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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분을 뵈러 전북 익산에 왔습니다. 저와는 수십년 인연을 맺고 있고, 제가 존경하는 이남곡 선생님을 뵈러왔습니다.
이남곡선생님이 무려 천페이지에 달하는 ‘논어를 연찬하다’는 책을 냈습니다. 한문만 하시는 분보다, 보다 폭넓은 시각, 현실적인 시각과 인문적 시각을 통섭해 낸 책이어서 저도 논어를 참 좋아하고, 많은 논어를 읽었지만, 백미로 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남곡 선생님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민주화운동을 하며 옥살이도 하시고, 1970년대엔 농촌지역에서 교사를 하며 교육실천연구회 활동도 하고, 법륜스님이 정토회 가장 초기에 설립한 불교사회연구소 소장도 지냈고, 1994년부터 8년은 경기도 화성 산안마을 야마기시실현지 공동체에서 무소유공동체 실험에 동참하시면서 2004년부터는 전북 장수에 정착해 연찬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연찬을 이끌어오고, 그 이후 익산에 머물면서 인문운동가라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나신 부인 서혜란 여사님은 여성민우회 창립을 주도한 여성운동, 생협운동가였지요. 20여년전 저도 야마기시에 어린 딸을 데리로 자주 놀러가곤했는데요. 그 때 이남곡 선생님과 서혜란 여사님이 참 다정하게 반겨주셨지요.
이남곡 선생님이 17년전 논어에 대한 첫 책. 즉 이번 책의 원조격인 원고를 제가 보내서 한겨레출판사에서 ‘논어-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었지요.
이남곡 선생님께서 우리 시대에 남겨준 정신적 보배인 ‘논어를 연찬하다’를 가지고 연찬의 자세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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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오늘은 특별한 분을 배어 전북 익산에 왔습니다.
저와는 수십년 인연을 맺고 있는 분인데요.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이남곡 선생님을 배로왔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반갑습니다. 이남국 선생님께서 이번에 무려 천페이지에
달하는 논어를 연찬하다이 책을 냈습니다. 아,
너무 두꺼워 가지고이 책 읽느라고 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이렇게 어 제거네이 책 읽는데만 해도 한 열흘 동안 꼬박 읽었는데에
제가 책 내용이 별로면은 읽다가 한
1분 읽다가 그냥 집어 던졌을 거예요.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저기 너무나 그 깊이도 있고 또 유연하고
또 굉장히 읽을 만하고 또 삶에도 도움이 될 만하고 그래서 끝까지
완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 정말이 시대에 꼭 많은 분들이 읽어야 될
필독소로 권유하고 싶어서 어 제가 오늘 익상까지 왔습니다.
그이 책이 굉장히 이제 현실적인 시각, 폭넓은 시각, 또 입문적 시각
이걸 이제 통섭에내는 책이라고 어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논를 참
좋아하고 많은 논를 읽었지만은 아 논노에 관련된 수백권의 책 중에서
정말 첫번에 꼽을 만한 책이다. 아이 논을 연천하다를 이렇게 추천합니다.
이국 선생님께서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 법대를 졸업하시고
어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옥사리도 하시고 1970년 된 농천 지역에서
교사를 하면서 교육실천회 활동도 하시고
법윤수님이 정토해 가장 초기에 설립한 불교사회
연구소에서 불교사회 연구소 소장도 지내셨습니다. 1994년도부터 8년은 경기도 화성
산남마을 야마귀시 시현지 공동체에서 무소위 공동체에
실험도 동참하시면서 이제 그 이후에 2004년부터는 전북
장수에 정착해서 연찬문화 연구소 이사장으로 연찬을
이끌어 오시고 그 이후에는 이곳 익산에 머무시면서 입문 운동가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아, 이런데 선생님 그 한평 같은
촌에서 태어나셔 가지고 그때 한평에서 수제들은 광주 일을 가도 전부 다
대단하다고 그랬는데 왜 경기국까지 갔어요? 뭘 모르고 갔지?
그때 이제 제 교육을 위해서 어머니 혼자 예. 아, 참 서울에 올라오셔서
그 아들 교육을 시키려고 그렇게 하시고 계셨는데 그때 그러면 어머니하고 두 분 있어서
서울 올라오신 거? 아니요. 그 어머니가 먼저 올라오셨죠. 아, 먼저 교육시키려고. 아, 먼저 올라오셔서 이제
맹자 어머니 저리 가가 많이 아니 그 어, 뭐 여러 가지 이제 구준일 해 가시면서 어, 그렇게
하셨는데 네. 내가 이제 고등학교로 가야 되는데
어머니가 물어보시더라고. 아 어느 학교 원서를 사보낼 거냐고.
그래서 나는 전혀 몰라서 시골학교와 뭐 그 경기도학교가 뭐 얼마나 어 좋은 학교인지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인지 모르고 예. 어 그냥 그 어머니한테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예. 그래도 제일 좋은 학교 그니까
어머니도 전혀 모르셔. 어머니도 저보다 더 모르지. 학교를 안 나오신 분이니까.
그게 주 사람들한테 물어본 모양이에요. 제일 좋은 학교냐니까 경기 고등학교로 그래서
그럼 그 학교 사보내신 거예. 그래 그래가지고 얼떨결에 들어갔습니다.을
얼떨결 들어갔는데 예 아마 경기 중학교를 나온 이제 학생들이
420명은 그대로 진학을 하고 아 60명만 이제 예에서 예배 뽑을
텐데 어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다만 하나 기억되는
거는 예 수학 아 내가 중학교 때 수학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 아,
수학 시험지를 받아봤는데에 이게 수학 시험인지 무슨 저 국어
시험인지 모를 정도로 음, 전체 앞변이 전부 그 방정식 응용 문제야. 그러니까 수식이 나오는게
아니고 주로 그 방정식 응용 문제가 나왔어요. 그리고 뒷면에 약간 인수분해 지금도 기억이 든다니까 그
나오고 전면이 전부 그렇게 그 어 뭐야 그 저 뭐 빽빽한 글자가 쓰 있는 그런
시험지였는데 하필 그 내가 그 운이 좀 있는 거 같아요. 내가 제일 좋아했던게 방정식
긍용 문제예요. 예. 그런 면에서 아마 좀 논리적인 어떤 그런 부분이 좀 있었던 거 같은데. 네.
어 그 나중에 들어가 가지고 수학 시간에 수학 선생이 내 이름을
불러서 이렇게 세우더라고. 그 그거 보니까 내가 수학에서 아마 수학에서 점수를 많이
얼마나 탁월하게 그 이렇게 적어냈으면 선생님이 딱 이렇게 세웠겠어. 아니,
그러니까 그러면은 수학자의 길로 갔으면은 이곡 노벨 수학상 이렇게
딱했 인생 이렇게 안 꼬였을 텐데. 아, 왜 또 수학자의 길을 또 안
가시고 또 괜히 또 민주화 운동을 해 가지고 또 말이야 인생이 권이고. 근데 고등학교 가서는 이제 관심이
조금 수학에서 떨어지더라고. 떨어지면서 아 때 아마 내가 좀 이과 기질보다는
문과 기질이 좀 나타나는데 근데 하여튼 중학교 때까지 수학을 그리고 그거 내가 지금 생각해 봐도
네 어 수학의 어떤 논리 추리 뭐 이런 부분이 내가 좀 그 능력이 좀 그 그런
소질이 좀 있었던 거 같아 그래가지고 어 하여튼 그렇게 돼서 어 어떻게
보면 이게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초기 게 별로 없어요. 아하. 왜냐하면
우선 다 다른 학교에서 지나게 오기도 했지만은 예 아마 그 당시 경기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일반적인 어떤 문화 환경 문화라든지 생활환경하고
아주 전혀 다른 그런 생활 했기 때문에 아 그러니까 그때 경기고등학교 뭐 지금도
그러지만은 그 경기고등학교 오늘 애들이 뭐 엄청나게 뭐 재벌집 아들
장차관집 아들들 이런 좀 부유충 자재들이 많았을까? 많았겠죠. 아 말았을 아 나는 모르지
모르 그러니까 뭐 모르고 촌에서 올라가 가지고 친구들은 거의 뭐 엄청난 그
집배 자재들이 많고 그러니까 선생님 뭐 이러선님 그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 친구들 집에 입주해 가지고 친구들 가르키면서 다녔다는 소문이 있던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사실은 이제 그
제가 그 입주 가정 교사를 했습니다. 아 고등 3학년 때 어떤
그러니까 그 뭐 저 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가르치는 가정 교사로
가정 교사는 내가 입주를 해 가지고 그래서 거기서 대학 들어가서 대학
교학년 때까지가 그 그 거기서 생활을 했습니다. 아 참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죠.
아, 그러니까 요새처럼 뭐 과를 하는게 아니고 내가이 가정 교사를 하면서
아, 당시엔 그래도 그게 가능했던 거 같은데 요새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예요. 요새는 그렇게 입주 가위하면서 부잣집은 어떻게 사는가도 처음
아니 그다지 그 집이 그다지 부자이었어요. 부자
나중에 부자 추도 며칠가 봤지. 아, 그렇어.
그러셨구나. 그래 가지고 이제 서울대 법대까지 가시면서도 저 다른 분들은
대부분 다 검사 판사 될 걸로 기대를 했을 텐데
이제 그런 길로 또 못 가시고 그러니까 예전에 이제 사모님이 이제
벌써 지금 15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서열란 선생님 지금 말씀하신 어머니도 또 서열란 어 선생님도 어 우리 인나
선생님이 경기도 화성 산남마을 야마귀시 씨 공동체에 사실 때 저도
그때 이제 과천에 살아 가지고 저희 어린 딸을 데리고 맨날 거기 낙원 거기 낙원촌이고 뭐 낙원촌이 아니어도
주말에 이제 놀로도 자주 가고 그러면은 그 어머니도 그때 같이 거기 사셨거든요. 이제 서한 여사님도
참 따뜻하게 정말 잘해 주시고 맛있는 맛있게 밥도 해 주시고 항상 오면은
또 이제 계란이랑 상추랑도 이렇게게 싸 주시고 그게 지금 그것 때문에
지금 오늘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계란값 계란값 지금 상추까 말아
그때에 굉장히 따게 품어 주시고 근데 우리
그 서라는 여사님은 여성민 의의 창립 그 생운동에 굉장히 주도하신 여성
운동가 또 생애 운동가 있는데에 그때 그 그 전에는 잘 몰랐는데 그
서열란 여사님 돌아가시고 추모식을 그 장충동에 에 그 어디 불교 어떤 단체
우리 함께 하던 그 단체 거기에서 이제 추모식 할 때가 보니까 그 이와대 동기동창 선우배들이
추모시기꽤 여러 명이 왔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그때 나중에 이와이드
총장했던 이예숙 총장 그분도 예전에 저하고도 같이 이제
그런 이문학 공부모임 멤버로 같이 공부했던 멤버인데 그때 그분도 거기 오셨더라고 그러면서
그 서란사님 친구들이 인나 선생님을 별로 미 미 미워하더라고
우리 혜란 언니가 정말 대단한 언니였는데 남편 잘못 만나가지고 인생 졌다.
그래요가지고 아 그래가지고 얼마나 속으로 웃었는지
아니 여자가 자기가 좋다는데 좋아서 갔다 하는데 뭘 자기들이 예 자기들이 불만이야 그러면서 근데서 여사님이 그
마산에 굉장히 부잣집 따임이셨다고 그러 거창 거창 거창 굉장히 부잣집 따임이었는데
그러니까 별로 사이가 마음에 안 들어 가지고 그 집에서 서 별로 이제
딸 사이 별로 이렇게 예 별로 안 챙기셨다고
어 그건 나 잘 모르겠는데 아니 근데 그렇게 큰 부자는 아니고
그 뭐 시골 뭐 시골 부자죠 시골 부자고 예 어 하여튼 뭐 사람 2년이라는게
묘해요. 그래서 어 지금도 내가 이제 80이
넘었지만은 이게 돌아보면 예 어 그 인연들이 그 어떻게 발전하는지
어떻게 변하는지 하는게 참 미용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아요. 우리 저
조선생하고도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잖아요.음 네. 그래서
어 예를 들면 어 대학에 들어가서도
어 처음에 2학년 때는 예 그 내가 이제 가정이 어렵고 어머니가
혼자 오랫동으니까 어떻게든지 어머니를 빨리 좀 좀 이렇게 풍요롭게 해주 그런 생각이
많았죠. 사실 많아서 그때 대학을 아마 3학년인가를
마치면 사법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게 생겼을까? 아 잘 기억이 안 되는데
그걸 더 빨리 하고 싶어서 1학년 때 그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 시험을
봤어요. 어 대학 1학년 때 됐어. 와 뭐 박수 칠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니 그런데 옛날 말이 그 조선 시대 때 15세 장원 급지하면 인생이 부다 그러는데
이미 너무 일찍 그냥 막 그냥 가 나이가만으로 18살 예 우리 저 우리
나이로 하면 19살 때인데 예 그래 가지고 그러다가 그의 겨울에
이게 좀이 그게 인연이에요. 음. 어, 내가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도
약간 그런 어떤 사회 어떤 어 뭐라 할까? 사회 변역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 민족주의적인 생각이 강했고 어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하고도 만나지. 내가 대학 1학년 때에에
고등학교 때 저 올라와서 419 만났고 고등학 2학년 때 516을 만났어요.
그리고 이제 대학에 들어와 왔는데 그런 의식도 좀 있는 편이었는데
어 이때 이제 누군가를 만나게 되지. 아 아
이제 운명히 갈리 1학년 1학년 때 1학년 때 갈려 가지고 2학년인 때부터는
완전히 그 그 그런 길하고는 전혀 다른 길 음
그런 다른 길을 걷기 이제 그 길 그렇게 해서 맺어진 인연이 어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제 여러
차례 변곡 그 변환을 하면서 이어주고 있다 이렇게 봐집니다. 우리 조선생도
그 과정에서 만났고 그렇죠. 그냥 우리 이나우 선생님께
이나우 선생님이 계속 검사 판사만 하셨으면 저를 만날 일이 없었는데 하여튼 그런 삶의 우곡조를 다
거치면서 어 또 어 저도 우리이 선생님 뵐 수 있었고
참 검사 판사가 안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예.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 이나고 선 어머니도 그게 다행이죠. 검사
판사돼 가지고 어떤 그 집에 사이로 대리 사이로 거의 팔려갔으면은 거의
같이 살지 못했을 텐데 그래도 같이 그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아들을
며느리하고 이렇게 하시고 그 제가 보기에는 복이죠. 복.
근데 어머니 생각이 요새 가끔 해요. 내가 업무 생각하는데
나는 내 세계관이란 내 인생관에 따라서 어떻게 보면
어떤 사람들 때로는 아주 과격하다고 해 나를 근데 실제로 객관 증경을 보면 과격한 때가 있었다고 이렇테면
어떤 사건에 이렇게 관여해서 그 이제 그런 어떤 내가 저 징역사를
했지만은 그 과정도 보면 어 상당히 과격한 면이 있어요.
음. 선생님 그때 징역사를 몇 년 하셨어요? 어 4년. 그니까 5년 형을 받아 가지고
근데 그 징역사리에 계기가 된 사건이 이런바 그 남민 사건이라고 해서
알려진 사건인데 한 석달했어요. 활동을 석달하다 보니까
이제 그 거기 또 전환점이 와요. 음. 평소 내가 그 사회 변역 운동 특히 이제 뭐 솔직히 뭐 요새는
이야기해도 뭐 다 이해가 되겠지만은 사회주의 성향에 어떤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어떤데 대해서 여러 가지 마음속에 의문이
있으면서도 의문이 있으면서도 어 그런 길을 이제 걷기로 이제 쭉 걸어왔었는데
네이 그 남민 하고 이렇게 만나면서
예 그런 여러 가지 그 회의할까 그런데 대한 어떤 의문점들이
더 깊어졌어. 아, 그래서 이거는 어, 내가 생각하는 것하고 다르다. 처음엔 그런
생각보다도 어떻든이 단체에 들어가서이 단체
뭐 뭐랄까 표현이 어떨지 몰라도이 단체의 상층부에
어떤 진입을 해서 이걸 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좀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하다 보니까 예 아 그게 전혀 이게 잘못된 생각이 착각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 어 석달하고서 그만뒀어요. 그만두고
거기서 비밀 뭐 비밀 지하 조정이니까 거기서 거기서 이렇게 저 그만두는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그래서 그 그 당시 이제
학교 선생이었는데 학교 선생도 그만두고 집도 이사에서 몇 달 동안 좀 이렇게
다른데 나가 있었습니다. 어 그리고 1년 있다가이 사건이
터져서 내가 이제 그 구속이 됐는데 그러니까 실제 이미 이미 다 떠났는데
그렇죠. 근데 했는데 수사 기관이 알린 것도 아니고 혼자 그만뒀다고
하면 혼자 그만둔 거기 때문에 네 그런게 저게 안 되더라고. 그 저 참
활동이 면책이 안 되는 그렇지 안 되고. 어 그런데도 이게 석달이지만
간부였다는 거야. 그게 1조 2항이야. 국가 보안법 1조 2항 간부야. 간부
간부니까 어 15년을 구영을 하더라고. 근데
그래 가지고 어 선고가 이제 5년 5년 선고가
됐고 선고되고 어 1년 그 뭐 특사로
1년 해서 4년 동안 이제 살았는데 아하 어떻게 보면 그 당시는 상당히
치열하게 산 건 사실이에요. 예. 살아서 어 거기에 대한 어떤 뭐 좀 어떻게
보면 좀 억울한 면도 있지. 그만두기도 했고 몇 달 안 했는데
어 이거 중영을 받았으니까 근데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억울함이라든지
원망이 없었어요. 어허 억울함이 없고 오히려 어 그니까 내가
치열하다는 건 내 성찰하는게 상당히 치열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여러 가지 그동안의 반성 성찰하는 시간이 이제 저 감옥에서 그걸 하게 돼요.
그것이 사실은 그 그 이후에 감옥을 나와서 내가 이렇게 사상적인 조환도
하고 전환이라 할까 뭐 하도 이런 과정에 어 큰 그 바탕이 됩니다.
예. 그때 어만 사람들이 이제 주로 저
사상적으로는 내가 지금 오래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은
어 대아 사르 신부 사르땡 신부 아 그저 데아르신 대사르
그 책으로 만나셨겠나 그죠? 최고로 봐. 책으로 보고 그 하는게 어 인간 자체의 진화에 대해서 오메가
포인트라든지 인간 자체의 진화에 대해서 이런 부분들이 평소 마음속에 이게 감춰져 있던 그런 부분을 좀
읽겨웠어요. 읽겨워서 내가 생각할 때 그런데 좀이 전환하는
어떤 바탕이 있었던 거 같고 사람으로는 거기서 만난 사람이 한 분 있어. 감옥에서. 어
신목 선생이요. 아 신현목 선생을 내가 그 대전 교도소에서 이렇게 만났는데 네
어 이제 다 뭐 기결수니까 아 기결수니까 주로 만나는게 이제 일요일
날 만나게 돼. 아 일요일 날 어떤 시간에 종교 시간이 종교 시간. 다 종교 시간.
아, 그러니까 뭐 종교가 여러 가지잖아요. 여러 가지데 그 종교 시간에에 만나서
그 무슨 뭐 뭐 저 염부를 한다든지 기도하는게 아니고 둘이서 이야기하는
거야. 그게 이제 그걸 아, 한 종교를 선택 안 하고 또 따로 만나도 됐었는 모양이죠. 그렇게
그니까 그렇게 했던 거 같아. 자세한 기억은 없는데 하여튼간에 그 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그렇게 만나는
시간에 그걸 이제 주로 그 감옥에서 쓰는 말을 하면 통방이라 그러는 통방. 아, 통방 아,
통방으로 좀 활용을 해서 그 지금도 어, 종교에 대해서 감사 아,
종교 농담이고 그런 일이 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그러니까 그 신국 선생이 들어간 건 남민고
그분은 통역 아니 통당 통역당 사건 통역당 사건이고 남민은
예전에 그 법륜 스님이 형 최한실 선생이랑 그거 다 다 남민 아니에요.
그렇죠. 어 그 뭐 그런 지금 이제 이야기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인연들이 떠올라 사람들이. 최한실 씨
이야기하는데 최한실 씨가 나를 남민에 안 내리려 했지.
그러니까 참 이게 다 근데 어 지금 생각해 보면
아 그게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떤 인연이 예 어 이게 악 뭐 악연이나 서연이라고
할할 만한게 아니야. 보면 그것이 다른 인연을 낳는 총매가 되거든.
역할을 해. 그러니까 어떤 사람 만났을 때 그 사람 만나가지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좀 이렇게 여러 가지 고생을 했다 이렇게 말할게 아니야. 그게 다른 인를 낳는 총미 역할을
하거든. 잘 보면 그렇게 돼요. 그래서 그 어 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게 조금 그다 또 그
형 제한실 선생이 그렇게 이제 감옥에 들어감으로써 법륜 스님도 엄청나게 깨우는 역할을
했죠. 범수님도 형이 아니었으면은 그 불교의 어떤 문제 의식을 못 느끼고
완전히 그걸 깨고 나오면서 하여튼 현실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종교의 세계 현실의 어떤 고통에
대해서 눈을 감아 버린 종교에 대해서 굉장히 눈을 뜨는 어떤 현실을 도시한
종교에 대해서 굉장히 깊이 있게 또 성찰하고 고민하고 고뇌하고 하면서
어떤 식으로 종교가 나가야 될 것인가 아마 그런 걸 고민하는 과정에서 또 불교사의 연구서를 초기에 젊은 때
설립하고 그것을 이나고 선생님 또 소장 맡아서 같이 그 시절은 또 아마 치열한 그 고민의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게 이제 아마
그 아까 저 최안실 씨 이야기를 했지만은 최한실 씨하고 이어짐이
아 법륜 스님을 만나게 했지. 예. 법륜 스님하고 나하고는 전혀 뭐 그다
그 당시 스님이 아니었고 예. 정토회라고 하는 그런 그
법사야. 법사인데 머리를 그러니까 깎은 상태가 아니고 머리를 길었어요. 머리 하는데
대단한 분이죠. 대단한 분이야. 그 저 한국의 종교인 가운데서
어 참 대단한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보이는데 그 당시 아마
오래돼서 잘 기억을 안 나지만 어 그 당시 불교 운동을
한 과정에서 뭐 새로운 거 그 종전의 어떤 민중
불교라든지 어떤 불교 운동의 어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마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근데 나는 남민을 거치면서 사실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어떤 운동 방향 변역 운동 자체의 변역 변운동 자체의 변역을
어 내 화도로 삼고 있었을 때입니다.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의 어떤 문제식을
절감하고 좀 변화를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성찰을 이제 하는
와정에 또 이제 법윤 수님하고 만나서 어떻게 우리가 새로운 사회 변역을 가져갈
것인가 그걸 이제 같이 고민하는 어떤 그때 이제 단계였구만요.
참 그래서 그때 아마 그 내가 저 요새
그 옛날 그 불교사 연구소에서 낸 그 회 회지
서원과 연대라 하는 회지를 냈는데예 그 회지 창간호에 내가 그동안 그
불교사 연구소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그런 뭔제실을 가지고 같이 이야기했던
그런 부분들을 정장 글을 내가 참관에 실었더라고 그 요새 그 현대 문명의 저걸 보고
있는게 그걸 책이 딱 한 권 있는데 그 한 권을 내가 그
요제 그 사상계 새로 나오는 새로 복관한 사상계 어
그 편집인으로 있는 장원 선생 만나서 그 책을 내가 이렇게 저 참고로 이렇게
좀음 드렸어요. 거기에 보면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명이라고 하는 걸 분명히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전에는 그게 사실은 내가 이제 변화한 건데
제도 물질과 제도를 바꾸면 예 어 인간이
변화한다. 이런 이런 전제가 상당히 강했다고 그게 소위 뭐 유물론적 사고
방식이기도 하고 예를 들면 아 하부 구조가 바뀌면 상부 구조가
바뀐다는 이런 이제 직인데 예 내가 그 여러 가지를 경험내 이게
수술의 경험이죠. 경험을 하면서 느꼈던게 그렇게 잘 안 돼.
예. 그리고 뭐 이렇게 제도를 바꿔 가지고
사람이 바뀐다고 하는 이런게 이런게 실제로 잘 이루어지지 않더라고. 예. 오히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어
세수를 세부대. 세수 세부대라고 하는 거는 어떻든 뭔가 틀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면 거기에 이제 세술 할 때는 그렇게 제도를 바꾸고 거기 한다 이렇게
하는데 실제로 아마 아 물론 다른 영역에선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 봅니다만는
정치나 사회 변화 부분에서는 세수를 세부되라고 하는 거는 맞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세수이 이거 사람이 변하지 않았는데
변하지 않았는데 그걸 뭐 체제를 바꾸고 제도를 바고 가지고 거기다가 이렇게 그 적용을 해 보면
오히려 어 새 새 부대에 새술이 들어가는게
아니고 대부분 헌이 들어가는 거 그러니까 인간이 변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캐치 플레이를 좋은 걸로 달라와야 예 이름이 더러워지는 뿐이죠. 예.
그래서 그때 생각했던 내 지금 그런 면에서 결국 이게 이런 이런 여러
가지 그게 공자하고 만나게 되는 그 배경이 돼요. 공자 그니까 내가
공자는 예순이 넘어서 봤거든. 예순이 넘어서 본 것도 논를
본 것도 어 또 한 차례 내가 그 좀 과정을 거쳐 그게 바로 아까 이야기했던
야마귀 씨라고 하는 무조의 공동체하고의 만남이야. 단순의 만남이 아니에요. 난 8년 동안을
실제로 살았어요. 살면서 그 핵심이 되고 있는 연이라 하는 걸 내가 실제 그 저 특강도 진행도
한다니까 그 우리 선생님이 진행할 때 저도 연찬에 같이 참석해서 7박 8일 동안 치하게 또
연차 갖추 있죠. 그때 하여튼 저 술을 안 준다고 대모 아니고
내가 진행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때가 우리 조조 선생이 특강할 텐데 그때
12명인가 몇 명이 했는데 그중에 또 조선생 조선생이 직접 앞에 손도뒤에 서진 않았어 괴자가 하나 있었다고
가지고 그 특강장에 안 들어오고 앞에 앉아서 연자를 하는 거야.이 술
죽이지는 못 들어가. 그 술을 안 먹게 되셨거든. 그래가지고 근데
그 야마귀 씨하고 만남이라고 하는 걸 경과한 다음에 공자를 보겠대. 만 이게
그런 과정이 사실 이런 논어를 가능하게 논어 뭐라 할까
논어의 해석이라 할까 논를 다시 보게 되는 그 과정이 돼요. 그러니까
나는 그 내 인생의 과정 처음에 어떤 변역 운동 그다음 변역 운동에 대한
변역 운동 자체의 변역 그리고 어 실제로 한번 나는 근데 이런 건 있어요. 보통
흔히 하는 말로 요새 뭐 좌우란 말도 쓰기 그렇지만 좌파
좌파 운동을 하다가 실망을 하면 이번엔
휙하고 우파로가 버려. 아니 이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예. 어 그런데
어 그게 너무 심하게가 버려. 예. 음.데 이런 현사은
나는 이금 이게 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거예요. 네. 그까 나는 사실 어떻게 보면
그런 운동을 하다 운동에 어떤 문제를 느끼게 되면 어 그걸 어떻게 하면 넘어설까는
차원에서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중도를 향한 과정이었어요. 그니까 내가 이쪽 극에서 다른 극으로 갔다
왔다 갔다 하는게 아니고 예 거기를 어떻게 하면 이게 중도를 향해서 갈까 하는 그런 과정에서
사실은 만난게 야막귀시이기도 하고 연찬이기도 한데 네
그런 과정에서 보니까에 공자가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바로 그거 길을 간 사람이야.
2500년 전에 예 헌 부대에 세수를 담물고 했던 사람 예
그래서 어느 정도 화학 작용이 충분히 일어날 때 다시 말해서 그 세술이 들어가서 사람이 변해서 그 사람들이
변해서이 이이 부대가이 체제가 안 되겠다 할 때 그때이
체제가 바뀌고이 되는 게 아마 내가 볼 때는 2500년 전 뭐
공자의 전략이었던 거 같은데 그런 점에서 공자도 사실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장소에 가가지고 만나게 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내 이미
내 안에 내 안에 있던 그런 씨앗이 예 공자를 만나 걸 통해서
그런 식으로 또 새롭게 봐주는 점이 있었지 않느냐. 예. 고마울 뿐이에요. 다들.
그러니까 제가 봤을 때는 보통은 이제 뭐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이런 식으로 극적으로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은 무슨 뭐
시대의 어떤 변화에 의해서 아픈 대목이기도 하지만은 어떤 개인적으로
이게 내 출세라든가 나를 알리고 내가 뭔가 세상에 어필하는데 이게 유리할까
저게 유리할까 하다가 자기 욕심의 일환으로 어떤 그런 것을 취사
선택하는 경우에 그런 식으로 극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고
그 이제 이남 스님이나 법윤수님 경우처럼 그 머리 좋던 사람들이에
얼마든지 그런 식으로 영악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않고 그런 분들은 그때 당시 벌써 4, 50년 3, 40년 전에
그 지금으로부터 보면은 한국사 사가 이렇게 변역이 되기 훨씬 전인데
어 그때 치열하게 얼마나 치열하게 그 담론을 갖고 치열하게 고뇌하고 했는지
그때 정토회 같은 경우도 그때 했던 어떤 결과 어 그러니까 내외 명철
안으로서는 어떤 깨달음을 추가 인간 진화를 추가하고 밖으로는 이제 구호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아 이런 쪽으로 탁 뭔가 틀을 잡아가는 그런이 세상 변화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 우리가 움직여야 될 것인지 그때 벌써 3, 40년 전에
짜내온 틀에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지금도 뭐 만일, 2만일, 3만일 뭐
이런 식으로 쭉 이리 관지 견지온 거 보면 참 놀랐고 그런 면에서 우리나욱
선님이 이제 공자를 만나 것도 공자 같은 경우도 그냥 자기의 어떤 이익에 의해서 일이 붙을까 저리 붙을까가
아니고 정말 인간 삶의 근본이 어떤
정말 일의 삶이고 어떤 것이에 진정으로이 삶을이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삶인지 이것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권해하고 추구해 가는
삶이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우리인 선생님도 결국 막바지에 그 우리가
알고 있는 왜곡된 공자가 아니고 그 진심의 공자를 만났기 때문에 아 그것과음 이렇게 우리가 추구해온 삶이
내가 죽였던 삶이 정말에 같구나. 아, 그렇기 때문에 이인나 목사님께서
말년 20여년을 지금 공자와이 노노에 이렇게 깊게 이렇게
전착해서 무려 1천000 페이지 가까운 책을 이렇게 서내지 않았는가 이렇게 싶습니다. 입니다.
서울법대 1학년때 사법고시 예비시험 합격해 출세길 보장된 운명이 달라진 이유 | 수감중 신영복과 매주 단둘이 만나 토론해보니 | 책 '논어를 연찬하다'펴낸 이남곡 인터뷰1
그나욱 선생님께서 22년 동안 공자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다름이 없는데요.
공자의 사람됨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어떻습니까?
어,
[박수]
내가 이제 아마 예술 세 살에
처음으로 논어를 보게 돼요.
왜냐하면
뭐 저 조선도 알다시피
내가 그 당시 어떤 사회 피역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공자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겠느냐 하는 거는
팀자이 가지죠. 예전는 우익의 대부
아 보수 반도반도
사상적 원조 정도로 이제
보고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그 논를 볼 당시에 그
세상에 나왔던 책 중에 하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런 책이 나와
나올 정도에 있어요.
그렇죠. 그 100만 불 이상 판 책
논에 대한 책이 또 엄청나게 막 저
기초로 쏟아질 때었었는데
내가 논를 접하게 된 거는 당시 이제
장수로 이사를 해 가지고 저 장수에
정착을 해서
내가 정착하다 보니까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 뭐 이제 장석에도
있지만은 전주라든지 뭐 이렇게 좀
가까운
몬이라든지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자연히 이제 그 여러 가지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들이 마련해 말
자연스럽게 됐어요. 예. 사람들이 뭐
모이게 되는데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이게 소통이 안 되는 거야.
이해 관계까지가
다르지 않지 뭐 귀농한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사회 운동하는 사람도 뭐
있는데 그런데도
어 생각이 다르면 이게 소통이 안
돼. 그래서 이게 사실은 하나의 그
단적인 어 그런 현상이죠. 우리 이거
지금 현재 지금이이 뭐 극단적으로
서로 이렇게 적 뭐 적대하고 증화하고
하는 이런 평가름의 이런 퇴성이
나타나고 되는 그
근데 그래서 아이 이렇게 돼서는 좀
서로 소통하기가 힘드니까
무언가 성인급의 사람을 하나 앉혀
놓고
같이 좀 이렇게 이야기 해 보면
어떨까 해서
사람들한테저 우리 한번 성인을 한번
누구 안혀 놓고 한번 이야기 해
보자. 그래서 했더니
어 성인하면 또 오른 사람들
있잖아요.서 이제 석가지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을 안쳐놓더라도
또
의견이 다를 것 같아.
불교를
저거하는 사람 믿는 사람하고 또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죠. 그렇죠.
예수님을 안쳐라도 예수님 마찬가지야.
예수님 안쳐라도 또 이게 제일 만만한
사람을 골라보자. 이건 누가 누가 막
그냥 요구를 하고 뭘 해도 예예.
별로 그 뭐 그 괜찮은 사람 딱
공자야. 그 당시에 왜냐면 공자 이미
막 비난을 많이 받고 있거든다.
그리고
어 우리나라에서도 사대 종교에서도
빠져버렸어.
유결하는 거. 그러니까이
뭐 권력이 없는 거야 이게. 예.
그래서 앉혀 놓고 해서 저도 뭐 큰
기대 안 하고 처음 보니까 사실
이렇게 보다 보는데
어느 순간이다 보니까 점점 공자의 그
진수가 이렇게 나한테 이게 뭐 내
시각이죠. 내 감각이지만 보여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마 내가 주자 승리학에
바탕을 체계적인 학습을 했던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았을게 보이는데
그 보이는게 보이게 했던 요소가 내
자신의 경험들이에요. 변역 운동에
대한 경험들 그리고 그 저 어 감옥에
서였던 성찰 그 나와서 어 이게
불교사 연구소에서 같이 탐구하던 거
그리고 하나 더 나가 가지고 실질 해
보고 싶어서 무소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이거 했던 연찬 이런 부분들에
의해서 공자가 하는데
네
아마 그런 면이 아마 나중에 이렇게이
이런 책을로 나옵니다만은
어 그중에서도
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내가
뭐 뭔가 어떤 걸 발견했을 때 그런
느낌이 있잖아. 아 그런 느낌이 있던
문장이 하나 있어.
그죠? 어허
그것이 전체 노는 문장 가운데 아마
다른 사람들은 별로 별로 그렇게 흘러
버리는 문장인데에
노노 자한편 이게 9편이죠. 9편
7장에 나오는 문 예
어 말은 간단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아하. 아 무지야 무지야.
이게 내가 이제 한 분도 별로 내가
공부해 본 사람이 없지만 내가 논어
보면서 이제 한문도 더듬더듬
문법도 이해하기도 하고 하는데
무지 야야야 야 야라고 하는 거는
상당히 강한 표현이에요.
예. 에 호라고 하는 거는 좀 강한
표현이 아니고 뭐 그거는 뭐 좀 질문
비슷하게
약한 표현인데
야하는 상당히 강한 편현이에요.
무지 무지야 이거
무지하고
그다음에 하는 말이 그런데 그런데라는
건 내가 이제 좀 고친 거고
어 누구라도 와서 물어보면는게
유비부
문어 비부라 하는 거는
별로 볼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요.
아주 저 똑똑한 사람이라든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비부
누구라도 와서 비부 비부가 어떤
비부가 나한테 물어오면 유비부 문어
물어보면
그다음이 재밌어요. 요게 요게요
해석이
아마 일반적인 논의 해석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
공공여야란 말이 나와. 공공여야
빌공자가 두 번 공공여야
텅빈서란
말이에요. 음
텅빈돼서 해 가지고 그다음에 나오는게
내가 그 양끝을 두들겨서이
한문으로 말하면 아고기양단
음
고는 이게 두들긴다는 게
내가 그 양끝을 양단을 두들겨서
갈른이
갈인데
끝까지 끝까지 밝혀 보겠다. 끝까지
밝혀 보겠다.
이게 사실은 평 이게 보통
논어에서는이 문장 논어 자한편
9편 7장 7장에 나온이 문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요.
그 대수럽지 않게 넘어가는 것 중에
상당한 해석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무지를 공자는 말이지 스승 중에
스승을 알려 준 사람인데 무지야
했거든. 그니까
겸손한 표현이다.
아, 상당히 그렇게 봐요. 겸손한
표현이다. 겸손한 표현이고 그렇게
보다 보니까 내가 그 양끝을
두들겨서이 한문으로 말하면
아고기양단.
음.
고는 이게 두들긴다는 게
내가 그 양끝을 양단을 두들겨서
갈런
음.이
갈인데 끝까지 끝까지 밝혀 보겠다.
끝까지 밝혀 보겠다.
예. 이게 사실은 평 이게 보통
논어에서는이 문장 논어 자한편
아 9편 7장 7장에 나온이 문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요.
대수럽지 않게 넘어가는 것 중에
상당한 해석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무지를 공자는 말이지 스승 중에
스승으로 알려 준 사람인데 무지야
했거든.
겸손한 표현이다.
아 상당히 그렇게 봐요. 겸손한
표현이다. 겸손한 표현이고 그렇게
보다 보니까 무지하고 뒤에 나오는
거는 뭐냐면
간언을 아까 양쪽 끝을 두들겨서
끝까지 밝혀보겠다는 갈 갈을 갈을
어떻게 하면 끝까지 가르치겠다.
이렇게 나와.
그러니까이 이렇게 해석하는 거 자체가
얼마나 모선되는지 자체를 의식을 못
해. 앞에는 무지라고 했는데 뒤에는
가르치겠다. 왜? 공자는 스승 중의
스승인데
스승이 이렇게 무지라고 하는 건
대단히 겸한 표현이야. 아 그러니까
앞에는 무지를 그렇게 해 놓고 뒤에는
가르치겠다.
천만해. 전혀. 그이 나한테는 그게
바로 들어오는 거예요.
왜? 연차이라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까
연천이라는 걸 내가 저 실제로 해
봤기 때문에
공공을 대부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
텅 비었다는 걸 앞에 비부를 수식하는
말로 해.
아무리 텅 빈 사람이 와서 물어봐도
이거
아무리 멍청하고 텅 빈 사람이 와서
물어봐도 나는 끝까지 양쪽을 두들겨서
끝까지 가르치겠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죠.이
말이 안 되는 해석을 대부분 그렇게
하고 근데 나한테는
공공이 비을 수식하는게 아니야.
음.
공자를 수식하는 말이요.
내가 텅 빈 상태에서
야방시 전차는 해 보셨잖아.
영위에 선다는 그러니까
영유에 선다 핵심적인 거예.
예. 그거를 어 그렇게 해서 그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아닌 영의 영의
서서 제로
일체 제로 베이스에서
어
그 말은 뭐냐면 무지를 자각한
상태에서라는 말이야. 예.
그런데 그 말을 또 사람들이 이렇게
잘 해석 못 하면 그럼 내 내가 알고
있는 걸 다 버리란 말이냐? 버리면
안 돼. 버려 가지고 어떻게
파이칩니까? 버리라는게 아니고
내가 인식하고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각일 뿐이고 나의 판단일
뿐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틀림
없다라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이게 영예요. 그니까 무지를 장악한
상태에서 끝까지 한번 그리고
무지야 해 버리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죠.
음
불가지론이요.
알 수 없어. 그건 나요. 불가지론
아니면 이런들 어려 저런들 어때리
회의론이 여기에 빠지잖아요. 이게
연찬 정신이거든. 치열하게 탐합니다.
어떤 바탕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의 감각이고
판단일 뿐이지만 하는 자각이 있는
상태. 그러니까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게 아니지.
그런 단정이나 고정이 없는 상태에서
끝까지 한번 탐구해 보겠다. 요게
논어 9편 7장이에요.
예. 이것이 나한테 전편을 읽는
키워드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다른
부분들이 제대로 이해가 되기
시작해요. 네.
음. 그래서
막 이런 점이에 내가 그 논노하고
이렇게 만나서
그 후 스스로 입문동이라고 하는 거
임문동갈 자체하고서 주로 동반자가
논어했습니다. 왜?
연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걸 야마귀시
연찬을 가지고 이야기하기 힘들어
사람들한테.
이름도 잘생 한 데다가
아 그래도 연천 야마기시 연찬 덕분에
국회에서도 뭐 하면 맨날 요즘에
연한다. 연찬 말은
많이 따오긴 한데 연이 안 돼. 실제
그게 연천이 아니고 그냥 뭐 저
연천회라 말은 많이 해.
근데
어 그거를 내가이
야망의 나오면서 나오는 것도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지 모르겠지만은 지금
세상에서는 어 그런 어 방식 그런
방식은 보편증을 획득하기가
어렵더라고. 음흠. 어
그냥 뜻 맞는 사람끼리 몇 사람은
행복하게 살 나도
어 내가 그게 저 그런 면에서는 저
전혀 야마이 살면서 불편이 없었어요.
나는 왜냐면 그런데 좀
원래 좀 익숙한 사람이야. 목소리
그래서 아근데 이게 운동으로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나왔어 나왔는데
아
어
그 연찬을 이렇게 보편했으면 좋겠는데
야마이 씨가 지금 일본에서도
운동으로선 거의 끝난 상태입니다.
그 일본에서 또 여러 가지 저 뭐 안
좋은 선입관들이 많아서
그 뭐뭐라 일종에
사교 비슷하게 사교 집단 비슷하게
이렇게 보하는 견해도 있고 해서
한국은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닙니다만은
일본이 이제 본산이니까 한국은 뭐
한국
한 곳에 있잖아요. 한 곳 뭐 어디
거기죠? 향남 바람 바람 산남마인데
어 그래서 내가 그 입문 운동을
하면서 어 야마귀시이라는 이름보다는
공자의 이름을 불려서 사실은 연차의
보편화 운동이랄할까 이게 핵심입니다.
이 핵심이고
그게 그걸 통해서만 지금의 이렇게
심리적 내전에 가까운
우선 지금 저 우리 정치 상황 퇴적인
정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도 있었고
또 여러 가지 뭐 협동 운동이라든지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들이
있잖아요. 이런 운동들이 정말로
뿌리를 데리고 성공할 수 있으려면
그 내부의 소통문화 그리고 어떤
합의에 이르고 실천하는 그런 면에서
어 이런 연이라는게 참 중요하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예.
공자하고 만나서 공자하고 미올
기간이었지.
네. 네
그 22년 동안 이제 공자와 함께
미를 하셨는데에
공자 이제 사람됨을 물었고 이제
그러니까 공제 핵심을 지금 그 어떻게
보면은 그 무지의 자가 무지의 자가
그러니까 야마귀시 연찬에서도
어 영위에서 모든 것을 제로에서 실제
뭔가
실제는 뭔가 그러니까 선입견을 을
가지고 그것을 합리하기 위해서 논리적
변명거리를 항상 하는게 학문이고
사람들의 논리데 그러니까 100분
토론 하면은 전혀 100분 동안
교집합이 하나도 안 생기고 서로 더
등을 돌리기만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이기는게 목적이 아니고 내 논리의
병명거리 합리성을 찾는게 목적이
아니고 진짜는 뭔가
진실은 뭔가 이런 것을 그러니까
자기가 무지의 자각 편견과 고정관념을
놓지 않으면은 는 실제적 진실을
탐구할 수 없기 때문에 공자였던 이런
어 모습을 가장 높게 평가하셨고
그러니까 그 불교소도 승산 스님이
미국가 가지고 어 선불 세계 알려 때
그분은 항상 트레이드 마크가 오직
모를 뿐
오직 모를뿐 그랬는데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이제 그
분류가 무하고
네
그 무상이고 그러니까 무지의 자각하게
더 철저한 것이 불교하지만 한국
선불교의 모습 보면은 굉장히 그
기독교 이상으로 놀랍게 독선적인
모습이 또 강한데 그리고 예를 들면은
일본의 야마귀시도
연찬 정신이 놀라울만큼 야마귀시
미오조라는 사람이 다시 이렇게 무지의
자각을 현실에 맞게 100년 전에
퇴살려냈는데
어떻게 그렇게 연을 예리하게 이렇게
파헤치는 단체가 연찬 정신하고 또 정
반대 대로 또 가버려 가지고
어 또 그게 또 산산 조각이 많이
깨지고서 에존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이렇게 탄생하고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이제 공자도 그렇게 위대한 무지에
자각을 했음에도 한국에 와서 성리하기
위해서 너무 또 독선적으로 변했듯이
그런 점이 어떤 참 그 삶의
아이런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본질의 근본 바탕을 따져야지 어떤
지금의 또 야마귀시 공동체를 보고
야마귀시 미오조를 오해하면 안 되고
지금 성리학만 보고 또 공자를
오해하면 안 되고 어 또 지금의 어떤
선승들의 모습만 독선적인 모습만 보고
또 붙다야만 되고 하튼 이제 그런
점을 느끼게 입니다. 음.
3공자 사상의 핵심을 보통 인이나 예로
하는데요.
그런데 이제 공자는
흥어이 이벌의 성어학이라고 해서
시에서 시 포에서 일어나서 악으로
음악 음악의 악 악으로 완성된다고
했는데요.
보통 이제 성인 철학자가 공자님처럼
감성적인 신하 예술 음악을 중시하고
강조한 인무를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거든요.이를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 점이 이제 사실은 그 뭐 이야기를
여러 가지 해 나가야 될 부분이
하난데 무지의 자각에 바탕을 둔 연찬
예
그리고 그것에 바탕으로 둔 호학 학
배우는 걸 배우길 탐가는 걸 좋아하는
거 이런게 사실은
공자한테는 인의 예지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예.
대부분 그 점에서 이제 아까 이제
우리 저 조선생이 지금 말을 하셨기
때문에
어
인의 예지하고
어 아까 그 공공
음
공공 예라고 하는 게
여기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어떤 유학자보다도 내가 이제 물론
과문이니까 많이 못 봤지만 어떤
유학자보다도 더
아주 내가들을 때 아 이거 핵심을 잘
짚었네라고 하는 표현을
내가 원불교 대경에서 발견을 해요.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가
이야기하는 가운데 아마 유학자 유교
사람하고 대화하는 과정일 텐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 뭐냐면
허무멸을 허무멸 이게 이
어 실제로 비공짜가 나오는 건
노자에도 빌공자가 안 나옵니다. 노자
도덕경에도 한자도 안 나와요. 공공
공사상이 없어 거기는.
음
어
유 유학에 유교 쪽에도 공자
이야기에도 공짜가 별로 안 나와.
필공자가 안 나오는데
내가 기억하기엔 그 아까 9편 7장에
공공이란 말이 나오는데요
말을 어 허무멸이라고 하는 식으로
표현을 한다면 공연을 불교에서 말하
저 소태산 대종사의 표현들 하면
어
대중사가 급발을 표현하더라고 공을
아니 허무 정멸을 채로 하고 체 몸
하고 인의 예지를 용으로 합니다.
용어로 삼는다.
음.
아주 내가 그 말 듣고이 엄청난 이게
느낌 모아요.
정확하게 정확하게라는 건 내 탄이니까
다른 사람들 다른 생각하겠지만 내가
볼 때는 핵심을 질렀어.
근데 이게 사실은 논에도 나옵니다.
어 그게 노 공자의 직접적인 이야기는
아니에요. 아니고
6원 6패라는 말을 해요.
음. 6원 6패 여섯 가지 이에
대해서 이게 덕도 되지만 이게 폐가
될 수 있다는게 6원 6패인데 그게
그게 전인
예지 같은 것들이 다 덕인데이 덕이
무엇이 뒤되지 않으면 하는 말은
호학이에요. 불호학. 만일에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은 홍악을 하지 않으면
다 패단이 되는 거예요.
그니까 이거 이게 바로 어 어떻게
보면 아까 초태산 저 박중민 선생이
이야기하는 핵심이요. 음.
어. 허무 정밀이란 표현이 좀 조금
우리 마음에 좀 아 닿지 않았다는
오히려 공이란 말이 그 좋았는데 공을
채로하고 음
인위 예지를 용어로 삼는다는 이제
이런 그거가 이제 하나 생각이 되고
아까인가
예에 대한 는데
지금 말씀하신 그 흥어시
입을래
음
성어랑
예예
일반적으로 다른 성인들한테는 볼 수
없죠.음 음.
근데 실제로 공자는
어 인간의 어떤 감정에 일어남
예
주로 상당히 보면 뭐 대단히 이성적인
성력은 주로 그 대단히 이성적인 근데
공자는
어 인간의 어떤 감정이라든지 이게
정서라든지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있어요.
그 그게 지금 그 문장 상당히 어려운
문장입니다. 나도이 이게 흥원이
이번에 성어하기 이거 어떻게 어떻게
봐야 되나 하는 거 이게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처음에 그러는데 이
쭉 공자 이렇게 논를 몇 차례 쭉
보다 보니까 이게 이제 들어와 사람이
어떤이
감정이 일어나는 것에 온초적인 감정을
나는 시라고 표현한 거 같아.
네.
온초적 감정이야 이게. 보면 아 근데
대초로 그 어 히로의약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그 원초적 감정이 뭐냐면
아름다움 같아. 예.
아름다움에
대한 감 그거야이 저 예 일어날 때
이게 시야 그러니까
그때 뭐 식경이지 뭐지 하는 걸 많이
예를 들어서 시를 모르면 뭐 하는
말을 제자들한테 많이 이야기해 시를
모르고 어떻게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어떤 원초적 감흥
아름다움에 대한 감흥 이런 것들이
일어나게 시인데
음
어 시 처음 일어나는 감정은
거치어요. 음
거칠다고 이러는 감정이 거칠어
거칠어서이
거친 걸 그대로 해 가지고는 내가 볼
때는 공자가 생각할 때는
이상적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건
조금 어 그대로 안 된다. 그게
입을래야. 입을래. 근데 여기서
얘는요
얘가 또 이게에 뭡니까? 아, 공자가
아, 그 과거에 공자 이전에 여러
가지 사상 여러 가지 이런 부분들을
어 내용을 바꾸고 바꾸고 확장하는
걸 해요. 그게 바로 헌부대 세수를
담는 방식이 하난데 하나가 군자고
군자도
내용을 바꿔 버려. 군자라는 건
사실은 대단히 그 신분제 사회에서의
위계 질서를 나타내는게 군자
아닙니까? 요 소위 관료 지배 계급을
나타내는게 군자야. 임금이 아들이라는
건데 내용을 완전히 벗어버려. 내용을
그 그런게 아니고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군자다라고 이렇게 바꿔
버린다.
또 하나가 예입니다.
보통 예하게 되면 그냥 딱딱한 예의
범죄 이미 굳어져 있는 예의 범죄를
이야기하는데 공자는 이걸 확장해
버려요.
음.
아름다운 인간의 관계 아름다운 질서를
예로 합니다.
극기 복리할 때 얘가 바로 그예요.
네. 아름다운 인간 실수인데
적어도 인간이 일어나는 어떤 온초적인
어떤 그런 감흥을 예로서
다시 말해서 아름다운 질서를
향한 인간의 어떤 그런
그런 것으로 이렇게 좀 정제되지
않으면이라는
뜻이 이래예요.
아 그렇게 보여 나한테. 그리고데
마침내
그게 완성으로 나타나는게 음악입니다.
흠. 이건 다 요새 아주 현대
현대하고 통화하는 공자의 감각 같아.
예.
요새 보세요.
예.
음악이 지금 얼마나 지금 뭐 어 내가
가끔 그 그런 이야기 저 하는데
요새 인무운동가 뭐 철학가들 나와서
100마디 하는 것보다
음
어 가수가 어 이렇테면 트로 말하면
임영웅이가 한번 노래를 하면이
사람들이 감성을 깨워버려. 어 근데
거기에 이게 이게 이게 중요한 거야.
거기에 내용이 담기는 가사 가사하고
어떤 음률 음률 자체가 이게 적어도
어 어떤 인간의 보편적
그 지향을 담올 수 있어야 돼이
얘야이이 현대적으로 말하면
어 요새 또 그 저 임영보다 더 요새
뜨겁게 되는게 저거잖아. 음.팝 데몬
헌터스
그 나도 그 봤어요. 봤는데 어
솔직히 나는 감각은 트로트가 더 맞아
살펴봤는데
그런데
굉장히 귀중한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하게
지금도 근데 공자는 그 성어학이라고
하는게 나는
어 요새는 또 저 실제로
이론으로도요. 아 저 정치 이론이나
뭐 사회 이론으로도 정동 이론이라고
하는게 상당히 각광을 받습니다. 뭔가
하면 인간은 감동을 해서 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실제로 일이 안
이루어져. 정동이야. 정동.
근데 그런 면에서 본다 그러면 어
어떤 성인보다도 어 공자는 그런면
뛰어나다고 보여지.
그렇죠. 그러니까
자 공장님은
우리가 이제 예전에 예도 조선 시대
어떤 성리학의 어떤 보수의 질서를
세우는 그런 예만 우리가 그 굉장히
꼰대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장유의서 뭐 어 사고리충 뭐 같은
부부 유별 이런 식으로 남녀 차별 어
또 뭐 윗사람에 대한 또 충성 하여튼
이런 거만 굉장히 예를 예로 알고
있는데 공자의 본질은 은 지금이
책에서도 우리농선님께서
얘가 서로의 관계 사이 좋음 쪽으로
아주 우리 현대적으로 굉장히 공자의
어떤 핵심적인 예를 풀어 주셨는데요.
그러니까 또 이렇게 더군다 어떤
감성적인 부분은 제가 보기에는 공자에
대해서이 부분을 사람들이 지금 엿목을
알면은 공자의 매력에 정말 엄청나게
빠졌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 예를 들면 예수님 같은
경우는 굉장히 뭐 격동적인 것도 있고
엄청난 사랑이 넘치고 정의를 세우는데
어떤 주한점을 줬어 뒀다면은 또
부다 같은 경우는 이제 고통의 소멸에
대해서 엄청나게 이렇게 중점을 두다
보니까 그 얘기를 하다 보니까 또
출가자들 이후에 전문 수행자들에게
대부분의 설법을 하다 보니까 어떤
감성적 적인 면은 상당히 거의 배제를
했거든요. 감성적인 면이 드러나는게
거의 없는데
이제 공자님의 경우는 굉장히 이렇게
감성적이에요. 너무나 어 이렇게 있고
그래서 아까 뭐 대중경 말씀도
하셨지만 저는 이제 공자님의 에의에
관점은 조금 그것과는 다른데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제 허무 정멸로
보기보다는
그 이제 운물교회에서도 저는
유무상이란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데
이제 물러설 때는 무지만은 유로 다
드러나듯이 우리가 이제 사랑하고
미워하고 뭐 이렇게 하는 일체 어떤
감성적인 것이 원래 아무것도
없다기보다는 이제 불교적으로 보면
연기론 쪽으로 보면은 단지 어떤 조건
그 상황에서만 미움이 있는 것이지
연구적으로 항시 내 미움이 고정적인
형태로 딱 가시와 어떤 철퇴와 창이
내 마음속에 항상 유지돼 있는 것이
아니고 미움이라는 것이 증심이라는
것이 갈등이라는 것이 그 항상 조건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조건이
해주면 그 자체는 공이고 그건 자체는
무고
그 때문에 이제 유무상통을
다 넘나들면서
그것을 무라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카탈스 하는 그런 감성적인 것도 우리
삶이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서 시도
쓰고 노래도 부부 부르는 것을 아주
배태하기보다는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인간의 감성들을 이렇게 공자님께서
이렇게 했다는데 대해서 현대인들의
감성과는 너무도 이렇게 딱 어울린다.
특히 가를 특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이 공자님의
공장님이 거의 매일 노래를 했다 그
매일 노래를 했다 할 정도로 감성적인
분인데
야 요즘 한국인들의 정서에
굉장히 부합된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그래 그 아 참 재밌어요 그게
음
공자 스스로가 상당한 정도 수준의 에
어
음악에 대한 초회가 대단하셨죠?
대단했어. 대단하고
자기도 악길 잘 다루고
그 저 자로가이
나오는 이야기데 자로가 한번 공장이
있는데 와서 그 설이라 악기 아마 그
검은고 비싼 거 뭐했는데 그걸 하는데
어떻게 네가 감히 이런 걸 하느냐
하고 나
아 잘오라 하는 제자는 사실은 보면
재밌는 제자 중에 하나야
스스름이 없이 그냥 공자하고 나의
차이도 제일 적어 아홉살 차이밖에 안
나 근데
공자와 제자들은 보 40 몇 살
차이나는 청년들하고도 막 그걸
하거든. 예제 그
어 제일 그 이제 그 허무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까 너 너 같이
그렇게 저 그런 정도 아기 하는 놈이
어떻게 우리 집에 와서 하느냐 하고
나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공자가
그 아 그리고
어 그 아까 이번 애하고도 관계되는
건데
순임금이 만든 음악을 제일 좋아했어.
그러니까 그게 돼 있는 거야.이데
네.이 그 인간이 그 추구해야 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질서 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그게 순임금의 음악을
듣고는
뭐 석달 동안인가
고기맛을 몰랐다고 할
소라는 음악을 듣고
그게 소화가 바로 이제 아마 순임금
거 그 그런 그 그런 식인데
내가 요새 그 좀 지난번 우연히 무슨
방송을 보다 보니까 아 그 말이 좀
그 연결이 돼서 하나 생각되는
거예요. 송창식.
네.
우리 나고 봐 비슷할 거야. 나이가.
송창식. 송창식이 KBS 사는 거
있어. 그
부의 거 그게 나와서
하데 마침 그때 송창식이 노래를
부르는 날인가 하는 노래를
이제여 가수가 송창이 노래 하는데
부르는가 하는 걸 박정현이가
불렀다고.
아하. 아 사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중에 한 사람이 박정현입니다. 예.
근데 박정현이 콘서트 한번가 보는게
죽기 전에 하늘이
버디스
버디스
아 버
박정희 노래를 듣고 송창 씨가 딱
평을 하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 내
정확하게 표현을 안 되는지 모르는데
요새 음악을 보면 자기가 볼 땐 너무
그 표현이 그래. 그게 좀 거칠다는
거야 이게. 근데 뭔가 음악의 표준이
있어야 될 거 표준이란 말을 하거든.
표준 표현이 정확한지 내가 기억을
못했는데 근데 박정희한테 최대히
찬사야.
나는 박정희를 볼 때 그 표준을 보는
거 같다는 거예요.
아하
그 내가 그 말을 듣고 송창식기도
굉장히 마음에 들더라고.
그 이럴 테면
예,
지금 음악
뭐 뭐야, 케팝 데모넌헌넌터스 같은게
지금 세계적인 각각을 받고 있지만 더
앞으로 어 하려고 그러면
세계가 지향해야 될 예,
세계가 지향해야 될 아름다운 질서를
그 안에 담을 수 있어야 돼. 이것이
아마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이런
우리 공장한테서 크게 배우는 겁니다.
예.
증자는 공자의 어떤 개 정신적인 아주
개승자죠. 증자는 공자의 돈은 충과
서일 뿐이라고 했고
공자는 평생 실천할 만한 것을 하나만
든다면 그것은 서라고 했는데서 용서할
때 서
왜 그랬을까요?어서
[웃음]
서라고 하는 거는 사실은 이제
한문으로 용서할 서자인데
용서하고는 다르죠. 그 용서는 뭔가
아 상대가 잘못이 있지만 내가 그걸
좀 용서한다 하는 느낌인데 선은
그렇죠.
어 그런 거 아니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인 상태가 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아 아집에서 자유로울 때 가능하죠.
그렇죠. 내가 틀림 없다든지 하고
또는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
상대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그 서가 돼야 이게 화위 부동이에요.
그렇죠.
화위부동이라는게 사실은 이게 사람
사이 관계에서 일종에 평화인데 이렇게
화합하는 거 평화인 상태인데
그 하나가 부동이거든요.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로
한다는 건 내가 틀림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방향으로 상대를
끌어뜨리려 하잖아.
그렇죠.
그러면 그건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그래서 대표적으로 이제
소위는 어 동이 불화해. 근데
어 군자는 화위 부동이에요.
예.
이게 사실은 서죠. 서. 그게 서을
아마
좌우명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하다고 이제 저를 이야기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선은 공자가 이야기를 해요.
네
기소 불욕 불시어의 네가 원하지 않는
바을
어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어이 별로 말한게
없어요. 예.
뭐 공자 일반적인 그 말하는 방식인데
뭘게 자세히 설명하거나 정의하듯이
말하는게 거의 없습니다. 사람에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하기도
하고. 근데
내가 우연히 그 어떤 걸 보다가 충에
해당하는게 뭐 보통 충하면
어 뭐 나라에 대해서 충성하는 거 뭐
이런 걸 왜냐하면 그 예전에 군주에
대한게 충이죠. 예. 어, 부모는
효고 근데
그런게 이렇게 선입관처럼 있어 가지고
현대인들이 충이란 말을 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게 젊은 세대일수록 어 그런데
사실은 충의 개념이 그런게 아니다
하는게 내가 논을 보면서 느끼는
거예요. 뭐냐면이
천이 뭘까 하고 나도 나 내름대로
이렇게 그 하다 보니까
14세기 15세기의 그 에르트 기독교
신비주의자
거룩함에 대한 정의를 해 놓은게
있어요. 그 세 가지를 정의했더라고.
하나는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그 거룩함의 조건이
해야 할 당위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아. 두 번째는 아 그 일에 집중하는
거지. 전념 전념하는 거고
세 번째가 아주 중요하더라고.
기쁨이요.
네.
앞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는 의무나
뭐 이렇게 그런데 사는 거지만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는
자발성이
아하
진짜 마음에 하고 싶어서 자발 이게
자발성 전념 기쁨 에카로트는 거룩함에
대한 걸 이야기했는데 내가 쭉 그
논를 보면서 나오는 충이라고 하는
단어의 어떤 개념을 생각할 때
이게 이게 비교적 잘 들어맞는 말
같아.
예. 자발적이고 전념하는 거예.
전이라는 건 그에 몰두하는 거니까
소위 그 자기를 잃을 정도로 마
모라적인 어떤 그런 전념 상태가
충이야. 예.
근데 그것이 그다음 세 번째가 중요한
기쁨이야 돼.
요게 충이지 않을까? 그래서
적어도 이거는 충이라 하는 건 자기를
자기를 가장 잘 살리는게
충이고
네.
선은
상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충과 서가 어울려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 살게 되는
가장 중요한 등목이지 않을까? 아,
그 실제로 나는 협동조합의
어떤 어 가능성이라든지 중요성 같은
거를이 좀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협동하는 사람들하고 많이 만났습니다.
그동안에 주로 만나면서
그 이제 임문 운동가로서 만났을 때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춤과서가
바로 협동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등목으로 충과 서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아마 저는 그렇게
봅니다. 충과서를. 예. 그 예.
충과서에서
이제 충은 한자로 가운데 중에
마음심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이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 그러니까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는게 자칫하면은
어떤 주체적인 어떤 고정관념, 자기의
주대 이런게 아니고 우리는 어떤
상처에 사로잡히거나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우울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그런 것에 어떤
감정적인 것 하나의 편벽된 생각에
사로잡혀 가지고 완전히 거기에 푹
빠져 버리면은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는데 어떤 사로잡히는 상태
사로잡히는게 이제 결국 그게 아집이
돼 버리는데 뭐 그게 사상이 됐든
철학이 됐든 감정이 됐든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게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닌가 저는 이제 그 그리고 마음의
중심을 그렇게 사로잡히면서 일단
벗어나면은 이제 서가 좀 쉽게 되는
서라는 것은 이렇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또
듣는 건데 자기가 뭔가의 편견에
사로잡 잡혀 있으면 상대방의 말이
쉽게 곡회가 되고 오해가 되고
그러는데 이렇게 자기가 어떤
사로잡히면서 벗어나면은 어가 이렇게
자기가 어떤 옳다는 것에 딱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서
좀 벗어나 있으면은 자유로운 상태
평안한 상태가 되면은 상대방이 있는
마을을 있는 그대로 그 말을 이렇게
수용하는 입장받고 생각하는 이런 서의
자세가 좀 더 쉽게 되지 않을까 이제
이런 어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이남욱
선생님은
그 삶에서서 늘 삶의 태도 자체가
서가 잘 되시는 분이에요.
아 그거는 잘 모르는게
이제 그렇게 하려고 부담히 노력하는
사람이죠. 예. 사람인데
그 이야기하다 보니까
예
아 사실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내
기억에 이렇게 첫도 오르는 사람이
셋이에요.
예
이제 하나가 공자가 가장
어 자기 지위로 생각했던 유일한
제자가 안회죠. 예.
그다음에
아연은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뭐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쌍벽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공입니다.
자공. 음. 청자나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이제 논창 과정에 뭐 이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마이 상당히 좀
하는 거 같지만 실제 공자 시대 논을
보면은
예.
공자 시대는 자공 아 이제 안회하고
자공이 쌍벽을 잃어요. 어 자공은
부자야. 상당한 부자로서
공자 학단의 그 물질적인 그 기초
규척을 제공하는 사람인데이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죠. 대단한
사람인데 어 자공이 한번 자공일
거야. 그 공장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야 기소 무시어인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다른 사람
시키지 않겠다 했더니 공자 말이
너는 아직 그럴 만한 저게 못된다라고
얘기해. 그래서 예 사실은
공공자님도 굉장히 정론 집필이 찍는
소리를 하시 그 아 그럼 아 그 저
무색깔 정도로 해 버린다고 이럴테면
뭐 저 자로가 아이 어 삼 뭐삼군을
뭐할 때는 뭐 누가고 하겠습니까 너는
아니야
그렇죠 너처럼 맨손으로 호랑이나
때려잡으려는 만용이나 부르는
인간하고는 같이 위태로 같이 하면 그
하여튼간에 그런 식인데
그 이야기들 들어서 내 이야기 하기
나도 그렇게 알고 노력할 뿐이지 그
참 쉽지 않습니다. 아 쉽지 않아요?
아니이 선생님은 잘하시고 또이
선생님도 공자님 못지 않게 찍는
말씀을 해 놓으셨더라고이 대목에서
뭐라고 하냐면 협동조합하는 사람들이
제일 협동적이지 못하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인간이 독재적인 인간이 많고
또 경천 공감 프로그램을 이렇게
한다는 인간들이 경천 공감이 안 되고
그래서 속이 엄청 찔리더라고. 저도
이제 경천을 그 강조하는 나차람
프로그램 하는데 그래서 이제 저하고
집에서 모시고 사는 분이 아니 경감
그렇게 강조하면서 경청 공감 안 되고
있잖아 지금. 저도 이제 집에서
이렇게 당하고 사는데이 책에서도
이렇게 탁 또 아픈 대목을 확세 놓고
아이 또 예리하게 내가 많이 경험을
해 봐서 알아요. 내가 경험하는게
뭐냐면
공동체 운동이나 협동 운동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그것이 좋은 거거든.
네. 그게 좋은 방향이니까 하는데
그 좋은 것이니까 하는데 그 대신에
그게 뭐라면 거기에 대한 아집이
강해집이 강하다고 하는 거는
소통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
않습니까? 왜냐면 자기 성경에 틀림
없거든. 실제로 협동 운동을 하건
공동체 운동을 하건 마을 운동을 하건
여기 가장 중요한 거는 소통인데
네
그러니까 그 그 좋은 가치들이
머릿속에 있는데 실제 자기
성격상으로는 아집이 강한 거예요.
근데 처음에 내가 그게 좀 꽤 아 꽤
심하다 보여튼간에 좀 어 좀 난처
거야 실제 왜냐면 많이 내가 그거 좀
봤으니까 그 많이 봤찬데 앞뒤가 다른
모습
예 근데 그거를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어 왜냐하면
머릿속에서라도 아 이게 좋은거다 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좋은 거예요.
음
근데 다만 그것이 체득이 안 돼
있어. 안 있고 그걸 달성하려고
나가는 그 실천을 하는 데는 장애가
돼 버려요. 성격적으로. 그 성격이
뭐냐면 내가 생각하는게 틀림이 없이
옳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게
있기 때문에 사실 이게 소통의 장애가
되지. 그래서
어 나는 좀 그걸 아주 비난만한 쪽에
사고는 내가 버렸어요. 아 저렇게
생각하는 거 말도 훌륭해. 음.
아, 진짜이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그게 그 진짜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제 경청 공감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내전에 그런 것이 안 됐을 때
내가 옳다는 이렇게 생각 속에 빠져서
살 때에 나의 그 심리적 공함과 그
피곤함, 피폐함을 너무 절실히 깨닫기
때문에 아직도 잘 안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강조하는 거지. 네가
하지도 못한 것을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이제 비난을 물론 받을 수는
있지만은 내가 스스로 안 돼서
힘들었던 삶을 성찰한 결과 아 그게
절실하고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그래도
조금 그걸 열고 보니까 더 편안해지고
그런 걸 이제 깨닫는 것이지 그걸 또
완전히 정론 직필로 또 너도 안 되는
것을 그렇게 그럴 그럴 그럴 일을
예 감사합니다. 입니다.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
텐데요. 공자는 다양한 사람. 그리고
또이 제자들에 대해서도
음
저는 공자라는 분이 참 신기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좋면 좋다 식으로 이렇게
그냥 두루뭉실하게 하지. 사람을 진짜
있는 그대로 얘는 이래 얘는 이래
이렇게 얘기가 참 어려울 것 같은데
공장님이 그렇게 얘기를 했더라고요.
야이야 이분 참 캐릭터 진짜 독특하다
이런 느낌이 가질 정도로 그랬는데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
음
아마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공자가
아 나는 이게 이게 뭐냐 이게
중요해. 공자식이 어떤 그런 건데
아 공자는 새로운 용어를 잘 이렇게
만들지 않아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험 부대의 세수를
담는 시기에요.
어 그렇게 해서 내용을 아주 바꾼게
군자입니다. 그러니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이
그 그런 거예요. 군자와 소인이라고
하는 걸 이렇게 대비시키는데
이것도 어떤 어 고정된 상태가
아니에요. 공자 스스로도
인간의 진화를 생각하는 거예요.
어 예를 들면 어 이테면 이런 말이
나오거든. 어 소인은 이익에이 이리
이익에 받고
어 군자는 의에 받다 이런 말을
해요.이 하는데
어 예를 들어서 그러면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든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음.
어, 이익을 지나치기 추가하면
방을
다원
이익을 지나치기 추가하다 보면 원망이
많다. 이렇게 표현해. 원망이 많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잖아. 이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네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든지
뭐 이익을 추구해서 안 된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면 원망이 많다는 말은
원망이 원망이 다른 사람이 원망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나요?
행복할 수 없지. 예.
그거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 그 선택은
음
네가 알아서
예.
그래서 그런 상태.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금 저 군자 소할 때
어 화위 부동 뭐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
근데 보면 재밌는게 그 기준 군자라고
하는 기준이 상당히 높이 설정한 사람
평가 기준이에요.
기준인데 그보다 좀 위에 있는게
있어.
군자보다 뭐 먹고 우회를 따지는게
아니지만 군자보다도 조금 높은 단계를
뭐라고 했느냐면 인자라고 그랬다.
인자. 인자. 어질인자. 예. 여기에
대한 것도 참 공자의 어떤 평가
기준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그건 나중에 인에 대한 이야기하고도
연관되지만은
아주 평상적이고 쉬운 건 굉장히 쉽게
이야기해. 근데 깊게 들어가면
엄청나게 깊어요. 그래서
어 진짜 공자를 어느 정도 잘 아는
제자 예를 들면 아내나 자공 같은
사람이라야 공자의 기필 알아.
예.
누가 자공한테 자공의 그니까 자공의
제자야. 네.
이름 기억가 안 나는데 공자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제자의 제자 뭐
나의 차이가 많니까 이렇게 이제
나는데 자공의 제자가
자공한테 선생님이 그니까 자공이 당신
저 공자보다 훨씬 나았다 얘기 이렇게
하니까
그 자공이 말하는게 그런 말을 해.
나는
울타리 밖에서 보이면 다 보인다.
네가 보니까 좀 넓어 보인단 말이지.
인데 공자는 담장이 높아서 안이 안
들여다 보인다는 거. 이게 바로 이제
그 차이예요. 근데
인자를 이렇게 이야기할 때 누가
인하냐고 물어보면
글쎄 그 사람이 이런 건 잘해. 이런
건 아주 잘해. 잘하는데 과연 그
사람이나도가 말할 수 있나 하는 건
모르겠다가 대부분이야.
네.
부정도 긍정도 아니야. 진짜 그 그
모르게 보통 모르겠다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말할 때 있잖아요.
저 사람 좋은 사람이야 모르겠는데
하면 대체로 그 부정적인 이게 공자가
모르겠다 할 땐 그건 그런 표현이
아니야. 진짜로 모르는 거야. 그
사람의 그 깊이 인이라 하는 것이 그
그 말할 땐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데
가벼운 건 아주 가볍게 말합니다.
아욕인 사인지
내가 인을 원하게만 하면 그 인이
바로 온다.
이런 건 일상 생활했어요. 이게 예를
들면 좌측 깜빡이 넣고 있는
자동차한테
양보하기 위해서는 경우 있잖아. 왜
이제 그런 그런 거는 그서는 것만으로
그게 이루어져 그쪽에 이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대단한 사람들을
놓고이 사람이 인한 사람입니까
물어보면 대부분은 무엇무엇은 대단히
잘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평가. 근데
인자보다 더 높은 단계가 뭐냐?
성자.
성인이요. 성인. 예. 그래서 대초로
이제 공자는 나름대로
그 인격 그 인격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음.
내면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유가
얼마나 진척되 있느냐라는 그
현대적으로 말하면 그 자유도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했지 않느냐 이렇게
봅니다.
예.
그러니까 그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는 뭔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한나가 마음에 안 들으면 아
저 인간은 못 싸 이렇게 버리는데
공자는 그게 자질은 자질대로 인격은
인격대로 이렇게 따로 평가하는게
굉장히 독특하더라고. 그러니까 이제
관중이라 인물에 대해 관포지교에
나오는 관중이라 인물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자질과 능력과 인을
불리해서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관정대에서는 이제 뭐 자로라는 제자가
황공이 경자 교를 죽였을 때 소홀은
따라죽었는데 관중은 따라 죽지
않았으니까 관중은 인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공자는 황공이
제율를 교합하는데 무력을 쓰지 않는
것은 관중의 공이 크니 그러니까
그 비록 따라죽진 않았지만은 나중에
좀 갈등을 소란스럽지 않고 나라를 좀
평화롭게
이렇게 만드는 그런 정도의 능력은
관중이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
그건
그인 이상의 것이다고 이렇게 굉장히
이렇게 평가한대 보고 야 공자의 사람
기준 그 평가가 너무 인을 강조하다
보니까음 인하지 못하면 저건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공가 굉장히 그런 점은 어 상당히 그
따로따로 뭐 하나가 부족하더라도 다른
쪽이 괜찮으면은 괜찮다고 이렇게
평가하는 대목이 공자의 어떤 그 어떤
세심한음
세심한 대목으로 보여줬습니다.
관중에 대해서는 이제 그 공자가 그
당시 관중은 공장보다
1세기를 앞선 사람이야. 100년
정도 나쁜 사람인데
아마 그 당시에
가장 훌륭한 정치가의 모델로 됐던게
이제 관중일 거예요. 죽음 같은
사람은 이제 훨씬 그 전이고 그런데
관중에 대한 평가가
논중적입니다.
음
앞에 내가 몇 편이 정확히 안
드렸는데 관중을 물어봤을 때 대단히
이게 박해요. 공장의 평가가.
그 사람 아주 저 음
소인이야 소인. 근데 뒤에 나오는 몇
편에 나오는데 데는 공자를 그렇게
평가할 지금. 왜냐하면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자기의 그 적대적인 쪽 적대적인 쪽에
포섭되거든.
네. 관중이 관포에 교라했으면 포수이
속해 있던 그 진영의 포수에서 그것
이제 그 재황공이야. 재황공의 이제
그 1급
그 저
어 산모가 되는 거죠.
그래 가지고 정치를 하는데 평화적으로
무력을 쓰지 않고
어 상당히 계획을 달성하고이 소위
춘초 오회 중에 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는 거
그걸 평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력을 쓰지 않고 계획을 성공했다.
일화가 그 논에 나오는 일화가 유명한
일화가 있죠. 백 백시라고 하는
사람이 300 뭐인가 뭐 그 저 개혁
과정에서 이게
예예. 저기 뺏겼어. 저 어 뺏겼
이게
그 저 관중의 개혁 과정에서 자기가
그 손해를 봤는데
죽을 때까지 관중을 원망하지 않았다.
예. 그만큼 개혁 주체의 어떤 그이
도덕성이라든지 개혁 주체의 그 공평
무사함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대인으로 평가하는
거예요.
그렇게 봐야 됩니다.
논어 전체를 이렇게 논에 연천하다는
이제 세밀하게 사람의 어떤 그
인간성이나 이런 것들을 착하게 규명해
주셨는데 제가 보기에는이 백규라는
부은
그 최고의
인물이다. 이렇게 이제 아 그니까 제
느낌에 왜 왜 그러냐면은
요즘에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도 그
결리 사이라는 말도 있듯이
중요한 일의 결정에 개인적인 이익이
되느냐 못 되느냐 이게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국가적으로
미래에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고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접정을내는 소인배들을 너무 많이
보다보니까
이게 이제 백규라는 사람은
관중이라는 라는 인물이 자기가 자기
것을 그렇게 많이 뺏사가 버는데도
불구하고이 사람이 천하의 정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런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아 그 사람이 내
것을 비록 뺏겠지만은 관중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이렇게 해 주는 사람이
요즘에 있겠느냐 말이야. 요즘 요즘에
정치 소임배들 하도 많이가 보니까
자기에게 털만큼이라도 손해를 보면
그냥을
갈고 붙어 갈고 전부다 나올 뿐이지
이런 어떤 이런 큰 인물이 이게
백규라는 인물이이
300을 가진 인물이라 그러지만은
3천억 3만을 가진 재우나 재화의
마음 쓰는 것을 보면 그 정도의
그릇으로 보이더라고요. 참. 아이
정도 인물이 참
너무 감동입니다.
선백 이런 거는 그 병업이란 말이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그 단위가
단위가 이제 그 그런데
사실은 그 서로 나는 그거를 저 뭐라
그러나 상응한다고 봐요.
예.
어 관중 같은 정치가
있고 거기에 상응하는 백시 같은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서로 서로 교호
작용하는 거죠.
예.
에, 내가 이제 뭐 가끔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듣는 말이 있어요.
군자나 성인을 지향하는 이런
정치야말로 사실은 민주주의라든지
근대화를 늦췄다는 거예요.
음.
어, 오히려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시스템을 만드는 소인의
질서, 소인의 이게 맞다는 거야.
그게 자본주의고
예. 근데 민주의라고 보는 거예.
내가 그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지만. 예.
그러나 그런 상태가 만들어낸 지금 저
정치와 경제 체제의 지금 현실이
뭐냐면
어 인류의 종적인 멸망가지를 바라보게
하는 그런 거대한 지금 모순앞에노
놓이 했거든.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한
대로 자본주의와 근대민주의라는게
소인의 질서다는 거예요. 왜냐면
소인이라는 거는 사람들이 불완전하다고
하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여러
가지 시스템 만들어 놨는데
공연이 그렇지도 않은 건 말이요 저
군자이 무슨 저 성인이냐 하는 거
목표로 해서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않느냐. 예.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하나
이제 좀 더 나가야 돼. 더 나가야
되는 거는 소인과 군자를 그런 식으로
고정해서 이렇게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공자는 결코 그렇게 분류하는 기준으로
우회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았어요.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이해한 거예요.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인데
앞으로는 난는 이게 요새 군자라는
말이 별로 이렇게 이미지가 안 좋아서
사람들한테 좀 말하긴 그렇지만은 굳이
그 말을 표현한다면 이제는 소인의
질서 질서에서부터 군자의 질서로
넘어가야 돼요. 그 길만이
문명을 전환할 수 있고 그 길만이
인류를 지금 이런 존속의 유기로부터
넘어서게 할 수 있다. 예. 그래서
어떻게 보면 과감하게 그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제는 소인의 질서에 그
안주해 가지고 그런 질서 가지고 되지
않는다.
이제는 인간 자체가이 내면에서 자유
자유도가 더 커져 가지고
어 군자의 질소로 군자의 군자의
질서에 의한 민주주의
군자의 질서에 의한 경제 체제 이렇게
돼야 되지 않느냐. 예.
그래서 나는 유교가 아본주의
체제를 변정하는데 나는 그 돌아가면
공장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나는 상당히
에너지가 될 거라 봅니다.
좀 앞서 나가인데예.
그러니까 동아시아에서 나온 어떤
공자의 그런 질서를 오히려
동아시아에서는 너무 천박한 자본주에
너무 물들고 오히려 북유롭데가 그것을
조금 실현한듯한
어 그런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리가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더 좋은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되다는 생각이 입니다.
6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어, 이제 그게 사실 많은 사람들이에
공자에 대해서 그 이야기할 때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 대부분
사람들이
안다고 하는 것하고 모른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정확하게 그걸 잘
몰라요. 어, 뭐 실제로는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또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
어. 어 근데
보통은 이제이 말을 사람들이 막 제일
많이 이야기를 해. 아까 이야기 뭐라
그러죠? 안다고 하는 걸 안다 그러고
모른다 모른다고 하는게 진짜라는
거다.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위 메타인지라
그러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거지.
자기 자신을 아는 거예요.이 이게
모르는 것인지 아는 것인지 대한게
돼야 이걸 안다고 하는데
나는이이 대부분 사람들이이 말을
가지고 공자의 어떤 지에 대한 태도를
말해. 라는 그거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그냥 흘러 넘어가는
무지
예
그 그 문장이이 문장보다 훨씬 더
나는 공자의 그 인식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네.
어, 안다고 하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른다고 모른다고 한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로 아는 것이다 하는 거는
어 거짓된 어떤 허위에 또는 왜곡된
어떤 지혜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어 사람은 누구도 누구도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사실은 예
지혜 시작이다. 참된이다. 그리고
그게 바탕이 됐을 때 진정한 호학
배우고 싶어지는 거예요. 예.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배우고 싶어지질
않죠. 내가 아는 누가 다른 사람
이야기하면 그거 걸리죠. 오히려
내가 아는거 틀리면
그 그런게 없어지는 상태
그가 지혜 출발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 예.
그러니까 우리 이제 이나욱 선생님도
상당히 초기에 이제 불교적인 관점도
그러면서 이제 공제를 탐구했기 때문에
무지의 자각에 대해서 어떤 불교적인
관점과에
굉장히 이제 회통을 시킨 측면이 많이
이제 관점이 등장하는데
제가 보기엔 어떻게 보면은 이제
부따의 관점에서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일체는 승산 선사가 얘기했듯이
오직 모를 뿐이고 어 우리가 실제를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신의 어떤 감각 신호를
통해서만 이제 간접적으로 우리가 우리
모니터에 뜬 다큐멘타리가 유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62 자체가 아니고 어떤
PD의 각색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유기한 다큐를 보듯이 모니터를 통해서
우리가 뇌의 각색과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편집된에
것을 자각하기 때문에 그게 팩트
사실이 아니고 실제가 아닌
상이 상
상이다. 상이다. 그게 이제 부다의
관점이고 그렇지만 공자는 제가
보기에는 이제
그렇다면은 이제 완전히 붙다 관점과
똑같다면은 아예 일체 우리가 어떤
안다고 고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는
것은 이제 공작께서는 굉장히 현실을
중시하고 실사 수식으로 이미 우리가
이제 무지의 바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공자는 우리가 현실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삶에서 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에 더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더 겸하게 실사 구지적으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의 관점에서 그것을 풀어낸
것이 아닌가?
이제 조선생 그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 같은데
그런 면도 있어요. 그런 면도 있는데
어 무지를 자각한 상태가
모든 지혜 참된 지혜에 바탕이 된다고
하는 거는
나는 석가나 공자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이 없어요. 어 다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
뭔가 그 공자가 현실에 발을 딛고서
있어서 여러 가지 그 점이 내가
공자하고 통하는 점이에요.
예.
어 수행 따로
일상적인 삶 따로 있는게 아니고 이게
일치돼. 근데 요건 보통 많이 이들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공자한테는
정치 경제 현상 사회 현상과 자기를
변화시키는 어떤 수행이란 말 공장
별로 안 수기라 그래. 투기 수기라
하는데
그것이 하 이렇게 하나가 돼 있어요.
어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어 공자
이야기할 때는 약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면 공자는 말이지 수기를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
없지 않느냐 천만의 말씀이에요.
공자는 배우는 거 호학 그 자체가
수행이에요. 그다음에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무적야 무막야
의지이라는 거예요. 이것이다라고 또는
이것이 아니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오직
의에 따를 뿐이다하는 그 자체가
수행에
그다음에 화이부도 그 자체가 수행이에
저 사람을 나하고 다른 사람을 말하지
나한테 일치시키려고 하 하는 걸 하지
않는 거 그 자체가 수행이에 그러니까
되테면 공자한테 수행 방법이 없는게
아니고 수행이 바로 현실의
삶 정치 경제
그런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게 이제
공장한테 이제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아까 아는
걸 알 아는 걸 하고 모르는 걸
모르는 걸 아는 걸 하는 거는 이제
그 아까 조선생은 그거를대 중요하게
평가했는데 그건 마찬가지
공자가 제일 저 사랑했던 제자가
아내인데 아내를 하나님 모두를 잡아서
사람들은 이야기할 때
불 이과 불천노라는 이야기를래요.
잘못을 범할 수 있고 화가 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출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뭐 화가
나지 않는 상태라든지 또는 잘못이
없는 무어 위에 그런 걸 상 전혀
상정하잖아요.
예. 불 이과 불천인데 요것도
사람들이 보는 사람마다 좀 다르게 볼
수 있어요. 불이가라는게 두 번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이야긴데
한 번 범한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라고 보통 많이 그렇게 봅니다.
내 나한테 그렇게 다가오지 않고
그런도 있지만은
잘못을
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게 두 번
잘못하는 거예. 불과라고 하는 두 번
잘못 보지 않는다는 자기가 잘못했으면
바로 잘못을
알아차리는 거 잘못을 알고 누가
잘못했다고 지적을 하면 받아들인 거예
그래서 그다음에 뭐가 뭐 하느냐니까
과즉 물탄계야
잘못이 있으면 바로 기탄없이 바로
고친다 이게 그게 돼 그게 그게 되는
거예요.
불천노도 마찬가지. 불천노도 한강에서
뺨 맞고 아니 한강에서 뺨 맞는게
아니고
한강이 아주 눈 그다음에 사람한테 좀
이렇게 화나면 그 강아지를 찾다든지
이런 식으로 해서 불처돌 근데 사실은
어 그런 면도 있겠지만 나는 2차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거.
그렇죠.
2차 화살. 그러니까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요.
이게 2차 화살이
그러니까 한 번 화가 났는데 그게
빌미가 돼 가지고 또 생각할수록 더
화가나 이걸 안 한다. 그니까
사람의 어떤 불완전성이라는 걸
인정하는 바탕에서 제시를 하고 있
모델로 인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조선생이 이야기한 그런 뭐 아는
걸 안다 그러고 모르는 걸 모른다는게
참된
는
그런 점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사람들 들어가 있던 이런 관계 속에서
그러나
그보다 하나 더 나가는게 밑에 바탕이
있는 거예요.
예. 예예.
그데 보통 말할 때
음
특히 불교에 또 뭐 상당하 좀 이렇게
스님들 이해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를 봐라 이런 말을 해.
네.이
말이 사실은 아이
모순되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봐라
하는 거는 멸실
그 말은 이해는 돼. 있는 것을
바라는 건 당신의 어떤 주관이나 예
당신의 어떤 이해 관계나 당신의 어떤
그런 어 사고 방식 아 그 그런 걸
떠나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봐라. 실차 구시해라 하는데
근데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어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는데
출발해야 돼. 예예. 그 보통 있는
그대로 보자 하는 말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답의 비과학적인 말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출발해 예
그것이 무지의 자각예 아주 정확하신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부다의 어떤 관점으로 보면은 우리가
이제 무심이라고 하는데 뭐 징오라든가
우울이라든가 모든 이렇게 마음의
갈등이라든가 적이라든가 이런
애착이라든가 이런 것도 근본으로
보면은 무심 뭐 고통이할 것도 없고
우리가 생사도 볼 리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은 실은 그보다도 고통을
굉장히 중요한네 가지 진리 중에
하나로 출발해는데 고통이라 할 것이
없다 그러면 수행도 필요 없고
깨달음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근데
하여튼 현실을 인정하자. 그래서 저는
이제 무심 근본 당처에서는
무심이지만은 저는 이제이 유튜브
이름도 휴심인데 휴심인데 우리가
현실의 고통 현실에 지금 누군가가
분리을 당하고 폭행을 당했다. 뭐
성폭행을 당하고 무슨 아픔을 당했다.
그러면 이미 일어난 것을 한 마음을
쉬는 것도 중요한 것이 원래야 고통은
없는 거야. 음.
이렇게 하면 원래 지금 암한자가 암
걸려가지고 죽겠는데
원래
암도 없고 원래 생사도 없는 거야.
이제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근기에
따라서 붙다조차도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또 설교를 하잖아요.
무심을 얘기함과 동시에
또 공자님께서도
이제
불천노
그렇죠. 불촌노라고.
화가 원래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이제 화를 옮기지 않는 것 그 안의
경만해도 이건 거의 이제 우리가
성인으로 봐 주는 거죠. 그게 제가
보기에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현실의
땅을 딛고 있는 말씀이고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제 왔는 것이죠. 원래 화가
없다. 원래 우울이 없다. 이런
거보다는 이렇게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때 한 생각을 딱 놓고 휴심하고
이것이 굉장히이 자세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이제에 보는
것이죠.
공자는 괴력 난신을 말하지 않았다고
그러는데 왜 그랬습니까?
그게 사실은이 공자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그리고 내가 볼 때는
21세기에 종교 혁명을
하는데 아 가장 중요한 어떤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괴라고 하는 건
이제 괴의함 이적이에요. 소위
말하면이 그여
미러클 미러클 기적
네
기적하고 좀 다를나 하여튼
과학적이거나 함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
음이
신비한 현상들 이적들
이적들 예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근데 보통 종교들은요 이적에 바탕
그런 걸로 현데 거기 그거 그거
그렇다고 이럴 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요게
아주 중요한테는
그런 세계예요.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는 부정하거나
그러질 않 그 미지의 세계로 놔두는
거지.
그게 바로 아는 걸 알다 그 뭐 그까
대부분 사실은이 허구의 허위에 바탕을
둔 신념책이라는 거는 모르는 걸
안다고 생각하는데 있다고. 이제 그게
아까 이야기한 그 이야기 핵심이에요.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 하는
괴한 걸 이야기하잖아요.
그다음에 역력은 폭력입니다. 힘.
힘을게 폭력. 그니까 철저한
평화주의자예요. 공자는. 음.
그다음에 란이야. 란 이게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 란. 난을 예전에 그
공자에 대해서 대단히 수구적인 사
사람 반동적인 사람이다 하는 거.
나를
부정해. 예. 나를 이렇게 안 돼.
아 아직 어 소위 장난이라 해서 자금
만들 작정이 난 나는 만들면 안 되는
근데
어 나는 그래서 그 요번 책에서도
아마 그걸 하나 썼을 거예요. 난을
넘어 혁명으로라는 게
그까 공한테는 난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어 들어 있는 그런 창이
아니야.
그다음에 신도 마찬가지.음 신에
대해서도
어 이게 모르는 세계 미지 세계를
놔두는 거지. 그래서 그거를 마침 뭐
형태화시킨다든지 막 의인화 해 가지고
하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는요네
가지 요소가 사실은 어 21세기 특히
문명 전환과 관련해서 종교의 역할
나는 새로운 어떤 종교의 어떤 나는
그 뭐 조금 말을 좀 거칠게 하면
종교의 혁명이 필요한 시대다 이렇게
생각하는데에
그런데 바로 괴력 난심 같은 거를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은 공자의
정신이랄랄랄할까 정신 살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입니다. 예.
예.
7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그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라고 그러니까 공자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비닐락 부위호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고 답했는데요.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관계 정성을 다하는게 쉽지 않은
경지겠죠.
음.
어, 지금 나는 저 노의 그 연에
대한
것 가장 중요하게 봐갖고 그다음 두
번째로 본게 이거예요.
두 번째로 본게 물질과 정신의
조합니다에 대해서 공자만큼
대단히 현실대 바탕을 두고 이상을
추구한
그런 성인 철학자
드무입니다.
이혼화시켜서 보지.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현상 세계와 뭐 이렇게
표는데 공자는 이론적으로 보고
있거든.
어 공자가 어떤 마을을 지날 때
제자들하고 문답이 있지요. 어 어떤
다을 지나면서 제제자들이 물어봐요.
선생님 지금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뭐부터
해야 됩니까?라고 라고 했을 때
뭐부터 해야 되느냐 할 때 내가 요거
가끔 저 사람들하고 대화하면서 그전에
이제이 물어봐요. 당신이 생각할 때
공자람을 뭐라 했겠어?
어 부라고 했겠어? 아니면 어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이야기했을까? 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니까
뭘 먼저 이야기했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공자에 대한 그 생각
윤리 도덕 무슨 이상 세계 이런 거가
머릿속에 있어 가지고
대답이 나와 이렇게 물질적인 부를
이야기했을 것 같지 않은 거야.
정신적 이야기할 수 천만해. 요게
바로 공자의 출발이에. 공자는
부호예요. 부. 먼저 부호를
이야기해. 아.
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어떤 행복의
조건의 일차적 조건을 물질적 수요의
충족해서 본 거예요. 이게 현실의
어마 예수나 석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먼저 부를 이야기 안 할
거예요. 공자는 부를 이야기해.
예.
그다음에요 하고 물어봤을 때 답이
교야. 교.
예.이
이 교가 가르칠 교자인데이
가르칠 교를 쓰니까 대부분 또 공자는
가르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그 공자에 의해서 무슨
교 가르침을 정신적인 뭐 배움 아니
근데 사실은 교라고 하는 거는
그런 가르침이라고 하는 뜻보다는 좀
가깝다면 교양이야. 교양
예
기가 막혀요.
공자가 이게 제자 문답이
부 그다음 교요. 그러니까 정신 이게
물질적
그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일차적이고
그러나 이걸로 행복하지 않아. 이게
2차적으로 교
예
근데 나는이 교를 교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괜찮은데
난는 정신적 성숙이라고 여기서 또 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교를 근데
이게 어 소위 그 서구 군대화
과정에서 서구 군대화를 이끈 계급이
부르거든.
네. 부르가 두 가지를 가지고 근데에
주역이 됐다는 그 두 가지가 뭐냐니까
이게 나와 예
부와 교양이
야
근데 이거를 이미 2500 공자가
설파했다니까 부교 근데
그다음 여기 나오는 문장은 비닐랑하고
부호래 요게 백미입니다. 나는 이게
백미라고 보고 있어. 현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근데
뭐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그래 그 선생이 말하는 교가 거기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이 문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이해
사람들이 떨어뜨려 보니까 잘
연결시겠는데 나는
전체로 볼 때 이어 이어져서
생각하는게 좋아.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부.
그러나 그건 필요 조건이고
충분 조건은 교. 예. 정신 성숙인데
그 교가 뭐냐라고 하 대해서 자
물어보는 거예요. 아 선생이 말하는
교라는게 이거 아닙니까 하고 하는 게
비첨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라는 말도 나오고 여기는
비이 무원이란 말도 나오고
아첨하거나 원망하는 거는 사실은
바탕이 같아.
예. 그니까 비 무교
부위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아니 그 당당시 생각할
때 제자들이 생각할 때이 정도면
충분히 정신적 성수가 아니야.
그러니까
어 공자 부정하지 않아요. 그거 어
그 대단하지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내가 볼 때는 충분치
않아 그러면서 제시한게 두 가지야.
빈이락
그렇죠.
부이
호래
예
둘 다 나가고 호가 들어가 이게 참
이게
그러니까 비일하게 뭐냐 그러니까 또
이게 요새 저 생태주의나 뭐 이런
데서는
자발적 가난이라든지 같이 가난하고
같이 살자 이거야. 예.
자발적 가난이
가나안은
음
이게 빈일락은 가나안을 즐기란 말이
전혀 아니에요.
예.
공자는 부를 아까도 부를 일차적으로
봤다니까. 어 이거 대단히 중세예요.
근데 빈일락은
원하지 않아도이 가난이라는게 무슨
부자라는게 원한 대로 되는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가난하게
가난한 상태라도
낙이라는 건 다른 걸 즐기라는 거지.
그래서 이걸 보통 이제 그다에 안빈
낙도 도를 즐기다.이
하는데 예
요새 도를 질이라 하면 이게이이 말이
잘 사람들한테 안 먹히지만은 사실은
어 뭔가 이게
아
예술 예술적 감각 예술 그너 너 저
뭐 저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 같은게 예술적 감동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동
그다음에에이 정신적인 어떤 그런 좀
숨고한 정신적인 적인 작용들이
있잖아요. 남한테 이렇게 저
어 소의 그 저 뭐야 보살행을
한다든지 남을 위해서 하는 이런 거라
그다음에 요새 또 하나 이제 나는
그전에 영성이란 말 잘 안 썼 솔직히
말 잘 안 썼어. 왜냐면 그 영성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내가 볼
때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막 말하죠.
아이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돼. 아니야.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고
아니 옛날에 지금 내가 근데 영성이란
말할어 내가. 예. 왜냐면 아 그거는
나는 영성을 지성하고 이렇게 딱
구분하지 않습니다. 지성에 가장 높은
단계를 영성이라고 봐요. 근데 그런
어떤 영적인 어떤 그런 깨달음이라든지
이런 세계를 얻었을 때 오는 기쁨이
커요.이 이 기쁨을
맛보게 되면
맛보게 되면
부에 대한 욕망 그게 가나안보다는
부를 추구하는데
그 부에 대한 욕망이 저절로
감수한다니까. 근데 이게 사실은
옛날에 절대빈곤이나 어떤 절대적인
어떤 불평등 사회에서는
빈일학을 이야기하는 거는 사실은
굉장히 이거는 어떻게 보면
소위 요새는 그런 말 안 쓰는데
반동적이야.
아니 가난한 사람 보고 빈일하
그렇죠.
예. 근데 사회적 원이 근데
적어도 절대 빈공에서 보존한 사회
이럴테면
풍요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나는 이거를
빈락이 참 현대 어떤 문명을 전환하는
키가 된다고 보는 그 키가 뭐냐니까
단순 소박한 삶이에요.
예.
단순 소박한 삶이 뭘 참고 무슨 내
피바는게 아니야.
아까 그 아까 이야기한 정신적 가치,
예술적 가치 또는 영성 이런 부분에서
어떤 큰 기쁨을 느끼게 되면
물질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 소박한 삶은
가나안을 참는 삶이 아니고 풍요로운
삶이에요. 요거는 현대적으로 살릴 수
있어. 빈이락을
그 대신 말은 좀 바꿔야 될지 몰라.
왜냐면 빈자가 들어가면 요건 조금
감각이
그다음에 부위 호래 이거
어 빈이랑 못치잖아요. 나는 뭐 이게
굉장히 이게
그 부자가 아까 뭐라 그랬지? 부자에
교만하자 하는 거
부위 무교이
정도만 돼도 대단한 거지. 근데
교만하지 않은 거 가지고는
아까 이야기하를 아까 이거 부위
호회할 때 내는
어 그 예의 무슨 전통적인 예의 범죄
같은 걸 나타내는게 아니야. 예.
바로 인간이 지향해야 될 가장
아름다운 질서를 내라고 봤을 때
부자가 그 아름다운 질서를
진짜 좋아한다는 건 뭘 의미하느냐
이거예요.
나눔과 풀어놓음이야.
그렇죠?
그 나눔과 풀어놓음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당위가 아니야. 혹
좋아하는 거. 이렇게 되는게 바로
지금 현재 자본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선을 해결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나는
이거 이거 단순하게 무슨 어 부위
무교 뭐 무슨 비첨해 더 나아가서
비닐락 부위호래 이거를 이렇게만 그냥
단순하게 그게 그렇게 오는게 아니고
굉장히 현재 자본주의 체제를 번역하는
어떤 정신적인 어떤 그런
어 진화랄할까 이런 데서 두 가지가
다
예이
바람직하기에는 사실 그것도 이제 하나
내가 바람직한 건데
아,
참동 개혁 세력이라면
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게
현대적으로 빈자라는게 들어가는 건
사실은 조금 좀 뭐하지만
단순 소박한 삶을 즐기는 그런 개혁
세력이 나와야 돼.
네.
이게 말이지 그 막 그 평등을 위해서
하고 뭐 특권에 반대하고 한 사람들이
사실은 몸에 붙어 버려. 그거 공자
아 지적 아주 예리하게 하고 있어요.
예.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들한테
아주 그 경계하는 말은 뭐라 하는가면
그 불인이 몸에 안 붙도록 해라.
음.
이거 보통 이게 그냥 슬금은 지나는
실제로 그런 그 내 내 경험을 통해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독재가 몸에
붙어 버리는 경우
반독 운동하다가 또 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권에 반대한다면서 오히려
특권이 그렇게 뭐여 붙어 버리는 경우
그 니체도 그 이야기했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다.
그 이야기를 공자가 바로 이야기해요.
음. 그래서 어 나는 그 적어도
그렇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들 이게 개혁의 주체가
되고
네
그게 중산층 이상이 부위 호래하는
중산층 이상이 지지를 할 때이 참된
변화가 올 것이다. 그래서요 그런
게까지 너무 간단한 걸 물어봤는데
내가 너무 많이
앞을 내다보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실제로 아까 이게 군자의 질서다는 거
소연의 질서에서 군자의 질서로 이게
자본주의가 그렇게 이행해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제이
대목에서 공자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는 건데요. 저도 이제 종교 전문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종교라는게
예를 들면 뭐 사회이 종교일수록 현실
복락을 구하지 마라. 어 구원은 내세
있는 것이고 하지. 그 뭐 현실의 뭐
뭘 구하지 말라고 굉장히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는 것처럼 하면서 헌금은
엄청나게 강의하면서 자기 욕망은
충실하게 자기 영감은 엄청나게 자기는
놀수로 있었다고 다니고 엄청나게
팬트하우스에 살면서
할머니들 1년 사셨을 간장에다 밥비는
사람 보고 500만 원 1천만 원씩
울어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차라리 열심히 살면서 자기 생계
문제를 해결하라. 이런 식으로
니얼하게 얘기를 해 줘야
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서
어 자기의 어떤 삶의 문제도 삶에서
중요한 문제니까 열심히 개선하면서
부지런히 해서 잘 살아라 이렇게
공자의 즉이 훨씬 현실에 와 다가
선단 말이야. 그러면서 뭐
가난하면서도 출발할 수 없이 우리가
현실에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다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남들처럼 요즘에 뭐 3만 불
시들하지만은 나는 1만 불 밖에 못
된다 그래서
울고 찍고 한탄할 것이 아니고 요즘에
새회복지 잘 돼서 도소관도 있고
남들이 해행지만 나는 해행 못
가더라도 도서관 공원 잘 이용해서
햇빛 잘 재고 잘 걷고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게 살아라는 어떻게 보면
공장인데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 아,
그러니까 그렇게 그 빈이라 하라
그니까 남들만큼 그렇게 수만 불에
3삼만 불은 못 산다 하더라도
못 산다 하더라도 비닐락해라 이렇게
하는게 공자님의 말씀이 현실적이고
그리고 가끔은 우리 주변에도 이제
나름대로 부유하고 사회적인게 높지만은
보통 그러면은 자기가 꼭 그 부자
행세 부자값을 꼭 하고 또 권세값을
꼭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진정한
인간들의 사김, 사람 사이의 관계
이런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도
가끔 보이잖아요. 하여튼 그런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자께서 말씀해 주신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야지.
예. 그러니까 그게 너무 이제
현실적이어서 공자님 참 좋습니다.
공자님 마음에 들어요.
예. 나는 비지락보다는 요새 이런
말로 좀 바꿔 쓰고 싶은게 단순
소박한 삶의 풍요 예
요게 좀 어떻게 보면 예
우리 시대적 테마가 아닐까 이렇게
봅니다. 단순 소박한 사물의 풍요
저 공자는 부를 예를 테면 돈을 구할
만하다면 비록 마부 노릇이라도 나
역시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살리라라고
하셨는데요. 반환이 아니라 건강한
불을 공략하는 매우 중요한게 있.
그렇죠. 그렇습니다. 건강한 불을
중시 그게 그거를
저 일차적으로 이렇게 저 어떤 행복의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
아, 그렇죠.
공자는 15세의
학문의 뜻을 두고 30세에 자립을
했고 40세에 불록 미혹되지 않는다.
또 50세 지천명 하고 60세
이순이라고 했는데 귀가 순해진다.
이수는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타인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경청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왜 천명을 아는 것보다 이순 경청이
더
나이가 더 많은 윗단계로 설정한
것일까요?
예.
그 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
내가 처음에 논를 잃을 땐 천명을
안다는 거를 어 하늘의 명령이라든지
진리를 깨닫는다 이런 쪽으로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어 그런데 나중에 이제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공자의 어떤 근본적
혐입니다. 아까 무지의 자각이라는 건
근본적 혐요.이 무슨
외부 나타내는 그런 혐가 아니고
혐인데
그거를
이해하 그걸 이렇게 이해하면서는
공자가 내가 진리를 알았다든지 천명을
뭐 알았다든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수정판에 이제 한결에서
수정판에는 천명을 알았다고 하는 거를
어 자기 분술 깨달았다 뭐 이런
정도가
될 것 같이 생각을 했고
인간의 어떤 성숙 과정에서 볼 때는
어 바로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틀림 없다라든지
하는 단정이나
고정이 있으면 다른 사람 말이 잘 안
들리죠.
예. 근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됐을 때 다른 말은 말하면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됐을 때
다른 사람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소통이 잘 안 되고 이렇게 서로
대립이 극 극단적으로 이렇게 악화되는
거는 바로 그 부분이라 생각하거든요.
내 생각이 틀림 없다는 확정 편양이
그것도 집단적 확정 편양이
지배하기 때문인데 그 상태를 넘어서기
위해서 사실은 가장 중요한게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아는 것은
어 틀림없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틀림 없다라고 하는 것이 틀림 없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착각이다라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비로소 다른 사람 말이
그대로 들려올 수 있지 않을까? 음.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굉장히 중요하신 말씀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천명을 알았다느니
깨달았다느니 불교적으로는 깨달았다느니
기독교적으로는 자기가 무슨 뭐 사명을
받았다니 이런 분들을수록 너무 왕고해
가지고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가지고
어떤 뭐 사회비 교주 같은 역할은
하지만은
보편성이 참 떨어지고 일반인들하고
이렇게 소통되기가 어렵고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보는데요. 꼭 그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저는 이제 종교라는게
도를 깨닫고 어떻게 보면은 노자에서도
첫 줄부터 내가 도라고 확신하면은
그건 도가 아니
이미 도가 아니다. 그까 어떤
진리라는 것도 내가 그렇게 진리의
어떤 아집을 가지고 그것만이 진리고
그것만이 옳고
그것만이
정의고 이렇게 고집하는 순간
진리로부터 멀어진다. 이렇게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종교인들이 오히려 이순하고
정반되고
그렇습니다. 솔직히
입은
엄청나게
100개 천개의 입처럼 열려 있지만
귀는 꽉 다친 모습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보거든요.
종교인들에도 저희가 종교 전문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오히려 종교인들의 특성이 뭐냐? 이분
굉장히 스피커는 큰데 기름 꽉 닫혀
있다. 이런 느낌을 많이 봤는데
그래서 공작께서
이렇게 이수훈을 훨씬 더 천명보다
오히려 52시명이면은
자기 분수를 알면은
이순 귀가 순해지는 경기는 더 높은
경기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삶의 태도가 참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도 이제에
낮차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경청을
굉장히 중요시 하고 이렇게 경청
훈련을 하는데 제가 이제 종교인들을
많이 대하면서 저 자신부터가 가 저
자신부터가 제가 올탄을 확신에
빠지면은 다른 사람 말을들을 필요가
없어요. 다른 사람 말을 들 그러면은
아무리 내가 옳은 것을 아는 것처럼
뭐가 진리인 것처럼 주장을 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하고도 저 소통이 안
되는 것을
이제 느끼거든요. 그래서 제가 익산에
오기 전에 전주에서 들려서 하룻밤
잤는데 거기 이제 코끼리 유치원
코끼리 가는 길 그 골목길에 그
공동체처럼 이렇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이렇게 이제 유추원 어린이부터 거기
초등학생부터 청년들하고 그 60대
사람들이 너무 이렇게 스스름 없이
어울리는 거 보고 이상님도 이렇게
80이 넘으셨는데 젊은이들하고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그거 보면 너무
부럽거든요. 그게 요즘은 제일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그 꼰대
근성을 좀 버리고 젊은 애들 잘
어울리고 싶은데 우리 딸부터 나보다
꼰대라 그러
괴로움을
딸 딸이 몇 살이어? 단대입니다.
20대하고도 좀 잘 통하고 싶
10대하고도 좀 잘 통하고 싶은데 잘
통하고 싶은데 지금 꼰대를 좀 벗고
좀 귀가 순해져서
낮아질 필요가 있는데 그 이순의
경기가 참 부럽습니다. 저도 벌써
공자님이 말은 벌써 2수는 이미
지났는데도
귀가 귀를 더 열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공자는 이제 군자
불기라고 했는데요.
이제
고정된 어떤 그릇 이런에 그릇이 틀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왜 군자는 불기라고
했습니까?
어, 공자가
용어 개념 자체 내용을 아주 새롭게
한 대표적인게 군야입니다. 그 사실은
군자하고 소인을 구분하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발심을 가져요.
처음에 논어 같이 할 때 한 사람이
그 기억이 돼요. 같이 하다가 중간에
난 그만두겠습니다고가 버리더라고.
음.
이제 그 모임이 안 나오는데 안
나오는게 뭐냐 하니까 나는 소인으로
살겠습니다.
그게 마치
군자라고 하는 인간 형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된다.
음.
아 뭐 당위.
음. 뭐 그런 거로 이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야 합니다. 그게 공자
스스로도내는 군자가 갖춰야 될 더띠
세 가지인데 그 중에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라고
실토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인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의식이 자유로워지는 어떤
친화를 이야기하는 거 자유로지.
근데에
어떤이 불기라고 하는 그릇이
아니다는데 그릇이라는 것은 틀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 틀 속에 갇힌지 않는다는
뜻 같아요. 그래서 아마
거기에 대한 거는 다른 말로 여러
표현들이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럴 테면 주의 불비라든지 이게
사실은 다 통화 주의 불부는 주의
불비는 어떤 특정하게 어떤 편백한데
사로잡지 않는다는
그니까 이게 보편적이다 이럴 테이
널리 널리 널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불길란 말을 쓴 거 같고 특히
어 권력이나 정치에 관여된 사람들이
일정한 그 기물적 인간 그릇
틀 잡힌 인간이 됐을 때 그 패단는이
말할 수 없지 그렇죠. 예. 예.
그러니까 정치에서 튼 이제 팬덤은
강하지만은 항상 다른 쪽하고 이제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 인기는 패거리는 잘 모지만
우리 한국 정치가 근데 최근에 보니까
이제 그 이재명 대통령이 팩을 하면서
일본 다카이치 총리와 만나고 나서
일본 취재진들이
그 일본 총리하고 만나 보니까
어떠냐? 일본 당신은 좀 좌적이고
일본 총리는 구라고 이렇게 이제
소문이 나 있는데 서로 성향이 이렇게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 보니 어떠냐는
식으로 여튼 뉘앙스를 이제 물어보니까
야 걱정을 다 들었다. 그 만나
보니까 뭐 실제 그 생각했던 거하고는
영 다르더라. 잘 통하고
그리고 당신들도 나에 대해서
일본에서도 우뢰를 많이 했지 않느냐.
그리고 저 완전히 좌골통이 한국
대통령이 됐는데 일본 엄청나게 이제
배타적으로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은 지금은 나에 대해서
그렇게 우하지 않지 않느냐. 내가
일본 가서 굉장히 이제 유화 제스처를
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느냐 이런
뉘앙스로 이제 얘기를 하고 다가 이제
총리를 만나 보니까 그분도 하여튼
야당으로 뭐 밑에 있을 때와 일본
전체 지도자가 됐을 때는 다르지 않게
되냐.
어떤한 당의
당수로 있을 때와 이렇게 대통령이
있을 때 자세가 다르듯이 이렇게
달라지 않겠느냐. 그래서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본다. 이렇게 이제
유연하게 물처럼 이렇게 얘기하니까
양쪽도 상당히 또 부드러워지고 관계도
편안해지고 한 것처럼 그게 대표적인
군자 불기죠.
자기 틀림만 박혀가지고 그 틀에서
끝까지 평행선을 걷고 끝까지
대체하기보다는 물처럼 유연하게 뭐
트럼프를 만나면 트럼프하고 또
응대하고 또 국제 정대에서도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또 상종 안 할
수도 없는 거니까 시진핑을 만나면
시진핑의 그에 막 걸맞게 또 어 또
정해진 그릇이 아닌 또 유연하게 또
대치하고 이런 모습을 보고 야이
양반이 전에 대통령을 몇 번 해본
사람처럼 유연하게 하게 하네. 이런
느낌을 가졌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
상당히 AP 끝나고 뭐 더 여론
조사에서 인기도 없고 그게 어떻게
보면은 이제 군자 불기가 사람들에게
어필라는 한 면이라고
이제 보이지도 마요. 하여튼 우리
정치도 조금 이렇게 위연하게 이렇게
너무 정해진 고정된 틀에서 어 좀
벗어나서
이렇게 실사 구시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도 상당히 필요하겠다 이런 생각을
예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실은
어 정 권력 투쟁 과정는
어 야당의
어떤 대표로서 활동할 때하고
어 대통령은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인데
볼 땐 당연히 이게 시각이 달라져야
됩니다. 그래서 어 이번에 그 이재명
대통령도
뭐 취임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걸로
기억하는데
대체로 대통령이 되면 그런 말들 다
이렇게 보통 하는게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네
이제 그런 부분이 실제로 이렇게
좀 이렇게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하려고 그러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합니다. 근데 우리
정치가 알다시피
이게 증오와 어떤 분열 대립의 정치가
되다 보니까
이런 내공원을 갖추는 정치인들이 이게
성숙하 성장하기가 힘이 들어요.
그렇죠.
중도하면 마치 회석 기대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문 하더라도 실제로 나는
그 대연정을 주장하거든요.
근데 대연정을 추장한 것을
양쪽에서 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런게 난 그 안타까운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지금 심리적 내전
상태를 넘어서
진정한 어떤 그런 뭐랄까 번영과
자유로 나가려고 하면 나는 한 번은
음
어 대연정에 성공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거를
그거를 닦을 수 있는 막 그런 지도자
이런 지도자를
역사가 대망을 하고 있다. 이렇게
봐요. 예. 아,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이 만일에 그런 쪽에
어, 어떤 단초를 열 수 있다 그러면
상당히 큰
업적을 남길 겁니다.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그러니까 우리가 좁은 것을
피어는 정의롭게 하는 것 개혁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은 80년
동안 좁혀지지 않는이 안금 신리적
내전 상태를 극복하는 어 회통과
화해와 어떤 평화로 가는 이런 것은
우리 한민족에게 지금 해방 벌써
80년이 됐기 때문에 이제 100년을
앞두고 너무나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그 문을 여는 사람이 이 해방
100년의 최고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이 공자가 말한 군자
불기가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등목인 거죠.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그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라고 그러니까 공자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비닐락 부위호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고 답했는데요.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관계 정성을 다하는게 쉽지 않은
경지겠죠.
음.
어, 지금 나는 저 노의 그 연에
대한
것 가장 중요하게 봐갖고 그다음 두
번째로 본게 이거예요.
두 번째로 본게 물질과 정신의
조합니다에 대해서 공자만큼
대단히 현실대 바탕을 두고 이상을
추구한
그런 성인 철학자
드무입니다.
이혼화시켜서 보지.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현상 세계와 뭐 이렇게
표는데 공자는 이론적으로 보고
있거든.
어 공자가 어떤 마을을 지날 때
제자들하고 문답이 있지요. 어 어떤
다을 지나면서 제제자들이 물어봐요.
선생님 지금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뭐부터
해야 됩니까?라고 라고 했을 때
뭐부터 해야 되느냐 할 때 내가 요거
가끔 저 사람들하고 대화하면서 그전에
이제이 물어봐요. 당신이 생각할 때
공자람을 뭐라 했겠어?
어 부라고 했겠어? 아니면 어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이야기했을까? 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니까
뭘 먼저 이야기했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공자에 대한 그 생각
윤리 도덕 무슨 이상 세계 이런 거가
머릿속에 있어 가지고
대답이 나와 이렇게 물질적인 부를
이야기했을 것 같지 않은 거야.
정신적 이야기할 수 천만해. 요게
바로 공자의 출발이에. 공자는
부호예요. 부. 먼저 부호를
이야기해. 아.
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어떤 행복의
조건의 일차적 조건을 물질적 수요의
충족해서 본 거예요. 이게 현실의
어마 예수나 석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먼저 부를 이야기 안 할
거예요. 공자는 부를 이야기해.
예.
그다음에요 하고 물어봤을 때 답이
교야. 교.
예.이
이 교가 가르칠 교자인데이
가르칠 교를 쓰니까 대부분 또 공자는
가르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그 공자에 의해서 무슨
교 가르침을 정신적인 뭐 배움 아니
근데 사실은 교라고 하는 거는
그런 가르침이라고 하는 뜻보다는 좀
가깝다면 교양이야. 교양
예
기가 막혀요.
공자가 이게 제자 문답이
부 그다음 교요. 그러니까 정신 이게
물질적
그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일차적이고
그러나 이걸로 행복하지 않아. 이게
2차적으로 교
예
근데 나는이 교를 교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괜찮은데
난는 정신적 성숙이라고 여기서 또 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교를 근데
이게 어 소위 그 서구 군대화
과정에서 서구 군대화를 이끈 계급이
부르거든.
네. 부르가 두 가지를 가지고 근데에
주역이 됐다는 그 두 가지가 뭐냐니까
이게 나와 예
부와 교양이
야
근데 이거를 이미 2500 공자가
설파했다니까 부교 근데
그다음 여기 나오는 문장은 비닐랑하고
부호래 요게 백미입니다. 나는 이게
백미라고 보고 있어. 현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근데
뭐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그래 그 선생이 말하는 교가 거기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이 문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이해
사람들이 떨어뜨려 보니까 잘
연결시겠는데 나는
전체로 볼 때 이어 이어져서
생각하는게 좋아.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부.
그러나 그건 필요 조건이고
충분 조건은 교. 예. 정신 성숙인데
그 교가 뭐냐라고 하 대해서 자
물어보는 거예요. 아 선생이 말하는
교라는게 이거 아닙니까 하고 하는 게
비첨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라는 말도 나오고 여기는
비이 무원이란 말도 나오고
아첨하거나 원망하는 거는 사실은
바탕이 같아.
예. 그니까 비 무교
부위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아니 그 당당시 생각할
때 제자들이 생각할 때이 정도면
충분히 정신적 성수가 아니야.
그러니까
어 공자 부정하지 않아요. 그거 어
그 대단하지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내가 볼 때는 충분치
않아 그러면서 제시한게 두 가지야.
빈이락
그렇죠.
부이
호래
예
둘 다 나가고 호가 들어가 이게 참
이게
그러니까 비일하게 뭐냐 그러니까 또
이게 요새 저 생태주의나 뭐 이런
데서는
자발적 가난이라든지 같이 가난하고
같이 살자 이거야. 예.
자발적 가난이
가나안은
음
이게 빈일락은 가나안을 즐기란 말이
전혀 아니에요.
예.
공자는 부를 아까도 부를 일차적으로
봤다니까. 어 이거 대단히 중세예요.
근데 빈일락은
원하지 않아도이 가난이라는게 무슨
부자라는게 원한 대로 되는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가난하게
가난한 상태라도
낙이라는 건 다른 걸 즐기라는 거지.
그래서 이걸 보통 이제 그다에 안빈
낙도 도를 즐기다.이
하는데 예
요새 도를 질이라 하면 이게이이 말이
잘 사람들한테 안 먹히지만은 사실은
어 뭔가 이게
아
예술 예술적 감각 예술 그너 너 저
뭐 저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 같은게 예술적 감동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동
그다음에에이 정신적인 어떤 그런 좀
숨고한 정신적인 적인 작용들이
있잖아요. 남한테 이렇게 저
어 소의 그 저 뭐야 보살행을
한다든지 남을 위해서 하는 이런 거라
그다음에 요새 또 하나 이제 나는
그전에 영성이란 말 잘 안 썼 솔직히
말 잘 안 썼어. 왜냐면 그 영성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내가 볼
때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막 말하죠.
아이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돼. 아니야.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고
아니 옛날에 지금 내가 근데 영성이란
말할어 내가. 예. 왜냐면 아 그거는
나는 영성을 지성하고 이렇게 딱
구분하지 않습니다. 지성에 가장 높은
단계를 영성이라고 봐요. 근데 그런
어떤 영적인 어떤 그런 깨달음이라든지
이런 세계를 얻었을 때 오는 기쁨이
커요.이 이 기쁨을
맛보게 되면
맛보게 되면
부에 대한 욕망 그게 가나안보다는
부를 추구하는데
그 부에 대한 욕망이 저절로
감수한다니까. 근데 이게 사실은
옛날에 절대빈곤이나 어떤 절대적인
어떤 불평등 사회에서는
빈일학을 이야기하는 거는 사실은
굉장히 이거는 어떻게 보면
소위 요새는 그런 말 안 쓰는데
반동적이야.
아니 가난한 사람 보고 빈일하
그렇죠.
예. 근데 사회적 원이 근데
적어도 절대 빈공에서 보존한 사회
이럴테면
풍요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나는 이거를
빈락이 참 현대 어떤 문명을 전환하는
키가 된다고 보는 그 키가 뭐냐니까
단순 소박한 삶이에요.
예.
단순 소박한 삶이 뭘 참고 무슨 내
피바는게 아니야.
아까 그 아까 이야기한 정신적 가치,
예술적 가치 또는 영성 이런 부분에서
어떤 큰 기쁨을 느끼게 되면
물질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 소박한 삶은
가나안을 참는 삶이 아니고 풍요로운
삶이에요. 요거는 현대적으로 살릴 수
있어. 빈이락을
그 대신 말은 좀 바꿔야 될지 몰라.
왜냐면 빈자가 들어가면 요건 조금
감각이
그다음에 부위 호래 이거
어 빈이랑 못치잖아요. 나는 뭐 이게
굉장히 이게
그 부자가 아까 뭐라 그랬지? 부자에
교만하자 하는 거
부위 무교이
정도만 돼도 대단한 거지. 근데
교만하지 않은 거 가지고는
아까 이야기하를 아까 이거 부위
호회할 때 내는
어 그 예의 무슨 전통적인 예의 범죄
같은 걸 나타내는게 아니야. 예.
바로 인간이 지향해야 될 가장
아름다운 질서를 내라고 봤을 때
부자가 그 아름다운 질서를
진짜 좋아한다는 건 뭘 의미하느냐
이거예요.
나눔과 풀어놓음이야.
그렇죠?
그 나눔과 풀어놓음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당위가 아니야. 혹
좋아하는 거. 이렇게 되는게 바로
지금 현재 자본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선을 해결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나는
이거 이거 단순하게 무슨 어 부위
무교 뭐 무슨 비첨해 더 나아가서
비닐락 부위호래 이거를 이렇게만 그냥
단순하게 그게 그렇게 오는게 아니고
굉장히 현재 자본주의 체제를 번역하는
어떤 정신적인 어떤 그런
어 진화랄할까 이런 데서 두 가지가
다
예이
바람직하기에는 사실 그것도 이제 하나
내가 바람직한 건데
아,
참동 개혁 세력이라면
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게
현대적으로 빈자라는게 들어가는 건
사실은 조금 좀 뭐하지만
단순 소박한 삶을 즐기는 그런 개혁
세력이 나와야 돼.
네.
이게 말이지 그 막 그 평등을 위해서
하고 뭐 특권에 반대하고 한 사람들이
사실은 몸에 붙어 버려. 그거 공자
아 지적 아주 예리하게 하고 있어요.
예.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들한테
아주 그 경계하는 말은 뭐라 하는가면
그 불인이 몸에 안 붙도록 해라.
음.
이거 보통 이게 그냥 슬금은 지나는
실제로 그런 그 내 내 경험을 통해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독재가 몸에
붙어 버리는 경우
반독 운동하다가 또 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권에 반대한다면서 오히려
특권이 그렇게 뭐여 붙어 버리는 경우
그 니체도 그 이야기했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다.
그 이야기를 공자가 바로 이야기해요.
음. 그래서 어 나는 그 적어도
그렇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들 이게 개혁의 주체가
되고
네
그게 중산층 이상이 부위 호래하는
중산층 이상이 지지를 할 때이 참된
변화가 올 것이다. 그래서요 그런
게까지 너무 간단한 걸 물어봤는데
내가 너무 많이
앞을 내다보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실제로 아까 이게 군자의 질서다는 거
소연의 질서에서 군자의 질서로 이게
자본주의가 그렇게 이행해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제이
대목에서 공자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는 건데요. 저도 이제 종교 전문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종교라는게
예를 들면 뭐 사회이 종교일수록 현실
복락을 구하지 마라. 어 구원은 내세
있는 것이고 하지. 그 뭐 현실의 뭐
뭘 구하지 말라고 굉장히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는 것처럼 하면서 헌금은
엄청나게 강의하면서 자기 욕망은
충실하게 자기 영감은 엄청나게 자기는
놀수로 있었다고 다니고 엄청나게
팬트하우스에 살면서
할머니들 1년 사셨을 간장에다 밥비는
사람 보고 500만 원 1천만 원씩
울어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차라리 열심히 살면서 자기 생계
문제를 해결하라. 이런 식으로
니얼하게 얘기를 해 줘야
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서
어 자기의 어떤 삶의 문제도 삶에서
중요한 문제니까 열심히 개선하면서
부지런히 해서 잘 살아라 이렇게
공자의 즉이 훨씬 현실에 와 다가
선단 말이야. 그러면서 뭐
가난하면서도 출발할 수 없이 우리가
현실에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다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남들처럼 요즘에 뭐 3만 불
시들하지만은 나는 1만 불 밖에 못
된다 그래서
울고 찍고 한탄할 것이 아니고 요즘에
새회복지 잘 돼서 도소관도 있고
남들이 해행지만 나는 해행 못
가더라도 도서관 공원 잘 이용해서
햇빛 잘 재고 잘 걷고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게 살아라는 어떻게 보면
공장인데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 아,
그러니까 그렇게 그 빈이라 하라
그니까 남들만큼 그렇게 수만 불에
3삼만 불은 못 산다 하더라도
못 산다 하더라도 비닐락해라 이렇게
하는게 공자님의 말씀이 현실적이고
그리고 가끔은 우리 주변에도 이제
나름대로 부유하고 사회적인게 높지만은
보통 그러면은 자기가 꼭 그 부자
행세 부자값을 꼭 하고 또 권세값을
꼭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진정한
인간들의 사김, 사람 사이의 관계
이런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도
가끔 보이잖아요. 하여튼 그런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자께서 말씀해 주신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야지.
예. 그러니까 그게 너무 이제
현실적이어서 공자님 참 좋습니다.
공자님 마음에 들어요.
예. 나는 비지락보다는 요새 이런
말로 좀 바꿔 쓰고 싶은게 단순
소박한 삶의 풍요 예
요게 좀 어떻게 보면 예
우리 시대적 테마가 아닐까 이렇게
봅니다. 단순 소박한 사물의 풍요
저 공자는 부를 예를 테면 돈을 구할
만하다면 비록 마부 노릇이라도 나
역시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살리라라고
하셨는데요. 반환이 아니라 건강한
불을 공략하는 매우 중요한게 있.
그렇죠. 그렇습니다. 건강한 불을
중시 그게 그거를
저 일차적으로 이렇게 저 어떤 행복의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
아, 그렇죠.
공자는 무릇 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서고 싶은 곳에 남도 세워주고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것을 남도
이루게 한다. 가까운 것에서
알아차리고 실천하는 것이 인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요.
그런데 공자가 나는 아직까지 진실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진실로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그렇게 했는데요. 그렇게 인자가
드물다는 것입니까? 저는 지금 인자를
이렇게 같이 보고 있는데 이렇게
공자는 그렇게 인자를 못 봤어요.
그니까 착각이지.
이걸 인자라고 보고 있으
착각이고
그 아까 이야기하지만 아까 이야기한게
저 유명한 문장입니다. 문장인데
그만큼 이테면 또 인을 아주 평의하게
말했거든.
보통 아 씨발이잖아. 네가 하고자
하는 걸 먼저 상대하게 해 주라이
말이야. 이게 이게 인이다. 그리고
아까 내가 그 비율 들었지만 좌측
깜빡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자한테
내가 수업해 주면 그 인이야.
네.
내가 근데 그렇게 간단하게 이하는 거
같으면서도
진짜로 인을 좋아한다. 진짜로 인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뭘 의미하나에
대해서는
공장소 상당히 높은 어떤 기준을
이야기하는 거 같아. 그 왜냐면
심층의 의식까지 보고 있거든.
어 그런 말이 여러분들 나와요.
극벌욕을 하지 않으면 인이냐?
극벌욕을 하지 않는다. 이거 굉장히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 극이라는 건
누구 이기려고 하는 마음
벌은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 원은
원망하는 마음 요건 다욕이야
요런 거 하지 않으면 인이라고
합니까?
그것도 대단히 훌륭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대답을
그러니까 사실은
어 대단히 그니까 하여튼 뭐 대단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인인인이라는 걸
이야기하면서도 한편 깊이 들어가면
대단히 깊어요. 그냥 이런 건데이
문장에서는 그거하고 그 그렇게 진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자기가 보지
못했다.
음
공자가 못 봤는데
음
뭐 우리한테 보이겠어요?
요새 세상에 물질은 풍요해졌지만
정신의 상태가 과연
그런 사람들이 그냥 이렇게 발에
채이듯이 보이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아. 음,
오히려 불이난 사람들이 어,이 사람
불이 나네.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네.
이렇게
근데 그다음에 또 하나 얘기 뭐냐면
인을 좋아하는 것하고 불인을 미워하는
것을 두 개를 구분하고 있어요.
아,
요거에 아주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인을 좋아하는 것하고 불인을 미하는게
같은 질문에 스스로가 좀 이게 생각을
해 봐야 돼. 예.
공장 구분을 해. 예.
인을 좋아하는 건 더 말할수 좋은데.
예.
근데 인을 좋아하는 사람 진짜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참 만나기 힘들지만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뭐 많이 보잖아.
투사들.
근데 아주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
응.
진짜로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인을 좋아하는 것으로 성화가
돼야 되잖아요.
예. 근데 그게 잘 안 되는게 현실의
세계에 있단 말이에요.
음.
여기 여기이 문장에서 지금 그 뒤
뒤에 아마 나올 거예요.
진짜로 불인을 미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 불인이
자신의 몸에 붙지 않도록 해라는
거예요. 네.
요게 아주 그 저 그 문장에 나는
백미라고 봐요.
그러니까
요새 그 정의의 어떤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한테
하나의 그 어이 뭐랄까 그런 정의를
위한 투쟁이 부패하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데 금과 억주가 될 만한
말이야. 예.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예.
그 불인이 몸에 붙지 않도록 하라.
이럴 테면
특권을
특권의 반대 싸우는 사람이 알게
모르게 특권에 자기가 물들어
버린다든지.
또
반독재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이 독재적
성향을 갖게 된다든지
뭐 그렇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게 나는 아주 굉장히 중요한
바람니다. 예.
그러니까 그 공작께서도 인자를 본
적이 없다고 그런데 저는 이제 가끔씩
제가 우리나라의 어떤 수많은
종교인들이나 수행자들의 영성가를 또
전 세계적으로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까 가끔씩 그런 질문을
받게 되는데요. 당신이 그렇게 수십년
동안 이렇게 지켜본 사람 중에서 누가
깨달았더냐, 누가 뭐 최고냐 하튼
이제 이런 질문들을 이제 가끔씩 받게
되는데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제가
답변을 제대로 안 해 주면은 어 이제
상대방들이 실망하는 모습들을 또 보게
되는데 저는 이제 그런 질문들 속에서
그 세속적인 궁금증은 이해가 가지만
질문이 내포한 그 완벽주의
그까 완벽주의라는 것은 예를 들면
공자님도 그때 당시에 미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상가집 개처럼 이렇게
대우받지 못하고 떠돌기도 했고
부처님도 이렇테면 재받았다 같은
사람의 눈에는 왜 저렇게 힘이 덕하고
원칙이 흔들리고 제대로 줄 때가
없느냐 이런 식으로 비난도 받고
죽임을 당할 뻔다고 예수님 같은 분도
유다에게는 저분도 왜 이렇게 힘이
덕하냐 이런 식으로 열성 문제자에게는
그렇게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자기의 시각에 의해서 어떤 성인
문자도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그 왕고한 틀 시각 자체로
사람들이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그런
틀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에 질문에
저도 이제 답을 해 줄 수가 없는데
그냥 제가 보기에는 아 그렇게
완벽주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그분의
다른 면물을 보면 다 실망하게
됐거든요. 전혀 누구든지 그런
완벽주의 시각에 자기 왕구한 틀에
맞춰 줄 사람은 세상에 있기 때문에
근데 아 저분은 이런 면이 참
훌륭합다. 저분은 이런 명이
훌륭합다. 이렇게는 얘기할 수가
있지만은 누가 제일 완벽하고 누가
제일 깨달았더냐 이런 식의 물으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하고는 상종하지 마.
그 어리석은 질문. 그거는 어리석
질문 정도가 아니고
음
그거 그런 질문을 하는 그 바탕이
나가 볼 테는 그저 어 우리 조
선생이 그 그런 사람을 어 고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냥 상종하지 않는게
제
그 예수께서 가족조차 버리고 큰 이제
사랑을 이제 나서라고 퇴근한 것과
달리 공자님은 가까운 사람부터 어떻게
보면 챙기라.
이게 상당히 현실적인
그런 차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크게 또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예요.
네.이
잘못하면 가족주의나 혈주의나 뭐 이런
쪽으로 이게 발전했기 때문에 사실은
유교가 비난받는 거예요.
음.
예. 근데
공자의 기본적인
그 정치 철학이기도 하고 생각은
뭐냐면
근자열 원자래요.
근자열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면 멀리서
사람이 온다 이거.
우리가 익산의 모델 도시를 만들면
음
어 인구가 줄지 않고 와. 아,
이게 근자열 원자 이게 기본
어 예수가 가까운 사람을 하라 하는
거는 아까 이야기한 혈련주의라든지
요새 흔히 말하는 가족 이기주의라든지
뭐이 이런 데서 벗어나라는 이야기 둘
다 성립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인데
근데 이제 그
가까운 이게 가까운 사람을 먼저 잘
챙기라 하는 이야기가 잘못 왜곡돼
가지고 지금 같은 유 같은 패단들이
나타났다고 봐야지 이렇게 가족주의나
무슨 이렇게 좀 실현주의라든지 이런
그런 거 같아요.
공자가 나는 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다고 신정이란 인무를
지목하자. 아 공정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 어찌를 강한 사람이라 하라고
했다는데 여기서 강은 외강할 때 그
강인데 강하다는 왜 욕심많은 사람은
강한 사람이 못 된다고 했을까요?
어 욕심는 사람은 욕심에 사로잡히지
그까 이렇테면 자기는 굉장히 강한
사람처럼 생각할지 몰라도
어 공자의 봤을 땐 그건 강한게
아니지. 예.
강의라는게이 테면이 꿋꿋함이라는
이야기 꿋꿋하다.
근데 그 꿋꿋함이라고 하는 거는
욕심많은 사람은 이게 아집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니까이
공자의 강은
네
유연남이 이게이
바탕이 돼 있어요. 예,요
이야기 굉장히 내가 하나 좀이 관련된
이야기기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가
뭐냐면음
공자도 강을 추구하거든. 강을
추구하지만 그 강이 뭐냐면 실제
내용으로는 그 유연함이 강이야.
네. 어
아마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화라고 할까
이것이
어 공자가 이야기하는 어떤 그
이상적인 상태인데 그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군자는 무겁지 않으면
어
위험이 없고 네
군자 부중
불위 무겁지 않으면 위험이 없고
근데 그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사람들이
이제 공자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학즉 불고
네
근데 이걸 또 아까 무거운 걸
좋아하는 무거운 거 무거운 거 어떤
중심이 잡히 있다는 무게 중심이
있다는 이야기데 예. 요거에 치우쳐
가지고 생각하다 보면 아 무거운게
좋고 무거워야 권위가 있다는 사실
권위 주인은 나쁜 거지만 벗어나야
되겠지만 권위 자체가 사라지면 안
돼요.
그렇죠.
제대로된 권위가 없으면 질서가 제대로
지금 요새가 그 권위 상실이거든.
아버지가 아버지 권위가 없고 선생이
선생 권위가 없으니까 교실이
붕괴하고. 예.
근데 그 다음에 나오는게 학즉
불고야. 그래서 요것도 어떻게
번역하는 거 하면 배워도 경고하지
못하고.
음. 마치 경고한 걸 좋은 것처럼
생각해 버려. 근데 이게 아주 달라.
학직 불거는 뭐냐면 배워서 경고해지는
거를
딱딱해지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배워도 완고하지 않고라고
번역하는게 나. 네. 나
그다음에 주충신 그럼 무엇으로 무게
그 무게를 무거움 아까 이야기한 걸
하느냐 하면 주충신 충과 신으로
이게요. 그다음에
무불력이자
무력이자라고 하는 거는
나보다 못한 벗이 없다는 거야.
아하.
음.
나보다 못한 벗이 없어. 그러니까
벗을 사귈 때 이거 번역을 또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면 나보다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고 이렇게 번역하라고
해서
그런 말이 전혀 아니야. 나보다 못한
벗이 없어. 네.
다 이게 내가 이렇게 테면 수승이야.
수승. 어. 그래
곧이라는게 아주 딱
과즉 물탄계.
잘못면 바로 기털없이 고쳐라. 뭐
망설리지 말고 고쳐라는 거. 이게
가벼움이야. 그러니까이 무거움과
가벼움이 이렇게 조화된 그래서 사실은
공자의 강은 유연함이야. 예.
음.
그 말이야죠.
근데 욕심이 있고 이런 사람은 그
유연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강하다는
것이 보통은 자기 확신이 강한테 사비
교주처럼 또 그런 독재자처럼 자기
확신이 강한 자기 중심성
아집 이기심 이런 것이 강한 것을
그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강하다고
보통은 인식하는데 그것은 유연함과는
정 거리감은
설사 일시적으로는 그 폭력에 굴할지
모르지만은 그런 사람들은 만련이
되습니다. 별로 안 좋은
주역으로 보면 항 위에 피흘리고 진리
흘리고 끝이 안 좋은 경우를 우리가
역사에서 늘 보기 때문에
하여튼 그게 진정한 강함으로 볼 수가
없는 거죠.
그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아픈 기억
아픈 상처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요.
공자가 백기 숙제는 예전에 악을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
그래서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라고
했는데요.
불려 구학. 어떻게 해야이 불려구학
과거에 아픈 기어 아픈 상처를
되새기지 않는 마음에 새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이
나는
저 이거는 나는 상당히 잘 되는
편이야. 나는 별로 내가
겪었던 여러 가지 그
부조리함이라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
거의 그렇면 부학이지.요 요 번역은
여러 가지 다른 번역이 있어요. 어
번역 중에 하나는 뭐냐하면
구화
신 이제 구학이 신학하고
신학 신학하고 해서 구학이 낫다는
거야. 이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어. 부악은
어 근데 그렇게 보다는 옛날의 악을
이게
생각 뭐 불륜 부학 생각하지 않으니까
원망이 드물다. 그 막 그대로 하는게
좋다고 봐요.
어
근데 아마 옛날의 악이나 악 악뿐만
아니라 한 있잖아. 한 한 옛날에
원한
원한을 잊지 않고 있으면 누가 제일
힘들어? 본인이 제일 힘들거든.
지금 우리가 끊임없이 그 악순환하네.
지금 우리 사회가 장면하고 있는 거.
그래서 내가 아 이거를 딱 떠버릴 때
하나 좀 그 메시지로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뭐 그런 말 있잖아. 역사를 믿은
잊은 민족의 미래가 없다. 뭐 이런
말이 있는데
그 반만 맞아.
예.
잊을 것은 잊고
잊지 않아야 될 것은 잊지 않아야
돼. 근데 일선 거꾸로 하고 있어.
예.
옛날에 한 원망 이런 거를 잊지
않으려고 그래. 이거는 잊어해야 돼.
그리고 뭘 잊지 않아야 돼?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지.
근데 요새 거꾸로 하고 있다니까.
오히려 막 그 한을 들쳐촌내 지금
들쳐촌내서 뭐 할 거야 그거를. 특히
요새 뭐
무슨 옛날 그 해방 직후에 있었던
일들을 막 들쳐내거든.
그 한이라고 하는 건 쌍방적인 거야.
어느 한 쪽에 있는 것만 아니야.
한과 한이 서로 이렇게 저 항상
병립하거든.
근데 그걸 들촌해서 지금이 무슨
누구에게이기 돼? 잊을 건 잊어야지.
그 불련 부학이야.
예.
그리고 잊지 않아할 걸. 그러니까 뭐
뭐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리 그때
잊지 말아야 될 거는 역사의
교훈이라니까. 왜 이렇게 우리가
망했지? 왜 이렇게이 대체하는 그거를
잊지 않아야 되지. 예.
근데 거꾸해서 잊어야 될 건 잊지
않으려고 막 들쳐내고 진짜 잊지
말아야 될 건 잊어버려. 그래서 그런
거난요 말 들으면서 그게 느껴집니다.
불련
부학. 굉장히 중요하신 말씀
잊을 것은 잊어라.
예. 그러니까 역사에서도 예를 들면은
우리가 베트남전에서
뭐 미국에 같이 참전해서 거기서
민간인 학살이라든가 이런 것을 많이
이렇게 해서 굉장히 우리로는 부끄러운
역사인데 이것을 우리가 뭐 어 국가적
차원에서 사제하겠다 그러니까 베트남이
오히려 그럴 필요 없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본에 하는 것 뭐 옳고
그러면 문제는 아니지만은 그들의 어떤
단단한 어떤 뭔가 가 자존감이 이미
훼손되지 않는 어떤 자존감. 우리
그거 중요하지 않다. 그 그보다도
우리는 미래가 또 더 중요하고 그것을
결코 베트남이라고 잊은 건
아니거든요. 굉장히 그들도 절대 잊은
건 아닌데 그것을 현실의 미래보다
그것을 더 중요한 미래로 나아가는데
그걸 방해물로 삼지 않겠다 그러면서
그 미국이나 한국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다른 자세를 보이면서 자기들이 한
차례 그 이제 상승 발전하는 어떤
운동력으로 너들을 딛고 우리는
너들보다 또 앞으로 미래 30년에
30년 뒤에나 앞사하겠다 어떤
나름대로 어떤 자존감을 보이는 거
같아서 굉장히 어떤 독특한 관점으로
저도 봤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제에
그런 어떤 다른 관점도 넓은 시야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불려 구하고 우리가 그 과거에 어렸을
때 상처받은 기억에 평생 30년
40년 50년 동안도 가슴속에 베시의
벗어나이가 참 인간이라는게 참 어렵긴
한데 그게 어렸을 때 오리 새끼가 막
처음 어 애미오리를 떨어서 거위를
보면은 거의가 엄마인 줄 알고 다구를
보면 닭이 엄마인 줄 알고 계속
졸졸졸졸 따라다닌다고 그러는데 그게
각인 효과라 그러는데 그게 자기가
어떤 딱 각인 각인됐다고 그래서
그것이 진실은 아니고 사실도
아니거든요. 그 고의가지 엄마도
아니고 닭도 엄마가 아닌데 뭔가가
가인 각인됐으면 그것을 사실로 진실로
믿고 계속는 이제 그렇게 졸절
따라다니는 건데 우리의 삶도 어떻게
보면은 우리 어렸을 때 어떤 조건에
맞아서 그것이 평생 가슴에 벗혀
있지만은 그것에 사로잡혀서 사는 데를
놓여놔야 진실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에 그 과정에서
치유해서 더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음 그런 걸
깨닫습니다. 이남국 선생님이 노년의
공자를 만나 좋아하게 된 연휴는
무엇입니까?지를
만난 같아.
아하. 아,
그니까
우연히 만났지만 아까 이제 예수님 세
살 때 우연히 그 눈을 통해서
봤지만은
그
아마 성향이 비슷한 거 같아요. 어.
아, 아까 이야기한 대로 이게 물질,
제도, 의식의 연관이라고
하는 거를
하나로 파악하고 이렇게 했던 이런
점들이 아마 어, 내가 간직하고 있던
그런 이상을 그래도 어, 끊임없이
나는 스스로 이걸 진화시켜 왔지.
절대 후퇴한게 아니라고 생각해. 일부
사람들은
나를 심지어는 변제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어. 왜냐면 옛날 식으로 생각하면
말이야 혁명 노선을 말이지.
그러니까 이게 배반자다 이거
그 나는 그렇게 전혀 생각하지 않아.
나는 오히려 그 처음 생각했던 그런
목표를 끄임없이 꾸준히 내 나름들
진화시켜 왔다. 야마귀도 그 과정에
하나였다고.
그리고 특히 그 공자의 그 변역에
대한 방식이나 태도 이런게
뭔마음이 와닿고 어
예를 들면 그 아까 이제 저 헌부대
세수를 담는 방식 방식이라든지
공자의 어떤 수행 방식이라 할까
이것도
그게 아마 내가 그 이제 연찬이라
하는 걸 경험 5년 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올 거예요.
음.
그게 수행 수행이거든. 연을
생활 속에서 실행을 하는게
수행이에요. 중요한 거죠.
그까 그는 어떤 부분들이 어 아마
공자를 좋아하게 된 거 같고 하여튼
내가 그래도 어 그걸 기대하고 한 건
아닌데 공자고 사랑에 빠졌어요.
이게 그 그게 나한테 행운이라니까.
예.
근데 좀 헤려 그래.
왜 헤어지려 그래? 왜?
아.
예.
아까 이야기한들로 헤다는게 왜 그전에
무슨 영화 있었잖아.
헤어질. 예예.
그때 아마 내가 영화 보고도 스로
잊어버렸는데 그 비슷한 심경일 거야.
너무 그 치료서 해지는게 아니야.
근데
구체적으로 공자가
현대하고 안 맞는게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예.
이거는 공자의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한계 두 가지가 뭐냐면
하나는
아이
시대적 한계하고 겹 있지. 함께
있는데
그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이걸
넘어서는 사람도 있었거든. 예. 근데
공자는 어 그렇지 않았다고
본건질서와 신분 질서에 수능하는 그런
모습.
아니 그게 그게 뭐냐면
아까 그 어 저 군주 제도 이런
거를 이게 사실은 공자의 사상이
맹제에 오면 역성으로까지 바뀌거든.
그 안에 있어. 계획 사상 있음
수구조인 건 아니고 그게 있는데
제일 내가 볼 때 현대 사회에서 특히
문명 전환이라고 하는 걸 바라보면서
할 때 공자한테 그거는 인정해야
돼어. 뭐 자꾸 미워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근데 뭐냐면
남성 중심이요. 철저히.
예. 예.
예를 새면 문장이 이런 문장이
나오거든. 여자와 소위는 더불어 말할
수 없다. 예.
김선 기분 나쁘죠?
근데 이것도
예
어떤 사람 미하려고 미할 수명 그 그
근데 뭐냐면
어 여자들이 사회 활동이 봉쇄돼
있었다고
예
사회 활동이 봉쇄되 있으면 인간적으로
성숙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멋쩔 수 없는 현실인데
그런데 그 말은 이제
그 공자에
지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게
하고 또 하나는 뭐냐면 면 철저한
인간 중심이야. 근데 인간 중심이
과거에는 문제가 안 됐어.
생태계를 파괴하지도 않았. 근데
지금은 말이 인간 중심이라는게 이제
이게 하나의 그 어 생태적 어떤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잖아요. 인간
중심이라는 게.
예를 들어서 대표적인 말이 하나
나와.
공자가
출근했다 왔는데 마국까지 불이 탄
거야.
그때 유명한 말이 있지. 불문 마야
예
사람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말에 대해서
이거는 막격에 대한 그 아주 지극히
그나 왜 말을 안 물어봐 근데 당신을
좋은 거로 생각해 이게 하나 얘데
이렇테면 철저히 인간 중심이야 생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
이런 부분이 사실은 좀 약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때는 그니까 말을 그
재산으로 이제서 그 사람 생명이
중요하지 재산에 대해서 묻자 하튼
이제 그런 관념의 세계
그런 취주로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그
바탕에 뭐냐면
철저한 인간 중심 예는 인간 중심을
대단히 좋은 가치로 봤어요.
인간화라는게 사실 좋은 가치지. 근데
지금은 좀 다르게 됐다고 이제 그런
면이
어 공자의 지금 어떤
예
시대적 한계이면서 동시에
예
그 인간적 한계라고 볼 수 있어서
뭐 그것 때문에 해 주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거는 어쩔 수 없는 뭐 그런
소니까 공자는 공자대로 살리고
공자한테 내가 또 하나 끌리는 건
뭐냐면 철저히 인간이야. 예. 인간
이상을 넘어서 초월 존재가 아니라고
초월적 존재라는 걸 상하고 있지라도
그런 점이 나는 여타 다른 그 종교에
비해서이
21세기 종교가 이렇게 나아가야 될
그런 하나의 그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고 있. 그 굉장히
현실적이죠. 그런식이 지금 어 인간
중심이 물론 자연 생태계와 동물권까지
자연 생태계 측면에서 봤었을 때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은 지금
AI에서 인간이 지금 실종될 위기에
노인 상태에서 다시 공자 인간성 회복
인간의 인간 중심주의를
휴머니즘을 다시 검토해 봐야 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12
이호 선생님께서 평생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분 또 철학 사상 종교는
뭐 뭐였습니까? 아, 내 불교에서
시작했어요. 불교 시작했고
어, 불교에서 시작한 것도 어, 아마
이게 아마
내 기억에서 멀리 사라지려고 한
거지만은
음
청년 시절에음
어떤 모임에서 만난 분인데음
저로이 농촌 근대화 쪽이야.
운동을 왜냐면 옛날에 내가 젊었을
때는
우리나라가
정말로 농업 국가였습니다.
인구에 80%가 농민이었어. 지금은
인구에 몇 % 나더라? 그죠?
8%나 되는 몰라.이 농민수가 어
그 80%가는 거 그래서 내가 그때
혁명을 생각할 때도 농촌을 중심으로
생각했다니까. 지금 생각하면 좀
대단히 어리석은 생각이지만은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죠. 음.
그런데
그때 그 모임에서 만난 분의
양정주라는
분이 계셔요. 나보다 20살
연상이에. 현상인데 내 주례를 했어.
결혼식 주례를 한
분이.
근데 이분이 그렇게 이름이 남부는
아니지.
이름이 그렇게
어 이분이 그 원불교
네. 원불교 어에서 견성을 했던
분이야.
아
그걸 아는 사람 별로 없어요. 나는
상당히 그때도 이미 나는 그 그런
면에서 끌림이 있었어. 그래서 그 그
세계를 이양번 나한테 이야기를 다
해서 알지분 이분 돌아가셨을 때
그 가족들하고 그 옆에 많이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자긴 사람들이 있는데
모르더라고. 양 선생에 대해서.
내가 그래서 저걸 썼어. 초초도 초도
사람.
아
실제로이 양반도 다른 사람한테는 자기
이야기를 별로 안 했던 거 같아.
그런 이야기. 아
자기의 어떤 깨달음의 세계라든지
자기의 어떤 그런 정신적인 세계에
대해서 나하고는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영향을 받았어요. 그분을 그
당시로 말하면 이분이에
해방 공간에서 20대 청년이었는데
음
해방 공간에서 어
해방 될 때가 뭐 20살이였거든. 나
저 나하고 24 사이니까
이양반이 그때 그 저 굉장히 양호라는
이름으로
굉장한 활동을 했어. 역사이 안
나와. 아
어 그 그걸 들어서 알고 있고
그다음에
원불교에서 청년 시절에 전성을 했어.
깨달았어요.
깨달았는데
나는 이제 그런 세계를 경험을 못 해
봤죠. 우리 조선생은 깨달음 세계를
경험해 봤잖아.
아니 해봤잖아. 막 근데 그 세계가
나는이 경험 오티바서 보는데이 양반은
경험 경험하고 나는데
음
그때 자기 이야기를 해.
세상이 손바닥처럼 보이더라는 거야.
우주가. 그까 그 그런 세계가 있나
봐. 아, 나는 그 그런 건 경험 안
그 경험 안게 나 잘했다고 생각해.
경험하는데 이게 딱 하루 만에
끊기더라는 거야.
아하.
딱 다쳐 버리더라는 거. 그래서
나중에 이제 그 저 자기 저 스승한테
가서 이야기했겠지. 하는 말이
그러면 바로 나한테 와야지.
그 보림이라든가 그거 그거를
유지하는 거예요.
아니 그니까 이게 교만이 들어가.
교만.
흠. 그만 막 그 다 이게 막 자기
저 발 아래로 보이고 막 이게 하니까
딱끔 기더라. 그래서 그 이야기를
내가 들었다 아는데 그 그 뭐냐면
이양반이
그 세계에서 상당히 깊이 있게 들어간
사람인데
아 대체로 그 정치적 입장은 어
사회주의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나는
그때 어떻게 보면
붙이자면 불교 사회주의 이적인 사고
방식을
음
청년 시절에
그분으로부터 이렇게 영향을 받았다고
이게 알게 모르게
나의 근제에 있던 생각이에 예 근데
실제로 내가 이렇게 사회적 활동을
하다 보니까 불교는 숨어 버리고
사회주의만 드러났는데이 사회주의에
대해서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이제 그
모순이라 라든지 현실 부족합성 이런게
보이면서
어이
사라진 걸로 생각했던 불교 부분 요런
부분들이 조금 이렇게 깨워지더라고.
그래서 요즘에 그런 사이에 어떤
균형이랄까 요런게 지금 내 노년에
지금
나를게 하는 거 같아.
예.
하여튼 오늘 너무 이제 장시간 그
2천페지에 달하는 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나왔는데 제가 혹시 질문드리지
못한 것 중에서 우리이 선생님께서
우리 시청자들한테 좀 해 주고 싶은
말씀 좀 어 한 가지 좀 해 주세요.
뭐 거의 이야기를 한 거 같습니다.
나는 그
극기 복의
현대적인 어떤
의미로 요즘 다가와요.
뭐 아마 이야기하는 과정이 나왔겠지만
극기라고 하는 거는 어
뭔가 욕망을 참는
음
욕망을 억제하는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어 아집으로부터 해방되는
세계를 극기라고 했다. 이렇게 공자가
말한 뜻이 그게 그렇게 들어오고
어 극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거는
성인입니다.
네. 극기의 세계는 성인의 길을
가는 것이지
무슨 저 욕망을 억지하고 참는
부자요한 세계가 아니다. 그다음에
봉라고 하는 거는 어 무슨 집단이나
전전체에
자기를 조화시키기 위해서 거기
들어가라 하는 그런
걸 말하는게 아니고
그 얘가
인간이 추구하는 그 가장 아름다운
질서라고 하는 걸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 복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대동사회입니다.
대동사회. 그래서이
극기와 복례 다시 말해서 어 성인의
길과 대동사회라고 하는 것이 따로따로
노는게 아니고
하나로
되는 그런 시대적 그런 상황에
와 있다는 거 와 있어요. 둘째로 물
지던 제도가 상당히 발전했기 때문에
근데 이게 나가지 않는게 결국은
우리 현실이지 않나 그래서
어 극히 복내의 흔대적음이라할까
이건 사실은 다른 데서 다
이야기하지요. 예.
상구보리가 극기라면 하와 중생은
복례해담 복해하는데
여기서 하화 중생
이렇게 상하 이렇게 하는 부분
어마저도 사실은 넘어야 되는 이런 게
이제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될 그런
세계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 조선생도 이제 그런 면에서
저하고 계를 같이 해서 이렇게
어 나가시는 거 같아서 어구나 아
나보다 훨씬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좀
더 이렇게
활발하게 그리고 지금 한참 좋을 때
아닙니까?
건강 그 저거 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극기내
이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극기내를 비단 자기 개인뿐만
아니고 자기 종교라든가 자기
사상이라든가 자기 이념이라든가 자기
정당이라든가 자기 나라라든가 어떤
자기 성별이라든가 이런 것을 좀
넘어서는 이런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은데 예를 들면은 뭐
그죠
깨달음을 추구하는 영성을 추구하네
이렇게 한다지만은 어떤 예를 들면은
조선 시대 어 그 동건 질서하 에서는
그냥 솔직히 모든게 권위가 있는
시대니까 딱 그것에 대해서 가르침도
교조화되고 어 그렇게 되고 또 우리
한국에 있는 사찰 뭐 수천년 된
사찰에서는 그 안에서는 전부 다 그
뭔가 그 장유서가 어 장유서 질서가
유지되고 무조건 그 겁납이 높고
직위가 높으면 무조건 존중받고 이런
데서는
실제는 극기 복내가 됐는지 알 수도
없어요. 그런 것은 장유의 본건 질서
속에서 움직이는 사이기 때문에 진짜
경나 원요처럼 화강동진 다 유니폼을
벗고 민중 속으로 들어갔을 때 승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 진짜
그때도 좋은 사김이 이루어질 수가
있는 거야. 자연스러운 사김
자연스러운 배렴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수 이랬을 때 극기내를
봐야지 사기 권위주의적인 질서 속에서
애하면서 뭐 극기복내 했다는 그 죽은
그렇지
죽은 관념의 세계다. 그것이야말 죽은
깨달음 죽은 영성이다. 정말 그것을
벗고 현실 속에서 이렇게 그 좋은
사김이 이루어졌을 때 진정한 극기
봉대다. 그런 것이 우리가 이제 그런
사회 대동 사회가 그렇게 이루어져야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 이나욱 선생님 그 익산
풍요롭고 이익되는 산인 익산에서
중생을 아주 모든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좋은 말씀을 함께 나눴습니다.
또
어 우리 인나욱 선생님 아주
건강하시면은 건강하시면은 또 다음기에
또 뵙도록 하고 오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