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3

조현 이남곡 인터뷰 7


공자가 말한것같지않은 의외의 행복의 조건 첫번째와 두번째는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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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그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라고 그러니까 공자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비닐락 부위호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고 답했는데요.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관계 정성을 다하는게 쉽지 않은
경지겠죠.
음.
어, 지금 나는 저 노의 그 연에
대한
것 가장 중요하게 봐갖고 그다음 두
번째로 본게 이거예요.
두 번째로 본게 물질과 정신의
조합니다에 대해서 공자만큼
대단히 현실대 바탕을 두고 이상을
추구한
그런 성인 철학자
드무입니다.
이혼화시켜서 보지.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현상 세계와 뭐 이렇게
표는데 공자는 이론적으로 보고
있거든.
어 공자가 어떤 마을을 지날 때
제자들하고 문답이 있지요. 어 어떤
다을 지나면서 제제자들이 물어봐요.
선생님 지금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뭐부터
해야 됩니까?라고 라고 했을 때
뭐부터 해야 되느냐 할 때 내가 요거
가끔 저 사람들하고 대화하면서 그전에
이제이 물어봐요. 당신이 생각할 때
공자람을 뭐라 했겠어?
어 부라고 했겠어? 아니면 어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이야기했을까? 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니까
뭘 먼저 이야기했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공자에 대한 그 생각
윤리 도덕 무슨 이상 세계 이런 거가
머릿속에 있어 가지고
대답이 나와 이렇게 물질적인 부를
이야기했을 것 같지 않은 거야.
정신적 이야기할 수 천만해. 요게
바로 공자의 출발이에. 공자는
부호예요. 부. 먼저 부호를
이야기해. 아.
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어떤 행복의
조건의 일차적 조건을 물질적 수요의
충족해서 본 거예요. 이게 현실의
어마 예수나 석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먼저 부를 이야기 안 할
거예요. 공자는 부를 이야기해.
예.
그다음에요 하고 물어봤을 때 답이
교야. 교.
예.이
이 교가 가르칠 교자인데이
가르칠 교를 쓰니까 대부분 또 공자는
가르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그 공자에 의해서 무슨
교 가르침을 정신적인 뭐 배움 아니
근데 사실은 교라고 하는 거는
그런 가르침이라고 하는 뜻보다는 좀
가깝다면 교양이야. 교양
기가 막혀요.
공자가 이게 제자 문답이
부 그다음 교요. 그러니까 정신 이게
물질적
그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일차적이고
그러나 이걸로 행복하지 않아. 이게
2차적으로 교
근데 나는이 교를 교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괜찮은데
난는 정신적 성숙이라고 여기서 또 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교를 근데
이게 어 소위 그 서구 군대화
과정에서 서구 군대화를 이끈 계급이
부르거든.
네. 부르가 두 가지를 가지고 근데에
주역이 됐다는 그 두 가지가 뭐냐니까
이게 나와 예
부와 교양이
근데 이거를 이미 2500 공자가
설파했다니까 부교 근데
그다음 여기 나오는 문장은 비닐랑하고
부호래 요게 백미입니다. 나는 이게
백미라고 보고 있어. 현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근데
뭐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그래 그 선생이 말하는 교가 거기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이 문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이해
사람들이 떨어뜨려 보니까 잘
연결시겠는데 나는
전체로 볼 때 이어 이어져서
생각하는게 좋아.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부.
그러나 그건 필요 조건이고
충분 조건은 교. 예. 정신 성숙인데
그 교가 뭐냐라고 하 대해서 자
물어보는 거예요. 아 선생이 말하는
교라는게 이거 아닙니까 하고 하는 게
비첨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라는 말도 나오고 여기는
비이 무원이란 말도 나오고
아첨하거나 원망하는 거는 사실은
바탕이 같아.
예. 그니까 비 무교
부위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아니 그 당당시 생각할
때 제자들이 생각할 때이 정도면
충분히 정신적 성수가 아니야.
그러니까
어 공자 부정하지 않아요. 그거 어
그 대단하지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내가 볼 때는 충분치
않아 그러면서 제시한게 두 가지야.
빈이락
그렇죠.
부이
호래
둘 다 나가고 호가 들어가 이게 참
이게
그러니까 비일하게 뭐냐 그러니까 또
이게 요새 저 생태주의나 뭐 이런
데서는
자발적 가난이라든지 같이 가난하고
같이 살자 이거야. 예.
자발적 가난이
가나안은
이게 빈일락은 가나안을 즐기란 말이
전혀 아니에요.
예.
공자는 부를 아까도 부를 일차적으로
봤다니까. 어 이거 대단히 중세예요.
근데 빈일락은
원하지 않아도이 가난이라는게 무슨
부자라는게 원한 대로 되는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가난하게
가난한 상태라도
낙이라는 건 다른 걸 즐기라는 거지.
그래서 이걸 보통 이제 그다에 안빈
낙도 도를 즐기다.이
하는데 예
요새 도를 질이라 하면 이게이이 말이
잘 사람들한테 안 먹히지만은 사실은
어 뭔가 이게
예술 예술적 감각 예술 그너 너 저
뭐 저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 같은게 예술적 감동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동
그다음에에이 정신적인 어떤 그런 좀
숨고한 정신적인 적인 작용들이
있잖아요. 남한테 이렇게 저
어 소의 그 저 뭐야 보살행을
한다든지 남을 위해서 하는 이런 거라
그다음에 요새 또 하나 이제 나는
그전에 영성이란 말 잘 안 썼 솔직히
말 잘 안 썼어. 왜냐면 그 영성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내가 볼
때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막 말하죠.
아이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돼. 아니야.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고
아니 옛날에 지금 내가 근데 영성이란
말할어 내가. 예. 왜냐면 아 그거는
나는 영성을 지성하고 이렇게 딱
구분하지 않습니다. 지성에 가장 높은
단계를 영성이라고 봐요. 근데 그런
어떤 영적인 어떤 그런 깨달음이라든지
이런 세계를 얻었을 때 오는 기쁨이
커요.이 이 기쁨을
맛보게 되면
맛보게 되면
부에 대한 욕망 그게 가나안보다는
부를 추구하는데
그 부에 대한 욕망이 저절로
감수한다니까. 근데 이게 사실은
옛날에 절대빈곤이나 어떤 절대적인
어떤 불평등 사회에서는
빈일학을 이야기하는 거는 사실은
굉장히 이거는 어떻게 보면
소위 요새는 그런 말 안 쓰는데
반동적이야.
아니 가난한 사람 보고 빈일하
그렇죠.
예. 근데 사회적 원이 근데
적어도 절대 빈공에서 보존한 사회
이럴테면
풍요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나는 이거를
빈락이 참 현대 어떤 문명을 전환하는
키가 된다고 보는 그 키가 뭐냐니까
단순 소박한 삶이에요.
예.
단순 소박한 삶이 뭘 참고 무슨 내
피바는게 아니야.
아까 그 아까 이야기한 정신적 가치,
예술적 가치 또는 영성 이런 부분에서
어떤 큰 기쁨을 느끼게 되면
물질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 소박한 삶은
가나안을 참는 삶이 아니고 풍요로운
삶이에요. 요거는 현대적으로 살릴 수
있어. 빈이락을
그 대신 말은 좀 바꿔야 될지 몰라.
왜냐면 빈자가 들어가면 요건 조금
감각이
그다음에 부위 호래 이거
어 빈이랑 못치잖아요. 나는 뭐 이게
굉장히 이게
그 부자가 아까 뭐라 그랬지? 부자에
교만하자 하는 거
부위 무교이
정도만 돼도 대단한 거지. 근데
교만하지 않은 거 가지고는
아까 이야기하를 아까 이거 부위
호회할 때 내는
어 그 예의 무슨 전통적인 예의 범죄
같은 걸 나타내는게 아니야. 예.
바로 인간이 지향해야 될 가장
아름다운 질서를 내라고 봤을 때
부자가 그 아름다운 질서를
진짜 좋아한다는 건 뭘 의미하느냐
이거예요.
나눔과 풀어놓음이야.
그렇죠?
그 나눔과 풀어놓음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당위가 아니야. 혹
좋아하는 거. 이렇게 되는게 바로
지금 현재 자본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선을 해결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나는
이거 이거 단순하게 무슨 어 부위
무교 뭐 무슨 비첨해 더 나아가서
비닐락 부위호래 이거를 이렇게만 그냥
단순하게 그게 그렇게 오는게 아니고
굉장히 현재 자본주의 체제를 번역하는
어떤 정신적인 어떤 그런
어 진화랄할까 이런 데서 두 가지가
예이
바람직하기에는 사실 그것도 이제 하나
내가 바람직한 건데
아,
참동 개혁 세력이라면
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게
현대적으로 빈자라는게 들어가는 건
사실은 조금 좀 뭐하지만
단순 소박한 삶을 즐기는 그런 개혁
세력이 나와야 돼.
네.
이게 말이지 그 막 그 평등을 위해서
하고 뭐 특권에 반대하고 한 사람들이
사실은 몸에 붙어 버려. 그거 공자
아 지적 아주 예리하게 하고 있어요.
예.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들한테
아주 그 경계하는 말은 뭐라 하는가면
그 불인이 몸에 안 붙도록 해라.
음.
이거 보통 이게 그냥 슬금은 지나는
실제로 그런 그 내 내 경험을 통해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독재가 몸에
붙어 버리는 경우
반독 운동하다가 또 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권에 반대한다면서 오히려
특권이 그렇게 뭐여 붙어 버리는 경우
그 니체도 그 이야기했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다.
그 이야기를 공자가 바로 이야기해요.
음. 그래서 어 나는 그 적어도
그렇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들 이게 개혁의 주체가
되고
그게 중산층 이상이 부위 호래하는
중산층 이상이 지지를 할 때이 참된
변화가 올 것이다. 그래서요 그런
게까지 너무 간단한 걸 물어봤는데
내가 너무 많이
앞을 내다보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실제로 아까 이게 군자의 질서다는 거
소연의 질서에서 군자의 질서로 이게
자본주의가 그렇게 이행해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제이
대목에서 공자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는 건데요. 저도 이제 종교 전문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종교라는게
예를 들면 뭐 사회이 종교일수록 현실
복락을 구하지 마라. 어 구원은 내세
있는 것이고 하지. 그 뭐 현실의 뭐
뭘 구하지 말라고 굉장히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는 것처럼 하면서 헌금은
엄청나게 강의하면서 자기 욕망은
충실하게 자기 영감은 엄청나게 자기는
놀수로 있었다고 다니고 엄청나게
팬트하우스에 살면서
할머니들 1년 사셨을 간장에다 밥비는
사람 보고 500만 원 1천만 원씩
울어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차라리 열심히 살면서 자기 생계
문제를 해결하라. 이런 식으로
니얼하게 얘기를 해 줘야
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서
어 자기의 어떤 삶의 문제도 삶에서
중요한 문제니까 열심히 개선하면서
부지런히 해서 잘 살아라 이렇게
공자의 즉이 훨씬 현실에 와 다가
선단 말이야. 그러면서 뭐
가난하면서도 출발할 수 없이 우리가
현실에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다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남들처럼 요즘에 뭐 3만 불
시들하지만은 나는 1만 불 밖에 못
된다 그래서
울고 찍고 한탄할 것이 아니고 요즘에
새회복지 잘 돼서 도소관도 있고
남들이 해행지만 나는 해행 못
가더라도 도서관 공원 잘 이용해서
햇빛 잘 재고 잘 걷고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게 살아라는 어떻게 보면
공장인데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 아,
그러니까 그렇게 그 빈이라 하라
그니까 남들만큼 그렇게 수만 불에
3삼만 불은 못 산다 하더라도
못 산다 하더라도 비닐락해라 이렇게
하는게 공자님의 말씀이 현실적이고
그리고 가끔은 우리 주변에도 이제
나름대로 부유하고 사회적인게 높지만은
보통 그러면은 자기가 꼭 그 부자
행세 부자값을 꼭 하고 또 권세값을
꼭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진정한
인간들의 사김, 사람 사이의 관계
이런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도
가끔 보이잖아요. 하여튼 그런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자께서 말씀해 주신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야지.
예. 그러니까 그게 너무 이제
현실적이어서 공자님 참 좋습니다.
공자님 마음에 들어요.
예. 나는 비지락보다는 요새 이런
말로 좀 바꿔 쓰고 싶은게 단순
소박한 삶의 풍요 예
요게 좀 어떻게 보면 예
우리 시대적 테마가 아닐까 이렇게
봅니다. 단순 소박한 사물의 풍요
저 공자는 부를 예를 테면 돈을 구할
만하다면 비록 마부 노릇이라도 나
역시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살리라라고
하셨는데요. 반환이 아니라 건강한
불을 공략하는 매우 중요한게 있.
그렇죠. 그렇습니다. 건강한 불을
중시 그게 그거를
저 일차적으로 이렇게 저 어떤 행복의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
아,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