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대체의학의 미래, 홀론의학
크고 작은 병원들이 앞다투어 암병원, 암센터를 짓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 이들이 표방하는 슬로건을 보면 죄다 ‘치유’, ‘삶의 질’, ‘환자 중심’ 등의 단어들이 들어가 있다. 기존의 서양의학이 표방해 온 ‘질병 중심’과는 확연하게 다른 개념이다. 현대의학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암 분야에서 생명체의 자연치유력을 강조하는 ‘치유’라는 단어와 손을 잡고, 질병 대신 영혼이 깃든 생명체로서의 ‘인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현대의학, 조금씩 ‘인간’을 돌아보다
지금까지 현대의학에서는 치료대상이 ‘환자’ 보다는 ‘병’ 자체에 있었다. “병이란 것이 있어서 몸 속을 들락날락한다”는 것이 현대의학의 사고방식이다. 병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왜(Why) 이러한 병이 생겼느냐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어 왔다. 대신, 현대의학에서는 어떻게(How)와 무엇(What)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러다보니 병을 찾아내는 진단법과 병을 퇴치하기 위한 치료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치료의 대상이 되는 병이 든 ‘사람’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관계,영(靈)∙심(心)∙신(身)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비물질적 개인으로서의 존엄성 등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20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암과의 전쟁에 나섰지만 정작 30년 전이나 지금의 암 치료성적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여전히 말기 암의 치료 성적은 형편이 없다. 그 동안 승승장구 해 왔던 현대의학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면서 조금씩 ‘보완대체의학’, ‘통합의학’, ‘전일의학’ 등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전통의학의 기본 바탕이었던 ‘병든 사람’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질병 치료에 메스와 약물만 들이댈 게 아니라, 감성과 영성,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성 등 총체적이며 전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비로소 암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현대의학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이제 조금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경외사상을 담은 홀론의학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 한 귀절이다. 별을 노래하듯 자연과 우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 즉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하고 시인은 노래했다. 이 시의 핵심
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다 살아가고 있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검과 삶이 같은 것은 아니나,
살아가는 과정은 곧 죽어가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생명경외사상의 극치이다. 일찍이 20세기의 성인이라고 불린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목사이자 철학가이자, 음악가이면서 선교사로서 “20세기에 방황하는 인류에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생명경외(Reverence for Life, Veneratio Vitae)사상”이라고 주창했다. 그는 현대
의 모든 종교와 교육, 의학에서 생명경외가 결여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모든 분야의 중심에 생명경외사상이 자리잡고 있어야 참 교육과 참 인술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의학에서 생명경외사상이 결여되어 있으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심리적으로, 영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람의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줄 수 없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의학 개념이 바로 ‘홀론의학(Holon Medicine)’이다. 보완대체의학보다 비교적 늦게 등장한 용어가 통합의학인데, 최근에는 모든 의학을 한 데 묶는다는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의 개념을 넘어서서, 생명경외사상의 개념까지 아우르는 ‘홀론의학(Holon
Medicine)이 새롭게 등장해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홀론(holon)은 부분적 전체를 뜻하는 철학 용어로, 홀론의학을 우리말로 옮기면 ‘전일(全一)의학’이 된다.
하나의 생명은 전체 생명 안에 있고, 전체 생명은 하나의 생명 안에 홀론의학은 생명 전체를 ‘낱 생명’과 ‘온 생명’의 상관관계의 틀 속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 무릇 생물체의 기본 단위는 세포로서, 우리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따로 따로 살아있는 생물체이다. 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세포를 ‘낱 생명’이라 할 때 내 몸 전체는 상대적으로 ‘온 생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무수히 많은 세포가 모여서 이뤄진 내 몸을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보게 되면, 나는 ‘낱 생명’이 되고 인류는 ‘온 생명’이 되는 것이 다.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면 인류가 낱 생명이 되고 지구 위 모든 생명 전체가 온 생명이 된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모든 생명을 하나의 단위로
생각할 때에는 지구의 생명 전체가 낱 생명이 되는 것이고, 우주의 생명이 더 높은 차원의 온 생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우주라고 하는 낱생명이 궁극적으로는 영원불멸의 절대적 온 생명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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