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1

텅 비움 | 시드니 복음서(102)-말이 안되는 이야기와 하나마나한 이야기 - Daum 카페

텅 비움 | 시드니 복음서(102)-말이 안되는 이야기와 하나마나한 이야기 - Daum 카페
시드니 복음서(102)-말이 안되는 이야기와 하나마나한 이야기

없이계신이추천 0조회 25
22.05.03 
 

 

40년 만에 양구 교회의 교인을 만나기 위해서 직장으로 갔다. 가서 보니 다단계 사업이 변신한 소위 방문판매 사업장이었다. 교육 시간이어서 끝나기를 기다리며 지켜 보았는데 한 마디로 허무맹랑 황당무계한 내용이었다. 듣고 앉아 있기가 힘든 내용을 끝까지 듣고 앉아 있으려니 고행이었다. 어떤 여성이 혼잣 말로 “말도 안돼”라고 하면서 나가는 것이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할 일 없어 보이는 중장년들이 족히 200명은 앉아 있다는 것이다. 1주일에 6일을 계속하는데 항상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이 굴러다니고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니 큰 조직이 운영되고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도 온갖 좋은 이야기는 다 모아놓고 적절하게 요리를 해서 푸짐하게 늘어놓고 사람들의 내적 욕구를 만족 시킨다는 점에서는 같은 기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거품을 물고 떠들면서 돈을 버는 곳이 있지만 종교는 분위기 잡고 ‘하나마한 이야기’ 를 해서 진리를 밝혀주기도 한다.

 

예수는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것은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이 말의 주어는 읽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 자신인 것이다. 나에게 이처럼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 사람은 성현이 아니라 아기였다.

 

몇년 전에 조카의 15 개월된 아기가 와서 잠시 함께 놀았다. 안경을 벋어서 탁자 위에 놓고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데 아기가 안경을 집어서 불쑥 내 코 앞에 내밀었다. 아기는 안경이 내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무엇이 아기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 한 것일까?

아기가 설마 “저 영감이 왜 안경을 벋고 있나? 내가 도로 씌어줘야지?”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리는 만무한 일이다. 그 순간 아기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을 보고  ‘올라가야지’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안경을 보고 나를 생각한 것이다.

현상학에서는 우리 몸의 활동이 사유 보다 앞선다고 한다. 즉 아기가 안경을 보고 나를 생각한 것처럼, 등산객이 산을 보고 등산을 생각한 것처럼 동기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산이 내 행동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안경이 아기의 행동에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지배하는, 나에게 절대적 영향을 주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나의 몸이 던져져 있는 세계이어서 그 세계 속에서 대상이 내게 동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의지나 결정은 오래 걸리는 반면에 동기와 행동은 즉시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나의 정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해서 아는 내가 아니라 나의 행동으로만 알게 되는 내가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나라는 것이다.

 

한 번은 예수가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들면서 또 한 번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했다. 점잖게 말해서 “오늘 밤 네 영혼을 데려가면 네가 가진 그 많은 소유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이야기는 깡패들이 싸울 때 “너 오늘 밥숟가락 놓고 싶어?”하는 표현과 똑 같은 것이다. 한 마디로 "잘났어! 정말."인 것이다.

예수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예수는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것을 잘 알았다. 즉 좋은 말로 해서는  되지 않을 상황이엇기 때문에 쎄게 나간 것이다. 예수는 자기 긍정 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단순 무식하게 자기부정을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