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 우찌무라 간조
‘우찌무라 간조’ 그의 이름은 설교를 듣거나 혹은 지인들과 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종종 들었다. 일본인이며 중국에서 특별히 빈민들을 위해서 선교활동을 했다는 정도만 알았지 그의 일생에 대해서 자세한 것들을 무지했다. 그래서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재빠르게 책을 뽑아 들었다.
이 책의 부제는 ‘내 영혼의 항해일지’ 이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 쓴 책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자신이 크리스천이 되면서 겪은 현상들만 나열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철학적 사고의 기회를 주려는데 목적을 두고 이 책을 썼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특히 자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준 인물들의 말들과 자신이 직접 기록한 일기를 발췌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좀더 생생하게 그가 가진 생각의 형성 과정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한 가지 답답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문화와 기독교에 근간을 두고 발달한 유럽, 미국의 문화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 인가 하는 문제였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기독교 종교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보다는 받아야 들여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게 스스로 고민해보지 않고 각각의 문화를 따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미지근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회심을 했을 때 자국문화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지녔다. 하지만 미국에 건너가서 직접 서구문화를 체험하면서 자신이 선교사로부터 듣고 또한 스스로 생각했던 기독교국가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부조리들을 느꼈다.오히려 서구 문명에 비해 오히려 이교도국가가 순수한 기독교의 국가로 발전해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진 나라라고 그는 주장했다.
우찌무라 간조가 이렇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부분에 있어서 부끄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한 번이라도 내가 이러한 고민들을 붙잡고 주님께 지혜를 간구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찌무라 간조의 중심이 너무 본받고 싶었다. 그가 가진 중심됨이 무엇인지 다음의 책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조국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과 지식을 배워 애국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나가려는 결심을 했다. 엄숙한 이별의 시간에 나는 고개를 숙였고, 나의 영혼은 하나님 아버지와 내 조상들의 영을 향한 채 기도하며 동시에 회상하는 일종의 명상에 잠겼다.교리 선생들은 못마땅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과 조국과 조상들을 사랑했고 단지 이 엄숙한 계기에 그 모두를 기억했을 뿐이다.”
“그가 아는 한 일본인은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대답한다. 어느 날 문득 그가 자신의 죄를 깊게 깨닫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안에서 용서를 체험했다. 세례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주변에 세례를 줄만한 목회자가 없었다. 그 때 마침 신선한 여름비가 내렸고 그는 하나님께서 초대한다고 생각했고 비를 맞으며 경건한 자세로 흠뻑 적셨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시며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이러한 중심을 보는 그의 마음이 와 닿았다. 형식과 절차에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과 절차 때문에 정작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껍데기에 얽매여 있었던 나의 경험과 달리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진심이 나의 마음에와 닿았을 것이라. 중요한 것을 먼저 보고 그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이해하며 대한다면 형식과 절차도 많이 없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갑자기 든다.
그리고 우찌무라 간조의 대학재학시절에 크리스천 친구들과 함께 성경에 대해서 공부하고 믿음의 조상들이 남긴 책들을 함께 읽고 그것들에 대해서 나누는 그 모임이 참 보기 좋았다. 개인적으론 청년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주님을 주제로 모이는 모임이 얼마나 풍성하고 행복하고 축복인지 알게 되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친구들과 두 그룹을 만들어서 각각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의 입장을 대표해서 이야기 해보는 시간등은 참 신선했다.
우리들이 만든 작은 교회는 전적으로 민주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의 교회 직분이 동일했다. 우리는 이것이 철저하게 성경적이며 사도적인 관점이라고 보았다. 지도자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그날의 지도자는 하루 동안 우리의 목사요, 신부여, 선생이요 심지어는 종이었다.
그리고 그의 일기 중에서 마음에 와 닿은 부분들도 많았는데 아래와 같다. 그가 쓴 일기들을 보면서 매일 매일 내가 교제하는 하나님을 일기를 통해서도 찬양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또 드러나는 게 아닐까?
어느 날 일기
기독교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중재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 주기를 바라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영원하신 성령과의 교제를 통해서 이미 하나님의 마음 속에 가지고 계신 그 뜻을 우리로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내 영혼이여 항상 선한 것을 의도하시는 그 분의 뜻에 그대의 뜻을 맞추어라.
어느 날 일기
주께서 나를 치신다 할지라도 나는 즐거워할 것입니다.
나는 비록 죽어도 하나님의 뜻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헌신된 영혼은 자기 자신의 성공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는 것만을 기뻐합니다.
일본의 한 하급 사무라이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찌무라 간조. 그는 청년의 시기에 주님을 만나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주님과 교제하며 여생 동안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살아갔다. 그가 가진 솔직한 생각과 고민들을 읽으면서 많이 동감했고, 평소에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우찌무라 간조가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을 특히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의 문화권에서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느꼈던 부분들이 나에게도 와 닿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쉽진 않겠지만 우찌무라 간조가 한 것처럼 나의 삶을 통해서 만나게 될 나의 주님에 집중하며 그를 통해 배운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위로를 이 책을 통해서 받았다.
참된 기독교는 무엇인가? 진리는 생명처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오직 진리를 따를 때에만 진리를 알 수 있다. 쪼개고 따지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오히려 진리를 진리답지 못하게 만든다. 확고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진리로 인간이 다가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