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4

정명지설(正名之說) - sillok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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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지설(正名之說)

명(名)을 바로잡는다는 말.


목차 [숨기기
1개설
2내용 및 특징
3참고문헌
4관계망
개설

정명론(正名論)은 어떤 사실이나 개인의 덕이 명분과 일치하는가에 관한 논의이다. 
정명은 『논어(論語)』에서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할 것인지를 묻자, 공자가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을 것이다[必也 正名乎]"라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공자는 명분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않고, 형벌이 알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정명을 중하게 여긴 공자는 술잔인 고(觚)가 고답지 않으면 고가 아니듯이,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순자 역시 제자백가의 설이 명실을 혼란시킨다고 하여 왕명을 통해 강제력을 발휘하여 명을 바루는 정명(正名)을 실현시키자고 하였다. 

공자의 정명 사상은 후일 주자학에도 계승되어 군신간에 의를 중시하는 군신론과 왕조의 교체에 명분을 중시하는 정통론으로 발전되었다.

내용 및 특징

정명은 국가나 국왕의 존엄과도 관계된 문제였다. 이에 조선은 건국 초에 명의 뜻에 따라 새로운 왕조를 창설하여 정명에 합치되도록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고쳤다. 그러나 명에서 국왕을 정식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임시로 나랏일을 맡은 자라는 뜻으로 권지국사(權知國事)로 명명하자 그 부당함을 명에 항의하였다(『태조실록』 3년 2월 19일).

또한 광해군 때에는 폐비설을 나라 안팎에 퍼뜨리고, 선비들을 유린하여 왕의 악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자들에게 『춘추(春秋)』의 정명으로 주벌하는 법을 시행하도록 건의하였다(『광해군일기(중초본)』 8년 4월 9일). 그러나 이때에는 이항복 등이 『춘추(春秋)』의 의리에 자식이 어미를 원수로 대한다는 뜻이 없다고 하여 폐비를 반대하기도 하였다(『광해군일기(중초본)』 9년 11월 24일).

영조 때에는 사헌부에서 조덕린의 상소 내용 중에 "명실을 바룬다[正名實]"고 한 조항이 무신란의 효시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조덕린을 처벌해야 한다고 청하였고(『영조실록』 12년 8월 23일), 이에 영조는 조덕린을 국문할 것을 명하였다(『영조실록』 12년 9월 3일). 이처럼 명분이 실제와 부합해야 한다는 정명설은 건국의 이념이나 국왕의 존엄과도 관계된 것이라서 조선은 매우 중시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 박영사, 1990.
溝口雄三, 丸山松幸, 池田知久, 『中國思想文化辭典』, 東京大學出版會,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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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론[正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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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1. 16:43본문 기타 기능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 일관된 정명론(正名論)’의 내용이 무엇이며오늘날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2014.06.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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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맹자의 사상에 일관된 정명론의 내용

 

[정명론(正名論)]

 

정명론이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논리적·도덕적 견해입니다.

논어에는 정명에 관한 공자의 말씀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언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할 경우 선생님은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야 물론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이상적인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그것이 모난 술잔이겠는가? 모난 술잔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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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로 잡는 일이 정명입니다위 에서 공자가 자로에게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라고 한 말이 이를 가리킵니다.

 

정명은 각각의 사물에 제대로 된 이름[곧 대상 사물의 의미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는 바른 이름]을 붙이는 일이며 그 사물은 이름에 걸맞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론은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입니다.

 

[1]사물의 실질에 합당한 이름을 붙이는 일.

위의 공자의 말씀 가운데 에서 보듯이 모난 술잔이라는 술잔의 이름은 그 술잔이 모가 났다는 것에 대한 이름이며 모가 나지 않았는데도 모난 술잔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이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물에 이름을 지을 때 이름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첫째 그 이름만을 듣고도 그 사물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하고

다음으로는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2]사물의 실질과 실질에서 연유하는 당위성.

바른 이름을 붙인 사물을 대하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것은 도덕의 기초입니다나는 바른 도덕은 우리의 행동에 관계되는 사물들[관계사물각각의 본질에 맞게 영위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공자의 정명론의 핵심도 이것입니다사물에 바른 이름을 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바른 이름으로 불리는 사물들은 또한 각각의 이름에 걸맞는 실질[곧 본질]에 맞게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나는 이를 행동전화라고 부릅니다.

 

위의 에서 공자는 제나라 경공이 묻는 정치의 요체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군군신신 부부자자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이 임금답다는 것은 임금이 그의 본질에 합당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의 이름에 걸맞는 직분을 수행한다는 뜻이며 신하가 신하답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사이 사람들은 거의 정명적이지 못합니다사물의 이름을 그 사물의 의미에 알맞게 짓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름을 지어서 그 이름을 듣는 이들의 이목이나 끌려 하고 그들을 속이려고 까지 합니다심지어는 저서의 이름이나 저서 각 장의 이름까지도 그저 호기심을 끌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특히 심한 것은 신문 기사의 제목입니다예전에는 신문 기사의 제목은 그 기사의 핵심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달았습니다그런데 지금은 소위 낚시하는 제목을 답니다거기에다가 기사와는 별무관한 과장된 감탄사를 남발합니다. [!] [이럴 수가!] [알고 보니 따위들이 그렇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별로 보아야 할 내용도 없는 자기의 글을 강요하려는 속임수[기만]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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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경우]

 

맹자는 공자의 이러한 정명론을 역성혁명[易姓革命]에 접합시켜 주장합니다역성혁명이란 임금 된 자가 그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위를 하여 민심과 천명을 어기면 갈아치울 수 있다는 사상이지요.

 

맹자는 제나라 위왕 때 제나라 서울 직하에 조성된 직하사의 지도자였습니다그래서 정치에 관해 위왕 및 그의 아들인 선왕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번은 선왕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商 ()]나라 탕왕이 주군인 하[]나라의 걸왕을 추방하고 주{}나라 무왕이 주군인 상나라의 주왕을 토벌했는데 신하로서 그 임금을 죽인 일을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맹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인의(仁義)'를 해친 필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걸왕이나 주왕은 비록 임금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실질은 임금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폭군이었으므로 결코 임금이 아니라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었던 겁니다.

곧 임금답지 않는 임금은 이미 임금이 아니라 한 명의 필부에 불과하므로 임금이 아니라 필부에 지나지 않는 그들은 임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역성혁명의 본래적인 의미인 겁니다.

 

공자가 제나라 경공에게 한 말곧 군군신신부부자자는 어디까지나 정치에 관한 의견으로 제시된 겁니다그러나 정치적인 명분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의 도덕적 원리는 이 정명론적인 원칙에 담겨 있습니다.

 

 

[정명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공맹[공자와 맹자] 사상이 단순히 사물에 이름만을 제대로 붙인 뒤에 그에 따르는 명분을 고집하는그래서 실리를 버리고 명분에 집착하는 고리타분한 보수주의 사상이라는 견해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정명론은 올바른 도덕론의 한 모델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특히 한국의 정치가들을 봅시다그들은 정치가라는 제대로 된 이름은 달고 있지만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치 활동보다는 자기의 알량한 당파나 자기의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정치가라는 명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이는 공맹이 주장하는 정명론적인 이론에 어긋나는 행동인 것입니다.

 

단지 정치가뿐일까요종교가들은 어떻습니까목사님은스님은또 일반 직분의 사람들은 어떤가요세월 호 선장은철도원들은교육자들은?

 

나로서는 정명론이 오늘 날의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정명론의 도덕적 이상을 거의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선명하게 느낍니다.

[이는 우리 한국의 현대인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한국인들이 유달리 정명론적인 이상에서 멀다고 생각됩니다.]

 

[정명론이 비현실적인 관념으로 흐르는 경우]

정명론은 유물론적이기 보다는 관념적인 사상입니다도덕의 원천으로서의 관념론적인 정명론은 올바른 이론입니다.

 

그러나 주관적 관념론이 지나쳐 순수한 사물에 어떤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정명론의 병폐일 수 있습니다.

 

실질을 벗어나 이름뿐인 명분론으로 흐르는 경향

명분을 실질로 오인하는 경우

 

실질을 벗어난 이름뿐인 명분론은 아마도 조선조의 당쟁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소위 제1차 예송논쟁으로 불리는 당쟁은 송시열 중심의 서인과 윤선도 등의 남인 간에 벌어졌습니다효종이 서거하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慈懿大妃)가 몇 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이 발생했던 겁니다송시열 등은 효종이 차남이라는 이유로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윤후 등은 여기에 반대하면서 형이 죽은 다음에는 동생이 장남이 되기 때문에 자의대비가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도대체 상복[상복의 정명상복의 본질]이 무엇일까요상복이란 상을 당한 사람들이 입는 옷입니다그렇지만 상을 당한 사람들이 그 옷을 반드시 입어야할 필연성도 없으며 몇 년간 입어야 한다는 근거도 전혀 없습니다그런데도 상복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한다아니다를 국가대사로 삼아 이를 명분으로 당쟁을 이어가다가 종국에는 살육전으로 발전했던 겁니다.

 

명분을 실질로 오인해 어리석은 행태를 보이는 것도 오늘날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생략]

 

심지어 공자의 경우에도 예컨대 도천[盜泉 ㅡ 도둑의 샘]의 물을 마시지 않으며 승모[勝母 ㅡ 어머니를 이기다마을에서 잠자지 않았다고 합니다이러한 것은 이름에 혹해 의미가 전혀 없는 사물을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사물로 여긴 의식과 의지의 오인[誤認]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벚꽃을 일본의 꽃이라서 배격해야 한다는 등의 사례는 정명론이라기보다는 상징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명론의 경우와 아주 비슷합니다.

 

일본은 벚꽃을 국화로 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벚꽃은 일본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그러나 벚나무를 심는 것이 일본을 심는다또는 친일이다등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벚꽃을 일본의 상징으로특히 일본의 긍정적인 상징으로 자각하여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 친일의 의미가 부여되는 것입니다그러한 자각이 없는 경우에는 벚꽃에 일본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 때 학교의 운동회에서 홍백전을 청백전으로 바꾼 것도 이러한 사례의 하나가 될 겁니다이 밖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으나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