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0

이택환 칼 바르트 설교학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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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환
칼 바르트 설교학에 기대어...

바르트는 설교에서 서론이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배의 진행이 이미 예배의 절정인 설교를 위한 서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설교에 앞서 행하는 성경봉독이 예비 설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서론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대부분의 서론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가게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이유로 설교의 서론을 거부한다. 

마찬가지로 설교는 본문에 대한 해설로 끝나야지 결론적 적용이나 훈계는 필요치 않다고 본다. 바르트는 설교자가 자신의 목적이나 의도를 내려놓아야 하며, 성경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설교자가 성경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 ‘진귀한’ 그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을 끄집어내야지, 회중의 특수한 상황이나 경험을 특수한 텍스트의 관점에서 언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슐라이어마허는 신학의 출발점을 신조나 교의 또는 성경본문이 아닌 인간의 종교적 경험에 두었다.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설교자는 회중으로부터 나오고 다시 회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가 수립한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신학 방법론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부터 출발하는 위로부터의 신학 방법론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 윤철호, <설교의 영광 설교의 부끄러움>에서 자유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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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설교자는 누구인가? 윤철호 교수는 바르트나 슐라이어마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조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설교자는 둘 중 어느 한쪽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바르트 쪽이다. 내 설교가 재미가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바르트도 아닌 주제에...ㅋ
(2014. 3/13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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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omments
CK Park
ㅎㅎ 적절한 말씀이네요. 그런데 바르트의 글은 무지 지루하고, 슐라이에르마하의 글은 개념적 혼란이 느껴져 읽는 이가 몹시 피곤한 것 같아요. 바르트는 인간을 감추고, 하나님의 초월적 타자성을 강조하고, 슐라이에르마하는 신인식의 내재성을 강조했으니, 상호 보완해야 다소 진보가 있지 않을까요?
Reply5 y
이택환
치우치면 안되지만, 선호하는 쪽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쉽게 다가서도록 노력해야지요. 대가의 글은 다 어려운 것 같아요^^.
Reply5 y
김기현
다 다르군요. 저는 바르트의 글이 감동적이었습니다
Reply5 y
이택환
목사님은 남아수독오거서, 독서백편의자현이 되시는 탁월한 소수시잖아요^^
Reply5 y
김기현
헉.. 아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