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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4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2020-06-21     동양일보


[동양일보]10월 9일 수요일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70대 후반까지도 완벽주의자였다. 무슨 일이나 그때 그곳에서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 자신이 완벽주의자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실감한 것은 70대 후반의 일이었다.

며칠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간호사의 한마디가 뜻하지 않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간호사는 내게 병의 완쾌가 더딘 것은 나 자신의 완벽주의적인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사람은 그 정도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낼 수 있고, 그 정도면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편집이 나 자신을 병고에서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간호사는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 간호전문가였다.

그런 일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80대가 되면서 나 자신도 놀랍게 느낄 정도로 완벽주의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최선주의자로—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완벽을 기하려는 집념을 버리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는 자세─ 바뀌었다.

행복은 완벽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데서 찾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벽을 기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하면 언제나 불만이고 불평과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납득하게 되면 만족의 극대화가(maximization of satisfaction) 아닌 행복의 최적화를(optimization of happiness) 체득하게 된다는 것을 늦게나마 80대가 되어서야 체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10월 10일 목요일

청년철학의 출발점은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Amo, ergo sum. I love, therefore I am) 중년철학은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Consumo, ergo sum. I spend, therefore I am)’ 요약된다. 그러나 노년철학은 ‘나는 비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다.(Vacuo, ergo sum. I empty, therefore I am)’.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철학적 고뇌‧ 사유‧ 상상‧ 언설의 핵심내용이다. 사랑에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이 난다. 삶의 원동력이 거기서 나오고 삶의 보람이 거기서 느껴지고 삶의 지향이 거기서 세워지기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들면,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는,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에서 사는 맛을 알 수 있고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사는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부자이건 아니건 일상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돈을 버는 일이나 아니면 돈을 쓰는 데서 보내진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얼마나 비울 수 있는가가, 노년다운 삶의 기본이 된다. 청년이나 중년이 채우는—사랑의 욕구를 채우거나 돈의 소유와 소비로 채우거나— 삶이었다면 노년은 모든 것을 비우고 청년이나 중년의 채움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다시 채우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텅 빈 내면 깊숙이 우주생명의 숨결과 원력(願力=지구사회와 인류문명의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새롭게 열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힘)을 가득 채우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개체생명이 완전히 비워질 때 비로소 우주생명이 충만하게 되어 아주 다른 새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월 11일 금요일

청년철학이나 중년철학은 중심과 방향은 다른 데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기반, 터전장소가 의식이라는(意識─consciousness)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기본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는데서 삶의 기쁨을 얻거나 열심히 돈을 벌어서 마음껏 쓰는 가운데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은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년철학이나 중년철학은 모두 의식 중심의 철학이다.

그러나 노년철학은 기반, 터전, 장소가 의식에서 생명으로 이동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의식보다 깊고 넓은, 그래서 의식조차도 거기서 생겨나오는, 생명을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자각하는 것, 자기 삶의 참모습에 눈이 뜨이는 것이다. 남의 삶을 보고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닫고 얼을 통해서 보다 큰 생명에 이어져 있고 그것에 의해서 내 삶이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과 넋으로 이루어진 나 자신의 개인적인 삶 =개체생명을 비어가는 한편 나의 삶을 지탱해온 우주적 근원적 생명력이 빈자리를 채워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 순응해가는 것이 노년철학의 첫 번째 의미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겪어가면서 청소년세대와 중장년세대와 함께 서로 행복해지는 길을 열어가는 일이 노년철학의 두 번째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철학은 노년의, 노년을 위한, 노년에 의한 철학이 아니다. 노년철학은 3세대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 함께 살면서 서로가 힘을 보태고 지혜를 모으고 능력을 발휘해서 화해와 상생과 공복=함께 행복해하는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철학이다.



10월 12일 토요일

친구와 만나기 위해 시내로 나가려고 택시를 탔다. 그런데 중년의 여성운전기사가 내가 과거에 대학교수였다는 것을 안다면서,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해온 것들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음 질문들을 했다.

1) 왜 살아야 하는 거지요?

2) 무엇이 있으면=가지면 행복하게 될 수 있나요?

3) 행복은 나 자신 밖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찾아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요?

요즘에 들어서 상당히 유식한 운전기사들이 운전하는 택시를 종종 타게 된다. 그때마다 나누는 대화는 아주 유익하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놓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1)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행복이란 무엇이 있다거나 가지고 있다는 조건에 따르는 결과가 아니라 나의 삶이 삶답게 가꾸어지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각이요 각성이다.

3) 행복은 나의 밖이나 나의 안에서보다는 나와 너 사이에 나타나는 일=현상=사건이다. 나만의 행복은 불충분 할 수밖에 없고 자기와 타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일—그러니까 공복(共福)—때 충분하고 온전하고 충만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만의=나 홀로의 행복이 무시‧ 소외‧ 희생되는 데서는 어떤 행복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이렇게 내 의견을 나눴다. 말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저의 작은 성의를 담은 수업료라고 여기시고 택시 요금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떠나갔다. 일순 훈훈한 행복이 저만치 가고 있는 운전기사와 나 사이에 출현했다.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C대학의 L교수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던 중 요즘 행복에 관한 책들을—주로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어 서적들─ 읽었는데 서양학자들의 행복론 또는 행복학설의 번역‧ 소개‧ 인용뿐이고, 막상 저자 자신의 생활체험이나 심사숙고에서 나온 견해나 소신이 들어있지 않아서, 매우 아쉽고 허전했다는 그의 소감을 토로했다.

나의 노철 개벽일기도 읽고 있으며, 특히 어제 쓴 부분을 읽고서 자기가 마침 생각해 온 문제와 동시성(Synchronicity=우연히 같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현상‧ 사실‧ 상황)을 느꼈다고도 했다.

나도 일본에서 공공철학대화운동을 주관하고 있을 때부터, 행복에 관해서 여러 나라에서 출판된 여러 권의 전문서와 교양서를 읽어보았고, 또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행복학 전문가들과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나 나름대로의 현시점에서 나 자신이 깨달은 바를 최소한의 명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고, 언젠가는 자세한 내용으로 펼쳐보려 한다는 나의 의중을 이야기했다.

1) 행복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지성적 행복이해, 감성적 행복이해, 영성적(또는 근원생명력적)행복이해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깨닫는 행복, 느끼는 행복, 통하는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2) 행복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 그 차체라는 것이다. 가령, 재산이나 명성이나 지위처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존재의 차원에서─깨닫거나 깨우치거나 눈뜨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요 자각이요 기통(氣通=막혔던 생기=생명에너지가 확 뚫려서 거침없이 통하게 되는 현상)이다.

3) 행복이란 자기 밖 먼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안의 깊숙한 곳에서 근원적 생명에너지가 제대로 작동할 때 생성되며 그것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감동적이고 감사할 일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4) 그러나 거기서 끝나면 개인 속에 갇혀있는 불완전한, 온전치 못한, 부족한 행복이다. 자기 속에 일어나는 기적 같은 생명의 충만, 충일, 충전이 타자 속에서도 일어나서 자기와 타자사이에 공명(共鳴=함께 울리다), 공진(共振=함께 진동하다), 상통할(相通=서로 거침없이 통하다) 때, 비로소 자타간 공복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온전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0월 14일 월요일

오랜만에 C대학의 K교수를 만났다. 여러 가지 지내온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장수개벽일기를 읽었다면서 솔직한 감정표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나 자신이 감정노출을 극력 자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이 담겨있지 않으면 공감의 통로가 막혀버릴 수 있어서 삭막한 글이 되기 쉽다고도 했다. 역시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D대학의 K교수와도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함께 해온 노년철학에 인간적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시(詩) 문학적 감성을 더함으로써 인문학적 품격을 갖춘 노년철학으로 잘 다듬어서 한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도 공유했다.

우리가 함께 추구해온 노년철학은 3세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간 상화, 상생, 공복을 실현시킬 수 있는 좋은 사회건설을 지향하는 철학대화운동이다.

그 운동에너지의 원천은 동양포럼참가자들의 지성과 감성과 영성의 교향악적(Symphonic) 화합(和合), 융합, 조화에 있다. 정연한 논리가 있고 따듯한 감동이 있고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이 어우러지는 가운데서 공감에너지가 적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철학은 논리가 바로선 언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마음 깊숙한 내면에 와 닿는 시가 있으면 더 좋다. 그러나 거기서 한발 전진 할 수가 있다면 지역간, 남녀간, 세대간, 상호존중, 상호화합, 상호격려를 깊고 넓은 차원에서 성취할 수 있는 영성의 역동이 더해지게 되면 좋겠다. 시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했다.



10월 16일 수요일

정오(정확하게는 12시 15분)에 유성종 선생, 김용환 교수와 만나 점심을 함께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김용환 교수의 큰아들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축하하는 뜻을 전했고,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국가공무원으로 특채되어 매우 흐뭇한 것 같았다.

그 젊은이는 오늘의 우리나라에서 일반시민들의 역할기대를 저버리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법기술자가 되지 말고, 참다운 법률가가—판사이든 검사이든 변호사이든 국가공무원이든—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런 뜻을 담고 인문학적 교양을 강조하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책이니까.

그리고 유성종 선생과 나는 2019년 12월 31일부로 동양포럼의 운영위원장과 주간의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한다는 우리의 의중을 밝혔다.

우선 김용환 교수가 운영위원장과 주간 중 어느 쪽을 계승해 주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주간 쪽을 맡고 싶다고 해서 그러면 운영위원장은 유성종 선생이 권유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확답을 단시일 내에 받기로 하고, 두 분이 힘을 합쳐서 잘 키워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했다.

유성종 선생과 나는 4년간 정말 최선을 다했고, 어느 정도 새 길을 열어놓기는 했으나 앞으로 연부역강한(年富力强=나이가 넉넉하고 힘이 강하다) 김 교수의 활동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30년간 외국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국내에 학맥이(學脈) 다 끊어져 버렸고,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모시는 데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그 점 스스로 인정한다.

그래서 김 교수가 우리나라 실정을 잘 감안해서 좋은 인선을 하고 좋은 성과를 내서, 노년철학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를 당부했다.

나 자신은 더 자유로운 입장에서 일본과 한국을 아우르는 쪽으로 노년철학대화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 정권주체들이 극단적인 반일태도를 취하고 국민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반일은 애국이고 친일은 매국’이라는 식으로 마구 몰고 가는 가운데서, 한일철학대화를 계속한다는 것이 김 교수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그 몫을 담당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설명도 했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3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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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6.07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10월 2일 수요일

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둘째 날 오전 회의는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사 사장의 ‘노년철학과 미래공창’이라는 발제강연이 있었고 토비오카 켄 박사의 진지한 질의가 계기가 되어 활발한 대화가 전개되었다.

질의의 요지는 ‘미래공창이라는 구호는 대단히 설득적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공창이냐’는 것이었다.

야마모토 사장의 소상한 응답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불교의 인과론적 교리에 관련되는 언설이 나와서 김용환 충북대학 교수가 불교의 기본은 인과론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미래공창하려는 의지와 행위와 염원이 무의미한 도로가 되지 않겠느냐는 문제 제기다.

야마모토 사장도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고집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열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들의 사고와 행위·이론과 실천·판단과 상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결집·축적·진화되어야 그런 과정을 통해서 보다 바람직한=좋은 미래가 열리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좋은 원인을 마련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善因善果, 惡因惡果)이라는 점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물리학에서도 고전물리학에서 강조되었던 인과론적 물리를 수정해서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의 여지를 인정하고 확률론(確率論)적 물리관을 제시하고 있다. 결정론적 사고와 자유의지론을 적절하게 융합시키려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요는 물질-물체-무기물의 세계에서는 모든 현상·변화·발전이 철저하게 인과법칙적으로 현현하지만 인간세계는 다소의 자유의지의 발휘· 작동· 작위를 통해서 인과론의 세계 속에서도 비인과의 지평· 차원· 세계를 형성· 건립·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래공창적 사유· 판단· 행위· 실천· 책임 등의 문제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글표현으로는 ‘함께 미래를 여는 일’이라는 말을 쓰기로 하고 일본에서는‘미래공창(未來共創)’이라는 말을 쓰기로 함으로써 서로 다른 어감(한국에서는 공창이 여성멸시적인 공창(公娼)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는 일부 참석자들의 의견을 존중했음)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국제회의는 그래서 여러 가지로 고려·배려·심려해야 할 일이 많다.



10월 3일 목요일

제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셋째 날의 오전회의는 하라다 켄이찌(原田憲一) 지성관대학 전 학장의 ‘비교문명이란 무엇인가?’와 김용환 충북대학 교수의 ‘노년철학과 문명의 대전환’, 그리고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선생의 ‘노년철학과 신문명론–교육과제’ 등을 주제로 하는 발제가 있었다.

김용환 교수만이 시간 조절을 잘해서 대화를 전개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분은 하고 싶은 말이 나무 많아서였겠지만 대화 시간을 남겨주지 않았다.

김용환 교수의 발제에 나오는 봉사라는 말의 내용에 대해서 황진수 교수가 어제의 자신의 발제 내용과 관련시켜서 자원봉사에 대한 법령은 있으나, 시행령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지원체계가 불충분한 점을 지적했다.

거기에 대해서 김용환 교수는 노년의 보수를 기대하지 않는 자원봉사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보수를 받고 하는 일과는 근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이 두 분의 논의를 흥미 있게 듣고 노년학과 노년철학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노년학은 노년문제를 대상 인식적으로 접근하고 노년을 지원하는 제도설정에 중점이 주어진다면, 노년철학은 노년을 사는 사람들의 자각의 문제와 청소년이나 중장년이 노년을 어떻게 보느냐는 타자인식을 함께 아우름으로써 보다 나은 3세대(청소년세대·중장년세대·노숙년세대) 사이의 상화· 상생· 공복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둔다는 데서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회의에서는 김영미 시인의 ‘로마와 경주의 비교에서 보는 노년의 의미’라는 발제에서 세월이 흘러 낡았어도 오히려 더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고령자 인간의 모습을 시적 상상력을 살려서 그려보여 주었다.

원혜영 충북대학교 강사는 ‘성차(gender)와 나이듦(aging)’이라는 발제를 통해서 스피박과 보부아르의 문헌을 살피는 가원데서 여성철학과 노년철학의 상관연동성을 밝혀보려 했다.

그리고 전체토론으로 들어갔는데 주로 11월에 있을 일본 시즈어까(靜岡)현 주최의 국제회의에 대한 준비로 하라다 켄이찌 비교문명학회 회장의 취지 설명을 듣고 질의문답이 있은 후에 내가 한국 측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참고사항을 유념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시즈오까현에서는 ‘노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장수’라는 말로 통일하고 있기 때문에 장수철학이라는 말로 통일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시즈오까현에서는 무병장수 또는 건강장수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 동양포럼에서는 행복장수를 장수철학의 기본으로 삼고,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은 행복수명과의 상관연동에서 성찰한다는 점을 의식해 달라는 말을 함으로써, 3일간의 국제회의를 마감했다.

정상혁 보은군수와 관계 직원 여러분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10월 4일 금요일

어제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린/열리는 날’이라는 뜻의 개천절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국역사상=단군 이래 최다인수가 참가한 조국규탄, 문재인 퇴진 대규모 시민궐기가 있었고 그것이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알았다.

속리산 숲마을에서 있었던 노년철학 6회 국제회의(2019년 10월 1~3일)를 보은군과 공동주최하고 나 자신이 주관해서 끝까지 충실하게 성공적으로 끝맺기 위해서 전력투구하느라 그쪽에 관심을 둘 새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정치상황이 더없이 어렵고 국민은 극단적 대립, 분열, 갈등으로 더없이 아파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조이며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나의 정치적 신념으로 삼고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정치사상이나 체제원리로서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 자신은 그런 사상에 공명하지도 않고 그런 체제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를 구태여 말한다면 친북좌파정권보다는 한미일 안보체제 속에서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을 공고히 하고, 열린 국제관계 속에서 자유무역을 통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직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과 자세정립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건전한 법치가 공평하게 시행되는데 있어서 최고책임자인 법무부장관은 다른 것은 몰라도 투철한 준법정신이 몸에 배어있기를 기대한다.



10월 5일 토요일

오늘은 심신이 몹시 피로하고 위와 장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철저하게 휴식을 취하는 쪽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3일간 계속되는 학술회의를 연달아 주관, 주재하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긴장했고 육체적으로 무리를 해서 그 폐해가 고스란히 쌓여 몸이 반발을 하고 마음이 심한 불평을 표시하는 것 같다.

젊을 때는 하루 밤 자고 나면 거뜬했는데 80대 중반의 노년에 이르고 보니 확실히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약화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의사들로부터 나의 회복탄력성이 나이에 비해서 아주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피로감이 말끔하게 씻기질 않는다. 그저 가만히 쉬어야겠다. 특히 머리를 쉬게 해야 할 것 같다. 평안히 잘 자야지.

Good night! Have a good sleep!



10월 6일 일요일

어제부터 장상태가 좋지 않다. 아프고 쓰리다. 배변을 몇 번씩 하고나서도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병원에 갈 수 도 없고 집에서 푹 쉬면서 나를 찾아준 이 불편함의 메시지를 헤아려 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청소년기와 중장년기를 거치면서 노숙년기의 중반(8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이르게 된 지금까지 장 때문에 골치를 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특히 80대에 들어서면서 나의 사고와 판단과 행위가 뇌에서 보다는 장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니다. 뇌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장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다.

일본의 한 웹진 ‘생명과학정보실’의 대표이사이자 편집자이자 기자인 나가누마 타카노리(長沼敬憲)가 쓴 ‘장뇌력’이라는 책에 의하면 100세시대를 살아낼 힘은 뇌가 아닌 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장뇌력을 갈고닦아 본디의 생명력을 회복하자고 외치고 있다. 그는 “뇌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장이 이끄는 대로 느끼며 살자”고도 한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요즘에 와서 나날이 체감하는 것은 장의 상태가 좋으면 뇌작용도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발생학적으로 뇌보다 훨씬 오래전에 장이 생겨났고 생명작용의 중추적인 역할을 뇌보다 장이 훨씬 더 오래 담당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뇌를 발달시킨 덕에 고도의 지성을 갖추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뇌가 주인행세하기 시작한 탓에 목숨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작동하고 있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장을 모체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데에 나는 동감이다.



10월 7일 월요일

새벽 3시 20분, 마침 트로이 윌슨 오건(Troy Wilson Organ)의 ‘Philosophy and the Self: East and West(Selinsgrove: Susquehanna University Press:1987)’를 읽다가 젊은 때는 시를 쓰는 시기이고 나이든 때는 철학하는 시기라는 언급이 있어서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쇼펜하우(Arthur Schopen-hauer·독일의 염세철학자, 1788~1860)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그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를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청춘—시: 노년—철학이라는 대비에 직접 연결되는 것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젊은 때 / 나이든 때

의지보다 지성 / 지성보다 의지

행복의 시기 / 불행의 시기

세상사를 멀리서 봄 / 세상사를 가까이서 봄

만족을 모르는 행복추구 / 불행할까봐 두려움

시간이 늦게 간다는 느낌 /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

죽음은 안 보인다 / 죽음이 가깝다

인생은 길다는 느낌 / 인생은 짧다는 느낌

계획을 많이 세움 / 추억 속에서 삶

소유욕은 적다 / 소유욕이 더하다

주위에 과민 / 주위에 둔감

세상사 외면에 관심 / 세상사 내면에 관심

지력이 왕성 / 지력이 쇠퇴

자기인식 부족 / 자기인식이 시작됨

지식을 축적 / 지식을 반성

불안의 시기 /휴식의 시기

좋은 일을 위해 분투 / 체념

환상 /환멸



글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쇼펜하우어의 나이든 때의 모습과 특징에 공감 할 수 없는 면이 많다. 거의 내 견해와는 맞지 않는다. 그의 철학이 대체로 염세적인 경향이 있는데, 노년관도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젊어서는 시를 쓰고 나이 들어서는 철학한다는 말은 마음에 든다. 내 경우에는 젊어서는 (사회)과학을 했고 나이 들어서는 철학(공공철학과 노년철학)을 하게 되었지만 시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았으니까. 역시 나이 들어 철학하는 삶이 제격인 것 같다.



10월 8일 화요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이 들어가면서 생각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죽어가게 되어 있는데, 나 자신이 가장 나다운 때가 언제일까? 생각할 때일까, 느낄 때일까, 괴로울 때일까, 아니면 즐거울 때일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의 경우에는, 그것도 85년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체험‧ 경험‧ 증험‧ 효험해본 바로는 내가 아플 때, 아주 심하게 아플 때,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겪어야하는, 견디어 내야하는 바로 그때,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의식이 한계상황에서 나 자신이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은 다른 사람과 교류‧ 교환‧ 공유할 수 있다. 즐거움이나 기쁨은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 통할 수도 있다. 함께 나누고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즐거움과 기쁨이 크고 넉넉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픔은 홀로 겪어야하고, 견디어 내야하고, 이겨내야 한다. 불교는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그리고 죽는 것은 네 가지 괴로움(四苦)이라고 규정하고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또 괴로움과 아픔을 합쳐서 고통(苦痛)이라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 자신은 괴로움도 남과 함께 나누고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이나 기쁨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 어느 것과도 다른 것이 아픔이다. 아플 때, 심히 아플 때, 나는 가장 깊은 뜻에서 ‘나’ 일 수 있다. 그래서 감히 나는 단언한다.

‘나는 아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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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5.24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9월 25일 수요일

집 가까이 있어서 자주 들르던 서점이 없어지고 그자리가 오랫동안 비어있었는데 며칠 전에 카페와 돼지갈비집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근처에 카페와 식당은 많이 있지만 서점은 거기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것조차 없어져서 못내 아쉽다.

내게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에 불과하지만, 카페나 식당보다는 서점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데,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주변인적소수자 일 수 밖에 없는가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세계의 어디를 가나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서점이었고 좋은 서점을 찾으면 마음이 흐뭇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의 숲속을 호기심 가득 설레이면서 철학적 희열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좋았고 영혼이 평안했다.

도심의 거대한 백화점이나 화려한 점포들이 즐비한 번화가에서는 군중속의 고독과 피로가 심신을 목 조이는 것 같은데 서점에만 들어서면 평온하고 안락함에 쌓이게 된다.

어쩌다 서점주인과 대화라도 하게 되면 오랫동안 서점경영에서 얻은 독특한 삶과 책에 관한 경험을 나누어 받는 것이 내게는 귀중한 배움이 되곤 했다.

서점 중에서도 특히 고서점을 좋아하는데 청주에는 없다. 다른 도시에 가 봐도 내가 찾는 고서점이 없다. 그냥 헌책만 모아놓고 싸게 파는 헌책방을 찾는 게 아니다. 출판된 지 오래되어 출판사의 재고도 없어졌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구하기 어렵게 되었으나 지금에 와서 오히려 그것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고본(古本)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늙었으나 나이맛이 있는 현로(賢老)‧ 달로가(達老=인간과 세계에 통달한 노인), 숙로가(熟老=오래 숙성된 포도주처럼 깊고 은은한 맛과 향기가 있는 노인) 있고, 이들을 만날 수 있는 노향이(老鄕=노인들의 향촌)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아쉽다. 그립다.



9월 26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충청북도교육청 강당에서 ‘세대간 공감을 키우는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250여명의 충청북도내의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참석했다.

90분의 강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문제들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1) 오늘의 한국사회는 다른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 극심한 세대간 반감으로 분열된 탓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생기는 사회해체적 갈등‧ 대립‧ 혐오에 합리적으로 대응‧ 대처‧ 지양할 수 있는 교육적방아이 마련되어 있는가라는 문제.

2) 우리의 교육은—정책‧ 방법‧ 이론‧ 목표— 기본적으로 인생 50년 시대의 인생설계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21세기의 한국은—일본과 대만과 함께—세계 어느 다른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인생 100년 시대에 진입하고, 근대화—산업화‧ 공업화‧ 효율화‧ 합리화— 단계를 벗어나 저성장‧ 저출산‧ 초고령화라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대변혁에 대한 교육적 준비 작업은 마련되어 있는가라는 문제.

3) 오늘의 한국사회는 철저하게 중장년세대 (40/ 50/ 60세)중심사회이기 때문에 청소년세대(10/ 20/ 30세대)와 노숙년세대(70/ 80/ 90세대)를 중장년세대의 인간관, 세계관, 가치관으로 수렴, 동화, 종속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고 각각의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폐단이 있는데 세대간 상호소통, 상호배려, 상호존중을 독려하는 교육프로그램이 개발‧ 시행‧ 개선되고 있는가라는 문제.

4) 결국 이 3세대가 함께 살면서 서로 잘 어울리고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사회건설을 지향해야하는데 거기에 걸맞은 인간형성교육을 어떻게 계획‧ 설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

이 자리에 모이신 교장선생님들의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경륜과 원만한 인격으로 인생 100년 시대에 걸맞은 학교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9월 27일 금요일

오늘부터 9월 29일까지 사흘간 노년철학 제5회 국제회의가 장수사회대비 교육의 탐색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청주 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중회의실에서 개최된다. 개회식에서 윤건영 청주교육대학총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나의 취지 설명에 이어 오전 회의가 시작 되었다.

오전회의에서는 교육대학교 초등교육과 이재용교수가 세대간 공감능력함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극심한 세대간 반감으로 인한 세대간 갈등, 대립, 분열에 대응, 대처, 극복하는데 있어서 긴급한 교육적 과제라는 데서 중요한 지적이다.

최정순 제천중 교장의 발제에서 특히, 아크라시아에 관한 언급이 있었던 것은 21세기에 걸맞은 노년철학적 인간품성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명시해주었다.

선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경우나 악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억제하지 못하는 도덕적 결함을 말하는데 특히 최근 노인, 고령자, 장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청소년세대(10·20·30세대)나 중장년세대(40·50·60세대)의 존경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오후 회의에서는 화당초 교사가 노인문제에 대한 민감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민감해야 할 때 지극히 둔감하고 둔감해야 할 때는 민감하다.

그 다음에 정남중 교사는 중학년 때의 교육과정 가운데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거론되어있고 거기서 삶의 소중함을 각성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음을 보여주었다.

올바른 생사관정립을 위한 교육이 중학교 때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생사관교육이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그다음에 김성윤 두루고등학교 교사가 현재의 세대간 갈등이라는(세대간 전쟁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문제 상황 속에서 의 노인문제에 대응‧ 대처‧ 지양하는 합리적 방안으로써 세대간 평화공존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마디 했다. 오늘의 발제자들의 공통점은 장수사회대비교육을 저출산‧ 고령화라는 각도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성장이라는 문제의식을 함께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9월 28일 토요일

제5회 노년철학국제회의 이틀째로 오전에 3인과 오후에 4인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1)이철주 청주교육대학교 강사는 초등학교어린이와 노숙년세대와의 좋은 관계짓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각 당사자들의 노력과 그것을 촉진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2)노숙년세대의 정의=개념규정이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3)윤윤병 증평형석중학교 교사는 중학교 학생들의 노인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직접적인 경험과 대중매체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파된 것에 연유했다.

4)김정환 제천여자고등학교 교사는 고등학생과 노숙년세대의 친화맺기 문제에 있어서 서로간의 상생촉진적인 커뮤니테이션을 저해하는 불편함과 비효율성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5)조경애 충청북도교육청 학교혁신과 장학관과 한영란 장학사는 세대통합교육에 관한 초등교육과정과 중등과정의 실상, 개선방안 및 미래전망을 사례중심으로 제시했다.

6)나는 마지막 세션에서 장수사회대비교육의 기본전략으로 세 가지를 약술했다.

첫째, Glonacal(global+national+local)시각을 상호연관적으로 지닐 필요가 있다. 둘째, 공시적(synchronic)과 통시적(diachronic) 접근을 아울러 실행 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년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명론적으로 중장년 남자 중심의 인간관, 가치관, 세계관의 주도하에 여성문제와 아동문제가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가와 함께 상관연동적으로 연구‧성찰‧평가되어야 한다.



9월 29일 일요

제5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셋째 날은 09:00부터 13:00까지 자유토론으로 전개되었다.

거기서 논의된 중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노년철학포럼에서 쓰는 몇 가지 중요어휘 중에는 오늘의 한국인의 언어감각이나 정서에 맞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미래공창’의 ‘공창’이라는 말이다. 청주교대총장은 ‘협창(協創)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3세대(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가 서로 힘을 합하여 함께 새로운 차원을 연다는 뜻으로 협(協)=3개의 힘력 자가 어떤 목표를 향해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징하는 글자와 새로운 차원‧ 지평‧ 세계를 연다는 뜻의 ‘창(創)’이라는 글자를 합친 말이—‘협창(協創)’—어감적으로는 공창(共創)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2)노년철학은 기본적으로 노년세대의 자기성찰‧ 자기반성‧ 자기각성을 지향하는 철학이다. 그러나 노숙년세대만의 철학이 아니라 청소년세대와 중장년세대와 함께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더불어 화해‧ 상생‧ 공복의 길을 찾자는 철학이다.

3)여기서 철학이란 전문가들의 학문적 영역으로써의 철학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지혜를, 사랑을 통해서 발견하거나 산출하려는 인간적 상호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지혜를 꾸준히 찾는 일을 좋아하고(호학=好學) 그것을 즐기고(락학=學樂) 보다 좋은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 (미래협창=未來協創)는 공동의 노력이요 열정이요 용기라는 데 공감을 촉구하는 것이다.



9월 30일 월요일

어제까지 3일간(9월 27~29일) 개최되었던 제5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에서 제시된 문제들 가운데서 특별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충청북도교육청 학교혁신과 조경애 장학관과 한영란 장학사가 함께 사용했던 ‘세대통합교육’이라는 개념어이다.

장수사회 대비 교육의 탐색방안으로 제시된 세대통합교육이라는 문맥에서 제시된 것인데, 세대간 갈등‧ 대립‧ 분열을 세대통합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통합’이라는 것인데, 과연 세대간 갈등을 통합이라는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교육적인 대응인가라는 데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는 이렇다.

통합은 정치공학적 행정기술적 대응은 될 수 있어도 교육적 대응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육이 정치나 행정과 다른 점은, 전자가 기본적으로 권력관계인데 비해서, 교육은 그 근본에 있어서 인격관계라는 데 있다.

그리고 세대간 갈등을 인격관계로 보는 교육적 대응을 탐색하는 입장에서는 세대간 갈등을 원초적으로 세대간 반감의 증폭경향을 세대간 공감능력의 함양을 위한 세대간 상호노력을—대화‧협력‧개신의 지속적인 공동실천—통해서 점진적 성과를 모색한다는 접근방법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런 입장에서 9월 26일 충청북도교육청에서의 강연을 통해서 ‘세대간 공감을 키우는 교육’을 주제로 설정해서 교육공무원들에게 호소했었던 것이다.



10월 1일 화요일

제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가 한국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숲체험 휴양마을에서 오늘부터 3일간(2019. 10. 1.-10. 3.) 보은군과 동양포럼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다.

오전회의(9~12시)는 하세가와 토시히코(長谷川敏彦) 미래의료연구기구 대표이사의 ‘인구전환 이후의 새로운 노년교육·학습론 시안’이라는 발제강연이 있었고 대한노인회 보은지부 간부의 한 사람이 질문한 것을 중심으로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졌었다.

질문의 요지는 현시점에서의 인구학적 추산으로는 2060년경이 되면 한국 사회는 전인구의 반 정도를 6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데, 그런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서의 고령자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하세가외 박사는 솔직히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아직 경험적 데이터가 없어서 구체적인 추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교육·학습이론이 공리공론이 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질문자의 불만이었다.

오후 회의(1시~4시 30분)는 토비오카 켄(飛岡健) 인간과학연구소 소장의 ‘노년철학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이라는 발제강연이 있었고 야마모토 교시 미래공창신문사 사장이 이의를 제기한 데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쟁점은 토비오카 박사가 “모든 문제는 문제로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며, 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는 없다. 노년문제도 그렇다”라고 말한 데 대해서, “문제는 문제로 삼든지 삼지 않든지 문제로 존재하는데, 인간이 그것을 기피하거나 무시할 수는 있어도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노년문제나 죽음의 문제는 인간이 문제로 삼거나 문제로 삼지 않거나 문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하라다 켄이찌(原田憲一) 지성관대학(至誠館大學) 전 학장이나 세꼬 카즈호(世古一穂) 시민활동가도 야마모토 교시 사장과 비슷한 이의제기를 해서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나는 대한노인회 보은지부 간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생 50년 시대의 인간관·가치관·세계관을 가지고 인생 100년 시대의 인간적· 사회적· 세계적 요청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일찍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미니의 세계로의 보험적인 여행을 풍부한 상상력과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잘 살려서,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서로 능력과 지혜를 모아서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또 토비오까 박사는 도쿄대학 공학부 출신의 탁월한 공학도답게 공학적 발상을 분명히 말해준 것이지만, 그동안 노인문제에 대한 철학적 실천을 중점적으로 계속해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상식적으로 당연시되는 일들도, 일단 문제로 삼아서 깊은 성찰을 해나가는 데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명백히 해두었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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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5.10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9월 18일 수요일

어젯밤 손자 믿음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보통 때보다 아주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오전 4시 20분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고, 언제나처럼 기상전의 몸과 마음의 운동을 마치고 화장실에 갔는데, 변이 완전히 막힌 것을 알게 되었다.

생활환경을 바꾸거나 음식이 많이 달라지면 드물게 일어나는 고통스런 증상이다. 2회의 관장과 여러 가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대처하기로 결정하고 우선 목욕을 하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기로 했다.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오전 8시 50분에 드디어 해결이 되었다. 심한 고통이 시원한 쾌감으로 근본전환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계속해온 양생실천이 어떤 상황적 변화 때문에 발생한 내장환경의 악화와 거기에 따른 병리증상에 대해서 자력으로 대처하고 잘 극복할 수 있는 자연치유력을 키워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끔하게 씻어지고 비워진 내장 상태에서 오전 9시 50분에 계피+생강+코코아+레몬+올리고당차, 오전 11시 55분에는 섭씨 60도의 온수+레몬즙 한 컵을 마시며 빈속을 안정시켰다.



잠자리가 달라지고 물과 공기와 음식이 크게 달라지면 젊을 때보다 더 민감해진 노경의 내장감각이 더 심각한 위험을 경고해주는 것 같다. 항상 조심해야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장내의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재조정이 필요했다. 나이들면서 두뇌의 지식보다 내장의 지혜에 더 자주 의지하게 되었다.



9월 19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가천대 객원교수이며 전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김주미씨를 초청해서 한국노인교육의 현주소와 향후방향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듣고 유성종 동양포럼위원장과 김용환 충북대교수와 함께 넷이서 Q&A와 깊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김주미씨는 △100세 노인시대의 양질의 삶 영위를 위한 노인교육의 필요성 △노인교육과 한국인문학의 현주소 △인문학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 △인문학을 통해 인간문제와 노인문제의 답을 찾자 라는 4가지 소제목으로 그동안 대학이나 문화원등에서 노인교육을 담당해왔던 경험과 고민과 개선방안들에 대한 소견을 발표했다.

그리고 김용환 교수의 코멘트가 있었고 유성종선생의 동양일보사 ‘장수사회 철학하는 삶’ 공개강좌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나 자신의 소감은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오늘의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인교육은 예체능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양질의 인문학적 교양을 공유하는 공동학습이 보충, 보완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함께 확인 할 수 있었다. △양질의 인문학적 교양의 내용이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는 21세기의 인문학이 미래학적이며 비교문명론적인 상상력, 사고력, 실천력 함양을 중심과제로 하는 인문학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고전학습의 필요성은 여전하지만 훈고학적, 자구 해석적 독법은 인공지성의 몫으로 전환하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의 도래에 적절히 대응, 대처, 진화할 수 있고 자기와 타자의 미래공창적 상화력, 상생력, 공복(共福)력의 원천으로 삼고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읽기를 과감하면서도 슬기롭게 체득해나갈 필요를 절감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인문학적 교양은 인생 50년 시대를 위한 지식과 기능과 능력을 기르는데 중심이 놓여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생 100년 시대에 걸맞는 인문학적 교양은 지식과 기능과 능력을 AI에 맡기고 AI에게는 인연이 먼 지혜와 경륜과 내공을 길러가는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9월 20일 금요일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인교육은 주로 중장년 세대(40·50·60대)가 노숙년 세대(70·80·90세대)에게 제공하는 것은 오락‧위로‧격려의 서비스프로그램으로 되어 있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중장년세대 중심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의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다.

그것은 청소년세대(10·20·30세대)에게 제공되는 교육프로그램 역시 중장년세대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에 기초한 지식과 기능과 능력을 주입, 전달, 계발하려는 것과 거의 같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중장년세대 중심의 인간, 사회, 국가를 정착시키려는 것이다. 교육이란 주도세력의 가치의식에 맞게 개인과 집단을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다.

그러나 중장년 세대가 청소년 세대와 노숙년 세대를 가르치고 키운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한다. 3세대의 공동학습, 상호학습, 발달학습으로의 발상전환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중장년 세대는 일찍이 청소년 시기를 경험했지만 노숙년 시기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바른 인식, 이해,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르치기 보다는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배운다는 생각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 아니라 학습이다. 강연이나 강의가 아니라 대화가 주축이 되어야한다. 3세대 공동학습사회를 이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9월 21일 토요일

이번에는 26일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3일째 된 오늘, C씨와 J씨를 만나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우정 어린 담소를 나누었다. C씨는 3개월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고 머리도 아주 하얗게 변했다. 걸어 다니는 데도 몹시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연했다.

누구나 80대가 되면 그렇겠지만 정말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같이 이렇게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J씨도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했는데 좌골에 이상이 생겨서 여러모로 불편하고 가끔 통증이 심한데 여러 가지로 대처하고 정기적으로 약물치료도 받고 있는데 어느 시기까지 견디다가 결국 수술 받아야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고령기를 살아가는 노년기의 아픔과 괴로움은 공통체험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화두가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옮겨졌다. C씨는 요즘 죽음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어렸을 때 예배당에서 주일학교선생님에게 들었고 그 후에 목사님의 설교나 자신이 직접 신구약성경을 읽고 믿게 된 영생관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어 두렵지는 않지만 혹시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과정을 오래 겪게 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면 몹시 걱정이 앞선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J씨는 기독교적 영생관과 불교적 열반관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솔직한 입장을 말했다. 내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이 있었고 두 친구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을 들었기 때문에 현재의 나의 소신을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우주생명이 개체생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개체생명이 본래의 우주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가 일생, 생애, 수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기독교적 영생관의 ‘영생’이나 불교적 열반관의 ‘열반’이나 내가 체감, 체험, 체인 하는 ‘우주생명’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 건강을 염려했고 살아있는 동안 아픔과 괴로움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이 많기를 기원하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재회를 다짐하면서 헤어졌다.



9월 22일 일요일

어렸을 때와 젊었을 때 제대로 배우고 익혀두었어야 할 바른 자세와 습관 기르기를 소홀히 한 탓으로 나이 들어 겪게 된 아픔과 괴로움을 통해서 많은 반성을 하는 나날이다. 늦게나마 삶이란 자기수련이요 자기계발이요 자기개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더도 말고 아주 기본적인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경제적 자립과 지적활동을 유지, 계속, 전개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내 나름의 생활 규칙을 세우고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1. 아침에 온수 두 컵, 정오에 온수 한 컵, 저녁에 온수 한 컵을 레몬즙을 넉넉히 섞어서 마신다.

2. 다행히 식욕은 왕성하지만 과식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식사시간을 엄수한다. 아침식사 오전 7시 30분, 점심식사 낮 12시, 저녁식사 오후 6시.

3.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4.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오후에 30분, 자기 전에 30분 걷는다. 가슴을 펴고 어깨를 세워서.

5. 항상 보다 나은 미래를 그려본다.



9월 23일 월요일

나는 틀림없이 85세의 늙은이=노인이다. 고령자라고해도 좋고 장수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나이든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말뜻은 같은데 느끼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어느 말도 특히 선호하거나 기피하지 않는다.

나의 관심은 나 스스로가 어떤 늙은이냐라는 데 있다. 남이 규정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꼼꼼히 생각해 보았는데 기인한 현상에 상도했다. 나라는 한 노인이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여러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모두 ‘나’라는 한 노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요즘들어서 자주 체감되는 모습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을 추려서 라틴어와 한자와 우리말로 표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Senex cogitans─思老 ─생각하는 노인

2. Senex indignans─憤老─분노하는 노인

3. Senex felix─福老─행복한 노인

4. Senex curans─慮老─ 염려하는 노인

5. Senex sperans─望老─ 희망찬 노인

6. Senex ludens─遊老─ 노니는 노인

7. Senex amans ─愛老─ 사랑하는 노인

8. Senex generativus─産老─생산적인 노인

9. Senex locutus─言老─말하는 노인

10. Senex cantabundus─歌老─노래하는 노인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하나로 수렴되는가 싶으면 여럿으로 확산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폭을 지니는 가운데서 유연한 불확정성, 불확실성, 비결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 (=桓=汗=韓 :한국의 고유의 사상적 핵심개념)이 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얼을 통해서 늙음=나이듦=노화=고령화가 결코 ‘일이관지(一以貫之 :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곬으로 이어지는 것)가 아니라 다양한 변화와 예기치 못한 굴곡으로 흥미롭게 전개되는 경이로운 과정임을 보여줌으로써 한 철학적 자각에 이르는 단초가 되는 것 같다.



9월 24일 화요일

왠지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Nella Fantasia’라는 노래가 내 노년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맴돈다. 최성봉씨와 바다해씨, 사라 브라이트만, 그리고 많은 유명한 국내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면 매번 그 감동이 새롭다. 한국의 현실과 내가 그리는 우리나라의 모습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든 메꾸어 보려는 내 나름의 필사적 노력이 하나의 외국 노래에 대한 애착으로 농축 되는 것 같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환상 속에서 나는 하나의 정의로운 세계를 본다.)

Lì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à

(모든 사람들이 평안함과 정직함 속에서 살아가는)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Come le nuvole che volano

(막힘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처럼)

Pien d'umanità in fondo all'anima

(영혼 속 깊은 곳까지 인간애로 충만한)



왜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노래를 몇 십 번 들으면서 이탈리아어 가사에 담긴 뜻을 깊이 살피는데 열중 몰입했을까?

기회는 평등하고 절차는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던 지도자의 선언이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주어진 기회와 자기진영에 속하는 자들에게만 공정한 절차와 불의, 불신, 불법으로 얼룩진 사회, 그래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괴상망측(怪常罔測)한 나라로 전락한 우리의 현실의 한가운데서, 그래도 내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어머니나라요, 아버지나라이기에 내가 거기서 영혼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계–나라–사회를 상상하는 데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기대하는 힘을 얻으려는 몸부림이다.

흔히 젊은이는 미래를 꿈꾸고 늙은이는 과거를 추억한다지만 나는 단연코 No!라고 말한다.─늙은 나는 젊을 때보다 훨씬 더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고.

오늘도 Nella Fantasia의 노래 말이 나의 삶에 싱싱한 생명력을 보태어 준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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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4.26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9월 7일 토요일

나는 문재인과 그의 정치적 동지들이 그토록 목을 매는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남북통일이라는 구실로, 무조건 아부하는 태도가 역겨운데, 북한 쪽의 오만과 대응이 반감을 증폭시킨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전쟁─당시에는 6.25남침이라고 불렀다.─ 때 피난을 못가서, 반년 정도 북한 지배하의 생활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아도 입만 열면 이데올로기 타령을 하고, 과격한 선전 선동에 신물이 나는 나날이었다. 지금 TV 화면을 통해서 보는 오늘의 북한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은 자주 동서남북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고, 교수・ 학자들이나 관료들과 공공철학의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다언무실(多言無實=말은 많은데 내용이 없다)이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자기주장만 장황한 반면 남의 말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미흡하다. 러시아는 과거의 문학이나 예술이나 철학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현재의 러시아에는 몇 번을 가보았으나, 전연 호감을 가질 수 없었다. 문재인 정권과는 국제 감각이 아주 다른 것 같다.



9월 8일 일요일

나는 문재인 정권이 언제나 어디서나 소리 높여 강조하는 공명・공정・정의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 가치를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수용할 수 없다. 문재인이 주장하는 바를 잘 살펴보면 정의를 전적으로 공권력=국가권력의 행사를 통하여 실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의독재=정의가치 실현을 위한 독재에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은 정의는 개개인의 자유(自由)와 자성(自省)과 자제(自制)가 그 기본전제가 될 때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적 사태발전 때문에 개개인의 자유와 자성과 자제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게 될 때에 한해서, 국민적 합의에 의하여 제정된 법적 절차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처하여야 하는 것이다.

공권력의 행사는 집권세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행사되면 사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공권력은 자의적인 인치(人治)의 위험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철저하게 법치(法治)의 원칙을 충실하게 준수하여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는 이러한 의미의 법치감각이 희박한 것 같다.



9월 9일 월요일

조동삼 교수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이원오의 ‘황혼(黃昏)-3’이라는 시(詩)가 마음에 든다.



늙어가는 길...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이 마음과 같이 않고

方向感覺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不安한 마음에

멍하니 窓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好奇心과 希望이 있었고

젊어서는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切實하고

애틋한 親舊가 그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보면

或是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老慾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所望하면서

黃昏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丹楓처럼

해돋이보다 아름답다는 해넘이처럼

그렇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9월 10일 화요일

외국에 와 있는데도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보통사람의 상식적 판단과 너무나 어긋나기 때문에, 국내외의 조롱과 비아양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나라사랑이 입은 상처가 심하게 아리다.

온갖 비리와 부정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을, 절대적 다수의 반대를 묵살하고 법무장권에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국민이 극심하게 분노하고 있다. 대한민국 ‘法務部’가 무법자의 장관임명으로 말미암아 ‘法無部’로 전락되고 말았다는 데에 대한 분격이다.

법질서 위반자를 법질서에 따라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검찰총장의 몫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겪게 되는 비상사태가 발생되었다. 현역 법무장관이 현역 검찰총장과 정면충돌을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에게는 조국과 절대로 갈라질 수 없는 아주 특수한 공동이해관계가 있는 것 같다.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능력과 책임수행 여부가 우리 모두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9월 11일 수요일

일본인의 한국 인식은 원래 별로 좋지 않다. 배용준・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한때 일본 여성들의 뜨거운 열중물입으로 한일관계와 대 한국인식을 상당한 정도까지 개선시켰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천황이 종군위안부와 강제징용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이 있을 후에, 급격히 냉각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비우호적 대일 태도 때문에 긴장관계가 계속되다가, 미국의 끈질긴 종용에 의해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국가가 기본양해가 이루어져 약간의 호전을 보이는가 싶었는데, 문재인 정권의 극단적인 반일감정 외교로 인해서 더 이상의 우호국이 아닌 적대국 관계가 되고 말았다.

한국을 비아냥하고 비판・ 매도・ 악담・ 냉소・ 무시・ 경멸하는 책자도 많이 나왔고, 잡지나 주간지의 기사도 넘쳐난다. 염한・ 반한을 쓴 것이면 무조건 잘 팔린다는 출판사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근의 염한론의 홍수는 비정상적이다.



9월 12일 목요일

오전 11시 30분, 우메다 3번가 17층의 우메노마라는 일식식당에서, 후지가미 회장, 우에모토씨, 야마모토 사장과 함께 점심을 하면서 담소하였다. 우선 토비오카 켄씨를 만나게 되어 대단히 기뻤다는 데에 대하여, 나도 그분에게는 도움을 많이 받았고 배운 바도 많았던 잊을 수 없는 일본인의 한 사람이라고 호응했다.

코마쓰시와 코마니 회사의 협력 사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국제도시 코마쓰 10년 계획이 양쪽의 합의에 의해서 공동추진하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노년철학과 제론토피아 구상도 포함하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말도 있었다.

야마모토 사장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미래공창신문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데 공감을 나누었다.

노년철학 대화모임을 확장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들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구체적인 협조방안을 강구해 보겠다는 말도 있었다.



9월 13일 금요일

일본에 있는 동안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매일 아침에 신선한 여러 종류의 야채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소금버터식빵, 치즈, 소시지, 그리고 밀크 티가 모두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맛이 있다. 양질의 마도 갈아먹는데, 모든 것이 선도가 높고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보다 싸다.

점심에는 연어, 고등어, 가자미, 도미가 맛있게 구어 포장된 것도 그냥 사다 먹으면 되는데,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시금치나 무나, 특히 양배추와 두부를 넣어서 만든 된장국이 구미를 돋운다. 낫또와 일본간장의 배합, 거기에 약간의 와사비를 섰으면 그야말로 진미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즈크라는 해산물이 있는데, 그것도 나는 좋아한다.

저녁에는 가볍게 소화 잘되는 것을 먹는데, 우메보시나, 쓰케모노류를 발효보리를 섞은 밥과 함께 먹는다. 식사 때마다 식후에 아마자케(甘酒)와 요캉(羊羹)을 먹는데, 한국의 감주나 식혜 그리고 양갱과는 아주 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는 일본 것이 더 맛있다.

그러나 나는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먹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것을 먹는다.



9월 14일 토요일

오사카의 우리 집은 작은 아파트지만 살기에 편안하고, 여러 모로 편리해서 좋다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전차역이 걸어서 2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고, 온갖 생활필수품을 고르게 갖춘 슈퍼마켓이 여러 곳에 있으며, 다양한 전문분야의 병원이나 진료소, 약국 그리고 나이 들면 때때로 찾게 되는 정골원, 지압과 안마와 침구의 시술소 등등이 모두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특히 내게는 그 어느 것보다 꼭 있어야 되는 크고 작은 서점들이 가까이 있어서 아주 좋다. 그때그때의 신간서적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서점에서 점검할 수 있고, 더 깊고 넓은 정보, 지식, 지혜를 위해서는 전차 타고 15분 정도를 가면 규모가 크고 구색도 충실한 대형서점이 여러 개가 있어서, 한 바퀴를 돌아보고 오는 것도 힘은 들지만 내게 있어서는 더 없이 행복한 일과가 된다.

세계에 여러 나라들의 여러 도시를 다녀보았지만, 언제나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예외 없이 서점이었다. 서점이 없는 도시는 내게는 사막처럼 느껴진다. 좋은 서점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었다.



9월 15일 일요일

오사카의 우리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조촐한 행복은 아침 일찍─계절마다 다르지만, 요즘은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 일어나 세수, 세면, 세족, 세심을 마치고, 왕복 1km의 오솔길을 걷는 것이다. 한쪽에는 넉넉한 흐름이 심신을 정화시켜주는 강이 있고, 또 한쪽에는 곳에 따라 키 작은 나무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혼과 영을 미화시켜주는 강변의 소로다. 길은 더 멀리까지 펼쳐 있지만 내 체력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500미터를 돌아온다. 아침걷기를 하는 동안에 하루를 시작하는 몸과 마음과 얼을 정리하는 귀중한 1시간이다.

젊은 남녀, 중년의 남녀, 그리고 노년의 남녀가 한결같이 편안한 표정으로 산책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더러는 인사말을 나누고, 더러는 말없이 목례를 나누고, 더러는 그냥 조용히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모두가 이른 아침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청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고 심・신・혼을 말끔히 정화시키는 것 같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기쁨이 불특정다수 타자들의 기쁨과 어우러지는 묘미를 충분히 음미하는 철학의 오솔길이 바로 가까이 있어서 오사카의 우리 집이 좋다.



9월 16일 월요일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새벽 3시 전후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올리브유로 입안 청소를 하고─25분간─, 양치를 하고 온수(+레몬즙) 두 컵을 마신다. 1시간 후에 계피+생강+코코아+레몬+오리고당차. 또 1시간 뒤에 프로바이오틱스 한 알. 세수, 세면, 세심을 통하여 심・신・혼을 세척한다. 평균 3회 배변과 배뇨.

말끔히 비워진 몸과 마음과 얼에 새날의 새 공기를 한껏 채우고, 낡고 상한 공기를 남김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나 나름의 호흡조절운동을 한다. 험한 날이면 방안에서, 그러나 웬만한 날씨면 되도록 밖에 나가서 바깥공기를 호흡하도록 한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와 공기의 질 좋다, 보통이다, 나쁘다는 둥의 기상정보를 일일이 확인해야하기 때문에 대단히 번거롭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걱정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하루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오늘 오후 7시 50분발 제주항공 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는 한국 나름의 삶을 통해서 노년철학 대화를 계속한다. 한국에서 찾는 행복은 일본에서 찾는 행복과 같을 수는 없지 않는가?



9월 17일 화요일

다시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새벽 2시 40분 잠에서 깨었다. 이것은 오늘의 아침을 나열한 것이지만 보통 매일 나의 아침은 이런 루틴으로 시작된다.

깊은 심호흡으로 하루 시작─내장 깊숙한 곳까지 새 공기가 들어가서 묵은 공기를 밀어내고 내장 안팎의 공기순환을 열 번 반복한 다음, 스트레칭─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시에 움직이고 밤새 굳어진 것을 연화시키며 허리를 좌우로 흔들고 팔다리를 위로 펼쳐 올렸다 내렸다 열 번씩 되풀이했다.

그러고 나서 기상!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로 입안을 청소, 소금으로 양치, 곧바로 섭씨 60도의 온수+레몬즙 두컵, 내장상태에따라 3~4회 배변과 배뇨, 몸안과 마음속을 말끔히 비우고 씻어내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계피가루+생강+코코아가루+레몬즙+올리고당을 섞어 만든 계피차 한컵을 마시고 40분 정도의 신문, 유튜브, TV, 프로바이오틱스 한알

오전 6시 오늘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상태가 좋고 맑은 날씨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집밖으로 나가 1 km정도의 아침산책 후, 샤워하거나 세수, 세면, 세족을 끝내고 세심(마음을 씻음)

오전 7시 요쿠르트+견과류+사과 반쪽

오전 7시 30분 기주떡 한조각+야채+식혜 한컵

85세의 내게 있어서 하루의 시작은 다소 복잡하고 주의 깊은 매일 진행되는 루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병원신세 안지고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현재의 노년기 문제인 배변과 배뇨의 이중 장애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양생실천이고 천천히 좋아지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이렇게 해서 커다란 부작용 없이 노년철학대화활동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소박한 일상의 행복이며, 이런 삶을 오늘 이 순간까지 이어오게 된 것에 그저 감사 할 따름이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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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4.12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26일 월요일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 국제회의를 일본 교토에 있는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개회하였다.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저녁 6시까지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발제와 토론이 전개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오전오후의 세션이 끝난 다음에, 카마타 토지 교수가 한국인 학자들을 위해서, 노오(能)을 직접 연출해 줌으로써, 일본전통문화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다. 노오는 죽은 자아 산 자, 저승과 이승이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일본사람들의 사생관 타계관을 잘 보여주는 연출물이었다.

카마타 교수는 내가 일본에서 29년간 철학대화활동을 해오는 동안에 만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소위 르네상스적 인간─만능의 천재─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 일본인 학자다. 오늘 밤에도 세 종류의 피리와 기타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면서, 자작시를 낭송하고 스스로 작곡한 노래를 불러 죽은 자와 산자를 상봉케 하고 이승과 저승을 매개하면서 전후 최악의 한일관계의 한 가운데서도 진정한 한일양국의 우호와 번영을 기원하는 제전을 펼쳐보였다.



8월 27일 화요일

어제에 이어 국제회의가 계속되었다. 오래간만에 시마조노 스스무 교수와 만났고, 그의 발제를 들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원혜영 선생의 ‘반출생주의와 중유(中有)’에 관한 이야기와, 김영미 선생의 ‘아름다운 나이듦과 죽음’의 발제였다. 발출생주의는 어떤 인긴 또는 인간집단이 애초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사고경향을 말하는데, 왜 나를 마음대로 낳아서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느냐고 항변하는 젊은 세대의 출생부정적 문제 제기이다. 여기에 중장년세대나 노숙년세대가 진지하게 대답할 책임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화두로 삼은 것이다. 반응은 아주 좋았다.



또 ‘아름다운 나이듦과 죽음’도 대단히 호의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카마타 도지 교수가 아름다움을 조화와 평화에 연결시키고, 시인을 조화와 평화를 조장하는 힘을 가진 자라고 말한 데 대하여, 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갈등과 대립과 교통을 감내하면서도 그것을 정화・승화・미화시킬 수 있는 힘이며, 그런 힘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일 간의 진지한 철학대화를 살리기 위해서 이견을 제시했다.



8월 28일 수요일

국제회의 마지막 날, 오전회의에서는 유성종 선생 다음에 이어진 오오하시 선생의 발언, 노년철학은 ‘노인의,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철학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노인철학’이 아니라 ‘노년철학’이라는 명칭을 택했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었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들어, 일찍 죽는 경우가 아니면 누구나 자연수레 노년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청소년세대(10, 20, 30대)와 중장년세대(40, 50, 60대)와 노숙년세대(70, 80, 90대) 사이의 상화(相和)・상생(相生)・공복(共福)이 이루어지는 사회건설을 지향하는 미래공창적 철학대화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해 두었다.

일찍이 인류가 경험한 적이 없었던 대중 초 장수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와 경륜과 용기를 키워나가는 시민주도의 상호각성운동이라는 자각을 갖자고 호소했다.

발제자들만 아니라, 참가자 전원의 발언을 들면 뒤에, 발제자들에게 마무리로 한마디씩 말하게 하고서 3일간의 포럼을 닫았다.

미래공창신문사 주최의 제1회 노년철학 국제회의는 성공적이었다는 참가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한층 더 노력할 필요를 느꼈다.



8월 29일 목요일

하라다 회장과 야마모토 사장의 주선과 안내로, 유성종 선생, 진교훈 교수, 김용환 교수, 김영미 시인, 원혜영 박사, 그리고 야규 마코토 박사와 함께 교토 관광명소 몇 군데를 다니고, 점심을 같이하고 헤어져서 그들은 강항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유성종 선생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미래공창신문사가 주최한 제1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와 야마모토 사장을 위해서 혼신의 협력을 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구라 기조 교토대학 교수를 오찬장에서 만났고, 건강을 회복하였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유성종 선생은 오구라 교수와의 재회를 기뻐하며 일행 아홉의 점심값을 지불했다.

하라다 켄이찌 회장과 야마모토 사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다해서, 한국 측 참가자들을 편안하게 일본 체재를 마치고 귀국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마음 써주었다.

좋은 이웃과 만나서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8월 30일 금요일

미래공창신문사 제1회 노년철학 국제화의를 통해서 제기・ 논의되었던 문제 중에서, 10월에 여는 보은군 주최 제6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에서 심화・ 발전・ 공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교육개혁과 미래공창과 신문명론에 관한 인식조정이다.

인생 50년 시대에 마련된 교육론이나 사회복지와 같은 기본적인 제도・ 장치・ 정책은 인생 100년 시대에는 창조적인 기여・ 공헌・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누구나 태어나서 나이 들어 병도 나고 아픔도 겪으면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죽음에 이르는 가정을 50년 단위로 생각하는 것과 100년 단위로 생각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이제는 일찍이 아무도 경험한 적이 없는 아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새로운 삶의 의미와 보람과 역할을 진지하게 살펴보는 것이 노년철학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인생 50년 시대의 문명이 인생 100년 시대에도 그대로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향상・ 발전・ 진화에 미래공창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명개벽이 필요하지 않을까?



8월 31일 토요일

한국의 보은군이 주최하는 제6회 국제회의는 ‘노년철학과 미래공창: 새로운 과학기술과 미래공창과 새로운 문명’이라는 주제로 3세대─청소년세대와 중장년세대와 노숙년세대─사이의 함께 배움과 서로 가르침을 통해서 인생 100년 시대의 시대적・ 상황적 요청에 궁극적・ 적극적으로 기여・ 공헌・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11월에 개최 예정인 일본 시즈오카 현과 비교문명학회가 공동주최하고, 일본의 제1회 장수철학 국제회의에서의─장수철학과 비료문명─ 발제와도 연결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면 지속적인 사고발전을 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세 분의 발제자에게 제안했다.

김용환 교수: 장수철학과 문명의 대전환

김영미 시인: 로마와 경주에서 찾아오는 장수의 의미

원혜영 강사: 젠더(남녀)와 에이징(나이듦)



9월 1일 일요일

오후 4시에 김태정 교수와 그의 아들 김석철 강사가 집으로 찾아왔다. 지난 번 교토의 간사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있었던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에스의 김석철 강사의 발제강연이 훌륭했고 반응이 좋았던 것을 치하하고, 내상 때문에 참석치 못한 김태정 교수에게 자상한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한국에서 온 김영미 시인이 김석철 강사와 협력해서 일본의 와까(和歌)를 한국에로 번역해서 한국인에게 알리고, 한국 시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일본인에게 알리도록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두 사람 사이에 합의를 아룬 것 같다는 것도 지적했다.

좋은 만남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정치적으로는 1965년의 한일수교 이후 최악의 상태에 있는 한일관계이지만, 뜻있는 시인들의 시적 상상력이 보다 바람직한 관계발저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뜻을 김태정 교수와 김석철 강사에게 전하고 격려했다.



9월 2일 월요일

어제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오늘 새벽에는 격통 때문에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 누워 있으면 아픔이 더하여 일어났다. 일본에 오기 전 한국에서는 옆구리가 아파서 고생했는데, 그때도 누워 있으면 더 아파서 일어났었다.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를 찾아온 손님을 정중히 모시고, 나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옆구리가 아팠던 것은 오랫동안 계속된 나 자신의 잘못된 자세와 습관에 연유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었다. 그래서 자세와 습관의 교정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무릎이 아픈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국제회의 참석자들이 야마모토 사장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오늘 새벽에 뜯어보았는데 야마모토 사장과 내가 함께 한국의 참가자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치토세기쿠(千歲菊)’라는 이름의 양갱을 보고 감회가 깊었다. 국화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데, ‘엔넹(延年), 치요미쿠사(千代見草), 요와이쿠사(齡草)’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여, 불로장수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겨져 왔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아달라는 야마모토 사장과 내가 정성을 담아서 마련한 선물이었다. 야마모토 사장과 나의 그러한 섬세하고 정성된 마음 씀이 참가자들에게 전해지고, 맛있게 자시고 오래 살아서 노년철학을 제대로 담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9월 3일 화요일

오전 11시, 우메다 기노쿠니야서점 앞에서 오구라 기조 교수와 야마모토 교시 사장을 만나, 곧장 요도바시카메라 6층의 중화식당에 가서 점심을 함께하면서 담화를 즐겼다.

아주 오래간만에 만났기에 나눌 이야기가 많았지만, 노년철학을 함께 정립해보자고 제안했고, 오구라 교수도 함께해보자고 응답했다. 마음이 든든했다. 오구라 교수의 대학원 수업에 참가하는 다국적 젊은 세대의 생각과 관점과 주장을 포함할 수 있으면 세대간 상화・상생・공복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참신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오늘의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너무 정치적으로 이념화되고 양극화되어 있어서 정치이념이나 정권에 대한 편향에서 자유로운 철학대화운동을 함께 펴나갈 수 있는 젊은 동지를 찾기가 심히 어렵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은 문재인정권의 정치노선을 지지할 수 없다. 일본인 학자들과 한일간 철학대화를 통해서 바람직한 미래공창─gerontopia 건설─을 공동 실현시키려 하는 것이 진정한 보국(輔國)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일=애국・ 친일=매국을 표방하는 문재인정권과는 코드가 안 맞는다.



9월 4일 수요일

외국에 나와 있으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자국에 있을 때보다 국가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더하게 된다. 나는 솔직히 대한민국에 대한 애착은 있으나 문재인에 대해서는 호감이나 존경이 생기지 않는다. 그가 조국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다.

그래서 그가 최고통치자로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에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대한민국은 내 조부모나 부모나 형제자매의 나라이기 때문만이 아니고, 내가 거기서 나서 자란 곳이어서만도 아니다. 역사나 전통이나 문화에 애착을 느껴서만도 아니다.

내가 나의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끼고 거기에 충성심을 느끼고 나의 인간적 자기정체성의 근원으로 삼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나타나 있는 국가이념이─자유・ 법치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과 생명・ 인격의 존엄성・ 시장경제・ 개방적 국제주의─ 나의 신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9월 5일 목요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보아도, 문재인정권의 정치노선을 지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내 나라의 대한 애착과 충성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 국민의 다수가 뽑은 대통령에 대한 애착과 충성을 포옹하는 것이 당연한데, 지금의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라와 겨레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동반자들에 대한 반감과 저항을 포용하지 못해서 고뇌와 갈등이 심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은 대한민국 국민과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집권세력을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유하는 바가 없고,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자기네들과 생각이 다르면 격렬하게 매도하고, 자기들과 같은 편이라고 여겨지면 무조건 감싼다. 문재인 편에 서는 것이 애국이고, 반대편에 서는 것이 매국인 모양인데, 그런 애국관을 나는 용인할 수가 없다.



9월 6일 금요일

왜 문재인과 그의 집권동반자들은 일본을 그토록 싫어할까? 나는 일본을 좋아하는데, 나의 대한민국 사랑과 일본사랑은 상호보완적이다. 나의 한국사랑은 일본 사랑으로 보완되고, 나의 일본사랑은 한국 사랑으로 보충된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일본도 사랑한다.

나는 한국과 일본만 사랑하는 게 아니고 미국도 사랑한다. 한국은 내가 거기서 태어나고 자랐을 뿐만 아니라, 내 영혼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국가이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 일본은 솔직히 나의 철학적 열정을 고스란히 불태울 수 있는 곳이었고, 지금도 철학 대화활동의 공도추진자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끈질기게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조국인 일본을 그들과 함께 사랑한다.

미국은 나의 젊은 시절의 꿈을 마음껏 펼쳤던 곳일 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 선택했고 존자가 거기서 태어나서 자란 고장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사랑한다. 미국이 내세우는 국가이념도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3.22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18일 일요일

어떤 독자가 8월 17일에 올렸던 글 속에 나오는 ‘활명연대(活命連帶)’라는 말의 뜻이 대강 짐작은 되지만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세 종류의 국어사전을 뒤져 보았으나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아서 직접 물어보기 위해 내게 전화를 했다.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가 생각해 온 바를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활명(活命)’이라는 말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조어(造語)이기 때문에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철학대화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아니고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낯선 어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철학운동에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말이 필요하고 그래서 기왕에 있는 말을 새롭게 뜻풀이 하던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말을 말들 수밖에 없다.

활명이라는 말의 뜻은 기왕에 태어난 목숨 = 생명은 어떤 조건, 상태, 현상이 건간에 태어났다는 사실자체를 축복하고 감사하고 존중하고 온전하게 다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던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사상, 견해 등에 전면으로 대치되는 관점, 입장, 주장이다. 개인에 대해서도 그렇고 국가에 대해서도 그렇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극단화, 절대화, 독선화 되지 않도록 신중한 균형감각을 상실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은 노년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어린아이의 출산율이 감소하는 저출산, 저성장, 초고령사회화라는 전대미문의 대변혁을 겪으면서 새로운 생명관‧ 생사관‧ 인간관의 재조명‧ 재조정‧ 재정립이 시급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요청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30년 전부터 앞서서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대책을 간구했던 경험과 대책과 성패가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일철학대화의 효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일간 시민주도의 활명연대를 통해서 슬기롭고 구체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공동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더 없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활명”이란 중명(重命=주어진 목숨을 중히 여기다)이고, 존명(尊命=주어진 목숨을 존중한다)이고, 귀명(貴命=주어진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이고, 전명(全命=주어진 목숨을 끝까지 다한다)이다. 이것은 생명철학적 지상명령인 동시에 노년철학적 대전제이며, 3세대의—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 상화‧ 상생‧ 공복 실현을 위한 공통최우선과제이다.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한다.



8월 19일 월요일

오늘에서야 옆구리 아픔이 실감될 만큼 경감되었다. 나이듦에 따르는 자연스런 증후이며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이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 올 것이다. 기피하거나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될 수 있는 데까지 친숙해지고 아픔을 통해서 무통 평안할 때 소홀히 여겼던 일들을 다시금 꼼꼼하게 되새겨 보는 기회로 선용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특히 아픔이 심해져서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밤중에, 그리고 새벽녘에 몇 번이고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에서 체감되고 뼈를 통해 팔다리로 내려가는 진지한 자문자답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부터 얼마나 더 나이 들어갈지 알 수는 없으나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나는 과연 어떤 나이듦을 바라는가? 아름답게 그리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것? 아니면 슬기롭고 점잖게 나이 들어가는 것? 그것도 아니면 건강하고 풍요로운 나이듦?

내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몸이 몹시 아픈데도 마음은 나이듦의 갖가지 모습을 계속 그려간다.

나이 들어도 낡지 않고 시들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삶.

나이 들어도 싱싱하고 펄펄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삶.

나이 들수록 더 멋스럽고 더 점잖고 더 깔끔한 삶.

죽는 순간까지 설렘을 잃지 않는 나이듦.



8월 20일 화요일

HY야, 80대 중반까지 살아온 내가 심정적으로 가장 깊은 공감을 느끼는 시 한수를 고른다면 누가 쓴 어느 시라고 말하겠느냐고 물었었지?

그때는 내 옆에 앉아있던 기성시인이 어떻게 느낄까가 마음에 걸려서 즉답을 못했었지. 그리고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어서 잊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진솔한 물음에 진솔하게 대답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져서 자백할까.

85세의 내게 가장 진한 감동을 주고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시는 놀랍게도 27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의 “서시(序詩)”인데 노경(老境)의 심심(深心)을 그만큼 나이 들어보지도 못한 젊은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도 영롱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이것은 그의 한없이 맑고 깨끗한 시심(詩心)‧ 시혼(詩魂)‧ 시영(詩靈)이 어우러져서 출산한 생명의 절규였을 거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 中>



젊은 한때 나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를 “별을 헤이는 마음”으로 고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를 바꾸어서 “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로 고쳐서 그것을 내 삶의 지표를 세웠었지.

중장년기에는 주로 일본에서 일본인 벗들과 공공철학대화운동에 몰입열중하고 있었을 때 어쩌다 마음이 허전한 밤이면 정말 뜻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맥주라도 마시면서 되는 이야기,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본 땅에서 한국인인 내가 철학대화운동을 해가는 데서 예상 밖의 온갖 왜곡, 오해, 중상, 모략, 폄하에 부딪히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에도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나는 괴로워했다”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심상풍경(心像風景)이었어.

그러나 이제 나도 명실이 함께 노숙년기에 접어들었어. 내게 주어진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나도 이윽고 그들과 하나가 될 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남은 나에게 주어진 길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표표하게— 걸어가야겠다.”는 윤동주 시인과 나 자신의 상호영통(相互靈通)을 이루게 해주는 시이기 때문에 “서시”는 내게 더없이 귀한 거야.



8월 21일 수요일

오전 10시 이스터항공 ZE 7201편으로 청주 출발, 11시 30분 오사카 도착, 일본 생활 시작.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일본을 좋아하는데, 왜 문재인정권은 일본을 미워하는가? 반일이 곧 매국이요 따라서 친일은 매국이라고 강변하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영락없이 매국노가 되는데, 나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나는 문재인정권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강변하건 간에 지일이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에 따라 한일철학대화를 끈질기게 계속해 왔고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특히 노년철학을 정립하고 의미 있게 노년을 맞이하고, 노년에 이르러야 비로소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삶의 맛과 멋과 보람을 젊으신네들과 공감하고 싶다. 그리고 나이듦이야말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늙으신네들이 자각하고 본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야마모토교시 사장과 내일 11시 30분, 기노구니야서점 앞 관장에서 만나기로 약속.



8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 기노구니야서점 앞에서 야마모토 교시 사장을 만나, 늘 같이 가던 중화식당에 가서 25일부터 열리는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의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협의했다.



1) 한국 측 참가자에게는 숙식비 외에 균일하게 항공료 3만 엔+참가비 3만 엔을 합하여 6만 엔을 지급한다.

2) 김석철 군의 참가는 1일간 예정에서 3일간 참석으로 변경한다.

3) 유성종 선생이 희망한 정통적인 오뎅 석식은 마땅한 데가 없어서 포기한다.

4) 논문집은 일반인에게는 무료 배포한다.

25일 행사장에 갈 때, 교토 다이마루백화점 일구에서, 야마모토 사장과 11시에 만나, 한국 측 참가자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중식을 같이 하고 행사장으로 가기로 약속하다.



8월 23일 금요일

오전 10시, 안마를 받음. 온몸에 안 앞은 데가 없다. 그동안 여러모로 무리가 쌓인 것 같다.

모처럼 이발하러 갔더니 정감 있는 인사로 반긴다. 일본사람들의 손님 관리는 정말 철저하고 섬세하다.

오후 3시에, 안과에서 눈 상태 검진, 이상 없음. 안구피로증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 받음. 안약을 받아 귀가하다.

森次郞 지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한 진화의학 입문(人生を生き抜くための進化医学入門)’ (포리쉬워크Polish Work: 2016)을 완독. 진화의학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강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하여, 인류 진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그런 문제들이 존재하는 이유의 본질을 알게 해준다.

진화의학의 특징은 한마디로 ‘시간’이라는 좌표축을 더해서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이다. 요컨대 삶이란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다름 아닌 나이듦을 뜻한다.

그리고 노화나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병=질병이 아니라 생명의 정상적인 생리현상일 뿐만 아니라 생명진화에 필수불가결의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진화의 과정의 한토막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이나 노화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나 인생 그 자체도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8월 24일 토요일

26일부터 시작되는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국제회의에 임하는 나 자신의 노년철학을 생사관과 의철학에 관련시켜서 정리 요약하면 다음 6개의 라틴어 문장으로 명제화 할 수 있다.

1) Nascor, ergo morior.(I was born, therefore I die.)

2) Vivo, ergo senesco.(I live, therefore I age.)

3) Senesco, ergo sapio.(I age, therefore I awake.)

3-1. Senesco, ergo deleo.(I age, therefore I pain.)

3-2. Deleo, ergo sapio.(I pain, therefore I awake.)

4) Mors est initium novum.(Death is a new begining.)



이것을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라틴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한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出生則入死.

2) 生存則加齡.

3) 加齡則質醒.

3-1. 加齡則感痛.

3-2. 感通則質醒.

4) 死終則新始.



마지막으로 우리말로 요약한다.

1) 나는 태어났으므로 죽는다.

2) 나는 살아 있으므로 나이 든다.

3) 나는 나이듦으로 깨닫는다.

3-1. 나는 나이듦으로 아프다.

3-2. 나는 아픔으로 깨닫는다.

4) 죽는다는 것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8월 25일(일요일) 21:10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오래간만에 미야모토 히사오 교수를 만났다. 그동안에 여기저기서 일본어로 타자론이나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말했던 것을 일본어와 프랑스어로 재정리하고 그것을 프랑스어와 일본어로 출판하는 수고가 많았다는 것 같다.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표현상의 차이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김용환 교수가 ‘장수시대 장수윤리’라는 책을 충북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했다. 동양일보에서 매월 두 번씩 열고 있는 공개강좌에서 강연하고, 앞으로 강연할 예정인 ‘장수윤리론’을 책으로 정리해 놓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하다.

하라다 켄이찌 회장이 안내하여준 순일본적 식당에서, 유성종 선생, 진교훈 교수, 야마모토 교시 사장, 하라다 회장, 나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담소하였다.

유성종 선생이 일본의 진짜 오뎅을 맞보고 싶다고 해서 유명한 오뎅집에 갔었는데, 손님이 초만원이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 돌아와 보니, 키타지마 기신 교수와 오오하시 켄지 선생, 시바타 구미코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내일부터 시작한 학술회의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말을 하고서, 쉬도록 했다.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1.12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12일 월요일

잠견자박(蠶絹自縛:누에가 자기가 만든 고치안에 갇혀서 밖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말이 생각난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조 최초의 나라인 북위(北魏)의 고승 담란(曇鸞, 476-542)의 ‘논주(論註)’라는 책 속에 나오는 말인데 자기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 갇혀서 외부세계의 들어야 할 말을 들을 수 없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 무이인(無耳人:귀가 없는 사람)이 되고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없거나 보려 하지 않는 무안인(無眼人:눈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는 변태인간의 경우를 지칭한다.

사인(私人)의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오로지 자기 소신에 따라 자기만의 세계안에 칩거하여 곁눈질을 하지 않는 고고(孤高)한 삶을 견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인(公人), 그것도 한 국가의 최고위 공직자의 경우에는 용납될 수 없다. 다양한 가치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룰 수 있는 자유로운 국민의 삶을 각자의 자주성, 독립성, 차이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것을 국가 전체의 안전보장과 경제발전과 행복추구를 가능케하는 종합예술적 기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위 공직자와 그를 보좌하는 핵심공인들에게는 잠견자박은 본인의 정치윤리적 책무이행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탁된 국민전체의 주권을 훼손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전체를 자기들이 빠져있는 누에고치안에 가두려는 처사는 언어도단(言語道斷: 매우 심하거나 매우 나쁘거나 하여 어이가 없어 말로써 나타낼수가 없는 일)이다.

국민을 반일애국이라는 틀에다 묶으려는 것은 반시대적 잠견자박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8월 13일 화요일

어떤 한국인 여성학자의 학문적인 업적을 높게 평가하고 되도록 널리 알리고 싶어서 조그마한 국제회의에 모시고 의견을 피력하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했었다.

20여명의 국내외학자들이 노년철학에 관해서 자유롭고 활발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런데 마침 내가 사회를 보던 세션에서 그분이 나에게 노년기의 사고와 인식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몇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질문은 가짜뉴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과 어긋나는 뉴스라고 대답했다. 평범한 상식인의 입장을 피력했던 것이다.

그분은 “주로 누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다시 질문했다. 나는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이야기하자면 여당도 야당도 그리고 심지어 청와대도 각자의 이해타산으로 가짜 뉴스를 열심히 생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잠시후 둘째 질문을 했다. Me Too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지나치게 남성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들이 여러모로 고생이 심했고 억울한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진정으로 여남평등이 실현되는 쪽으로 사회발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겪어야할 발달과제로써 필요하고 중요한 뜻이 있다고. 그러나 작금의 사태진전을 주의 깊게 보아오면서 과장과 왜곡과 날조의 위험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며 나의 솔직한 감회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질문은 “촛불집회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라고 던졌다.

나는 학자사이의 진지한 의견교환이라는 입장에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수많은 사람들–특히 젊은 남녀들–이 촛불을 들고 정치적 소신을 공개적으로 표시, 주장, 관철하려는 집단행위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의 발동이기 때문에 그 뜻을 소중하게 존중한다.

그러나 동시에 태극기집회도 열리고 촛불집회와는 다른 정치적 소신을 표출, 주장, 관철하겠다는 집단행동을 공개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참가자수가 더 많으냐라는 측면을 고려하면서도 똑같은 기본권의 발동이라는 점에서 차별해서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와 같은 질(質)의 응답형식의 대화가 있고 나서 얼마후에 어느 지방신문에 게재된 그분의 글 가운데 이날 함께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요약해놨다.

그리고 나에 대해 몇 마디가 적혀있었다. 그 내용은 내가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을 해서 그런지 한국인식이 잘 되어 있지 않고 한국을 폄하하는 보수적이 노인이고 자기는 언제까지나 보수화되지 않고 늘 진보적이 인식과 입장을 지니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글쎄, 나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생각했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80대의 중반을 살아가는 나로써는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이고 보수와 진보의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게 살아오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그리고 학문적인 입장에서 했던 이야기를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이 참 유감이었다.



8월 14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타케나카 히데토시(竹中英俊 전도쿄대학출판회 상무이사, 편집국장)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쿄토포럼이 내가 자진해서 그만둔 후 4년 동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말부터 도쿄대학의 나까지마다카히로(中島隆博 중국철학과 프랑스철학을 아우르는 비교철학분야의 제1인자)교수를 내 후임으로 영입해서 세계철학대화를 본격시동하게 되었고 지난달에 그 첫째모임을 가졌었다는 최신 소식을 전해주었다.

한해 네 번정도 소인수로 수준높은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고 나중에 그 성과를 정리해서 책으로 엮어서 출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우선 쿄토포럼이 제대로 방향설정을 하게 되어 안심할 수 있고 더구나 내 다음 쿄토포럼의 학술활동을 주관할 사람이 다름 아닌 나까지마다카히로교수라면 그의 인간적 품성이나 학문적 능력을 잘 알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크고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뜻도 전해달라고 말했다.

나 자신은 국가와 개인, 시민사회와 기업, 지역간, 남녀간, 문화간, 종교간 등등 소위 일국내 공공성(Intranational Publicness)을 중요과제로 삼았었고 거기서 생겨나는 갈등구조의 해소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 사이를 넘어서는–between&beyond-공공(公共)의 지평을 열어가는데 심열을 기울였다.

일본에서 여러나라 사람들과 함께 시민주도의 철학대화운동을 통하여 성취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여러가지 이유와 조건과 사정 때문에 전 세계적인 스케일의 공공철학을 구상할 수 있는데 까지는 가지 못했었는데 이제 학문적이고 실천적인 기반이 만들어졌으니 전 세계적인 스케일의 공공철학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단계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걸맞은 유능한 사람이 참여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며 쿄토포럼의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이루지 못했던 과제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이 세대간의 공공성의 문제다. 나까지마교수가 공공성의 새로운 차원을 공간적확충–국가에서 세계로–에서 찾으려는데 대비해서 나 자신은 한국을 중심으로 청소년세대와 중장년 세대와 노숙년 세대의 상화(相和), 상생(相生), 공복(共福)을 공동구축하는 철학을 새롭게 엶으로써 공공성의 세대계승생생 (generativity)에 재도전해보려는 것이다.

일본에서 나까지마 교수가 그리고 한국에서 내가 언제나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면서 발전하는 공공(하는)철학을 한층 더 심화, 고양, 확충 할 수 있게되어 기쁘다.

한일간 관계가 정치적 차원에서는 전후최악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일본에도 많이 있지만 연구하는 시민, 철학하는 시민, 대화하는 시민이 주축이되어 보다나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의 이런 심경을 타케나카히데토시 씨에게 토로했고 뜻을 같이하는 철학대화의 벗들에게도 꼭 전해달라는 말로 반가운 전화한담을 아쉽게 끝냈다.



8월 15일 목요일

오늘은 74번째로 맞이하는 광복절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정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고 대한민국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곧 8월 15일이라는 것이 광복절의 국어사전적의미이다. 그리고 광복은 과거에 잃었던 국권을 도로 찾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동아새국어사전 제1판 두산동아).

일본어 사전에는 어떻게 뜻풀이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일본어 사전인 정성판일본국어대사전에는 우선 광복을 1.부흥하는 것, 영광으로 돌아가는 것. 2.일본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지칭한다.로 뜻매김 되어 있고 광복절에 대해서는 (조선어 Kwangbokchol) 대한민국의 축일의 하나, 8월 15일. 일본의 식민지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경축하는 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해방기념일이라고 해설되어있다.

한일양국간의 광복적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독립기념관에서 거행된 74회 광복절 기념 행사에 즈음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를 주의 깊게 듣고 나서 느끼는 솔직한 소감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고와 인식과 입장이 아직도 해방 전의 독립운동적 발상에 머물고 있고 너무나 과거에 얽매여 있어서 한국과 일본과 세계의 미래구축에 한국적 기여를 구상하고 그것을 관계당사국과 더불어 전향적으로 협력해나간다는 포부와 도량이 전혀 들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거에만 매달리고 과거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로부터는, 미래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 21세기의 한국이 대웅, 대결, 대처해야 할 발달 과제가 너무나 많은 이 때에 우리나라의 최고위 공직자의 역사인식과 미래전망이 너무나 빈약하고 비현실적이어서 한사람의 관심있는 시민으로써 자못 걱정스런 염려를 금할수 없다.

정치적으로 해방되고 법적으로 자주독립국가로써의 기틀을 갖추었고 경제적으로도 기적적인 성장발전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영혼이 아직도 충분히 탈식민지화, 탈영토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그의 국정운영이 자못 불안하다.



8월 16일 금요일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고 하는데 1945년의 시점에서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일제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는 자유회복기념일이다.

그러나 해방되고 자유를 찾았다고는 해도 거의 무정부상태였다. 내기억으로는 감격과 불안이 혼재하는 혼돈의 시기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48년의 시점에 이르러 되찾은 국권이 정돈되고 나라의 기틀–국민, 영토, 주권+국제적 승인–을 제대로 갖춘 반공자유민주주의헌법에 기반을 둔 국가건설을 국내외에 선포하게 됨으로서 건국기념일이라는 뜻이 보태어졌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자유를 되찾고 나라가 세워지고 가꾸어지는 가운데도 이성과 감성과 의지의 측면에서 서서히 주권국가의 구성원으로써의 긍지와 명예와 책임의 성장, 성숙이 정치발전과 경제성장과 문화창달을 균형잡고 조화롭게 꽃피워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의식을 2016년 8월 15일의 시점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 탈영토화를 자성, 자인, 자각하는 계기로 삼자는 뜻을 담고 한일양국의 관심공유자들 사이의 진솔한 대화의 광장을 마련했었다.

동양일보가 기획하고 동양포럼이 주관하는 국내외회의를 몇 차례 개최했고 거기서 나누어진 대화내용을 여러번에 걸쳐서 동양일보에 게재함으로써 널리 일반시민들에게 공개한 바가 있다.

나는 사람이나 나라나 나이 드는 존재–시간적 존재(時存)–라고 생각한다. 나이듦이란 기본적으로 나이에 따른 의식과 무의식과 전의식의 변화, 성장,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8월 15일의 의미도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뜻이 새로워지고 그렇게 새로워진 뜻이 새로운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데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도량과 포부를 길러 갈 수 있는 계기로서 뚜렷하게 뜻매김 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2019년 8월 15일 뜻풀이는 한일노년철학 대화를 통해서 생명개벽을 상호자각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활명연대성(活命連帶性=Global Web of Mutual Enlivening and Conviviality)을 함께 진솔하게 심사숙고해보고 필요한 실천활동을 시작해 보는 계기로 삼는데서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일본 쿄토에서 제5회 한일노년철학포럼을 일본의 미래공창신문사주최, 동양포럼협찬으로 개최(8월 26~28일)하게 된 것이다. 활명연대라는 개념은 2015년부터 다양한 장소와 기회에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새시대의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방향으로 설정하고 한일양국의 관심공유자들과 논의 해 왔던 핵심과제의 하나였으나 2019년 8월 15일을 시점으로 보다 깊은 의미탐구와 시민주도의 연대활동으로 이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8월 17일 토요일

8월 15일에는 적어도 광복절과 건국절이라는 두개의 뜻풀이가 필요한데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집권 엘리트들은 한사코 건국절이라는 뜻을 거부, 부정, 말살하려 한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관한 반출생주의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래서 될수있는대로 빨리 철저하게 존재의 흔적을 없애고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국가–반(反)대한민국적인 국가상–를 세우려고 역사와 체제와 이념을 완전히 바꾸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거기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반출생주의자들에게 항거하고 그들이 기획하는 새로운 국가건설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거부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친출생주의 라는 입장을 준수한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민족의 위대한 축복으로 생각하고 그동안의 곤란(困難)극복과 성장발전을 예찬한다. 그래서 광복절이라는 의미이상으로 건국절이라는 의의를 기리고 값지게 기억하려한다.

이것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그리고 한국인을 철저하게 이분화시키고 타협불가능한 극한 대립, 갈등, 분열을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세대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국가의 출생자체가 민족불행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Hell Korea가 당연한 현실인식일 수밖에 없겠지. 해방 후의 혼돈기를 몸으로 체험했고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나같은 노년기의 인간에게는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의 탄생은 커다란 기쁨이고 희망이고 긍지였는데….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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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9.12.22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4일 일요일

젊어서는 머리가 몸을 다스린다고 생각해서 철학을 머리로 했었다. 마음이 머리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학생일때 가깝게 지내던 미국인 선교사부부가 있었는데 한번은 그들이 살던 양옥집에서 양식식사를 처음으로 대접받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중 마음(mind)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뜸 “Where is your mind? (네 마음은 어딨니?)” 라고 물어서 “It’s here(여기요).”이라고 대답하면서 손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Your mind is up here.(네 마음은 여기 위에 있어)” 이라며 머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내가 그때 정확히 어디서 배워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은 가슴에 있다는 생각을 버릴수 없어서 머리마음(head-mind)과 가슴마음(heart-mind)이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선교사부인이 “Wonderful!” 이라며 좋은 생각이라고 나를 격려해 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그렇다. 마음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있다. 나중에는 마음은 두뇌작용에서 나온다는 학설도 듣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아마 70대에 들어서면서– 머리가 아니고 몸으로 철학하게 된 변화를 자각하게 되었다. 이론인식이 아니라 신체감각이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자각이 생겨났다. 아니다. 내장감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내장감각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픔이다. 아플때 내장감각이 작동한다.



내가 가족들의 권유에도 거스리면서 병원에 가지않고 고집스럽게 옆구리아픔을 견디고 있는 것은 그 통증을 끝까지 온전히 앓으면서 아픔의 모습을 직시, 직감, 직고함으로써 내장감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철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 청소년 철학이나 중장년 철학과 다른, 그러면서도 3세대상화, 상생, 공복(共福)의 공동실현을 통해서 바람직한 미래공창(未來共創–co-creating futures) 함께 이루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노숙년철학이 될 것 같아서이다.

나이들어 겪게되는 여러모양의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을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 대처, 대결하면서 그 뜻과 보람과 새열림을 함께 체감, 체험, 체득해 나가자는 것이다. 오래살다보니 여러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이 그다지 싫어할 일이 아니라 값진 기회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가치부여를 하면서 친숙해지고 싶다.



8월 5일 월요일

우리말의 아픔에 해당하는 영어는 Pain 인데 그 어원은 라틴어의 Poena와 그리스어의 Poine인데 처벌 또는 대가(代價: 어떤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희생이나 손해 또는 그것으로 인하여 얻어진 결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요 며칠동안 나를 괴롭힌 아픔을 곰곰이 살펴보면 나의 과거의 잘못된 습관 또는 자세에 대한 교정(矯正: 좋지않은 버릇이나 결점 따위를 바로잡아 고침)적 처벌인 동시에 그것들에 대해서 이미 주의를 기울이고 시정할 필요성을 충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을 부려온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는 점을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각성이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온갖아픔을 겪었지만 거의 모두 자업자득이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남을 탓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팠기 때문에 내 분수를 알고 부질없는 무리를 삼가했으며 되도록 매사에 신중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넜다. 그래서 어렸을때나 젊었을때나 중장년때나 아플때가 많았는데도 나이들수록 건강이 오히려 더 좋아졌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건강이 균형잡혀감을 실감한다.

나는 아픔을 통해서 깨닫게 된 내 나름의 철학을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알아야 산다” “아파야 안다” “앓아야 아프다” 아, 그것보다도 거꾸로 말해야 할 것 같다. “앓으면 아프다” “아프면 안다” “알면 산다” 라고.



8월 6일 화요일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다. “서로 자립하기로 했으니 따로따로 가자” 고.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이렇게 말했다. “서로 자립하기로 했으니까 자립한 자리에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겠느냐?”

그는 또 말했다. “그러면 다시 의존관계로 돌아가게 되니까 따로따로 감으로써 자립을 지킬 수 있다.”

나는 말했다. “그것은 자립이 아니고 의존공포다”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진정한 자립은 대화를 위한 상호의존을 두려워하지않는다”라고.

일본을 미워하고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립한 자주적 주체로서의 한국이 일본과 서로 필요로 할때 제대로 상호의존의 길을 열어가는 마음자세를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자립과 자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제까지 영혼의 탈식민자화, 탈영토화를 이루지 못하고 일본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8월 7일 수요일

오늘날 우리의 나라꼴을 한자 네글자로 요약표현하면 “국병민고(國病民苦: 나라일을 책임진 위정자들이 병들어서 국민이 괴로워하고 있다)가 딱 들어 맞는다.

내가 나라안팎에서 30년동안 펼쳐온 공공(하는)철학에서 쓰는 어휘로는 다름아닌 “공환사통(公患私痛: 공직자들이 온통 중병에 걸려있어서 개인들이 심한 아픔을 겪고있다)이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대처방안은 “국병민치(國病民治: 나라 병을 국민이 치료) 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공공(하는)철학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민산국환(民刪國患: 국민이 수술칼을 들어 나라의 환부를 제거)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치공병(私治公病: 개개인이 정신차려서 집권자들의 병을 고친다)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믿고 국정의 책임을 위임했던 최고 책임자와 그를 보좌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걸린 이 질병이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중증 반일강박신경증 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극심한 합병증으로 반미와 친북의 이상심리증후근이 수반되어있는 병리상태다.

문제는 개인의 사적인 정신질환이라면 개인적으로 대처하면 남이 감놓아라 대추놓아라 간섭할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한 국정의 최고책임자와 그를 보좌하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보여주는 공적인 병리상태가 장기간 호전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어 간다면 언제까지나 수수방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개탄할 일이다.



8월 8일 목요일

세대간 대화를 주제로 하는 모임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석했었다. 20대 남녀 각각 한명씩 두사람, 30대여성 두사람과 남성 한사람, 40대와 50대 여성 두사람, 60대 70대 남성 두사람,

그리고 80대 남성 한사람이 원탁을 둘러싸고 서로 마주보면서 허심탄회하게 하고싶은 말을 주고받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20대와 30대–남녀불문–와 60대 70대–여성은 없었지만–사이에 현실인식의 격차, 대립, 갈등이 예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엄연한 사실앞에 마음이 아팠다.

60대와 70대와 80대–남자들뿐이었지만-는 그저 할말을 잃고 슬픈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장 심한 대립은 문재인 정권의 지지기반이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는 촛불집회와 박근혜전대통령에게 동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태극기 집회에 대한 찬반에 관한 것이었다.

20대 30대의 단호한 견해는 촛불집회를 폄하하고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보수골통하고는 대화자체가 성립불가능이고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의 충격적인 것은 대일인식의 극단적인 단절이다. 20대 30대 40대 50대 까지도 반일감정에 있어서는 일치동조현상이 뚜렷했다. 70대 80대는 일본을 무조건 증오의 대상으로 볼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어른스럽게대할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으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왜그렇게까지 일본을 미워하는 걸까?

다른 일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다가도 반일감정만은 놀랍게도 모두들 하나되게하는것을 보면서 오늘의 한국사회는 반일증오만이 최소한의 공동체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 진한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사랑이나 희망이나 상생의 공동체가 아니라 증오와 반감과 원한으로만 존립가능한 공동체로 굳어져가는 것 같아서 처절한 심정이다. 노년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오랜만에 돌아온 조국의 현실이 비통하구나. 되돌아보면 우리나라는 단 한번도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는 태평하고 국민은 평안하다)을 만끽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국난민산(國難民散: 나라에 난리가 나서 국민이 산산히 흩어질 수밖에 없다)의 반복이었다.



8월 9일 금요일

대학시절에 라틴어강좌를 함께 들었던 친구를 오랜만에-적어도 60년이상의 세월이 흐른후- 아주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대학시절 경쟁적으로 라틴어학습에 열을 올렸고 2년째 되던 때부터는 서로의 생각을 우선 짧막한 라틴어로 간결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가지고 영어로 토론을 하곤 했었다. 지도교수님이 미국인 여성이었는데 지금생각해도 그분의 교수법이 탁월했던 것 같다. 덕택에 영어와 라틴어를 동시에 숙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둘다 홍차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근사해 보이는 찻집을 찾아 홍차를 함께 즐기면서 젊은 시절에 열중몰입했었던 라틴어로 서로의 인생살이에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말해 보기로 했다.

그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대학교수를 하다가 20년 전에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데 잠시 일이 있어서 한국에 왔는데 예기치 않게 나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85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한마디로 “Vivereestcogitare(산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Vivereestsenescere(산다는 것은 나이든다는 것)”이지만 세마디를 덧붙여야 그동안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고 했다.

즉 “Senescereestmaturescere(나이든다는 것은 무르 익는 다는 것)”이며 “Maturescereestfructificare(무르익는다는 것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며 “Fructificareestretrocere(열매를 맺는 다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의 “Fructificareestretrocere(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가 특히 마음에 든다면서 뉴질랜드에 돌아가면 내가 제시한 네개의 라틴어 문장에 담긴 속뜻을 차근차근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생사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도 했다.

서로가 멀리 떨어져 살아왔지만 그리고 정말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이지만 젊은 시절의 배움을 함께 했던 기억을 새롭게 체감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부디 앞으로도 행복하라고 마음으로부터 기원하면서 헤어졌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을 남겨놓고 힘주어 악수를 하고 그는 떠나갔다.



8월 10일 토요일

시내에 나갈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다. 타자마자 운전기사가 말문을 열었다.

“요즘 살인적인 더위때문에 짜증이나는데 꼴보기 싫은 인간들 때문에 짜증이 두배, 세배로 심해집니다” 내가 물었다. “어떤 인간들이 그렇게 꼴보기 싫으십니까?”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친북반일을 외쳐대는 인간들이지요. 그들을 몽땅 북한으로 보냈으면 좋겠는데”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가 말을 했다. “요즘 나랏꼴이 엉망이지 않습니까? 관민(官民)이 하나되어 일본의 경제 침략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데 어떤 미친년이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총리에게 사과하고 하야하라고 개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그게 어디 제정신입니까?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토착왜구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에 본때를 보여주고 친일잔재를 싹쓸어 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이는 비슷하게 보이는 택시운전기사 두사람이 정반대의 현실인식을 피력(披瀝)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착찹했다. 나는 한국전쟁때 피난을 못가서 북한식 공산주의를 체험해 보았다. 일본에서 살면서 새로운 철학을 함께 펴보자고 여러나라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서 일본인학자, 언론인, 사회지도자들 그리고 젊은 남녀들과 다각적인 친교도 맺어왔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좋은 점들을 함께 살려서 바람직한 미래공창(未來共創: 미래를 함께 열어감)에 30년동안 전력투구해 왔는데 막상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심한 대일감정의 양극화현상을 직접 겪게 되니 침통한 심정이다.



8월 11일 일요일

2019년 8월 현재 대한민국에는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일본관이 우리의 인식과 태도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하나는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엘리트들이–그 중에서도 특히 조국 (전청화대정무수석서울대교수, 법부부장관 후보자)씨가 앞장서서–주장하는 반일애국, 친일매국론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영훈(전서울대교수, 이승만학당교장)씨가 몇사람의 동료와 함께 펴낸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속에 담겨진지일애국(知日愛國=일본에 관계된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똑바로 알고 어른스럽게 일본에 대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이라는 반론이다.

반일애국론은 친북, 친중을 동반하는 반일, 반미전선을 형성한다. 한미일동맹을 해체하고 북한, 중국, 러시아 경제권에 들어가 반자유, 반자본, 반시장의 경제권형성을 지향한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상천외의 신체제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반공자유민주공화국으로 탄생, 성장,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전통성을 부정하고 인민사회주의공화국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일, 친미, 친서구를 주축으로 삼은 인식과 태도선택은 현재의 한국에서는 체제밖에 밀려나 있으며 야당이거나 재야일 수 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했던 합헌적인식과 태도가 어느새 반체제 이단사상으로 격하된 셈이다. 문재인정권이 시작된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크게 달라졌다.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 평온한 노년을 보내려했는데 반시대적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어 노년의 심기가 너무나 착잡하다. “Quo vadis, Korea?”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5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6.07 21:08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24 20:17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1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5.10 19:4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10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26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9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4.12 20:1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8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3.22 19:28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7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20.01.12 20:07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22 19:26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2.08 20:33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4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24 19:5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3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1.10 21:12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2 이미지기사 동양포럼 동양일보 2019.10.27 20:12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5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9.12.08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7월 27일 토요일

한 사람이 탄생한다는 것은 우주생명이 특정개인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태어난다는 것 (birth)-이고, 죽는다는 것은 다시 우주생명으로 돌아간다는 것-귀환, 귀향(return)-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 동안, 사이를 한 삶, 일생, 생애 (Life)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거기서 와서 거기로 돌아가는 본디, 근원, 본원을 노자는 '도(道)'라 했고 장자는 '원기(元氣)' 라 했고 최재우는 '하늘님(天主)'이라고 하고 '지기(至氣)'라고도 했으며 기독교에서 '하나님(오직 한분이신 절대신)' 이라고 각각 다른 명칭으로 불려왔으나 각각의 속뜻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기독교처럼 인격적 존재로 파악하는 경우와 노자나 장자처럼 비인격적 작동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근본적인 차이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요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동안 살다가 마침내 죽어서 이세상을 떠나게되는 이치를 요약해서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다.

이것을 다시 애초의 생명언어로 정리하면 우주생명이 어느 한사람의 몸을 빌려 이세상에 태어나서 일정기간 개체생명으로 차원전환 한것이며 마침내 죽어서 이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을 사망, 사멸, 사거로 보는 관점과 귀천, 귀원, 귀환으로 보는 관점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본디로 돌아가서 어떤 형태가 될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모든 것이 끝나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차원의 생명이 시작된다고 본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서로 다른 점이다. 나는 죽음=새로운 시작이라는 관점을 견지해왔다.



7월 28일 일요일

나는 자신이 그 동안 나라안팎에서 펼쳐온 '공공(公共)'하는 철학 대화운동의 입장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일정기간 살다가 마침내 죽어가는 점을 어떻게 이해하는 가 라는 생사관(生死觀)을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생각 해 볼 수 있다.

첫째 유형은 주로 나 홀로의 문제로 생각하는 입장인데 그것은 '사(私)'적인 생사관이다.

둘째 유형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국가를 위한 출생과 생명과 사망으로 뜻매김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공(公)적인 생사관이다. 한때 젊은이들이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것을 산화(散華=꽃잎처럼 아름답게 사라져간다)라고 미화한 적도 있었다.

셋째 유형은 사람과 사람사이-개인간, 가족간, 남녀간, 공동체 구성원간, 세계시민간-의 문제로 보는 입장이다. 그것을 나는 '공공(公共)'적인 생사관이라고 정의해왔다.

근대화의 역사는 국민국가형성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국가를 위해서 태어나고 국가를 위해서 살다가 국가를 위해서 죽은 것을 찬양, 고무, 숭상하는 생사관이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화가 성숙하면서 국가보다는 개인의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인간의 탄생과 생명과 사망을 심사숙고하는 경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공적도 아니고 사적도 아닌 공공(公共)적 생사관의 수립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것의 간략하고도 의미가 분명한 표현을 라틴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라틴어표현으로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다 (Inter hominesesse)' 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음을 끝낸다(Inter hominesdesinere)'로 각각 표현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나 자신의 라틴어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사람이 태어는 것을 '사람과 사람사이에 나타난다(Inter hominesapparere)' 라고 하면 출생과 생명과 사망을 아우르는 공공(公共)적 생사관의 라틴어적 표현의 구색이 맞추어진다.



7월 29일 월요일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 영국 경험철학의 시조)이 했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오래 될수록 가장 좋은 것이 네가지가 있다. 오래된 장작은 가장 잘 타고, 오래 숙성시킨 포도주는 마시기에 가장 좋고, 오래 사귀어 온 친구는 가장 믿을만하고, 오래산 작가가 쓴 책이 읽기에 가장 편하다"

나는 85년이나 살았으니 잘타는 장작이나, 고아(高雅)한 풍미의 포도주나, 삼익우(三益友)같은 친구나, 노련한 작가의 명작과 같은 삶의 진미(珍味)를 만끽 할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나자신의 오랜 삶이 누구에게 그 중의 하나라도 제공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스카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영국의 극작가, 소설가)는 "노년의 비극은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젊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라고 잘 알려진 장편소설 ‘도리언그레이의 초상화(The Picture of Dorian Gray)’에서 말하고 있다.

나의 젊은 시절은 너무 어렵고 어두운 시대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일도 없었고 그저 일상적 생활이 힘들고 버거웠다. 그 젊은 한때는 세상이 빛났고 삶이 행복했었는데 이제 나이들어보니 세상이 빛을 잃고 삶이 불행하다는 비교감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여러측면에서 심사숙고해 보아도 가난하고 어려웠던 젊은 시절보다는 노년의 몸과 마음과 얼이 그런대로 집착에서 초연할수 있는 지금이 좋다. 와일드가 천재적인 문필력을진 지니고 있었지만 80년이 넘도록 인생을 살아보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직접 살아보아야 이 맛을 알 수 있다.



7월 30일 화요일

시(詩)와 대화는 노년기를 살아가는 나의 절친한 친구다. 세대간, 남녀간, 지역간, 전문영역간 대화를 펼쳐 오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눌때 사람과 사람이 몸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무엇인가 서로 통한다는 느낌을 공유하게되는 관계-독일어만이 갖는 특이한 표현으로 ‘Mitmenschlichkeit’-가 형성되기도 하고 왠지 서로 어긋나고 부딪힌다는 느낌을 공분(共分)하게 되는 관계-독일어로 ‘Gegenmenschlichkeit’-가 조성되기도 한다.

공감촉진적 인간관계와 대립강화적 인간관계라고도 말할수있을 것이다. 너무 자기방어적으로 상대를 설득시키려는데만 주력하다보면 때로는 공연한 논쟁-원효가 말하는 '화쟁(和諍)'의 정반대-만 불러일으키게 되어 공감형성이 어렵게된다.

법률이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오늘의 동양포럼처럼 시를 통해서 다양한 역경에 처해서 아픔을 겪고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는 시를 함께읽으면서 정신신체상관적 치유효과를 높여보자는 뜻으로 모인자리에서 시가 가진 탁월한 정감성이 주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 노숙년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한 사람으로써 시에 기대하는 것은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상관연동적 공감성이 아닐까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심신이 곤핍하고 영혼이 외로울때 아름다운 시 한수가 얼마나 풍요한 감동과 감격과 감사의 힘을 우리에게 선사하는가?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이 그립다.



7월 31일 수요일

내가 최근에 만난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시를 쓰신 분은 80대의 평범한 주부시인 이월순씨다. 동양포럼의 유성종 운영위원장소개로 알게된 이 분은 교회목사님의 사모님이시고 한 수필가의 어머님이시기도하다. 이 분의 많은 시들 중에서 특히 '미련없이가리라'라는 시가 잔잔하면서도 짙은 감동의 파동을 일으킨다.

미련없이 가리라.

주님 가만히 손 내밀면난 그 손에 내손얹어살며시 미소지으며 일어서리

이제 그만 가자하시면뒤돌아보지않고 따라가리내 사모하는 아름다운 그나라

보고팠던 엄마도 계시고그리웠던 동생도 있는데 나 얼싸 일어서 주님 손잡고 가리

고난 많고 굴곡 많은 세상사조금도 미련없어요.툭툭 다 털어버리고 가리라.내 늘 소망하던 저 좋은 하늘나라

이월순 신앙시집 '왜 나는 그를 사랑하나' (청주: 대한출판 2016) p. 95



8월 1일 목요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강단시인들의 시론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은 생활시인들의 삶에서 빚어진 체험-슬프고 기쁘고 아프고 보람있었던-의 응어리 알갱이들이 수식없이 영롱하게 녹아 스며있는 시에 접하게 될때 시인의 시혼(詩魂)과 나의 생혼(生魂)이 서로 울려서 삶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시란 내게 있어서 과연 무엇일까? 진지한 물음 앞에서 진솔한 응답을 찾는 나에게 평범한 주부 이월순시인이 64세 되던 해-아마도 정식절차를 밟아 시인으로 공인 받고나서-썼던 '시'라는 시가 내게는 어느 유명한 전문가 시인들의 시론들보다 나이듦에서 오는 정겨움을 공감하게 해준다. 난삽한 전문 철학자들보다도 일상에서 철학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친근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처럼.




시는 나의 대변자 말할 수 없는 실망감에 빠져 있을 때 시는 어머니처럼 다가와 나를 일으켜 달래 주었습니다.

시는 베개 위로 흐르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속박 감에 자유를 부르짖을 때 시는 해방으로 다가와 나를 탈출 시켜 주었습니다.

이유 없는 호통 속에 나는 기죽어 여자임을 한탄하고 울고 있을 때

시는 나에게 다가와 이런 때는 시를 써서 네 설음을 토해 내라고 권면을 합니다.

이월순 '내 손톱에 봉숭아물' 64세의 한 여인이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쓴 이야기 시집 (서울: 삶과 꿈) P. 129



8월 2일 금요일

며칠째, 아니 몇밤째, 옆구리가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약국에서 근육통의 일종이라고해서 한방파스를 부치고 기다려 보았지만 조금도 좋아지지 않는다. 나이듦에 따라 전에 없었던 아픔의 증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각오하고 있지만 그래도 옆구리가 아파서 잠도 제대로 자지못하는 아픔은 처음 겪는 일이다.

특히 어제와 오늘은 새벽 1시반에 통증이 아주 심해져서 누워있기가 어려워 일어나서 파스를 갈아부치고 손끝에 힘을 모아 눌러보기도 하고 열심히 안마도 해보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아픔은 나의 모든 경감을 위한 시도를 소용없는 꼼수라고 꾸짖으면서 그저 조용히 참아 내라고 훈계하는것같다. 그리고 정확한 원인도 모르면서 무식한 고집으로 제멋대로 처방을 내리고 통증을 학화 시키지 말고 병원에 가서 겸손하게 진찰을 받아보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 간다고 해도 옆구리가 아플때는 내과에 가야하는지 아니면 외과에 가야하는지 아니 그보다 앞서 어디에서 누구에게 가서 이런경우에 어느병원에 가야 하는지 물어보아야 되는가?

아픔이 심해진다. 견디기가 몹시 힘들다. 똑바로 앉아 눈을 감고 아픔의 진행상황을 지켜본다. 몹시 아팠다가 조금 덜해졌다가 또다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온다. 같은 자세를 계속 할수없게된다. 그래서 앉아있다가 걸어보기도한다.

그래도 여전히 아픔은 아주 심해졌다가 조금 덜해졌다 끝도없이 반복된다. 다행히도 가족들이 모두 평안하게 자고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심한 고통때문에 잠못이루는 사람들-특히 노년남녀들-이 많이 있을 거야. 눈으로 볼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느낄수있는 고통의 공동체-아픔을 함께하는 자들의 동시적 연대-의식같은 것이 있어서 혼자서 견디어 낼 수 밖에 없는 고독속에서도 결코 처절하게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 라는 실존적 진실을 실감한다.

이 실감이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고 아픔을 견디면서 새 아침을 기다린다. 아픔의 암흑이 진할수록 아픔이 완화되는 새벽노을이 그립다. 아니다. 더이상 안아픈 새 아침이 열릴 것이다. 아니다. 더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는 새아침을 열어야 한다. 오전 3시, 아직도 밖은 칠흙같이 깜깜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격통이 진정되는 밝은 동이 트일것이다. 동이트면 새날의 기쁨이 아픔을 이겨내는 새삶이 시작된다.



8월 3일 토요일

기왕에 옆구리아픔이라는 손님이 찾아왔으니 똑바로 마주해서 제대로 앓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현재시간은 새벽 1시 40분. 어제에 이어서 나흘째. 우선 아픔에도 몇가지 종류가 있고 번갈아 나타나고 사라지고 하면서 각각의 존재와 특징을 알려준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쑤시는 아픔-疼痛–을 견디다보면 어느새 무지근한 아픔-鈍痛–으로 바뀌고 다시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아픔-極痛–으로 바뀐다. 그리고 아주 잠시동안 아픔이 아픔을 진정시키는 듯한 무통–아니 통증이 감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듯한–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래서 짧은 잠을 자게 되지만 이내 뼈속까지 침투하는 격통때문에 길고긴 불면의 시간을 견딜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픔은 잔인한 손님이다. 이쪽의 성의나 호의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래서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악물고 견디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85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아픔을 여러번 겪었고 이제 다시금 전에 겪었던 것과는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데 왜 이렇게 심하게 아파야 하는 걸까? 라고.

그러는 동안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길고긴 심통(深痛)과 짧고 짧은 무통(無痛)의 반복순환을 감내하는 가운데서 마침내 체득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명제로 압축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나는 지금 살아있다. 고로 나는 지금 아프다 (Vivo ergo doleo = Now I live, therefore now I pain.)” 아니다. 더 절실하게 깨달은 바를 직설하면 이렇게 명제화 하는 것이 정직할 것 같다. “지금 나는 아프다, 고로 지금 나는 살아있다. (Nunc doleo, ergo vivo = Now I pain, therefore I live.)” 그렇다. 만약 지금 내가 죽었다 (= 죽어있다)면 아프지 않을 것이다. 몸이 아플때 살아있음을 분명하게 직감한다.

‘사람’이란 ‘삶의 뜻을 아는 존재.’ ‘알다’는 ‘앓다’와 그리고 ‘앓다’는 ‘아프다’와 속뜻이 서로 통하는 한글말들이다. 결국 인간은 자각하거나 무자각이거나 아픔을 견디는 존재(homo patiens)이며 그래서 서로 아픔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존재 (homo curans)이다. 아니다. 그냥 존재나 실존이 아니라 각존(覺存=아픔을 깨닫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