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시간들 - 돌봄에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
권범철,김미정,신승철,이무열,이준용,전형민,조기현,조명아 (지은이),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기획)모시는사람들2023-07-20


































미리보기
책소개
누구나 돌봐야 하는 사람-동물-사물이 있거나, 머지않은 장래에 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고 예감하며 살아가는 돌봄의 시대에, 돌봄의 다양한 얼굴-‘돌봄들’을 가시화하며, 편중이나 불평등을 해소하고, 생명력을 활성화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담고 있다.
정동의 관점으로 돌봄을 이해함으로써, 누구나 돌봄의 주체가 되고 또 동시에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돌봄에 대한 편향적, 편파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번아웃이나 감정 파산을 야기하는 독박 돌봄을 방지하며, 국가나 사회적 돌봄이 미치지 못하는 돌봄 소외지대 해소를 기획한다.
절대돌봄(유년기)-자기돌봄(청년기)-서로돌봄(커플기)-배치돌봄(장년기)-절대돌봄(노년기)의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사랑과 돌봄과 연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방안, 나아가 인류문명이 야기한 기후위기나 생명위기까지를 돌볼 근거와 방법을 모색한다. 돌봄의 현장성, 구체성, 다양성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미학화, 사회화하고 지속가능성과 확장가능성을 열어낸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돌봄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돌봄력’이 충만한 사회-세계를 기약하고 전망한다.
목차
서문
1부┃ 사건, 제도, 관계에서의 돌봄
사건으로서의 돌봄─포기의 가치를 계산하기 ●이준용
포기의 스펙트럼과 돌봄의 스케일
생존주의적 포기자 A
달관한 포기자 B
출가한 포기자 C
연구하는 포기자 D의 결론
제도로서의 돌봄─노동과 돌봄 사이에 던지는 질문들 ●조기현
노동사회에서 초로기 치매 당사자의 경험
돌봄노동과 정동적 평등
일할 수 없는 몸과 일할 수 있는 몸
노동할 권리와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
참여소득과 일자리보장제
질병권과 아픈 몸 노동권
돌봄-노동에서 노동-돌봄으로
관계로서의 돌봄─자기돌봄과 서로돌봄의 관계 ●신승철
돌봄모듈과 탈성장 전환사회
관계의 시공간 축으로 본 돌봄
관계의 배치로 본 돌봄
관계의 체계로 본 돌봄
정동적 평등을 위하여
2부┃ 세대, 젠더, 가치에서의 돌봄
세대로서의 돌봄─영 케어러의 돌봄과 통계적 접근 ●조명아
통계로 본 한국의 돌봄 상황
청년에서 돌봄자로
한국사회의 청년: 청년담론부터 청년돌봄까지
영 케어러의 돌봄
영 케어러, 청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젠더로서의 돌봄─젠더 불평등과 교차성 돌봄에서의 쟁점들 ●조명아
누가 돌봄을 수행하는가
돌봄의 여성화: 왜 돌봄은 여성이 하게 되었을까
돌봄의 교차성
돌봄 문제의 새로운 국면을 향하여
가치로서의 돌봄─자본주의 가치 법칙으로부터 돌봄 해방시키기 ●김미정
오늘날 ‘돌봄’의 자리
우리의 내밀한 감각 속 돌봄×노동
돌봄이 노동이 되기까지
3부┃ 지역과 가정, 커먼즈에서의 돌봄
지역과 돌봄─지역과 돌봄 생활 ●이무열
근대 산업사회 돌봄과 지역 돌봄 생활의 차이
호혜적 돌봄의 장(場)이 되는 지역
위기 상황에 다시 주목받는 돌봄
돌봄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회복 방향
돌봄의 특징과 지역에서 돌봄이 작동하는 힘
지역 안에서의 관계 돌봄과 포괄적 돌봄
커먼즈와 돌봄─생태 위기와 돌봄의 조건 ●권범철
일을 강제하는 사회
돌봄을 전유하는 사회
돌봄의 재구성
재난 행동주의를 위해
가정과 돌봄─아버지를 돌보는 청년의 기록 ●전형민
예고된 가족돌봄청년, 한부모가족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
돌봄과 노동의 커리어
돌봄과 노동의 위기1
돌봄과 노동의 위기2
돌봄과 애도 연습
위험과 절망 곁에서 서로를 책임지는 돌봄
접기
책속에서
P. 222~223 [가정] 돌봄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돌봄이 여성적인 일이며 나약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라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이다. 오래된 가부장제 관습에서 돌봄은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집안일이 되어 여성의 성역할로 강요되었다. 여성의 역할이 된 돌봄은 사회활동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일이면서 공동체도 정부도 관여하지 말아야 할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지금까지도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도맡아 온 생명살림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여성들은 중요한 살림을 외면할 수도 혼자서 감당할 수도 없는, 이중으로 구속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일이자 사적인 활동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돌봄을 이제는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돌봄의 사회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상호역할로 작동되는 제대로 된 돌봄의 시작이다. 접기
P. 234~237 [생태] 오늘날의 생태 위기는 주체성의 위기다. 무엇보다 그 위기를 다룰 수 있는 주체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2021년 11월 막을 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우리가 확인한 건 각국 정부가 여전히 생태 위기를 외면하거나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뿐이다. (중략) 각 개인 모두가 기후 변화에 책임이 있으며 우리가 각자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아무도 책임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문제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생태 재앙의 원인은 어떤 비인격적인 구조다. 그 구조는 온갖 방식의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는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주체, 즉 집합적인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접기
P. 259 [생태] 노동 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가 생산에 시간을 덜 쓸수록 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은 202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영국이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2025년까지 연간 1억 270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영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21.3%에 해당하고, 스위스의 한해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 양이다. 이렇듯 기후 비상사태 상황에서 노동 시간 단축은 필수적이다. 접기
P. 187 [젠더] 우선 돌봄의 책임은 여전히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그와 관련하여 돌봄 수행의 여성 젠더 편향성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셋째, 돌봄의 외주화는 자연스러워졌다. 각종 도움 서비스는 이미 커다란 시장, 산업의 영역 속에 놓이게 되어 버렸다. 이때 돌봄은 저렴한 노동력 상품으로 통용되며 그 행위 자체가 폄하되는 악순환 속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돌봄을 수행하는 일은 여전히 기피되거나 폄하되는 일을 벗어나지 못한다. 넷째,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돌봄이 그것을 수행하는 측의 입장 위주로 사유되다 보니, 돌봄의 또 다른 주체인 돌봄 받는 측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돌봄이 관계적이며 정동적인 활동이라는 점도 망각된다. 접기
P. 161~162 [제도] 지난 20여 년 동안 노인돌봄에 대한 인식과 가족 내 주돌봄자의 역할이 상당히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돌봄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혀졌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의 노인돌봄만 하더라도 여성, 주로 그 집안의 장남이나 아들의 배우자인 며느리가 맡아서 수행했으나, 친자녀 돌봄 규범이 확산되었다. 또 노인들이 돌봄을 가족에게만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사회 서비스와 제도를 이용하고 있으며, 비혈연 관계자에게서도 돌봄을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새로운 돌봄 형태의 등장, 돌봄 유형의 다양화를 의미한다. 접기
P. 175 [제도] 돌봄자에 대한 대부분의 정책이나 제도는 진행형 위주다. 현재 돌봄 중인 이들이 돌봄을 ‘잘’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돌봄이 종료된 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사회적 관심은 진행형보다 적다. 이 절에서 돌봄 종료 이후의 정책 부재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돌봄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정책의 근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즉, 이들이 돌봄을 ‘잘’하기 위한 지원보다 돌봄 제공자가 어떤 경우든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고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접기
P. 211 [지역] 지역의 돌봄은 제한적(부분적) 돌봄을 포함해서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서로돌봄으로 주민은 돌봄당사자와 돌봄제공자 이중의 역할을 한다. 또 복지 및 셀프케어와 함께 호혜적 돌봄으로 구성된다. 역설적으로 돌봄의 범위는 포괄적인 돌봄을 위해 전국 단위가 아니라 관계의 강렬도와 밀도가 높은 지역 단위가 될 수밖에 없다. 지역은 이렇게 다양성에 기초해 개별적인 돌봄을 제공하면서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연결되어 전일적인 삶이 가능한 포괄적 돌봄을 특징으로 한다. 접기
P. 53~54 [관계] 치매가 시작된 당사자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주변 사람들은 낯설어진 당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서서히 거리를 둔다. 갈 곳도 마땅치 않다. 돌봄 기관들은 대부분 신체가 노쇠한 노년의 치매 당사자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인지 기능이 저하됐을 뿐, 아직 팔다리에 힘이 넘치고 활동적으로 무언가 하고 싶은 초로기 치매 당사자에겐 맞지 않는다. 어떨 땐 어르신들이 ‘젊은데 왜 이런 곳에 오냐’며 타박하는 경우도 있으니, 초로기 치매 당사자는 몸도, 마음도 오갈 곳이 없다. 사회적 관계가 위축되고 고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많은 초로기 치매 당사자들은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때 일은 곧 고립을 해소하고 사회적 관계의 회복되며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무엇이다. 접기
P. 225 [관계] 자기돌봄 없이 사회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상대를 돌보는 일은 자신을 소진하고 어느 순간 스스로를 돌봄 생활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일방적인 희생은 결코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외부로 연결되어 상대를 돌보는 일이 횡적이라면 자기돌봄은 종적인 돌봄이다. 이 둘의 관계는 격자무늬처럼 짜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횡적인 상대돌봄 없이 종적인 자기돌봄이 깊어질 수 없다. 종적인 자기돌봄 없이 횡적인 상대돌봄이 계속될 수 없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아’와 ‘취향’이란 이름으로 자신에게 감사하면서 자기를 돌보고 있다. 접기
P. 253 [관계] 그러니까 돌봄은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보살피기 위해 형성하는 관계이자 활동이며 그 영역은 인간 자연뿐 아니라 비인간 자연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돌봄은 ‘우리’를 만드는 일이며, 따라서 커먼즈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우리에게 돌봄이 아니라 일을 강제하는 사회다. (중략) 한마디로 돌봄을 위해선 돌봄이 필요하다. 접기
P. 225 [가치]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는 건강하게 상대를 돌볼 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은 자기의 자질과 능력을 계발하고 타자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다. 때에 따라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적절한 휴식과 운동으로 몸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내부적 자기돌봄이 있어야 상대를 기쁘게 돌볼 수 있다. 자기돌봄 없이 사회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상대를 돌보는 일은 자신을 소진하고 어느 순간 스스로를 돌봄 생활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접기
P. 22 [세대] 이 시대의 청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N포세대’다. N포세대란 연애·결혼·출산·직업 경력 등을 넘어 생명까지 N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표현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쟁 과열 상황은 무려 8할의 구직자 청년에게 포기를 강요했고, 경제적 가치 아래 기존 도덕적 가치 전반을 다시 계산하지 않을 수 없게 내몰았다. 그런 사회적 고통에도 적응해 버린 것인지 N포는 유행이 지난 대수롭지 않은 말이 되어 버렸지만, 그만큼 우리가 포기를 하나의 대처 전략으로 활용했던 이유와 양상을 더 명료하게 분석하고 ‘포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재확립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접기
P. 149~151 [세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990년 1.57명, 1995년 1.63명, 2000년 1.47명, 2005년 1.08명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중략) 90년대생 영 케어러의 형제자매는 더 이상 전통사회와 같은 대가족 내에서 돌봄을 수행하지 않는다. 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베이비부머 세대만큼 형제자매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부모 돌봄을 수행하는 데 오롯이 혼자서 감당할 몫이 상당히 증가한 것이다. 둘째, 가족 내에서 돌봄을 수행하면 여전히 가족의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잘 드러난다. 아픈 가족이 발생하는 가족 위기가 닥치면 제도 등 외부에 의존하기보다 우선적으로 다른 가족의 노동력에 의존하게 된다. 접기
P. 119 [정동] 자기돌봄을 배제한 서로돌봄이 되지 않도록 시민성 과정을 개입시키는 것도 필요하며, 동시에 서로돌봄에서의 거리조절을 통한 시민성 과정이 개입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사물돌봄과 생명돌봄 등의 배치돌봄에서의 정동적 불평등 발생에 대한 위치조정과 배치의 재배치라는 미시정치에 정동적 개입이 요청된다. 정동적 불평등과 정동적 부정의가 생기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는 정동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완성형은 없으며, 과정형이자 진행형이며, 끊임없이 배치를 재배치하고 거리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권범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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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장(커먼즈) 연구자.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계간 『문화/과학』, 생태적지혜연구소 협동조합, 동아대 융합지식과사회연구소 등에서 활동한다. 공통장, 돌봄, 생태, 예술을 엮어서 사고하며 활동하는 데 관심이 있다. 『예술과 공통장』, 『돌봄의 공간들』(공저), 『기후 돌봄』(공저), 『돌봄의 시간들』(공저), 『지식을 공유하라』(공저) 등을 썼고, 『역사의 시작』, 『로지스틱스』, 『빚의 마법』,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을 옮겼다.
최근작 : <문화과학 126호 - 2026.여름>,<문화과학 125호 - 2026.봄>,<돌봄의 공간들> … 총 27종 (모두보기)
김미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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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문학동네』 평론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움직이는 별자리들』 등이 있다.
최근작 : <젠더>,<비평포럼>,<문화과학 119호 - 2024.가을> … 총 25종 (모두보기)
신승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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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연구자이자 활동가, 그리고 글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2023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생의 마지막 4년 동안 생태적지혜연구소를 만들고, 동료들이 저마다 숨은 역량을 풀어낼 수 있도록 북돋우며 돌보는 ‘연결자’ 일을 했다. 저서로 『기후전환사회』(2022), 『정동의 재발견』(2022), 『떡갈나무 혁명을 꿈꾸다』(2022), 『지구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2021), 『모두의 혁명법』(2019), 『탄소자본주의』(2018), 『구성주의와 자율성』(2017) 등 40여 권을 남겼다.
최근작 : <채식, 공존의 밥상>,<생태 슬픔>,<기후 협치> … 총 63종 (모두보기)
이무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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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는 기획가, 디자이너, 카피라이터,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마케팅커뮤니케이셥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고 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일하고 있다.
최근작 : <돌봄의 시간들>,<개벽의 징후 2020> … 총 2종 (모두보기)
이준용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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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수양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최근작 : <돌봄의 공간들>,<탈성장들 : 하며 살고 있습니다>,<돌봄의 시간들> … 총 3종 (모두보기)
전형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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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및 자립하는 소농학교 활동가
최근작 : <돌봄의 시간들>
조기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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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의 대표. 인지가 저하되는 중인 아버지와 함께한다.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었고, 6년간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퇴원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며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환자와 보호자로, 환자와 보호자에서 시민과 시민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최근작 : <누군가의 곁에 있기>,<[큰글자도서]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총 10종 (모두보기)
조명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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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수료
최근작 : <돌봄의 시간들>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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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 <철학공방 별난>을 기반으로 한 세미나 구성원들이 기후위기의 대응양식인 생태적지혜 미디어를 만들 수 있는 결사체를 형성했다. 이후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일관되게 기후행동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마음을 나누며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양식으로 생태적지혜 미디어 매체를 기획하고 실험했다. 더불어 씨앗조직의 확산에 따라 결사체의 꼴을 갖추어 나갔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연구소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탈성장의 아젠다에 대한 전반적인 구성원들의 결의를 만들어냈다. 연구소는 수입과 지출의 회계에 있어서 군더더기나 잉여를 남기지 않는 순환회계를 작동시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세대교체와 미션과 돌봄으로 연구소 자체에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보려고 한다. 아주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연구소는 낙관과 우애에 기반하여 협동의 경제, 살림의 경제, 연대의 경제를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탈성장 전환운동을 해 나갈 것이다. 접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돌봄 속에서 자라나서, 돌보며 살다가, 돌봄 속에 죽는다
누구나 돌봄의 주체이며, 누구나 돌봄의 대상
돌봄의 시대다. 어느 날 눈떠 보니,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다양한 돌봄 속에서,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었다. 돌봄이 필요한 처지든 돌봄을 감당하는 경우든 우리 모두는 돌봄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다못해, 누구나 자기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대다. 최근 돌봄은 탈성장 전환사회의 마중물로 간주되거나, 거대한 기후위기에 대한 적응과 대응의 방법이거나, 정동을 순환시켜 커뮤니티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활동으로도 간주된다.
전통적으로 돌봄은 여성의 일로 간주되어 왔다. 가정 내에서든 노동시장에서든 여성들이 주로 돌봄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많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봄의 헤게모니(hegemony of care), 즉 이상적인 돌봄자는 대개 중년의, 육아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고착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은 유효하지 않고 자의든 타의든 많은 부분 이미 파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체할 돌봄의 철학, 사상, 양식,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데서 많은 현대사회의 비극이 발생한다.
자기돌봄에서 생명돌봄까지, ‘돌봄들’의 시대
사회학적으로 돌봄이 부각되는 시대 흐름은 돌봄이 사회화 되는 측면과 핵가족화 등으로 ‘개인’ 영역이 확장되면서, 개인에게 돌려지는 부담이 증가하는 측면의 양 측면이 공존한다. 돌봄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이제 본격적으로 개막된 포스트코로나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을 경유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진실은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경유하여 우리가 도달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가정/사회/지구는 ‘돌봄의 세계’이다. 돌봄 속에 태어나, 돌봄 속에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 인생의 기본요건을 충족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우리 세계는 생산과 성장 위주의 시대에서 돌봄 하기, 돌봄 받기의 시대로 이행하는 중이다. 거기에 값하는 윤리, 도덕, 철학, 사상, 상식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인 까닭이다.
이처럼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는 다층적이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돌봄이 순환하고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돌봄 부자도 있고, 돌봄의 소외에 직면한 돌봄 약자나 시민도 있다. 그런가 하면 돌봄으로 말미암아 번아웃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도 있다.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돌봄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라 절대돌봄(유년기) - 자기돌봄(청년기) - 서로돌봄(커플기) - 배치돌봄(장년기) - 절대돌봄(노년기)으로 흐르는 돌봄의 이야기 구조는 우리 삶의 또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독박 돌봄을 방지하고, 돌봄 소외를 소거한다
‘돌봄의 시대’에 돌봄은 사회 일각에서, 특정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누구나 돌보거나 돌봄 받는 처지에 놓여 있는 일상적이며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다. 더 이상 시혜적이거나 예외적인 행위가 아니게 된 것이다. 정동(affect)이라는 활력과 생명력의 입장에서는 돌봄은 능동/수동이 아니라, 둘 다 강렬한 상호작용 속에 있게 된다. 돌봄의 생명력이 살아나는 것이다. 정동으로서의 돌봄을 발견하고 발휘하고 발전함으로써 우리는 돌봄을 받는 상황에서도 돌봄의 대상으로만 방치되지 않고 다시 타자를 사랑하고 돌보는 주체자로서, 타자와 연대할 수 있다. 돌봄에 종사하는 상황에서도 독박 돌봄에 갇히지 않고 사랑하고 돌보고 연대할 수 있다. 모두가 연쇄적인 돌봄의 관계망 속에 존재할 때 돌봄 관계를 일방향적인 관계로 규정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돌봄의 정의와 평등, 돌봄의 지속 가능성, 돌봄의 돌봄까지를 내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돌봄력’ 강화로 돌봄 지속가능성 사회로 간다
우리는 돌봄 없이 살 수 없다. 따라서 돌봄 없이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고 서로 돌보는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는 위장 돌봄(Care Washing) 같은 복지 정책과 시장에서의 돌봄 상품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누구도 서로 돌봄 없이는 식의주(食衣住)와 같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생활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또 공기, 물, 나무 등 자연의 돌봄 없이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돌봄에 대한 안이한 생각과 오해를 바로잡고 돌봄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 누구나 돌보아야 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여는 인문학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
돌봄에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
『돌봄의 시간들: 돌봄에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은 총 3부 9장으로 구성된다. 1부-1장은 사건으로서의 돌봄으로 ‘나’와 ‘나’ 사이에 일어나는 자기돌봄을 살펴본다. 1부-2장은 제도로서의 돌봄으로 한국사회의 제도가 돌봄을 어떻게 규정하고 제한을 두는지 살펴본다. 1부-3장은 관계로서의 돌봄으로 개인이 다양한 관계 내에서 주고받는 돌봄을 살펴본다. 2부-1장은 세대로서의 돌봄으로 최근 자주 언급되는 영 케어러에 대해 논의한다. 2부-2장은 젠더로서의 돌봄으로 돌봄의 젠더 불평등뿐만 아니라 교차성의 관점에서 젠더, 연령, 혼인 여부, 계층 등 확장된 돌봄자 스펙트럼을 소개한다. 2부-3장은 가치로서의 돌봄으로 사회구조의 기반에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갇혀 있는 돌봄의 불평등, 부정의(不正義)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시사점을 제시한다. 3부-1장은 지역과 돌봄으로 말 그대로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돌봄이 지역에서 돌봄 공동체로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부-2장 공유지(Commons)와 돌봄에서는 생태 위기를 시작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에 ‘우리’라는 존재 문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이를 저지하는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한다. 3부-3장은 가정과 돌봄으로 필자가 영 케어러로서 20대부터 30대인 현재까지 아버지 돌봄을 수행해 온 경험을 자전적이고 회고적으로 풀어낸다. 접기
존경하는 신승철 선생님.
일평생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안히 쉬십시요 ..
젠 2023-06-30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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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들


우리 사회가 마주한 다양한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어떤 가치를 배우며 공감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돌봄이나 케어의 경우 특정 사람들을 지칭하거나 사회적 약자, 건강이 않좋은 사람들을 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사회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물과 동물, 사람 등에 대해 확장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고 이런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며 이를 우리 모두가 이해하거나 공감하며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그려나가야 하는지, 책에서는 이에 대해 자세히 조언하고 있다.
물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평가의 기준이 존재하나, 이 책은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며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의미가 주는 교훈적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주로 다루고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들도 더 나은 형태로 성장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인문학 도서이다. <돌봄의 시간들> 누구나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 현실에서 때로는 너무 당연해서, 그리고 굳이 해야 하나 등의 생각으로 인해 돌봄에 대해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책에서도 이런 가치와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부분을 잘 표현하면서도 결국 우리 모두의 노력과 관심, 구체적인 관리법 등을 통해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가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중요성과 관리의 필요성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상대적으로 동물이나 사물의 경우 가볍게 여기거나 생각조차 안하는 분들이 많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이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고 결국 이런 작은 발견과 의미부여, 그리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더 다양한 가치, 긍정의 의미 등도 함께 만나 볼 수 있는 것이다.
<돌봄의 시간들> 이 책도 이런 현실적인 부분과 돌봄이 주는 긍정의 효과와 의미가 무엇이며 이를 현실에서는 어떤 형태로 이해하며 활용해야 하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지금 당장 가족이나 지인 등 가까운 사람이 생각날 수도 있고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효과를 제공하며 공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만나 볼 수 있어서 책이 주는 느낌이 괜찮게 다가올 것이다. 책에서 표현되는 돌봄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어떤 형태로 배우며 활용해야 하는지, 가볍게 접하며 스스로를 위한, 그리고 원하는 방향으로의 활용을 고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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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kidol 2023-07-3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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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돌봄의 시간들
돌봄의 시간들 돌봄에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을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다.이 책의 저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그 문제점들을 하나씩 이야기 한다.돌봄 속에서 자라나서, 돌보며 살다가, 돌봄 속에 죽는다.누구나 돌봄의 주체이며, 누구나 돌봄의 대상이라고 하는데 사실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자신도 돌봄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노동시장에서 돌봄은 여성들의 몫이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돌봄의 속에 있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돌봄의 헤게모니(hegemony of care),즉 이상적인 돌봄자는 대개 중년의,육아 경험이 있는,여성으로 고착화된 측면이 있다.이러한 관념은 유효하지 않고 자의든 타의든 많은 부분 이미 파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체할 돌봄의 철학,사상,양식,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데서 많은 현대사회의 비극이 발생한다고 이 책에서 적고있다.

서로 돌보는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는 위장 돌봄(Care Washing) 같은 복지 정책과 시장에서의 돌봄 상품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자.누구도 서로 돌봄 없이는 식의주(食衣住)와 같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생활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공기,물,나무 등 자연의 돌봄 없이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 책에서는 청년들의 프레임에 비추어진 돌봄의 이야기를 재발명하고 재발견하는 것을 풀어주고 있다.

이 사회에서 청년들이 보는 돌봄은 어떤 모습으로 비추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풀어내고 다양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관점에서 폭넓게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사건으로서의 돌봄으로 일어나는 자기돌봄을 살펴보고,제도로서의 돌봄으로 한국사회의 제도가 돌봄을 어떻게 규정하고 제한을 두는지 살펴보자. 관계로서의 돌봄으로 개인이 다양한 관계 내에서 주고받는 돌봄을 살펴본다.영 케어러로서 20대부터 30대인 현재까지 아버지 돌봄을 수행해 온 경험을 자전적이고 회고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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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GREENOCEAN 2023-07-1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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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들 - 돌봄 시대에 정동의 관점으로 돌봄의 문제를 이해하기

<돌봄의 시간들>은 누구나 돌봐야 하는 사람, 동물, 사물이 있거나, 머지않은 장래에 나에게도 돌봄이 필요핟고 예감하며 살아가는 돌봄의 시대에, 돌봄의 다양한 얼굴을 가시화하며, 편중이나 불평등을 해소하고, 생명력을 활성화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담고 있다. 정동의 관점으로 이해함으로써, 누구나 돌봄의 주체가 되고 또 동시에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돌봄에 대한 편향적, 편파적인 시각을 걷어내고, 번아웃이나 감정 파산을 야기하는 독박 돌봄을 방지하며, 국가나 사회적 돌봄이 미치지 못하는 돌봄 소외지대 해소를 기획한다. 절대돌봄(유년기)-자기돌봄(청년기)-서로돌봄(커플기)-배치돌봄(장년기)-절대돌봄(노년기)의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사랑과 돌봄과 연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방안, 나아가 인류문명이 야기한 기후위기나 생명위기까지를 돌볼 근거와 방법을 모색한다. 돌봄의 현장성, 구체성, 다양성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미학화, 사회화하고 지속가능성과 확장가능성을 열어낸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돌봄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돌봄력'이 충만한 사회-세계를 기약하고 전망한다.

이 책은 많은 초로기 치매 당사자들이 사회적 관계가 위축되고 고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이때 일은 곧 고립을 해소하고 사회적 관계에 해복되며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무엇이다.
"치매가 시작된 당사자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주변 사람들은 낯설어진 당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서서히 거리를 둔다. 갈 곳도 마땅치 않다. 돌봄 기관들은 대부분 신체가 노쇠한 노년의 치매 당사자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인지 기능이 저하됐을 뿐, 아직 팔다리에 힘이 넘치고 활동적으로 무언가 하고 싶은 초로기 치매 당사자에겐 맞지 않는다. 어떨 땐 어르신들이 '젊은데 왜 이런 곳에 오냐'며 타박하는 경우도 있으니, 초로기 치매 당사자는 몸도, 마음도 오갈 곳이 없다."
이 책은 픔을 부정하는 사회는 반대로 건강한 몸을 표준으로 삼는 사회이며, 이런 사회에서 아픈 것은 자기 관리의 실패이자 개인적인 일탈로 낙인찍힌다고 말한다. 건강은 선이고 질병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강화되며, 아프다는 것이 곧 실패한 삶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아픈 몸 노동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간과 노동의 속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말한다. 기존의 경쟁구도와 성과 중심의 구조가 변화해야 하고, 각자 몸의 속도에 맞게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은 치료와 돌봄, 노동을 병행하는 하루 일과를 상정하고 면접, 업부 매치, 협상 전반에 적용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픈 몸을 표준으로 노동을 다시 사유하 때, 모두에게 필요하고 적용할 수 있는 노동과 노동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하게 이분화된 노동의 위계와도 연동될 수 있다.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뿐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여성과 남성, 노인과 젊은이 등 후자의 노동에 비해 전자의 노동이 평가절하되거나 차별받는 상황 자체와 연동될 수도 있다. 표준과 정상을 규정하는 권력을 뒤흔든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다."
이 책은 인간은 돌봄 없이는 어떠한 존재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생명, 사물, 자연, 기계를 일으켜 세우는 기본적인 행위 양식이자 존재력을 북돋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 책은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기본적인 행위임에도 돌봄의 사회적 가치가 저평가되는 이유는 돌봄의 작동원리가 재귀적인 반복, 제자리고 돌아오는 원점회귀성, 비가시성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돌봄은 자본주의가 보기에는 성과로서의 실물이 전혀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는 희생이나 젠더불평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한다.
"먼저 재귀적인 반복은 아침식사 다음에는 점심, 저녁이 행렬을 이루어 반복되는 양상이거나, 빨래를 걷고 개고 나서 다시 새 빨래는 내거는 등의 행위가 반복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재귀적인 반복의 양상은 순환적이지만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 나는 반복이기 때문에, 살림이나 돌봄에는 얼마간의 화음과 리듬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원점회귀성은 돌봄에서 가장 기본적인 양상으로, 어제 놓여 있던 곳에 다시 놓아야 하기 때문에 전혀 변한 것이 없거나 성과 자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외부에 나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살림이 전혀 변한 것 없는 그대로이고 아무런 노력도 가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마지막으로 비가시성에 있어서 돌봄은 그림자노동으로 불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동이기 때문에 가치가 저평가되거나 아예 가치가 누락된다."
영 케어러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콜, 약물의존을 가진 가족 등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 또는 '젊은 사람'(영 어덜트 케어러)를 가리킨다. 좁게는 가족 중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가사, 간병, 감정 노동 등을 수행하는 '18세 미만의 아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은 영 케어러 자체가 한국사회에서 돌봄을 가족 내에서 해결한다는 방증인 동시에 영 케어러들의 형제자매 의존은 또 다른 영 케어러를 여러 명이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돌봄을 사적 영역에 내맡기고 개인의 의지에 따라 돌봄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고유한 삶의 영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청년 담론에 휩쓸려 영 케어러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봄 관점에서 청년 돌봄과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있도록 정보와 참여 경로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 책의 글귀에 공감한다. 정부 주도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주체가 되어 영 케어러의 기본권과 시민권을 확보해야 한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아동, 청소년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이는 단순히 시점의 문제가 아니다. 아동, 청소년이 청년이 될 때까지도 돌봄을 수행한다는 것은 돌봄이 장기화된다는 뜻이며, 유년기에 돌봄 역할을 수행하는 경험은 이후 청년기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첫째는 영 케어러의 세대적 특성이다. 90년대생 영 케어러의 형제자매는 더 이상 전통사회와 같은 대가족 내에서 돌봄을 수행하지 않는다. 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베이비부모 세대만큼 형제자매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부모 돌봄을 수행하는 데 오롯이 혼자서 감당할 몫이 상당히 증가한 것이다. 둘째, 가족 내에서 돌봄을 수행하면 여전히 가족의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잘 드러난다. 아픈 가족이 발생하는 가족 위기가 닥치면 제도 등 외부에 의존하기보다 우선적으로 다른 가족의 노동력에 의존하게 된다."
이 책은 지난 20여 년 동안 노인돌봄에 대한 인식과 가족 내 주돌봄자의 역할이 상당히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돌봄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혀졌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의 노인돌봄만 하더라도 여성, 주로 그 집안의 장남이나 아들의 배우자인 며느리가 맡아서 수행했으나, 친자녀 돌봄 규범이 확산되었다. 또 노인들이 돌봄을 가족에게만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사회 서비스와 제도를 이용하고 있으며, 비혈연 관계자에게서도 돌봄을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책은 이는 새로운 돌봄 형태의 등장, 돌봄 유형의 다양화를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돌봄의 정책이나 제도는 진행형 위주라고 말한다. 현재 돌봄 중인 이들이 돌봄을 '잘'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돌봄이 종료된 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사회적 관심은 진행형보다 적다고 이야기한다. 돌봄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정책의 근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나다. 이 책은 이들이 돌봄을 '잘'하기 위한 지원보다 돌봄제공자가 어떤 경우든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고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최근 돌봄 관련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가부장,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자본, 국가 등 그동안 이 세계 시스템의 기초가 되어 온 축들을 복잡하게 환기시켰다고 말한다. 여전히 가족 내 돌봄은 여성이 전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더구나 가족 내 돌봄이 외주화된 양상, 즉 돌봄 서비스 사용자와 제공자 사이의 갈등도 현저하다. 이 책은 이제까지 서사화되지 않아 왔던 영역, 즉 돌봄 시장 안에서 돌봄노동을 둘러싼 여성들끼리의 갈등과 신경전도 생생하게 전개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산후조리원, 요양병원 같은 기관과 그 안에서의 계층, 계급 배치도 및 개인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어떻게 자본주의적 가치가 가로지르는지 신랄하게 폭로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에 따라, 소설들에거 일별할 수 있는 돌봄 현장은 다음과 같은 식이었고 말한다.
"우선 돌봄의 책임은 여전히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그와 관련하여 돌봄 수행의 여성 젠더 편향성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셋째, 돌봄의 외주화는 자연스러워졌다. 각종 도움 서비스는 이미 커다란 시장, 산업의 영역 속에 놓이게 되어 버렸다. 이때 돌봄은 저렴한 노동력 상품으로 통용되며 그 행위 자체가 폄하되는 악순한 속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돌봄을 수행하는 일은 여전히 기피되거나 폄하되는 일을 벗어나지 못한다. 넷째,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돌봄이 그것을 수행하는 측의 입장 위주로 사유되다 보니, 돌봄의 또다른 주체인 돌봄 받는 측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돌봄이 관계적이며 정동적인 활동이라는 점도 망각된다."
이 책은 여성의 일이자 사적인 활동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돌봄을 이제는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돌봄의 사회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상호역하로 작동되는 제대로 된 돌봄의 시작이라는 이 책의 글귀가 눈길을 끈다.
"돌봄에 대한 첫 번재 오해는 돌봄이 여성적인 일이며 나약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라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이다. 오래된 가부장제 관습에서 돌봄은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집안일이 되어 여성의 성역할로 강요되었다. 여성의 역할이 된 돌봄은 사회활동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일이면서 공동체도 정부도 관여하지 말아야 할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지금까지도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도맡아 온 생명살림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여성들은 중요한 살림을 외면할 수도 혼자서 감당할 수도 없는, 이중으로 구속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능력 있고 건강한 인간은 돌봄이 필요없으며, 돌봄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상의 도움이 필요하고 독립 능력이 없는 나약한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를 비판한다. 이 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상과 비정상, 우성과 열성으로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배경으로 하는 돌봄의 오해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돌봄 받는 것을 나약하게 보고 독립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생명활동의 순환성, 다양성, 영성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전체화, 획일화, 개체화된 사고에 묶여 상호취약성과 상호 연결성으로 살아가는 생명활동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은 자립은 거짓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는 이 책의 글귀가 인상적이다.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일이면서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됨을 뜻한다는 인식이다. 이렇게 돌봄은 사회에서 외면당한다. 이 생각이 아직까지 돌봄을 노인이나 아이와 같은 특정 세대, 그리고 소득과 부의 편차에 따른 계층을 분리하여 시혜적 돌봄을 받는 대상과 비 대상을 나누는 선별적 복지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자기돌봄에서 상대돌봄으로 이어지는 돌봄을 외부적인 상대돌봄으로만 제한하는 관습적 인식과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는 건강하게 상대를 돌볼 수는 없다. 이 책은 때에 따라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적절한 휴식과 운동으로 몸을 살피는 내부적 자기돌봄이 있어야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돌봄 없이 사회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상대를 돌보는 일은 자신을 소진하고 어느 순간 스스로를 돌봄 생활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일방적인 희생은 결코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외부로 연결되어 상대를 돌보는 일이 횡적이라면 자기돌봄은 종적인 돌봄이다. 이 둘의 관계는 격자무늬처럼 짜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종적인 자가돌봄 없이 횡적인 상대돌봄이 계속될 수 없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아'와 '취향'이란 이름으로 자신에게 감사하면서 자기를 돌보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일이 표준이 된 삶, 아무도 일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느끼는, 심지어는 근명을 칭송하는 기이한 사회라고 말한다. 일에 소진된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할 여력이 없다. 이 책은 그럴 때 우리는 자신만을, 가족만을 돌본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 공동의 역량은 우리가 아니아 시스템에 봉사하는 비인격적인 구조를 재생한다.
"겉으로 보이는 일에 대한 집착은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강박에 불과하다. 불안한 사회에서 안정에 대한 욕망이 (정기적으로 임금을 주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건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 안정적인 삶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토록 일에 매달리는 것은 일 자체가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많은 경우 그 반대다. 다른 삶의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이 본분으로 주어지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 명령으로도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일-임금을 받는 일-을 해야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에 따라 결국 우리는-어떻게든-일을 하고 삶을 포기한다. 하루 종일 일에 매인 삶을 우리는 얼마나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삶의 노동으로의 종속이 낳는 효과는 결국 문제의 "비인격적인 구조"의 재생산이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노동을 거부하거나 문제화하지 않는 한 그 구조를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이 책은 위기를 맞이한 사회는 돌봄 노동자를 극한으로 몰고 가며, 사회의 특정 부문을 희생시켜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것은 그 자체로 부정의할 뿐 아니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이리고 이야기한다.
""미덕은 그 자체가 보상"이라는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돌봄 노동은 보람 있는 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한다. 그들은 '좋은 일'을 하는 '의로운' 사람들이므로 돈 따위에 연연해서는 안 되며, 열악한 노동 조건은 꿋꿋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이겨내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들이 바라고 강요하는 상이며 또한 오늘날 의지하고 있는 상이다."
이 책은 돌봄은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보살피기 위해 형성하는 관계이자 활동이며 그 영역은 인간 자연뿐 아니라 비인간 자연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돌봄은 '우리'를 만드는 일이며, 따라서 커먼즈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의 사회는 우리에게 돌봄이 아니라 일을 강제하는 사회이며, 이 사회는 서로를 돌보기보다 밀어내기를 요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돌봄은 자신의 장애물인 그 질서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저 타인을 받들고 섬기는 봉사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돌봄을 삶의 중심에 두려면 우리는 더 적게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더 많은 일을 부과하는 것을, 노동 강제를 근간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이렇게 오래 일하는 것의 효과는 일에 매몰된 인간, 따라서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데 지쳐 타자에 무관심한 인간의 생산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노동 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가 생산에 시간을 덜 쓸수록 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은 202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영국이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2025년까지 연간 1억 2700만 톤의 온실 가츠 배출의 21.3%에 해당하고, 스위스의 한해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 양이다. 이렇든 기후 비상사태 상황에서 노동 시간 단축은 필수적이다."
이처럼 <돌봄의 시간들>은 돌봄의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을 통해 돌봄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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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짱 2023-07-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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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때 현재 나의 이련의 돌봄, 앞으로의 돌봄에 대해 거시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것 같아 이 책의 #서평 단에 지원했다.
서문을 읽는데 내용이 조금 어려워 긴장이 되었다.
정동을 순환시켜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활동(p.4)
이야기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 다루어진 포기의 가치에 대한 글을 읽고 전잖히 충격을 받았다.
p.23에 사토리 세대가 나온다. 사토리세대란 득도한 것 처럼 욕망을 억제하여 살아가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란다.
득도한 것 처럼? 욕망을 억제하여?
갑자기 이 글을 쓴 이준용 아저씨에게 할말이 많아졌다.
나,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울며겨자먹기로 계약직전업주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정신승리를 위해 노장사상을 신념으로 하고 살고 있구만
득도한 것 처럼? 뭐가 어쩌구 저째?!!!!!!
자기 포기를 지향하는 윤리적 완성의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숭고한 것임이 틀림없단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
p.50에 작은 글씨로 개인의 문제에 집중한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연구자는 포기가 타자와의 협력 또한 가능케하는 주요 요인이라 생각한다. 적절한포기가 구성해내는 협력과 커즈먼즈는 연구자의 다음 연구주제다. 라고 진정하라고 어렵게 쓰여있다.
처음 정동affect를 attack으로 잘못봐서 능동을 떠올렸는데 서평을 쓰려고 보는데 스펠링이 달랐다. 앍?
p.93에 정동이라는 활력과 생명력의 입장에서는 돌봄은 능동/수동이 아니라, 둘 다 강렬한 상호작용 속에 있게 된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돌봄에 관한 9가지 정동적 시선. 쉽지 않다.
내 전공이 사회복지이기도 하고 내 삶 자체도 돌봄과 밀접해서 이 책이 유용하기도 했는데 이 책을 소화하지 못할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는데
상담실에서의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능동/수동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분석노동을 수행하여 욕망가치를 생산하는 진정한 주체성인 내담자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p.93.을 보고 정동이 조금씩 이해가 되는것 같다.
이 책은 내게 있어서 정동의 카오스이긴 한데 정동을 이해하고 나면 돌봄의 주체자로써 돌봄모듈의 영향력에 대해 각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면 할 수록 더욱 사랑하게 되는 정동노동으로 현현.
돌봄이라는게 지리멸렬하다는 편견을 깨준다.
그것을 완전히 체득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동의 시각에서 돌봄의 가치를 재해석 해주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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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눈이 2023-07-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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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간들
돌봄의 시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고, 공부하며 일하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서로를 북돋아주고, 그 가족은 또 나이들어 새로운 세대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절대돌봄,서로돌봄,배치돌봄, 자기돌봄까지 사람이 맞물리는 이 사회에서 돌봄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경제활동을 하고,
나이드신 부모님이 걱정되는 이 40대에 생각하는 '돌봄' 이란 바로 눈앞에 닥친 중요한 과제이다. 내가 어릴때 생각했던 '돌봄'은 봉사활동이나,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빙산의 일각밖에 보지못하는 짧은 생각에 그 깊은 뜻을 알지못했다.
내가 있다는 건 부모님이, 친척들이 온 동네가 나를 '돌봐주었고' '보살펴주었던' 돌봄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 받은 돌봄을 나 역시 널리 행하는 것이 내 세대의 이유이다.
그런데 이 사회에, 바로 지금 돌봄을 재조명할 필요가 무엇일까.
이제껏 사회가 외면했던,
당연히 부당해야했던 돌봄의 일방적인 방향을 탈피하고자 다양한 각도로 돌봄의 정동에 대해 접근을 해야한다.
독박육아, 독박돌봄, 주돌봄자의 젠더차이 비율차이등등 돌봄자로의 어려움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
그리고 여전히 돌봄이라는 활동은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라고 인식되고있다. 사람은 언제나 항상 돌봄을 받고 돌봄을 주고 있다. 어릴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끝없는 돌봄을 받았고 사회규범의 틀에서 안전하게 돌봄을 받고 있다. 오해를 바로잡고 인식을 다르게 하여 돌봄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할 때다.
책에서 말하는 '돌봄의 정동' 은 생명력과 활력의 입장에서 돌봄 받기-주기 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연쇄적인 돌봄의 관계망을 촘촘히 할때 돌봄의 정의와 평등,돌봄의 지속가능성,돌봄의 돌봄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부분에는 실제 어린나이에 부모님의 사고로 가장의 역할과 간병인의 역할을 해야했던 경험자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나온다. (담담한 글이지만 그 사건당시에는 절대 담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 단지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주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영케어러는 돌봄을 주면서도 자기돌봄을 챙길여력이 없다. 대부분의 시간은 간병인으로 역할을 하고 정규취업이나 자기계발을 할 수없는 상태이다. 그의 사례를 통해 돌봄이란 그 두사람만이 아닌 사회모두가 함께 돌보아야 사람을 지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돌봄에 관한
여러자료와 예시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돌봄의 정동에 대해 입체적으로 인식하고 돌봄이후까지 바라볼수있는 서비스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1차원적인 돌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아직도 나는 불필요한 고정관념이 남아있구나 다시금 깨닫게 되는 내용이었다.
아이 한명을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한다. 돌봄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벌집모양 으로 서로 연결된 마을, 사회전체, 국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다.
*츌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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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81ken 2023-07-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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