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설의 연구 양계초 외 지음 김홍경 옮김 신지서원 1993년 08
음양오행비판 ①- 김홍경의『음양오행설의 연구』
(졸고, 음양오행설에 관한 연구 pp5-7)
현대에 음양오행설에 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 자료 중의 하나로 양계초, 풍우란, 서복관, 곽위, 이택후, 궁철병, 사송령 등의 음양오행설에 관한 연구서를 통합 해석한 김홍경의『음양오행설의 연구』라는 서적이 있다.
김홍경은 이 책에서 음양오행설의 내용 중 밝혀진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현대적 시각으로 개념정의를 해놓았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을 해놓았는데, 그 자신의 견해는 음양오행설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음양오행설과 이를 적용한 사주명리학, 풍수지리, 한의학의 질병론 등에 대해 합리적 근거가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았다고 하며, ‘동태적 평형’이란 용어로서 음양오행설이 법칙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나 현상의 꽁무니를 쫓아간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음양오행설은 계절의 순환 같은 원의 순환론이라 할 수 있는데 원의 순환은 일정한 기간에 이루어지는 변화는 항상 동일하여 진정한 변화가 아니며 따라서 동일한 반복만 계속될 뿐 발전이 없기 때문에 음양오행설이 완전한 법칙체계가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도참 이니 풍수지리니 성명학이니 사주팔자니 운명, 궁합 등과 같은 잡다한 종류의 점 술들은 모두 합리적 근거가 없다. 혹시 이것들에 아주 초보적인 사실적 연관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김홍경 편역, 같은 책, p7)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을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욱이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신장이 나빠진다는 현상이 사실이라는 것과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土기가 왕성해지고 상극관계에 있는 水기가 약해지며 결국 水기와 관련이 있는 신장이 손상을 입게 된다는 설명이 진실이라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음양오행설은 일련의 유사한 현상체계들을 계열화하여 그것들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한 설명의 상징체계이지 현상상이의 연관성을 추상화 해낸 법칙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현상의 꽁무니를 쫓아간다.” (같은 책, p20)
“음양오행설에서의 변화는 직선적이거나 나선형의 모습을 띠지 않고 원을 그린다. 곧 원운동이 음양오행설에서의 변화의 도식이며 그것은 순환론의 도식이기도 하다. 순환론에서의 변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변화가 아닐 수 있다. 일정한 기간에 이루어지는 변화는 항상 동일하기 때문이다. 木 火 土 金 水 의 계기적 변화가 일단락되면 다시 木 火 土 金 水의 변화가 시작되고, 탄생 성장 수확 저장의 과정이 끝나면 다시 탄생 성장 수확 저장의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의 체계는 불변한다.
이에 근거하여 음양오행설에서의 변화의 관념을 부정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곳에 발전의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음양오행설의 체계를 두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태적평형’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태적이라는 것은 음양오행설이 설명하는 세계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세계라는 것이며 평형이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책, p 21)
그러나 김홍경의 비판 근거가 되는 ‘변화는 나선형의 모습을 띠지 않고’ 와 ‘동태적 평형(순환만 있고 변화가 없다)’에 대한 문제는 그의 생각이 짧았다고 볼 수 있다.
순환 원은 대자연의 진리인 천체현상 즉,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서 기인한 원이다. 이때 자전과 공전은 각각 작은 원과 큰 원을 이루게 되는데, 자전원의 순환측면을 보면 이는 김홍경의 주장처럼 반복되는 원운동 일뿐이며 때문에 ‘동태적 평형’ 상태라 할 수 있지만, 지구는 자전과 동시에 공전을 하게 되기 때문에 반복속에 이동을 하게 되어 나선형의 원운동이 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전원을 정면에서 관찰하면 반복운동이지만, 측면에서 관찰하면 자전의 작은 원이 공전의 큰 원을 그리는 나선형의 운동이 된다. 반복순환의 원운동 속에 변화가 존재하게 되며, 때문에 김홍경이 음양오행설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는 ‘변화는 나선형의 모습을 띠지 않는다.’ 와 ‘동태적 평형’으로 ‘순환만 있고 변화가 없다.’ 는 등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소멸 된다. (이 부분은 론자의 견해이며, 졸고에서도 1주기 자전운동인 순환하는 오행원을 모델로 하여 각 부분들에 대한 원리를 분석 해나간다.)
奭廈(석하) 소재학
음양오행비판 ②- 양계초의『음양오행설의 역사』
(졸고, 음양오행설에 관한 연구 pp7-8)
양계초는 음양오행설이 미신임을 밝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했다는『음양오행설의 역사』에서 음양오행설을 2000년 동안 미신을 낳은 본거지라고 아주 혹독하게 비판한다.
음양오행설은 이천 년 동안 온갖 미신을 낳은 본거지였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사회적으로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다. 이제는 마땅히 그것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이제 그 역사를 밝히려고 한다. (양계초 외, 김홍경 편역, 같은 책, p 29)
그는 평범한 자연현상의 설명인 ‘음양’이 '노자'에 의해서 비약적으로 변화되었다고 주장 한다.
또한 일 년 사시를 오행에 분배하여 木은 봄, 火는 여름, 金은 가을, 水는 겨울이라 하고 土는 남는 계절이 없어 여름과 가을 사이에 끼워 넣고, 모든 사물을 오행에 배속시키는데 그 수가 오와 일치 되지 않는 것도 억지로 쪼개어 꿰어 맞추었다고 하며 음양오행설을 비판하였다.
그는 모든 경전과 공자, 노자, 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 모든 사상가들도 음양오행설에 대하여 언급한 바가 없는데 이러한 사설을 지어 혹세무민(세상을 어지렵히고 백ㄷ성을 속임)한 죄를 추연과 동중서와 유향 세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오행과 4계절에 대한 문제는, 오행 중 특별한 의미를 갖는 ‘중앙 土’의 문제와 함께 아직도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졸고 ‘음양오행설에 관한 연구’에서는 이 문제를 제III장 제2절 에서 오행 원을 이용하여 론리적 방법으로 분석해 나간다.)
奭廈(석하) 소재학
음양오행비판 ③ - 서복관의『음양오행설과 관련문헌연구』
(졸고, 음양오행설에 관한 연구 pp8-10)
서복관은『음양오행설과 관련문헌연구』에서 음양오행설에 대하여 상당히 심도 있게 론한다. 그는 양계초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음양오행설은 비판하고 유가정신을 옹호하려 한다.
또한 그는『주역』과『역전』에는 결코 오행사상이 존재하지 않고, 오행관념의 전개는 사회의 저급한 미신 중에서 배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백호통』의 ‘오행상승’ 과『춘추번로』의 ‘오행상생’의 이치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단지 土가 水를 이길 수 있다면 水는 어째서 土를 이길 수 없는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할 방법이 없다. … 金이 水를 낳는다는 설명은 타당하지 않다. … 土는 木을 낳는다는 말은 왜 합리적이지 않는가? 이러한 점들에 입각해보면 오행의 상생․상승이 실상 매우 유치하고 불합리 한 설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양계초 외, 김홍경 편역, 같은 책, pp77-78)
이 부분이 현재까지도 음양오행설에서 비론리적인 부분이라고 크게 비판받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만약 정말 오행이 사물 자체라면 위의 문제뿐이 아니라 金극木의 경우도 문제가 된다. 나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과연 ‘도끼’ 일까? ‘산불’ 일까? 누가보아도 ‘불’이 ‘도끼’보다는 효과적으로 나무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무를 극하는 것은 金 보다는 火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자연계의 사물인 나무, 불, 흙, 쇠, 물이 오행 木 火 土 金 水 자체는 아니다. 이것은 단지 오행 각각의 기능적 특성에 부합되는 자연계의 사물일 뿐인데 이를 오행과 동일시하고 이후 계속 와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부분들이 현재까지도 음양오행설에 대한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졸고, Ⅲ장 2절 ‘가’항「오행의 개념과 특성분석」, pp68-70)
또한 서복관은 오행설의 기원을 천문의 오행성이라 주장하는 설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시기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였다.
『여씨춘추』의「십이기」는 현재로 볼 때 오행관념을 여러 가지 측면에 투영하여 완전한 체계로 만든 전적이다. 만일 제사화의 말처럼 새로운 오행관념이 고대천문가에 의해서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면 오행을 천문상의 오성으로 보는 견해가 반드시『여씨춘추』「십이기」에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십이기는 고대의 천문학적 지식에 대한 일대정리라고 할 수 있음에도 거기에서 열거된 성숙는 오히려 오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 오행을 가지고 천문상의 오성을 얘기하는 것은 대개『회남자』「천문훈」에서 시작 되었으며 … 오행설이 천문상의 오행에 적용된 것은 한초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행관념의 전개는 고대의 천문과는 무관하다. (양계초 외, 김홍경 편역, 같은 책, pp136-137)
음양오행비판 ④ - 오행설의 허실
(졸고, 음양오행설에 관한 연구 pp3-4)
오행설에서 오행 木 火 土 金 水는 서로 순환하며 인접해 있는 것끼리는 생하고 하나 건너있는 것끼리는 극하는 상생상극의 이론을 가지고 있으며, 오행 각각은 木의 분출하고 뻗어가는 특성, 火의 분산하는 특성 등 고유의 특성과 자연계의 나무, 불, 흙, 쇠, 물 등에 대입되기도 한다. 또한 오행의 상생관계를 물상에 비유하여 나무는 불을 낳고, 불은 흙을 낳으며, 흙은 쇠나 돌을 낳고, 쇠나 돌은 물을 낳으며, 물은 나무를 낳는다고 설명한다.
상생관계는 상극과 함께 오행의 가장 중요한 이론이다. 이것이 논리적인 이론이라면 오행의 다섯 가지인 木 火 土 金 水 모두가 동등하며 타탕한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쇠나 돌이 물을 낳는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적절한 관계가 아니며, 적절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객관적으로 보편타당한 관계가 아니다. 때문에 이것이 오행의 상생이론 이라면 이것은 이미 논리적 이론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만약 상생이론이 정확하다면 나무, 불, 흙, 쇠, 물 등이 잘 못 적용된 경우 일 것이다.
오행의 상극관계에서도 나무가 흙을 극하고, 흙이 물을 극하고, 물이 불을 극하고, 불이 쇠를 극하고, 쇠가 나무를 극한다고 설명하는데 과연 이들의 관계역시 모두 동등하고 개관적으로 타탕한가에 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특히 이중에서 나무와 흙의 관계가 서로 극하는 관계라는 설정은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러운 면을 배제할 수 없다. 흙이 있어야 나무가 자라고, 산에는 나무가 있어야 산의 흙이 산사태 등으로부터 보호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렇다면 이 역시 오행의 상극설이 모순이든지 아니면 오행을 나무, 불, 흙, 쇠, 물 등으로 적용한 것이 잘못일 것이다.
또한 오행은 각각의 木 火 土 金 水는 가 동등하게 생을 하고 동등하게 극을 하는 상생상극론을 가장 기본으로 하면서도, 오행중 하나인 ‘土’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오행에 방위를 대입할 때 木은 동, 火는 남, 金은 서, 水는 북에 대입하고 土는 중앙에 대입하여 ‘중앙 土’가 된다. 이때 이 ‘중앙 土’는 사방을 주관하며 木 火 土 金 水는 모두를 통괄하는 ‘土’로서 이미 다른 4개의 오행과 차별화 된다.
이렇게 차별화된 ‘중앙 土’는 이미 평범한 오행이 아니기에 火의 생을 받아 金만을 생하고, 木에게 극을 받으며 水만을 극하는 오행 고유의 상생상극운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土’에게 론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일반적인 ‘오행 土’의 역할과 특별한 ‘중앙 土’의 역할이 동시에 부여되는 矛盾이 발생한다. 이러한 矛盾이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논리로 설명 되지 못 한다면 오행설 역시 논리적 이론체계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음양오행설과 이를 이론적 근거로 하는 동양학 각 분야가 비과학적, 혹은 비논리적이라는 통념의 언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矛盾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음양오행설은 동양의 신비주자들이 주장하는 미신이라는 등의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奭廈(석하) 소재
음양오행을 비판한 학자들또한 있는데 홍대용과 정약용이다
일든 그들의 비판을 보자
[홍대용]
'음양학설에 얽메여 이치에 막히고 천도를 살피지 않는 것은 先儒(선유)의 허물이다’라고 하여,음양설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는 음양에 대해,"만물이 봄과 여름에 化生(화생)하는 것을 교(交)라 하고, 가을과 겨울에 거두어 저장하는 것은 폐(閉)라 했으니, 옛사람이 말을 세운 것도 각각 까닭이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을 미루어 본다면 실상 태양빛의 얕음과 깊음에 속할 뿐, 후세 사람의 말대로 천지 사이에 별도로 음양 두 기가 있어서 때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여 조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여, 음양을 태양과 연관된 본래적인 의미로 파악하고 있으며, 음양이 기(氣) 에 의해 사물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행에 대해서도, "옛사람들이 만물의 전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각자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서경》<하서>에 6부라 말했는데 화,수,목,금,토,등이 이것이고, <주역>에 8상을 말했는데 천,지,화,수,뢰,풍,산,택이 이것이며, <서경>에는 오행이라 하여 화,수,목,금,토가 이것이고, 불가에서는 사대(四大)라 말했는데 지,수,화,풍이 이것이다."라고 하여, 5라는 숫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행의 수는 원래 정해진 정론이 아닌데, 술가는 이는 조종으로 삼아 하도와 낙서로써 억지로 맞추고, <주역>의 상수를 파고 들어가 생극이니 기복이니 하는 지리한 수작으로 여러 술수를 장황스럽게 이야기 하나 끝내 그런 이치는 없다는 것이다.
[정약용]
{천주실의}를 편찬하면서, Ricci(마테오 리치)는 천주교의 중요한 개념, 특히 '기독교의 하느님(天主)'를 바로 유교의 경전 속에 등장하는 '天'이나 '상제'와 동일한 존재로 본다는 기본 전제를 하고 있다. 인격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天'이나 '상제'에 대한 제사와 숭배의 사상이 드러나고 있는 고대 중국 본래의 유교사상은 기독교의 상제숭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유학적 문화 전통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담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천주학자 Ricci는 한편 유교와 기독교 사상 사이의 근원적인 동일성을 강조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 주자학의 이기론에 의한 태극 음양 오행으로 설명되는 무신론적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해 버리고 있다. 그는 후대의 유학사상인 주자학에 합류한 이교사상(불교와 도교)에 물들어 무신론적 특성이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Ricci는 태극을 理라고 해석함으로써 천지만물을 이기(理氣)로 설명하려는 이기설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비판을 시도하였다. 그는 理 혹은 태극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理는 본래 실체가 아니고 속성이기 때문에 결코 다른 사물의 근본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이 다른 사물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氣가 四行 중의 하나이고 이 氣가 음기와 양기로 갈라져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태극의 개념을 홀수(양)와 짝수(음)의 형상(form)을 취한 것이라 하여 태극과 함께 음양의 개념을 실재가 아니고 형식이라 규정하는 입장을 보인다.
茶山도 이처럼 {중용강의}의 첫머리에서부터 "하늘(天)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형성(化生)할 때, 氣로 형태를 이루면 理 또한 여기에 부여한다"는 주자의 음양오행설과 이기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음양의 氣에 대해서도 주자학자들은 사물의 재료라 하여 우주자연의 현상적 존재를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음양을 햇볕의 양지와 음지 정도로, 氣 역시 인간의 혈기라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에게서 '음양'은 빛과 그늘의 경우처럼 서로 상대되는 형식이지 형체나 성질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그는 '五行'에 대해서도 유학에서의 水火木金土가 아니라, 서학에서의 경우처럼 天(氣)地(土)水火의 四行이 만물의 요소라고 한다. Ricci는 불(火), 공기(氣), 흙(土), 물(水)의 네 요소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Ricci의 四行說을 수용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불(火), 공기(氣), 물(水), 흙(土)이라는 네 원소(四行)가 서로 결합하여 생성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四行에 대한 준거에는 차이가 있다. Ricci는 고대 희랍의 Empedokles(495-425)가 공기(氣), 물(水), 불(火), 흙(土)을 만물의 뿌리라고 주장한데 근거를 두고 있다. 茶山은 "오직 복희의 팔괘에는 원래 사정(四正) 사편(四偏)이 있는데 天地水火는 정방의 괘이며, 바람(風)/ 우뢰(雷)/ 산(山)/ 못(澤)이란 편기의 괘이다. 하늘(天) 불(火)이 서로 합하게 되면 바람(風)/ 번개(雷)가 생기고 물(水)흙(土)이 서로 교착되면 산과 못(山澤)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변화하고 생육하여 만물이 낳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역학의 '4정괘'(건곤감리)에 기본구조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은 하늘(건) 땅(곤) 물(감) 불(리)의 물질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서학의 '4원소'와 비교하면 그 준거와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4원소(四行)의 문제는 그에게 있어서 주자학의 오행설을 극복하는 사유 형식으로서 중요시되었다. 결국 주자학의 자연관이 가진 기본구조를 벗어나는 것이고, 그 만큼 천주교 교리와의 연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자학의 氣는 理에 의존하고 있는 실재이지만, 그는 氣가 자주적 독립적 실재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茶山은 理를 앎도 애증도 희락도 없고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理는 아무런 지각도 위엄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理와 氣는 상호 의존적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그는 주자학의 대전제인 '성즉리'(性卽理)를 가능하게 한 이기론의 구도를 해체하고 하느님(상제)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이리하여 두학자의 음양오행의 비판약술을 살펴보았다.
이것에 대한 나의 소견또한 말하려한다.
[내 소견]
1. 오행설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우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물이 있고 이 사물들의 속성이나 형태는 그 사물의 특성에 따라서 각각 2분, 3분, 4분, 5분, 6분 등등 여러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음양오행설은 이 모든 사물들의 구분 범주를 오직 음양이라는 2분법이나 오행이라는 5분법에 의해 갈라놓았다. 이것은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일률적인 방식으로 흡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적당히 늘이거나 줄이는 인위적 조작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됬다(홍대용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주 쉬운 예를 든다면 <방위>는 보통 동서남북의 4방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5행은 이를 5개의 범주로 구분해야 하므로 중앙이라는 방위를 만들어 채운다. 또 계절은 ㅡ 그나마도 이는 온대에나 해당하는 구분인데도 ㅡ 4철이라 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하는 것이 보통인데 5행에 맞추기 위해 [4계]라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 토부에 넣어 5등분한다.
천간은 다행(?)히 10종이라서 5로 균등히 나누어지므로 2종씩 사이좋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지인 12지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불가능하자 다른 것은 다 2종씩 나누어 넣고 진술축미 4종은 토부에 한꺼번에 밀어넣었다.
색의 기본은 3원색이다. 흑색은 모든 색을 가합한 것이고 백색은 그 반대입니다. 그런데 5행에서는 동일한 자격으로 각각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인체를 5행에 맞추기 위해 어깨/ 가슴/ 다리/ 머리/ 배 등으로 구분해서 집어넣은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팔은 어디로 갔을까? 둔부는?
동물 분류, 인간의 감관 분류, 하루의 시간 배분 등 일일히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이상스러운 구분을 시도하는, 이러한 것이 바로 5행이다.
2. 5행의 자리는 과연 맞는가?
어찌되었든 세상 만물을 꿰맞추어 억지로라도 5로 구분시켜 놓긴 했다고 치면. 이제 이것들을 목화토금수에 각각 해당시켜야 하는데 이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다.
봄이 어찌 수가 아니고 목인지? 눈이 어찌 목에 해당하는지? 왜 물이 흑이 되며 백색이 금에 해당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를 양이라 하고 여자를 음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또 근거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실제 음양설의 초기에는 여자를 양에 넣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현령비현령인 것이이다.
음양 오행 어찌보면 억지가 아닌가?
국학역사 07 이진호
글쓴이를 찿지 못한 글 입니다. 양해 부탁 드리며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홍대용의 음양오행 비판
지동설을 주장한 조선의 갈릴레이 홍대용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지축의 둘레를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는 자전설을 주장했다. 또한 그의 바람, 비, 구름, 눈, 서리, 우박 , 우레, 번개, 무지개, 기온등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은 현대의 과학적 설명과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 말은 갈릴레이가 1616년 당시 서양 중세 사회를 주도하던 기독교적 세계관과 대립되는 지동설로 인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을 포기하도록 명령받고, 고뇌에 차서 내뱉은 말로 유명하다. 비록 사회적인 압력에는 굴복했으나, 과학으로서의 진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것은 갈릴레이 이전에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했던 지동설에 대해 좀더 과학적인 자료를 가지고 그 정당성을 입증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과학시간 혹은 역사 시간 때 흔히 들어본 낯익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시기에 지구가 돌고 있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과학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조선시대에 앞선 서양의 과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론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과연 그는 누구이고 그러한 이론이 나올 수 있었던 시대적인 배경은 어떠했는가?
조선시대는 중기 이루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성리학이 기가 먼저니 이가 먼저니 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학문적인 역량을 소모하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 해결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탓에 실생활에서 너무나 뒤떨어진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리학의 공리공론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실천적인 학문을 주장하는 실학이 등장했다. 당시 실학파들은 사회 구석구석 모든 분야에 걸쳐 실증적인 태도로써 개혁을 시도했는데 이러한 경향은 자연 과학적인 사고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지동설로도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답게 홍대용은 세계 최초의 지동설 주창인 갈릴레이의 두 우주 구조에 관한 대화와 같은 서술 방식으로 의산문답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먼저 갈릴레이의 두 우주 구조에 관한 대화의 서술 방식은 지구중심의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 우주 구조와 태양 중심의 코페르니쿠스 우주 구조의 장단점을 토론하는 대화형식이고 홍대용의 의산문답의 서술 방식은 허자와 실옹이라는 두 사람이 문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에 관한 두 인물의 학문적 성과가 이처럼 유사한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실학파 중에서도 북학파의 한 사람이었던 홍대용은 학문, 사회, 국가, 역사 등 다방면에 걸쳐 자신의 관심을 드러냈는데 그 가운데 홍대용 사상의 독창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분야는 바로 자연관, 다시말해 자연과학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수천년 동안 내려온 우주와 자연에 대한생각이 비과학적인 면을 비판하면서 그는 현대 과학과 그 방법이나 태도에 있어서 거의 유사한 실증적인 태도로서 자연을 분석하고 관찰하였다.
그는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지축의 둘레를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는 자전설을 주장하였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해와 지구의 인력에 관한 착상으로서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태양계와 우주 해와 달과 지구의 크기를 비교하여 바람, 비, 구름, 눈, 서리, 우박, 우레, 번개, 무지개 등 자연계의 여러 현상, 그리고 기온, 주야의 시간차, 조석 등에 관해서도 관심을 자기고 그 현상들을 현대 과학이 말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설명해 나갔다.
또한 홍대용은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과학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가 견지하고 있던 자연현상을 보는 새로운 태도는 기존의 뿌리 깊은 동양적 과학관의 바탕인 음양오행설을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것은 성리학이 보인 현실적인 폐단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홍대용이 음양오행설을 비판한 것이다.
5행의 5라는 수는 원론 정론이 있을 것이 아닌데, 술가(술가:음양, 점술에 정통한 사람)들이 이를 근본으로 삼아 하락이 여기에 부회(말을 억지로 끌어대어 이치에 맞게함)하고 역상이 이를 천착해 상극이니 비목이니 지리 장황하게 되었지만 아무 이치에 없는 것이다.
홍대용은 의산문답 이라는 저술에서 허자와 실옹이라는 두 사람의 문답을 통해 실학자인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앞에서 음양오행을 비판한 것도 그것이 이와 같은 실심, 실사, 실학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홍대용이 음양오행설을 비판했다는 사실은 의미 심장합니다. 중국에서 우리 나라로 건너온 사상엔 유교 불교 도교가 있습니다. 실학이 유교의 반동으로 태동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학도 청나라의 고증학을 비판 수용했다는 점에서 유교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조선 시대의 유학자의 한 흐름인 서경덕 이항복 등이 음양오행설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홍대용의 실학 사상을 받아들인 정약용 또한 음양오행이론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기이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홍대용은 과학적 사고, 즉 과학성신에 위배되는 것을 모조리 비판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른 사실을 자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이 그것을 잘 증명해 줍니다. "우리 나라 중엽 이후로 편론이 나와 시비가 공정하지 않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주자학에 배치되는 양명학을 존중하는 자도 많지만, 이 때문에 죄가 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다음은 의산문답에서 허자와 실옹이 지구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내용으로 실옹이 허자에게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가르치고 있는 대목이다. 이 글을 통새 당시의 홍대용이 과거의 학문에 대해 보이는 비판적인 태도와 그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는 실증적인 자세를 확인해 볼 수 있다.
허자: 예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선생은 어찌하여 땅덩어리가 둥글다고 하십니다?
실옹: 사람을 깨우치기란 심히 어렵도다, 만물이 완성된 형태는 둥근 것은 있어도 네모진 것은 없는데 하물며 땅덩어리야 말할 것이 있겠소? 달이 해를 가려서 일식이 될때 일식된 부분이 둥근 것은 땅덩어리가 둥글기 때문이오. 그런 즉 월식은 곧 땅덩어리의 거울이오 월식을 보고도 땅덩어리가 둥근지를 모르는 것은 거울을 가지고 자기를 비춰 보고도 자기 모습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또한 어리석지 아니하오? 그대는 계 사람의 말을 그대의 눈으로 본 일식 월식의 실제 모습보다도 더 믿는단 말이오? 그리고 땅덩어리가 진실로 네모지다면 네 귀퉁이, 여덟 모서리, 여섯 면이 꼭 같고 그 측면은 담벼락처럼 가파를 것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대의 생각도 이와 같소?
허자: 그렇습니다.
실옹: 그렇다면 강이나 바닷물이며 삶과 물체들이 그 네모진 땅덩어리의 한 쪽면에만 모여 있소? 아니면 여섯면에 다 널려 있소?
허자: 윗면에만 모여 있을뿐이며 옆면과 아랫면에서는 옆으로 살거나 거꾸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있을수 없는 일이옵니다.
실옹: 만일 옆면에나 아랫면에서 산다면 밑으로 떨어지겠지요?
허자: 그렇습니다.
실옹:그렇다면 사람 물체와 같은 작은 것들도 떨어지게 마련인데 어찌하여 이 무거운 땅덩어리는 밑으로 떨이지지 않는 것이오?
허자: 기가 믿에서 받쳐 주기 때문이옵니다.
실옹: (소리높여 말하기를) 군자가 도를 논할 때는 이치에 막히면 승복하는데, 소인이 도를 논할때는 말이 막히면 꾸며대기 일수요. 배와 물의 관계를 보더라도 배 안이 비면 물위에 뜨고 배 안이 차면 가라앉는 것은 기라는 것이 무력하기 때문인데, 그 기가 어떻게 큰 땅덩이를 받치고 있을 수 있겠소? 지금 그대는 낡은 지식에만 집착하여 남에게 이기려 들고 경솔한 말로 사람을 누르려 하면서도 도를 들으려 하니, 이 또한 어긋나지 않소? 소옹은 이치에 밝은 선비로되 땅덩어리에 대한 이치를 궁구하다가 끝내 터득하지 못하자' 하늘은 땅에 의지하여 있고 땅은 하늘에 붙어 있다'고 하였소. 땅이 하늘에 붙어 있다고 한 것은 옳다고 하겠지만 하늘이 땅에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크고 넓은 태허(우주공간)가 이 한 흙덩어리에 의지한다는 말이오? 또 땅덩어리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그 자체의 세기가 있기 때문이지 결코 하늘에 이어져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오. 소옹은 지혜가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자 억지로 큰 소리를 쳐서 한 시대를 속인 것이니 이는 소옹이 자신을 속인 것이오.
허자: (절을하고 다시 말하기를)제가 실언하였으니 어찌 허물을 모르리오마는 그러나 비록 터럭과 같이 가벼운 물체도 떨어지는데 그 무거운 땅덩어리가 영구히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오리까?
실옹: 낡은 지식에 집착하는 사람과는 더불어 도를 논할 수 없고 이기려고만 생각하는 사람과는 더불어 입다툼을 할 수 없는 것이오. 만일 그대가 도를 묻고자 한다면 그대의 그 낡은 지식과 생각을 버릴 것이며 마음을 비우고 말을 신중히 해야 할 것이오. 그러면 내 어찌 드러내지 않으리오. 무릇 넓고 큰 태허는 육합의 구분이 없는 것인데, 어찌 상하의 세가 있겠소!
허자:......
실옹: 자, 말해보시오. 그대의 발이 아래로 땅에 붙어 있는데 그대의 머리가 하늘로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떠올라도 위로 올라가지 않으며 땅으로 지고 무너지지 않고, 허공에 달려 영구히 그대로 있으니, 태허에 상하의 세가 없는 증가가 너무도 뚜렷하오. 땅덩어리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사실만 해도, 진실로 그 까닭을 추구한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오. 땅덩어리 위에는 상하의 세가 있는데 이것이 곧 지면의 세이오. 땅에서 거리가 멀어 지면 이 세도 자연 없어지는 것이오 오늘날 사람들은 지면의 상하의 세를 보고서 태허에 일정한 세가 있다고 잘못 생각했으니, 이 또한 좁은 소견이 아니겠소?
허자: 그렇군요. 지구의 형체와 상하의 세에 대하여 잘 알았습니다.
아래는 charmdae님의 글입니다.
※ 나도 평소부터 음양오행설에 대해 비판적이므로 약간의 의견을 첨부합니다.
ⓐ 오행설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우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물이 있고 이 사물들의 속성이나 형태는 그 사물의 특성에 따라서 각각 2분, 3분, 4분, 5분, 6분 등등 여러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양오행설은 이 모든 사물들의 구분 범주를 오직 음양이라는 2분법이나 오행이라는 5분법에 의해 갈라놓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일률적인 방식으로 흡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적당히 늘이거나 줄이는 인위적 조작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홍대용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지요).
아주 쉬운 예를 든다면 <방위>는 보통 동서남북의 4방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5행은 이를 5개의 범주로 구분해야 하므로 중앙이라는 방위를 만들어 채웁니다. 또 계절은 ㅡ 그나마도 이는 온대에나 해당하는 구분인데도 ㅡ 4철이라 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하는 것이 보통인데 5행에 맞추기 위해 [4계]라는 것을 억지로 만들어 토(土)부에 넣어 5등분합니다.
천간(天干)은 다행(?)히 10종이라서 5로 균등히 나누어지므로 2종씩 사이좋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지(地支)인 12지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불가능하자 다른 것은 다 2종씩 나누어 넣고 진술축미(辰戌丑未) 4종은 토(土)부에 한꺼번에 밀어넣습니다.
색(色)의 기본은 3원색입니다. 흑색은 모든 색을 가합한 것이고 백색은 그 반대입니다. 그런데 5행에서는 동일한 자격으로 각각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인체를 5행에 맞추기 위해 어깨(肩)/ 가슴(胸)/ 다리(足)/ 머리(頭)/ 배(腹) 등으로 구분해서 집어넣은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팔은 어디로 갔을까요? 둔부는?
동물 분류, 인간의 감관 분류, 하루의 시간 배분 등 일일히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이상스러운 구분을 시도하는, 이러한 것이 바로 5행입니다.
ⓑ 5행의 자리는 과연 맞는가?
어찌되었든 세상 만물을 꿰맞추어 억지로라도 5로 구분시켜 놓긴 했다고 칩시다. 이제 이것들을 목화토금수에 각각 해당시켜야 하는데 이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봄(春)이 어찌 수(水)가 아니고 목(木)인지? 눈(目)이 어찌 목에 해당하는지? 왜 물이 흑(黑)이 되며 백색이 금(金)에 해당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양이라 하고 여자를 음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또 근거로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실제 음양설의 초기에는 여자를 양에 넣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현령비현령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