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6

동양포럼 김태창 노철개벽 일기 / 6

 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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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노철개벽 일기/ 80대 중반으로 철학하는 나날1


동양포럼 노철개벽일기/ 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 6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19.12.22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4일 일요일

젊어서는 머리가 몸을 다스린다고 생각해서 철학을 머리로 했었다. 마음이 머리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중학생일때 가깝게 지내던 미국인 선교사부부가 있었는데 한번은 그들이 살던 양옥집에서 양식식사를 처음으로 대접받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중 마음(mind)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뜸 “Where is your mind? (네 마음은 어딨니?)” 라고 물어서 “It’s here(여기요).”이라고 대답하면서 손으로 가슴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Your mind is up here.(네 마음은 여기 위에 있어)” 이라며 머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내가 그때 정확히 어디서 배워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은 가슴에 있다는 생각을 버릴수 없어서 머리마음(head-mind)과 가슴마음(heart-mind)이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선교사부인이 “Wonderful!” 이라며 좋은 생각이라고 나를 격려해 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그렇다. 마음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있다. 나중에는 마음은 두뇌작용에서 나온다는 학설도 듣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아마 70대에 들어서면서– 머리가 아니고 몸으로 철학하게 된 변화를 자각하게 되었다. 이론인식이 아니라 신체감각이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자각이 생겨났다. 아니다. 내장감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내장감각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픔이다. 아플때 내장감각이 작동한다.



내가 가족들의 권유에도 거스리면서 병원에 가지않고 고집스럽게 옆구리아픔을 견디고 있는 것은 그 통증을 끝까지 온전히 앓으면서 아픔의 모습을 직시, 직감, 직고함으로써 내장감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철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 청소년 철학이나 중장년 철학과 다른, 그러면서도 3세대상화, 상생, 공복(共福)의 공동실현을 통해서 바람직한 미래공창(未來共創–co-creating futures) 함께 이루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노숙년철학이 될 것 같아서이다.

나이들어 겪게되는 여러모양의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을 피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 대처, 대결하면서 그 뜻과 보람과 새열림을 함께 체감, 체험, 체득해 나가자는 것이다. 오래살다보니 여러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이 그다지 싫어할 일이 아니라 값진 기회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가치부여를 하면서 친숙해지고 싶다.



8월 5일 월요일

우리말의 아픔에 해당하는 영어는 Pain 인데 그 어원은 라틴어의 Poena와 그리스어의 Poine인데 처벌 또는 대가(代價: 어떤 일을 함으로써 생기는 희생이나 손해 또는 그것으로 인하여 얻어진 결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요 며칠동안 나를 괴롭힌 아픔을 곰곰이 살펴보면 나의 과거의 잘못된 습관 또는 자세에 대한 교정(矯正: 좋지않은 버릇이나 결점 따위를 바로잡아 고침)적 처벌인 동시에 그것들에 대해서 이미 주의를 기울이고 시정할 필요성을 충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을 부려온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는 점을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각성이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온갖아픔을 겪었지만 거의 모두 자업자득이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남을 탓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팠기 때문에 내 분수를 알고 부질없는 무리를 삼가했으며 되도록 매사에 신중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넜다. 그래서 어렸을때나 젊었을때나 중장년때나 아플때가 많았는데도 나이들수록 건강이 오히려 더 좋아졌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건강이 균형잡혀감을 실감한다.

나는 아픔을 통해서 깨닫게 된 내 나름의 철학을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알아야 산다” “아파야 안다” “앓아야 아프다” 아, 그것보다도 거꾸로 말해야 할 것 같다. “앓으면 아프다” “아프면 안다” “알면 산다” 라고.



8월 6일 화요일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다. “서로 자립하기로 했으니 따로따로 가자” 고.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이렇게 말했다. “서로 자립하기로 했으니까 자립한 자리에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 지지 않겠느냐?”

그는 또 말했다. “그러면 다시 의존관계로 돌아가게 되니까 따로따로 감으로써 자립을 지킬 수 있다.”

나는 말했다. “그것은 자립이 아니고 의존공포다”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진정한 자립은 대화를 위한 상호의존을 두려워하지않는다”라고.

일본을 미워하고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립한 자주적 주체로서의 한국이 일본과 서로 필요로 할때 제대로 상호의존의 길을 열어가는 마음자세를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자립과 자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제까지 영혼의 탈식민자화, 탈영토화를 이루지 못하고 일본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8월 7일 수요일

오늘날 우리의 나라꼴을 한자 네글자로 요약표현하면 “국병민고(國病民苦: 나라일을 책임진 위정자들이 병들어서 국민이 괴로워하고 있다)가 딱 들어 맞는다.

내가 나라안팎에서 30년동안 펼쳐온 공공(하는)철학에서 쓰는 어휘로는 다름아닌 “공환사통(公患私痛: 공직자들이 온통 중병에 걸려있어서 개인들이 심한 아픔을 겪고있다)이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대처방안은 “국병민치(國病民治: 나라 병을 국민이 치료) 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공공(하는)철학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민산국환(民刪國患: 국민이 수술칼을 들어 나라의 환부를 제거)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치공병(私治公病: 개개인이 정신차려서 집권자들의 병을 고친다)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믿고 국정의 책임을 위임했던 최고 책임자와 그를 보좌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걸린 이 질병이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중증 반일강박신경증 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극심한 합병증으로 반미와 친북의 이상심리증후근이 수반되어있는 병리상태다.

문제는 개인의 사적인 정신질환이라면 개인적으로 대처하면 남이 감놓아라 대추놓아라 간섭할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한 국정의 최고책임자와 그를 보좌하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보여주는 공적인 병리상태가 장기간 호전될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어 간다면 언제까지나 수수방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개탄할 일이다.



8월 8일 목요일

세대간 대화를 주제로 하는 모임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참석했었다. 20대 남녀 각각 한명씩 두사람, 30대여성 두사람과 남성 한사람, 40대와 50대 여성 두사람, 60대 70대 남성 두사람,

그리고 80대 남성 한사람이 원탁을 둘러싸고 서로 마주보면서 허심탄회하게 하고싶은 말을 주고받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20대와 30대–남녀불문–와 60대 70대–여성은 없었지만–사이에 현실인식의 격차, 대립, 갈등이 예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엄연한 사실앞에 마음이 아팠다.

60대와 70대와 80대–남자들뿐이었지만-는 그저 할말을 잃고 슬픈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장 심한 대립은 문재인 정권의 지지기반이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는 촛불집회와 박근혜전대통령에게 동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태극기 집회에 대한 찬반에 관한 것이었다.

20대 30대의 단호한 견해는 촛불집회를 폄하하고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보수골통하고는 대화자체가 성립불가능이고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의 충격적인 것은 대일인식의 극단적인 단절이다. 20대 30대 40대 50대 까지도 반일감정에 있어서는 일치동조현상이 뚜렷했다. 70대 80대는 일본을 무조건 증오의 대상으로 볼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어른스럽게대할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으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왜그렇게까지 일본을 미워하는 걸까?

다른 일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다가도 반일감정만은 놀랍게도 모두들 하나되게하는것을 보면서 오늘의 한국사회는 반일증오만이 최소한의 공동체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 진한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사랑이나 희망이나 상생의 공동체가 아니라 증오와 반감과 원한으로만 존립가능한 공동체로 굳어져가는 것 같아서 처절한 심정이다. 노년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오랜만에 돌아온 조국의 현실이 비통하구나. 되돌아보면 우리나라는 단 한번도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는 태평하고 국민은 평안하다)을 만끽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국난민산(國難民散: 나라에 난리가 나서 국민이 산산히 흩어질 수밖에 없다)의 반복이었다.



8월 9일 금요일

대학시절에 라틴어강좌를 함께 들었던 친구를 오랜만에-적어도 60년이상의 세월이 흐른후- 아주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대학시절 경쟁적으로 라틴어학습에 열을 올렸고 2년째 되던 때부터는 서로의 생각을 우선 짧막한 라틴어로 간결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가지고 영어로 토론을 하곤 했었다. 지도교수님이 미국인 여성이었는데 지금생각해도 그분의 교수법이 탁월했던 것 같다. 덕택에 영어와 라틴어를 동시에 숙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둘다 홍차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근사해 보이는 찻집을 찾아 홍차를 함께 즐기면서 젊은 시절에 열중몰입했었던 라틴어로 서로의 인생살이에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말해 보기로 했다.

그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대학교수를 하다가 20년 전에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데 잠시 일이 있어서 한국에 왔는데 예기치 않게 나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85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한마디로 “Vivereestcogitare(산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Vivereestsenescere(산다는 것은 나이든다는 것)”이지만 세마디를 덧붙여야 그동안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고 했다.

즉 “Senescereestmaturescere(나이든다는 것은 무르 익는 다는 것)”이며 “Maturescereestfructificare(무르익는다는 것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며 “Fructificareestretrocere(열매를 맺는 다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의 “Fructificareestretrocere(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가 특히 마음에 든다면서 뉴질랜드에 돌아가면 내가 제시한 네개의 라틴어 문장에 담긴 속뜻을 차근차근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생사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도 했다.

서로가 멀리 떨어져 살아왔지만 그리고 정말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다음이지만 젊은 시절의 배움을 함께 했던 기억을 새롭게 체감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부디 앞으로도 행복하라고 마음으로부터 기원하면서 헤어졌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을 남겨놓고 힘주어 악수를 하고 그는 떠나갔다.



8월 10일 토요일

시내에 나갈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다. 타자마자 운전기사가 말문을 열었다.

“요즘 살인적인 더위때문에 짜증이나는데 꼴보기 싫은 인간들 때문에 짜증이 두배, 세배로 심해집니다” 내가 물었다. “어떤 인간들이 그렇게 꼴보기 싫으십니까?”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친북반일을 외쳐대는 인간들이지요. 그들을 몽땅 북한으로 보냈으면 좋겠는데”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가 말을 했다. “요즘 나랏꼴이 엉망이지 않습니까? 관민(官民)이 하나되어 일본의 경제 침략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데 어떤 미친년이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총리에게 사과하고 하야하라고 개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그게 어디 제정신입니까?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토착왜구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에 본때를 보여주고 친일잔재를 싹쓸어 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이는 비슷하게 보이는 택시운전기사 두사람이 정반대의 현실인식을 피력(披瀝)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착찹했다. 나는 한국전쟁때 피난을 못가서 북한식 공산주의를 체험해 보았다. 일본에서 살면서 새로운 철학을 함께 펴보자고 여러나라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서 일본인학자, 언론인, 사회지도자들 그리고 젊은 남녀들과 다각적인 친교도 맺어왔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좋은 점들을 함께 살려서 바람직한 미래공창(未來共創: 미래를 함께 열어감)에 30년동안 전력투구해 왔는데 막상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심한 대일감정의 양극화현상을 직접 겪게 되니 침통한 심정이다.



8월 11일 일요일

2019년 8월 현재 대한민국에는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일본관이 우리의 인식과 태도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하나는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엘리트들이–그 중에서도 특히 조국 (전청화대정무수석서울대교수, 법부부장관 후보자)씨가 앞장서서–주장하는 반일애국, 친일매국론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영훈(전서울대교수, 이승만학당교장)씨가 몇사람의 동료와 함께 펴낸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속에 담겨진지일애국(知日愛國=일본에 관계된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똑바로 알고 어른스럽게 일본에 대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이라는 반론이다.

반일애국론은 친북, 친중을 동반하는 반일, 반미전선을 형성한다. 한미일동맹을 해체하고 북한, 중국, 러시아 경제권에 들어가 반자유, 반자본, 반시장의 경제권형성을 지향한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상천외의 신체제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반공자유민주공화국으로 탄생, 성장,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전통성을 부정하고 인민사회주의공화국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일, 친미, 친서구를 주축으로 삼은 인식과 태도선택은 현재의 한국에서는 체제밖에 밀려나 있으며 야당이거나 재야일 수 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했던 합헌적인식과 태도가 어느새 반체제 이단사상으로 격하된 셈이다. 문재인정권이 시작된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크게 달라졌다.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 평온한 노년을 보내려했는데 반시대적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어 노년의 심기가 너무나 착잡하다. “Quo vadis,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