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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통일교는생명의교회 - PDF Free Download

통일교는생명의교회 - PDF Free Download
통일교는생명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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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향 빈  3 years ago  Views: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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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교는생명의교회 HAPPYBOY

2 소개글 한국에재림메시아로오신문선명총재님을증거하고한국을넘어온인류의스승이자메시아로오신문선명총재님을사랑합니다

3 목차 참부모님소개란 5 통일교문선명총재세계평화초석마련 -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11 리틀엔젤스, 베를린공연대성황 < 세계일보 > 15 통일교문선명총재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19 불교 기독교 이슬람등 하나로 23 문선명통일교총재구순연 오바마도축전 25 < 통일교회문선명총재 > 갈등으로얼룩진지구촌 참사랑 심다 27 종교없는세상 을향한 ' 이단의험로 ' 53 년 31 < 교회관련기사 (27)> 통일그룹개발사업은선교를위한투자 35 종교 인종의벽허물고세계평화이룩하자 ( 통일교회문선명총재님 ) 39 [ 헤드라인뉴스 ] 베링해협프로젝트, 평화메시지보도 43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미국사회일대충격 [ 통일교문선명총재 ] 45 참사랑의삶 50 통일교문선명총재 - 하나님은이성성상의본체적존재이시다 52 흑백인종문제종지부, 예언적중어디까지 - 통일교문선명총재 55 인종 종교초월지구촌대가족이루자 [ 통일교문선명총재 ] 58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 통일교문선명총재 ] 61

4 각종단의성직자들의合水式 ( 합수식 ) 통일교회문형진목사 67 손주님을안고계시는아버님 70 통일교문선명총재 [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72 ( 통일교문선명총재 )547m 뚫린韓ㆍ日해저터널 200km 물속길열릴까 76 김정일에서오바마까지문선명의 너른행보 79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82 통일교문선명총재남은생도평화위해몸바칠것 88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1

5 01 참부모님소개란

6 참부모님소개란 :26 미국리커 (Ricker) 대학에서명예법학박사학위수여아르헨티나라플라타 (La plata) 대학에서명예법학박사학위수여미국쇼 (Shaw Divinity School) 신학대학에서명예신학박사학위수여미국성경신학대학원에서명예신학박사학위수여미국버나디언대학교에서명예법학박사학위수여미국브리지포트대학에서명예인문학박사학위수여미국통일신학대학원에서명예신학박사학위수여브라질훈장회 국민문화공로십자상 수상남북미통합기구 자유통일대십금성훈장 수상멕시코국제법률학회최고훈장수상인도국제통일재단 1991 통일상 수상 IIFWP 2000총회만국평화상수상 ( 양위분 ) 선문대학교명예문학박사 ( 양위분, 2002년 ) 학위수여미국과한국국회에서 평화의왕 으로추대 (2004) 참부모님소개란 6

7 < 종교 / 화합부문 > 초종교초국가연합 (IIFWP) 창설 (1999) 세계평화종교연합 (IRFWP) 창설 (1991) < 평화 / 통일부문 > World Peace King Bridge and Tunnel 프로젝트추진 (1981~ 현 ) 천주평화연합 (UPF) 창설 (2005) 몽골반점동족세계평화연합 (2004) 평화유엔 (IIPC) 창설 (2003) 천주평화통일가정당창설 (2003)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FFWPU) 총재 ( 전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1954)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CFUF) 창설 (1987) 국제승공연합창설 (1968) 세계평화정상회의발족 (1987) 세계평화도서국가연합창설 (1996) 세계평화반도국가연합창설 (1996) 남북미통일연합 (CAUSA) 창설 (1980) < 교육 / 언론부문 > 세계언론인연합발족 (1978) 국제교육재단 (IEF) 설립 (1990) 세계평화교수협의회 (PWPA) 창설 (1973) 워싱턴타임즈창간 (1982) 세계일보창간 (1988) 세계평화문인연합 (1997) 세계평화순결민족연합 (2002) < 과학 / 학술부문 > 국제과학통일회의 (ICUS) 창설 (1968) 세계평화기술연구소창설 (1994) < 복지 / 봉사부문 > 참부모님소개란 7

8 국제구호친선재단 (IRFF) 창설 (1975) 자원봉사애원설립 (1994) 국제의료봉사단 (IMVA) 창설 < 여성 / 청년부문 > 세계평화여성연합 (WFWP) 창설 (1992) 세계평화청년연합 (YFWP) 창설 (1994) 세계대학원리연구회 (CARP) 창설 ( 전대학원리연구회, 1964) < 문화 / 예술부문 > 리틀엔젤스창설 (1962) 유니버설발레단창설 (1984) 한국문화재단설립 (1969) < 체육 / 스포츠 > 초종교평화스포츠페스티벌 (IPSF) 창립 (2003) 세계한마당체육대전창설 (1984) 세계평화무도연합 (MAFWP) 창설 (1997) 피스컵 (Peace cup) 창설 (2003) 원리해설문선명선생말씀선집 500여권천성경참부모님선포대회말씀 - 세계평화와세계여성시대의도래 - 이상세계의주역이될여성 Ⅰ - 이상세계의주역이될여성 Ⅱ - 참부모님의재현과이상적가정 - 참부모와성약시대성약말씀선포말씀 - 구원섭리사의원리관 - 우주의근본을찾아서 - 참사랑을중심한참된가정과참된우주 참부모님소개란 8

9 - 참된가정과나참가정세계전진대회강연문 - 인간이가야할생애노정 - 축복과영생 - 생과사에대한이해남북통일전진대회강연문 - 세계와남북통일은참사랑으로 - 천주는나의고향과조국 - 참사랑은누구나원한다 -하나님의왕자왕녀가가야할생애노정세계와유엔이나아가야할길 - 세계평화로가는길 - 참평화의근본원리 - 인류를구할참가정운동 - 참된통일과하나의세계 - 세계평화실현의시대를활짝엽시다 - 종말시대인류와미국이나아갈길 - 세계와유엔이나아가야할길 - 국경선철폐와참사랑의실천천주평화연합 (UPF) 창설대회강연문 - 하나님의이상가정과평화이상세계왕국 - 하나님의모델적이상가정과국가와평화왕국 - 천주평화통일왕국창건의참된주인 미국뉴저지주브름필드대명예인문학박사 (1990) 미국브리지포트대명예인문학박사 (1995) 대만문화대명예문학박사 (1999) 브라질바이야주스테프바신학대명예교육학박사 (1999) 키르기즈스탄국립사범대명예교육학박사 (2000) 러시아우퍼볼타대명예철학박사 (2000) 도미니카공화국페대리코엔리케스이카르바할대명예인간학박사 (2000) UN IAEWP 그랑프리평화상수상 (2001) 미국 UTS 명예신학박사 (2001) 참부모님소개란 9

10 국제구호친선재단총재 (1975) 세계평화여성연합총재 (1992) 세계평화청년연합총재 (1994) 자원봉사애원총재 (1994)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공동총재 (1996)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공동창시자 (1999) 천주평화통일가정당총재 (1999) 천주참부모연합회장 (2000) 한학자총재회갑기념문집제1권 : 여성, 가정, 세계한학자총재회갑기념문집제2권 : 사랑, 평화, 교육참어머님의길 : 문선명선생말씀정선참사랑의승리자참어머님 : 말씀과증언및언론보도참사랑의서신 : 자녀님에게보내는서신사랑의세계한학재총재대회및순회강연문 참부모님소개란 10

11 02 통일교문선명총재세계평화초석마련 -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12 통일교문선명총재세계평화초석마련 -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50 통일교문선명총재세계평화초석마련 -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 세계평화초석마련 시베리아 알래스카 85 km잇는다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동반구와서반구의경계, 날짜변경선과미국 러시아의국경선이지나는곳, 베링해협. 이해협의바다밑을터널로연결하는 베링프로젝트 가국제사회의높은관심속에구체화를향한첫발을내디뎠다. 최근국제건축가연맹 (UIA) 의승인아래열린 국제아이디어설계경기 에 52개국 294팀이참가를신청해 31개국 135개작품이응모한것이다. 건설업계관계자는 국제적인공신력을높이기위한프로젝트는 UIA 승인을추진한다 면서 UIA가주관한서울오페라하우스, 행정복합도시마스터플랜등국내의내로라하는프로젝트도설계응모는 10건을넘지않는다 고말했다. 베링프로젝트 의국제프로모션을추진하는 ( 재 ) 평화통일재단측은 프로젝트가난해하고실시설계권보장등금전적메리트도없는데호응이컸다 면서 정책제안서에반영할우수한 DB( 데이터베이스 ) 를구축하게됐다 고평가했다. 구상에서현실로 = 13일평화통일재단등에따르면베링해협은미국알래스카와러시아시베리아사이에있는폭 85km의해협으로, 100년전부터양안을연결해철도를건설하자는논의가꾸준히있어왔다. 실제 1만3000년전만해도두지역은육지로연결돼있었다. 이계획이성사되면유로터널 ( 약 50km ) 을뛰어넘는세계최장해저터널이된다. 재단측에따르면해저터널은러시아추콧카반도의데즈네프곶에서출발해베링해협한가운데에있는대 ( 大 ) 다이오미드섬 ( 디오메데 러시아령 29km2) 과소 ( 小 ) 다이오미드섬 ( 미국령 7.4km2) 을거쳐미국알래스카주웨일스곶으로연결된다. 기본구상은철도가놓일메인터널 2개 ( 직경 12 14m), 송전 송유 가스관등이들어갈서비스터널 1개 ( 7 9m) 등 해저터널 과섬두개를연결할다리로구성된다. 거리는유로터널의두배에이르지만, 해저부지질이화강암단층지괴를석회암이덮고있어굴착이가능하고수심도 50m 정도에불과하다. 베링해협양쪽에는 330만 400만m2 ( 약 100만 120만평 ) 규모의국경도시와터미널이설치된다. 특히대 소다이오미드섬사이 4 km구간은관광자원화하는방안이검토되고있다. 통일교문선명총재세계평화초석마련 -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12

13 재단관계자는 설계공모에서두섬을자연스럽게연결할수있는생각지못한제 안이많아교량을고집할필요는없어졌다 고말했다. 이프로젝트성사는미 러양국정부에달려있다. 특히미국측결단이관건이다. 이용흠평화통일재단상임부이사장은 유로터널은나 폴레옹시대때부터연결하자는제안이나왔다 면서 ( 대륙세력의침입등우려로 ) 줄곧반대하던영국의마거릿대처총리가유럽통합 의필요성을받아들이면서급물살을탔다 고말했다. 시베리아개발이시급한러시아는블라디미르푸틴총리가 2007 년 G8( 주요 8 개국 ) 회의에서기초제안을하는등적극적이다. 재단측은오 는 9 월푸틴총리와의면담을추진하고있다고밝혔다. 세계평화의초석 = 베링프로젝트 는 1981 년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IIFWP) 문선명총재가 인터내셔널하이웨이 건설을선언하 면서태동했다. 아프리카희망봉에서칠레산티아고까지, 영국런던에서미국뉴욕까지세계를순회질주할수있게만든다는국제고속도로 구상에서베링해협의연결은필수다. 문총재는 2005 년베링프로젝트추진을공식선언했으며, 총공사비로 2000 억달러를추산했다. 이부이사장은 흔히길이뚫린다고하면경제적인측면만생각하지만, 물자와사람이소통하면문화와사상, 종교, 혈연의교류가이뤄진 다 면서 평준화된다는것은곧평화를뜻한다 고말했다. 미개척지인시베리아와알래스카의자원을개발해인류의미래를위한 글로벌부 ( 富 ) 를창출하는것은물론이고 소프트웨어적소 통 을통해세계평화의초석을마련할수있다는것이다. 뿐만아니라베링프로젝트가착공단계에들어서면한국의기술과자본, 북한의인력이대거동원되도록해남북통일과북한의경제발전 에도기여할수있다고재단측은강조했다. 러시아외무부정책자문담당인블라디미르수린박사는최근 러시아는심각한인구감소와사실상의시베리아방치로영토를보전하기 힘든국가위기에처해있다 며 한국과 공생국가 관계를맺어한민족이시베리아로자유롭게이주해개발에앞장서도록하는길밖에 통일교문선명총재세계평화초석마련 -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13

14 없다 는 코리아선언 을제안하기도했다. 시베리아동토에는세계천연가스의 37%, 석유의 5.8% 가묻힌것으로알려졌다. 해저터널이뚫리면러시아는파이프라인을통해가스와석 유를미국에바로공급할수있게된다. 미국으로서도석유수입선을중동에서시베리아로다변화해중동에대한석유의존도를줄일수있 다. 문총재는지난 5 월출간한자서전에서 미국이이라크에퍼붓는전비만투입해도베링해협해저터널을뚫을수있다 고밝혔다. 뉴욕타 임스등에따르면미국이지난 6 년간이라크전에투입한전비는 6570 억달러에이른다. 재단측은 베링해협은시간과공간, 이념, 역사의장벽을가장극적으로보여주는곳 이라며 막혔던길을열어인종, 문화, 종교, 국가 간의벽을헐어내고소통을통해인류평화를이루고자하는것 이라고밝혔다. 출처 - 세계일보 // 통일교문선명총재세계평화초석마련 - 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에서현실로 14

15 03 리틀엔젤스, 베를린공연대성황 < 세계일보 >

16 리틀엔젤스, 베를린공연대성황 < 세계일보 > : 한국전쟁의무지원국순회첫공연 -2 천 5 백석의템포드롬홀만원사례 리틀엔젤스의베를린첫공연이대성황을이뤘다. 17 일밤 ( 우리시간 18 일오전 ) 베를린시내 2 천 5 백석의템포드롬홀에서열린공연엔시작 2 시간반전부터인파가몰려와줄을서는등열기를예고하고있었다. 주최측에서는예상보다빨리관객을입장시키는조치를취해야했을정도였다. 오프닝인화관무에선동양의선율과몸짓에어색했던지숨을죽이고보던관객들. 부채춤에이르자절묘한대형을이루며부채가나비가되고꽃으로변하다가때론꽃과나비가한데어우러지는형상을연출하는장면에서부터참고있던탄성을자아내기시작했다. 마임댄스인 ' 꼭두각시 ; 와 ' 시집가는날 ' 에서는여기저기서웃음소리가터져나왔고, 이어진북춤의현란한몸짓과심장고동의주파수와같은북소리, 숨막힐듯몰아치는장고춤에서관객들은역동적인발산을느끼는듯박수를쳐서답례를표시했다. 병정옷으로갈아입은리틀엔젤스단원들이피아노옆으로도열, 우리귀에도잘익은독일민요 ' 들장미 ' 와요들송을부를땐기립박수와환호성이쏟아져나왔다. 독일민요 ' 들장미 ' 와요들송을불러대단한박수를받은리틀엔젤스 인터넷신청으로표를구해프랑크푸르트에서온로스마레아 ( 여 ) 씨는 ' 한국의문화공연을처음보았는데, 아주특별한관계를맺은느낌 ' 이라며먼길이지만와본것에대단히만족한다고했다. 베를린한인회부회장을맡고있는파독간호사출신인한기숙 (73) 씨는 ' 눈물이앞을가려혼이났다. 지금까지이곳에 리틀엔젤스, 베를린공연대성황 < 세계일보 > 16

17 살며이렇게자랑스럽고자부심느낀것은처음이다 ' 며감격에울먹였다. 문태영독일대사도축사를통해 '50 년전부터우리문화를해외에알리는전령역할을해온리틀엔젤스가다시한번통일수도인베를린에서공연을펼치는것에감사를드린다. 이번공연을통해대한민국의이미지가한층업그레이드될것 ' 이라며민간외교관의역할을앞으로도계속수행해줄것을당부했다. 문태영독일대사가템포드롬홀에서공연을마친리틀엔젤스를격려하고있다. 박보희한국문화재단이사장도전후인 54 년부산에서적십자병원을세워 5 년간전쟁부상자를치료해준것과 60 넌대이후광부와간호사를받아들여한국의경제발전의종자돈이되는차관을공여해준사실을상기하며, 이번투어의첫번째나라를독일로정한의미를설명하여박수를받았다. 이자리엔 ' 참부모말씀실체선포대회 ' 유럽투어의마지막기착지인베를린에도착한리틀엔젤스창설자문선명회장이예고도없이참석하여의의를더욱빛냈다. 리틀엔젤스, 베를린공연대성황 < 세계일보 > 17

18 평화의메달수상자를격려하는문선명회장. 이번리틀엔젤스공연은작년에 6.25 한국전쟁참전 16 개국의보은의 3 차례에걸친순회공연을마무리하고난후이어지는의무지원국에대한 4 차대장정투어의첫번째공연이다. ' 은혜를잊지않은대한민국 ' 을모토로 ' 감사할줄아는대한민국 ' 의이미지를널리각인시키며, 민간단체로서대규모공연단의장기해외공연을펼치는한국문화재단의진정성은높이평가받을일이다. [ 베를린 = 이범석기자 리틀엔젤스, 베를린공연대성황 < 세계일보 > 18

19 04 통일교문선명총재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20 통일교문선명총재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05 문선명총재첫자서전이침체되어있던출판시장계를강타했다. 통일교창시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문선명총재의첫자서전 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가출판첫날부터출판계에화재가되고있는 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한기호연구소장은읽은소감에대해 나는이책을읽고나서국내에서는인기가없는문총재가왜외국에서는 매우탁월한지도자로인정받는지깨달을수있었다 라고밝혔다. 한소장은특히 ( 자서전읽다보면 ) 한국의미래, 세계의미래 를읽으면서는지금위기에처한세상을구하기위해서는대단한지도자 가필요하겠구나, 하는생각이들면서급속하게책의내용에빨려들어갔다. 그는천재였다 며감정을감추지못했다. 아래관련기사보도내용을보면자서전내용을대략알수있다. 통일교문선명총재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20

21 문선명총재의구술을바탕으로출간된 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종교와인종을한데어우르는평화세계를만들기위한길은한없이고단했습니다. 문선명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 통일교 ) 총재의에세이형식의자서전이출간돼주목을끌고있다. 출판사김영사에서 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라는제목으로나온이책은 16 세때예수로부터인류구원의소명을받아폭풍같은한 세기를보낸문선명총재의파란만장한삶을조명했다. 박해와시련에도굴하지않고당당하게자신의길을개척해온한인간의눈물과회 한, 꿈과비전, 열정과인류애가오롯이담겨있다. 문총재의자서전이대형출판사를통해나온것은이번이처음이다. 문총재는이와관련, 나에게삶은어느누구와도의논할수없는고 독한노정이었다 며 이제그동안밝히지못했던내마음속의폭풍같은이야기를꺼내본다 고말한다. 지금까지문총재의공 사석 말씀 을엮어편찬한강연집만해도 520 여권에달한다. 이강연집을요약해 평화 교육 등주제별 로엮은책도있고, 학자나종교인, 그리고제자들이고백한문선명선생의증언서들이수십권나온바있다. 제자들이문총재의행적을중 심으로엮은전기도몇권출간돼있다. 그리고세계각국에서발행된문총재관련서적만해도수백종에달할정도로방대하다. 그럼에도이책에세간의이목이집중되는것은문선명총재가직접구술한내용을중심으로엮어졌고문선명총재가자신의이름을걸고책 을출간한것은처음있는일이기때문이다. 하늘의부름에따라 뜻길 을찾아나섰지만고난과핍박의연속이었던문총재의삶은독자의심금을울리기에충분하다. 문총재는일제에의해, 북한공산정권에의해, 그리고대한민국과미국정권에의해옥고를치렀다. 그리고종교간화합과일치를위해, 인류가진정한평화에이르는길을설파하기위해오대양육대주를누볐다. 피와땀과눈물을쏟아왔건만그에게쏟아진것은영광과찬사대신멸시와천대였다. 이단, 사이비는내이름앞에붙는고유명사였습니다. 아니내이름문선명은이단, 사이비와똑같은말이었습니다. 이단이니사이비니하 는접두사없이그냥이름만으로불려본적이없을정도였습니다. ( 본문 ) 그는왜무엇때문에고난을벗삼아파란만장한일생을살아왔을까. 문총재는책에서 하나님은사랑의마음을갖고살며고난을당할때에도사랑의칼로고통을끊을수있는사람을찾다가나를부르신것이다. 때로는사람에게치이고때로는능력에치이는일이수없이많았지만나는그사명을저버릴수없었다 며 어떤고난과위기속에서도오직평화를위한길을가라는하늘의뜻을믿었기때문 이라고밝혔다. 하나님은왜나를불렀을까요? 아흔이된지금도날마다하나님이왜나를부르셨는가를생각합니다. 외모가잘나거나인격이훌륭하거나 신념이강해서가아닙니다. 나는고집불통에다어리석고보잘것없는소년일뿐이었습니다. 내게서취하실것이있었다면하나님을간절하게 찾는마음, 하나님을향한애절한사랑이었을겁니다. 지금도나는지독하게하나님의사랑에만목을매고사는미련한사람입니다. ( 본문 ) 자서전에서드러난문총재의한평생은 평화 라는한단어로요약된다. 나는평생을평화를위한일에몸바쳐왔습니다. 평화라는말만떠올리면지금도목이메어눈물이쏟아집니다. 세계가하나되어평화를 누리는날을그려보는것만으로도그렇게감격스러울수가없습니다. 평화란그런것입니다. 생각이다르고인종이다르고말이다른사람들 을하나로연결하는것입니다. 그런세계를그리워하고바라는마음입니다. ( 본문 ) 통일교문선명총재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21


22 책에는북한의김일성주석과의환담, 소련의고르바초프공산당서기장과의면담에얽힌일화와일반에잘알려지지않은가족사도공개된 다. 책의초점은 땀은땅을위하여, 눈물은인류를위하여, 피는하늘을위하여 살아온한위대한종교의삶에모아지고있음을확인할수 있다. 김영사박은주사장은 10 일출판간담회에서 문총재가완성본을읽고 내생각의 80% 이상을담았다 고평할만큼문총재를가감없이 있는그대로전하려노력했다 고말했다. 통일교문선명총재평화를사랑하는세계인으로 22

23 05 불교 기독교 이슬람등 하나로

24 불교 기독교 이슬람등 하나로 :49 불교 기독교 이슬람등 하나로 [ 미주세계일보 : :38] 세계종교지도자들종교초월공존과평화논의 세계의평화와종교간의화합을염원하는만해사상실천선양회주최 2006 세계종교지도자대회 가 8 일서울 올림픽공원펜싱경기장에서 6 천여명이참석한가운데개막했다. 이날 18 개국 24 명의종교지도자들은평화를이뤄야할종교가오히려분쟁을일으키고있는현실을반성하 며, 종교간의대화와화합을통해세계의평화를이룰것을다짐했다. 한국의불교전래 1634 주년을기념해열린이번대회에는주로불교계에서참석했고기독교, 유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등에서도일부종교지도자들이참석했다. 특히개신교에서는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백도웅 총무와한국기독교장로회박원근총회장이참석했다. 각종교별합창단의장엄한합창으로시작된이날개막식에서이날개신교를대표해축하메시지를전한백도웅목사는 종교는인간의역사를지탱하는힘이요평화의근원이지만, 오히려종교간의갈등으로분쟁이일어나고있는것이현실 이라며 이대회를통해대립을넘어공존의가능성을논의하고, 인간을행복하게하고역사를올곧게하는방법을찾았으면한다 고밝혔다. 해외에서는시리세나반다헤티아라치스리랑카자웨와테나푸라대학명예총장, 나와즈칸마르와트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의장, 예후다스톨프유대교 깊은신앙 대표등이참석했다. 공자의 77대직계후손인콩더반중국취푸시공상연합주석과달라이라마도초청받았으나콩더반은다른일정이생겨서, 달라이라마는한국정부의입국허가를받지못해불참했다. 주최측은이번행사를통해여러종교문명간의대화와협조방안을모색하고, 인류가당면한갈등과대립을 해소하고화해와평화를정착시킬수있는종교적대안을제시하며, 한반도및인류의화해와평화를위한 메시지를채택하는등의활동을할것이라고밝혔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등 하나로 24

25 06 문선명통일교총재구순연 오바마도축전

26 문선명통일교총재구순연 오바마도축전 :36 문선명통일교총재구순연 오바마도축전 입력 : 2009 년 01 월 30 일 21:22:38 문선명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 통일교 ) 총재의구순연에김정일북한국방위원장을비롯해각계의선물이대거답지해관심을모으고있다. 문총재의구순축하연은 90 세생일을하루앞둔 30 일경기도가평군설악면의통일교 천주청평수련원 에서신도등 3000 여명이참석한 가운데열렸다. 이날재계와정계인사가보내온화환과꽃다발이들어찼고, 북한김정일국방위원장은산삼 3 뿌리와장미와백합각각 90 송 이씩으로만든화환을보내왔다. 김위원장은문총재의생일때선물을보내곤했다. 김위원장이보낸 금박은박을밀대 모형과금관, 은관등은 천정궁 박물관에 전시돼있다. 축하연서두에는한승수국무총리가축전을, 국회의원 40 여명은화환과난, 떡등을각각보내왔다는사실이공지됐다. 미국의버락오바마 대통령과조지부시전대통령부부, 나카소네야스히로일본전총리등도축하메시지를전해왔다고소개됐다. < 박효순기자 > 문선명통일교총재구순연 오바마도축전 26

27 07 < 통일교회문선명총재 > 갈등으로얼룩진지구촌 참사랑 심다

28 < 통일교회문선명총재 > 갈등으로얼룩진지구촌 참사랑 심다 :28 갈등으로얼룩진지구촌 참사랑 심다 구순맞은문선명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창시자 주요발자취 독특한건강관리법 축하행사공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31일로 90회생일을맞는창시자문선명총재 ( 사진 ) 의평화의발자취와독특한건강관리법, 구순 ( 九旬 ) 축하행사등을언론에공개했다. 문총재는당대에세계 180여개국가에선교사를파견했으며, 한장소에서동시에 3만쌍의국제합동결혼식을집전하는등기네스북에오르내릴다채로운기록을보유하고있다. 이기록은한국에서창종한종교뿐아니라세계종교역사상유례를찾기힘들다. 종교창시자로서걸어온길 =1920년평북정주에서태어난문총재는 16세되던해부활절 (4월17일) 아침, 기도중홀연히하나님으로부터인류구원에대한천명을자각하고일평생공의의노정을걷기로다짐한다. 평양과부산동구범냇골에서기독교를기반으로한인류구원 사업을준비해오다 1954 년서울용산구청파동세계기독교통일 신령협회 ( 통일교회 ) 를창립하며본격적으로선교에나섰다. 교회는 순결한가정 을기치로 1961년 36쌍첫합동결혼식을시작한이래 72쌍, 124쌍, 430쌍, 777쌍, 1800쌍, 6000쌍등으로이어나갔다. 1992년엔서울잠실월드컵경기장에서 3만쌍국제합동결혼식을거행하는세계초유의기록을세우기도했다. 문총재는 1965 년일본을필두로해외선교의닻을올렸으며, 1972 년미국에발을들여놓음으로써세계선교를 본격화했다. 미국선교가한창이던 1976 년문총재의강연을듣기위해미전역에서워싱턴모뉴먼트에 30 만 인파가운집했다. 이보다 10 여년앞서마틴루터킹목사가 20 만집회를이끌었을뿐문총재가세운기록은아직도깨지지않 고있다. 당시 위하여살자 는주제의문총재강연은퇴폐와향락에빠진미국사회에도덕성회복운동의 < 통일교회문선명총재 > 갈등으로얼룩진지구촌 참사랑 심다 28

29 불을지피면서미국인들의마음을움직였다. 문총재는 년대남북통일의이념적대안으로승공사상과두익사상운동을주창했다. 1990년모스크바에서고르바초프당시소련대통령을만나공산주의의종언과새로운가치관을논하기도했다. 이후세계평화여성연합등세계적비정부기구 (NGO) 들을잇달아창설하며세계평화에앞장섰다. 이업적으로세계NGO연합으로부터 만국평화상 을수상했다. 문총재는초종교초국가연합 평화유엔 천주평화연합창설, 한일해저터널 베링해협해저터널추진, 국제교차축복결혼식등종교와인종의담을헐고인류를대가족으로묶기위한다양한사업을펼치며구순의나이도아랑곳하지않고국제적인평화운동을진두지휘하고있다. 1976년미국워싱턴모뉴먼트광장에서열린문선명총재강연회에 30만명이참석해인산인해를이루고있다. 독특한건강관리법 = 문총재는일평생하루 3시간안팎의토막잠을자는것으로도유명하다. 요즘도설교를 3시간이상지속해주변에서건강상만류할정도다. 젊은시절엔하루 18시간씩설교를강행해목청이굵어진것으로알려졌다. 이같은강인한체질은타고나기도했지만, 문총재가개발한 수수체조 라는기체조덕분이다. 두손을마주잡은채아령을들어올리는식으로한손은당기고한손은밀기도하고, 선채한쪽발을들어바깥으로젖히기도한다. 매일아침 15 20분씩 수수체조 를반복하면땀으로후줄근하게젖는다고. 이것은평소사용하지않는근육을움직여모든근육을유연하게하고, 혈액순환을돕는효과가있다. 팔순때만해도앉아서다리를올리면마치요가자세처럼목뒤로넘어갔다고한다. 지난해 89세고령에헬기추락사고를당했으면서도기적같이살아난것은이러한몸의유연성과무관치않다. 문총재는평소낚시를즐기지만육류와생선섭취는삼간다. 아침식사로는브로콜리와계란 야채수프 고 < 통일교회문선명총재 > 갈등으로얼룩진지구촌 참사랑 심다 29

30 구마 토마토가주메뉴이고, 평소된장찌개와청국장을즐겨먹는다. 가끔손자녀나교회간부들과함께외식으로자장면을먹으러가기도한다. 지금도전국의통반숫자를정확히기억할정도로기억력이비상하다. 가정연합관계자는문총재의기억력을 6남인문국진재단이사장이닮았고, 종교적영성은 7남인문형진가정연합세계회장이닮은것같다고전했다. 국내외주요구순기념행사 = 문총재와부인한학자총재는 30 일경기가평청평수련원에서국내외인사 1000 여명을초청해구순기념식과오찬행사를갖는다. 이어문총재내외는 31 일천정궁박물관에서 하나님해방권대관식 을마치고출국해, 2 월 1 일미국의뉴욕 맨해튼호텔에서세계주요국가지도자초청오찬과국제합동결혼식을집전한다. 이날합동결혼식은 120 개국 에서수천쌍이위성화상을통해동시에진행될예정이다. 구순을기념해 700쪽분량의화보집과특별강연선집, 자녀의서한모음집등 20여권의각종기념서적도출간된다. 교회창설이래수없이강단에선문총재는지금까지 300쪽분량의강연집 520권을남겼다. 서울청파동가정연합본부 1, 2층전시실에선문총재생애전시회가개최되고, 전국교구단위로다문화가정을위한축제와소외계층을위한다채로운봉사활동이펼쳐진다. 양창식가정연합한국회장은 구순을맞이하는문총재의생애는하나님뜻을향한집념의외길이었다 고 회고하고, 지금도평화세계구현을위해최일선에서한치의물러섬없이열정을다쏟고있다 고말했다. 정성수선임기자 < 통일교회문선명총재 > 갈등으로얼룩진지구촌 참사랑 심다 30

31 08 종교없는세상 을향한 ' 이단의험로 ' 53 년

32 종교없는세상 을향한 ' 이단의험로 ' 53 년 :24 지난 2007년 5월 15일부터 20일까지미국에서열린워싱턴타임스창간25주년기념식및평화통일국제지도자세미나에서문선명총재가강연하고있다. 새삼인류구원의문제가제기되는시대다. 미국에서시작된경제위기가미래에대한근원적불안을전세계적으로확산시키고있기때문이다. 공산주의가무너진지미처 20년이채되지않는시점에서자본주의에대한회의까지불러오고있다는데사태의심각성이있다. 말그대로 글로벌위험 (Risk) 상황이다. 인류를구원할수있는궁극적인평화의길은과연없는가. 다음글은문선명총재가창립한미국의워싱턴타임스창간 25주년기념식국제세미나참관기로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이발행하는월간신문 평화대사 2007년 6월호에실린글이다. 필자인당시의한국평화언론포럼회장은이글을통해문선명총재가걸어온삶의험로와그가지향하는인류구원의길을간명하게풀이하고있다. 해묵은글이지만오늘과같이어려운시대에새롭게음미해보자는뜻에서여기에다시올린다 < 편집자주 > * * * 모든종교인, 신앙인이유신론자라면무종교인 비신앙인은모두무신론자인가. 대단히소박한 ( 어쩌면유치한 ) 질문이아닐수없지만달리생각하면답은그리간단치가않다. 단순논리로하면무종교인 비신앙인은무신론자여야하는데신의존재를부정하지못하면서도, 이세상에대한신의섭리를의심하지않으면서도특정종교의신자가되지않는사람도얼마든지있을것이기때문이다. 나역시그쪽이다. 신의존재를부정하지못하면서도지금까지확신으로결론내리지못하고있는것은신에의한인간구원의문제이다. 종교만이신의뜻을구현하는매개인가. 종교아니고는, 신에대한믿음의제도적장치없이는인류는결코구원에도달할수없는가. 통일교의문선명총재가창립한 워싱턴타임즈 의창간 25주년기념국제세미나에참석하는동안나는그런구원의방식에대한담론이제기되기를기대했다. 우연이었을까. 신기하게도세미나에나온통일교측강사의강의에명백히 종교없는시대 라는표현이나왔다. 평화이상의실현-문선명선생, 그인간과이상 이라는강의의결론이그랬다. 문선명총재의궁극적지향점은종교없이도평화세계가구현되는시대에도달하는것이라는내용이었다. 신문창간기념세미나에왜신 종교 구원의문제가주제로서제기됐는가. 답은간명하다. 유수한미국일간지로서 의위상을확보한워싱턴타임즈는문선명총재의사상을빼고는창립의배경과오늘의지위가설명되지않기때문 이다. 신문창간일인 5 월 17 일아침호텔로배달된창간 25 주년기념특집판은큰활자로인쇄된편집인의짧은글이첫면 종교없는세상 을향한 ' 이단의험로 ' 53 년 32

33 을가득채우고있었다. 헌신과차별화 - 우리는워싱턴타임즈를미국의신문이라고부른다. 우리가가장크고부유하고드넓으며미국에서 가장중요한신문이기조차한때문만이아니라우리가인간의선과가치그리고최상의미국을반영하기때문이 다 - 창간 25 년동안에확보한영향력에대해편집인은그렇게짧지만강한언어로자신감을표현한것이다. 문선명총재는무엇을위해 진보 의바람이풍미하던시대에미국의심장부에 보수언론 의깃발을꽂았는가. 새삼되돌아볼것도없이워싱턴타임즈창간무렵 (1982 년 ) 은, 미국의정치기류로보나언론환경으로보나보수언론 이설자리가없는시기였다. 워싱턴스타 라는보수신문의파산이단적인사례였다 지미카터의집권이후그의유약한대소 ( 對蘇 ) 정책으로냉전구도에서미국의약화가드러나기시작했고결국미국의세계사주도에심각한회의가제기되고있었다. 그회의의중심지가바로워싱턴이었고그와같은기류를선도하는것이 워싱턴포스트 로대표되는진보언론이었다. 그러나 자유세계의미래가미국의손에달려있다는것을알고있는단한사람-문선명총재만이그패배주의적목소리를용인하지않았다 ( 문현진통일그룹세계재단이사장 ). 워싱턴타임즈의창간배경이다. 카터를단임대통령으로패배시킨공화당의레이건이대통령당선직후문선명총재에게보낸감사편지는워싱턴 타임즈의존재의미를확인시켜주는구체적사료로서가치를지닌다. 본인은금번대통령선거전에서귀하의신문사가본인을전폭적으로지원해준데대해심심한감사를표합니다 ( 중략 ). 미국이나아갈방향을정확히지적해주심을감사드리며본인의행정부는 ( 그지적을 ) 철저히실천해갈것입니다. 본인은앞으로도귀하의지원과자문을받을수있길바랍니다 문총재는레이건의바람대로레이건정부의우주방위전략 (SDI) 을적극지지 지원하고 85년에는제네바에세계적인학자들을모아소련제국주의멸망에대한예단 ( 豫斷 ) 적선언을하기도했다. 결국레이건이규정한 악의제국 소련은 91년에붕괴했다. 워싱턴타임즈가거둔성공의배경을이해하기위해서는새삼스럽지만종교인으로서사상가로서문선명총재가걸어 온시간들을반추해볼필요가있다. 워싱턴타임즈가창간된 5 월은통일그룹에각별한의미가있는달이다세인들이 통상통일교라고불러온세계심령협회가창시된때가 1954 년 5 월 1 일이기때문이다. 그후의세월은 말하자면현세의큰종교지도자가역설적이게도 종교없는시대 를향해걸어온험로였다. 카 톨릭이유태교에게이단이었듯이, 개신교가카톨릭에게이단이었듯이기성종교가던지는 이단 ( 異端 ) 이라는돌팔 매에피투성이가되며한길을걸어온것이다. 이번세미나에서강사는이를 통일을위한한길 이라고해설했다. 여기서의통일은단순히이념으로분단된한반 도의통일뿐아니라모든국가 종교 인종의통일을총괄하고종국에는인류구원을위한것이라는뜻이다. 통일원리 의해석으로는악의근원을 사탄 이브 로설정하고그결과로서공산주의를파악한다. 공산주의라 는그악의붕괴가레이건이라는정치권력과문선명이라는종교적의지의협력으로가능했다면워싱턴타임즈는그 권력과그의지를매개한언론이었다는해석이설득력을지닌다. 물론악의이념으로서공산주의는몰락했지만여전히구원의길은추상일뿐이다. 여기서문총재의 참가정 사상 종교없는세상 을향한 ' 이단의험로 ' 53 년 33


34 이등장한다. 어려운논리가아니다. 평화대사 들은익히숙지하고있는것이지만세계평화도, 인간의궁극적구 원도가정에서출발한다는사상이다. 부부부모자녀형제간의 참사랑 이야말로구원의길이라는뜻이겠다. 다시첫질문으로돌아간다. 과연종교없는시대, 종교없이도도달할수있는평화세계는가능할것인가. 참사 랑 으로충만한 참가정 은종교를대체할수있는사상이될수있는가. 분명한것은워싱턴타임즈창간 25 주 년기념식과국제세미나는그이상세계의도래에대한세계인의기원을모아확인하는자리였다는사실이다. 종교없는세상 을향한 ' 이단의험로 ' 53 년 34

35 09 < 교회관련기사 (27)> 통일그룹개발사업은선교를위한투자

36 < 교회관련기사 (27)> 통일그룹개발사업은선교를위한투자 :00 통일그룹개발사업은선교를위한투자 등록일 : :17 [ 통일그룹의개발사업 ] 여수 이어김포 북한으로확대 통일그룹이개발하는여수오션리조트. 통일교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 의사업영역은도대체어디까지일까. 꿈에그리던 2012 년여수엑스포유치를계기로통일그룹이새삼주목받고있다. 교육, 의료사업은물론이고레저, 관광사업으로까지영역을넓히고있기때문. 현재통일그룹이운영하는사업체만 20 여개에달할정도다. 통일그룹의최대역점사업은여수오션리조트와화양지구개발. 통일교가최대주주로있는일상해양산업은전남여수시소호동일대에여수오션리조트를개발중이다 년여수세계박람회의필수시설로꼽히는오션리조트에는 6 성급 43 층최고급호텔을비롯해 1000 명을동시수용하는컨벤션센터, 콘도, 워터파크등이들어선다. 또한화양지구는 2003 년재경부로부터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으로지정받은상태. 일상해양산업은 1000 만m2부지에 1 조 5000 억원자금을투입한다. 여수에는오션리조트를중심으로호텔, 해양마리나시설, 스포츠전지훈련장, 케이블카등다양한레저단지가들어서게된다. 업체측은개발사업을통해총 3 조 8800 억원경제효과와 2 만 6000 명고용효과를기대하고있다. 실제여수개발사업은통일교측에서도가장공을들이는사업으로알려져있다. 지난 2005 년 6 월통일교문선명총재가직접여수로건너가당시김충석여수시장등지역관련인 10 여명을초청해사업구상을밝히며 여수를그룹의메카로운영하겠다 고설명하기도했다. 용평리조트 강남센트럴시티지분인수 이뿐아니다. 통일그룹은경기도김포일대에항공산업단지를짓겠다는계획도세웠다. 지난 2007 년 10 월통일교가설립한미국 WTA 자회사인한국타임스항공이헬리콥터운항과정비, 개조, 부품생산등의사업을위한 1 단계건설공사준공식을가졌다. 한국타임스항공은사업비 1 억 2000 만달러를들여항공산업단지 23 만m2부지에연건평 2 만 6000 m2규모의 1 단계공사를지난 2006 년 6 월착수했다 년까지 1 억달러를추가로투입해나머지 10 만 5000 m2부지에부품생산동과교육훈련센터, 항공우주박물관등의시설을건립할계획이다. 이사업역시여수관광단지개발과같은맥락에서통일그룹의관광사업일환으로추진한다는방침이다. 황선조일상해양산업회장은 김포항공산업단지는아시아최대규모의항공산업단지로자리매김할것 이라며 관리, 수리를넘어헬리콥터제조기반까지마련해앞으로는헬리콥터로울릉도나다도해까지관광할수있는시대가분명올것 이라고밝힌다. 주요사업체매출 1 조원달해 서울여의도의마지막핵심지역으로꼽히는통일주차장부지개발역시통일교와무관치않다. 현재약 4 만 6000 < 교회관련기사 (27)> 통일그룹개발사업은선교를위한투자 36

37 m2 (1 만 4000 여평 ) 부지에초고층빌딩프로젝트가본격추진중이다. 시초는지난 2005 년 5 월. 당시통일그룹은다국적부동산개발회사인스카이랜디벨롭먼트사와 99 년간장기임대방식의계약을맺었다. 스카이랜은 2005 년 10 월이부지에총 1 조 5000 억원을투자해 70 층규모의초고층쌍둥이빌딩을세우는 파크원 (Parc1) 프로젝트 를발표했다. 시공은삼성물산건설부문이담당하고 2010 년부터 2011 년까지단계적으로완공될예정이다. 물론엄밀히말하면이프로젝트는통일그룹이직접추진하는사업이아니다. 피터왈리크노우스키스카이랜대표는 스카이랜과통일교는전혀무관하고단지스카이랜이통일교소유의땅을임대했을뿐 이라고밝혔다. 통일그룹관계자역시 여의도통일주차장부지개발은우리가다른업체와임대계약을맺은사업이기때문에사실상통일그룹과는무관하다고보면된다 라고설명한다. 이밖에강원도평창군에위치한용평리조트도사실상통일그룹소유다. 통일그룹계열사인세계일보는 2003 년 2 월쌍용양회로부터용평리조트지분 91.5% 를인수했다 년에는서울강남센트럴시티지분인수에나서기도했다. 통일그룹의영역확장은여기서그치지않는다. 각종언론과문화예술, 스포츠단체, 그리고교육기관까지소유하고있다. 신문사인세계일보를비롯해성남일화축구단, 리틀엔젤스예술단, 유니버설발레단등문화예술단체가모두통일그룹소속이다. 외국에도손길을뻗쳐미국에선워싱턴타임스, UPI 통신등의언론매체와브리지포트대학, 그리고북한에도평화자동차등사업체를갖고있다. 통일교본사는서울용산구청파동에있지만실상경기가평군설악면송산리일대는 통일그룹의요람 으로도불린다 년문을연통일교실버타운인 청심빌리지 를비롯해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와청심국제중 고교, 청심국제병원등다양한교육 의료기관이함께들어서있기때문이다. 수익은선교 NGO 사업재투자 막대한자금동원력을갖춘만큼통일그룹이진행하는대규모행사들도꽤많다. 대표적인게피스컵코리아축구대회 년부터통일교소속의선문평화축구재단이 200 만달러의우승상금을내걸고피스컵축구대회를진행중이다. 격년제로치러지는피스컵은 3 회대회까지모두한국에서개최됐지만 2009 년 ( 스페인개최 ) 부터는국외에서개최한다. 이런흐름을보면통일그룹이단순한교육, 의료사업에서관광, 레저, 문화사업으로방향을바꾸고있는점이눈에띈다. 통일교가이렇게다양한사업을추진하는이유는뭘까. 통일교의역사부터짚어보자 년서울성동구에서 세계기독교신령협회 로시작한통일교는 40 주년을맞은 94 년정식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으로바꿨다 년총선을앞두고서는천주평화통일가정당 ( 일명가정당 ) 을창당해정치, 사회교육사업에나서기도했다. 통일그룹이소유한강원평창군용평리조트. 통일교재단은엄밀히말하면종교단체지만사업영역이점차다양해지면서기업체성격을보여왔다. 금융감독원전자공시시스템에따르면통일그룹주요계열사들의 2006 년매출규모만 1 조원에달한다. 매출 2790 억원을기록한세계일보, 2179 억원매출을올린용평리조트 (2005 년 7 월 ~2006 년 6 월 ) 와함께선원건설 (1603 억원 ), 음료제조사인일화 (670 억원 ), 종합석재업체인일신석재 (403 억원 ) 등이주요사업체로꼽힌다. 외국에근거지를둔업체매출까지포함하면이를훨씬뛰어넘을것으로추산된다. 익명을요구한통일교관계자는 주로외자를유치해사업을진행하는데사업을통해거둔수익은보통선교나비정부기구 (NGO) 사업에재투자한다 고설명한다. < 교회관련기사 (27)> 통일그룹개발사업은선교를위한투자 37

38 [ 출처 - 매일경제, ] < 교회관련기사 (27)> 통일그룹개발사업은선교를위한투자 38

39 10 " 종교 인종의벽허물고세계평화이룩하자 "( 통일교회문선명총재님 )

40 " 종교 인종의벽허물고세계평화이룩하자 "( 통일교회문선명총재님 ) :58 " 종교 인종의벽허물고세계평화이룩하자 " 9 11 이후종교간화합과관용이세계적관심사로부각되면서세계정치 종교지도자들이모여상호이해와협력을모색하는자리가잇따라마련돼주목된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 ( 회장지관스님 ) 가 8 14일서울과강원도일원에서여는 2006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와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IIFWP 회장곽정환 ) 이 10 14일서울과가평일원에서개최하는 2006 세계평화정상회의 가그것. 한국종교계가주도하는두국제회의는종교간장벽을허물고세계평화라는인류의소망에한발짝다가서는초석이될것으로기대된다 세계종교지도자대회 = 한국불교전래 1634 주년을기념해열리는대회는종교지도자들이머리를맞대고인류평화와화합, 자 연과의공생을위한종교적대안을마련하는자리다. 여러종교간의대화와협조모색, 바람직한미래사회비전제시, 세계화시대 의종교역할등이주요의제로논의된다. 종교 인종의벽허물고세계평화이룩하자 ( 통일교회문선명총재님 ) 40

41 이번대회에는불교 유교 도교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대표등이고루참석한다. 또원불교, 천도교, 대순진리회등민족종교지도자들도참가한다. 쿵더반 ( 孔德班 공자의 77세손 ) 중국취푸시공상연합주석, 후이촨대만포광산사도감원장, 팔롭타이아리세계불교연맹 (WFB) 사무총장, 예후다스톨브유대교지도자, 메이어아비히독일에센대교수등 30여명의해외종교지도자가참가한다. 국내에서는지관조계종총무원장, 운산태고종총무원장, 경산천태종총무원장, 최근덕성균관장, 강원용목사, 박경조성공회주교, 백도웅목사, 함세웅제기동성당주임등 500여명이자리를함께한다. 참가자들은대회기간롯데월드호텔사파이어룸과양재동관문사, 제기동성당등에서 13차례회의를통해종교간공통분모를찾아내고평화공존의실천방안을모색한다. 또서울명동성당, 원불교원음방송, 강원도백담사등타종교시설도방문해종교간공감대를넓힐계획이다. 당국의비자거부로한국행이좌절된티베트영적지도자달라이라마는주최측에보낸축하메시지에서 인류의모든종교적전통은세계평화의진정한바탕인내적평화로이르는길 이라며 이런선물을잘간직해평화의소망으로후세에전할것인지, 후세의미래를위협하는무기로바꿀것인지는우리의선택에달려있다 고종교간화합을강조했다. 개막식은 8일오후 3시, 폐막식은 14일오후 4시각각서울올림픽공원펜싱경기장에서열린다 세계평화를위한정상회의 =IIFWP는이미오래전부터한국을기반으로종교와인종간장벽을허무는사업을주도적으로펼쳐왔다. 평화는서로단합된노력과협력을통해이루어진다 는진리를중시한 IIFWP 창시자문선명총재제의로 1987년첫대회가열린이래올해로 19년째를맞았다. 그동안레흐바웬사전폴란드대통령, 호세라모스오르타전동티모르외무장관등노벨평화상수상자들과무프티무함마드이슬람성직자등세계평화에기여해온수백명의정치 종교계지도자들이참여해평화 공존방안을진지하게모색했다. 왼쪽위부터시계방향으로무하마네우스마네, 에유프가니츠, 후이촨, 예후다스톨브 평화창건과인류발전 이라는주제로열리는이번회의에는에유프가니츠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대통령, 무하마네우스마네전니제르대통령, 푼살마긴오치르바트전몽골대통령, 타헤르마스리전요르단총리, 파르메즈마조르스웨덴무슬림협의회장, 야코브블랭에디무천상교회코트디부아르지도자등 150여개국, 300여명의각계지도자들이참가할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중동 동북아 베링해협을통한혁신적평화접근방안 지속가능한인간개발 가족 종교 교육 시민사회의중대함 선치 ( 善治 ) 와평화구축, 인간개발과의관계 등 8개세션으로나누어평화방안을다각도로모색할계획이다. 특히가정붕괴와몰락을초래하는사회 문화 경제적문제와인종과종교간갈등등지구촌당면과제에대해각국이공동보조를취해나간다는청사진도제시된다. 회의참가자들은경기가평시송산리에건립된천주평화연합 (UPF) 의평화역사박물관을방문해세계적종교지도자인문총재의평 화사상과업적도돌아볼예정이다. 개막식은 11 일오전 9 시서울광장동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열린다. 종교 인종의벽허물고세계평화이룩하자 ( 통일교회문선명총재님 ) 41

42 정성수기자 종교 인종의벽허물고세계평화이룩하자 ( 통일교회문선명총재님 ) 42

43 11 [ 헤드라인뉴스 ] 베링해협프로젝트, 평화메시지보도

44 [ 헤드라인뉴스 ] 베링해협프로젝트, 평화메시지보도 :46 [ 헤드라인뉴스 ] 베링해협프로젝트, 평화메시지보도 등록일 : :57 22.jpg(232.11Kb) 11.jpg(232.34Kb) 33.jpg(197.29Kb) 44.jpg(222.84Kb) 헤드라인뉴스 12 월호보도 [ 헤드라인뉴스 ] [ 헤드라인뉴스 ] 베링해협프로젝트, 평화메시지보도 44

45 12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미국사회일대충격 [ 통일교문선명총재 ]

46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미국사회일대충격 [ 통일교문선명총재 ] :33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 미국사회일대충격 /13 뉴스메이커 774 호 미국역사상최대규모 동양서온새가르침에신선한충격 워싱턴모뉴먼트광장에모인사람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 이하통일교 ) 은세계적인종교가됐다. 전세계 150 여나라에서신앙한다. 우리나라에서창종된종교뿐아니라현대 에일어난종교중유례를찾기힘들다. 문선명총재는일찍부터국내라는울타리를버렸다. 교회의틀이막갖춰질때부터미국과일본에과감히선교사를보냈다 년대말한 국의어떤종교도엄두를내지못했던일을시도한것이다. 지금과같은통일교발전의기틀은그렇게시작한미국과일본선교에서비롯 했다고보아도좋을것이다. 목사들사이원리공부붐일어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미국사회일대충격 [ 통일교문선명총재 ] 46

47 1960 년대초이미일본과미국, 독일을거쳐유럽각지에까지통일교회가세워지기시작했다. 문총재는이윽고 1971 년직접미국으로가 본격적인활동을펼친다. 도미직전까지국내에서통일교가치중하던것은초교파운동. 교파를초월해서교회의일치와발전을위해출발 한기독교운동이다. 그중심축이된것이통일교다. 통일교한국협회장을지낸선문대학신학대학원이재석초빙교수의이야기다. 처음통일교에대한기성교단의반대는그다지크지않았습니다. 초창기장로교와감리교목사들도노방전도대회를우리와함께여는분위기였습니다. 1960년대후반부터초교파운동을시작해교회간화해운동이일어나자반발이커졌습니다. 기성교단에서는개신교에침투하기위한전위부대가초교파운동이라고보고본격적이고조직적으로반대하기시작했습니다. 진보적인입장을취하던기독교장로회의고 ( 故 ) 강원룡목사는 1968 년 9 월 9 일과 10 일아카데미하우스에서개신교와통일교의대화를주선 했다. 개신교목사 40 명과문선명총재를포함한통일교목회자 10 명이모여통일교교리인원리공부를함께했다. 이사건은개신교내부 에격렬한파문을일으켰다. 기성교회의일부인사들은항의를넘어회의장에오물을던지는사건까지벌였다. 고강원룡목사가내린결론은더큰파장을불러왔다. 한마디로통일교가이단이아니라는것이다. 통일교와개신교는성경해석의차이가 있을뿐이라는주장이다. 이는통일교를이단으로규정하던기존교단과는다른견해였다. 그다음해통일교에대한신학적비판은새로운단계에접어든다. 당시연세대학교신학대학장이자연합신학대학원장이던서남동교수는 1969 년새문안교회에서열린 한국기독교의소종파운동 이라는주제의신학강연에서충격적인주장을펼쳤다. 원리강론이미래의비 전을제시하는신학서라는내용이다. 한국의지도적인신학자가통일교교리에대한신학적정당성을주장하고나서자개신교단의불같은반발이일어났다. 서교수는그래도 주장을굽히지않고거듭한국적신학으로서통일교의가치를발표했다. 결국그는퇴직한다. 통일교가한국교회의화제로등장하면서목사들사이에원리공부의붐이일어났다. 그와함께조직적이고격렬한반대운동이시작됐다. 문 선명총재는그반대에대해일일이대응하지않고개신교회의노회장급이상지도급목사 300 여명에게기독교성지순례를시켜주었다. 그러자기성교단에서는성지순례참석자중 74 명의목사를제명처분하고나섰다. 이재석초빙교수는당시의전후사정을이렇게말했다. 개신교측에서초교파운동과통일교에서실시하는모든행사에참여하지말것을지시했습니다. 접촉자체를원천봉쇄했습니다. 통일교는이후활동방향을사회적인쪽으로치중하게됩니다. 미국에통일교가건너간초기에는각종교의종교학자와교수를초빙하여국내에서못다한기독교종교연합운동을시작합니다. 차라리세계문화와기독교의중심지에서시작하자는취지였습니다. 미국보수교단도경계심가져 이런복잡한국내사정을뒤로하고미국으로건너간문총재는뉴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미국사회일대충격 [ 통일교문선명총재 ] 47

48 욕근교에통일신학대학원을설립하는일로첫발을내디뎠다. 종교 는진리를바탕으로하는것이므로진리부터확산시켜나가야한다 는뜻이었다고한다. 당시미국은격렬한문화적충격을경험할때였다. 케네디대통령 암살, 킹목사암살, 냉전체제, 베트남전을거치면서미국적인가치 에대한일대혼란이일어난것이다. 미국불교잡지트라이시클창 간자헬렌트루코프는그때의분위기를이렇게말한다. 하루아침 에옳다고믿을만한것들이사라졌습니다. 젊은이들이느끼는혼돈 과절망감이너무커서문화적인반발이일어났습니다. 한가지명 백한기준이생겼는데미국적인것과아닌것을나누어서보게됐 습니다. 젊은이들사이에서는미국적인것은악, 미국이외의것은 선. 이런이분법적인표현이거침없이쏟아졌고특히동양에서온 것은무조건좋은것이라는생각도널리퍼지고있었습니다 년 9 월 18 일미국의워싱턴모뉴먼트광장에서 30 만명의인파가모인가운데가정연합문선명총재가설교하고있다. 통일교는이렇게절망스러운상황의틈바구니를파고들었다. 미국의건국이념인기독교정신으로돌아갈것과하나님의창조원리로복귀 할것을주장한것이다. 일반신자를대상으로한전도보다기성목사와신학자중심으로교리를전파하던통일교가미국사회에일대충격을준사건이일어났다 년 9 월 18 일미국수도워싱턴광장에서미국역사상최대규모의집회를열었다. 이전까지기록은 1963 년같은자리에서킹목사가 20 만명을대상으로한집회였다. 통일교집회에모인군중은 30 만명. 이기록은지금까지도깨지지않고있다. 동양에서온새로운가르침과가치관에대한관심이높았던탓이다. 가족의붕괴와미래희망의상실에따른정신적혼돈상태에대해순 결과가정의가치를앞세운통일교의강력한메시지는충분히매력적이었다. 통일교강창식미국총회장이전하는당시의분위기는이렇다. 경제적풍요속에서도꿈과희망을잃어버린미국젊은이들에게문선명총 재의가르침은새로운내용이었습니다. 문총재는기독교의사명과책임을강조하고기독교의부활과재생을주로주장했습니다. 당시모인 30 만명은각교단의목사가종파를초월하여데리고온신도들입니다. 이것이미국사회에엄청난반응과신선한충격을주었습니다. 통일교는이후몇차례더대형집회를열었다. 일거에미국과세계에통일교의존재를알리는데성공했다. 그러나워싱턴집회의성공은 미국보수교단의경계와의심을불러일으켰다. 통일교는이후미국보수사회의집중적인견제를받는다. 갖가지의혹이무차별적으로제기됐다. 결국 1980 년부터통일교성금의이자소 득에대한탈세혐의로재판이시작됐다. 표적수사논란과종교의자유에대한갖가지문제가제기된가운데유죄판결이내려졌다 년 문총재는 1 년 6 개월의실형을선고받고교도소에서복역한다. 생애여섯번째의옥살이였다. 강창식회장이전하는미국보수교단과의충돌에대한견해는이렇다. 보수적인주요교단에서는문총재의가르침을진보적이라고보고있습니다. 전통적인가치관과다른점이많기때문입니다. 그들이성서의문자적틀에갇혀있을때통일교는기독교의새로운희망과비전을제시하고나선것이고, 그들은이것이비성서적측면이있다고비판한것입니다. 지금은통일교원리강론이성서의핵심철학이라는점에대한이해가널리전달됐습니다. 문총재의재판이후통일교는활동방향을전환한다. 특히평화운동에많은공을들였다. 그상징적인사건이 1991 년 12 월평양에서김일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미국사회일대충격 [ 통일교문선명총재 ] 48

49 성주석과만난일이다. 수십년간승공운동에앞장섰고교리에공산주의가사탄의편이라는것을분명히밝히고있는통일교의지도자가북한을방문한것은당시 로서는충격적인사건이었다. 특히당시핵사찰문제를둘러싸고남북관계가냉각기에접어들었고미국의대북압력이거세던때라세계의 주목을끌었다. 1991년평양서김일성만나문총재는김주석과단독면담한자리에서자신의통일관을피력했다고한다. 이후통일교는종교가아닌기업의형태로북한에진출했다. 합작회사인평화자동차를설립하여자동차를조립생산하고평양에서호텔을운영하며문총재의고향인정주에평화공원을세우는일을진행한다. 통일교와북한당국의밀월은김일성주석의사망과당시세계일보사장을맡고있던박보희씨의조문파문으로잠시주춤한상태였다가회복됐다. 통일교에서는남북관계를성서속의카인과아벨의관계로보고있다. 결국참사랑으로통일을이루어야할형제라는인식이다. 통일교는대부분종교가창종과정에서겪는수난과박해를겪었다. 고려대학교사회학과노길명교수는 통일교의발생은우리사회의구조와그변화를능동적으로대처하지못한기성교회에서원인을찾을수있다 고규정했다. 통일교는한국에서태어나한국적특성을고스란히갖추고있지만그것을무기로세계에진출하는데일단은성공했다. 세계인들이받아들일수있는새로운가치를제시하는데성공했다고보아도좋을것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공식명칭에는통일교가지향하는가치와이념, 교리체계가담겨있다고보아도과언이아니다. 그들이가정연합문선명총재가북한을방문해김일성주석과포옹하고있다. 무엇을주장하는지, 그리고세상과미래가받아들일수있는보편적인가치가담겨있는지꼼꼼히살펴보는일이필요한때다. // [ 한국의창종자들 ] 워싱턴 30 만집회미국사회일대충격 [ 통일교문선명총재 ] 49

50 13 참사랑의삶

51 참사랑의삶 :57 여러분의삶은참사랑에미쳐서사는삶이어야합니다. 아담과해와이상, 예수님이상하나님을사랑할수있는삶을살아야합니다. 철저하게참사랑의실천을통해몸과마음을완전통일하고, 참사랑의상대권을찾아세워야합니다. 다시말해서이땅에서참된가정을완성시켜참된부모, 참된부부, 참된자녀, 이렇게적어도 3대가함께참사랑을중심한삶을살다가들어가야하는곳이천국입니다. 그렇다면참사랑이란어떤사랑입니까? 참사랑의본질은위함을받겠다는사랑이아니고남을위해, 전체를위해먼저베풀고위해주는사랑입니다. 주고도주었다는사실자체를기억하지않고끊임없이베푸는사랑입니다. 기쁨으로주는사랑입니다. 어머니가자식을품에안고젖을먹이는기쁨과사랑의심정입니다. 자식이부모앞에효도하며기쁨을느끼는그런희생적사랑입니다. 하나님의인류창조가그랬듯이아무것도돌려받겠다는기대나조건이없이베푸는절대 유일 불변 영원적사랑의창조입니다. 여러분, 참사랑은공익성을띤무형의질서요, 평화요, 행복의근원입니다. 참사랑은우주의원천이요, 우주의중심, 우주의주인을만들어주는사랑입니다. 참사랑은하나님의뿌리요, 의지와힘의상징이기도합니다. 따라서참사랑으로맺어지면영원히같이있어도좋기만하고, 우주는물론하나님까지도끌면따라오는사랑입니다. 타락의후예된인간이만들어놓은국경의벽, 인종의벽, 더나아가서는종교의벽까지도영원히종식시킬수있는힘이참사랑의가치입니다. 따라서천국들어가는절대필요조건이바로 위하는삶, 즉참사랑의삶이라는것입니다. 그런데오늘우리가몸담고있는현세계를보십시오. 극도의이기주의덫에걸려물질만능을외치며가치관을상실한채향락과부패의늪에빠져있습니다. 알코올중독자가우글거리고, 마약이나프리섹스도모자라이제는근친상간이라는짐승보다못한만행들을자행하고도버젓이고개를들고살아가고있습니다. 여왕격의여자, 할머니격의여자, 어머니격의여자, 아내격의여자, 딸격의여자, 이렇게모든단계의여자들을유린하고도세상을활보하는인면수심의작자들이범람하는세상이되고말았습니다. 부부들끼리남편과아내를서로바꾸어가며즐기는스와핑이기승을부리고있는세상이되고말았습니다. 이런작태야말로인륜도덕파괴의극치이며타락행위의단말마적모습임에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창조이상세계완성은꿈도꿀수없는지상지옥이되고말았습니다. - 천주평화통일왕국창건의참된주인 Ⅰ 중 - 참사랑의삶 51

52 14 통일교문선명총재 - 하나님은이성성상의본체적존재이시다

53 통일교문선명총재 - 하나님은이성성상의본체적존재이시다 :15 아담과해와의타락이후하나님은사탄이만들어놓은감옥에갇혀서꼼짝달싹못하고있었다. 하나님은사탄이만든감옥에갇혀영어 ( 囹圄 ) 의몸이되셨고, 사탄의졸개들은그감옥을지키고있었다. 하나님은어쩔수없이스스로빛가운데숨어계시며숨도제대로쉬지못하고계셨다. 하나님이지상에살고있는인간들에게전달할내용이있으면천사를통해서전달하고, 인간도하나님께보고할내용이있으면천사를통해서보고해야되었다. ( ) 감옥에갇혀계신하나님께최고로기쁜소식은 해방과석방 이다.( ) 하나님이해방돼야인간도해방될수있다. 문선명선생은 2001년 1월 13일, 하나님왕권즉위식 을통해서하나님께해방과석방을안겨주셨다. 아담과해와의타락이후수천만년동안감옥에서신음하시던하나님이해방과석방을맞아완전히자유의몸이되신것이다. 그동안베일에쌓여있던하나님의본체가지상에그모습을드러낼수있게되었다. 하나님의본체가세상에모습을드러낼수있게되자, 선생은 절대신본주의, 절대인본주의, 절대물본주의시대 를선포하셨다.( ) 하나님의 4대주류속성을토대로밝혀진것이절대신본주의다. 절대신본주의를토대로절대인본주의가나오고, 절대신본주의와절대인본주의를토대로절대물본주의가나온다. 선생은먼저절대신권을인정하고, 절대신권을바탕으로절대인권을인정하며, 절대신권과절대인권을바탕으로절대물권을인정해야한다고하신다. 지금까지는절대신권이인권과물권에무시당한적이있었다. 인권도물권에의해서무시당한적이있었다. 이제는절대신권을인정한토대위에절대인권을인정하고, 절대인권을인정한토대위에절대물권을인정할때이다. 선생은 절대신본주의, 절대인본주의, 절대물본주의시대 를선포한기대위에하나님을본체적존재로, 인간을실체적존재로, 만물을형상적존재로규정하셨다. 하나님이본체적존재라는것은무엇을의미하는가. 첫째로하나님은이성성상의본체적존재로계신다는것이다. 하나님은성상과형상의이성성상과남성과여성의이성성상의중화와통일의본체이시다. 하나님을인간과구분하기위해서하나님의이성성상에는 본 ( 本 ) 자를넣어서표기한다. 그래서하나님은본성상과본형상의이성성상의중화와통일의본체이시고, 본남성과본여성의이성성상의중화와통일의본체이시며, 피조세계에대해서는본성상적본남성격주체로나타나신다.( ) 하나님의 4대주류속성을중심삼고볼때, 하나님은사랑의본체이시며, 생명의본체이시며, 혈통의본체이시고, 양심의본체가되신다. 하나님은진리의본체이시며, 이념의본체이시고, 원칙의본체가되신다. 하나님은힘의본체이시며, 참의본체이시고, 선의본체가되신다. 하나님은지 정 의의본체이시며, 말씀의본체가되신다. 하나님은아담과해와의본체이시며, 동시에삼대주체사상의이상적본체가되신다. 하나님은만유의본체로서모든존재의뿌리가되시며, 모든것은하나님으로말미암아되어졌다. 둘째로이성성상의본체이신하나님은무형으로그실체가없으시다.( ) 이성성상의본체이신하나님은지상에서뿐만아니라영계에서도그실체가없으시다. 하나님은지상과영계에서무형으로존재하신다.( ) 그래서하나님은지상에서그본체가보이지않고영계에서도그본체가보이지않는다.( ) 인간이눈에힘이보이지않는것과같이에너지의본체이신하나님은영계에서도보이지않는다. 통일교문선명총재 - 하나님은이성성상의본체적존재이시다 53

54 하나님의본체가인간의눈에보인다면하나님을서로빼앗겠다고싸울것이다.( ) 210억광년이걸려도끝에도달할수없을정도로광대한대우주를지배하기위해서하나님은일정한형체를갖지않고무형으로존재하신다. 좁은바늘귀도마음대로오고갈수있을정도로작은존재로계시기위해서도하나님은무형으로계신다. 이처럼하나님은크다면무한히크고작다면무한히작은본체적존재로계시기위해서무형으로존재하신다. 셋째로이성성상의본체로계시는하나님은무형으로계시기때문에우주를상대로자극을느끼지못하신다. 같은것끼리는자극이없는것처럼마음자체만가지고는아무리자극을해도느낌이없다. 상충된것이나타나야서로에게자극이온다. 더운물에는더운물이아니라찬물이합해져야폭발하는것과같은이치다. 감각기관을가지고주체와대상이자극을느끼기위해서는반드시체를입은두존재가나타나야한다. 이성상상의본체이신하나님은혼자하나되어있기때문에자극을느끼지못한다. 그것은사람이눈을깜박거릴때의식하지않으면깜박거리는것을느끼지못하는것과같다. 청진기로들으면고동소리가나는심장의박동소리를듣지못하는것과같다. 가래침이나올때도로삼켜도더럽지않은이치와같다. 그것은내몸과눈이, 내몸과심장이, 내몸과가래침이서로하나되어있기때문이다. 하나님도성상과형상의이성성상, 남성과여성의이성성상으로되어있지만혼자하나되어있기때문에느끼지못하는것이다. 넷째로이성성상의본체로계시는하나님은체 ( 體 ) 가없으시기때문에실체세계를지배할수없다. 무형으로계시는하나님은실체세계를지배할수도없고, 실체세계에대해서주관성을행사할수도없다. 실체세계는실체를가진존재가주관하는것이원칙이기때문이다. 하나님도체가없으면광활한심천 ( 深天 ) 의세계에서혼자지내야한다. 하나님도무형으로만존재하시면홀로외로움에지쳐서의미없는나날을보내야한다. 하나님이이성성상의본체로계시지만실체세계에모습을나타내기위해서는반드시인간의체를쓰셔야된다. 하나님이감각기관을통해서 자극을느끼기위해서는인간의체를쓰셔야한다. 하나님이실체세계를주관하기위해서도인간의체를쓰셔야한다. 하나님은당신의본체 를닮은실체인간을통해서체를쓰셔야한다. 그렇지않으면하나님은천상과지상에서개념적인존재로홀로머물러있어야한다. 그래서하나님은당신의이성성상의본체를닮은실체로서아담과해와를창조하셨다. 하나님은아담과해와를통해서실체세계에그본체를 드러내신다. 인간창조는하나님이실체세계에모습을드러내기위해서, 영적부모이신하나님이실체부모가되기위해서, 감각기관을통해서 자극을느끼기위해서, 그리고형체를가진인간과만물을주관하기위해서다. 통일교문선명총재 - 하나님은이성성상의본체적존재이시다 54

55 15 흑백인종문제종지부, 예언적중어디까지 - 통일교문선명총재

56 흑백인종문제종지부, 예언적중어디까지 - 통일교문선명총재 :23 사진설명 : 문선명총재는닉슨대통령과백악관에서회담을갖고 " 미국은용서의정신으로뭉쳐야한다. 미국은사랑 의정심으로뭉쳐야한다 " 며미래를향한국정방향을제시했다. 미국역사상첫흑인대통령이탄생했다는소식이전세계메스컴을통해전해졌다. 하지만인종차별철폐될것이며, 전세계가하나가될것이라고주장해온그 (?) 에대해서는아무런보도가없었다. 45 년전 1963 년마틴루터킹목사가 나에겐꿈이있습니다 라는연설을높이평가하고있을뿐이다 년 ~70 년대당시인종차별이극에달했다고한다. 흑인화장실, 백인화장실은있었으나, 유색인은화장실조차사용 할수없었다 고미국을방문한박보희회장의당시증언이다. 이같은인종차별을피해미국떠나는인파가속출할때문선명총재는인종차별주의자들을상대로 ' 미국사회가인종 차별의족쇄속에살고있다 ' 고소리높여외쳤다. 문총재는 1975 년 12 월국회초청강연회에서 " 흑백문제가그것이요. 마약문제, 가정파탄, 공산주의가가장큰문제될 것 " 이라며 " 개인주의인생과가치관으로가정과국가와세계를보게된다면하늘의심판을면치못할것 " 이라고경고했 다. 흑백인종문제종지부, 예언적중어디까지 - 통일교문선명총재 56

57 문총재는백인들사이에서놀림을받고도크게웃었다고한다. 그리고그들에게당신들이갖고있는화폐 ( 미국달러 ) 를보라 "In God We Trust"( 우리가믿는하나님앞에서 ) 하나님의사랑으로하늘의사명을실천하라미국땅에팽배한인종차별과지나친물질주의, 초강대국으로서의교만과마약과폭력, 죄와허물을벗고회개하라며그들에게감동을준일화이다. 문총재는세계적인정상들과만날때마다미래를내다봤다. 아이젠하워전미국대통령을만나서도문총재는이시대에가장중대한세계적난문제는 공산주의몰락 인종차 별해결책 청소년퇴폐와윤락근절등을제시했다. 특히닉슨미국대통령과의백악관면담에서는 미국은용서의정신으로뭉쳐야한다, 미국은사랑의정신으로뭉 쳐야한다 고문총재는예언했다. 이예언은지난 9.11 테러 (2001 년 ) 발생당시문총재님의예언적중되었다며이라크전쟁은사랑과용서를통해 UN 결 의를미국이따랐어야했다고전문가들이말한다. 이같은주장은 1974 년과 75 년두차례걸쳐미국국회의사당에서, 1976 년워싱턴에서 30 만명을대상으로 ' 미국의건국정 신으로하늘뜻성사의선봉이되어야한다 ' 고강연문에서도드러났다. 40 년이지난오늘, 오바마미국대통령은 진보적인미국과보수적인미국이따로있는게아니라하나의미합중국이 있을뿐이다 며 흑인의미국, 백인의미국, 라틴계미국, 아시아계미국이따로있는게아니라하나의미합중국만 이존재할뿐 이라며인종차별의종지부를찍었다. 앞으로 전세계가하나될것 이라는문총재님의예언이언제이루어질것인지에대해서도많은학자들이궁금증 을자아낼것이다. < 경기남부 > CIGn 이남준기자 흑백인종문제종지부, 예언적중어디까지 - 통일교문선명총재 57

58 16 인종 종교초월지구촌대가족이루자 [ 통일교문선명총재 ]

59 인종 종교초월지구촌대가족이루자 [ 통일교문선명총재 ] :03 인종 종교초월지구촌대가족이루자 문현진 UPF 의장필리핀서평화축제개최 천주평화연합 (UPF) 문현진의장부부 ( 뒷줄오른쪽 7 번째 ), 마틴루터킹 3 세 ( 5 번째 ) 등각 국평화운동가들이지난 12 일필리핀마닐라리살공원내그랜드스탠드에서열린 지구촌평 화축제 에서세계평화를기원하며촛불기도를하고있다. 세계젊은종교지도자들이손을맞잡고지구촌평화운동에나섰다. 한국에서출범한민간국제평화기구인천주평화연합 (UPF 공동의장문현진, 곽정환 ) 은지난 12일필리핀마닐라리살공원야외무대인그랜드스탠드에서 40개국 20만명의평화운동가, 마닐라시민이참가하는대규모평화집회를개최했다. 하나님아래인류는한가족 을주제로열린 글로벌피스페스티벌 2007 에는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창시자인문선명총재의 3남문현진 UPF 의장과마틴루터킹목사의아들마틴루터킹 3세를비롯해호세데베네시아필리핀하원의장, 알프레도림마닐라시장, 마니파키아오필리핀복싱영웅등이참석해평화열기를뿜어냈다. 문의장은워싱턴타임스와 UPI의모회사인 뉴스월드커뮤니케이션 회장으로유엔과중동등지에서국제평화문제해결등왕성한활동을펼치고있으며, 킹3세는 리얼라이징더드림 재단의회장으로미국내비폭력사회변혁운동을이끌고있다. 행사가끝날무렵글로리아마카파갈아로요대통령이예고없이방문해각국평화지도자들을격려했다. 인종 종교초월지구촌대가족이루자 [ 통일교문선명총재 ] 59

60 문의장은특별강연에서 유엔은극빈층감소, 에이즈확산방지, 보편적초등교육제공등 2015년까지 8개항목의새천년개발목표를제시하고모든국가의힘을필요로하고있다 며 이번대회는세계평화운동과유엔의새천년개발목표이행을위한전지구적지지를이끌어내기위해열렸다 고말했다. 그는또 이번지구촌평화축제를통해세계젊은이들을교육하는새로운비전을제시하고자한다 며 인종과문화, 국경의장벽을넘어인류가형제자매로서로사랑하게될때항구적평화가가능하다 고역설했다. 문현진의장킹 3세는축사에서 인류는한가정이며, 하나님께서주신만물만상과인간의생명을영위하게하는환경을보전해야할책임을다시한번일깨워야한다 며 멸망의무기가재창조의쟁기로대체되는새로운글로벌시대에우리가용기와결의를가지고도전한다면 ( 유엔의 ) 새천년개발목표는반드시이뤄질것 이라고강조했다. 베네시아하원의장은 종교간평화없이국가간평화가있을수없다 면서 각사회의온건세력을강화해폭력과테러가발붙 이지못하게하자 고말했다. 참가자들은이날행사에앞서마닐라로사스거리에서평화행진을했으며, 필리핀젊은이와부부등 2 만여명이순결을다짐하는 순결서약식 을갖기도했다. 식전행사로필리핀전통음악과춤이선보여무대를후끈달궜다. 특히대회전날 1 만여명의참가자들 ( 필리핀 39 개대학, 100 여개지역단체자원봉사자포함 ) 은 마닐라선셋 으로유명한마닐라 만을돌며수 t 가량의쓰레기를수거했다. 필리핀회원들은대회가끝난뒤에도수주동안더쓰레기수거작업을펼칠예정이다. 주최측은필리핀평화축제가 21 세기평화운동의새로운모델을제시한것으로평가하고, 내년에는전세계대륙별로정부와민간기 구가함께하는 100 만명평화운동을전개하는등지구촌평화구현에앞장서기로했다. 정성수종교전문기자 인종 종교초월지구촌대가족이루자 [ 통일교문선명총재 ] 60

61 17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 통일교문선명총재 ]

62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 통일교문선명총재 ] :00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형제여다시만나요. 유교 ( 儒敎 ) 가전종목에서돌풍을일으킨가운데 2007 초종교평화스포츠페스티벌 (IPSF) 이지난 10일폐막됐다. 세계문화체육대전 일환으로열린 2007 IPSF 는말그대로대회가아니라축제의장. 세계종교인들이 9일동안만국언어인스포츠를통해종교간화해와우정을꽃피우며평화의다리를놓았다. 올해제4회스포츠제전에는 52개국 11개종단에서선수 임원등 1500여명이참가해축구육상테니스등 7개종목에서열전을벌이며한마음을이뤘다. 주요경기하이라이트 = 미국 ( 기독교 ) 과이라크 ( 이슬람교 ) 가맞붙은 8강전은경기초반부터불꽃이튀었다. 주최측은만일의사태에대비해경찰병력까지배치해놓았다. 요르단난민으로구성된이라크팀은서로적대관계인수니파와시아파, 기독교신자들이한팀을이뤄난생처음으로중동밖으로나왔다. 이들은미국과열전을펼친끝에 4 대 1 로낙승했다. 득점을위해치열하게다투긴 했지만, 경기가끝난뒤에는두나라선수들이서로껴안으며우의를과시해관중을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 통일교문선명총재 ] 62

63 흐뭇하게했다. 이라크팀은이어유교대표로나온대만의국립타이베이체육대축구부를맞아 2대 0으로누르고 4강에진출하자경기장도없이연습한설움이복받쳤던지서로붙들고울음을터트렸다. 종교간화합이절로이뤄졌다. 이라크는강호한국팀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 에 4대 0으로패해우승의꿈을접어야했다. 유교는배드민턴남 여복식, 테니스남자단 복식, 농구여자팀등에서각각우승을거머쥐며역대최고성적을거두는이변을연출했다. 힌두교 ( 인도 ) 도남 여 100m, 남자 400m 달리기, 탁구남자단식등에서금메달을차지, 다음대회의대약 일본소프라노가수세이코리. 진을예고했다. 라켓경기는동남아시아 ( 불교 ) 가휩쓸었고, 남자농구는기독교 ( 미국 ) 가우승을따내강호자리를굳혔다. 종교간평화 라는대회취지를살리기위해올해부터종목별시상만하고종합시상은없어졌으나, 주최측은종합성적 1위에가정연합, 2위유교, 3위불교, 4위기독교순으로꼽았다. 한국과이라크와의축구결승전. 이형일선문대사회체육학과교수는 선수들의기량이종목마다다르나매우뛰어났다 며 축구는대학팀이나고등부상위권수 준이고, 육상트랙은우리나라국가대표기록보다나았으며, 농구도국내대학팀보다우수했다 고말했다. 이교수는또 스포츠 를매개로한종교간화해가인류평화에기여할것이분명했다 고덧붙였다.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 통일교문선명총재 ] 63

64 종교간우정만발 = 오랜내전으로 2002년부터국제올림픽경기에참가해온아프가니스탄 ( 이슬람교 ) 선수단을이끌고온세이드다시티아프가니스탄올림픽위원회부위원장은 각기국적과종교가다른 50여개국젊은선수들을친교할수있게맺어주는 IPSF는세계에유일무이한스포츠평화제전 이라며 스포츠는 평화의문화 를조성하는좋은소재 라고강조했다. 스리랑카 ( 불교 ) 선수들은피부색이다른유럽이나한국선수들과식사를함께하는것이즐거운듯 말은통하지않지만우리는친구 라며연방환하게웃었다. 대만민속무용단. 선수들은선문대학생회관 1층선수식당로비에서한복입기, 투호놀이등한국전통문화를체험하며긴장도풀고한국의정을만끽했다. 또저녁에는선문대아트홀과체육관등에서천안과아산지역주민들을위한 국제우정과평화의밤 과각국전통공연을펼쳤다. 데이브리튼뉴욕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자는광명심포니오케스트라를지휘, 커다란갈채를받았으며세계적인소프라노가수일본의세이코리노래에반한인도대표단이즉석에서인도로초청하는등연일분위기가뜨거웠다. 대만, 스리랑카, 태국등각국의전통무용도깊은감명을주었다. 국내 4 대종단으로우뚝선원불교는참여하는데의의를두고청년회차원에서올해에도배구팀한팀을내보내 4 위를차지하는 성적을올렸다. 주최측의한관계자는 원불교큰어르신들이대회의순수성을이해하다보면앞으로종단차원에서더많은팀을 파견해줄수도있을것 이라며기대감을표시했다.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 통일교문선명총재 ] 64

65 정성수종교전문기자 언어ㆍ종교벽넘어화합의의미일깨웠다 [ 통일교문선명총재 ] 65

66 18 각종단의성직자들의合水式 ( 합수식 ) 통일교회문형진목사

67 각종단의성직자들의合水式 ( 합수식 ) 통일교회문형진목사 :39 문형진, 이연아목사님양위분 각종단의성직자들의合水式 ( 합수식 ) 통일교회문형진목사 67

68 전쟁과갈등이없는세상을갈망해봅니다 각종단의성직자들의合水式 ( 합수식 ) 통일교회문형진목사 68

69 19 손주님을안고계시는아버님

70 손주님을안고계시는아버님 :10 손주님을안고계시는아버님 70

71 20 통일교문선명총재 [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72 통일교문선명총재 [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24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등록일 : :33 [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베링해협해저터널 이뤄질까 가능성으로만떠돌던베링해협해저터널프로젝트가최근구체성을띠어가고있다. 베링해협은미국알래스카와러시아시베리아사이에있는너비 85 km의해협으로 100 여년전부터양지역을연결하자는논의가있어왔다. 지난 6 월 11 일에는국제공모전을통해뽑힌베링해협해저터널가상설계도도언론에공개됐다. 해저터널프로젝트를추진중인통일교계열의평화통일재단과국제건축가연맹 (UIA) 이주관한이번공모전에는전세계 31 개국 135 개작품 ( 전문가부문 28 개국 71 개작품 ) 이출품돼 1 등당선작등우수작품에모두 20 만달러의상금이주어졌다. 상금 5 만 5000 달러가걸린전문가부문 1 등작으로는콜롬비아훌리안레스트레포의 다이오미드군도 란작품이선정됐다. 심사위원장으로참여한조성중국제건축가연맹 (UIA) 교육부문지역이사는 세계건축가들이베링해협해저터널프로젝트에많은관심을가지고있다는것이이번공모를통해입증됐다 고말했다. 유네스코협력단체이기도한국제건축가연맹은 120 여개국 130 만명의건축가가가입된단체로우리나라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 (1995 년 ) 백남준아트센터 (2002 년 ) 서울오페라하우스 (2005 년 ) 행정복합도시마스터플랜 (2006 년 ) 의공모전을주관한바있다. 이번공모전수상작들은오는 7 월 2 일부터서울송파구방이동서울올림픽기념관기획전시실에서일반에공개될예정이다. 2 개섬활용한세계최장해저터널터널접근용철도도총 6000km 건설 베링해협해저터널프로젝트는말그대로베링해협바다아래를해저터널로연결하는초대형프로젝트다. 성사될경우세계최장해저터널이된다. 양지역간의거리는가장폭이좁은곳이 85 km에달하고해저터널이들어서게될지역의수심은약 30~50m 에이른다. 평화통일재단측에따르면해저터널은러시아추코트카반도의데즈네프곶에서시작해베링해협한가운데있는대 ( 大 ) 다이오미드섬 ( 러시아령 면적 29 km2 ) 과소 ( 小 ) 다이오미드섬 ( 미국령 면적 7.4 km2 ) 을거쳐미국알래스카주웨일스곶으로연결될계획이다. 해저터널은철도가지나가게될메인터널 2 개 ( 직경 12~14m) 와송전선, 송유관, 가스관과광통신망이들어갈서비스터널 1 개 ( 직경 7~9m) 로구성될예정이다. 평화통일재단측은 두섬을기준으로공구를 3 곳으로나눠동시에굴착하면공기를최대한단축할수있다 며 이지역의해저지질은화강암단층지괴로구성돼있고단층지괴는석회암으로덮여있어터널굴착기 (TBM) 를사용한굴착이가능하다 고말했다. 해저터널이완성되면러시아와미국양쪽에서철도와도로등을신설해연결한다는계획이다. 러시아쪽은해저터널기점인데즈네프곶에서시작해오호츠크해연안을따라마가단항구 ~ 사하 ( 자치 ) 공화국의수도야쿠츠크를거쳐러시아의바이칼 ~ 아무르노선 (BAM 제 2 시베리아횡단철도 ) 과연결되는 3200 km의새로운철도노선이검토되고있다. 현재이지역은도로와항공편으로만연결돼고있다. 현지한국총영사관자료에따르면현재사하공화국의수도인야쿠츠크와바이칼 ~ 아무르철도를잇는철도노선은실제계획이수립돼오는 2013 년완공을목표로착공에들어간상태인것으로알려졌다. 미국쪽알래스카의경우도해저터널의기점인웨일스곶에서해안도시인놈 (Nome)~ 알래스카내륙의교통요지인페어뱅크스 (Fairbanks) 를거쳐캐나다서해안을타고북미지역철도와연결되는총연장 2800 km의철도노선신설이검토되고있다. 페어뱅크스에서알래스카주도인앵커리지까지는이미철도가부설돼있다. 또베링해협의양쪽에는 330 만 ~400 만m2 ( 약 100 만 ~120 만평 ) 규모의국경도시가설치돼물류환적장과수백만m2의철도공작창이들어서고, 알래스카웨일스곶외곽의놈에는아랍에미리트두바이스타일의초현대식레저및주거용신도시 ( 가칭여름라스베이거스 ) 가들어설계획이다. 특히미국과러시아의국경선과날짜변경선이지나가는대 소다이오미드섬사이약 4 km구간에는해저터널이아닌해상교량으로연결해관광자원화하는방안도거론되고있다. 통일교문선명총재 [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72


73 문총재 " 세계를하루생활권으로 " 28 년전부터구상, 최우선과제로 현재이프로젝트를추진하고있는평화통일재단 ( 이사장곽정환 ) 은지난해 1 월 18 일국토해양부의정식인가를받아출범한통일교산하의비영리민간단체다. 통일교는한 일해저터널프로젝트도추진중인이기관에 30 억원가량을종잣돈으로출연한것으로알려졌다. 통일교가비영리민간단체를통해베링해협해저터널프로젝트에참여하게된데는문선명총재의결단이가장큰이유가됐다. 문선명총재는지난 1981 년세계평화고속도로구상을밝히면서 베링프로젝트는전세계를 하루생활권 으로만들어인종, 문화, 종교, 국가의벽을헐어낼것 이라고언급한바있다. 실제문총재는지난 3 월출간된자서전을통해 ( 해저터널이들어서게될 ) 알래스카를종종방문해낚시를즐긴다 고밝히기도했다. 통일교뿐만아니라정 관계, 재계, 언론계의주요인사들도이프로젝트에참여하고있다. 지난 2004 년까지주러시아대사를지낸정태익현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연구위원을비롯해김기춘전법무장관, 김인호전경제수석등이평화통일재단자문위원으로직간접적인도움을주고있다. 미국의전직하원의원 2 명을포함한재단측인사 12 명은 2007 년 8 월베링해협해저터널구간탐방조사차미국알래스카웨일스곶에가서경비행기를타고현장을둘러보기도했다. 미국측에서는내무부 (DOI) 장관을지내기도한월터힉켈 (Walter J. Hickel) 전알래스카주지사가많은관심을가지고있는것으로알려졌다. 월터힉켈전주지사는 미국과러시아사이에해저터널을건설하면큰파급효과를가져올것 이라며관심을나타낸바있다. 공모전 1 등작 다이오미드군도 천문학적예산, 혹독한날시걸림돌다국적컨소시엄구성못하면힘들듯 평화통일재단측에서는베링해협해저터널공사에는세계최장해저터널건설프로젝트인만큼모두 2000 억달러에달하는천문학적인돈이들어갈것으로추산하고있다. 러시아경제개발무역부에서도몇년전 베링해협해저터널건설에만 100 억 ~120 억달러, 해저터널내철로건설에 550 억달러가들어갈것 으로추산한바있다. 해저터널과연결되는철도와도로망을구축하는사업에는터널건설비의몇배에달하는자금이필요하다는게러시아경제개발무역부의추측이었다. 특히터널과동시에 송전선 송유관 가스관 광통신망을연결하는사업을동시다발적으로추진할경우공사비는정확한추산이불가능할정도로커진다. 또해저터널과철로의유지보수에도상당한비용이들어갈것으로예상된다. 때문에평화통일재단측은 평화통일재단이주축이되고당사국인미국과러시아, 수혜국인한국과일본등의기업들이참여하는국제적인컨소시엄이구성되어야사업착수가가능할것으로보인다 고말하고있다. 기술적인문제도상당할것으로보인다. 해수면아래 150m 가량 ( 최대 200m) 을수직으로뚫고들어가 85 km를수평으로뚫어내야하기때문이다. 이는현존하는해저터널가운데해저구간이가장긴도버해협영불해저터널 ( 총연장 km, 해저구간 38 km ) 의 2 배가넘는다. 현지의열악한기후조건도상당한장애가될것으로예상된다. 베링해협은연중절반가량이밤만계속되는북극권극지 ( 極地 ) 기후권으로겨울철기온만영하 20~50 도에달한다. 유빙 ( 流氷 ) 의이동경로인베링해협은매년 11 월전후로얼어붙기시작해다음해 4 월까지내내얼어붙어있다. 또 10 월부터 6 월까지는심한폭풍이몰아치는곳이기도하다. 결국최악의기후조건을극복하면서작업을해낼수있느냐가해저터널공사의관건인것이다. 때문에러시아측에서는 1 개월 500m 쯤을파들어간다는가정하에공사기간만 15 년가량걸릴것 으로예상하기도했다. 정치적인오해도불식시켜야한다. 사실베링해협해저터널프로젝트는구 ( 舊 ) 러시아제국의마지막황제니콜라이 2 세재임시부터거론되던프로젝트다. 당시러시아측에서는베링해협을터널로연결해북극해의교통요충인베링해협을완전장악하려는야심을품었었다. 하지만 1914 년제 1 차세계대전의발발과함께러시아의공산혁명 (1917 년 ) 이성공하면서니콜라이 2 세가총살되자그의베링해협해저터널구상도물거품이됐다. 때문에미국쪽에서는 러시아가해저터널건설을통해다시알래스카에영향력를확대하려는것이아닌가 하는의구심을품을수도있다. 알래스카는본래러시아땅이었으나 1867 년미국이러시아측에 720 만달러를지불하고구입한뒤 1959 년미국의 49 번째주로승격된곳이다. 구소련의지도자인레닌과스탈린도재임시베링해협해저터널을포괄하는 동진정책 북극선로프로젝트 등을구상한바있다. 하지만평화통일재단측의구상대로베링해협을연결하는해저터널이완공되면상당한경제적파급효과가기대된다. 송유관과가스관이들어가는해저터널이완공될경우러시아는시베리아의전력과천연가스, 석유를파이프라인을통해미국에곧바로공급할수있게된다. 시베리아동토 ( 凍土 ) 에는전세계천연가스의 37%, 석유의 5.8% 가묻혀있는것으로알려졌다. 지난 1995 년러시아터널협회와교통학회, IBSTRG( 베링해협터널및철도그룹 ) 이공동으로실시한초기타당성조사보고서에서도베링해협해저터널건설로가장수혜를입는지역은시베리아인것으로나타났다. 평화통일재단측도 베링해협해저터널이뚫릴경우북미와아시아를연결하는물동량이해저터널로몰릴것 으로예상하고있다. 미알래스카쪽베링해협에선평화통일재단관계자들. 통일교문선명총재 [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73

74 북미 ~ 아시아해상물동량흡수경제, 정치적파급효과도막대 또해저터널건설과정에서상당한경기부양효과도기대된다. 경기부양사업으로는초대형인프라구축만한것이없다는것이평화통일재단측의주장이다. 평화통일재단측은인건비가저렴한북한노동력을건설현장에투입하는방안도검토중인것으로알려졌다. 평화통일재단을지원하고있는통일교는북한현지에서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등을운영하면서북한당국과긴밀한관계를맺고있다. 베링해협해저터널주창자인문선명총재와한학자여사. 실제지난 1 월문선명총재의구순 ( 九旬 ) 잔치때는북한김정일위원장이평화자동차박상권사장을통해산삼 3 뿌리 (90 년, 80 년, 60 년산 ) 와장미 백합 90 송이로된화환을보내기도한것으로알려졌다. 정치적파급효과는더욱클것으로기대하고있다. 사실평화통일재단측에서기대하는것도경제적파급효과보다는국제정치적파급효과다. 해저터널건설을통해과거동서냉전의주역이었던미국과러시아 ( 구소련 ) 를화해시킨다는것이다. 실제미국과러시아가유일하게국경을접하고있는베링해협은지금으로부터 1 만 3000 년전인최후빙하기때만해도육지로연결돼있어구석기인류가아시아에서아메리카로건너가는통로가됐다. 미국으로서도석유수입선을중동에서시베리아로다변화해중동에대한석유의존도를줄일수있다는이점이있다. 통일교문선명총재도지난 5 월출간된자서전을통해 미국이이라크에퍼붓는전비만투입해도베링해협해저터널을뚫을수있다 고말했다. 평화통일재단측은 러시아나알래스카의자원이양국철도망을통해전세계로이동하면양지역사람들의교류도늘어나고진정한동서냉전의종식이될것 이라고강조하고있다. [ 주간조선 ] 통일교문선명총재 [ 화제 ] 알래스카 ~ 시베리아 85 km, 미국 - 러시아묶는다 74

75 21 ( 통일교문선명총재 )547m 뚫린韓ㆍ日해저터널 200km 물속길열릴까

76 ( 통일교문선명총재 )547m 뚫린韓ㆍ日해저터널 200km 물속길열릴까 :20 547m 뚫린韓ㆍ日해저터널 200km 물속길열릴까 일본규슈사가현북서부의가라쓰시에서는한터널공사가진행중이다. ' 한 일해저터널 ' 지질조사를위한갱도공사다. 현재육지로부터 547m 길이까지해저터널이뚫려있다. 이공사를맡은고다기연의후지하시겐지사장은 " 앞으로 1300m 까지더팔것 " 이라며 " 지금까지조사로는한 일해저터널을건설하는데지질적으로나기술적으로문제가없다는결론을내릴수있다 " 고말했다. 한 일양국간에논란이돼온해저터널이민간수준에선꾸준히진행되고있다. 통일교를중심으로한민간단체들이타당성조사등을마치고, 기술검토에까지착수한상태다. 통일교는규슈 ~ 쓰시마섬 ~ 거제도를가장유력한루트로정하고, 조사터널을위해가라쓰시에 3만평의땅까지확보했다. 한 일해저터널을양국정부가합의만하면곧바로굴착공사에착수할수있도록준비하고있는것이다. 한 일해저터널구상은 1981년통일교문선명총재가국제평화고속도로건설방안중하나로제안하면서논의가본격화됐다. 두나라정치권에서도간헐적으로필요성이제기되다가 2007년고건전총리가대선공약으로검토하면서화제가됐다. 하지만천문학적건설비에따른불확실성, 한 일간신뢰부족등으로공식 추진되지는못하고있다. 일본큐슈카라쓰시에있는한일터널조사갱도입구. / 큐 슈 = 차병석특파원 달할전망 " 이라고말했다. 그럼에도한 일해저터널을주장하는일본측민간단체인국제하이웨이재단가지쿠리겐타로이사장은 " 한 중 일경제협력이라는큰틀에서도한 일해저터널은뚫려야한다 " 고강조했다. 한 일해저터널은규슈에서최단거리인거제도까지뚫더라도거리만 200km를넘어영국프랑스를잇는유로터널 (50.5km) 의 4배나되는세계최장해저터널이된다. 공사기간만 10년안팎, 총건설비는 160조 ~200조원으로추정된다. 가지쿠리이사장은 " 한 일해저터널이생기면한국과일본이자동차 2시간거리로가까워진다 " 며 " 연간산업파급효과도한국은 54조원, 일본은 88조원에 ( 통일교문선명총재 )547m 뚫린韓ㆍ日해저터널 200km 물속길열릴까 76

77 그는 " 한국은일본이대륙으로보내는수출물량의통행료만받아도이득 " 이라고덧붙였다. 이런경제적효과때문에박삼구금호아시아나그 룹회장은작년 10 월일본재계인사들에게한 일해저터널건설을제안하기도했다. 도쿄 = 차병석특파원 입력 : :15 / 수정 : :15 ( 통일교문선명총재 )547m 뚫린韓ㆍ日해저터널 200km 물속길열릴까 77

78 22 김정일에서오바마까지문선명의 너른행보

79 김정일에서오바마까지문선명의 너른행보 :35 김정일에서오바마까지문선명의 너른행보 최근구순을맞은통일교문선명총재가네자녀를중심으로후계구도를마무리지었다. 베일에가린문총재의행보와 그가북한 미국지도층을상대로펼쳐온독특한인맥구축의역사를들여다보았다. [74 호 ] 2009 년 02 월 10 일 ( 화 ) 10:54:45 뉴욕 정희상기자 c시사in 정희상통일교 2세체제에전진배치된문형진 ( 가운데 ) 문국진 ( 오른쪽 ) 문인진 ( 왼쪽 ) 씨. 통일교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 가문선명총재구순행사를계기로사실상 2세시대 에접어들었다. 그동안일반인에게는베일에가려있던경기도가평의문총재거주지 천정궁 을 1월30일 1000여명의각계초청인사와언론에공개한통일교는이어서 2월1일미국뉴욕맨해튼의통일교소유뉴요커호텔에서세계각국에서초대한정치 종교지도자 4000여명이지켜보는가운데사실상후계체제를마무리짓는행사를가졌다. 하버드대학에서종교학을전공하고현재용산의청파교회당회장으로목회를담당하는막내아들문형진목사 (31) 에게실질적후계체제를넘기는 만왕의왕하나님대관식 이라는이름의구순맞이기념행사를연것. 이로써국내기독교계가이단으로규정해배척하고있는통일교단은포스트문선명시대를종교분야는문형진씨, 통일그룹경영분야는사남문국진씨 (40), 미국내통일 김정일에서오바마까지문선명의 너른행보 79

80 교분야는차녀문인진씨 (46), 세계평화운동은삼남문현진씨 (42) 가전면에나서는체제로꾸린셈이다. 박보희총재의 며느리이기도한문인진씨는 언론에처음으로얼굴을노출한다 라면서 어릴적부터한 미양국에서수많은박해 를받는아버지를지켜보며평생마음고생을떨치지못했는데지금은꿈만같다 라고말했다. 한국과미국에서연달아열린문총재구순맞이기념식은내부후계체제구축완료라는점외에도북한과미국의지도층이각별한관심을보였다는점에서통일교의영향력과관련해주목을끌었다. 최근북한이남북기본합의서파기로군사적긴장이고조되는상황이지만김정일국방위원장은문총재의 90돌축하축전과 90년산산삼을보내깍듯이예를갖췄다. 이에대해가정연합양창식회장은 NLL을파기하겠다는북한도남한과소통할최소한의통로는남겨놓아야겠다는뜻으로풀이된다 라고말했다. 지난 1991년문선명총재가전격북한을방문해생전의김일성주석과만난뒤통일교는현재평양에파견목사를두고남북합작자동차공장과평양보통강호텔을운영하고있다. 무명시절오바마, 문총재행사두번참석 미국뉴욕에서열린문총재의구순행사장에는오바마미국대통령의정신적지주로불리는조지프라우리목사 (78) 와월터폰트로이목사 ( 미국흑인지도자회장 ) 가워싱턴에서나란히날아와축사를했다. 특히라우리목사는지난 1월20 일백악관의오바마대통령취임식장에서축도를집전해세계적으로주목받은흑인목사. 라우리목사는문선명총재가국내기독교계의 이단 공세를피해미국으로건너간 1970년대초반미국내통일교헌금탈세시비에휘말려미국법정에서자앞장서구명운동을펼치면서인연을맺었다고말했다. 그는문총재가미국전역을돌며주관해온초종교 초국가연합행사장에일리노이주상원의원이던오바마를대동해자주참석한바있다. 그인연으로오바마대통령은자신이직접문총재행사장에두차례, 부인미셸여사를한차례보내축사를하는관계로발전했다고한다. 김정일에서오바마까지문선명의 너른행보 80

81 23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 " 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82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 " 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38 "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 " 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 만왕의왕하나님해방권대관식 ' 에서 이글은 15일경기도가평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천정궁박물관에서열린 만왕의왕하나님해방권대관식 에서행한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전문이다. 각국국가원로, 종교지도자들이대거참석한이날행사에서문총재는대관식의의미에대해 자식으로창조한아담과해와가하늘의혈통을더럽히고어둠속으로숨어버린그날이후형언할수없는고통과비애속에수천수만년을참고기다려오신하나님을 만왕의왕 으로다시찾아드리고, 참사랑의혁명을촉진화하기위해마련됐다 고밝혔다. 문총재는이어 인류는하나님의심정을헤아려 수정같은맑은삶 절대성의가치교육 종교 국경의담철폐 인종간 국가간교차축복 생명 자연사랑 등을통해영원한참부모되시는하나님께존귀와영광, 한없는찬양을올리자 고호소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창시자인문선명 한학자총재내외가지난해경기도가평천정궁박물관에 서열린개관 1 주년기념식에서밝은표정으로기념사를하고있다. 세계일보자료사진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82

83 사랑하는천일국시민여러분! 오늘은참으로귀하고기쁜날입니다! 우리다함께역사적이고섭리적인이날을마음껏경축하고, 우리의영원한참부모되시는하나님께존귀와 영광, 그리고한없는찬양을올립시다. 영계의수천억인류도이축복의한날을축하하기위해이자리에함 께하고있는엄숙한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만우주를창조하신후그렇게도기다리고소망해오신날이바로이날입니다. 당신의자식으로창조한아담과해와가하늘의혈통을더럽히고어둠속으로숨어버린그날이후하나님께서는형언할수없는고통과비애속에수천수만년을참고기다려오셨습니다. 당신이만왕의왕으로등극하여잃어버린자식들과만물을다시품고천년만년태평성대의평화왕국을즐기며살수있는그날을학수고대해오셨다는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창조섭리이전부터만왕의왕이셨습니다. 그러나피조만물을창조하신이후에는실체를 쓰시고사랑의대상권인이현상세계를치리하는실체만왕의왕으로현현하셔야할천도가있었던것입니다. 그래서참사랑을중심삼고당신의대신자요상속자되는현상세계의참부모를찾아나오신것입니다. 오늘본인부부가황송하옵게도하늘로부터인침을받고하나님의실체로서서만왕의왕대관식을갖게되어 참으로기쁘면서도하늘앞에는죄송한맘을금할수가없습니다. 아직도 65 억인류를완전히하늘앞으로복귀해올리지못한채로본인의나이가벌써 90 에이르렀습니다. 하늘을사랑하는천일국시민여러분! 하늘은이제더이상기다리시지않을것입니다. 당신의실체로서역사하는지상의참부모를통해천법을세우 고, 만왕의왕권한을갖고이지구성을복귀하는참사랑의혁명을촉진화할것입니다. 따라서인류와만물만상을찾아세우고치리하는천법의개요를오늘이엄숙한자리를통해만천하에선포 하는바입니다. 첫째, 삼천년을향해가고있는이시대는후천개벽의시대입니다. 후천개벽의시대는더이상탕감복귀원리에 얽매이지않고만왕의왕직권으로영계육계를치리하는시대입니다. 환태평양권이중심축이되어이지구성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83


84 을다시원상으로돌리는섭리의시대입니다. 전인류는이제천도와천법의테두리를벗어날수가없게될것입니다. 따라서여러분의일거수일투족은수정 처럼맑은삶이되어야할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종적인절대축으로삼고절대성의가치를전인류에게교육하는교육혁명을완수해야할것 입니다. 이길만이인류에게선의혈통을전수해줄수있기때문입니다. 이것이하나님의참가정이상완성을 이루는길이기때문입니다. 순결, 순혈, 순애가향후인류의교육이념이될것입니다. 셋째, 지구성을몇겹으로감고있는모든담과울타리를깨끗이태워버리고정당, 종교, 인종, 문화, 그리고국가간의화합과평화를찾아세우는데분봉왕들과부모유엔 (UN) 을앞장세울것입니다. 가인격유엔위치에있는기존유엔과아벨유엔이하나되어새로운차원의부모유엔, 즉평화유엔을중심삼고전쟁, 질병, 기아등세계의모든문제를해결해나갈것입니다. 하늘이같이하고참부모가함께하기때문에인류는선택의여지가없이반드시이길로나아가게될것입니다. 개인의이기주의는물론집단이기주의까지도깨끗이씻어내고더이상선거가필요없는양심과순리의세계를창건해나갈것입니다. 넷째, 타락인간의혈통을맑혀주고참가정을세워평화왕국을실현하는최고최선의방법은교차 교체축복결혼밖에없습니다. 화해와평화도알고보면핏줄을통해찾아옵니다. 흑인과백인, 동양과서양, 불교와기독교, 유대교와이슬람이서로교차하고교체하면서참부모님께서세운축복결혼의전통을이어간다면이세계는자동적으로한가족이될것입니다. 원패밀리언더갓 (One Family Under God) 의이상천국이실현될것입니다. 총과대포를녹여쟁기를만들고호미를만드는평화의세상이열릴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인간을당신의사랑의대상으로창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당신의자식된인간을위해서는그상대격에자연환경을준비해주셨습니다. 산천초목이결여된공허한사막에다당신의자식들을버려둘하나님이아니라는것입니다. 따라서인류는자연을보호하고사랑해주어야할의무가있습니다. 한떨기야생화를만나서도깊은심정의대화를나누며공명권을형성하는본연의인성을개발하여살라는것입니다. 이길이인간회복의첩경이될것입니다. 귀빈여러분! 오늘여러분은참으로귀한천복을받으셨습니다. 만왕의왕이경륜하는섭리적역사의출정식에참가하고계 십니다. 역사적인대전환기의소용돌이를직접목격하고계십니다. 종적만왕의왕되신하나님의실체로만유 를통치할횡적만왕의왕참부모님의대관식에초대받으셨습니다. 이보다더귀하고역사적인순간이또언제오겠습니까? 수천억여러분의조상들은이시간기쁨과환희에벅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84

85 차지축이흔들릴정도로환호하며춤을추고있습니다. 부디마음의눈을뜨고이기적같은역사적인순간을여러분의영혼에각인하십시오. 여러분의생애에언제 또오늘과같은축복과영광의날을볼수있겠습니까? 오늘본인이전해주는이하늘의말씀을향후여러분 의삶의지침으로삼으시기바랍니다. 만왕의왕하나님의크신축복이여러분의가정과나라, 그리고온천주위에높이높이충만하시기를축원합 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의면류관 (Crown of Glory) 내가사람을의심할때나는고통을느낍니다 내가사람을심판할때나는견디지못합니다 내가사람을증오할때나는존재가치를잃습니다 그러나만일내가믿으면나는분명히속임을당합니다 내가만일사랑하면나는거역을당할것입니다 오늘저녁내머리와몸은고통과슬픔에떨고있습니다 내가잘못하고있는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나는잘못하고있는것이지요 그러나내가속임을당할지라도나는역시믿습니다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85

86 내가반역을당할지라도나는역시용서합니다 나는나를증오하는자를송두리째사랑할것입니다 당신의눈물을닦고 속일줄만아는사람들과거리낌없이반역하는사람들을 웃음으로맞이하십시오 오! 주여사랑한다는아픔이여! 내손을보아주세요 이내가슴에주의손을얹어보소서 나의가슴은말할수없는고뇌속에터질듯만하옵니다 그러나나는거역한자들을내가사랑할때승리를성취하옵니다 만일당신도나같이사랑한다면나는당신께영광의왕관을드리오리다. # 이시 ( 詩 ) 는문선명총재가천명을자각한 16 세에쓴작품으로, 2002 년세계시인협회에서주관하는세계 시경시대회에서최우수상을수상했다. 후천개벽의시대수정같은삶살아야통일교문선명총재의특별강연문 86

87 24 통일교문선명총재 " 남은생도평화위해몸바칠것 "

88 통일교문선명총재 " 남은생도평화위해몸바칠것 " :23 문선명총재 " 남은생도평화위해몸바칠것 " 2007 세계평화정상회의 에참석한각국지도자들이 23일경기도가평군설악면송산리천정궁박물관에서열린문선명 한학자총재생신축하연에서기립박수를하고있다. 가평 = 서상배기자 문선명총재의존재와활동은신의섭리가아닌가생각된다. 세계각국에서참가정운동이제2의르네상스로칭송받는것도평화와행복을위해고무적인현상이다. ( 이수성전국무총리 ) 문총재가세계적으로이뤄놓은많은업적은가히기적이다. ( 트샤키아엘베보리전몽골총리 ) 2007 세계평화정상회의 (21 24일) 에참가한 130여개국 400여명지도자들에게회의폐막을하루앞둔 23일은축제의날이었다. 세계평화에앞장선천주평화연합 (UPF) 창시자문선명총재가미수 (88세) 를맞았기때문이다. 문총재의부인한학자총재도 65세생신을맞아겹경사였다. 세계지도자들은이날경기도가평군설악면송산리천정궁박물관에서열린축하연에참석, 문총재가일궈낸평화운동의의미를되새기며덕담을나눴다. 2월같지않은따사로운햇살이분위기를북돋았다. 문총재는이자리에서인류평화를위한이상적모델을제시하고지구촌화합을기원했다. 문총재는 인류가참사랑으로맺어지면국경과인종의벽, 나아가종교의벽까지영원히종식시킬수있다 며 참사랑은남을위해, 전체를위해먼저위해주는것이며, 주고도주었다는사실자체를기억하지않는끊임없이베푸는사랑 이라고강조했다. 문총재는이어일본유학시절과해방후공산치하, 자유세계미국등지에서 6차례나옥고 통일교문선명총재남은생도평화위해몸바칠것 88

89 를치르는등고난과핍박으로점철된자신의삶의한자락을들려주고, 남은생애도하나님의이상과인류평화를위해바칠것을다짐했다. 이날문총재에게곽정환 UPF 의장과김영휘전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장이새세계경전과미수기념문집을봉정했다. 문총재는임마누엘밀링고전교황청대주교와김민하세계평화대사중앙회장에게평화메시지집을전했다. 축하연에는제임스맨참전세이셸공화국대통령, 후센파라아이데드소말리아부총리, 셀레스탱르로이가옹발레중앙아프리카공화국국회의장, 나지르아메드영국국회의원, 샹탈콩파오르테라송여사 ( 브루키나파소대통령부인 ), 수자타코이랄라네팔국회의원, 문선명총재가 23일자신의미수축하연에서 어느한사람과도의논할수없는고독한생애알렉산드르수부로프러시아상원체육위원회부위원장, 허경영전민주공화당총재, 류갑노정이었다 며지난했던삶을회고하고있다. 가종 고홍길 곽정출 김방림 김동욱전국회의원, 허문도전국토통일원장관, 이철기전평 = 서상배기자천도교교령, 나용화임제종종정, 최동섭전건설교통부장관, 김문탁전제주도지사, 천주평화연합회원등 1만2000여명이참석했다. 정성수종교전문기자 ( 금 ) 19:40 댓글 0 개이글을...(0) 통일교문선명총재남은생도평화위해몸바칠것 89

90 25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1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08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 사진설명 ] 문선명총재가세계평화통일을외치고있다 문선명, 왜그는세계평화를외치고있는가 문선명, 사람들은그를 ' 메시아다 ' 총재다 ' 라고부른다. 미국부시대통령은물론 190여개국세계정상급들이문총재를신뢰하고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소속된전세계저명인사들이평화대사들로활동하고있다. 왜전세계수많은사람들이그의뜻을따르고있나. 그는과연어떤메시지를우리인류에게남기고있는가? 본지특별취재팀은문선명과통일교를심층취재하기위해서일본을다녀왔다. ' 문선명, 과연그는누구인 가 ' ' 통일교의평화통일론은무엇인가 ' ' 그에대한유언비어로떠들썩한뉴스들은과연진실이었는가 ' ' 문 선명과반대편에서있는그들은누구인가 ' 그리고 ' 그가한국에남기고싶은것은무엇인가 ' 의순으로보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1

92 도한다. 메시아 (messiah) 는초인적인능력을가진통치자, 왕, 구세주, 또는재림주를뜻하는말. [ 編輯者 註 ] 문선명, 과연그는누구인가 문선명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총재는 1920 년평안북도에서 8 남매중차남으로태어나 15 세때소학과 명심보감등을깨우칠정도로영특했고 16 세때예수로부터인류구원에대한소명을받았다. 그는 18 세에 정주공립보통학교를졸업하고, 서울에있던경성상공실무학교에입학하면서자취생활이시작되었다. 21 세가되던해일본동경와세다대학으로유학길에오르게되었고, 일본대학시절비밀결사를조직하여 항일운동을전개하여한국임시정부와연락을주고받으면서지하운동을전개하기도했으며이러한활동 등으로인해몇차례투옥되기도했다. 광복이되자 1946년 평양으로가라 는하늘의계시를받아 동방의예루살렘 으로이름이높았던평양에 6월 6일도착하여하늘의뜻을펼쳤다. 그가시작한최초의개척교회의출범의기쁨도잠시, 그해 8 월공민증이없다는이유로남조선에서파견된간첩이라는누명을쓰고구속되었다풀려났지만북한의종교말살정책에의해 1948년사회질서문란죄로구속되어 5년형의선고를받고흥남감옥에서 2년 8개월의옥고를치렀다. 그는옥중생활속에서도죄인들을전도하며지내던중 6 25동란이나게되었고 1950 년유엔군의북진으로흥남감옥에서해방되었다. 이후평양으로돌아갔다가 1951 년피난길에올라남쪽으로내려와부산의초량역부근에도착하게되었다. 임시수용소같았던 2 평짜리움막집에서원리원본 ( 이후원리강론이됨 ) 이라는책을집필, 1 년만에마치고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2

93 그소중한자료를가지고 1954 년상경하여성동구북학동에거처를마련해그해 5 월 세계기독교통일신령 협회 를등록하고공식적인교회의전도활동을하게되었다. 이후그는 1960 년한학자여사를만나 4 월에 결혼식을가졌다. 한학자여사는 1943 년평안남도안주의한기독교집안외동딸로태어난모태신앙인으로양친부모의슬 하에성장 1960 년문총재와결혼하여 13 자녀를두었고 1992 년세계평화여성연합을창설하여세계 180 여 개국과아프리카등오지에참사랑을펼치며구호활동과참가정평화운동을펼치고있다. 이때부터두사람은하나가되어하나님이계시해준원리강론에따라서선교활동을하게되었다. 통일교회운동이일파만파로번지면서통일교회 (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 의존재가온세상에널리알려지게되자그들은외국으로눈을돌려 1965 년부터세계 40개국을순회하며하늘의뜻을세계에알리기시작했고세계 120곳에성지를택정하기도했다. 문총재는하나님으로계명을받들어 원수를사랑하라 는진리를실행하는것을몸소실천하면서그 에대한가해자들을수없이용서하고오직하나님의아들로서평화만을부르짖으며 87 세의나이에도지칠 줄모르고 120 여국가를순회하고다니기때문에그를세계평화의왕이라고부른다. 세계적으로선풍을일으키고선교활동에서큰성과를거두자그를미국등세계의여러나라들이가만히두지않았다. 그에반대하는세력들이나타나기시작하더니결국엔중상모략으로미국국세청이그에게탈세혐의를씌웠고, 국제관계소위원회에서 34개월동안통일교에대한수사를했다. 뿐만아니라, 문총재의영주권을문제삼아이것저것누명을씌워교도소에수감하기도했다. 문총재의고독한투쟁은다시한번시작되었다. 그가처음만들었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가세계 적으로뻗어나가자이를저지하려던집단과사람들에의하여수많은유언비어가고의적으로조작되어유 포되기도했다.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3

94 사이비종교의이단이다. 혼음하는교회다. 성경을위변조하여원리강론을만들었다 고하며심지어 는 2 천여명의기성교회목회자들은통일교의교육을받아오염되고있다 고하면서 문선명과통일 교죽이기 를시작이라도하듯일부언론과종교전문지그리고종교집단들까지총공격하고나섰다. 그러나문총재를중심한통일교회는이러한반대를극복하고지속적으로성장하였다. 이후문총재는국제무대에서세계를대상으로뭔가소원을이뤄내고말겠다는신념으로시대의변천에따라통일교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이라개칭하고도덕과윤리를중심으로참가정과참사랑그리고순결교육을통해세계평화통일운동을본격적으로시작하게되었다. 그가말한 참가정은남자와여자가하나되어부부로서출발하여몸과마음이하나된영원한사랑으로 행복하게살게될때다른사람들에게도사랑이베풀어줄수있고사회나국가도건강하게발전할것이 다 라고라고한다. 문총재부부는여기서멈추지않고새로운천년을준비하는차원에서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과 천주평화연합 을창설하게되었다. 세계가종교간대립, 인종차별, 지역간갈등으로전쟁과살인행위등이지구상곳곳에서난무하는것을보고평화세계실현을위해문명간의대화와협력, 새로운평화유엔을통한유엔의개혁과갱신으로세계평화운동을의욕적으로하는것이다. 그러나문총재와통일교회가지금까지성장하는데는수많은시련이있었다. 특히무책임한언론으로부 터의피해가많았는데, 자유당시절무고로형무소에들어갔다무죄로석방되어나오기까지제반신문들 의보도를보면별의별소문들이다실려있었다. 그런데당시에도양심적인신문도있었는데모일간지는 문선명씨는정의를위하고나라를위하여피 땀을흘리며삼천만민족을위해서피까지팔아가며우리민족을구하려했던정의의애국자인데, 그들멋 대로때려잡고가두었다. 그러나사필귀정에따라무죄로석방되었다 고보도하기도했다. 문총재는 냉대속에서사람들의부정적인시각으로통일교가박대를받았고, 일반인들과는한마디의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4

95 말과행동에도사사건건시비가생기고법정문제가되어경찰서라도가면통일교회는원래그런곳이아니냐. 며핀잔만받았다고한다. 이런악선전은교수, 대학가일부, 교회책임자들까지도그렇게알도록악성루머를만들어냈고일부목사들은 그런교파의신도나친척이있다면빨리탈피시켜구원을받도록하라 며설교하기도했다. 문총재는이런수난을어떻게견디고벗어났을까? 그의말에따르면 그것을벗을때까지는많은세월을참았고 우리는실적을가져야했는데, 우리가그것을벗는단계까지올라오는데수십년의세월이걸렸다 라고한다. 그는영구적인평화를이루는방법으로 원수를사랑으로감동시켜사랑으로굴복시키는것이다. 그래서 6번 ( 일본 2. 북한 2. 남한 1. 미국 1) 이나옥고를겪었지만한번도누구를원망하지않았다. 고한다. 그는 세월이흐른지금에와서보면, 모든것을내가뒤집어쓰고말없이살아왔어요. 말없이나는소화 했는데, 그것이비료가됐고다역사적인사실입니다 라고한뒤지금부터가더중요한시기라며 87 세노 령에도불구하고두주먹을불끈쥐고미래의밝은웃음을보인다. 축복결혼은통일과참가정. 참사랑. 참혈통의근원 통일교의평화통일론은 가정의혁명없이는세계평화도이룰수없다, 가정파괴와종교-문명간의충돌을더이상방치할수없다, 가정이바로서야국가와세계도바로설수있다, 21세기는냉전종식이후외적으로는민족과인종의갈등및종교간의대립과문명충돌이격화되고있고내적으로는도덕적타락과가정의붕괴가가속화되고있어이를해결하는것이향후인류의과제 라는것이다. 즉, 세계평화는사회의기본단위인가정에서부터 라는신념을갖고있다. 가정의평화는사회와국가, 나아가세계평화의근간이라고봐야한다. 가정의평화없이는어떠한평화도기대할수없다. 가정의평화는참사랑을실천할때만이가능하고참사랑이란나자신보다는가족을위하고, 가족보다는사회를위하고, 사회보다는국가를위하는것, 나자신보다남을위하는참사랑을실천하는사람들이모여이뤄진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5

96 가정이참가정이라는것, 부부가서로를위하는참가정에는화목과평화그리고세계평화가있다고주장 한다. 참가정운동으로세계평화를시작해야한다는것이다.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은테러공포가지구촌을휩쓰는가운데종교와국경을넘어선평화실현의운동을세계로전개하고있다. 통일교는종교, 정치, 언론, 사법, 학술, 비정부기구 (NGO) 등각계지도자들에게 현대사회는윤리와도덕이땅에떨어지고, 가정이해체될위기에처해있고, 에이즈만연과테러리즘등에시달리고있다 는사실을주지시킨다. 그러면서 이모든문제는사회의기본단위이며세계평화의출발점인가정과종교에서해결의실마리를찾지않으면안된다 는것이통일교회의평화와통일론이다. 이어 인종과종교간갈등, 국경분쟁, 에이즈문제등을해결하자면참사랑과참가정의실천운동을전개하지않으면안된다. 그것만이이땅의평화통일론이다 라고한다. 가정의혁명없이세계평화없다 1960 년부터시작된통일교의축복결혼식을통해맺어진짝은수백만쌍에이른다. 최근에는축복결혼이보편화되어이미결혼했던사람들이받는기성축복까지합하면전세계적으로 5억쌍에이른다. 그리고축복결혼한이들이밝히는이혼율은 5% 이하로한국의평균이혼율보다훨씬낮은수치다. 왜통일교는축복결혼에많은노력을기울이는것일까? 축복결혼을통해결혼한통일교한여성은 남매를두었는데, 아이들이어떤종교를갖든어떤일을하던나는상관하지않을계획이다. 그러나결혼만은문총재가주선해주는사람과축복결혼을통해서해야한다 고한다. 통일교인들은문총재가주선한축복결혼식에큰의미를두가지로설명하는데 통일과참가정의참사 랑 이그것이다. 어느한쪽의주장이나힘이상대를눌러버리는식의결합이아니라서로다른것이섞 여평화롭게어우러질수있다는것이이들이생각하는통일과참가정의참사랑이다.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6

97 정치와종교그리고이념의갈등은나와다른것을인정하지못하는데서생겨난다. 모든종교단체가평화를강조하지만결국은다른종교를용납하지못하니까갈등이일어난다. 이러한갈등이두려워서같은종교를믿는사람하고만결혼하고단체활동을하니까타종교와의갈등은더욱커지며악순환이일어난다. 누구나상대를제대로알면이해하기때문에싸울수없게되고, 그렇게섞이다보면더큰진리를만들수있다고한다. 그리고사람들이말로는모두를사랑하라고하지만실제로는자기가원하는사람만사랑한다. 자신이 선택하지않았으니까연정이생기지않는다. 며결혼하지않겠다고하는것은보편적인사랑이아닌이 기적인사랑을하겠다는결론일뿐이라고한다. (1) 일본여성과반신불구한국남자와결혼생활 통일교에서국제합동결혼식을한일본여성의생활을통해알아본다. 기자의현지취재로전남진도에사 는여인을만났다. 조금만힘들어도이혼을하고아이들을버리는요즈음장애인남편을만나가정을잘 꾸리고 20 년을살고있는일본여성다키구치게이코 ( 한국명 ; 용구혜자 ) 는한국으로귀화했다. 가난으로힘들게사는데도불평한마디하지않고반신불수인남편을지금까지헌신적으로보살피며살고있는이여성은 85년 10월일본의모든생활을정리하고남편과살기위해한국을찾았다. 기자가만난다키구치씨는얼굴에주름하나없고밝아앳되어보였다. 얘기를하는데도시름이라고는하나도없어보였다. 그리고진도군청직원이이집의사정을잘알고있었는데 그녀의집안사정은말이아니다. 그녀는일본서와서반신불수인남편과사는데, 하도딱해서군청서취직시켜줬더니빚때문에쥐꼬리만한월급이압류를당해 50% 뿐이못받는다고해요. 그녀는열녀중열녀예요. 요즈음우리나라사람도남편이사고로불구가되면도망가는판인데 20년넘도록불구인남편과함께살고애들도잘키우고있는것을보면, 한국인들이본받아야한다 고했다. 기자는그녀에게물었다. 지금은후회는하지않느냐, 어떻게결혼하게되었느냐 고했더니, 그녀는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7

98 1956 년후지산이보이는일본야마나시현후지요시다시에서태어나고등학교를졸업하고시계를만드는 회사를다니다 23 살때거리에서통일교를전파하는한식구를만나통일교와인연을맺었다. 신앙심은그리깊지않았지만교회는매주나갔다. 그러다 1982년한국을방문해서경기도양주시수련회에참가하여문선생님의강연을들었다. 그당시문선생께서는설교중한남자를가리키며 성실한청년인데몸이불편하다. 그렇지만믿음이좋다. 누가신부가될사람이없느냐 고물었다. 그때나는갑자기손을들었다. 마음속에서는끊임없이안된다는갈등도있었지만손을들어그자리에서축복을받아 6천쌍이축복을받은가운데한쌍이됐다고한다. 남편은 19살때친구가잘못쏜공기총에머리를맞고왼쪽이반신불수가됐다고한다. 그녀는돈없고가난해도부부로서참가정의참사랑만있다면그곳이천국이라며중학교와고등학교에다니는남매를위해이제는참부모로서건전한가정을꾸려나갈것 이라고한다. 그럴때세계가평화스러울것이라며행복이가득해보였다. (2) 축복결혼한일본여자와한국인남자 통일교와인연이된지 3 년이됐고, 작년에일본여자와축복결혼을했습니다. 저같은경우는일본어회 화연습때문에일본인아주머니와친하게지내다가한국에서남자들이사귀던여자들과자꾸헤어지는것 을보고아주머니의권유로축복결혼을했고, 그때처음통일교란것도알았습니다. 그래서교회에나가게됐고, 소문대로정말노처녀나시집가기힘든못생긴여자들만한국에시집오는줄알았는데교회에나가한국에시집온일본부인들을보고깜짝놀랐습니다. 거의대부분이굉장한미인이란사실뿐만아니라그중에는일본에서모델로서활동하다가온부인도있었습니다. 정말, 외모들도나무랄데가없었고대부분이대졸출신들이었습니다. 제아내도키가크고일본의유명한대학에서수재로졸업한똑똑한여자입니다. 그런데인물좋은여자들 이무엇때문에한국총각들한테시집을오느냐? 저도그것이매우궁금했습니다. 그해답은교회를다니 면서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가정연합의사상인원리강론입니다.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8

99 원리강론은성경에서알수없는여러가지것들을설명해주고있습니다. 그원리강론을통하여가정의화목을가장중요시하며, 참가정을만들기위해서는가정연합의교리에익숙한통일교인끼리결혼을하여가정에서천국을만들수있고하나님의창조이상을실현할수있기때문에한국을아버님의나라로생각하고일본을어머니의나라로만들어세계평화통일을이뤄야한다는것을알게됩니다. 그렇기때문에일본여자들이교리에익숙한한국남자들과결혼한다는사실을알게된것입니다. 일반사람들은축복결혼한가정을보면부러워합니다. 남편을왕처럼모시고부인을왕비처럼모시기때문에서로존댓말을하며위해주는것을자주보게됩니다. 일본여자들이참가정을이루기위하여한국남자들과결혼합니다. 일본에서결혼해살다가싫증나면바람피우고가정에무관심해지는일본남자보다는부인을왕비처럼모시는한국통일교인남자한테시집오는것을굉장한영광으로생각하고있는것이현실입니다. 문선명의반대편에서있는그들은누구인가 세계평화운동은참가정의참사랑에서부터시작된다. 진정한가정과진실한사랑을알기위해서는축복결혼식을통해야하는데, 이축복결혼식은지금까지의일반적인결혼식과다르다보니일반인들과다른종교인들에게비판의좋은구실이되고있다. 이와더불어 왜일본인들과결혼하고, 왜북한을도와줘야하며, 왜구소련공산주의는무너트렸는가? 종교통합의목적은무엇인가? 하는등유언비어를만들어내며비판하고있다. 세살짜리어린아이한테서손에있는먹거리를뺏으면가만히있지않는데, 수백년이상지키고믿어온종교문제를초종교적으로통일한다는주장하는데대해종교적기득권을가진사람들이목숨걸고반대하며대립하고있는것이다. 이런갈등속에서통일교회에대한원초적인유언비어가조작유포되어우리사회속에퍼지고있는것이다.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99

100 그가한국에남기고있는업적들 이미, 우리민족분단과양극화를평화통일의이념으로한일, 영호남, 남북까지대화합을이루기위해서울에서 평화통일대회 를개최하여한민족대화합의물꼬를열었다. 일본민단, 조선인총연합회 ( 조총련 ) 등재일동포와영호남주민들을한자리에모아한민족대화합의장을마련하여재일동포통일운동단체인평화통일연합과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이서울에서민족통일과화해를위한 총심정동족권평화통일대회 를가졌던것이다. 한국인으로서의문선명총재, 그가대한민국이란상표가치의브랜드를높인다는데누구든지공감할것이 다. 전세계통일교회신도들은한국을신앙의조국으로생각하고경배하며한국사람을존경하고사랑한 다. 역사상누구도한국사람으로이만한실적을이룬사람은없을것이다. 문총재는앞으로도세계평화를위한야심찬프로젝트를계획하고있다. 문총재는 국경없는지구촌시대가열릴것 이라며베링해협터널프로젝트로미국과러시아를연결한다고하여세계인의주목을받고있다. 미국알래스카프린스오브웨일스와러시아데주뇨프의베링해협을연결하는 평화의왕다리및터널 은미국에서멕시코를거쳐남미에이르는철도망을연장또는증설하면향후 10여년내에남미대륙까지연계되는물류시스템이완성될것이라고한다. 그러면러시아는서구사회의공산품들과공장시설그리고기술을손쉽게도입할수있게돼획기적으로경제발전을이룩할수있다는것이다. 지구촌화합과인류공영의꿈이현실화되어가는것은한일해저터널사업에서도볼수있다. 한국과일본사이에가로놓인대한해협은 가깝고도먼바다 라고한다. 직선거리로 200km에불과하지만풍랑이심하고거센조류로선박들이항해하기를꺼려하는바다를한국거제도와일본큐슈 ( 후쿠오카 ) 를연결하여해저고속철운행시대를열기위해서일본큐슈쪽에서해저로 400m까지굴착한상태다. 꿈같은이야기들이우리의현실로다가오고있는것을보면, 그에대한기대감도현실화되리라고보여진다. 또한피스컵을개최하여지구촌을하나로묶고세계인의마음을하나로묶고있는데, 그것도지구촌곳곳에평화와희망의메시지를전달하는사건이라고할수있다.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100

101 그와관련된통일그룹은국내외의경제적인면에서직간접적으로영향을주고있는데강원도평창에리조트사업으로 2010년까지총 8천1백57억원을투자하고, 전남여수에 1조5천억원규모의투자협약을체결하여 2015년까지대규모해양관광리조트사업을전개한다. 대북사업에관해서도평화자동차와보통강호텔옆에 7층규모의평화센터건립등 1991 년문선생과김일성의쌍방합의에따라서 10년이넘도록평화통일을위해앞장서서노력하고있다. [ 임채수, 최병기기자 / 사진김태영기자 ] 통일교문선명총재의걸어온발자취를조명해본다. 101

102 통일교는생명의교회 블로그 통일교회는생명의교회 http://blog.daum.net/happyworldpia 저자 HAPPYBOY 발행일 2011.06.07 23:01:04 저작권법에의해한국내에서보호를받는저작물이므로무단복제와전재를금합니다

21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은 한반도 평화·통일 물꼬 튼 역사적 회담이었다” | 세계일보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은 한반도 평화·통일 물꼬 튼 역사적 회담이었다” | 세계일보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은 한반도 평화·통일 물꼬 튼 역사적 회담이었다”
입력 : 2021-02-13
 
세계평화교수회의,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주최로 1월 27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통일회관 4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 왼쪽부터 조정진 박사, 김일기 박사, 김수민 교수, 홍석훈 연구위원.

1991년 12월 6일 북한의 함경남도 흥남시 마전의 주석공관에서 세계적인 종교지도자 문선명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 설립자이자 세계평화연합 총재와 북한의 국가주석 김일성이 약 3시간 동안 역사적 특별회담이 진행됐다.

오찬을 겸한 회담 자리에는 남측 인사로는 문선명 총재의 부인 한학자 여사, 박보희 당시 세계일보 사장 등이, 북측에선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과 윤기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흥남은 1945년 광복 직후 북한에 선교하러 들어갔던 문선명 선생이 1948년 5월부터 6·25 때 미군이 진격한 1950년 10월까지 감옥살이 하던 곳이라 유서 깊은 장소이다.

세계평화교수협의회(PWPA·회장 토마스 셀로버)는 문선명·김일성 회담 30주년을 맞아 1월 27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통일회관 4층 세미나실에서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날 학술회의는 전국 PWPA 회원들이 함께 참여했다.세계평화교수협의회 주최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 사회를 맡은 선문대 김수민 교수.

1부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정기총회에 이어 진행된 2부 연례 학술회의는 선문대 김수민 교수의 사회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일기 책임연구원(정치학박사)의 ‘문선명·김일성 회담 30주년, 한반도 평화의 길을 묻다’와 세계일보 조정진 선임기자(북한학박사)의 ‘문선명·김일성 회담 역사적 의의와 평가’ 발표에 이어 선문대 김민지 교수, 전남대 지충남 교수, 전북대 전광호 교수, 통일연구원 홍석훈 연구위원의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에 나선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일기 박사는 먼저 “국제적 반공주의자이자 승공주의자인 문선명 총재와 사회주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수령제’라는 종교 국가적 형태를 띠고 있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담은 당시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불과 수개월 전인 1990년 4월,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을 통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적 대화’가 한반도에서 다시 한 번 개최된 것”이라고 운을 뗐다.세계평화교수협의회 주최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 발제를 맡은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일기 박사.

김일기 박사는 문선명·김일성 회담 배경에 대해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체제 전환에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낀 김일성의 의지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문선명 총재의 의지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문선명 총재는 1990년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을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이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최대한 이른 시일에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하며 문 총재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 나섰던 배경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한반도 전쟁 재발 방지이다. 소련이 1~2년 이내에 붕괴할 것을 직감한 문 총재는 소련 붕괴 이후 궁지에 몰린 북한이 전쟁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상황을 우려해 이를 막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 채널확보가 급선무라고 판단하였다.

둘째, 조국의 장래, 즉 통일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문 총재는 남북이 먼저 평화통일을 이루어온전한 주권을 회복해야만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 주석과 만나 ‘사랑에 의한 남북통일’, 즉 ‘무력에 의한 통일’과 ‘주체사상에 의한 통일’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주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전파하고자 했다.

셋째, 북한에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전해주고자 하였다. 문 총재는 북한을 내 고향, 내 형제의 집으로 여기고 사랑의 마음을 주려고 김 주석과 만나고자 했다. 그는 북한에 쌀을 주고 비료를 주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정을 다해 북한을 생각하고 위할 때 북한도 마음의 문을 연다고 확신하였다.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주최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 토론을 맡은 선문대 김민지 교수(오른쪽).

넷째, 한반도 중심의 세계평화 메시지 전파이다. 문 총재는 한반도가 세계평화의 축이고, 한반도의 천운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민족 중심의 세계평화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하고자 하였다. 문 총재는 좌익과 우익의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기 위한 공생·공영·공의주의의 두익사상을 실천하고자 남북통일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남북한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이다. 문 총재는 1991년 12월 1일 평양에 도착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원수의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고향 내 형제의 집에 가는 것이다. 나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서로 단결하자는 나의 필생의 신조를 가지고 북한 땅을 밟았다.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당국자 간의 발전적인 대화와 교류를 증진시켜 나가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심경에서 북한을 방문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는 문 총재의 방북 목적 중 하나가 남북한 대화와 교류협력에 교량적 역할을 하고자했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세계평화교수협의회 주최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 토론을 맡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홍석훈 박사.

회담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첫째, 형식적 측면에서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한반도 분단 역사에서 남한의 민간 대표와 북한 정상 간에 이루어진 최초의 공식회담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고, 둘째, 내용적 측면에서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비핵화, 남북경협 활성화,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한 회의였다는 점, 셋째, 문선명·김일성 회담에서 합의한 4개항은 향후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었으며 상당한 진정이 이루어졌다는 점, 넷째, 탈냉전 세계사적 전환기 속에서 한반도 평화의 전기를 마련한 회의였다는 점 등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김일기 박사는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문 총재의 세계평화사상이 남북통일, 민족통일,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주었다는 데에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보았다.세계평화교수협의회 주최 ‘문선명·김일성 특별회담 3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회의 발제를 맡은 세계일보 선임기자 조정진 박사

‘문선명·김일성 회담 역사적 의의와 평가’를 주제로 발표한 조정진 박사는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전과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성사과정과 합의 내용, 그리고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후에 발생한 김일성 사망과 조문파동,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평가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조 박사는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의 역사적 회담의 의미를 다음 열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역사적인 통 큰 담판 사건이었다.

둘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성경에 기록된 ‘야곱과 에서’ 노정의 재현이다.

셋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실향민과 탈북민 등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해원의 노정이다.

넷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유신론과 무신론, 유심론과 유물론, 종교와 반종교, 신과 물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승공과 용공, 자유와 독재, 인권과 반인권, 변증법과 수수법 등 여러 대립되는 세계관의 만남이다.

다섯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통일사상과 주체사상의 대결을 통한 사탄사상의 자연 굴복을 위함이었다.

여섯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통한 세계평화운동이자 남북통일운동이다.

일곱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김일성에게 잃어버린 기독교 향수를 깨우쳐 줬다.

여덟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남한의 민간 종교지도자와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만나는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이 이은 세계사적 회담이었다.

아홉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방북한 민간인 중 처음으로 합법적 절차를 밟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첫 선례를 남겼다.

열 번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적개심을 사랑으로 돌려세운 남북통일운동의 역사적 전환 회담이다.

다음은 조 박사가 이날 발표한 논문 ‘문선명·김일성 회담 역사적 의의와 평가’의 각주를 뺀 전문이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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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김일성 회담 역사적 의의와 평가 <전문>



Ⅰ. 서론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恨)이 맺히게 한 사이라는 뜻이다.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할 원수라는 뜻의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는 말도 있다. 도저히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관계이니 얼마나 껄끄러운 사이인지는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오랜 반목과 질시로 인해 서로 귀한 아들과 딸을 잃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몬태규 가문과 캐퓰렛 가문 사이를 연상하면 된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이하 통일교) 창립자 문선명(文鮮明, 1920∼2012) 선생과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이하 북한) 김일성(金日成, 1912~1994) 주석은 70평생을 불구대천지원수로 지낸 사이이다. 문선명 선생은 북한을 무신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독재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북한은 국제승공운동을 하는 통일교와 종교지도자인 문선명 선생을 ‘엄청난 괴뢰도당, 승공의 괴수’로 불렀다. 물론 개인적인 원한 관계는 아니다. 각자 살아온 삶의 궤적과 철학, 신념이 정반대로 서로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유신론 세계관으로 무장된 문선명 선생은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신이 직접 통치하는 지상천국론’을 펼치는 종교지도자인 반면, 종교화된 ‘유물무신론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자인 김일성은 북한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절대 권력을 구가하는 철권 통치자였다.



따라서 인류 사상사의 두 큰 흐름 중 하나인 헤브라이즘을 대표하는 종교지도자 문선명 선생과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주체사상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 만난 일은 보통 사건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이요, 시대적 사변이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예전엔 통일교에 대해 “종교의 탈을 쓴 반공별동대, 반공모략단체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해독성을 갖고 있으며, 교리의 허황성과 사회윤리를 문란시키고 청년들을 정신불구자로 만드는 해독행위와 광란적인 반공모략 책동으로 남한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규탄과 배격을 받고 있다”고 규정했었다.



‘문선명·김일성 회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회담은 1회로 끝났지만 그 후 회담 당사자인 문선명 선생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김일성 주석의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할 때는 물론이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하고 있는 2021년 1월 현재까지도 통일교와 북한 양측은 꾸준히 대화 채널을 유지하며 우호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회담 직후 추진된 경제협력 원칙에 따라 북한에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운영 등 합의 내용 후속 조치가 일사불란하게 지속되어 양측의 신뢰 관계는 매우 두터운 편이다. 여기엔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시 문선명 선생이 최측근인 박보희 당시 세계일보 사장을 조문사절로 보낸 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문선명·김일성 회담에 동행했던 한학자 통일교 총재는 2015년 5월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에서는 (우리에게) 지극정성이에요. 문 총재님과 김일성 주석과의 관계는 굉장히 끈끈했어요.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이 다 (통일교에 대한 김일성의) 유지를 받들었어요” 하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방북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계적인 승공운동가이자 종교지도자 문선명 선생과 세계적인 공산주의자 김일성 주석이 만난 희귀한 사례인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그동안 학계의 관심과 연구가 거의 없어 일반인은 물론 관련 전문가들조차 자료 접근과 이해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개최 사실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묻혀진 역사적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각각 당대 유신론과 무신론 사상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두 지도자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이 극적으로 만나 정상급 회담의 새 지평을 연 1991년의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성사 배경과 성사 과정, 회담 성과를 정리하고 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평가를 학술적으로 구명(究明)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올해는 ‘문선명·김일성 회담’ 30주년이 되는 해로 1991년 회담 때 합의되고 기대됐던 남북한 화해와 평화, 교류, 이산가족 상봉, 한반도 비핵화, 평화적 통일이 요원해진 원인과 해결 방안까지 모색해 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본고는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전의 추진 상황과 회담 성과 과정부터 회담 내용, 회담 이후 후속조치 이행 등 시간 순으로 시기를 나눠 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교훈을 살펴보고, 나름 객관적 평가를 시도한다. 연구 방법은 회담 당시의 신문 잡지 등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회담 관계자들의 구술과 증언록, 극소수의 관련 연구 논문을 수집 분석해 재해석하는 문헌연구법을 활용하고자 한다.



Ⅱ.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전



1. 문선명의 삶과 철학



문선명 선생의 삶은 크게 두 분야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종교인으로서 본인이 창교한 통일교 기반을 확장해 모든 인류를 교인화 하는 지구촌 선교이고, 또 하나는 무신론에 근거한 공산주의를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국제승공운동이다. 이런 목적 실현을 위해 문선명 선생은 1954년 종교법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설립했고, 1968년엔 사회단체 국제승공연합을 창립했다. 문선명 선생의 또 다른 꿈인 한반도의 남북통일은 무신론에 기반 한 한반도 북녘 지역을 하나님주의라는 유신론, 즉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으로의 탈바꿈이다. 이를 위해 문선명 선생은 1986년 남북통일학생연합을 결성하여 주사파 등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좌파이론에 속수무책이던 대학가에 일대 경종을 울렸으며, 1987년에는 좌·우익의 이념을 넘어선 범국민 통일운동단체인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을 창설했다.



문선명 선생은 북한과 인연이 깊다. 1920년 북한 행정구역인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한 문선명 선생은 1948년 2월22일 남한 스파이란 죄목으로 평양 내무서에 끌려가 세 달 만에 무죄로 석방됐으나 곧바로 기성 교회의 투서로 공산당에 잡혀가 4월 7일 공판 이후 평양형무소에 수감, 5월 20일 흥남감옥으로 이송된 후 1950년 10월 13일 미군의 흥남 진격으로 2년 8개월 만에 흥남감옥에서 나와 자유를 맛봤던 가슴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그 후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에 정착해 공산주의 유물사관을 반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승공운동을 벌였고, 소련 공산당의 세계적화전략에 맞서 자유세계를 수호해야 한다고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철저한 국제적 반공주의자이자 승공주의자이다.



문선명 선생은 목회자로서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평화운동, 참가정운동, 언론운동, 심정교육활동, 학술운동, 문화·예술·스포츠 활동, 종교화합운동, 여성운동, 청년운동, 봉사·구호활동, 후생복지사업, 과학기술산업진흥운동은 물론 유엔에 기반한 비정부기구(NGO) 운동 등을 통해 평화세계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에 미국 잡지 뉴스위크는 이러한 실적을 인정해 1976년 문선명 선생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영국 신문 선데이타임스는 1991년 ‘20세기를 만든 1000명의 인물’ 가운데 한민족 중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 김일성 주석과 함께 문선명 선생을 나란히 꼽을 정도로 위상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은 종교적 편견으로 사후 9년이 흐른 2021년 현재까지도 위인 반열은커녕 기독교계의 이단 교주 논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선명 선생의 공산주의, 특히 북한에 대한 이해는 통일교 경전인 ‘원리강론’에 잘 나와 있다. ‘원리강론’은 “히틀러가 망한 후 사탄 편인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공산세계가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제1, 제2차 세계대전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분리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쟁이었으며, 따라서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제3차 세계대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리강론’은 이어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나라는 바로 한국이며, 따라서 한국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일선인 동시에 사탄이 가장 미워하는 일선이 되어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은 여기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고,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이다. 그러므로 삼팔선에서 일어났던 6·25동란은 국토 분단에 기인한 단순한 동족상쟁이 아니라 민주와 공산 두 세계 간의 대결이었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결이었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문선명 선생에게는 공산주의 최전선에 위치한 북한은 가인의 세력이며 사탄의 세력인 셈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문선명 선생의 철학은 1983년 12월 20일 국제승공연합이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한 전국승공궐기대회 대회사에 잘 나타나 있다. 문선명 선생은 이날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폭력을 일삼고 있는 공산주의 세력을 이 지구상에서 근멸하지 않고서는 결국 조국의 통일, 세계평화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며 “통일운동의 최종 목적은 공산주의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일소하고 참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의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다. 악마가 지배한 북한을 이기고 남한 내 지하조직을 적발하기 위한 실천적인 국민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북한과 관련된 이날 문선명 선생의 강연 요약이다.



“북한은 악을 대표하고 대한민국은 선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겨야 할 숙명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승리할 때 대한민국은 세계에 웅비할 것이요, 공산주의에 패할 때 대한민국은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패망의 비참한 운명은 인류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만을 이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공산주의를 이겨야 합니다. 북한은 악한 편에서 세계공산주의를 대표해서 북한 땅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선한 편에서 세계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한민국은 각각 공산세계와 민주세계의 첨단에 서서 양 세계를 대표해서 생사를 건 운명적인 역사적 대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악을 대표하고 대한민국은 선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악마가 지배하고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같이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리하여 한반도는 세계에서 선과 악이 가장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세계사적 지역이 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선이 악을 승리할 때 세계의 모든 악은 망하게 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문선명 선생의 제자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은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남북통일’에서 “남북통일은 문선명 선생의 숙원이다.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선명 선생의 승공사상”이라며 “승공이념은 세계를 공산주의 마수에서 구할 수 있는 사상이며, 이는 20세기 새 종교혁명”이라고 강조했다.



문선명 선생의 북한관은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후 변화를 드러냈다. 문선명 선생은 2000년 ‘세계와 남북통일은 참사랑으로’라는 설교를 통해 “이미 북한 사람들은 전 국민이 다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을 소화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사랑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선명 선생은 또 “문제는 남한 사람이 남한을 사랑하는 이상 북한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야 된다. 또한 북한 사람이 북한을 사랑하는 이상 남한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면 된다. 그것밖에는 모색 방안, 해결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문선명 선생이 20세기 최대 지구촌 과제인 냉전종식에 기여한 업적은 국제법 질서가 국가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문선명 선생은 국가를 대표하는 어떠한 직책도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지명도는 갖췄지만 그는 종교인이자 기업인, 세계 규모의 NGO와 사회단체 창설자이자 운영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문선명 선생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소련 중국 일본 등 그 어떤 강대국 국가수반이나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기구 대표가 하지 못한 일을 먼저 기획하고, 먼저 실행에 옮겨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민간인이지만 그가 이룩한 종교·경제·언론·문화 등 세계적인 기반에서 우러나오는 막강한 영향력에 기인한다. 여기엔 통일교의 교세는 물론 사업적 기반, 그리고 세계 여론을 움직이는 미국 워싱턴에서 통일교가 발행하는 일간 워싱턴타임스와 한국에서 발간하는 일간 세계일보의 역할과 위력도 한몫했다.



2. 김일성의 삶과 철학



김일성 주석은 1912년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현 평양시 만경대)에서 부친 김형직(1894~1926)과 모친 강반석(1892~1932)의 장남으로 출생, 1919년 만주로 이주한 부친을 따라 팔도구소학교, 길림육문중학 등에서 수학했다. 1929년 반단체 가입죄로 체포돼 길림감옥에 구금돼 있다가 1930년 석방된 후부터 한인과 중국인 공산주의들과 유격대 활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1941년 일본토벌대에 밀려 소련의 연해주로 퇴각해 있다가 1945년 9월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들어와 소련군정의 후견 하에 1948년 9월 북한정권의 수립과 동시에 초대 수상으로 권력을 장악한 후 1994년 사망할 때까지 장기집권자 독재 권력자로 군림했다.



김일성 주석의 권력은 그가 사망한 이후 현재까지 자신의 아들과 손자, 즉 김정일·김정은의 3대 부자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현재 북한은 국가 그 자체가 김일성국가, 김일성민족으로 상징화된 김일성의 ‘수령종교국가제’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북한이 창조주 김일성의 주체영성에 의한 하나의 거대한 종교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가운데 모든 북한 주민들은 수령 종교의 신도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늘 지구상 최악의 종교 탄압 국가로 분류되지만 김일성 주석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다녔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김일성 주석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은 교회 장로였고, 아버지 김형직은 평양에서 기독교계열 학교인 숭실중학교를 다녔다. 어머니 강반석(본명 강신희)도 예수의 제자이자 초대 교황 베드로를 뜻하는 ‘반석’으로 개명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강돈욱의 6촌 동생 강양욱은 목사로 북한의 국가 부주석까지 지내면서 북한 정치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일성의 부모 김형직과 강반석의 결혼을 주선한 사람은 미국의 저명 침례교 목사 빌리 그레이엄(1918~2018)의 장인 넬슨 벨 의료선교사였다. 벨 선교사는 강반석의 기독교식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러한 인연에서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과 1994년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첫 방북 때 김일성 주석에 성경을 선물하고 인간의 사후 문제에 대해 언급하자 김일성 주석이 경청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과거의 일보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영국주재 북한공사를 지내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국회의원은 197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이 ‘북한에는 더 이상 종교 문제가 없다’고 선포했지만 1980년대 남한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기독교와 가톨릭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북한의 종교정책에 변화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등 재야 기독교 세력과 교류하고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북한에도 종교가 있는 것처럼 교회와 성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태 의원은 “그러나 북한이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가짜교회와 성당을 지어놓고 쇼를 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생겨났다”며 “이렇듯 종교의 위력을 깨달은 북한의 노동당이 더 이상 교회와 성당을 짓지 않고 종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 주석도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 “일이 정 고달플 때면 어머니는 삼촌어머니와 함께 예배당으로 가곤하였다. 송산이라면 지금의 군사대학이 있는 곳인데 거기에 장로교 계통의 예배당이 하나 있었다”며 송산교회 김성호 담임목사에 대해 회고하면서 “송산교회에 다닐 때 교회에서 주는 사탕과 공책을 받았던 일들도 기억하고 있다”고 증언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말년에 자신의 명령으로 복원한 봉수교회 등 평양에서 교회를 다녔다는 증언도 있다. 실제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과 평양 숭실중학교 동문이자 함께 교회를 다닌 주일학교 친구였던 김성락 목사는 생전에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는데, 1981년 방문 때는 함경도 별장에서 함께 점심을 먹게 되자 김일성 주석이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해 식사기도를 했더니 “아멘” 하고 응답했다고 회고했다. 김성락 목사는 헤어질 때 김일성 주석에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주고 왔다고 밝혔다. 김성락 목사는 또 일제하의 숭실대학과 같은 대학을 평양에서 하나 해 보았으면 한다고 하자 김일성 주석은 “평양에 들어와 다시 하나 만들어 보자”고 승락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편, 북한은 2016년 문선명 선생을 ‘통일애국인사’로 소개했다. 북한 대외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2015년 출간된 책 ‘통일의 길에 이름을 남긴 애국인사들2’ 편에 재미동포 김성락 목사를 비롯해 임창영 전 주유엔대사, 홍동근 목사,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함께 문선명 선생에 대한 사연을 담았다. 기사는 ‘반공은 숙명인가, 고독한 항해자’라고 표현된 문선명 선생에 대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난 뒤 “민족을 위한, 통일을 위한 그의 갱생의 첫걸음이 시작됐다”며 “참된 애국은 혀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장 속에 있다. 애국의 말은 하기 쉬워도 애국의 행동을 하기는 어렵다. 민족의 기대와 통일의 결심을 안고 가는 훌륭한 애국의 길이었다”고 소개했다.



3.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



문선명 선생은 공산주의 소멸을 통한 무신론의 해방, 즉 지구촌을 하나님주의로 일색화하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문선명 선생의 설교 중에 “이 지구상에 제일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이 바로 공산주의의 출현입니다. 이것이 왜 큰 사건이냐? 엄연히 살아있는 하나님을 죽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죄 중에서 제일 큰 죄는 분명히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계시는데 하나님이 죽었다고 한다면, 그 이상의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원수의 주인공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산주의에 대한 모든 것을 타파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승공에 대한 훈련과 무장을 해야 되겠습니다”하는 내용이 있다. 문선명 선생이 전개한 승공운동의 핵심은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라는 외침이고, ‘공산세계를 구원하고 사탄까지도 구원한다’는 통일교 교리의 핵심인 ‘하나님의 참사랑’에 기반한다.



문선명 선생은 1989년 소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승공운동을 한 것은 소련을 적으로 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련 사람들을 걱정하고 소련의 발전을 위한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내가 40년 넘게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한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과 착취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옳았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는 신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는 나의 영적 삶에서 신이 있음을 알고, 그의 마음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었음을 주장한다. 나는 역사적 시작을 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소련 국민의 성공을 기원한다. 소련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 그리고 서방과의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선명 선생이 제시한 가시적 목표 중의 하나가 냉전의 평화적 종식이다. 심지어 문선명 선생이 남북통일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고서는 세계평화가 올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래서 소련과 동유럽을 위시한 세계 공산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공산주의의 폐해를 집요하게 지적하면서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위해 노력했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등 한반도 화해와 통일의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섰다. 이런 노력 덕분에 불가능한 것 같았던 평화적 냉전종식이라는 문선명 선생의 바람과 계획은 문선명 선생이 예정한 해에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이루어졌다.



문선명 선생이 공산주의를 종언(終焉)시키기 위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을 해체시키기 위해 어떻게 계획했고 어떻게 접근했는지 곳곳에 깔아놓은 복선(伏線)들을 하나하나 찾다보면 수시로 무릎을 치게 된다. 문선명 선생 회담 성공을 위해 수십 년 전부터의 면밀한 계획과 준비를 했다. 마치 20세기 세계사를 대하드라마로 연출하듯 문선명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은 ‘예언’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치밀한 복선과 완벽에 가까운 사전 준비가 돋보인다.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갖춘 종교지도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문선명 선생은 반세기 이전부터 소련 붕괴를 통한 냉전종식이라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움직였다. 승공이론서 ‘새 공산주의 비판’ 출판부터 승공운동 관련 국제기구 조직, ‘노한사전’ 편찬 지원, 일찍이 재일교포 사회의 화해를 주선하며 조총련 고국방문 사업을 추진한 일, 적대국 소련에 자동차 2,000대를 기부하겠다는 통 큰 깜짝 제안 등이 그렇다. 더욱이 어쩌면 돈을 마구 쓴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마포 도원빌딩 준공식 현장에서의 15억 원 살포, 피보다 귀한 교인헌금 2억 5,000만 달러를 회수 불투명한 공산국가 중국에 투자한 사건, 자신의 고희연을 국민잔치로 일주일 동안이나 대대적으로 치른 사연 등이 모두 소련 지도자와의 단독회담을 유인하기 위한 원려(遠慮)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소련은 당시 절대적으로 현금 등 외부의 경제지원이 필요했고, 문선명 선생은 충분한 현금동원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고르바초프의 러브콜을 받게 된 것이다.



세상이 문선명 선생을 믿던 외면하든, 통일교인들이 예언가이자 실천가로 한평생 세계평화를 통한 인류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문선명 선생을 종교지도자로 모시고 따라간 이유를 문선명 선생의 족적과 사료는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하지 못한, 아니 정치 지도자들은 꿈조차 꾸지 못한 일을 문선명 선생은 민간인의 신분으로 국경·종교·민족·인종·이념을 뛰어넘어 원대한 목표를 세웠고, 기어이 이루었다.



문선명 선생이 이룩한 성과 하나하나는 모두 민간 외교관으로서 해낸 것이다. 윤기복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1991년 문선명·김일성 단독회담 직후 “문 총재님이 무서운 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주석님을 대하시는 걸 보니 세상에 그런 천재적인 외교관도 없다. 문 총재님의 또 다른 위대한 면을 보았다”고 평가했다. 문선명 선생 스스로는 1991년 역사적인 북한을 앞두고 중국 베이징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본인은 경제지원 전문가이자 화해 전문가로서 북한과의 경제개발 협력 및 사상적 화해를 이끌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문선명 선생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은 1990년 4월 11일 오후 6시 모스크바 크렘린궁전 대통령 접견실에서 이뤄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일회적인 만남이나 보여주기 식 행사가 아니라 냉전종식과 탈냉전의 전환기를 여는 회담으로 이후 한‧소 수교와 소련 붕괴, 냉전종식과 다극체제 전환 등 탈냉전시대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문선명 선생은 독일 통일에 고르바초프가 큰 역할을 한 걸 높게 평가하며 “한국의 통일을 위해서도 대통령의 역할과 협조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대결과 투쟁은 원치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세계평화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세계평화 구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도 공동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며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엔 고르바초프가 먼저 “문선명 회장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다국적 경제기반과 세계적인 조직을 활용, 소련의 발전을 위해 직간접적인 힘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한국과의 경제협력 역시 소련의 경제발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소·한 두 나라는 기술과 과학분야에서 상호교류를 증대해야 한다. 두 나라가 합작하여 세계 각지에 전출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문선명 선생은 “소련이 규제를 없애고 적극적으로 문호를 열어 경제적인 개방정책을 펼쳐야 국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서 “통일교회의 세계적인 기반을 동원하여 소련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천명했다.



문선명 선생은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고, 고르바초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한반도의 평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통일 이후 우리 모두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긍정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이제 한반도 통일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남북한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소련이 할 일을 구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문선명 선생은 회담 성사 직후 소련의 정치 지도자들과 청년 지도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91년 4월에는 3200여 명의 고위 관리와 정치지도자들을 미국으로 초대해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인 소개를 하였다. 앞서 1990년 7월부터는 소련 대학생 3500명을 100~250명씩 나누어 총 27회에 걸쳐 미국 국제교육재단(IEF)이 주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시켰다. 국제교육재단은 자유세계 및 공산세계 젊은이들 사이의 화해 및 대화와 교육을 촉진하기 위해 문선명 선생이 설립한 기관이다.



1991년 8월 소련 부통령 겐나디 야나예프, 총리 발렌틴 파블로프, 국방부 장관 드리트리 야조프, KGB 국장 블라디미르 크류츠코프 등 보수파들이 비상사태위원회를 구성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크림반도 포로스 별장에 감금하는 등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보리스 옐친과 함께 탱크 앞을 가로막은 채 쿠데타 세력을 굴복시키는데 앞장 선 이들이 이때 미국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다. 쿠데타가 벌어진 3일 동안 반군세력에 의해 감금됐던 소련 국가교육위원회 구리예프 차관은 석방된 후 “소련을 구한 분은 바로 문선명 총재님이다. 문선명 총재님이 소련을 구하셨다”라고 밝혔다.



1990년 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1회 세계언론인대회와 제3회 세계평화를 위한 정상회의를 통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통해 냉전 종식의 씨앗을 뿌린 문선명 선생은 귀국 직후(4.30~5.22) 대한민국 전국을 순회하는 ‘모스크바대회 승리귀국 참부모님 환영대회’를 열었다. 이듬해 8월엔 세계평화종교연합과 세계평화연합을 잇따라 창설했고, 두 달 후인 10월엔 남북통일지도자총연합회를 결성했다. 마침내 1991년 11월 30일부터 12월 7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가지게 된다.



4. 김일성 만난 밀입북 인사들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전에 방북해 김일성을 만난 사람들이 있다. 정부의 비밀특사 이후락(1972)과 박철언(1989) 외엔 김구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국회의원 서경원,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문익환 목사, 임수경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 황석영 소설가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김구 선생은 일행과 함께 1948년 4월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참석차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고, 1992년 서경원 평민당 국회의원, 1989년에는 황석영 소설가(3.20~1993.4.27.), 문익환 목사(3.25~4.3), 한국외국어대학교 3학년 임수경 전대협 대표(6.30~8.15)가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하지만 이들의 방북은 모두 밀입북이라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도 비공식적 회담이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부터 여러 차례 비밀리에 방북, 김일성 주석을 만났으나 어떤 성과도 없었다.



Ⅲ. 문선명·김일성 역사적 회담



1. 성사 과정



종교인이자 평화·통일운동가인 문선명 선생은 지구촌을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 이상 세계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헌신해왔다. 문선명 선생은 자신의 이러한 목적 실현을 위해 장기간에 걸쳐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종교인으로의 사명은 공산주의 소멸을 통한 무신론의 해방, 즉 지구촌을 하나님주의로 일색화하겠다는 신념이었고, 본인을 한반도에서 태어나게 한 신의 섭리를 의식해서는 분단 된 남북을 통일시켜 북녘을 해방하는 일이다.



한반도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첨예한 대립, 공산 사회주의와 자유민주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무신론 세계관과 유신론 세계관의 대립, 좌우익의 대립, 평등과 자유의 대립 등 인류사가 축적해 온 모든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구촌 마지막 이념 분쟁지역이다.



문선명 선생은 일찍이 한반도가 통일 되는 과정에서 지구촌이 당면한 현안들의 해결책이 나온다고 보았다. 따라서 문선명 선생이 평생 이룩한 통일교의 세계적 기반은 남북통일 북한해방으로 귀결된다. 소련 대통령인 고르바초프를 만난 것도 결국은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볼 수도 있다. 고르바초프가 문선명 선생이 이룩한 세계적 기반을 의식해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을 수용했듯이, 김일성 주석도 고르바초프가 문선명 선생을 만난 데 용기를 얻어 문선명 선생을 기꺼이 평양으로 초대한 것이다.



물론 문선명 선생이 일찌감치 깔아놓은 복선은 있었다. 냉전종식이라는 큰 주제를 놓고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썼던 앞서 소개한 일련의 사업들은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 위한 원려(遠慮)이기도 했다. 경제난에 직면한 소련이 절대적으로 현금 등 외부의 경제지원이 필요했듯이 북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문선명 선생은 충분한 경제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고르바초프뿐만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러브콜을 받게 된 것이다.



문선명 선생은 7일간의 국민잔치로 진행된 1990년 2월 4일의 고희연 기념사에서 “그동안 본인이 세계적으로 닦아 놓은 기반들이 경이로운 업적이라고 함은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외형적이요 가시적인 그 기반 자체보다도,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나 자신을 중심 삼지 않았다는 점과 현재보다는 미래를, 개인보다 전체를, 작은 것보다는 더 큰 목적을 위하여 닦은 것으로서 하늘땅과 역사가 공인할 기반이라는 점에 긍지를 갖습니다” 하고 말했다.



문선명 선생은 이어 “만일 본인이 창도한 사상에 의하여 인격이 변화되고 남을 위하여 살 수 있게 된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으며, 우리에게 남북통일이 어려운 과제일 수 있겠습니까? 또 온 세계 인류가 이 뜻을 받아들인다면 평화롭고 번영된 세계는 보장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통일운동이 아직 양적으로는 미흡하지만 오늘의 실적이 갖는 의의는 우주사적인 것입니다. 본인은 지금 계속해서 봉공(奉公)하는 길을 찾고 있으며, 이 발걸음의 연속으로 생애를 마칠 것입니다” 하고 의미심장한 기념사를 남겼다.



문선명·김일성 회담 추진은 1991년 11월 16일 중국 베이징의 중국대반점에서 열린 ‘세계평화정상회의’의 평양개최를 위한 제3차 실무회담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다. 당시 실무회담의 북한 측 대표로 참석한 김달현 북한 정무원 부총리 겸 대외경제위원장과 통일교 측 대표로 참석한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에게 문선명·김일성 회담을 공식 제의함으로써 성사됐다. 공식적으로 문선명 선생을 평양으로 초대한 사람은 김달현 부총리와 윤기복 북한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위원장 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다.



박보희 사장을 북한과 연결해 준 사람은 재미교포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이다. 박경윤 회장은 2012년 월간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보희 사장이 통일교 쪽 카운터 파트였습니다. 통일교가 북한에 들어갈 때 힘들었어요. 중국이 문선명 총재 비자를 내주지 않았거든요. 단체 관광객 명단에 문 총재 이름을 넣어 간신히 중국비자를 받았습니다. 비행기가 뜰 때 서울에 ‘북조선 들어간다’고 연락했어요. 서울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하고 증언했다.



문선명 선생이 방북 전인 199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에서 문선명 선생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차기 세계평화언론인회의와 세계평화정상회를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이에 로드리고 카라조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과 안토니오 베랑쿠르 사무총장이 문선명 선생이 창설한 세계평화정상회의 대표단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세계평화정상회의 평양 개최를 위한 협의를 하였다.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 회담은 1991년 12월 6일 함경남도 흥남시 함주군 마전의 김일성 공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오찬을 겸한 가운데 진행됐다. 면담자리에는 남측 인사로는 문선명 선생의 부인 한학자 여사,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 등이 배석했고, 북측에선 김달현 부총리와 윤기복 조평통 부위원장이 배석했다. 흥남은 북한에 선교하러 들어갔던 문선명 선생이 1948년 5월부터 6·25 때 미군이 진격한 1950년 10월까지 감옥살이 하던 곳이라 유서 깊은 장소이다.



문선명 선생과 함께 방북길에 동행한 박경윤 회장은 “(문선명·김일성) 두 사람은 종교의 자유, 경제 협력, 통일 방안을 논의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김일성·문선명 만남 이후 통일교는 대북 투자에 나섰다.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 등을 북한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2. 합의 내용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은 1991년 12월 6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30분 동안 ‘문선명·김일성 회담’과 오찬을 갖고 전날 합의된 문선명·김달현 부총리의 ‘남북경협 합의서’ 교환과 문선명·윤기복 원호위원장의 10개항 공동성명을 공식 확인한 후 4개항의 합의문을 별도로 서명 발표했다.



첫째, 남북통일의 1단계인 인도적 사업추진의 일환으로 1992년부터 이산가족 찾아주기 사업을 추진한다. 이산가족 상봉 및 결합은 노령자부터 실시한다. 문선명 선생이 먼저 “지금도 조국에는 생사조차 모른 채 나이 들어 죽어가는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있으니 서로 상봉하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일성 주석이 “내년부터는 북남의 헤어진 동포들이 서로 만나는 운동을 시작하자”고 동의했다.



둘째, 핵에너지는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할 것이며 북한은 순리적인 국제 핵사찰을 받을 것이다. 이 문제도 문선명 선생이 한반도 비핵화선언 합의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협정 조인을 먼저 제안했고, 이에 김일성 주석은 핵이 평화적인 목적에만 사용하는 데에 동의했다. 또한 김일성 주석은 “북한이 순리적인 국제 핵사찰은 받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셋째, 북한은 해외교포를 위시한 모든 국가의 대북한 경제투자를 환영하며 군수사업을 제외한 북한의 평화적 경제사업에 통일그룹이 지원하는 대원칙에 합의한다.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은 금강산관광단지 개발 등 남북경협 문제를 폭넓게 논의하였다. 문선명 선생이 우리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을 관광단지로 크게 개발해야겠다고 말하자, 김일성 주석은 즉시 금강산 개발을 요청했다. 이는 회담 전날 문선명 선생과 김달현 부총리가 남북경협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한 것과 직결된 것이다.



넷째, 남북정상이 만나서 통일방식을 토론 및 결의할 수 있다면 정상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 문선명 선생이 먼저 “남북 정상이 서로 만나 통일방식을 결정해 줄 것”을 요청하자, 김일성 주석은 “만나서 통일방식을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김일성 주석은 “여러 번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하자고 제기도 하고 공식적으로 남측의 최고당국자를 초청하기도 했지만,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데 서로 뜻을 같이해야만 만나는 것이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은 이어 전날 합의된 문선명·윤기복 10개항 공동성명의 이행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김일성 주석은 문선명 선생과 윤기복 위원장의 공동성명 발표문에 동의하면서, 공동성명에 밝힌 내용들을 서로 성실히 이행할 것을 희망했다.



문선명·김일성 4개항 항의 내용이 포괄적인 반면, 문선명·윤기복 10개항 공동성명은 매우 구체적이다.



① 쌍방은 반세기까지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나라와 민족의 분열을 더 이상 지속시켜서는 안 되며 반드시 가까운 장래에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② 쌍방은 조국통일을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이 없이 자주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실현하여야 한다는 데 대하여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③ 쌍방은 제도가 다른 남과 북이 서로 공존 공영하는 기초 위에서 같은 민족으로서 통일국가를 세우는 방법으로 조국통일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민주주의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인정한다.



④ 쌍방은 우리 민족이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남과 북이 불가침에 합의하고 핵에너지는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여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제조나 배치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⑤ 쌍방은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며 다각적인 협력·교류를 실현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전되기를 희망한다.



⑥ 쌍방은 남북고위급회담이 온 겨레의 기대에 맞게 진전되어 하루빨리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를 기원하였다.



⑦ 쌍방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원칙에서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며 힘 있는 사람은 힘을,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어 조국통일 실현에 적극 이바지할 것에 대한 공동의 염원을 표시하였다.



⑧ 해외동포원호위원회측은 북한에 대한 해외교포들의 경제적 투자를 환영하였으며 세계평화연합측은 북한에서 추진하는 경제사업에 여러 가지 형식으로 투자할 용의가 있음을 피력하였다.



⑨ 쌍방은 세계평화연합 측과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측 사이에 문화교류를 실시하는데 합의하고 우선 다음해(1992년)에 ‘리틀엔젤스’의 평양초대공연과 평양예술단의 서울초대공연을 실현시키기로 하였다.



⑩ 쌍방은 관계단체들과의 협력 하에 조국통일을 앞당기며 1천만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남과 북 사이의 자유왕래와 전면 개방을 실현하는데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첫 단계로 인도주의적 사업을 함께 추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그 일환으로 다음 해(1992년) 안으로 쌍방이 합의하는 장소에 이산가족면회소'와 편지교환소를 설치하고 먼저 노령자들 사이의 만남부터 실시하도록 노력하기로 하였다.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은 10개항을 하나하나씩 검토하며 서로의 입장을 타진했다. 통일 문제에 특히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①, ②, ③항 모두 통일 문제였다. 먼저 문선명 선생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하자, 김일성 주석은 즉시 환영의 뜻을 표하며 1972년 7·4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을 강조했다. 이에 동의한 문선명 선생이 “김 주석께서 제안한 연방제통일방안을 남측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면 한 지역씩 점차적으로 통일해 보는 것이 어떤가”라고 제안하자, 김일성 주석은 “그렇게 해서는 나라의 통일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이어 문선명 선생이 “겨레의 단결을 이룩하면 내일이라도 통일할 수 있으니 김일성 주석이 전민족의 단결을 위해 더 노력해달라”고 말하자, 김일성 주석은 “오래전부터 남북 간의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고 단결된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협상도 제기하고 북남최고위급회담도 제기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어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고 후손들에게 통일조국을 물려주기 위해서 문선명 총재께서 돌아가면 북남최고위급회담도 하고 나라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자고 한다는 것을 미국 남한 일본 사람들과 당국자들에게도 적극 지지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은 통일방법론에 있어서 조금씩 의견을 달리했지만, 인도주의와 평화주의에 기초하여 통일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집중 논의했다.



회담 끝 무렵 김일성 주석은 문선명 선생에게 “미국 부시 대통령과 친한 사이이면 나를 초청하라고 전해주시오”라며 미국 방문 주선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문선명 선생은 미국의 정치 상황을 설명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석은 또한 문 선생의 금강산 방문 소감을 묻고 금강산에 얽힌 일화와 금강산온천(주을온천)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어 문 선생이 방북 후 둘러본 평양의 인민대학습당과 서해갑문 건축물에 관심을 표명하자 김 주석은 서해갑문의 건설 배경 등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밖에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은 함께 고향 이야기를 비롯해 서로의 추억, 좋아하는 음식 등과 관련하여 두루 이야기 했다. 양인은 ‘언 감자국수’ 이야기와 ‘사냥과 낚시’ 등 취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어 김 주석은 “문 총재와 오늘 처음 만났는데 이제는 자주 오십시오. 오랜 친구와 같이 생각하고 다시 오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문 선생이 “김 주석께서는 나보다 연세가 많으시니 형님뻘 되시는 군요”하자, 김 주석은 “문 총재, 우리 이제부터 형님동생하며 잘해 보십시다!”하며 문 선생의 손을 꽉 잡았다. 회담을 마무리한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복도를 걸어 나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일성 주석이 남의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은 것은 이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려졌다.



Ⅳ.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후



1. 회담 후속 조치



문선명·김일성 회담 합의에 따라 통일교는 세계적 기반을 움직여 속전속결로 남북한 경제협력을 추진하게 된다. 먼저 평양 인근인 남포시에 100만평 부지를 확보해 통일교 측 평화자동차가 70% 지분을, 북한의 조선민흥총회사 30% 지분을 갖는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을 2002년 4월 준공해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연간 1만대 생산이 가능한 규모다.



평화자동차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이름은 지어준 승용차 ‘휘파람’과 RV 차량 ‘뻐꾸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자동차를 생산했고, 평양의 주요 장소 8곳을 포함해 순안공항 및 고속도로에 상업용 광고탑을 북한 역사상 최초로 세웠다.



통일교는 아울러 문선명·김일성 회담 2년 후인 1993년 평양 보통강변에 위치한 10층 규모 163개 객실을 보유한 1급 보통강호텔을 인수했고, 문선명 선생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 생가 주변 30만평 부지에 정주평화공원을 조성해 전 세계 통일교인들이 순례를 하게 했다. 통일교는 또 평양에 이산가족 상봉 시 북측 회상상봉 장소 겸 북한 주민을 위한 외국어 및 컴퓨터 교육은 물론 교회 기능도 가능한 최신식 건물인 세계평화센터를 세웠다.



통일교는 이외에도 북한관광회사 ‘평화항공여행사’, 평화자동차 계열 대북무역회사 ‘평화무역’, 평화자동차 계열 대북건설회사 ‘평화토건’ 등을 북한에서 세워 운영해왔다.



통일교는 1994년 3월 27일 롯데호텔에서 제2차 세계평화대화를 가진 후 참석한 해외인사 70여명을 데리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기로 계획했었다. 이 계획은 1991년 방북 때 쌓아놓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북한의 초청으로 세워졌고 남한 당국도 허가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그 즈음 터진 남북대화장의 ‘서울 불바다 발언 소동’으로 백지화 됐다. 대신 문선명 선생은 그해 4월 윌리엄 테일러 미국 전략문제연구소(SCSIS) 부소장과 조셋트 샤이너 워싱터타임스 편집국장을 CNN과 함께 평양에 보냈다.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은 1997년 9월 20일 또 한 번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1994년 김일성 조문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돼 있던 상태라 더욱 관심을 끌었다. 박보희 사장은 평양에 1주일간 머물며 북한 고위급들과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익을 위한 방문”이라는 알쏭달쏭한 설명 이외엔 입을 다물어 무슨 역할인지는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통일교와 북한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남북청년학생 평화세미나를 5차에 걸쳐 개최하였다. 아울러 1998년 5월 평양에서 리틀엔젤스예술단 공연을 4차례 가졌고, 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2000년 5월엔 북한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 학생들의 서울 공연이 이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북한과의 관계는 지속됐다. 문선명 총재는 2000년 10월 통일교산하 평화대사협의회가 진행한 대북식량 지원 사업에 10억원을 기부했다. 2007년 10월엔 남북한 포함 50개국 여성지도자 700명이 참가한 세계여성지도자 대회를 금강산에서 개최했고, 유엔(UN) 경제이사회에 등록된 평화봉사재단이 북한 농가주택 건축사업 추진, 4차례 걸친 재일동포 모국 방문사업 등을 성사시켰다.



문선명 선생의 90세 생일이던 2009년 1월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을 통해 90년, 80년, 60년 된 산삼 세 뿌리와 축하의 글을 자수로 새긴 리본, 장미꽃 90송이와 백합 90송이를 담은 화병과 화환을 보내는 등 매년 생일 때마다 선물을 보내왔다.



특이한 건 문선명·김일성 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달라진 종교 이해이다. 1981년 판 북한의 ‘조선말 사전’에는 종교에 대해 “신, 하나님 등과 같은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는 그 어떤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재나 힘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고 그에 의지해서 살게 하며 이른바 저승에서 행복한 생활을 꿈꿀 것을 설교하는 반동적인 세계관 또는 그러한 조직. 종교는 인민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착취와 억압에 무조건 굴종하는 무저항주의를 고취하는 아편”이라고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후인 1992년 판에서는 “사회적 인간의 지향과 렴원을 환상적으로 반영하여 신성시 하여 받들어 모시는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또는 그 믿음을 설교하는 교리에 기초하고 있는 세계관”이라고 현저히 중립적인 설명으로 바뀐 게 확인된다.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북한의 종교·종교인에 대한 사전적 정의마저 바꿔놓은 것이다.



2. 김일성 사망과 조문파동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간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예정일(7월 25일)을 17일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다. 하지만 회담 한 쪽 당사자였던 한국의 대통령 김영삼은 조의 표명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국무총리는 사망한 북한의 대통령을 “전범”이라고 불렀으며, 한국 정부는 “김일성은 6·25전범자임을 기억한다”라며 김일성을 비난하는 설명을 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또한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몇 분 만에 전군에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했다. 북한 주민들의 애도 분위기를 감안해 조문단을 파견해야 하지 않겠냐는 야당의 발언은 보수파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김영삼 대통령은 어떠한 형식의 조의 표현도 국보법 위반으로 간주해 단호히 대처할 것을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 장례식 다음 날 김영삼 정부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은 100건의 구소련 문서를 공개했다. 김일성이 6·25남침의 주동자였다는 내용을 증명하는 자료들이었다. 이에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분노했다.



한반도 정세도 최악이었다. 그해 6월 16일 미국 백악관에선 군 관계자들이 북한의 핵 개발 문제를 놓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회의를 갖는 등 ‘제2의 한국전’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물론 김영삼·김일성 회담이 예정돼 있었지만 한국에 패트리어트미사일이 배치되고, 미국 CNN은 한반도 위기상황을 전하기 위해 중계팀을 급파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는 “영변 핵 시설을 파괴하라”는 등의 강경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북한의 핵사찰 거부로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의 합의사항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문선명 선생은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지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 주석의 사망 소식을 들었지. 1991년도에 나를 초청하여 형제지의(兄弟之誼)까지 맺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네가 내 대신 평양에 들어가 조문을 하여라. 이것은 김정일 세대와 우의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되고 나라에도 유익한 일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외부에서 일체 조문을 받지 않겠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박보희 사장이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문선명 선생은 “뭐라고, 못 들어간다고! 내가 보내는 사람은 달라. 정 안 받으면 압록강을 헤엄쳐서라도 들어가. 알았어!”라고 강력하게 지시했다.



박 사장은 7월 10일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조화를 준비하여 주중북한대사관에 우선 조문을 갔다. 북한에는 그때까지 빈소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둘러 마련한 빈소에서 주창준 주중북한대사와 함께 조문을 마친 박 사장은 주 대사에게 문선명 선생의 당부를 전했다. 주 대사는 본국에 보고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문선명 총재의 조문 사절은 예외로 하여 평양에 모시도록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박 사장은 세계평화연합 문선명 총재와 세계평화여성연합 한학자 총재의 이름으로 각각 조화를 올린 뒤 상주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조의를 표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문선명 총재님과 영부인께서는 안녕하신가요? 이번에 이렇게 어려운 걸음으로 평양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거든 문선명 총재님께 뜨거운 본인의 감사를 전해 주십시오”라고 전했다. 또 “문선명 총재님이 조국과 조국통일을 위해 애쓰고 계신 것에 대해 부친께서 늘 말씀하시고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영빈관에 머물고 있는 박 회장을 찾아와 조문을 비난하는 남측 신문기사를 보여주며 “이웃집에 초상이 났는데 동족끼리 동정은 못할망정 비상경계를 펴고 총부리를 대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흥분했다. 박 사장은 2000년 7월 ‘정경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갈 길이 험난할 것으로 느끼면서도 조문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가장 의로운 일이요, 더구나 스승의 명을 받고 미래의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 중요한 초석을 놓고 있다는 자부심에 이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 될 것으로 믿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광장의 추도식이 끝난 뒤 유일하게 박보희 사장을 접견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다시 한 번 문선명 총재에게 정중한 사의를 표시한 뒤 박보희 사장과 30분간에 걸친 단독회담을 가졌다. 박 사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 주석이 문선명 총재를 지극히 좋아하고 사랑하였다. 다시 한 번 오시게 하여 백두산에 곰 사냥을 가자”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박 사장은 “김일성 주석께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돌아가셔서 애석하니, 김 총비서가 조국통일의 유지를 받들어 정상회담을 꼭 추진해달라”고 부탁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지요. 유지를 받들어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통일교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난 이유이다.



3. 지속되는 신뢰 관계



2000년대 들어 북한의 잇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특히 2008년 7월 11일 남한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으로 개성공단마저 폐쇄되면서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남북 채널이 유지되며 교류하고 있는 곳이 통일교이다.



통일교 외곽단체인 평화대사협의회는 문선명·김일성 회담 20주년을 기념하여 2011년 11월 14일과 12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밀가루 300t을 지원했다. 특히 이 밀가루 300t의 제1차 지원 분배 모니터링을 위해 11월 25~29일 남측의 정부 당국자(통일부 인도지원과장)가 평화대사협의회 관계자들과 함께 방북했다. 이때 정부 당국자가 방북하여 분배 투명성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고, 또한 2010년 ‘5‧24조치’ 이후 남측 당국자가 북측 당국의 초청장을 받아 방북한 것도 처음이었다.



통일교는 2012년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등 지분을 보유한 대북사업 운영권을 북한에 무상으로 넘겨주었다. 처음부터 10년 운영해 정상 궤도에 오르면 기부하려 했다는 것이 통일교 측의 입장이다. 북한은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에게 ‘평양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2012년 2월 북한은 “현대그룹에 준 금강산 관광 관련 독점권을 파기하려 한다”며 통일교에 금강산 국제관광 사업을 다시 제안한 일도 있다.



북한은 2012년 연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집권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인사를 하고 사진을 같이 찍은 인물은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사장이었다. 2013년 7월 30일 전승절 60돌(정전협정 60주년) 행사 참가를 위해 방북한 해외동포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은 박상권 명예회장을 앞으로 나오게 해 대화를 나눈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슨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에 박상권 사장은 훗날 “김정은 위원장님이 ‘박 사장님은 참 뿌리 깊은 분이십니다. 장군님 시절부터 오랫동안 한결같이 우리 조선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조국통일을 위해 힘을 합쳐 많은 일을 같이 합시다’라고 간단히 말씀해주셨고, 저는 ‘그동안 여러 가지로 저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변을 드렸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8월 23일 문선명 선생 1주기를 앞두고 박상권 사장을 통해 “민족의 화합과 번영, 나라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노력한 문선명 선생의 명복을 기원한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보내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서 그해 2월 22일 통일교 행사인 기원절에 문선명 선생 부인 한학자 총재한테 풍산개 암수 한 쌍에 각각 ‘정주(문선명 선생 고향)’ ‘안주(한학자 총재 고향)’라는 이름까지 붙여 선물로 보냈고, 문선명 선생한테는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



한편, 문선명 선생 3남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GP)도 2012년 북한에 빵공장을 세워 하루 5000개의 빵을 생산하고 있고, 7남 문형진 목사는 2014년 12월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해 밀가루 300톤을 북한에 제공했다.



Ⅴ.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의의와 평가



1. 회담의 의의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학술적으로 처음 조명된 것은 20주년을 맞은 2011년이다. 한국평화연구학회와 평화대사협의회는 11월 30일 한국언론재단에서 ‘문선명 총재·김일성 주석 만남 20주년’ 기념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남북통일 과제와 평화회담의 의미’를 주제로 발제한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이명박정부 임기 내에 북한이 도발한 사례를 거론하며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북한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현재 남북한 핫라인도 모두 끊긴 상황이다.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수정돼야 한다”고 주문하며 “북한 전역에 우리 기업이 진출해 경제적 기반을 건설한 가운데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남북화해와 경협 등을 논의한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의 회담은 남북 간 평화 기조를 쌓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토론에 나선 북한전문가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991년 두 지도자(문선명·김일성)의 단독 회담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정부 차원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이뤄지기 전에 민간에서 이룬 성과”라며 “두 지도자가 만나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 경제교류협력 등 4개 항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남북관계 현안이자 역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반공·승공주의 지도자인 문 총재와 골수 공산주의 지도자인 김 주석이 만난 것은 북한에 대한 열린 자세를 보인 문선명 총재의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며 “겉으로는 반공·승공을 내세우면서 북한에 대해 어쩌지도 못하는 현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토론자 윤황 선문대 교수는 “종교적 편견으로 인해 두 지도자의 역사적 회담이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남북 간 화해·협력을 위해 향후 체계적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2013년 12월 8일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본부에서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주최로 ‘문선명·한학자 총재 평화통일 평양회담 22주년 기념 세미나’가 개최돼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의미와 성과가 재조명됐다.



먼저 ‘문·김 단독회담: 평화와 통일의 역사적 의미’를 주제로 발표한 손대오 선문대 부총장은 “문선명 총재는 평양회담에서 한반도의 전쟁 재발 방지와 통일 문제에 대한 담판, 민족애 차원의 북한 지원, 한반도 중심의 세계평화 구축 등의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고, 김일성 주석은 통일 문제와 함께 민족대단결, 연방제통일론 등을 의제로 내걸었다”며 “두 사람은 견해차가 있었음에도 한반도 평화 정착과 조국 통일이라는 큰 틀에서 주목할 만한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손대오 부총장은 또 “문·김 합의에 따라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 두만강자유경제무역지구개발공사 투자 등을 골자로 하는 남북 경협, 남북한 문화·예술교류 등에 관한 10개항의 공동성명 등이 구체적으로 합의됐고, 많은 부분이 직간접으로 이행됐다”고 설명했다.



손 부총장은 1991년 개최된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제시하면서 회담은 “남북통일과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열기 위한 역사적 결단”이었으며 “남북관계와 동북아 평화유지의 차원에서 함의하고 있는 ‘평화회담’과 ‘통일회담’의 의미도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김호성 전 서울교대 총장은 “한반도를 주축으로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휘몰아치지만 국내 정치는 실종 상태인 위기의 시대에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평가를 재조명하는 것은 참으로 의의가 깊다”며 회담의 의미를 민족, 통일, 평화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민족이 통일의 주체이며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두 정상이 합의한 이 역사적 사건은 민족사 해결의 표상이라고까지 했다. 남은 과제는 문·김 회담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우리가 그 당시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들을 하나하나 테마별로 연구해 실천해 나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북한 공산대·함흥컴퓨터기술대 교수 출신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1991년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때 자신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었다면서 회담에 대한 북한 방송 보도와 북한 주민들의 동향 등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했다. 김 대표는 “회담 당시 북한 방송에서는 문선명 총재가 북한에 큰 투자를 해 북한경제의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도해 북한주민들의 호응이 엄청났다”고 증언했다.



오기성 경인교육대 교수, 김민지 선문대 교수, 주우철 선문대 박사가 공동연구한 ‘통일노력에 대한 트랙2 외교적 접근: 문선명·김일성 회담을 중심으로’는 극심한 적대적 대립으로 대화 자체가 단절돼 있는 두 주체를 중재하는 데는 때론 정부 당국자(트랙1)보다는 다국적기업, NGO, 박애적인 강력한 힘을 지닌 개인 등 비국가행위가가 나서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트랙2’ 이론을 통해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성격과 의미를 분석했다.



세 연구자는 문선명 선생이 그 어떤 국가 차원의 공식 직함이 없는 개인임에도 종교지도자이자 여러 국제 NGO 설립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으며 또는 인도적 기업, 농업, 건강, 교육, 언론분야에 공식적으로 종사하는 저명한 인사로서 국가 정상인 김일성 주석과 국가정상회담급 합의를 이끌어내고, 또 통일교가 합의내용을 실천하는 과정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계약부터 운영까지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추진한 현대그룹과 달리 오로지 민간 차원에서 북한과 평화자동차 등 경협을 이끌어내고 10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한 것은 남북경협의 획기적인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실제 평화자동차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꾸준히 수익을 내 북한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는데 성공했다. 승용차 ‘휘파람’과 승합차 ‘삼천리’는 총 1만대 이상이 판매 돼 한때 북한 자동차 시장의 41%까지 점유했다. 판매 수익금 중 국내 입금된 돈은 2009년 50만 달러, 2010년 63만 달러, 2011년 79만 달러, 2012년 80만 달러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였다. 북한에 진출한 약 600개 기업 가운데 2014년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외국 기업은 평화자동차뿐이다.



김민지 선문대 교수와 우평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공동연구 ‘글로벌 거버넌스 관점에서 본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의 함의’에선 문선명 선생의 맹활약은 그의 위대성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만나 당당하게 종교자유를 인정하라고 요구할 정도의 두둑한 뱃장을 소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때 자신을 테러 명령할 정도로 적대적이었던 무신론자 북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민족문제와 종교 자유를 논하고 끝내 서로 의형제까지 맺은 모습은 과히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지다. 따라서 문선명 선생을 신앙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그에게 ‘메시아’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듯하다.



2. 회담의 평가



문선명·김일성 회담 20주년을 맞아 문선명 선생의 제자 손대오 선문대 부총장과 윤황 선문대 교수가 함께 집필한 논문 ‘문선명 총재·김일성 주석 단독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는 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논문은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는 그 회담의 개최 배경과 합의 내용에 기초하여 이론적·실천적 측면에서 당위성과 필요성 및 실행에 의한 일반적 차원, 그리고 실제적·특수적 측면에서 시대와 상황 및 조건에 의한 특정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개최 배경에서는 전혀 다른 사상과 이념, 종교관을 갖고 사실상 대립과 적대적 관계에서 있는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이 각각 밝힌 입장을 통해 분석되었다. 즉 문 선생은 한반도 전쟁의 재발방지, 조국의 장래문제인 통일문제의 담판, 진실한 마음으로 북한에 ‘사랑’의 전파, 한반도 중심의 ‘세계평화’ 메시지 전달하고자 회담 개최에 적극 나선 반면, 김일성 주석은 통일문제, 민족대단결문제와 남북지원문제, 연방제 통일을 논의하고자 회담 개최에 적극 나섰다.



둘째, 합의 내용에서는 이산가족상봉실시문제, 북핵해결문제, 남북경협활성화문제,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의 4개항이 도출되었다. 이 내용은 한반도, 동북아,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크게 기여 할 수 있는 주요 핵심 사안이다. 이는 바로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남북대화, 남북교류협력의 활성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개선, 궁극적으로 평화적 남북통일 달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셋째, 역사적 의미와 평가는 일반적, 특정적 차원으로 규명되었다. 일반적 차원에서는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남북관계 개선의 기틀 제공, 민간과 당국 간 절차상 이해와 신뢰의 발전, 주민 상호간 화해와 협력의 장 마련,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구축 및 평화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 여건조성 기여, 남북 간 민족 내부의 화합 촉진과 동시에 한반도문제의 남북 주도적 해결 기여 등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특정적 차원에서는 회담이 한반도 분단사상 처음으로 합법적으로 민간대표와 정상 간에 이루어진 최초의 공식회담, 4개항(이산가족상봉실시문제, 북핵해결문제, 남북경협활성화문제,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 합의 내용의 한반도 평화안정과 교류협력 확대를 위한 실제적·구체적 방안 제시, 북핵해결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최고지도자의 의중 파악과 남북 관계의 진전 여부 탐색, 상대의 인정‧존중과 이해·신뢰 속에서 한반도와 세계의 통일과 평화 달성을 위한 노력, 남북관계에서 상호신뢰성의 확보 선례로서 통일한국 건설의 동반자적 의식 함양 노력과 통일 기반의 구축 등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특히 문선명·김일성 회담 직후 북한의 국제핵 사찰 수용이 합의됐고, 회담 개최 직후 곧장 남과 북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비핵화를 합의한 것은 민간이 당국을 이끈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두 교수는 이와 같은 분석 결과를 종합해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추동시키는 ‘평화회담’이자 ‘통일회담’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고 총평했다. 1991년 세계사적 탈냉전의 대전환기에서 개최된 회담과 4개항의 합의 내용은 남북관계적 차원에서 담고 있는 평화와 통일의 의미가 아주 크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문선명·김일성 회담의 합의와 성과가 사장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행되어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남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현안문제와 통일문제 등에 대해 서로 입장을 밝히고 자유로운 논의와 협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내며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두 연구자는 문선명·김일성 회담이 반공·승공주의자인 민간종교지도자와 공산·반종교주의자인 장기독재자와의 유례없는 세계사적 회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문선명·김일성 회담은 남한 국적의 세계적 종교지도자인 문선명 선생과 북한 공산정권의 세계적 절대독재자인 김일성 주석과의 단순한 회담이라기보다 유심론(唯心論)·유신론(有神論)적 반공·승공주의의 세계적 종교지도자와 유물론(唯物論)·무신론(無神論)적 공산·반종교주의의 세계적 장기독재자와의 회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회담은 1994년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한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북한의 대남도발전략 구도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 상황 하에 긍정적 영향을 크게 끼치는 데에는 한계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남북관계사에서 볼 때 수많은 남북회담이 개최되었지만 남과 북이 필요와 상황에 따라 남북한 간에 대화와 접촉, 그리고 합의 사항들의 이행에서 거부·중단·조정·재개라는 행태를 줄곧 반복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분단의 계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반도가 문선명·김일성 회담과 같은 남북회담의 개최 필요성과 당위성이 퇴색되거나 유린당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통일한국의 대업을 달성하는 그날까지 그 어떤 형태로든지 남북회담이 지속적·정례적으로 개최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문제이고, 민족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남한 사람이 남한보다 더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 사람이 북한보다 더 남한을 사랑하면 오늘이라도 한반도는 통일된다”는 시각에서 우리는 남북회담도 국가, 민족, 인간의 사랑으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Ⅵ. 결론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 이후 70년 동안 지구촌을 억눌렀던 냉전역사는 199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 이전과 이후로 시대구분 된다면, 40년 동안 전쟁과 대립, 반목뿐이던 한반도 남북관계는 30년 전인 1991년 북한에서 열린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된다.



북한의 도발과 테러, 납치 그리고 남측 인사들의 밀입북이 예사롭게 발생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던 시절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터부시 되던 김일성 북한 주석과의 회담은 이후의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비록 민간인과 정치지도자이지만 북한에서 열린 사상 첫 정상급 회담이 실시간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됐고, 정부가 독점하던 통일논의의 봇물이 터졌으며 이북에도 우리가 품어야 할 2000만 국민이 살고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더욱이 목 뒤의 혹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뿔이 나 있다고 배워온 공산당 괴수 김일성 주석과 하나님을 참칭한 자칭 메시아이자 사이비 교주로 폄훼되던 문선명 선생이 ‘민족의 숙원’이자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문제와 이산가족 상봉, 핵무기 개발 중지, 남북정상회담 등 국가적 의제들을 진지하게 의논하고 4개항의 합의문과 10개항의 공동성명, 4개항의 경협 합의서를 발표한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은 깜짝 놀랐다.



공산주의 타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세계적인 승공지도자 문선명 선생과 인류 역사상 가장 긴 독재를 행하던 새빨간 공산주의 두목 김일성 주석은 과연 어떻게 만날 수 있었고,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 세계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북한교회 재건을 추진하면서도 문선명 선생을 이단으로 몰던 기성 교회들은 대북 교류를 선점한 통일교에 어떻게 반응할지도 큰 관심사였다.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의 역사적 회담의 의미를 다음 열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방지하는 역사적인 통 큰 담판 사건이었다. 1990년 안팎으로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고 동독이 서독에 합류 통일되면서 전 세계에 사회주의는 중국 쿠바와 북한밖에 안 남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북한은 결국 대량살상무기인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중하며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경제난을 자초하게 된다. 그만큼 한반도 전쟁 상황이 고조된 것이다. 이를 감지한 문선명 선생은 북한 정권의 숨통을 틔어줘 일단 전쟁을 막기 위해 동토의 땅으로 들어간 것이다. 실제 문선명·김일성 회담 이후 남북한 정부 간 지속적인 회담으로 적대감이 해소되면서 협력 사업으로 남한 중소기업의 개성공단 가동, 현대그룹의 금강산관광 사업, 통일그룹의 북한 진출 등이 현실화되었으며, 북한의 급격한 붕괴를 막고 연착륙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 등 한반도의 전쟁이 다시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둘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성경에 기록된 ‘야곱과 에서’ 노정의 재현이다. 장자권을 획득한 동생 야곱이 형 에서와 하나 되기 위해 21년 동안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모은 재물을 갖고 다시 고향 땅을 찾아가는 모습은 41년 만에 경제협력 보따리를 품고 북녘 땅을 밟은 문선명 선생과 오버랩 된다. 김일성 주석이 형님, 문선명 선생이 아우로 형제지의를 맺은 사연이 야곱과 에서 노정을 재현하는 듯해서 묘한 기시감이 든다. 통일교에서는 문선명 선생이 야곱 입장에서 에서 입장인 김일성과 하나 되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 기대를 승리하고 신구약시대의 종말을 고하면서 새로운 성약시대를 열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한다. 문선명 선생은 이듬해 1992년 성약시대를 선포하였다.



셋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실향민과 탈북민 등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해원의 노정이다. 문선명 선생은 1950년 고향이 있는 이북을 떠나오면서 품었던 환고향, 즉 고향 회복을 위한 담대한 여정을 살아 왔다. 일찍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설립하고, 국제승공연합을 위시해 남북통일학생연합,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그리고 사지(社旨)에 ‘조국통일 정론’이라 못 박은 세계일보를 창간한 것은 모두 북한해방 남북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교회 이름도 약칭 ‘통일교’이다. 문선명 선생은 북한 체류 중 여동생 등 친척들을 두루 만났다.



넷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유신론과 무신론, 유심론과 유물론, 종교와 반종교, 신과 물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승공과 용공, 자유와 독재, 인권과 반인권, 변증법과 수수법 등 여러 대립되는 세계관의 만남이다.



다섯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통일사상과 주체사상의 대결을 통한 사탄사상의 자연 굴복을 위함이었다. 문선명 선생은 1980년대 초부터 남북통일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이즘은 물론 북한의 주체사상을 논리·철학적으로 이길 수 있는 두익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것이 통일원리이든 가디즘이든 하나님주의든 신(神)통일론이든 넓은 의미에서 개념은 매 한가지이다. 유신론적 철학으로 무장해 무신론적 세계관인 주체사상을 대체시켜 북한 위정자와 주민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소신이다. 문선명 선생은 실제 북한 장관급 인사들을 앞에 놓고 “신을 부정하는 주체사상으로는 어림도 없다. 남북통일을 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특이한 건 문선명 선생이 준비해 간 성명서 전문이 노동신문 1면에 가감 없이 전문 게재됐다는 점이다. 성명서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노동신문 창간 이래 처음이라는 후문이다.



여섯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통한 세계평화운동이자 남북통일운동이다. 안보의 궁극적인 대상을 인간으로 보는 개념인 인간안보는 문선명 선생이 평생 추구해온 가치와 부합한다. 따라서 문선명 선생이 북한 주민 안위를 걱정하고, 종교의 자유와 경제적 가난 등 여러 부자유로부터 북한 전체를 구원하고자 한 행위는 전형적인 인간안보를 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일곱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김일성에게 잃어버린 기독교 향수를 깨우쳐 줬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 교회를 다닌 김일성은 14살 무렵부터 공산주의에 빠져 사실상 60년을 교회와 단절됐을 뿐만 아니라 철두철미만 반종교적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성직자인 문선명 선생을 만난 걸 계기로 그 후 세계적인 부흥목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초청하고, 위장일지언정 두 개의 교회와 성당 1개를 복원하는 등 사망 직전까지 친종교적 행보를 보여 왔다.



여덟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남한의 민간 종교지도자와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만나는 문선명·고르바초프 회담이 이은 세계사적 회담이었다. 문선명 선생은 국가를 대표하는 어떠한 직책도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종교지도자이자 세계적인 경제·언론·NGO 등의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로서 국가를 중심한 국제관계를 초월하여 초국가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국제행위자로서의 모습을 선도적으로 보여주었다.



아홉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방북한 민간인 중 처음으로 합법적 절차를 밟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첫 선례를 남겼다. 문선명 선생에 앞서 서경원 의원, 문익환 목사, 황석영 소설가, 임수경 대학생,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이 북한에 갔으나 밀입북이었고 행적도 모두 비밀리에 움직여 역사로 기록되지 못했다. 문선명 선생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 결과는 직후 열린 남북총리급 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라는 열매를 맺는데 기여한 모양새가 됐다.



열 번째, 문선명 선생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은 적개심을 사랑으로 돌려세운 남북통일운동의 역사적 전환 회담이다. 문선명 선생은 김일성 주석과 만난 이후 “남한 사람이 남한보다 더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 사람이 북한보다 더 남한을 사랑한다면 오늘이라도 한반도는 통일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사랑에 의한 남북통일은 여기서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승공운동을 하며 공산당에 적개심을 보일 때와는 결이 다르다. 결국 문선명 선생은 사랑, 그 중에서도 참사랑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문선명 선생은 “하늘의 부름을 받은 그날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뛰는 마라톤 선수의 삶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자신이 설립한 모든 기반의 원천인 통일교회 창립도 남북통일과 세계평화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에 이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한 이유이자 목적으로 하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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