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4

다석은 다원주의자 아닌 一元多敎주의자

다석은 다원주의자 아닌 一元多敎주의자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
입력 2021-07-14 16:38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㉖ 김성언 총무<上>

다석 문하에서 배운 제자들, 다석을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다석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의 마지막은 다석사상연구회 김성언 총무다. 다석의 직제자(直弟子)로는 박영호 다석사상연구회장, 임락경 목사 두 분만 남아 있고 
김성언 총무는 박 회장으로부터 다석을 배운 손자 제자인 셈이다.

이 인터뷰는 일단 12명으로 마감을 한다. 하다 보니 예수의 열두제자와 숫자가 같아졌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 의도된 것은 아니다. 다석에 관한 논문과 책을 쓴 학자들 몇 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시지 못했음을 아쉬움으로 남겨둔다.
다석은 종로 YMCA 연경반에서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35년 강의를 이어갔다. 어느 날 강의 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함석헌 선생과 김흥호 교수가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반드시 참석하자고 약속해 그 뒤로 다석이 강의를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다석이 세상을 뜬지 40년이 지났지만 서울 여의도 성천문화재단에서는 박영호 회장과 제자들이 다석 강의의 불씨를 살려가고 있다. 박 회장이 강사로 나오지 않는 날은 호주에서 돌아와 암 투병 중인 최성무 목사와 김성언 총무 둘만 나올 때도 있다.


-다석 사상의 수강생이 적어서 아쉽습니다.

“수강생들을 모으자면 널리 알려야 하는데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만 받고 있으니 청중이 적지요. 박 회장은 ‘사람 많이 모으려 하지 말라. 사람 많아서 무엇 하려고 하는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임을 알리는 행사를 하거나 전도하는 일은 안 합니다. 어떤 때는 저희 모임 회원들조차도 거의 안 나오고 대표인 최 목사와 저만 단둘이 나올 때도 있었지요. 다석의 ‘참’을 공부하는 것은 외로움 속에서 하는 것이지 여럿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마복음서 말씀 74에 쓰여 있는 글을 읽으며 위안으로 삼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선생님, 술자배기 둘레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샘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
술자배기는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진 형태의 옹기를 말한다. 술 주전자 몇 개가 들어갈 수 있는 그릇이다. 술자배기 자리는 걸판지게 술잔이 오가는 주석을 뜻한다. 흥겨운 술자리에는 사람이 모여들지만 참 진리의 맑은 샘물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는 이야기다.


김성언 총무는 술자배기 자리엔 사람이 모이지만 진리의 샘물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도마복음의 구절을 인용했다. [사진=윤영은 기자]
-다석이 강의하던 종로 YMCA 연경반의 맥을 다석사상연구회가 이어오고 있군요?
“성천 재단은 류달영 선생이 설립해서 그 아들인 류인걸 이사장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 모임으로 저녁 7시에 시작했는데 5년 전부터는 일요일 오전 11시로 바꿨습니다. 회원들이 모여 박영호 회장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돌아가면서 주제 발표를 하고 토론하고 점심을 합니다. 다석의 참 진리를 같이 공부하고 알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어요. 진리는 혼자 스스로 공부하는 거지, 많이 모여서 같이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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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열 명 안팎으로 모이다 박 회장이 한 달에 한번 나오는 날에는 20명 안팎으로 늘어납니다. 나머지 주일에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강의를 하죠.”

-김성언 총무는 박영호 회장을 20년 동안 사사(師事)했다면서요. 박 회장은 어떤 분인가요?

“다석의 정신을 이어가는 데 온 정성을 다 바친 분입니다. 한때 지성인들의 우상이었던 함석헌 선생 농장에서 생활하면서 인간의 겉과 속을 분명히 알게 되고, 다석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단사(斷辭)’의 정신을 이었지요. 다석의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땀 흘리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주 순수하고 겸손하고 총명하십니다. 박 회장은 이따금 ‘내가 호랑이인 다석을 고양이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하고 자성적(自省的)인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내가 다석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석을 우상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을 알리는 데 다석만한 재료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박 회장은 ‘자기(제나)’가 없으신 분이지요. 오직 하느님인 ‘참을 알리는데 평생을 다 바친 분입니다. 내가 박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3월 서강대에서였습니다. 불교에서는 1만 겁(劫)의 인연이 있어야 스승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정말 맹귀우목(盲龜遇木)의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승은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입니다.”
김 총무는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했다. 남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 아프리카 수단의 카르툼에서 아랍어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터뷰어는 1987년 사하라 사막의 수단에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그 나라 대통령을 인터뷰했는데 육군 소장 시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었다. 서명해달라고 하니까 직책을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고 ‘육군 소장’이라고 적었다. 육군 소장이 더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모래바람만 날리는 가난한 나라였다. 밤을 모르는 더위로 새벽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실 물이 부족해 늘 물통을 갖고 다녀야 했다.

-나도 수단에 취재를 가서 거의 보름가량 있었는데요.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수단 카르툼에 22개국 아랍연맹 산하의 국제 아랍어교육 연구소가 있습니다. 내가 유학을 하러 갔을 당시엔 모든 사회적 환경이 열악했지요. 전기가 수시로 끊겨 40~50도 오르내리는 더위와 싸우며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3년 공부하면서 두 번 쓰러졌는데 공부 다 마치고는 더는 체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귀국했어요. 3년이 마치 10년은 된 듯했지요. 수단에서의 공부가 나를 많이 단련시켜주었어요.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무엇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랍어 강사를 하다 어떻게 다석에 접하게 됐습니까?

“처음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돈을 벌어, 집도 사고 세계여행을 하면서 살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대학 시절에 인생을 이야기해 주는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지요. 하루하루 소일하다가 한 서점에서 류달영 선생의 <소중한 만남>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다석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던 차에 문화일보에 연재된 다석 시리즈를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찾고자 한 사상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고 다석 사상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다석이 ‘알라(하느님)’라는 한글 시를 일지에 적어 놓아 그 부분을 해석하는 데 아랍어 지식을 유용하게 사용한 적이 있어요. ‘알라’라는 말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단적인 단어라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인데 다석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자유롭게 쓰셨어요. 다석은 코란(이슬람교 성서)을 읽고 마지막 114장인 나스(인간)장을 일지에 기록해 놓으셨지요.” 다석이 기독교와 불교 도교(노장)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종교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는 일화다.

-다석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던데요?

“다석 사상에 입문하려는 초심자를 위한 책입니다. 조선대학교 학생회장을 했던 조카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에게 다석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잘 모르더라고요. 그런데 함석헌 선생에 대해서는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석은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시다. 내가 한번 광주에 내려가서 다석 사상을 강의할 테니 모임을 주선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무슨 강의를 할까 고심하다가 다석의 시 ‘우리는 어찌 되는 길인가? 인생은 신이 되는 길이다’를 가지고 한 시간 반 이상을 강의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다석 사상은 모든 종교 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죠. 광주 강연 이후로 많은 사람이 어렵다고 하는 다석 사상을 어떻게 쉽게 풀이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다석의 시(詩) ‘우리는 어찌 되는 길인가?’ ‘참’ ‘마음과 허공’ ‘이승’ 네 편과 ‘믿음에 들어간 이의 노래’ ‘꼭 한 가지 빌 것이다’의 두 편의 오도송(悟道頌)을 풀이하면서 제 나름대로 다석 사상을 정리해 보았지요. 딱딱한 내용이 아니라 부드럽고 함축적인 시(詩)를 통해 초심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령 ‘이승’이란 시는 여섯 줄에 불과합니다만 그 시속에 인생이 다 들어가 있지요. 인생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살라는 다석의 메시지가 들어 있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이승의 삶이란 튕겨논 줄 쟁쟁이 울리우나 멀잖아 끊길 것
이승의 삶이란 피어난 꽃 연연히 곱다가 갑자기 시들 것
이승의 삶이란 방울진 물 분명히 여무지나 덧없이 꺼질 것’”


-지금 쓰는 책에 다석은 다원주의자가 아니고 일원다교(一元多敎)주의자라고 했던 데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학자들이 편하게 다원주의(多元主義)라고 쓰는데 다석 사상은 일원다교입니다. 어떻게 으뜸 원(元)자가 여럿이 될 수 있겠어요. 다석 사상은 ‘하나’에서 시작해서 ‘하나’로 끝난다고 할 수 있지요.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과 같아요. 다석 선생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어요. 많은 종교가 있지만 다 같이 ‘하나’만을 가르치고 있지요. 그래서 일원(一元)이 되어야 하고 교(敎)가 많으니까 다교(多敎)가 됩니다. 다석은 종교는 다 다르지만 ‘하나’로 같다고 했습니다."

-박영호 회장은 "다석 사상으로 조직종교를 한다면 이미 다석 사상이 아니다"며 다석 사상을 종교화하거나 교회화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던데요. 실제 어떤 종교화 움직임이 있었습니까?

"박 회장은 다석 사상에는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과 제자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다석 사상을 공부하면서 다석의 진리 정신을 이을 생각을 해야지, 사람들을 많이 모아 교회처럼 조직을 키운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박 회장은 어떤 조직도 만들지 않았던 다석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조직이 있는 단체들은 더욱더 세(勢)를 확장하려고 하지요. 그것이 다 탐욕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사람들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사실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진리와는 멀어지고, 세속적인 이야기가 난무하지요. 다석은 석가 예수처럼 진리 보존을 우선하라는 뜻에서 조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김 총무는 종교가 있습니까?

“내가 다석 사상을 접하기 전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렇게 두루두루 공부를 해봤습니다. 아랍어를 공부한 것도 다석 사상 연구에 도움이 되더군요.”


임락경 목사(가운데)가 사목하는 화천 시골교회에서. 오른쪽이 박영호 회장, 왼쪽이 김성언 총무. -다석은 제자 중에서도 특별히 아꼈던 박영호 회장과 단사(斷辭)를 하고 나중에는 ‘마침보람’이라는 졸업장을 주었는데요.
“마침보람은 박 회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으신 것으로 그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는 마침보람이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석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을 끊고, 즉 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하느님께 말씀을 받는다는 의미로 단사(斷辭)라는 말을 썼지요. 박영호 회장이 스스로 영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가 되었지요. 단사 기간에 박 회장은 ‘새 시대 신앙’이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단사는 성직자들이나 교육자들이라면 꼭 생각해 봐야 할 말씀이지요. 단사에 대하여 다석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조직이란 자꾸 끌어 붙이자는 것인데 실은 풀어 헤치는(分散) 것만큼 시원한 것은 없어요. 우리는 시원한 자리에 가자는 것입니다. 거래란 귀찮은 것이지요. 다 흩어져 제 노릇을 하자는 것입니다. 단사(斷辭)를 해야 해요. 만나고 싶은 생각도 편지할 생각도 안 나야 합니다.’
단사(斷辭)란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단사(斷辭)하여 자오(自悟: 스스로 깨달음)하시오. 정(情)을 빨리 떼어버려야 하느님 사랑이 됩니다. 다르마(참, 진리)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불경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석은 “선악과에 죄가 없다. 탐진치(貪瞋痴)가 원죄”라는 말을 했는데….

“기독교 교리가 선악과의 원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석은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를 원용(援用)했습니다. ‘탐’은 말 그대로 탐욕, ‘진’은 진성에서 화냄 분노, 불교의 ‘치’는 어리석음을 의미하는데요. 다석은 치가 ‘치정(癡情)’의 성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죠. 크리스천들이 이것을 가지고 다석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기독교의 선악과를 말하지 않고 불교의 탐진치를 얘기하는가. 다석은 사람이 탐진치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셨죠. 그래서 바로 그 탐진치에 죄가 있는 것이지, 선악과를 먹어서 원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없애야 죄 사함을 받는 것이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왜 기독교에서는 죄를 사람 각자에게 있다고 하지 않고 죄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지요? 그리고 죄 사함을 예수의 보혈로 받는다는 것이 21세기 첨단산업인 인공지능, 의과학 시대에 보편적 인식으로 통용될 수 있을까요? 다석이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죄’는 사람 각자에게 있는 것, 즉 우리가 타고난 탐진치에 있는 것이지요. 탐진치를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는 속물로서 죄인 그대로 사는 것이고, 탐진치를 다스리면 ‘얼나로 솟나’ 성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석이 2500년 전 붓다의 삶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볼 수 있어요. 더는 탐진치를 불교의 전유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깨어 있는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탐진치를 잘 다스려서 스스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인터뷰어=황호택 논설고문·정리=이주영 인턴기자>

<김성언 총무 약력>
1956년 출생
1976~1983년 명지대학 아랍어과
1983~1986년 수단 카르툼 국제 아랍어 교육대학원 석사
1987~1988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 아랍어과 주임교수
1987~1995년 명지대학 아랍어 강사
1999년 다석사상 연구회원
2005년 다석학회 회원
2010~2014년 인천 국제교류센터 아랍어 강사
2013년~현재 인천 다석사상 연구회 대표
2017~현재 다석사상 연구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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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이단이라 부르지 말라…다르면서도 같은 것 많다 | 아주경제

함부로 이단이라 부르지 말라…다르면서도 같은 것 많다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입력 2021-07-21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㉗ 김성언 총무<下·시리즈 끝>


성경에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많다. 하느님이 세상을 6일 만에 창조했다는 창세기라든가, 예수의 동정녀 탄생,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탈출할 때 바다가 갈라졌다든가, 예수가 죽은지 3일 만에 부활했다든가···.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 비교종교학과 명예교수는 이것을 신화적 상징으로 보지 않고 문자주의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던데요. 선악과도 신화적 상징으로 봐야지, 문자 그대로 푸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신구약에 정통한 정양모 신부도 창세기는 신화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부가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말씀이죠. 신화적인 입장으로 보는 것과 그것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신화로 인정을 한다면, 종교 간 혹은 교리 간 갈등이 없을 텐데요. 그것을 문자적으로 곧이곧대
로 해석하다 보면 과학이 첨단으로 발달한 21세기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잖아요. ”

-다석은 박영호 선생이 문화일보에 글을 쓰기 전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데…장자의 성인무명(聖人無名)을 실천하려는 정신 때문이었나요?

“다석은 장자의 성인무명을 의도적으로 실천하진 않았어요. ‘이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었지요. ‘이름’이란 필요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이름을 내려고 할 필요가 없지요. ‘이름’에 대한 다석의 말은 이렇습니다.
‘생명은 고정할 수가 없다. 고정하면 죽는다. 발전해가는 것에 이름이 있을 수 없다. 이름은 고정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름이 있을 수 없다.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나가 아니다. 벌써 다른 것으로 바뀐다.’(다석어록)
이렇게 ‘나는 이름이 없다’고 선언했어요. 성인무명(聖人無名)이 저절로 된 것입니다. 또한 ‘이름’에는 이르름(至)이라는 뜻이 있다고 했지요. 이름만 불러가지고는 쓸데없다는 겁니다. 하느님 앞에 가고, 가고, 가고 해서 거기 가서 이루는 거, 거기 도달하는 거, 그걸 말하는 겁니다. 주님의 이름, 하느님의 이름만 불러가지고 나는 참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거기에 다다라 이루어야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거라고 다석은 말했습니다.”


다석 묘소를 찾은 김성언 총무.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적연이일망(的然而一亡) 암연이일장(暗然而日章)이라고 했는데요. 뚜렷하게 있는 것은 나날이 망해버리고, 캄캄하고 암담한 것은 나날이 빛난다는 뜻이죠. 김 총무는 지금 쓰고 있는 책에서 다석 사상이 바로 암연이일장이라고 했던데요. 이것은 “어둠이 분명히 빛보다 크다”는 다석의 말과도 통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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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참을 찾아 그 참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말인데 그것을 잘 표현한 것이 중용에 있는 ‘적연이일망 암연이일장’ 입니다. 세상적인 것들은 다 드러나 있어 바로바로 보고 알 수 있지만 그것은 겉모습만 볼 뿐 속은 모르지요. 겉은 분명히 좋아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해 나빠지게 됩니다.
붓다는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모든 상대적 존재)에서 몽환포영(夢幻泡影: 꿈, 허깨비, 거품, 그림자)이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다석사상은 처음엔 어려워서 캄캄하게 생각되지만 공부해 갈수록 조금씩 혜안이 생기고, 삶에 힘이 되며 빛이 비취는 것 같은 희망이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어둠이 분명히 빛보다 크다’는 다석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석은 “나는 공부를 안 해서 한글 맞춤법을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훈민정음에 관심이 많아 국어학자 이정호와 함께 연구를 했지요. 한글을 뜻글자처럼 활용하기도 하고요. 재야학자 서상덕의 저서 ‘국문철자법’ 출판비용을 대줬는데요. 서상덕이 책에서 ‘다석이 땅을 팔아 출판비를 만들어주셨다’고 칭송했더군요. 다석의 공익을 위한 기부 정신과 한글사랑이 드러나는 일화지요.

“다석의 훌륭한 점은 불교계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마음과 ᄆᆞᆷ을 뚜렷이 구분해 준 것과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을 표의문자(表意文字)처럼 살려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ᄆᆞᆷ을 가려서 쓰고 싶습니다. 마음이란 상대적인 세상에 욕심을 붙여서 조금 약게 영생하는 데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ᄆᆞᆷ이란 모든 욕심 다 떼어 버리고 자신을 세워나가겠다는 것이죠.
지극한 한글 사랑으로 천부경, 노자, 중용, 반야심경등을 순 우리말로 풀어 놓으셨지요. 지식인들이 자기가 아는 외국어로 표현하면서 지식을 뽐내지만 다석은 하느님이 준 선물인 우리말을 살려나가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말 ‘오늘’은 오! 감탄사와 ‘늘’이라는 영원을 뜻하고, ‘아침’은 아! 처음이며, ‘기쁨’은 기가 하늘에서 뿜어져 나옴이고, ‘사람’은 (말씀을) 사뢰는 이, ‘사나이’는 산 아이, ‘고맙다’는 고만하다, ‘모름지기’는 모름을 지키는 이….
서상덕 선생의 책 서문에 다석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천우신조하시와 이번에 자하문 밖에 계신 류옹(柳翁)께서 땅을 팔아 출판비를 만들어 주셔서 다행히 이 <국문철자법>의 책자를 내놓게 되오니 여러 동포들과 함께 기뻐하며 열 번 절하고 지성으로 류옹께 감사합니다.’”


황호택 논설고문(왼쪽)과 대담하는 김성언 총무.[사진=윤영은 기자]

-땅을 팔아 <국문철자법> 비용을 대준 일화에서도 드러나듯이 다석의 돈철학이 남다른 것 같아요. 다석은 종로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아버지의 권유로 장사도 했지만 재산이나 돈에 대한 애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석 선생과 이현필 선생 사이에 있었던 미담(美談)을 동광원의 김준호 선생이 ‘이현필’이라는 책에서 써놓았습니다.
'이현필 선생이 빛고을 광주에서부터 걸어서 서울 삼각산 밑에 있는 다석 집을 찾아갔다.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길을 갈아입을 옷도 없이 흰 옷 한 벌로 다석 집에 도착했을 때는 흰 옷이 까맣게 때가 묻었고, 땀을 흘려 머리도 미친 사람 마냥 덥수룩한 모습이 거지와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다석은 이현필 선생을 보자마자 맨발로 뛰어나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안아 주듯이 꼭 안아 주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옷을 갈아 입히고 사모님 한 테 옷 빨라고 내놓고 길가에서 거지를 안아다가 목욕을 시키듯이 씻어 주셨다. 그리고는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또 옷을 빨고 말려서 다시 입을 때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일주일 후에 이현필 선생이 떠난다고 하니 다석은 신문지에 돈 뭉치를 싸서 내주시면서 이걸 가지고 가서 쓰세요라고 했다. 그 돈은 다석이 30년간 십일조를 모은 것이라고 사모님이 귀띔해 주었다. 그러나 이현필 선생은 그 돈을 자신을 위해서나 동광원을 위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내려오는 길에 대전 목포 부산등지를 돌면서 어려운 가정에 한 뭉치씩 떼어주고 빈손으로 광주로 돌아왔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30년간 모은 십일조를 서슴없이 내놓는 다석의 모습 속에서 참사람(眞人)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다석은 돈이란 남이 빌리러 오면 빌려줄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하시면서 재물부자보다는 마음부자로 살고 싶어했지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마음부자로 사는 것인 줄은 한동안 몰랐어요. 그러다 무릎을 딱 치는 다석의 글을 만나게 되었지요.
‘마음 그릇을 가지려거든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가지세요. 우리 마음이란 지극히 큰 것으로 마음을 비우면 허공(하늘나라)이 그 안에 들어옵니다.’
마음속에 하늘나라가 들어오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부자로 살고 싶은 분들은 마음을 비우면 되지요. 마음이란 끊임없이 비워 나가야 조금씩 비워집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면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돈에 매여 살기 때문에 부자유스럽습니다. 그래서 다석은 매임과 모음을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사람에게 매이려 하고 재물을 모으려 하는 매임과 모음은 그만두어야 한다. 이 세상을 죄다 잔뜩 모아서 앉아 있으려 하여도 그렇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이 모은 것과 매이는 것을 전제로 공부를 한다면 아예 공부를 하지 말든지 해야지, 그래서 세상에 나와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매이기만 하고 모으기만 하려고 하면 영원과는 융합이 될 수 없다. 꿈 같은 이 세상에 꿈꾸듯 지나가는 것밖에 안 된다. 매이는 것과 모으는 것은 집어치워야 한다. 자꾸 매임과 모음만 찾다가는 마귀 생각에 빠지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다석어록)

-다석이 "나는 통일(統一)이 싫고 귀일(歸一)이 좋다"고 했는데요.

"단순히 이 글만을 본다면 다석은 남북통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가 오해하기 쉽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네, 그 말만 들었을 때는 다분히 그런 오해가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은 죽으면 자연스럽게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귀일을 늘 강조하셨죠. 불교에서도 귀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했듯이, 다석 선생님은 귀일을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통일은 인위적인 힘에 의해 돌아가는데, 귀일은 자연스럽게 돌아가니까 아주 좋아하셨죠. 인위적인 통일 보다는 자연스러운 귀일(귀일(歸一))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만법귀일(萬法歸一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이라고 하지요."

-다석어록에 ‘동야자이야(同也者異也), 즉 같은 것이란 다른 것이다. 이단이라고 헤프게 부르지 말라. 자기하고 다른 것이 이단이면 자기 자체 속에 또 다른 것이 좀 많겠는가. 이 죄다가 이단일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다석이 말한 '동야자이야'의 원전(原典)이 있습니까?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 비슷한 표현이 있긴 합니다. 불능동자 즉동이이(不能同者 卽同而異·같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불능이자 즉이이동야(不能異者 卽異而同也·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곧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다)란 구절이 그것입니다. 다석은 금강삼매경의 개념을 원용(援用)하고 확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함부로 이단(異端)이라고 헤프게 불러서는 안 된다. 자기하고 다른 것이 이단이라면 자기 자체 속에도 다른 것이 좀 많겠는가? 그렇다면 죄다가 이단일 것이다. 나 아니고서는 모두가 이단인 것이다. 한 가지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동야자이야(同也者異也)는 또 사뭇 다른 것은 같다는 뜻도 된다. 머리하고 발하고는 절대 다른 것이다. 그러나 다르다고 해서 다르게 움직이면 되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머리와 발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같다는 말 속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일치할 것이다. 같은 것이라도 따지면 다르고, 다른 것이라도 따지면 같은 것이 된다.'”(다석어록)
새로운 사상이란 바로 이런 이단적인 생각으로부터 나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란 한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자들의 이단 사상이다.'"
‘같으면서 다르다’ ‘다르면서 같다’는 다석의 말은 이단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세계의 주류 종교들은 자기들의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이단이라고 공격하지만 예수도 이단으로 몰려 십자가형으로 처형을 당했다. 거기서 나온 종교가 지금은 서양문명의 주류인 기독교가 되었다.


김성언 총무는 다석의 해혼(解婚) 정신을 실천해 아내를 '안해'라고 부른다.
 
-다석어록에 ‘예수는 가정에 갇혀 살지 않았다. 유교는 가족주의로 망했다. 자신과 자기 식구들만을 위해 잘사는 것은 짐승의 종족 보존과 다를 바 없다’고 했는데요. 다석의 표현 중에서는 강도가 센 것 같습니다.

“석가 예수는 가정을 초월했지만 유교는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가족주의로 망했다고 다석은 말했지요. 짐승이 종족 보존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람은 종족 보존을 뛰어넘어 진리 보존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만 사람들이 짐승 같이 식색(食色)으로 살다보니 진리 보존하고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고살기 힘들고 바쁘다는 핑계로 ‘진리’라는 단어는 잊어버린 지 오래된 낯선 단어가 되어버렸지요. 소수의 사람만 그 뜻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수천 만명의 신앙인과 교인들이 있지만 ‘진리 보존’에 사명감을 갖고 사는 신앙인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가족을 초월한 석가 예수의 진리정신을 이어받을 것인가, 가족을 중심으로 한 공자의 가족주의를 받아들일 것인가 중요한 갈림길에 있어요. 짐승의 목적이 종족 보존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사람의 삶의 목적이 진리 보존이란 말은 학교나 교회 성당 사찰 등 사회 어디에서도 들어 본적이 없어요. ‘짐승은 종족 보존, 사람은 진리 보존’이라는 다석의 말은 짐승과 사람의 역할을 가장 뚜렷하게 구분 짓는 말이 아닐 수 없지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겨우 자신과 자신의 식구들만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단지 종족 보존에 불과하지요. 물론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사람들이 식색(食色)의 맛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아요. 식색(食色)이란 짐승이나 사람이나 공히 갖고 있는 본능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삶의 본능에만 충실하다면 ‘참사람’이라 할 수 없어요. 사람에게는 본능을 넘어설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에 식색(食色), 즉 종족 보존을 넘어 진리 보존을 목적으로 삼아야 삶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석의 말이 이 사회에 두루두루 퍼져 각성(覺醒)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진리 보존’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 실천해서 각자의 영성(靈性)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다석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91살 장수를 했는데요.

“다석처럼 철저하게 몸을 살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기 때문에 몸성히에 열심이셨지요. 의사가 30살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무려 91살을 사셨으니 몸이란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지요. 다석은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이중으로 갇힌다고 했어요. 그래서 삶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요. 다석의 ‘몸성히, 맘놓이, 바탈태우’를 다석의 삼보(三寶)라고 부르고 싶어요. 다석이 우리 겨레에게 물려준 정신적인 유산인 삼보(三寶)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건강하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걷기, 요가체조, 냉수욕을 통하여 몸성히를 이루고, 맘놓이를 통해 마음을 비우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나’란 무아(無我)로 빔을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몸성히 맘놓이를 이룬 다음에는 생각을 토대로 자신의 밑둥을 깊이 파고 들어 하느님이 주신 바탈(性)을 타고 하늘나라로 들어가 ‘얼생명’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김 총무에게 다석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첫째는, 종교의 교리로부터 해방감과 자유함을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대(代)를 이어 찾을 것은 ‘참’ 하나뿐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그 말에 가장 깊이 감동을 받아서 제 인생관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참을 찾아서, 그 참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저의 모토가 되었습니다.”<인터뷰어=황호택 논설고문·정리 이주영 인턴기자>



※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유영모'는 모두 12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 27회에 걸쳐 연재를 했습니다. 이 릴레이 인터뷰는 오늘로 마치고 곧 책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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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hht1123@ajunews.com종교학, 대학 교양과목으로 개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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