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이야기
케노시스와 영성
마음의 평화
2011. 8. 26.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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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교의 근본 정신은 "자기비움(케노시스)"에 있습니다.
이 자기 비움을 “자기비하”라고도 합니다.
기독교안에서 자기비움의 절정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봅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활 그리고 십자가 사건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기독교의 자기비움은 불교 등 자연종교들처럼 고행이나 극기를 통한 득도나 해탈을 위한 것이 아
니라,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바라다보는 것(하느님으로 사는 것)”으로 집약됩니다.
자기비움의 첫 걸음은 <겸손>으로 부터입니다.
이 <겸손>은 자신의 의지대신에 하느님의 의지에 "온전히 순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교만과 불순명으로 죽음이 왔지만(창세기2~3장),
기독교의 구원은 아담의 사건과 대칭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비움> 즉 “겸손과 순명”에 있
습니다.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이신 주님이라고 합니다.
왜 구세주인신 주님이라고 할까요?
겸손과 순명을 통하여 "자기비움"을 <완벽하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비움>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신앙고백으로 전해 온 <주님의 케노시스=자기비움=자기비하>에 대하여 사도 바
울로는 필립비서에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필립비2.6~12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로가 필립비서에서 원용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과 같이
자기비움의 원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명은,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모든 겸손과 순명의 근원으로서,
이는 "주님의 몸을 인류의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신 성체성사"와 함께
"하느님이신 주 예수님"이 희생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십자가
대속”에서 결정되어 나타났습니다.
하느님과 동등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러한 자기비움은,
아담의 불순명으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지고 온 그 죽음의 세력을 깨트리며,
온 세상을 구원시키는 원동력입니다.
2. 하여 기독교의 근원인 "자기비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케노시스)을 본받아, 이웃의 구원을 위하
여 실현하여야 할 사항입니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자기비움은,
불교 등의 자연종교에서 하듯 "고행을 통한 수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은총을 통"하여, 기꺼이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성령님(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즉 "은총의 결과"로 인하여 "자기비움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자기비움"을 <성화>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자기 비움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도사린 사욕편정(죄로 기우는 경향)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기에 실제로 극심
한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은총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비움을 이룰수 있으며 그 은총으로 주 그리스도 예수
를 증거하며 복음을 실천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자신의 사욕편정을 이겨 온전히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자기 비움" 이라고 하
며 "케노시스"라고도 하며 다른 말로는 <성화>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총안에서,
끊임없이 자기비움을 실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시는
것>이며,
성령께서 거하시도록 자기 자신을 "성령의 궁전=거소"로 내어 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안에서 특히 가톨릭교회(천주교회)에서는 초대교회이래
수많은 수도회를 통하여 많은 수도자들(수녀 혹은 수사)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을 현실생
활에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믿음"만을 강조해 온 일부 개신교에서는 이를두고 <행실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비난을
해 왔으나
근래에는 개신교안에서도 수도회의 본질적인 면을 점차 깨닫고 있어 보입니다.
"자기비움"이란 말은 <영성>이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얼마전까지는 영성이라는 말은 가톨릭교회(천주교회)의 전유물이었지만 요즈음은 개신교안에서
도 영성을 논하는 책들이 자주 보입니다.
참고 :
영성이란 주로 "영적인 것을 생각하거나 추리하는 것"으로 오해할수 있습니다만,
사실은 “복음의 실천. 복음의 실천 방법 복음을 생활화하는 실천 신학”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수덕신학> 즉 덕을 쌓는 신학이라고도 하였습니다만 요즈음은 영성이라고 주로 사용
합니다.
“영성”이라고 하여 “영적인 것을 생각하고 영적인 것만 추리하는 것”이 아님을 잘 이해 바랍니다.
^^
영성은 주님이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을 비워 자기 마음안에 주님으로 가득 채우는 실천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비움의 실천이지요.^^
3.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신 성모마리아의 자기 비움
루가1.38
38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
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 갔다.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시며 주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의 자기비움 역시,
자신을 희생하고 비움으로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모마리아가 처녀로서
"다가올 두려움<처녀로서 아기를 갖음은 당대의 유대교 사회에서는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을 개
의치 않고,
천사를 향해서
성령의 은총으로 가득차신 동정마리아는,
<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하시며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명을 하
신 동정마리아의 용감한 “자기비움”도 본받아,
더욱 더 주님이시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