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22

소고 : 대화에 관하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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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 대화에 관하여
향유자
2022. 5. 24.

젊은 시절의 나는 이성과 언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현재의 혼란과 오해는 충분하지 못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대의와 선의에 기반한 대화로 최적의 해를 함께 찾아 갈 수 있다는 믿음.
내가 변화, 발전할 수 있는 것처럼 타인도 진보할 수 있다는 믿음.
점점 살아오면서 이게 꽤 많이 바뀌었다.
이 것은 진리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불가지론이나 언어의 기표와 기의가 별개의 것이므로 언어를 통해서는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언어 철학과 같은 근원적이고 고차원적인 이유 때문
이 아니라,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목적과 태도에 대한 '불만'에서 연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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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대화를 통해서는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진실이나 진심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들은 주로 의미없는 상투적인 말로 대화를 채우거나, 별 내용이 없어서 하나마
나 하고 어떤 의미있는 정보도 담겨있지 않은 안전한 말로 시간을 때운다.
반면 내가 무언가를 말 할 때는 가장 적확한 단어를 이용해 올바른 맥락으로 표현하고 설명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듣는 쪽에서는 대충 듣고 적당히 이해한 후 기억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너
무 많다보니, 이제는 별로 이를 위해 애 쓰고 싶지가 않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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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을 잘 읽어내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 안에서 나름의 맥락을 읽어내고 상대의 진의 - 진짜 욕망 - 를 헤아려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눈
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마 그래서 뭔가 이해하려고 할 때는 더욱 책을 통해서 배우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책도 진실되고 타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과 기만적이고 의미없이 단어만 나열해 놓은 책을 구분해야
하지만, 이 부분은 사람을 읽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편 같다.
게다16가 중년을 넘7어갈수록 대화는 더더욱 무의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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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면서 대화는 사실과 내용과 맥락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닌, 상대의 말에서 아는 단어가 나오면 거기에서 연상되는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게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본인의 고민에서 비롯되어 충분히 발효된 아이디어가 아니라, 티비에서 본 것이나 한줄 뉴스에서 스친 것 등의 피상적인 이미지들인 경우가 많다. 그저 우연히 머리
에 먼저 들어와 있는 것의 재생 -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한 이해에 의해 다시 왜곡되어 있는 - 인 것이다.
결국 이런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주로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또 그 상대가 가지고 있는 세계와 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정도일 것이
다. 그런데 그런 세계관 역시 독창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경우는 돈, 집, 차, 음식, 골프 등에 대한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이러한 관점은 비슷한 형태로 무한히 반복되며 이야기되기에, 고착되고 발전이 없다. 그러다보니 원래도 의미없는 자리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갈수록 더 이런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는 생
각이 든다.
아마 이것은 사람들이 점점 나이들이 들어가면서 청취 listening 를 잘하지 못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 청각 hearing 능력이 떨어져 가면서, 더욱 대충 듣고 하고 싶다고 느끼는 말
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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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해는 그 사람이 하는 말과는 전혀 무관하게 - 때로는 정반대로 - 실제 하는 행동과 자신이 진심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 주로 돈과 시간 - 을 어디에
집중하는지 정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인간의 다면성 때문에 누구라도 변명과 갱생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공평하다고 믿어서 가능하면 타인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점점 실망스
러운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은 잘 바뀌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잘 모르거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회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
어, 나 역시도 예전처럼 타인들에게 계속 기회를 주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에야 어쩔 수 었겠지만, 가능하면 의미 없는 얘기를 해야 하는 자리는 피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의미 없는 관계
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진의를 드러내는 언급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고착적이지 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자리를 더욱 늘리고 싶다. 새로운 것을 계속 접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사람,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근본적
인 것에 대해 지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의문을 품고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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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귀한 인연과 만났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귀담아 듣고 의미있는 피드백을 통해서 변증법적인 상승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능하면 뜻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한 글과 함께 대화를 병행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말과 설명할 맥락이 많아지는데, 그런 것들을 글로 정리해 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다. 이게 정말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이 맞는지, 그 이전에 스스로 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서 말이다.
이런 인연과 만나서 좋은 자리를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매우 운이 좋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리라.
그런 인연을 만날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일테고, 또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잘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자세를 갖추기위해 스스로 갈고 닦는 것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