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9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박규태 /Park Kyutae 2014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Focusing on Kim Taechang


비교일본학

2014, vol.31, pp. 37-79 (43 pages)

UCI : G704-SER000001507.2014.31..012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일본문학 > 일본문화학
박규태 /Park Kyutae 1


1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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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천년대 초입을 전후로 하여 일본에 일기 시작한 공공철학 붐의 문화론적 의의를 고찰하는 글이다. 이때 본고는 특히 998년 4월 사사키 다케시(佐々木毅) 전 동경대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대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김태창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교토포럼>을 통해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경영, 건강, 의료, 세대간 관계, 자기론, 매스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대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발 공공철학과 관련하여 학제간 토론을 주도해 오면서, 그 세 가지 이념형적 목표로 활사개공(活私開公), 공사공매(公私共媒),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주창하고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대해 일본문화론으로서의 공공철학, 한류로서의 공공철학,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한의 저쪽에서 일치하는 평행선의 사유”를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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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철학,
김태창,
활사개공,
일본문화론,
한류,
동아시아 담론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박규태**

2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NRF󰠏2012󰠏2012S1A5B8A03034081)

** 한양 학교 교수5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Key words :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26)

들어가는 말 : 김태창은 누구인가

  <주간 동양경제>라는 일본의 표적인 경제전문지에서 2003년 신년특 집호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위기에 처하는 23명의 현자의 지혜라는 주제하에 한 한국인을 인터뷰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김태창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일본의 개혁방법에 관한 청사진 가운데 일본이 포스트 경제 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국가전체보다는 개개인이 정신적/문화적으 로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것, 요컨 키워드는 민의 힘을 살리는 활사개’(活私開公)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공창’(幸福共創)이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김태창, 2012_11b:15󰠏16) 여기서 말하는 활사개공이나 행 복공창이란 무슨 의미인가? 한일 지식인들이 타자와의 사이()를 연 인(大人)”(모리오카 마사요시, 2013_12:4), “공자가 말하는 인 유학자 (大人儒)”(야마모토 쿄시, 2013:5), “끊임없이 화하는 철학자”(오가와 하루히사, 2013_11:2), “탁월한 지식경 인”(최재목, 2013_12:13) 등으로 극찬해 마지않는 김태창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극찬은 일본에서 가장 한국에 정통한 철학자로 말해지는 오구라 키조의 다음 수사에서 하 나의 정점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악보가 없는 강렬한 생명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생명을 짓밟으려고 하는 모든 행위와 사상에 한 생명적인 항이다. 한국과 일 본의 틈새에 이와 같은 철학적 생명 그 자체가 활화산의 분화구처럼 분 출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 한 사건이다. 그의 강의를 들은 일본 인은 전율과 함께 까칠까칠한 위화감, 그리고 소리치고 싶은 듯한 고양을 느낀다. 그는 일본이라는 이국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일본어로 일본인들과 무수한 화를 거듭하고, 한국을 정신적 토 로 삼으면서도 일본인과 함께 새로운 철학을 구축하고자 하는 견실한 노력을 20년 이상이나 계속해왔다. 과연 누가 지금까지 이런 일을 이루어냈을까? 식민지 지배를 당한 나라의 인간이 그것을 가한 나라의 인간과 철학 화를 계속하고, 그것을 공공철 학이라는 개념으로 가꾸어낸다고 하는 활동을 그 누가 해낼 수 있었을?”(오구라 키조, 2013:10󰠏12. 필자의 윤문)

  다수의 문저서[1])와 일본어로 간행된 20여권의 공공철학 시리즈물[2])을 포함하는 놀랄만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현 교토 소재 <장래세 총합연구 소> 소장, 오사카 소재 <공공철학 공동연구소> 소장, <수복서원> 원장 등을 겸임하고 있는 김태창은 19984월 사사키 다케시(木毅) 전 동경 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3)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장본 인에 다름 아니다.4) 사실상 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통해 종래의 멸사봉공(滅私奉公)적 공공성뿐만 아니라 멸공봉사(滅公奉私)적 미이즘 (meism)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그 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본 에서 공공철학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침투5)하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슬람, 인도, 일본에서의 공사에 관한 사상사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사회학적, 경제학 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공사 역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2(2004) 5권 및  3(2006) 5권에서는 자치/법률/도시/리더십/문화와 예술/종교/지식인/조직과 경

/의료와 건강/세 간 관계 등으로부터 생각하는 공공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 비판󰡕(1980),인간  세계 그리고 신󰡕(1985),정치철 학적 사고의 궤적과 그 주변에 모아진 사고의 단편󰡕(1989),현 정치철학: 탐색과

전망󰡕(1989),21세기에의 지성적 응󰡕(1993),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2010),(일 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2012) 등 다 수의 국내저술이 있다.

3)   <장래세 총합연구소>의 모태인 <장래세 국제재단> 이사장이자 <교토포럼> 사무 국장. <장래세 국제재단>19926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지구정 상회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연합회의>가 개최된 다음 달인 19927월에 미국 에서 설립되었다. 이 재단의 전신이 바로 1989113(문화의 날, 이전의 메이지 절)에 교토에서 발족한 <교토포럼>이다. 이 제1회 교토포럼에서 향후 1990년부터 2 개월에 한 번씩 학제간 화를 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으며 그 추진자로서 김태창이 동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92년 김태창은 <장래세 총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 하게 된다.

4)   김태창은 이 두 사람과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을 통해 <공공철학 교토포럼>이 가능 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일본에 와서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들과 함께 이룰 수 있 었던 가장 귀중한 농사다고 토로한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244󰠏45)  

5)   현재 일본을 표하는 사전에서 공공철학시민적 연 감이나 공감 그리고 비판 적인 상호토론에 기초하여 공공성의 부활을 지향하고 학제적인 관점에 서서 사람들 에게 사회적 활동에 한 참가나 공헌을 촉구하고자 하는 실천적 학문”(󰡔廣辭苑󰡕 6 )으로 정의되어 나온다.


1934년 청주의 이른바 ‘다문화가정’6)에서 출생한 김태창은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그 후 한국인이 된 인간이다. 유소년기는 일본어라는 국어 상용이 의무화된 생활환경 속에서 자라나 일본문화를 알고 일본역 사를 배웠다. (중략) 나는 일본인임을 의심한다든지 분명한 위화감을 가 지는 일은 없었다.”(金泰昌, 2002b:199)고 식민지 소년의 아이덴티티를 술회한다


6)   그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이란 반일적 성향이 강한 주자학자 던 할아버지와 친서구 적인 독실한 기독교신자 던 어머니, 그리고 일본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로 구성된 가정을 가리킨다. 이들은 각자 개성이 강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김태창은 이 세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것이 어릴 때의 가장 큰 바람이었 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사이’와 ‘상생’과 ‘공복’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김태창 편저, 2010:99)


해방 뒤 연세 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어, 독일어, 불어 등을 가르치면서 학원 과정을 마쳤다(정치학박사). 젊었 을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던 그는 결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라 국제관계철학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충족될 수 없었 던 김태창의 학문적 열정은 그로 하여금 국, 독일, 프랑스, 북유럽, 스 칸디나비아 반도, 동유럽 등 5년에 걸쳐 56개국을 돌며 인간학적 체험을 추구하는 방랑자로 만들었다.7) 


7)   이 당시 그는 의식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했다그것은 과거에 일본이 한 국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침략한 것에 한 반동에서. “한국의 지식인의 한 사람 으로서 일본을 무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일본에 이기기 위 해서는 일본보다 더 나라를 발전시켜서수준 높은 학문을 닦고 일본 학자보다 뛰어 난 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 새겼다.(야마모토 쿄시, 2013:3) 8) 김태창의 생애에 관해서는 주로 (泰昌, 2002b) 및 (김태창 편저, 2010:98󰠏99) 참조.


귀국 후에는 충북 사회과학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학생운동이 한창인 학내에서 제자들로부터는 체제옹 호적이라고 비난받고 국가권력으로부터는 체제비판적이라는 의심을 받아 한때 체포 감금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1990년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일본으로 간다. 더 이상 방황할 여유도 없고 여력도 없어서 앞으로는 일본에서 중국과 한국 을 왕래하면서 친구들과 힘을 합쳐 어떤 모델이라도 제시하고 싶다는 생 각을 하면서, 국경을 초월하여 시민들끼리 만들 수 있는 좋은 사회를 꿈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8)   본고의 목적은 이와 같은 김태창이 주창한 공공철학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그리고 그의 비전이 일본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 지를 되물으면서 현 일본사회에 있어 그의 공공철학 담론이 가지는 의 의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물론 일본의 공공철학 또는 공공성 담론은 비 단 김태창이 주도해온 <공공철학 교토포럼>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이 와 전혀 무관하게 일본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공공철학 담론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3]) 이하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주로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 <공공철학 교토포럼> : 왜 일본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4])19984월에 발족한 이래 현재까지 약 17 년 이상 거의 매달 한번 꼴로 개최되었는데, 매회 3일에 걸쳐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한 주제당 발표 20분에 토론 40분이 주어지고 종합토론에 있어 철저한 화 위주의 형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이 포럼에서는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 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 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 건강, 의료, 세 간 관계, 자기론, 매스 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 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공공의 관점에서 학제간 토 론이 이루어져왔으며, 전술했듯이 그 내용의 3분의 1정도가 동경 학출 판회를 통해 <시리즈 공공철학> 20권으로 나왔으며, 기타 <시리즈 이 야기론> 3권 및 관련 단행본들로 계속 출간되고 있다.

  1회 포럼의 논의는 공과 사의 사상사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기조 는 공공은 공에 친 성이 있고 사의 반 에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이 는 하나의 전략적 접근이었을 것이다. 당시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의 일 본에는 공공이라는 이름하에 관료사회의 특징인 공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조가 있었다. 이와 함께 전전, 메이지, 에도시 로의 회귀를 꿈꾸는 향 수가 사회 전반에 걸쳐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김태창은 활사 개공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에 편향된 일본인들의 정신 풍토에 변화를 일으키고 의 긍정적인 측면을 점차 부각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를 살아있는 개개인의 원초적인 행복의지로 재해석하고 그 것이야말로 제도적 지배가치에 우선하는 참된 인간적 가치의 자연적 기 반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는데, 이는 마치 공천하국가(公天下國家)로서 의 일본을 송두리째 탈구축하려는 듯한 야심찬 기획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공적 성향이 강한 제도권 학자들의 반발과 적개심을 사기도 해서 충돌과 불화가 적지 않았지만, 김태창은 역사상 이 일원적으로 민을 짓눌러온 일본에서 공공민과 함께 하는 공공으로 의미변용하 기 위해 공공철학을 동아시아삼국의 범위에서 확실하게 구축한다는 전략

을 선택하게 된다.(야마모토 쿄시, 2013:4󰠏5)

  김태창은 이와 같은 포럼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구자들을 네 세 로 구분하고 있다

  1. 예컨 제1세 의 미국 및 유럽 전문가들, 미조구치 유조를 비롯한 제2세 의 중국사상/철학/문화 전문가들
  2. 다나카 쇼조(1 841󰠏1913)민중적인 공공성 담론을 개발한 3세 의 일본사상/철학/문 화 전문가들,[5]) 
  3. 그리고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주자학 연구, 야규 마코 토(柳生眞)의 최한기 연구, 가타오카 류(片岡龍)의 한일비교연구 등 현재 공공철학 담론을 주도하는 제4세 의 한일 비교사상/철학/문화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거론되고 있다.(김태창, 2013_7:8󰠏9)

  이 가운데 특히 철학, 윤리학, 역사학, 사상사, 정치학, 경제학, 법학, 과학론, 공공정책론 등 다양한 학문적 입장에서 21세기에 알맞는 공공성 을 추구한 제1회 포럼에 즈음하여 김태창이 밝힌 취지에 주목해 보자. 그는 이때 반성적 작업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공공철학의 기본 과제를 인간과 국가의 관계를 고찰함에 있어 중간적인 매개 역의 활성 화, 건전화, 성숙화에서 찾으면서 특히 구체적인 생활세계의 공공성과 국가를 넘어선 공공성의 지평이 결합된 글로컬한 공공성의 창출을 제 안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에 있어 공사 관계의 규명 및 서구 공사관 계와의 비교를 통한 재구축의 작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김태창에 의하 면,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는 공사 담론은 의 문제에 편중되어 예컨 종래의 을 부활시키는 것이 문제해결책이라는 발상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포럼은 철저히 화정신에 입각한 의미생성적 화공간12)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金泰昌, 2001a:ⅳ󰠏ⅺ)    이처럼 포럼 초창기부터 공공철학을 화로서의 철학으로 규정했던 김태창의 인식론적 태도는 그의 서구 경험에서부터 배양되었다. 그는 특 히 노르웨이에서 자기와 타자 사이에있어 립/갈등/분쟁하는 당사자 쌍방의 주장/요구/의도에 귀를 기울여 성실하게 경청하는 태도에 입각한 재조명/재평가/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2) 여기서 말하는 화란 무엇인가


(1)인식의 원천은 경전이나 고전 혹은 인간 뇌 속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관계에 있어 화적 실천이야말로 인식 생성과정 이다

(2)화정신은 독화(獨話)정신과 조적인 관계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모든 일 을 라는 개아를 중심으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독화정신이라 한다면, 화정신은 나의 세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원 리적으로 불가능한 타자의 존재와 의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정신을 가 리킨다

(3)화공간은 참가자가 사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성과와 결과가 화 속에 서 생겨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누군가의 생각과 논리에 압도당하여 그것과 동 일화, 통합화, 일원화되는 것과는 정반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런 화공간 에서는 자기만 아는 전문용어라든가 특수한 논리를 필요 이상으로 고수하지 말아야 하며, 가능한 한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말로 바꾸어 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와 더불 어 불신을 조정하고 불화를 해소하며 적의를 완화시키기 위한 학제간 횡 단매개적인 연구 활동이 중시되는 학계 풍토와, 거기서 산출된 성과에 기초하여 유럽이나 중동에서의 조정자 역할을 지향하는 자타 상화(相和) 의 시민철학을 경험했다. 그런 경험 위에서 김태창은 동아시아에 있어 자타 상화적 시민철학의 태동과 양육과 성숙을 일본에서의 철학 화에 기 한 것이다. 그는 1990년 후반의 동아시아 정세에서 중국이나 한국 에서는 그런 동향을 기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했던 모양 이다

반면에 일본에는 막부 말기의 사상가 요코이 쇼난(横井小楠, 180 9~69)이 세계의 조정자 역할에 충실하자고 하는 국가상을 역설한 역사적 실례가 있는데, 이런 사상 자원을 새롭게 살리고 발전시킨다면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기 한 것이다. 물론 그는 과거 일본의 허상과 일본인의 그릇된 마음[僞心]20세기 동아시아에 그늘을 가져온 원인이 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인의 본심(진심, 실심)만 부활된다 면 반드시 동아시아의 밝은 미래를 향한 움직임이 강화될 수 있다고 하 는 희망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김태창 편저, 2010:30󰠏32) 이와 관련 하여 김태창은 자신이 다름 아닌 일본에서 공공철학 운동을 펼치게 된 소이연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저의 일본학습은 주로 동경 학 법학부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교토 소)를 중심으로 행해졌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가운데 마침내 당도한 것이 라는 관점에서 일본의 과거와 현재와 장래를 다시 한 번 조명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문제의식일 뿐만 아니 라 많은 일본인들의 문제의식이기도 했고, 나아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문화 등과 관련해서 그 문제로서의 의미와 위상이 커지고 있었다고 하는 당시의 사정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김태창 편저, 2010:32) 

  여기서 말하는 당시의 사정에 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1960년 일본 사회학에서는 공공성문제가 상당히 논의되었는데, 고도성장기가 끝난 70년 중엽 이래 이 테마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이어 8 0년 에 들어서면 미이즘’(meism)라 불리는 사생활주의의 만년에 의한 의 괴리 및 그것의 전형적인 표출로서 가족이나 지역공동체와 같은 중간집단의 쇠퇴가 두드러지게 된다. 한편 90년 에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주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주의 및 경제중심의 글로벌 리즘의 발상이 세력을 얻어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풍 조가 공공성의 무 를 잠식하고 사적인 생활세계에까지 깊이 침투하게 된다. 이리하여 90년 말 오부치 케이조 내각 때 공이냐 사이냐라는 공사 문제가 정계의 중심문제로 부각된 사회적 배경하에서 전술한 <공공 철학 교토포럼>이 발족하기에 이른 것이다.[6]) 이에 해 김태창은 “1998 년 당시의 상황을 직시해 보면 이러한 일은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도 저히 불가능했을 것[7])이라고까지 단언하기도 한다.

Ⅱ. 김태창의 공공철학 비전

  김태창은 자신이 말하는 공공철학은 무엇보다 먼저 그것이 서구적(특 히 미국발) 개념의 추수나 적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동아시아발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공공철학’(public philo sophy) 하면, ‘국가적 공의 개념과 명확히 다른 공공성’(publicness, Öffe ntlichkeit) 개념을 제시한 한나 아렌트와 하버마스[8]) 및 미국에서 처음으 로 공공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1955)한 리프만, 공공철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을 주장한 로버트 벨라, 공동체주의적 공공철학을 제창한 마이 클 샌델 등에 의해 20세기 후반에 새롭게 등장한 학문을 지칭한다.(山脇直司, 2002b:1) 한편 김태창은 공공철학을 크게 세 범주로 나눈다. 공공의 철학’, ‘공공성의 철학’, ‘공공(하는) 철학이 그것이다. 여기서 공공의 철학이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철학을 가리킨다면, ‘공공성의 철학은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학술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전문가 지향의 철학을 의미한다.16) 이에 비 해 김태창이 자신의 공공철학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공공 (하는) 철학이다. 이는 공공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이해하면서 공사 이원론을 넘어서서 󰠏󰠏공공의 상극/상화/상생적 삼원사고를 축으로 하여 자기와 타자와 세계를 상호 연동적으로 이해하는 철학, 혹은 전문

가와 시민이 공공하는 철학을 지칭한다.(김태창 편저, 2010:72󰠏76/김태창, 2007:82󰠏85/김봉진, 2007:114󰠏120) 이와 관련하여 김태창은 이렇게 적고 있다.

일본학자들은 체로 일본어의 공(오호야케)에는 어의 퍼블릭이라는 의 미가 들어가 있지 않으며, 따라서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공공철학 하면 반드시 미국의 public philosophy와 관련시켜 논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공공(하는) 철학은 그 주요용어도 기본개념도 미국이나 유럽과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 공공()은 서양에서 수입된 개념이 아니다내가 사용하는 공공(하는철학의 개념 은 결코 리프만의 책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그것은 한중일의 사상 자원을 재해석해서 나온 것이다.”(김태창 편저, 2010:80󰠏81/김태창,

2007:89. 필자의 윤문)

는 것을 의미한다.”(한나 아렌트, 1996:102) 둘째,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것 이고, 우리의 사적인 소유지와 구별되는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한나 아렌트, 1996:105) 즉 아렌트는 공공성의 의미가 공개성공통성에 있다고 명확히 정 의내리고 있다. 하버마스 또한 공공성’(Öffentlichkeit)공개성이라는 의미로 사 용했다. 하지만 아렌트의 공공성이 고 그리스의 폴리스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비 해, 하버마스의 공공성은 18세기 유럽의 시민사회를 모델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어 쨌거나 현재 일본과 한국학계의 공공성 담론은 거의 이런 아렌트와 하버마스를 논 의의 토 로 삼고 있다.

16) 김태창과 더불어 일본의 표적인 공공철학자 중 한사람인 야마와키 동경 교수는 공공철학을 철학, 정치, 경제 및 기타 사회현상을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 로 고찰하는 학문”(山脇直司, 2002b:1)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김태창이 말하는 공공성의 철학에 해당한다.

 

김태창에 의하면 미국발 public philosophy는 위에서 언급된 세 가지 공공철학 유형 가운데 하나인 공공의 철학과의 비에서 언급할 수 있 는 공의 철학공공성의 철학의 일부로 구성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공공(하는) 철학public philosophy보다 더 포괄적인 철학이 라는 것이다.(김태창 편저, 2010:79) 김태창은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해 동 아시아의 고전들을 샅샅이 조사하여 공공이라는 용어와 개념의 전거를 찾아내는 데에 힘을 쏟았다. 가령 중국의 경우 사마천의사기󰡕에 나오 는 천하공공이라는 표현이라든가[9]) 󰡔주자어류󰡕천하공공이나 중인 공공’, 일본의 경우는 17세기 이토 진사이라든가 19세기 요코이 쇼난 혹 은 다나카 쇼조 등의 유학자들에게 있어 과는 구별되는 공공이라는 표현,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16세기에 공공지물’(公共之物)을 언급한 이 이라든가 공공상의’(公共商議), ‘공공심실’(公共審實) ‘공공출납’(公共出納) 등을 언급한 정약용의 사례 등이 그것이다.(김태창 편저, 2010:82󰠏85/ 김태창, 2007:89󰠏92) 요컨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미국발 public philosop hy와 차별성[10])을 가지는 동아시아발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발 공공철학의 세 가지 이념형적 목표로 김태창은 활사개공(活私開公), 공사공매(公私共媒), 행복공창(幸福共創)이라는 신조 어를 제시한다. 먼저 활사개공이란 공과 사의 어느 한쪽만을 강조해왔 던 전통적인 공 철학’(滅私奉公) 또는 사 철학’(滅公奉私)에서 탈피하 여 양자를 연결하여 ’(국가, 제도세계)’(개인, 생활세계)를 모두 살리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공공철학에 있어 전가의 보검과 같 은 핵심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특히 활사가 단순히 자기가 아닌 타자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 컨 활사는 타자의 를 살리는 것을 뜻하며, 그러면 자기로서의 도 동시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김태창 편저, 2010:42) 바꿔 말하자면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와 가치와 존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정부와 체제를 보다 인간친화적인 것으로 변혁시 키는 것, 그것이 바로 개공이다.(김태창 편저, 2010:129) 김태창이 생각 하는 공공세계란 이와 같은 활사개공을 가능케 하는 상호매개적인 중 간집단/조직/구조를 가리킨다

제도세계에서 지배적인 향력을 행사해온 공사 립적, 공선사악(公善私惡)론적사고구조를 탈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세계의 기본지 향인 의 생명/생존/생활의 자립과 질적 향상에 한 인식을 새롭게 하 고 상보상생적인 활로를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멸사봉공도 아니고 멸 공봉사도 아닌 활사개공을 낳고 키우는 공공세계가 열릴 것. 지금의 문제 는 제도세계와 생활세계가 서로 동떨어져서 잘 연결되고 있지 않으며 전 자가 후자를 일방적으로 지배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제도세계와 생활 세계를 그 사이에서 함께 더불어 편향 없이 잇고 맺고 살리는 상호매개적 중간역동()’(중간집단, 중간조직, 중간구조)이 필요하다. 이런 중간역동 을 포괄적으로 공공세계라 한다.”19)

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2기 전5권의 완간 을 기념하는 화모임(1)” <공공철학>26, 20132, 14.

19)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1기 전10권 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2)” <공공철학>26, 20132, 1󰠏2.



  김태창은 이런 공공세계의 역학을 공사공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공사공매는 적인 시민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쳐 개인의 생활세 계와 제도세계(국가, 정부, 체제)사이에서 다원적인 매개작용을 발휘 함으로써 공공의 시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의 시민은 멸사봉공 의 극단에 빠져들기 쉬운 공민(公民, 공중 또는 국민)도 아니고 멸공봉사 쪽으로 치우치기 십상인 사민(私民, ‘적인 시민)도 아니다. 그는 활사 개공과 공사공매를 추구하는 공공민(公共民)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 공철학은 활사개공의 철학이자 공사공매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김태 창, 2007:98) 나아가 김태창은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롯하여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공복(共福)의 공공세계를 일컬어 행복공창이라고 한다. 이 는 역사적, 문화적 동질성에 기초한 연 론을 확 /심화/축적해 나가는 공존의 형태(私共)가 아니라, 이질적인 타자와의 화를 통해서 그 이타 성(異他性)을 부정 또는 말살하지 않는 방향에서 서로의 행복을 보증하 려는, 즉 공공하는 행복을 지향한다. 다시 말해 이는 활민공복’(活民共

) 즉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생명력의 약동을 키우고 그것들이 함께 서로 어우러지는 가운데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되도록 최선을 다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11])

  이처럼 활사개공󰠏공사공매󰠏행복공창을 추구하는 공공철학은 일면 낭만 적이고 낙관적인 이상주의처럼 보일지 모르겠다.[12][13]) 하지만 김태창에게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친생명적인 실천철학으로서의 공공하는 철학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공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자기와 타자 사이에 서 (對話)한다’, ‘공동(共働)한다’, ‘개신(開新)한다의 삼차원 상관적 인 활동연관을 가리킨다.22) 공공철학의 세 가지 실천 강령이라 할 만한 이 화󰠏공동󰠏개신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술했듯이 독화(모놀로

)와 비되는 화(다이얼로그)는 공공철학이 지향하는 바가 전문가와 중이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시민철학으로서의 화의 철학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23) 한편 공동협력으로서의 공동(共働)은 뜻을 같이하는 자들 끼리 경제적 기반을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공유한 상태에서 공공세계 를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 동지적인 연 를 구축하며 일하는 것을 의미한 다. 이때 공공세계를 새롭게 열어가기가 지칭하는 것이 바로 개신(

)이다. 미래개척 혹은 새로운 지평열기로서의 개신은 을 열어 공공 세계를 새롭게 연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란 구조화된 가부장 주의, 고정관념, 이데올로기, 할거견(좁은 시야), ‘’(인간)없는 체제, ‘’ (인간)없는 국가의지, 민을 사물화(私物化)하는 지배자 이기주의 등을 가 리킨다. 이런 공에 금을 내어 공사공매와 활사개공의 길을 여는 것이 개

신이다.(야마모토 쿄시, 2013:13󰠏15)

  이상에서 살펴본 로 활사개공󰠏공사공매󰠏행복공창이라는 세 가지 목 표와 화󰠏공동󰠏개신이라는 세 가지 실천 강령을 함축하는 공공철학의 특징적 관점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1) 체로 내면지향적인 보고 생각하는혹은  ‘읽고 말하는()’ 기 존의 철학(학문)에 비해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자기와 타자 사이의 발화/응답 관계에 입각한 듣고 이야기하는’ 철학으로서 다른 철학이 어딘가 감추고 있는 권위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김태창 편저, 2010:27󰠏2 9) 이와 관련하여 김태창은 내재/내향/내발도 아니고 외재/외향/외발도 아닌 간재(間在)/간향(間向)/간발(間發)’의 중시가 자신의 기본입장임을 밝히고 있다즉 안과 밖의 사이에 서서 그 사이로부터 안과 밖의 양 방향을 맺고 잇고 살린다는 것이다. (김태창 편저, 2010:45)

22)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2기 전5권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1)” <공공철학>26, 2013.2, 13.

23)   그렇다면 김태창은 왜 일본에 이런 화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일까? 개성 적인 김태창론을 펼치는 야마모토 쿄시에 의하면, 일본은 공기(분위기)라고 하는 정 체를 알 수 없는 공적 혹은 사적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위축되어 있다. 그런 일본 에서 행해지는 화는 극히 예정조화적이며 정해진 틀로부터의 일탈은 인정되지 않 는다. 가령 일본에서의 심포지엄은 참가자 각자의 의견이 옆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 화와 토론에 의한 자타의 상호변용은 예상되지 않는다. 이처럼 일본에서 화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원인 중의 하나로 김태창의 지적처럼 을 중시하지 않는 일본 인의 성향을 들 수 있다.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말보다는 이심전심의 마음을 더 중시하기 때문일까? “말은 뜻을 다 전달하지 못한다”(言不盡意) 하여, 말을 본질이 아닌 방편으로 이해하는 일본인의 마음에는 실심이 없다. 말 을 경시하는 풍조에서 생겨나는 것은 실심실학이 아닌 허심허학이라는 것이다.(야마 모토 쿄시, 2013:12󰠏13)


  (2) 공공철학은 에 해 새로운 물음을 제기한다. 예컨 활사개 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 한 새로운 이해이다. 종래 는 가 능하면 억압하고 다스려야 할 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런 소멸에서 살림’(//)으로서의 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14])   (3) 공공철학은 시 적 요청성에 민감하다. 가령 공(남자)과 사(여자)의 젠더적 배치를 비판하는 페미니즘적 문제제기[15][16])에서 자극받은 김태창은, 오늘날의 공공성논의에 여성이 부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는 우 리 모두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남녀라는 성별로 나뉘어진 신체적 차이를 지닌 인격적, 인칭적 존재로 살고 있기 때문에 성차라는 관점이 공공론 에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공공철학 담론이 결국 일 본이라는 국가의 틀 안에 머물러 버림으로써 국경내적, 민족차별적, 자문 화중심적 경향이 암묵적인 전제로 당연시될 위험성을 우려하면서 월경적 관점을 강조한다.[17]) 이와 아울러 김태창은 ’(국가/정부/관료)’(개 인/시민)에 해 독립변수로서의 공공개념을 상정하면서 그것을 인류 와 지구’(글로벌), ‘국민국가’(내셔널)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 생존, 생업의 현장’(로컬)의 삼차원 상관적 공매 즉 글로내컬’(glo󰠏na󰠏cal)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김태창 편저, 2010:54󰠏55) 

(4)             이와 같은 글로내컬적 관점에서 엿볼 수 있듯이, 공사 이원론에서 󰠏󰠏공공의 삼원론을 상정한다는 데에 공공철학의 새로운 발상전환 이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위에 군림하면서 에 의한 의 지배와 탄압과 부정을 정당화해왔다. 이런 과 달리 공공를 상하관계나 우열관계가 아닌 등관계로 파악함과 동시에 쌍방 사이에서 어느 쪽도 부정되지 않도록 중개/매개/공매하는 기제이 자 작용을 가리킨다.[18]) 요컨 김태창의 공공철학에 있어 공공은 명백히 다른 범주에 속한다.(金泰昌, 2002a:ⅲ)

(5)             요컨 활사개공’ ‘공사공매’ ‘행복공창으로 공공(하다)’를 재정 립하고자 하는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인식론적 전환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전혀 새로운 지식체계의 창출을 추구한다. 이른바 친생명적 실 천지로의 전환이 그것이다.[19]) 바꾸어 말하자면 이는 종래의 공지(公知) 와 사지(私知)[20])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으로서의 공공지 (公共知)를 가리킨다. 그것은 자타상생의 지, 국가나 국민과 같은 틀을 넘어서는 탈경계적 지, 세계/우주/장래세 로 확산되는 글로벌과 현실의 생활현장인 로컬이 상호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내셔널의 차원에서 서로 이어지는 글로내컬한 지, 시민의 협동네트워크를 통해 생생하는 민중지, 국민도덕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덕성을 함양하는 공감지, 자타간 만 남의 증언과 공감기억을 중시하는 역사의 지, 과거세 와 현재세 와 장 래세 의 삼세 가 함께 더불어 참된 행복을 이루려는 공복지(共福知), 생태윤리적 양심과 생태미학적 감성을 그 중핵에 두는 매우 새로운 양태 의 체험지, 생활자의 자립과 그 생활의 질적 향상을 통해 생활세계를 충 실하게 하고 고양시키는 생명지/생활지/생업지, 다양성이나 이질성에 해 열려있는 다성적인 화지 등으로 무수한 동심원의 파문으로 퍼져나 간다. 한마디로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동질성(폐쇄적인 동일성)과 통합성

(배타적인 단일성)을 지향하는 공지와 사지 및 신격화된 전문지로부터 이상과 같은 공공지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김태창, 2013_5:5󰠏8)

Ⅲ. 공공철학 담론의 일본적 의의

1. 영성적 지식인으로서의 김태창 : 스피리추얼리티 담론30)

  고베 학 교수인 심리학자 모리오카 마사요시(森岡正芳)는 김태창을 만나면 누구나 예외 없이 느끼는 강렬한 에너지”(모리오카 마사요시, 2013_12:5)에 해 언급하고 있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그의 삶의 궤적을

의미에서 공리지(功利知)라 할 수 있는 사지는 과학만능주의나 경제지상주의에 지배 받기 십상이다. 한편 타자에 해서는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식이고 장래세 에 한 책임감도 결여되어 있으며 자기보존을 지향하고 전문지의 독점과 축적에 몰두 하는 경향이 있다.(김태창, 2013_5:6)

30) 1970년 이후의 주술󰠏종교붐혹은 정신세계붐을 거쳐 90년 이후 오늘날에 이 르기까지 일본사회의 중문화, 미디어, 출판계, 학술계 등에 스피리추얼리티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이런 스피리추얼리티 담론에 관해서는 (박규태,

2011b:136󰠏147) 참조.

따라가다 보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에 피소드만 상기해 보자.(김태창, 2012_10:1󰠏6) 김태창은 6.25(당시 중학 교 3학년)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기적처럼 자신 을 구해준 것은 이 지닌 신기한 힘이었다고 회상한다.[21]) 이윽고 전쟁 이 끝난 뒤 어느 날 불치병(척수염)으로 전신불수가 된 김태창은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그때 그는 김태창은 아직 해야 할 일 이 남아있다. 여기에서 죽으면 곤란하다. 인민해방군의 갑작스런 포위에 도 살아남았는데, 여기에서 병마에게 지는 것은 억울하다. 무슨 일이 있 어도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우주의 생명력이 작용할 것이라 믿 었고 그는 다시 살아났다. 당시 그는 만약 기적이 일어나서 살아남는다 면 말을 가지고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맹세를 했다고 한다.[22]) 그 후 고등학교 때 허약한 체질로 인해 학교에 거의 가지 못하고 집에서 혼 자 독학했던 김태창은 학입시 시험 당일 어시험 때 아무 것도 생각 이 나지 않아 라는 존재의 철저한 무능력을 절실하게 통감하면서 난 생처음 필사적으로 하느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감독관이 흔들어 깨워서 눈을 뜨고 시험지를 다시 읽으니까 신기하게도 답이 저절로 나왔고 그는 어시험 최고득점자가 되었다.[23])

  마치 신종교 교조전을 보는 듯한 이런 에피소드에서 우리가 일종의 종 교적 신비체험을 읽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는 이런 체험의 흔적을 그의 공공철학 기획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김태창은 앞에서 공공철학의 키워드로 언급했던 활사개공“‘활 사란 자신의 사()가 살려진다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사가 살려짐에 의해 자신의 사가 살려진다고 하는 통민운화(通民運化, 자신과 타자의 결합)”라고 규정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를 자신이 아니라 타자라고 보는 역전은 다름 아닌 기학(氣學)의 관점에서 볼 때 일어나는 것이다.34) 이때 살린다가 아니라 살려진다’(かされる)는 김태창의 표현은 일본 인의 종교적 심성 한가운데에서 작동하는 중요한 코드이기도 하다.   나아가 앞서 언급한 공공철학의 세 가지 실천 강령 즉 󰠏공동󰠏개 신또한 그 핵심에는 종교적 차원이 숨겨져 있다. 가령 김태창은 <만엽 집>말의 적 에너지가 꽃피는 나라”(言靈はふ國 事靈のさきはふ)라는 시적 표현을 단히 좋아한다. 이는 고 일본의 언령’(言靈) 신앙을 반 하는 시적 표현으로, ‘의 수단인 말 하나하나에 생명이 깃들어있고 말의 주고받음 자체가 수많은 서로 다른 꽃들의 생명으로 피 어나 그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행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나라에 한 동경이 묘사되고 있다. 한편 개신을 마음의 차원에서 말하면 깨 달음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뜻있는 사람들끼리의 공동은 인간 의 숨겨진 가능성을 각성케 함으로써 혼돈의 세계를 말의 적 에너지 가 꽃피는 나라로 바꿀 수 있다. 그런 행복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 는(幸福共創) 움직임이 바로 개신이라는 것이다.(야마모토 쿄시, 2013:1 1󰠏16) 사실상 공공철학의 최종목표라고도 할 수 있는 행복공창의 비전 은 그 어느 쪽도 억압되거나 부정당하는 일 없이, 양자 모두

부리로 톡톡 껍질을 쪼아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로 현현함으로써 정답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34) 김태창에 의하면 자신을 살리고 자신이 살려진다고 여기는 것은 오만이다. 이 점을 깨닫는 것은 바로 자기완결성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자기도취로부터의 각성체험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신운화적 기의 작용이 통민운화(자신과 타자의 결합) 그리고 천지운 화(자신과 자연의 결합)로 이어지고 결합되며 서로 살려주는 생기/원기/정기의 작용

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된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327󰠏28)

가 서로 상보적으로 개선/향상/전진하는 활사개공을 전제로 한다.(김태 창 편저, 2010:43) 이런 의미에서 행복민주주의35)를 주창하는 김태창은 행복을 사적 만족이나 국가의 공적 조정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기󰠏 타자󰠏세계의 상관관계에 있어 감동󰠏공감󰠏공명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파 악하면서 공복“(共福, 함께 행복해진다) 또는 향복’(響福,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교향한다)을 지향점으로 제시하고 있다.[24])   요컨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가르침의 학문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의 학문’(김태창 편저, 2010:469)이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깨달음의 학 문은 김태창이 공공이성만으로 공공성이 보장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공공감정이라든가 공공의지라든가 공공 성의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김태창 편저, 2010:136)고 말할 때의 공공 성[25])과 떼려

35) 롤즈는 정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행복을 지향하는 원리를 비판하고 있지만, 김태창 은 정의도 개인과 사회와 세계의 상관적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제2차적 규범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유나 평등도 결국에는 인간과 사회와 세계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 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행복민주주의의 이론화와 현실화를 지향한다. 그가 보기에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복지민주주의도 개념적으로 이런 행 복민주주의에 가깝다. , 복지민주주의가 제도설계에 중점을 둔 사상과 정책이라면, 행복민주주의는 개개인의 행복 실감을 중시한다.(김태창 편저, 2010:132󰠏33)

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세트를 구성한다. 그는 이런 근거로서 공공감정공공 성에 관한 뚜렷한 격론이 명시되어 나오는조선왕조실록󰡕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한다.38) 이처럼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그 안에 뚜렷한 종교적 경지를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공공철학을 일종의 신종교적인 것으로 구상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공공철학의 핵심은 깨달은 자의 무분별지(진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범부의 분별세 간지에 머무르는 데 있다.”(김태창 편저, 2010:45)든가, 일본신화에서 만 물생성력을 가리키는 성인 무스히(産靈)는 신의 조화가 아니라 실은 인간적 활동이라고 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김태창, 201

2_10:7)고 못을 박는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김태창은 전형적인 성적 지식인39)이라고 불 릴 만하다. 이런 성적 지식인은 생명은 반드시 서로를 살림으로써 비 로소 생기 있고 활기 있게 된다는 것, 거기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 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어떤 일이든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며, 자기가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천지만물이 자기편이 되어준

점에서 다시 한번 성에 기초한 정신혁명이나 인간혁명이 공공철학 운동 속에 서 퍼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 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2기 전5권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3)”

<공공철학>28, 2013.4, 2󰠏3.

38)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가령 임 금의 결정이 옳지 못하다는 충언을 상주할 때 먼저 그것은 천하고금이 공공하는 바에 어긋납니다라고 공공이성적 사유를 제시한다. 하지만 그것이 충분히 설득적이 지 않을 때는 그것은 천하만민이 함께 더불어 분개하고 분노하는 공분(公共之憤)을 불러오고 말 것입니다라는 공공감정적 호소로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이런 천하공 공의 분노로도 부족하다는 심증이 생기면 빈번하게 신인공분”(神人共憤)이라는 표 현이 동원된다. 이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성이 관련된 공공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려우니까 신의 힘까지 빌려서라도 최고 권력자의 잘못된 전횡을 막아 보려는 최후의 몸부림이 나타나 있다.(김태창, 2013_7:4)

39)   종교학자 시마조노 스스무가 주류문화를 표하는 지식인들 가운데 우메하라 다케 시(梅原猛), 가마다 토지(鎌田東二), 가와이 하야오(河合隼雄), 나카자와 신이치(中沢新一),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 유아사 야스오(湯浅泰雄) 등 현 일본의 신 성문 화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지식인을 지칭한 표현으로, 학문적 지성과 아울러 제종교 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특정 종교에 속한 종교적 지식인

과 구별된다.(島薗進, 1996:250󰠏67 / 2007:66) 

다고 하는 깊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낄 줄 아는 지식인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해도 보다 좋은 미래에 한 희망을 잃지 않는 낙관주의 자임과 동시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성 선설의 입장에 서는 인간이자 미래에 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 다름 아니다.(김태창, 2012_10:11󰠏15)

2. 일본 담론 : 부정적 일본문화론의 전략적 복권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는 일본/일본인/일본문화에 관한 부정적 담론 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일본 담론이 가지는 의미를 제 로 파악하 지 못한다면 그의 공공철학에 한 이해는 단히 불완전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인식과 더불어 이하에서 살펴볼 김태창의 일본 담론은 후술할 한국과의 비교 관점 혹은 동아시아의 관점과 함께 연동하면서 전 체적으로 타자담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990년에 도일한 김태창은 특히 19984월 이래 자신이 일관적으로 해 온 일은 전체를 우선시하는 멸사봉공적 경향과 개인을 우선시하는 멸 공봉사적 경향을 그 사이에서 매개/상관/상보함으로써 상호향상을 꾀하기 위한 철학 유신활동이었다고 회술하면서(김태창 편저, 2010:143), “자기이 해는 타자이해와 연동하며, 일본인식은 세계인식과 공진(共進)한다는 것 이 내 발상의 원점에 있다.”(金泰昌, 2002a:ⅰ)고 천명한다. 이때 멸사봉 공의 정신구조는 전체의 화()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즉 전체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의 에토스를 가리킨다. 김태창에 의하면 이런 에토스야말로 일본의 오랜 전통에 기초한 도덕감정으로 그 것을 보존/유지/보급시켜 나가야 한다고 믿는 일본인들이 많이 있다. 그 들은 오늘날 일본교육의 현실을 비판하고 아름다운 일본을 만들기 위해 서는 의 정신이나 애국심을 함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일본사에 있어 정신적 주류 던 이런 발상의 흐름 속에서 최 근 2006<교육기본법>은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던 종래의 교육이념 이 의 복권에 초점을 맞추어 개정되었다. 이는 전전의 멸사봉공적 국 체 이데올로기에 한 반동으로서 전후 개인을 우선시하는 사고가 사회 적 심리로 확산되어 나타난 멸공봉사적 현상에 한 재반동의 측면을 내 포한다. 이처럼 전체를 우선시하는 전통적인 멸사봉공적 가치와 개인을 우선시하는 멸공봉사적 가치가 립 갈등하거나 교섭 타협하면서 현 일

본사회를 구성하고 있다.(김태창 편저, 2010:141)   그런 가운데 일본은 끊임없이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싸고 애매한 태도 를 노정해왔다. 김태창에 의하면, 일본이 공적으로 만든 역사를 되돌아보 면 단히 유감스럽게도 날조와 말살이 곳곳에 눈에 띤다. ‘’(국가)에 의한 역사 왜곡 예컨 제국주의적 전쟁과 그것이 가져온 비극에 해 자국의 역사를 거짓으로 꾸미는 일이 횡행하고 있으며, 식민지 지배가 끝난 뒤 화해에 한 노력이 불충분한 채 다만 불성실한 변명과 자기정 당화만이 되풀이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다. 요컨 일본은 자신의 추함을 직시할 용기가 없으며, 국가나 민족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꾸며내고 불리한 부분은 깨끗이 잊어버린 다고 하는 기만이 아무런 의심 없이 생활 속에 배어있다. 역사란 자기 와 타자의 만남의 증언이자 자기와 타자의 화적 상호작용의 이야기라 고 믿는 김태창은 이 목에서 공공철학의 일본내 확산을 통해 공감기억 으로서의 역사인식의 배양을 기 하고 있는 듯싶다.(김태창, 2013_5:5)   이와 같은 자타관에 입각한 김태창의 일본론은 기본적으로 일본사회문 화에 한 비판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전술했듯이 일본의 정신풍토에는 오랫동안 국가가 만든 멸사봉공이라는 슬로건이 만연되어 왔고 이에 한 반발로 멸공봉사즉 노골적인 사리사욕 지상주의가 횡행하고 있 는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일본이 당면한 도덕적 위기의 실상이라는 것이다.(김태창, 2013_5:6) 김태창은 현 일본사회에 한 이와 같은 비 판적 진단[26])에 입각하여 종종 일본인의 언어관, 내면 중시의 심관(心觀), 간인(間人)주의, 무사(無私), () 등과 같은 일본문화론적 관념에 해 비중 있게 발언하고 있다.  

  첫째, 일본에는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라고 여겨지는 전통이 있 는데, 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폐쇄적, 쇄국적, 화거부적, 자기완결 적, 부권적, 보신적, 정체적, 체념적 경향과 결부되어 있다. 그 결과 자주 적, 자율적인 실존이나 사고가 부재하기 십상이다. 즉 일본에서는 토론이 나 논쟁, 남과 다른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환 받지 못하고 공동 체의 화()를 깨뜨리는 것이라 하여 일방적으로 꺼려진다. 그래서 일본 에서는 비판적인 생각을 지닌 개인, 집단, 조직, 운동에 한 뿌리깊은 혐오감이나 배제의식 또는 체제에 비판적인 지식인에 한 불쾌감이 존

재한다는 것이다.(김태창, 2013_5:4)

  둘째, 언어에 한 일본적 불신은 일본사상의 한 특징인 사상의 내면 화혹은 내면중시적 경향과 관계가 깊다.41) 일본의 사상풍토 어딘가에 는 자기 외부에 실재하는 타자를 중시하는 것을 타자에게 의존한다든가 복종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거나 타자에게 휘둘리거나 지배받는 것이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하여 거의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많다. 그 러면서도 실재하는 주위의 타자들(국가 혹은 개인)에 한 경의가 결여 되어 있는 자신들의 태도에 해서는 둔감하다. 그런 심정의 심층에는 모든 것을 자기 내면에 생기하는 현상으로 환원시키고, 거기에 모든 사 념과 상념과 관념을 회수/집중/통합시키고자 하는 신체감각적인 기질이 있다. 이런 내면 중시의 경향은 사상적 특징일 뿐만 아니라 뿌리 깊은 생활감정의 취향이기도 하다. 나아가 제도적인 외부의 문제까지도 인간 내면의 마음의 문제로 바꾸어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는 일본적 심관 의 미덕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타자와의 관계가 거의 완전히 차

. 나아가 국가나 기업의 권력장치가 비윤리적으로 가동됨으로써 시민사회의 건전 성을 파괴하는 일에 해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는 권력지상주의나 이윤추구 지 상주의가 민중의 머리 위를 활보하고 있다.(김태창, 2013_5:2󰠏4)

41) 내면중시의 사상경향은 언어의 효능을 경시하는 문제점이 있다. 놀랍게도 다수 일 본인의 언어활동에 한 인식과 신뢰와 평가는 낮은 정도가 아니라 단히 약하다. 이 점은 자기와 타자 사이에 전개되는 언어활동을 가장 중요시하는 공공철학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문화적 측면이다.(김태창 편저, 2010:46)

단된 유아독존의 경지에 빠질 수도 있다.(김태창 편저, 2010:43󰠏44)   셋째, 일본인론에서 언급되는 간인주의는 관계를 중시하는 인간관인 데, 이것은 김태창이 강조하는 사이의 인간관과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의 구별이 있고 그것들이 따로따로 공존/공생 하기는 해도 서 로서로 살리는 상생에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 또한 전술한 일본인의 내면 중시 경향과 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것이 내면으로 수렴되는 곳 에서는 자기와 다른 존재와의 사이라는 발상이 생겨나기 어렵기 때문 이다. 거기서는 안과 밖은 있어도 사이는 없다. 그리하여 일본인에게는 상생이라는 생각은 없고 오로지 공생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너는 너 고 나는 나니까 과거 일에 해서까지 반성하고 상호간에 쌓인 원한을 풀 필요가 실감되지 않는다. 강증산이 말하는 해원상생이라는 발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살고 살리는 상생의 길을 열기 위한 기본조 건으로서의 역사를 청산하고 진심으로 사죄함으로서 서로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갈 필요와 중요성을 체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김태창, 20

13_8:6󰠏7)

  넷째, 내면중시의 심관에서는 타자도 자기도 동시에 그 모습이 소멸되 어 없어지는 절 무의 상태 또는 무사’(無私)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김태창은 종래 일본인의 마음이라고 말해져 온 이 무사정신은 상위자 로부터 강제된 것이며, 일본인의 자연스럽고 진실한 마음은 역시 무사가 아니라 행복을 바라는 ’()의 마음일 것이라고 본다.(카타오카 류,

2012_5:13)

  끝으로, 김태창이 볼 때 일본인은 기본적으로 정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일본인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다. 신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화()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래 의 일본적 화가 실은 동()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일본에서 중시되어 온 는 한 집단 내에서의 동화/동호/동행 및 외부인의 배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기와 타자 사이에서 함께 서로 상 를 중시하는 상화(相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결과 화와 동이 혼동되는 데에서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과 타락이 생겨나는 것이며, 때 문에 지금까지의 일본적 화를 탈구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장차 동 아시아에서의 공존, 공생, 공복은 이 아니라를 통해 실현될 가능

성이 높기 때문이다.(김태창 편저, 2010:53/96󰠏97)

  이상과 같은 비판적인 일본문화론은 일종의 전략적인 측면이 많아 보 인다. 즉 김태창이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주관하기 시작한 당시 일본사 회에는 긍정적 일본인론이 득세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일본을 개 혁하려는 전략적 의도 하에서 부정적 일본인론의 복권을 꾀한 것이 아 닐까 싶다.[27]) 그 과정에서 공공철학 자체가 하나의 일본인론이라는 성격 을 함축하게 된 것이다. 이때 일본개혁에 있어 공공철학자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교육개혁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일본사상󰡕(1960)에서 원래 학은 진리추구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는데 현재는 그 이념이 붕괴되 어 전문가가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문어항아리형[28]) 상태가 되었다 고 지적하면서, 본래 있어야 할 학문체계를 부챗살형이라고 불렀다. 이 는 가늘게 쪼갠 나무를 묶은 부챗살처럼 제학문이 상부에서는 상세하 게 전문화되어 있어도 하부에서는 공유할 수 있는 이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마루야마의 문제제기에 공감하는 공공철학은 문어 항아리형 학문체제를 타파하는 학문개혁의 기폭제로서 의미 있는 향력 을 가지고 있다.(야마와키 나오시, 2011:32󰠏34)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상전=공공성이라는 도식이 존재했으며, 메이 지시 이래 공 은 특히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관료제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관치국가의 제도설계와 운용체계로서의 법률체계를 잘 정비했으나, 민주/민활/민권의 역동이 교묘하게 억압되어 왔다. 관존민 비, 관도민종(官導民從), 관선민악이라는 사회풍토가 그것이다. 이는 일본 의 근 화가 전부 관주도로 진행되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인 식에 기초한다. 어쨌든 이런 민 경시의 풍토 속에서는 국가중심적 공공 성에 항하는 민중주도적 공공성을 상정하고 육성하기가 매우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김태창 편저, 2010:439)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공공철학은 일본개혁을 위 한 전략으로 일본전통에서 공공철학의 단서를 찾아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를테면 일본에 있어 공공철학(만일 그런 것을 상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 574󰠏622),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1834󰠏1901)를 잇는 형태로 구축/해체/재구축되어 왔다. 가령 쇼토쿠 태자의 ()를 귀히 여긴다라는 <17조헌법> 1조는 일본적 화의 논 리에 입각한 일본적 구축의 기본철학을 명시한 것으로 재해석된다. 한편 이토 진사이는 교토의 도시 상공인(町人) 사회를 배경으로 일반서 민의 입장에서 생활세계의 공공질서론을 전개한 천하공공의 사상가[29]) , 그리고 오규 소라이는 일본적 공사관을 주자학적 고정규범에서 해방 시켜 일본 독자적인 것으로 설명한 근세 사상가[30])로 각각 자리매김된다. 또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개화라는 당시 최 의 시 적 요청에 응하는 일본적 ’(오호야케)의 사상체계를 수립한 근 적 공공철학자로 말해진다. 이후국체의 본의󰡕(國體本義)신민의 도󰡕(臣民) <교육칙어>에 의해 근 일본의 공적 사상체계가 확립되는데, 이런 사상 체계는 국가철학의 발전/정착/확장을 의미하며 공공철학과는 구별되어야 만 할 것이다.

  이밖에 나카에 토쥬(中江藤樹, 1608󰠏1648)46), 구마자와 반잔(熊沢蕃山, 1619[31]󰠏1691)[32]),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 1685󰠏1744)[33]),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3󰠏1762)[34]), 요코이 쇼난(横井小楠, 1809󰠏1869) 등도 일본적 공

공철학의 단서를 제공한 사상가로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요코이 쇼난은 본격적인 공공철학의 제창자로서, 정치의 궁극적인 근거를 타자와의 토 론을 통해 형성되는 공론에서 구하고 그런 공론에 의해 일본이 유도 (有道)의 나라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공론 사상은 그의 제자 유 리 기미마사(由利公正, 1829󰠏1909)를 통해 1868년 공포된 <5개조 서문> 널리 회의를 열어 논의를 하며 중요한 일은 모두 공론에 의해 결정 한다는 조목으로 반 되었다. 그는 집단이기주의에 해 공공의 천리에 반 되는 할거주의라고 불렀지만, 말년에는 서양열강의 할거주의가 가지 는 위험을 설파하면서 국방을 중시하는 국권론 쪽으로 변화했다. 어쨌든 공론공정이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공공이라는 말을 일본에서 처 음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쇼난은 일본에서 근 적 공공철학 을 처음으로 제창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본사상사에 있어 철학으로부터 공공철학으로의 발상 전환은 요코이 쇼난의 공공성 담 론(公共天理, 天地公共實理, 公共, 公共, 天地大道 등등)

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야마와키 나오시, 2011:80󰠏90)


3. 한국 담론 : 한류로서의 공공철학   부분의 일본인론은 서구(혹은 중국)와 일본을 비교할 뿐, 한국과의 비교 관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한국과의 비가 일본 담론에 있어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예컨 김태창은 쇼 토쿠 태자(574󰠏622)<17조 헌법>에서 민을 다스리는 관의 윤리로 ’ ()를 제창했던 거의 동시 에 한국 승려 원효(617󰠏686)가 화쟁(和諍)사 상을 주창하여 당시 삼국󰠏󰠏일본 간의 격렬한 립관계 속에서 상극/상 화/상생/ 상통을 내세운 데에 주목한다. 쇼토쿠 태자가 국가통합적 이념 으로서의 를 위로부터(헌법으로서) 내세웠던 데 반해, 원효의 화쟁회 통 사상은 민의 입장에서 이질적인 타자와의 화를 촉구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전술한 공공철학의 세 가지 실천 강령 즉 화/공동/개신은 인 간성에 한 무한한 신뢰와 성선설에 입각한 행동원리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실은 원효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김태창은 필생의 작업으로서 일본의 ’()사상과 한국의 사 상의 화를 시도해왔다. ‘위 한 화를 가리키는 야마토’(大和//日本) 의 비교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다. ‘야마토가 일본민족의 심층심리 에서 작동하는 심적 에너지라면, ‘은 한민족의 집합적 체험의 기층과 기저에서 작동하는 원초적 기력 혹은 집합적 무의식을 뜻한다. 한편 야 마토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치질서의 신념체계라면, ‘은 그런 천 황제를 상 화시키는 어떤 것이 된다. 그런데 김태창에 의하면, ‘야마토의 창출에는 언제나 의 흔적을 말소시키는 수순이 필요했다. 가령 스 사노오는 최초의 의 흔적이다.[35])의 말소는 과거의 한 때에 일어 난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36]) 다시 말해 일본인과 일본국의 정체성 형성의 시원에는 반드시 의 흔적을 철저하게 말소한다는 사건이 필 수조건임과 동시에 그것이 역사를 통해서 그 모습을 바꿔가면서 반복 재 현되어 왔다는 것이다.(김태창, 2012_5:2󰠏4)

  ‘은 일()/()/()/                        ()/()/()/()/() 등 의미가

매우 다양한데,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이 그런 의 중핵에 있다. 때문 에 성과 이성이 이어지는 한마음(一心)의 경지를 뜻하는 이 매개됨 으로써 생명의 평등이 실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라’(/) 라는 말로 바뀌어서 일본의 종교/사상/철학/문화의 심층에 스며들어 여러 모로 흔적을 남겼다.52) 그러나 일본인은 자기정립을 위해 역사적, 조직적 으로 가라라는 이름으로 바뀐 의 흔적지우기를 행해 왔다. 가령 일 본 국학의 성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가 그 표적 인물이다. 그는 야마토고코로(大和心),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를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가라고코로’(=한마음과 한얼)의 흔적을 말소해 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야마토적인 것은 곧 가라가 아닌어떤 것 이라는 부정형으로밖에는 말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이후 한국적인 것 에 한 거부심리가 더욱 강화되었고 그 변주곡이 계속 이어져 왔다. 예 컨 탈아입구를 주창하면서 아시아적 유교주의를 비판한 후쿠자와 유키 치, 일본사상과 문화가 중국문화 및 인도문화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 쓰다 소키치, 근세일본사상 만의 특유한 현상으로서 주자학적/중 세적 사유의 자기해체와 내발적인 근 적 사유의 맹아를 주장한 마루야 마 마사오 등도 야마토  가라의 자타를 준별하고 타자부정을 통해 자 신의 역을 확정하는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에 입각한 일본적 사유의 흐름에 속해 있다.(야규 마코토, 2012:523󰠏27)

  김태창의 공공철학 기획에는 이처럼 야마토의 창출 과정에서 지워져 버린 의 재생이 포함되어 있다. 그 뚜렷한 증거가 바로 활사개공

본에는 여러 형태로 아라미타마의 횡행과 언어표현의 억압과 마스라오부리의 맹위 가 함부로 날뛰기 시작하고 있다.

52)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자행되어 온 말소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본 곳곳 에는 지명이나 고유명사를 비롯하여 특히 신사와 사찰문화 등에 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박규태, 2009/2010b/2011a) 참조.

라는 표어이다. 김태창에 의하면 활사라는 발상 자체가 기본적으로 한 겨레의 고유사상에 기초한 철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실지실행이라 는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다.(김태창, 2013_6:4) ‘활사에 한 이해에서 표적인 일본인 공공철학자들은 활사개인또는 자기로 이해해서 활사=활개(活個)=활기(活己)로 동일시한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어디까지나 서양근 의 개인주의적인 사고경향의 차용에 불과하다. ‘사상의 맥락에 따르자면 ’(자기)는 먼저 ’(타자)와의 만남, 사이, 어 울림을 통해서 나라’(국가)누리’(세계)를 함께 이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라누리보다 먼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거 기에는 ’(생명/생활/생업)을 아는 존재야말로 사람’(+)이라는 의미 가 들어가 있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를 생기 있고 활기차게 하는 것이 공공철학의 최우선과제이며, 그것이 바로 활사의 생명론적 본뜻이 라는 것이다.(김태창, 2012_5:5󰠏6)

  김태창은 이와 같은 활사의 기획이 의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처음 부터 ’()사상이나 철학이라고 하면 우선 알지 못하니까 외면당하 기 쉽기 때문에 공공철학이라는 포장으로 싸서 한중일의 철학 화라는 멍석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털어놓는다.[37]) 이런 의미에서 공공철학은 일종의 한류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측면을 내포한다.[38]) 그러다보니 일 본이나 중국의 학자들 중에는 그를 국수주의자나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라 고 해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태창 자신 은 국수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글 로벌, 내셔널, 로컬의 3차원을 아우르는 글로내컬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는 것이다.(김태창, 2011a:168󰠏171)

  그렇다면 김태창이 공공철학을 말하면서 담론이 필요하다고 여긴 까닭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카타오카 류는 공공실천에 관한 사상 전통의 풍부함으로는 한국보다 더 한 보고는 없다. 하지만 부분의 한 국인들은 아직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는 그러한 문화가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지역에서 보면 극히 귀중한 유산임에 틀림없다.”(카타오카 류, 2013_12:10)고 말한다. 이 지적 로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39]) 한국의 경우에 역사적인 기록이나 문헌 속에 공공에 관한 언급과 진술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서는 체제와 권력의 최고 위치에 있는 국왕 및 그 측근들과의 면 관계 안에서, 또는 그들의 독단전횡을 간지하기 위해 죽음으로 간한다는 권력비판적 공공의 행위적 측면에 관한 기술 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예컨 한국에서는 14세기 무렵부터 공공 이라는 말이 단속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며,조선왕조실록󰡕이나승정 원일기󰡕와 같은 문헌에서 수많은 사례들이 빈출한다. 거기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체적인 표현은 천하만민이 예나 지금이나 함께 더불어 공공하는 바”(天下古今所公共)라는 글귀이다. 이 말은 주로 국왕과 신하들이 함께 국사를 논의하는 곳이나, 국왕의 언행을 엄격하게 기록함으로써 후세의 공평한 판단을 기다리도록 하는 사관의 상소, 또는 국왕의 의사결정과 정책시행에 한 시시비비를 논하는 언관의 상소를 통해 표출되었다.(김 태창, 2013_7:3󰠏4)

  이리하여 2009년 제89<공공철학 교토포럼>에서는 최한기가 단독주 제로 다루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학회나 심포지움 등에서 사상이나 한국 사상가가 단독주제로 다뤄지는 경우는 단연 전 미문의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후 계속해서 동학, 개벽, 상생, 공복 등의 단독주제로 포럼이 진행됨으로써 사상이 본격적으로 일본인에게 소개 되기 시작했다. 김태창에 의하면 이미 단군신화에부터 보이는 사상은 원효의 일심에 의한 화쟁회통 사상에서부터 또는 신기’(神氣)로 파악한 19세기 최한기의 기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근  민중종교(동학, 증산도, 원불교 등)에서의 개벽과 상생 사상에 이르러 특히 명료하게 나타난다. 그 개벽과 상생 사상의 근저에는 공복(함께 행 복해지기) 사상이 있으며, ‘사상은 이상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거 한 생명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김태창의(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2012)는 이와 같은 한류로서의 공공철학이 산출한 첫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한국 강점 100주년(2010)에 즈 음하여 포럼의 공식매체인 <공공적 양식인> 4월호부터 부정기적으로 연 재한 특별기획 <한국의 공공하는 인간>을 토 로 펴낸 것으로, 원효, 화 담 서경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 하곡 정제두, 다산 정약용, 혜강 최한기, 수운 최제우, 증산 강일순, 정산 송규, 다석 류 모, 신청옹 함석헌 등 13인의 표적인 한국 사상가에 관한 김태창의 강연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책의 의의에 관한 오구라 키조의 다음 언급은 바야흐로 한국 담론이 공공철학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태창의공공철학 이야기󰡕는 한국인이 단군신화의 시 부터, 아니 보다 이전에 우랄알타이의 평원을 질주하던 시 부터 21세기의 지금에 이르 기까지의 한민족의 철학적 활동을 담하게 재해석하고 그것을 일본인에게 일본어로 전달하고 싶다는 장 한 프로젝트의 한 결과물이다. 지금까지 한 국철학의 정수를 이처럼 정열을 담아서 일본인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한 국인이 과연 있었을까? 김태창은 이돈화, 최남선, 유명모, 함석헌, 유동식 이래 계속되고 있는 한국어로 철학하기의 가장 과감한 실천가이다. 나아 가 그는 일본인이 알 수 있도록 일본어의 세계에서도 한국어로 철학하기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오구라 키조, 2013:12)

 

  한편 이 책의 서문을 쓴 도호쿠 교수(일본근세사상사 전공) 가타오 카 류(片岡龍)는 오늘의 일본인들이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근 일본이 의도적으로 한삶한마음한얼을 억압/말소/부정했기 때문에 그 행위를 반성하고 제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장래 세 와 함께 새로운 공공하 는 지평을 함께 열어가는 원동력을 공유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김태창, 2012:5) 또한 이 책에서 김태창의 강연을 기록으로 풀어낸 야규 마코토(柳生眞)[40])에 의하면, 일본에서 한국사상이라고 하면 일반적 으로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주자학을 중국보다 더 교조적으로 고수했다 든가, 심하게는 한국사상은 중국사상의 아류이고 고유한 사상 문화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물론 이는 단한 오해이고 편견이다. 지금 일본에서 사상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이런 오 해를 불식하고 나아가 한 지우기발상의 무리함이 도처에서 나타나 일 본사회 전체가 질식해 버릴 것 같은 현 일본의 병리적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데에 있다.(야규 마코토, 2012:525󰠏36)

4.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철학

  “저의 일본학습은 일본을 동아시아라고 하는 문맥 속에서 파악하는 것”(김태창 편저, 2010:32)이라고 말하면서 줄곧 동아시아 공공철학을 세 계에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김태창은 동아시아발의 공공철학을 말함에 있어 한국철학이 공헌 가능한 지평을 지속적으로 열 어가는 것을 앞으로의 책무로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동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에 있어서 한국사상과 철학 그리고 문화의 상화/화해/공복 촉진 능력 을 한중일의 화󰠏공동󰠏개신을 통해 고양시켜 가고 싶다는 것이다.(야자 키 카츠히코, 2010:347) 이처럼 동아시아발 공공철학에 있어 한국 담론의 강화와 더불어 그가 강조하는 것이 일본의 역할이다.

메이지 시기 일본의 기본 노선은 탈아입구에 의한 부국강병이라기보다 는 방구침아’(倣歐侵亞, 유럽을 흉내내어 아시아를 침략하기)를 위한 부국 강병이었다. 지금도 방구침아적인 멘탈리티가 청산되지 않고 있다. 현 일 본에도 아시아에 한 오만과 방자가 동거하고 있다. 일본이 방구침아의 고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조정자 역할에 한 국내외의 기 를 저버 린다면 동아시아에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아시 아와 일본이 함께 공공하는 철학은 필연적이고 당연히 힘써야만 할 과제

라 아니 할 수 없다.”(김태창 편저, 2010:37󰠏38. 필자 윤문)

  이런 김태창의 지적에 공감하는 한 일본 지식인은 오만한 일본의 해독 이 가득 퍼져서 지금은 세계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으며, “이 로 가 면 일본이라는 문명은 멸망한다. 이제 우리는 김태창씨로부터 뜻을 확실 하게 이어받아서 먼저 동아시아로부터 공공세계를 열어나가야 할 것”(야 마모토 쿄시, 2013:16)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로부 터 공공세계를 열어나가는 데에 있어 일본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이에 해 김태창은 오늘날 시 적 요청성에 있어 일본이 마땅히 있어야할 자 리는 동아시아와 유럽 사이’, 동아시아와 미국 사이’, 동아시아 여러 나 라들 사이’, 동아시아 민족들 사이’, 동아시아 문화들 사이’, 동아시아 종교들 사이이며, 일본이 바로 그런 사이에서의 조정자 역할을 해 주 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일본이 있을 자리는 /가운데/여기에 한 집 착도 아니고 /주변/저편에 한 동경도 아닌, 실로 자기와 타자 사이에 서서 자기와 타자를 함께/서로/동시에 살리고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길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김태창 편저, 2010:39)   혹 너무 많은 것을 일본에 기 하는 것이 아닌지 라는 의문이 들 정도 이지만, 김태창이 펼치는 동아시아 담론 특히 한중일 삼국의 공통점과 차이에 관한 그의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의구심이 해소되는 바가 없지 않다. 가령 한중일의 가장 기본적인 공통점과 관련하여 김태 창은 을 존중하고 를 기피하는 태도에 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 지한다. 동아시아에서는 ’(황제, 군주, 제후, 귀족, 장군, 천하, 국가, 전체, 남자)에 비해 는 그 존재감이 상당히 희박하여 사리사욕, 사물 (私物), 사사(私事), 사사(私邪), 여자와 아이의 세계로서 탄압/배척/희생/ 부정되어 왔다. 그리하여 공귀사천’(公貴私賤), ‘공존사비’(公尊私卑), ‘공선사후’(公先私後) 관념이 지배적인 에토스 고, 이런 관념의 극단적 인 표현이 전전 일본의 멸사봉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에토스는 동 아시아의 전통적인 존재론적, 가치론적, 사회구성적 상하계층관계와 그것 에 기초한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질서규범의 기본과 토 다. 동시에 그것은 관존민비적이고 남존여비적인 사회풍토와 엄격한 가부장제를 정

당화하는 근거이기도 했다.(김태창 편저, 2010:40)   이와 같은 부정적인 공통점을 간과하지 않은 채, 공공철학은 공사의 이원적 립구도와는 별도로 공공이라는 인식과 실천의 지평이 고래로 부터 동아시아에 열려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컨 절 권력의 독단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간언/충언/제언이라는 언어적 상호행위가 그것인데, 김태창은 그 강도와 빈도에 있어 일본이 가장 약하고 적은 반면 한국이 가장 강하고 많으며 중국이 그 중간 정도라고 말한다.(김태창, 2013_6:7󰠏

8) 이와 아울러 김태창은 동아시아가 공유하고 있는 공공철학으로서의 실심실학’(實心實學)[41])을 강조한다. 이때의 은 임시적인 것, 거짓된 것, 이름뿐인 것이 아닌 것을 의미하며 실심서로 함께 생명의 작용 을 기르는 마음을 뜻한다. 즉 실학을 기존의 도덕론적 관점이 아니라 새 로운 생명론적 관점에서 재고찰한 것이 실심실학이라는 말이다. 이때 그 는 특히 한국 전통사상으로서의 생철학, 기철학, 한철학에 주목하고 있

.(김봉진, 2013_11:13)

  이상의 공통점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중일의 차이를 기술하는 동 아시아 문화론에 비추어 볼 때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질 수 있다. 예컨  김태창에 의하면, 중국은 ’()[42])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한 문화이 고, 일본은 ’()[43])에 한 감각이 예민한 문화인 데 반해, 한국은 ’()[44])의 향이 매사에 드러나는 문화이다.(김태창 편저, 2010:100) 김태창은 이처럼 각각 리(중국)와 기(한국)와 장(일본)을 중시하는 삼국이 각각의 특성을 발휘하면서 삼차원상관적으로 공동할 때에, 무한한 가능 성으로 가득 찬 공공철학이 공공인간, 공공세계, 공공행복의 토 를 동아 시아에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기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공공철학은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에서의 상화(相和)[45])와 화 해와 공복의 공동(共働) 실현을 지향합니다. (중략) 제가 동아시아에서의 상화와 화해와 공복을 공공철학적 탐구의 중심과제로 중시하는 것은 동아 시아의 현 사가 침략과 원한과 불행이라고 하는 공통체험으로 점철된 무 거운 과거 이야기의 속박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중략) 동아 시아의 각 나라, 사회 그리고 인간들이 각각의 의지와 능력과 자원을 서로 공유하고, 침략과 반목과 불행의 역사적 역학을 상화와 화해와 공복의 공 동 실현을 지향하는 미래 공창(共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 로 세계를 향해 발신하기에 충분한 동아시아로부터의 희망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김태창 편저, 2010:35󰠏36)

  이 목에서 김태창은 구체적으로 동아시아 생명공동태(共働態)’를 제 창하는데, 그런 일종의 동아시아공동체가 머지않아 출현할 것이며 그것 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에 지금 필요하 고도 가능한 것은 정치나 경제의 공동체라기보다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 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공통토 로서의 생명/생활/생업 공동태의 공동 구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경과 민족과 문화의 벽을 뛰어 넘어서 한 중일의 보통사람들이 공감 가능한, 즉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이 더불어 펼쳐나가는 철학인 공공하는 철학을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김봉진, 2013_11:12)

  일면 지극히 유토피아적인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환골탈퇴로 비쳐지 기 십상인 동아시아 생명공동태의 이상[46])을 공공철학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는 김태창에게 동아시아 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 서로의 역사와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면서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세계 즉 그가 말하는 상화(相和)와 화해와 공복(共福)의 공공세계를 민간 주도하에 공 동으로 구축하는 일은 결코 과거 일본의 아시아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가 아니다.(김태창 편저, 2010:144)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결코 동아시 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유럽과 등한 입장에서 화/공동/개 신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원래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있는 사상자원을 제 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김태창 편저, 2010:

79) 공공철학을 한중일의 철학’(김태창 편저, 2010:466)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오구라 키조는 동아시아의 사상자원을 독 특한 방식으로 퍼올리는 김태창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웅변적인 사이의 수사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김태창의 이야기는 한국의 본질에서 분출된 소리라기보다는 한국과 일본 의 사이’, 몽골과 한국의 사이, 중국과 한국의 사이, 한국과 미국 및 유럽의 사이, 한국과 조선의 사이, 한국과 한국의 사이, 일본과 일본의 사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온갖 사이들에서 나온 집합적 소리이다. 김태창이라는 개인의 입에서 나왔다기보다는 동아시아 공통의 경험과 기억의 총체에서 용출하는 외침과 이야기와 통곡과 속삭임과 중얼거림의 혼합태로 차고 넘쳐서, 미래 를 향해서 흘러나가는 생명의 운동이다.”(오구라 키조, 2013:12)

나오는 말 : 무한한 평행선 너머

  앞에서도 시사했듯이 김태창의 공공철학이 일본을 무 로 태어나고 성 장한 것은 하나의 기적 같은사건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한국이나 한국 사람에게서 배우기를 싫어하고 어쩔 수 없으면 무시하거나 묵살하고 아 예 화제로 삼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 일본 지식인들과의 철학 화란 결 코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에게 반감을 지닌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호의 를 갖고 함께 일했던 일본인들 사이에서조차 일본 내의 상황변화에 따라 자의적 또는 타의적인 압력에 못 이겨 <공공철학 교토포럼> 화활동의 성과를 악의적으로 폄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김태창, 2013_ 7:5/김봉진, 2013_12:3)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김태창에 한 비판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김태창과 그의 공공철학에 한 오해 내지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오독[47])이 있는가 하면 나름 로 타당성 있는 비 판[48])도 있다

  어쨌든 김태창은 일본에서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키면서 한편으로 터 무니없는 오해는 물론이고 중상모략 등 수많은 벽에 직면했고 그때마다 수많은 격론과 좌절 끝에 그는 공공철학을 자기와 타자 사이의 사고/판 단/행동/책임에 있어 평행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그 평행선에 해 정확하고도 철저히 응하는 것이라고 재정의내린다. 그러면서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이런 평행선의 실감이 지극히 건전한 것 이며, 오히려 차이와 개성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반()공공철학적 혹은 비()공공철학적임을 재인식한다. 그럼으로써 일본인들 사이에서 평행 선은 무한의 저쪽에서 일치한다는 스피리추얼리티 담론적인 공감을 이

끌어내고 있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255) 이는 “100번 절망에 빠지면 101번 다시 일어나리라는 마음으로 인간과 미래를 향한 거 한 성선설 과 거 한 낙관론”(김태창, 2012_11a:5󰠏6)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성적 지식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리라. 이 점에서 우리는 현 일본 공공 철학 담론이 가지는 종교적 의의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이 성적 지식인 김태창은 80세가 되는 201481일을 기하여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주관하는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가 뿌린 한류 혹은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철학의 씨앗들은 발아 를 계속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상/운동이므로 그 평 가 또한 향후의 추이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다만 철학이란 희망을 잃지 않는 것”(김태창 편저, 2010:124)이라는 그 의 말에 힘입어 무한한 평행선 너머에서의 기적 같은 만남을 꿈꾸면서그 과정에서 비록 마주보지는 못할지라도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공 복의 예감으로 위안을 받을 따름이다

수주의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야규 마코토, 2011) 하지만 야자키는 쇼인을 근 일본인의 선구로서 시야를 국제화했던인물 로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의 근 를 연 메이지유신의 지사 또는 메이지 정부의 원훈 다수가 이 쇼인의 문하생임을 강조하고 있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118󰠏121) 물 론 그는 외국인 유학생에 한 일본의 정책적 배려를 촉구하는 맥락에서 요시다 쇼 인을 언급한 것이지만, 왜 하필이면 요시다 쇼인인가 라는 의구심이 남는다. 또한 이세신궁 및 식년천궁과 관련하여 야자키는 이세의 성지에서 모든 종교를 통합하 는 통일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양지 철학을 탄생시킨 동양의 지에서 서구적 지식 틀로는 불가능한 일 즉 모든 종교와 철학과 사상이 통합된 혼의 통일성을 발견하 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야자키 카츠히코, 2010:178󰠏79)이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모든 종교를 통합하는 통일성이란 토인비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세신궁에 해 근본적 통일성을 지칭하면서 한 말이다. 그런데 야자키는 이세신궁이 과거 야스쿠 니신사와 더불어 국가신도 시스템의 양 축이었다는 사실에 해서는 전혀 무지하거 나 둔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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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2014. 07. 30 논문심사일: 2014. 09. 05 심사확정일: 2014. 09. 15

인적사항

성명 : (한글) 박규태, (한자) 朴奎泰,  () Park Kyutae 소속 : 한양 학교 국제문화 학 일본언어문화학과 논문 

영문제목 : The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Focusing on Kim Taechang

주소: 경기도 과천시 관문로143 래미안에코팰리스 1110606

e󰠏mail: chat0113@daum.net

<국문요지>

본고는 2천년 초입을 전후로 하여 일본에 일기 시작한 공공철학 붐의 문화론적 의 의를 고찰하는 글이다. 이때 본고는 특히 9984월 사사키 다케시(木毅) 전 동경 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와 함께 <공공철학 교 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 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김태창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교토포 럼>을 통해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 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 건강, 의료, 세 간 관계, 자기론, 매스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 계 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발 공공철학과 관련하여 학제간 토론 을 주도해 오면서, 그 세 가지 이념형적 목표로 활사개공(活私開公), 공사공매(公私共

),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주창하고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해 일본문화론으로서의 공공철학, 한류로서의 공공철학,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한의 저쪽에서 일치하는 평행선 의 사유를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주제어: 공공철학, 김태창, 활사개공, 일본문화론, 한류, 동아시아 담론



[1] ) 가령 Thinking About Future Generations(Kyoto: Institute for the Integrated Study of Future Generations, 1994), Creating a New History for Future Generation(Kyoto: Institute for the Integrated Study of Future Generations, 1995), Self and Future Generations(Cambridge: The White Horse Press, 1999), Co󰠏creating Public Philosophy for Future Generations(UK: Adamantine Press Ltd., 1999), 13th Labor: Improving Science Education(Amsterdam: Gordon & Breach Publishers, 1999), The Generative Society Caring for Future Generations(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s, 2004) .

[2] ) 동경 학출판회에서 간행된 이 시리즈는 제1(2001󰠏2002) 10권에서 유럽, 중국,

[3] ) 가령 교토의 리쓰메이칸 학에서는 최근에 신설된 학원을 위해 야마구치 야스시 가 중심이 되어 수년간 이끌어온 연구성과를 모아 2003년 봄새로운 공공성󰡕(有斐閣)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또한 와세다 학에도 새롭게 <공공경 학 연구과>라는 학원이 창설되었고, 그 책임자인 가타오카 히로미쓰는공공의 철학󰡕(와세다 학출판 부, 2002)을 간행했다. 이밖에 이나가키 히사카즈의종교와 공공철학󰡕(동경 학출판 회, 2004)을 비롯하여 공공철학 담론이 매우 다양한 운동체로서 전개되고 있다. 그 중 특히 지바 학의 공공철학 연구자들이 진행해온 학문연구의 구조개혁을 지향하는 공공철학 운동으로, 고바야시 마사야를 중심으로 하는 <공공철학 네트워크>에 주목 할 만하다. 이와 더불어 지바 학 학원 인문사회과학연구과는 200412월부터 계 간지 <공공연구>를 발행하여 공공철학 담론을 확산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 다.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1기 전10 권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2)” <공공철학>26, 20132, 2󰠏3쪽 및 (김태창 편 저, 2010:118)http://public󰠏philosophy.net/ <공공철학 네트워크> 홈페이지 참조.

[4] ) 발족 당시 명칭은 <공공철학 공동연구회>으나, 20022월 제33회부터 <공공철학 교토포럼>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고에서는 <공공철학 교토포럼> 혹은 줄여서 포럼으로 통일시켜 언급하고 있다.

[5] ) 이들은 종래 일본인 학자들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인물들에 한 새로운

[6] )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1기의 완간 에 부쳐서(1)”, <공공철학>25, 20131, 4󰠏7.

[7] ) 이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다. 즉 김태창에 의하면 일본에서 <공공철학 교토포럼> 같은 민간주도의 철학운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을 가장 중요시하고 행복사회학의 이념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설립이념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는 주식회사 펠 리시모로부터 지속적인 자금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간사이 소재의 중견기업 경 자들이 일본에서 전무후무한 양질의 인문학 부흥운동”(공공철학 교토 포럼)의 실천주체가 되어 공공철학이 실로 실심실학의 형태를 보다 분명하게 갖도 록 하는 데 지 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김태창 편저, 2010:33)

[8] ) 아렌트의 공공성’(publicness)이라는 용어는 첫째, “공중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가능한 가장 폭넓은 공공성을 가진다

[9] ) 서양인이 아직 공공을 구별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던 시기에 사마천이 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공공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사실의 발견은 김태창에게 위 한 발견으로 각인되었다. 거기서 공공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이해되었기 때 문이다. 즉 그는사기󰡕에 나오는 法者, 天子所與天下公共也라는 글귀를 법이란 천자가 천하만민과 더불어 공공하는 바이다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사마천이 공 공이라는 말을 서양의 ‘public’과 같은 정태적이고 고정적인 규범개념으로서가 아니 라 동태적인 실천규범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10] ) 가령 공공(하는) 철학서로 어울리는 화해의 철학인데, 미국의 공공철학에서는 이러한 견해를 발견할 수 없다.(김태창, 2007:87) 또한 공공이성’(public reason)의 역할을 중시하는 서양의 공공철학에 비해,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공공이성뿐만 아

니라 공공감정’(public emotion)공공의지’(public will)공공 성’(public spirituality)까지도 중시한다. 화한다는 행위적 동기는 감성과 의지와 이성의 상극/ 상화/상생적 작용으로서의 성에 한 규명이 요청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

[11] )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2기 전5권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3)” <공공철학>28, 20134, 12󰠏13.

[12] ) 김태창에게는 마르크스주의야말로 낭만적인 이상주의에 사로잡힌 이데올로기로 간 주된다. 그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는 활사개공이 아니라 살사파공’(殺私破公)이고, ‘공사공매가 아니라 공사상탈’(公私相奪)이며, ‘행복공창이 아니라 행복부정의 철 학이었다는 데에 원초적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문제는 혁명을 통해서 좋은 사회가 도래한다고 생각한 혁명 엘리트들의 과도한 낭만성에 있다.(김태창 편저,

[13] :58)

[14] ) 이런 문제의식은 왜 에 관한 제 로 된 공통인식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물음과 관계가 있다. 가령 는 의식인가, 신체인가, 감정인가, 의지인가, 성인가, 이것들의 전부인가, 아니면 이것들과는 다른 무엇인가? ‘멸사봉공멸공봉사를 제 로 재인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더 이상의 사고발전을 계속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는 정말 억제하고 부정하고 멸절해야 할 도덕적 악인지, 아니면

올바르게 다듬고 키워야 할 근원적 생명력인가를 제 로 밝히지 않으면 진정한 활 사개공에서의 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김태창 편저, 2010:41)

[15] ) 한번은 남성과 여성의 공공하는 철학 만들기를 지향하는 취지의 <공공철학 교토 포럼>을 개최했을 때,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공격 하는 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김태창은 공공철학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 한 철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많은 자극을 받았음 직하다.(김태창,

[16] _10:3)

[17] )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2기 전5권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3)” <공공철학>28, 2013.4, 12󰠏13.

[18] ) 공이란 원리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으로 언제나 접근 가능한 것을 가 리키는 반면, 사는 기본적으로 특정한 인간, 집단, 조직에 한정되어 외부에는 닫혀 있다. 이처럼 공과 사는 전통적으로 상반되고 립되는 개념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 러나 양자는 매개되어야 하고 매개가 가능하다. 공공(公共)이 그것이다. 공공은 종래 의 공󰠏사 이원 립적 구조를 상호생생적인 삼차원구조로 전환시킬 수 있는 의미연 관을 함유하고 있다. 공과 사는 어느 정도 실체화되고 개념화될 수 있는 명사적인 것인 데 비해, 공공은 공과 사 사이에서 양자를 맺고 잇고 살리는 작동을 하는 동 사적인 것이다. 이때 공()을 동반하지 않는 공()은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것이 될 위험성이 있다. 반 로 공()을 동반하지 않는 공()은 명분이나 형식 또는 틀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김태창, 2013_5:6)

[19] )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2기 전5권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3)” <공공철학>28, 2013.4, 12󰠏13.

[20] ) 공지는 멸사봉공적인 공의 지적 주체로서 정부와 행정기관의 공인을 통해 제도화된 지배를 선호한다. 이런 공지에 있어 타자는 경쟁 상 이자 적이거나 아니면 동화흡 수의 상으로 간주될 뿐이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세계에 강요하는 독화화, 그리고 의문과 반 의 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단성화에 빠지기 쉽다. 이에 비해 사지는 멸공봉사적인 사의 지적 주체로서 기본적으로 이익을 지향한다. 이런

[21] ) 그는 우연히 미국병사로부터 건네받은 스탈린 전기 책(Joseph Stalin: A Red

Revolutionary Leader)을 내 면서 스탈린 원수의 위 한 정의의 전쟁이 승리로 끝날지 어떨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서 그것을 다음 세 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 해서 저는 반드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인민군 장교에게 열변했다. 이 때 15세의 소년은 진정한 말즉 목숨을 건 실어(實語), 진어(眞語), 성어(誠語)에는 신기한 힘이 있음을 실감했다. 실심, 진심, 성심이 담긴 말로 서로의 마음이 통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한 것이다.

[22] ) 그때 한의사가 들어왔고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산다. 이 의사가 나를 살려 준다는 확신이 들었다. 의사는 극약처방을 했고 의식을 잃은 이틀 뒤 깨어났을 때 전신마비가 풀렸다. 독이 약으로 바뀐 것이다. 이를테면 파르마콘(독과 약을 동시에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신비를 체험한 것이다.

[23] ) 김태창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 그는 최선을 다해 입시를 준비했지만 정신적으로 과 도한 긴장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기의 흐름이 좋지 않아서 능동적인 사고력이 저하 되어 답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신에게 기도드리는 것은, 인간 의 자력능동이 한계에 부딪혀서 기능정지 되었을 때 저절로 절 수동으로 전환하고 거기서 신의 타력능동이 작용하여 그의 생기(生氣)와 신의 기()줄탁동기’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 할 때에 그것을 알아차린 어미닭이 밖에서

[24] ) 김태창은 행복이란 것이 인간의 주관적, 의식 내재적, 사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제도 적, 의식 외재적, 공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인간(자기)과 인 간(타자) ‘사이혹은 인간(자기)과 환경/제도(타자) ‘사이와 관련된 상관연동적, 의 식 간동적(間働的, 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작용하는 공공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행복을 재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 전개된 공공철학 화운동의 발자취󰠏시리즈 <공공철학> 1기 전10권의 완간을 기념하는 화모임(2)” <공공철학>26, 20132 , 5.

[25] ) 이나가키 히사카즈의 전망에 따르자면, 만약 일본이 원리주의가 강해지면 민족적 성에 불이 붙여져 야스쿠니신사는 그 성지로서 앞으로도 계속 보존되고 지지될 것 이다. 이것은 위험한 방향이다. 21세기의 국민국가는 민족적 성에 의한 시민종교 가 아니고 공공적 성에 의한 다원적 공공종교가 필요하며 이것이 국경을 초월한 시민적 공공성을 형성하는 에토스가 되어야만 한다. 난바라 시게루(南原繁)국가 와 종교󰡕(1942)에서 오늘날 공공철학이 문제삼는 공공적 성을 이미 언급한 바 있 다. 그에게는 명확한 시민사회론이 결여되어 있지만 공공의 장에서 어떤 종류의 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미 간파했다는 점은 탁견이라 할 수 있다.(이나가키 히사카 즈, 2007:27󰠏30) 한편 고바야시 마사야는 공공철학 프로젝트가 특별히 종교적인 관 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그런 관심을 갖는 연구자가 많다고 말하면서, 특정 종교에 한정되지 않는 종교성과 정신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김태 창이 강조하는 공공 성의 필요성에 적극적인 찬동을 표한다. 21세기라는 지금 시

[26] ) 김태창이 보기에 일본은 지금 철학의 전환점에 서 있다. 근 이래 의 오만(전문 지), 학문의 폐쇄성, 공리주의, 지배지향성, 사물화(私物化), 독화화(獨話化=모놀로그

), 단성화(單聲化), 전문화 등, 지식인이 앓고 있는 고질병이 심각해지고 내실없는 레토릭만이 횡행하고 있다.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은 과학만능주의와 경제지상주의에 빠져 전문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지적인 회화를 주고받는 도취에 젖어 있다. 또한 일본의 생활세계는 생태윤리적 타락과 생태미학적 퇴폐로 인해 심각한 상태에 빠져, 사람들은 시비선악을 스스로 생각해서 변별하고 비판하는 힘을 상실하고 있

[27] ) 패전 후의 부정적 일본인론은 경제부흥이 이루어진 60년 중반 이래 긍정적 일본 인론으로 바뀌게 되며 특히 90년 를 전후하여 보편적 일본인론이 널리 확산되면서 특수한 일본적 가치에 한 보편화 논조가 지배적이 된다. 일본인론의 변용에 관해 서는 (아오키 다모쓰, 2000) (시마조노 스스무, 2010:144󰠏176) 참조.

[28] ) 문어는 구멍 같은 곳을 좋아해서 한번 들어오면 틀어박힌다.

[29] ) 진사이는 공공이라는 말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주자학이 특권성을 가지고 내면적 관념의 세계에 틀어박혀 있음을 비판했다. 또한 사람들이 서로 공생하고 협동하는 일상적인 생활세계에 보편적인 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도는 한 사람의 개인적 감 정이 아니라 만인을 위해서 만인이 행하는 천하공공의 도라는 것이다.

[30] ) 소라이는 에도 등의 도시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행해야 할 공공 정책을 언급하면서 유교의 예악형정’(樂刑政)을 강조했다. 즉 성인의 도란 내면적 윤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습관과 의례로 제도화된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이 점에 서 그는 근 의 공사이원론에 가까운 입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소라이는 공과 사 를 중층적으로 파악하면서 사무라이를 의 입장이면서도 ’()이라는 공공의 덕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요컨 그는 를 살리면서 그것을 포섭하는 예악형정이라는 보편적인 도에 입각한 통치를 주장했다.

[31] ) 시처위(時處位)의 지선(至善)을 주장한 양명학자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시간과 장소 와 위치에 맞게 각각 최선의 예법을 생각한다는 실천윤리를 주창했다.

[32] ) 스승 나카에의 사상을 사회변혁의 비전과 연결시켜 당시의 빈곤과 사치를 표리일체 의 사회현상으로 간주하면서, 치수, 치산, 신전(新田)개발 등의 새로운 농업부흥 및 환경정책을 통해 기아를 극복하고 상품화폐 경제에서 자급자족 경제로 돌아갈 것을 제창했다. 또한 지행합일의 입장에서 무사가 토지로 돌아와 농사를 짓는 농병제를 주창하기도 했다.

[33] ) 상인의 입장에 철저한 공도(公道) 사상을 주창했다. 즉 상인은 단순히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을 중개함으로써 천하국가를 지탱하는 공적 존재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로써 바이간은 상인을 천하의 구원이라는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시정의 서민으로 간주하면서 정당한 상인의 도를 추구했다.

[34] ) 쇼에키는 다른 사상가들과 달리 봉건 신분제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부정 했다. 당시 농촌(도호쿠의 하치노헤)의 참혹한 현실을 경험한 그는 기존의 신분제를 지지하는 유교 등 기존 사상을 모두 부정하면서 우주관, 자연관의 근본 변혁을 통한 사회변혁을 주창했다. 활진(活眞), 호성(互性), 직경(直耕) 등 그의 독특한 개념들은 자기󰠏타자󰠏공공세계론을 연상시키는 한편 에콜로지, 페미니즘, 평등주의 등 현 공 공철학의 단서를 제공해 준다.

[35] ) 스사노오와 한국의 접한 관계에 해서는 (박규태, 2010a) 참조

[36] ) ‘야마토가 니기미타마(和御魂, 부드럽게 움직이는 화해지향의 성)가 작동하여 언 어표현의 묘한 작용이 꽃피고 다오야메부리(여성적 태도, 勅選和歌集)가 주된 기 풍일 때는 비교적 말소의 경향이 유화되지만, 아라미타마(荒御魂, 거칠게 움직 이는 공격지향의 성)가 횡행하고 언어활동이 억압되며 마스라오부리(남성적 태도, 만엽집)의 기풍이 중시되는 시 에는 의 흔적 말소가 강도를 더한다. 오늘날 일

[37] ) 200876일 교토포럼 오사카 사무실에서의 화에서 김태창은 솔직히 말씀드 려 오늘까지 약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될 수 있는 한 자제해온 것이 있습니다.”라 면서, 철학 화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나 지역을 언급하면서도 한국에 관해서는 최 소한으로 억제하려고 노력해왔다고 털어놓았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347)

[38] ) 실제로 김태창은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젊은 가수들 및 스포츠 선수들이 한류를 통 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일시적인 피상적 현 상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알맹이를 담은 문화콘텐츠의 지속적 개 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한사상  한철학의 슬기와 얼과 멋이 포함  전 달  공감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김태창, 2011a:180󰠏81) 그의 공공철학은 한 일 양국, 중국, 미국, 유럽의 학자, 지식인들의 양심적, 학술적 협력의 성과물로서, 일본의 학계는 물론 언론계와 정계에까지 충격과 향을 주었다. “수천 년에 걸친 한일관계사에서 이런 일은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하는 북큐슈 의  김봉진 교수 에 의하면, 김태창의 공공철학은 어쩌면 2000년 부터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한국 중문화의 유행, 비록 그 질과 내용에 있어서 차원은 아주 다르지만, 어떤 의미 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학문판 내지 철학판 한류라고 부를 수도 있 을 것이다.(김봉진, 2013_12:2󰠏3)

[39] ) 중국의 경우 공공 담론은 사마천의사기󰡕로부터 주희의주자어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서 천하공공’(天下公共, 천자가 천하만민과 함께 공공하다)이라든가 중 인공공’(衆人公共,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함께 공공하다)이라는 말이 빈출한다. 이로 보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수직적/상하 계층적 공공과 함께 수평적/등관계적 공 공에 한 인식의 흔적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는 18세기에 들 어서야 공공이라는 단어가 몇몇 사상가나 문인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들은 천지공공’(天地公共)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여기에는 중국의 천하공공과 차 별화되면서도 중인공공의 측면이 교묘하게 배제되어 있다.(김태창, 2013_7:3)

[40] ) 덴리 학 졸업 후 강원 학원 철학과에서 이광래 교수의 지도하에 최한기로 박 사논문을 썼다. 야규 마코토,최한기 기학연구󰡕(경인문화사, 2008) 참조

[41] ) 하곡 정제두(1649󰠏1736)하곡집󰡕(霞谷集) 11에 나오는 오직 우리 선정의 실심

실학만이 일세의 유종이다”(惟我先正實心實學爲一世之儒宗)이라는 문장에서 비롯된 말. 정제두의 학문 즉 실심실학은 양명학을 토 로 하여 거기에 주자학을 지양시킨 형태로 성립한 것이다. 김태창은 양명학의 양지가 주로 개개인의 속()에 주목하는 데 반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로부터 서로를 함께 아우르는 탈양

명학적 입장에 서 있다.(김봉진, 2013_11:14/정인재, 2011:9󰠏13)

[42] ) 중국인은 논리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한다. 유교의 합리성은 이런 중국적 리의 에토스 에서 나온 것이다.

[43] ) 니시다 기타로의 장소의 철학에서 자기는 주객미분의 순수경험과 관련된 절 무 의 장소로 말해진다. 이런 니시다 철학에서의 장소론은 일본인의 일상생활에서 장 의 공기(분위기)를 읽는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사회에서는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KY’(空気が読めない)라는 은어로 경시하고 배제시키는 암묵적인 이 해가 있어서 그것이 어른사회에서도 어린아이 사회에서도 만연하고 있다. 즉 공기를 읽을 수 있는 인간이 화()를 이루는 좋은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화를 어지럽 히는 이질적인 타자라는 것이다.

[44] ) 는 일본의 지배억압적인 공기와는 반 로, 자기와 타자 사이의 기화(氣化)해방 또는 개방을 촉진시킨다. 기가 작용하는 데에서 서로의 생각이 통하고 그래서 상호간에 기탄없는 주장과 격론이 있고 립과 화해가 있고 사랑과 노래와 춤이 있 다. 동학사상이나 사상은 바로 이런 기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45] ) 상극관계에서 상생관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측의 불신, 반감, 적 를 부드 럽게 하고 화해시키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일방적인 화가 아니라 함께 서 로를 중시한다는 의미에서의 상화를 가리킨다.(김태창 편저, 2010:53)

[46] ) 그러나 EU도 중세 이래의 이상주의적 유토피아주의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이런 이 상의 실현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47] ) 가령 김태창은 멸사봉공이라든가 멸공봉사 등을 언급하면서 개념을 단순히 일본 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라든가 그의 공공철학이 일본인들에 의해 고안된 것 이라는 이해, 또는 김태창과 야자키의 공공철학은 자신들의 이상향에 마취되어 동아공 권의 은 한 부활을 위한 새로운 시도에서 나온 음모라고 보는 관점은 전 혀 초점이 흐려진 오독이라 할 수 있다.(이명한, 2011:396󰠏99)

[48] ) 예컨 야자키 카츠히코에 한 이명한의 비판적 문제제기(이명한, 2011:407󰠏8)는 나름 로 타당한 측면이 있다. 야자키가 정한론의 효시이자 아시아 지역에 한 식 민지화를 주장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59)을 흠모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 다. 이런 비판에 해 야규 마코토는 <공공철학 교토포럼>에서 김태창이 쇼인의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