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흙을 멀리하면 몸이 허약해진다 | 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12. 1. 14:29http://blog.daum.net/brilsymbio/13735918
작년과 달리 올겨울은 쌀쌀할 거라는 예보가 나왔다. 그래서 그런가? 11월에 들어서니 찬 바람이 인다. 거리에 오리털외투로 무장한 시민들이 종종걸음이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닐 성싶은데, 추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아무리 추워도 만보를 쉬지 않고 걸으면 등에 땀이 밴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차도 몸이 더우면 답답하다. 그렇다고 외투 벗으면 느닷없는 한기가 엄습한다. 코로나19가 여전하다. 감기는 피해야 하니, 얇은 옷 한 벌 더 입고 밖에 나선다.
코로나19 이후 동네병원에 감기 환자가 무척 줄었다고 한다. 손 씻기가 강조되고 어디를 가나 손 세정제가 비치돼 있으니 그럴 만하겠다. 기침 일으키고 콧물 흘리게 만드는 감기는 코로나19처럼 재채기보다 손으로 쉽게 감염되는 바이러스 질병이라지 않던가. 실내는 물론, 걷는 사람이 드문 거리라 해도 마스크를 습관처럼 착용하는 분위기에서 동네 의원의 수입도 줄었겠지. 추위로 곱은 손이 떼에 찌들 때까지 동네방네 누볐던 1960년대, 누런 콧물을 줄줄 흘릴지언정 조무래기들은 감기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21세기 아이들은 건강할까?.
찬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긴 외투로 몸을 돌돌 마는 아이들은 털모자와 목도리로 빈틈이 없는데, 감기를 달고 산다. 손을 유별나게 세척하는 요즘은 예외겠지만, 피부가 새하얀 도시 아이들은 걸핏하면 병원행이다. 바지춤에 흙을 묻히고 집에 들어서면 목욕탕에 순순히 끌려가는 요즘 아이들이 손 씻기를 거부할 리 없는데, 고기를 원 없이 먹어도 면역력이 떨어진 걸까?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보다 키와 허우대가 부쩍 커졌지만, 자라는 동안 여름이 겨울 같고 겨울이 여름 같은 실내공간에 머물며 허약해졌는지 모른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어떨까? 요즘 어느 시골이든 아이가 드무니 그 여부를 짐작하기 어려운데, 도시 어린이도 자연에서 흙을 만지며 놀면 짧은 시간 안에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핀란드의 연구를 최근 한 신문이 전했다. 서너 살 어린이 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자는 어린이집 마당을 숲과 비슷하게 바꿨고, 흙에 작은 나무와 이끼 종류를 심으면서 하루 한 시간 반, 한 달 정도 놀도록 유도했더니 뚜렷하게 건강해진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핀란드 학자는 생물 다양성을 주목했다. 토양 미생물을 만난 도시 어린이에게 사람 피부에 분포하는 ‘프로테오박테리아’가 다양해지면서 면역력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날마다 숲을 돌아다니는 시골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졌다는데, 핀란드 숲이 특별할 리 없다. 우리도 다양한 토양 미생물이 분포할 게 틀림없다. 위도가 높은 핀란드의 겨울은 무척 매서울 텐데, 감기 잘 걸리는 어린이는 어느 나라가 더 많을까?
사진: 수원 드림봉사단 어린이들이 텃밭을 체험하는 모습(인터넷에서)
자연을 체험하지 못하는 현대 도시의 생활환경이 어린이의 면역체계를 약화한다고 주장한 핀란드 학자는 “도시에 자연의 다양한 요소를 추가”한다면 아이들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자연이 박탈당한 도시에서 아토피, 알레르기, 당뇨, 만성 소화장애, 그리고 면역력이 떨어진 현상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강화 유기농 마을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아토피로 피부가 거칠게 부어오른 도시 아이는 가려움을 이기지 못해 짜증이 심했지만, 6개월 만에 피부가 깨끗해지면서 상냥해졌다. 온갖 치료가 소용없자 강화의 유기농단지를 찾았고, 제철 유기농산물을 먹으며 산과 들을 뛰어놀자 생긴 효과였다.
분교 대부분이 통폐합된 읍면 단위의 아이들은 건강할까? 흙을 만질 기회가 있을까? 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에 주력할수록 산과 들로 돌아다닐 틈이 없는 건 어디나 비슷할 텐데, 주변에서 자연을 찾기 어려운 도시는 말해 뭐랄까. 놀이보다 학과 성적에 치중하는 도시에 텃밭이 있는 학교가 더러 있지만, 모든 학생이 한 시간 이상 놀 규모는 아니다. 없는 것보다 낫더라도 흙 묻기 무섭게 비누로 씻어낼 테니, 피부 박테리아가 늘어나기는커녕 붙어있기도 어렵다.
개구리를 보려고 관광버스를 타야 하는 아이의 눈에 흙은 물론, 모래도 가깝지 않다. 아파트단지의 어린이놀이터는 흙을 철저하게 치웠다. 화학 포장재로 푹신한 바닥 위의 조합놀이대는 천편일률이고, 그네 아래 모래를 깔렸지만 좁고 위험하다. 모래 놀이터는 민원의 대상이다. 주머니에 들어간 모래가 세탁기에 쏟아지지 않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젖은 모래 속에 쑥 넣은 주먹 위를 두드리며 부르던 전래동요를 기억하는 어린이가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없다.
도시 변두리였던 인천의 주안 일원은 논밭이 넓었지만, 지금 흙은 찾기 어렵다. 대신 다닥다닥 다세대주택으로 어지럽고 좁은 골목에 주차된 자동차가 걷기조차 방해하지만, 얼굴을 그럭저럭 기억하는 주민들이 지나치면서 안부를 묻는 공간이 되었다. 한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10여 지구의 재개발로 시방 몹시 어수선하다. 재개발 조합은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솟아오를 단꿈에 젖었지만, 정든 주민들은 헤어져야 한다. 다시 만날 기약은 없다.
4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아파트단지에 주민을 위한 주차장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사이의 녹지는 커다란 나무와 아기자기한 조경수목, 그리고 다양한 풀꽃으로 근사하게 장식되지만, 자연을 흉내 내지 못한다. 지하를 파내 챙긴 흙으로 조성한 녹지가 빗물을 머금지 못하는 탓이다. 주민들은 지하의 넓은 콘크리트 공간에 차를 두는데, 큰비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주차장이 자칫 물바다로 변한다. 그뿐인가? 제초제 뿌리는 녹지라면 위험할 수 있다.
주택 보급률이 100% 넘어섰다는데, 아파트 가격은 왜 오르는 걸까? 동네의 이야기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진정 필요한 걸까? 주택이 낡았더라도, 이웃의 숨결이 유지되는 마을로 가꿀 방안은 없었을까? 일부 자본의 이권보다 훨씬 소중한 다음세대의 행복을 위해, 어릴 적 삶터를 고향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꾸며야 옳지 않을까? 한때 대구시는 담 없는 마을을 만들면서 주민을 지원했는데, 그 사업은 확산되지 않았다. 담과 더불어 주차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텃밭을 조성했다면 달랐을지 모른다.
비타민A가 풍부하지만, 달지 않아 그런지, 아이들은 좀처럼 당근을 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카레나 갈비찜에 넣어도 쏙 빼내 엄마 속상하게 하지만, 텃밭에서 가족과 재배했다면 다르다. 당근만이 아니다. 땀 흘리며 심은 씨앗에서 자라오르는 농작물을 주말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다 수확하는 기쁨은 기다린 보람을 안겨준다.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유치원이나 학교에 텃밭이 필요한 이유가 그렇다. 자연이 아니라도 텃밭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건강하다. 피부 박테리아와 비타민A가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성도 커진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의 시민은 출퇴근 시간에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도로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물의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텃밭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조성돼 있는지 관심이 크다. 원하는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지만, 가족과 이웃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인 까닭이다. 텃밭이 부족한 도시는 스트레스가 많다. 시민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고 싶다. 다음 선거에서 시장 자리를 지키려면 어떻게든 텃밭을 확보해야 한다. 독일 뮌헨은 시내의 낡은 아파트단지를 더 높게 재개발하지 않았다. 텃밭으로 바꿨다.
흙은 도시를 건강하게 만든다. 빗물을 땅으로 스며들게 하는 텃밭과 생태공간이 보전되는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코로나19에 움츠러들 리 없다. 예로부터 아이와 간장독은 겨우내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고 했다. 다채로운 토양 미생물을 보전하는 흙이 있기 때문이리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생물 다양성을 제거한 도시는 겉보기 휘황찬란해도 허약하기 짝이 없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인 이유가 그렇다.
온난화되는 영구동토에 얼어붙었던 바이러스들이 깨어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생물 다양성을 잃은 회색도시는 바이러스의 창궐을 차단하지 못한다. 추위가 예고된 올겨울에도 콧물 흘리지 않고 뛰어놀 아이를 위해 흙이 건강한 놀이터를 도시 곳곳에 마련하면 어떨까?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시대,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질병에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작은책, 2020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