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4

알라딘: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알라딘: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그 공존의 역사를 다시 쓴다, 비움과 나눔의 철학 3   
이명권 (지은이)코나투스2008-01-08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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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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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쪽
152*223mm (A5신)
577g
ISBN : 9788995691267


책소개
지금까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무슬림 복음서」를 다루며 무함마드와 예수의 사상을 7가지로 선별하여 비교 고찰하고 있는 책. 무함마드와 예수의 대화와 함께 이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무슬림 복음서는 8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무슬림들이 복음서의 예수를 무슬림 입장에서 지혜전승해서 새롭게 토착화시킨 "무슬림 예수" 를 다루고 있는 저작인데, 지은이 이명권은 이 무슬림 예수의 담화 50편을 수록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이 밖에도 이슬람 신학과 사상 및 이슬람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5가지 기둥을 비롯하여, 이슬람의 역사적 발전과정 등을 비교적 상세하고도 광범위하게 서술하고 있어, 이슬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틀을 제공해주는 유용한 길잡이라 말할 수 있다.


목차


■ 머리말 : 종교의 본래적 자리를 찾아 나서며
■ 프롤로그 :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위하여

1부 무함마드와 예수,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

1. 무함마드와 예수의 대화 1
1) 일위일체의 알라-하나님과 삼위일체의 하나님
·‘라 일라하 일랄라’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무함마드 라술 알라’와 ‘주는 그리스도시다’
2) 「꾸란」과 「복음서」
·꾸란에 대하여
·복음서에 대하여
3) 예언자 무함마드와 예언자 예수
·예언자 무함마드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의식 :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의 관계 속에서
-공동체 지도자로서의 예언자 무함마드
-전사戰士적 신정神政주의자로서의 예언자 무함마드
·예언자 예수
-카리스마적 예언자 예수
-종말론적 예언자 예수
4) 무슬림 예수
·꾸란에서의 예수
·무슬림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 역사적 배경
·무슬림 예수, 무슬림 복음서를 중심으로
-초기 무슬림 복음서
-후기 무슬림 복음서
-무슬림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담화談話 50편

2 무함마드와 예수의 대화 2
1) 신앙에 대하여 : 이만iman과 피스토스pistos
2) 사랑에 대하여 : 후브ubb와 아가페agape
3) 자선에 대하여
·「꾸란」이 말하는 자선
·「하디스」가 말하는 자선
·예수는 자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4) 의義에 대하여
5) 기도에 대하여 : 꾸란과 하디스 그리고 예수의 기도
·꾸란에서의 기도
·하디스에서의 기도
·예수의 기도
6) 여성에 대하여 : 무함마드와 예수의 여성 이해
·무함마드의 여성 이해 : 꾸란과 하디스를 중심으로
·예수의 여성 이해
7) 낙원과 하나님의 나라

2부 이슬람의 모든 것

1. 이슬람 형성에 대한 기본적 이해 : 메카에서 메디나까지
1) 이슬람 탄생의 역사적 배경
2) 무함마드의 등장
3) 메카에서의 초기 계시들
4) 메디나로의 이주, 히즈라Hijra, 聖遷
5) 메디나에서의 무함마드

2. 이슬람 경전經典 꾸란에 대하여
1) 꾸란의 성립과정
2) 꾸란의 구조
3) 꾸란의 내용
4) 꾸란의 언어적 특색
5) 꾸란의 신학 : 알라와 그의 창조
·알라는 누구인가?
·세계와 인간의 창조

3. 이슬람을 지탱하는 5가지 기둥arkan
1) 신앙고백 : 사하다Shahada, 이만iman, faith
2) 공식 예배 또는 기도 : 살라트Salat
3) 자선慈善 : 자카트Zakat, zakah
4) 단식 : 사움Sawm, saum, 라마단Ramadan
5) 순례 : 하지Haji
6) 성전聖戰 : 지하드Jihad
7) 이슬람 신앙의 7가지 기초

4. 이슬람 초기 공동체와 후계자칼리프, caliphs, 또는 Khalifah
5. 이슬람 초기 공동체의 분열과정
6. 이슬람의 종파적 신학kalam
1) 시아파의 신학
2) 순니파 신학과 알 가잘리

7.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
1) 수피의 사상적 기초
2) 수피의 신비적 특징과 루미
3) 수피의 길, 스승과 제자의 관계
4) 수피의 종단과 전통
5) 수피 신학의 정수, 사랑과 영혼의 춤
·내재와 초월, 그 참된 실재로 가는 길
·신과 나누는 사랑
·신과 함께 영원의 춤을

8. 이슬람의 법, 샤리아Shari‘a
1) 샤리아의 전개 과정과 법철학
·이슬람법의 전개과정
·이슬람의 법철학
2) 이슬람법의 적용과 5가지 행위 규범
3) 이슬람법의 독특한 사례들
·결혼에 관하여
·생명안전법
·기타 규정들 : 음식, 고리대금, 노예법

9. 간략한 이슬람의 역사
1) 무함마드에서 아바스Abbasid 왕조750~945까지
·칼리프 시대
·우마이야 왕조661~750와 스페인의 신新 우마이야 왕조711~1091
·아바스 왕조750~945의 출범과 몰락
2) 십자군 전쟁1096~1270과 재난의 시대
3) 신흥 이슬람 제국의 발흥과 술탄국가들945~1258
4) 오스만 제국의 흥망성쇠1307~1922
5)인도의 무굴 제국과 이란의 사파비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1526~1763
·이란의 사파비 제국1501~1779

10. 현대 이슬람의 과제와 전망
1) 서양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이는 이슬람 국가들
2) 세계화 속의 이슬람
3) 이슬람의 당면과제

■ 에필로그 : 무함마드와 예수의 평화적 공존을 기대하며
■ 이슬람 전문용어 해설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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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비교할 때 그 단초는 '라 일라하 일랄라'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은 무함마드도 신이 아니며 예수도 신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사상을 믿는 그리스도교에서는 무함마드의 주장을 당연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 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적으로 여기거나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난 편견이며 위험한 독선이다.-p34 중에서

이슬람을 지탱하는 두 번째 요소는 공식 예배로서의 기도다. 아랍어로 '살라트'는 '기도' 혹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공식 예배를 의미한다. 무슬림은 이 공식 예배로서의 기도 시간을 하루에 5번 갖는다.-p255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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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명권 (지은이)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크리스천 헤럴드」 편집장으로 활동하였다. 관동대학교에서 ‘종교간의 대화’를 강의 하였고, 그 후 중국 길림사범대학교에서 중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길림대학 중국철학과에서 노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길림사범대학교 교환교수로 재직하였고, 동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서울신학대학교 초빙교수로 교양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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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권(지은이)의 말
종교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종교에 대한 이해도 그만큼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종교 자체에 대한 편견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 번 각 종교의 본래적 면모를 되찾아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 국내 처음으로 시도되는 무함마드와 예수의 본격적인 대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첫째, 지금까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무슬림 복음서」를 다루고 있으며, 둘째, 무함마드와 예수의 사상을 7가지로 선별하여 비교 고찰하고 있다. 셋째는 이슬람 신비주의 사상인 수피즘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무슬림 복음서는 8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무슬림들이 복음서의 예수를 무슬림 입장에서 지혜전승해서 새롭게 토착화시킨 <무슬림 예수>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무슬림 예수의 담화도 50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슬람 신학과 사상 및 이슬람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5가지 기둥을 비롯하여, 이슬람의 역사적 발전과정 등을 비교적 상세하고도 광범위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무함마드와 예수의 대화와 함께 이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무함마드와 예수의 평화적 공존을 기대하며
첨예한 신앙의 대립을 보이고 있는 이슬람의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우리는 어떠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무슬림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유일신 신앙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이 삼위일체의 관계적 차원보다는 수학적 유일신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는 두 개의 상이한 문화와 세계관에서 각각의 신앙이 출발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무슬림들은 꾸란이 순수하고 흠 없는 알라의 계시라고 믿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의 일부를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참으로 화해할 수 없는 차이점을 서로가 노정(路程)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둘 사이의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신앙을 이해하는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보수적 입장과 교리보다는 ‘상징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해석의 입장, 그리고 이들 모두를 하나의 보편적 종교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종교학적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보수적, 교리적 입장만을 서로 강조하다 보면 공존과 상생의 길보다는 분쟁과 파국의 길만을 걸어 갈 뿐이다. 삼위일체나 그리스도론의 교리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신 중심적 사고로 대화의 폭을 넓혀 갈 수 있는 것도 상존의 윤리를 도모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상이한 문화권에서 자라난 종교인만큼, 그들 고유의 입장을 이해하고 열린 자세로 겸허하게 상대의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다면 다툼보다는, 생태학적 문제와 같은 더 큰 주제를 가지고 지구 공존의 윤리를 더욱 발전적으로 함께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앙은 실존의 자리다. 실존이 투여된 신앙의 자리에 교리적 싸움으로 치닫기보다는 오히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공존하는 지구의 평화를 위해 함께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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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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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보인다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 테러와 납치가 발생하면 항상 배후에 이슬람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러한 경우도 많다. 종교의 기본적인 이념을 세세히 들여다 보면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와 종교가 만났을 때는 대립과 갈등으로 표현되거나 때론 '전쟁'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그들은 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가. 이 책은 무함마드와 예수의 생애를 통해 두 종교의 생성 배경을 알아보고, 그들의 가르침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서술하였다. 서로의 다른점을 알아가고 이해를 통해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만한 내용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가 같은 민족이고 종교적인 뿌리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슬람에서 말하는 유일신 '알라'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솔직히 이슬람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이스라엘의 조상이고, 이삭의 배다른 형제가 이슬람의 조상이니 그들이 말하는 유일신이 다를 이유가 없다. 무함마드는 스스로를 구약에 나오는 모세와 욥과 같은 예언자라고 주장하며 알라의 말을 전하면서 지지세력을 모았다. 그렇다보니 꾸란(코란은 영어식이다)에는 구약과 신약의 일부를 인용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꾸란이 순수하고 흠 없는 알라의 계시라고 믿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의 일부를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참으로 화해할 수 없는 차이점을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p.160" 이슬람은 유일신 알라만 있을 뿐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예언자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무함마드는 그리스도교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그리스도교는 무함마드가 성서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함마드는 예수의 신성을 주장한 12사도를 비난하였지만, 무함마드 사후에 무슬림 또한 무함마드를 여전히 예언자로 보는 순니파와 '무오류성' 즉 신성을 주장하는 시아파로 나뉜 뒤, 후대에 내려오면서 계속 파벌이 생긴다.

그 외에도 예수는 생애를 통틀어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초기부터 신정정치를 통해 지지세력을 결집하였고, 세력을 확장하기위해 정복 전쟁도 끊이질 않았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꾸란에 따라 도둑질한 자의 손을 자르고 율법을 어긴 자들을 돌로 쳐죽였다. 이는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옴으로써 인권문제등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정치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도 여전히 꾸란에 따르고 있다. 또한 예수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것에 반해 무함마드는 많은 부인들을 두었다. 전쟁으로부터 과부와 노예들을 지키려는 초기의 의도와는 달리 개인의 소유욕에 의해 여인들을 취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무함마드 자신도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 양자의 아내를 맞거나, 부인들간의 갈등을 '계시'를 내세워 일축하기도 했다.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책을 통해 이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꾸란'이나 '라마단(이슬람의 단식)'에 대해서만 들어봤을 뿐 언론에서 '시아파'나 '순니파'가 어쩌구하면 어떤 의미인지 못알아 들을만큼 용어조차 낯설었는데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두 종교가 아예 다른 지역, 다른 민족이었다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적극적이지는 않았을까. 앞서 언급한대로 '알라'와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시각에서는 무슬림과 그리스도교가 공존하지 못할 이유도 없어보였는데 세세하게 살펴보니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의 개인을 예로들어 보자. 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도 하고,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태어날 때 물려받은 유전적인 요인에다 어린시절부터 조금씩 형성된 성격들을 어느순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뜻일게다. '한국인은 이러이러하다'라고 표현되는 부분에 있어서도 우리가 스스로 문제점으로 인식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보니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공존과 갈등은 쉽게 생각할수만은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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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8-03-0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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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와 이슬람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을 위한 지침서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저녁놀이 아름답다. 자연이 빚어내는 환상은 우리가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그에게 감사하겠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근원적인 문제들과 본질적인 의문들의 열쇠를 단 하나의 존재에게 의탁하는 일은 나약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나면 참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부조리한 세상과 불공평한 인생도 달리 보이고 현실의 고통까지도 참을 수 있다. 내세와 천국이 우리를 인도하여 영생의 길로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도 나는 <왜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종교가 없는 유물론자가 신의 존재 여부를 논쟁하거나 증명하는 책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다만 신이 갖는 의미와 역할은 다른 문제이다. 엄연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담임 목사 1인 체제로 공룡처럼 덩치만 키우는 대형 교회나 좋은 돈벌이 수단으로 절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과연 종교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어디에나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종교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종교인의 역할과 신도들은 석가나 예수, 무함마드의 말씀과 신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해본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신의 존재 유무는 차치하고서라도 신의 종류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인간 종족이다. 전 인류의 20% 이상이 믿는 종교인 이슬람은 소수 종교가 아니다.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 비해 역사와 전통, 신도 수에서 결코 2등 종교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슬람교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테러리스트를 먼저 떠올리고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의 아랍인을 연상한다.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갖지 않고 있다면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를 비교하고 무함마드와 예수를 견주어 보는 노력과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명권의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은 이러한 의문들에 답하는 좋은 안내서이다. 특정 종교에 대한 비교 우위를 논하는 책도 아니고 복음을 전파하거나 선교를 위한 책은 더더욱 아니다.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가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는, 혹은 잘 알지 못하는 무함마드의 존재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해설서이다. 무함마드와 예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은 두 종교를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무함마드와 예수를 비교하고 이것을 토대로 2부에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치우친 견해를 밝히거나 오호의 감정이 개입되었다면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일반적으로 모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안내와 잘 알려진 예수를 비교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책이다.

문제는 구원의 주체가 누구이며, 구원의 중개자가 누구인가 하는 소위 메시아에 대한 개념에서 이들의 신앙은 달라지고 만다. 무함마드는 어디까지나 알라-하나님의 사도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지만, 신약성서와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육신한 세상의 메시아이자 삼위일체의 존재로 평가된다. 이른바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위치를 지닌 구세주로서의 신앙의 대상이 된다. - P. 155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신은 모두 하나님GOD이다. 십자군 전쟁을 위시해서 종교 전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의 가르침과는 모순된 논리지만 인류는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믿는 것은 하나인데 그들끼리는 싸운다. 초등학생에게 물어 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상식에 위배된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교리상의 차이와 신의 말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갈등과 반목이 생겨났다고 해도 종교의 근본 원리나 목적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무함마드를 사도(예언자)로 규정하여 일위일체만을 인정하는 이슬람교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하여 삼위일체론을 펼치는 그리스도교는 출발부터 다를 양상을 보인다. 무함마드와 예수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바로 두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의 틀을 달리한다. 핵심적인 차이점이 드러냄으로써 유사성은 묻혀버리고 만다. ‘라 일라하 일랄라La ilaha illa Allah’ 즉,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꾸란>의 가르침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각종 <복음서>들이 전하는 말씀과 무함마드의 <하디스>는 두 종교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쉽게 말해서 무함마드는 인간이고 예수는 신이다. 이슬람의 입장에서 예수는 인간이고 사도(예언자)일 뿐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앙고백, 공식예배, 자선, 단신, 순례’의 다섯가지 기둥이 이슬람교를 버텨내고 있다. 이슬람의 역사와 경전인 <꾸란>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차이점으로 받아들인 점은 ‘자선’이다. 예수는 마음을 중시했고 의도를 중시했지만 이슬람에서 ‘자선’은 의무사항이다. 명목상 십일조를 통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를 돕고 있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반면에 이슬람교는 ‘자선’이 거역할 수 없는 의무사항에 해당된다. 최근 사찰이나 교회, 목사 등 납세 문제가 언론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눔의 역할과 순수한 종교의 목적에 충실한가를 따져보는 일이다. 대다수의 종교인들이 이러한 가르침에 충실하며 사회의 어둠과 그늘진 곳을 보살피고 있겠지만 과연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영희 선생은 한국 교회는 ‘모이자! 돈내라! 집짓자!’는 세 마디로 실날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서방 언론에 의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갖추어졌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읽을 만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무함마드와 예수가 누구인지 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 보다 여전히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이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08020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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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힘 2008-02-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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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하게 이슬람 들여다보기 

'이슬람'이란 단어에는 무언가 낯선 이질감이 풍겨나온다. 가끔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터번 쓰고 수염 덥수룩한 남자나 부르카를 뒤집어 쓴 여자들을 보면 정말 나와 딴 세상 사람 같기도 하고.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는 언제나 '유럽'중심이고 서아시아쪽은 굵직굵직한 나라 몇개로 요약해서 배우는것이 전부인데다 암기 위주인 시험인지나 지나고나면 그마저도 가물가물. 한국은 조만간 하나님께 봉헌될지도 모르는 나라이다보니 이쪽 관련 소식은 대개 한쪽으로 편향되어있다. '탈레반'의 잔학성이나 여성학대 등. 얼마전 개봉 한 '연을 쫓는 아이'에선 탈레반도 나오고 소련도 나오는데 정작 미국은 빠져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책은 (객관적이기보단, 우호적 입장에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리스도교의 예언자 예수를 비교하고 (차이점보단 공통점을 보려고 노력한다) 이슬람 탄생 배경과 경전 꾸란, 다섯가지 기본 요소, 수피즘, 간략한 역사등을 설명한다. 거의 '이슬람 입문서'라고 붙여도 무방할 듯.

<구약성서>를 기반으로하는, 아브라함 종교에서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가 갈라져 나왔고, 지구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 시작된 이들 종교는 서로 관용했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거의 전 대륙에 걸쳐 '종교'의 이름으로 싸워왔다. (사실 '종교'는 표면적인 눈가리개고 사실은 권력쟁취나 돈 등 '실용적'인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현대로 올수록.) 자신들이 진정한 후계자라는 신앙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타 종교에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정치적 배경들이 흥미롭다. 나같은 무신론자에게 각 종교간의 정통성 싸움은, 배다른 자식 여럿이서 왕위를 놓고 다투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서나 꾸란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좋은말도 많은데 하필이면 '다른 신을 섬기면 알라/주께서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문구에 집착하는 걸까.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가능한 구절들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것임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지.

이 책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위하여'라는 취지에 걸맞게, 서로 대립되는듯한 요소들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곤 한다. '알라'가 '유일한 신'이란 의미에서 '하느님'과 상응하는 말이고, 이슬람은 알라 외의 전능함은 부정하기 때문에 무함마드와 예수는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다르지만 '절대존재 - 진리'를 추구하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고 본다. 차이를 보는 사람에겐 건널수 없는 강이, 공통점을 보려는 사람에겐 '조그만 차이'일 뿐이다. 이슬람적 요소가 가미된 무슬림 복음서와, 이슬람화된 예수를 예로 들어 "무슬림이 자신의 종교 안에 경건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영적 스승을 초대해 왔던 이런 독특한 방식은 과거의 역사가 어떠했든지 종교간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모범적 사례(p.119)"가 된다고 이끌어내기 까지 한다. 저자의 말을 좀 더 길게 인용해보면


우리는 신앙을 이해하는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교리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보수적 입장과, 교리보다는 '상징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해석의 입장, 그리고 이들 모두를 하나의 보편적, 종교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종교학적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보수적인 교리적 입장만을 서로 강조하다 보면 공존과 상생의 길보다는 분쟁과 파국의 길만을 걸어 갈 뿐이다. 삼위일체나 그리스도론의 교리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신 중심적 사고로 대화의 폭을 넓혀 갈 수 있는 것도 상존의 윤리를 도모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상이한 문화권에서 자라난 종교인만큼, 그들 고유의 입장을 이해하고 열린 자세로 겸허하게 상대의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다면, 다툼보다는 생태학적 문제와 같은 더 큰 주제를 가지고 지구 공존의 윤리를 더욱 발전적으로 함께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앙은 실존의 자리다. 실존이 투여된 신앙의 자리에 교리적 싸움으로 치닫기보다는 오히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공존하는 지구의 평화를 위해 함께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p.160~161)



비종교인도 수긍할 법한 말이다. 좋은말이 늘 그렇듯 실현은 요원해 보이지만. 현대의 종교가 과연 "종교적 정통성/신성함"을 위해 서로 칼을 들이대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지만 어쨌든 '이해'와 '공존'이라는 취지 자체는 좋다.

저자의 이런 "柔"한 자세는 이슬람 소개에도 드러난다. 히친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슬람이 정말로 독자적인 종교인지에 관해서도 의문이있다. 이슬람교는 처음에 다른 종교와 뚜렷이 구분되는 특별한 신앙을 원하던 아랍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으며, 아랍인들이 나중에 벌인 정복전쟁 및 아랍어와 항상 동일시된다......이슬람은 필요할 때마다 예전의 경전과 전통을 제멋대로 베낀 표절 집합일 뿐이다. 이런 표절 사실이 눈에 뻔히 보일뿐만 아니라, 그나마 표절해온 것을 제대로 배치하지도 못했(신은 위대하지 않다. p.194)"다며 악평을 쏟아내지만 이 책은 당시 시대적 상황 - 메디나에서 유대인들이 무함마드를 조롱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했기에 무함마드에게는 유대인들이 적이었다. - 을 들어 유대교인을 배척하면서도, 이슬람교의 효과적인 전파를 위해 널리 알려진 유대교 경전이나 그리스도교 성서 내용을 소개했다고 설명한다. 꾸란은 원칙적으로 번역될 수 없고 오직 아랍어로만 쓰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아랍어의 특징 - 셈족이 사용한 원시적 형태 언어인 아랍어는 본래 형성문자로서 다른 언어적 현상에서 볼 수 없는 수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언어로, 이를테면 논리적이고 심리적이며 종교적인 색채의 언어다(p.243) - 을 덧붙인다. '지하드'나 '여성차별'문제를 두고도 당위적 비판보다는 관습이 형성될 당시의 상황 - 예컨데, 전쟁으로 과부/고아가 많아 그들을 거두는 사회적 책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등 - 을 설명한다. 루미의 시를 중심으로 수피즘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책 끝머리에 붙은 '현대 이슬람의 과제와 전망'에는 더이상 원시적 유목생활을 고집할 수 없는 현대에 꾸란이나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탄력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꾸란에 대한 문헌 비평적 작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서구의 편향된 시각-특히 그리스도교적 관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등을 언급하며 서구의 편향된 시각에 관한 비평서로 "무함마드를 따라서(칼 언스트. 심산. 2003)"를 추천한다. 이슬람을 더욱 고립시키는 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종교를 악용하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무관심도 그에 일조하고 있다. 다분히 종교적 색채를 띤 서술이지만 차이보다는 인류 전체의 평화와 공존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은 책이다.



** 예전에는 '코란' '마호메트' '옴미아드 왕조' 등으로 쓰였던 말들이 이 책에는 '꾸란' '무함마드' '우마이야 왕조' 등으로 쓰여있는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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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3-2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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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신과 다른 믿음에 대한 알맞은 정보가 있다. 





이슬람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많이 왜곡되어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주변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과 언론 매체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들이 서구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들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기독교나 불교나 서구철학에 대해 배우는 분량에 비해 이슬람에 대해 배우는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리고 왜곡된 정보에 의한 이슬람의 모습을 가르친 선생들 덕분에 그런 편견은 더욱 공고해졌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대립적인 종교는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 세 종교 모두 하나의 신을 믿고 있다. 야훼, 알라, 하나님 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영어로 번역하면 모두 GOD라고 한다.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한 이 세 종교가 격렬하게 대립하는 것을 보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격언이 생각난다. 물론 이 종교들이 모두 같은 경전이나 율법을 공유하거나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차이점과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슬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구나라고 했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다.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과 그 선입견에 묶인 사람이 있다. 나도 어느 정도는 중립을 지키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강해진 선입견 때문에 이성보다 감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잘못된 정보나 부패한 종교계의 모습에서 비롯하는데 가끔 종교 본연의 자세에 충실한 단체나 사람을 보게 되면 존경하면서 비뚤어진 시선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왜 갑자기 이런 선입견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 책의 저자가 그리스도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중심으로 쓴 글로 중립적인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지만 나의 시각 탓인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진보적이고 바람직한 의견을 공고히 하는 부분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없는 것에 대한 창조는 아니다. 다만 두 종교를 비교하는 대목에서 약간 공정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편파적은 아니다. 보기 드물게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를 비교하여 서술한 책으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하고 배우게 만든다.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무함마드와 예수의 같고 다른 점에 대한 내용이고, 2부는 이슬람에 대한 모든 개론적 내용이다. “무슬림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유일신 신앙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슬람이 삼위일체의 관계적 차원보다는 수학적 유일신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는 두 개의 상이한 문화와 세계관에서 각각의 신앙이 출발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160쪽) 이 글에서 보듯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같은 하나의 신을 믿는다. 바로 예수의 존재에 대한 해석과 믿음에서 결정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예수를 무함마드처럼 예언자 중 한 명으로 인식하고 예수가 보여준 기적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본적 차이 외에도 두 종교는 많은 점에서 다른 점들이 있다. 그것은 무함마드와 예수가 처한 환경과 한계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인상적인 이슬람의 자선 행위가 기본적인 의무 가운데 하나라면 예수는 드러내기보다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의(義)에 대해 예수가 작고 평범한 선행에서 시작하는 반면에 알라를 믿는 것에서 시작하여 예배와 자선을 겸하여 행하는 것이 의로운 자로 정의한다. 몰론 두 종교 모두 하나님을 믿고 그 뜻을 따르는 자만이 의롭다 함을 인정받는다는 점은 일치한다.



다른 점이 있는 만큼 비슷한 점이 많은 이 두 종교를 보다보면 현세의 욕망에 의해 왜곡되고 본래의 가르침이 사라지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서로 교세를 더욱 확장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이득이나 교리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고, 각각의 목적에 의해 본래의 의미나 의도보다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 변하는 현실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겠다. 비록 나 자신의 선입견으로 온전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시각과 세계를 열어준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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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01 2008-02-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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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 - 공존을 위하여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전쟁, 테러를 볼 때마다 진정 그들이 말하는 신들이 원하는 것이 이러한 믿음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매체를 통해서 본 전쟁이나 테러는 이슬람계에서 일으킨 종교전쟁이나 테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다시피해서 그런거지 사실 그리스도교에서 자행한 종교전쟁 또한 어마어마한 핍박과 상처를 남겨주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묻고 싶다. 그들의 신들이 원하는 믿음이었고 행동이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매번 그들은 무엇이 다르다고 서로를 저리도 뼈 속 깊이 원한 찬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종교의 무지했던 나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리도 다르고 바라보는 지향는 점이 다른 것일까하고 말이다.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은 그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이다. 우선 대다수일지 모르는 나와 같이 이슬람교에 대해서 재대로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분들에게는 좋은 설명을 해주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신학을 전공하였지만 객관적으로 이슬람과 무함마드를 예수와 함께 설명해주고 있다. 우선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의 큰 차이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이슬람교는 예수를 무함마드와 같이 신이 아닌 사도일뿐이라고 하며 알라(하나님)외에는 신은 없다 이고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를 포함한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큰 차이점과 바라보는 시각차이가 환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예수 또한 그저 하나님(알라)가 사랑하신 선한 제자이자 사도였을 뿐 결코 신이 아니다라는 시각은 그후 그리스도교가 지향하는 삼위일체를 일체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기에 그리스도교의 방향과는 큰 다름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예수의 고귀한 희생, 부활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기에 두 종교는 각기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그외의 하나님과 야훼의 혈통과 사도들의 행적은 인정하고 있다. 결국은 종교적으로 밝지 못한 나는 같은 신을 향한 믿음이 이렇게까지 갈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는 부분 또한 남아있다. 그저 단순한 생각에 그칠지 모르지만 서로 공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간들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만이 남게 된다.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은 이슬람교 역사에 대해 비교적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던 세계를 이어준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성스런 계시를 받은 후 종교의 책이자 생활전반을 책임지는 꾸란, 하디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으며 그후 후계자들인 칼리프가 이어온 이슬람교와 후계자의 전통성에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시각차이로 혈통적으로 정통성이 있는 알리만을 진정한 후계자로 하는 시아파와 3대 칼리프를 모두 포함하여 선출을 통하여 칼리프를 계승하고자하는 대다수의 순니파로 이어지게 된다. 꾸란의 도덕적 가르침에 따라 그들은 갈등과 투쟁 속에서 발전해왔고 개혁을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성에 대한 차별성은 큰 문제로 남아있고 그리스교의 지탄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슬람교, 그리스도교는 서로 공존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은 분명 열려있다고 본다. 신을 향한 마음이라면 화합을 바라는 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까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저자역시 공존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진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생각을 바꾸어 본다면, 종교 간의 이질적인 혐오감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한다.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서로를 편견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진리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새로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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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7177 2008-02-24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