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3

[사자성어] 접화군생(接化群生) - 시니어신문

[사자성어] 접화군생(接化群生) - 시니어신문



[사자성어] 접화군생(接化群生)
이상만 전 성균관도덕부흥운동본부장
승인 2017.08.19




‘외딴 구름’, ‘바다 같은 구름’은 신라 말기 최치원 선생의 호(號)다. 한자로 孤雲(고운)과 海雲(해운)이다. 같은 경주(慶州)가 본관인 조선 말기 최제우 선생의 호는 ‘물 같은 구름’으로 水雲(수운)이다. 선현의 이름이나 호를 함부로 운운(云云)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나 뭔가 공통점이 있음에 나름대로 느낌을 적어 본다.

고운 선생은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서 ‘접화군생(接化群生)’을 말씀하였고, 수운 선생은 동학(東學)운동의 창시자로 ‘접주(接主)’ 제도를 처음 폈다. 두 선현이 시대적인 차이는 있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 운(雲)’자를 같이 쓰고 ‘사귈 접(接)’ 자를 중시하여 시대고(時代苦)를 겪는 백성의 삶을 위해 몸소 가까이 다가가서 실천궁행했다는 점이 똑같다.



접화군생(接化群生), 요즘 인물(人物)과 사귀고 모임에 생기를 불어넣고 삽니까?

종래의 인물 하면 대개 역사적 주요 인물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현재 살고 있는 인간과 사물(事物)을 합해서 말한다. 사물에는 동물과 식물과 광물이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그만큼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다변화하여 폭과 깊이가 다양하여 포괄적인 양상을 띤다. 한 예로 사람과 같이 사는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이 저변 확산되어 이들을 대상으로 한 기업체가 늘어날 정도로 세상사가 변모되었다.

여기에도 경제적 영향이 미쳐 경기가 불황이거나 개인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학대를 하거나 내다 버리는 일이 증가한다. 이에 비하면 그나마 늙은 부모를 모시기 어렵다고 요양원에 맡기는 것은 마지막 양심의 발로이다. 늙은 부모가 건강하고 가진 재산이 있으면 접촉(接觸)을 자주 하지만 반대로 병들고 가난하면 자식들이 서로 접근(接近)을 꺼리는 것이 요즘 일반적인 세태가 되었다.

‘사귈 접(接)’자는 ‘손 수(扌)’변에 ‘처녀여자 첩(妾)’자의 합자로 “처녀여자에게 가까이하여 교제하는 뜻”이 있다. 접(接)자는 원래 이성(異性) 간의 접촉으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담긴 문자이다. 이처럼 접화(接化)라는 말은 사람이 사람을 포함한 만물을 사랑의 감정으로 가까이 하여 이치(理致)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홍익인간이 되어 만백성이 무리 지어 잘 살도록 하는 것이 군생(群生)이다.

예전엔 각 지역에서 사랑의 선각자들이 나와 유교, 불교, 도교가 성행하여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추구하고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여 접화군생으로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순조롭지 않았던 것은 일부 독선적 정치권력자의 출현으로 이웃을 침략하여 지배하려는 과욕을 부렸고, 그러한 독재정치 과정에서 군수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걷고, 내부적으로 탐관오리의 부정부패 등 갑질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백성이 곤경에 처하고 희생되자 선비와 농민 등이 분연히 일어나 민란을 일으켜 저항하면서 정치적 혼돈의 악순환이 생겼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앞으로도 좋은 정치인은 국민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접화군생하는 인물이어야 함을 확실히 하고, 진정으로 가장 국민의 심부름을 담당할 사랑의 화신이 될 만한 국회의원 후보나 대표자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문명의 이기가 국민 개개인의 손 안에 있다. 접속(接續)만 잘하면 좋은 정보와 진리를 깨닫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야말로 국민주권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선성선현(先聖先賢)의 말씀을 본보기 삼아서 공적인 국민주권을 행사하느냐, 사사로운 자의에 의해서 행사하느냐에 달렸다. 이 점에서 만인의 진리인 뿌리 의식을 강조하고 접화군생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의 괴물 짐승사회로 변질된다는 우려와 동시에 그에 대한 방관한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신라 말기에 이미 고운 최치원 선생은 이점을 꿰뚫고 “난랑비서문”에 우리나라에 “풍류(風流)”라는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있었다고 말씀하고 유불선(儒佛仙) 3교를 포함하였다고 밝혔다. 당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와 천재적 경륜을 발휘했으나 출신 성분으로 인해 차별을 받자 스스로 지방 태수를 자원하여 민정을 살피고 접화군생의 삶을 살았다. 마침내 산천을 돌며 자연 속에서 진리의 풍류를 즐기다가 묘향산 석벽의 녹도문(鹿圖文) 천부경(天符經)을 최초로 발견하고, 이에 대한 진의를 전도하기 위해서 한자로 번역해서 후대에 전파했다.

이후 후삼국의 전란을 겪고 고려 왕조가 섰으나 외침의 고난 속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조선이 서면서 대륙의 간섭을 받으며 천부경은 금서로 지정되는 수난을 겪고 몇몇 선각자의 품에서 품으로 비밀리에 전해왔다.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 조선 말기에 수운 최제우 선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학(東學)운동의 선구자의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백성을 만나 설교를 하여 지역별 대표인 접주(接主)를 두고 상고시대로부터 전해 온 한겨레의 영혼(靈魂)과 얼과 넋을 계몽하여 “사람이 곧 한울”이라 하여 민족의 단결과 부흥을 도모하였다. 이는 분명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사상을 계승한 징표이며 장차 우리 민족이 전승해 나아갈 주체적 방향이라 하겠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성균관 문묘(文廟)와 전국 234개 향교 문묘에 위패가 모셔 있는 대표 유학자이며 정치가이며 사상가로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수행자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동학을 창시하여 접주(接主)제도를 펼쳐 우리 민족사상사에 큰 발자취를 남김으로써 고운 최치원 선생의 공덕을 직간접으로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결국에는 천손민족의 후예인 우리가 분발하여 하느님 말씀인 천부경(天符經) 정신을 재조명하고 인간이 하나 되는 길을 열어감[開闢]으로써 비로소 인류화평(人類和平)의 초석이 다져지리라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