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5

김용옥의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시대의 명저 50] <48> 김용옥의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

2007.12.10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0712100477484044?fbclid=IwAR0Sis5a7vN1kYZtV22yR8YxruU_UAWf_rZo_cNmvdOmeteknWj4QLwvm04

우리 인문학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설파한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도서출판 통나무)는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의 첫 저서이다. 이 책은 동양학, 즉 한문 고전과 관련된 학문을 하는 방법론이 주요 내용으로 학술서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내용이 좀 딱딱한 데도 이 책은 1986년 첫 발간 이후 지금까지 30여만 부나 팔릴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졌고, 인문학 전공자들 가운데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가 귀국해 고려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직후 김우창 고려대 교수가 편집하던 <世界의 文學> 1983년 봄 호에 실은 ‘우리는 동양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비롯됐다. 이 글은 당시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있던 지식계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김 교수의 다른 글들과 함께 엮어져 단행본으로 나왔다.


당시 NL이니 PD니 하면서 이념적 성향이 극도로 치닫고 있던 대학사회에서 전혀 이념적이지 않은, 한문고전을 번역하는 방법론을 다룬 책이 어떻게 호응을 얻었을까.


“대한민국은 20세기 외래문명을 수용한다는 명분 하에 개화, 근대화를 추구했는데 그 기초적인 방법론이 잘못돼있거나 너무 부실했습니다. 이 책은 외국문명을 흡수해도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번역해서 우리화 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본질적으로 제시했다고 봅니다. 당시 대학사회에는 이념적 대립밖에 없었는데, 어느 편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지성인들이 갈구하던 짜릿한 쾌감, 본질적 반성을 하는 계기를 줬거든요. 이념적 논쟁의 틀을 벗어나 총체적으로 우리 문명을 다시 건설해야 한다는 새로운 논리를 제시한 것이죠.” 김 교수 자신의 회고이다.


책은 ‘우리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와 구체적인 번역의 방법을 제시한 ‘번역에 있어서의 공간과 시간’, 중국 철학계의 동향을 다룬 ‘중공학계에 있어서의 중국철학사기술의 전환’, 김 교수가 학부시절에 쓴 ‘“동양적”이란 의미’, 중국어의 우리말 표기법을 제시한 ‘최영애-김용옥표기법 제정에 즈음하여’ 등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국내 동양학계를 ‘불모지’, ‘황무지’로 비유하고 해방 이후를 ‘표절의 시대’로 부르며 번역을 경시하는 학계가 일제시대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점을 일본, 미국 등 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번역과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철저하게 지적했다. “우리나라에 <성경> 번역에 견줄 수 있는 <논어> 번역이 있는가. 성경은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한국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되어 있으나 기존 논어 번역판은 원문의 대조 없이는 한글만 그대로 읽어서는 그 상식적인 뜻조차 파악하기가 힘들다.” “주자학의 정통보루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번역은커녕 구두점(문장부호)이 제대로 찍힌 <주자어류>(주희의 어록집)조차 없는데 일본에는 완역에 가까운 이 책이 주자학 본격 도입 전에 이미 출판돼 있었다.” “칸트의 저작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칸트에 대해 강의하는 것은 칸트를 독점한 자의 일방적 강요에 불과하다.”


이 책은 또 서구 이념에 절어 있던 세대들 사이에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일제시대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답습되고 있던 ‘데칸쇼 철학’ 등 서양철학이 현상과 실체를 분리하는 플라톤주의적 전통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동양철학의 전원적(全元的)인 일원론과 대조 분석해 비판하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졌던 불교, 유교, 도가사상 등 동양사상이 결국에는 ‘자아’라고 하는 허위의식의 철저한 타파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현대의 서구언어로 표현했다.


“나는 동양철학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컨템포러리(contemporary)한 사상, 즉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살아있는 사상으로 번역해 낸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학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던 동양사상이 현실을 움직여갈 수 있는 현대의 사상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소설가 김훈씨가 한문 고전인 <난중일기>를 살아있는 사람의 고민이 들어있는 <칼의 노래>로 번역해 낸 것이 똑 같은 논리입니다.”


김 교수는 이 책을 시작으로 <중용> <금강경> <노자> <논어> 등 고전들을 쉬운 현대어로 풀이하고 TV 대중강연 등을 활발히 전개해 고전과 철학의 대중화 시대를 선도했다.


도옥 김용옥 인터뷰


"그 동안 학문의 거짓이 너무 심했윱求? 나는 그걸 깬 겁니다."


유교, 불교, 도가사상, 기독교 등 동서양의 고전과 종교 해석을 둘러싸고 숱한 논쟁과 화제를 몰고 다니는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를 1일 서울 동숭동 집필실에서 만났다.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한문이란 언어를 번역하는 방법론에서 시작된 것인데, 언어의 번역은 문명의 번역이고, 문명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마음 생각의 번역인데, 그것이 어떻게 정밀하고 정직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다룬 것이지요." 김 교수는 이 책이 우리 인문학에서 번역의 시대를 열었으며 아직도 이 책의 역할은 남아 있다고 자평했다.


"한문서적 한 권 번역하는 게 논문 천편 쓰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 희랍, 라틴, 한문고전학 분야 박사학위논문의 50%가 번역입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성균관대에서 번역을 논문으로 인정하는 등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또 민족문화추진회가 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된 것도 좋은 일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가 아직도 한문문화권에서 한글문화권으로 완전하게 이행이 되지 않았다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우리가 의존하는 역사자료의 98%가 한문자료인데 그걸 한글로 옮겨야 한글문명이 사는 겁니다. 박지원이 지은 책 정도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번역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 교수는 올해 <기독교 성서의 이해> <요한복음 강해> 등의 저서로 기독교계와 논쟁을 벌였다. "동양고전학자가 성서를 건드리는 게 외도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나한테는 동양고전이나 희랍고전이나 인도고전이나 똑 같은 시공간의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공자를 번역하는 식으로 예수를 번역하고 있는데. 이걸 번역이 아니라고 하면 환장할 노릇입니다. 나는 희랍어 성경을 놓고 엄밀하게 번역합니다."


김 교수는 "희랍이나 중국, 마야문명이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한 인간의 다양한 활동으로 본다"면서 "많은 목사들이 박지원보다 희랍을 더 가깝게 느끼는 것처럼 우리 개개인은 어떨 때는 희랍식으로 사고하고, 어떤 때는 마야, 어떨 때는 중국식으로도 산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동서양의 고전 뿐만 아니라 한의학, 영화, 연극, 태권도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데 대해 "어떤 하나의 이념체계에 얽매이지 않았고, 인간의 모든 경험 양태를 내가 스스로 체험해보지 않으면 진정한 학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되는대로 집적거린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기(氣)라는 게 인간 생명의 근원인데 그런 기가 발출되어 나타나는 다양한 장르를 체험해보아야 내가 말하는 기철학의 총체적 모습이 나온다"면서 죽기 전에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종합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재즈의 화성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김 교수는 "피아노 건반 위에서 주역 괘를 읽어요. 이건 구라를 피는 게 아니고 원리의 측면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진짜 공부해야 합니다. 내가 답답해서 자극을 주느라고 거친 말을 하니까 자꾸 뒤에서 욕을 하는데 나는 내 인생을 던져 우리 역사에 자극을 주려고 합니다. 나는 학문의 정확성, 팩트의 엄밀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나를 씹든 비판하든 응수 안합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책에서 말한 대로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꺼내 보이며 "내가 하는 작업이 모두 번역인데 사람들은 이런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세기에는 어딜 가든 날 피했어요. 몇 년 전 만해도 사람들 모이는 곳에 내가 나타나는 걸 싫어했어요. 요새는 내가 늙어가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한국사회에서는 나이를 먹어야 되는가 봐요." 김 교수는 "재즈를 마지막으로 고전과 기철학의 세계로 침잠해들어가겠다"면서 내년부터는 사회활동도 줄여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용옥 연보


1948년 천안 출생


1972년 고려대 철학과 졸업


1974년 국립대만대 철학석사


1977년 일본 도쿄대 철학석사


1982년 미국 하버드대 철학박사


1982년 고려대 철학과 교수


1993년~2001년 도올서원 운영


1996년 원광대 한의학과 졸업


1996년~2004년 도올한의원 운영


1996년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연구교수


1999년 EBS '노자와 21세기' 강의


2003년 중앙대 교양학부 석좌교수


2007년 세명대 석좌교수


남경욱기자 kwna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