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5

박정미 -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Middle Match

박정미 - 여자가 생의 동반자에게 거는 꿈은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잘... | Facebook

여자가 생의 동반자에게 거는 꿈은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를 읽고

잘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작가가 남자라고 여겼을 것이다.
내면의 심리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인물이 그리는 운명의 궤적을 끝까지 추적해나가는 그 힘찬 문체가 그릇된 추정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1830년경 영국의 1차 선거법개정을 전후로 한 격변의 시대를 정치, 사회, 경제생활 측면에서 거대한 스케일로 그려내는 솜씨가 그 확신을 더 굳게 했을 것이다.
작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메리 앤 에번스>라는 본래의 이쁜 이름을 놔두고 남자 이름인 조지엘리엇으로 활동했다. 그렇지만 작가가 여자임을 알면서도 세상사람들은 감히 조지엘리엇을 여류작가로 분류해내기가 어려웠을 게다. 그 당시 어떤 남성작가보다 지적이고 현실적이고 가차없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여류의 이름에 가둬놓기가 버거웠을 것이므로.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서 나는 작가가 그 시대 여자의 한계를 깨기 위한 방편으로 남자이름을 내세웠으리라고 짐작한다. 작가는 선이 굵은 작품을 써냈고, 그 인생 또한 여자뿐만 아니라 어떤 남자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통이 컸다.

이 책은 결혼을 전후로 한 여자의 다양한 심리와 거기에 필연적으로 결부된 남자의 운명을 다루었지만 결혼제도 자체 보다는 남녀가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을 때 그 상호작용의 모습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조지엘리엇은 인습과 편견으로 꽉막힌 빅토리아조 영국에서 가족과 의절하면서까지 결혼제도 바깥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찾고 지켜냈다. 그런 만큼 제도를 벗어나 한 차원 더 높은 시선으로 남녀관계를 자유롭게 고찰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이 책에서는 총 네 쌍의 연인이 결혼을 하고 그 부모세대인 두 부부의 사랑이 그려지는데 그들의 성격과 사회적 지위, 결혼에서 바라는 바는 다 다르다.

먼저 상류층 준귀족인 <도러시아 브룩>양과 <에드먼드 캐소본> 커플이 있다.
 
엄청난 미모에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데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도러시아는 그러나 결혼에 대한 남다른 꿈 때문에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지적 도덕적으로 지도해주고 완성으로 이끌어줄 훌륭한 남자와 결혼하고 그를 보조하는데서 인생의 의미를 찾겠다는 열망으로 나이도 근 서른살이나 더 많은 학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전면적인 인격적 부딪힘으로 발가벗고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결혼생활 속에서 도러시아는 학자로서 무능하고 복잡한 내적 모순으로 마음을 열지 못하는 남편의 실체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게 된다.

병약한 남편이 죽은 후 <도러시아>는 보수적인 영국인에게 경원시당하는 유대인과 외국인 핏줄인 <윌 래디슬로>와 사랑을 키워가게 되는데, 그를 택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과 재산을 다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게 된다. 도러시아의 물심양면 내조에 힘입어 래디슬로는 정치개혁에 앞장 서면서 정치가로 입신하게 된다.

그 다음에 부르즈와 계층인 <로저먼드 빈시>양과 
재산은 없으나 야심에 불타는 상층 귀족출신 <터시어스 리드게이트>가 있다.
 
외적 아름다움과 겉치레 체면의식을 갈고 닦은 로저먼드는 신분상승의 욕망을 좇아 리드게이트와 결혼했으나 의학적 발견을 통해 인류에 봉사하고 명예를 드높이겠다는 남편의 드높은 소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친정에서부터 누려온 안락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남편을 조종하여 남편의 꿈을 꺾고 돈 잘 버는 의사의 길로 끌고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메리 가스>와 부잣집 응석받이로 자라난 <프레드 빈시> 커플이 있다.
어린시절부터 소꿉친구로 자라난 두 사람은 주위의 편견을 극복하고 프레드의 유혹에 약한 성격에서 비롯된 고난을 함께 의지해 이겨나가게 된다. 프레드는 매리 가스에 대한 사랑과 가스 가족들의 강건하고 소박한 생활방식에 감화를 받아 인생의 길을 헤쳐나가는 가운데 성장하며 진정한 사랑을 키우게 된다.

가스 가족의 생활모습은 아빠인 케일럽의 생활신조도 참으로 모범적이고 보기 좋은데 충실히 남편을 사랑하고 어려운 살림에 아이들을 가르치며 잘 키우는 엄마 가스부인의 일상 묘사는 흐뭇하기만 하다.
가스부인은 일정한 시간에 늘 부엌에 있었고, 오늘 아침에도 부엌에서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나가는 중이었다. 바람이 잘 통하는 부엌 구석의 반짝이는 제재목 탁자에서 파이를 만드는 동시에 오븐과 반죽 통 앞에서 움직이는 샐리를 열린 문을 통해 살폈고, 책과 석판을 들고 탁자 맞은편에 서있는 가장 나이 어린 아들과 딸을 가르쳤다. 부엌의 다는 구석에 있는 빨래통과 건조대는 이따금 소소한 빨래도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접어 올린 가스 부인은 밀방망이로 밀고 손가락 끝으로 장식을 만들어 솜씨 좋게 파이 반죽을 만들면서 동시에 문법에 대한 열정을 갖고 “집합명사나 여러가지를 나타내는 명사”에서 동사와 대명사의 일치에 관한 정확한 규칙을 설명했다. 유쾌하고 즐거운 광경이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니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가난 속에서도 안나의 철없는 오빠를 건사하고 가족을 보듬어 살아가는 순박하고 착실한 올케의 생활 모습이 그것이다. 강가에서 아이들의 옷을 하나 하나 벗기고 목욕시키느라 그녀가 기울이는 수고와 지극한 생활감정이 인상적이었다.
톨스토이가 조지엘리엇을 좋아하고 높이 평가했으니, 이 장면을 읽고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시기적으로도 맞아 떨어지는데, <미들마치>가 출간된 지 이년 후인 1873년에 톨스토이는 <안나카레니나> 집필에 들어갔다. 이 장면이 나오기 전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분위기와 스토리라인이 비슷하여 나는 자꾸 안나카레니나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도러시아 브룩은 안나 카레니나와 도플갱어라도 된 듯 이미지가 겹친다.
특히 그 아름다움과 남자를 감싸안는 구원의 여성성, 거짓 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내적경향이 같은 인물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다만 도러시아의 늙은 남편은 일찍 유명을 달리해서 도러시아에게 두번째 인생을 선사했지만 불행히도 안나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브론스키를 사랑하게 되면서 사회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또한 안나는 강력한 러시아의 구체제가 개인을 압박하던 시기에 자신만의 진실을 찾을 수 없어 길을 잃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힘을 잃은 구체제를 뚫고 개인의 자유가 부상하던 영국에서 도러시아는 무위도식하던 귀족의 굴레를 깨고 생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830년 무렵은 유럽인들의 마음 속에서 구체제가 완전히 깨지고 새로운 근대가 열리는 신기원을 이루고 있다.

“19세기 혹은 우리가 흔히 19세기라는 말로 이해하는 시대는 1830년경에 시작한다. 19세기의 토대와 윤곽-즉 우리 자신이 속한 사회질서, 그 여러 원리와 모순이 여전히 지속되는 경제체제, 그리고 대체로 오늘날에도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으로서 가지고 있는 문학-이 형성된 것이 이 기간인 것이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명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이 기점을 프랑스의 7월혁명과 시민왕정의 성립에서 찾았지만 영국에서도 이 시기는 동일한 질적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였다. 근대는 영국 빅토리아조의 공장과 의회와 카페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나는 이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새로 태어나는 바로 이 시기, 여성 역시 새로이 눈을 뜨고 결혼이라는 중대한 인간관계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길을 새롭게 모색하게 된다. 도러시아로자먼드메리는 각각 여성 앞에 놓여진 세가지 길을 보여주는 원형인 것이고 그 원형은 지금도 현대 여성의 마음 속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남아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 역시도 이 세가지 길 중에서 두가지 정도는 거쳐왔다는 생각이 든다. 
  • 처녀시절에는 도러시아와 같은 이상주의적 연애관과 결혼관을 꿈꾸었고(도러시아와 달리 얼굴이 안 예쁜 나는 이 때문에 결국 늦게까지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 했지만
  • 결혼 후에는 메리와 그 엄마의 길을 이상으로 삼아 걸어왔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조지 엘리엇은 여느 페미니스트 못지 않게 강력한 자아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견 남자의 내조로 허비해버린듯한 도러시아의 삶에 대해 강렬한 연대의 마음을 내비치면서 끝을 맺는다.

“섬세하게 조각된 그녀의 정신은 널리 눈에 띄지는 않아도 섬세한 결실을 거두었다. 키루스가 그 힘을 꺾어버린 강물처럼 그녀의 충일한 성품은 지상에서 위대한 이름이 붙지 못한 여러 물줄기로 흘러들어가 소진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퍼져나갔다. 세상의 점진적 개선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위 덕분이기도 하고, 당신이나 내가 처한 상황이 대단히 나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충실히 무명의 삶을 살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도러시아의 여성성을 나타내는 ‘기쁨에 찬 헌신’을 비주체성과 남자에 대한 예속과 굴종이라고만 생각하는 현대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과연 조지엘리엇의 위대한 삶과 작품 앞에서 침을 뱉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