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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9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박규태 /Park Kyutae 2014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Focusing on Kim Taechang


비교일본학

2014, vol.31, pp. 37-79 (43 pages)

UCI : G704-SER000001507.2014.31..012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일본문학 > 일본문화학
박규태 /Park Kyutae 1


1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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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천년대 초입을 전후로 하여 일본에 일기 시작한 공공철학 붐의 문화론적 의의를 고찰하는 글이다. 이때 본고는 특히 998년 4월 사사키 다케시(佐々木毅) 전 동경대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대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김태창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교토포럼>을 통해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경영, 건강, 의료, 세대간 관계, 자기론, 매스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대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발 공공철학과 관련하여 학제간 토론을 주도해 오면서, 그 세 가지 이념형적 목표로 활사개공(活私開公), 공사공매(公私共媒),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주창하고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대해 일본문화론으로서의 공공철학, 한류로서의 공공철학,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한의 저쪽에서 일치하는 평행선의 사유”를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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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철학,
김태창,
활사개공,
일본문화론,
한류,
동아시아 담론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박규태**

2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NRF󰠏2012󰠏2012S1A5B8A03034081)

** 한양 학교 교수5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Key words :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26)

들어가는 말 : 김태창은 누구인가

  <주간 동양경제>라는 일본의 표적인 경제전문지에서 2003년 신년특 집호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위기에 처하는 23명의 현자의 지혜라는 주제하에 한 한국인을 인터뷰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김태창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일본의 개혁방법에 관한 청사진 가운데 일본이 포스트 경제 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국가전체보다는 개개인이 정신적/문화적으 로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것, 요컨 키워드는 민의 힘을 살리는 활사개’(活私開公)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공창’(幸福共創)이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김태창, 2012_11b:15󰠏16) 여기서 말하는 활사개공이나 행 복공창이란 무슨 의미인가? 한일 지식인들이 타자와의 사이()를 연 인(大人)”(모리오카 마사요시, 2013_12:4), “공자가 말하는 인 유학자 (大人儒)”(야마모토 쿄시, 2013:5), “끊임없이 화하는 철학자”(오가와 하루히사, 2013_11:2), “탁월한 지식경 인”(최재목, 2013_12:13) 등으로 극찬해 마지않는 김태창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극찬은 일본에서 가장 한국에 정통한 철학자로 말해지는 오구라 키조의 다음 수사에서 하 나의 정점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악보가 없는 강렬한 생명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생명을 짓밟으려고 하는 모든 행위와 사상에 한 생명적인 항이다. 한국과 일 본의 틈새에 이와 같은 철학적 생명 그 자체가 활화산의 분화구처럼 분 출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 한 사건이다. 그의 강의를 들은 일본 인은 전율과 함께 까칠까칠한 위화감, 그리고 소리치고 싶은 듯한 고양을 느낀다. 그는 일본이라는 이국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일본어로 일본인들과 무수한 화를 거듭하고, 한국을 정신적 토 로 삼으면서도 일본인과 함께 새로운 철학을 구축하고자 하는 견실한 노력을 20년 이상이나 계속해왔다. 과연 누가 지금까지 이런 일을 이루어냈을까? 식민지 지배를 당한 나라의 인간이 그것을 가한 나라의 인간과 철학 화를 계속하고, 그것을 공공철 학이라는 개념으로 가꾸어낸다고 하는 활동을 그 누가 해낼 수 있었을?”(오구라 키조, 2013:10󰠏12. 필자의 윤문)

  다수의 문저서[1])와 일본어로 간행된 20여권의 공공철학 시리즈물[2])을 포함하는 놀랄만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현 교토 소재 <장래세 총합연구 소> 소장, 오사카 소재 <공공철학 공동연구소> 소장, <수복서원> 원장 등을 겸임하고 있는 김태창은 19984월 사사키 다케시(木毅) 전 동경 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3)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장본 인에 다름 아니다.4) 사실상 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통해 종래의 멸사봉공(滅私奉公)적 공공성뿐만 아니라 멸공봉사(滅公奉私)적 미이즘 (meism)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그 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본 에서 공공철학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침투5)하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슬람, 인도, 일본에서의 공사에 관한 사상사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사회학적, 경제학 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공사 역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2(2004) 5권 및  3(2006) 5권에서는 자치/법률/도시/리더십/문화와 예술/종교/지식인/조직과 경

/의료와 건강/세 간 관계 등으로부터 생각하는 공공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 비판󰡕(1980),인간  세계 그리고 신󰡕(1985),정치철 학적 사고의 궤적과 그 주변에 모아진 사고의 단편󰡕(1989),현 정치철학: 탐색과

전망󰡕(1989),21세기에의 지성적 응󰡕(1993),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2010),(일 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2012) 등 다 수의 국내저술이 있다.

3)   <장래세 총합연구소>의 모태인 <장래세 국제재단> 이사장이자 <교토포럼> 사무 국장. <장래세 국제재단>19926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지구정 상회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연합회의>가 개최된 다음 달인 19927월에 미국 에서 설립되었다. 이 재단의 전신이 바로 1989113(문화의 날, 이전의 메이지 절)에 교토에서 발족한 <교토포럼>이다. 이 제1회 교토포럼에서 향후 1990년부터 2 개월에 한 번씩 학제간 화를 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으며 그 추진자로서 김태창이 동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92년 김태창은 <장래세 총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 하게 된다.

4)   김태창은 이 두 사람과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을 통해 <공공철학 교토포럼>이 가능 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일본에 와서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들과 함께 이룰 수 있 었던 가장 귀중한 농사다고 토로한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244󰠏45)  

5)   현재 일본을 표하는 사전에서 공공철학시민적 연 감이나 공감 그리고 비판 적인 상호토론에 기초하여 공공성의 부활을 지향하고 학제적인 관점에 서서 사람들 에게 사회적 활동에 한 참가나 공헌을 촉구하고자 하는 실천적 학문”(󰡔廣辭苑󰡕 6 )으로 정의되어 나온다.


1934년 청주의 이른바 ‘다문화가정’6)에서 출생한 김태창은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그 후 한국인이 된 인간이다. 유소년기는 일본어라는 국어 상용이 의무화된 생활환경 속에서 자라나 일본문화를 알고 일본역 사를 배웠다. (중략) 나는 일본인임을 의심한다든지 분명한 위화감을 가 지는 일은 없었다.”(金泰昌, 2002b:199)고 식민지 소년의 아이덴티티를 술회한다


6)   그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이란 반일적 성향이 강한 주자학자 던 할아버지와 친서구 적인 독실한 기독교신자 던 어머니, 그리고 일본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로 구성된 가정을 가리킨다. 이들은 각자 개성이 강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김태창은 이 세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것이 어릴 때의 가장 큰 바람이었 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사이’와 ‘상생’과 ‘공복’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김태창 편저, 2010:99)


해방 뒤 연세 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어, 독일어, 불어 등을 가르치면서 학원 과정을 마쳤다(정치학박사). 젊었 을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던 그는 결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라 국제관계철학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충족될 수 없었 던 김태창의 학문적 열정은 그로 하여금 국, 독일, 프랑스, 북유럽, 스 칸디나비아 반도, 동유럽 등 5년에 걸쳐 56개국을 돌며 인간학적 체험을 추구하는 방랑자로 만들었다.7) 


7)   이 당시 그는 의식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했다그것은 과거에 일본이 한 국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침략한 것에 한 반동에서. “한국의 지식인의 한 사람 으로서 일본을 무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일본에 이기기 위 해서는 일본보다 더 나라를 발전시켜서수준 높은 학문을 닦고 일본 학자보다 뛰어 난 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 새겼다.(야마모토 쿄시, 2013:3) 8) 김태창의 생애에 관해서는 주로 (泰昌, 2002b) 및 (김태창 편저, 2010:98󰠏99) 참조.


귀국 후에는 충북 사회과학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학생운동이 한창인 학내에서 제자들로부터는 체제옹 호적이라고 비난받고 국가권력으로부터는 체제비판적이라는 의심을 받아 한때 체포 감금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1990년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일본으로 간다. 더 이상 방황할 여유도 없고 여력도 없어서 앞으로는 일본에서 중국과 한국 을 왕래하면서 친구들과 힘을 합쳐 어떤 모델이라도 제시하고 싶다는 생 각을 하면서, 국경을 초월하여 시민들끼리 만들 수 있는 좋은 사회를 꿈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8)   본고의 목적은 이와 같은 김태창이 주창한 공공철학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그리고 그의 비전이 일본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 지를 되물으면서 현 일본사회에 있어 그의 공공철학 담론이 가지는 의 의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물론 일본의 공공철학 또는 공공성 담론은 비 단 김태창이 주도해온 <공공철학 교토포럼>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이 와 전혀 무관하게 일본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공공철학 담론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3]) 이하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주로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 <공공철학 교토포럼> : 왜 일본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4])19984월에 발족한 이래 현재까지 약 17 년 이상 거의 매달 한번 꼴로 개최되었는데, 매회 3일에 걸쳐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한 주제당 발표 20분에 토론 40분이 주어지고 종합토론에 있어 철저한 화 위주의 형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이 포럼에서는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 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 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 건강, 의료, 세 간 관계, 자기론, 매스 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 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공공의 관점에서 학제간 토 론이 이루어져왔으며, 전술했듯이 그 내용의 3분의 1정도가 동경 학출 판회를 통해 <시리즈 공공철학> 20권으로 나왔으며, 기타 <시리즈 이 야기론> 3권 및 관련 단행본들로 계속 출간되고 있다.

  1회 포럼의 논의는 공과 사의 사상사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기조 는 공공은 공에 친 성이 있고 사의 반 에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이 는 하나의 전략적 접근이었을 것이다. 당시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의 일 본에는 공공이라는 이름하에 관료사회의 특징인 공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조가 있었다. 이와 함께 전전, 메이지, 에도시 로의 회귀를 꿈꾸는 향 수가 사회 전반에 걸쳐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김태창은 활사 개공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에 편향된 일본인들의 정신 풍토에 변화를 일으키고 의 긍정적인 측면을 점차 부각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를 살아있는 개개인의 원초적인 행복의지로 재해석하고 그 것이야말로 제도적 지배가치에 우선하는 참된 인간적 가치의 자연적 기 반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는데, 이는 마치 공천하국가(公天下國家)로서 의 일본을 송두리째 탈구축하려는 듯한 야심찬 기획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공적 성향이 강한 제도권 학자들의 반발과 적개심을 사기도 해서 충돌과 불화가 적지 않았지만, 김태창은 역사상 이 일원적으로 민을 짓눌러온 일본에서 공공민과 함께 하는 공공으로 의미변용하 기 위해 공공철학을 동아시아삼국의 범위에서 확실하게 구축한다는 전략

을 선택하게 된다.(야마모토 쿄시, 2013:4󰠏5)

  김태창은 이와 같은 포럼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구자들을 네 세 로 구분하고 있다

  1. 예컨 제1세 의 미국 및 유럽 전문가들, 미조구치 유조를 비롯한 제2세 의 중국사상/철학/문화 전문가들
  2. 다나카 쇼조(1 841󰠏1913)민중적인 공공성 담론을 개발한 3세 의 일본사상/철학/문 화 전문가들,[5]) 
  3. 그리고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주자학 연구, 야규 마코 토(柳生眞)의 최한기 연구, 가타오카 류(片岡龍)의 한일비교연구 등 현재 공공철학 담론을 주도하는 제4세 의 한일 비교사상/철학/문화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거론되고 있다.(김태창, 2013_7:8󰠏9)

  이 가운데 특히 철학, 윤리학, 역사학, 사상사, 정치학, 경제학, 법학, 과학론, 공공정책론 등 다양한 학문적 입장에서 21세기에 알맞는 공공성 을 추구한 제1회 포럼에 즈음하여 김태창이 밝힌 취지에 주목해 보자. 그는 이때 반성적 작업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공공철학의 기본 과제를 인간과 국가의 관계를 고찰함에 있어 중간적인 매개 역의 활성 화, 건전화, 성숙화에서 찾으면서 특히 구체적인 생활세계의 공공성과 국가를 넘어선 공공성의 지평이 결합된 글로컬한 공공성의 창출을 제 안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에 있어 공사 관계의 규명 및 서구 공사관 계와의 비교를 통한 재구축의 작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김태창에 의하 면,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는 공사 담론은 의 문제에 편중되어 예컨 종래의 을 부활시키는 것이 문제해결책이라는 발상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포럼은 철저히 화정신에 입각한 의미생성적 화공간12)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金泰昌, 2001a:ⅳ󰠏ⅺ)    이처럼 포럼 초창기부터 공공철학을 화로서의 철학으로 규정했던 김태창의 인식론적 태도는 그의 서구 경험에서부터 배양되었다. 그는 특 히 노르웨이에서 자기와 타자 사이에있어 립/갈등/분쟁하는 당사자 쌍방의 주장/요구/의도에 귀를 기울여 성실하게 경청하는 태도에 입각한 재조명/재평가/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2023/09/16

**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담 :(1), (2) 김태창-·카마다 토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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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2)

2018. 1. 28. — 카마다 토지 : [고사기]에는 불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만 [일본서기]를 읽으면 불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테마가 되고 ...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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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24. — 카마다 토지 교수는 1951년에 토쿠시마현(德島県)에서 태어난 탁월한 신도학자(神道學者)이자 수행자이자 시인이다. 내가 아는 그의 책만 해도 25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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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by소걸음Jan 24. 2018
개벽신문 제67호, 2017.9

대담 : 김태창 | 동아포럼·카마다 토지 | 교토대학
정리 :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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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동양포럼의 김태창 선생과 교토대학의 카마다 토지 교수가 2015년에 ‘영성’을 주제로 나눈 대화로, [미래공창신문] 영성특집호(제24호. 2015년 6월)에 실린 글을 조성환 박사가 번역하고 각주를 단 것이다. 분량상 2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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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화에 앞서

(1) 영성으로 여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


카마다 토지 교수는 1951년에 토쿠시마현(德島県)에서 태어난 탁월한 신도학자(神道學者)이자 수행자이자 시인이다. 내가 아는 그의 책만 해도 25권에 이르고, 그가 쓴 논문과 수필 그리고 칼럼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철저한 수도·수행·수련을 쌓아서 신도적(神道的) 영성 인간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온 인물이다. 종교적·문화적 활동도 활발하고 광범위하여, 신도(神道) 노래를 작곡·작사·연주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른다. 그가 애용하는 자연악기 - 특히 돌피리(石笛) - 에 혼을 담아서 부는 신묘한 음령(音靈)은 심신혼(心身魂)에 깊게 울려 퍼진다. 영화도 제작하였는데 거기에는 ‘카마다혼’(鎌田魂)이라고 할만한 것이 용해되어 있다.

카마다 교수의 신도학에는 물학(物學)·심학(心學)·기학(技學)·영학(靈學)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시류와 상황에 의해 좀더 강조·특화되는 변주는 있지만-. 그것은 김태창 선생의 한학1에 물학(物學=자연미학)·심학(心學=도덕리학)·실학(實學=실언실행학實言實行學)·영학(靈學=활명신생학活命新生學)이 상극·상화(相和)·상생적으로 연동하고 있는 것과 깊게 공명한다. 그래서 이 대화는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이기보다는 혼과 혼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영성의 철학대화가 되리라 기대된다.

이번 대화는 일본적 영성의 카마다 토지적인 체인한적 영성의 김태창적 체득이 그 사이에서 야마모토 쿄시적 직각(直覺)을 통해서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을 열기 위한 진지한 시도이다. 전지구적·전인류적으로 보편타당한 것을 만들어내기 직전의 일본인과 한인(韓人)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함께 공공하는 영성의 철학 대화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인과 한인이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실현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영성의 작용에 주목했다는 점이 이번 대화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그 작용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인이 근원적 생명력을 개체생명의 내부에 내폐(內閉)시키는 것(物)이 아니라, 개체생명과 개체생명의 사이·만남·어우러짐에서 드러나는 영적인 운동과 소통 그리고 변화를 창발·촉진·진화시키는 일(事)을 말한다.

(2) 영성과 마주하는 것의 곤란함과 진지함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 영성(스피리츄얼리티)은 어려운 문제이다. 마음도 충분히 가시화될 수 없지만 영(靈)이나 영성은 그 이상으로 가시화될 수 없고 양화될 수 없으며 측정될 수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의식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거나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경우에는 직관이나 상상력이나 추측이나 비유를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신도영학(神道靈學)을 기초지운 혼다 치카아츠(本田親徳. 1822-1889)는 “영으로 영을 대한다(以靈對靈)”고 했는데, “뇌로 영을 대하”거나(以腦對靈) “물리학으로 영을 대하”는 것에는 방법론적으로 대상론적으로 커다란 한계가 있다는 뜻이리라. 이전에 “카마다 토지의 스피리츄얼리티 5원칙”을 만들어, ‘일본 스피리츄얼 케어워커2 협회’의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적이 있다:

1.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의 3요소는 ①전체성(통째) ②근원성(뿌리) ③심화·변용(깊어짐)이다.

2. 스피리츄얼리티(영성)는 ‘삶의 나침판’(생명의 콤파스)이자 ‘도(Way)’이다.

3. 스피리츄얼리티(영성)는 ‘혼자’이면서 ‘함께 가는 두 사람[同行二人]’이다.

4. 스피리츄얼 케어‘사이’에 있는 작용을 감지하는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의 임기응변적 발동이다.

5. 스피리츄얼 케어는 ‘생태지(生態智=자연에 대한 깊고도 신중한 공포와 외경에 기초하여 생활 속에서의 예민한 관찰과 경험으로 단련된, 자연과 인공의 지속가능한 창조적 균형유지 시스템의 기법과 지혜)’에 의해 연마된다.





이번 대화에서도 이와 같은 내 나름대로의 ‘영성’론을 피력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의 차이가 부각되었다. 그 차이 중의 하나는 수평축과 수직축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타계관(他界觀)의 핵심에는 ‘상세’(常世)3나 ‘니라이카나이’4와 같은 수평적인 바다 저편에 혼이나 신이나 조상의 혼령[祖靈]이 사는 세계가 상정되고 있다. 그에 반해 한인의 타계관의 중심에는 ‘하늘’이 있다. 하늘로부터의 수직적인 시선과 바다 저편으로부터의 수평적인 시선에 의해 생기는 마음과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이웃나라라고 해도 당연히 공통점과 함께 커다란 차이도 있다. 그 차이가 풍토와 역사적 경험에도 기초하고 있음을 새삼 재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보편적 영성·지구적 영성’에 이르는 길을 ‘스사노오적 영성’의 발로·발현으로서 탐구해 나가고 싶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김태창 선생과 야마모토 쿄시 편집장에게 심심한 경의와 감사를 드리고 싶다.



2.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 :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의 만남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카마다 토지 선생님의 [강좌 스피리츄얼학(전7권)]5의 제3권 [스피리츄얼리티와 평화]6가 이번에 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스피리츄얼리티’란 무엇인가요?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토대 교수) : 저는 ‘스피리츄얼리티’(spirituality)와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번역어로 서로 연결시키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피리츄얼리티=영성에는 크게 네 가지 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근원성’입니다. 자기 자신을 근원에서부터 성립시킨 인간존재의 가장 근간에 있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이자 뿌리입니다.

둘째는 ‘전체성’입니다. ‘전체성’을 ‘토털리티’(totality)나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방합니다. 요컨대 우주의 부분이 아니라 우주 전체로, 보편성과 관련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는 ‘변용성’입니다. 심화, 성숙해 나가는 것입니다. ‘변용’이란 한꺼풀, 두꺼풀 벗겨서 본질이 점점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세 살짜리 아이가 내장하고 있던 근원성과 전체성은 역사와 경험이 가속되고 변용되어 80세가 되었을 때에는 깊이를 더해 가지요.

넷째는 나를 나이게 하는 ‘방향성’입니다. 저는 그것을 ‘생명의 콤파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영성’ 개념의 용례에 대해서는 카마다 선생님이 [신도의 스피리츄얼리티]7에 수록된 <‘일본적 영성’의 고찰>에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논의를 인용해 가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김태창 선생님은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요?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 제가 체험·경험·증험·효험의 과정을 겪으면서 체득한 것을 말씀드리면,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은 ‘개념’이기보다는 실동하는 ‘작용’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첫 번째 특징은 근원적 개신(開新) 작용입니다. ‘개신’이란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연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활명신생’(活命新生) 작용입니다. 천명(天命)으로서의 생명, 즉 천지의 생명활동=우주생명=명(命)을 살림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생명활동=개체생명=생(生)을 새롭게 하는(新·改)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안(内)과 밖(外)을 그 사이(中·間)에서 양쪽을 양립양전(兩立兩全)시키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작용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생명 그 자체이게 하는 내재적 생명력으로서의 혼=넋과 그 외재적 타자의 동류(同類)의 생명력=혼=넋을 그 사이에서 맺고·잇고·살리는 작용입니다. 혼=넋은 개체내유(個体内有)의 생명력이고, 영=얼은 개체(생명)와 개체(생명) 사이에서 양쪽을 안고 넘어서는 생명력입니다.

네 번째 특징으로,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민독창(爲民獨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여민공창(與民共創)의 작용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전쟁 말기인 1944년에 [일본적 영성], 전후인 1946년에 [영성적 일본의 건설], 1947년에 [일본의 영성화]라는 영성 3부작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3부작을 가장 열정적으로 언급해 왔고 또 주목해 온 일본인이 바로 카마다 선생님이십니다.



종전 전후에 '영성 3부작'을 저술한 스즈키 다이세츠




카마다 토지 : 스즈키 다이세츠는 불교의 입장에서 일본적 영성을 파토스(情動)적인 방면으로 드러낸 것이 정토종이고, 지적 방면으로 발현시킨 것이 선불교라고 이해했습니다. 그에 반해 신도는 일본적 영성이 미숙하고 순수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8의 신도는 대단히 정치적으로, 종교적인 깊이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히라타신학(平田神學)은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나 제국주의와 연결되는 국학자(國學者)의 신도 이데올로기의 원류이자 원흉이라고 대단히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히라타 아츠타네의 정치사상과 연결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읽고 있었습니다만, 히 라타 아츠타네 속에 들어있는 오오모토교(大本教) 등으로 이어지는 영학적(靈學的)·영성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아츠타네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학적(靈學的)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론은 편협하고 부분적이며 일면적입니다. 히라다 아츠타네에 대한 스즈키다이세츠의 이해와 평가는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전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인의 재기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부활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의 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영성 3 부작을 발표한 그는 불교신자나 선수행자라는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의 우국지사의 입장에서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미래공창(未来共創)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절규하고 있었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깊은 공명을 느꼈습니다.

저의 관심은, 스즈키 다이세츠의 영성을 접근하는데 있어 일본국학(日本國學)이나 일본영학(日本靈學)의 의미파악 - 내부생명이나 생명의 내적 체험 - 에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근원적인 생명의 개신력(開新力)이라고 하는 한영학(한靈學)의 작용과의 ‘상관연동’이 가능한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으로부터의 탈출이지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카마쿠라불교(鎌倉佛敎)에서 일본적 영성의 시동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기독교 신비주의자로부터 ‘영성’이라는 말을 빌려서 일본화하여 사용했다는 점에 일본영학(日本靈學)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성적 일본’이란 생명적 개신력(開新力)에 의해 소생하는 일본이고, ‘일본의 영성화’는 일본인의 혼이 무위신앙(武威信仰=迷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자 평화일본의 건설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파악에서 생각해 보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불성’(佛性)이나 ‘신성’(神性)이 아닌 ‘영성’을 굳이 신생일본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영성’이라는 말에다 근본적 개신력으로서의 역동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국가가 그 개신적 생명력의 약동에 눈을 떠서 그것을 체인(體認)·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소생의 길을 열어 나가기를 기대했다는 것이 저 자신의 개인적인 독해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에 의해 나라가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와 일체화된 2,600년 간의 신도국가(神道國家)가 망했다고 - .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인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여 참담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왜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가 패전하기 1년 전에 쓴 [일본적 영성]을 카마다 토지 선생님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스즈키 다이세츠: 신도국가를 전면 부정, 카마다 토지: 자연생성력과 대지성을 평가


카마다 토지 : ‘일본적 영성’을 근거지우는 것으로 ‘장소적 논리’가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말로 하면 ‘대지성’(大地性)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커다란 역동으로, 거기에는 생태지(生態智)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자연’ 개념에는 쿠카이(空海. 774~835)9도 배운 자연지(自然智)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또 ‘스스로’와 ‘저절로’라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일본신화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섬이 소금이 저절로 응결되어 생긴 오노고로섬(淡路島)입니다. 그리고 건국신화에서는 남신(男神)인 이자나기와 여신(女神)인 이자나미가 성적 교합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말을 겁니다.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 일본의 섬들(大八洲=오오야시마)입니다. 바로 여기에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연생성력으로서 ‘무스히’(産靈)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낳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성’과 ‘저절로성’입니다.

이러한 무스히의 힘이나 자연생성력이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자연관이나 생명관 속에 생태지(生態智)로서 대단히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대지를 영성의 근거로 가장 소중히 여겨 온 일본인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대지를 빼앗은 것은 실로 ‘절대모순’이군요. 게다가 그들의 모국어인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식의 문화파괴에 손을 더럽히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 현인신(現人神)으로 군림하는 일본이라는 ‘자기’에 한반도 사람들을 ‘동일’화시키는(內鮮一體) 것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절대모순은 패전한 지 7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인에게는 사상철학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심각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이지(明治) 이후의 일본의 국가신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좌절되었습니다. 이 근대일본의 신도에는 과연 ‘영성’이 있었는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종래와는 다른 일본신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카마다 토지 :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도는 생태지를 핵심으로 하는 ‘자연신도’(自然神道)입니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의 신도의 핵심에 있는 것은 국가관리적인 ‘인위신도’(人爲神道)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신도’에서는 ‘무스히’를 포함해서 자연생성력이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이 분화하고 폭설을 내리고 태풍이 부는 자연의 활동 속에서 다양한 자연의 형성력이나 생성력이나 무스히의 힘을 느끼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삼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연신도이고, 그것을 위해서 신을 제사지내 왔습니다.


제 연구실에는 오오모토교(大本敎)의 교조인 데구치 나오(出口なお. 1836~1918)10의 [친필(お筆先)]이 있습니다. ‘동북의 금신’(艮の金神)11은 귀문(鬼門)의 신인데, 이 친필에는 용문(龍門)의 음악공주(音姫), 비의 신, 바람의 신, 스와(諏訪)12의 신, 폭풍(荒れ)의 신, 지진의 신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메이지시기에 쓰여진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신의 원형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국가신도’와는 다릅니다. 국가관리의 신도는 서구열강에 대항하는 강한 국민국가, 즉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견고하고 부국강병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저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된 문제의식은 종래의 신도적인 신성(神性)이나 불교적인 불성(佛性)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있었다고 독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작용으로서의 ‘영성’에 기대를 건 것은 아닐까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신도이든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이른바 기성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서 전쟁과 억압과 비리의 구(舊)일본의 파멸 위에 평화와 자유와 진리가 충만한 신(新)일본의 소생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 아닐까요? 그 마음이 이방인인 저에게도 울려 퍼집니다.




야마모토 쿄시 :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일본적 영성’의 ‘일본적’이라는 말입니다. 카마다 선생님은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는 ‘장소적 논리’가 있고, 그것은 결국 ‘대지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김태창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한인(韓人)의 독자적인 사상철학



김태창 : 저의 개인적인 체감적 견해를 말씀드리면, 먼저 건전하고 상생적인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 ‘일본적’ 영성과의 대비로 ‘한(桓·檀·韓)적’ 영성의 특성을 저 나름대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근저에는 탈(脫)장소·초(超)장소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상관연동태’(天地相關連動態)이자 ‘천연성’(天然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마다 선생님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의 대지성=자연성은 저의 정직한 감각에서 보면 지연성(地然性)=토지(土地)가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과 같은 정태(情態)입니다. 반면에 제가 체감하고 있는 천지상관연동태=천연성은 천지가 저절로 어우러지는 동태(動態)입니다. 그래서 지연(地然)으로서의 자연과 천연(天然)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저를 포함한 일본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군요.




김태창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한인(韓人)에는 일본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사상·철학·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로서의 한인을 외부에 실재하는 별도의 주체로 정당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은폐된 근대한일사, ‘청일전쟁’에서 동학군 대량학살



야마모토 쿄시 : 저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최시형의 행동과 사상철학을 앎으로써 한적 영성의 심오함과 보편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는 일본인이 깜짝 놀랄 만큼 가치있는 학문과 미래개신(開新)을 향한 공동 기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한살림운동 특집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일본 군국주의가 지금까지 청일전쟁과 한반도 식민지화를 진행한 진상을 99.9% 이상의 일본인이 모르고 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의 통치자에 의한 역사의 은폐와 왜곡이 있습니다. 청일전쟁 때 한반도에 대해서 왕궁침탈과 동학농민군 섬멸이 비밀리에 행해졌습니다. 그 진상은 [미래공창신문]에 자세하게 밝혀놓았습니다. 언젠가 교과서의 근대 일본사가 수정되겠지요.

먼저 일본인 자신이 역사의 진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에도시대의 일본인이 조선통신사를 대단히 존경하며 그 고도의 지식을 배웠듯이, 앞으로의 일본인도 ‘이질적인 타자’인 한인(韓人)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면 두 나라의 미래는 반드시 밝게 개신(開新)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단서의 하나가 되는 책으로 저는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모시는 사람들, 2014)13을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김태창 : 그렇습니까? 제가 아까 말씀 드린 것은 25년간의 일본생활에서 얻은 실감입니다. 사태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근본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야마모토 쿄시 : 실은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는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도 이해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스즈키 다이세츠가 영성삼부작에서 ‘영성’의 내실로서 다룬 것은 여래(如来)의 대비(大悲)이자 보살의 서원(誓願)입니다. 즉 스즈키 다이세츠는 어디까지나 대승불교에서 영성의 내용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대비’(大悲)나 ‘자비’(慈悲)나 ‘반야의 지혜’나 ‘불성’이나 ‘법성’(法性)과 같은 불교용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감성과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경애체인지(境涯體認知)로서 ‘영성’(=무분별지)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한 데에서 저는 국제인(國際人) 다이세츠의 탈일본화된 미래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까 카마다 선생님께서 히라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주로 인위적인 국가신도와는 다른 자연신도의 문맥에서 사용하였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카마다 토지 : 히라타 아츠타네의 생각은 상당히 복잡하고 여러 요소가 뒤섞여 있습니다. 메이지 이후의 흐름은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서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국가신도적인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도가 주자학과 하나가 되어 국가신학(國家神學)을 형성하고, 그것이 메이지헌법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 1871~1948) 등으로 계승되어 가는 영학(靈學)과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國男. 1875~1962)나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로 계승되어 가는 민속학과 같은, 보다 민간적이고 민중적인 방향의 신관(神觀)과 결부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히라타 아츠타네 내부에는 이른바 국가성과 민중성, 국가신도와 민중신도의 양극(兩極)이 있었던 것이지요.




야마모토 쿄시 :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는 원래 영성은 없다는 것이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장이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적 영성’을 굳이 히라타아츠타네 식으로 말한다면 어떤 것이 될까요?




카마다 토지 : 그것은 ‘일본인의 혼의 행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면은 ‘야마토혼(大和魂)이나 ’야마토정신(大和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신도적인 문맥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츠타네가 사사(師事)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시키지마(敷島)의 야마토정신(大和心)을 누가 물으면 아침해에 비쳐지는 산벚나무꽃"이라고 노래했고, 그 전의 카모노 마부치(賀茂真淵. 1697~1769) 등은 [만요슈(万葉集)]의 정신을 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히라타 아츠타네에 이르면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이전에 이미 원형적인 신화(原神話)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일본적 영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기(記紀)]14나 축문(祝詞)15은 그런 일본적 영성을 부분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근원적인 신화라고나 할까, 보다 심층에 있는 근원성이나 보편성을 ‘영성’에서 찾으려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이즈모(出雲)의 신(神)이 지니고 있는 힘, 즉 ‘카쿠리요’(幽世=저세상)의 영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진정으로 야마토정신이 완성되어 안심하기 위해서는 사후의 생존까지를 포함한 진혼(鎭魂)을 말하고, 그 혼의 행방을 내다본 상태에서 영성이라는 존재를 실감하는 삶의 방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라타신학(平田神學), 히라타신도(平田神道)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로 흘러들어간 것은 그런 혼의 세계에 대한 체험·체현·체득을 중시하였습니다. 즉 영학(靈學)의 방향이 히라타신학 속에 있는영성적 방향을 계승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피리츄얼리티의 한 요소로 카마다 선생님은 우주전체의 보편성을 포함한 ‘전체성’을 드셨습니다. 한편 스즈키 다이세츠는 1947년에 쓴 [일본의 영성화]에서 기기신화(記紀神話)의 우주생성 이야기에 대해 “보통의 논리 형성 및 과학적 사상 위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비합리성”, “원시민족의 망상담(妄想譚)”이라고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불교의 영성이 일본의 신도보다 도리로 보나 지향하는 방향으로 보나 뛰어나다는 전거로, 가령 <보현보살의 십원(十願)>을 의역(意訳)하여 “제불여래(諸佛如来)의 본체는 대비심(大悲心)이고, 이 대비(大悲)는 중생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다”고 하면서 그 숭고한 뜻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단지 모든 생명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살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산도 강도 돌도 흙도 별도 눈도 모두 일체중생이다. (중략) 비에도 꽃에도 산에도 구름에도 이 자비심을 비춰주는 것이 있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불교는 이러한 중생을 상대로 모든 공덕과 모든 혼을 거기로 회향(回向)하고, 그것에 따라서 함께 아뇩다라삼막삼보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바람은 무궁함을 지니고 있다, (중략) 제불여래는 하나같이 이 대비(大悲)를 체(體)로 하고 있다. 이 대비체(大悲體)가 곧 영성적 생활의 축을 이루는 것이다.” ([日本の靈性化], 法蔵館, 1947)




지금까지의 카마다 선생님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동학사상이 각성”



김태창 : 먼저 카마다 선생이 국가신도 혹은 인위신도(人爲神道)와는 다른 자연신도(自然神道)를 강조하고, 그 맥락에서 영성을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신 점에 저는 공통인식의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국학(國學)은 그것이 일본에서이건 한국에서이건, 내부결속을 위해서는 순기능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이나 문화의 벽을 넘어서 국가간·민족간·문화간의 대화·공동(共働)·개신(開新)을 실천하는 데에는 역기능적인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이라는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굳이 ‘한적’(韓的)이나 ‘한인’(韓人) 또는 ‘한민’(韓民)이라는 표현을 골라서 사용하였습니다. 국민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하나의 차원에 고정·폐쇄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일본인을 일본인이게 하는 원상(原像)으로서의 영성을 의미깊게 논구하기 위해서 신도적(神道的)·불교적 배경을 명시하려고 하는 카마다 선생과 야마모토 편집장의 의견을 성의를 담아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확인한 상태에서 굳이 ‘한적 영성’(=한인적·한민적 영성)에 대해서 좀 더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체험적 실감을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은 ‘이지안지’(以地安地=땅으로 땅을 편안하게 한다)적 생명력이고, ‘한적 영성’은 ‘이천벽지’(以天闢地=하늘로 땅을 연다)적 생명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대지를 모성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거기에서 무한한 포용성과 평화성과 평등성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한인(韓人)의 역사적 집합체험, 그리고 저의 개인적 체험의 핵심에는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대지를 빼앗기고, 생명과 생활과 생업의 토대로서의 토지를 뿌리째 뽑힌 “저주받은 대지의 백성”(Frantz Omar Fanon. 1925~1961)의 무의식이, ‘한’의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한(恨)’의 의식과 무의식의 형태로, 삶 속 가장 깊은 곳에 농축되어 있습니다. 대지야말로 실로 전란과 살육과 억압과 불평 등과 비리비도(非理非道)의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대지박탈의 실체험이 적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야마모토 쿄시 : 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일본인은 대지를 상실한 난민으로 세계에 흩어지게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은 싫더라도 대지를 빼앗긴 백성의 비참함을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현실의 일본은 일찍부터 원전 재가동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7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망국자멸의 길이지요. 바야흐로 지금은 생각있는 동아시아의 이웃나라 사람들과 연계해서 생명소생·활명(活命)연대 운동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기입니다.




김태창 : ‘한적 영성’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이 카마쿠라(鎌倉)시대의 정토교(浄土教), 특히 신란(親鸞) 등과 선불교에서 그 지적(知的)·정적(情的) 자각의 계기를 확인하는 것과 대비해서 보면, 한적 영성은 최제우나 최시형의 동학사상과 거기에서 촉발된 민중/농민 운동/투쟁에 의해 확실히 자각·각성·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면 ‘ 다시개벽’(再開闢)적 영성이자 ‘시천주’(侍天主)적 영성이자 ‘내유신령(内有神霊) 외유기화(外有氣化) ’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2023/09/15

“과거의 ‘주박’을 풀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 < 동양포럼 - 동양일보 2017

“과거의 ‘주박’을 풀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 < 동양포럼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동양포럼> “과거의 ‘주박’을 풀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7.07.09 

(동양일보)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제가 젊은 한 시절을 한국 충북도 청주시 개신동에 있는 충북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공동학습과정을 겪었습니다. 교수라는 의식을 의도적으로 버렸었습니다. 충북대학교의 소재지도 ‘개신(開新)’동이지만 충북대학교의 건학 이념도 ‘개신(開新=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학문은 개신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햇병아리 학문연구자일 때부터 새로운 미래를 열려고 하는 사람과 현재 국내·외 학회에서 일단 공인된 것을 재빨리 수용하고 번역해서 소개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자는 연구자라기보다는 수입업자로 본 거지요. 비록 몸과 마음이 식민지화·영토화되어 있더라도 영혼이 식민지화·영토화 되지 않는 상태라면 ‘개신개래’(開新開來=저 자신이 만들어낸 말인데 그 뜻은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엶으로서 지금은 없는 미래가 열린다)의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고 거기에 희망과 기대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까지 식민지화·영토화 되어 버리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거기서 탈출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화·영토화된 상태가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오사카대학(大阪大學) 준교수 
“정말 그렇습니다.”



▷김 주간
 “저는 일본의 국가공무원연수소에서 고급공무원에게 여러 번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연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종래의 ‘관주도의식’으로부터의 탈각과 ‘민관대화·공동·개신을 통한 사회변혁의식으로의 대전환’의 필요성과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반응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한마디로 관주도의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일본이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올바른 관주도의 성과이며 문제가 있다면 국민의 의식수준이 시대적·상황적 요청에 걸맞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문이었습니다. 국민은 어디까지 관주도에 의한 계몽·계도·계발의 대상이지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고구조가 관료조직의 기반이 되었고 근대국민구가 형성의 전과정을 통해서 정리·확립·강화 되다가 제2차세계대전후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전후 일본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는데 적지 않게 놀랬던 거지요. 이런 생각이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사회를 오염시켰고 일본사회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의 연원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자기들의 특권적 위상과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양심적인 관료는 자꾸 고립되고, 관료는 집단으로 ‘국민보다 우리 입장이 평온무사한 게 제일이야’라는 병에 걸려 있다는 인상입니다. 양심적인 관료 OB가 목소리를 높여 주었으면 합니다. 신문기자도 이빨 빠진 ‘조직인간’입니다. 관리된 지면을 버리고 큰 언론매체를 뛰쳐나와서 고군분투하는 진정한 저널리스트 중에서 일본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개신(開新)하는 인물이 나타나는 것을 기대합니다.”



▷김 주간 지금 후카오 선생이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면서 거기서 일중관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겠다고 애를 써온 것은 다름 아닌 미래공창의 실천궁행입니다. 일중 어느 쪽에도 너무 편향되거나 종속되지 않으면서 일중 간의 관계 개선을 민간 주도로 도모하고 계신거지요. 저는 대화모임에서 늘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이동하는 가운데서 생각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사이에서 생각한 것을 나라(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어느 나라든) 안에서 문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미래공창을 실현하려는 끝없는 여정을 거쳐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후카오 준교수‘사이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네요.”



▷김 주간 
“저는 여러 곳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통화를 거론해 왔지만 그것이 최종목표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개신개래=미래공창으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요. 미래공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영혼이 다시 무언가의 식민지·영토가 되고 맙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저는 ‘혼의 탈식민지화’를 거론할 때 반드시 동시에 생각해야 될 문제가 ‘미래공창(未來共創)’이라고 생각합니다. 탈식민지화된 혼은 ‘혼의 빈 껍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열고 자유로워진 혼은 어린 아이와 같이 편견이나 선입견 등으로부터 해방되고 있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김 주간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 영혼이란 어떤 의미에서 일체의 과거에 의한 주박·결박·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영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가 거의 없고 미래만이 풍부한 어린아이의 영혼과 같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를 만든다는 생각처럼 반생명적이고 식민지화적·영토화적인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부모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부모 멋대로 아이를 지배·통제·규정하려고 합니다. 말로는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한다면서도 부모 뜻에 맞추어서 인간형성을 꾀하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오사카대학(大阪大學) 준교수

▷후카오 준교수
 “그런 감각으로 육아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요.”



▷김 주간 
“저는 그런 사고와 행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의 근본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식민지나 영토가 아닙니다. 아이는 독자적인 생명가치를 지니고 부모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의 파트너입니다. 그와 같은 인식과 실천을 일상생활화 하는 것이 최우선의 긴급과제입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노르웨이의 오슬로대학에서 열린 세계미래학 대화집회에서 ‘미래는 현재의 영토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격렬한 논의의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합의점은 미래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생크추어리(성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래세대는 현재세대의 식민지·영토가 아니라 함부로 사유화해서는 안 되는 성역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과 실천의 근본전환이야말로 세대간 공정윤리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식화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부모 세대의 근본적 책무가 아니겠습니까?”



▷후카오 준교수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은 곧잘 쓰이고 있지만 그 뜻을 잘 알고 쓰고 있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김 주간 
“‘부모의 책임’이라는 이면에 오히려 부모의 지배력이나 통제력을 강화시킴으로서 부모의 식민지·영토로 만드는 데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부모로서는 자식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해주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이 아니라 부모가 자기 뜻대로 강행하는 미래 독창에 지나지 않아 아이의 입장에서는 넘어야할 장벽에 불과하다는 점에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저는 한국의 충북도 교육청 간부 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한마디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공동 학습이라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고 그 공동 학습의 핵심과제는 세대 간 미래공창을 가능케 하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제대로 이루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를 체계적으로 성취시켜온 교육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주축으로 하는 공동학습으로의 대전환을 호소했던 거지요.”



▷후카오 준교수 
“그런 공동학습의 자리가 계속 마련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주간 
“공감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통인식이 형성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끈질긴 대화가 필요하겠지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은 훈련일지는 모르나 공동 학습은 아닙니다.”



▷후카오 준교수 
“시키는 대로 하는 교육이 아직도 학교교육의 주류를 이르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당장에 이단으로 몰리니까 사태개선이 어렵습니다.”



▷김 주간 
“우선 누군가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 뜻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다른 사람─특히 젊은 학생들─에게 거의 강제적으로 따라오도록 하는 교육강제=훈육으로부터 미래를 모두 함께하는 대화·공동·개신을 통해서 열어나간다는 사고와 행위를 진작시키는 쪽으로의 근본전환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도 누군가가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공동학습자가 되고 상호실천자가 되는 공동체험·체득·체인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후카오 준교수
 “저도 함께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주간 
“후카오 선생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후카오 준교수
 “우리 어머니는 1935년에 하얼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일본군에 투항한 봉천감옥(奉天監獄)의 수감자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3세 때에 아마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수감된 중국인들을 731부대에 보내는 자리에 계셨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를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1938년 무렵에 일본에 귀국했습니다. 어머니는 잔류고아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몸소 겪은 원초적 경험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심적 상처를 입은 듯싶습니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 행위를 빈번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대단히 고생했습니다. 저의 친아버지는 39세 때에 자살하셨습니다. 그 진상도 전연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고뇌와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와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재혼해서 저를 매우 애지중지 키워주신 의붓아버지는 신체허약의 철학자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언제나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도움을 받기 위해 재혼한 남편이 병약했으니까 ‘이럴 수가’라는 마음이 계셨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을 잡고 극도로 핍박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른은 왜 그렇게 되는 걸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39세가 되던 무렵, 저도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틀렸다’고 비관하다가 폐렴에 걸렸을 바로 그 때, ‘여기서 비명에 죽게 될 바에야 차라리 무언가 새로운 행동을 해야겠다’고 해서 생각해낸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엄청난 싸움을 벌이게 되었지만 지금은 간신히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으면 그토록 고생도 안 했겠지만 그런 고통의 과정이 없었으면 이런 연구를 계속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어머님의 입장에서 보면 공격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후카오 준교수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사흘에 한 번씩은 폭발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온화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마음을 열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김 주간 
“도쿄대학의 니시히라 타다시(西平直) 교수가 교토포럼에서 ‘세대계승’에 대해 말하는 문맥에서 바로 어머니에 의한 병리의 발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위 ‘모인병(母因病)’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해방시켜주지 않고 자기에게 철저하게 종속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심해서 아이의 독립을 극심하게 저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하는 ‘영토화·식민지화’는 다름 아닌 어머니에 의해서 강행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후카오 준교수
 “그렇습니다. 절대선으로서의 어머니상의 신화와는 어긋나는 현상들입니다.”



▷김 주간
 “남자아이는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먼저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고 거기서 자기 형성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기억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이 인간의 성숙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별로 말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최근 저는 우리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물론, 키우고 있는 고양이나 개에 대해서도 그들의 자립을 저해하게 되지 않나 하고 극력 명심하고 있습니다.”



▷김 주간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 있을 때는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학자와 여러 사람들과 사귀고 더러 그 가정에도 초대받아 가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거기서 느끼게 된 것은 특히 일본의 어머니 가운데는 아이를 아유화(我有化)하고 자기 영역 안에 가두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도 어머니의 힘이 강해서 어머니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끝내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고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경우에 더 심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흔히 듣게 되었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그런 경향을 두고 ‘자기중심’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아이가 끝내 자기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어머니의 명령이 귀에 들려와서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경향을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느낍니다.”



▷김 주간
 “모인병적인 현상은 어머니에게 한정되지 않습니다. 인간보다 국가나 국토에 관련해서도 때로는 모인병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국가나 국토가 모든 것을 흡입 용해시키는 강력한 인력으로 작용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국가, 한반도라는 국토, 태어나서 자란 향토에 밀착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거부해 왔습니다. 그래서 니시다 기타로의 장소의 철학에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이라는 땅에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미국이나 일본이라는 땅에도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땅이나 땅에 묶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노마드(유목민)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땅에 묻지 말고 하늘에 뿌려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성신은 토지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지모신(大地母神)의 신화 같은 것도 그 예에 속하지요. 그러나 남성신은 바람이나 불꽃이나 벼락처럼 땅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저 자신도 남성신을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땅에 묻혀서 흙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하늘로 올라가서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은 겁니다.”



▷후카오 준교수 
“그러네요.”



▷김 주간
 “종교의 측면에 눈을 돌려도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불교는 결국 땅의 종교인데 반해서 기독교는 하늘의 종교라는 양자의 특성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땅에 밀착해서 토지와 친밀한 관계를 강화하는데서 입명안심을 모색하느냐 아니면 토지와의 관계를 끊는 데서 새로운 생명의 차원·지평·세계를 개신하느냐에 근본적인 지향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어느 땅에도 속박되지 않는 까닭에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나 불안하고 표류하며 방랑하는 사막민들이 발견한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요. 거기서 길러진 본래적인 비정주(非定住)·비안주적(非安住的)인 생활습관은 어떤 의미에서 온갖 식민지화·영토화에 대한 내성(耐性)을 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교회의 형태로 발전하고 나서는 이단 배제·말살의 독선적인 조직 종교가 되고 거기서 절대 진리에 의해 모든 인간의 영혼을 영토화·식민지화시키기를 지향하는 일대 신앙자제국(信仰者帝國)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만 본래의 예수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당시의 종교권력으로부터 개개인의 영혼을 탈식민지화·탈영토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민중해방운동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결코 어느 편이 좋거나 옳고 어느 편이 나쁘고 그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과 땅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의 양쪽이 있고 양쪽의 삶을 잘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분이 조치대학(上智大學)의 미야모토 히사오(宮本久雄: 현 도쿄준신대학(東京純心大學) 교수)입니다. 그분은 저를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같은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땅에 안주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서 “지금 있는 그 장소를 떠나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쪽으로 가라”라는 명령에 호응해서 아무 미련도 없이 정착해온 땅을 떠나 미지의 타향으로 이동하면서 한평생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일이 아브라함의 삶이자 보람이었습니다. 고향 땅에서 안주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늘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도 있는 것입니다. 절대다수의 일본인이 정주형(定住型)인데 비해 저는 외래의 이주형(移住型)의 인간이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 점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후카오 준교수
 “계속적인 이동을 통해서 상대성에 대한 의식을 예민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 자신은 지금도 태어난 장소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초안주형(超安住型)의 인간입니다. 그 안에서 어머니와의 싸움이 있고, 그 위화감을 지렛대로 삼고 어떻게든 거기서 이탈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한편에서는 강하게 이동을 희구(希求)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한곳에 뿌리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 자신이 안고 있는 모순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한곳에 계속 머물고 있으면 이동을 거부하고 한곳에 밀착하는 경향이 상화되는 게 분명합니다. 특히 일본사회의 공동체적 주박은 정말로 숨쉬기조차 곤란한 지경입니다.”



▷김 주간
 “교토포럼 관계로 독일을 자주 드나들었을 때 자주 ‘하이마트로지히카이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향상실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사람은 고향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을 때보다 고향에 있으면서 고향이 고향 같지 않게 느껴지는 고향 상실감이 훨씬 심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후카오 선생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나 라는 느낌이 듭니다.”



▷후카오 준교수
 “저는 그런 경향이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김 주간 
“저는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주로 공공철학 대화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의 오사카와 한국의 청주 사이를 왕래하면서 새로운 인문학 대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청주는 저의 고향이기도 한데 전혀 고향이라는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주 낯선 타향=신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오히려 거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동학 운동을 일으킨 최제우(崔濟愚)는 태어난 고향을 한 번 떠나서 여러 곳을 방황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배척당하고 도무지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향땅을 버리고 낯선 타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짧기는 해도 농도 짙은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도 그렇고 무함마드도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마모토 편집장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을 해서 엘리트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국가시험을 돌파해서 국가공무원이 되고, 동료와의 격렬한 경쟁도 이겨내면서 중요한 벼슬을 손에 넣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안정된 지위와 많은 수입을 보장받고 장래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세속적인 성공을 가지고 ‘이것이 골(Goal)이다’라고 여긴 순간, 그 사람은 미래공창의 저해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 자기 양심에 비춘 사회 변혁에 대한 용기 있는 행동에는 무관심하고, 자기 일신의 안전과 더 입신출세하는 것에만 눈이 향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의 생명에너지가 전개(全開)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후카오 준교수 
“그렇습니다. 원전 관계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김 주간 
“모두 다 자각 없이 근원적인 생명에너지를 죽이고 있는 거지요.”



▷후카오 준교수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는 이미 죽었어!(웃음)’. 죽어버리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겠지요.”



▷김 주간
 “일본인 지식인 가운데는 일본을 기본적으로 모성 사회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인간을 포함해서─을 포용해서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후카오 준교수 
“포용한다기보다 포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관계’의 울안에 갇혀버립니다. 국외자나 이방인은 철저하게 격리 차별합니다. 중국도 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만 길거리나 마을 안에서 모르는 타자와 우발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회화를 나누거나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서로 돕는 일이 의외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일본에서는 일일이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부터 물어야 됩니다. 어설프게 말을 걸으면 곧 ‘이 사람은 수상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일일이 상대에게 신경을 쓰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중국에 가면 그러한 면은 굉장히 자유롭고, 정말로 호흡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가 지적했듯이 일본인은 ‘장소의 공기’를 눈치 채고 그것에 맞추는 것이 행동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대화보다 무언(無言)의 ‘동화(同化)’ 압력이 강합니다. 동화할 수 없으면 ‘KY’(kuki o yomenai: ‘공기를 못 읽다’ 즉 분위기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로 간주되고 소외당하게 됩니다. 정의나 도리를 열성적으로 말하면 금방 ‘너무 시비를 가려서 시끄럽다’고 해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후카오 준교수
“‘도리’를 느끼고 그것에 공명해서 움직이는 것도 별로 없어요. 중국의 시골에서는 ‘도리’에 맞는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일본에서는 ‘도리’ 감각이 희박해서 묵묵 무반응입니다. 김 선생님계서도 여러 번 겪어서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일본에서는 도리라는 게 따로 없고 그저 관(官)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이 도리입니다. 말하자면 공(公)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관이 주도하는 공과 다른 민 주도의 공공을 따로 떼어서 그것을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서 개신했던 것이 도쿄대학출판회에서 간행된 시리즈 <공공철학> (총 20권)을 통해서 김태창 선생이 역설하셨던 공공성과 다른 ‘공공하다’의 중요한 뜻이 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공하는 도리를 생각하고 논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시킴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대화적·공동적·개신적 실천이 ‘미래공창(未來共創)’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분석이나 평가가 아닙니다. 미래 개신(開新)에의 꿈, 희망, 행동입니다. 지사(志士)들에 의한 도쿠가와 막부의 타도와 메이지유신이야말로 ‘미래공창’이 아닌가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일본은 주로 초슈벌(長州閥·현 야마구치현 출신자들)에 의해 사물화(私物化)된 국가였습니다. 한국을 식민지화시키고, 대륙 침략을 추진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급기야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패전하고 망국의 비극을 스스로가 초래했습니다. 일찍이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렸던 대동아공영권이나 팔굉일우의 구상들은 모두 일부의 광신적인 일본지상주의자들의 미래독창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의 생명이 상실되었고 훨씬 더 많은 한국민과 중국인의 생명이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영혼마저 식민지화되고 영토화되었는데 그것이 가져온 부메랑효과인지 알게 모르게 일본인의 영혼도 타자에게 씌웠던 식민지화·영토화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는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인의 경우 일본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대륙적인 규모의 크기, 너그러움, 공감력, 다원성, 포용력, 등등의 자질이 느껴집니다. 일본의 ‘동’(同: 공기를 읽기, 분위기를 눈치 채기)적인 기질이 ‘화(和)’로 변할 때에는 서로를 어울리게 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서로의 장점을 서로 살리는 관계가 되면 여기서부터 한중일간 평화상태가 세계평화 구축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지요.”



▷후카오 준교수 
“최근의 일본인 학생들은 대만에는 가지만 중국에는 안 가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좋은 인연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 주간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 가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일본인 은 절대적 소수자인 것 같습니다.”



▷후카오 준교수
 “일본인 가운데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런 말의 진의를 수상하게 여기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폄하·왜곡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학생에게서도 느끼는 일입니다만 굉장히 완고한 장벽이 있고 그것을 깨부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 일본사회의 폐색상태를 어떻게 해보고 싶습니다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모두 눈을 떴을 덴데도 일본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 채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는 절망적입니다.”



▷김 주간
 “후카오 선생이 보시기에 인간의 영혼이 식민지화 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태는 어떤 것입니까?”



▷후카오 준교수
 “생각과 행동이 고착화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식민지적 사고를 근본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인에게는 친밀한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예속되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조직이 사람(사원)을 통째로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오직 그곳에서의 보신(保身)만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 이외의 일들은 그저 기분전환 정도로 조금씩 일시적으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안정과 성공을 이루기 위한 전술이 모두 식민지화의 방향으로만 고정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도 정해진 길에서 빗나간 생각을 하지 않게끔 철저하게 규제하고 오로지 조직의 명령에 순응하는 사람만을 대량 재생산하는 데에 있습니다. 학교의 클럽 활동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보니까 클럽 활동이라는 것도 모두 영혼을 식민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죽어도 거기에 매달려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주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 상태로 회사에도 들어가고 또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반의 구석구석에도 그런 사고가 들어가 있는 거지요. 일본인의 삶은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집으로 오가는 가운데 술집에서 잠깐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서 자고 또다시 회사에 나가는 식의 고정된 왕복입니다. 지역사회와 직장만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왜 ‘사이’ 라는 것이 없는 걸까요? 다른 연령층이나 다른 업종의 다양한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계기도 동기도 시간도 없습니다. 중국의 길거리나 공원에는 다양한 모임이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다름 아닌 노예 공동체군요. 노예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중 속에 섞어서 남과 똑같이 하면서 그런대로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후카오 준교수
 “그래서 흔히 조직인간 타령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결국 그것은 자기 자신의 노예근성을 ‘과시’하는 도착된 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인간’은 꼭대기에 서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연기력에 묘한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강자에 대한 굴종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방향을 약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후카오 준교수와 김태창 선생의 문제관심의 공통점을 전제로 하고 대화를 전개해 왔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차이점을 의도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을 확실하게 밝혀두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태창 선생께서 후카오 선생의 저서와 논문들,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다른 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어 보시고 나서 어떤 차이점에 주목하셨는지부터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주간 
“첫째로 직감하게 된 차이는 ‘혼’과 ‘영혼’의 차이입니다. 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는 일관해서 혼과 영을 구분해서 논의를 전개해 왔습니다. 누구의 이론이나 학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직접 체험·경험·증험·효험해온 결과 혼은 개체생명력=에너지로, 그리고 영은 개체생명(체)과 개체생명(체)과의 사이·개체생명(체)과 우주생명과의 사이로부터 국가간·민족간·문화간·종교간 등등 다차원적인 ‘사이’에 작동하는 상관연동적·상호매개적인 근원적 생명력=에너지로 나누어서 파악·이해·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후카오 선생을 비롯한 일본 측의 지식인들은 개인중심의 논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경향과는 달리 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관심은 주로 국가간·민족간·문화간 그리고 개인간 등등 다차원의 사이들에서 일어나는 영(靈)과 개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魂)’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를 동시에 공구공론(共究共論)하는데 역점이 주어져 있습니다. 

둘째로 ‘혼의 탈식민지화’(후카오)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김)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공통점을 함께 지니고 있으면서도 ‘영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것이 ‘혼의 탈식민화’ 논의에는 없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혼은 개체 내에서 작동하는 독자적 생명에너지라고 하면 영은 개체간·집단간에서 작동하는 관계 형성적 생명에너지라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체험학습에서 얻은 소견입니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내적 생명에너지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이고 개인간·집단간의 생명에너지가 식민지화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동시 병행적으로 성취시킨다는 것이 영혼의 탈식민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식민지화와 영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한 저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체득·체인의 귀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양쪽이 똑같이 개인·민족·국가·문화 등등의 자주성·자립성을 박탈당하고 상실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차이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차이는 식민지화는 명백한 의식을 동반한 가시적 자주성 박탈이고 영토화는 자각증상이 결여된 비가시적 자립성 상실입니다. 대일본제국에 의한 자주성 박탈은 분명한 의식을 동반한 채로 당한 것이고 영토화는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에 의해서 우리 나름의 문화적·의식적 자립성이 상실되고 과잉 종속성이 현저하게 강화되는데도 그것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는 경향이 그냥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그렇다면 오는 8월 13~15일에 개최 예정인 한·일 철학·문학 대화에서는 조명희(趙明熙·1894~1938)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 루쉰(魯迅·1881~1936)을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관점에서 상호 비교·검토해보겠다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우선 어떤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전혀 예상 못하거나 안하실 심산이십니까?”



▷김 주간 
“대회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고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무례한 것 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의 개인적인 예감만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이 한국을 영과 혼이라는 양면에서 식민지화를 이루려고 하는 가운데서 일본인과 일본 사회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토화되어가고 있다는 모순적 상황을 개탄했고 
뤼쉰은 분명하게 식민지화된 영과 혼의 비참한 인간상을 다양한 형태로 소상하게 묘사했으며 

조명희는 글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로 영혼이 철저하게 식민지화 되는 과정을 실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조명희가 가장 뚜렷하게, 루쉰이 그 다음으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에는 어떤가?라는 것이 논점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한국은 완전히, 중국은 반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에 있었던데 비해서 일본은 가까스로 서양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대표적인 문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기본적인 시대인식과 상황인식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어떤 논의가 전개되고, 어떤 공통인식이 도출될지, 안될지 주최자인 저 자신도 궁금합니다.”



▷야마모토 편집장
 “그러면 이것으로 두 분의 대화를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정리 박장미·야규 마코토 원광대 연구원>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共創) 2017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共創)

by소걸음Jan 18. 2018
https://brunch.co.kr/@sichunju/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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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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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주 : 이 글은 2017년 8월 14~16일에 동양포럼 주최로 열린 한·중·일 철학·문학 대화를 위한 사전의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그해 3월 1일 오후 일본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에 있는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선생의 자택에서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의 사회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과 후카오 선생이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이라는 주제로 나눈 대화 내용을 미래공창신문 재외기자 겸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소 연구원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가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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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
김태창 : 동양포럼 주간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 오사카대학 준교수
시간 : 2017년 3월 1일
장소 :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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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의미에서의 혼의 해방을 위한 시론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보통 ‘식민지화’라고 하면 근대 이후 서양 열강에 의한 인간의 생명과 재산 및 여러 권리들을 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이번은 <혼의 탈식민지화> 총서를 내시고 전문분야 횡단적으로 연구와 언론 활동을 하고 계시는 후카오 요코 오사카대학 준교수와, 공공하는 철학의 시각에서 ‘동아시아에 있어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중심 의제로 한 대화 활동을 계속해 오신 김태창 선생과의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저의 생각이 있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 한국에서 오늘(3월 1일)은 1919년에 조국의 자주독립을 전세계에 선언하고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강력 규탄하기 위해서 남녀노소가 총궐기했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3.1절이라고 부르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후의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포함해서 98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인적·집단적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 상황에서의 탈출과 참된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틀림없이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정치적·법률적인 의미에서는 자주독립 주권국가의 지위를 되찾았는데도 불구하고 철학적·사상적·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말끔히 탈식민지화되고 탈영토화된 영혼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多樣)·다원(多元)·다층(多層)의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주제로 삼은 대화 집회를여러 번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어딘가 미흡한 성과밖에 올리지 못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차에 우연히 후카오 선생의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책과 그에 관련된 몇 권의 총서들을 읽게 되었고 몇 가지 절실하게 체감한 바가 있어서 우선 한중일의 관심 공유자들에 의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서 진지한 공구공론(共究共論)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고 한·중·일 삼국간의 바람직한 미래를 함께 열어 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오사카대학(大阪大學) 준교수 : ‘혼의 식민지화’라는 의미에서는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김태창 선생님의 문제 관심이군요.




김태창 : 그런 생각을 생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올해 광복절(8월 15일)을 끼어서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주제로 한중일의 학자·연구자·학생들에 의한지역간·세대간·남녀간 대화의 광장을 제가 주재하는 동양포럼에서 개최하려고 합니다.



후카오 요코 : 아주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한·중·일에서 각각 한 명씩 국민 작가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문학자를 뽑아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비교 검토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 문제는 철학이나 사상보다는 문학에서 더 잘 다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단계로 한국의 조명희(趙明熙),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그리고 중국의 루쉰(魯迅)을 새로 조명해 보려는 것입니다. 세 명 모두 압도적인 문명력(文明力)을 가지고 쳐들어오는 서양 중심의 근대화라는 이름의 격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자민족과 자국민의 영혼이 식민지화·영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점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의 관심은 한국·한국민이 대일본제국부터의 정치적·법률적인 의미에서 탈식민지화·탈영토화는 달성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후의 경과를 보면 중앙(서울)에 의한 지방의·현재세대에 의한 장래세대의·남성에 의한 여성의 재식민지화·재영토화라는 사태가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정치·문화·의식적인 의미에서는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에 의한 영토화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감과, 그것에 대해서 사상적·철학적으로 어떻게 대응·대결·대처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다차원적인 식민지 근성과 영토민적 기질의 발본색원을 시도하는 것이 긴급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의미에서 영혼이 자유롭게 된 상태에서만이 한중일의 바람직한 미래를 서로·함께·치우침 없이 창발(創發)시킨다는 목표가 실현가능하게 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중·일이 각각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의 과정을 제대로 겪어내는 것이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는 경험칙(經驗則)을 체득했는데 이것을 다시 증험하고 싶다는 것이 저 자신의 입장입니다. 저의 체험·경험·증험·효험의 결과에 바탕을 둔 신념의 재확인입니다.

진정한 미래공창의 원동력은 정말로 자유로운 영혼 간의 영통(靈通)·영향(靈響)·영화(靈和)를 통해야만 온전하게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하면 한중일 각각이 현실적인 현상 면에서는 각양각색이지만 근원적인 면에서는 공통적으로 영혼이 과거에 형성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중일이 아직도 상호경계와 적대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을 충분히 감안하고서도 영혼이 과거의 주박으로부터 충분히 해방되지 않는 채로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후카오 요코 :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아시아는 교묘하게 분단되고 있습니다. 그 분단에 일본인도 중국인도 모두 놀아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듯 쉽사리 몸과 마음과 넋이 통째로 얽매이게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만 김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야마모토 교시 : 야스토미 아유무(安冨步) 도쿄대학 교수와 후카오 선생이 함께 쓰신 ‘<총서: 혼의 탈식민지화>의 간행사’에서 “신체에 의해 실현되는 운동을 ‘혼’이라고 부른다”고 쓰셨습니다. 많은 것을 간결하게 표현한 이 한마디에 어떠한 의미를 담으신 것입니까? “혼”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혼은 몸과 맘과 뜻을 균형 있게 아우르고 조화롭게 하는 근원적 생명력


후카오 요코 : ‘혼’과 ‘마음’을 엄밀하게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감정과 마음은 이차적으로 만들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국주의”가 계속 주입되면 피가 끓고 충성심이 환기되곤 합니다.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되기 십상입니다만 실은 머리에 입력된 것에 의해서 용이하게 조작되는 면이 있습니다. 마음은 신체의 위쪽에 있고 혼은 명치 가까이에 있으며 혼은 존재의 본질이나 전체성과 직결되고 신체에 깃드는 중심이라고 느낍니다.

혼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신체성(身體性)을 가진 생명의 움직임의 역동성을 물심양면에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정된 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깥세상과 항상 교류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근원이 되는 혼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신체에 의해서 실현되는 운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 개개인을 생각하면 국가 레벨의 식민지화라는 문제 이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나 어른들에게 양육되고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와서 여러 가지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것을 몸에 지니게 됩니다. 때로는 신체적으로 몹시 위화감을 느끼는 것조차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를 거기에 억지로 맞추게 됩니다. 그것은 “목표”가 되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이기도 합니다만 바로 그러한 것이 성장 과정 속에 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박(呪縛)”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그것을 주입시킨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져도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주박하고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 주박을 없애려고 해도 ‘이것이 없으면 나는 끝장이다. 절대로 놓을 수 없다’라는 확신이 자리 잡게 되기 때문에 좀처럼 없앨 수 없습니다. 이 주박이야말로 언젠가는 인간 사회를 죽음으로 몰아놓는 작용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에서는 주박의 연쇄가 겹겹이 쌓이고 있습니다. ‘전쟁’의 기억이 다양한 주박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그것을 망각하려 하고 더욱 견고한 뚜껑 밑에 봉인하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혼은 그것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텐데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밀봉당해 버리면 거기서 벗어나가기는 매우 어려워집니다.




김태창 : 이러한 경우의 ‘혼’이란 어떤 것입니까? 저의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혼이란 개개인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몸과 맘과 뜻을 균형 있게 아우르고 조화롭게 기능하도록 받쳐주는 근원적 생명력=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후카오 요코 :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저는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야말로 근본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름 아닌 반생명·생명파괴·생명부정의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영혼이란 우주생명과 개체생명의 상관연동태인데 그것은 절대로 식민지화·영토화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성역인데 감히 그것을 지배·통제·주박하려는 참월이요 참람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서 온 생명의 참모습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경우에는 혼의 식민지화가 어떤 현상으로 나타납니까?




후카오 요코 : 저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보면서 해설해 보았습니다. 여러 물건으로 무장한 인간의 혼이 그 무장을 잇달아 벗어가는 과정이 멋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울의 성은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몸에 걸친 보기 흉한 성입니다만 마법이 풀리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널빤지 한 장만이 남게 됩니다. 최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까지 가지 않으면 ‘탈식민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그러한 혼의 탈식민지화 과정을 한 번 경험한 줄로 알았습니다만 실제로는 거기서부터 또 수십 년간 다른 잡동사니들을 몸에 걸치고 그것들에 얽매어 왔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한 번 더 그것(혼을 뒤덮은 잡동사니)을 없애야 되겠는데 한편으로는 ‘이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다’는 고착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그것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김태창 : 말씀을 들어보니까 제가 실제로 체험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재식민지화·재영토화와 재탈식민지화·재탈영토화가 끝도 없이 반복되는 계속적인 과정과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후카오 요코 : 말씀하신 대로 일단 혼의 탈식민지화가 이루어졌는가 싶으면 또다시 혼의 식민지화가 잠입하게 됩니다. 정말 큰 고통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것들을 정말 힘겹게 뛰어넘어 왔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몹시 괴로워하셨을 때는 아직 식민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습니까?




후카오 요코 : 머리로는 ‘이것이 원인이다’라고 알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몸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것입니다.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계속 자문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 번 자기가 있는 자리를 떠나 보라’라는 말을 듣고 관동(關東) 지방의 병원에 1주일 정도 스트레스 입원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주어져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마주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금방 불안정해졌는데 ‘그렇게 불안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일단 안정시키고 나서 한 가지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학습을 하게 된 것이 50세를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소아(小我)의 혼은 대아(大我)와의 관계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립



야마모토 교시 : 스트레스 입원으로 ‘학습’을 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의학적인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후카오 요코 : 그런 건 아닙니다. 입원이라고 말은 해도 실제로는 별달리 한 것이 없습니다. 그냥 병원에서 세 끼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서 자기의 정신과 마주 대하고 ‘자기 혼자서 편히 쉬라’라는 지시를 받은 것뿐입니다. 약도 안 먹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에게는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일상의 시간과 정신을 다 써 버리고 있었습니다. ‘저 혼자서 편히 쉬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한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은 해도 제몸은 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편해진 몸에 의식을 돌리고 자기 안에 잠재했던 에너지를 돌릴 수 있게 되었음을 확인하면서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지난달의 일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혼의 탈식민지화’는 ‘혼의 독립’과 동시 진행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혼의 독립’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후카오 요코 : 강한 혼을 저도 동경합니다. 하지만 저처럼 투구와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하고 몸도 굳어져 있는 상태로는 ‘독립한 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몸에 걸친 잡동사니를 벗어던진 혼이 자기 내면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재생산되어가는 데에 아마도 ‘독립한 혼’의 참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야 겨우 일어서서 재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게 된 상태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그것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에서 앞으로는 ‘자기본위로 간다’고 말한 것과 같은 일종의 의식 전환과는 다른 것입니까?




후카오 요코 :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세키가 혼의 탈식민지화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루쉰(魯迅)은 어땠는지 매우 흥미로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혼을 둘러싼 사회생태학’이라고 부르는데 물질적·물리적으로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작동함으로써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항상 열려 있어서 외계와 소통함으로써 산다는 것이 성립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과 ‘혼의 독립’이 일치한 상태에서 스스로 경계를 짓고 경계 바깥의 것을 배제한다는 것은 걸맞지 않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외계와 혼 사이를 차단하던 뚜껑이 열려서 혼이 바깥세상의 공기를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게 되셨군요.




후카오 요코 : 자신이 항상 ‘이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외부에 실은 우리를 성립하게 해주는 소통작용이 널리 파급되고 있는 거지요. 그것은 아마도 우주에 퍼져 있는 연기(緣起)와도 같은 것인데 그 안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살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혼은 틀림없이 독립하고 있지만 그 독립이라는 것은 우주적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한 독립입니다. 불교사상에서는 그것을 ‘대아(大我)’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혼의 탈식민지화를 함께 생각하는 친구가 최근에 마침내 그 “대아”의 경지를 획득하게 되었다고 말했었는데 저도 빨리 그런 경지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충실하게 산다’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혼의 소리’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후카오 요코 :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만 그것은 동시에 달성하기 아주 힘든 과제이기도 합니다.




김태창 : 하지만 바로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평상시에는 혼의 소리가 들리지도 않거니와 혼의 소리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는 사이에 부지불식간에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혼은 늘 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을 알아듣는 귀가 없거나 혹은 들리는데도 일부로 안 들리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요?




후카오 요코 : 오히려 혼의 절규를 차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김태창 : “‘혼의 소리’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후카오 요코 : 여러 형태의 병적인 거부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제 경우에는 ‘혼의 부조(不調)의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여기에 갇히고 있다”라는 신호가 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혼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그것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혼이 아무리 신음소리를 내고 있어도 태연하고 멀쩡합니다.

임무를 잘 수행해서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 관료기구 안에서 기계와 같이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혼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책에서는 ‘혼의 식민지화’가 그릇 속에 뚜껑이 꽉 덮여진 채로 갇혀진 혼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인격이 아니라 여러 모로 위장된 인격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후카오 요코 : 그렇습니다.




김태창 : 지금 일본에서는 소위 혼론(魂論) 또는 영성론(靈性論)이라는 것이 여러 분야에서 유행하고 몇몇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일본적 영성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음에는 여러 층이 있는데 가장 깊은 층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혼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혼은 마음과는 서로 분리시킬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에게는 마음이란 결국 의식이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이성 또는 지성+감성 또는 감정+의지로 파악되어 왔는데 비해서, 혼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받치고 있는 보다 깊고 보다 근원적인 생명력=에너지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해두고 싶은 것은 대다수의 일본인 전문가들이 혼을 마음과 같은 것으로 보는 데 반해서 저는 혼은 마음과는 다른 생명력=에너지로 파악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영과 혼을 혼용하는 경향이 한일 양국에 유행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저 자신은 영을 우주적 생명력=에너지로, 그리고 혼을 개체적 생명력=에너지로 구분해서 그 두 가지 생명력=에너지의 상관연동태로 영혼을 새로 밝힌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태창 : 갓 태어난 아이는 식민지화·영토화 이전의 영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가정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어떤 틀에 맞추려고 하지만 아이는 그냥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 자기 나름의 생명력의 발휘를 방해하는 자에 대해서 강렬하게 반항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부모야말로 아이의 영혼을 식민지화·영토화시키는 첫 번째 가해자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생명력의 발동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도처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속박·구속·제약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적나라한 생명력의 발동을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타자)이 거기에 함께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약육강식의 수라장이 되고 강자가 자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약자를 마구 짓밟게 되는 야만상태를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존의 규칙으로 법률이나 예의나 윤리도덕이 만들어지고 적나라한 생명력을 어느 정도 조정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사회나 국가의 기본질서라는 것이 없을 수 없는 조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억제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나치면 아이의 생명력을 쇠퇴시키게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적정화·적절화·시중화(時中化)하느냐가 모든 사회에 있어서 기본과제입니다만 현재 상황은 억제가 너무 심해서 젊은이들이 생명력을 발휘할 기회가 막히고 마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대다수 젊은 세대의 공통감각이 극심한 좌절감과 절망감인데 그 원인이 미래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희망 상실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인데 어떻습니까?




후카오 요코 :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이와 같은 문제 상황이 확실하게 인식되고는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의미 있는 실천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문제해결에 함께 임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건전한 사회화 교육도 필요하고 기본적인 예절학습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후카오 요코 :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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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은 어떤 연유로 ‘혼의 탈식민지화’를 연구과제로 삼게 되셨습니까?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상대화한다



후카오 요코 : 아마 유소기(幼少期)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부모님이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의 준말)이나 일·중 우호운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운동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일종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사회주의나 문화혁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어른들을 왠지 ‘이상하다’라는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호언장담하는 것과 정반대로 자신의 삶이나 몸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였지만 중학교부터는 속박이 심해지고 교칙에 심한 부조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인간을 틀에 얽매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고도경제성장의 와중이었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미치듯이 산을 깎아 주택을 조성하는가? 고도경제성장에 열광하는 일본사회는 무언가에 흘렸듯이 스스로의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을까’가 저의 모든 물음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연구자가 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황토고원(黃土高原)에 가서 저쪽에서 일본을 보게 되자 ‘일본은 이상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스스로를 상대화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상당히 ‘이상’한 것에 사로잡힌 채로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쪽은 저쪽대로 일본인이 사로잡혀 있는 것과 다른 것에 사로잡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로잡히고 있는 것은 일본이 사로잡히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서로가 각기 다른 것에 속박되어 있지만 혼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는 똑같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중 간을 왕래하는 가운데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바깥쪽의 시점을 가지는 것으로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상대화한다’는 인류학과 역사학이 구사해 온 수법을 중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학습했습니다. 이 과정을 언어화시킨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 시리즈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영혼의 식민지화, 원전 문제를 올바로 보고 지적하는 지식인이 없다



야마모토 교시 : 지금 생태계를 가장 심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이 원자력발전이지요. 후쿠시마 원전의 엄청난 사고 이후 원전 ‘전문가’에 대한 신용은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해설자의 원전 재가동에 의문을 표시하는 발언에서는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고, 신문기사에서도 장래세대에의 책임을 지는 현재세대의 배려나 책임을 명확하게 의식하는 발언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국회에서도 원전 피재민의 참상이 언제 어디서 ‘자신의 현실’이 될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21세기형 ‘문명재(文明災)’와 전면으로 대결·대응·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습니다.




후카오 요코 : 원전으로 물이나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인간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악순환의 공포를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원전이 언젠가는 인류에 대해 가공할 복합 재해를 가져온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그것을 정지시킬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야마모토 교시 : 원전 재가동의 국책에 ‘NO’의 뜻을 표시하지 않는 지식인은 ‘반지성인(反知性人)’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학력과 지성의 높낮이는 곧 연동하지는 않습니다. 코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 교토대학 조교(助敎)가 원자력 전문의 과학자로서 ‘원전 반대’를 외치고 경종을 울렸습니다만 인문계의 지식인은 대부분 ‘나랑 상관없다’는 자기규제 속에 숨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타자와 장래세대와 공진(共振)할 수 있는 자기 혼에 뚜껑을 덥고 그릇과 과학만능 이데올로기에 의해 혼마저 식민지화 당하고 있습니다. ‘혼의 탈식민지화’를 주창하고 계시는 후카오 선생은 전문가의 그러한 자기완결적인 학문적 자세에 친숙하지 못하고 계시는 게 아닙니까?




후카오 요코 : 이른바 아카데믹한 학술 활동에 참가하면 저는 자꾸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그래서 계속하기 힘들어집니다. 이른바 ‘전문가’로서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면 아무래도 거부반응이 일어나게 되니까 결국 어느 학회도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후카오 교수가 논문이나 학술잡지 등을 통해 발표하시는 내용은 ‘학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식민지화된 혼이 온전하게 작동하는 세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실천 활동의 한 가운데에 계실 때 가장 충실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닙니까?




후카오 요코 : 그건 그래요. 그 밖의 일에 몰두하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것은 학문의 영역에서 권위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그 영역에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어딘가로 향해서 현 위치로부터 탈출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학문, 배운 것을 묻다, 묻는 방법을 배우다



김태창 : 한자문화권에서 쓰는 ‘학문(學問)’이라는 말은 본래 ‘배운 것을 되묻다’, 혹은 ‘묻는 방법을 배우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사이언스’의 번역어로서의 ‘학문’과는 그 의미하는 바가 다릅니다. 지금 후카오 선생이 말씀하신 것은 오히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학문’과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메이지시대 일본에서는 서양에서 전래된 ‘사이언스’라는 말을 과학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전문분야별로 나누어진 분과학문(分科學問)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거지요. 과학이란 분화된(科) 학(學)이라는 거죠. 분할된 범위에 한정된 실증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정된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완전히 무지몽매한 학자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인간’, ‘사회’,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서 조부로부터 현대어로 발하자면 사상·철학·문학·종교·도덕·윤리·역사 등을 아우르는 동양고전 중심의 인간 형성학을 배워 익혔고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서양식의 분과학문으로서의 정치학과 철학을 연구 교수했으나 어떤 특정 전문 분야에 특화되는 것이 생리에 안 맞아서 언제나 새로운 강좌를 창설해서 저 나름의 생각을 학생들과 자유 활발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저 나름의 분야횡단적인 디스커스(담론)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가 아니면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 같은 문제를 함께 논의한다는 것은 거의불가능하니까요.




후카오 요코 : 수업이 그대로 탈식민지화의 생생한 과정이었군요.




김태창 : 제가 젊은 한 시절을 한국 충청북도 청주시 개신동에 있는 충북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공동학습과정을 겪었습니다. 교수라는 의식을 의도적으로 버렸었습니다. 충북대학교의 소재지도 ‘개신(開新)’동이지만 충북대학교의 건학 이념도 ‘개신(開新=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학문은 개신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햇병아리 학문 연구자일 때부터 새로운 미래를 열려고 하는 사람과 현재 국내외 학회에서 일단 공인된 것을 재빨리 수용하고 번역해서 소개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자는 연구자라기보다는 수입업자로 본 거지요. 비록 몸과 마음이 식민지화·영토화되어 있더라도 영혼이 식민지화·영토화 되지않는 상태라면 ‘개신개래’(開新開來=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그 뜻은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엶으로써 지금은 없는 미래가 열린다)의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고 거기에 희망과 기대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까지 식민지화·영토화 되어 버리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거기서 탈출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화·영토화된 상태가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후카오 요코 : 정말 그렇습니다.



관 주도 의식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파급



김태창 : 저는 일본의 국가공무원연수소에서 고급공무원에게 여러 번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종래의 ‘관주도의식’으로부터의 탈각과 ‘민관 대화·공동·개신을 통한 사회변혁의식으로의 대전환’의 필요성과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반응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한마디로 관주도의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일본이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올바른 관주도의 성과이며 문제가 있다면 국민의 의식수준이 시대적·상황적 요청에 걸맞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문이었습니다. 국민은 어디까지나 관주도에 의한 계몽·계도·계발의 대상이지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고구조가 관료조직의 기반이 되었고 근대국민국가 형성의 전 과정을 통해서 정리·확립·강화되다가 제2차세계대전 후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전후 일본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는데 적지 않게 놀랐던 거지요. 이런 생각이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사회를 오염시켰고 일본 사회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의 연원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후카오 요코 : 자기들의 특권적 위상과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양심적인 관료는 자꾸 고립되고, 관료는 집단으로 ‘국민보다 우리 입장이 평온무사한 게 제일이야’라는 병에 걸려 있다는 인상입니다. 양심적인 관료 OB가 목소리를 높여 주었으면 합니다. 신문기자도 이빨 빠진 ‘조직인간’입니다. 관리된 지면을 버리고 큰 언론매체를 뛰쳐나와서 고군분투하는 진정한 저널리스트 중에서 일본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개신(開新)하는 인물이 나타나는 것을 기대합니다.





사이에서 생각한다



김태창 : 지금 후카오 선생이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면서 거기서 일중관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겠다고 애를 써온 것은 다름 아닌 미래공창의 실천궁행입니다. 일중 어느 쪽에도 너무 편향되거나 종속되지 않으면서 일중 간의 관계 개선을 민간 주도로 도모하고 계신거지요. 저는 대화모임에서 늘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이동하는 가운데서 생각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사이에서 생각한 것을 나라(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어느 나라든) 안에서 문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미래공창을 실현하려는 끝없는 여정을 거쳐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후카오 요코 : “‘사이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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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영혼의 탈식민지화, 탈영토화는 미래공창으로 이어져야




김태창 : 저는 여러 곳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거론해 왔지만 그것이 최종목표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개신개래=미래공창으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요. 미래공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영혼이 다시 무언가의 식민지·영토가 되고 맙니다.




야마모토 교시 : 저는 ‘혼의 탈식민지화’를 거론할 때 반드시 동시에 생각해야 될 문제가 ‘미래공창(未來共創)’이라고 생각합니다. 탈식민지화된 혼은 ‘혼의 빈 껍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열고 자유로워진 혼은 어린아이와 같이 편견이나 선입견 등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김태창 :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 영혼이란 어떤 의미에서 일체의 과거에 의한 주박·결박·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영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가 거의 없고 미래만이 풍부한 어린아이의 영혼과 같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를 만든다는 생각처럼 반생명적이고 식민지화적·영토화적인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부모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부모 멋대로 아이를 지배·통제·규정하려고 합니다. 말로는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한다면서도 부모 뜻에 맞추어서 인간형성을 꾀하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그런 감각으로 육아하는 사람이 많지요.




김태창 : 저는 그런 사고와 행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의 근본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식민지나 영토가 아닙니다. 아이는 독자적인 생명가치를 지니고 부모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의 파트너입니다. 그와 같은 인식과 실천을 일상생활화 하는 것이 최우선의 긴급과제입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노르웨이의 오슬로대학에서 열린 세계미래학 대화집회에서 ‘미래는 현재의 영토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격렬한 논의의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합의점은 미래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생크추어리(성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래세대는 현재세대의 식민지·영토가 아니라 함부로 사유화해서는 안 되는 성역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과 실천의 근본전환이야말로 세대간 공정윤리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식화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부모 세대의 근본적 책무가 아니겠습니까?




후카오 요코 :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은 곧잘 쓰이고 있지만 그 뜻을 잘 알고 쓰고 있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육이 아니라, 공동학습 - 아이를 부모의 식민지화하지 말라




김태창 : ‘부모의 책임’이라는 이면에 오히려 부모의 지배력이나 통제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부모의 식민지·영토로 만드는 데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부모로서는 자식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해주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이 아니라 부모가 자기 뜻대로 강행하는 미래 독창에 지나지 않아 아이의 입장에서는 넘어야할 장벽에 불과하다는 점에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저는 한국의 충청북도 교육청 간부 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한마디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공동(共働) 학습이라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고 그 공동 학습의 핵심과제는 세대 간 미래공창을 가능케 하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제대로 이루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를 체계적으로 성취시켜온 교육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주축으로 하는 공동학습으로의 대전환을 호소했던 거지요.




후카오 요코 : 그런 공동학습의 자리가 계속 마련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창 : 공감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통인식이 형성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끈질긴 대화가 필요하겠지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은 훈련일지는 모르나 공동 학습은 아닙니다.




후카오 요코 : 시키는 대로 하는 교육이 아직도 학교교육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당장에 이단으로 몰리니까 사태 개선이 어렵습니다.




김태창 : 우선 누군가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 뜻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다른 사람─특히 젊은 학생들─에게 거의 강제적으로 따라오도록 하는 교육강제=훈육으로부터 미래를 모두 함께하는 대화·공동·개신을 통해서 열어나간다는 사고와 행위를 진작시키는 쪽으로의 근본전환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도 누군가가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공동학습자가 되고 상호실천자가 되는 공동체험·체득·체인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후카오 요코 : 저도 함께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숙, 부모로부터의 독립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후카오 요코 : 우리 어머니는 1935년에 하얼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일본군에 투항한 봉천감옥(奉天監獄)의 수감자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3세 때에 아마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수감된 중국인들을 731부대에 보내는 자리에 계셨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를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1938년 무렵에 일본에 귀국했습니다. 어머니는 잔류고아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몸소 겪은 원초적 경험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심적 상처를 입은 듯싶습니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 행위를 빈번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대단히 고생했습니다. 저의 친아버지는 39세 때에 자살하셨습니다. 그 진상도 전연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고뇌와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와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재혼해서 저를 매우 애지중지 키워주신 의붓아버지는 신체 허약의 철학자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언제나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도움을 받기 위해 재혼한 남편이 병약했으니까 ‘이럴 수가’라는 마음이 계셨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을 잡고 극도로 핍박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른은 왜 그렇게 되는 걸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39세가 되던 무렵, 저도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틀렸다’고 비관하다가 폐렴에 걸렸을 바로 그 때, ‘여기서 비명에 죽게 될 바에야 차라리 무언가 새로운 행동을 해야겠다’고 해서 생각해낸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엄청난 싸움을 벌이게 되었지만 지금은 간신히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으면 그토록 고생도 안 했겠지만 그런 고통의 과정이 없었으면 이런 연구를 계속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어머님의 입장에서 보면 공격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후카오 요코 :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사흘에 한 번씩은 폭발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온화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마음을 열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김태창 : 도쿄대학의 니시히라 타다시(西平直) 교수가 교토포럼에서 ‘세대계승’에 대해 말하는 문맥에서 바로 어머니에 의한 병리의 발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위 ‘모인병(母因病)’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해방시켜주지 않고 자기에게 철저하게 종속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심해서 아이의 독립을 극심하게 저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하는 ‘영토화·식민지화’는 다름 아닌 어머니에 의해서 강행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후카오 요코 : 그렇습니다. 절대선으로서의 어머니상의 신화와는 어긋나는 현상들입니다.




김태창 : 남자아이는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먼저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고 거기서 자기 형성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기억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이 인간의 성숙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별로 말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후카오 요코 : 최근 저는 우리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물론, 키우고 있는 고양이나 개에 대해서도 그들의 자립을 저해하게 되지 않나 하고 극력 명심하고 있습니다.




김태창 :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 있을 때는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학자와 여러 사람들과 사귀고 더러 그 가정에도 초대받아 가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거기서 느끼게 된 것은 특히 일본의 어머니 가운데는 아이를 아유화(我有化)하고 자기 영역 안에 가두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도 어머니의 힘이 강해서 어머니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끝내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고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경우에 더 심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흔히 듣게 되었습니다.



죽어서도 자유 - 하늘에 뿌려 달라




후카오 요코 : 그런 경향을 두고 ‘자기중심’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아이가 끝내 자기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어머니의 명령이 귀에 들려와서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경향을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느낍니다.




김태창 : 모인병적인 현상은 비단 어머니에게 한정되지 않습니다. 인간보다 국가나 국토에 관련해서도 때로는 모인병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국가나 국토가 모든 것을 흡입 용해시키는 강력한 인력으로 작용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국가, 한반도라는 국토, 태어나서 자란 향토에 밀착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거부해 왔습니다. 그래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의 장소의 철학에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이라는 땅에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미국이나 일본이라는 땅에도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땅이나 땅에 묶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노마드(유목민)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땅에 묻지 말고 하늘에 뿌려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성신은 토지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지모신(大地母神)의 신화 같은 것도 그 예에 속하지요. 그러나 남성신은 바람이나 불꽃이나 벼락처럼 땅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저 자신도 남성신을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땅에 묻혀서 흙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하늘로 올라가서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은 겁니다.




후카오 요코 : 그러네요.



하늘의 종교, 땅의 종교 / 머무름과 자유로움



김태창 : 종교의 측면에 눈을 돌려도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불교는 결국 땅의 종교인데 반해서 기독교는 하늘의 종교라는 양자의 특성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땅에 밀착해서 토지와 친밀한 관계를 강화하는데서 입명안심을 모색하느냐 아니면 토지와의 관계를 끊는 데서 새로운 생명의 차원·지평·세계를 개신하느냐에 근본적인 지향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어느 땅에도 속박되지 않는 까닭에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나 불안하고 표류하며 방랑하는 사막민들이 발견한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요. 거기서 길러진 본래적인 비정주(非定住)·비안주적(非安住的)인 생활습관은 어떤 의미에서 온갖 식민지화·영토화에 대한 내성(耐性)을 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교회의 형태로 발전하고 나서는 이단 배제·말살의 독선적인 조직 종교가 되고 거기서 절대 진리에 의해 모든 인간의 영혼을 영토화·식민지화시키기를 지향하는 일대 신앙자제국(信仰者帝國)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만 본래의 예수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당시의 종교권력으로부터 개개인의 영혼을 탈식민지화·탈영토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민중해방운동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결코 어느 편이 좋거나 옳고 어느 편이 나쁘고 그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과 땅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의 양쪽이 있고 양쪽의 삶을 잘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분이 조치대학(上智大學)의 미야모토 히사오(宮本久雄: 현 도쿄준신대학(東京純心大學) 교수)입니다. 그분은 저를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같은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땅에 안주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서 “지금 있는 그 장소를 떠나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쪽으로 가라”라는 명령에 호응해서 아무 미련도 없이 정착해 온 땅을 떠나 미지의 타향으로 이동하면서 한평생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일이 아브라함의 삶이자 보람이었습니다. 고향 땅에서 안주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늘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도 있는 것입니다. 절대다수의 일본인이 정주형(定住型)인데 비해 저는 외래의 이주형(移住型)의 인간이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 점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후카오 요코 : 계속적인 이동을 통해서 상대성에 대한 의식을 예민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태어난 장소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초안주형(超安住型)의 인간입니다. 그 안에서 어머니와의 싸움이 있고, 그 위화감을 지렛대로 삼고 어떻게든 거기서 이탈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한편에서는 강하게 이동을 희구(希求)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한곳에 뿌리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 자신이 안고 있는 모순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한곳에 계속 머물고 있으면 이동을 거부하고 한곳에 밀착하는 경향이 상화되는 게 분명합니다. 특히 일본사회의 공동체적 주박은 정말로 숨쉬기조차 곤란한 지경입니다.




김태창 : 교토포럼 관계로 독일을 자주 드나들었을 때 자주 ‘하이마트로지히카이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향상실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사람은 고향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을 때보다 고향에 있으면서 고향이 고향 같지 않게 느껴지는 고향 상실감이 훨씬 심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후카오 선생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나, 라는 느낌이 듭니다.




후카오 요코 : 저는 그런 경향이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김태창 : 저는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주로 공공철학 대화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의 오사카와 한국의 청주 사이를 왕래하면서 새로운 인문학 대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청주는 저의 고향이기도 한데 전혀 고향이라는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주 낯선 타향=신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저는 오히려 거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동학 운동을 일으킨 최제우(崔濟愚)는 태어난 고향을 한 번 떠나서 여러 곳을 방황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배척당하고 도무지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향땅을 버리고 낯선 타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짧기는 해도 농도 짙은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도 그렇고 무함마드도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마모토 교시 :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을 해서 엘리트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국가시험을 돌파해서 국가공무원이 되고, 동료와의 격렬한 경쟁도 이겨내면서 중요한 벼슬을 손에 넣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안정된 지위와 많은 수입을 보장받고 장래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세속적인 성공을 가지고 ‘이것이 골(Goal)이다’라고 여긴 순간, 그 사람은 미래공창의 저해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 자기 양심에 비춘 사회 변혁에 대한 용기 있는 행동에는 무관심하고, 자기 일신의 안전과 더 입신출세하는 것에만 눈이 향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의 생명에너지가 전개(全開)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후카오 요코 : 그렇습니다. 원전 관계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김태창 : 모두 다 자각 없이 근원적인 생명에너지를 죽이고 있는 거지요.




후카오 요코 :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는 이미 죽었어!(웃음)’. 죽어버리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겠지요.




김태창 : 일본인 지식인 가운데는 일본을 기본적으로 모성 사회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인간을 포함해서─을 포용해서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포용한다기보다 포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관계’의 울안에 갇혀 버립니다. 국외자나 이방인은 철저하게 격리 차별합니다. 중국도 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만 길거리나 마을 안에서 모르는 타자와 우발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회화를 나누거나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서로 돕는 일이 의외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일본에서는 일일이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부터 물어야 됩니다. 어설프게 말을 걸으면 곧 ‘이 사람은 수상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일일이 상대에게 신경을 쓰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중국에 가면 그러한 면은 굉장히 자유롭고, 정말로 호흡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야마모토 교시 :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가 지적했듯이 일본인은 ‘장소의 공기’를 눈치 채고 그것에 맞추는 것이 행동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대화보다 무언(無言)의 ‘동화(同化) ’ 압력이 강합니다. 동화할 수 없으면 ‘KY’(kūki oyomenai: ‘공기를 못 읽다’ 즉 분위기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로 간주되고 소외당하게 됩니다. 정의나 도리를 열성적으로 말하면 금방 ‘너무 시비를 가려서 시끄럽다’고 해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후카오 요코 : ‘도리’를 느끼고 그것에 공명해서 움직이는 것도 별로 없어요. 중국의 시골에서는 ‘도리’에 맞는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일본에서는 ‘도리’ 감각이 희박해서 묵묵 무반응입니다. 김 선생님계서도 여러 번 겪어서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일본에서는 도리라는 게 따로 없고 그저 관(官)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이 도리입니다. 말하자면 공(公)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관이 주도하는 공과 다른 민 주도의 공공을 따로 떼어서 그것을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서 개신했던 것이 도쿄대학출판회에서 간행된 시리즈 <공공철학> (총 20권)을 통해서 김태창 선생이 역설하셨던 공공성과 다른 ‘공공하다’의 중요한 뜻이 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공하는 도리를 생각하고 논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시킴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대화적·공동적·개신적 실천이 ‘미래공창(未來共創)’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분석이나 평가가 아닙니다. 미래 개신(開新)에의 꿈, 희망, 행동입니다. 지사(志士)들에 의한 도쿠가와 막부의 타도와 메이지유신이야말로 ‘미래공창’이 아닌가, 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일본은 주로 초슈벌(長州閥·현 야마구치현 출신자들)에 의해 사물화(私物化)된 국가였습니다. 한국을 식민지화시키고, 대륙 침략을 추진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급기야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패전하고 망국의 비극을 스스로가 초래했습니다. 일찍이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렸던 대동아공영권이나 팔굉일우의 구상들은 모두 일부의 광신적인 일본 지상주의자들의 미래독창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의 생명이 상실되었고 훨씬 더 많은 한국민과 중국인의 생명이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영혼마저 식민지화되고 영토화되었는데 그것이 가져온 부메랑효과인지 알게 모르게 일본인의 영혼도 타자에게 씌웠던 식민지화·영토화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는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인의 경우 일본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대륙적인 규모의 크기, 너그러움, 공감력, 다원성, 포용력, 등등의 자질이 느껴집니다. 일본의 ‘동’(同: 공기를 읽기, 분위기를 눈치 채기)적인 기질이 ‘화(和)’로 변할 때에는 서로를 어울리게 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서로의 장점을 서로 살리는 관계가 되면 여기서부터 한중일간 평화상태가 세계평화 구축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지요.




후카오 요코 : 최근의 일본인 학생들은 대만에는 가지만 중국에는 안 가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좋은 인연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태창 :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일본인 은 절대적 소수자인 것 같습니다.




후카오 요코 : 일본인 가운데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런 말의 진의를 수상하게 여기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폄하·왜곡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학생에게서도 느끼는 일입니다만 굉장히 완고한 장벽이 있고 그것을 깨부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 일본사회의 폐색상태를 어떻게 해 보고 싶습니다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모두 눈을 떴을 덴데도 일본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 채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는 절망적입니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이 보시기에 인간의 영혼이 식민지화 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태는 어떤 것입니까?




후카오 요코 : 생각과 행동이 고착화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식민지적 사고를 근본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인에게는 친밀한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예속되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조직이 사람(사원)을 통째로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오직 그곳에서의 보신(保身)만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 이외의 일들은 그저 기분전환 정도로 조금씩 일시적으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안정과 성공을 이루기 위한 전술이 모두 식민지화의 방향으로만 고정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도 정해진 길에서 빗나간 생각을 하지 않게끔 철저하게 규제하고 오로지 조직의 명령에 순응하는 사람만을 대량 재생산하는 데에 있습니다. 학교의 클럽 활동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보니까 클럽 활동이라는 것도 모두 영혼을 식민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죽어도 거기에 매달려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주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 상태로 회사에도 들어가고 또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반의 구석구석에도 그런 사고가 들어가 있는 거지요. 일본인의 삶은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집으로 오가는 가운데 술집에서 잠깐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서 자고 또다시 회사에 나가는 식의 고정된 왕복입니다. 지역사회와 직장만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왜 ‘사이’ 라는 것이 없는 걸까요? 다른 연령층이나 다른 업종의 다양한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계기도 동기도 시간도 없습니다. 중국의 길거리나 공원에는 다양한 모임이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다름 아닌 노예 공동체군요. 노예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중 속에 섞어서 남과 똑같이 하면서 그런대로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후카오 요코 : 그래서 흔히 조직인간 타령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결국 그것은 자기 자신의 노예근성을 ‘과시’하는 도착된 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인간’은 꼭대기에 서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연기력에 묘한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강자에 대한 굴종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방향을 약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후카오 준교수와 김태창 선생의 문제관심의 공통점을 전제로 하고 대화를 전개해 왔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차이점을 의도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을 확실하게 밝혀두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태창 선생께서 후카오 선생의 저서와 논문들,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다른 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어 보시고 나서 어떤 차이점에 주목하셨는지부터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창 : 첫째로 직감하게 된 차이는 ‘혼’과 ‘영혼’의 차이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일관해서 혼과 영을 구분해서 논의를 전개해 왔습니다. 누구의 이론이나 학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직접 체험·경험·증험·효험해 온 결과 혼은 개체생명력=에너지로, 그리고 영은 개체생명(체)과 개체생명(체)과의 사이·개체생명(체)과 우주생명과의 사이로부터 국가간·민족간·문화간·종교간 등등 다차원적인 ‘사이’에 작동하는 상관연동적·상호매개적인 근원적 생명력=에너지로 나누어서 파악·이해·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후카오 선생을 비롯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개인 중심의 논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경향과는 달리 저의 개인적인 문제관심은 주로 국가간·민족간·문화간 그리고 개인간 등등 다차원의 사이들에서 일어나는 영(靈)과 개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魂)’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를 동시에 공구공론(共究共論)하는데 역점이 주어져 있습니다.




둘째로 ‘혼의 탈식민지화’(후카오)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김)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공통점을 함께 지니고 있으면서도 ‘영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것이 ‘혼의 탈식민화’ 논의에는 없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혼은 개체 내에서 작동하는 독자적 생명에너지라고 하면 영은 개체간·집단간에서 작동하는 관계 형성적 생명에너지라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체험학습에서 얻은 소견입니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내적 생명에너지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이고 개인간·집단간의 생명에너지가 식민지화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동시 병행적으로 성취시킨다는 것이 영혼의 탈식민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식민지화와 영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한 저의 개인적인 체험·체득·체인의 귀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양쪽이 똑같이 개인·민족·국가·문화 등등의 자주성·자립성을 박탈당하고 상실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차이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차이는 식민지화는 명백한 의식을 동반한 가시적 자주성 박탈이고 영토화는 자각증상이 결여된 비가시적 자립성 상실입니다. 대일본제국에 의한 자주성 박탈은 분명한 의식을 동반한 채로 당한 것이고 영토화는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에 의해서 우리 나름의 문화적·의식적 자립성이 상실되고 과잉 종속성이 현저하게 강화되는 데도 그것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는 경향이 그냥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야마모토 교시 : 그렇다면 오는 8월 14~16일에 개최 예정인 한·일 철학·문학 대화에서는 조명희(趙明熙·1894~1938)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 루쉰(魯迅·1881~1936)을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관점에서 상호 비교·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우선 어떤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전혀 예상 못하거나 안 하실 심산이십니까?




김태창 : 대회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고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무례한 것 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예감만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이 한국을 영과 혼이라는 양면에서 식민지화를 이루려고 하는 가운데서 일본인과 일본 사회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토화되어 가고 있다는 모순적 상황을 개탄했고, 뤼쉰은 분명하게 식민지화된 영과 혼의 비참한 인간상을 다양한 형태로 소상하게 묘사했으며, 조명희는 글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로 영혼이 철저하게 식민지화 되는 과정을 실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조명희가 가장 뚜렷하게, 루쉰이 그 다음으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에는 어떤가, 라는 것이 논점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한국은 완전히, 중국은 반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에 있었던 데 비해서 일본은 가까스로 서양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대표적인 문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기본적인 시대인식과 상황인식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어떤 논의가 전개되고, 어떤 공통인식이 도출될지 안될지 주최자인 저도 궁금합니다.




야마모토 교시 : 그러면 이것으로 두 분의 대화를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