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샨티니케탄으로 건너 간 한국의 소리 - 오마이뉴스
인도 샨티니케탄으로 건너 간 한국의 소리
정혜자(mirabohj)등록 2007.02.02 09:42수정 2007.02.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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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바바라티 대학 교정에 붙어 있던 공연포스터 ⓒ 임광호재)아시아문화교류재단은 한국과 인도의 문화 교류를 위해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세운 학교 샨티니케탄을 방문하여 우리의 음악을 선보이는 공연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12일 한국시간 새벽 4시에 출발하여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서 버티고, 현지시각 밤 10시 캘커타에 도착, 잠만 자고 아침에 기차를 타고 이곳, 샨티니케탄에 왔다.
공연장의 상태를 보는 순간 스태프들의 입은 떡 벌어졌지만 어쩔 것인가. 이미 포스터는 샨티니케탄 교정과 비스바바라티 대학 곳곳에 붙었고, 홍보 전단도 2000장이나 뿌려진 것을.
청소를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로 문짝과 창틀, 무대 위에는 먼지가 수북 했다. 천장 구조물 위에 늘어진 거미줄은 바로 전에 '전설따라 삼천리'를 찍은 세트장처럼 보였다.
그래, 우리는 확실히 인도에 왔구나. 관중석 상태도 마찬가지. 한켠에 놓인 간이의자 200여개와 얇은 천이 덮인 시멘트 바닥이 전부였다. 이 공연장의 이름은 나띠야 골(Natya ghal, 춤의 방).
@BRI@현지인과 스태프들이 달려 들어 청소를 하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빔 프로젝트도 여러 시도 끝에 간신히 설치. 음향, 조명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별반 나아진 것 없는 1960년대식 어설픈 무대 위에서 풍물패 '얼쑤'는 리허설을 시작했다.
공연장의 열어 놓은 문 사이로 현지 인도인들의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나타나고 이름모를 새도 날아들었다. 이러다가 공연장으로 소가 들어올 수도 있겠군. 이미 공연장 바깥을 어슬렁거리던 소를 본지라 괜한 노파심도 들었다.
인도 현지 시각으로 13일 저녁 6시. 200미터쯤 떨어진 큰길에서 길놀이를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Ms. Sabuj Koli Sen(타고르 박물관장)의 "타고르 선생님 당시 한국과 인도는 자주권을 상실해 똑같은 정치적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번 교류를 통해 타고르 선생님이 예언하신대로 한국, 동방의 등불이 환하게 켜지기를 바란다"고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공연팀 유상호(47·재즈 연주자)의 아리랑 연주가 나띠야 골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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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장구 공연중인 얼쑤 공연단 ⓒ 임광호그 마지막 가락을 타고 들릴 듯 말 듯 시작된 장구 가락이 서서히 힘과 속도가 더해가며 관객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절반이 넘게 비어 있던 의자가 점점 채워졌다. 달고, 내고, 맺고, 푸는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며, 우리의 피속에 흐르는 '신명'이 그들에게 전달된 듯 박수소리가 커지고 휘파람 소리까지 들렸다.
머나먼 이국에서 듣는 사물놀이는 우리네 재즈였고, 우리네 오케스트라였으나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새 의자는 꽉 차고 심지어 얇은 천이 깔린 맨 바닥에 나란히 앉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인도를 관광 온 듯 보이는 금발의 외국인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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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감상중인 샨티니케탄 학생들 ⓒ 임광호마지막 순서인 판굿. 이 순서에는 12발(약 12m) 상모놀음이 하이라이트다. 머리에 상모를 쓰고 나타난 놀이꾼의 손에서 스르륵 열두발의 끈이 공중에 풀어지자 관중석에서 "와우~!!" 환호성이 터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주변이 칠흙같이 어두워졌다.
전기가 나가버린 것이다. 분명 예정에 없었던 사고인데 마치 예정된 퍼포먼스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미 관중석은 우리의 '신명'에 빠져있었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핸드폰 불빛과 랜턴 불빛이 보였고 격려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인도의 맨 얼굴, 그 입이 열리고 사귀고 싶다는 속삭임을 듣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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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샨티니케탄 현지 여학생들, 마두리, 얼쑤의 협연 ⓒ 임광호10분여의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조명이 밝혀졌다. 다음 차례는 샨티니케탄 현지 예술팀 '마두리'의 노래와 연주. 타고르의 시에 곡을 붙인 남녀혼성중창이었는데 성가 느낌이 들었다. 샨티니케탄 여학생들의 인도 전통춤이 다음으로 이어졌다.
이국적이지만 화려한 인도 의상과 유연한 몸놀림에 사절단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샨티니케탄에 유학 중인 한국인 허다솜(16)양과 그녀의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나중에 다시 만난 다솜양은 "이번 사절단의 공연으로 인해 학교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위상이 높아져서 본인의 자부심도 굉장해졌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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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끝나고 기립 박수를 보내던 현지 주민들 ⓒ 임광호한국 공연단 '얼쑤'와 '마두리'의 협연이 대미를 장식했다. 정전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12발 상모를 보여주자 관중들은 무대 앞으로 몰려들어 박수를 쳤고, 공연이 끝났음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광주아시아문화교류재단 이사장 현장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광주는 민주의 성지로서 평화의 마을 샨티니케탄과 많이 닮아있다. 이번 공연이 광주의 민주 정신과 샨티니케탄의 평화정신이 조화롭게 만나 활발한 교류 활동을 펼치는데 촉매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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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사절단과 현지 공연팀의 기념사진 ⓒ 임광호이번 교류 프로젝트의 기획자 박양희(42·샨티니케탄 출신, 한국 거주)씨는 "우리네 북소리가 쿵쿵 울릴 때마다 그 울림이 바로 인도인의 가슴에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기를 희망 한다"고 전했다.
사시사철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수업을 하는 학교, 교정에 온갖 나무들과 동물들이 함께 자유롭게 어우러진 학교,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함께 하는 마을, 샨티니케탄. 그 평화의 마을에 울려퍼진 우리 소리를 통해 두 나라의 교류가 가능함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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