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2

발원 - Google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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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1, 發源
명사
1.
흐르는 물이 어디로부터 비롯하여 흐르는 것. 또는, 근원.
2.
사물·사회 현상·사상이 비롯하여 발생하는 것. 또는, 그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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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교적 발원의 의미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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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교적 발원의 의미
특별기고
입력 2006.05.20 

  • “단순히 복 비는 기원은 外道”
  • 무작정 바라는 기도는 非불교
  • 서원 세우고 실천하는 게 正法

불교는 스스로 다짐한 것을 이뤄가는 발원의 종교다. 소원을 비는 기원의 종교가 아니다. 
발원이란 어떤 일을 스스로 해내겠다는 다짐의 불교적 표현이다. 이에 비해 기원은 절대자에게 빌어 소원을 이루려고 한다. 이는 유신교적(有信敎的) 발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불교는 기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의 수많은 경전에는 스스로 세운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굳은 맹세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칠 뿐이다.


불교에서 발원의 철학은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불본행집경〉 27권 향보리수품은 부처님이 수행자시절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를 마련하고 스스로 이렇게 다짐했다고 전한다. “모든 번뇌를 다 제거하고 정각을 얻지 못한다면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 발원의 힘으로 부처님은 무상정등각을 성취했다. 중아함 26권 〈원경(願經)〉에서 부처님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불교수행자는 반드시 서원을 세우고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바른 수행을 해서 정각을 성취하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발원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면 ‘서원의 철학’으로 정립된다. 서원(誓願)이란 어떤 일을 하겠다는 다짐이고 발원(發願)은 그러한 다짐을 지속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절대자의 힘을 빌리려는 유신교적 기원(祈願)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대승불교의 서원사상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은 사홍서원이다. ‘한없는 중생을 다 건지겠노라. 한없는 번뇌를 다 끊겠노라.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노라.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겠노라’는 다짐은 모든 불보살의 서원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를 총원(總願)이라고 한다.

수행자들은 사홍서원의 정신을 보다 구체화해 개개인의 맹세인 별원(別願)을 세운다. 아미타불이 법장이란 이름의 수행자였을 때 이 세상을 극락으로 만들기 위해 48가지의 서원을 세우고(아미타경), 약사여래가 질병 없는 세상을 위해 12가지를 서원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행하며(약사본원경), 보현보살이 불도를 성취하는 그날까지 10가지 행원을 실천해 나갈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화엄경 보현행원품), 승만부인이 정법을 배우고 보호하기 위해 3가지 다짐과 10가지 원을 세운 일(승만경) 등이 그것이다.

대승경전에 나타나는 서원의 사상은 수행자들의 발원문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신라 의상대사는 ‘백화도량발원문’을 지으면서 스스로 관세음보살이 되어 십원육향(十願六向)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역대조사와 수많은 스승들은 이 고귀한 발원을 실천하기 위해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참고 견디며 수행했다. 이를 서원행(誓願行) 또는 원행(願行)이라고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불교의 종교적 위대성이 발견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이상과 서원을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가. 처음 세운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불교 본래의 이상에서 벗어나는 외도신앙의 길로 가고 있다. 불자들이 행하는 종교의식에서 불교적 발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절마다 내걸린 현수막은 절대자에게 매달려 무엇인가를 비는 기독교적인 기도와 기원뿐이다. 기도를 발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부처님 뜻에 맞는 정법이 널리 선양될 것이다.



정 념 /낙산사 주지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 - 불교미술의 후원자들 | 현재 ...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 › main › view › current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 - 불교미술의 후원자들
전시명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 - 불교미술의 후원자들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전시기간 2015-05-22~2015-08-02

특별전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는 불교문화의 중심에 있던 후원자들의 역할과 염원을 살펴봄으로써 종교미술 속에 나타난 후원자들의 신앙, 권력, 신분, 경제적 지위 등의 상호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프롤로그: 발원의 의미>
발원發願이란 불사를 일으켜 공덕을 쌓으며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미술을 통해 발원의 의미를 살펴보고 고대 국가에서 사찰 건립을 비롯한 불사의 가장 큰 후원자가 국가와 왕실이었음을 살펴봅니다. 대표 전시품인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구>, <황룡사 찰주본기(보물 1870호)> 등이 있습니다.
 
<1부. 국왕과 귀족, 경전을 간행하다>
고려시대 왕실, 귀족, 중앙 관료와 같은 최고 권력자들의 후원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던 경전 관련 불사를 소개합니다. 특히 금이나 은으로 경전의 내용을 옮겨 쓰는 사경寫經은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후원하였고 개인적인 발원 내용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전시품으로는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 <불공견삭신변진언경(국보210호)>과 호림박물관 소장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보물 752호)>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2부. 관료부터 천민까지, 부처를 모시다>
불상 안에 여러 물품을 넣는 복장腹藏의식이 등장하면서 후원자의 수가 늘어나고 계층이 확대되는 현상을 조명합니다. 복장이란 불상 안에 발원문, 사리, 경전, 직물, 곡물 등 다양한 물품을 넣는 것으로 새로운 봉안 방식의 등장은 후원 계층이 점차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전시품으로는 1333년 제작한 <금동아미타삼존불>과 <문수사 금동불좌상 복장물(보물 1572호)>, <영조대왕 도포(중요민속문화재 220호)> 등이 있습니다.
 
<3부. 지역 사회의 신도들, 소리와 향을 공양하다>
범종과 금고, 향완, 촛대와 접시 등 사찰에서 필수적이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불교공예품의 후원자들에 관한 내용이다. 이러한 의식구나 공양구는 사찰 인근 지역 사회의 신도 또는 불교 신앙 공동체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향도香徒들로는 고위 관료, 지방 관료, 하급 관료, 무관, 여성, 향촌민 등 다양한 집단이 존재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대혜원명 大惠院銘 종(보물 1781호)>과 고성 옥천사玉泉寺 소장 <임자명 반자(보물 495호)>, <청동은입사 향완(국보 214호)> 등이 있습니다.
 
<4부. 왕실 여성, 발원의 주체가 되다>
억불숭유 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초까지 활발히 이루어진 왕실 여인들의 불사를 소개합니다. 이들은 사찰의 건립과 중창, 불상과 불화의 봉안, 범종 제작 등 모든 영역에서 불사를 주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전시품으로는 <수종사水鍾寺 불감과 불상(보물 1788호)>, 영주 흑석사黑石寺 소장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물(국보 282호)>, 문정왕후 발원 <약사삼존도> 등이 있습니다.
 
<5부 : 승려와 백성, 불교 부흥의 중심에 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사찰 재건이 시작되면서 승려들은 저마다 역할을 나누어 불사를 주관하였고 불사의 비용은 일반 백성과 승려가 분담하여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전란 중에 죽은 수많은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들이 개최되면서 <감로도>와 같은 불화 제작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용연사 영산회상도>와 원광대학교박물관 소장 <감로도(전북유형문화재 186호)>가 대표적인 전시품입니다.
 
<에필로그: 발원, 그 간절함>
불교의식을 통해 선대의 공덕이 후세로 전해지는 모습을 전시품을 통해 살펴봅니다. 법당의 불상과 불화, 예불 시간을 알리는 종, 수륙재의 거대한 괘불 등 과거의 공덕으로 이루어진 불교미술품을 통해, 현재의 의식에 참여하는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아기부처를 씻기는 관불의식에 사용된 우학문화재단 용인대학교 소장 고려시대 <관불반>과 지금도 아기부처를 모시는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되는 울진 불영사 <불연(경북 유형문화재 397호)>을 공개합니다.

                        

발원(發願) - 불교용어 사전 - 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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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udybuddha.tistory.com › entry › 발원發願

발원(發願)by 정암 2011. 1. 15.




발원(發願)

원(願)은 서원(誓願)이라고 한다.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기어코 달성하겠다고 하는 서약적인 결의를 말한다.

발원은 어리석고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불자의 바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자에게는 누구나 원이 있다. 원은 우리의 삶에 목표를 두고 중심을 이루며, 지혜와 용기가 나오는 것이다.

먼저 불자가 갖는 대표적인 근본 원이 4가지 있다. 그것은 “첫째, 가엾은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둘째, 끝없는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셋째,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넷째,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라고 하는 사호서원(四弘誓願)이 그것이다.

불자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언제나 이 원을 여의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는 온갖 어리석음 속에서 한없이 어려운 괴로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맑고 밝은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 서원력으로 인하여 모든 불자는 번뇌에서 벗어나며 악도를 벗어나고 중생을 제도하며 불국 정토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원은 자신의 이익만을 얻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려는 생활 태도다.

원(願)은 곧 희망(希望)이며 이상이다. 사람이란 참된 희망과 영원한 이상을 지님으로써 전진이 있고 향상이 있게 된다.

참된 보리 열반의 불과(佛果)를 성취하려는 불자로서 어찌 넓고 큰 희망과 이상을 지니지 않겠는가. 그 이상과 희망이 크면 클수록 그 활동과 노력도 큰 것이요, 그 노력이 클수록 그 결과도 클 것이니 불자로서 넓고 큰 서원을 세워 굳게 그 원을 닦아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행이라고 하겠다.

우리 불자들은 이 땅에 태어난 다행스러움과 부처님 법문을 만난 경사스러움에 큰 감사와 용기를 일으켜 발원을 하고 그것을 실천할 것을 굳게 맹세하여야 겠다.

원을 세우기는 쉽지만 지속하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십 년, 이십 년은 자기가 세운 원대로 행할 수 있는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세운 원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발원과 소원... 발원은 우주의 뜻

출처 : http://cafe.naver.com/watchingall/43824

발원이 소원보다 더 잘 이뤄지는 원인...
발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발원이란 말 그대로 원을 세우고 일으키는 것이다.
원이란 원하는 것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원과 발원은 차이가 있다.
소원은 개인적인 아상과 에고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소망을 말한다.

그러나 발원은 아상을 넘어서서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이타적 원력이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을 때,
개인적인 소원일 경우에는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발원은 똑같이 ‘부자가 되기를 발원’하는 것이지만
부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부자가 됨으로써
가난한 보다 많은 이들을 구제하고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이타적인 원력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소원은 자신이 복 지은 바를 가져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인과응보의 틀 속에서 내가 지은 복이 있을 때만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타적인 발원은 나 개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우주적인 서원이기 때문에
그 사람 개인의 복력을 넘어서는 무량대복의 공덕이 붙고,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가 그 서원에 힘을 보태주게 된다.

이처럼 발원은 이타적이기 때문에 우주법계의 힘,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을 가져올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며,
이타적인 원력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상에 기초하는 이기적인 기복의 기도를 행할 것이 아니라,
아상을 뛰어넘는 이타적인 발원을 함으로써 이 우주법계에 회향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를 하라고 할 때도
‘내 아들 건강하게 해 주세요’ ‘내 남편 승진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라고 하지 않고,
‘아들 건강해 져서 이 사회에 큰 도움 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남편 승진하여 더 높은 자리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과 지혜를 베풀게 하소서’ 하고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아도,
전자는 그 근본에 ‘나’라는 아상의 기복이 깔려 있지만,
후자에는 그 근본에 아상을 뛰어넘는 이타적인 사랑과 자비가 깔려 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잘 먹고 잘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타인들을 돕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발원이란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나’를 위한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 전환하게 해 준다.

-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