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의 문제 4. 자비희사 중 慈와 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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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ettā
(a) 수행자로 하여금 자신의 화 (瞋. 심신의 불만족이 심적 고통으로 자라난 것)를 다스리고 악업을 방지하게 하려는 취지의 가르침이며 누군가를 미워하지만 않으면 충족되는 윤리인지라, 각묵 스님도 일묵 스님도 mettā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성냄 없음'이라 정의하심.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언제나 항상, 심지어 내 팔다리를 잘라 내고 있는 강도에 대해서도 유지해야 하는 마음이기에 그래서 어려운 것.)
(b) 자식이 건강하든 장애를 갖고 있든 모든 정상적 부모가 공통적으로 갖는 마음인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이 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에 해당되는 마음 => '저 사람 스스로! 선업을 쌓는 지혜를 통해 저 사람 스스로! 행복에 이르기를.' 상대를 자기 운명의 주체로서 존중하는 우호적 태도.
(c) 그런데 慈/慈愛는 무능력자/불능자인 幼兒를 돌보는 어머니의 감정적 사랑이나 부드러움만을 연상시키기에 퍽 아쉬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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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aruṇā
(a) 상대방이 지혜를 통해 스스로! 고통/불운을 종식시키기를 바라는 마음 또는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돕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 즉,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한 mettā이며, 남의 고통을 즐기는 잔인함에 대한 해독제.
(b)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 즉, emotional empathy (감정이입, 감정동일시)가 아닌 rational compassion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이성적 이해). 환자의 고통으로 인해 의사의 감정과 이성이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만 환자의 질병을 정확히 판단, 치료할 수 있는 것.
(c) 상대가 고통받고 있다 하여 불쌍히 여기는 것은 상대를 내려다 보는 일. 스스로 선업을 쌓아 고통을 해결할 능력이 상대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그 운명의 '주체' (금치산자나 幼兒가 아닌)로서 존중하는 일.
(d) 그런데 悲는 타인의 고난에 대해 내가 슬퍼하고 가슴아파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karuṇā에 대한 오해를 야기하는 부정확한 번역. 틱낫한 스님이 지적하셨듯, 영어의 compassion도 '함께 느끼다'라는 어원을 갖기에 karuṇā에 대한 번역으로 역시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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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uditā
(a) 누군가가 스스로! 선업을 지어 얻은 행복을 기쁘게 (喜) 생각!하는 태도. 즉, 행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한 mettā이며, 시기/질투에 대한 해독제.
(b)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대개 그 자신의 내면이 행복하지 않은 이들이므로, 타인의 행복을 보면 '저 사람이 행복한 만큼 나도 안전해졌다' 여겨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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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Upekkhā
(a) 현재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더이상 희석되지 않는 내 과거 업의 결과라든가 타인의 어리석은 선택처럼 현재의 내 노력만으로 당장 달라질 수 없는 부분을 내버려 두는 (捨) 인내심과 평정심.
(b)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맑고 차분한 마음'이며, 위 모든 마음들의 밑바탕.
(c) Upekkhā를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하라"로 해석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좋아하거나 '차별 없이' 싫어한다면 그건 upekkhā와도 mettā와도 무관. 사무량심 (Sublime Attitudes)은 감정이 아닌 태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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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주장들의 자세한 근거는 아래 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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