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7

내란의 시대에 맹자를 다시 읽다: ‘성선론’의 재발견 - 에큐메니안

내란의 시대에 맹자를 다시 읽다: ‘성선론’의 재발견 - 에큐메니안
내란의 시대에 맹자를 다시 읽다: ‘성선론’의 재발견적의 계보학㉜
김제란 책임연구원(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 승인 2025.05.04 00:52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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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란 연구원은 성선론의 선제적 조건에 대해 밝히며 성선설이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강조한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용납될 수 없는 중대 행위로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2025년 4월 4일 오전11시 22분, 헌법재판소 최종 선고)

오랫동안 나의 가치관은 동아시아 철학의 핵심인 성선론(性善論, the theory that human nature is good)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성선론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도덕적으로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논의이다. 그런데 윤정권이 시작된 이후로 모든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이 이론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작년 12월 3일 계엄 선포와 그 이후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과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서 회의가 점점 더 심해졌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오히려 인간 본성은 악한 것이니 외부의 제어와 강제적인 조절이 필요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이 옳은 것이었는데, 완전히 착각하고 잘못된 길을 왔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지난한 시간을 지나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이 될 때까지 그 과정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혼자서 기진맥진하였다. 지금도 윤석열 정권 본당들의 내란은 진행 중이고, 윤석열은 감옥에서 탈옥한 지 한 달도 넘게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성선론이 너무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사고라는 걸 알았으니, 나의 가치관을 성악설로 바꾸어야 하는가?

마음이 안정이 안 되어 『맹자』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수없이 읽었던 그 책을 간만에 꺼내보니, 낡아서 색이 바래어 있었다. 동아시아 유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맹자(孟子, BC.385-303)가 성선론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확립하였는데, 이것이 동아시아 문화 전체를 세팅한 바탕이 되었다.

맹자가 성선론을 주장했던 이 시기는 “거리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그 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절굿공이를 둥둥 떠다니게 할 정도”로 참혹했던 전국 시대라는 전쟁의 시기였다. 맹자가 스승으로 높이는 공자는 “인간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이 그 인간됨의 거리를 멀게 한다”는 지극히 교육적인 말을 하였을 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단언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성선설 주장의 공과 과는 전적으로 맹자, 그리고 맹자를 뒤따른 유학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모두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였는가?

나는 『맹자』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문장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시비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아, 맹자는 어떻게 이렇게 단호할 수 있는가? 이 기준으로 보면 지금의 현실에는 인간이 아닌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 안국역 앞의 탄핵 시위 사진 ⓒ김제란 제공


“남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을 실현할 수 있는 단서이고,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를 실현할 수 있는 단서이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은 지혜의 단서이다. 인간에게 이 네 가지 단서인 사단(四端)이 있는 것은 그에게 팔다리 네 개가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단설이고, 이를 벗어나는 유학 이론은 없다. 성선론의 핵심이 이 사단설이고, 조선 오백년 유학사 역시 맹자의 이 말에 대한 해석의 역사일 뿐이다.

맹자는 이어서 사단을 확충 발전시킬 의무와 책임이 개개인에게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본래적으로 이 사단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성선론의 실현을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정전제(井田制)라는 평등한 토지 무상분배 제도가 성선론 실현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던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소박한, 너무나 소박한 말들이 있었다.

“일반 백성은 항상된 수입이 없으면 항상된 마음(=도덕심)을 간직할 수 없다. 항상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기를 기다린 뒤 좇아가서 벌을 준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백성들의 생업을 만들어주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충분히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충분히 기를 수 있어서, 풍년에는 배부르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게 한다. 지금은 위로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 처자식을 먹여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에도 내내 몸이 고달프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죽음에서 자신을 건져낼 여유조차 없는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익히겠는가?”

그리고 정전제 실현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맹자는 공자와 함께 원칙적인 봉건주의자였고, 봉건주의는 천자(황제)-제후(왕)-대부(고급관리)-가(하급관리)-백성으로 이어지는 봉건주의 하이어라키를 근본으로 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맹자는 백성들에게 인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면 봉건 질서도 부정할 수 있고, 왕도 정치를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론을 제기하였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해도(=죽여도) 됩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인(仁)을 해치는 자는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고, 정의를 해치는 자를 잔인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자는 보잘것없는 한 남자일 뿐입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한 남자인 걸과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맹자· 양혜왕』)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마음이 조금 풀렸다. 성선론이 단순히 모든 인간이 선하다는 이론이 아니었던 것이다. 맹자 성선론은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언설인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이다”(『논어· 안연』)는 공자의 생각을 발전시킨 것이다. 자기를 이기는 일(극기)과 예의 회복(복례), 즉 나의 욕심과 게으름을 이겨내고 주 나라 봉건제도를 회복하는 일이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 할 길이라는 것이 공자의 주장이었고, 맹자는 ‘극기’의 측면을 보다 강조하며 발전시킨 것이었다. 복례의 ‘예’는 봉건주의 제도와 규범, 가치관 등을 통합한 단어이다. 그래서 유학은 ‘극기’를 통해 내적으로는 성인(聖人)이 되고, ‘예의 회복’을 통해 외적으로 왕도(王道) 정치의 실천을 주장하였다. 유학은 이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실현하려는 철학이었다.

▲ 성선론의 중요한 내용이 나오는 <맹자> 한문 원본. ⓒ김제란 제공


그러면 내가 여기에서 할 일은 인간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의 논의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인 성인(聖人)이 되기는 불가능하나, 내적·인격적인 변혁을 통해서 사단을 확대 발전시키는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는 있다. 맹자가 성선론으로 그걸 보증해주었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예’는 과거의 봉건 계급주의가 아니라 모든 개인의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민주주의이고, 우리는 제도적, 사회적 변혁으로 현대 왕도정치인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 맹자 성선론의 길인 것이다.

우리는 그를 위해서 법과 제도를 엄격히 적용하여 법적, 역사적 심판을 시행해야 한다. 신하가 왕을 시해하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던 수천년 전 봉건주의 시대에 맹자는 인(仁)과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 왕은 왕이 아니니 죽여도 상관없다며 ‘혁명’을 말하였다. 서양에서 프랑스 대혁명은 황제 루이 16세를 처형함으로써 봉건주의 구체제 모순을 제거하고, 19세기 이후 각국 시민 혁명의 촉발제가 되어 근대 시민사회를 열었다. 2025년 대한민국은 국민 앞에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타나 전쟁을 일으키고 시민사회를 총칼로 지배함으로써 영구 집권을 꿈꾸었던 내란 수괴자 윤석열을 “파면하였다”. 이제 법에 따라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그를 도운 내란본당들을 강력히 처벌하는 일만 남아 있다.

나는 성선론을 버릴 수 없다. 내 속의 선한 본성을 믿고 내적, 인격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외적, 사회 제도적 변혁을 추구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마음속에 사단이 있음을 알고 이를 확대 발전시키며 살겠다는 마음, 이것이 바로 성선론인 것이다.

맹자와 유사하게 철학자 칸트도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과 같이 내 마음속에 양심이라는 자율적인 도덕 법칙이 있음을 말하였다. “깊이 생각할수록 새로운 감탄과 함께 마음을 가득차게 하는 기쁨이 있다. 하나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다.” 맹자는 우리를 이렇게 격려한다. “나에게 사단(四端)이 있음을 알고 잘 키워나간다면, 이것은 불꽃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샘물이 막 퐁퐁 솟아오르는 것과 같아서 온 세상을 다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제란 책임연구원(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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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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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시대에도 성선(性善)을 말할 수 있을까...
김제란 선생의 짧은 글을 내가 더 짧게 요약해보았다.
맹자는 "거리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그 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절굿공이를 둥둥 떠다니게 할 정도”로 참혹했던 전쟁의 시대에도 '성선설'을 내세웠다.
위기 상황일수록 "이기적 자아의 극복과 예의 회복"(克己復禮)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고,
인간됨의 근간인 四端(측은지심/仁, 수오지심/義, 사양지심/禮, 시비지심/智)의 구체화를 꿈꾸었다.
맹자는 그런 이상 상태가 가능하기 위한 논리적 전제로 인간 본성의 선함을 요청한 것이다.
손바닥에 王자를 그리고는 정말 王이 되고 싶어했던 이로 인해 세상이 온통 혼란스러워졌어도, 대다수의 국민이 난국을 극복하려 시도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성선'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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