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4

出典リスト | 植民地朝鮮の日本人宗教者

出典リスト | 植民地朝鮮の日本人宗教者



①金光植『韓国近代仏教의 現実認識』민족사、1998 
②강은애「근대 한국 선의 부흥과 경허」『근대 한국 종교문화의 재구성』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06 
③박재현『한국근대불교의 타자들』푸른역사,2009 
④金淳碩『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경인문화사, 2003/2004 
⑤金淳碩「근대 불교 종단의 성립 과정」『불교 근대화의 전개와 성격』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불학연구소편,2006 
⑥韓相吉「개화기 사찰의 조직과 운영」『불교 근대화의 전개와 성격』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불학연구소편,2006 
⑦한동민「사찰령 체제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불교 근대화의 전개와 성격』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불학연구소편,2006 
⑧中西直樹『植民地朝鮮と日本仏教』三人社、2013 
⑨エィミ・ツジモト『満州天理村「生琉里」の記憶 天理教と七三一部隊』えにし書房、2018 ✓
⑩韓皙曦『日本の朝鮮支配と宗教政策』未来社1988/1996 
⑫高崎宗司『植民地朝鮮の日本人』岩波新書、2002 
⑬『朝鮮総督府官報』 
⑮『仏教大年鑑』仏教タイムス社、1969 ✓
㉕青野正明『植民地朝鮮の民族宗教―国家神道体制下の「類似宗教」論』法蔵館、2018
㉖『宗教雑件綴』1926
㉘一戸彰晃『曹洞宗は朝鮮で何をしたのか』皓星社、2012
㉙神社新報社『一神社人の見た朝鮮・満州の神社と文化ー手塚道男小論集―』、2015
㉚『神社人事関係綴』1942:7から
㉜工藤 英勝「神道各教派の朝鮮布教-総督府統計資料にもとづいて-」『宗教研究』73−4[通323]
㉝『仏教者の戦争体験』仏教タイムス、2015

2020/09/13

알라딘: [전자책] 이미령의 명작 산책

알라딘: [전자책] 이미령의 명작 산책



[eBook] 이미령의 명작 산책 - 내 인생을 살찌운 행복한 책읽기  pdf

이미령 (지은이)상상출판2018-06-07



종이책 페이지수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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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 진행자 이미령이 천 권의 책 중에서 골라낸 명작 산책. 저자가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2000여 권의 책을 읽어오면서 그중에서 벗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명작을 고민 끝에 골라 엮은 책이다. 짧은 단편소설에서부터 무거운 사회과학서, 2천 년 전 쓰인 고전에서부터 최근의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 이력이 녹아 있다.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에 관한 글을 쓰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저자는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하다가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게 되었고, 급기야 매일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책 관련 일을 한 세월이 5년이다.



이 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네 번, 저자가 YTN 라디오에서 소개한 책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분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어냈던 원고들을 다시 다듬고 상당 부분 새로 집필했다. 시간의 제약으로 방송에 미처 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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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rologue ‘나는 왜 읽는가’에 답하기 위해



1 찬란하게 서글픈 인생

지금 당신 곁을 지나는 기차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무엇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포기의 순간》, 필립 베송

외투 한 벌에 담긴 쓸쓸한 실존

《외투》, 니콜라이 고골

아주 오래된 지인의 전화

《밤 미시령》, 고형렬

찬란하게 슬픈 생명의 법칙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41년 만의 해후, 41년 동안의 의문

《열정》, 산도르 마라이

시인의 흥정이 어떤가요, 몸이여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어느 종교학자의 인생 찾아가기

《마음의 진보》, 카렌 암스트롱

냉소 가득 찬 현실의 따뜻한 대안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2 청춘을 지나오며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틱낫한의 사랑법》, 틱낫한

가난한 아버지의 눈물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로버트 뉴턴 펙

나를 유혹하는 베를린의 극장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박철호

지장보살의 지팡이를 흔들면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 강소연

천천히 소리 내어 읽게 만든

《꽃신》, 김용익

책 한 권이 안겨주는 인생의 행복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나는 더 이상 흑맥주를 마시지 못하네

《안젤라의 재》, 프랭크 매코트

서서히 차오르는 달 같은 인생

《달의 궁전》, 폴 오스터

자기연민의 무게를 줄이세요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톰 버틀러 보던

세상의 별관을 밝히는 서점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컴퍼니》, 제레미 머서

인생이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당신, 기꺼이 흰 띠를 맬 수 있는가

《달인》, 조지 레너드



3 생명의 숨소리를 듣다

야생의 웃음소리를 잃어버린 헛똑똑이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생명을 상품으로 생각하는 우리

《즐거운 불편》, 후쿠오카 켄세이

나는 흑돔이를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다

《개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베이컨을 굽지 못한 아침

《도살장》, 게일 A. 아이스니츠

결국 인간이 동물보다 못하다는 불편한 진실

《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의자 세 개를 가진 자연주의자의 삶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알래스카가 들려주는 자연의 이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집과 여자와 돈 없이 살아가는 쾰른 대학의 노숙자

《거지 성자》, 전재성



4 오만한 세상에 훅을 날리며

사막에 피는 노란 생명의 꽃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그 참, 뻘쭘한 총질을 했네 그려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세상의 균형을 위해 죽어야 하는 사람들

《적절한 균형》, 로힌턴 미스트리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았나요

《블랙 라이크 미》, 존 하워드 그리핀

그때 세상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남영동》, 김근태

오만한 세상에 훅을 날리다

《알리, 아메리카를 쏘다》, 마이크 마커시

큰 의사는 생명의 칼을 든다

《닥터 노먼 베쑨》, 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연탄불 양은냄비에 커피를 끓이며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임수진

강물에 던질 마지막 빵이라도 있다면

《소금꽃나무》, 김진숙

칼뱅은 한 인간을 살해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굴뚝으로 사라진 생명에 대한 예의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5 뭉클하게 마침표를

촛불이 켜지기 전에 음식을 주문하세요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되르테 쉬퍼

늙은 무사, 울음을 터뜨리다

《살다》, 오토가와 유자부로

이것이 내 유일한 안식일 줄이야

《기싱의 고백》, 조지 기싱

정치와 신발은 사원 밖에 벗어두라

《비노바 바베》, 칼린디

부모의 임종을 겪어야 진정한 자식

《도쿄타워》, 릴리 프랭키

사슴을 바라보는 샘물처럼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늙은 아버지의 홀로서기

《아버지의 부엌》, 사하시 게이죠

여인숙을 떠나듯, 마지막 무대에서 내려서라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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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9 몇 권의 책을 읽어야 인간이 변화할 수 있을까요? 쉬지 않고 천 권에 가까운 책을 읽어대자 그제야 틈이 생겼습니다. 꽉 막힌 사고가 트이고 사색이 일렁이며 나와 다른 자에 대한 여유 있는 관조의 틈이 생겼습니다.

- <‘나는 왜 읽는가’에 답하기 위해> 중에서



P. 37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맘에 들지 않아도 ‘이게 나’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저항해도 부정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인생만사 덧없음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다시 팽팽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내게서 도리언 그레이를 느낍니다. 조화가 아름답다고 해도 생명이 없으니 감상할 거리가 못됩니다. 생명은 피었다 시드는 법입니다. 탱탱한 꽃봉오리도 아름답지만 누렇게 변색하고 꽃잎을 떨어뜨리며 바싹 말라가야 꽃의 아름다움이 완성됩니다. 늙음과 쇠멸의 과정까지가 ‘생명의 일생’입니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찬란한 슬픈 사실입니다.



P. 86 책과 관련한 가장 멋진 질문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몇 권 읽었느냐, 하루에 얼마나 읽느냐입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내 눈은 두 개뿐인지라 더 읽고 싶어도 더 읽을 수 없으니 나는 그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책을 읽을 뿐입니다. 사실, 책이란 녀석은 수량으로 계산될 수가 없습니다. 이따금 한 달 혹은 한 해에 수십 수백 권을 읽은 책벌레 아무개를 소개하는 기사를 만나면 그 엄청난 식탐(!)에 기가 질립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는지를 자랑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대식가라 할지라도 사람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양은 빤하기 때문에 아귀처럼 먹어치운 음식들은 대부분 그 사람의 신체에 노폐물로 쌓이거나 화장실에서 쓸데없이 배설될 뿐입니다.



P. 159 우리는 아침 햇살의 투명하고 맑은 기운을 단 10초라도 맘껏 쐰 적이 있었을까요? 나무로 만든 문지방을 검게 물들이는 빗줄기의 흐느낌에 귀를 기울이며 밤을 보낸 적이 있었을까요? 눈이 내리는 소리, 바람에 낙엽이 얇은 몸뚱이를 뒤척이는 소리, 저수지 얼음이 봄볕에 갈라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적이 언제였던가요? 어느 사이 인간이 주인행세를 하게 된 자연. 하지만 그는 그런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나약하며 무지한 존재인지를 일러주었으며,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 맛있듯이 뼈 가까이의 검소한 생활도 멋진 것”이니, 문명이 만들어낸 무수한 잡동사니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우주의 광대한 울림을 만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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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미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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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다. 사람들은 불교가 어렵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어보니 오히려 재밌기만 했다. 그래서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경전번역가에서 경전이야기꾼으로 타이틀을 바꿔 쓰려고 고민 중이다.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일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고, 고익진 교수님에게 사사한 것은 더 할 수 없는 값진 보약이었으며, 수많은 사찰에서 불교강의를 하면서 대중과 만나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공부 밑천을 삼고 있다.

2020년 현재는 BBS불교방송에서 [멋진 ... 더보기

최근작 :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시시한 인생은 없다>,<이미령의 명작 산책> … 총 2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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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 진행자 이미령이



천 권의 책 중에서 골라낸 명작 산책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읽어야 할 명작 추천.

천 권의 책 중에서 골라낸 명작을 천천히 음미하다



나는,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뉴미디어가 보급되면서 공공장소든 사적 공간에서든 책 펼쳐 든 사람을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책을 읽는 행위는 시간이 많이 든다. 돈도 들고 정성도 든다. 잘 읽으면 ‘남는 장사’지만, 허투루 읽으면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다. 그런데 그 아까운 시간을 투자 왜 책을 읽을까? 기술이 발달하고 삶의 양식이 다변화하는 시대.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를 연마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스스로와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독서는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은 독서가 당위를 잃어가는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달팽이처럼 느린 호흡을 가진 책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작가 자신을 책에 투영해 말을 걸어온다.



2000권의 책 중에서 골라낸 명작 48편

이 책은 저자가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2000여 권의 책을 읽어오면서 그중에서 벗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명작을 고민 끝에 골라 엮은 것이다. 짧은 단편소설에서부터 무거운 사회과학서, 2천 년 전 쓰인 고전에서부터 최근의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 이력이 녹아 있다.



새벽 2시, 이 시각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장 앞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내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로 와서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책등에 갖다 댑니다.

여기저기서 소곤소곤 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각에 수천 년을 잠들지 않고 수다를 떠는, 지성과 인문과 해학과 농담이 가득 차 있는 곳. 나는 책들을 어루만집니다. 책은 이 작은 인간의 불면을 치료하고 깊은 안식을 줍니다.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에 관한 글을 쓰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불교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종교서적 이외의 책들에 시간을 할애하는 건 좀 헛짓이라는 생각도 있어서 늘 마음속에 ‘책을 읽고 싶다’는 갈망만을 품은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내 말과 행동에서 그런 갈망이 튀어나왔나 봅니다. 어느 사이 주변 사람들이 책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권하였고, 좋은 책 있으면 방송에서 소개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 많은 책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덜컥 그런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하다가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게 되었고, 급기야 매일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책 관련 일을 한 세월이 어느 사이 10년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책 읽는 것이 어쩌다 업이 되어버린 저자가 때 없이 경계 없이 읽어 내려간 책들은 때로 가슴을 치고 때로는 삶을 위로하며 “깊은 안식”을 준다. 책은 그렇게 그 누구도 아닌 읽는 이 자신이 되어 삶을 차분히 마주하는 거울이 되어준다.



책으로 만나는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에 관한 글을 쓰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저자는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칼럼을 쓰기 시작하다가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게 되었고, 급기야 매일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책 관련 일을 한 세월이 5년이다. 이 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네 번, 저자가 YTN 라디오에서 소개한 책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분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어냈던 원고들을 다시 다듬고 상당 부분 새로 집필했다. 시간의 제약으로 방송에 미처 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기

이 책은 크게 5장으로 나뉜다. 우리 인생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정신적 성장을 북돋우며, 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본다. 또한 청춘과 노년의 삶의 시간을 더듬으며 기울기를 맞추고자 애쓴다.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책만큼 탁월한 프리즘이 있을까? 저자는 불교연구가이자 역경가로서 철학적 깊이를 드러내며 자연과 생태에 대해, 사회와 세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드러낸다.



“사실, 책이란 녀석은 수량으로 계산될 수가 없습니다. 이따금 한 달 혹은 한 해에 수십 수백 권을 읽은 책벌레 아무개를 소개하는 기사를 만나면 그 엄청난 식탐(!)에 기가 질립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는지를 자랑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에게 가장 멋진 질문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라고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몇 권 읽었느냐가 아니고, 하루에 얼마나 읽느냐라고 말한다. 꾸준하게 책을 눈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고, 손에서 가까이 있어야 책을 통해 세상과 대화할 수 있고, 사람의 깊은 심연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을 뒤흔들고 살찌운 명작들

몇 권의 책을 읽어야 인간이 변화할 수 있을까? 저자는 “미친 듯이 읽어댔고, 읽다가 책에 체하고 짓눌린 적도 많았”다고 할 만큼 독서광이다. 무겁고 어두운 주제의 책을 읽으면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갔고, 유쾌한 책을 읽어갈 때면 괜히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쉬지 않고 천 권에 가까운 책을 읽어대자 그제야 틈이 생겼다고 말한다. 꽉 막힌 사고가 트이고 사색이 일렁이며 나와 다른 자에 대한 여유 있는 관조의 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책은 “무지한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기도 하였고, 콘크리트보다 더 딱딱하게 굳은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어루만져주기도 하였으며, 딱 내 눈알 크기밖에는 보지 못하는 세상을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도록 동공을 활짝 열어주기도 하였”다고 말한다. 이 모든 감상들은 책을 ‘필요’로 찾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로 받아들인 사람의 이야기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책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책이 심장을 찌르는 느낌, 삶이 온통 뒤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던 시간들이 이 한 권의 책 안에 차분히 담겨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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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령의 명작 산책 / 이미령 새창으로 보기

■ 에세이와 서평 사이...



책의 제목은 <이미령의 명작 산책>이다. 동국대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중 신입생 필독도서 감상문 평가 조교로 2년을 일하며 소위 '고전' 또는 '필독서', '권장도서 목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책과 멀어지게 하는지를 뼈져리게 느끼고 '정말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북 칼럼니스트이다. 번역과 강의를 틈틈이 하고 있으며 YTN 라디오 북 클럽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2018.11.30일까지 진행을 하였다. 월~금요일까지 매일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1994권까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꽤 오래 진행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명작 소개라고 해서 소위 '베스트셀러' 들에 대한 에세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내가 거의 읽지 않았던 책 소개였다. 시, 소설, 자기 계발서, 사회과학서, 인문고전 등 필자의 가슴을 크게 울렸던 작품 48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까지의 서평은 다소 딱딱하고 교훈적인 것이 대다수였다. 이 책에는 필자의 삶의 궤적이 책 속에 스며들어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안타깝기도 했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구도자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의 사유의 깊이는 한 지역, 한 종교, 한 이념에 제한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렇다고 너무 진진하거나 어둡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반듯하며 따스하고 어머니가 저녁 잠자리에서 자녀에게 읽어주는 베드타임 스토리 같다. 문체는 어떠한가. 모나지 않으면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기도 하고 동물까지도 어루만져 주는 모성애가 마음을 적신다. 철학자도 종교가도 아닌 칼럼니스트로서 사유의 폭은 가히 짐작하지 못한다. 얕은 듯 깊은 듯 솔직 담백하게 써 내려간 이 책에는 내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베스트셀러' 들이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들이 들어있다.

- 접기

초록별 2020-05-04 공감(3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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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명작 산책》 책을 읽고 삶을 생각하다



"책을 읽는 행위는 시간이 듭니다. 돈도 들고 정성도 듭니다. 잘 읽으면 '남는 장사'지만 허투루 읽으면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까운 시간을 들여서 나는 왜 책을 읽을까요?"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 등의 방송에서 책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방송인 이미령의 독서 에세이 <이미령의 명작 산책> 서문을 읽다가 깊이 공감한 문장이다. 나쁜 영화, 나쁜 음악이 있듯이 책 중에도 나쁜 책이 있다. 책을 나름대로 깐깐하게 고르는 편인 나도 이따금 머리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들인 돈과 시간이 너무나 아까운 책을 만날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만난 '좋은 책'이 더 귀하고 사랑스럽고,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책을 읽을 때마다 꼬박꼬박 리뷰를 남기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읽은 2천여 권의 책 중에 엄선하고 또 엄선한 48권의 책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중에는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같은 문학 작품이 있는가 하면,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틱낫한의 <틱낫한의 사랑법>, 후쿠오카 켄세이의 <즐거운 불편>, 다니구치 지로의 <개를 기르다> 등 시, 수필, 사회과학, 만화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의 책도 있다. 저자가 불교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일까. 선정한 책의 주제가 주로 인생, 철학, 명상, 생명, 환경 등인 점도 눈에 띈다.







칼린디가 쓴 <비노바 바베>라는 책이 있다. 비노바 바베는 1895년 인도에서 태어나 198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인도를 개혁하기 위해 한 몸을 불사른 사회개혁가이다. 바베는 인도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토지헌납운동'을 제안했다. 가난한 사람을 자신의 막내아들(정확히는 여섯째 아들)로 여기고 자기 재산의 일부를 나누어주라는 것이다(땅이 없는 빈민과 천민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땅을 나누어준다는 점에서 조선의 실학자들이 제안한 정전제나 여전제가 떠오른다).







바베는 또한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향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베 자신은 말년에 모든 공식적인 활동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에게 네 가지 자유를 허락했다. 첫째는 외적인 행위로부터의 자유(일하지 않는다), 둘째는 책으로부터의 자유(책 쓰지 않는다), 셋째는 공부로부터의 자유(공부하지 않는다), 넷째는 가르치는 일로부터의 자유(가르치지 않는다)다. 바베는 어떤 생각과 어떤 경험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었을까. 저자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늘었다.







- 접기

키치 2018-04-25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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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







"참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최근 쓴 리뷰들은 별도의 제목을 달기보다는 책 타이틀을 그대로 옮겨적곤 했다. 감흥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책 제목보다 더 좋은 말을 찾지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령의 명작 산책의 부제목을 부끄럽게나마 '참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라고 붙인 것은 그렇게해서라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봐주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편집자도 아니고, 마케터도 아니면서 그저 독자 중 한 사람이자 지나친 독서가 내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멀리하려 했던 사람 중 하나였던 독자로서 말이다.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 이력에도 나와있지만 '천천히 읽기'에 대해 자신의 체험을 전하며 권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책 이야기도 당연히 본문에 실려있다. 시작부터 천천히 읽기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은 '지나친 독서'로 오히려 삶의 균형을, 소신을 상실한 듯한 내게 '천천히 읽기'만큼 크게 다가온 말이 없어서다. 빠르게 읽으면, 무언가에 쫓기듯, 저자 이미령님의 말씀처럼 남에게 보이기 위해, 뒤쳐진 삶을 살지않기 위해,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나를 아는 지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위해 읽던 독서가 너무 피곤했다. 많은 책을 읽었고, 그때마다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만큼 감동했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나는 왜 책을 읽고 이 책을 추천하려하는가. 뿐만아니라 과연 나는 그 '좋은'책들을 읽고 삶을 변화시키기라도 하였는지 지속적으로 자문하고 탄식하고 자아비판에 이르는 과정을 최근 6개월동안 반복하고 있었다.

















책을 권해주는 책, 독서법을 가르쳐주는 책, 좋은 책을 설명해주는 책들은 수도 없이 많은데 나는 단연 이 책을 제일로 칩니다. 책을 바라보는 내 시각을 교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덕분에 나는 인생을 보는 시각도 좀 수정했습니다. 88쪽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소개하며 적었던 위의 말을 이 책, <이미령의 명작 산책> 을 소개할 때 하고 싶다. 평소에도 책 추천을 지인들에게, 한때 독서지도를 받았던 학생분들이나 이용자분들의 질문에 '타인의 독서일기'는 가급적 지양하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선입견, 편견이 오히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책의 이점을 반감시킬 수도 있고,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무나 많은 추천도서에 자신이 정작 읽고자 하는 책들을 읽지 못하는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저자의 생각이 가득담겨 있고, 자기체험을 통해 책의 진가를 농밀하게 적어두었지만 그것이 무한예찬이나 교만이 아니라 '갇혔던 생각'을 깨는 도끼가 되어주고, 타인과 동물을 비롯한 생명을 편견없이 바라보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지나친 생명존중이 오히려 생명경시를 불러오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들이 들어있었고, 너무나 괴로워서 읽기를 꺼려했던 책들을 지나치게 몰입하기 보다는 저자가 독자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덤덤하게 적어내려간 저자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한 친절함이 이 책에 담겨져 있었다. 여성불자이지만 가톨릭교도인 내가 이마만큼 열린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면 좀 더 이해되기 쉽지 않을까.

















총 48권의 명작과 원작자들의 생애, 그리고 관련 서적과 연극등을 포함하자면 1년을 꽉 채워 이 책을 충분히 우려내며 감상하기에도 좋을 것 이다. 리뷰 본문중에 각자의 독서계획을 타인의 조언으로 인해 방해받을 수 있는 우려가 이 책에서는 통하지 않는 까닭은 아마도 다음의 문장으로 답할 수 있을 듯 싶다.







남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건 상대방을 전폭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좋은 점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혔고, 제 말만 진리라고 들이대고 있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는 말이지요. 193쪽







독서에서 멀어지려 했던 제맘을 너무 가깝게 당기지도 않고, 아예 놓지 않을 적정한 수준으로 조율해준 <이미령의 명작 산책>, 그야말로 참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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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2018-04-27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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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명작 산책_ 나는 왜 읽는가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가 들려주는 명작 이야기!





   지난해에 읽은 책들을 쭉 세어 보니 무려 백 하고도 세 권을 더 읽었더라고요. 특별히 많이 읽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숫자에 무척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던 단조로운 일상에 책이 주는 즐거움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상상할 수 없었던 낯선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겠지요. 뭐,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는 애초에 '이야기'라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책에 이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나에게 반드시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내가 들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그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라고요.





   <YTN 자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로 무려 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다던 이미령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은 '무지한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기도 하였고, 콘크리트보다 더 딱딱하게 굳은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어루만져주기도 하였고, 딱 내 눈알 크기 밖에는 보지 못하는 세상을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도록 동공을 홀짝 열어주기도' 하였다고요. 쉬지 않고 '천 권에 가까운 책을 읽어대자 그제야 사색이 일렁이고 나와 다른 자에 대한 여유 있는 관조의 틈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독서의 양이 삶의 질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자는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 울림이 컸던 책들, 나의 벗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을 고민 끝에 골라 그것으로 하여금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저마다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 싶었나봅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어느 지점을 함께 해준 책에 대한 진솔한 독서 일기이자, '나는 왜 책을 읽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담아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이 커지고 사색을 일렁이게 하는 지성들과의 만남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총 48편의 명작을 크게 다섯 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습니다. 찬란하지만 서글픈 인생을 관조하고, 청춘의 시간을 더듬어가기도 하며, 자연이 들려주는 생명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오만한 세상에 뒤통수를 날리기도 하고 인생의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는 지점에 이르러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찬란하게 슬픈 생명의 법칙을 다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를 쫓는 인간의 단상을 그린 <고도를 기다리며>, 자연주의자의 삶을 다룬 <월든>과 같은 명작들은 꽤나 익숙하지만 그 외에는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살짝 망설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간 저는 독서론에 관한 책이라 하면 약간의 편견이 있던 터였습니다.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에는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입니다. 저의 생각을 비교판단하기보다 그저 저자의 생각대로 작품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러한 저의 고민은 기우에 그쳤습니다. 마치 라디오 방송에서 사연을 들려주듯 저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책의 한 단편들은 굳이 읽어보지 않았다하더라도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으니까요.









   여러 책들 중에서 외투 한 벌에 담긴 쓸쓸한 실존을 다룬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라는 작품이 퍽 인상에 남습니다. 관청의 9등 문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너무나 낡아서 걸레로도 쓰지 못할 자신의 외투가 더 이상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칼날 같은 한파를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솜씨 좋은 재단사는 더 이상 수선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그의 외투를 보며 이참에 새로운 외투 한 벌을 마련하라고 권했어요. 외투 한 벌을 마련하는 일이란 그의 봉급을 다 털어 넣어야 할 정도로 사치와 다름없었지만, 그는 돈을 아끼고 아껴서 결국 아주 멋진 외투를 마련합니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고급 천을 써서 맵시가 나는 이 외투를 입는 순간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날개가 달린 것처럼 황홀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한밤중에 광장에서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맙니다. 그는 곧 혈안이 되어서 외투를 찾아 나서지만 상심만이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이내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하고 혀를 찰 법도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게 되는 절망감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쓸쓸한 실존, 그 덧없으면서도 가장 버거운 삶의 무게! 우리는 저마다 그런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그 쓸쓸한 실존.



아까끼가 평생에 단 한 번 장만한 고급 외투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신분들의 눈에는 허섭스레기로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령이 되어버린 아까끼가 자기 몸에 딱 맞는 관리의 외투를 빼앗은 뒤 사라지고 말았다는 내용은, 인간 희로애락의 무게와 부피는 누구에게나 아주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요. 더 가지려고 머리를 굴리고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작품입니다. / '외투' 중에서 29p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며 살면 명예나 체면이 상실되는 시기에 쉽게 감정이 상하여 나약해지며",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을 가지고 살게 되므로 일상이 단조롭고 권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그의 정체성"일 수도 있으며, 이렇게 남이 만들어낸 정체성에 휘말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늘 자신을 설명해주어야 하고", 이런 삶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중에서 102p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역시 단연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교개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종교개혁에 관해 배우기를, '신과의 소통이 소수 특권층에게만 허락되었다고 고집하던 세력들에게 분연히 맞서 피로써 쟁취해낸 자유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를 주도한 칼뱅이 사실은 구교의 교황이나 황제보다 더 무시무시한 힘으로 종교의 자유를 외치던 시민들을 자신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사상의 자유도 빼앗았으며 그야 말로 '칼뱅이 법이요, 법이 칼뱅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철저히 배척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어느 무명의 신학자 한 사람이 칼뱅의 종교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막 스무 살을 넘긴 미셀 세르베투스는 참으로 맹랑하고 무모할 정도로 칼뱅에게 신학적 견해를 묻는 대범함을 보였습니다. 이에 칼뱅은 하늘 아래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를 비판한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은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라고요. 오늘날이라고 이와 다를까요. 우리는 누구나 의견을 낼 권리가 있고 다양한 견해를 포용해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때때로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을 때 불쾌감을 느끼거나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통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백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 230p



   이렇듯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명작을 엄선하여 이를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볼 것을 권합니다. 그것은 결국 '책 읽기'라는 행위를 필요로 하겠지요. <천천히 읽기를 권함> 편에서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행복하고, 천천히 읽어가는 동안 행복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책을 덮으면서 행복하면 됐지 더 바랄 것이 뭐 있을까요' 라고 하였듯 그저 책을 가까이 하고 일상처럼 여기면 되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며 힘들 때는 위안이 되고,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그저 감동을 느낍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 덕분에 꽤 오랜만에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그런 소중한 계기를 선물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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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2018-05-0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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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명작 산책 - 인생을 살찌우는 책 뷔페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 진행자 이미령 책 칼럼니스트가 읽어봤던 수많은 책들 중 울림 컸던 책들, 벗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을 모은 명작 뷔페 <이미령의 명작 산책>.







책을 이야기하는 책, 서평 모음집입니다. 인생, 청춘, 생명, 세상, 노년의 삶에 대한 명작 48권을 이미령 저자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에 언급된 책 대부분 제목조차 낯선 책이 많아 숨은 명작을 발견하는 맛으로 읽었답니다. 제목은 들어봤지만 읽지 못한 고전 명작보다는 조금 젊은 명작 분위기가 납니다.







이미령 저자는 직업으로서 책을 대하지만 책 읽기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책을 읽는다는 저자. 책을 읽다 마주친 "천천히 읽어도 된다." 한 문장으로 독서인생의 나침반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고, 편견이 깨지는 과정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의 내밀한 책 리뷰는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서 나오게 이끈 책들에 관한 감상문입니다.



 감성에 너무 치우치지 않고 책 그 자체의 이야기와 깨달음 비율이 적절해 저는 오히려 만족스러웠어요. 리뷰를 읽다가 필이 와서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는 책도 몇 권 건져올렸습니다.





문학 비중이 크지만 자기계발서도 한 권 눈에 띄네요. 저자 스스로도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던 편견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책에 소개할 정도라니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생명과 자연에 관한 분야의 책은 제 관심사 분야와 맞물려있지만 역시 읽어보지 못한 책이 수두룩했습니다. 한 편 한 편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을 만큼 이번 파트에 소개된 책은 딱 취향저격!

흔히 말하는 '재미'있는 책은 솔직히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평소 읽던 분야가 아니면 리뷰 읽는 것조차 관심 없을 수도 있겠지만, 왜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지 이해될 정도로 울림 주는 책이 한가득입니다.



책을 이야기하는 책 중에서도 저자만의 스타일이 확고히 드러나는 <이미령의 명작 산책>. 한결같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었습니다. 세상이 내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기연민에 빠져있을 때...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독서는 결국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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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캣 2018-04-24 공감(1) 댓글(0)


알라딘: [전자책] 붓다 한 말씀 - 초기경전에서 찾은 삶의 힌트 이미령 (지은이) 2014

알라딘: [전자책] 붓다 한 말씀



[eBook] 붓다 한 말씀 - 초기경전에서 찾은 삶의 힌트  epub

이미령 (지은이)불광출판사2014-02-27
종이책 페이지수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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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 관계, 돈, 욕망에 대해 붓다는 어떤 말을 했을까? 
인기 프로그램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이자 번역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가 2,600여 년 전부터 전해오는 붓다의 말씀인 초기경전 니까야의 내용을 사랑, 관계, 돈, 욕망이라는 인간 삶의 키워드에 녹여낸 책이다.

책은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을 제시하고, 올바르게 돈을 벌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사랑은 ‘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등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붓다 한 말씀』은 다양한 판본과 수십 권에 달하는 초기경전의 방대한 양에 압도되어 경전 읽기를 포기했거나, ‘경전의 대중화’에 갈증을 느꼈던 독자들이 좀더 편안하게 붓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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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붓다를 만나는 목요일 저녁 7시


여섯 방향으로 읽는 인간관계

초기경전 니까야의 탄생 / 
이른 새벽의 만남 / 
더러움에 물든 네 가지 행위 / 
여섯 가지 파멸의 문 / 
그 좋은 술을 마시지 말라고? / 
유마처럼 술을 마신다면 / 
게으름vs나태 / 
친구인 자를 알아보는 법 / 
여섯 방향의 상징 / 
부모, 동쪽의 존재 / 
용돈 줄게, 법문 들으렴 / 
스승, 남쪽의 존재 /
 배우자, 서쪽의 존재 / 
벗, 북쪽의 존재 / 
고용인, 아래쪽의 존재 / 
수행자, 위쪽의 존재



돈은 나쁜 것일까?

재물의 속성 / 
부자가 되는 한 가지 원리 / 
세속에서 얻는 네 가지 행복 / 
샘을 퍼올려야 하는 이유 / 
열심히 벌어서 아낌없이 써라 / 
돈보다 무서운 빚 / 선업의 가난



사랑을 보는 관점

사랑이라는 아이러니 / 
사랑은 하되 빠지지는 마라 / 
최상의 벗은 아내이다 / 
사별을 앞둔 부부의 마음 / 
다음 생에도 당신과 함께



세상의 꼴을 살피다

계급이 인간성을 말해주는가 / 
신의 입에서 태어난 계급 / 
가문을 보지 말고 행위를 보라 / 
세상의 시작 / 인류 최초의 맛 / 
먹을거리가 생기다 / 쌀의 탄생 / 
남녀의 탄생 / 
귀차니즘의 발명 / 
‘내 것’과 ‘네 것’의 개념이 생기다/ 
거짓말의 기원 / 
권력자의 등장 / 
다양한 삶의 방식이 생겨나다



붓다로 가는 길

지금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 / 
32상 80종호 / 
위대한 사람의 두 가지 미래 / 
위대한 사람의 서른두 가지 특징 / 
붓다의 발바닥에 숨은 뜻 / 
단정하고 통통한 몸매에 숨은 뜻 / 
사람을 포용하는 방법 / 
배우고 가르치는 존재 / 
지혜는 물음에서 나온다 / 
성난 눈으로 보지 마라 / 
내 편을 만들려면 / 
붓다는 사람을 아는 분 / 
결코 물러서지 않는 사자처럼 / 
뛰어난 미각, 건강의 상징 / 
부드러운 시선의 힘 / 
입으로 하는 보시 / 
옳은 직업의 예 / 참 또렷한 성불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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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항목이 흥미롭습니다. 존중하라. 경멸하지 말라. 즉 하인 다루듯 하대하지 말며, 품위 있고 아름다운 호칭으로 아내를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는 아무리 값비싼 장식품으로 제 몸을 치장해도 부엌을 장악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집안 모든 일의 실제 권한을 아내에게 맡겨야 하는 것도 남편이 지켜야 할 사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이런 존중과 배려에 힘입어 가정 일을 능숙하게 잘 처리하고, 일가친척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모이게 하며, 남편이 벌어온 재산을 잘 지키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여섯 방향으로 읽는 인간관계> 중에서  접기

고용된 사람의 능력에 맞게 일을 주고 적절한 임금과 식사를 줘야 하며, 질병과 관련해서는 고용인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보장을 해주고, 일하는 사이에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용주의 의무입니다. 돈벌이, 밥벌이 차원을 넘어서서 능력에 맞게 일을 배당하고, 충분히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항목이 눈에 띕니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연가, 병가, 특별 휴가 등은 2,600여 년 전 붓다께서도 권장했던 항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섯 방향으로 읽는 인간관계> 중에서  접기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 분야의 순서를 보면, 재산을 모으고 지키는데 게으르지 말라는 말이 첫 번째입니다. 붓다께서는 “재산? 그런 거 집착하지도 말고, 모으려고 하지도 마!”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지만, 정작 재가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에는 부지런히 노력해서 돈을 모으고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푼 두 푼 성실하게 모으고, 그렇게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루어가는 이 사바세계가 그리 무의미한 것만은 아님을 경전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돈은 나쁜 것일까?> 중에서  접기

『앙굿따라 니까야』는 재산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일러주는 몇 안 되는 경전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번 돈을 자기 재산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다섯 등분으로 나누는데, 첫째, 자신과 직계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 씁니다. 둘째, 친구와 동료들에게 씁니다. 셋째, 재난을 대비하는 데에 씁니다. 이것은 마치 세금을 내거나 보험을 들거나 하는 데에 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널리 보시합니다. 이것은 먼 일가친척이나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 그리고 조상들에게 베푸는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수행자에게 보시를 합니다. 이것은 보시하는 자에게 행복한 결과를 안겨주니 장차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불러온다고 합니다.

<돈은 나쁜 것일까?>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미령 (지은이)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다. 사람들은 불교가 어렵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어보니 오히려 재밌기만 했다. 그래서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경전번역가에서 경전이야기꾼으로 타이틀을 바꿔 쓰려고 고민 중이다.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일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고, 고익진 교수님에게 사사한 것은 더 할 수 없는 값진 보약이었으며, 수많은 사찰에서 불교강의를 하면서 대중과 만나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공부 밑천을 삼고 있다.

2020년 현재는 BBS불교방송에서 [멋진 ... 더보기

최근작 :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시시한 인생은 없다>,<이미령의 명작 산책> … 총 2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붓다 한 말씀』은 인기 프로그램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이자 번역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가 2,600여 년 전부터 전해오는 붓다의 말씀인 초기경전 니까야의 내용을 사랑, 관계, 돈, 욕망이라는 인간 삶의 키워드에 녹여낸 책이다. 책은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을 제시하고, 올바르게 돈을 벌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사랑은 ‘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등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붓다 한 말씀』은 다양한 판본과 수십 권에 달하는 초기경전의 방대한 양에 압도되어 경전 읽기를 포기했거나, ‘경전의 대중화’에 갈증을 느꼈던 독자들이 좀더 편안하게 붓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도와준다.



세속적인 시대에 더욱 빛나는 붓다의 카운슬링

사랑, 관계, 돈, 욕망에 대해 붓다는 어떤 말을 했을까?




붓다의 원음 또는 친설이라 불리는 초기경전 니까야를 옛이야기처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이 책은 ‘불교와 붓다’ 하면 생각나는 ‘금욕’에 대해 논하거나, ‘고요하고 착한 삶’에 대한 아포리즘을 담은 책이 아니다. 동국역경원에서 수많은 경전을 번역하고 윤문하는 일을 했으며, 현재 다양한 매체에 경전 관련 글을 쓰는 저자가 ‘초기경전의 내용이 힘든 삶에 비타민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집필한 『붓다 한 말씀』은 인간 삶의 보편적인 고민거리에 맞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붓다의 지혜를 전한다.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스승과 제자, 고용주와 고용인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관계 맺기의 괴로움과 그 본질을 들추고, 재산을 모으고 지키는 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는 붓다의 말씀을 전하는가 하면, 권력과 계급, 경쟁과 사유화 등 세상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인간 욕망의 역사를 설명하며, 욕망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정체를 내밀하게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7년 동안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
같이 읽고 함께 공감한 초기경전 속 생활의 지혜

『붓다 한 말씀』은 평범한 사람들이 7년 동안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모여 초기경전을 함께 읽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7년 전 80명으로 시작한 초기경전 읽기 모임은 모임이 끝났을 때는 10여 명만이 남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슴을 치는 경전 구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의 지식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들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모임을 이어왔다. 저자와 함께 경전을 읽은 사람들은 경전을 덮으면 “배춧값이 비싸네”, “전기세가 올랐네” 하는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였으며, 더군다나 초기경전이 붓다의 초기 말씀을 담은 것이라는 정도만 알고 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5부 니까야를 완독한 결과

 “내가 생각하는 붓다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 원전으로 읽어봐야겠다”, “다른 경전과 연계해서 다시 읽어보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니까야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경전이라는 텍스트가 개인 개인에게 녹아들어간 본보기이며, 이처럼 각자만의 언어로 말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이 독서의 완결이자 경전 읽기의 완결이라고 말한다. 경전은 지금 이 시대에서 붓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며, 초기경전 니까야를 읽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붓다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니까야를 읽는다는 것은 붓다의 목소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일이다”

책을 통해 전해 듣는 붓다의 지혜는 친근하다 못해 웃음을 자아낸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술 한두 잔에 하루치의 시름을 풀기 마련인데, 붓다는 술이란 재산을 잃게 되는 첫 번째 요인이며, 불화와 병이 생기고 불명예가 따르는 것은 물론 뻔뻔스러워진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자는 돈을 모으는 것보다 먼저 돈이 새어나가는 ‘음주’부터 자제하라고 충고한다. 또한 친구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며 항상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 말만 앞세우는 사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 나쁜 짓을 할 때 함께하는 사람을 멀리하라고 조언한다.

사랑에 대한 붓다의 말씀은 어떠할까? 무엇보다 붓다가 “결혼해, 결혼해”라고 부추기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붓다는 오히려 변하기 마련인 사랑을 붙들고 있는 자를 두고 “대지를 파헤쳐 없애버리겠다고 하는 사람, 갠지스 강을 횃불로 죄다 말려버리겠다고 덤비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할 정도로 말한다. 또한 사랑과 결혼은 현실이므로 사랑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빠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이른다. 이처럼 『붓다 한 말씀』을 통해 독자는 초기경전 속 가장 인간적인 구절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시대에 더욱 빛나는 붓다의 카운슬링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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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전자책]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알라딘: [전자책]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eBook]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epub

이미령 (지은이)샘터사2017-11-09
종이책 페이지수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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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불교계에서 다독가이자 애독가로 알려진 북칼럼니스트 이미령이 작품 속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에 대해 풀어낸 독서 에세이. '우리는 왜 문학을 읽는가?'라는 물음에 저자는 '위로'라는 화두를 붙들고 문학 속 인물을 좇는다.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통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으며, 그들이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사유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삶의 고통과 대면하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웃고 우는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유하는 힘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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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_작고 여린 것들을 위한 책 읽기 / 
세상에서 한 걸음 비켜선 시인의 눈물 /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간격, 인내, 책임, 세속을 살아가는 세 가지 힌트 / 
손해만 계산할 줄 알았던 인생을 향한 슬픈 연주 / 
누구와 싸우는지 모르는 우리 모두는 미생의 범부 / 
쉽게 열광하고 쉬이 잊어버리는 세상을 향한 처절한 용서 / 
어둠 속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을 찾다 / 
익명의 낙원 잃고 휘청거린 하루의 기록 / 
도긴개긴 인생, 반짝이는 구두가 자존심 세워줄까 / 
갑작스레 닥친 재난에 대처하는 자세 / 
무지가 낳은 죄, 알고 지은 죄보다 가벼울까 / 
아는 것과 본 것, 삶을 뒤바꿀 엄청난 괴리 / 
‘착함’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저항’하는 도둑으로 살아남기 / 
자연을 파괴하는 오만한 현실에 사랑의 자리는 없다 /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을 향한 어느 필경사의 외침 / 
사랑이란 변할 순 있지만 늙진 않는 것 / 
빚과 소비의 굴레에 묶인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 / 
폭력으로 무장한 권력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 
흥청거리던 불빛은 영원한 사랑의 신호였다 / 
고독한 양치기 사내가 빚어낸 푸른 생명 / 
진저리 치고 소름 돋는 시대지만 누군가는 기록해야 했다 / 
탄광촌 소년의 잔인했던 어느 하루 / 
쪼그라든 세상에서 만난 운명의 지배자 / 
범죄를 저지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집요한 추적 / 
출가자의 걸음에 담긴 맨발의 서정 / 
돈보다 중요한 사람대접의 가치 / 
믿을 수 없는 현실과 믿고 싶은 이야기 / 
모순과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 무고한 앵무새를 죽이다 / 
뱀장어와 잔등불에 담긴 증오와 연민 / 
불행이 넘쳐나는 시대에 ‘행운아’가 되는 법 / 
불확실한 희망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 / 
에이즈보다 무서운 것, 근거 없는 편견과 두려움 / 
눈보라 속 살아남은 생명은 우리가 잃어버린 희망이었다 / 
가장 낮은 소리로 재구성한 역사의 현장 / 
에필로그 _작고 낡은 가죽가방에서 꺼낸 문학 이야기 / 
부록 _인용한 책



책속에서

그의 걸음은 비틀거릴 테고, 그런 만큼 그 입에서 나온 말과 손끝에서 빚어낸 글은 처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함부로 쏟아내지 않고 몸 안에서 어르고 달래다 쏟아낸 언어라서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우리는 잊었던 서정을 회복합니다. -‘세상에서 한 걸음 비켜선 시인의 눈물’ 중에서

세상에는 슬픔이 한가득입니다. 그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누가 더 슬픈지 경쟁이라도 하듯 슬픔의 절정을 향해 내달립니다. 상대도 슬프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내 슬픔의 레인에서 달리기에만 골몰합니다. 그러다 문득 옆을 돌아보고서 또 다른 슬픔의 주자를 발견할 때, 비로소 슬픔의 달리기는 끝이 납니다. “당신도 그랬구나!” 하는 진한 파동이 느껴질 때 슬픔의 세상에는 빛이 비칩니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중에서  접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세속을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타성에 젖은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 관계에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그러면서 불행하다고 절규합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조언합니다. 조금 거리를 둘 것. 꾸준할 것.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것. 이렇게만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만의 장미꽃을 보게 될 거라고 말이지요. - ‘간격, 인내, 책임, 세속을 살아가는 세 가지 힌트’ 중에서  접기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그 어느 것도 내게 남지 않습니다. 쫙 벌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모든 것이 그렇게 흩어져가는 것, 그게 인생인 것이지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인 줄은 알지만 자꾸 주먹을 쥐어봅니다. 움켜쥐려는 이 마음. 인생을 손해와 이익으로만 따져보려니 이 목숨이 갑자기 가련해집니다. 그걸 알아차리기가 이렇게도 어려울 줄이야……. -‘손해만 계산할 줄 알았던 인생을 향한 슬픔 연주’ 중에서  접기

착각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판단입니다. 착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착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인생이 지금과는 달라질지 모릅니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당신은 보았는가?” “사실인가?”

그렇다고 대답하기에 앞서 한 번쯤은 자신의 발밑으로 시선을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는 것과 본 것, 삶을 뒤바꿀 엄청난 괴리’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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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미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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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다. 사람들은 불교가 어렵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어보니 오히려 재밌기만 했다. 그래서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경전번역가에서 경전이야기꾼으로 타이틀을 바꿔 쓰려고 고민 중이다.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일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고, 고익진 교수님에게 사사한 것은 더 할 수 없는 값진 보약이었으며, 수많은 사찰에서 불교강의를 하면서 대중과 만나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공부 밑천을 삼고 있다.

2020년 현재는 BBS불교방송에서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하고 있고, 다양한 불교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불교교양대학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며 책읽기 모임과 경전 읽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은 《이미령의 명작 산책》,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붓다 한 말씀》, 《그리운 아버지의 술 냄새》,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수행입문》 등이 있고, 공저로는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절에 가는 날》 등이 있으며, 동국역경원에서 낸 《대당서역기》, 《직지》를 비롯한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시시한 인생은 없다>,<이미령의 명작 산책> … 총 2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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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북칼럼니스트 이미령의 인간적인 책 읽기

불교계에서 다독가이자 애독가로 알려진 북칼럼니스트 이미령이 작품 속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에 대해 풀어낸 독서 에세이. ‘우리는 왜 문학을 읽는가?’라는 물음에 저자는 ‘위로’라는 화두를 붙들고 문학 속 인물을 좇는다.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통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으며, 그들이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사유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삶의 고통과 대면하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웃고 우는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유하는 힘에 대해 말한다.



존재하지 않는 타인에게 위로받는 시간

불교학을 전공하고 글과 강의로 불교 세계를 알리는 일을 하는 저자는 ‘삶이 고통’이라는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작품 속 인물들이 맞닥뜨린 삶의 고통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저자가 불러낸 문학 속 인물의 자화상은 우리가 잊거나 외면한 인간 본연의 고통과 맞닿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범부의 속성,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현대의 익명성에 묻힌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 등 문학이 그려낸 삶의 다양한 모순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다.

저자는 “책 속 세상에는 영웅도 악한도 모두가 저마다 자기 사연을 늘어놓습니다. 거인처럼 여겨졌던 이들에게도 탄식이 쏟아지고, 위선으로 똘똘 뭉친 악인에게도 수줍음이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자에게도 교활한 눈빛이 숨어 있고, 명석한 철인에게도 생명에 대한 무지가 서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책 속 세상이 하나같이 ‘작고 여린 존재’의 울림과도 같단다. 비록 작품 속 인물이지만 그들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과 마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들에게 위로가 된다. 이 책은 “각박한 일상을 살아가느라 딱딱하게 굳은 감성을 어루만지고 엄숙한 철학을 논하느라 지쳐버린 이성을 부드럽게 녹여내는” 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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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책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타인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알고 보면 ‘참으로 작고 여린 존재감’들이기 때문이지요.

쎄인트saint 2017-10-20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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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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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 새창으로 보기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윌리엄 포크너」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서점 장바구니는 또 그 책에서 나온 책들로 가득 찬다. 예전에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 를 읽고 나서 그 책에 나온 거의 모든 책들을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그 저자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경험을 똑같이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땐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책은 도끼다》에 나오는 책들은 거의 다 모르는 책들 투성이었지만 무작정 따라샀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도 고전이라는 것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는 사모으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에 그때 사모은 책들 중 아직 절반도 다 못 읽었다. 하지만 그동안 다양한 책에 관심을 가진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는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익숙했기에 반가웠다. 물론 읽은 책보다는 어디선가 들어봤거나 집에 소장중인데 안 읽는 책이라던가 줄거리만 알고 있는 책들이 훨씬 많긴 했지만, 저자가 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각 책들에 대한 줄거리를 워낙 재미나게 소개를 해놓아서 안읽었지만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는 저자 이미령이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감상을 모아놓은 책이다.  총 서른권이 넘는 책들에서 느낀 감상들을 읽으면서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저자와 느낀점을 비교해보고, 안 읽은 책에 대해서는 정보를 얻고 어떤 책인지 가늠해보면서 읽을 수 있어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책장엔 어떤 책이 꽂혀있는지 항상 궁금한 법이니까.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이라는 책에 대한 내용이었다. 쉰 다섯살의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는 고독하게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다. 가족도 없이 혼자 황무지 같은 벌판에 살아가는 그에게 희망이란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도토리 100개를 가지고 나가서 쇠꼬챙이로 집어 황무지 땅 깊숙히 심는 일이다. 그 땅은 자신이 소유한 땅도 아니며, 누구의 땅인지도 알 수 없지만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으면 적어도 만개쯤은 장차 떡갈나무가 되지 않겠냐며 매일 그 일을 지속한다. 그를 지켜보는 책 속 화자는 노인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후 시간이 지나고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정신없는 전쟁을 겪는다. 화자는 전쟁터에서 정신없는 5년을 보내고 다시 그 동네로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온 순간 대기의 알수 없는 빛깔을 느끼게 된다. 바로 노인이 심어놓은 도토리 들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싹을 틔워 푸른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중에도 노인은 멈추지 않고 도토리를 심었으며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 도토리들은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를 천연 떡갈나무 숲으로 변모시킨다.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자 자연이 되살아나며 다시 시원한 냇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마을에 정착하여 채소를 키우고 꽃을 가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도 이 거대한 숲이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노인도 말하지 않는다.



이 내용을 보면서 《나무를 심은 사람》을 직접 읽은 것이 아님에도 가슴 찡한 기분이 들었다. 그 노인은 아무 희망 없는 현실에서 장차 몇십년 앞을 내다보며 현실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나무를 심어 누구도 생각지 못한 숲을 만들어냈고, 또한 그것을 자신이 해냈다고 떠벌리지도 않는다. 심지어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하니 더 놀라웠다. 노인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수많은 도토리를 심었을까. 당장에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에 대해 꾸준한 노력을 지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실제로 눈에 보이는 푸른 숲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웠다.



예전에 고양이에게 주려고 귀리를 작은 화분에 심어놓고는 하루에 한번씩 들여다보며 왜 싹이 안나냐며 성질급한 불평을 해댔던 기억이 난다. 몇일 뒤 싹이 올라오자 신기하다며 물을 주며 키운 것도 잠시, 몇일 지나자 너무 많은 풀들이 작은 화분에서 왕성하게 자라자 어찌할바를 모르다 결국에는 몇 일 못가 시름시름 노랗게 변하더니 다 죽고 말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 조차도 꾸준히 관리하고 보살피는데에는 노력이 필요한 법인데 몇 십년 뒤의 미래를 바라보고 꾸준히 나무를 심은 그 노인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보다 훨씬 더 대단해 보인다. 그동안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아 읽어보지 않은 책이었는데 조만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시대에 걸친 경험과 희노애락이 들어있다. 어릴 때는 동화를 읽으며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는 문학과 드라마, 영화등 을 통해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어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그건 타인의 삶에서 내 삶에 대한 공감을 얻거나, 희망을 얻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타인의 삶과 그의 생각에 가장 깊숙이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인 듯하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사람들은 이야기 속에서 저마다의 공감점을 찾아 자기 삶에 견주어본다. 그러면서 위로를 얻기도 하고, 공감하며 함께 울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박진감 넘치는 책을 좋아했다면 요즘엔 사람의 심리를 깊이 잘 파고드는 이야기가 좋아진다. 책을 읽으면서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땐, 책에 대한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차피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어보며 감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라는 제목도 참 절묘하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살면서 슬픔과 고난을 겪기 마련이고, 수많은 책 속에서 나와 비슷한, 혹은 나보다 훨씬 심한 슬픔도 마주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문학은 타인의 슬픔을 마주하기 위해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슬픔을 대하는 법, 인생이라는 슬픔에 어떻게 대항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림냥 2017-10-22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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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새창으로 보기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_이미령 (지은이) | 샘터사 | 2017-09-13-


책에 관한 책이나 책읽기(독서라는 단어보다는 ‘책읽기’라는 표현이 좋습니다)에 대한 책읽기는 좀 더 특별합니다. 우선 나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책을 읽고 책과 연결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동지애를 느낍니다. 아울러 지은이가 소개하는 책들의 목록을 훑으면서 나도 읽은 책, 앞으로 만나보고 싶은 책들을 추려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나도 제법 책을 읽는 편인데, 지은이가 소개하는 책들 중에 아직 못 읽은 책들이 많군요. 지은이가 특별히 이 책에 ‘문학’작품들을 주로 소개하는 탓입니다. 나는 인문, 역사, 자연과학 쪽 책들을 많이 읽다보니 상대적으로 문학작품 읽기를 소홀히 했지요. 앞으로 문학 작품들을 많이 만나봐야겠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 이미령은 언제부터인가 책이 인생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책 한권을 읽을 때마다 사색의 키가 한 뼘씩 커지는 즐거움에 젖어 늘 책을 가까이하고 있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살고 있다고 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소개하면서 못된 하숙집 주인 밑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코제트를 등장시킵니다. 이 어린 소녀의 일상엔 ‘두려움’이라는 어두움이 늘 함께합니다. 이때 그 어두움 속에서 장발장의 힘 있고 따스한 손길을 느낍니다. 빅토르 위고는 여덟 페이지에 걸친 코제트의 두려움을 서술하다가 단 두 문장으로 정리해버립니다. “인생의 어떤 일에나 그것에 순응하는 본능이 있는 법이다. 코제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것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재물을 베푸는 일입니다.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 지갑을 여는 일이지요. 두 번째는 좋은 말을 들려주는 일입니다. 힘을 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어 기운을 북돋아주는 일, 그릇된 쪽으로 나아가는 이를 붙잡고 선량하고 온전한 길로 나아가도록 간곡하게 일러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생명체가 늘 품고 사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일이지요.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는 타이틀은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인식되는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라는 단편 소설을 소개하는 글에 올린 소제목입니다. 카버의 최근 작품으로는 《대성당》이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단편은 내가 아직 못 읽어봤네요. 느닷없이 찾아온 슬픔과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다룬 이야기라고 합니다. 살아가며 때로는 짓누르는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두문불출하며 바깥세상과 스스로 단절상태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요.

행복한 삶의 원형 같던 앤과 하워드라는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그들에겐 여덟 살이 되는 사랑스런 아들이 있습니다. 앤은 아들을 위해 동네 빵집에 케이크를 주문합니다. 평소 말이 없는 뚝뚝한 성격의 빵집 주인에게 케익을 주문하며 온갖 수다를 다 떨던 앤은 빵집 주인을 향해 측은한 마음을 지나 약간 멸시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서른세 살의 그런대로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이미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 죽을 때까지 밤새 빵만 구울 늙어빠진 남자.’라는 생각을 남기고 빵집을 나섭니다. 사건이 생깁니다. 앤의 아들 스코티가 등굣길에 뺑소니차에 치이고 그 길로 의식을 읽고 맙니다. 앤 부부는 혼이 빠진 나날을 보내지요. 혼수상태에 빠졌던 스코티는 결국 사고 며칠 후 끝내 숨을 거둡니다. 상황파악이 안 된 무뚝뚝이 빵집주인은 계속 집으로 전화를 해서 스코티의 이름을 부르며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합니다. 이 와중에 앤 부부는 감정이 폭발합니다. 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 부부는 빵집을 방문합니다. 씩씩거리면서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가 일단 아들의 죽음을 알린 다음, 빵집 주인에게 거칠게 항의를 합니다. 아마 빵집 주인의 전화가 장난전화처럼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앤 부부는 엉뚱한 사람 앞에서 그간 쟁여놓았던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빵집 주인은 의자 세 개를 마련하여 부부에게 앉기를 권하고 자신도 나란히 앉습니다. 그리고 방금 오븐에서 꺼낸 따뜻한 빵과 커피를 내놓으며 말합니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 이럴 땐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리고 빵집 주인은 자신의 무신경함에 대해 앤 부부에게 사과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 막 지독한 슬픔을 맛본 부부를 향해, 처음부터 슬프게 살아왔던 사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밤새도록...

지은이는 책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타인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알고 보면 ‘참으로 작고 여린 존재감’들이기 때문이지요. “책을 펼쳐야 합니다. 책을 펼쳐서 저들의 나지막한 아우성과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야합니다.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고 여린 것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 사이 경청하는 그것만으로도 저들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을 위로하는 행위입니다. 작고 여린 것이 더 작고 여린 것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 그 사이에 책이 있습니다. 이제 그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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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7-10-20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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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문학,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새창으로 보기

고백할게요. 저는 문학이랑 그리 친하지 못해요.
그래서, 이렇게 문학을 차분히 설명해주는 저자들께

항상 감사를 드리게 되는 독자 중 하나랍니다.-

그간, 읽은 책들이 문학쪽과는 좀 거리가 있다보니,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에서

이미령 작가의 설명에도 감동을 받지만,

주제를 두고 위로하는 문학들을 소개해주니,

찾아서 전문을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해요.





목차만 봐서도,

'위로한다' 느낌을 품었죠.

꺼이꺼이 우는 슬픔을 가진이들만이 아닌,

우울하거나, 허무하거나, 힘이 빠지거나

등등 인생사를 겪고 있다면,

문학에서 풀어낸 장면들을 보며,

그 존재하지 않는 타인에게,

위로를 받게 된답니다.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 전체의 제목으로 잡힌 챕터, 저자의 소개를 따라

등장하는 인물의 각각 입장을 보자하면,



상대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닥쳐있는지의 이해가 없으니,

서로를 잘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나의 슬픔은 정말 큰 짐이 되는 것이죠.



스코티는 생일을 앞둔 8살 아들.

그런데, 생일을 앞둔 어느날...

아이는 뺑소니를 당해 혼수상태가 됩니다.

입원해 있는 스코티 걱정이 가득한 하워드.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왔는데,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케이크 말이오. 십육 달러짜리 케이크."



이 낯선남자는 다음 날에도 전화를 겁니다.

이 장난전화는 대체 무얼까, 하워드는 화가 날뿐.



스코티는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죽게 되는데,

전화는 계속 오게 되고, 알고보니...

빵집 주인의 전화였더랍니다.

화가 나서 빵집주인에게 득달같이 달려가고

화를 내며 비난을 퍼부었더니...

빵집 주인은 주인대로 하워드 상황을 모르고

작은 빵집이라 힘든 상황이어서 전화를 했던 거죠.





상황파악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그리고 책의 마지막은 의자 셋을 두고

따끈한 빵을 먹으며 마무리된다 합니다.



엮여진 상황에서, 풀리지 않는 슬픔의 응어리에서,

그러게요.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상황.

이렇게 마무리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죠.





문학을 소개하면서 '위로'받는 포인트를

살며시 풀어주는 이 책은,

심지어 저자의 개인적 경험도 풀어져있어서

문학 + 저자의 에피소드 가 함께 매력적으로 읽히게되죠.



윤홍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70년대 배경으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반짝이는 구두에 즐거운 '안동 권씨'와

그 전세집 주인 오 선생님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 나 안동 권씨 후손이다! "라는 허세.

정작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마련 못함에도

품어내는 허세들은 피식 웃음이 나게 되네요.

물론, 저자는 오씨 또한 도긴개긴이라고 보지만

그럴 수도 있지만, 오씨는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듯 하여

개긴을 붙여주기 싫기도 했더랍니다.

은근한 소망을 들어주게 되는 문학,

존버거, 장모르의 <행운아>에는 시골의사 존 사샬이

대도시의 '돈'과 '명예'를 택하기보다

시골의사로서 각각의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진정한 의사의 역할을 하는 모습이 보인답니다.



이런 의사는 정말 문학에만 나오는 걸까요?

종종 뉴스로 다큐멘터리로 나오는 의사들,

희귀하겠지만 존 사샬 같은 인물들도 있겠죠?


작고 여린 것들을 위한 책 읽기


큰 인물들이 아니라, 큰 사건들이 아니라..

< 작고 여린 것들을 위한 책 읽기 >

좀 더 세밀하게 세상을 투영해보는 문학,

저자가 보지 못햇던 한 면을 보게 되며

책이 열어준 세상을 봤다고 합니다.

저자의 풀이들과 함께, 독자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열어보는 기회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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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클라라 2017-10-13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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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속에서 깨닫게 되는 이전과는 다른 생각들[타인의 슬픔을 마줄할때...] 새창으로 보기

책을 통해 위로 받는 삶. 그건 어떤걸까? 늘 책을 옆에 끼고 있다 시피 하지만 내마음을 위로해주는 책은 그닥 많지 않다. 하지만 가끔 내가 처한 상황과 맞닥드려지는 이야기라던지 주변 상황과 너무도 비슷한 일들, 혹은 날 궁금했던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땐 깜짝 놀라고 때로는 공감하기도 한다. 그런게 나를 위로하는 일인걸까?



우리가 익히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책속의 등장인물이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책! 그렇게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읽어내는 시간이 책을 읽은지 오래되어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고 새삼 삶이 어떤것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왕자. 어린왕자는 참 어린이스럽지만 어린왕자가 만나는 어른들과 세상의 일들은 때로는 어른인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때로는 잊고 있던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만든다. 어린왕자지만 어른들이 읽어봐야 하는 이 책,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정사가 자아를 만나 성찰하게 되는 책이라지만 어린왕자의 마지막 장면은 결코 죽음으로 결말짓고 싶지 않다. 사막을 떠나서도 자아와 대면하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책읽어주는 남자, 어린소년과 나이먹은 아줌마의 육체적 결합, 호기심 많은 사춘기야 그렇다치지만 그런 마음을 이용해 몸을 주는 대신 책을 읽게 만들었던 아줌마의 실체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던 이 책. 무지로 인해 저지른 죄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아줌마의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 그럼에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그녀가 책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 어떤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 같다.



위대한 개츠비! 학창시절 필독서처럼 국어시간에 등장했던 책이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고서야 읽게 되었던 이 책! 한여자만을 사랑했던 순수한 한남자의 지고지순하고 바보스럽기까지한 사랑이야기라 생각했었는데 속물보다 더 속물스러운 돈과 명예를 중시한 여자의 삶이 더 한심하고 답답하다는걸, 남자는 자신의 사랑에 최선을 다했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한 거짓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이렇게 문학 이야기를 읽다보니 책은 정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이전과는 또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책속에 등장하는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공감하고 미래의 삶을 글려보게 되니 그리하여 늘 책을 곁에 둘 수 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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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7-09-30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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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이미령/샘터/위로하는 문학~ 새창으로 보기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이미령/샘터/위로하는 문학~

한 권의 책을 보고 리뷰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강의를 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법인데요.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책 애벌레가 책 고치가 되고 이러다가 책 나비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는데요. 그렇기에 책을 읽고서 책 속의 내용을  강의하는 저자의 기쁨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이 책은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이라는데요. 책을 읽으며 위로 받기도 했기에  책 제목에 공감했답니다.

불교를 전공한 저자여서인지, 불교 색채는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위로의 힘은 굉장하군요. 책을 통해 들려주려는 이야기에 저자의 이야기가 섞여있기에 읽는 재미도 있고요. 작고 여린 것들을 위한 책읽기이기에 더욱 위로가 됐던 책입니다.


이 책에는 44명의 44작품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함만복의 <눈물은 왜 짠가>, 윤태호의 <미생>, 김주영의 <도둑견습>, 고은규의 <알바패밀리>, 박완서의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한승원의 <사람의 맨발>, 허준의 <잔등>, 전영택의 <화수분> 등 많은 국내 책들이 있는데요.



국외 책으로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로실드의 바이올린>, 루쉰의 <고향>,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이언 매큐언의 <속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등이 있는데요.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을 유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적었기에 감탄하며 읽었답니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는 말을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지만 읽으면서 위로를 벋고 공감 을 표한 글이 대부분입니다.
착함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도둑으로 살아남는 일이 가능할까요. 김주영의 <도둑견습>을 돼먹지않은 의붓아버지와 홀어머니가 묘한 러브신을 주저없이 이야기하는 소년 이원수가 등장하는데요. 폐품 집적소에 있는 폐차 직전의 마이크로버스가 이들의 집이기에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요란스러운 줄 알 겁니다. 여하튼 자신의 의붓아버지 강두표는 다른 일에는 믿음이 가지 않지만 자신의 홀어머니를 지켜내는 일에는 열심인데요. 해서 소년 이원수는 우악스런 사내 강두표를 따라나서게 됩니다. 강두표가 하는 일은 주인이 있으면 고물장사를 하고 주인이 없으면 빈집에 들어가 고철을 훔쳐오는 일이라는데요. 소년은 강두표가 빈집에 털 때 망을 보는 일명 '도둑 견습생'이 된 거죠. 의붓아버지의 눈에는 다 돈으로 보이기에 소년도 이를 따라 하는데요. 밑바닥인생이기에 이들에게 윤리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그림의 떡인거죠.



하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어느 날, 소년이 망을 보던 중에 집주인이 들이 닥쳤고, 소년은 너무나 놀라 막무가내로 손을 휘이휘이 저었는데요.  난데없는 소년의 쇠꼬챙이질에 주인은 슬그머니 사라지게 됩니다. 악돌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년은 더욱 악돌이가 되는데요. 더욱이 도망갔던 의붓아버지는 돌아와 소년을 칭찬합니다. 희망이 가득한 놈이라고요. 그후로 소년은 거친 세상에 꿈과용기와 희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저항하고 거부하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소년은 말하는 닷 합니다. 악행보다 무서운 건 인간의 무력증임을요. 쇠꼬챙이를 휘두를는 일이 분명 나쁘지만 더 나쁜 일은 착하게 살도록 세뇌 당한 민중을 등쳐 먹는 일이죠.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내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한 하루였어요.

세상에는 별별 일이 많고 책 속에는 별별 사람들이 산다는 걸 확인하고 있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철인의 눈에도 생명의 무지가 있을 수 있고, 악인의 눈에도 선인의 수줍음이 있을 수 있고, 선인의 눈빛도 때로는 악인의 눈빛일 수 있음을 공감한 날입니다. 영원한 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  샘터 네이버 공식 포스트  http://post.naver.com/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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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7-10-06 공감(6)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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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 박사 저 ‘시시한 인생은 없다’

시시한 인생은 없다 - 이야기로 풀어 쓴 경전 에세이 

이미령 (지은이)담앤북스2020-03-31



268쪽



책소개



자칭, 타칭 경전이야기꾼 이미령이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 <시시한 인생은 없다>. 2,600년 전 붓다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은 경전에는 삶의 진리, 인생의 깨달음이 담겨 있지만 온통 어려운 말로 쓰인 경전을 찬찬히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윳따 니까야>, <경율이상>, <법구경>, <앙굿따라 니까야>, <숫따니빠따> 등의 경전 속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가만히 음미하고,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풀어냈다.



저자는 인생의 가치, 노력, 진리, 믿음, 깨달음을 경전에서 찾아 독자와 같이 사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모든 인생의 희노애락은 경전에 있다며, 부처님의 말을 들여다보자며,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자며 말이다.

목차

글을 열며



제1장 가치

잠자다: 욕심과 성냄의 처방전

돈을 벌다: 덧없는 재물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법

나이를 먹다: 나이든다는 것의 열다섯 가지 비유

복을 짓다: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기

시작하다: ‘발심’에 담긴 의미



제2장 노력

가난하다: 종교적 가난을 침묵하는 당신에게

부끄러워하다: 나를 망칠 수 있는 마음

부자로 살다: 유혹의 이끌림

노력하다: 노력해야 하는 이유 두 가지

기다리다: 세상에 ‘같음’은 없다

격려하다: 생명을 다시 살게 해 주는 일



제3장 진리

다가가다: 마음을 열게 하다

바라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길

말을 하다: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웃다: 일단 미소 짓고 웃어 보기

걷다: 한 걸음 더하기 한 걸음 더

집에 가다: 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제4장 믿음

말을 잘하다: 침묵이 능사는 아니다

행운을 바라다: 행복과 불행은 한몸이다

옷을 입다: 당당하고 아름답게

졸다: 졸음도 수행이라면

절교하다: 모든 이가 친구는 아니다

믿다: 의외의 순간에서 발견한 믿음




제5장 깨달음

비워내다①: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차라리 쉬웠다

비워내다②: 보편적인 번뇌에 빠지지 않기

약속하다: 침묵하면 달라지는 것들

결혼하다: 시시한 인생은 없다

덧없다: 울지 마라, 원래 그런 법이니

울다: 살면서 흘린 눈물은 바다보다 많다



끝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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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28 어차피 덧없는 인생, 덧없는 재물입니다. 하지만 재물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가치는 달라진다는 것이 부처님 입장입니다.

P. 46 발심이란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깨달음은 단순히 ‘지혜’를 뜻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성자의 지혜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부처님의 경지인 가장 완전한 깨달음을 말합니다. 부처님 지혜를 아뇩다라삼약삼보리(위없이 바르고 완벽한 깨달음)라고 부릅니다. 발심은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요, 한 마디로 말해서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을 낸다는 것입니다.  접기

P. 60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도 모르는 사람.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 종교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P. 168 부처님은 수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선업을 지으십시오”라고요. 물론 선업을 짓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악업부터 멈추는 일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선업인지 악업인지 잘 살펴서 그것이 악업이라면 그것부터 멈추어야 하며, 그리고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곱 부처님께서 공통으로 당부하시는 노래인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에도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힘써 행하며, 그 마음 스스로 맑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접기

P. 178 『대반열반경』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남자를 ‘가난한 집’이라고 설정한 경전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의 가난은 재물이 아닌, 지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가 없기에 아무 것이나 덥석 잡고,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집착합니다. 좋은 점만 보고, 좋게만 생각하는 것도 살아가는 나름의 지혜일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난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면만 보고 가겠다며 굳이 그 이면의 실상에는 눈을 감는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지혜가 없어 가난한 사람은 결국 행운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불행에 덜컥 발목이 잡혀 울부짖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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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미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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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다. 사람들은 불교가 어렵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어보니 오히려 재밌기만 했다. 그래서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경전번역가에서 경전이야기꾼으로 타이틀을 바꿔 쓰려고 고민 중이다.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일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고, 고익진 교수님에게 사사한 것은 더 할 수 없는 값진 보약이었으며, 수많은 사찰에서 불교강의를 하면서 대중과 만나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공부 밑천을 삼고 있다.

2020년 현재는 BBS불교방송에서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하고 있고, 다양한 불교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불교교양대학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며 책읽기 모임과 경전 읽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쓴 책은 《이미령의 명작 산책》,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붓다 한 말씀》, 《그리운 아버지의 술 냄새》,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수행입문》 등이 있고, 공저로는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절에 가는 날》 등이 있으며, 동국역경원에서 낸 《대당서역기》, 《직지》를 비롯한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시시한 인생은 없다>,<이미령의 명작 산책> … 총 2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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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삶을 돌아보게 해 주고, 내 하루를 보듬어 주는

경전이야기꾼 이미령의 경전 에세이



“칭찬이 밖에서 주어지는 찬사라면, 격려는 내면에서 힘을 내게 하여 그가 하려는 일을 완성하게 해 줍니다. … 요즘처럼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사람들이 많을 때 이 격려의 한 마디가 갖는 힘은 큽니다.” _본문 중에서



자칭, 타칭 경전이야기꾼 이미령이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 ??시시한 인생은 없다??. 2,600년 전 붓다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은 경전에는 삶의 진리, 인생의 깨달음이 담겨 있지만 온통 어려운 말로 쓰인 경전을 찬찬히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윳따 니까야』, 『경율이상』, ??법구경??, 『앙굿따라 니까야』, ??숫따니빠따?? 등의 경전 속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가만히 음미하고,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풀어냈다.

저자는 인생의 가치, 노력, 진리, 믿음, 깨달음을 경전에서 찾아 독자와 같이 사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모든 인생의 희노애락은 경전에 있다며, 부처님의 말을 들여다보자며,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자며 말이다.



“내가 너무 시시한 존재 같아서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숨 쉬기가 두렵다고들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될 때 들여다보는 책



불자로서 경전을 탐독해 봐야겠다는 생각 혹은 불자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지혜를 보려 경전을 읽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던 독자는 주목해야 한다. 읽고 싶지만 쉽게 읽을 수 없던 경전을 누구보다 쉽고 이상적이게 또 친숙하게 풀어냈다. 일상생활과 나 자신을 집어삼키는 ‘분노’, ‘탐욕’, ‘부끄러움’ 등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경전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부처님은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에게 “분노의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에는 꿀이 묻어있다”고 이야기한다. 화를 내는 것은 꿀처럼 달콤하지만, 그 감정의 뿌리에는 결국 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노는 죽이면 슬프지 않다”고 다독인다.

이처럼 저자는 사람들의 내면, 그 내면의 시시함에 주목했다.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그로 인해 인생마저 시시해 지고 있는 현시대에 대해 고민한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붓다의 메시지를 한 번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과 다르지 않은 2,600년 전 부처님의 이야기

오늘날의 위로가 되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은 또 중생을 늘 격려했던 분이기도 하다. 법문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격려하고 고무시켰다”는 문장이 수많은 경전에 나오기도 한다. 스스로의 잘못에 너그럽지 못하고, 잘못을 두려워하며 어리석음에 떠는 사람들에게 법문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 법문을 들은 수많은 중생들의 마음에 기쁨과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다.

세상에 깔린 시시한 감정, 진부한 하루, 짙은 혐오, 갈등하는 마음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서로를 돌본다. 부처님을 따르는 불자도, 아닌 사람도 인생의 지혜를 갈구하는 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세생생 살아가는 세상의 진리를 붓다의 메시지가 녹아 있는 경전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불교에서 익히 들어온 보시, 수행, 발심 등의 의미를 일상적인 삶과 관련지어 현실적 지침이 될 수 있게 알려주고,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선생으로서 어찌 살면 좋을지 부처님이 행하신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알게 해준다. 저자는 자신의 소개대로 이 시대의 진정한 ‘경전 이야기꾼‘이다.  구매

picturebook 2020-04-14 공감 (0) 댓글 (0)

   

[불교명상] 스물 아홉 편의 붓다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편리해져 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 힘들다고 합니다. 내가 너무 시시한 존재 같아서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숨 쉬기가 두렵다고들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붓다의 메세지를 한 번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글을 열며' 중에서

스물 아홉 편의 붓다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이미령은 번역가, 책 칼럼니스트로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으며, 사람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불교 경전을 읽고 또 읽으며 경전 속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거나 강의에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경전번역가에서 경전이야기꾼으로 타이틀을 바꿔 쓰려고 고민 중이다.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위원으로 일한 경험과 수많은 사찰에서 불교강의를 하면서 대중과 만나 불교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공부 밑천으로 삼고 있다.

현재는 BBS불교방송에서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를 진행하고 있고, 다양한 불교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불교교양대학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며 책읽기 모임과 경전 읽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이미령의 명작 산책>,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붓다 한 말씀>, <그리운 아버지의 술 냄새>,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수행입문> 등이 있고, 공저로는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절에 가는 날> 등이 있으며, 동국역경원에서 낸 <대당서역기>, <직지>를 비롯한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2,600년 전 붓다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은 경전에는 삶의 진리, 인생의 깨달음이 담겨 있지만 온통 어려운 말로 쓰여 있기 때문에 읽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저자는 <상윳따 니까야>, <경율이상>, <법구경>, <앙굿따라 니까야>, <숫따니빠따>등의 경전 속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우리들에게 인생의 가치, 노력, 진리, 믿음, 깨달음 등 총 5장에 걸쳐 이를 소개하고 있다.


가치

부처님은 재가불자在家佛者에게 가난을 칭송하거나 무소유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지런히 땀 흘려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권한다. 이렇게 살면 자신이 떳떳하게 살아오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이로 인해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 가정을 여유있게 꾸려 나가면 이로 인해 또 행복을 느낄 것이며, 재물의 여유로움으로 다음 생까지 챙긴다면 행복은 세 곱절이 될 것이다.

어차피 덧없는 인생, 덧없는 재물입니다. 하지만 재물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가치는 달라진다는 것이 부처님 입장입니다. (26쪽)


발심發心이란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때의 깨달음은 단순히 '지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웬만한 성자의 지혜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부처님의 경지인 가장 완전한 깨달음을 말한다. 부처님 지혜를 아뇩다라삼약삼보리(위없이 바르고 완벽한 깨달음)라고 부르는데, 발심은 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자,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을 각오한다는 뜻이다.

노력

불교는 심오한 진리를 말하며 해탈의 경지를 일러준다. 물론 이 경지는 웬만한 수양으로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같은 해탈의 경지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고 그동안 세속에서 살아온 방식을 최선이라고 여긴다. 초기경전 <앙굿따라 니까야>에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를 분간하라고 촉구한다.


문제는 사람이 선업만 짓고 살 수 없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통사람들이 악업을 지은 뒤의 행동에 대해 지적을 하고 있다. 즉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들을 질책한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며 새롭게 선업을 지으면 된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도 모르는 사람.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 종교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60쪽)







진리







부처님은 지혜와 방편이 원만구족하신 분이다. 원만이란 '완벽하다'라는 뜻이며, 구족具足이란 말은 '갖추었다'라는 뜻이므로 원만구족이란 '완벽하게 갖추었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부처님은 지혜와 방편을 완벽하게 다 갖추신 분이다. 방편이란 사람들이 깨달음의 경지로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가르킨다. 좋은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출요경出曜經>은 법구경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경전에서 게송과 비유를 가려 뽑아 주제별로 정리한 경전인데, 제12권의 이야기를 여기서 소개해 본다. 옛날 사위성에 최승崔勝이라는 장자가 살았는데, 그는 엄청난 부자로 코끼리와 말 등 많은 동물과 창고엔 금은보화가 넘쳤다. 그런데, 너무나 인색해서 절대로 자신의 재물을 남에게 베푸는 법이 없었다.







반면 부처님은 형편이 부족한 이웃들에게 보시를 하면서 공덕을 쌓기를 권한다. 이에 그에게 다섯 가지 보시를 가르쳐준다. 첫 번째 보시는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일, 두 번째 보시는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않는 일, 세 번째 보시는 그릇된 이성 관계를 멈추는 일, 네 번째 보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일, 다섯 번째 보시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술과 같은 것에 빠지지 않는 일임을 교화하자 최승장자는 부처님께 고마움의 표시로 난생 처음 고품질의 천을 공양하겠다는 발심을 했다.







이처럼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욱 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본능이 발동하기 마련인데, 부처님은 탐욕스런 부자를 교화하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진 않았다. 사실 그대로 일개워줌으로써 최승장자는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 그동안 꽁꽁 닫았던 탐욕의 문을 열고 스스로 보시에 나설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믿음



부처님은 수도 없이 말씀하신다. "선업을 지으십시오"라고 말이다. 물론 선업을 짓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악업부터 멈추는 일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선업인지 악업인지 잘 살펴서 그것이 악업이라면 그것부터 멈추어야 하며, 그리고 선업을 지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일곱 부처님께서 공통으로 당부하시는 노래인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에도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힘써 행하며, 그 마음 스스로 맑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대승경정인 <대반열반경>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남자를 '가난한 집'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가난은 재물이 아닌, 지혜가 없는 것을 말한다. 지혜가 없으므로 아무 것이나 덥석 잡고,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집착한다. 좋은 점만 보고, 좋게만 생각하는 것도 살아가는 나름의 지혜일 수 있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난하다'고 말한다. 좋은 면만 보고 가겠다며 굳이 그 이면의 실상에는 눈을 감는 어리석은 중생이다. 지혜가 없어 가난한 사람은 결국 행운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불행에 덜컥 발목이 잡혀 울부짖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깨달음







"그대의 도움으로 나 석거모니는 세상의 교화를 마치고 반열반에 드니,



이제 그대의 시간이다. 쉬지 말고 정진하라. 곧 아라한을 이룰 것이다"







부처님은 자신을 한마음으로 모셔온 제자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라한이란 경지는 당시 제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였다. 모든 번뇌를 완전히 벗어 버린, 훌륭한 성자의 경지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들은 모두 누구나 아라한이 되기 위해 정진한다. 그런데, 부처님을 모시는 일 때문에 이에 뒤쳐진 제자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아난다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아라한이라는 해탈열반의 경지를 조용히 미뤄왔다. 수많은 도반들이 자신보다 앞서 높은 경지에 속속 이르지만 그는 여전히 낮은 자리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며 부처님을 모셨다. 부처님은 그런 제자에게 마지막 선물인 수기授記를 주셨다.







제자의 깨달음을 예고하는 것을 수기라고 한다. 여전히 공부해야 할 것이 남아 있어서 인간적 정리에 흐느껴 우는 제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건네는 그 든든한 위로, 이런 제자의 눈물과 이런 스승의 선물이 있는 곳이 바로 불교인 것이다.





















스물 아홉 편의 경전 이야기







책은 총 29가지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한다. 어느 한 편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을 소중한 이야기이다. 책을 늘 곁에 두기를 권한다. 그리고 천천히 읽으며 그 뜻을 되새긴다면 나 자신을 위한 더 없이 좋은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모든 이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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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0-04-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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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인생은 없다[서평] 
<시시한 인생은 없다>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불교경전을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 낸 경전 에세이다. 저자는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하였다.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경전이 자신에게는 재밌게 느껴진다는 특이체질의 소유자로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경전 속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경전 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이력 중에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고익진 교수님에게 사사'라는 것이다. 과거 도올 선생이 고익진 교수를 최고의 불교학자로 소개 했는데 그때 고익진 교수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 고익진 교수가 쓴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도 소개되었는데 그 책을 읽어보고 싶어 찾았으나 오래전에 절판되어 읽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실력있는 스승에게 배운 작가라니 뭔가 더 기대 되었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소위 바이블이라는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글고 딱딱하고 말도 어렵고 어떨 때는 허풍도 이런 허풍이 있나 싶기도 하고 이해도 잘 안된다. 이는 성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불경이든, 성경이든 '강해', '이해' 라는 꼬리가 달린 주석집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그런 책 조차도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이 책은 여러 경전에서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모아 피부에 와닿는 교훈들을 '채집'해 놓았다. 그래서 저자는 일반인들이 '만만하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책이 주는 교훈만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또 이미 불교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할 지라도 새삼 반짝이는 일깨움을 느껴 볼 수 있는 책이다. 좋은 책, 좋은 글은 볼 때마다 느껴지는 바가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용된 경전을 세어 보았다. 상윳따 니까야, 디가 니까야, 숫따니빠따, 맛지마 니까야, 살레야카 숫따, 앙굿따라 니까야, 법구경, 대반열반경, 불설마하가섭도빈모경, 대방등대집경, 증일아함경, 승가나찰소집경, 본생경(자타카), 불본행집경, 출요경, 잡보장경, 부사의광보살소설경, 불설이수경, 수행본기경... 여기에 적지 않은 경들도 더 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출저가 되는 경전을 직접 찾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저 중 <대반열반경>은 제목 그대로 열반, 부처님의 마지막 이야기가 담긴 경전인데, 죽음 앞에선 한 성인과 그 옆을 지키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대반열반경>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다른 소리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이젠 내용을 좀 살펴보자. 무소유에 대한 이야기에서 '탐욕이란 것은 거창하고 값비싼 것을 바라는 욕심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버리지 못하는 마음, 무엇이든 채워 넣으려는 마음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는 '욕심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마음'만 생각하기 쉽지만 '버리지 못하는 마음 또한 욕심'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다못해 이미 문닫아버린 동네 치킨집의 쿠폰도 시원하게 버리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는 나를 뜨끔하게 했다. 나도 뭔가를 잘 버리질 못한다. 최근들어 집 안의 불필요한 짐을 줄이고 단조롭게 만드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그런 가치에 동의하여 불필요한 것들은 나눠주고 쓰임새가 없는 것들을 버리려고도 하지만, 참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마음 속에 꿈쳐둔 원망, 서운함, 분노, 미움 같은 것들도 '미니멀라이즈'되어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물질)부터 하나씩 비워내는 연습을 해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번뇌)도 하나씩 비워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부처님의 이복동생인 난다의 깨달음 이야기도 영원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서 난다를 혹 아난다와 헷갈리면 안된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출가하여 십대 제자 중 한사람이 되었으며, 55세의 부처님이 80세 열반에 들기까지 곁에서 시자로 모신 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반열반경>에서도 등장한다. 불교경전의 시작은 항상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여시아문)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내(아)가 들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아난다'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아난다가 아니라 '난다'라는 스님의 이야기인데, 난다는 부처님의 이복동생이다. 참고로 밝히면 부처님의 이복형제를 포함해서 사촌형제들까지 형제랑 형제는 시점만 다르지 다 출가한다. 그는 천상의 선녀가 내새에 그가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오로지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는 '속물 수행자'였다. 하지만 어느날 지옥에서도 그를 위해 불가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현세에 지은 복으로 죽어 천상에 태어나지만 좋은 복이 다하고 나면 다시 지옥에서 태어나 지은 죄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천상에 태어날 것만 생각했지 그 복이 소진되면 지옥에 갈 것은 생각을 못한 것이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 영원할 수 없고 유한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책에 실려있는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쾌락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공덕천과 괴로움과 불행을 상징하는 흑암천은 늘 함께 다닌다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만 취하고 뒷면은 버릴 수 없듯이 항상 행과 불행은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에서 곧 괴로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즐거움이 다하면 곧 괴로움이 올 것임을 알면 좋은 일 앞에서도 오만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나쁜 일 앞에서도 슬픔에 빠져 허우덕 거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의 평안 만이 영원한 행복 가져다 주는 열쇠가 된다.


화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가 화가 맛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처님은 이와 관련하여 '분노의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에는 꿀이 묻어 있습니다'라고 하셨단다. 화를 낼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것이 쉽고 당장 시원하다. 이것이 붓다가 말하는 꿀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는 후회와 손해로 돌아온다. 이것이 독인 것이다. 꿀과 독은 우리를 중독시킨다. 화를 내는 것을 꿀이 묻어 있지만 뿌리엔 독이 있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 재치있으면서도 공감간다. 그리고 분노를 죽이면 슬프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분노든 슬픔이든 그 뿌리는 뜻대로 되지 않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하나만 해결하면 나머지도 자연히 해결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성자의 일곱가지 재물(칠성재)과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일곱가지(무재칠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경전에는 마음의 작용과 삶의 이치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현실적인 이야기도 담겨있다.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목련존자가 졸음에 빠지자 부처님이 졸음을 이기는 법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잡생각에 빠지면 졸음이 온다며 잡념을 버리라는 말씀이나 세수하고 귀를 지압하고 걸으라는 현실적인 팁도 나온다. 그 중에서 밖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라는 충고는 낭만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또한 말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바른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에 맞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실이고 진실하고 듣는 사람에게도 유익하고 듣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때가 아니면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그 때라는 것이 언제이냐는 생각이 들텐데, 이 부분에서 '아' 하는 소리가 나와버렸다. 바로 그 때란 '듣는 사람이 들으려고 할 때,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기울일 때'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제 때'를 위한 기다림이 없다면 무용을 넘어 손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래, 잊지말자.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때에 맞는 말을 해야하는 것이다.

경전에 있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요정 사이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동시에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라 유혹에 대한 절제가 어렵더라는 말도 공감간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나름 잘 한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치고 결국에는 나에게도 불이익이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다. 또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후회해놓고 과거에 어리석은 선택을 똑같이 하곤 한다. 그렇기 늘 어리석은 선택의 반복을 막고 유혹에 절제하는 것을 연습하고 훈련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가 참선, 명상일 것이다. 여기서도 경전에 실린 참선에 대한 부처님 말씀이 나온다. "참선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참선으로 온갖 잡념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말했지만 흔히 사람들은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선후가 바뀐 것이다. 참선을 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 참선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런 식의 화법이 마음에 든다. 조금 확대해 볼까. 사람들은 흔히들 종교에 대해 그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어리석음에서 자신을 구원하고 나아가 타인을 구원하는 것이 믿음이다. 즉 그러해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그리되는 것이다.

불교경전을 다룬 것이라, 종교적인 이유로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알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무슨 종교가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단순히 2500년 전 살았던 한 성인의 보편적이고 일반론적인 삶에 대한 지혜만 있을 뿐이다. 어떠한 종교적 강요도, 허황된 사후 세계의 약속도 없다. 대단한 종교적 비밀이나 기복적 횡재를 바라고 이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시시하고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얼마나 실천하며 살고 있던가 돌아보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종교와 관련된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는다. 고백하자면 한번 씩 그런 생각도 든다. 다 뻔한 좋은 말과 바이블에 나오는 명구절을 돌려막기 하듯 채운 내용에 식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느껴질 때 나를 돌아보면 대게 내 마음이 뭔가 삐뚤어져 있다. 그런 시기에 나는 사람들에게도 예민하게 대하고 생각도 부정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술은 기쁠 때 마시면 기쁜 맛이나고 슬플 때 마시면 슬픈 맛이 난다고. 이런 책도 그와 같아서 거울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으며 혹 기분이 좋지 않거든 책이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뭔가 그것을 야기하는 원인이 있지는 않나 살펴보면 미쳐 몰랐던 중요한 것을 발견할수도 있다. 나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사소한 갈등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고 식상하더라도 엄마 잔소리 치고 틀린 말은 없다.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을 때 더 듣기 싫은 법이다. 여러 경전을 현대인의 이야기로 쉽게 풀어 쓴 이 책을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아보면 어떨까. 우리 각자의 인생은 시시하지 않고 소중하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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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부시향덕 2020-04-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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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단하다면 이 책에서 힘을 얻으라” - 한국불교신문

 김종만 기자 승인 2020.04.23


이미령 박사 저 ‘시시한 인생은 없다’

나약한 존재들이 내뱉는 한탄에 주목

부처님 메시지 통해 새로운 인식 환기

경전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이미령 박사가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또 하나의 책을 썼다.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내 하루를 보듬어주는 책의 표제는 『시시한 인생은 없다』<사진>다.


2천 6백년 전 붓다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은 경전에는 삶의 진리, 인생의 깨달음이 농익어 있지만 온통 어려운 말로 쓰여 있어 경전을 천천히 읽어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이를 감안해 『상윳따 니까야』『경율이상』『법구경』『앙굿따라 니까야』『숫따니빠따』등의 경전 속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가만히 음미하고,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풀어냈다.



“칭찬이 밖에서 주어지는 찬사라면, 격려는 내면에서 힘을 내게 하여 그가 하려는 일을 완성하게 해줍니다.…요즘처럼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사람들이 많을 때 이 격려의 한 마디가 갖는 힘은 큽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저자는 인생의 가치, 노력, 진리, 믿음, 깨달음을 경전에서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책에서도 이들 가치, 노력, 진리, 믿음, 깨달음은 각각 하나의 장으로 구분했다. 모든 인생의 희노애략은 경전에도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말씀을 들여다보자며,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자며 저자는 독자들을 책 속으로 안내한다.



“내가 너무 시시한 존재 같아서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숨 쉬기가 두렵다고들 합니다.”



저자는 세상의 나약한 존재들이 내뱉는 푸념과 한탄에 주목하며 이 책을 구성했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될 때 들여다보기에 딱 맞는 책이다.



또 불자로서 경전을 탐독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불자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경전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주목하면 좋은 안내서 구실을 한다.



무엇보다 경전을 읽고 싶지만 쉽게 읽을 수 없었던 경전을 누구보다 쉽고 이상적이게 또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글을 풀어냈다.



일상생활과 나 자신을 집어 삼키는 ‘분노’, ‘탐욕’, ‘부끄러움’ 등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경전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부처님은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에게 “분노의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에는 꿀이 묻어 있다”고 이야기 한다. 화를 내는 것은 꿀처럼 달콤하지만, 그 감정의 뿌리에는 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노는 죽이면 슬프지 않다”고 다독인다.



이처럼 저자는 사람들의 내면, 그 내면의 시시함에 주목했다.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그로 인해 인생마저 시시해 지고 있는 현시대에 대해 고민한 것이다.



지금과 다르지 않은 2천 6백년 전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덧 큰 위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처님은 중생을 늘 격려했던 분이다. 법문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위로와 격려로 대하셨다. 때로는 환희에 찬 감격에 빠질 정도로 고무적인 장면을 만들기도 하셨다. 스스로의 잘못에 너그럽지 못하고, 잘못을 두려워하며 어리석음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법문으로 그들을 깨우쳐 주셨다.



“아난다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아라한이라는 해탈열반의 경지를 조용히 미뤄왔습니다. 수많은 도반들이 자신보다 앞서 놓은 경지에 속속 이르지만 그는 여전히 낮은 자리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며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제자에게 마지막 선물인 수기를 주셨지요. 제자의 깨달음을 예고하는 것을 수기라고 합니다. 여전히 공부해야 할 것이 남아 있어서 인간적 정리에 흐느껴 우는 제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건네는 그 든든한 위로, 이런 제자의 눈물과 이런 스승의 선물이 있는 곳이 불교입니다.”(본문 p254~255)



붓다의 메시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글은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령 저/담앤북스/값 15,000원



-김종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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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 이미령 불교평론 [80호] 2019년 12월

불교평론  불교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
창간 20주년 기념특집 | 불교, 이상사회를 꿈꾸다
[80호] 2019년 12월 01일 (일) 이미령  cittalm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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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써야 할 글의 제목이 ‘불교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입니다. 예, 압니다. 많은 분들이 ‘뭐, 이미 다 알고 있는 건데. 빤한 이야기 새삼 다시 읽을 게 있을까?’라고 생각하리라는 걸 말이지요.

사실 맞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에는 특별한 이론이나 엄숙하고 진지한 수행 같은 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정의 구성원인 부모와 자식이 서로 마음을 잘 맞춰서 살면 되는 겁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자식이 잘되라고 헌신해야 하고, 자식은 그런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고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효도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더러 양보하고 희생도 하며 살면 되는 것이고요.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면 된다는 것, 이거 모를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경전을 읽다 보니 가정생활과 관련해서 혹은 가족 구성원 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내용 가운데 뉘앙스가 좀 다른 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부부간에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그 말고도 또 다른 내용들이 경전에서 툭툭 나타나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번 글은 그런 관점에서 한번 풀어보려 합니다.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하고,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고, 자식은 부모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가족 구성원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엄마만 기도하면 끝?
“당신 이름으로 등 달았어.”
“네 이름으로 엄마가 보시했어.”



이런 말들 많이 듣고 또 많이들 합니다. 가족 모두가 절에 다닐 필요 뭐 있냐며, 가족 대표로 딱 한 사람만 절에 나가서 기도하고 축원하고 시주하면 된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 맞을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엄마가 아이들 대신해서 기도하고 선업 짓고 수행했나요? 그럼 엄마가 선업을 지었으니 엄마가 복을 받습니다. 자식이 복을 받을 일을 직접 해야 복을 받지요.

바쁜 남편, 일요일이니 낚시라도 가서 기분전환하고, 아내가 대신 방생 가서 물고기를 사서 남편 이름으로 강물에 풀어줬다면? 이것도 간단합니다. 남편이 낚시하러 가서 물고기를 잡고 또 그 고기를 회를 치거나 찌개를 끓여서 먹었다면 살생의 악업을 지은 것이요, 아내는 선업을 지은 것입니다.

업이란 누구를 대신해서 지어주고 또 누구 덕분에 과보를 받는 그런 게 아닙니다. 《법구경》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게송을 한번 음미해보지요.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서 가고, 마음은 가장 중요하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로 인해 괴로움이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한다는 것은 몸과 입으로 짓는 악업을 말합니다. 그로 인해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은 악업에 따른 괴로운 과보를 말합니다. 악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르니, 마치 소가 수레를 끌고 갈 때 수레바퀴는 소의 발자국을 따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지요. 괴로운 과보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 원인인 행위(악업)를 따릅니다. 그러니 악업을 짓고서 괴로운 과보를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 어리석음이요, 자기는 선업 짓지 않고 악업을 지으면서 다른 이의 선업에 따른 즐거운 과보를 함께 누리리라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어리석음입니다. 업을 지으면 과보가 따르니, 과보가 이 사람 저 사람 알아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저 그 행위(업)에 결과가 무르익어 과보가 따를 뿐이지요. 남편이나 자식이 즐거운 과보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선업은 남편이 혹은 자식이 지어야 합니다. 엄마가 아내가 대표로 선업을 지었다고 해서 우리 집은 잘 될 것으로 생각하는 건 정말 불교식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저 유명한 보조국사 지눌 스님과 누이의 대화도 있잖습니까?

큰스님인 지눌 스님을 찾아온 누이, 그런데 누이에게 수행하고 선업도 지으라고 지눌 스님이 아무리 말해도 누이는 이렇게 대답하며 가뿐하게 넘겨버리지요.

“동기가 큰스님인데 뭐 나까지 수행하고 복 지을 필요 있나요? 난 스님 바짓가랑이만 붙잡을 테요. 스님 극락 가면 나도 가겠죠.”

그때 행자가 밥상을 들여왔습니다. 밥때가 되었으니 배도 슬슬 고팠는데, 밥상에는 달랑 스님 밥 한 그릇만 놓여 있었지요. 그런데 지눌 스님, 모처럼 자신을 찾아온 누이에게 ‘밥 먹었냐?’ ‘한 입 들어봐라’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혼자서만 냠냠 맛나게 먹고 그릇을 싹 비웠지요. 설마설마하며 지켜보던 누이는 화가 발칵 나서 말했다지요.

“어찌 밥 한 숟가락 먹어보란 말도 없이 혼자서 다 먹습니까?”

지눌 스님, 태연하게 되물었다지요?

“아니, 누이는 배가 안 부릅니까? 난 한 그릇 다 먹었더니 배가 부릅니다. 내 배가 부르니 누이도 배불러야 하지 않나요?”

배가 고프면 자기가 밥을 먹어야 합니다. 남이 아무리 먹어도 내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복을 짓는 일도 그렇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선업을 지어야 하지요. 내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식’이 선업을 지어야 합니다.

아내가 혹은 남편이 ‘당신 이름으로’ 기도하고 시주했다고요? 남이 대신 해주는 법은 없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복을 짓고 자신의 수행을 하고, 남편은 자신의 복을 짓고 자신의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 따로 아내 따로

이렇게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이런 내용을 봤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언젠가 길가 어느 나무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고 계실 때 일입니다. 마침 지나가던 장자들과 그의 아내들이 부처님에게 다가와 절을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지요. 그 부부들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장자들이여, 결혼생활에 네 종류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남자와 보잘것없는 여자의 결혼생활, 보잘것없는 남자와 가치 있는 여자의 결혼생활, 가치 있는 남자와 보잘것없는 여자의 결혼생활, 가치 있는 남자와 가치 있는 여자의 결혼생활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을 가치 있거나 보잘것없다고 나누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으며, 그릇된 성관계를 맺고, 거짓말하고, 술을 마셔 취하고, 계를 지키지 않고, 성품이 악하며, 인색한 마음을 지녔고, 수행자를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와 정반대로 행동하면 그는 가치 있는 사람이겠지요.

이 내용에서 남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편이 훌륭하면 아내가 덤으로 복을 받는다거나, 반대로 아내가 훌륭해서 그 덕을 남편이 본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고결한 성품을 지녔다고 해서 아내까지 덩달아 그리되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그렇다고 해서 남편까지 ‘부부니까’ 하며 넘어가지는 않는 것이 부처님이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설령 부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선업을 지어서 즐거운 과보를 받을 때 부부니까 그 즐거운 환경에서 함께 살아갈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즐거움은 선업을 지은 당사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부의 연은 어떻게 맺어지는가

불교는 사실 세속을 벗어나 구도자의 길을 걷기를 권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일들, 세상 사람들과의 인연을 부정하는 편입니다. 진정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집을 떠나야 하고, 배우자와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 것이 초기불교 입장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인 가족관계를 깨어야 한다는 점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경전들을 조금 더 살펴보면, 수행을 하는 데에 ‘나 홀로’는 쉽지 않고 오히려 누군가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내용을 만나게 됩니다. 게다가 그 누군가가 이성(異性)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어찌 그리 자신하느냐고요?

당장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주 오래전 전생 이야기(증일아함경 제11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술(超術)이라는 청년 바라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스승 정광부처님에게 나아갈 때 자신의 간절하고 환희에 찬 구도심을 표할 공양물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인 선미(善美)가 다섯 송이 연꽃을 건네줄 테니 그 대신 장차 자신과 세세생생 부부의 연을 맺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청년은 ‘나는 어느 생에 태어나더라도 음욕을 여의고 수행을 할 신분이므로 그 약속을 지켜줄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그런 구도심도 충분히 이해하고 도울 테니 염려하지 말라’며 꽃을 건네줍니다. 이렇게 해서 이 여인과 청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을 부부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아주 조금씩 내용을 달리하지만 수메다와 수미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이 전생담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야소다라의 인연 이야기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팔천송반야경》에서는 살타파륜 보살과 장자의 딸이 거의 비슷한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스승인 담무갈 보살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은데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 슬픔에 빠진 살타파륜 보살에게 장자의 딸이 다가와 자기 재산을 기꺼이 넘겨주면서 함께 스승에게 나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하게 되지요.

이 두 이야기를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부부의 인연이 새삼스럽습니다. 흔히들 말하지요.

“어휴, 전생에 웬수가 부부로 만난다더니…….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사람을 남편으로(혹은 아내로) 맞았을까?”라고요.

하지만 불교에서의 부부 인연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의 경전 내용을 보자면 오히려 한 사람의 구도행을 아름답게 완성시켜 줄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배우자라는 말이 됩니다. 또한 세간에서 부부 인연은 전생에 5백 겁(혹은 5백 생)의 연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야소다라가 그렇게 연꽃으로 처음 인연을 맺어 그 후로 5백 생을 부부로 살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부부는 이런 지극한 인연으로 맺어진 ‘도반’입니다. 그러니 내 수행을 도와줄 배우자가 어찌 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행여 배우자가 너무나 실망스럽다고 해도 그 속에서 내가 바르고 선량하고 이로운 업(선업)을 짓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그저 참고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나와 배우자와 자식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현실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망스럽고 원망스러운 배우자가 뜻밖에도 내 마음공부를 돕고 지혜를 키우도록 도와주는 아주 고마운 도반인 셈이 됩니다. 불교는 부부 인연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부모 따로 자식 따로

소제목이 너무 삭막하고 각박한가요? 하지만 경전에서는 이런 뉘앙스의 내용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번에는 부모와 자식을 얼마나 개별적인 인격체로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경입니다.

옛날 어떤 남자가 나이 60이 되어 늦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를 두었지요. 그런데 이 아들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주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영특하고 말솜씨도 빼어났지요. 늘그막에 얻은 외아들이 이러하니 그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그런데 이 소중한 외아들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병에 걸리더니 하룻밤 사이에 목숨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늙은 아버지는 제정신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기어코 저승의 염라대왕에게까지 찾아가고 말았지요. 산 넘고 물 건너 물어물어 간신히 염라대왕을 만나게 된 늙은 아버지는 엎드려 애원했습니다.

“다 늙어 자식 하나를 두었고, 그 자식 크는 걸 보는 낙으로 이때껏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이 되자 느닷없이 제 곁을 떠나서 지금 저는 살아도 산 게 아닙니다. 염라대왕이시여, 모쪼록 은혜를 베푸셔서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죽은 이를 이승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늙은 아버지가 하도 간청하니 염라대왕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그대 마음 참으로 갸륵하오. 그대의 어린 아들이 지금 동쪽 동산에서 놀고 있으니 직접 가서 데리고 가시오.”

늙은 아비는 허겁지겁 아들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은 슬픔에 휩싸인 아버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 달려가서 아들을 와락 껴안으며 아버지가 흐느끼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내 아들아. 나는 밤낮으로 너만 생각하느라 밥도 먹지 못했고 잠도 자지 못했다. 그런데 너는 이런 아비의 슬픔과 고통을 생각이나 하고 있니?”

그런데 뜻밖에 그 어린 아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품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서 말했습니다.

“미련한 이 노인은 아무 이치도 모르는구려. 잠깐 동안 몸을 의탁한 나를 아들이라 부르는구려. 부질없는 잔소리하지 말고 빨리 떠나시오. 나는 지금 이 세간에 내 부모가 따로 있거늘 황당하게 만나자마자 왜 껴안는 것이오.”

저승까지 찾아가 염라대왕에게 죽은 아들을 도로 이승으로 데려가도록 허락을 받았지만, 사정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문전박대를 받고 더 서럽게 흐느끼며 결국 부처님을 찾았고 부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떠나 곧 다른 곳에서 몸을 받는다. 부모와 처자의 인연으로 모여 사는 것은 마치 여관의 나그네가 아침에 일어나면 이내 흩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거늘 어리석고 미혹하여 얽매어 집착하고 있구나. 그것을 자기 소유라 생각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고 번민하면서도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면 생사에 빠져 끝없이 헤매고 말 뿐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은정(恩情)과 애욕에 탐착하지 않고 그 괴로움을 깨달아 그 원인[習]을 버리며 부지런히 법과 계율을 닦아 마침내 생사를 끝내게 된다.”(《법구비유경》 제3권)

가족을 가리켜서 여인숙에 모였다가 아침이면 뿔뿔이 흩어지는 객에 비유한 이 내용, 어떠신가요? 자식은 부모 소유가 아니라고 이렇게나 딱 잘라 말하는 부처님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그 부처님 맞아?’ 싶을 정도입니다. 너무 냉정한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요? 낳았으니 온 정성을 다해서 길러야겠지만 자식은 자식의 삶이 있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 법이라는 말이겠지요.

《담마빠다》에서는 아예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어리석은 자는/ ‘내 아들이다’ ‘내 재산이다’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자기 자신조차도 제 것이 아닌데/ 어찌 아들을, 재산을 제 것이라 여기는가.


‘자식을 위해 내 인생을 다 바쳤다’고 말하는 부모를 많이 봅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자식을 위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자식을 통해서 내 욕심을, 내 소망을, 내 성공과 성취를 바라며 한 일이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일입니다. ‘내’ 자식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부처님은 여러 경전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해서 말씀하십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고 ‘넌 네 삶을 살아라. 난 내 길을 가련다.’라며 자기 자식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습니다. 내 품 안에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야 하겠지요. 디가 니까야에 들어 있는 저 유명한 《싱갈라까에게 주는 가르침의 경》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다섯 가지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악함에서 지켜준다. 둘째, 선(善)에 들어가게 한다. 셋째, 기술을 가르쳐준다. 넷째, 어울리는 짝을 찾아준다. 다섯째, 적당한 때에 재산을 물려준다.”

‘사악함에서 지켜준다’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부적 같은 것을 써준다는 게 아닙니다. 자식이 악한 일 즉 악업을 짓지 않도록 일러주고 일깨우는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선업을 짓도록 일러줍니다. 이 내용을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줘야 할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바로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는 일’과 ‘선업을 짓도록 인도하는 일’입니다.

간혹 학교에서 그릇된 일을 한 아이 때문에 교사의 호출을 받은 부모 중에서 자기 자식만큼은 구김살 없이 자라게 하고 싶다며 오히려 자식을 적극 변호한다는 말을 간간이 듣습니다. 자식이 잘못된 행위를 한 것이 분명하고 피해를 입은 남의 자식이 버젓이 있음에도 ‘너는 공부만 해.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악업을 지은 자식을 이렇게 감싸는 것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식의 앞날과 다음 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과연 그 부모는 정말 자식을 사랑하고 있기는 한 걸까요?

부모가 자식을 선업으로 인도하고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 내용은 수행자들이 재가 신자에게 해야 할 의무에도 들어 있습니다. 법답게 수행하는 이들은 재가자들에게 늘 악업을 멈추고 선업을 짓도록 권해야 한다는데, 부모가 자식에게 해줘야 할 의무사항과 내용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세상을 먼저 살아봤고 살아가고 있는 어른으로서 자식에게는 정신적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여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수행자가 재가자에게 정신적 스승으로 살아가니까요. 결국 부모는 자식으로 하여금 남에게 꿀리지 말고 떵떵거리며 살도록 해주는 것보다 먼저 자식이 자신과 세상을 위해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짓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에 가서 밤낮으로 자식 잘되기를 빌고 또 비는 우리의 부모님들이시여, 당신들은 정녕 무엇을 빌고 계십니까? 자식이 험한 일 당하지 않고 그저 꽃길만 걷기를 불보살님에게 비셨나요? 하지만 설령 부모님의 그 간절한 기도에 감응하여 불보살님이 그 자식에게 가피를 내리신다 하더라도 자식이 그 가피를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어쩌시렵니까? 정말 자식이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면 자식이 그럴 자격을 갖추도록 비는 것이 더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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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행복을 바란다면

자식을 위해 눈물을 흘린 어떤 어머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인도 땅, 신분제도가 아주 엄격한 그 땅에서 죄인의 목을 베는 일은 천한 신분인 찬달라 출신들 몫이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했지요. 어느 날, 큰 죄를 지은 죄수의 목을 베어야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망나니인 찬달라 한 사람이 죄수의 목 치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비록 신분이 낮아 임금의 명을 따르고 있지만, 내 마음은 거룩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의 목을 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벌레 한 마리도 해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못합니다.”

왕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감히 자신의 명을 어기다니요. 그것도 천민 주제에 말입니다. 왕은 그 망나니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만약 저 죄인의 목을 치지 않으면 네 목을 치겠다”고 소리쳤습니다. 망나니는 기꺼이 자신의 목을 내놓았습니다. 왕은 그를 죽인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의 동생을 불러냈습니다. 인도 사회에서는 직업도 세습인지라 동생 역시 망나니 일을 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 역시 형과 똑같은 말을 하며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다시 그의 동생을 불렀고, 또 그의 동생을 불렀고…….

애초 죽임을 당한 망나니에게는 동생이 여섯 명 있었는데 다섯 명의 동생이 이렇게 처참하게 최후를 맞았고 급기야 어린 막냇동생이 왕에게 끌려왔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어린 그 역시 형들처럼 차라리 자신의 목을 내놓겠다고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왕은 소리쳤지요.

“저 어린 망나니 녀석의 목을 쳐라!”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한 여인이 울부짖으며 뛰어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비극을 맞은 형제들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막내아들을 감싸 안으며 제발 목숨을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머니가 하도 간절하게 애원하자 왕은 오히려 그 모습이 의아했습니다.

“그대는 앞의 여섯 자식이 처형을 당할 때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아들들은 남의 자식이라도 된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막내아들 일에는 왜 그리 호들갑을 떨며 살리려고 애쓰는가?”

그러자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앞서 목숨을 잃은 아들 여섯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착실하게 따르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 있으면서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이 없으니 죽는다 한들 제 마음에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내아들만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범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생명이 위태롭다고 느끼면 나쁜 생각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처럼 간절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 범부는 목숨에 애착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일은 생각지도 않고 나쁜 생각에 쉽게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이 아들의 목숨만은 구해주십시오.”(《대장엄론경》)

왕은 어머니의 말에 크게 감동을 받았고, 이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경에서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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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머니의 모습에 전적으로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입장을 파악하기에 아주 좋은 경이라 생각합니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이야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식의 무엇을 걱정해야 하겠느냐고 경전에서 묻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자식을 대신해서 아플 수도 없고 자식을 대신해서 늙어갈 수도 없고 자식을 대신해서 죽어줄 수도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해서 너를 행복하게 살게 해줬다’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부모의 희생으로 마련해준 그 행복을 자식은 정말 ‘행복하다!’라고 여길까요?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만, 그게 자식이 바라는 행복인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 차원의 행복 수준이겠지요. 그렇다면 부모는 자식의 무엇을 걱정해야 할까요? 잘 먹고 잘사는 걸 걱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식이 어떤 순간에라도 그릇된 생각을 품을까 그걸 염려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걸 이 경에서 암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식과 부모는 어떤 관계인가

어떤 부모를 만나는가는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었다면야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는 바람에 사람으로서 느껴야 할 행복과 보람을 오히려 느끼지 못하고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 너무나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고생을 하며 자랐어도 알차게 자기 인생을 꾸려가는 젊은이도 많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하고 세상에 선한 힘을 미치는 경우도 우리는 자주 봅니다. 그렇다면 금수저 집안이든 흙수저 집안이든 그것도 부모 탓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정말 중요하겠지요.

다음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줍니다.

부처님께서 코살라국 사위성에서 탁발을 하시다가 어느 공터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버려진 갓난아이를 발견하고 품에 안았습니다. 아이는 비록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었지만 전생에 수없이 수행을 이어온 터라 그 몸에서는 상서로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아이를 안아 들자 하늘의 제석천이 천상의 옷 한 벌을 아이에게 내주었지요. 이 아이는 부처님을 따라 사위성에 탁발을 나갔다가 어느 가정집에 들어갑니다. 그 가정집의 안주인은 아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바로 자신이 낳아서 버린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머니에게는 허물이 없습니다. 그러니 기뻐하십시오. 내가 전생에 지은 악업으로 금생에 어머니 배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복전이시니, 나를 가엾게 여겨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부끄러워 마시고 서둘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십시오. 어머니는 커다란 이익을 얻으실 것이니, 나를 회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리의 안내자이신 부처님께 나아가 어떤 공덕이 있을 것인지를 여쭈십시오.”

아이는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게 이런 뜻밖의 노래를 부를 뿐만 아니라, 제석천에게 부탁해서 천상의 꽃이나 옷가지 등 뭐든 달라고 합니다. 그걸 어머니에게 주어서 부처님에게 나아갈 때 공양 올리도록 하려는 마음입니다. 이 경은 아이의 이름을 따서 《부사의광보살소설경(不思議光菩薩所說經)》이라 합니다.

경의 내용이 너무나 종교적이라서 현실의 모자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주인공인 버려진 아이는 예사 사람이 아니라 수도 없이 수행을 많이 해와 금생에 부처님 제자가 되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불행하게 인생을 시작하고 끝까지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와는 너무나도 거리감이 있습니다. 자칫 자식을 무책임하게 내팽개친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만 같고, 자식에게는 모든 불행은 다 네 탓이니 부모 원망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이 경에서는 부모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불교적 입장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모는 한 생명을 세상으로 불러내어 이웃과 세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게 했고, 나아가 그 아이가 부처님을 만나 깨달음에 이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어떤 절망적이고 극악한 환경에서라도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한 부모는 큰 공덕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경에서 보듯이 자식은 자식의 인생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부모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닌 것이지요. 자식은 제 몫의 삶을 살려고 태어났고, 부모는 그 한 생명에게 삶의 단초를 제공한 존재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서 자식이 자기 몫의 삶을 힘차고 보람차게 살도록 하기 위해 바르게 교육하고 살뜰하게 챙겨주는 존재가 바로 부모입니다.

자식은 자식 나름으로, ‘이 모든 게 엄마 아빠 탓이야!’라며 부모 탓을 하지 않고, 낳아주셔서 그저 고마울 뿐이고, 제 몫의 삶을 살아갈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주지해야 하겠지요.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 탓에 노력하는 데도 제대로 된 결과가 따르지 않는다면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부모나 기성세대에게만 미루지 말고 스스로가 두 팔을 걷고 나서야겠지요. 그래야 나는 내 몸을 빌려 태어나는 내 자식에게 정의로운 세상을 펼쳐 보여줄 수가 있으니까요.

부사의광보살 이야기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장차 부처가 될 가능성을 지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는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어떤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그것은 내가 보살행을 실천해서 장차 부처가 될 바탕을 마련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말이 됩니다. 내 삶을 그렇게 가꿔가고 주변의  힘든 이들에게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보살의 삶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런 보살을 이 세상에 낳은 또 한 사람의 보살입니다.


다음 생에도 한 가족으로 만나려면

초기 경전에 등장하는 부부로 아주 유명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나꿀라 아버지(나꿀라삐따)와 나꿀라 어머니(나꿀라마따)입니다. 이 부부는 금실 좋기로 소문났습니다. 늘그막엔 부처님 계신 절에 와서 온종일을 머물다 갈 정도로 독실한 불자 부부입니다. 어느 날 이 노부부가 부처님에게 묻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주 어려서 부부의 연을 맺어 이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도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고 다음 생에도 부부로 맺어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아직 해탈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니, 반드시 번뇌를 다 털어버리고 윤회를 끊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초기불교 입장으로서는 대답하기가 곤혹스러울 질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질문도 그대로 받아들이십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다음 생에도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싶은 범부의 소망을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부가 이번 생에도 죽을 때까지 함께 행복하게 살고, 다음 생에도 그렇게 되고 싶다면 네 가지를 함께해야 합니다. 첫째는 믿음이 같아야 합니다. 둘째는 함께 계를 지켜야 합니다. 셋째는 함께 보시해야 합니다. 넷째는 함께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같은 믿음과 같은 지계, 같은 보시와 같은 지혜를 지니면 부부는 이번 생에도 해로하고 다음 생에도 부부로서 함께 지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앙굿따라 니까야 제4권)

네 가지 항목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여기에서 ‘함께’라는 말에 더 끌립니다. 부부 중에 어느 한쪽만이 이 네 가지를 실천한다면 부부로서의 인연은 이번 생으로 끝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배우자와 이번 생도 해로하고 다음 생에도 그렇게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이 네 가지를 지금부터라도 실천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단, 두 사람이 꼭 함께해야 한다는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부부뿐이겠습니까. 사랑하는 내 자식들과 다음 생에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자식들 역시 부모와 똑같이 이 네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 경을 음미해보면 좀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결국 가족은 끼리끼리 같은 업을 짓고 같은 습을 익힌 자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번 생에 한 가족으로 만났겠지요.

불교는 어떤 가정을 꿈꾸는가

‘불교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보려니 어렵습니다. 가정이야말로 낱낱 개개인의 현실 삶이 출발하는 터전이고, 개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 민낯을 드러내는 곳이 가정일 수 있습니다. 내 가족을 챙기기 위해 악업도 망설이지 않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단 내 가족부터 살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압니다. 나만, 내 가족만 잘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야 내 가족도 행복하고, 내 가족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합니다. 그러자면 나의 행복은 곧 세상의 행복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너무 논리가 비약한 것 아니냐고 힐난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 가족의 행복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것도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우리에게 행복하라고 권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행복하도록 노력하라고 일러주고, 우리가 행복하면 함께 기뻐해주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진짜 행복을 찾아 나서야겠지요.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남 보란 듯 떵떵거리는 행복은 어쩌면 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누군가의 몫에서 가져온 것이고, 누군가의 양보와 손해를 부릅니다. 그건 진짜 행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그렇게 말합니다. 누군가의 손해와 불행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그런 행복 말고, 오롯하게 흠 없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 하겠지요. 세속에서는 선업에 따른 즐거운 과보가 진짜 행복이요, 출세간의 길에서는 해탈열반이 바로 그 진짜 행복입니다. 그 진짜 행복을 찾아 나서고 진짜 행복을 이루는 데 혼자 힘으로 부족하니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진짜 행복해지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을 떠나 어디에서 이만큼 마음이 잘 맞는 도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순도순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그것으로 행복을 느끼고 누리고 좋은 일도 하게 해주는 곳이 가정입니다. 나아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주 오래전 전생에 야소다라를 만나 성불의 수기를 받은 것처럼, 그리고 이번 생에 싯다르타가 성을 나와 수행하여 성불했을 때 야소다라와 라훌라가 더불어 출가 수행하여 도를 이룬 것처럼 가정은 그런 곳이라고 불교는 보고 있습니다.

가족은 내 업장이자 애물단지이자 빚쟁이나 원수 덩어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장차의 부처님들이 수행을 완성하기 위해 아내로 남편으로 자식으로 한 울타리 안에서 깃들어 살고 있는 곳이지요. 이렇게 가족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면 뜻밖에 쉬워집니다. 불교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가꿔갈 수 있는지 자명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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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

경전 이야기꾼, 불교 칼럼니스트. 동국역경원 작업에 동참하고, 사찰에서 다양한 경전 강의와 불교입문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붓다 한 말씀》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수행입문》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등과, 공저로 《불교입문》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들》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행복의 발견-에세이로 읽는 반야심경》 《경전의 성립과 전개》 등이 있다. 불교평론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