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4

눈물 닦고 스피노자 | 신승철 | 알라딘

눈물 닦고 스피노자 | 신승철 | 알라딘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은이)동녘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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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당장 내일이 불안하고 상처로 얼룩진 인간관계가 답답하다면, 자유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독특한 형식의 마음 치유서다. 꿈을 잃은 대한민국 20대 청년, 철수가 우연히 고시원 화장실에서 철학자 스피노자를 만나 매일 밤 철학 상담을 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여러 고민과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해법이 낡은 고시원 화장실에서 만나는 것이다.

저자는 <에티카>가 담고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치유의 방법론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이 책 속 철학 상담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스피노자가 그렸던 개념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세부적인 치유 전략은 스피노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랑스 심리치료사 펠릭스 가타리의 ‘제도요법’이나 ‘분열분석’, 정신분석가 빌헬름 라이히의 임상요법 등을 도입하여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에티카> 속 난해한 문장들에서 치유의 방법론을 이끌어 재미있는 스토리와 함께 엮어낸 이 책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철학을 통한 마음 치유를 시도한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17세기 철학서 <에티카>를 통해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삶 속에서 겪는 좌절감과 우울감, 후회와 자책을 풀어갈 실마리를 찾는다.


목차


들어가는 말 스피노자, 마음을 치유하다
프롤로그 스피노자와의 만남

1장 대한민국 20대 백수의 불안: 불안증
미래가 보이지 않는 백수 생활이 불안해! / 세상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갑니다 / 진정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장 여고생에게 너무 버거운 짐: 우울증
언제나 우울증 약을 가지고 다니는 소녀 / 어떤 관계망 속에 있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 상처로 얼룩진 관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3장 나를 감시 하는 검은 눈: 피해망상증
누군가 항상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만 같아! / 세상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 무의미하다고 여기던 삶의 영역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4장 가족이 왜 나를 구속할까: 신경증
굴레이자 안식처인 나의 가족 / 혈통적 망상에 빠진 가족 안에서는 어떤 특이성도 생산하지 못합니다 / 가족이라는 틀 안에 유일무이하고 특이한 나를 가두지 마세요

5장 삐뚤어져도 괜찮아: 강박증
무슨 일이 있어도 단정하고 깨끗해야만 해! / 강박증, 고정된 삶의 질서가 무너질 때 터지는 병 / 어떻게 하면 속박과 강박을 뚫고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 수 있을까요?

6장 열등감과 패배감이 어긋날 때: 과대망상증
나만큼 특별한 사람, 나와 봐! /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 내재적 능력과 똑바로 마주하기

7장 당신 안의 욕망을 긍정하세요: 도착증
노출증에 걸린 남자 / 내 안의 욕망을 긍정하라 / 성적인 도착만큼이나 물건에 대한 도착도 심각한 것 같아요

8장 나를 갉아먹는 끔찍한 기억: 공황장애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감과 발작 / 평행선을 달리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응시하라 / 몸과 마음을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세우자

9장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중독
사실은 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어요 / 특이성 없는 보편적인 개인을 정당화하는 중독 /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특이성을 생산하세요

10장 멀어지지 마! 넌 내거야!: 경계선 인격 장애
나는 너를 사랑하는 죄밖에 없어! / 욕망을 억압하지 않아도 괜찮아 / 이성에서 생기는 욕망은 결코 지나칠 수 없다

11장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끊임없는 반복: 조울증
롤러코스터 같은 내 기분을 나도 이해할 수 없어요 / 위장된 기쁨과 무기력한 슬픔의 반복 / 현실을 바꾸는 사랑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12장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 관계망상
그동안 나 혼자 착각했던 거야? / 우주와 세계는 무한한 지평에서 움직인다 / 우리는 무한한 우주나 자연 속에 존재하는 유한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13장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분열증
이상한 행동을 하는 105호 남자 / 광기, 마음속에 협착된 가장 강력한 망상 / 실체란 자신 안에 있습니다

14장 나 지금 떨고 있니?: 공포증
인간이 나약하다는 증거, 공포증 / 공포 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는 없습니다 / 안녕, 스피노자

에필로그 1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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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33~34 “장애인, 노인, 부랑아가 되어 보라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사랑해야 한다고요? 다 허울 좋은 말일뿐이에요! 지금 이 시대에는 백수보다 더 하위 계층은 없어요. 게다가 비루하고 하찮은 존재를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왜 늦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묻지 않았다.
“부탁하건데, 나와 만나는 이 시간만이라도 이제까지 규정되었던 당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해보세요. 당신은 백수이기를 거부하고 두려워하지만 그 강한 거부와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존재를 더 단단하게 규정하는 틀 때문입니다. 단 한순간도 백수라는 단어를 잊은 채 자신을 생각할 수 없는 당신은 지금 불안 속에 둥지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당신도 사랑의 힘이 당신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것으로도 변용할 수 없는 억압되고 억제된 상황이 불안을 발생시키지요.” 접기
P. 158 “스피노자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과장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곤 하는데요, 특히 남자들이 많이 그러더군요. 자신을 대단한 사람,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생각하는 소위 ‘자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보고, 자신에게 전지전능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과시하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요?”
스피노자는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도 흥미로운 주제를 던져주시는군요. 자신의 역능은 내재성에 의해서만 구성됩니다. 이 내재성은 삶을 구성하는 영토이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관계망입니다. 그러나 과대망상은 삶의 지평을 벗어난 초월적인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면서 생깁니다. 자신의 내재적 역능을 벗어난 계획이나 실행 능력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접기
P. 182 “사람들은 왜 욕망의 노예가 되는 걸까요? 어째서 멀쩡한 사람이 물질에 대한 탐욕을 느끼며, 성욕을 이기지 못해 변태가 되는 거죠? 오늘 저는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울 만큼 비루한 욕망의 단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욕망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사람을 그토록 비참한 지경까지 끌고 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비통한 탄식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 차례 화통하게 웃어재끼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 철수 씨는 욕망을 왜 그토록 부정적으로만 보십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에게 욕망이 없으면 뻣뻣한 시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원하고,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고, 춤추기를 원하고, 색다른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를 원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욕망’입니다. 욕망이 있기에 사람에게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인간적인 매력이 생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접기
P. 280 “조울증이라… 난생 처음 듣는 병명입니다만 기쁨과 슬픔을 오락가락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군요. 일단 정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감정, 정동, 정서는 같은 얘기지만 약간의 개념적인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기쁨, 슬픔과 같은 수동적인 정서만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슬픔은 수동적인 작용 중에서도 수동적인 것으로, 기쁨은 수동적인 작용 중에서도 능동적인 것으로 구분됩니다. 자, 만약 어떤 사람이 기쁨의 정서를 갖고 있다면 자신의 욕망이 긍정되고 증가하는 경우겠지요. 반대로 어떤 사람이 슬픔의 정서를 갖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예속되거나 무능력함으로 인해 욕망이 좌절 또는 감소하는 경우겠지요.”
단순한 기쁨과 슬픔에 대한 설명으로는 조증 상황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서라는 면에서 기쁨과 슬픔에 대한 개념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울증 경우와 같이 기쁨과 슬픔을 오락가락하는 경우에 대한 해답은 아닌 것 같네요. 조증의 경우에는 욕망이 채워진 것은 아니지만 과도하게 기뻐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스피노자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의 지적에 공감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신승철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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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연구자이자 활동가, 그리고 글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2023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생의 마지막 4년 동안 생태적지혜연구소를 만들고, 동료들이 저마다 숨은 역량을 풀어낼 수 있도록 북돋우며 돌보는 ‘연결자’ 일을 했다. 저서로 『기후전환사회』(2022), 『정동의 재발견』(2022), 『떡갈나무 혁명을 꿈꾸다』(2022), 『지구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2021), 『모두의 혁명법』(2019), 『탄소자본주의』(2018), 『구성주의와 자율성』(2017) 등 40여 권을 남겼다.

최근작 : <채식, 공존의 밥상>,<생태 슬픔>,<기후 협치> … 총 6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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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기후위기는 어떻게 내 몸을 병들게 하는가>,<주인의 눈>,<고스팅>등 총 277종
대표분야 : 철학 일반 4위 (브랜드 지수 154,957점), 여성학/젠더 4위 (브랜드 지수 112,30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불안, 우울, 피해망상, 공황장애, 정신분열, 조울증……
미래가 불안해 눈물 흘리던 어느 날 철학이 내게 말을 걸었다

모두 잠든 외로운 밤, 스피노자와 나누는 비밀스런 철학 상담!

불안하고 우울할 때 혹은 도저히 나 혼자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눈앞에 현명한 철학자가 나타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 내일이 불안하고 상처로 얼룩진 인간관계가 답답하다면, 지금 당신에게 자유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독특한 형식의 마음 치유서다. 꿈을 잃은 대한민국 20대 청년, 철수가 우연히 고시원 화장실에서 철학자 스피노자를 만나 매일 밤 철학 상담을 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여러 고민과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해법이 낡은 고시원 화장실에서 만나는 것이다. 철수는 매일 밤 주변 사람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러 스피노자를 찾아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가방 속에 항상 우울증 약을 가지고 다니는 소녀 한별,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게임 속으로만 빠져드는 대학생 진혁, 홀로 남겨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집착하는 김 대리, 먼지 하나도 용납할 수 없는 한별 엄마, 높은 곳에만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려 견딜 수 없는 고시원 103호 남자 등등…….
이들이 앓고 있는 우울증, 피해망상, 공황장애, 조울증과 같은 현대 병증들은 17세기 스피노자 시대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 병들은 21세기에는 너무나 흔하게 만연해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새롭게 생겨난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바라보는 스피노자의 시선은 흥미롭다. 가령 우울증의 경우, 많은 심리학책들은 우울증을 마음의 병으로 치부하고 당사자 본인이 태도나 마음을 바꾸면 해결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사람들 간의 관계 맺기에 주목한다. 인간이라면 모두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어떤 관계에서는 기쁨과 행복이 넘쳐흐르고 어떤 관계에서는 우울과 억압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서로가 상호 긍정하는 관계가 된다면 특이한 생각이나 사고가 솟구칠 수 있어 기쁨의 감정이 생긴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온전한 ‘나’일 수 있는 공동체에 몸을 담거나 삶의 미세한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간다면 새로운 이야기와 상상력이 가득할 수 있고, 색다른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기쁨의 욕구도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매일 새벽 2시 마다 스피노자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들에 대해 상담을 하면 할수록, 철수는 스피노자를 처음 만날 때 보였던 나약함을 벗어간다. 스피노자가 내려주는 철학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다보니 잃었던 ‘나만의 길’을 찾은 것이다. 조율이 안 된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걱대던 주인공들이 스피노자의 조언에 따라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다.

스피노자는 마음이 아픈 현대인들에게 어떤 철학적 해답을 줄까?
난해한 문장으로 가득한 《에티카》를 스피노자와 함께 읽는다!

난해한 문장으로 가득한 스피노자의 책 《에티카》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매일 밤 내 눈앞에 나타나 직접 《에티카》를 풀어 설명해준다면 어떨까? 게다가 《에티카》를 통해 우울증, 불안증, 피해망상, 공황장애, 조울증과 같은 기괴한 현대 병증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저자는 철학 상담이나 인문치료에 있어서 스피노자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에티카》 속 아포리즘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을 사색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 의학이나 심리학책들은 마음의 병을 고치려면 “너의 마음의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해법은 이와 다르다.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관계망과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욕망이 긍정되어 기쁨으로 가득 차고, 서로의 독특한 가치에 공감하는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배치를 바꾼다면 마음도 변화할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이야기한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처음부터 나약하거나 마음에 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공황장애에 걸려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철수 아버지, 가족과의 헝클어진 관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몰라 난감한 여고생 한별, 일을 할 때나 길을 걸을 때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고 느끼는 철수 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책 속 등장인물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들이다. 사람들 마음속 욕망의 원천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이를 고무해서 문제 해결의 열쇠로 삼는 스피노자의 철학적 해법은 아픈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 썼던 “자유인은 죽음을 성찰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삶에 대한 것이다”라는 구절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스피노자의 삶에 대한 긍정이 드러난다. 이 책을 펼쳐보는 독자들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따뜻하게 우리의 난관과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상담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명쾌한 질문과 해답

저자는 철학 상담이나 인문치료 영역에서 스피노자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에 주목했다. ‘욕망’과 ‘무의식’ ‘내재적 이성’ 개념을 창안한 스피노자를 빼놓고는 오늘날 철학 상담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에티카》가 담고 있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치유의 방법론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이 책 속 철학 상담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스피노자가 그렸던 개념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세부적인 치유 전략은 스피노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랑스 심리치료사 펠릭스 가타리의 ‘제도요법’이나 ‘분열분석’, 정신분석가 빌헬름 라이히의 임상요법 등을 도입하여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에티카》 속 난해한 문장들에서 치유의 방법론을 이끌어 재미있는 스토리와 함께 엮어낸 이 책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철학을 통한 마음 치유를 시도한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17세기 철학서 《에티카》를 통해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삶 속에서 겪는 좌절감과 우울감, 후회와 자책을 풀어갈 실마리를 찾는다. 21세기에 나타난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마음의 병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하고 사유할 수 있는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 또한 책 속 주인공들과 함께 “슬픔을 이기는 기쁨의 관계를 만들어라, 당신이 억눌러온 욕망을 터트려라, 개개인은 모두 반짝이는 존재이므로 특이성을 키워라” 하고 말하는 스피노자의 외침을 실천하다보면 마음에 여유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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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 bookple











































* 『에티카를 읽는다』 스티븐 내들러 / 그린비





저번 기수 신간평가단 활동했을 때 읽은 책 중에 『눈물 닦고 스피노자』라는 것이 있었다. 추천도서 페이퍼를 작성할 때 이 책을 추천하지 않았다. 스피노자가 유명한 철학자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때 내가 너무나도 읽고 싶은 책이 여러 권 있어서 특별히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결국 『눈물 닦고 스피노자』가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되었는데 생각보다 흥미롭고 인상 깊게 읽었다. 스피노자가 쓴 유명한 『에티카』 속 내용을 토대로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낸 마음의 병을 진단하는 일종의 ‘철학 힐링’류의 내용이었다. 역시 왜 스피노자가 위대한 철학자로 평가받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에티카』 읽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마음먹고 시중에 번역된 『에티카』를 구입해서 정독하고 싶었으나 마음 가는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나그네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잡독을 하는 내 독서 성향상 아직까지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 더 솔직하게 말자하면 무작정 『에티카』를 읽기에는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스티븐 내들러의 『에티카를 읽는다』 출간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상당히 반가웠다. 이런 ‘입문서’부터 읽기 시작하면 바로 텍스트를 정독하는데 수월하다. 이 책의 저자는 스피노자 연구에 정평이 나 있으며 이미 스피노자의 일대기와 철학 사상의 발달 과정을 정리한 『스피노자 :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는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됐다. 『에티카』의 핵심을 대중적으로 소개한 입문서가 우리나라에 많지 않을 걸로 기억된다. 초.중.고등학생들 논술시험 대비를 위해 스피노자 사상의 기본적인 핵심을 소개하거나 『에티카』 다이제스트 등의 책들을 제외하면. 이 책이 선정된다면 이번엔 진짜 정본 『에티카』를 구입할 것이다.









































* 『내가, 그림이 되다』 마틴 게이퍼드 / 디자인하우스





우리나라에도 유명 화가나 아티스트의 행적 또는 예술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들이 많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거 같다. 항상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고 금방 지나가고, 지금 수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봇물 터지듯이 나오다가 대중의 인기를 외면 받지 못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처럼 현대미술계 또한 그렇다. 하루아침 일어나면 새로운 예술가들이 등장하여 대중에게 주목받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컨템퍼러리(동시대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지 않은 사실이다. 작품 하나가 공개할수록 매번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는 데미언 허스트,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특별전을 성황리에 마친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가 그렇다. 그래도 가끔 예술을 좋아하는 독자가 반가울만한 책이 나오긴 한다. 최근에 데이비드 호크니를 다룬 책이 나왔고, 마침 같은 시기에 루시안 프로이트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책이 나왔으니 바로 마틴 게이퍼드의 『내가, 그림이 되다』이다. 마틴 게이퍼드는 미술평론가로서 이미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담을 정리한 『다시, 그림이다』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초상화를 많이 제작하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초상화 혹은 인물화는 척 클로스의 극사실주의적 초상화에 근접하지는 않지만, 굵은 덧칠로 행하는 붓 터치로도 인물의 피부 그리고 표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척 클로스의 극사실주의가 너무나도 ‘완벽’에 가까운 사실이라면, 프로이드는 추상회화적인 느낌이 있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야 될까? 마틴 게이퍼드는 생전 프로이드의 그림 작업을 지켜보면서 그와 나눈 대화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인상들을 한 권의 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흔히 ‘비평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게 되는 주관적인 시선의 덧칠을 하지 않는다. 프로이드가 모델을 나름 사실적으로 표현하듯이, 저자 또한 온전히 프로이드 자체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 『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 문학동네





읽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흥미로운 유럽문명사에 관한 주제인데다 의외로 이 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높아서 추천해봤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신간평가단원 중에 지금까지 이 책을 추천한 분,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1913년이라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해에 근대 유럽사회의 문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지 그 해의 문명사를 소개하고 있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제목을 비유하자면 ‘응답하라 1913’ 정도일 것이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때 당시 대중문화의 풍경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913년, 세기의 여름』 은 이름만 들면 알만한 예술가들이 총출동한다. 카프카, 릴케, 프루스트, 프로이트, 피카소, 클림트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행적을 한 장의 모자이크처럼 펼치며 동시에 1913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근대 문화의 향연을 재현하고 있다.







































* 『온도계의 철학』 장하석 / 동아시아

* 『돈의 철학』 게오르그 짐멜 / 길







출간되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 신간평가단이 가장 많이 추천하고 있는 책이다. 하필 두 권의 책 제목에 ‘철학’이 들어가 있다. 워낙 많이 소개하고 있는 도서라 굳이 간략한 소개는 생략하고 싶다. 사실 이번 달 신간평가 추천도서로 이 두 권으로 정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가장 높은 추천 수를 받았으나 선정되지 못할 수 있다.



장하석 교수의 책은 이미 출간되지 전부터 구입하려고 벼르고 있던 터라, 이번 선정도서 결과를 보고 난 후에 구입할 생각이다. 그런데 평가단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추천받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선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해당 출판사가 알라딘의 도서정가제 반대에 맞서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알라딘과 해당 출판사와의 입장 차가 원만하게 좁혀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도서 선정 과정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짐멜의 책 같은 경우에는 분량이 많다는 점에서 선정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막스 베버, 마르크스에 비해 저평가 받은 짐멜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라 조금은 속물적이지만 솔직히 신간평가단 제도를 통해 정가 55000원 가격의 책을 공짜로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다만 정해진 서평 작성 기간 내 완독은 물론 서평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cyrus 2013-11-05 공감 (4) 댓글 (0)



처음으로 알라딘의 신간평가단에 선정되어 6개월동안 활동을 하였는데 다른 어떤 서평단보다 양질에 있어서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고, 특히 신간평가단들의 투표에 의해서 책이 선정되는 방식이 가장 매력있지 않았나 싶다. 내가 투표하지 않았던 책들도 선정이 되었어도, 모두가 좋은 책들이였고 읽고나서 정말 많은 도움을 얻었다. 주로 철학서적에 편중되어서 읽었던 나의 독... 더보기
불꽃나무 2013-07-04 공감 (4) 댓글 (0)





어느덧 12기 신간평가단도 끝이 났다.

늘 그렇듯 인문 분야에서는 내 관심 밖에 있는 책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그동안 어떤 책을 접했는지 되돌아보며 오래 기억에 남을 내용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12기 신간평가단 도서 나만의 베스트 5 (베스트 오브 베스트 ♡)







미국의 민주주의는 점점 유권자 확대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대중의 정치 참여를 주변화했다. 집단 이익의 표출이 아니라 개인 선택을 장려하는 정책 집행 장치들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정부와 정치에서 각자 그와 관련한 제도적 영토를 구축했는데, 이는 한국의 상황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로써 2000년대 이후로는 정당 간의 치열한 갈등과 유권자의 낮은 참여가 정치계의 큰 특징으로 대두됐다. 게다가 대중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공공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했다. 민영화와 탈집중화를 바탕으로 공공 정책을 구성하면서 대중을 동원할 수 있게 했던 슬로건들을 약화시켰다. 말하자면 우리는 정책의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 모르는 곳으로 내몰렸다. (♡)









인간에게 협력이란 어떤 의미일까? 리처드 세넷은 우리가 실제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기술로서 협력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것이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익히지 않으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기술적인 측면과 맞닿는 점이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의 변화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은 협력이라는 자질을 쇠락하게 만들었고 개인주의를 더욱 부추겼다. 갈수록 너와 나의 간극이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 책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기로 한다.











정하웅 물리학과 교수는 '복잡계 네트워크와 데이터 과학'을, 김동섭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생물 정보학'을, 이해웅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 암호와 양자 정보학'을 차례로 강의했다. 얼핏 별 연관이 없어 보여도 첫 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언급된 '정보의 네트워크'가 전체 강의를 한 줄로 꿰는 역할을 한다. 세상을 이루는 작은 세상들은 저마다 너무나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한계를 능가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곧잘 확신한다. 그러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구글에서 자료를 검색하는 일도,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알아내는 일도, 영원히 풀지 못할 암호를 만드는 일도 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네트워크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제는 모든 과학자가 분야를 막론하고 네트워크 속에 숨겨진 정보를 읽어내야만 하는 셈이다.









모더니즘은 20세기를 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은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의 영향 아래에 놓였고, 그중 예술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표현 대신 개인의 자유를 표방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때 전통의 파괴를 부르짖었던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예술의 탈정치화를 이끌어낸 것은 단연 '비평'이었다. 저자가 얘기한 것과 같이 비평은 작품에 대한 사후 평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품 자체를 성립시키는 계기로서 모더니즘 비평은 모더니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책은 바로 그 비평을 토대로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을 논하고 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깨부수는 행위, 외부의 관계망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태도, 다른 세계로의 접촉과 횡단을 거쳐 울타리를 바깥으로 확장하는 일. 17세기의 스피노자는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런 욕망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수많은 ‘되기’를 통해 이른바 변용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되기'란 신체가 공동체에 접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모름지기 사랑으로써 경험된다. 여행을 하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이듯 사랑을 하고 나면 우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언젠가 파스칼 키냐르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이렇듯 사랑은 끊임없이 우리를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만든다.









다섯 권을 고르면서 '몸젠의 로마사'와 '플라톤의 국가'는 제외했다.
트리플 2013-06-23 공감 (2) 댓글 (0)





시도는 좋았으나, 너무 낮게 잡았다. 하지만 스피노자를 알고 싶어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라면 강추한다.
별을심는사람 2017-11-0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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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와 함께 찾아가는 행복론《눈물 닦고 스피노자》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내가 그래도 가장 좋아했던 말은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고로 나는 생각한다.’ 였다. 최근 들어 이 데카르트의 철학이 오히려 우리 존재의 관념이나 존재자체를 얼마나 기계적인 사고로 바꾸어 놓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철학서들을 접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위기의식은 인류 공동체의 종말론과 맞물려 우리의 존재론 자체의 회의가 일면서 시작된 문제가 아닐까한다. 브뤼노 나르노의 《과학인문학 편지》에서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코기토)가 인간이라는 유일무이한 세계상만이 존재한다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인해 오늘날의 생태 위기가 초래되었다며 우리는 생각한다(코기타무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의 접근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나와 세계를 분리하여 사고하는 이원론적 사유방법이고 스피노자는 나와 세계를 하나로 보고 있는 일원론의 사유방식으로 스피노자는 동양적인 철학방법이다. 데카르트는 세계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사유라고 한다면 스피노자는 세계를 작동하는 섭동의 원리중의 하나로 ‘나’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유방식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 사유방식이다.)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철학자들의 예수라고 칭했다. 스피노자를 철학자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게 보는 이유는 아마도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서구 철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배척을 받게 되었다. 스피노자가 주장했던 철학은 바로 데카르트가 권력체계의 중심부에서 이데올로기 역할을 수행한 데 반해, 스피노자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평생 개인의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권력자들에 대한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에티카》는 이러한 자유의 본성을 밝히고 자유를 위한 투쟁의 책이다. 이 책 《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매우 독특한 형식의 마음 치유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 지배하였던 이제까지 알고 있던 우리들의 존재 관념들을 깨며 스피노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세워주는 동시에 《에티카》의 여러 아포리즘을 다양한 정신 질환의 해법과 대안으로 제시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진단해주는 독특한 철학서이다.









책은 스물여덟 살 백수 청년 김철수가 매일 밤 스피노자와 토론하는 형식의 대화체로 진행된다. 매일 매일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불안감과 싸워야 했던 철수 앞에 튀어나온 스피노자와 매일 밤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사회의 문제를 질문하면 스피노자는 에티카의 구절로 해답을 찾아준다. 책에 나오는 현대인의 병은 이제는 흔한 병이 되어버린 우울증과 불안증, 게임 중독, 강박증, 집착증, 공황 장애, 조울증 , 피해망상 등의 병들에 관한 스피노자의 유쾌한 답변을 통해 과거 우리의 존재에만 집착하였던 데카르트의 사유의 형식이 아닌 관계 맺기에 주목한다. (이것은 과학인문학의 창시자 브뤼노 나르노의 ‘코기토’(나는 생각한다)에서는 아무것도 연역되지 않으며 ‘코기타무스’(우리는 생각한다)에서는 모든 것이 연역될 수 있다라는 설명과 같다.)











스피노자는 기존에 '나'가 중심이었던 삶을 '우리'라는 관계맺기에 주목하며 우리 삶은 외부에서 영향을 미치는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현재 내 삶의 형태나 방식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생명과 공존하며 ,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삶은 세상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든다. 이미 익숙해있던 것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기존의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관계를 맺는 그 순간 존재했던 것은 새로운 흐름 형식을 띄게 된다. 불의 흐름, 물의 흐름, 음식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시작되고 새로운 정서를 발생시키는 삶의 내부를 바꾸는 새로운 실천과 약속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초월적 원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자기원인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는 이런 현대인의 병들이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욕망에 대해서도 자신의 욕망이 유한하다는 것, 즉 욕망의 유한함을 긍정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과거 데카르트의 사유방식으로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지젝이 이제 우리는 공동의 것을 염려해야 하며 공동의 것을 위해 싸우라고 하는 말과도 어쩌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닌 우리 모두가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야 할 때인 듯하다. 일생을 개인의 자유와 투쟁했던 스피노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의 기쁨을 나누었으면 한다. 스피노자의 유명한 문구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처럼... 바로 우리모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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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1-09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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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셀프 힐링은 아깝지 않다





힐링하니까 청춘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청년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앞으로 연애와 결혼도 포기하기로 했다’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기도 비정규직인데 여자 친구도 백수라서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불안한 상황이 더 증폭되기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젊은이들이 이 같은 가슴 아픈 고민을 안고 있는데 이들을 ‘삼포(三抛)세대’라고 한다.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들이란 의미인데 대체적인 의미는 연애, 결혼, 출산을 지칭한다. 제대로 된 취업을 할 수 없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니 버거운 생활비용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도 포기 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세대들이란 말이다. 몇 년 전 고용 불안으로 인해 ‘88만원 세대’란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청년 세대들로부터 가족 구성에 필요한 통상적 세 단계를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란 말이 나오니 우울하고 또 우려된다.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 등 정신적인 이유로 자살을 생각해본 20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에 흔하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012년 한 해 가장 많이 이용된 도서 80권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본 책이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2011년에 1위를 지킨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위에 머물렀다. 이와 같은 결과를 통해 2012년의 화두가 ‘힐링’과 ‘청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스피노자가 들려주는 힐링법



치유의 바람은 새로운 흐름의 전주곡이다. 힐링이 인문학 연구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작년 한국연구재단 주최 ‘2012년 인문주간’의 주제가 ‘치유의 인문학’이다. ‘치유의 인문학’, ‘인문 치료’, ‘철학상담치료’ 등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같다. 인간성 상실과 내면의 상처로 인한 ‘마음의 병’ 혹은 ‘문화적 질병’의 치유가 목표다. 인간 연구가 본령인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넓히는 일이다. 실용적 가치가 적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렸던 인문 정신이 삶의 위기를 계기로 하여 삶의 가치를 회복해 줄 근원적 자원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청춘', '힐링', '인문학'. 이 세 가지 화두를 적절하게 버무린 책이 있다면 바로 <눈물닦고 스피노자>이다. 이 책은 형식이 독특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괴로워하는 20대 청년, 철수가 우연히 고시원 화장실에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를 만나 매일 밤 철학 상담을 한다. 진짜 철학자가 매일 밤에 '철학 상담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이 저술한 책 <에티카>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여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다양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요즘 제가 쓰고 있는 《에티카》 내용 중 <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에서 정리 19를 보면 ‘인간 정신은 오직 신체가 받는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인간 신체 자체를 인식하며 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p 29~30)



젊은 세대들은 사회가 규정한 현실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안정적인 근로의 직장에만 들어가면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고 돈만 있다면 잘 살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게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이나 공무원과 같은 안정직 취업을 선호하고 많은 시간에 취업 준비에 투자한다. 그러나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 괜찮은 일자리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식 경쟁의 장이 된지 오래다. 젊은 세대는 승자독식이 굳어진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젊은 세대의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자조적으로 변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신체 변용을 통해서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욕망의 흐름에 맡긴다면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봤다. 변용이란 신체가 외부의 물체를 만나 딱딱하거나 부드러워지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타인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동안 인정하기 못했던 자신에 대한 존재의 불안함을 떨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 변용을 통해서 나 자신의 욕망에 맡겨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불치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서 스피노자는 단순히 마음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거대한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억압된 인간 관계망에서 우울증의 원인을 찾는다. 외부와의 관계에 예속되면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발현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표출하지지 못한다면 슬픔의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울증인 것이다. 욕망은 곧 자신이 사랑하는 감정을 표상하여 실행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우리 스스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망을 재배치해야 한다. 자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관계망으로.




“관계 자체가 예속과 복종의 관계처럼 아예 사랑과 욕망의 힘을 좌절시키는 방향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언제까지고 슬픔의 관계에만 머물러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관계를 기쁨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아직까지 기억에 없고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색다른 사랑의 실천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미지의 것을 향한 욕망의 흐름과 같은 것입니다. 둘 사이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새로운 상상이 떠오르고, 색다른 무엇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기쁨의 관계를 만들어보세요. 창발적인 관계망은 가능합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욕망이 증대되고 촉발되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 61~62)



작년에 청춘들이 ‘힐링’에 열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과 좌절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힐링하는 방법을 명사나 책을 통해서만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힐링을 남들이 하는 걸 따라 맞출 필요 없다. 우리 삶에 작은 변화를 주는 힐링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 기쁨의 관계를 구축하는 삶의 과정도 힐링이 될 수 있다.







긍정의 힘을 보여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명제를 예로 들면서 완벽한 인간의 이성적 사유와 주체성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명제는 최종 확인을 위해서는 수많은 '나'가 있어야 하고 그 수많은 '나' 중에 또 주체가 필요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나'라는 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작동시켜주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신적 상실을 망각으로 바꾸는 힐링만으로는 마음의 불치병을 완전히 치유하기가 어렵다. 상실을 자기 안에 수락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자기를 변용해내는 방식을 택하며 자기 세계를 재배치해야 한다. 자기를 삶의 주인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스피노자의 힐링 철학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감정적 고통의 원인을 아는 것이며, 하나는 다른 감정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감정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이보다 더 강력한 긍정적인 감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부정적인 감정은 끈질기게 커지며, 괴로움에 괴로움을 더할 뿐이다. 우리 스스로 긍정적인 경험을 간직하고 자신의 정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다간 바루흐(Baruch, '축복받은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스피노자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긍정의 힘을 외면한 채 막연하게 먼 곳에서만 힐링을 찾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을 경고하는 듯하다. 나를 위한 셀프 힐링은 아깝지 않다. 감정적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축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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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3-01-26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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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선생, 고마워요~~





제목이 [눈물 닦고 스피노자]이다. 뭘 어떻게 하자고 말하는 것인지....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읽자는 뜻인지,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만나자는 것인지,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이해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역시 이 또한 배치의 문제인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어두운 구석에서 울어 본 사람은 안다.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말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눈물을 닦아내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거기 까지의 시간 말이다. 그만 슬퍼하라, 문제는 그게 아니다 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스피노자 선생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고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다. 이제 스피노자 선생을 만나기로 했다. 철수씨를 따라 갔다. 물론 화장실 안이다.(코를 막고..이 넘의 고시원은 청소도 안하나?...)

스피노자 선생은 짐짓 모른 척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철수씨랑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아는 게 있어야지.....)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들에서 언제가 읽었던 [코뮨주의 선언]이 생각난 건 왜일까? 수유+너머의 10년 실험의 이론적 결산이라고 불렀던 고병권 이진경 외 다수가 저작한 코뮨주의 선언에서 사용했던 언어들 중 스피노자 선생의 언어와 그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개념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 건 나의 명백한 오독이었을까? 아니다. 신체의 변용, 기쁨의 정치학, 공동체 안에서 자율적인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특이성이나 주도권의 본위는 권력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것을 상기시킨 건 아무래도 스피노자적 능동성에 주목하고 있음이 분명해보였다. 또한 공통의 신체와 무의식적 욕망, 특이성, 자유와 능력의 개념 등에서 스피노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신체적 변용을 통해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풍부한 감성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 변용은 개인의 힘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구성되며 -이기 가 아닌 -되기 의 변용임을 강조하였다. 데카르트 식의 '생각이 실체다' 라는 식의 생각을 일타에 질책하는 스피노자는 신체변용을 거치지 않는 사유는 모두 의심스럽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눈물 닦고 스피노자]에서 철수씨와 스피노자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인식의 재배치, 자리이동에 관한 것이다. 우리들이 흔히겪는 불안과 공포. 우울증. 피해 망상증, 신경증과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등의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며 해석하며 어느 자리로 이동시킬 것인가에 대해 다루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이해를 돕고 있으며 스피노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심리치료사나 정신분석가들의 임상요법 등을 도입하였다고 밝혀두고 있다. 현대인은 모두 병자들이라 했던가, 일정부분 위로와 조언과 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책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잘못된 인식이나 왜곡되고 잘못 인지된 인지적 오류를 바로잡고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자리로 이동한다면 스피노자는 기뻐할 것이다. (아니 한국에 있는 저자가 기뻐하려나?...)





철수씨를 따라다닌 동안 나 역시 행복한 시간이었다. 스피노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만나게 될 줄도 몰랐거니와 그의 음성을 통해 듣게 된 에티카,는 내 인생의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임을 예감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스피노자와 한 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샴 쌍둥이마냥 같은 머리를 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무지 선생이 하는 말에 반기를 들고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할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에서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로 자리 이동을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내 삶의 재 배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나갈 것이다. 물론 선생이 끊임없이 강조한 공동체 관계망 속으로 접속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다.

스피노자 선생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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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1-28 공감(7)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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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가 궁금하다.





1.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제목이 <눈물 닦고 스피노자>라니. 게다가 부제는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다. 제목과 부제만 보고 언뜻 든 생각은, 또 철학자 한 명을 팔아 힐링이니 뭐니 하는 책이 나왔구나, 라는 것이었다. 이런 선입견이 든 것은, 개인적으로 최근 유행하고 있는 힐링이니 멘토니 하는 얘기들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들이 처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데, 힐링을 말하는 책들은 대부분 이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환해버린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을 보자. 이 책의 어느 구절을 보면 나에게 닥친 시련을 축복으로 여기라고 충고한다.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시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 시련이란 것이 과연 내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최저임금이 터무니없이 낮아 아무리 일을 한다고 해도 생활이 어려운데, 이걸 과연 축복으로 여길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보면 이런 종류의 글들이 제시하는 해법, 즉 지금까지와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고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라는 조언이 부질없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 채찍질의 결과가 지금과 같은 사회가 아닌가.





책을 펼쳐들자, 저자는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서점에 나와 있는 심리학 책들은 하나같이 “너의 마음의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해법은 이와 다르다.”(6) 예를 들어 “불안을 단지 개인적 심리 상태로 보고 불안정한 사회 현실들, 이를테면 비정규직, 불안정 주거, 양극화, 경쟁, 빈곤, 실업, 가정 해체, 영양과 위생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단지 의학적이고 임상적 수준에서의 논의로 제한되고 만다. 불안의 배후에는 불안한 사회 현실이 있다.”(16~17) 그러니까 이 책은 개인의 마음가짐이나 태도의 변화에만 한정되지 않고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 구조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 잠시 가졌던 선입견을 반성하며 본문을 읽는다.





2.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다양한 정신 질환을 여러 등장인물의 가상 사례에 적용하여 풀어내고 있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다소 유치하고 과장되게 설정하긴 했지만, 사실 주인공 김철수나 그의 여자 친구, 혹은 여고생과 그녀의 어머니 등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힘들어하는 등등. 이런 유형의 사고, 태도, 행위가 보다 극단화되면 이를 정신 질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질환의 목록은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까지 총 14가지나 된다.





이처럼 다양한 정신 질환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 해법은 결국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자신의 관계망과 배치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와 접속해야 한다. 서로의 욕망이 긍정되어 기쁨으로 가득차고, 서로를 사랑해서 변해가며 자신의 독특한 가치에 공감하는 공동체 속으로 자신의 배치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에 따라 점차 마음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6)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정신 질환은 결국 잘못된 관계망에 놓여 자신의 욕망이 마음껏 표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놓여 있는 관계망의 배치를 바꾼다면, 그리하여 부정적 관계망이 긍정적 관계망으로 변화된다면 우리는 사랑과 기쁨의 관계 속에서 행복의 공동체를 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관계의 배치를 바꾸기 위해선 자신의 내적 욕구와 능력을 진지하게 성찰한 후, 그에 맞춰 지금과 다른 무엇가로 용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스피노자가 권하는 치유의 방법론이다.





3.

이렇게 책을 읽다보니 두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하나는 구체적 내용에 관한 것이다. 잘못된 관계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혹은 현대인은 애초에 어떻게 해서 잘못된 관계망에 놓이게 되었나? 배치를 바꾼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차근차근 따져보자. 먼저 관계망이란 무엇인가? 이는 아마도 개인들의 집합으로서의 사회를 의미하는 듯하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들로 구성된 그물망 같은 구조가 떠오른다. 이런 그물망은 한 개인에게 특정한 역할을 요구하고 그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게 될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요구가 개인의 자발적 욕망을 제한하는 것이라면 개인은 내적 욕망과 외적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외적 요구에 따르게 된다. 내적 욕망이 억압되는 것이다. 잘못된 관계망이란 이처럼 개인의 내적 욕망을 억압하는 관계망을 의미하며, 이 억압이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관계망은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사회는 나에게 왜 그런 그릇된 요구를 하는 것일까? 그들 역시 잘못된 관계망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그릇된 요구를 했던 관계망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잘못된 관계망을 형성하게 한 최초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잘못된 관계망이란 인간 사회의 본질적 조건인가? 아쉽게도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질문은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최초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원인을 해소하는 방식의 대안이 가능할 것이고, 인간 사회의 본질적 조건이라고 한다면 관계망을 바꾸려는 혹은 벗어나려는 행위가 무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배치를 바꾼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개인들이 긴밀히 연결된 그물망, 즉 유기체적 관계망이라고 한다면 한 개인의 변화는 그물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배치를 바꾸는 것은 전체의 관계망을 변화시키는 일이 된다. 이는 마치 오셀로 게임과도 같다. 오셀로 게임은 판에 놓인 한 알의 색이 변하면 그에 따라 다른 색들도 변화한다. 하나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다. 아주 멋지다. 그러나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개인의 의지, 관계망을 벗어나려는 개인의 적극적 노력을 통해? ‘변용에의 의지’와 같은 개인적 결단이 중요한 것인가? 잠깐, 이것은 맨 처음 언급한 힐링 서적들의 조언들과 유사한 게 아닌가? 개인적인 변용과 사랑의 노력이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는 것과 개인적 마음가짐의 변화로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나는 잘 모르겠다.





4.

그래서 이러한 의문은 두 번째 의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이러한 말들을 스피노자 자신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 스피노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보다 ‘필연성에 대한 인식’이다.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엄격한 결정론적 세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최종 원인인 신(즉 자연)의 관점에서 만물을 파악하는 것, 이런 것이 내가 스피노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다. 물론 이런 이미지는 내가 서양철학사를 읽으며 갖게 된 것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스피노자 철학의 정수가 그의 절대적인 필연성에 관한 학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실제로, 필연성이 모든 것을 다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다.”(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하권, p.230) “우리가 사물들을 신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신의 본성으로부터 생겨난 필연성에 따르는 것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그들을 ‘영원의 상 아래에서’(sub specie aeternitatis)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는 그들을 논리적으로 결합된 무한한 체계의 일부로서 파악하게 된다.”(코플스톤, 합리론, p.394)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 의지적 자유란 환상이며, 진정한 자유란 필연성을 인식하고 그 필연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견해를 따르자면 나는 본질적인 필연성에 의해 행동하고 현존하는 것을 자유롭다고 부르며, 본질적인 필연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어떤 정해진 방식으로 행동하고 실존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은 구속 상태에 있다고 부르고 있다. …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나는 자유를 자유로운 의지 속에 포함시키지는 않지만 자유로운 필연성 속에는 포함시키고 있다.”(슐러에게 보내는 편지)





그렇다면 이러한 필연성에 대한 인식과 ‘변용에의 의지’와 같은 결단은 어떻게 양립가능한가? 책 속의 스피노자는 새로운 것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라고 충고하고 있는데, 만일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새로운 것으로 몸을 던질 수 있는가? 코플스톤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 각각이 이미 어떤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결정되어 있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위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는 상당한 문제를 일으킨다. 물론 이에 대하여 스피노자는 권고하는 자는 이미 그렇게 권고하도록 결정되어 있고, 권고하는 것 자체가 권고를 받는 사람의 행위를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라고 대답할 것이다.”(위의 책, 400~401)





이처럼 치유의 방법론으로 ‘자신의 배치를 바꿀 것’을 권유하는 스피노자와 필연성을 인식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스피노자는 얼핏 모순돼 보인다. 왜 모순되어 보일까? 혹시 이는 저자의 전공이기도 한 펠릭스 가타리가 심리치료라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 스피노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던 스피노자에 대한 지식이 잘못되었거나, 이 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둘 사이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고리가 있는데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일 것이다. 어쨌든 술술 읽히는 책이었지만, 읽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미궁에 빠진다. 어쩌면 이것이 철학책을 읽는 재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꼭 읽어야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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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nc 2013-01-20 공감(5)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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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시대의 스피노자 되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최고의 히트어가 무엇일까? 어록이 너무 화려해서 어느 하나를 꼽는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를 뽑자면 멘붕이 아니겠는가? 멘탈붕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것은 아마도 지난 총선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 멘탈붕괴 줄여서 멘붕이라는 말은 젊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 되었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멘붕이라는 말이 이미 등재되어 있고, 거짓말 조금 보탠다면 국어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을까 싶다. MB정부의 이니셜과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치 행태를 잘 반영한 말이 아닐까 싶다. 멘붕이란 말이 조금 어려운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일컫는 말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총선은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도 대선이 있으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대선을 겪고 보니 회복이 쉽지 않다. 박근혜가 됐다는 사실만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1500만이나 넘는 사람이 박근혜를 찍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1500만이라는 숫자 앞에서 난 멘붕을 경험했다. 이 멘붕 상태는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가끔 한 숨이 나오고, 앞으로 5년은 어지 살아야 하나라는 걱정은 손톱 밑의 가시처럼 자꾸 신경을 건드린다. 정치권에서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지만 그 분석이라는 것이 반성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대안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다. 민주당의 문희상 체제를 보면서 언제적 문희상이냐는 한숨과 존재감마저 희미해져 버린 진보정당들을 보면서 멘붕상태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멘붕을 경험했다. 곳곳에서 멘붕을 회복하지 못한 농성자들이 뛰어내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릴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암울하다. 우리의 살림살이는 얼마나 더 나아지게 될 것인가? 한국은 복지국가가 아니라고, 아직 한국은 멀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뭐라 위로를 해야할까? 힐링캠프? 힐링버스? 곳곳에서 힐링이라는 말은 넘치는데 실제로 와 닿는 것은 없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인가?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눈물닦고 스피노자! 스피노자와 눈물닦는다는 말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 철학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는 있는 것일까? 300여년 전의 스피노자의 사상이, 그것도 철학이라는 복잡한 인문학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설령 위로를 준다고 해도 스피노자의 생각을 우리가 쉽게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이 또한 허울좋은 아는 사람들만의 이슈파이팅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와 걱정을 가지고 책을 한장씩 넘기기 시작한다.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책을 넘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시간내에 서평을 작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사라지고 제목대로 멘붕된 내 마음이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1500만이나 넘는 사람이 박근혜를 찍은 이유가 무엇일까? 내 멘붕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박근혜 당선의 최대 공로자라고 할 수 있는 50대는 박정희 시절을 살아본 사람들일텐데, 그것도 기성세대가 아닌 변혁을 꿈꾸는 젊은 세대로서 살았던 사람들일텐데 박근혜를 찍은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인의 정치적 수준이 그정도라서? 대선이 끝나고 난 다음 처칠의 명언이라면서 떠 돌았던 말은 분석이라기보다는 상처난 자기 몸에 소금을 뿌리는 자학일 뿐이었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다. 정치적인 문제들,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니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들이 바보라서, 정치적인 수준이 낮아서, 학력이 낮고, 편파적인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이 되어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박근혜를 찍은 것은 스피노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속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권력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은 유혹이 강하다. 어딘가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유를 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꽤 용기있는 일이다. 당장 스피노자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부유한 아버지로부터의 상속받을 유산을 포기했고,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 하이델베르크의 교수직을 포기한 스피노자의 삶은 유리를 깎아서 살아야할 정도로 궁핍했다. 게다가 그는 유리를 깎는 그의 생업 때문에 마신 유리 가루로 인해 진폐증에 걸려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예속하지 않고 자유를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고단한 일이요, 용기있는 일이다.



경제가 불안해지고, 정치가 불안해지고, 공동체가 깨어지고 관계가 단절되면서 사람들은 어딘가에 기댈 곳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유로운 개개인의 연대라는 어렵고도 고된 인생보다는 절대 권력에 예속되어 그 속에서 보호를 받고자 하는 욕망이 발동된 것이 아니겠는가? 박정희라는 절대 권력에 자신을 예속시킴으로 이것이 구원받는 길이요,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사고체계가 이번 대선 가운데 가장 불안함을 느끼는 50대에게 나타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렇다면 큰 오판이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예속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은 권력과 불안, 파편화된 존재들을 낳는 것이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관계망을 형성시키지도 못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지도 못하며, 위로를 주지도 못한다. 물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내지 못한다.



스피노자의 지적을 받으면서 MB시대의 보통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파편하, 예속화, 권력의 사유화, 실망, 절망, 외로움, 분열, 자기 욕망의 잘못된 투영과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잘못된 욕망이 우리 안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상대방의 역능을 고양시켜주는 사랑의 관계는 깨어진지 오래고, 만인의 만인의 대한 투쟁의 관계 속으로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이웃조차 밀어넣었다. 얼리버드 신드롬으로 시작한 지난 5년은 철저하게 관계를 깨버리고, 상대방을 파편화하였으며,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늘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면서 누군가 뛰어내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변용?(난 이것을 공감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되기가 아니라 이기가 삶의 기본 방식이 되어버렸고, 주인공처럼 아파서 눈물 흘리면서도 누군가에 하소연조차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이런 우리에게 스피노자가 다가와서 조용히 속삭인다. 눈물을 닦으라고. 그리고 삶의 방식을 조금만 바꾸자고. 불안하고 힘든 것은 알지만 이젠 공동체를 회복하자고, 슬픔의 관계가 아닌 기쁨의 관계로 전환하라고. 3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의 손을 잡은 스피노자와의 관계 맺기가 우리에게 작은 혁명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기쁨의 관계 맺기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도 다른 누군가에게 눈물을 닦아 준 스피노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 시대에 스피노자가 참 많아진다면 이 또한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스피노자를 통하여 멘붕을 조금씩 벗어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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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1-20 공감(4)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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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의 배치를 변화시켜 인간의 '내재성'을 바꾸는 탁월한 철학적 심리치유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였다. 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감과 탈근대의 철학의 위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주는 몇안되는 철학자가 바로 스피노자이다. 어떤 다른 철학자의 사상에 기대지 않은채 오직 홀로 사색을 통해서 스스로의 철학을 세워나갔던 스피노자는 어떤 이에게는 이단,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제치는 새로운 철학을 제공하는 선구자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써 부모님의 많은 유산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신을 부정한 것으로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고 그뿐 아니라 유대교 신자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 홀로 렌즈를 세공하며 스스로 철학을 했던 고독하면서도 독창적인 사상을 가진 철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 '자연이 신'이라는 범신론적인 사상인데 단지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진술이 아니라 실존적인 인간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나는 풀이하고 있다. 모든 철학책이 그렇듯이 철학적 진술은 깊고 좁은 사유를 철학적 개념으로 풀어내기에 그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즉 철학을 현대적으로 적용하고 자신의 삶의 기술로써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 <눈물닦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한 실천철학적 담론이자 적용서이다. 에티카에 적근하는 방식이 신선할 뿐 아니라 실용적이여서 철학의 현대의 삶에 기술이 될 수 있고 치유서가 될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공방 별난'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인문치료와 철학상담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젊은 철학자이다. 저자는 철학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치이고 상처받는 이들의 삶의 기술과 지혜를 가르쳐주어 스스로 헤쳐나가는 해법과 외부의 구조적 공격에서 오는 상처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철학이 줄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인문치료법과 철학상담의 가능성에 대한 결과물이다. <눈물닦고 스피노자>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28살의 백수 김철수 군. 서울의 대학 철학과를 나오고 나름대로 스펙을 쌓기 위해서 어학연수를 다녀와 8년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그리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근처 고시원에서 근근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삶이 절망스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으며 여자친구는 곧 떠날것 같다. 그래서 술마시고 늦게 들어와 화장실에 앉는순간 바로 앞 거울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거울이 열리고 스피노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즉 철수의 시대와 스피노자의 시대가 시간을 넘어 연결되고 서로 1시간 동안 대화할 수 있는 창이 열린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철수는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자신을 스피노자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를 통해서 삶의 고민과 어려움울 토로하기 시작하고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상담해 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삶의 기술로써 철학의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극복해 나간다는 형식이다. 소설형식으로 되어있어서 읽기와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김철수는 삶에서 읽어나는 상처와 어려움을 하나하나 스피노자에게 털어놓는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조울중,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이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구조가 주는 정신적 질병인 것이다. 스피노자의 처방중에서 정말로 탁월하다고 생각되었던 방식이 있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을 전수하여 프랑스 심리치료서 펠릭스 가타리는 제도요법이나 분열분석을 만들어 내었다.



일반적인 심리치유자가 상당가들은 내면의 고통과 삶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너의 마음을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도 이러한 전통적인 심리치유에 대한 방법에 무수히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도 내 마음을 바꿀수가 없어서 내 마음의 상처를 떠나보낼수 없어서 무수히 고민하고 아파하고 있는데 단지 그냥 마음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라고? 이러한 상담은 자기 안에 암덩어리를 자기가 잘라내라는 말과도 같이 들렸다. 전통적인 심리적 치유 방법적 진술인 이러한 말은 대단히 비효과적이라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다른 방식으로 치유에 대한 방법을 말해준다. 그는 단지 마음을 바꾸라는 말하지 않는다. 내재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므로 인간안에 있는 내재성을 바꾸라고 한다. 나는 스피노자가 말한 '내재성'이라는 개념에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인간은 단지 몇가지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꾼다고 바뀌는게 아니였다. 안간의 내면안에 인격과 생각과 경험의 씨줄과 날줄이 오래동안 짜여지고 배치되어서 한 인간의 내면의 독특한 특성이 생긴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내면안에 짜여지고 배치되어진 독특한 특성을 바로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존의 철학자들의 방식과는 확실히 차별적으로 구별되는 개념과 인간변화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러한 변화의 방식은 당장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애인과 헤어져 아파하고 있는데 단지 생각만 바꾼다고 마음의 태도를 바꾼다고 내가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애인과의 함께 오래동안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나의 내념에 하나의 내면성으로 짜여지고 배치된 내면성은 단 한순간의 다른 생각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그 애인을 통해서 짜여진 나의 내면성을 자연스럽게 바꾸므로서 나는 변화되고 치유될수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내면성'의 개념은 내가 볼때 인간에 대한 매우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인간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생각이나 태도는 바꾸는 피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내면성을 구성하는 관계망과 그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외부를 바뀌어주어 그 외부로부터 인간의 내면성을 바꾸려는 시도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단순한 하나의 생각으로 구성된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 복잡한 내면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것을 또한 스피노자는 '내면적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철수가 스피노자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스피노자는 김철수에게 자신을 아프게 하는 관계망을 하나의 영역으로 고정시키지 말고 부드럽게 횡단하여 자신의 내면을 형성하는 힘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말하면서 김철수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외부의 관계망의 배치를 바꾸어 줌으로써 인간의 내재성을 변화시켜 고정된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재적 이성'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철학적 치유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효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환경과 외부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재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환경을 함께 바꾸어주어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이 신'이라는 개념이 조금 이해가되었다. 스피노자의 이 진술은 종교적 진술이 아니였다. 그의 진술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인간을 이해해야하는 인간이해를 위한 진술이였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오해했다. 아마도 그를 파문했던 유대교인들도 그를 오해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진술이 단지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치유를 위한 새로운 인간이해의 진술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좀더 스피노자에게 다가간 기분이다. 이제 나도 스피노자를 만나볼 시간이 된 것 같다. 물론 화장실에서가 아니라 책으로 말이다.^^




종교든 돈이든 간에, 모든 종류의 권력의 시선은 신체를 싸늘하게 경색시킵니다.그러나 사랑과 욕망이 신체를 부드럽게 만들지요. 일단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영역에 대해서 신체를 변용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이 요구하는 하나의 신분, 하나의 이름, 하나의 인물로 전락하고 말지요. 모든 영역을 횡단하면 신체 변용의 역량은 상승하게 됩니다. 횡단은 이 영역과 저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죠. 옆방 사람과 경쟁자 관계로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친구, 형, 조언자의 관계를 넘나들어보세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될 수 있는 변용 역량을 상승시켜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런 문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접촉하는 모든 영역을 횡단하여 존재라하!'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횡단은 변용을 일컫는 또 다른 말입니다." (p.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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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나무 2013-01-2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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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곧 혁명이다





시대의 혁명을 다루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 꼭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조금 더 본질적인 내용만 담을 수는 없는 건가? 하기는 무겁기만 한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어? 소재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야. 어리석게도 나는 한때 이렇게 생각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사랑 덕분에 혁명을 부르짖고 사랑 때문에 혁명을 그르치는 일이 많았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거기에 각별히 주목하는 데서 생겨난 어떤 전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도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양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는 나이를 먹었다는 숱한 증거 가운데 하나다. 수많은 고전이 사랑 속에서 혁명을 불태우고 혁명 속에서 사랑을 꽃피우는 이유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위로를 얻는 까닭이 어렴풋이 손안에 들어왔다. 어쩌면 사랑과 혁명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일러주는 신호가 조금씩 내게 감지된 셈이다.







△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中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혁명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깨부수는 행위, 외부의 관계망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태도, 다른 세계로의 접촉과 횡단을 거쳐 울타리를 바깥으로 확장하는 일. 17세기의 스피노자는 본질적으로 인간은 이런 욕망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수많은 ‘되기’를 통해 이른바 변용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되기'란 신체가 공동체에 접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모름지기 사랑으로써 경험된다. (여기서 사랑은 좁은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여행을 하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이듯 사랑을 하고 나면 우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다. 언젠가 파스칼 키냐르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랑에 빠질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이렇듯 사랑은 끊임없이 우리를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만든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 사랑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그보다 다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먹고 살기 바빠서 사랑을 찾을 시간도, 혁명을 외칠 여유도 없다고?



여기서 머리가 아니라 신체를 언급하는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와 달리 사유를 하나의 실체로 보지 않는다. 그는 사유가 이 세계를 지배하거나 장악한다고 보는 데 거부감을 드러내며, 공동체와의 무한한 결합이 만드는 신체 변용과 이와 평행하게 획득되는 사유의 공통 관념에 입각해서 그 복잡한 속성 중 일부에 겨우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거칠게 표현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유한하다. 고로 접근한다.'이다. 머리로 생각해서 나와 세계를 분리하는 대신 신체를 변용해서 나를 세계에 이르게 하는 식이다. 우리가 실제로 사랑을 대하는 순간을 떠올려보라. 백날 머리 굴려 봐야 사랑은 다가오지 않는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접촉과 횡단이 답이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질병들, 즉 불안증·우울증·신경증·강박증·조울증·분열증·공포증 등은 다 이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탓이다.



사랑과 혁명? 왠지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우리가 매일매일 부딪히는 일이다. 이 책은 그저 남들 따라 공무원이 되고자 고시원에서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한 학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스피노자가 나타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처럼 가상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는 밤마다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하나씩 털어놓으며 남몰래 상담을 받는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핵심은 철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에티카'다. 그러니까 그걸 직접 읽기가 부담스러운 사람의 경우 스피노자의 세계에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유쾌한 구성이다. 저자는 별별 '증(症)'에 이리저리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스피노자의 생각을 토대로 담백한 위로를 전한다. 실체를 짐작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커다란 슬픔 앞에서 우리는 종종 좌절한다. 그러나 미지의 세상에 줄곧 접속하는 사랑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것이다. '사랑'은 곧 '혁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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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2013-01-1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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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중세인, 최초의 근대인” 스피노자의 힐링 캠프



『눈물 닦고 스피노자』 신승철 지음, 동녘, 2012. 11.



21세기 대한민국의 83만원 세대, 김철수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스피노자, 그가 왔다.



고시원의 공동 화장실의 깨진 거울을 사이에 두고,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서 ‘철학자의 철학자'가 될(된) 스피노자가 백수 청년 철수의 고민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신간 『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그들의 불가능한 만남에서 출발한다. 스피노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 백수, 입시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여고생 주변에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 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을 각각의 챕터로 한 스피노자의 철학 강의는 상담과 치유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스피노자는 철학 상담 처음부터 답을 제시한다. 정신질환은 이성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이 자리한 곳의 배치를 바꾸고,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관계망에 대한 사유” 능력을 키울 때 우리는 정신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욕망으로 존재와 세계를 재구성할 것을 권유한다. 무의식적 욕망을 기꺼이 수용하고, 욕망의 주인이 될 것을 간절하게 요청한다. “스스로 창발(創發)한 욕망은 삶을 구성하고 세계를 재창조하는 활동력”이 된다. 나의 무의식을 ‘알아차림’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주변과 두려움 없이 접촉하고, 횡단하며, 변용하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구조적 예속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트랜스포머가 될 수 있다.



‘철학공방 별난’에서의 삶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생산한 신승철 선생의 철학연구소 이름이 ‘별난’이란다. 욕망(desire)의 어원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에서 가져온 공방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그 명칭에서 저자의 삶이 이미 스피노자적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6~17세기 가장 코스모폴리탄이었던 경제 중심지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 살았던 스피노자는 부유함을 포기하고 겸손한 삶을 선택하는 것으로 한평생 철학을 했다. 도시는 익명성을, 소박함은 자유와 고독을 선취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별난’의 삶은 스피노자의 철학이 실천되는 공동체다. 별에서 떨어져 나온 마음들의 집합소에 넘쳐나는 관계지향의 삶, 함께 사랑하고 기뻐하며 외부에 대해 열려있는 일상 속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변용을 경험할 것이다. 고립된 섬처럼 파편화된 사람들은 타인의 신체와 결합하여 무수히 다양한 자아를 생성한다.



http://goham20.com/2021





철학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책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어렵지 않게 우리를 철학으로 유도한다는 점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피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난해한 개념으로 넘쳐나 미리 질리게 하는 철학책들과 달리 철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입문서였다. 발신인 없는 의문의 편지는 “너는 누구니?”,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와 같은 한 줄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퍼즐을 맞추듯 자연스럽게 철학적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게 한다. 청소년이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던 『소피의 선택』처럼 『눈물 닦고 스피노자』역시 접근성이 뛰어난 철학서다. 삶이 힘겨운 이 시대 젊은이들이 인문학에서 치유 할 수 있도록 소설의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의 언어의 불일치, 시대의 이해를 어설픈 매듭으로 연결하는 한계가 있지만, 아픔을 치유하는 공감할 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된다.『눈물 닦고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우리를 에티카의 세계로 초대한다.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마음 바꾸기는 쉽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마음을 바꾸는 것은 위대한 혁명이다. 삶을 전복하는 일, 욕망의 배치를 바꾸는 것은 개인에게 우주의 빅뱅에 비견할만한 일이다. 욕망을 읽고 배치를 바꾸며 변용하는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할 수 있다. 우선해야 할 일은 당연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그 순간 우리는 파편화된 자아에서 벗어난다. 마주침에서 두려움 없이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경계를 허물어 지평을 넓혀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욕망을 함께 나눌 ‘별난 공방’이 도처에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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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2013-01-20 공감(2)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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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늘 불안하고 우울할까







우리는 왜 늘 불안하고 우울할까



















현대인은 늘 우울하고 불안하다. 현재도 미래도 불안정하고 친구나 동료와는 신뢰가 아니라 경쟁심만 쌓여간다. 신이 곧 자연이라 해서 동시대에는 환영받지 못했던 씽커, 스피노자. 그에게 조언을 좀 구해볼까. 그는 현대인의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질병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그가 살던 중세에도 이런 질병이 있었을까.





매일 밤 주인공은 고시원 화장실에서 스피노자를 만난다. 주인공은 스피노자 전공자인 모양이다. 암튼, 그는 스피노자를 만나 신세타령을 한다. 요즘 청년들이 얼마나 불안한지 아느냐고. 스피노자는 그의 불평불만에 이렇게 말한다. 당신 자신이 너무 단단한 갑옷을 입고 외부와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라고 말이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성공, 부, 행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고 그 과정이 녹록치 않자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비하해왔는지 모른다. 모든 것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마음도 잡지 못하고 점점 나약해져만 갔다. 행복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행복한 삶이 아닐 것이다. 또 고통을 감수해도 성공은 보장되어 있지 않고 설사 성공했다 해도 영원한 행복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의사와 판검사는 자살도 하면 안 된다. 그들은 성공했으니 행복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스피노자는 굳건한 자신의 목적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주인공에게 조언한다. 좀 유연해질 수는 없겠냐고. ‘자신에 대한 너무나 확고한 상이 있어서 외부의 변화에 원활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우리는 공부를 왜하냐고 물으면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대학에는 왜 가냐고 물으면 성공하기 위해서라고, 다시, 성공은 왜 해야하냐고 물으면, 우리는 사실 말문이 막힌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성공이 실패보다 좋은 것이라고 말하니까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 몸이 원하는대로 나를 좀 쉬게 할 수는 없을까. 우리는 사회를 탓하고 사회를 바궈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나 자신을 변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바뀌어야 사회도 바뀔 수 있을테니까.





스피노자는 우리가 유연한 마음과 신체를 가질 때 불안은 사라질거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자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변화’한다. 그래서 불안이나 우울증을 치유하려면 ‘자아를 강건하고 굳세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욕망을 자연스럽게 순환’시켜야 한다.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부엌 근처에도 안 가던 남자가 부엌에 가서 설거지를 하는 것도 자기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평생 노동만 했던 사람이 그림도 그리고, 시를 쓰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자기를 바구는 것이고 세상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열려있기, 타자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기. 자기의 지평을 이렇게 열어두고 유연해질수록 하나의 목적에 얽매인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예속을 영예로 아는 희한한 존재이다. 1등을 해야 한다는 것은 1등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반에서 1등 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를 선망하고 동경한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1등을 해서 반에서 권력을 누려보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초월적인 권력을 갖고 싶어하지(예외자가 되고 싶어하지) 권력에 기대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힘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랑과 욕망의 힘은 초월적인 곳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내재적으로 있다. 이 힘은 ‘권력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으며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를 의심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 힘이 바로 진정한 힘이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라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의미 있다고 여겨왔던 것들은 대부분 권력과 관계있는 것들이었다. 성공이나 부나 행복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다.





그런 세상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변혁하고 새롭게 사유할 때 우리에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유인은 아이와 동물을 만나고 노인과 광인, 여성과 장애인을 만나면서 무한히 결합된다. 그들에겐 불안도 두려움도 없다.



아무런 세균이 없는 곳에서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적절한 세균이 있어야 우리 몸도 더 단단해지고 외부와 접촉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지나치게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길에 노숙인을 만나면 더럽다고 도망가기 바쁜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그렇게 안전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살기 위해 외부와 접촉을 끊을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소외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우울과 고립감이다.





우리는 자신을 유연하게 해서 자전거를 탈 때는 자전거가 ‘되어야’ 하고 운전을 하려면 자동차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 외부와 소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도 생존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자기이기를 버리고 ‘상대방 되기’를 통해서 우리는 더욱 다채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신을 넘어서 타자와 소통하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삶을 거부하고 혼자 자기의 삶을 꾸리려 한다면 현대인에게는 언제나 불안과 우울이 지배하게 마련이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외부와 소통하는 신체, 유연한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현대인의 질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 또한 내 이익과 목적만을 추구하느라 외부와 소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목적에만 예속된 채 자유로운 삶을 살지도 못했다. 그 안에서 때론 괴로웠고 또 외로웠다. 친구도 없었다. 주위의 모두가 그저 경쟁 상대에 불과했다.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고, 성공을 향한 기차에서 내려 목적도, 나도, 버리고 유연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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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2013-01-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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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과 스피노자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두움에 빛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 기도문이 떠올랐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 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불황은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 기업은 명퇴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를 만나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합니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습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보여준 다소 난해한 기하학과도 같은 문장들을 '치유의 방법론'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하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셀리 케이건 교수에게 하는 말인듯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자유인은 죽음을 성찰하지 않으며, 그(자유인)의 지혜는 삶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셀리 케이건 교수가 한 마디 안 하고 지나갈 사람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시원. 그저 앉아서 책을 볼 공간과 누우면 더 이상의 여백이 없는 곳. 스피노자는 이 시대의 외로운 사람들, 때로는 좌절의 무릎을 꿇고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길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매일 밤 성냥갑 같은 고시원의 우중충한 화장실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각 질환을 앓고 있는 대상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20대 백수, 학업과 친구들과의 건강한 관계가 힘든 여고생의 우울증, 감시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증, 가족이 나를 구속하고 있다고 믿는 신경증, 몽크와 같은 강박증,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과대망상증, 성적으로 또는 물건에 대한 도착까지 포함하는 도착증,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감과 발작의 공황장애, 현실을 외면 또는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것이 중독이 되는 경우, 집착을 넘어 넘어 경계선 인격 장애, 기분의 업 앤 다운이 심한 조울증,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의 관계망상, 광기가 드러나는 분열증 그리고 끝없는 공포감 등.




어쩌면 우리 모두는 위의 증상을 몇 가지 브렌딩한 칵테일을 가끔 한 잔 씩 목으로 가슴으로 넘기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평정심을 흩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저자가 이런 증상들을 나열하면서 현학적인 설명만 늘어놓았다면 이 책은 참으로 무거운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리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입니다. 겉으론 매우 평범해보이는 그 사람들입니다.




등장 인물 중 '상시로 우울증 약을 지니고 다니는 소녀'를 만나볼까요?

우울증(憂鬱症, depression)은 병리적인 수준의 우울한 상태를 말합니다.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우울감과는 다르지요. 우울증에 대해선 각 나라마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그 미케니즘이 명료하게 밝혀지진 않은 상태입니다. 워낙 그 기저 원인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고 1년생인 이한별. 어느 날 저녁 이 소녀는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 놓지만, 편의점 알바의 눈에 소녀의 점퍼 안에 소주로 추정되는 물체가 숨겨져 있다는 의심을 받자 가방을 던져놓고 도망을 갑니다. 가방안에는 우울증 약과 함께 다량의 수면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자를 통해 스피노자는 마음의 감기라 불리우는 우울증에 대한 처방을 내려줍니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내재성의 차원을 갖습니다. 이 내재성의 차원은 관계 맺기의 차원을 의미하며, 관계는 사랑과 욕망을 형성합니다. 부부, 가족, 학교, 감옥, 병원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생각은 그것이 어떤 관계 맺기인가에 달려 있지 개개인의 마음 상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어서 스피노자는 사람은 어떤 관계를 갖느냐, 어떤 식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정서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답니다. 따라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울감을 만들어내는 관계로부터 벗어나거나, 색다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결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큰 걸림돌이지요. 상대방이 부모일 경우, 내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의 상사인 경우 등..어쩔수 없이 감당해나가야 하는 관계일 경우가 문제이지요.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욕망은 감소되고 위축되며 우울해질 수 밖에 없지요.




스피노자의 말이 이어집니다. (책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말은 저자 자신의 직설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에티카]에 씌여져 있는 글들을 현대적 해석으로 집어 넣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예속된 관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색다른 것, 특이한 것이 생성되고 창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변용의 힘이겠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색다른 아이디어가 생기고, 어떤 말이든 자꾸 건네고 싶고, 그 사람과 무엇인가 창조해 보고 싶은 생각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서의 기쁨만이 아니라, 창조와 생성의 욕망이 극대화하는 경우겠지요. 저는 그런 관계의 차원이 공동선에 기반한 민주적 관계망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계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거나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는 새롭게 배치되고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관계의 차원을 바꾸어야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습니다. 자유인이라면 자신의 관계를 선택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는 셈이죠."




에티카 본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중 정리 19에 나오는 말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파괴되는 것을 표상하는 사람은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유지되는 것을 표상한다면 기뻐할 것이다.' 자신의 활동 능력을 촉진하고 증대시키는 것은 기쁨이겠지만, 자신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고 억제시키는 것은 슬픔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쁨을 가져다주는 관계를 찾아나서라는 조언을 해주는군요. 관계의 배치를 바꾼다. 슬픔의 관계를 떠나서 기쁨의 관계 속으로 떠난다. 이 떠남이 결코 셀프서비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럴 때 바로 우리가 주는 위로의 말과 손내밈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쇼생크 탈출'처럼 드라마틱한 상황만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책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굳이 [에티카]를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티카]를 아직 구경도 못했다고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책에 그 엑기스가 녹아있으니 그냥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스피노자를 만나보시면 되겠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의 글들을 읽으면서 '철학' 열차를 탑승한다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단, 스피노자가 우리의 눈물을 닦으라고 건네주는 손수건은 그(스피노자)가 안경 세공을 하다가 건네주는 것인만큼 대충 닦는 시늉만 하시고 꼭 되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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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 2013-01-0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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