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4

춘계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 신학에 관한 연구

통전적 신학 - Holistic Theology - Google 검색


춘계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 신학에 관한 연구
소기천(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성서신학 교수)

한글초록
이종성의 신학은 통전적 신학(通傳的 神學)이라 불린다. 그래서 본 논문은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 성서적인 개념인지 우선 탐구하고자 한다. 이종성은 통전적인 신학이란 기치 아래서 그의 조직신학대계 40권을 집필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본 논문은 이종성의 통전적인 신학이 성서적인 근거를 가진다는 전제하에 그가 90세 가까이 살 면서 주도한 여러 분야와의 공통적인 연구, 성서이해, 삼위일체론, 과학과 신학과 문학, 간학 문적이며 간종교적인 수용, 종말론 등으로 나누어서 평가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필자는 김명용이 자신의 신학에 대하여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 이 ‘통합한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편협하지 않고’ ‘온전하게 한다’ 등의 의미를 더 담고 있는 ‘온 신학’이 통전적 신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주장이 과연 정당한지도 평가하고자 한다.
이종성이 타 문명(학문, 종교)까지도 ‘기독교를 위한 준비과정’, ‘복음에 이르는 준비 과정’으로 바라보고 이해하였는데, 과연 그가 생각하는 통전적 신학의 구성 원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질적인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 문명을 기독교 세계관이 전제된 통전적 신학을 통하여 이해하고 기독교 안으로 이끌어 올 수 있는가? 이상의 질문들은 향후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을 계승하는 후학들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주제어
이종성, 통전적 신학, 성서적 복음주의, 김명용, 온신학

I. 서론

본 소고는 9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춘계 이종성 박사(이하에서는 모든 학자들에게 직함 을 붙이지 않는다)의 통전적 신학1)을 연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이다. 교회 정치가로 서 학교행정가로서 조직신학자로서 한 평생을 살았던 이종성은 1922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 였다. 그는 일본, 미국, 독일 등에서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개혁파 정통주의, 근본주의 신학 등 2천년의 모든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 스(어거스틴이라 말하면 F학점을 주었다), 칼빈, 바르트 등 세 사람이다. 그는 영락교회 부목 사, 연세대학교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학감, 학장,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영남신학 대학교 총장,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등을 지냈다.
88세까지 제자들과 테니스 치기를 좋아한 이종성은 자신의 신학을 통전적 신학이라 고 스스로 명명하였다. 통전적 신학이란 '그리스-로마[그레코-로만]' 문명을 중심으로 한 서구 신학 외에 타문화권(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종교와 사상, 문화, 세계관, 가치관 등을 '복음에 이르는 준비과정' 또는 '기독교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보고 적대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것

1) 이종성은 자신의 통전적 신학을 유일하게 영어로 표기한 199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Wholistic View (통전적 관점)과 the inter-connectedness(상호연관성)으로 이해하였다. 참고, 이종성, “The Wholistic View of Happiness in the Context of Korean Culture”,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 40권 외국어 논문집-Anselm’s Understanding of the Death of Christ and Other』 (서울: 한국기 독교학술원, 2001), 315, 346쪽.
 
들을 성서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기독교 안으로 이끌어 오고자 하는 신학이다. 그가 최후로 남긴 자서전에 스스로 통전적 신학 연구에 심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현재 필생의 과제로 통전적 신학의 더 깊은 경지를 구상중에 있다. 통전적 신학 이란 다음과 같은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첫째, 신학의 각 분야를 단독으로 이해 하지 않고 각 분야에 공통되는 점을 모색한다. 둘째, 삼위일체론으로 신학의 각 분야 를 관통시킨다. 셋째, 우주계를 태양계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성운계까지 확대해서 이해한다. 그리고 성운계도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전제한다. 넷째, 모든 종교나 학문
을 복음에로의 준비과정(preparatio evangelica)으로 수용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
도를 중심한 범종교계를 인정한다.2)

이러한 신학이 통전적 신학이라면 범 교단뿐만 아니라 범 종교까지 포용할 수 있는 신학이라 고 기대된다. 또한 이종성은 조직신학대계를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출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통전적 신학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종말론으로 신학을 종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을 통전적 신학의 입구의 역할을 하도록 판을 짠 것이다 이러한 대원칙에 의하여 조직신학대계를 집필하게 되었다.3)

본 소고는 그가 비록 완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이미 조직신학대계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밝 힌 이러한 통전적 신학이 성서적인지를 되묻기 위해서, 신학의 여러 분야와의 공통적 연구, 성서이해, 삼위일체론, 과학과 신학과 문학, 간학문적이며 간종교적인 수용, 종말론 등으로 나 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통전적 신학을 평가하고 김명용이 주장하는 온신학 과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신학의 여러 분야와의 공통적 연구

성서신학 분야에서 ‘통전적’이란 단어를 찾는다면 결코 찾을 수 없지만, 비슷한 표현이 하나 있다. 이것은 헬라어 형용사 o[loj이다. 이 단어는 마 14:35; 16:26 막 6:55 12:30; 눅 5:5
13:21 요 4:53 7:23; 19:23 행 11:26 21:31; 롬 1:8; 8:36; 딛 1:11 요일 5:19에 등장한다.
우리말은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으나, 굳이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을 이야기 할 때 유일하게 어울릴 수 있는 단어이다.
물론 헬라어 형용사 te,leioj란 단어도 ‘온전한’이라는 형용사이기에 유사한 의미를 가
질 수 있지만 그 뜻에 차이가 있다. ‘온전한’이란 형용사의 의미는 약 1:4a, 17, 25; 히 9:11;

2)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12), 159쪽. 김성규는 본고를 논평하면 서 이종성이 언급한 네 번째 정의가 얼핏 보기에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선포한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 과 신성이 모든 만물에 있다’는 말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세상의 시작은 각기 달라도 모든 끝
은 복음으로 귀착된다는 점에서 이종성이 “모든 종교나 학문을 복음에로의 준비과정(preparatio evangelica)으로” 보는 견해는 어느 정도 타당한 점이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에서 “예수 그리
스도를 중심한 범종교계를 인정한다”라는 결론은 그리스도를 유일한 길로 받아들이지 않는 종교들이 많은데 그런 종교들에서 과연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논하는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참고, 김성규, “춘계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 신학에 대한 성서신학적 평가,” 『한국개혁신학 회 제38차 학술심포지엄』 자료집(2015년 5월 5일 장로회신학대학교), 113쪽.
3)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 124쪽.
 
요일 4:18에 나온다. 명사형으로 쓰인 ‘온전한 것’이란 의미는 롬 12:2; 고전 13:10에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은 ‘성숙한’이란 의미의 형용사로 고전 14:20; 엡 4:13; 히 5:14에 나온다. 고전 2:6에는 성인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고전 2:6; 빌 3:15; 골 1:28에는 신비스런 제의와 연결되
어 나온다. 마 5:48a 19:21; 골 4:12; 약 1:4b 3:2에는 도덕적으로 완전히 발전된 개념으로 나온다. 마 5:48b에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헬라어 형용사 pa/j도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다렐 구더가 이야기 하는 듯이4)
te,leioj와 마찬가지로 통전적 의미로 사용된다고 간주하기 어렵다. 다렐 구더는 pa/j도 통전적
개념으로 통용될 수 있다고 간주하면서 대표적으로 마 28:18; 요 3:16; 고후 5:19; 빌 2:9-11; 골 1:17-19 등을 꼽는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단어는 단지 ‘모든’이라고 번 역되는 형용사에 자니지 않는다.
비록 te,leioj와 pa/j가 통전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을지라도 굳이 배격할 필요는 없
다. 어차피 o[loj도 통전적이란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단어이기에, 전반적으로 ‘통전 적’이란 뜻을 가진 단어가 헬라어에 없기 때문에 te,leioj와 pa/j와 o[loj를 한꺼번에 아울러서 통 전적 의미를 도출해 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앞에서 언급한 다렐 구더는 형용사 o[loj의 명사 형으로 중성 전치사를 붙인 to.  o[lon을 “온전성, 통전성, 혹은 복음의 역동적인 중심성”5)을
뜻하는 단어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는 신약성서에서 ‘보편적’이란 의미 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6) o[lon도 여전히 통전적이란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상의 논의에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통전적이란 의미의 단어가 헬라어에 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은 근본적인 입장에서 성서 언어적으로 신약성 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물론 본 연구는 통전적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성경에 없다는 결론 을 내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종성은 그의 통전적 신학을 성서신학의 토대위에 세우지 못했다 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통전적이라는 단어가 성서에 없다고 해서 그 신학적 개념도 성경에 없다는 것이 타당한 논증방법인지 재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은 그 자신도 성서신학의 토대 위에 세우지를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그가 생존해 있을 동안에 그의 제자들에게서부터 새로운 신학적 조명을 받게 되었다.
김이태는 처음으로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란 명칭보다는 ‘중심에 서는 신학’이란 개 념으로 그 특징을 설명하였다.7) 맹용길은 통전신학은 ‘통합신학’이라고 하였다.8) 김명용은 통 전적 신학을 성서적이고 교회 전통적이고 복음적인 신학을 견지하는 신학이라고 규명하였다.9) 현요한은 통전적 신학을 분석적 사고와 통전적 사고의 결과로 이해하여 혼합신학이 아니라 종 합의 과정 속에 있는 ‘창의적인 신학’이라고 평가하였다.10) 윤철호는 통전적 신학이 근대 이후 혹은 탈근대적인 상황 속에서 다양한 해석학적 방법론을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통합하는 신학 이라고 간주하였다.11) 윤철호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기독론을 예로 들면서 귀납적 방법과 연

4) 참고, Darrell L. Guder, “통전적 선교신학을 향하여: 세계, 공동체, 이웃,” 『통전적 신학의 모색: 제
3,4회 춘계신학강좌 I』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12), 40-41쪽.
5) Darrell L. Guder, “통전적 선교신학을 향하여: 세계, 공동체, 이웃,” 41쪽
6) Darrell L. Guder, “통전적 선교신학을 향하여: 세계, 공동체, 이웃,” 43쪽.
7) 김이태, 『중심에 서는 신학 : 김이태의 신학세계』, 고 김이태 교수 저작 출판위원회 편(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4).
8) 맹용길, “통합신학-개요”, 『교회와 신학』 제18집(1986).
9) 김명용, “통전적 신학이란 무엇인가?”, 『통전적 신학』, 이종성 외 3인(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4).
10) 현요한, “하나님의 평화로운 생명: 통전적 신학 형성을 위한 하나의 제안”, 『통전적 신학』, 269, 309 쪽.
 
역적 방법을 통시적 치원에서 해석학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면서 통전적 신학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성 안에서 통합되는 신학이라고 규정한다.12) 이와 같 이 다양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 지니고 있는 모호성을 분명 히 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결국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은 그의 제자 세대의 조직신학자들마다 처음부터 다른 접 근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런 특징 때문에 다양한 신학의 분야들과 협력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이종성은 조직신학자이지만, 그의 통전적 신학은 신학의 어느 한 분야 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가 남긴 말을 주목해보자.

이제부터의 신학은 인간의 논리구조에 구애받지 않고 무제한적이고 무제약적인 넓이 와 높이와 깊이를 가지는 신학을 강구해야 한다. 즉 통전적인 신학을 강구해야 한 다.13)

이와 같은 표현은 이종성의 통전적인 신학이 다양한 신학의 분야들과 협력을 하면서 각각의 주제들을 포괄하는 신학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럼 그가 통전적 신학의 입장에서 제안한 신학들을 다음과 같이 성서 신학적 입장에서 평가하고자 한다.

III.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에 대한 평가

1. 성서이해

이종성은 복음적인 성서이해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신학은 ‘성서적 복음주의 신 학’이다. 1979년 11월 16일에 발표된 글에 의하면, 이런 신학적 입장은 한편으로 박형룡처럼 신학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르쳐주시는 거룩한 학문이라는 주장을 배격하고, 다른 한편으 로 칼빈처럼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신자들의 신념과 이해를 체계화한 것이라는 개혁교회의 신
학적 모토인 theologia semper reformanda를 받아들이는 것이다.14)
이종성이 말하는 ‘성서적’이란 의미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작품이고, 성서 밖에서는 구원에 관한 바르고 정확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신앙생활과 구 원의 도리에 관한 정확한 표준이라는 뜻이다.15) 여기서 그는 ‘성서가 무오하다’는 의미를 기술 하지 않는다. 이미 당시에 칼 바르트(Karl Barth)가 성서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적 증언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오류가 있다는 주장 으로 인해서 한국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명용은 1934년 5월 31일에 발표된 독일의 바르멘 신학선언을 거론하면서 성서가 오류가 있음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논증한다.16) 성서 안에 모순과 혼란과 오류가 있다는 이런 주장 으로 인해서 한국에서 소위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은 칼 바르트를

11) 윤철호, “통전적 기독론에 대한 해석학적 구성”, 『통전적 신학』, 167-175쪽.
12) 윤철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3), 54-56쪽.
13)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 150쪽.
14) 이종성,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25권 소논문-종교개혁에서 현대신학까 지』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378쪽.
15) 이종성,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 379-380쪽.
16) 김명용, 『칼 바르트의 신학』 (서울: 이레서원, 2007), 97, 100, 110-111, 113, 323-325쪽.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배격하기도 하였다.17)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김명용은 정통 주의가 지향하던 기계적 영감론을 버리고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말이 아니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18)고 간주한다. 그러면 이종성과 김명용의 성서관에 결정적인 영향 을 미친 성서관과 관련해서 바르트가 1918년에 초판을 발행한 로마서 강해 서문에 다음과 같 은 내용이 나온다.

성서 연구에 대한 역사비평적 방법은 그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결코 피상적 인 것이 될 수 없는 지식을 제공해 주는데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내가 역사비평방법 과 신성한 영감론 중에서 택해야 할 궁지에 몰린다(driven)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채택할 것이다. 영감론은 보다 넓고, 보다 길고, 보다 중요한 의 (justification) 사상을 가지고 있다.19)

이런 발언을 보면 바르트가 역사비평적 방법을 거부하고 영감론만 중시한 듯이 보이지만, 사 실은 그렇지 않다. 로마서는 역사비평 방법론을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복음서와는 달리 영감론에 근거하여 충실한 교리와 실천적 내용으로 넘쳐있는 서신이다. 바르트가 한 위의 말 은 로마서에 역사비평방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영감론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 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러한 바르트의 성서관이 이종성의 성서관이 된 것이다.
이종성은 복음주의에 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의 구주로 믿는 기독론적 신앙과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은총주의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20) 그는 위 에서 확인한 성서관에 입각하여 성서적 복음주의를 견지하면서 성서적 복음주의를 “성서를 통 해서 선포된 복음을 바르게, 정확하게, 분명하게 이해해서 그 시대 시대에 전달해주는 것이 라”21)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를 통하여 그는 1986년 2월 5일에 동경신학대학에서 행한 강 연에서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에 관해서 “성서를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믿는 근본적 입장에서 출발하여 성서를 통해서 말씀해 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적으로 또는 실존적으로
포착하여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 의식화하는 운동이다”22)라는 입장을 가진다. 그는 이러한 입장을 통해서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이 성서를 성령의 사역에 의한 복음적 이해에까지 승화하여 그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성도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창조되는 신학을 영위하게 되는 단계까지 도달하는 것을 기대한다. 결국 그의 이러한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신념은 칼빈의 신학사상에서 받은 영향이 크다. 그는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성격을 가지지 않은 근본주의 신학은 율법주의에 빠 지거나 자아 만족적 주관주의로 타락하게 될 것이며, 반대로 교회를 위하지 않는 자유주의 신 학은 탕자와 같은 신학이 된다고 한다.23) 그래서 평생 동안 칼빈의 가르침대로 경건과 학문을

17) 김명용, 『칼 바르트의 신학』 , 115, 118-119쪽.
18) 김명용, 『칼 바르트의 신학』 , 324쪽.
19) K. Barth, Der Romerbrief, tr. by Edwyn C. Hoskyne, The Epistle to the Roman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5), 1.
20) 이종성,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 381쪽.
21) 이종성,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 383쪽.
22) 이종성, “내부에서 본 한국교회”,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21권 소논문-한국교회의 현실과 이상』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44-245쪽.
23) 이종성, “내부에서 본 한국교회”,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37권 수상집-자갈밭을 기경하라』 (서 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47쪽.
 
모토로 성서적 복음주의 전통을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뿌리를 내리도록 하였다.
이종성은 조직신학이 성서를 소재로 하고 성서의 내용과 교훈을 표준으로 한다고 말 하면서 항상 신구약성서를 중요시하며 성서신학에 의존한다.24) 그래서 성서 언어를 알아야 하 고, 성서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특정 상황에서 해석되고 이해된 성서를 그대로 받아 들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놓인 시간과 장소와 문화적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이해되어 야한다.”25)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성서관이 다소 상대적인 관점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인 성서의 무오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성서가 ‘신앙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 오류가 없다’26)는 의미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다음의 항목에서 칼빈이 추구한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을 이종성의 통전신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2. 삼위일체론

과거에 신학이 기독론 중심으로 서구적 기성 기독교를 위한 전유물로 간주되고, 삼위일체적인 이해가 부족하며, 신학을 말하면서 인간의 신학을 더 강조하고, 신학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힘 을 서구 신학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27) 그러므로 오늘날 신학에 대한 기독론적 차원과 성령론적 이해를 가질 것이 촉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선교라 는 신학적 개념도 기독론적 관점과 성령론적 차원을 통해서 보완하게 될 때, 우리는 삼위일체 적이며 통전적인 하나님의 선교28)라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삼위일체적인 통전적 신학은 이종성에게서 출발한다. 그는 메모에 성서적 복음주의에 입각한 삼위일체적 통전적 신 학을 구상한 내용이 있다.29) 그럼 그의 통전적 신학이 성서적인지 삼위일체론에서 살펴보자.
이종성은 칼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성서가 삼위일체론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는 것”과 “성서가 그 교리의 가능성을 열러주는 것”30)도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곧 이종성에 의하면, 성서가 ‘한 주(Yahweh, Kyrios), 한 분의 특이한 의지자(意志者- Willer), 그리고 사 역자(Doer)’를 한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을 증거한다.31) 전통적으로 아타나시우스와 아우구스

24) 이종성, “제2권 조직신학개론”,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16권 단행본집 조직신학개론 외』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199쪽.
25) 이종성, “제2권 조직신학개론”, 203쪽.
26) 이종성, “제2권 조직신학개론”, 223-224쪽.
27) 김영동, 『교회를 살리는 신학』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3), 131-165쪽을 보라. 특히 하
나님의 선교에 관해서는 위의 책, 145-149, 163쪽을 보라.
28) ‘통전적인 선교신학’에 관해서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된 『선교와 신학』 제7집(2001년) 의 특집논문들 중에서 손윤탁의 “성경적 선교신학과 통적적 선교관”(15-52쪽)과 안승오의 “통전적 선교 를 한국교회 예배의 역할 및 방향 연구”(173-208쪽)와 소기천의 "생명의 선교를 향한 예수의 시험이야기 새로 읽기: 통전 신학을 제안하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한국기독교학회 편, 제30권(2003): 183-209쪽 을 참고하라.
29)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 마지막 쪽 화보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Other God
Other Christ 통전적 신학은 이 문제를 적당하게 이해하고 평가하고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과의 관계를 밝힐 것
Other Holy Spirit

30) 이종성, “제7부 현대신학과 삼위일체론”,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7권 조직신학대계-삼위일체론
(2) 』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159쪽.
31) 이종성, “제7부 현대신학과 삼위일체론”, 165쪽.
 
티누스의 삼위일체 교리가 오늘날 삼위일체론의 표준이 된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32) 특히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이 2세기에 영지주의 이단으로 낙인찍혔던 플로티누스 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았지만 점차적으로 플로티누스의 신관을 극복하였다는 사실을 중시하 며,33)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이 “플로티누스와 같은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라, 실경험을 토대로 성서에서 가르치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신비적인 존재 양식을 완전치는 못하나 인 간 이성의 힘을 다해서 설명한, 하나의 위대한 노력의 결정체”34)로 간주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가 essentia와 substantia이
다.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두 용어가 테르툴리아누스 때부터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원 래부터 성서적 용어가 아니라 헬라철학에서 줄기차게 사용되어 왔던 ou=sia와 u`po,stasij를 라틴어로 번역한 단어들이다. 여기서 동방교회의 헬라어 삼위일체(mia, ou=sia, trei/j u`po,stasij)란 용어가 나왔다. u`po,stasij는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해 라틴어 persona로 번역되 어 서방교회의 라틴어 삼위일체(Una substantia, tres personae)란 용어가 되었다.35) 그래서
삼위일체론을 논할 때 조직신학자들 사이에서 두 용어를 본체, 실체, 본질, 신성, 신적 실체, 본성 등 다양한 용어가 혼동되어 사용된다.36) 그래서 삼위일체론은 여전히 조직신학자들에 의 해 명확하게 규명이 안 되어 본질적으로 성서적인가 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종성도 이 같은 사실을 중시하여 “그리스도교는 시작될 때부터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했다”37)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성서가 삼위일체론을 처 음부터 표적과 상징을 사용하여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 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란 구절과 같이 이러한 것을 신비적인 내용으로 설명하 였다고 한다.38)
이종성은 삼위일체 신관이 구약성서의 유일신관39)과 배치되지만, 신약성서가 하나님 의 아들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유일신관을 발견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조화를 이룬 다고 간주한다.40) 그리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구 원을 이루었다고 설명한다(사 11:1-2).41) 그는 삼위가 각각 고유의 페르조나를 유지하면서 아 들은 아버지의 뜻과 목적을 같이하며, 성령은 때로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이름 아래, 때로는 그리스도의 영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광범위하게 동참하지만, 이러한 발전사적 방법에서 ‘삼위’가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일체’에 대한 강조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42)
이종성은 통일적 방법으로 삼위일체론을 논하는데, 이것을 그가 통전적 방법이라고

32) 이종성, “제3부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 논쟁과 결과”,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6권 조직신학대계
-삼위일체론(1)』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74-275쪽.
33) 이종성, “제3부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 논쟁과 결과”, 267; 이종성, “삼위일체론(2)”,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7권 조직신학대계-삼위일체론(2)』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345쪽.
34) 이종성, “삼위일체론(2)”, 352쪽.
35) 이종성, “삼위일체론(2)”, 325-327쪽; 이종성, “제3부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 논쟁과 결과”, 238쪽; 이종성, “제4부 본체와 위격의 개념”,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6권 조직신학대계-삼위일체론(1)』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96쪽.
36) 이종성, “제7부 현대신학과 삼위일체론”, 166쪽.
37)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6권 조직신학대계-삼위일체론(1)』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159쪽.
38)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64-165쪽.
39) 이종성, “제3부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 논쟁과 결과”, 189-193쪽.
40)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67-168쪽.
41)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69쪽.
42)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70-171쪽.
 
명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그는 제2위인 아들이신 로고스를 지혜자로 간주하 여 신구약 전반에 연결을 짓는다(잠 1:20-33; 2:1-22; 3:11-20; 7:4; 8:1-31; 사 8: 18;
63:9-11; 말 3:1; 마 3:3; 눅 1:17, 76; 3:4; 7:27; 요 1:1; 요 5:22; 17:5; 롬 9:5; 히 2:13;
요일 1:2).43) 이러한 구절을 도태로 그는 하나님이 로고스로 나타났고 신적 지혜와 동일시된 다고 결론을 짓는다(시 33:6; 솔로몬의 지혜서 1:6; 9:1-2, 7; 잠언 3:19; 8:22이하).44) 특히 아들이 하나님과 태초에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것(요 1:1-3; 히 1:1-2)을 중시하여, 그는 바울 서신에서도 삼위일체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롬 11:36; 엡
1:10; 빌 2:6; 골 1:16).45)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이종성은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교리를 만들기에 충분한 자료가 성서에 있다’46)고 주장하면서 통전적인 시각으로 삼위일체론 을 집대성하였다. 이로써 그는 “삼위일체론을 부인한다면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인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신성이 부인되면 그리스도의 구속주성이 부인될 것”47)이라고 말하면서 삼위일체론 의 불가피성을 논증한다. 그는 ‘우주와 종교와 신앙’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하면서 삼위 일체론을 통전적 시각으로 간주하여 삼위일체론이야말로 “가장 체험적이고, 가장 실천적이고, 가장 이론적인 그리스도교 교리”48)라고 평가하지만, 여전히 그가 논하는 삼위일체론이 충분한 성서적 논의를 거친 논리라기보다는 삼위일체론을 논한 학자들의 논의가 지닌 장단점을 평가 하고 그것에다 그 스스로 통전적 삼위일체 신학이라고 이름을 붙인 측면이 다소 강하다. 그러 면 그가 ‘신학의 중심’을 그리스도에게 두면서도49) 종교와 신앙을 우주의 범위로 넓히려는 시 도를 다음과 같이 신학과 타학문의 항목에서 논해보고자 한다.

3. 신학과 타학문

1) 과학과 신학과 문학

이종성은 과학과 신학의 연관성 속에서 통전적 신학을 논하고 싶어서 이미 서론에 언급한바 있는 우주계를 태양계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성운계까지 확대해서 이해한다. 그리고 성운계도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전제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하나님은 우주적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태양계에 존재하는 존재자만을 상대하고 있 었으며, 태양계 너머에 있는 별의 세계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 때까지의 신학은 자아당착에 빠진 신학이 되고 말았다.50)

주제선택: 인류문명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 즉 자연과 문화와 종교와 역사에 관한 모

43)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73쪽.
44) 이종성, “제3부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 논쟁과 결과”, 233-234쪽.
45) 이종성, “제6부 삼위일체론의 논라적 근거”,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7권 조직신학대계-삼위일체 론(2)』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56쪽.
46)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81쪽.
47)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82쪽.
48) 이종성, “제2부 성서의 가르침”, 184쪽.
49)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15권 이야기로 푸는 조직신학』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38-40쪽.
50)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 150쪽.
 
든 문제. 종교관계: 범종교적 관점에서 인류구원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 태양계의 문 제만이 아니라 성운계까지도 검토한다. 범신론적 견지에서가 아니라 통전적 견지에서 야훼의 절대성을 믿는 믿음에서 모든 문제의 해답을 발견하려고 한다.51)

그는 ‘통전적 견지에서’ 이 같은 논의를 제안하고 있지만, 사실상 신학이 다른 어떤 학문보다 도 과학과 격심한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52) 그러나 그는 ‘신학적인 깊이가 없이는 참다운 과학도 없다’53)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과 신학을 통전적 인 견지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이종성에 의하면, 한편으로 과학은 자연계의 현상을 분석하고 실증하는 방법을 택하 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학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지니는 의의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 한 다.54) 또한 그는 과학이 외적인 면에서 사람을 돕지만, 신학은 내적인 면에서 돕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55) 그래서 그는 서로가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고 다루는 목적의 영역이 다르지만, 교회가 모르는 과학 지식을 신학이 존중해주고, 또 과학이 한계점에 도달할 때 신학이 그 너 머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56)
이점에서 이종성은 인문과학으로 간주되는 신학과 문학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 곧 문학이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실존 상태를 지적해 주는데 반하여, 신학은 제기된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본다.57) 이러한 주제는 자연스럽게 교회와 사회란 주제로 더 넓혀진다. 그래서 그는 교회가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사회를 떠나서 별개의 집단생활을 해서는 안 되는 동시에, 사회는 교회 존재의 의의를 잘 이해하고 서로 협조하면 양자를 위해서 서로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58) 이러한 이해는 다음과 같이 간학문적이며 간종교적인 영역에까지 그의 통전적 신학의 지평을 넓혀주는 효과를 낳는다.

2) 간학문적이며 간종교적인 수용

이종성은 간학문적이고 간종교적인 통전적 신학을 제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발 언을 그의 신학이 얼마나 광대한지를 보여준다.

서울에 있는 학술원은 모든 종교와 철학과 문학과 과학과 의학의 견해를 충분히 이 해하고 또한 미구에 학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우주학까지도 논구의 대상으로 하는 통전적 신학의 진원지가 되고 사령탑이 되고 광원(光源)이 되기를 지향해야 한다.59)

그는 ‘통전적 신학의 진원지와 사령탑’이 되도록 한국기독교학술원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에 의하면, 신학은 양면적인 면 곧 초월적이며 현실적이고, 이상적이며 구체적이고, 신적이며 인 간적인 학문이다. 이러한 신학에 대한 이해는 그가 신학을 포괄적이고 종합적이고 다차원적인

51)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 147-148쪽
52)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47쪽.
53)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49쪽.
54)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47쪽.
55)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48쪽.
56)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48-49쪽.
57)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50-52쪽.
58) 이종성, “제1권 평신도와 신학”, 144-147쪽.
59)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 150쪽.
 
학문으로 간주하게 하였다.60) 그래서 그는 한국의 제종교가 매우 폐쇄적이고 미신적이고 비과 학적인 것과는 달리, 기독교는 매우 개방적이고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것이 그 특징이라고 평 가한다.61) 이점에서 그는 과거 한국 기독교가 서양 문명과 호흡을 같이하며 보수적이며 봉건 적인 한국 사회에 신학문을 소개해주는 동시에 문화적으로 많은 개혁을 주도해왔다고 평가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도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고 전제하면서62) 한국의 기독교가 “샤머니즘과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한국 특유의 종교로 발전되었다.”63) 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특징이 한국 기독교가 지닌 혼합주의의 모습이 아니라, 여 러 종교의 영향으로 한국인의 정신생활이 깊이와 넓이와 길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64) 그 래서 한국인은 모든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한다.
이상에서처럼 이종성이 과학과 신학과 문학 그리고 간학문적이며 간종교적인 수용을 언급한 것은 이미 신구약성서에도 그처럼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그것을 종교적으로 수용 한 구절들도 있다는 사실과 일치한다.65) 그러면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어떻게 마지막 때에 인 류가 반신적이거나 파멸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도울 수 있는지 다음의 항목에서 논하고자 한다.

4. 종말론

이종성은 마지막 때를 맞이하여 신학이 파멸적인 길을 걸어가지 않고 문제를 복음적으로 해결 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추진할 사업은 신학문제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기독교가 세계문명과 역사 에 대하여 공헌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창출하고, 그 문제를 기독교가 어떻게 취급하고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발견하여, 인류역사와 문명이 반신적이거나 파멸의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신학적으로 그리고 복음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모색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66)

그는 창조로부터 재림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한복판에 그리스도 사건을 중심으로 한 나선형적 역사관을 통전적 역사관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다.67) 그는 다양한 역사관의 긍정적 요소를 모두 나선형적 역사관에 흡수하여 통전적 역사관을 제안한 것이다. 곧 윤회설을 전진하는 바 퀴로 대치하고, 결정론과 운명론의 역사주관자를 인격적 주관자로 해방시키고, 이원론의 대립

60) 이종성, “제2부 현대지성인과 기독교 신앙”,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26권 소논문집-신학으로 본 문화와 철학』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132쪽.
61) 이종성, “제4부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의 절대성”,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26권 소논문집-신학 으로 본 문화와 철학』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390쪽.
62) 이종성, “제1부 나의 성장과 신학 형성”,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38권 수상집- 산을 보고 바다 를 보고』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47쪽.
63) 이종성, “제2부 현대지성인과 기독교 신앙”, 171쪽.
64) 이종성, “제2부 현대지성인과 기독교 신앙”, 172쪽.
65) 바울은 사도행전 17장의 아레오바고 설교에서 당대의 과학과 문학을 논하고 범종교적인 내용도 다 소 인정한다. 참고, 소기천의 “아레오바고 설교와 보편주의”, 『하나님의 사랑과 세계선교』 (서울: 장 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194-257쪽.
66) 이종성, 『미완성의 완성』 , 146쪽.
67) 이종성, “제7부 역사관의 일곱 가지 유형”,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14권 조직신학대계- 종말론
(2) 』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555쪽.
 
적 투쟁 관계를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 하에 있는 두 가지 현상으로 환치시키고, 직선적 역사 관을 나선적 역사관으로 변경시키고, 중심적 과거 지향적 역사관을 전진적 미래지향적 역사관 으로 재해석하고, 중복된 역사관을 단일적 역사관으로 수정한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 결과 가 그의 유명한 나선형적 역사관인데, 이러한 나선형적 역사관은 통전적 역사관을 요청한다고 주장한다.68)
이러한 나선형적 역사관으로 본 이종성의 통전적 역사관에서 역사는 하나이며, 역사 의 유일무이한 주인은 야훼이시고, 역사의 관리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역사적 최종 목적 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구속의 역사를 보여주는 성서는 희망의 역사관으로 가득 차 있다.69) 그러므로 그는 역사가 있다면 하나밖에 없으며, 그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 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뿐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이런 연유로 인해서 아무리 역사가 혼란스럽고 타락되고 악한 역사가 나타날 지라도, 역사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계시지 않다. 역사의 마지막에 때가 차서 그리스도께서 영광가운데 재림하시면 그 때가 곧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성취되는 때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때요, 모든 성도들이 영광 가운데로(communio gloriae) 영접받는 때이다.70)
이러한 이종성의 종말론과 역사이해는 신구약성서가 보여주는 다양한 역사를 단순하 게 통합하려는 관점이 아니라 나선형적으로 관통하는 역사를 성서가 증언하는 대로 하나님께 서 주관하신다는 통전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상에서 언급된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에 관해서 다음의 항목을 달리하여 평 가를 해보고, 그것이 김명용의 온 신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IV.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과 김명용의 온 신학과의 관계

이종성은 이미 위에서 인용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통전적 신학을 체계화하지는 못하였 지만, 자신의 조직신학대계를 ‘통전적 방법’이라고 명명하면서 연역적 방법, 귀납적 방법, 계 시적 방법, 상관적 방법 등을 생소한 낱말인 통전적 신학 방법론에 연결시키기 위하여 연역법 과 귀납법의 통합, 계시의 단일성과 다양성, 과정적 상관관계 등을 추론하여 통전적 방법이 지니고 있는 특징들을 다음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통전적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였다. 곧 하 나님, 인간, 세계와 우주, 신학, 그리고 역사를 통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통전적 신학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모든 존재의 차원과 공간에 미치게 된다.71)
이러한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 지닌 특수성은 제임스 로더가 말한 “논리적 암시나 인과론적 결정론에 의해 연역되거나 도출될 수 없는 두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적 관계 성”72)을 해명하는 신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은 통합시키는 행위와 과정, 곧 두 차원 혹은 두 축의 양극적 구조를 하나의 유기적 체제가 되게 함으로써

68) 이종성, “제7부 역사관의 일곱 가지 유형”, 555-556쪽.
69) 이종성, “제7부 역사관의 일곱 가지 유형”, 556-575쪽.
70) 이종성, “제7부 역사관의 일곱 가지 유형”, 574쪽.
71) 이종성, “제1부 서론”,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1권 조직신학대계- 신학서론』 (서울: 한국기독교 학술원, 2001), 65-87쪽.
72) James E. Loder, The Knight’s Move: The Relational Logic of the Spirit in Theology and Science, 이규민 역, 『성령의 관계적 논리와 기독교교육 인식론: 신학과 과학의 대화』 (서울: 대한기 독교서회, 2009), 474-475.
 
양극의 관계적 연합을 이루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상반되는 개 념이 일종의 역동적-비대칭적 관계성의 형태로 긴밀한 상관성을 가지게 되므로, 각각의 특성 과 차이가 유지되면서도 하나의 비대칭적 통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표적인 예 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73) 뫼비우스의 띠는 띠의 겉과 속이 180도 회 전되어 만나고 있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면과 하나의 선만을 가진 독특한 형태의 띠로 변형되 고 있는 것처럼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은 상호적인 통전성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그가 삼위일 체론을 관계적 통전성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 이런 차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종성은 이론적으로는 관계적 통전성을 추구하였지만, 실제적으로 한국의 다 양한 신학적 입장들을 끈질긴 대화로 조율하거나 통합하여 그가 주창한 통전적 신학을 완성하 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지금까지 각 교단의 조직신학자들이 그러하였듯이 자신이 속한 장 로교 통합교단의 신학적 입장에 서서 자신과 다른 신학들을 포용하여 관계적 연합을 이루는데 실패하였다.
이 점에서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 미흡하기 때문에74) 그의 제자인 김명용은 온 신 학으로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여기서 잠시 통전적 신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서 김명용의 온 신학과의 연관성을 지어보자.
김명용은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 신학적 용어로 등장한 것이 1984년에 출판된 『그 리스도론』 에서 통전적 기독론을 주장하면서부터라고 지적한다.75) 윤철호는 통전적 신학이 절 충주의나 혼합주의가 아니라 온전성(wholeness)을 지향하는 신학이라고 평가한다.76) 이러한 평가는 다음과 같이 김명용의 온 신학을 가능하게 한다.
김명용은 온 신학을 2014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직원 신년예배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바 있다. 온 신학은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한 용어이다. 김명용에 의 하면, 온 신학은 130년간 한국 신학의 결론이자 정점이다. 1985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서 발표된 장로회신학대학교의 대학이념과 신학교육성명서에서도 나타났듯이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 통전적 신학을 한마디로 보여준다. 특히 2002년 신학교 육성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계시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야말로 인간과 사회와 세상 을 살리는 온전한 복음이라고 천명한다.77) 일각에서 ‘스승인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을 갈아엎 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온 신학으로 표현한 것은 단지 통전이라는 의미에 영어로 integrity의 의미 곧 통합한다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명용은 그의 온 신학이 단지 통합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온전한 신학을 형성하는 것, 즉 편협하지 않고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온전하게 표현하는 신학이라고 주장한다.78)

73) James E. Loder, The Knight’s Move: The Relational Logic of the Spirit in Theology and Science, 477, 481.
74) 윤철호, “통전적 신학 방법론-춘계 이종성의 신학방법론을 중심으로”, 『장신논단』 제47권 제1호 (2015): 128쪽. 문병구는 본 연구를 논평하면서 이정성이 생각하는 ‘통전적 신학의 구성원리(Prinzip)’ 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참고, 문병구, “춘계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 신학에 대한 성서신학적 평 가,” 『한국개혁신학회 제38차 학술심포지엄』 자료집(2015년 5월 5일 장로회신학대학교), 118쪽.
75) 김영용, 『Ohn Theology: Holistic Theology 온 신학』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14), 37,
121. 그는 통전적 신학을 영어로 TongJun Theology라고 표기하였는데, 이미 우리말로 통전 신학이 라 표기되고 Tong Chun이라고 영어로 표기된 것은 2003년에 한국기독교 공동학회에서 발표된 소기 천의 "생명의 선교를 향한 예수의 시험이야기 새로 읽기: 통전 신학을 제안하며", 『한국기독교신학논 총』, 한국기독교학회 편, 제30권(2003): 183-209쪽에 있다.
76) 윤철호, “통전적 신학 방법론-춘계 이종성의 신학방법론을 중심으로”, 128.
77) 장로회신학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교육성명을 위한 기초문서”, 『교회와 신학』 제48호(2002):
12-19쪽.
 
김명용은 한국교회의 일각에서 교조적으로 이어온 파편 신학의 바탕위에서 얼마나 편 협한 신학이 많았는지를 지적한다. 더구나 2013년 10월에 부산에서 모였던 세계교회협의회 (WCC)를 같은 장로교 교단에서 조차 완전히 이단시하는 그릇된 가르침을 많이 보았다고 전제 한 후에, 그는 온 신학을 더 잘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달을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반달은 아직 온달이 되지못한 달이다. 반달이 반쪽짜리 달이라면 온달은 온전하
고 충만한 달이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o[loj는 ‘온전한’이란 뜻이지만,79) 요한계시록 6장 12
절은 개역개정판에서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런 번역은 “온달[보름달
-필자의 주]이 피같이 되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온달도 결코 긍정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특 히 요한복음 19장 23절은 diV o[lou는 전치사와 함께 ‘통으로’ 혹은 ‘하나로’란 의미이다. 또한 사도행전 21장 31절의 o[lh sugcu,nnetai VIerousalh,m란 표현은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고 번역
되어 있으나 사실은 ‘예루살렘이 아주 요란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 4:23의 evn o[lh|
th/| Galilai,a|란 표현과 같이 신약성서에서 o[loj는 ‘온’이라고 개역개정판이 번역을 하였지만 ‘모든’이라는 의미이므로, 마태복음 4장이 사용한 이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온 신학에 연결 되지 않는다.
아무튼 김영용에 의하면, 반쪽짜리 달과 같은 신학은 편협한 신학이기 때문에 국민에 게서 지탄을 받을 정도로 교회 간에 처참한 갈등과 싸움을 일으킨다. 이미 한국의 장로교가 통합 측을 제외하고 200여개의 장로교단으로 분열한 것이 이 같은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래 서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고 교회를 하나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에 의하면 거의 다 수가 온 신학적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통전적 신학을 계승한 온 신학 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지니고 있는 궁극성에 기초하고 성령에 의해 펼쳐지고 세계 도처 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놀라운 해방과 생명의 역사들에 대해 열려있는 신학이다. 그래서 그는
온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기독론적 차원과 하나님 나라 구현이라는 성령론적 차원이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적으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신학이다. 온 신학은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온전한 복음에 기초를 두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성령론적 신
학이다.”80)라고 선언한다. 이로써 그는 온 신학이 온전함을 추구하는 신학으로 단편적이고 파 편화된 신학을 거부하는 신학이라고 간주한다.
김명용은 자신의 온 신학을 신학적 토대 위에 세우기 위해 ‘박형룡의 근본주의 신학, 조용기의 삼중축복의 신학, 민중 신학’81) 등을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신학이라고 비판한다. 물 론 그가 한국의 다른 교단들의 신학을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신학’이라고 한 지적도 다소 한 쪽에 치우친 감이 있지만,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온 신학이 스승의 하나 님의 나라를 위한 신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제자인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려는 것 에 더 깊은 강조점을 두려는 신학이라고 강조한다.82)
김명용에 의하면, 온 신학은 폐쇄적이지 않고 열려있는 신학으로 핵심적인 통전적 신

78) 김영용, 『Ohn Theology: Holistic Theology 온 신학』 , 13-16, 99-102쪽.
79) 이미 각주 5번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다른 의미를 제외하고 o[loj는 마 14:35, 16:26; 막 6:55; 눅
5:5, 13:21; 요 4:53, 7:23; 행 11:26; 롬 1:8, 8:36; 딛 1:11; 요일 5:19 등에 ‘온전한’이란 의미로
쓰인다.
80) 김영용, Ohn Theology: Holistic Theology, 『온 신학』 , 18, 104쪽.
81) 김명용의 온 신학과는 달리 통전적 신학을 처음으로 주창한 이종성은 민중 신학이 짓눌리고 비참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최근에 상호연관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 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참고, 이종성, “The Wholistic View of Happiness in the Context of Korean Culture”, 346쪽.
82) 김영용, Ohn Theology: Holistic Theology, 『온 신학』 , 19-40, 105-124쪽.
 
학정신에 일치하면서 비록 다른 점이 있어도 포용하고 협력해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온 신학은 통합만 하는 신학이 아니고 바른 신학 의 기준위에서 잘못된 것은 고치고 중요한 것은 더욱 강조하고 새로운 정신을 첨가하면서 완 성해가는 신학이다. 그러기에 온 신학은 높은 학문적 신학을 추구하면서 성령의 활동을 바르 게 파악할 뿐 아니라 이렇게 파악된 통전적 관점으로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역사까지도 결정적 으로 새롭게 만든다고 한다. 이 점에서 온 신학은 대화적 신학이다. 온 신학은 다양한 신학과 의 대화만이 아니라 타종교와 사상, 더 나아가 자연과학과 세계역사와도 대화를 여는 학문이 다. 다시 말해서 온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기 위한 성령의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신학이 온 신학이다.83)
김명용에 의하면, 온 신학은 삼위일체 신학의 터전위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오직 예수 만이 우리의 구주임을 믿는 온전한 복음을 강조하는 신학이며, 오직 교회에 의해서만 전파되 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통전적 교회론을 지닌 신학이며, 온 세상과 온 우주를 구원하고자 하는 성령의 뜻에 복종하는 생명신학이며, 끊임없이 개혁하는 개혁신학이 다.84) 이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오기에 그리스도 한분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를 모르며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우 리의 전도대상들이다. 그들과 담을 쌓고 대화도 거부하면 교회는 게토 화 된다.
김명용의 온 신학은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을 계승하면서도 통전적 신학이 ‘여러 가지 의 패러다임을 통합하는 신학’이라는 반면에,85) 온 신학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또한 편협하고 편파적인 신학의 풍토에서 온전한 신학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종성은 통전적 ‘그리스도론’에서 기독론을 한국교회의 토양에 토착화하고 현실화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는데,86) 과연 김명용의 온 신학이 향후에 얼마나 신학적으로 확고한 모양을 갖추면서도 한국적 상황에 토착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전히 온 신학도 아직까지는 서구적인 신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이미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이 대화와 통합의 한계를 드러낸 것과 같이 한국의 다른 교단에서 뿌리 를 내리고 있는 신학적 특징들을 포용하는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이 발견된다.

V. 결론

한국에서 통전적 신학을 처음으로 주창한 학자가 이종성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자신의 통 전적 신학을 체계화하지 못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비록 성서에 ‘통전적’이란 단어 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통전적 신학 을 시작하였다고 자부하면서 그 유산을 후세에 남겨주었다. 이로써 그는 후학들에게 통전적 시각에서 성서를 중심으로 한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을 할 것을 촉구한다.87) 그는 비록 엉뚱하

83) 김영용, Ohn Theology: Holistic Theology, 『온 신학』 , 62-71, 144-152쪽.
84) 김영용,Ohn Theology: Holistic Theology, 『온 신학』 , 79, 158쪽.
85) ‘통전적 신학과 통전적 개혁신학’에 관해서 윤철호, 『현대신학과 현대 개혁신학』 (서울: 장로회신학
대학교출판부, 2003)의 제9장(245-271쪽)을 보라.
86) 이종성, “제4부 현대신학과 그리스도론”,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4권 조직신학대계- 그리스도 론』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574-575쪽; 이종성, “제3부 기독교 토착화론”, 『춘계 이종성 저 작 전집: 제27권 윤리와 토착화론』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399-442쪽. 물론 이종성은 우리 가 할 일이 복음을 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릇되게 채색되고 토착화된 복음을 언제든지 비토착 화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418쪽).
87) 이종성, “제1부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22권 소논문집-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신학』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179-180, 279쪽. 김성규는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
 
게도 한동안 ‘나그네 신학’88)을 역설하기도 하였지만, 교회의 설교와 생활을 다시 통전적 신학 으로 심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한국교회가 성서의 교훈을 도태로 한 기독교 문화까지 창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89)
이종성에 의하면, 통전적 신학이란 그레코-로만 문명을 계승 한 서구신학 외에 타문 화권(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등)의 종교와 사상, 문화, 세계관, 가치관 등을 복음에 이르는 준비과정 또는 기독교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보고 적대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것들을 성서를 기준으로 해서 기독교 안으로 이끌어 오고자 하는 신학이다. 이 점에서 김명 용의 온 신학은 그 스스로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신학’이라고 비판한 한국의 다른 교단의 신 학적 내용들을 그의 스승이 한 것처럼 비판하고 거부하였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우선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인 다른 교단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통합측 교단 내에서도 그 통전적 신학의 실체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고 여전히 통전적 신학이 되기 위 한 과정 중에 있다는 비판의 소리를 극복하려면, 한국개혁신학회와 같이 범교단의 신학자들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더욱 활발한 신학적 논의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종성의 통전적 신학은 그 스스로 성서적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였지 만, ‘통전적’이란 단어 자체가 성서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았기에 그의 제자 세대의 조 직신학자들이 처음부터 다른 접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통전적 신학은 다 양한 신학의 분야들과 협력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로써 이종성은 조직신학자이지 만, 그의 조직신학대계 40권에 드러난 통전적 신학은 신학의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통전적인 신학은 다양한 신학의 분야들과 협력 을 하면서 각각의 주제들을 포괄하는 신학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Abstract
A Study of the Holistic Theology by Dr. Jong Sung Rhee
Ky-Chun So (Presbyteria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The theology of Dr. Jong Sung Rhee is called to the holistic theology. On the one hand, this article surveys whether the concept of  his holistic theology is Biblical, first of all, or not. He did not success his holistic theology, even though he published 40 greatest volumes of his systematic theology. In spite of its incompleteness, this article presupposes that the holistic theology of Jong Sung Rhee is based on the foundation of the Biblical theology and evaluates his theologies  that  he  enterprised  during  his  whole  life  almost  90  years  old: co-relational studies of various fields, an Biblical understanding, Trinity theory, science and theology and literature, an acceptance of interreligious and interdisciplinary dialogue, and eschatology etc.
As a result of this survey, on the other, this article evaluates whether the

이 ‘근원적으로 방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참고, 김성규, “춘계 이종성 박사의 통전적 신학에 대한 성서신학적 평가,” 『한국개혁신학회 제38차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2015년 5월 5일 장로회신학대학교), 114쪽.
88) 이종성, “제1부 한국교회의 신앙과 신학”, 160-168쪽.
89) 이종성, “제1부 교회안에서”,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 제36권 수상집- 기독교는 살아있다』 (서울: 한국기독교학술원, 2001), 221-223쪽.
 
holistic theology of Jong Sung Rhee is alright, or not, and whether the ohn theology of Myung Yong Kim is based on the Rhee’s holistic theology that ‘united’ various theological aspects, because Kim thinks that his ohn theology further contains the concepts of no one side or more holistic view.
What is the constructive principles of the holistic theology that he thought? He understood other civilizations (even science and religion) as ‘the preliminary process for the Christianity’ or ‘the one toward the Gospel.’ And how the Christian world view can understand the other religious world view through the holistic theology and lead the other different civilizations into the Christian civilization? Those questions are the major tasks that must be solved by the scholars who success the holistic theology of Jong Sung Rhee.

Key Words
Jong Sung Rhee, Holistic Theology, Biblical Evangelism, Myung Yong Kim, Ohn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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