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0

한의사들은 '기 치료'를 어떻게 생각할까?

과학중심의학연구원



한의사들은 '기 치료'를 어떻게 생각할까?
강석하|2017.07.30



어렸을 적 즐겨보던 중국 무협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중독된 주인공에게 내공이 강한 고수가 뒤에 앉아서 등에 손바닥을 대고 기를 불어넣어 치료하는 장면이다. 어떤 때에는 기차놀이를 하듯이 주인공 뒤로 조연들이 줄줄이 앉아서 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당시에는 기치료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기로 장풍을 쏜다는 사람이 나와서 세워둔 사람들을 쓰러트리기도 했다. 장풍을 맞는 사람들에게 눈을 가리고 뒤쪽에 매트를 깔아두어서 넘어져도 충격을 받지 않도록 했다. 장풍을 쏘는 사람이 열심히 시늉을 하면 수십 초에서 수 분 정도 지나서 사람들이 매트 위로 쓰러졌다. 심지어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건너편의 피험자들까지 쓰러트렸다.




당시에는 TV에서 실험을 해서 검증을 해주니 순진하게 믿었지만, 지금은 장풍을 쏘는 사람 백 명을 가져다 놓고 나에게 장풍을 쏘아대도 넘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 방송에서 사람들이 넘어졌던 이유는 눈을 가린채 오래 서있으면 어질어질하기도 하고, 장풍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뒤에는 매트가 있어서 넘어져도 아프지 않으니 넘어졌던 것이다.




중학교 때 나를 예뻐해 주시던 한 수학선생님은 축농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다니는 기치료원에 데리고 가셨다. 한의원은 아니고 상가 건물이었는데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항상 여러명 씩 있었다. 기치료사는 자신이 기를 세게 불어넣으면 기절할 수도 있다고 우쭐대며 몇 번 치료를 받으면 축농증이 싹 나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한 번에 3만원(20여년 전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꽤 큰 돈이다) 씩 주고서 여러 번 갔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 선생님은 사고로 다리를 저는 40세 정도의 여선생님이셨는데 안타깝게도 다리를 절지 않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먼 세상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몇 개의 공중파 방송사, 신문, 책 밖에 없었다. 방송, 기사, 책에서 어느 먼 곳의 헛소문을 전달하면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가려낼 방법이 없었던 때다. 내 주변에는 장풍을 쏘고 날아다니는 사람이 없지만 중국 어딘가에는, 현재가 아니라면 옛날이라도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현재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나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서 알 수 있고, 신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 불려나오고, 중국의 격투기 선수들이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상식적인 자연법칙을 넘어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반면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신비로운 기적적 치료법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흔한 것 같다. 세계 각지에 빽빽하게 있는 의사와 과학자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는 제약회사들도 찾지 못한 비법을 옛날 책, 어느 노인, 무면허 돌팔이, 한의사 같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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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무협영화처럼 기를 불어넣어 치료한다는 한의원들도 있다. 한 한의원의 블로그를 보면 전화통화를 하면서 기를 넣어줄 수 있다며 ‘원격진료’도 가능하다고 소개한다.











경락을 통해 기가 순환한다는 가정은 한의학의 침, 뜸 치료의 핵심 이론이다. 하지만 기의 존재에 대한 어떤 증거도 없다. 원자를 쪼갠 아주 작은 입자들의 힘까지도 측정하고, 수억 광년 떨어진 별도 관찰하는 과학기술을 가지고도 기를 발견해내지 못했다면 아직 못 찾은 것이 아니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옛날 사람들의 환상에 불과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기치료가 한방 원리에 의한 치료이기 때문에 기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효과가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일 것이 뻔하다.




한의사들은 어떤 입장일지 궁금하다.




이런 식의 기치료를 믿지 않는다는 한의사들도 많을 텐데, 그렇다면 자신들이 하는 침, 뜸 치료의 원리가 되는 기는 믿으면서 기치료 한의사의 주장은 믿지 않는 이유를 댈 수 있을까?




인체에 침을 찔렀을 때 발생하는 생리적인 반응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한의사들은 이것을 효과의 근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에른스트 교수는 임상시험에서 침이 플라시보 이상의 효과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침을 찔렀을 때 일어나는 생리적 반응은 효과를 논하는 데에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의사들이 침술로 인한 생리적 반응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들을 홍보하지만, 경락을 순환하는 기의 존재라는 한의학의 근본은 틀렸으며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인정하는 한의사는 보지 못했다.




한의사들이 한방 원리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순간, 과학적 근거 없이 단지 한방 원리에 따라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한방 치료의 정당성이 무너진다.




기치료를 한다는 한의사를 보는 다른 한의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석하 kang@i-sbm.org한의학 기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