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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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희, 『동학의 사상과 운동』(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80)
학부시절 귓전으로 들었던 동학에 대한 약간의 관심으로 구입했던 책
그러나 오랜 세월 책장에서 먼지만 안겨 주다가, 최근 동학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 몇 번 손이 갔지만 새로운 책들이 많이 나와 막상 오래된 이 책은 읽지 못했다.
최동희(고대 교수), 그는 신인철, 윤석산, 표영삼과 함께 중요한 동학 연구가이다. 그의 관점이 궁금하고 무엇보다 책 제목에 맞게 ⑴동학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과정, 무엇보다 저자는 수운의 동학 사상 중에서 ⑵하느님관에 관심에 많다. 神에 대한 관심은 이 책에 시종일관 흐른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천도교로의 이행에서도 신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 다음 관심사는 ⑶수도의 방법과 목적이다. 동학은 종교임을 강조한 것이다. ⑷수운의 계승자인 해월의 생애와 종교운동, ⑸동학의 새로운 발전방향과 ⑹해월의 사상 ⑺오늘날 동학혁명운동이라고 말하는 부분, 그리고 ⑻의암 손병희 이후 이돈화가 서양 과학사상과 철학을 동원하여 발전시킨 천도교 사상이다.
수운이 무극대도를 체험하기 전 방황하고 기도하던 시절, 심중에도 가장 강렬하게 꽂히는 말씀,
“세상 사람들이 걷는 길을
어찌 함께 가랴”
(世間衆人不同歸, <교훈가>)
마태복음 7장의 말씀과 같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저자는 수운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 나오는 神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 天, 上帝, 天主, 하느님 –들을 언급하면서 수운은 우리 민족이 고래로 믿어왔던 하느님 신앙을 마음 속에서 다시 만난 분으로 이해한다.
“수운의 천주는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운이 세운 동학의 믿음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이 믿어 오던 하느님이다. ... 동학이란 어디까지나 하느님을 믿고 받드는 한국적인 종교일 뿐이다. 뚜렷이 하느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동학이 처음이기 깨문이다. 분래 동학은 그 믿음의 대상을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어디까지나 하느님 본래의 이름이고 천주는 한문에서만 썼던 번역된 이름일 뿐이다. ... 원래 수운은 우리 민족이 믿어오던 하느님을 뚜렷한 믿음의 대상으로 끌어 올리는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 동학은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의 하느님을 믿는 아주 한국적인 종교임에 틀림없다.”(57-68)
“동학은 하느님을 뚜렷이 그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독특한 종교다”(73)
그래서 侍天主만이 아니라 爲天主를 중시했다. 수운은 주문을 “至爲天主之字”(하느님을 지극히 위하는 글)라 한다.
최동희는 “동학에서 믿는 하느님이 어떤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단언한다. 하느님의 인격성은 신화적인 생각이 아니라 인간과 친밀함을 의미하는 비유인 셈이다. “하느님은 인격적이라는 점에서 본래 인격적인 우리 인간과 그만큼 가까운 존재다”(76) 동학 하느님의 인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인격성을 주장하는 다른 동학 연구가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해월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략히 다룬다. 동학을 일으키기 위해 가시밭길을 걸은 2대 교주, 1880년 동경대전과 1881년 용담유사의 간행, 개접제와 육임제를 마련하고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 후 일본침략에 전쟁도 불사한 사람, 1899년 7월 18일 교수형에 처해질 때까지 스승 수운 이후 37년 동학을 이끈 사람.
해월의 신관은 수운에게 강하게 남아 있는 초월성이 땅으로 땅으로 내려와 철저히 안으로 속으로 스며든다.
“천지만물이 시천주 아님이 없나이 고로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우주의 常理니라.”
“하늘의 일월부터 땅의 미진(微塵)에 이르기까지 다 天道의 영광이니라”
하느님을 모시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만물이 다 그러하다는 것이다.
인생과 만물이 하느님을 모신다는 해월의 신관과 성경 특히 시편에서 해와 달과 별과 삼라만상이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믿음은 한 신앙의 上下左右의 측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동희는 손병희 이후 동학과 천도교에 대해 “전통적인 사상속에서 어떤 원리적인 것을 찾아 서양적인 것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교리를 설명하려고 했다”고 평가한다. 동학을 창신한 천도교는 전통화-개화-세계화의 삼중과제를 떠맡는다. “어찌 한편으로 치우치게 東學이라고만 부르랴! 사실은 天下의 無極大道이다”(1893년 상소문)
의암 손병희에 와서 侍天主에서 主가 빠지고 侍天으로 되고 天人이 이에 상응한다. 侍天하는 天人! 의암의 다음 문장은 이를 압축적으로 요약한다.
“사람이 하늘을 모시지 않고 하늘이 사람을 거느린다. 입이 말을 하지 않고 말이 입을 가르친다.” 하늘을 일기와 같은 것으로 보고 사람과 하늘의 관계를 자연법칙적인 필연으로 보는 생각은 야뢰 이돈화의 『신인철학』에 그대로 반영된다.
의암의 人乃天사상은 『대종정의』와 『무체법경』을 이끄는 宗旨이다.
“내 마음을 깨달으면 上帝가 곧 내 마음이고 천지가 내 마음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내 마음의 一物이다. 내 마음을 내가 모신다. 나는 곧 指名이고 지명은 곧 現身을 말한다.”
최동희는 이 대목에서 강하게 묻는다.
“이러한 특히 종교적인 실천의 측면으로 보아 과연 천을 사람의 마음 혹은 理에 그친다고만 우길 수 있을까. 이렇게 천도교 지도층의 종교적인 실천으로 미루어 천을 보통 말하는 理니 一氣니 마음 따위로만 믿을 수 없다. 겉으로 나타나는 이론과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천을 어떤 초자연적인 신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214)
수운 해월 동학이 동학운동으로 이어져 민중적 혁명사상이 되었고, 천도교는 삼일운동으로 독립과 자유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손병희의 인내천주의 그리고 이돈화의 수운주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우주생명사상”은 천도교를 종교적으로 완전하며 과학적으로 합리적이며 철학에 적합한 새로운 인간을 위한 철학, 『新人哲學』(1931)에서 우뚝 세우고자 했다. 한편, 치밀한 학문적 정립이 민중적 운동과 멀어질까봐 염려스럽다.
이러한 사상운동은 만주사변으로 단절되었다가 해방 후 백세명의 『동학사상과 천도교』(1956), 윤노빈의 『신생철학』(1989)으로 계승되고, 생명사상은 장일순, 김지하로 이어지며 최근 10년 ‘다시 개벽 사상’-개벽 철학, 개벽 종교, 개벽 문학, 개벽 신학 ... -으로 만발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