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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교수들의 표절 논란
차정식 교수 신간 놓고 설왕설래
새물결플러스 김요한 대표 "오래전 출간 약속, 표절 논란과 무관"
기자명 최승현 기자
승인 2016.06.30
▲ 차정식 교수가 새 책을 냈다. '표절 의혹'을 받은 차 교수의 신간을 낸 출판사는 평소 표절 반대 운동을 지지하던 김요한 대표의 새물결플러스였다. 이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는 설전이 이어졌다. ⓒ뉴스앤조이 심규원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학교)의 새 책 출간을 놓고 설왕설래가 벌어지고 있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간한 <로마서> 표절 의혹에 시달린 차 교수가 신간 <예수 인문학>을 냈는데, 이를 낸 출판사가 평소 표절 반대 입장을 보여 오던 새물결플러스(김요한 대표)라는 이유다.
책 출간 사실이 알려지자 '신학 서적 표절 반대(신표)' 회원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신표 회원들은 당사자 간 의리가 윤리 문제보다 더 중요하냐며 새물결플러스를 비판했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는 김 대표가 표절 저자들과 출판을 협조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이번 처사에 실망해 김 대표와 구두로 합의했던 출판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차정식 교수가 쓴 서문 내용이 알려지며 논쟁에 기름이 부어졌다.
서문 내용 놓고 논란 심화
서문 내용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세 쪽 분량 서문 말미에 나오는 표현이다.
"나는 어설픈 흉내내기로서의 공부가 한없이 역겨웠고 서구 신학의 영웅적 장삼이사들이 구축한 세계에 하나마나한 수준에서 잡다한 각주를 다는 식의 학문이 불쌍했다. (중략)
이런 종류의 책을 한 권 내기로 오래전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요한 목사님과 의기투합한 바 있다. 그는 꾸준히 이 약속을 상기시켜 주었고 복잡한 세간사의 굴곡 속에서도 선하게 의리를 지켜 주었다. (중략)
지새우던 기나긴 밤들의 기억이 공중에 부유물처럼 출렁인다. 이제 또 새벽이 되어 새 책의 출간과 함께 새날이 밝아오기에 이런 분들이 끼친 참한 은혜의 빚을 빛으로 받아 간신히 이 서문을 쓴다. 훠이, 물렀거라! 예수의 본심과 무관한 잡것들아!"
서문 표현을 놓고 신표 회원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서문의 전체적인 논지는 서양 주류 신학을 답습하지 않고 한국적 상황과 통찰을 담은 독창적 글쓰기를 추구하겠다는 내용이었지만, "하나마나한 수준에서 잡다한 각주를 다는 식의 학문이 불쌍하다", "출판사 대표가 복잡한 세간사의 굴곡 속에서도 선하게 의리를 지켜주었다", “훠이, 물렀거라! 예수의 본심과 무관한 잡것들아!” 부분이 특정인과 특정 사건을 지칭한다는 해석을 낳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차정식 교수는 '잡것'이라는 표현은 특정인과 무관하다는 글을 올렸다. 알래스카를 탐험하며 곰과 무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물렀거라! 무스들아, 곰들아, 훠이~물렀거라 이놈 잡것들아!"라고 외쳤던 경험이 연상 작용을 일으켜 서문에도 이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은 수년 전부터 약속했던 신의의 문제"
차 교수의 책을 출간한 새물결플러스 김요한 대표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김 대표는 29일 저녁 페이스북에 A4 5장 분량의 장문을 올렸다. 그는 평생 먹을 욕을 하루 만에 다 먹었지만, 처음부터 예상하고 각오했던 일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저자와의 약속은 구두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꼭 지키려고 노력했고, 차정식 교수 문제도 계약을 정식으로 하지 않았지만 수년 동안 구두로 얘기해 온 것을 바탕으로 '신의의 원칙'하에 출간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책 원고 얼개가 나왔을 무렵 차정식 교수에 대한 표절 문제가 제기됐지만 김요한 대표는"사실 제가 잘 아는 학자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제가 발을 쑥 빼면, 아마 제가 생각해도 참 못난 사람 같을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필요하면 욕도 먹고 경제적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저 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요한 대표는 독자들에게 이번 일로 상처를 입거나 실망한 사람들에게는 송구하지만, "위선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손쉽게 들을 만큼 그렇게 막 살아오지 않았다"면서 정의에 관한 문제를 파편적으로 보지 말고 통전적인 관점에서 봐 줄 것을 당부했다.
김 대표의 해명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 중에는 김 대표가 차정식 교수의 서문에 대해 "전체를 읽어 보면 오해할 소지가 없다"고 발언한 것 등을 차 교수를 옹호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 독자는 김요한 대표에게 "하다못해 서문에 '그동안 여러 일들로 인해 심려를 끼친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부족한 책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간단한 문장만 들어가 있어도 이렇게까지 다들 분개하지 않을 것이다. 저 서문은 그야말로 교만의 극치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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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 교수의 변에 대하여
최근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주석 논란에 답함
이성하 목사 "차정식 교수 <로마서> 주석도 표절"
차정식 교수의 변에 대하여
나는 정말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들이대며 숨통을 조였는가
기자명 이성하
승인 2016.01.11 13:52
지난 1월 7일,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성서 주석 '로마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차정식 교수가 <뉴스앤조이>에 '최근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주석 논란에 답함'이라는 글을 보냈습니다. 이에, 차 교수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의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가 반박하는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아래에 전문을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 나는 정말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들이대며 숨통을 조"였는가
▲ 지난해 8월 이성하 목사는 차정식 교수와 함께 포럼 '표절과 한국교회'의 발제를 맡았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차정식 교수가 쓴 로마서 주석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표절이 있다. 그것도 많이 있다. 그 실체를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에서 공개했다. 이에 대해 차 교수가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차 교수의 모든 말은 이미 본인이 했던 말을 통해서 충분히 반박할 수 있으므로, 반론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겠으나, 혹여 그의 말을 듣고 오해할 분들이 있을까봐 굳이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차정식 교수는 "교과서와 각종 교양 도서류, 기독교 신앙 도서와 평이한 개론적 내용을 담은 신학 도서 등에 저런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들이대며 숨통을 조이는 것은 교각살우라고 본 것이다"고 말하면서 지금 표절 반대 운동에서 적용하는 기준이 아주 엄격한 기준인 것처럼 말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근 일 년 동안 표절로 지적받은 교수들 중에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적용받은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다. 학회나 대학교에서는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 연속적으로 여섯 단어나 일곱 단어, 혹은 여덟 단어가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지적한 표절은 단어 수준도 아니고 문장 수준도 아니었다. 한 문단 혹은 두 문단, 심지어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세 페이지를 베끼다시피 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표절이 포함된 책만 문제 삼았다.
그 모든 명백한 근거가 여전히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초창기의 것은 '번역이네 집'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차정식 교수도 2015년 8월 2일 오후 11시 15분에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교수들 표절은 강아지 새끼 도둑질 수준!"이라고 했겠는가.
2. 차정식 교수의 표절 수준은 남보다 나은가
차 교수가 "강아지 새끼 도둑질 수준"이라고 비난했던 다른 교수들에 비해서, 차 교수의 표절 수준은 차이가 있는가? 없다. 차 교수도 다른 교수들처럼 몇 문단을 베끼듯이 표절했다. 원자료의 문단을 바꾸기도 하고, 원저자가 인용하는 다른 저자의 글을 자신의 글처럼 가져다 쓰기도 한다. 로마서 주석 서론만 두고 따지자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교수들의 사례보다 심각하다.
차 교수의 로마서 주석은 작년 11월 26일에 침례신학대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을 살펴보았고, 본 지 10분 만에 표절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쉽게 찾아냈다. 그만큼 표절의 정도가 심각했다. 곧바로 차 교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다음날 차 교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본문 주석을 살필 때에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표절을 찾아냈다. 찾아내는 즉시 차 교수에게 메신저로 이를 전달했다.
한편 차 교수는 본인이 저술한 로마서 주석에 독창적인 부분이 더 많으므로 그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식으로 말한다. 난 도대체 학자로서 어떻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독창적인 노력과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걸로 표절을 덮을 수는 없다. 공을 인정해 달라고 하기 전, 과에 대해 책임 있는 사과와 조치를 취하는 게 우선이다.
3. 우리가 그동안 "일단 까발려 '의혹'으로 망신주고 내 기준대로 내 말대로 회개하라고 강요"했는가
차 교수는 신학 서적 표절 반대 운동에 대해 "일단 까발려 '의혹'으로 망신 주기, 내 기준대로 내 말대로 회개하라고 강요하기 수준에서 겉돌 우려도 없지 않아 보인다"는 말까지 했다.
기가 막힌다. 차 교수에게 묻고 싶다. 정말 우리가 "일단 까발려 '의혹'으로 망신을 주었는가?" 그랬다면 근거를 대라. 차정식 교수의 표절 문제는 그 누구보다 시간을 많이 주었고,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가? 그래 놓고 왜 뒤에서는 "이로 인해 황망해할 겨를도 없이 미국으로 급하게 출국해야 하는 일정으로 이성하 목사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이 또한 사과드린다"는 말을 하는가?
그리고 정말 내가 "내 기준대로 내 말대로 회개하라고 강요"했단 말인가? 이 운동은 소비자 운동이다. 학자들이 표절로 명예와 돈과 직위를 얻을 때, 소비자들은 금전적인 대가를 치르며 그 책을 사서 본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할 것과 표절한 책을 절판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회개 강요'라고 본단 말인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절판하지 않은 경우에 표절 사실을 공지하겠다는 것이 강요인가? 이건 소비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주권 행사이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절판하는 분에게는 어떤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모든 것을 덮고 넘어가고 있다.
강사문 교수님 같은 경우, 공개적으로 사과하셨을 뿐만 아니라, 대한기독교서회에 남은 재고까지 본인이 책임지시겠다고 하셨다. 기존에 판매된 책을 본인에게 보내오면,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하시겠다고 까지 하셨다. 우리가 요구한 범위를 넘어서는 철저한 책임을 본인 스스로 지시겠다고 하셨다. 이게 강요와 협박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신앙 양심의 소리에 반응하신 것으로 보이는가?
차정식 교수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본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차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학자들의 부실함으로 말미암아 한참 학문에 정진해야 할 이 목사님 같은 분이 고생하고 희생하시게 된 것에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로마서 주석서가 그때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는데 오늘날의 기준으로 이렇게 엉성한 모습으로 몰골을 드러낸 점 역시 깊은 자괴감을 느끼며 당분간 sns는 물론 제 글쓰기, 책 쓰기 활동을 절제하고 절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목사님과 인격적으로 소통하면서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고뇌해 보겠습니다."
차 교수는 이 약속을 지켰는가?
4. 중복과 표절은 다르다
차 교수는 본인이 저술한 주석의 성격상 꼼꼼한 인용 표기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책들 역시 출발점은 학자들이 밝혀낸 전문적인 '지식'을 기초로 하지만 저자가 나름의 소화와 재구성을 통해 참조나 인용 표기 없이도 충분히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출판상의 효용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차 교수에게 묻고 싶다. 차 교수는 본인의 말대로 "나름의 소화와 재구성을" 했는가? 아니면 뭉텅이로 남의 글을 베꼈는가? 다른 학자가 인용한 글까지 본인의 글처럼 막무가내로 사용하지 않았는가?
주석이라는 책은 그 성격상 다른 학자의 책과 많은 내용이 중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용이 중복되는 것과 표절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해외 학자들의 주석을 보면 다른 학자들의 주석과 많은 내용이 중복되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걸로 표절 시비가 없다. 차 교수 말대로 저자가 "나름의 소화와 재구성을" 했고, 인용 표기를 했기 때문이다.
5. 사과한다 그러나 책임은 못 진다?
차 교수는 교육부에서 각 학교에 내려보낸 훈령과 학회와 대학의 위원회 규정을 언급하면서 비밀 준수의 원칙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렇다고 그 당사자의 오류를 바깥으로 떠들면서 그 한 가지 건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를 조장하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교육부의 훈령이나 각 학교의 위원회 규정은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거의 학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저술한 논문에 표절이 있어도 5년만 지나면 문제 삼지 않는다. 심지어 저술한 책의 경우에는 표절 심사 대상이 아닌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훈령이나 규정은 학술 논문이 아니라 저술한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표절로부터 보호하고, 그 피해를 구제할 방법이 전무한 것이다. 아무리 20년에 저술한 책이라 하더라도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면, 그 책은 20년 전의 책이 아니라, 현재의 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표절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 신학 서적 표절 반대 운동이다. 이 운동의 취지를 모르지 않으면서 저런 말로 호도하는 차 교수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차정식 교수는 작년 8월에 있었던 '표절과 한국교회'라는 포럼에서 본인과 나란히 발제한 일이 있다. 그때 주 발제자로 오셨던 연세대의 남형두 교수님은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2015. 2. 27.)에서 이렇게 말했다.
"표절을 해서라도 내용이 좋으면 평가를 받는 게 그동안의 학계 풍토였다. 그러다 보니 학문 기성세대 중에서는 누가 표절에서 자유롭냐고 역공을 하거나, 당시엔 표절 기준이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얘기다. 조선 시대에도 학자들은 표절을 비판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표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끄러운 행위였다. 그런데도 차 교수는 성서주석편집위원회의 집필 규정을 거론하면서 본인의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고, 그것이 2007년의 교육부 연구 윤리 규정에 어긋나는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 말이 교묘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편집위원회의 집필 규정에 각주를 줄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표절을 하라는 지시였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건 차정식 교수 본인과 출판사가 표절의 공범이라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로, 2007년의 교육부 훈령 이전에는 표절이라는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단 말인가? 남형두 교수님 말씀대로 "우리나라가 그렇게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차 교수는 본인이 본문 주를 달아 놓았기 때문에 "그나마 그 본문 주를 창구로 하여 이 책의 참조·인용 표기가 얼마나 꼼꼼한지를 이 목사님이 사냥하며 탐색할 수 있었"다는 말까지 한다. 헛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자신이 허술하게 달아 놓은 본문 주 덕분에 내가 표절을 잡아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장자(莊子)의 거협(胠篋) 편에 보면 당대의 유명한 도적인 도척이 도둑의 다섯 가지 덕목에 대해 설파하는 장면이 나온다. 도척은 "도둑이 훔치러 들어갈 때 재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는 것을 도둑의 성(聖)이라 하고, 훔치러 들어갈 때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을 도둑의 용(勇)이라 하고, 훔치고 나서 나올 때 뒤에 나오는 것을 도둑의 의(義)라 하고, 도둑질을 할지 말지 잘 판단하는 것을 도둑의 지(知)라 하고, 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도둑의 인(仁)"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서 차정식 교수는 표절하면서 나중에 추적할 수 있도록 흔적을 남겨 주었으니, 그 덕목은 어디에 속할까?
차정식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작년에 자신의 로마서 주석이 5쇄를 찍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다. 이제는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사과는 이상한 해명과 변명 구석구석에 처량하게 박혀 있을 뿐이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개정판을 내겠다는 말이 전부다. 그리고 그 한질을 나에게 주겠다고 한다. 고맙지도 않고 반갑지도 않다. 나는 처음부터 차 교수에게 강사문 교수님의 본을 따르라고 부탁했다. 그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당부를 드린다. 당신이 인정한 그 문제 많은 책을 절판하시라. 5쇄를 찍은 것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축하받을 게 아니라 용서를 빌어야 한다. 차 교수의 회개가 영화 밀양에 나오는 살인범의 회개 같지 않기를 바란다. 굳이 성경 구절을 들이밀지 않겠다. 신약성서를 전공한 학자로서 본인이 배우고 익힌 바대로 회개하시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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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하 목사 "차정식 교수 <로마서> 주석도 표절"
평소 표절 문제에 쓴소리…논란 불거지자 입장 발표 "고의 아니나 미흡한 점 있었다"
기자명 최승현 기자
승인 2016.01.07 17:24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대한기독교서회의 100주년 기념 성서 주석 시리즈 중 <로마서> 1,2권을 저술한 한일장신대학교 차정식 교수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는 1월 5일부터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에 차정식 교수의 표절 의심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차정식 교수는 평소 표절에 대해 강연과 칼럼, SNS 등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왔다. 지난해 8월 교회개혁실천연대⋅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청어람ARMC 주관으로 열린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에 학자로 나온 차 교수는 '학술 논문 표절의 현실과 개선 방안' 부분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 신학계의 표절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서로 봐주고 감싸 주는 분위기에 익숙하다 보니 대강 넘어가려는 문화가 있다"며 한국 신학계에 만연한 논문 표절 문제를 지적했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졌던 2013년에도 차 교수는 '표절 의도성을 확인할 증거'라는 글을 썼다. 그는 "무단 인용의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 남발된 경우라든지, 한 사람의 한 자료가 아니라 복수의 저자가 생산한 복수의 자료를 도배하듯 접속시켜 놓은 경우는 우발적인 실수나 순간적인 태만이 아니라 '작심하고' 남의 글을 도둑질하기로 명백히 '의도한' 증거로 봐야 옳다"면서, 오정현 목사의 표절은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성하 목사는 차정식 교수가 표절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를 현재 5건 공개했다. 찰스 D. 마이어스 주니어나 존 D. 갓세이 등의 학자 글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하 목사가 공개한 주요 의심 대목은 이렇다.
이성하 목사 "차정식 교수 <로마서> 주석도 표절"
평소 표절 문제에 쓴소리…논란 불거지자 입장 발표 "고의 아니나 미흡한 점 있었다"
기자명 최승현 기자
승인 2016.01.07 17:24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대한기독교서회의 100주년 기념 성서 주석 시리즈 중 <로마서> 1,2권을 저술한 한일장신대학교 차정식 교수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는 1월 5일부터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에 차정식 교수의 표절 의심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차정식 교수는 평소 표절에 대해 강연과 칼럼, SNS 등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왔다. 지난해 8월 교회개혁실천연대⋅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청어람ARMC 주관으로 열린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에 학자로 나온 차 교수는 '학술 논문 표절의 현실과 개선 방안' 부분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 신학계의 표절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서로 봐주고 감싸 주는 분위기에 익숙하다 보니 대강 넘어가려는 문화가 있다"며 한국 신학계에 만연한 논문 표절 문제를 지적했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졌던 2013년에도 차 교수는 '표절 의도성을 확인할 증거'라는 글을 썼다. 그는 "무단 인용의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 남발된 경우라든지, 한 사람의 한 자료가 아니라 복수의 저자가 생산한 복수의 자료를 도배하듯 접속시켜 놓은 경우는 우발적인 실수나 순간적인 태만이 아니라 '작심하고' 남의 글을 도둑질하기로 명백히 '의도한' 증거로 봐야 옳다"면서, 오정현 목사의 표절은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성하 목사는 차정식 교수가 표절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를 현재 5건 공개했다. 찰스 D. 마이어스 주니어나 존 D. 갓세이 등의 학자 글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하 목사가 공개한 주요 의심 대목은 이렇다.
▲ 이성하 목사가 '신학 서적 표절 반대'에 올린 차정식 교수 자료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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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하 목사는 차 교수의 <로마서> 1·2권 집필 기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표절 분량이 매우 많을 것이라고 했다. 차정식 교수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출판사의 독촉 탓에 1년 만에 1,100페이지 분량의 주석을 썼다"는 글을 올렸다. 대한기독교서회 성서 주석 시리즈의 한 저자는 "나에게도 1~2년만에 책을 써 달라고 하길래, 그렇게는 못한다고 기간을 늘려 달라고 했다. 주석을 쓰려면 보통 4~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책 서문부터 많은 양을 발견했다며, 앞으로 계속 자료를 공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루 만에 입장 낸 차정식 교수 "인용 표기 부족했지만 창조적 해석 제시"
차정식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대한기독교서회 성서 주석 시리즈 저자들의 공동 성명 발표를 주선해 왔다. 왕대일 교수(감신대), 천사무엘 교수(한남대)가 추진한 공동 성명에 차정식 교수가 합세하면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갑자기 왜 차정식 교수가 나서느냐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저명한 김 아무개 교수의 이름이 거론됐다. 차정식 교수가 김 교수에게 "이성하 목사가 당신 책에서 심각한 분량의 표절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를 덮지 않으면 이 목사가 자료를 공개할 테니 이번 공동 성명에 이름을 같이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본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성하 목사가 본인의 책 중 무엇을 문제 삼는지도 모르는데 성명부터 낼 수 없어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 속에 차 교수가 섭외한 교수들 중 일부도 '난 문제없다고 생각하는데 사과한다고 하면 나도 표절로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며 발표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성명 발표는 무산됐다. 공동 성명 발표 무산에 따라 이성하 목사는 그동안 중단했던 교수들의 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왕대일 교수(감신대)였고, 두 번째가 차정식 교수였다.
차정식 교수는 이성하 목사가 자료를 공개해 논란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뉴스앤조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입장을 발표했다. 차 교수는 '가급적 각주를 달지 않는다'는 대한기독교서회 편집 지침에 따라 인용 자료에 본문 주 처리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방법이 미흡해 지적받을 만한 점이 적지 않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다만 본인 고유의 창조적인 해석을 제시하면서 고군분투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차정식 교수는 독자들에게 제안도 했다. 그는 '신학 서적 표절 반대' 등 표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기존 학자들의 저서를 뒤지며 부실함을 까발려 고발하는 것을 뛰어넘어, 이성하 목사를 비롯한 소장 학자들이 그 뜨거운 에너지를 모아 연구에 매진해 기존 학자들의 부실함을 극복할 만한 주석서 및 훌륭한 연구 저서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표절 논란이 특정인에 대한 섣부른 낙인찍기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적인 기관에서 공정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인격적인 배려를 해 달라고 했다. (차정식 교수의 입장 전문)
이성하 목사는 차 교수의 <로마서> 1·2권 집필 기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표절 분량이 매우 많을 것이라고 했다. 차정식 교수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출판사의 독촉 탓에 1년 만에 1,100페이지 분량의 주석을 썼다"는 글을 올렸다. 대한기독교서회 성서 주석 시리즈의 한 저자는 "나에게도 1~2년만에 책을 써 달라고 하길래, 그렇게는 못한다고 기간을 늘려 달라고 했다. 주석을 쓰려면 보통 4~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책 서문부터 많은 양을 발견했다며, 앞으로 계속 자료를 공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루 만에 입장 낸 차정식 교수 "인용 표기 부족했지만 창조적 해석 제시"
차정식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대한기독교서회 성서 주석 시리즈 저자들의 공동 성명 발표를 주선해 왔다. 왕대일 교수(감신대), 천사무엘 교수(한남대)가 추진한 공동 성명에 차정식 교수가 합세하면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갑자기 왜 차정식 교수가 나서느냐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저명한 김 아무개 교수의 이름이 거론됐다. 차정식 교수가 김 교수에게 "이성하 목사가 당신 책에서 심각한 분량의 표절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를 덮지 않으면 이 목사가 자료를 공개할 테니 이번 공동 성명에 이름을 같이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본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성하 목사가 본인의 책 중 무엇을 문제 삼는지도 모르는데 성명부터 낼 수 없어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 속에 차 교수가 섭외한 교수들 중 일부도 '난 문제없다고 생각하는데 사과한다고 하면 나도 표절로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며 발표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성명 발표는 무산됐다. 공동 성명 발표 무산에 따라 이성하 목사는 그동안 중단했던 교수들의 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왕대일 교수(감신대)였고, 두 번째가 차정식 교수였다.
차정식 교수는 이성하 목사가 자료를 공개해 논란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뉴스앤조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입장을 발표했다. 차 교수는 '가급적 각주를 달지 않는다'는 대한기독교서회 편집 지침에 따라 인용 자료에 본문 주 처리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방법이 미흡해 지적받을 만한 점이 적지 않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다만 본인 고유의 창조적인 해석을 제시하면서 고군분투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차정식 교수는 독자들에게 제안도 했다. 그는 '신학 서적 표절 반대' 등 표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기존 학자들의 저서를 뒤지며 부실함을 까발려 고발하는 것을 뛰어넘어, 이성하 목사를 비롯한 소장 학자들이 그 뜨거운 에너지를 모아 연구에 매진해 기존 학자들의 부실함을 극복할 만한 주석서 및 훌륭한 연구 저서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표절 논란이 특정인에 대한 섣부른 낙인찍기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적인 기관에서 공정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인격적인 배려를 해 달라고 했다. (차정식 교수의 입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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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주석 논란에 답함
표절 비판자에서 의혹 당사자로…차정식 교수의 변
기자명 차정식
승인 2016.01.07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성서 주석이 표절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같은 시리즈 주석의 '로마서' 부분을 집필한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차 교수가 자신의 입장을 담은 글을 <뉴스앤조이>에 보내왔습니다. 아래에 전문을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
▲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신학부). ⓒ뉴스앤조이 최유리
내가 알기로 '표절'이란 개념은 19세기 헤겔 이후 본격적으로 조형되기 시작한 근대적 발명품이다. 마찬가지로 저작권(copyright)이란 개념도 20세기 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쌍생아 중 한 갈래다. 그 이전에는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회적 의제로 논의된 적이 없었다. 가령 신구약성서와 중간기 문헌, 특히 위경(pseudepigrapha)은 자료 비평의 방법으로 추적하면 오늘날 개념의 표절 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런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저자도 독자도 이를 문제 삼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듯 앞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수명이 30년 정도 남았다면 그 이후 이러한 동시대의 개념들이 전혀 다른 지평에서 논의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유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시대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날 글 쓰고 학문하는 이들의 중요한 윤리적 기준으로 부상한 표절 및 저작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 날로 그 잣대가 엄격해지고 있는 터라 이 시대적 기준에 맞춰 이를 존중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 역시 특별한 창조적 열정이 요구되는 학위논문과 학술 연구 논문, 학술연구 저서, 나아가 문학과 예술의 창작품 등에 대해서는 이러한 기준의 엄격한 적용이 필수적이라고 줄곧 생각하고 행동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을 비껴 나 좀 더 자유로운 글쓰기의 장르와 형식이 엄연히 존재하며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도 무시하지 않았다. 교과서와 각종 교양 도서류, 기독교 신앙 도서와 평이한 개론적 내용을 담은 신학 도서 등에 저런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들이대며 숨통을 조이는 것은 교각살우라고 본 것이다.
이 다양한 글쓰기의 스펙트럼 속에 이른바 성서 주석이란 다소 애매모호한 장르가 자리한다. 이 범주에는 고도의 학술적 주석서로 정평이 난 Hermeneia 시리즈의 주석서부터 각주와 복잡다단한 학술적 쟁점에서 비껴 선 채 공유할 만한 연구의 평균치 내용을 담아내는 평이한 수준의 성서 주해서에 이르기까지 두루 포함되기 때문에 딱히 단 하나의 기준으로 그 글쓰기의 규범을 설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주석 시리즈의 성서 주석은 평신도와 목회자를 두루 겨냥하며 전자보다 후자의 관점을 살려 20년 전에 기획되고 이후 20년에 걸쳐 집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서구 성서학계에서도 이 장르의 복합성을 이제야 주시했는지 최근 이에 대한 학술적 토론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Timothy D. Finlay and W. Yarchin, ed., The Genre of Biblical Commentary: Essays in Honor of John E. Hartley on the Occasion of His 75th Birthday (Oregon: Pickwich, 2015).
2.
얼마 전 '성서 주석 쓰기의 어려움'이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이 글 아래 참조)에서 자세히 밝힌 대로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내 <성서 주석: 로마서>는 1년 내로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최대한의 응집된 에너지를 모아 17년 전에 산출된 책이다.
본문 번역상의 이의에 대한 추가적 설명 용도 이외에는 "가급적 각주는 달지 않는다"는 편집위원회의 집필 규정을 마냥 무시하기 어려웠고1), 그렇다고 참고한 자료를 저자 개인의 심중에만 파묻어 두기엔 찜찜하여 내가 타협책으로 선택한 방식은 간략한 '본문 내주' 방식(본문 안에 참고 자료를 간략한 약호로 표기하고 뒤의 참고 문헌 목록에 자세한 내역을 밝히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포괄적 참조 표기법으로 학술 논문이나 학술 연구 저서에서 흔히 사용하는 각주의 Ibid.(직전 자료를 연거푸 표기하는 방식)나 op. cit.(하나 건너 앞서 인용한 자료를 재차 인용하는 방식)의 빈번한 사용으로 동일한 참조 항목의 촘촘한 반복 사실을 표기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본문의 괄호 안에 연거푸 똑같은 참고 자료를 표기하는 게 성가시고 독자의 가독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괄적인 참조 표기법의 정당성을 살려 관련 자료를 한 차례, 또는 듬성듬성 인용하면서 본문 주 형식으로 처리한 것이 엄정한 학술 논문이나 학술 연구 저서의 인용 및 참조 표기법의 상례에 비추어 미진하거나 모자라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2007년 제정되고 2015년 개정된 교육부의 연구 윤리 규정에 따르면 불만족스러운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
당시 로마서에 대한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산출한 적이 없는 30대 초반의 성서학자로서 일단 내게 익숙한 외국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여 읽고 분석하면서 내 주석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방법론적 미흡으로 인해 지적받을 만한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서론 부분에 해당되는 로마서 연구사나 학문적 논의와 연관된 개론적 지식 부분에서는 그동안 서구학계에서 다루어온 로마서 연구의 진행 사항을 예의 주요 연구서를 통해 광범위하게 참조하면서 그 출처를 본문에 명기했지만 빼곡한 각주로 여러 차례 표기하지 않은(또는 못한) 점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족과 미흡한 점, 현재의 엄격한 기준에 비추어 비정상성으로 지적받을 만한 점에 대해 이 주석서를 구입한 독자 여러분들에게 정중하게 사과드린다.
그러나 1, 2권 도합 1,0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주석서의 본문 주석에는 해외의 유수한 주석서와 연구 논문을 참조하되 기본 분석과 해석의 틀은 내가 고유한 아이디어로 짰고, 그 본문 해석의 내용 역시 보편타당한 지식의 공유 이외에 내 나름의 창조적인 해석을 제시하면서 상당 부분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이성하 목사님이 이 주석서의 미심쩍은 부분을 네뎃 군데 샘플로 보내시면서 확인, 대조를 요구했을 때 내가 답변한 점도 이러한 배경을 깔고 있다. 목회에 바쁘신 분이 학자의 부실한 작업으로 말미암아 신경 쓰게 한 점, 또 현재의 엄정한 학술적 기준에 비추어 미흡한 까닭에 본의 아니게 실망시켜 드린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했고, 당대의 상황에서 본문 주의 표기가 무의미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그나마 그 본문 주를 창구로 하여 이 책의 참조·인용 표기가 얼마나 꼼꼼한지를 이 목사님이 사냥하며 탐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차례 이성하 목사님과의 통화를 통해 이 주석서의 저자 중 일원인 저명한 김 모 교수님과 김 모 목사님을 언급하기에 내가 존경하는 이 분들과 협의하여 포괄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 대화를 시도했다.
김 교수님의 입장은 나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필 당시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원천 기술에 해당하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이론을 각주 등의 참조 표기 없이 인용했다면 당연히 사과해야 하는 반면 수많은 주석가들에 의해 불가피하게 중첩될 수밖에 없는 해석과 분석 내용을 담아내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은 그런 절차 없이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그분의 기본 입장이었다. 물론 어디까지가 대체로 용인될 만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의 범위인지는 해당 경우마다 다르고 복잡하여 성서학자들 사이에 별도의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던 중 이 시리즈의 주석서 집필에 참여한 분들 50명 중에 은퇴하시거나 목회 현장으로 나아간 분들을 제외한 현역 교수 10여 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공통의 입장을 표명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이 소통의 작업을 한 달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 결과 당시의 집필 규정, 주석서란 장르의 애매모호한 특수성, 2007·2015년 연구 윤리 규정에 비추어 부족한 점, 앞으로 재집필과 개정판 생산의 희망적 가능성 등을 출구 방안으로 담아 저자들의 입장을 두루 대변할 발표문을 작성하여 이성하 목사님을 비롯한 독자분들께 성의껏 응답하고자 하였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애당초 문제를 지적받고 사과하고 절판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개인적인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응답하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쉬운 길이었겠지만, 이는 학계 전체의 문제로서 응분의 책임을 지면서도 미래 지향적이고 생산적인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문건이 완성된 직후 그것을 해당 출판사의 공지사항 코너에 올리는 방안이 무산되었고, 이 사안을 최초 보도한 <뉴스앤조이> 언론사에 보내기로 의견이 모아지던 마당에 '집필 규정에 따라 집필한 주석서가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강경한 입장이 막판에 돌출하여 상황이 교착되기에 이르렀다.2) 그만큼 각 저자들이 자신의 주석서에 근거한 상황 인식과 이 사안에 대한 입장이 다양하고 상이하다는 증거가 되겠다. 내가 볼 때 각 저자에 따라 절판을 거론할 만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아예 학문성을 살려 새로 집필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또한 개정판을 내는 것이 합리적인 사례도 있는 듯하며, 저자 각자의 학문적 양심과 주관적 소신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경우도 꽤 많은 듯했다. 내 경우는 본문 주로 성글게 처리한 참조 표기를 각주로 보다 촘촘하게 재처리하고, 지난 17년간 Robert Jewett의 로마서 주석서를 비롯해 좋은 외국의 주석서가 몇 권 출간되었을 뿐 아니라 국내의 로마서 관련 논문도 수십 편이나 나온 터라 해외의 새로운 연구 성과까지 수렴하여 개정판을 내면 미래지향적으로 훨씬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다. 하여 내 몫의 비용 부담을 포함하여 그 가능성을 출판사와 타진하였고, 이성하 목사님께도 그 개정판이 나오면 가장 먼저 한 질 증정하겠다고 밝혀 나름의 공감을 얻어 낸 바 있다.
3.
그나저나 이성하 목사님의 고충 어린 노고를 통해 성서신학계는 큰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판에 그가 가위를 들고 홍길동처럼 나타나 선지자 노릇을 해 온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한다. 때로 그의 겸손한 어투에 비해 종종 비아냥거리는 듯한 조롱조의 글투가 거슬리긴 했지만 그 역시 학자들의 부실함에 비추어 충분히 감내해야 할 현실이려니 생각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내가 향후 편집 책임을 맡은 <한국기독교신학논총>에서는 그 연구 윤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재구성하고, 신학 연구자들의 자성과 다짐을 표기하는 선언문을 포함시키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조심스럽게 '표절 근본주의'의 위험도 보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세상에 나오는 책이 모두 학술 연구서가 아니고 교양서와 교과서, 또 애매모호한 주석서 장르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진대, 한 가지 글쓰기 기준으로 모든 신학책을 한 통속으로 규정하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출판사가 앞으로 평신도를 위한 교양 도서, 신앙 도서, 평이한 신학 도서를 내기가 어려워지지 않겠냐고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책들 역시 출발점은 학자들이 밝혀낸 전문적인 '지식'을 기초로 하지만 저자가 나름의 소화와 재구성을 통해 참조나 인용 표기 없이도 충분히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출판상의 효용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서 주석서·주해서 양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여 차제에 서구의 경우처럼 Hermeneia에 비견될 만한 고도의 학술적인 주석서에서 각주 없이 평범하면서도 연구의 현 단계를 폭넓게 반영하는 내용의 목회자·평신도용 주해서에 이르기까지 이 장르의 세분화와 그 형식적 고유성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제안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기존 학자들의 저서를 뒤지며 부실함을 까발려 고발하는 전략적 필요성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이성하 목사님을 비롯한 현재 소장 학자들이 그 뜨거운 에너지를 모아 뛰어난 연구에 매진하여 기존 학자들의 부실함을 극복할 만한 주석서 및 훌륭한 연구 저서를 산출하여 축적해 나가는 것이 여전히 학문 식민지의 기지촌을 방불케 하는 척박한 이 땅의 신학 연구에 생산적인 기여를 하는 지혜로운 방안이 아닐까 싶다. 이성하 목사님 또한 이러한 열정을 재구성하여 그의 신약학 박사 학위논문을 조속히 완성, 부실한 한국 성서학 아카데미에 도전적인 연구와 학구적인 자극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만이 나를 포함하는 이 땅의 부실한 신학자들의 결핍을 극복하고 우리 신학계를 창발적으로 세워나가면서 내가 우려하는 '표절 근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산출하여 부실한 나무를 대체할 만한 더 좋은 나무임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사명과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공유돼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신학 표절 반대' 사이트가 동종 교배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관련 의혹의 예문에 대해 다양한 이견이 피력되고 수용될 수 있도록 탄력적인 운영의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료된다. 가령, 김정우 교수님의 의혹 제기 지문에 대하여 김 교수님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일일이 다 반박하고 나름의 정당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그는 성서 주석서(biblical commentary)의 장르에 대한 논문을 읽고 공부하면서 조만간 이와 관련된 본인의 논문을 발표할 계획이 있다. "거의 번역 수준" 운운하는 대목에서 이견이 분분하지만 학자들이 공연히 끼어들어 이전투구 판을 만들며 피로감을 자초할까 대개 저어하는 분위기 같다. 순수한 열정조차 과도한 경직성에 휘둘려 애당초 의도와 달리 쉽사리 정치권력화하고 섣부른 낙인 찍기로 변질되는 사례를 우리는 지금도 주변에서 숱하게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또 다른 관점의 지적들이 두루 인용, 참조되어 활달한 대화와 겸손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면 이 사이트가 공론의 장으로 유용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몇몇 특정 개인의 배타적 블로그 차원으로 고착돼 끼리끼리 의기투합하여 강파른 '자기 의'의 분출로 영향력 과시하기, 일단 까발려 '의혹'으로 망신 주기, 내 기준대로 내 말대로 회개하라고 강요하기 수준에서 겉돌 우려도 없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2007년 이후 생산된 특정 학자의 특정한 학술적 글과 책이 (신학자의 경우뿐 아니라 다른 영역도) 표절 의혹이 심각하다고 여겨지면 그 학자가 속한 대학의 관련 위원회에 이를 통지함으로써 공적인 기관에서 이 문제를 공정한 절차를 밟아 처결할 수 있도록 해당 학자에 대한 인격적인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혹의 사실 여부나 정당성 차원과 무관하게 의혹의 언급만으로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 이 논란의 뇌관을 너무 경솔하게 건드려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명예 훼손이 초래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부의 표절 심사 규정 및 일반 학회·대학의 관련 위원회 규정에서도 이 점을 적시하여 표절 대상이 될 만한 학자의 담론을 심사할 때 그것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확정 발표되기 직전까지는 비밀 준수(confidentiality)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이런 기준에 근거하여 이전의 다른 학위논문을 90% 정도 베껴 낸 학위논문, 다른 학자의 연구 논문을 자기 저서에 아무런 출처 표기 없이 전재한 경우, 외국의 논문을 거의 번역하다시피 재탕하여 자신의 논문으로 대체한 경우 등등 몇 가지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접하여 예의 심사 절차를 밟도록 다룬 적이 있다. 물론 그 결과는 일부 솜방망이 징계 이외에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그 당사자의 오류를 바깥으로 떠들면서 그 한 가지 건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를 조장하지는 않았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로 글을 쓰게 되어서 이성하 목사님과 여러 독자 여러분들께 거듭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1) 문제를 제기하는 일각에서는 이런 규정 따위는 당연히 무시해 버리고 그 집필 제안에 응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소급 화법으로 주장하는데, 그건 당시 상황뿐 아니라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좀 무리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발생될 걸 미리 예견했더라면 집필을 거부하는 것이 현명했겠지만, 17년 전 내가 당면한 상황에서는 주석서의 장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물론 그 표절 시비의 가능성에 대한 예견이나 우려는 전혀 없었다.
2) 이로 인해 황망해할 겨를도 없이 미국으로 급하게 출국해야 하는 일정으로 이성하 목사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이 또한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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