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7

박정미 - 억압된 믿음의 귀환, 비틀린 종교의 부흥 -테리 이글턴, <신을... | Facebook

박정미 - 억압된 믿음의 귀환, 비틀린 종교의 부흥 -테리 이글턴, <신을... | Facebook

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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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믿음의 귀환, 비틀린 종교의 부흥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를 읽고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문화이론가라고들 한다. 그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도서목록을 찾아 훑어보는데, 이 책에 눈길이 멈췄다.
제목이 <신을 옹호하다>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이라는 부제가 제목과 함께 빨간 표지에 금박으로 새겨져있었다. 괴이하다. 뭔 소리를 하려는 것일까, 호기심이 동했다.
다 읽고 나니, 출판사가 교묘하게 과장한 책 제목에 낚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 책의 영어판 원 제목은 ‘Reason, Faith, and Reflections on the God’이다. 딱 이 정도가 책 내용에 들어맞았었는데 한국어 번역판은 너무 나갔다.

테리 이글턴은 책을 통해 신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옹호했다. 믿음(faith)은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보다는 헌신과 충성을 뜻한다고 그는 말한다.

“기독교신앙에서 일차적인 것은 초월자인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명제에 동의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다. 어둠과 고통과 혼란 속에 허덕이며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랑에 대한 약속을 충실히 믿고 지키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헌신이다”

이성만으로는 인간실존을 해명할 수 없으며 의식의 지평에 드러난 이성의 뾰족한 일각 밑에 거대한 믿음이 존재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다. 신이 있다고 주장하며 무신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일찌기 니체와 마르크스를 배출한 유럽은 지금 믿음에 대한 욕구와 그 고질적 불능 사이의 모순으로 고통받고 있다. 기독교가 축출된 유럽의 정신적 공백상태에 이성보다는 계시를 앞세우는 전근대적 이슬람 종교가 밀고 들어오고 있다.

“지금 서구세계는 절대적 진리와 그 토대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은, 철저하게 형이상학적인 적수와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다. 게다가 그 서구문명은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서 삶을 대충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서구는 니체 이후의 정신세계에 사로잡힌 채 물질주의와 정치적 실용주의,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상대주의. 철학적 회의주의 등을 마구잡이로 뒤섞으면서 과거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열심히 훼손하고 있는 중이다.

유럽대륙에서 기독교적인 믿음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보다 더 큰 파급효를 낳는다. ‘천부적 인권’이라는 개념은 기독교로부터 유래되었고 인권의 문화는 그 자체가 기독교적 양심의 세속적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인권을 떠받치는 기독교의 토대가 무너짐으로써 유럽사회는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 구멍이 생겼을뿐만 아니라 인권의 언어조차도 온통 불확실성의 바다로 빠지게 되었다.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은 이 전방위적 위기 앞에서 유럽문명을 떠받쳐온 기독교신앙을 재고하고 믿음과 이성의 관계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이글턴조차 엄밀한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유럽인의 삶을 먼저 보듬으며 믿음을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테리 이글턴은 (사회주의자답게)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한 무신론적 경향과 철저한 이성중심주의가 후기 자본주의에 와서 극대화되었다고 본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 본질에서 무신론적이다.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경건한 태도로 뭐라고 주장하든 간에 현실에서 드러나는 물질적 행태와 거기에 내재된 가치관과 신조들은 신을 부정한다.”

합리적 이성의 과도한 강조는 오히려 이성을 스스로 파먹고 유럽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성이 지나치게 지배적이고 타산적이며 도구적이 되면 급기야 너무 천박해져서 합리적인 믿음이 번성할 수 있는 토대 역할을 못하게 된다.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오히려 비합리적 비이성적 신앙이 번성하는 이유다.

“이성이 진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성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반이 사랑과 성실, 평화로운 공동체 같은 게 아니라 주로 물질적 이익과 정치적 지배라면 
믿음과 이성은 서로 헛돌면서 스스로를 희화화하게 된다. 그 결과 믿음은 신학자들이 신앙주의라고 부르는 유형의 비합리주의로 타락하면서 이성에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광신에 빠지기 쉽다.”

“계몽주의가 내세운 이성이 더없이 소중하기는 해도, 그 자체와 정반대의 것을 불러오기 쉽다는 사실이 이런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보의 이데올로기에서 보면 과거란 선사시대의 원시림으로 추방해야 할 유치한 무엇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서 역사적 유산을-다시 말해 우리가 미래를 위해 활용해야 할 가장 소중한 자원의 일부를-빼앗아버린다.
과거를 지움으로써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과거가 결국은 복수의 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부흥하는 현상은 바로 이런 ‘억압된 것의 회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억압된 것의 회귀가 종교에 미치는 두가지 악영향이 있는데 하나는 종교적 근본주의이고 또 하나는 종교의 재주술화이다.
“(이슬람근본주의는 물론이고)기독교근본주의는 반정치적이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정치적 투쟁을 일삼기는 하나 근본에서는 문화주의의 한 형태로서 정치를 종교로 대체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오면 종교는 다시 공공영역으로 나아가고 집단화되는데 그렇다고 고전적 의미의 정치가 부활하는 것은 아니고 종교가 정치의 대체물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후기 자본주의 세계의 재주술화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종교가 부활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다시 마법에 걸리듯 비합리적인 것들에 매혹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세계곳곳에 번성하는 종교의 재주술화와 종교 근본주의의 대두는 종교를 정치영역으로 밀고들어가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

윤석열대통령의 계엄선포행위를 ‘주술적 결단주의’의 발로라고 지적하는 언론보도를 보면 우리사회에 만연한 샤머니즘이 최근 들어 정치영역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정치를 종교로 대체하는 현상은 지금 우리 시대 대한민국 곳곳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주말마다 계속되는 반탄집회는 정치집회인가, 종교집회인가.

세이브코리아 손현보목사와 자유통일당 전광훈목사의 두 기독교집단이 한국의 보수정치를 흔들고 정치를 종교로 대체하고 있다. 그들의 군중동원력과 열렬한 실행력에 대한민국의 보수는 발목이 잡혀있다. 계엄에 대한 냉정한 거리두기를 하지 못하고 보수로서의 정치적 미래를 저당잡히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믿음과 이성은 배척관계에 있다는 자유주의적 계몽주의적 시각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성이 우리 존재의 궁극적 토대는 아니”며, “이성은 그 자체보다 더 깊고 끈질기며 덜 허약한 내적 에너지와 자원에 기댈 수 있을 때에만 주도적 힘을 발휘하게” 되는것이다. 
지금까지 믿음과 이성은 서로 기대어 인류역사를 앞으로 이끌어왔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믿음의 욕구를 인정하고 이성과 믿음의 건전한 관계를 회복할 때에만 우리 삶과 사회는 건강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해진

독후감도 어려워서 한가할때 천천히 보겠습니다

박정미

권해진 어렵긴 하지만 다채로운 주제의 연결, 새로운 시각, 현란한 지적비약에 함께 춤 춰 볼만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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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이성과 믿음의 결합.
단어들에 대한 의미 부여는 다르겠지만, 그 전체적인 뜻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학자들의 논리나 용어 사용은 나에게는 좀 복잡하게 다가옵니다만.
이성보다 깊은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 같군요.
그리고 믿음의 의미를 헌신과 충성으로 보는 것 같고요.
나 같으면 믿음보다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이성보다 깊은 생명의 원천이니까요.

축의 시대의 선구자들이 깨달은 세계가 오랜 세월 혁명과 반동을 거치며, 나선형 순환의 길을 창조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는 패권을 재구성하는 big game을 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문명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Great game이죠.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모르면서,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이라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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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이남곡 아! 그렇습니다. 이글턴의 논지와 제가 페북에서 읽어온 선생님의 사상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글턴도 결국 믿음의 내용인 헌신과 충성의 대상은 사랑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사회주의 윤리의 근간이 '정치적 사랑'이라고 확언하더군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에 뒤떨어지고 후졌다고 여겨온 두가지,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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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엽

저는 테리 이글턴의 책을 15권 정도 가지고 있고 대부분 정독했습니다. 출간 순서대로 읽는 것도 방법이고 관심 분야, 주제를 다룬 책부터 접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언젠가 이글턴 저작 목록도 작성해야 하는데 아직 전작을 독파하지 못하여 기약이 없네요.

박정미

오창엽 제가 오선생님 글을 통해 테리이글턴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야겠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전지식이 부족한 제게는 이글턴이 좀 힘든 상대인것 같습니다. 너무 난해한 문체, 종횡무진 지적영역과 시대를 넘나드는 논지전개방식이 버거웠습니다.
다른 기본서를 제대로 본 후에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오겠다고 마음 먹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