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2.21
글 오오하시 켄지·야규 마코토
[동양일보 동양포럼 기자]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와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서평을 동양포럼에 보내왔다. <편집자>
오호하시 켄지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鈴鹿醫療科學大學 강사)
약간 옛날의 이야기가 되는데 세계적으로 큰 화두를 던진 새뮤얼 P. 헌팅턴 <문명의 충돌>(1996년)은 세계의 주요 문명들을 여덟 개로—서구· 이슬람· 라틴아메리카· 힌두· 러시아정교회· 아프리카· 중화· 일본─ 분류했다. 세계 8대 문명 중 하나로 ‘일본문명’이 손꼽힌 것으로, 위대한 일본문명이 드디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줄 알고 기뻐한 덜렁이 보수파 논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본문명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일본문화는 “고도로 배타적”이며, 여기에는 타국과 공유될 만한 보편적인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없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그것을 전달해주어서 공통된 문화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없는 특수적이고 배타적인 ‘고립문명’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대문명으로서의 ‘대륙문명’과 비교하면서 일본문명을 ‘군도문명(群島文明)’으로 형용하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이 책은 일본의 ‘고립문명’을 상대화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에서 일본문명의 본질과 가치 해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한국철학· 사상의 전문가이자 비교문명학회 회원으로도 폭넓게 활약하고 있다. 일본 비교문명학의 선구자인 야마모토 신(山本新, 1913-80)은 1960-70년대에 발표한 논문집 <주변문명론(周邊文明論)>(刀水書房, 1985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근대 서양적 ‘대문명’ 대 비서양적 ‘주변문명’이라는 것이 비교문명학의 기본적인 틀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와 같이 ‘대문명’을 우월적인 것으로 보고 ‘주변문명’을 일방적・ 일원적으로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된다. ‘근대 서양-비서양’=‘중심-주변’이라는 서양 중심주의의 개념 틀로 문명을 고찰하는 ‘수직적인 축’ 이외에 서양 이외의 주변문명들끼리 비교하는 ‘수평적인 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대륙의 문명’과 ‘군도(群島)의 문명’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한다. 한편으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의 서양문명에 흠뻑 빠진 일본과 한국이라는 ‘주변문명’ 즉 일본-한국이라는 ‘수평적인 축’에서 일본문명을 비춰보고 고찰한다. 이와 같은 고찰에 있어서 현대 일본에서는 저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20세기 최대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문명을 집합심성적인 것으로도 생각했다. 그것은 일련의 사회· 경제를 큰 변화 없이 계속 살아가며 때때로 파란만장한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고 했다.(<문명의 문법Ⅰ 세계사 강의(文明の文法Ⅰ 世界史講義)> 1987년). 표층의 사회적 변동과는 별도로 그 중심을 관통하는 부동· 불변한 것으로 문명에는 당연히 정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을 살펴보자. 저자는 일본의 문명· 문화· 사상의 본질이 ‘애니미즘’적인 생명관, 정신성에 있다고 본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일본의 독특한 ‘미적 생명’=‘제3의 생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눠진다.
제1의 생명: 생물학적· 육체적 생명=개별적· 객관적· 상대적· 물질적 생명.
제2의 생명: 영적 생명=보편적· 절대적· 종교(정신)적· 비물질적· 집단적 생명
제3의 생명: 미적 생명=간주관적· 우발적· <사이>적 생명, ‘지금· 여기’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
제1의 생명은 그렇다 쳐도, 제2의 생명인 ‘영적 생명’이라는 말에 약간 위화감을 느끼지만,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외국의 연구자에게 흔히 보이는 일이다. 조치대학(上智大學)에서 '죽음의 철학'을 강의하고 일본 생사학의 제1인자로 2020년 9월에 서거한 아르폰스 데켄(Alfons Deeken)도 일본에는 ‘삶의 미적 측면’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세계가 ‘유용가치와 도구가치’를 ‘생명가치와 유기체적 가치’의 상위에 두는 ‘공리주의적 문명의 에토스’로 뒤덮여버린 것을 데켄은 몹시 개탄했다. 한편 아시아가 가지는 고유한 에토스, 특히 일본에서 뚜렷한 ‘미의 에토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고도로 발달한 일본의 미적 에토스는 서양문화에서는 대부분 잠자고 있는 인간의 풍요로운 잠재적인 능력을 구미 사람들에게 깨우쳐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인간성의 가치를 찾아서(人間性の価値を求めて)> 아우치 마사히로(阿內正弘) 옮김, 春秋社, 1995년).
데켄이 말한 것은 감각적· 예술적인 ‘미’=미적 감수성인데, 저자는 한국어로 우주적· 보편적인 미를 나타내는 영적이고 생명적인 ‘아름답다’와의 대비로,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중기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서 사용된 ‘오카시(をかし)’와 ‘아와레(あはれ)’, 혹은 ‘유현(幽玄)’ ‘와비(わび)’ ‘사비(さび)’ ‘이키(いき)’ 등을 미적 생명적인 <제3의 생명>을 언어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을 셋으로 나누는 것은 저자의 특유한 세계관에 의한 것이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이 ‘제3의 생명’인데, 이것은 “사람들과의 ‘사이’나 사람과 사물과의 ‘사이’에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생명’”을 가리킨다.
미국과 중국 등 대문명 ‘대륙문명’에 대표되는 군사적 힘 같은 ‘제1의 생명’이나, 보편적 이념의 힘 같은 ‘제2의 생명’은 타자를 압도하고 지배하에 두려는 경향을 면치 못한다. 이에 대해 자기와 타자(사람· 사물)와의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을 핵으로 하는 일본적인 ‘군도문명’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월(包越; 포섭하고 뛰어넘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편협한 내셔널리스트’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세계를 ‘대륙문명’형으로부터 일본적인 ‘군도문명’형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문명을 일본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논자는 학자· 연구자의 테두리에 박히지 않는, 시대 구제의 뜻을 가진 사상가로서의 저자의 뜨거운 정열을 본다.
한편 ‘제3의 생명’을 ‘영원의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으로 단정하고 강조하는 그러한 ‘지금· 여기’ 개념은 도겐(道元) 스님이 말하는 ‘이금(而今)’, ‘전후제단(前後際斷)’과 같은 선종(禪宗)의 핵심으로 절대현재에 사는 동양적인 깨달음의 도달점이지만, 반면에 모종의 찰나적,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함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제3의 생명’의 참뜻이 마지막 장에서 언급한 공공철학의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제창하는 ‘사이의 철학’과─김 주간의 정확한 표현에 따르면 ‘사이로부터의 철학’─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철학은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를 잇고 맺고 뛰어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머니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 지배 아래, 격차사회에 따른 분단과 이질적인 타인에 대한 불관용이 만연하는 현대 세계에서, 군도적(群島的)인 ‘제3의 생명적’, ‘사이적’ 문명을 일본이 앞장서서 세계에 제창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면서, ‘공창(共創)하는 동아시아로’라고 호소한 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신형코로나바이로스로 가로막히고 먹구름이 드리우는 나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사는 세계 사람들, 거대한 재앙에 신음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한 가닥의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 같다.
번역: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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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규 마코토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대학중점연구소 연구교수)
오구라는 이 책의 벽두에서 비교문화의 방법론을 심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보통 ‘대륙’과 대비되는 것은 ‘해양’이다. 하지만 대륙·해양의 분류는 안보 또는 국제정치상에서 주권국가의 세력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오구라가 말하는 ‘군도(群島, archipelago)’는 바로 바다 위의 섬들에게 인간이 살고 문화나 문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태를 나타낸다. 즉 대륙·군도라는 구분은 문명론적 시각에 의한 것이라고 오구라는 주장한다. 이와 같이 오구라는 나름대로의 문명론을 전개함에 앞서서 그 방법론을 꼼꼼히 살피고, 기존의 비교문명론이 범한 오류들에─문화 내셔널리즘, 문화 본질주의, <국가>나 <민족>이라는 틀에의 의존, ‘인간’이라는 근본에 대한 자각의 결여 등─ 대해 경계한다. 이와 같이 철저한 방법론적 반성과 ‘제2의 생명’ 및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은 오구라 문명론을 독보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유성종(劉成鍾),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두 분 선생님이 먼전 논평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먼저 그것을 살펴보고 나서 필자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유성종은 이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압축해서 요점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군도문명은 대륙문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고 포월(包越)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또 오구라가 논어도 새로운─‘제3의 생명’이라는─각도에서 다시 읽은 것처럼, 미래도 도덕도 어디 있는 것을 찾거나 누구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 함께 만들어야 하며, 귀납적으로 ‘사이’에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공(公)’과 ‘사(私)’를 매개하는 ‘공(共)’, 곧 모두 함께 만들자는 세계관이 ‘공창(共創)’이다,라는 메시지를 도출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 유성종은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현하(懸河)의 웅변을 듣고 강력한 어조와 정곡을 찌른 정론에 감복하여 자리를 뜰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공감으로 자신을 깊이 뉘우치고 뉘우쳤다. 그리고 오구라 선생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가 갈구하는 동아시아의 공통가치, 곧 공복(共福)을 향한 지남(指南)이고 빛(光明)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오구라의 논고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오오하시 켄지에 의하면 이 책의 제목에 있는 ‘군도의 문명/ 대륙의 문명’이라는 틀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하면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 발의 글러벌리즘에 흠뻑 빠진 ‘주변문명’으로서의 일본과 한국의 비교・ 고찰이라는 ‘수평적인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일본에서 이와 같은 고찰에서 저자와 견줄 만한 사람은 없다고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오구라가 일본문명에 고유한 특질을 ‘미(美)’적인 것으로 봄과 동시에, ‘제3의 생명’이라는 생명론적인 축을 도입한 데에도 독자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오오하시는 오구라가 강조한 ‘제3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과 다른 미적인 ‘한순간의 미의 <생명>’, 혹은 ‘<지금=여기>에 출현하는 생명’인데, 이것은 중세 일본의 대표적인 선승인 도겐(道元, 1200-1253)이 말한 ‘이금(而今)’ ‘선후제단(先後際斷)’과 같은 선(禪)의 핵심이자 절대현제에 사는 동양적 깨달음의 도달점과도 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공허한 현실주의로 타락하거나 모종의 찰나적(刹那的), 몰윤리적(沒倫理的)인 것을 부를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오하시는 그것은 기우(杞憂), 즉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군도의 문명이─구체적으로는 일본문명─ ‘제3의 생명’에 기초한다고 주장한 오구라의 참뜻은 마지막 장에서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결코 <개체>에 수렴되는 자기 몰두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제3의 생명에 기초하면서 타자들이 서로 매개하고 자기와 타자 ‘사이’를 잇고 맺고 넘어서고 다른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과 더불어 밝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제1의 생명(물질적・ 육체적・ 생물학적인 생명)이나 제2의 생명(영적・ 보편적・ 영생적인 생명)과 다른, 덧없고 순간적이고 사람과 사람 또는 사물 사이에 떠오르는 제3의 생명이라는 시각에서 ‘문화’와 ‘문명’을 다시 읽으려고 한 오구라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다만 이것은 중화문명・ 서양문명과 같이 제2의 생명에 입각한 이른바 ‘보편문명’의 시각에서 비하된 제3의 생명을 복권시키고 다시 빛을 바라게 했을 뿐, 만약에 제3의 생명(과 거기에 바탕을 둔 군도문명)이 고급하고 제1, 제2의 생명(그리고 대륙의 문명)은 저급하다고 착각한다면 그것은 저자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다.
오구라는 불교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일본적 영성’론에 의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년)의 도읍지인 헤이안쿄(平安京)에 살던 귀족들은 섬세한 ‘제3의 생명’의 기미에는 민감하게 정신을 집중시켰으나, 그 ‘생명’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음은 있어도, 그 시대의 일본인들은 아직 ‘대지(大地)’를 모르고 ‘영성’을 몰랐다. 그런데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년)에 오면 헤아안쿄에서 멀리 떨어진 동국(東國)에 살던 무사, 농부, 승려들이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영성’과─오구라에 의하면 ‘제2의 생명’─ 만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 안에서도 제2와 제3(그리고 당연히 제1)의 생명은 서로 상관연동하면서 삶의 영위와 역사와 문화와 문명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제1, 2, 3의 생명’을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으나 그것이 지리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제2와 제3의 생명의 비율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군도의 문명에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제3의 생명’이 상대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오구라의 생명론적 문명론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성과 문명・ 문화의 개별성의 양쪽을 아우르는 것이다. 만약 이 점을 간과한다면 오구라의 주장을 ‘제3의 생명’ ‘애니미즘’지상주의를 내세우면서 군도문명=일본문명이 주도권을 잡고 지금 미국이나 중국이라는 대륙=해양문명이 좌지우지하는 세계를 바꿔보자는 신종의 문화적 패권주의의 주장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논자가 보기에 ‘제2의 생명’과 ‘제3의 생명’은 원래 그 원천이 다르다. 저자가 밝혔듯이 덧없이 살다 죽는 한계(제1의 생명)를 가진 인간이 영원하고 보편적인 ‘하나(1)’라는 관념을 극도로 추구한 결과 도달하게 된 것이 ‘제2의 생명’이다. 이에 대해 ‘제3의 생명’은 개별성, 순간성, 감각성을 지닌 것이고, 또한 어린 아이가 철들기 전에 많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를 잘 살펴보면 그들은 이미 나날을 그렇게 살고 있다. 어른에는 생명이 없어 보이는 물건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주고 다루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 아이가 아끼는 인형과 말하고 역을 떠나는 열차에게 손을 흔드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바로 그때 그(녀)와 인형이나 열차 사이에는 ‘제3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도 ‘다오야메부리(たおやめぶり)’ 즉 “덧없고 아녀자(兒女子)같은 것”이며 여성적이고 유약하고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것이 인정(人情)의 본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라고 말했다. 노리나가에 의하면 무사적인 “올곧고 씩씩한” 마음가짐은 오히려 ‘가라고코로(漢意)’ 즉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꾸며진 정신이라는 것이다. (유약함이 곧 일본의 원래 정신이라는 노리나가의 주장은 무사사회 일본에서는 아주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은 오구라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민주주의 등의 정치, 새로운 복지와 교육, 리얼리즘도 설계주의도 아닌 외교 방식 등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저자가 ‘아니미즘’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에 의해 변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구라 생명론과 문명론이 장차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