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nam Oh
새로운 종교, 새로운 기독교
지난 늦 여름 이곳 캐나다 밴쿠버 한인연합교회 야유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 때 푸른 자연에 둘러싸여 부른 찬송에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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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 놀 밤 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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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특히 기독교가, 이처럼 고운 백합화, 맑은 새소리, 아침 해와 저녁 놀, 밤하늘의 빛난 별, 푸른 봉우리, 잔잔한 시냇물, 이런 자연과 우주의 신비스러움에 주목하고 이런 것에 대한 경외심(awe)을 더욱 강조하는 종교로 거듭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독교의 중심 교리는 십자가라고 합니다. 교회 지붕마다 십자가를 올려놓고 교회 강도상에도 십자가를 걸어놓고 교역자도 교인들도 십자가 목거리를 하고 다닙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느님이 우리를 벌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그 보혈로 우리가 씻어져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이른바 대속 기독론(Substitutionary Christology) 혹은 대속신학(Atonement Theology)입니다.
이제 서양의 많은 신학자들이 이런 대속신학을 거부합니다. 사랑과 용서의 하느님이 꼭 그렇게 죄갚음을 받아야 되느냐, 우리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다고 주구장창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며 무릎을 꿇고 빌며 죄책과 두려움에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어떻게 “풍성한 삶”(요10:10)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정신과 부합된다는 말인가 하는 등등의 이유에서입니다.
존 쉘비 스퐁 신부는 대속 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지셨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인해 죽으셨다. 이런 가르침으로 우리 중 누구가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은 하느님을 괴물로 만들고, 예수님을 마소키즘의 희생자로 만들고, 그리고 당신과 나를 양동이 속에 떨면서 죄책으로 가득한 연체동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본래도,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기독교의 의미가 될 수 없다. 기독교에 미래가 있으려면 대속신학을 방기해야만 한다. 기독교가 새로 등장하는 세대에 어필할 수 있기 전에 대속신학을 척결하는 것이 필연적인 첫걸음이다.”<Unbielivable>, p. 165-166.
“이런 신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를 포기하고 교회로부터 영원히 걸어 나가버리는 것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 대안을 택하고 있다.”(Ibid., 164.)
이제 이런 잔인하고 불합리한 교리를 강조하기보다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이 우주에 가득찬 신비스러움에 놀라며 이를 찬양하는데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종교로 탈바꿈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먼도 <종교 없는 삶>(판미동, 2018)이라는 책에서 미래의 종교의 대안으로 모든 것을 경외(awe)의 눈으로 보는 aweism을 제안합니다.
며칠 전(4/30) 김선주 목사님이 페북에 올린 글이 의미심장하여 첫 단을 인용해 봅니다. (김선주 목사님이 위의 글에 동의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식물의 소릴 듣는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몸이 힘들 때 식물 앞에 앉아 초록 물결에 내 마음을 기댄다. 그 생명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숨결이 나를 어루만지도록 맡겨둔다. 멍때리는 게 아니라 내적인 대화를 한다. 그러면 초록의 생명이 내 마음을 적시고 몸을 씻는다. 참 편안해진다.”
위의 찬송가나 김선주 목사님의 글에서 “주님”이라든가 “하나님”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은 하나님 대신 동양적 언어인 道라는 말로 대신해도 좋고, 틸리히의 말처럼 ‘하나님’을 상징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우주의 근원, 우주를 다스리는 원리의 의인화된 상징으로 보는 것입니다.
위의 글에 반감을 가지실 분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그런 분들은 이런 생각이 있다는 정도로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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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comments
Chang Ho Kim
대속신학의 폐기, 전적으로 공감 환영합니다. '뤼트론( λύτρον)'은 속전이요, 몸값의 의미로 닫힌 의식을 풀어주기 위해 희생의 제물됨입니다. 구약의 '파다(פָדָה)' 역시 풀어줌이고 구출해내다, 몸값을 주다의 의미입니다. 적절한 예가될런지 모르지만 이는 마치 노무현의 죽음이 민주주의 의식을 일깨우는 희생양이요 값인 것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여깁니다.
예수는 속전의 상징이고 여전히 우리 의식이 왕이 되고 큰 자가 되고자하는 의식의 첫새끼를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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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부
아마도....
2천여년전 그당시 존재했던 유대교의 피흘림의 희생제물을 멈추고 대행하기 위함 차원의 로마십자가 형틀
벤치마킹 차원의 희생양/예수....…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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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용
평소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는 1인입니다만, 교수님의 글에서 보는 단어들과 내용에는 반감이 없습니다.
생각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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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윤성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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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락
맞는 말씀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전쟁광으로 살인자로 만들어 놨습니다.
성경이 불 타야 지구가 살고
그렇지 않으면 지구가 불에 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거짓 왜곡된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진리 안에 0.0001%라도 거짓이 있으면 가짜입니다.
광대한 우주와 영원 가운데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다면 우주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은 오차가 없이 완전합니다.
우주를 오가는 과학문명시대에 맹목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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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
깊이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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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Ho Kim
ㅎㅎ 공감하시면 아니되옵니다~^^ 몸을 사리셔야 하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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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
Chang Ho Kim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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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손원영 손 교수님, 그렇지 않아도 이단이라 야단하는데 이런 이단적일 수 있는 글에 공감하신다니 감사하긴 하지만 걱정😟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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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
Kang-nam Oh 진리는 계속 추구해야함으로 ㅎㅎ 늘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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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oon Oh
저는 대속론이 양적 성장주의ㆍ상업주의ㅡ돈 벌이,라는 말이 더 정확함ㅡ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신앙심과 무관하게, 범죄수준으로 활용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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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Sehoon Oh 비극적이지요. 아직도 활용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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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효선
공감 가는 글 공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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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죄론은 반대를 넘어 혐오합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악용하여 죄의식에 빠지게 하고 사람을 조정하며 억압, 착취하는 죄담론은 이제 사라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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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임원 맞습니다 맞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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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tae Lee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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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건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대속론입니다. 대속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메타포로는 희생제물로 드려졌다는 제의모형, 대신 속전을 갚아주고 해방됐다는 노예시장 모형, 죄값을 대신 해 무죄선고 했다는 법정모형이 있습니다. 어떤 모형이든 두가지 전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첫째 인간은 죄인이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며 그 죽음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을 구원의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예수는 죄가 없는 인간이어야 되고 구원자로서 하나님으로 부터 보냄 받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 여야만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죄 때문이 아니라 100% 우리 죄 때문에 죽어야합니다. 그것을 보증하기위해서는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들을 충족하기 위해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 위하여 원죄론이 만들어지고, 예수가 죄없는 인간으로 하나님이 보낸자가 되기위해 동정녀를 통한 성령잉태 탄생 설화가 필요했고 보통 인간으로 산 청년기가 사라졌습니다. 부활의 완전 증명은 재림으로 되는 종말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속교리를 부정한다는 것은 이상의 모든 것들이 부정되거나 재해석 되어야하고 대속교리 중심으로 기록되었다고 보이는 신약성경 전체가 부정되거나 재해석 되어야합니다. 또한 구약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한 구약학은 폐기 되어야합니다. 따라서 대속교리 중심으로 구성된 기독교 교리가 부정되고 신학이 부정되면 결국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부정됩니다.
이천년간의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속교리로 예수를 팔아온 종교권력자들 교권을 가진 교황과 개신교 목회자들 지적권력을 가진 신학자들이 가만 있지 않고 화형대를 세워 매달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엄청난 저항이 있을 겁니다.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부정된 자리에 대속교리로 만들어진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예수의 믿음위에 서서 케노시스의 십자가를 넘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어 내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이룰 것인가? 어떻게 탐진치의 제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얼나로 솟나 이 땅에 그리고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인가? 성경에서 저자를 추방하고 택스트에서 독자만이 가지는 의미를 주제로 사는 삶을 나만의 성경으로 써가는 이 시대 깨어 있는 자들의 사명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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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 Jeong
사오년전, 이곳 Canadian Church 에서 '부활절 축제 Musical' 에 한국 인 교인의 초청으로 참석했었습니다. (대형의 교회에서 거대한 project 로 ...)
십자가를 지고가는 예수의 장면이 너무 비참하고, 잔혹한 인간들의 모습, 죄의식의 발로등등...
참혹한 장면을 강조하느라 오래동안 계속되는 이 장면은 그야말로, 'It made me sick'.…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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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석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hard de Chardin)의 우주적 신학을 새롭게 조명해야할 때입니다. 하느님은 진화하는 우주의 마음, 우주 그 자체를 으뜸의 거룩한 공동체로 만드시는, 제일의 종교적 실재라고 떼이야르는 말했습니다. 오토 랭크도 종교가 우주를 잃어버렸을 때 그 사회는 병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신학의 현주소를 우리는 심각하게 반문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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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문영석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우주적 신학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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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Jin Kwon
전투도 멈추게 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다들 얘기합니다. 하지만 우리편은 모두 안녕하게 하시고 상대편만 전멸시킬 수 있도록 해주십사 하는 모순된 기도를 하나님은 어떻게 받아주실까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멀리는 십자군 전쟁부터 영불간의 백년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1,2차 세계대전등등... 이 모순을 어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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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YoungJin Kwon 그렇게 인간인 것처럼 여기는 신관을 버리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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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Yul Kim
교수님 종교의 깊고 다양한 의미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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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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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un Kim
굉장히 놀라운 견해입니다. 학자들이 기독교로부터 걸어나와서 종교를 대상화 시켜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급진전으로 느껴집니다. 사고의 폭을 이렇게 넓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진보인지 아니면 왜곡 되어있는 것으로부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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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JiHyun Kim 학자들 견해는 복음서 자체가 대속신앙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지요. 유대인의 제사제도를 오해해서 만든 교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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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un Kim
Kang-nam Oh 그래요?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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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1000% 공감. 합니다. 가야할 길이죠.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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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Chung
Unknowable Essenes ...a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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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덕
일을 기재한 내용에는 혹 지나치게 칭하여 그 실제보다 지나친 것이 있으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그 뜻을 알 뿐이다 만일 그 내용에 집착한다면 때로는 그 본뜻에 해로움이 있을 것이다 <정자, 맹자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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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사실. 종교의역활은. 이제. ...
중세 천년을. 기다렸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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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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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Yup Yi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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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김
반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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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구
자연속의 나를보고...
하늘을 보며 나를 볼수 있는 삶이 행복인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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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g Sun Jung
저 또한 진화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화 위에서 신학적 재해석 작업을 하면서, 떼이야르와 존 호트의 책들을 읽으면서, 과정신학을 접하면서 점차 십자가 대속 신학의 한계를 발견해가고 있는 중인데 교수님의 글을 접했네요. 혹 이와 관련해 읽을만한 책이 있는지요. 성서신학적인 접근을 한 책이면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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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Byung Sun Jung John Shelby Spong 신부의 마태복음 해설서 Biblical Literalism 이란 책에 보면 대속 신앙은 이방인들이 교회의 주류가 되면서 복음서를 문자적으로 읽은 결과라 합니다. 2천년 가까이 헛다리를 긁었다는 거지요. 이 책은 변영권 목사가 번역 곧 나온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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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g Sun Jung
Kang-nam Oh 네~~답변 감사드립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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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2천년가까이 헛다리를 긁었다는 거지요."
아! '오강남 보유국'
에 사는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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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좋은 번역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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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박성준 아이고 과하신 말씀 황공무지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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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락
Kang-nam Oh 남의 다리 긁었습니다.
하늘은 2,000년 간 침묵했 습니다.
다시 은혜가 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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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Suh
'대속신학을 척결하는 것이 필연적인 첫걸음이다'는 것이
왜 '잔인하고 불합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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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Daniel Suh 본문 윗부분에 약간의 설명이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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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Suh
Fully agreed. '자연과 우주의 신비스러움에 주목하고 이런 것에 대한 경외심(awe)을 더욱 강조하는 종교로 거듭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Also fully agreed. '(대속신학)은 하느님을 괴물로 만들고, 예수님을 마소키즘의 희생자로 만들고, 그리고 당신과 나를 양동이 속에 떨면서 죄책으로 가득한 연체동물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대속신학을 척결하는 것이 필연적인 첫걸음'의 하나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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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락
Daniel Suh 대속신학은 구약을 포장만 바꾼 것인데 인류가 멍청하게 2,000년 간 속은 것입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영을 알게 되면 얼마나 인간적인 상상력으로 변질시컸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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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종희
Daniel Suh J.p.Integrity of Creation(정의.평화.창조보전).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가면 됩니다. J.P.IC와 하나님나라 실현을 교회의 미션으로 하는 신학으로 선교신학으로 하는 복음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방향전환이 기독교의 생존전략이되어야합니다. 더 간단히 말해서
Evangelism 일변도 신학에서 Missio Dei Theoligy로 전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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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kew Choi
시골 교회에서 목사님도 오르간도 없던 일제 시대에도 교회 야외 에배가면 항상 부르시던 "창 아름다월 주님의 세계는.." 제 아버님 최상상 장노님을 생각케 하십니다. 저의 부친은 시롤 교회에서 찬송가를 교인들 앞에서 항상 선창하셨습니다. 참 아름다워라는 산과 개울이 있는 곳에 가서 부르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에 우리가 사는 지를 알려 줍니다. 감사 합니다. 최승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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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Seungkew Choi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끼셨던 훌륭한 아버님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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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min Lee
제가 늘 의문이 생기던 부분입니다. 지금은 우주에 가득한 신비로서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서야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 나눠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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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종희
오 목사님 샬롬 오래 전에 미국가는 길에 비행기안에서 목사님의 예수는 없다를 일독 하고 신선한 감동을 받았던 그때부터 오목사님을 존경해 온 사람입니다 목사님의 오늘 훼이스북 글을 읽고 공감해서 한 말 씀 올립니다
속죄 구원 천당으로 축소한 종교개혁이후 500년동안 반쪽 복음을 극복하고 복음을 이 땅에 하나님나라 구현이교회의 미션으로 코페르니쿠스적 파라다임 전환을 함으로 불필요한 죄의식을부터 교인을 해방해야한다. 그동안 로마서에 복음을 속죄기독론 일변도 해석에석을 지향하고 로마서의 복음을 하나님 나라 시각에서 재해석해야한다. 그래서 교회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처해야 할것같습니다. 샬롬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들이 최근 출간된 안용성 목사 저 로마서와 하나님 나라를 일독 권한다.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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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저는 목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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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목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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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Kyung 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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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매우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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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Noh
죄, 원죄, 대속과 같은 개념없이 개인의 사고와 영혼에 다가올 수 있는 종교가 참답다고 믿습니다. 이로써 교회참석을 중단한 것이 5년을 넘겼습니다. 물론 아직 이 판단은 점검과정에 있고요. 자연과 자연적 과정을 수용하고 닥쳐오는 고통이나 불행과 감격이나 설렘도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사노라면 생명 혹은 도 혹은 진리와 만날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못만나면 노력하는 과정 그대로 가치가 있을테지요. 그리고 이 노력에 타인과의 연결이 필수라고 인식되면 어떤 형식의 종교를 찾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형태가 어떨런지는 모르지요. 분명한 것은 대속신앙이나 처벌적 묵시신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른 지적과 이해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