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2

[서평] 「함석헌 평전」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를 오간 인간 함석헌

[서평] 「함석헌 평전」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를 오간 인간 함석헌



[서평] 「함석헌 평전」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를 오간 인간 함석헌

글쓴이 : 코리언미디⋯ 날짜 : 2014-09-10 (수)



함석헌은 한국의 지성계와 종교계, 그리고 재야 정치권에 커다란 나무 그늘과 같은 인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씨알의 소리" 라는 반정부적이고 민주지향적이며 자유주의적인 민심의 대변지를 시작하신 분으로서, 내노라하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김동길 교수, 안병무 교수 등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던 영향력있는 사상계의 거두로서

잘 알려져 있다.



1989년 함석헌의 죽음 앞에, 서구세계에 함 선생의 일생과 업적을 알리고 스스로 함 선생의 생애를 학문적으로 정리하기를 원했던, 철도 공무원 출신의 저자, 김성수씨는 영국으로 유학하여 10년만에 함석헌의 전기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가 펴낸 「함석헌 평전」은 함석헌의 자서전과 생전의 기록들과는 다른 그의 사후, 그 에 대한 객관적 평가작업의 최초의 작품이며, 그것이 국외에서 이루어진 학문적 성과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저자는 연대기적 순서에 입각하여 함석헌의 생애를 조망하고 있는데, 특별히 그의 사상적 전환기를 따라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사자섬 아이에서 ‘생각하는’ 기독청년으로(1901~1923)"에서는 3.1 운동을 기점으로 평범한 보수 장로교회의 신앙청년에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애국신앙청년으로 자라가는 배경을 이야기한다.

"'감방대학’에서 노자를 만나다(1923~1945)"에서는 일본유학에서의 우찌무라 간조와의 만남, 김교신과의 교분, 그리고 귀국 후, 오산학교 시절,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집필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성서조선"에 글들을 기고하다가 일제에 의해 투옥되며, 그 과정에서 동양사상에 심취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다.

"기독교는 위대하다.그러나 참은 더 위대하다(1945~1969)"에서는 해방 후, 그가 느꼈던 기독교 내부의 부패와 왜곡, 그리고 그 가운데서 그가 추구했던 정의와 진리의 과정을 기록한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1961~1989)"에서는 군사혁명 이후, 그가 퀘이커리즘에 투신하게 된 개인적인 배경과 이후 죽을 때까지 획일적 군사문화에 대항하여 노장사상에 근거한 자유와 진리를 외친 그의 일생을 추적한다. 분명, 기독교로 부터 출발한 그의 사상(그의 최초의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 는 성서적 관점에서 기록한 수작으로 지금도 교회사나 한국사 학도들은 필히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이 역사적 격변(3.1 운동, 해방, 군사정변)을 거치면서 어떻게 동양철학과 동양종교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원주의화 되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면, 보수적 크리스천들이 그에 대한 평가를 도매금으로 낮게 평가하는 것을 차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혹 보수적 장로교회에 계속 몸담고 있으면서 여전히 민족과 국가, 그리고 씨알들을 위해서 애쓰고 힘쓸 수는 없었을까를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보수적 기독교(장로교)가 아닌 노장사상과 동양종교만이 이 절망스런 민족과 부패한 사회의 대안이었던가?



왜 우리 소위 개혁주의 교회가 그 일을 목소리 높여 감당하지 못했을까? 왜 그 자리를 다원주의의 유려함에 내어주고, 민중신학의 기수들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는가?  평전의 백미는 함석헌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가벗기듯 살펴보는 것이다. 1969년 즈음, 함석헌은 민주화 운동을 위해 지방으로 다니던 중 따르던 여대생과 한 밤의 갑작스런 "다윗의 범죄"에 빠져들고, 이로 인해 박정희 정부로부터 온갖 지탄을 받고 도덕적 흠집을 남긴다.



그의 스승이었던 다석 유영모까지도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제자를 부르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추락이 얼마나 큰 것이었으며 그의 영육간의 처지가 불을 보듯 자명하다. 그런데, 이 때 그를 따뜻한 형제애로 받아주고 함께 했던 공동체가 바로 "퀘이커 형제들"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공식적 다원주의 사상가, 함석헌은 사석에서는 "그래도 나의 주님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함석헌 평전」은 함석헌의 이야기로만 읽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이며, 우리 기독교의 이야기이다. 부제가 밝혀 주듯이,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함석헌은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그 족적의 가치는 그가 추구했던 '신' 과 그가 살을 맞대고 사랑했던 '사람' 들의 평가의 몫이 되었다.  그가 위대했던 이유는 그의 불의를 향한 '용기' 와 진리를 향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오점과 오류로 가득한 한 인간이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는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를 오고가던 예언자였다. 그러나 또한 그는 세속 도시의 한 세속인이었고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인간이었다. 예언자로서의 함석헌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함석헌을 만나는 것이 더욱 진리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