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6

귀일사상으로 보는 금강경 공부 - 예수영성 수련회 - 기독교 수도회 동광원

귀일사상으로 보는 금강경 공부 - 예수영성 수련회 - 기독교 수도회 동광원

예수영성 수련회

귀일사상으로 보는 금강경 
공부작성자joong|
작성시간22.07.22|
조회수33



독일 신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의 평화가 없이는 세계평화도 없다.”고 주장하여 많은 공감을 얻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양대 종교로 기독교와 불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두 종교 간의 불화나 갈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문화의 자랑이다. 물론 일부 광적인 신도가 불상이나 사찰을 훼손하는 불미스런 행동이 간혹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여론의 뭇매로 수그러드는 것을 볼 때 종교 지도자들과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는 매우 높은 편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역사를 통해 볼 때 문화의 성숙도가 계속 올라가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 풍조가 정의의 가치를 높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참 신앙인들이 많아질 때는 시민의식도 높아지겠지만 모두가 세속적 욕망으로 떨어지면 시민의식은 퇴락하고 사회는 여러 갈등과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참 진리를 추구하는 영성의 신앙을 심층종교라 하고 형식적 종교생활을 하면서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복신앙의 종교는 표층종교라 하였다. 우리 신앙이 외형적으로 종교인의 열성을 보인다고 해도 세속적 가치에 매몰된 표층종교로 떨어지면 사회적 역기능을 초래하여 갈등을 해결하여 통합하고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의 요인이 되어 다툼과 분열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층종교로 올라가 영성이 높아져야 하고 영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서로 이해와 소통의 폭이 그만큼 깊어지고 넓어져서 화평의 세계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현대를 탈종교시대 또는 무종교의 시대라고 한다. 지난해인 2021년 어떤 통계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60%는 무종교라 한다. 불교가 16%, 개신교가 17%, 천주교가 6% 기타 1~2%라고 한다. 30년 전에만 해도 종교인이 절반이 넘었는데 이제는 40%로 줄어든 것이다.

이런 통계가 보여주는 의미를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우선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다. 첫째는 외형적인 건물과 조직 교리 등 제도적 종교인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대표적 종교로서 여전히 개신교와 불교가 살아있다는 점이다. 종교인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자체가 중요할까 싶겠지만, 고등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표징이란 점에서 염려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고등종교가 쇠락하면 유사종교나 기복신앙의 표층종교가 기승을 부리게 되고 그렇게 종교가 타락하면 문화적 수준도 떨어진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성숙과 평화를 위해서는 기독교와 불교가 기복적 표층종교에서 벗어나 심층종교로 올라가야 하는데 자꾸 표층종교로 떨어지기 때문에 제도권의 숫자도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우리 사회의 장래에 대하여 우려하는 것이다.

장차 우리나라의 사회적 화합과 평화를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할 때 무엇보다 우리 시대 종교인이나 신앙인들이 더욱 분발하여 참을 찾고 진리를 추구하여 높은 영성과 정신의 빛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종교의 경전들에 나타난 성인들의 참뜻을 밝혀서 기복신앙이 아닌 참 신앙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참 길을 닦아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와 문화는 그만큼 성숙되고 밝아질 것이다. 불교인이건 기독교인이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로서 이 땅과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고 사회를 화평케 하고 문화를 높이며 모든 생명을 아끼자는데 뜻이 같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불교인은 참 불자가 되고 기독교인들은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서로가 일상의 삶에서 소통하고 화합하는 일이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종교인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서는 또 각 종교의 고유한 특징과 역할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할 것이다. 화합과 일치를 위한 노력은 구심력이 되고 각자 고유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힘은 원심력이 되는데 상생의 문화를 고양하기 위해서는 이 두 힘이 다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다양성의 원심력과 하나됨의 구심력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중용 또는 중도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각자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서로를 돌보며 제 역할을 바르게 수행할 때,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개성을 존중하는 화합의 정신으로 하나가 될 것이고 상생의 문화가 발전할 것이다.

공자는 말하길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이면 남도 당하지 않게 하라.”고 했고 예수도 “남이 그대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그대도 남을 그렇게 대접하라.”고 했는데 의미는 같은 것이다. 이런 황금률을 가지고 서로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로써 깊이 공감하면 자기의 입장을 존중하는 만큼 타인의 입장과 인격을 존중하는 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때라야 서로 화합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대동의 정신을 다석은 한 마디로 귀일歸一이라 하였다. 서로 하나가 되는 방법에는 통일이 있고 귀일이 있는데 통일은 인간의 욕심으로 하는 일이지만 귀일은 인간의 양심과 도심道心을 통해서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귀일이지 통일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귀일의 뜻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활동 가운데 하나가 경전을 읽고 나누는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인으로서 불교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금강경을 읽어보았다. 우리가 타 종교의 경전을 읽고 서로 나누게 되면 종교인 사이의 소통과 화합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경전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불교의 경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속을 보여줌으로써 심층적 소통을 하고자 했다. 표층인 겉모습이나 표현에서는 서로 다를지라도 속뜻은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이고 인간의 참된 모습과 참삶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신앙일진대 같은 인간으로서 그 뜻이 어찌 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소통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사람과 우주, 사람과 만물 사이에도 서로 통하자는 것이 종교 아닌가.

다석은 종교의 핵심을 마루뜻이라 했다. 마루는 산마루, 지붕마루처럼 가장 꼭대기를 나타내는 말이요 모든 일의 근원과 기준이 되는 것을 말한다. 마루 종宗, 그래서 가장 꼭대기의 높은 뜻을 알려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가장 높은 뜻은 형이상의 궁극적 실재를 만나서 얻게 되는 한 말씀인데 그것이 결국 하늘과 땅, 사람과 만물의 평화와 화합, 그리고 자유와 생명을 아끼자는 것이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는 평천하平天下를 말하고 석가모니는 정토淨土를 말하고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그 마루뜻을 위해서 더욱 불자답게 되려고 힘쓰는 사람이 불교인이고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모두가 불교인이 되라거나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주에 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각자 고유한 스펙트럼으로 빛나는 것처럼 각자 고유의 자리에서 고유의 빛을 발하면 된다. 이처럼 세상의 종교인들이 각자 순수한 고유의 빛을 발할 때 세상은 그만큼 더 아름답고 밝아지게 될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하여 불교인들은 기독교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리스도인들은 불교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남의 언행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듯이 타종교의 경전이나 말씀은 내 신앙의 거울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각자의 영성이 더욱 깊어지고 모두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는 그런 작은 계기라도 될 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과 기쁨이 될 것이다.

2022. 6. 25.

평산 심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