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8

카르마 강의, 윤회/전생/인연 - YouTube [52개]

카르마 강의, 윤회/전생/인연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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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인연과 카르마 해결방법 - 부부 인연, 부모 인연, 악연을 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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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로부터의 메시지 (7) 사후세계의 진실, 인간은 사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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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란 무엇인가? 귀신에 대한 바른 이해, 그림자를 끌어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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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랄계 여행에서 배운 것들, 끌어당김의 법칙, 루시드 드림(자각몽)에서 차원 이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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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이론 총정리 - 윤회론, 전생, 인연, 시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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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로부터의 메시지 (1) 카르마와 시련의 의미, 빙의령의 기능, 영격이 높은 사람이란? 질병의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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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와 운명론 - 운명, 사주팔자는 존재하는가? 운명에 대한 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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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NOW PLAYING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대처하기 - 진상을 안 만나고 좋은 인연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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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NOW PLAYING


영계로부터의 메시지 (6) 기도가 효과가 있는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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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NOW PLAYING


영계로부터의 메시지 (5) 신은 인간을 함부로 돕지 않는다. 삶의 시련과 영적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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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로부터의 메시지 (2) 금수저, 흙수저 불평등한 이유는? 카르마 해결방법, 마음공부 핵심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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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NOW PLAYING


미니멀라이프와 마음공부 -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4가지 변명, 미니멀라이프의 자기계발 효과, 청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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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로부터의 메시지 (8) 동물의 진화와 사후세계, 인간의 사랑이 자연계의 진화를 돕는다. 동물보호,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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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6NOW PLAYING


카르마에 대한 오해들, 지구학교의 최종 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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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카르마 - 조상이 물려준 선업과 악업, 나는 자손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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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 짓는 카르마 - 남을 비난, 비웃음, 무시하면 내가 그 사람처럼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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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로부터의 메시지 (3) 그룹소울 이론, 상위자아, 환생과 영적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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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사람이 잘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르마의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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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답변 - 영적 성장을 해야 하는 이유, 인류의 정신이 진보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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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NOW PLAYING


말로 짓는 카르마의 균형 회복하기 - 사주팔자, 운세풀이보다 중요한 마음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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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죄를 왜 내가 갚지? 가문 카르마와 개인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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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지 말아야 하는 3가지 이유, 사후세계와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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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NOW PLAYING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카르마, 반려동물의 전생 인연,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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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칼로스 1권 (2) 사념체 해결하기, 카르마가 돌아오는 원리, 가위에 눌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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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로부터의 메시지 (9) 심령치료, 빙의치료, 조상의 도움을 받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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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일어나는 문제들의 영적인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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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지구별 (1)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시련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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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와 자유의지 - 갑질에서 벗어나기, 참나를 따라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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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9NOW PLAYING


질문답변 - 전생 기억을 잊는 이유, 윤회론으로 인구 증가를 어떻게 설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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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로부터의 메시지 (10) 예수천국 불신지옥 기독교 교리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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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NOW PLAYING


시크릿, 끌어당김의 법칙과 카르마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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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지구별 (2)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영혼의 단짝친구이다. 전염병의 영적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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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지구별 (2)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영혼의 단짝친구이다. 전염병의 영적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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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지구별 (2)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영혼의 단짝친구이다. 전염병의 영적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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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NOW PLAYING


카르마에 대한 바른 이해 - 참된 계율은 내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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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한 일의 카르마 - 실수한 일도 업장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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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NOW PLAYING


카르마의 다양한 측면들, 복잡한 상황에서의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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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NOW PLAYING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 1권 (1) 빙의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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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 1권 (1) 빙의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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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가족을 돕는 방법, 호오포노포노 명상법, 잠재의식 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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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가족을 돕는 방법, 호오포노포노 명상법, 잠재의식 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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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가족을 돕는 방법, 호오포노포노 명상법, 잠재의식 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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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가족을 돕는 방법, 호오포노포노 명상법, 잠재의식 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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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가족을 돕는 방법, 호오포노포노 명상법, 잠재의식 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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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가족을 돕는 방법, 호오포노포노 명상법, 잠재의식 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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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하는 가족을 돕는 방법, 호오포노포노 명상법, 잠재의식 정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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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심의 카르마 - 법적 대응, 소송을 할 때의 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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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vate video]

Namgok Lee 조성환의 ‘동학사상의 전개와 발전

(15) Facebook

Namgok Lee
201909

조성환 (Sunghwan Jo) 교수의 ‘동학사상의 전개와 발전’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짧은 시간에 동학 사상을 압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동학을 공부해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특히 현대 개벽운동의 사상적 지평을 개척하고 있는 조 교수의 동학 강의라 더 뜻 깊었던 같다.

여러 가지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난 것만으로도 명강의였다고 생각한다.

제한된 시간 때문에 질문이나 의견을 말할 기회가 안되어 페북을 통해 내 질문이랄까 의견을 말하고 싶다.



나는 사실 동학에 대한 관심이 거꾸로 생긴 셈이다.

자신의 사회적 실천과 사상적 경험이 그 바탕이다.



젊어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었고 그것이 부딪친 한계를 자신의 경험과 실제 진행된 역사를  통해 보면서 1980년대에 나 자신 사상적 전환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 나와서 친지한테 선물 받은 원불교 교전의 첫 페이지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를 보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이 지나갔다.

그 동안 내가 사상을 재정립하는데 가장 핵심적으로 고민해 온 것을 이 짧은 문장이 표현하고 있다는 감동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주지로 있던 암자에서 보름을 머물면서 그 동안의 생각을 글로 정리했는데, 그 제목이 ‘혁명에서 개벽으로’였다.( 그 원고는 잃어버렸지만, 내용은 요즘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벽’과의 만남이었고, 그러다보니까 그 원류인 동학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언제 기회가 되면 스스로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개벽파’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오늘은 조 교수의 강의를 들은 감동과  잊어버리기 전에 오늘 질문 내지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남긴다.



1. ‘개벽’과 ‘개화(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구분에 대해서.

   개화를 ‘물질 개벽’의 거쳐야할 한 단계로 볼 수 없는가?

   (물질적 생산력이 인류의 총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단계)

  자본주의는 그것과 결부된 제도.



2. 물질 개벽이 만나는 모순과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가 나온다.



다만 신기한 것은 물질 개벽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구호가 등장했다는 것인데, 오늘 강의에서 선천 5만년을 물질개벽으로 보았다는 내용이 여러 의미로 다가왔다.

사회주의는 이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기서 질문이 있다.

정신 개벽의 내용이 무엇인가? 특히 현대에 와서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3. 정신 개벽은 다시 물질과 제도 개벽으로 피드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가? 라는 대명제에 ‘개벽운동’이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비전과 동력은 무엇인가?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개벽파 들과 이런 질문들을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조 교수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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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성환 교수의 동학 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을 잊기 전에 적어 둔다.
1. 왜 동학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출현하지 않고, 한국에서만 나오는가?
2. 동학사상의 핵심이 ‘하늘’인데, 이 하늘은 기독교(천주교)의 천주(天主)와도 다르고, 유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하늘과도 다르다.
‘하나의 우주적 큰 기운(至氣 또는 一氣)’ ‘우주적 생명력’
3.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의 ‘시(侍)’가 가장 큰 특징.
조 교수는 이를 ‘시천주=자기 모심’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대 제천(祭天)행사도 중국에서는 황제의 영역에 속하는데, 한국은 온 국민의 축제였다.
이 ‘모심(侍)’ 속에 한국에 특유한 토착문화, 무속(巫俗), 무당 등이 녹아 있는 것 아닌가?

4. 최제우는 하늘의 말(天語) 체험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방언 체험과 유사하다.
최시형은 이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실토하면서, 사람의 말(人語)이 하늘의 말(天語)라고 말한다.

5.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로부터 최시형의 ‘인시천(人是天) 천시인(天是人)’ 으로 나아간다.

6. 하늘과 사람이 상호의존 관계인 것이 독특하다.

천인상여(天人相與), 천인상의(天人相依) 즉 人依天 天依人

7. 경천, 경인, 경물까지 도덕을 확장하고 있다.
만물(萬物)로 확장 된다.

8. 이천식천(以天食天)은 기화(氣化) 즉 에너지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9. 우주는 한생명이고 한 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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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 질문 겸 의견이다.
‘내가 곧 우주(人乃天)’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 좁쌀 한톨, 종이 한 장에서도 우주를 본다는 것은 내 안에서 어떤 마음의 상태로 되는 것일까?
아집(我執)과 소유(所有)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한생명인 우주가 곧 나’라는 깨달음은 공허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우주에서 특이한 존재다.

‘자유욕구’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결국은 이 자유욕구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곳이 ‘관념 안에 있는 부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그것은 아집과 소유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과학과 종교가 서로 보완하며 이런 자유의 영역이 보편화되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이 정신개벽의 내용이 아닐까?
이런 의식의 변화가 보편화되면 전혀 새로운 문명과 제도가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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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7

개교 100년 원불교의 사람들 - 주간조선

개교 100년 원불교의 사람들 - 주간조선


개교 100년 원불교의 사람들
김무성도 김종인도…

박청천 원불교중앙총부 훈련교화부 교무·초기교사 집필
  1. 사회/르포
[2403호] 2016.04.18


▲ 서울 동작구에 있는 원불교 서울회관 전경.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지금부터 백 년 전, 신록이 날로 빛을 더하는 생생약동 봄날에 전라남도 영광 두메산골의 한 젊은 농부가 도를 깨쳤다.

그가 도에 뜻을 둔 것은 네 살 적 엄마 등에 업혀 동산에 달이 오르는 것을 보고 “엄마, 달 따러 가” 보채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곱 살 적에 글공부를 시작하며 ‘하늘 천 따 지’를 배우며 “하늘은 왜 푸르며 바람은 왜 불며 구름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하늘 천(天) 자에 머물러 더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소년은 그 의심을 풀기 위해 3년간 산신 기도하러 다니고, 도사 소설을 읽은 뒤로는 도사를 찾아 3년간 끈질기게 다녔다.

당시 조선 최고 도인 두 분이 계셨다. 불교계의 경허선사와 선도계의 증산상제이다. 그때 경허는 일대시교를 접고 삼수갑산에 은거할 때요, 남도 땅의 증산은 화천(化天) 3년을 앞두고 당신 경륜을 계승할 법기를 찾고 있을 때였다. 이 땅의 최고 도인 그분께 소년은 16~18세까지 3년간 한 달에 한 번 이상 수십 번 끈질기게 찾아갔을 것이다. 이 무렵 남도 땅에는 증산상제의 태을주 치성이 한창이었다. 태을주 치성을 하여 병이 낫고 소원성취한 자가 부지기수였다. 이상하게도 증산은 소년을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년의 전도에 고무적인 언사와 희망을 아낌없이 불어넣으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그를 가까이 두지 않았다. 그 흔적은 두 분의 행적과 언행록에 역력히 반영되어 있다. 증산이 소년에게 그렇게 한 것은, 소년 뒤에 증산을 만나 제자가 되고 태을도(普天敎) 교단을 만든 차경석(車京石)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650만의 신도를 확보하고 시국의 황제(天子)라고 자처하지만, 종내 간교한 일제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참한 말로가 될 것을 예견한 것으로 볼 때, 이는 소년에 대한 증산의 내밀한 원려(遠慮)로 볼 수밖에 없다. 보천교뿐만 아니다. 한말에 출현하여 교세를 떨치던 민족종교 천도교와 대종교(大倧敎)는 극악한 일제의 탄압으로 지하로 잠적한다. 증산은 박중빈이 불법(佛法)을 연원으로 회상을 펴야 회체(會體)를 유지할 것을 예견한 것 같다.

강증산 서거 이듬해 경술국치를 당하고 소년은 부친상을 당한다. 겸하여 영광 부자로부터 성화 같은 채무 독촉에 시달려 주막집도 해보나 실패하고, 임자도 근해 타리섬의 민어 파시(波市)에 가 거금을 벌어 채무 청산하지만 이내 빈털터리가 된다. 다시 납덩이같은 무게로 “이 일을 어찌할꼬” 도업이 남아 있었다. 빈자 발도심(貧者發道心)이라, 하루 한 끼니 잇기도 어려울 정도로 극빈의 지경에서도 그는 구도일념을 놓치지 않았다.

24세 무렵에는 그의 집념이 워낙 외골수여서 복부가 물동이 올려놓은 것처럼 팽만하였고 360 기혈이 막혀 온몸은 종기로 뒤덮여 동네 사람들은 그를 문둥병자로 알고 피해 다녔다. 스물다섯 살 적에는 아침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든 채 점심에 이른다든지, 오뉴월 한낮에 어디를 가던 중 소피를 보다가 바지를 내린 채 한나절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든지, 법성포 장보러 가다가 나루터에서 해거름까지 서 있었다든지, 그렇게 1년간 입정돈망(入定頓忘)이 계속되었다. 시절이 무르익어 스물여섯 살 되던 해, 마침내 그가 도를 깨닫겠다는 집념마저 놓는 날 그는 확연 대오하였다.



▲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미래 종교는 일하는 생활종교

병색이 씻은 듯 사라지고 얼굴에 광명이 어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박중빈(朴重彬)이라 하였다. 빛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다.

도를 깨치고 그가 한 일은 당장 먹고사는 일이었다. 영광·법성·구수미·무장 등지의 장을 보러 다니며 시국을 관찰하는 것과 일본인 농장주들이 전개하는 간척사업 공사 현장을 둘러보며 살길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 동네사람들에게 수수만년 버려진 갯벌을 가리키며 언을 막자(방언·防堰)고 말하였다.(‘防堰’은 영광 사투리로 갯벌막이, 즉 간척사업)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것은 단결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우리는 단합합시다. 경제력을 키우고 교육합시다.”

박중빈은 자신의 집과 밭과 세간살이를 모두 팔아 방언 조합금으로 내놓았다. 그의 뜻에 동조하는 동네사람들도 금주·금연과 매끼니에 한 숟갈씩(匙米·시미) 근검저축하여 조합금을 모았다. 오도 후 그는 각지의 장에 다니며 석유 등 목탄 값이 폭등하는 것을 파악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일본도 참전 중이었다. 그 자본금으로 구수산 골짜기의 숯을 사들여 1년 만에 10배의 수익을 올렸다. 그 자본금으로 구절양장 산골 동네 앞까지 들어온 바닷물을 막을 계획을 세웠다. 수수만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개펄을 동네사람들과 합심하여 막아 1년 만에 8만5950㎡(2만6000평)의 옥답을 만들었다. 논 한 배미 없고 큰애기 시집갈 때까지 쌀 한 말도 못 먹던 동네가 논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각후 박중빈은 선서, 유서, 성경 그리고 불서를 읽고 탄식하였다. “옛 어른들께서 이미 다 아셨구나. 불법은 무상대도(無上大道)라 불법을 연원으로 회상을 펴리라.” 일제는 저네들의 신도와 불교, 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고 우리 민족종교는 유사종교로 폄하하고 탄압하였다.

박중빈은 모악산 금산사에 가서 미륵전 옆 송대에 머물며 짚신을 삼았다. 가마솥 위에 서 있는 미륵대불에게 호통쳤다. “만날 서 있기만 하고 불공만 받으면 되겠느냐. 짚신을 신고 나가서 일을 해야 미륵이지”라고 하였다. 이후 그는 호를 소태산(少太山)이라 하였다. 솥에 들어와야 산다는 뜻이다.

갑자년(1924) 초여름에 소태산은 호남 교통의 중심지 이리(현 익산)에 왔다. 이리에는 법당 안에 서 있기만 하던 미륵이 마당에 나와 서 있었다. 구릉지대 작은 절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하고, 미륵산 아래 황등호숫가 신룡벌에 불법연구회라는 공동체를 열었다. 호수 서쪽을 호서(湖西)라 하고 호수 남쪽을 호남(湖南)이라 하는 국중삼호(國中三湖)라 일컫는 오래된 호수였다. 소태산은 이곳에서 황무지를 개척하여 신농법으로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고 수박 재배도 하고 축산과 양계장을 운영하여 ‘불법연구회’ 상표가 붙은 달걀을 멀리 만주까지 출하하였다. 이리경찰서에서도 자기들의 호마를 길러달라고 맡길 정도였다. 동아일보는 ‘맑은 호숫가의 이상촌 건설’이라고 불법연구회를 소개하였다. 타 종교는 물론 멀리 일본 오사카에서 견학을 오기도 하였다.

“귀교의 부처님은 어디에 봉안하였느냐”는 질문에 소태산은 논밭에서 작업하고 농구를 메고 돌아오는 산업부원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우리 집 부처요”라 하였다.

천주교 신자와 대화하는 중에 그들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조물주라는 말을 듣고 소태산은 “귀하의 조물주는 귀하”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在家主義 生活佛敎 강조

한 제자가 물었다. “수운 선생은 새벽에 닭이 홰를 치고 울어 만생을 깨우는 역할이요, 증산 선생은 농력 절후를 일러주는 역할이요, 선생님은 논밭에 나가 일을 하는 역할이라 비유하면 어찌하오리까.” 소태산은 “그럴듯하다”며 두 분은 선지자(先知者)와 신인(神人)이라 하였다.

소태산은 오는 세상은 집집마다 생불이 살며 죄복의 소종래를 알고 있으므로 따로 교회나 절에 나갈 필요가 없으며 네 종교니 내 종교니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소태산은 오도하고 고향 마을의 수수만년 버려진 갯벌을 간척하고 최초의 교당을 지을 때 그 기둥에 17자 기다란 옥호를 달았다. ‘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 즉 ‘크게 밝은 공동체/ 영성의 보금자리/ 사통오달 통하지 않은 것이 없는/ 창조적인 판을 만들어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라는 뜻이다. 미래 불교를 바라보는 소태산의 경륜이 함축된 옥호이다.

만해 한용운은 경술국치 전에 일본 불교계를 견문하고 승려가 결혼하고도 수행하고 애국하는 것을 보고 와서 “중이 장가가야 나라가 부흥한다”는 요지의 ‘조선불교유신론’을 내었다. 현실적으로 불교 제도권 안에서 불교유신은 어렵다. 수천 년 내려오던 관습을 쉽게 깨기 어렵다. 결국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사찰령이 반포되고 결혼한 승려에게만 주지직을 주는 제도를 강행하여 승려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여론이 일었다.

소태산은 ‘조선불교혁신론’이라는 책자를 내고 불교의 제도권 밖에서 새롭게 재가주의(在家主義) 불교 방안을 내놓았다. 구성원 모두가 기혼자들이므로 시대불교·생활불교·대중불교를 강조하였다. 허례가 심하고 번거로운 관혼상제를 간소화하고, 산중불교를 재가불교로,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어려운 한문 경전에서 쉬운 한글 교과서로, 등상불 숭배를 심불(心佛) 신앙과 수행을 강조하였다. 소태산은 거진출진(居塵出塵) 사상, 즉 재가주의 생활불교를 강조하였다.

일찍이 진묵 대사가 “진승(眞僧)은 하산(下山)하고 가승(假僧)은 입산(入山)한다”는 예언이, 강증산이 “내 일은 판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예언이 이로써 실현되었다.

1930년대에 가장 파격적인 것은 소태산의 여권신장운동이다. 부부권리 동일을 주장하고 부부 각자가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는 부부각산(夫婦各産)을 주장하였다. 이는 나중에 주요 교리인 4요의 자력양성(自力養成)으로 발전한다.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과부나 첩, 기생들도 일정 교육을 이수하면 목사나 신부처럼 교무 자격을 갖고 단상에 올라 당당하게 설교하였다.


한판 크게 변모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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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을 두고 ‘평범한 성자’라고 한다. 불법연구회는 광복이 되자 정산 종법사 대에 비로소 정식 종교로 등록하고 교명을 ‘원불교’라 하였다. 원불교는 못난 사람들이 다니는 종교라는 말들을 한다. 세상에 나가 난 체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들 중에 각 방면에 두각을 나타내는 이가 많다. 경제계에 이건희(삼성전자 회장)·신용호(교보생명 창업주), 언론계에 홍진기(전 TBC 회장)·홍석현(중앙일보 회장)·김상만(전 동아일보 회장), 문화계에 홍라희(리움미술관장)·안도현(시인)·김형수(평론가)·정도상(작가)·최차란(차, 도예)이 있으며, 법조계에 김병노(초대 대법원장)·김종대(전 헌법재판장), 교육계에 박길진(전 원광대 총장)·고윤석(미주선학대 총장)·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이면우(전 서울대 교수)·민준식(전 전남대 총장)·오희필(전 대전대 총장), 사회사업에 황온순·박청수·김혜심(남아공·스와질란드 의료봉사), 행정계에 조상호(전 체육부 장관)·정세현(전 통일부 장관)·김정수(전 보사부 장관)·조정제(전 해수부 장관)·조기상(전 정무장관)·박재완(전 기획재정부 장관)·김태호(전 경남도지사)·최문순(강원도지사)·김도훈(산업연구원장), 정계에 박정립(독립운동가, 오사카 교무)·변극(독립운동가, 원광대 한의대 초대학장)·정해영(전 6선 의원)·정재문(전 5선 의원)·조세형(전 5선 의원)·장경순(전 5선 의원)·김무성(새누리당 대표)·김종인(더민주당 대표)·김성곤(전 4선 의원), 예술계에 추송웅·임이조(한국무용), 국악인에 김월하(창)·이생강(대금)·조상현(창)·신영희(창), 서예인에 강암 송성용·남정 최정균·여산 권갑석, 미술인 최용신(어진화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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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하여 이제 한판 새롭게 변모할 때가 되었다. 소태산은 각후 첫 법어 중에 ‘시대를 따라 학문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학문이란 새 교법이다. 법이란 물 수() 변에 갈 거(去)이니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사는 게 법이다. 한국 사회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민중의 목마름을 적셔줄 생수는 무엇인가, 세계 대세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종교가 이래도 되는가, 종교와 영성 문제 등등을 반조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시대를 따라 새 교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태산십상 < 연재 < 기사목록 -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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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십상 7. 만학천봉 좌우산천 우뚝 솟아 높아있고 이미지기사 소태산십상 박청천 교무 2017.07.21 15:22

소태산 십상 6. 신묘생 박처화 만국만민 다 구제하고 이미지기사 소태산십상 박청천 교무 2017.06.23 11:59

소태산 십상 5. 우주신적기적기 시방신접기접기 이미지기사 소태산십상 박청천 교무 2017.05.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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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 십상 2 / "엄니, 노루목에 달 따러 가자" 이미지기사 소태산십상 박청천 교무 2017.02.17 11:10

소태산 십상 1 / 전생은 진급을 향하는 발판 이미지기사 소태산십상 박청천 교무 2017.01.20 11:11

[기고] 원전 사고를 막으려면

[기고] 원전 사고를 막으려면



경향신문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대표 입력 2020.09.17. 03:04 댓글 2개



[경향신문]





지난 11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열렸지만 공식 안건에 최근 태풍 관련 원전 가동정지 건이 포함되지 않았다. 원전 6기의 가동이 정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직후 열린 원안위에서 이 사고가 어떻게 보고되고 심의됐는지에 대해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다. 원안위는 조사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심의를 비공개로 했다. 하지만 관련법에 의해 원안위 회의는 공개해야 하고,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비공개 사유가 될 수 없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대표



지진·쓰나미·강풍·해수 범람 등 재해로 인해 국내 원전이 영향을 받은 사례는 2000~2015년 무려 20건이나 된다. 1987년 7월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송전선로 및 계전기 고장 등으로 고리 1~4호기 원자로가 정지됐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 영향으로 고리 1~4호기는 송전선로 고장으로, 월성2호기는 비산물에 의해 각각 원자로가 정지됐다.



원전은 가동 중이거나 정지 중 고온의 핵연료를 계속해서 식히지 않으면 멜트다운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전기 공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태풍으로 국내 원전의 외부 전원이 상실되는 사고는 지난 33년 동안 3번이나 발생했다. 후쿠시마 사고도 지진으로 외부 전원이 상실되고, 비상디젤발전기가 쓰나미로 침수되면서 멜트다운과 수소폭발로 이어졌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등 국내 원전은 비상디젤발전기가 원전 1기당 2대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에서 표준설계인증을 받은 ARP1400 원자로는 비상디젤발전기가 원전 1기당 4대이다. 미국 핵규제위원회는 비상디젤발전기 2대로는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같은 APR1400 원자로인 신고리 5·6호기는 비상디젤발전기가 원전 1기당 2대인데, 수출형은 4대인 것이다. 그만큼 국내 원전은 안전성이 부족하다.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선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지역주민·시민단체·외부전문가가 참여해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해야 한다. 사고 관련 데이터와 정보를 실시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규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안전성 확보 조치를 확실히 해야만 할 것이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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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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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속51분전

낭만닥터 김사부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그러니까 말도 안되는것들

그거 말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왜곡 좀 하지말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진짜로 믿어"

미국 핵규제위원회가 디젤발전기 2대가 문제가 있다고 본게 아니고 애초 설계할때 미국에 고립된지역 즉 사막, 알래스카에 1개호기만 건설하는걸로  가정한거라 디젤이 더 들어간거요. 항상 2기를 건설하는 우리나라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디젤이 있으니까 숫자가 다른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언제 쓰나미가 왔다고 쓰나미에 영향 받았다고 쓴거죠? 잘모르시면 설계한 과학자에게 물어보세요. 그냥 쓰시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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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모2시간전

국내 원전의 안정성 부족에 대해서 늘 관심갖고

지적질해주시는 김영희 변호사님같은  분들이 더 많이 나오셔야합니다.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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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슬픈 진실…"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슬픈 진실…"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슬픈 진실…"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도련님의 시대 ①] 흉포한 근대와 불안한 개인
2011년 후쿠시마 사고 후에 이웃 나라 일본을 보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손꼽히는 강대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죠.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꼼수에 장단을 맞추며 군사 대국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합니다. 거품 경제의 후과로 발생한 장기 불황은 20년 넘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죠. 이런 상황을 앞장서 극복해야 할 일본의 정치는 그 자체로 제거해야 할 적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진짜 힘이었던 풀뿌리 시민 사회마저 급속히 활력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100년 전과 겹칩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때 발 빠르게 서구를 좇으며 일본 자체를 ‘개조’하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유산, 대중의 권리, 개인의 욕망은 철저하게 억압되었죠. 하지만 이런 개조는 정작 엉뚱한 결과로 귀결되었습니다. 러일 전쟁(1904년), 한일 병탄(1910년)을 거치며 일본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죠.
 
다니구치 지로와 세키카와 나쓰오의 <도련님의 시대>는 바로 이 시대를 다룬 독특한 만화입니다. 일본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의 창작 과정을 모티프로 한 이 만화는 '괴물'이 아닌 다른 일본을 꿈꿨던 그 시대 일본 '도련님'들의 고뇌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뇌는 지금 일본의 현실과 맞닿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의 현재를 성찰하도록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도련님'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요? 
 
<프레시안>은 이 <도련님의 시대>를 같이 읽자고 제안하며, 먼저 읽은 몇 분의 독후감을 소개합니다. 문학평론가 박슬기 한림대학교 교수가 첫 번째 주자입니다.  
 
▲ <도련님의 시대>(전5권,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흉포한 근대와 불안한 개인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도련님>을 구상하고 있을 무렵, 춘원 이광수는 일진회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떠났다. 그가 도쿄에 도착했을 때가 1905년 8월경이었으니, 11월의 을사조약 체결을 일본에서 지켜본 셈이다.
 
유학생들은 모여 을사조약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국 '나가 죽자'는 의논보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자는 의견이 승하여서 아무 결론도 없이 흩어졌다."('나의 고백', <이광수 전집> 7권(삼중당 펴냄, 1972년))라고 춘원은 적고 있다. 유학생들의 비분강개가 모자랐던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10대 중후반이었던 유학생들이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까닭이다. 
 
이후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는 과정을 착착 진행했고 1910년 한일 병합으로 '융희' 연호는 '메이지' 연호로 대체된다. 공부를 계속하고자 했던 유학생들은 돌아와 근대적 지식을 전파하고 실력을 키우자는 운동을 펼쳤다. 대한제국은 사라졌으나 일본과 같은 근대화를 이루면 일본과 대등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열띤 계몽의 시대는 3.1 운동의 실패와 더불어 끝난다. 일부는 만주로, 상해로 갔고 일부는 남아 문학과 예술의 나라로 도피했다. 유학생들의 비분강개와 체념의 현장 위로 소세키의 독백이 불길하게 드리운다. 
 
"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시대라는 것에 질 수밖에." (<도련님의 시대>, 1권 224쪽)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도련님의 시대>의 배경은 1905년 러일 전쟁 직후에서 1910년 한일 병합 직후까지다. 일본은 총력전을 펼쳐 전쟁에 승리했으나 얻은 것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막대한 부채와 끝없는 인플레이션이 남았다. 일본을 이끌었던 국가와 개인의 일체감은 무너졌으나, 일본은 동요하는 개인들을 제압하면서 군국주의적 확대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불안한 시대"의 풍경에 조선의 정치적 상황이 끼여 있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이토 조선 통감 사임"이나 "데라우치 육상의 조선 통감 겸임" 같은 기사들은 스쳐 지나가는 단편들에 불과하지만, 이야말로 이 시대의 일본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그것은 러일 전쟁 이후에 노골화된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적 확대가 명료한 현실적 사실로 드러나는 장면이며 일본의 개인들이 휩싸여 있었던 막연한 불안감과 억눌림의 원인이 이 현실에 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련님'은 메이지 30년대 말의 일본 청년들이기도 하지만 조선 청년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이러한 흉포한 얼굴을 한 근대, 칼을 든 근대에 마주친 나약한 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도련님의 시대> 1부는 전체 5부작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도쿄 경시청 이쥬인 가게아키와 메이지 대학 학생 오타 주자부로가 유도 대회 결승에서 맞붙는 일화가 중심이 된다. 메이지 42년(1909년)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장례식으로 시작한 2부는 모리 오가이가 독일 유학에서 돌아 온 메이지 21년(1888년)으로 돌아간다. 결혼을 약속하고 자신을 따라 홀로 일본으로 온 독일 여성 엘리스를 결국 돌려보내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3부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기의 완성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는 히라쓰카 하루코에 감명을 받은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자신의 완성과 예술의 문제를 고뇌한다. 4부에서는 고토쿠 슈스이를 중심으로 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폭탄을 만들어 천황을 암살하려던 계획을 어설프게 세웠을 뿐인데, 모든 불온한 자들을 제거하려던 정부는 이를 이용하여 관련자들의 절반을 사형에 처하는 대역 사건을 일으킨다. 5부에서는 대역 사건 이후 소세키가 의식 불명의 상태에서 주요 인물들을 만나면서 시대와 개인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다룬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이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은 국가의 발전을 개인의 발전으로 믿었던 시대가 끝나고, 전 방위적으로 압박해 오는 군국주의에 절망적인 무기력에 빠져 있었던 청년들의 자기 고민이다. 모리 오가이는 개인의 사랑과 국가/가문의 결정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국가와 가문을 선택했다. 그것이 좀 더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리 린타로'로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리 오가이'로서 <무희>를 쓰며 군의총감이자 메이지 군인으로서의 자신과 개인을 분리시켜 살았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끊임없는 가족의 독촉에 시달리고 생활력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그 압박감 속에서 단카(短歌)를 읊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은 단순한 생활고가 아니라 러일 전쟁 이후의 일본 사회 전체가 당면했던 시대폐색이라는 분위기 그 자체였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자신, 유흥에 돈과 인생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깊은 비애가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시대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대역 사건의 결과를 보고 이렇게 적었다.
 
 
"이와 같은 시대폐색의 현상에 대해 우리 중 가장 급진적인 무리가 어떤 방면으로 그 '자기'를 주장하는지. 한 몸을 던져 이 폐색을 부수려고 했던 테러리스트들…. 내게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도련님의 시대>, 5권 273쪽)
 
국가에 맞설 수 있는 길은 테러밖에 없다는 것, 그것만이 도련님들에게 가능한 유일한 길이었다. 사정은 조선 청년들에게도 같았다. 안중근 역시 자기 한 몸을 던져 이 시대의 폐색을 부수려 했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 그는 테러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던 까닭이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쫓아가고 싶었던 서양/근대는 쫓아가려는 자들의 존재의 토대조차 흔들어 놓았다. 이쥬인 가게아키의 입을 빌어 끊임없이 드러나듯, 일본의 군국주의 확대는 또한 구미 열강에 뒤지지 않는 국력을 일단 확보하는 것, 곧 서양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양은 한편으로 자유로운 사적 개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배워온 곳이기도 했다. 
 
2부의 첫머리와 3부의 마지막에 놓여 있는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장례식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러시아에서 돌아오던 중 기선에서, 인도양 한 가운데서 죽었다. 인도양의 저쪽 편에 근대로서의 서양이 있었고, 이쪽 편에 파시즘으로 치달아가는 일본이, 그에 지쳐가는 일본인들이 있었다. 서양은 추구하면 할수록 자기의 열등감만을 환기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완성하는 일은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를 재편하는 상황 속에서는, 그리고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을 가는 한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전근대적인 세계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1910년대의 계몽의 열기가 지나가고, 만세의 실패로 인해 국권 회복의 희망이 사라졌을 때 조선 청년들의 내면을 지배한 것도 이런 무기력과 우울함이었다. 일본의 신문물을 배워서 실력을 키우는 일을 계속해 봐야 결코 일본과 동등해질 수는 없다. 문제는 실력의 부족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세전>의 주인공 "스물두 셋쯤 된 책상도련님인" 이인화는 깊은 환멸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마주친 조선의 미개한 풍습이나 얼뜬 조선인을 이용하는 일본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파시즘의 일상화 속에서 자신을 비롯한 개인들이 빠져 있는 깊은 무기력함 때문이다. 
 
191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했던 세대, <창조>와 <백조> 세대는 망설임 없이 예술의 세계로 달려갔다. 현실에 대한 환멸과 그에 따른 비애 속에서 꿈은 오직 그 안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다시 현실의 압박에 의해 파괴된다. 소월은 1920년대 말 고향 정주로 돌아가 신문 배급소를 운영했다. 거의 걷히지 않는 신문 대금을 받으러 다니며 그 용지에 마치 낙서처럼 시를 썼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이상적인 것은 늘 어떤 낙차 속에서만, 지금 여기에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만 감각된다. 아름다운 엘리스는 개인의 사랑과 자유가 있는 서양 근대의 상징이지만 그녀가 아름다울수록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열등감만이 강화된다. 조선의 유학생들이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서 내려 경부 철도를 타고 경성으로 돌아오면서 발견한 것은 이 어찌할 수 없는 낙차였다. 이상적인 것을 실현하려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신을 실현하고 그러한 국가를 만들려던 개인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근대로부터 배웠으나 근대 자체가 제국주의였기 때문이다. 
 
5부에서 소세키는 대역 사건 판결에 대한 소극적인 반항의 의미로 문부성의 박사 학위를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난 관의 신세를 지지 않겠네. 대학의 신세를 지지 않겠네. 그냥 나쓰메 긴노스케로 이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우연히 태어난 이 세상에 머무를 심산이야." (<도련님의 시대>, 5권 289쪽)
 
이것은 얼핏 무책임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냥 나쓰메 긴노스케"라는 존재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흉포한 근대에 마주친 개인들이 서 있는 자신의 토대이자,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유지해야만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메이지 말의 근대는 얼굴과 형태를 바꿔 우리에게도 도래해 있다. 우리는 그들의 고뇌 속에 우리의 고뇌를 비추어 본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의 도련님들은 우리에게 그 어떠한 해법도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우리와 그들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며 우리는 이 시대의 개인으로서 자기의 시대와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박슬기 교수는 한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도련님의 시대> 주요 등장인물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나쓰메 소세키 : 일본 문학사에서 최고의 국민 작가로 칭송되는 소설가.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풀베개>, <산시로>, <마음>, <그 후> 등을 남겼다. 도쿄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 후 국비 유학생으로 런던에서 2년간 유학했다. 귀국 후 제일고등학교, 도쿄 대학에서 강의했다. 서른여덟 살에 쓴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호응을 얻으면서 전업 소설가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교직을 떠나 아사히신문사에 소설 기자로 입사해 잇달아 작품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지위를 굳혔다. 영문학자이면서 서구를 싫어했고 문학적 야심보다는 유학 시절 얻은 신경증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을 창작했다. 지병인 위궤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후타바테이 시메이 : 도쿄 외국어 대학 러시아학과를 중퇴했다. 언문일치체를 처음으로 시도한 소설 <뜬구름>을 썼으며 러시아 문학에 경도되어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번역하는 등 근대 일본 문학을 선도했다. 아사히신문사 특파원으로 러시아에 갔다가 폐병이 심해져서 귀국 도중 병사했다. <그 모습> <평범(平凡)>의 소설을 썼고 <짝사랑> <광인일기> 등을 번역했다. 후타바테이의 장례식으로 시작되는 <도련님의 시대> 2권에서 그의 청년 시절, 모리 오가이와 독일 여인 엘리스 바이게르트와의 인연 등이 다뤄진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모리 오가이 : 군의관으로 육군성의 명을 받아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귀국해 육군대학 교관을 거쳐 군의총감, 의무국장을 지냈다. 유학 시절 독일 여성과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무희>를 썼으며 <기러기>, <아베 일족>, <산쇼다유>, 등의 소설을 남겼다. <도련님의 시대> 2권의 주인공으로, 국가와 가문에 대한 의무와 독일 유학 시절 만난 엘리스 바이게르트와의 사랑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이시카와 다쿠보쿠 : 생활 감정을 살린 서정적인 작품을 남겨 일본의 국민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중학교를 중퇴했지만 독서로 다양한 문학을 섭렵했다. 1905년에 첫 시집 <동경(あこがれ)>을 발표했고 도쿄에 정착한 후에는 아사히신문 교정사원 겸 편집자로 생계를 유지했다. 낭비벽이 심해 생활이 늘 곤궁했는데 로마자로 쓴 일기에 당시 생활상과 복잡한 감개가 잘 기록되어 있다. 일본 고유시 형태인 단카의 거장으로 1910년 처녀 단카집 <한 줌의 모래>를 냈다. 소설도 썼지만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대역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면서 급속히 사회주의 사상으로 기울었다. 가난으로 고생하다가 스물여섯에 병으로 요절했는데 사후에 단카집 <슬픈 장난감>(1912년)이 출판되었다. <도련님의 시대> 3권에서 그의 낭비벽과 불안정하고 박약한 자아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고토쿠 슈스이 :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 천황 암살 모의 사건인 '대역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간노 스가코를 포함한 다른 11명의 사회주의자와 함께 처형당했다. 10대부터 자유 민권 사상에 관심을 갖고 나카에 조민의 제자가 되었고 만조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러일전쟁 비전론을 주장하며 퇴사하여 동료들과 주간 <평민신문>을 창간했다. <공산당 선언>을 최초로 일본어로 번역하여 동아시아에 보급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크로포트킨의 사성적 영향과 반년 간의 미국 생활을 통해 무정부주의로 변모했으며 직접 행동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안중근을 존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련님의 시대> 4권에는 안중근의 휘호가 담긴 부채를 유품으로 남기는 모습이 등장한다. 
 
ⓒNatsuo Sekikawa·Jiro Taniguchi 1987/Futabasha Publishers Ltd.
 
간노 스가코 : 타고난 미인은 아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자들을 굴복시키는 팜므파탈로 그려진다. 대역 사건으로 처형당한 12명의 사회주의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계모의 책략으로 강간당하는 등의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신문 기자가 되어 모루신보에서 만난 연하의 사회주의자 아라하타 간손과 결혼했다. 적기 사건에 연루되어 가혹한 심문을 받고 투옥되었으며 풀려난 후에는 고토쿠 슈스이와 <자유사상>을 창간하여 적기 사건을 규탄하고자 했다. 간손이 수감된 동안 부인이 있는 고토쿠 슈스이와 연인 관계가 되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26869?no=126869&fbclid=IwAR0Nl1ly-0QohuCcwuWnnXmujtbLNpFUqnVEmNFVikWyjIlGryTFmaU63Ts#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