5. 종교계

전 세계적으로 신자 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한국 사회도 절반 이상이 무신론자로 돌아섰다. 과학의 발달, 시민사회의 성장, 종교가 행하던 빈민구제와 복지의 국가대행, 자본주의로 인한 물화(物化)의 심화, 신자유주의로 인한 탐욕의 증대라는 외적 요인에 더하여 종교인의 부패와 타락의 증대, 종교 권력층의 권위주의 풍토와 폭력 등의 내적 요인이 결합한 탓이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19 사태가 닥치자 종교계는 의례를 집전하지 못하고 신도들의 모임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의례는 신앙을 육화/체현하는 장이자 신도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구성원을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사제나 스님의 입장에서는 의례를 통하여 권위와 헤게모니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참여자로부터 헌금, 보시 등의 방법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종교계는 국가와 종교, 신앙과 보건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신천지를 비롯하여 정부의 방침을 어기고 예배를 강행한 교회에서는 확진자가 폭증하여 비난과 제재를 받았다. 반면에 불교는 종단 차원에서 대면 법회를 중지하여 확진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예배나 법회를 온라인으로 대체한 교회와 성당, 절은 대면 접촉을 통한 유대가 느슨해지고 헌금과 보시를 통한 수입이 현저히 감소하였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종교계는 오프라인 의례를 고집하는 자세에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시설과 시스템을 개선하고, 설교나 법회의 방식을 바꾸며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Ⅲ. 간헐적 팬데믹 시대에서 불교의 대안

1.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생태론

주지하듯, 코로나 바이러스 19사태 또한 인간이 숲을 파괴한 데서 근본적으로 비롯되었다. 우리의 손바닥에 수십 억 마리의 바이러스가 있지만 대다수는 우리 몸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거나 도움을 주며 공존하는 생명체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숲에서 박쥐나 원숭이의 몸에 수억 년 동안 공존을 해왔던 것이다. 인간이 생태계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빈틈’의 기능을 수행하는 완충 지대의 숲마저 파괴하자, 바이러스는 전혀 접촉하지 않았던 인간을 만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늘리려는 목적대로 진화/변형하는 생명체의 속성대로 인수(人獸) 공통의 바이러스로 변형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환경위기, 기후위기,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금세기 말까지 지구 온난화를 1.5℃로 제한해야 한다.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약 45%를 감축하고 2050년에는 순 영점에 도달해야 함을 의미한다(Climate Summit 2019, 2019: 3).” 이미 1.0℃가 상승하였으므로 앞으로 10년 안에 0.5℃ 이하로 제한하지 못하면 파국이 올 것이다.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은 전 세계가 탄소제로협정을 맺고 석탄과 석유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면 대체하고 글로벌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는 부족하다. 세계는 이 위기를 낳은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적절한 것이 화쟁의 불일불이(不一不二)론에 바탕을 둔 생태론이다. 이는 환경위기, 생명위기, 기후위기를 낳은 근대의 패러다임인 인간중심주의와 기술결정론을 극복하는 생태론이다. 또, 불일불이의 생태론은 이런 차원에서 탄생한 서양의 생태론, 곧 표층 생태론(shallow ecology), 심층 생태론(deep ecology), 사회생태론(social ecology),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 또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간주하여 모든 생명과 인간을 연기(緣起)적인 관계로 파악하고 대안의 삶과 정책, 시스템을 모색한다.

씨가 공(空)하지만 자신을 소멸시켜서 열매를 만들고 열매 또한 그렇게 씨를 맺듯, 더 나아가 역동적인 생성성의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이 대대(待對)의 공존을 할 수 있는 길을 연다.3) 자연과 인간을 둘로 나누고 인간에게 우월권을 준 근대의 이분법이 구성한 폭력적 서열제도에서는 홍수를 막는 대안은 인간이 자연의 도전에 맞서서 둑을 쌓는 것이다. 이는 당장의 홍수를 막지만 물이 흐르면서 이온, 미생물, 식물이 물질대사를 통하여 자연정화하는 것을 방해하여 물을 오염시키고 생명을 죽게 한다. 하지만, 함양의 태수 최치원은 위천의 홍수를 막기 위하여 둑을 세우는 대신 실개천을 만들고 상림이란 숲을 조성하였다. 이처럼 물은 나무의 양분이 되고, 나무는 뿌리로 구멍을 내서 물을 품어서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홍수를 막으면서도 물이 맑게 하였다. 호주, 캐나다, 독일 등은 댐이나 둑을 허물고 이런 방식으로 홍수를 막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대안이 바로 불일불이의 생태론이다.4)

2. 무등(無等)의 세계체제

원효는 “지극히 큰 것과 지극히 작은 것은 똑같이 동일의 양이다.”5)라고 말한다. 한 나라는 전 세계와 인다라망의 구슬처럼 서로가 거울이고 그림자가 되어 서로 비추는 것이다. 부분이 전체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포괄한 한 부분이듯 한 나라는 전 세계를 포괄한 한 나라다.

이제 중심이 주변을 착취하고 양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체제(world system)를 서로 평등한 가운데 공존공영하는 세계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럴 때 화엄의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원리가 도움이 될 것이다. 제3세계는 G2의 양강 체제가 벌어진 틈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중심의 강대국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UN을 대체하는 평등한 국제기구를 구성하여 집단의 안보체제를 구축하고, IMF를 대체하는 금융기구, 제3세계 공동의 은행을 설립하여, 제3세계의 호혜적인 경제, 교육, 문화, 환경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AP, UPI, REUTER, AFP 등 4대 통신사가 장악하던 뉴스와 정보의 왜곡된 흐름을 견제하기 위하여, 제3세계 60여개 나라의 통신사가 모여 NANAP를 구성했던 것처럼, 중심국만이 아니라 제3세계의 관점의 뉴스와 정보, 데이터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흐르도록 공동의 통신사/데이터센터를 결성한다. 제3세계가 함께 구성하고 예산을 분담하여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대항할 만한 플랫폼을 만든다.

3. 국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생태복지국가

원래 공화주의 혹은 공화국의 정치형태인 부족국가를 뜻하는 승가(僧伽)는 모든 안건을 대중의 동의를 통하여 처리하는 민주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승가의 찬성과 반대를 묻는 대중공사를 갈마(karma)라 한다. “이 갈마에는 단백갈마, 백이갈마, 백사갈마의 3종류가 있다. 단백갈마는 행사를 알리는 것이며, 백이갈마는 1회의 안건올림과 1회의 논의를 통하여 구성원 전원의 승인에 의하여 안건을 의결한다. 백사갈마는 1회의 안건올림과 3회의 논의를 통하여 의결한다(이병욱, 2016: 38-40).” 이제 갈마와 같은 불교적 민주제의 전통을 바탕으로 대의민주제에 숙의민주제와 참여민주제를 결합하여 대중의 공의를 모으고, 이를 정책으로 수렴하는 것을 활성화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정치와 국가관을 짧게 요약하자. “양적 발전보다 삶의 질, GDP보다 국민의 행복지수, 경쟁보다 협력, 개발보다 공존, 권력과 자본보다 마음의 평안을 더 중시하는 사회; 많은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자보다 자비심이 많은 이들이 더 존경받는 사회;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아픈 곳이 내 몸의 중심이듯, 가장 약한 자들이 고통받는 곳이 이 나라의 중심이라며 모든 국민과 지도자가 그 사람들에게 먼저 달려가는 사회;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자비심이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동력이 되는 사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작든 크든 자비심을 가지고 그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는 사회; 내가 바라는 것이 떠오르는 순간 타인을 생각하며 그에게 먼저 베푸는 사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걸으며 모든 것을 나누며 모두를 위한 밥을 추구하는 사회; 자신이 갑의 위상에 있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을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회;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이타심과 이기심이 대립할 때 결국에는 전자가 후자를 이기는 사회;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내 마음의 평안과 타인과 함께 구원/열반에 이르는 것이며, 이를 향하여 걷거나, 앉았거나, 누워 있을 때라도 졸지도 게으르지도 말며 깨어 있을 때는 언제나 자비심을 낼 뿐만 아니라, 알아차림을 서로 키우는 사회를 지향한다(Walpola Rahula, 1974: 88-89)6).”

이 시점에서 국가는 선택해야 한다. 자본과 유착관계를 계속 유지하여 인류멸망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를 끊고 도덕적 선과 정의, 자비심의 가장 강한 구현체, 자연과 생명,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지킴이로 거듭나서 지속가능한 발전과 글로벌 그린 뉴딜로 방향전환을 할 것인가. “승가의 상호부조는 일정한 공양물을 함께 나누는 발우공양 사례에서 보듯이 그 실천이 수행의 방편이기 보다는 수행 그 자체다(이혜숙, 2002: 69).” 술락 쉬바락사가 제안한 ‘사회적 고’와 박경준 교수가 제안한 공업(共業)을 수용하여 코로나 이후의 바람직한 국가상을 그릴 수 있다. 그것은 상호주관적 자비심의 구현체로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생태 복지국가다.

국가는 탄소제로를 목표로 전면적으로 시스템과 제도, 정책을 전환한다. 무엇보다 글로벌 그린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화석연료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 당연히 탄소 배출세는 두 배 이상으로 인상하고 화석연료 보조금은 없앤다. “각 나라는 향후 10년 이내에 청정 재생 가능 자원으로 내수 전기의 100%를 생산”(제러미 리프킨, 2020: 15)하는 것을 그린 뉴딜의 목표로 설정한다. 아직도 화석연료에 집착하는 정부와 기업은 “결과적으로 화석연료 산업 내에서 약 100조 달러에 달하는 자산이 좌초할 수(같은 책: 19)”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4. 사회와 개인: 연기적 불살생론과 소욕지족의 삶

현재 “목장은 지구 전체 표면의 30%, 경작지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축산업이 전체 이산화탄소의 18%를 배출하고, 물도 8%나 사용하고 있다(FAO, 2006: xxi-xxii).”, “영국 옥스퍼드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공동연구팀에 따르면, 가축을 키워 고기 1t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26∼33GJ(기가줄), 물 367∼521m3, 토지 190∼230m2 정도이다. 이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무려 1.9t에서 최대 2.24t에 달한다(김형자, 2020. 3. 9.).” 육식만 하지 않더라도 인류사회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육지의 1/3을 차지하는 목장을 다시 숲으로 되돌리고 1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곡물을 절약할 수 있다.

불교 밖의 대안은 국가가 글로벌 뉴딜 정책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응용하는 것이다. 미생물로 대기 중에서 고기를 대량생산하고 실제 고기와 같은 식감과 향을 갖게 하는 데 성공하여 가축을 대체한다면,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육지의 1/3을 차지하는 목장을 다시 숲으로 되돌리고 1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곡물을 절약할 수 있다. “미국의 푸드 스타트업 ‘키버디(Kiverdi)’는 ‘산화수소체(hydrogenotrophs)’라는 미생물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단백질을 생산하는 것을 이용하여 단백질 덩이인 ‘에어 프로테인(air protein)’을 생산하였다. 에어 프로테인은 9가지의 필수아미노산을 포함한 순도 99%의 단백질이다. 아미노산 함량이 육류에 비해 2배나 많다. 또 과채류에서는 섭취하기 힘든 비타민B를 비롯해 미네랄도 풍부하다(같은 글).” 문제는 식감과 향인데, 이는 현재 콩고기의 수준에 비추어보면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불교는 모든 생명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보고 불살생(不殺生)의 계를 실천한다. 경전의 비유대로,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이 있다면 무엇과도 안 바꾸려 하겠지만, 단 하나 자기 목숨과 바꿀 이는 없다.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타자의 생명도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보다도 가치가 있다. 한국 불교는 지극한 생명 존중의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승려들은 물속의 작은 생물도 죽이지 않고자 여수낭을 가지고 다니며 물을 걸러 마셨다. 한국의 신라 시대의 법흥왕(재위 514∼540), 성덕왕(재위 702∼737), 백제 시대의 법왕(재위 599∼600)은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교서를 내렸다. 미생물마저 죽이지 않으려는 이 정신은 지극히 숭고한 것으로 철저히 계승해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불살생은 가능하지 않으며, 때에 따라 카이바브(Kaibab) 고원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사슴을 살리려 천적을 죽인 것이 수만의 사슴을 굶주려 죽게 한 것처럼 더 큰 죽음을 낳을 수 있다(M.B.V. Roberts, 1986: 528).

이에 필자는 자비심을 유지하는 조건에서 ‘개체적 불살생’에서 ‘연기적 불살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캘리포니아 마켈럼니 강의 경우, “(연어 새끼만이 아니라) 연어 산란지에 인접한 강변의 자연 초목과 경작된 포도나무 숲은 18∼25%의 해양질소를 함유하고 있었다(Joseph E. Merz and Peter B. Moyle, 2006: 999).” 연어가 바다에서 많은 영양분을 먹고 몸을 키워 강을 올라와 알을 낳고 죽으면 그 몸을 먹고 강과 강변의 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자라고 새끼연어도 어미의 몸이 해체되어 만들어진 영양분과 다른 먹이들을 먹고 자라 바다로 간다. 이렇게 육지와 바다의 순환이 연어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연어는 개체적으로 죽는 것이지만 연기적으로는 불멸한다.

첫째, 이처럼 생태계에서는 모든 생명이 ‘나고 자라고 변하고 사라짐[生住異滅]’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우주의 차원에서는 양자요동으로 무(無)에서 물질이 형성되고 우주먼지가 모여 별을 이루다가 별이 폭발하고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순환이 무한하게 일어난다. 자연의 차원에서는 연어처럼 모든 생명이 서로 생주이멸을 영원히 반복한다. 이 영원한 반복과 순환 속에서 개체적인 죽음은 전체 생태계에서 다른 생명으로 전이한다.

둘째, 개체적 불살생론보다 연기적 불살생론이 연기론과 생태계에 더 합치한다.

셋째, 모든 생명체는 홀로는 적자생존을 했을지라도 생태계에서는 상호인과적 생성체(inter-dependent becoming)로서 더불어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서로 조건과 인과로 작용하며 공진화(co-evolution)를 해왔다. 존재(being)의 관점에서는 한 개체는 죽음을 맞지만 이것이 무수하게 연기된 다른 생명들에게는 삶을 위한 먹이이기도 하고, 순환의 동력이기도 하고, 서로 적응하고 진화하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넷째, 모든 동물은 다른 생명체를 먹이로 취하여 물질대사를 통하여 이를 에너지로 전환해야만 삶이 유지되기에, 물질대사는 생명의 조건이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생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일종의 화학공장으로 다른 생명이나 무기질, 태양을 먹이로 취하여 에너지를 취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생명성에는 다른 생명의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다섯째, 우리는 실제 호흡을 통해 내뿜는 이산화탄소만으로도 찰나의 순간에 수억 마리의 미생물을 죽이고 있다. 완벽한 불살생은 가능하지 않으며 생명의 순환을 막는다.

여섯째, 무엇보다도 모든 생명체는 자연, 다른 생명체와 깊은 연관과 조건, 인과 관계 속에 있기에 개별적 생명을 보존하려는 것이 더 많은 생명을 죽이는 ‘카이바브의 역설’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일곱째, 불살생이 고통을 느끼는 동물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라면 이의 정의나 범위는 좀 더 과학적이어야 한다. 신경식물학자들은 빛, 중력과 같은 자극만이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접촉이나 포식에 반응하는 식물의 사례를 들어 식물 또한 뇌는 없지만 외부 자극에 대해 느끼는 시스템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맞는다면 불살생과 금식의 계율은 식물로도 확대되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대로 다른 생명을 먹이로 취하여 에너지를 내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기에, 인간은 광물만 먹을거리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에 일군의 학자들은 식물은 고통을 느끼는 의식 체계가 없으며 외부 자극에 대해 유전자에 각인된 대로 반응할 뿐이며, 동물 중에서도 고통을 느끼고 의식을 가진 동물은 포유류, 어류와 조류 등의 척추동물, 곤충과 게 등의 절지동물, 문어, 오징어 등의 두족류라고 밝혔다(Lincoln Taiz, 2019. 8: 677-687).” 달팽이나 멍게, 조개 등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들 동물은 죽이거나 먹어도 되는가? 불살생이 고통과 자비심 때문이라면, 불살생이나 동물윤리나 동물해방, 금식의 범주는 이 동물로 국한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고통에 대한 자비심에 더하여 모든 생명들 사이의 인과와 조건을 고려하여 다른 생명들의 삶에 개입해야 한다(이도흠, 2010. 8. 13: 33)7).

개인도 변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상당수의 대중들이 돈, 명예, 권력, 환락을 추구하는 삶의 무상함을 깨달았다. 대신 연대의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하였다. 이제 여행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불타는 사랑을 나누고 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욕망을 서로 키우며 이를 달성하는 것을 행복한 것으로 착각하던 삶에서 타자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욕망을 절제하는 데서 외려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질적 충족보다 마음의 평안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삶으로, 이기심과 경쟁심을 서로 극대화한 삶에서 주변의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타자를 자유롭게 하여 진정으로 자유로움과 환희심을 느끼는 삶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럴 때만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미래가 있을 것이다.

5. 포스트 세속화와 간헐적 팬데믹 시대에서 절의 혁신

새로운 시대를 맞아 세속화로부터 상실한 것을 복원하고 치유하는 포스트세속화, 종교와 공론장 사이의 변증법적 종합, 국가와 종교, 시민사회 사이의 창조적 긴장관계가 필요하다. 종교는 공론장으로 들어와서 교리 가운데 과학에 어긋나는 것은 수정하고, 이웃 종교의 진리도 인정하고, 신비로 포장하여 비밀화한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종교인의 부패와 비리를 견제받을 수 있는 장치를 내외에 모두 수립하고, 종교인들의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고, 절/성당/교회를 민주화하여야 한다. 대신, 종교인들은 주어진 권위를 가지고 각 종교가 추구하는 정의에 어긋나는 국가를 비판하고, 인류의 공존공영과 평화를 추구하면서 가장 약한 생명과 사람에 대해 ‘편애적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종교의 초월성과 신비화, 절대화와 종교인의 부패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되, 종교인과 함께 교회/성당/절을 자본주의 체제나 세속의 탐욕과 경쟁심, 이기심을 씻어내고, 진리나 깨달음/거룩함/무한을 추구하는 장으로 지켜내야 한다. 국가는 종교를 이용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유혹에서 벗어나 종교와 국가를 철저히 분리하되, 종교인의 타락과 부패를 견제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절은 대다수가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한국의 절은 지역사회와 소통하지 않는 자폐 종교, 중세 봉건체제/농업사회/주술의 정원에 머물고 있는 퇴행 종교를 답습하고 있다. 지역의 신도가 온다고 하더라도 중세 사회의 잔재인 의례와 법문만을 되풀이하여 지역의 주민들이 ‘지금 여기에서’ 겪고 있는 고통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간헐적 팬데믹 시대를 맞아 절은 크게 여섯 가지의 혁신을 해야 한다. 첫째, 절을 특성화하되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작은 절을 지향한다. 코로나 이후에 모든 절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으며, 작은 절은 더욱 어려움에 빠졌다. 절을 수행 중심, 교육 중심, 포교 중심으로 역사와 능력, 위상 등에 맞게 특성화한다. 본사 사찰과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사찰을 제하고는 신도들의 보시에 의존하기보다 선농 일치의 작은 절을 지향하며 자립공동체로 일신한다.

둘째, 초연결사회의 노드로서 절의 위상을 정립하고, 온라인 원격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기술을 교육한다. 설혹 코로나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도래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디지털 세대는 문자 텍스트 자체를 거의 읽지 않으며 이미지로 느끼고 소통한다. 초연결사회의 네트워크에서 분리된 모든 것은 근대화 시대의 산간오지보다 더한 소외와 낙후를 겪을 것이다. 이제 스님들도 페이스북, 줌과 유튜브를 활용하여 법문을 하고 이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네트워크에 연동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절은 지역의 주민들이 언제든 와서 쉬고 명상과 수행을 하는 쉼터와 수행처가 되어야 한다. 스님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의 위상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무지를 깨고 지혜를 불어넣어 주고 분노와 한을 어루만져주고 탐욕을 절제하는 가르침과 수행을 이끌어야 한다.

넷째, 절은 가장 아픈 자를 가장 먼저 구제하는 자비행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스님들은 유마거사처럼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파해야 하며, 가장 아픈 이들에게 편애적 자비를 행하여야 한다.

다섯째, 절은 시민단체와 마을 공동체를 겸한 마당이 되어야 한다. 불교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고민, 갈등, 민원에 대해 해결하고, 마을 사람들이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함께 하는 마당이 된다. 아울러, 마을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마을의 문제를 토론하고 합의를 이루며, 환경과 기후위기, 생명의 위기, 불평등, 재현의 위기 등 인류가 맞은 위기에 대한 교육을 올바로 하고 이를 운동으로 이끌어낸다.

여섯째, 이렇게 할 때 4부대중의 연대체를 이루어야 한다. 지금 한국 불교는 외바퀴로 달리고 있다. 그나마 행자 수료자는 한 해 200여 명에 그쳐 외바퀴 운전자는 자연스레 사라질 위기에 있다. 이제 비구 독점 체제를 깨고 사부대중이 함께 한다. 절의 운영, 재정, 교육, 수행 등을 사부대중이 함께 민주적으로 수행하며, 법사에게 승려들의 권한과 직무를 상당 부분 위임한다.

Ⅳ. 맺음말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한 팬데믹이 세계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간헐적 팬데믹 시대를 맞아 생태계, 세계체제, 국가체제, 사회와 개인, 종교계로 나누어 양상을 살피고 불교의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하였다.

생태계의 경우, 1만 년 동안 4℃ 가량 오른 지구의 평균기온이 최근 1백년 만에 1℃가 상승하면서 38%의 생물이 멸종위기에 놓이고, 대형 산불, 역대 급의 홍수, 폭설, 가뭄, 폭염, 한파, 태풍이 일상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전 세계가 탄소제로를 목표로 글로벌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하며,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생태론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세계체제는 지금 각자도생하며 경쟁을 하고 있는데, 화엄의 상즉상입(相卽相入)과 화쟁의 논리를 통하여 전 세계가 같은 가치를 가지고 공존공영하는 세계체제를 수립한다. 한 예로, 아라비아나 사하라 사막 혹은 우주 공간에 부자 국가들이 재정을 지원하여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짓고, 초연결시스템이나 마이크로웨이브 전송시스템을 활용하여 대륙별로 공급한다.

상위 10%가 부의 절반 이상의 부를 점유하고 한 기업 안에서 소득 차이가 300배에 달한다. 이제 자본주의 체제와 결별하고, 대안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국가는 상호주관적 자비심의 구현체로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생태복지국가로 거듭나며, 토지, 물, 지식, 데이터, 로봇은 공유부(common wealth)로 설정한다.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대중들은 서로 경쟁과 이기심, 탐욕을 조장하고 있다. 이제 개인은 타자를 위하여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하고, 사회 또한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간헐적 팬데믹 시대를 맞아 절은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작은 절 지향, 초연결사회의 노드로서 절의 위상 정립 등 여섯 가지의 혁신을 해야 한다.

Jihye Jeong | Favourite Quotes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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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ourite Quotes
  •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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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e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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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사는 이 동네에서 한 때(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유명한 적이 있었다.

장난꾸러기 녀석들 키우기가 만만치 않았는데다
좀 더 잘 키워보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이 다니는 성당유치원에서 자녀교육 방향성과 마음도 맞는 친한 엄마들끼리 모였다. 우리는 PET부모교육 강사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공부를 하고 강의가 끝난 후에도 모임을 계속 이어가기로 하였다.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엄마가 주축이었는데 이 친구는 사랑도 많고 리더십 뿐 아니라 품이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랐다. 나야 그때나 지금이나 리더감은 아니지만 입이 무거운 참모감은 되는 편이라 리더가 좋아하고 조언을 자주 구하는 편이었다.

암튼 우리는 한 팀이 되어 다른 엄마들과 그림책 읽기 동아리도 오랫동안 함께하고 동화읽는 어른 모임에도 가입해서 어린이 책도 신나게 읽고 아이들과 함께 놀고 여행다니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친한 인생 동지.

동네 놀이터에 가면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이 나와 내 아이들에게 몰려들었다. 장난감없이도 언제든 재미있게 놀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 가족은 놀이터의 인기인이었다.

모래놀이는 물론 동아리에서 배운 온갖 전래놀이에
재활용을 이용하는 놀이까지. 비누거품놀이에 여름에는 페트병 물총놀이에 놀이터에서 울려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땀에 젖은 아이들의 생생한 기운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벤치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다른 엄마와는 달리 나는 아이들과 함께 뛰놀았는데 아이들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놀이는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는 것이라는 게 내 놀이 철학이라서 그러하다. 그리고 그 재미를 왜 놓쳐?

내가 사는 동네는 근방에서도 그 중 학구열이 뛰어난 열정 엄마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보니 영어학원 안 보내는 집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놀려고 집으로 데리고 오는 친구들은 바쁜 학원스케줄에 너무 아쉬워하며 사라지곤 했고 게임을 못하게 하면 "그럼 뭐하고 놀아요?" 라고 묻기 일쑤였다.
놀 줄 모르는 아이들....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아졌다.
정많고 유머스럽고 운동 좋아하고 창의적인 놀이꾼인 녀석들은 누구라도 놀고 싶어해서 전화기는 엄마를 찾는 통화보다 많아졌다.

"아줌마! OO있어요? 어디 갔어요? 언제 와요? 오면 꼭 전화하라고 하세요! / 아줌마! 지금 놀아도 돼요?"

집으로 놀러온 아이들은 장난감 놀이와 보드게임도 실컷 하고, 만화책이랑 그림책도 함께 읽고, 간식도 먹고, 축구공 들고 운동장으로 놀이터로 놀러가고. 암튼 우리집은 아이들의 사랑방같은 곳이었다. 한가지 규칙인 놀던 물건은 제자리에만 두면.

녀석들끼리 초딩때 친구들과 함께 롯데월드도 가고 선생님 결혼식도 간다고 하면 엄마들은 믿음이 간다고 함께 보낸다.

초딩부터 혼자 지하철타고 어디든지 가게 된 이유는 될 수 있으면 차량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고 게임처럼 아이를 앞세워 길을 찾게하고 이상하고 위험한(?)사람을 감별하게 한 수많은 노력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더라도 머리만 커다랗고 입만 살아있어
실제 삶에서는 힘을 못쓰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책을 읽다가도 축구하자고 친구가 부르면 '그럼 나가도 되고말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친구들이 여적 친구들인게 그렇게 부대끼면서 몸으로 마음으로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녀들의 경쟁대상도 비교대상도 아니니 엄마들도 나를 좋아했다. 그들의 불안과 열등감, 시기심은 나에게 털어놓아도 안전했다. 나중에는 오죽하면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과외샘 전번도 알려주고 공부도 시키라고 조언해주고.

왜 나라고 불안하지 않았을까? 주류가 아닌 길은 외롭고 두렵다. 그러나 결국 그때마다 제자리를 찾은 이유는 첫번째는 같이 가는 동지들 덕분이다. 두번째는 그게 내 불안때문이라는 것, 내 문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 문제는 내가 내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거지 남을 혹은 자식을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 세번째는 엄마덕분이다. 엄마가 주신 굿굿함과 인내심. 네번째는 의식적으로 나와 자식은 타인이라는 것을 허벅지 찔러가며...(본능적으로 내 것같은 느낌이..)

어려서부터 늘 주류가 아닌 경계인같은 느낌으로 살아온 것 같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것 같은...그게 왜 그런지도 뭔지는 알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암튼 반골기질)

결론적으로 방임(아이들 주장)인지 자율(내 주장)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즐겁게 잘 살고 있다. 희생이나 헌신따위에는 큰 관심없으니 좋은 엄마는 아니겠지만 행복한 엄마이기는 하다.

그들은 여전히 속을 썩인다. 얼마전 그토록 내가 싫어하는 타투를 하고 와서 내 눈총을 피하느라 방문을 조심조심 열고 닫고 
엄마 마음은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굽신거리지도 않고 성인의 선택이라며 당당한 녀석이 얄미워 죽는 줄.

최근 우영우의 돌고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아들의 타투에 너그러워지려고 한다. 하필 유치하게 돌고래가 뭐니 하니까 그냥 돌고래가 좋다나 뭐라나.

우영우 돌고래가 아들 살렸네.
임마! 우영우 안 봤으면 일년짜리 눈총이었을텐데. 우영우에게 감사한 줄이나 알앗!

* 역시 어린이나 어른이나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합니다.
역시 놀 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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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2) 원효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2)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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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은 여기: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pfbid0yf2unKfLSCwwrQjjBuEiu5rfHysJ1Uw8ze2nQDtMXc1bJamw38HySX65ZcAdMf5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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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기 까지는 김태창 책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의 머리글이 아닌 첫 부분인 <원효> 하는 인물과 사상에 대해 읽고, 그 후로 약 20 시간 이상 원효에 대해 여러가지 글을 읽었다. 그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인데, 내가 원효에 대해 읽은 것을 모두 포함하여 이 책의 제 1장에 나오는 <김태창의 원효론>이 <나에게는>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그 평가가 객관적인 것인가, 주관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다른 사람들에게 맏기지만, 김태창의 글이 나의 마음에 닦아온다. 다음 번에 쓸 <이도흠의 원효론>도 좋고, 비교가 되지만 나에게는 <김태창의 원효론>이 훨씬 좋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김태창은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려고 원효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이도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으로 나는 줄여서 설명을 한다.

- 원효에 대한 제 1장의 내부 차례 (사진 1)을 보면 원효에 대한 글이 일본의 국보 이야기 (제 1부) 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원효의 화쟁 사상에 대한 설명(제 5부)에 <일본의 화 사상>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나오는 8세기 일본의 쇼토쿠 태자 이야기가 비교로 나온다. 이 비교로서 김태창은 일본인 독자/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리려고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마음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전해온는 것이다. 한국인 독자들에게도 책을 <나처럼 읽는다면> 전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물론 아마도 많은 한국인에게는 그것이 전달되지 않을 것도 같다. 우선 이 책을 찾아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점도 있지만, 읽어도 느끼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 이 장에서는 원효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풍류도, 풍류도인이란 무엇인가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인물이 나오는 배경인 <신라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이르킨다. 한국의 전통을 이씨 조선의 문화로서 이해하려는 것을 넘어스려는 뜻이 였보인다. 앞으로 시가이 나면 신라문화에 대하여도 공부해 보려고 한다.

- 이 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보다도 <화쟁사상>에 대한 설명인데, 그 부분은 제 5부의 제 1 부분에 나오고, 결론에 또 다시 요약되어 나온다. 이 요약 부분을 사진 2, 3, 4, 5에 올린다. 이 결론에는 원효의 화쟁사상은 <이성중심주의적>이 아니고 논쟁의 상대와 마음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어있는데, 이렇게 만 짧게 이해한다면, 오해되기 쉬워서 한 마디 해 놓는데, 앞부분의 제 5장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충분히 <논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하는 이야기 만이 아니라, (1) 그 이야기가 나오는 <컨텍스트/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서 (2) 그 <인식론적 토대>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3) 소통의 도구인 <언어 자체에 대한 통찰>도 필요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 우선 지극히 논리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야야기의 연장을 다음 글인 이도흠의 화생론에서 계속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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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 불일(不一)불이(不二)라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나오는 ‘연민(憐憫)

Namgok Lee - 어제 쇼펜하우어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젊은 시절 너무 편향적이었던... | Facebook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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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쇼펜하우어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젊은 시절 너무 편향적이었던 것을 되돌아보게 된다. 특정한 철학에 경도되어 여러 철학들을 무지(無知)한 상태에서 경시하거나 무시하였다.
 노년에 들어서 공부하는 재미를 남겨두려고 그랬나보다 하면서 젊은 시절의 열정과 편협함을 받아들인다.
 노년에 들어서는 분석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뇌를 비롯한 체력이 딸린다.
 직관적으로 대찰(大察)하는 힘은 생기는 것 같다.

 쇼펜하우어도 대표적인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어제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서
‘인간이 인식하는 것은 표상일 뿐’이라는 
‘무지의 자각’과 불일(不一)불이(不二)라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나오는 ‘연민(憐憫)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철학의 목적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라는 젊은 시절의 편향에서 벗어나서 보면 
철학이나 종교가 더 넓고 깊게 다가오고 
그럴 때라야 
자신과 세계 변혁의 길을 제대로 찾아나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 젊어서 죽었다면 이런 세계를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서 아직 공부를 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배우고 체득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學而時習之不亦說乎

나에게 철학하고 종교를 갖는 목적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세 가지다.

아만(我慢)에서 겸허(謙虛)로, 
미움에서 연민(憐憫)으로, 
탐욕에서 숭고(崇高)로.

정말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다.
디지털 시대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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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연민(憐憫/憐愍)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공포와 연민[편집]

공포와 연민(恐怖와憐憫)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을 경험하는 요소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공포와 연민이 일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극의 등장인물을 동정하여 비극을 느낀다고 하였다.

거미줄[편집]

의상대사는 화엄사상을 정립한 것으로 존경받는데 이는 마치 거미줄의 한편에서 신음하는 괴로움이 다른 반대편 거미줄에서도 그 고통이 전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이 거미줄의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짜여 있어서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저혼자 일어난 일은 없으며 이 모두가 연관되어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과 결과로 얽히고 섥혀있는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악을 선택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연민을 갖고 어렵지만 선을 베푸는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해 선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맥락의 언급을 한 바있다.[1]

연민[편집]

남을 위한 선한 행동으로서의 연민에 대해서 주역에서 이를 언급한 바있다.

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주역 곤 문언전)[2]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의 여유가 있는 바인 것이다. 선행을 행하지 못하여 선이 쌓이지 않으면 반드시 넘치는 재앙이 있는 것이다.

이는 '받은 선행보다 준 선행이 많으면 남는 선행이 있고 받은 악행보다 준 악행이 많으면 남는 악행이 있다. 남는 것이 적으면 자신에게서 그치나 남는 바가 크면 세상에 미친다'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연민[편집]

프로테스탄트이자 청교도인 토머스 굿윈은 그리스도를 연민의 표상으로 제안한바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인류사적으로 유일한 십자가 사건에서 확인되는 바와같이 지극히 온전하고 연민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묘사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보다 더 상대방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공감능력을 보여주는 그리스도로 본 점에서 인성도 그 결정성이 얼마나 이타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는 연민의 감정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잘 언급하고 있다.[3][4]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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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ssion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ugging is a common display of compassion

Compassion is a social feeling that motivates people to go out of their way to relieve the physical, mental, or emotional pains of others and themselves. Compassion is sensitivity to the emotional aspects of the suffering of others. When based on notions such as fairness, justice, and interdependence, it may be considered partially rational in nature.

Compassion involves "feeling for another" and is a precursor to empathy, the "feeling as another" capacity (as opposed to sympathy, the "feeling towards another"). In common parlance, active compassion is the desire to alleviate another's suffering.[1]

Compassion involves allowing ourselves to be moved by suffering to help alleviate and prevent it. An act of compassion is one that is intended to be a helpful act. Other virtues that harmonize with compassion include patience, wisdom, kindness, perseverance, warmth, and resolve. It is often, though not inevitably, the key component in altruism.The difference between sympathy and compassion is that the former responds to others' suffering with sorrow and concern whereas the latter responds with warmth and care.[2] An article in Clinical Psychology Review suggests that "compassion consists of three facets: noticing, feeling, and responding".[3]

Etymology[edit]

The English noun compassion, meaning "to suffer together with", comes from Latin. Its prefix com- comes directly from com, an archaic version of the Latin preposition and affix cum (= with); the -passion segment is derived from passuspast participle of the deponent verb patior, patī, passus sum. Compassion is thus related in origin, form and meaning to the English noun patient (= one who suffers), from patienspresent participle of the same patior, and is akin to the Greek verb πάσχειν (paskhein, to suffer) and to its cognate noun πάθος (= pathos).[4] Ranked a great virtue in numerous philosophies, compassion is considered in almost all the major religious traditions as among the greatest of virtues.

Theories on conceptualizing compassion[edit]

Theoretical perspectives show contrasts in their approaches to compassion.

  • Compassion is simply a variation of love or sadness, not a distinct emotion.[5]
  • From the perspective of evolutionary psychology, compassion can be viewed as a distinct emotional state, which can be differentiated from distress, sadness, and love.[6]
  • Compassion is a synonym of empathic distress, which is characterized by the feeling of distress in connection with another person's suffering.[7] This perspective of compassion is based on the finding that people sometimes emulate and feel the emotions of people around them.[8]
  • According to Thupten Jinpa, compassion is a sense of concern that arises in us in the face of someone who is in need or someone who is in pain. It is accompanied by a kind of a wishing (i.e. desire) to see the relief or end of that situation and wanting (i.e. motivation) to do something about it.[9] Compassion is not pity, compassion is not attachment, compassion is not the same as empathetic feeling, compassion is not simply wishful thinking, compassion is not self-regard.[10]
  • Emma Seppala distinguishes compassion from empathy and altruism as follows: "... The definition of compassion is often confused with that of empathy. Empathy, as defined by researchers, is the visceral or emotional experience of another person's feelings. It is, in a sense, an automatic mirroring of another's emotion, like tearing up at a friend's sadness. Altruism is an action that benefits someone else. It may or may not be accompanied by empathy or compassion, for example in the case of making a donation for tax purposes. Although these terms are related to compassion, they are not identical. Compassion often does, of course, involve an empathic response and altruistic behavior. However, compassion is defined as the emotional response when perceiving suffering and involves an authentic desire to help."[11]

The more a person knows about the human condition and human experiences, the more vivid the route to identification with suffering becomes.[12][page needed] Identifying with another person is an essential process for human beings, something that is even illustrated by infants who begin to mirror the facial expressions and body movements of their mother as early as the first days of their lives.[13] Compassion is recognized through identifying with other people (i.e. perspective-taking), the knowledge of human behavior, the perception of suffering, transfer of feelings, knowledge of goal- and purpose-changes in sufferers, and leads to the absence of the suffering from the group[clarification needed].[12][page needed]

Personality psychology agrees that human suffering is always individual and unique. Suffering can result from psychological, social, and physical trauma[14] and it happens in acute forms as well as chronically.[14] Suffering has been defined as the perception of a person's impending destruction or loss of integrity, which continues until the threat is vanquished or the person's integrity can be restored.[12][page needed]

Compassion has three major requirements: The compassionate person must feel that the troubles that evoke their feelings are serious, believe that the sufferers' troubles are not self-inflicted, and have the ability to picture themself with the same problems in a non-blaming, non-shaming manner.[12][page needed]

Compassion is characteristic of democratic societies.[12][page needed] The compassion process is highly related to identifying with the other person because sympathizing with others is possible among people from other countries, cultures, locations, etc.[needs copy edit]

A possible source of this process of identifying with others comes from a universal category called "Spirit."[clarification needed] Toward the late 1970s, very different cultures and nations around the world took a turn to religious fundamentalism, which has occasionally been attributed[by whom?] to "Spirit".[15]

The role of compassion as a factor contributing to individual or societal behavior has been the topic of continuous debate.[16] In contrast to the process of identifying with other people, a complete absence of compassion may require ignoring or disapproving identification with other people or groups.[12][page needed] Earlier[compared to?] studies established the links between interpersonal violence and cruelty which leads to indifference.[17] Compassion may induce feelings of kindness and forgiveness, which could give people the ability to stop situations that have the potential to be distressing and occasionally lead to violence.[18] This concept has been illustrated throughout history: The HolocaustgenocideEuropean colonization of the Americas, etc.[citation needed] The seemingly essential step in these atrocities could be the definition of the victims as "not human" or "not us".[dubious ] The atrocities committed throughout human history are thus claimed[by whom?] to have only been relieved, minimized, or overcome in their damaging effects through the presence of compassion,[12][page needed][19] although recently, drawing on empirical research in evolutionary theorydevelopmental psychologysocial neuroscience, and psychopathy, it has been counterargued that compassion or empathy and morality are neither systematically opposed to one another, nor inevitably complementary, since[non sequitur] over the course of history, mankind has created social structures for upholding universal moral principles, such as Human Rights and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20]

On one hand, Thomas Nagel, for instance, critiques Joshua Greene by suggesting that he is too quick to conclude utilitarianism specifically from the general goal of constructing an impartial morality; for example, he says, Immanuel Kant and John Rawls offer other impartial approaches to ethical questions.[21][relevant?]

In his defense against the possible destructive nature of passions, Plato compared the human soul to a chariot: the intellect is the driver and the emotions are the horses, and life is a continual struggle to keep the emotions under control.[22][relevant?] In his defense of a solid universal morality, Immanuel Kant saw compassion as a weak and misguided sentiment. "Such benevolence is called soft-heartedness and should not occur at all among human beings", he said of it.[23]

Psychology[edit]

Compassion has become associated with and researched in the fields of positive psychology and social psychology.[24] Compassion is a process of connecting by identifying with another person. This identification with others through compassion can lead to increased motivation to do something in an effort to relieve the suffering of others.

Compassion is an evolved function from the harmony of a three grid internal system[jargon]: contentment-and-peace system, goals-and-drives system, and threat-and-safety system. Paul Gilbert defines these collectively as necessary regulated systems for compassion.[25][page needed][26]

Paul Ekman describes a "taxonomy of compassion" including: emotional recognition (knowing how another person feels), emotional resonance (feeling emotions another person feels), familial connection (care-giver-offspring), global compassion (extending compassion to everyone in the world), sentient compassion (extended compassion to other species), and heroic compassion (compassion that comes with a risk).[27]

Ekman also distinguishes proximal (i.e. in the moment) from distal compassion (i.e. predicting the future; affective forecasting): "...it has implications in terms of how we go about encouraging compassion. We are all familiar with proximal compassion: Someone falls down in the street, and we help him get up. That's proximal compassion: where we see someone in need, and we help them. But, when I used to tell my kids, 'Wear a helmet,' that's distal compassion: trying to prevent harm before it occurs. And that requires a different set of skills: It requires social forecasting, anticipating harm before it occurs, and trying to prevent it. Distal compassion is much more amenable to educational influences, I think, and it's our real hope."[28] Distal compassion also requires perspective-taking.[28]

Compassion is associated with psychological outcomes including increases in mindfulness and emotion regulation.[29]

Compassion fatigue[edit]

People with a higher capacity or responsibility to empathize with others may be at risk for "compassion fatigue", also called "secondary traumatic stress". Examples of people at risk for compassion fatigue are those who spend significant time responding to information related to suffering.[30] However, newer research by Singer and Ricard suggests that it is lack of suitable distress tolerance that gets people fatigued from compassion activities.[31] Individuals at risk for compassion fatigue usually display these four key attributes: diminished endurance and/or energy, declined empathic ability, helplessness and/or hopelessness, and emotional exhaustion.[32] Negative coping skills can also increase the risk of developing compassion fatigue.[33]

People can alleviate sorrow and distress by doing self-care activities on a regular basis. Improving consciousness[clarification needed] helps to guide people to recognize the impact and circumstances of past events. After people learn the experience from the situation in the past[clarification needed], they are able to find the causes of compassion fatigue in their daily life.[34] Practice of nonjudgmental compassion can prevent fatigue and burnout.[35] Some methods that can help people to heal compassion fatigue include physical activity, eating healthy food with every meal, good relations with others, enjoying interacting with others in the community, writing a journal frequently, and sleeping enough every day.[34] The practice of mindfulness and self-awareness also helps with compassion fatigue.[36]

Conditions that influence compassion[edit]

Psychologist Paul Gilbert provides factors that can reduce the likelihood of someone being willing to be compassionate to another. These include (less): likability, competence, deservedness, empathic-capacity; (more) self-focused competitiveness, anxiety-depression, overwhelmed; and inhibitors in social structures and systems.[37]

Compassion fade[edit]

Compassion fade is the tendency of people to experience a decrease in empathy as the number of people in need of aid increases. The term was coined by psychologist Paul Slovic.[38] It is a type of cognitive bias that people use to justify their decision to help or not to help, and to ignore certain information.[39] To turn compassion into compassionate behavior requires the singular person's response to the group in need, followed by motivation to help that can lead to action[clarification needed].[40]

In an examination of the motivated regulation of compassion in the context of large-scale crises, such as natural disasters and genocides, research established that people tend to feel more compassion for single identifiable victims than single anonymous victims or large masses of victims (the Identifiable victim effect).[41] People only show less compassion for many victims than for single victims of disasters when they expect to incur a financial cost upon helping. This collapse of compassion depends on having the motivation and ability to regulate emotions.[42] People are more apt to offer help to a certain number of needy people if that number is closer to the whole number of people in need.[43] People feel more compassionate towards members of another species the more recently our species and theirs had a common ancestor.[44]

In laboratory research, psychologists are exploring how concerns about becoming emotionally exhausted may motivate people to curb their compassion for—and dehumanize—members of stigmatized social groups, such as homeless individuals and drug addicts.[45][better source needed]

Neurobiology[edit]

Olga Klimecki (et al.), found differential (non-overlapping) fMRI brain activation areas in respect to compassion and empathy: compassion was associated with the mOFCpregenual ACC, and ventral striatum. Empathy, in contrast, was associated with the anterior insula and the anterior midcingulate cortex (aMCC).[35]

In one study conducted by Jill Rilling and Gregory Berns, neuroscientists at Emory University, subjects' brain activity was recorded while they helped someone in need. It was found that while the subjects were performing compassionate acts the caudate nucleus and anterior cingulate regions of the brain were activated, the same areas of the brain associated with pleasure and reward. One brain region, the subgenual anterior cingulate cortex/basal forebrain, contributes to learning altruistic behavior, especially in those with trait empathy.[46] The same study showed a connection between giving to charity and the promotion of social bonding and personal reputation.[47] True compassion, if it exists at all, is thus inherently motivated (at least to some degree) by self-interest.[dubious ]

In a 2009 small fMRI experiment, researchers at the Brain and Creativity Institute studied strong feelings of compassion for social[clarification needed] and physical pain in others. Both feelings involved an expected change in activity in the anterior insulaanterior cingulatehypothalamus, and midbrain, but they also found a previously undescribed pattern of cortical activity on the posterior medial surface of each brain hemisphere, a region involved in the default mode of brain function, and implicated in self-related processes[clarification needed]. Compassion for social pain in others was associated with strong activation in the interoceptive, inferior/posterior portion of this region, while compassion for physical pain in others involved heightened activity in the exteroceptive, superior/anterior portion. Compassion for social pain activated this superior/anterior section, to a lesser extent. Activity in the anterior insula related to compassion for social pain peaked later and endured longer than that associated with compassion for physical pain.[48] Compassionate emotions toward others affect the prefrontal cortex, inferior frontal cortex, and the midbrain.[48] Feelings and acts of compassion stimulate areas known to regulate homeostasis, such as the anterior insula, the anterior cingulate, the mesencephalon, the insular cortex and the hypothalamus, supporting the hypothesis that social emotions use some of the same basic devices involved in other, primary emotions.[49]

Compassion in practice[edit]

Medicine[edit]

Compassio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ttributes for physicians practicing medical services.[50][page needed] Compassion brings about the desire to do something to help the sufferer.[12][page needed] That desire to be helpful is not compassion, but it does suggest that compassion is similar to other emotions in that it motivates behaviors to reduce the tension brought on by the emotion.[12][page needed] Physicians generally identify their central duties as the responsibility to put the patient's interests first, including the duty not to harm, to deliver proper care, and to maintain confidentiality.[12][page needed] Compassion is seen in each of those duties because of its direct relation to the recognition and treatment of suffering.[12][page needed] Physicians who use compassion understand the effects of sickness and suffering on human behavior.[51][page needed] Compassion may be closely related to love and the emotions evoked in sickness and suffering. This is illustrated[how?] by the relationship between patients and physicians in medical institutions.[12][page needed] The relationship between suffering patients and their caregivers provides evidence that compassion is a social emotion that is related to[vague] the closeness and cooperation between individuals.

Psychotherapy[edit]

Compassion-focused therapy, created by clinical psychologist Professor Paul Gilbert, focuses on the evolutionary psychology behind compassion: balancing of affect regulation systems (e.g. using affiliative emotions from the care-and-contentment system to soothe and reduce painful emotions from the threat-detection system).[jargon][52][53]

Self-compassion[edit]

Self-compassion is a process of self-kindness[clarification needed] and accepting suffering as a quality of being human. It has positive effects on subjective happiness, optimismwisdomcuriosityagreeableness, and extroversion.[54] Kristin Neff and Christopher Germer identified three levels of activities that thwart self-compassion: self-criticism, self-isolation, and self-absorption; they equate this to fight, flight, and freeze responses.[55] Parenting practices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self-compassion in children. Maternal support, secure attachment, and harmonious family functioning all create an environment where self-compassion can develop. On the other hand, certain developmental factors (i.e., personal fable[jargon]) can hinder the development of self-compassion in children.[56]

Authentic leadership centered on humanism and on nourishing quality interconnectedness increase compassion in the workplace to self and others.[57]

Judith Jordan's concept of self-empathy is similar to self-compassion, it implies the capacity to notice, care, and respond towards one's own felt needs. Strategies of self-care involve valuing oneself, thinking about one's ideations of needs[clarification needed] compassionately, and connecting with others in order to conversely experience[clarification needed] renewal, support, and validation. Research indicates that self-compassionate individuals experience greater psychological health than those who lack self-compassion.[58]

Religion and philosophy[edit]

Abrahamic religions[edit]

Christianity[edit]

Compassion in action: an 18th-century Italian depiction of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The Christian Bible's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is but one place where God is spoken of as the "Father of mercies" (or "compassion")[59] and the "God of all comfort."

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mercies and God of all comfort, who comforts us in all our affliction so that we will be able to comfort those who are in any affliction with the comfort with which we ourselves are comforted by God.

— 2 Corinthians 1:3–4[60]

Jesus embodies the essence of compassion and relational care. Christ challenges Christians to forsake their own desires and to act compassionately towards others, particularly those in need or distress.[61]: Ch. 1 

Carry each other's burdens, and in this way you will fulfill the law of Christ.

— Galatians 6:2[62]

Be kind to one another, tender-hearted, forgiving each other, just as God in Christ also has forgiven you.

— Ephesians 4:32[63]

One of his most well-known teachings about compassion is the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Luke 10:29–37), in which a Samaritan traveler "was moved with compassion" at the sight of a man who was beaten. Jesus also demonstrated compassion to those his society had condemned – tax collectors, prostitutes, and criminals, by saying "just because you received a loaf of bread, does not mean you were more conscientious about it, or more caring about your fellow man".[64]

An interpretation of the incarnation and crucifixion of Jesus is that it was undertaken from a compassionate desire to feel the suffering of and effect the salvation of mankind; this was also a compassionate sacrifice by God of his own son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65]).

A 2012 study of the historical Jesus claimed that he sought to elevate Judaic compassion as the supreme human virtue, capable of reducing suffering and fulfilling our God-ordained purpose of transforming the world into something more worthy of its creator.[64]

Islam[edit]

A 1930s photograph of a desert traveler seeking the assistance of Allah the Merciful, the Compassionate

In the Muslim tradition, foremost among God's attributes are mercy and compassion, or, in the canonical language of Arabic, Rahman and Rahim. Each of the 114 chapters of the Quran, with one exception, begins with the verse, "In the name of Allah the Compassionate, the Merciful."[66]

Certainly a Messenger has come to you from among yourselves; grievous to him is your falling into distress, excessively solicitous respecting you; to the believers (he is) compassionate.

— Quran 9:128

The Arabic word for compassion is rahmah. Its roots abound in the Quran. A good Muslim is to commence each day, each prayer, and each significant action by invoking Allah the Merciful and Compassionate, i.e., by reciting Bism-i-llah a-Rahman-i-Rahim. The womb and family ties are characterized by compassion and named after the exalted attribute of Allah "Al-Rahim" (The Compassionate).[67]

Judaism[edit]

In the Jewish tradition, God is the Compassionate and is invoked as the Father of Compassion:[61] hence Raḥmana or Compassionate becomes the usual designation for His revealed word. (Compare, above, the frequent use of raḥman in the Quran).[68] Sorrow and pity for one in distress, creating a desire to relieve it, is a feeling ascribed alike to man and God: in Biblical Hebrew, (riḥam, from reḥem, the mother, womb), "to pity" or "to show mercy" in view of the sufferer's helplessness, hence also "to forgive" (Habakkuk 3:2), "to forbear" (Exodus 2:61 Samuel 15:3Jeremiah 15:15, 21:7). The Rabbis speak of the "thirteen attributes of compassion". The Biblical conception of compassion is the feeling of the parent for the child. Hence the prophet's appeal in confirmation of his trust in God invokes the feeling of a mother for her offspring (Isaiah 49:15).[68]

A classic articulation of the Golden Rule came from the first century Rabbi Hillel the Elder. Renowned in the Jewish tradition as a sage and a scholar, he is associated with the development of the Mishnah and the Talmud and, as such,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figures in Jewish history. Asked for a summary of the Jewish religion "while standing on one leg" (meaning in the most concise terms) Hillel stated: "That which is hateful to you, do not do to your fellow. That is the whole Torah. The rest is the explanation; go and learn."[69] Post 9/11, the words of Rabbi Hillel are frequently quoted in public lectures and interviews around the world by the prominent writer on comparative religion Karen Armstrong.

Many Jewish sources speak of the importance of compassion for and prohibitions on causing needless pain to animals. Significant rabbis who have done so include Rabbi Samson Raphael Hirsch[70] Rabbi Simhah Zissel Ziv,[71] and Rabbi Moshe Cordovero.[72]

Ancient Greek philosophy[edit]

In ancient Greek philosophy motivations based on pathos (feeling, passion) were typically distrusted. Reason was generally considered to be the proper guide to conduct. Compassion was considered pathos; hence, Justice is depicted as blindfolded, because her virtue is dispassion — not compassion.[73]

Aristotle compared compassion with indignation and thought they were both worthy feelings: Compassion means being pained by another person's unearned misfortune; indignation means being pained by another's unearned good fortune. Both are an unhappy awareness of an unjust imbalance.[74]

Stoicism had a doctrine of rational compassion known as oikeiôsis.

In Roman society, compassion was often seen as a vice when it was expressed as pity rather than mercy. In other words, showing empathy toward someone who was seen as deserving was considered virtuous, whereas showing empathy to someone deemed unworthy was considered immoral and weak.[75]

Confucianism[edit]

Mencius maintained that everyone possesses the germ or root of compassion, illustrating his case with the famous example of the child at an open well:

"Suppose a man were, all of a sudden, to see a young child on the verge of falling into a well. He would certainly be moved to compassion, not because he wanted to get into the good graces of the parents, nor because he wished to win the praise of his fellow-villagers or friends, nor yet because he disliked the cry of the child".[76]: 18 & 82 

Mencius saw the task of moral cultivation as that of developing the initial impulse of compassion into an enduring quality of benevolence.[76]: 22–27 

Indian religions[edit]

Buddhism[edit]

Avalokiteśvara looking out over the sea of suffering. China, Liao dynasty.

The first of the Four Noble Truths is the truth of suffering or dukkha (unsatisfactoriness or stress). Dukkha is one of the three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s of all conditioned existence. It arises as a consequence of not understanding the nature of impermanence anicca (the second characteristic) as well as a lack of understanding that all phenomena are empty of self anatta (the third characteristic).

When one has an understanding of suffering and its origins and understands that liberation from suffering is possible, renunciation arises.[77] Renunciation then lays the foundation for the development of compassion for others who also suffer.[78] This is developed in stages:

Ordinary compassion
The compassion we have for those close to us such as friends and family and a wish to free them from the 'suffering of suffering'[79]
Immeasurable compassion
This is the compassion that wishes to benefit all beings without exception. It is associated with both the Hinayana and Mahayana paths.[80]
It[ambiguous] is developed in four stages called The Four Immeasurables:[81]
  1. Loving kindness (Mettā)
  2. Compassion (Karuṇā)
  3. Joy (Mudita)
  4. Equanimity (Upekṣā)
The American monk Bhikkhu Bodhi states that compassion "supplies the complement to loving-kindness: whereas loving-kindness has the characteristic of wishing for the happiness and welfare of others, compassion has the characteristic of wishing that others be free from suffering, a wish to be extended without limits to all living beings. Like metta, compassion arises by considering that all beings, like ourselves, wish to be free from suffering, yet despite their wishes continue to be harassed by painfearsorrow, and other forms of dukkha."[82]
Great Compassion
This is practiced exclusively in the Mahayana tradition and is associated with the development of Bodhicitta.[83] The Bodhisattva Vow begins (in one version): "Suffering beings are numberless, I vow to liberate them all."[84]

The 14th Dalai Lama has said, "If you want others to be happy, practice compassion. If you want to be happy, practice compassion."[85] But he also warned that compassion is difficult to develop:

This is no easy task... there is no blessing or initiation — which, if only we could receive it — or any mysterious or magical formula or mantra or ritual — if only we could discover it — that can enable us to achieve transformation instantly. It comes little by little, just as a building is constructed brick by brick or, as the Tibetan expression has it, an ocean is formed drop by drop.... Nor should the reader suppose that what we are talking about here is the mere acquisition of knowledge. It is not even a question of developing the conviction that may come from such knowledge. What we are talking about is gaining an experience of virtue through constant practice and familiarization so that it becomes spontaneous. What we find is that the more we develop concern for others' well-being, the easier it becomes to act in others' interests. As we become habituated to the effort required, so the struggle to sustain it lessens. Eventually, it will become second nature. But there are no shortcuts.[86]

Hinduism[edit]

Yoga aims at physical, mental, and spiritual purification, with a compassionate mind and spirit being one of its most important goals.[87] Various asanas and mudras are combined with meditation and self-reflection exercises to cultivate compassion.[88]

In classical literature of Hinduism, compassion[89] is a virtue with many shades, each shade explained by different terms. Three most common terms are daya (दया),[90] karuṇā (करुणा),[91] and anukampā (अनुकम्पा).[92] Other words related to compassion in Hinduism include karunyakripa, and anukrosha.[93][94] Some of these words are used interchangeably among the schools of Hinduism to explain the concept of compassion, its sources, its consequences, and its nature. The virtue of compassion to all living beings, claims Gandhi and others,[95][page needed][96] is a central concept in Hindu philosophy.[89]

Daya is defined by Padma Purana as the virtuous desire to mitigate the sorrow and difficulties of others by putting forth whatever effort necessary.[93][97] Matsya Purana describes daya as the value that treats all living beings (including human beings) as one's own self, wanting the welfare and good of the other living being.[93][98] Such compassion, claims Matsya Purana, is one of necessary paths to being happy. Ekadashi Tattvam[99] explains daya is treating a stranger, a relative, a friend, and a foe as one's own self; and argues that compassion is that state when one sees all living beings as part of one's own self, and when everyone's suffering is seen as one's own suffering. Compassion to all living beings, including to those who are strangers and those who are foes, is seen as a noble virtue.[93]

Karuna, another word for compassion in Hindu philosophy, means placing one's mind in other's favor, thereby seeking to understand the best way to help alleviate their suffering through an act of karuna (compassion). Anukampa, yet another word for compassion, refers to one's state after one has observed and understood the pain and suffering in others.[100]

In Mahabharata, Indra praises Yudhishthira for his anukrosha – compassion, sympathy – for all creatures.[101] Tulsidas contrasts daya (compassion) with abhiman (arrogance, contempt of others), claiming compassion is a source of dharmic life, while arrogance a source of sin. Daya (compassion) is not kripa (pity) in Hinduism, or feeling sorry for the sufferer, because that is marred with condescension; compassion is recognizing one's own and another's suffering in order to actively alleviate that suffering.[102] Compassion is the basis for ahimsa, a core virtue in Hindu philosophy and an article of everyday faith and practice.[103] Ahimsa, or non-injury, is compassion-in-action that helps actively prevent suffering in all living things as well as helping beings overcome suffering and move closer to liberation.

Compassion in Hinduism is discussed as an absolute and a relative concept. There are two forms of compassion: one for those who suffer even though they have done nothing wrong and one for those who suffer because they did something wrong. Absolute compassion applies to both, while relative compassion addresses the difference between the former and the latter. An example of the latter include those who plead guilty or are convicted of a crime such as murder; in these cases, the virtue of compassion must be balanced with the virtue of justice.[93]

The classical literature of Hinduism exists in many Indian languages. For example, Tirukkuṛaḷ, written between 200 BCE and 400 CE, and sometimes called the Tamil Veda, is a cherished classic on Hinduism written in a South Indian language. It dedicates Chapter 25 of Book 1 to compassion,[104] further dedicating separate chapters each for the resulting values of compassion, chiefly, vegetarianism or veganism (Chapter 26), doing no harm (Chapter 32), non-killing (Chapter 33), possession of kindness (Chapter 8), dreading evil deeds (Chapter 21), benignity (Chapter 58), the right scepter (Chapter 55), and absence of terrorism (Chapter 57), to name a few.[105]

Jainism[edit]

Compassion for all life, human and non-human, is central to the Jain tradition. Though all life is considered sacred, human life is deemed the highest form of earthly existence. To kill any person, no matter their crime, is considered unimaginably abhorrent. It is the only substantial religious tradition that requires both monks and laity to be vegetarian. It is suggested that certain strains of the Hindu tradition became vegetarian due to strong Jain influences.[106] The Jain tradition's stance on nonviolence, however, goes far beyond vegetarianism. Jains refuse food obtained with unnecessary cruelty. Many practice veganism. Jains run animal shelters all over India. The Lal Mandir, a prominent Jain temple in Delhi, is known for the Jain Birds Hospital in a second building behind the main temple.[107][better source needed]

See also[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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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ernal links[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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憐憫[编辑]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一個小孩對另一個小孩表達憐憫

憐憫(英語:Compassion)是指對於他者所受苦痛或不幸的同情、關注及幫助其之意願。

“Compassion”源自拉丁語,(早期)的含義為“共同受苦”。同情心包括“對於他人處境的感覺”,是同理心的先兆,即“感受他人”的能力,可以更好地以人為中心的積極同情行為;一般而言,積極的同情心是減輕他人痛苦的願望。[1]

參考資料[编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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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편집 ]

무료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동정심을 표현합니다.

Compassion (영어: Compassion)은 다른 사람의 고통 이나 불행 에 대해 동정심 , 관심,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지를 말합니다 .

"연민"은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초기) 의미는 "공동의 고통"입니다. 연민은 ' 타인의 상황에 대한 감정 ' 을 포함하며 공감 , 즉 '타인을 느끼는 능력 '의 전 단계로, 이는 더 나은 사람 중심의 긍정적 연민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고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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憐憫(れんびん) とは? 意味・読み方・使い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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れん‐びん【×憐×憫/×憐×愍】 の解説
かわいそうに思うこと。あわれむこと。あわれみ。れんみん。「―の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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憐憫

目次
1 日本語
1.1 異表記・別形
1.2 名詞
2 中国語
2.1 動詞
日本語
異表記・別形
憐愍
名詞
憐 憫(れんびん、れんみん)

哀れに思い同情すること。
無智愚昧の衆生に対する、海よりも深い憐憫の情はその青紺色の目の中にも一滴の涙さえ浮べさせたのである。(芥川龍之介 『尼提』)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하는 것.
무지 우매 의 중생에 대한 바다 보다 깊은 자비 의 정은 그 푸른빛의 눈 속에도 한 방울의 눈물마저 떠오른 것이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아마제』)
中国語
動詞
憐 憫(liánmǐn 簡体字:怜悯)

哀れに思い同情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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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憐憫)에 대하여

입력
2009-03-10 17:37:00
1895년 2월9일(음력), 보국안민(輔國安民·위태로운 나라를 돕고 고통에 빠진 백성을 편안케 함)과 척왜양(斥倭洋·일본과 서양세력을 배척함)의 기치(旗幟) 아래 동학농민군을 이끌다 체포된 전봉준(全琫準)에 대한 1차 심문이 열렸다. 법아관원(法衙官員)이 ‘고부민란(古阜民亂)’을 일으킨 연유를 물었다.

“처음부터 학정(虐政)을 했다면 그 즉시에 난을 일으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일대의 백성이 참고 참다 못해서 끝내는 부득이 난을 일으켰다.”

“너는 피해가 없으면서 어찌하여 난을 일으켰는가?”

“일신의 피해를 면하려고 난을 일으키는 것을 어찌 남아(男兒)의 할일이라 하겠는가. 백성의 원한이 맺혀 있었기에 백성을 위하여 학정을 없애고자 했을 뿐이다.”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진술서)에 따르면 심문관은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부임(1892년 4월)한 뒤 줄곧 탐학(貪虐)을 거듭했는데도 뒤늦게 난리를 일으킨 연유가 뭐냐, 너는 ‘아침 밥 저녁 죽’으로 살던 형편이어서 수탈(收奪)당할 것이 없었다면서 왜 난리에 앞장섰느냐, 물은 것이다. 전봉준은 답했다. ‘참고 참다 못해서, 백성을 위하여’라고.

용산 철거민들도 ‘참고 참다 못해서’ 망루에 올라갔을 것이다. 먼저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심재생사업에서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이하 경향신문 2009년 2월2일자 ‘철거민 집담회’에서 발췌 인용)

“2002년 결혼하면서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에서 7년째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2003년부터 재개발 바람이 불었습니다. 세입자인 저의 경우 임대아파트 입주가 가능했습니다. 조합 측에서 이사를 가면 이사비용을 주고 아니면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살고 있는데 최근 갑자기 임대아파트 입주를 하려면 2~3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뉴타운이 너무 많이 조성되면서 임대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넘쳐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를 가려 했는데 갈 수도 없게 됐습니다. 방 2칸짜리 집을 2500만원에 전세 살고 있었는데, 주변 전·월세 값이 치솟아 이 규모로 이사를 가려면 보증금 2500만원에 따로 월세를 50만~60만원을 내야 합니다. 반지하에 수평도 맞지 않는 집 전셋값이 1억2000만원이나 합니다. 조합은 집을 비워달라고 하는데 나갈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지금 보증금으로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죽나, 나가서 죽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주택세입자 L씨)

“저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10년간 살고 있습니다. 재개발이 시작되자 처음에는 조합에서 1 대 1 맞교환이라고 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철거 직전에 조합이 말을 바꾸기 시작하더군요. 대지 2평에 아파트 분양평수가 1평이다, 2 대 1이 안 된다는 둥 말입니다. 게다가 관리처분인가가 나오니 건평 24평짜리 집의 감정평가금액은 고작 1억원이었습니다. 32평형 아파트입주권이 주어졌는데 분양가가 4억2000만원입니다. 3억원이 넘는 돈을 더 내야 내 집을 장만한다니 말이 됩니까.”(주택소유자 L씨)

“저는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서 20년 동안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1300만원에 월세 100만원으로 25평 규모입니다. 뉴타운이 들어서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주변에는 갈 곳이 없습니다. 마땅한 사업장을 알아보려고 한 달 넘게 다녀봤는데 제일 싼 데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이었습니다. 왕십리도 용산처럼 그런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르지만 대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합니다.”(상가세입자 B씨)

“저는 1981년부터 29년째 서울 응암동에서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4평짜리 작은 구멍가게지만 다섯 식구가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생계가 막막합니다. 한때 시세가 1억원이 넘었던 가게 보상비가 4600만원입니다. 구입할 때 치른 돈 6000만원에도 모자랍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셈법이 어디 있습니까.”(상가소유자 J씨)

주택이든 상가든, 소유자든 세입자든 말이 되느냐, 죽겠다, 살길이 막막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렇다면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수 원거주민(이들의 입주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을 몰아내고 힘없는 세입자를 쫓아내는 이른바 도심재생사업을 이대로 계속할 것인가. 이는 원칙, 법치 이전에 생존권의 문제다. 사람을 살게 하면서 원칙도 따지고 법치도 내세워야지, 살려달라는 호소에는 귀를 막은 채 내몰려만 한다면 참고 참다 못한 이들이 ‘난’을 일으킬밖에 더 있겠는가. ‘용산 참사(慘事)’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
부패하고 무능했던 왕조 말기의 민란에 오늘날 철거민의 문제를 빗대자는 것은 아니다. 불법 폭력적인 ‘난’을 부추기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번 참극의 본질은 뒷전에 밀어놓은 채 ‘엄정한 법치’만을 앞세운다면 ‘난’은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

그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은 틀리지 않다. 그는 1월30일 TV 원탁대화에서 “이 문제를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하면 여러 곳에서 (유사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합의가 안 되는 10~15% 정도의 사람을 위한 협의기구를 정부가 법률적으로 제도적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금의 재개발은 세입자 희생이 너무 커 분쟁을 조정하는 공적기구를 만들겠다”(2009년 2월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고 했다. 현행 재개발은 세입자의 희생 위에서 지주와 시행사가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 개발을 주도했던 대통령이나 현 서울시장이 현행 도심 재개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책은 없었다. 전·현직 서울시장이 미리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았더라면 ‘용산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점에서 과거 집권당이던 민주당도 큰소리 칠 자격은 없다.

정부는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자진사퇴 날짜(2월10일)에 맞춘 듯 부랴부랴 재개발사업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상가세입자에게 분양권을 우선 부여하고, 휴업보상비를 상향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재개발사업과정에서 세입자와 조합, 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시 군 구에 전문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분쟁조정위원회도 설치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 격이지만 늦은 만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급한 불 끄는 식의 임기응변으로 철거민들을 다시 분노와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선 안 된다.

재개발 사업 중이거나 앞으로 할 예정인 지역의 여야 정치인들도 서로 삿대질이나 할 게 아니라 자기 지역구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하물며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바람’ 덕분에 의원 배지를 달게 된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역 실태 파악과 문제점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 대책은 발표하자마자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언제까지 ‘도심 테러’ ‘체제 전복’ 하며 이념 공세에나 열을 올리고 있을 텐가.

정부나 정치권에만 맡겨놓을 일은 아니다. 언론도 벌어진 사건이나 발표된 것만을 보도하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현장 탐사보도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언론이 그동안 철거민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현장 실태, 예컨대 철거용역들의 폭력적 행태 등을 생생히 보도했었다면 ‘용산 참사’는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용산 철거민들을 망루로 올려 보낸 책임에서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 정부의 심문관은 전봉준에게 “너는 피해가 없으면서 어찌하여 난을 일으켰느냐?”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왜 제3자가 개입했느냐는 얘기다. 반상(班常)의 신분제를 체제의 근간으로 하는 봉건왕조의 관리가 ‘약자들의 연대’를 인식했을 리 없다. 그로부터 114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의 몇몇 정부 여당 사람도 잠깐이나마 조선시대 관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용산 참화’ 직후 정부와 한나라당이 재개발 관련 제3자 개입금지를 추진했으니 말이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용산 사건의 핵심은 일종의 전문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가 개입하게 되는 틈새가 왜 생기는지 당에서 파악해서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재개발 현장의 분규에 제3자인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이 개입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얘기다.

전철연이 철거민들에게 망루 짓는 방법을 가르치고, 거기에 시너와 화염병 등 위험물질을 갖고 들어가 격렬한 투쟁을 하도록 교사(敎唆)했다면, 그들의 행위를 용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일부나마 철거민들이 왜 과격한 전철연에 의존하게 되는지, 그 ‘틈새’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철거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전철연만이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그 ‘틈새’부터 메워줘야 한다. 최소한 이해관계의 한 당사자인 철거민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공적기관이 있었다면 그들이 화염병을 들고 전철연 사람들과 망루로 올라갔겠는가. 결국 ‘틈새’는 제대로 된 제3자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생겨난 것이다. 관할구청장이 농성 철거민들을 ‘떼잡이’라고 비하하고, 관할경찰이 철거용역들과 한편으로 비치는 현실에서 ‘틈새’가 왜 생기는지 몰랐다면 집권여당 정책위의장으로선 부끄러워할 일이다.

원칙도 좋고, 법치도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연민(憐憫)조차 없는 원칙, 약자의 고통과 분노는 외면한 채 ‘고의 방화’네 ‘자폭범’이네, 모지락스러운 발언을 쏟아내는 저열한 법치로는 더불어 사는 사회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사람의 얼굴을 한 법치,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법치가 정의롭게 작동한다면 굳이 엄정한 법치를 강조할 까닭이 있겠는가. 소통 없는 원칙, 연민 없는 법치가 지배하는 세상은 삭막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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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1949년 서울 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신동아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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