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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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성찰/수행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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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자주 충돌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첫째로, 종교는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고 또 당장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는 나 자신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이 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그 본질이기 때문. 남을 바꾸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는 종교도 있고. 그리고 둘째로, 대부분의 영적 전통들에서는 이승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표면 아래에 어떤 섭리 (그것이 신의 계획이든 업이든 뭐든)가 부분적으로나마 작용하고 있다고 믿기에, 운명 결정론까지는 아닐지언정 일단은 그 섭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불평불만하지 않는 것을 현실 개선을 위한 노력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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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보니, "불평불만이나 남 탓하지 마라,"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넌 왜 그리 부정적이냐?" 류의 얘기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혹은 오히려 피해자의 '회개'/'참회'를 권하는 폭력!으로 귀결될 위험도 농후. 이런 행동은 성직자조차 극도로 조심해야 할 일이건만, (1) 성직자도 아닌 사람이, (2) 사회적 이슈 관련하여, (3) 영성 관련 입장이 자신과 동일하지도 않은, (4) 그리고 그 이슈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운동가/실천가 혹은 제3자에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언론탄압처럼 작용할 수도 있는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 그런데 바로 이 '선'을 류시화 시인의 12월 3일자 게시물이 넘었다고 생각되었기에, 그래서 나 자신 포함 몇몇 분들이 불편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분의 '진의'가 무엇이었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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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전쟁을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평화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더 좋아할 것이다. ... ... '거위털 패딩이 싫다'라고 말하는 대신 '손으로 뜨개질한 네팔산 스웨터가 좋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만나고 싶다. ...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는 불행한 것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행복한 것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싫어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부여받은 예민함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위대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자기 주위에 벽을 쌓는 쪽으로 그 재능이 쓰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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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싫다 하지 말고 평화가 좋다고 말해라, 이 얘기 테레사 수녀님이 하셨던가 그런 것 같은데.. 암튼 종교적 성찰/수행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병행하는 일 혹은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마치 서커스 외줄타기처럼 어려울 수밖에. 그러니 이 문제는 오롯이 각자의 사적인 문제로 남겨두는 게 좋지 않겠는지. 특정 종교 단체 내부에서 그 종교의 신자들끼리 상호작용하는 상황이 아니라 종교 밖 맥락에서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상호작용할 때는, 오로지 법과 상식에만! 근거하여 비판을 하든 논쟁을 하든 요청을 하든 해야 하는 것 아닐지. 전혀 다른 두 층위를 뒤섞어 남에게 강요하거나 남 억압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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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최소한 초기불교에선 긍정을 위한 긍정을 가르치지 않는다. 초기불교 관점으로는 긍정을 위한 긍정은 오히려, '망상'이나 '긍정 에너지가 가져다 주는 감각적 즐거움에의 집착'이라고까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7911976579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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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5h · Edited
Jihye Tak
Jihye Tak 希修 긍정 에너지가 가져다주는 감각적 즐거움에의 집착 이 말 참 좋네요...
希修
希修 당장 기분 좋고 마음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모래 속에 머리 파묻고 현실 부정하는 타조같은 멍청함 + 근데 뭔가 좀 심오해 보이고 싶은 허영, 이 둘의 결합이 바로 '긍정을 위한 긍정' 아닌가 싶어요 - 전부는 아니지만 적잖은 경우.. 아, 나 왜 이리 '부정적'이고 '예민'하며 '삐딱'까지 한지 말이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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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y · 4h · Edited
Jihye Tak
Jihye Tak 希修 심오해 보이고 싶은 허영 이거 보니 생각나는 사람 있네요... 제 눈엔 뭐그렇게 심오한거 같지 않은데 주변 반응은 엄청 깊이가 있고 철학적이고 내면이 꽉 차있고 등등등 이랬거든요. 이걸 보고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그 사람이 듣고싶어하는 말을 놀랍도록 잘 캐치한다 싶더라구요
希修
希修 Jihye Tak 소비자의 필요와 기호/취향에 민감해야 팔리니까요, ㅎㅎ.
· 4h
Jihye Tak 여자라 만만하니 공개적으로 고나리질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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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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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와 기타 영적 전통들 간의 차이 #2. 긍정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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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라는 인과관계를 특히 뉴에이지에서는 'Law of Attraction (LOA,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변형하여 사용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긍정적 (낙관적)인 생각을 하면 내게는 긍정적인 일만 일어나고 부정적 (비관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으면 계속 부정적인 일들/사람들만 끌어들이는 결과가 된다는 것. 인간의 의식은 실제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또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깨발랄한 사람과 우울이 깊은 사람은 서로에게 영원한 베프가 되기는 힘들 터. 온갖 원한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늘 항상 언제나 남탓과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의 미래가 밝을 리는 없을 터. 게다가 인간은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치기가 훨씬 쉽게 진화되었기에 (야생생활에서 버섯을 발견했을 때 '독버섯일지도 몰라'라고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하면 배는 고파도 목숨은 건지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대책없이 먹으면 그 독에 죽을 수도), 이 치우침을 교정하려면 긍정적인 면을 간과하지 않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열심히! 할 필요가 실제로 있다. 그러니 긍정적 사고도 물론 중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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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긍정을 외치는 사람도 막상 '잘 되겠지'라는 생각만으로 전재산을 아무 주식에나 리서치도 없이 몰빵하지는 않는다. 약혼자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과 저 사람에게 말하는 내용이 다름을 감지하고서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여 결혼을 강행했다가 배우자의 사기로 빚더미에 올라앉는 연예인들의 소식을 우린 종종 듣는다. 또 LOA를 믿는 이들은, '왕따'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아이들의 의식에 왕따 개념을 주입하게 되기에 왕따 현상을 오히려 부추긴다는 '논리'에서 학교에서 교사들이 왕따 예방 교육을 하는 것도 반대하며 대신 사이 좋게 지내는 교육을 시키면 된다고 말하는데, 그저 황당할 뿐이다. 이렇듯 긍정 만능은, 무척 낭만적이긴 하지만 현실에선 위험하고 무책임한 신화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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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뭐 이런 얘기를 아예 안 하셨는데,
Jihye Tak 여자라 만만하니 공개적으로 고나리질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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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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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와 기타 영적 전통들 간의 차이 #2. 긍정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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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라는 인과관계를 특히 뉴에이지에서는 'Law of Attraction (LOA,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변형하여 사용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긍정적 (낙관적)인 생각을 하면 내게는 긍정적인 일만 일어나고 부정적 (비관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으면 계속 부정적인 일들/사람들만 끌어들이는 결과가 된다는 것. 인간의 의식은 실제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또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깨발랄한 사람과 우울이 깊은 사람은 서로에게 영원한 베프가 되기는 힘들 터. 온갖 원한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늘 항상 언제나 남탓과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의 미래가 밝을 리는 없을 터. 게다가 인간은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치기가 훨씬 쉽게 진화되었기에 (야생생활에서 버섯을 발견했을 때 '독버섯일지도 몰라'라고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하면 배는 고파도 목숨은 건지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대책없이 먹으면 그 독에 죽을 수도), 이 치우침을 교정하려면 긍정적인 면을 간과하지 않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열심히! 할 필요가 실제로 있다. 그러니 긍정적 사고도 물론 중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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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긍정을 외치는 사람도 막상 '잘 되겠지'라는 생각만으로 전재산을 아무 주식에나 리서치도 없이 몰빵하지는 않는다. 약혼자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과 저 사람에게 말하는 내용이 다름을 감지하고서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여 결혼을 강행했다가 배우자의 사기로 빚더미에 올라앉는 연예인들의 소식을 우린 종종 듣는다. 또 LOA를 믿는 이들은, '왕따'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아이들의 의식에 왕따 개념을 주입하게 되기에 왕따 현상을 오히려 부추긴다는 '논리'에서 학교에서 교사들이 왕따 예방 교육을 하는 것도 반대하며 대신 사이 좋게 지내는 교육을 시키면 된다고 말하는데, 그저 황당할 뿐이다. 이렇듯 긍정 만능은, 무척 낭만적이긴 하지만 현실에선 위험하고 무책임한 신화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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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뭐 이런 얘기를 아예 안 하셨는데,
첫째 이유는, 불교는 애초부터 다분히 '염세적'이며 윤회를 통한 삶의 무한반복을 축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궁극의 목적이겠나. 경험 자체가 삶의 의의라고 말하는 뉴에이지의 '긍정적' 시각과 매우 대조적.)
둘째로, 첫문단에서 언급된 부정성의 폐해는 탐진치 교리를 통해 방지되기에, 따로 긍정적이니 부정적이니 하는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객관적으로는 동일한 어떤 부당한 경험을 100명이 할 경우, 그 경험에 대한 100명의 해석이 각기 다르고 느끼는 억울함의 농도나 색채도 100명이 제각각인데, 이 차이를 초기불교에선 각자의 '선택'의 결과라고 간주한다. ('피해자 탓'을 하는 게 아니라, 피해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 서사의 디테일과 방향성은 개인의 몫이라는 뜻. 사회적 차원 아닌 개인 차원에 한정해서 하는 얘기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그것대로 병행하면 됨.) 탐진치 불태워 봐야 악업만 가중될 뿐이니, 현실 파악은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하고 또 상황 개선을 위해 감정 없이 매순간 최선을 다 하되 그 후에는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 모든 일은 존재하는 원인/조건대로 이루어질 뿐 (매초 매순간의 나의 선택/행동도 새로운 조건으로 계속 추가됨), 이 사진들처럼 무조건 "everything will work out for the best" 라고 믿거나 새로 들어오는 기운이 "great" 할 거라고 무작정 믿는 건, 초기불교의 관점에선, '당장 내 맘 편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기인하는 근거 없는 망상'이라고 볼 수 있을 듯. '내 노력을 통해 매사를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가겠다'라는, 인과의 정확한 이해에 바탕한 의연함!만이 바른 태도라고 초기불교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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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앗.. 방금 발견한 동영상..
"있는 그대로를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긍정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왜곡이고 망상이다."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베트남전의 미군 포로들은 모두 죽었다."
"진짜 긍정은, 주어진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것."
https://youtu.be/xz8NZMpl4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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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긍정에 속지 마세요 |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긍정학교…짝퉁 긍정에 속지 마세요 |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긍정학교 교장 | 인생 삶 태도 | 세바시 11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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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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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와 기타 영적 전통들 간의 차이 #1. 만물에 편재한 본성/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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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영성'이라는 것에 대한 온갖 구절/사진들이 페북에 넘쳐난다. 대부분은 아브라하믹 종교들, 베다-브라만 전통, 그리고 도교 등에서 공통되는 혹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만한 내용들 (이 주제 관련해서는 Alan Watt의 책들을 보셔도 되고 특히 아래 1~3번을 추천 드림)을 추출한 '뉴에이지 영성' 부류인데, 이 뉴에이지는 베다-브라만 철학이 척추. 대승불교도 여기에 들어 맞는 면들이 많으니 오직 초기불교만 '유별난' 꼴이 되며, '동서고금 막론 대부분의 전통들에서 엇비슷하게 말하는 내용이라면 그것이 진리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반박할 수는 물론 없다. 다만 이런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내용을 초기불교에까지 덮어씌움으로써 부처님 말씀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야기된다는 것이, 나같은 초기불교 덕후들의 소심한 불만. 특히 요즘은 '사랑', '긍정', '에고' 이런 단어들만 들어가면 모조리 '영성'으로 불리는 경향이 있는데, 초기불교의 이해는 이런 '상식'과는 꽤 다른 접근을 요한다. 하여, 무엇이 진리인지 나도 알 수는 없으나, 다른 영적전통들과 다른, 초기불교의 고유한 특징 몇 가지에 대해 써 보고자 한다.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이해는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타니사로 스님의 가르침에 의존하며, 오류도 있을 수 있으니 한 가지 시각이라고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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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것이 바로 '만물에 편재한 본성/본질'에 대한 문제. 유일신 종교들에서는 인간이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하는데, 이 얘기는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神性이 내재한다는 얘기일 테고 (현재는 약간 훼손된 상태일지언정) 그게 바로 영혼일 터. 베다-브라만 전통에서는 하나의 인격신을 말하지는 않지만, 우주 전체가 바다 (브라만)이고 각각의 존재들은 그 바다에서 파도칠 때 공기 중에 튀어오른 하나의 물방울 (아트만)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별도의 존재들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건 illusion에 불과하며, 이 짧은 생이 끝나면 우린 곧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 이런 illusion을 극복하고 또 브라만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상태인 내 안의 神性=아트만을 일깨워 다시 브라만과 합일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뉴에이지에서는 브라만 대신 Consciousness (대문자를 사용)라고 부르는데, 이 브라만 혹은 Consciousness를 대자연이나 氣로 대체하면 도교가 되는 것이고, 佛性이라 부르면 대승불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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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처님은 저런 류의 영원불변하는 본성이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이게 흔히 '무아'라고 번역되는 사상이다.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라기 보다는 만사를 나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 마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찍을 때 portrait 모드로 찍으면 주인공 얼굴만 또렷이 나오고 그 외에는 흐릿하게 나오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나'라는 대상/주어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 그러지 말고 촛점을 과정/술어에 두고서 매사를 impersonal 하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not self-centered'는 이런 시각 전환의 결과일 뿐이고. 그런데 대승불교는 만물에 편재한 본성인 불성을 인정하기에, 에고 운운하면서 '무아'를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고 이해하다 보니 '그럼 윤회의 주체는 누구/무엇인가?'하는 '모순'이 생기고, 그래서 또 윤회는 방편설이네 하는 식으로 왜곡이 점점 심화되어 가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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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 편재한 본성/본질을 전제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Oneness 혹은 Non-duality에 대한 입장도 정해진다. 만물에 편재한 본성/본질을 인정하면 당연히 너와 나는 '둘이 아닌 하나'이겠지만, 본성/본질을 인정 않는 초기불교에선 너와 나는 전생으로부터의 채무관계와 이승에서의 상호작용으로 얽혀 있을 뿐, '본질적으로 하나'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아무리 내 자식을 사랑해도 내 운동이 내 자식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지 못 하는 것이며, 각자의 업은 철저히 각자의 몫. 심지어 부처님조차! '구원'은 커녕 도와 주시지도 못 하는 문제인 것. 초기불교의 사고방식은 오히려 2원론적이다: 원인/조건 vs. 결과; skillful/wholesome vs. unskillful/unwholes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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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7~159: Perennial Issues. 'Common Core Beliefs of All Great Religions'?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45865939118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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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3~136: The Roots of Buddhist Romanticism. The Western Obsession with Oneness/Nonduality and Interconnectedness.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20906184946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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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3~193. How the Western Tradition of Reading the Christian Bible Has Resulted in Misrepresenting and Distorting the Buddha's Teachings.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0771894960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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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윤회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15007984869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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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 필연적 모순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21979048174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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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를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긍정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왜곡이고 망상이다."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베트남전의 미군 포로들은 모두 죽었다."
"진짜 긍정은, 주어진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것."
https://youtu.be/xz8NZMpl4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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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긍정에 속지 마세요 |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긍정학교…짝퉁 긍정에 속지 마세요 | 채정호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긍정학교 교장 | 인생 삶 태도 | 세바시 11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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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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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영성'이라는 것에 대한 온갖 구절/사진들이 페북에 넘쳐난다. 대부분은 아브라하믹 종교들, 베다-브라만 전통, 그리고 도교 등에서 공통되는 혹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만한 내용들 (이 주제 관련해서는 Alan Watt의 책들을 보셔도 되고 특히 아래 1~3번을 추천 드림)을 추출한 '뉴에이지 영성' 부류인데, 이 뉴에이지는 베다-브라만 철학이 척추. 대승불교도 여기에 들어 맞는 면들이 많으니 오직 초기불교만 '유별난' 꼴이 되며, '동서고금 막론 대부분의 전통들에서 엇비슷하게 말하는 내용이라면 그것이 진리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반박할 수는 물론 없다. 다만 이런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내용을 초기불교에까지 덮어씌움으로써 부처님 말씀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야기된다는 것이, 나같은 초기불교 덕후들의 소심한 불만. 특히 요즘은 '사랑', '긍정', '에고' 이런 단어들만 들어가면 모조리 '영성'으로 불리는 경향이 있는데, 초기불교의 이해는 이런 '상식'과는 꽤 다른 접근을 요한다. 하여, 무엇이 진리인지 나도 알 수는 없으나, 다른 영적전통들과 다른, 초기불교의 고유한 특징 몇 가지에 대해 써 보고자 한다.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이해는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타니사로 스님의 가르침에 의존하며, 오류도 있을 수 있으니 한 가지 시각이라고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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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것이 바로 '만물에 편재한 본성/본질'에 대한 문제. 유일신 종교들에서는 인간이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하는데, 이 얘기는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神性이 내재한다는 얘기일 테고 (현재는 약간 훼손된 상태일지언정) 그게 바로 영혼일 터. 베다-브라만 전통에서는 하나의 인격신을 말하지는 않지만, 우주 전체가 바다 (브라만)이고 각각의 존재들은 그 바다에서 파도칠 때 공기 중에 튀어오른 하나의 물방울 (아트만)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별도의 존재들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건 illusion에 불과하며, 이 짧은 생이 끝나면 우린 곧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 이런 illusion을 극복하고 또 브라만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상태인 내 안의 神性=아트만을 일깨워 다시 브라만과 합일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뉴에이지에서는 브라만 대신 Consciousness (대문자를 사용)라고 부르는데, 이 브라만 혹은 Consciousness를 대자연이나 氣로 대체하면 도교가 되는 것이고, 佛性이라 부르면 대승불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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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처님은 저런 류의 영원불변하는 본성이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이게 흔히 '무아'라고 번역되는 사상이다.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라기 보다는 만사를 나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 마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찍을 때 portrait 모드로 찍으면 주인공 얼굴만 또렷이 나오고 그 외에는 흐릿하게 나오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나'라는 대상/주어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 그러지 말고 촛점을 과정/술어에 두고서 매사를 impersonal 하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not self-centered'는 이런 시각 전환의 결과일 뿐이고. 그런데 대승불교는 만물에 편재한 본성인 불성을 인정하기에, 에고 운운하면서 '무아'를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 글자 그대로 '내가 없다'고 이해하다 보니 '그럼 윤회의 주체는 누구/무엇인가?'하는 '모순'이 생기고, 그래서 또 윤회는 방편설이네 하는 식으로 왜곡이 점점 심화되어 가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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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 편재한 본성/본질을 전제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Oneness 혹은 Non-duality에 대한 입장도 정해진다. 만물에 편재한 본성/본질을 인정하면 당연히 너와 나는 '둘이 아닌 하나'이겠지만, 본성/본질을 인정 않는 초기불교에선 너와 나는 전생으로부터의 채무관계와 이승에서의 상호작용으로 얽혀 있을 뿐, '본질적으로 하나'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아무리 내 자식을 사랑해도 내 운동이 내 자식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지 못 하는 것이며, 각자의 업은 철저히 각자의 몫. 심지어 부처님조차! '구원'은 커녕 도와 주시지도 못 하는 문제인 것. 초기불교의 사고방식은 오히려 2원론적이다: 원인/조건 vs. 결과; skillful/wholesome vs. unskillful/unwholes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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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7~159: Perennial Issues. 'Common Core Beliefs of All Great Religions'?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45865939118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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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93~136: The Roots of Buddhist Romanticism. The Western Obsession with Oneness/Nonduality and Interconnectedness.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20906184946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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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3~193. How the Western Tradition of Reading the Christian Bible Has Resulted in Misrepresenting and Distorting the Buddha's Teachings.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0771894960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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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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