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5

알라딘: [전자책] 지금, 한국의 종교 가톨릭.개신교.불교,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다 박병기, 김진호, 조성택, 성해영, 김근수, 정경일 (지은이)

알라딘: [전자책] 지금, 한국의 종교


[eBook] 지금, 한국의 종교 
가톨릭.개신교.불교,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다
박병기, 김진호, 조성택, 성해영, 김근수, 정경일 (지은이)   메디치미디어   2017-06-05
정가 12,600원
책소개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가 불교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기도 한 김진호 목사가 개신교를,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이자 가톨릭프레스 편집장이 가톨릭의 대표로 나섰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각각 내부자의 시선으로 비판하며, 각 종교의 문제점과 그 이유를 진단했다. 그러나 이들은 원효의 화쟁 사상처럼 싸우되 평화롭게 싸우며, 종교 간 경계를 넘나들면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발제자 3인의 성역 없는 비판과 종교를 넘나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눈 논의와 대담, 그리고 청중들의 진지한 질문과 반론도 정리하여 함께 수록했다. 각각의 종교가 ‘무엇이 걱정인지’, ‘왜 걱정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총 아홉 차례에 걸쳐 발제와 토론, 질의응답으로 구성했다. 이른바 한국 3대 종교의 화쟁적 대화의 결과물이다.


목차
들어가며

추천의 글 1 · 추천의 글 2

제1부 무엇이 걱정인가

01 오만과 편견 :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가? │ 오리엔탈리즘과 불교의 신비화 │ ‘깨달음’이라고 하는 오만과 편견 │ 불교 본래의 ‘전통’은 무엇인가? │ 부처님은 도인이 아니라 행동가였다 │ 현재를 부처로 살라 │ 대담

02 개신교의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는 필연적인가?

그리스도교 배타주의는 어디에서 왔는가 │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의 역사, 분단과 증오 │ 오늘의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 다시 전면전을 향한 망상 │ 대담

03 가톨릭의 권위주의

가톨릭교회가 보이는 권위주의의 두 모습 │ 권위주의를 가져온 성경과 트리엔트 공의회 │ 가톨릭은 권위주의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가야 │ 대담

제2부 경계 너머: 왜 걱정인가

04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있는가

그리스도교와 가난 │ 가난한 사람과 그리스도교의 관계 │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 │ 지금 그리스도교는 가난한가 │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가난할 것인가 │ 대담

05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불교

부처님의 꿈과 당부 │ 왜 이웃의 고통에 외면하는가? │ 감성의 복권: 머리의 종교에서 가슴의 종교로 │ 시민보살 │ 대담

06 성형사회의 그리스도교

성형 권하는 기형적인 ‘성형사회’ │ 성형사회의 병증: 강박증과 공포증 │ 성형사회와 교회 │ ‘성형사회 너머’의 그리스도교 │ 대담

제3부 어떻게 해야 하는가

07 신자유주의적 현상들로서의 ‘영성들’과 ‘그것 너머의 영성’

개신교 배타성의 배후, 성형사회 │ 영성 현상이 무엇인가 │ 영성의 의미와 맥락 │ 사회적 영성, 타자됨의 영성 │ 대담

08 자유와 해방을 향하여

권위주의와 가난, 그리고 해방자 예수 │ 신앙과 정의의 관계, 그리고 자유와 해방 │ 고통받는 예수, 가난한 사람들 │ 자유와 해방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종교를 위한 제언

09 배타적 주장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정의(正義)들’의 화쟁

옳음과 옳음의 대결, 안티고네와 화쟁 │ 해결이 아닌 대결로, 한국 사회의 문제 │ 원효의 화쟁론과 화쟁의 정치학 │‘옳음’과 ‘옳음에 대한 견해’는 다르다: 사실과 진실의 문제 │ 정의‘들’의 화쟁 │ 대담

마치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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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
책속에서
P.23
과연 깨달음은 일종의 체험이며, 이 체험이 불교의 요체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깨달음이 단지 종교적 체험으로만 머문다면 불교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라는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문제, 때로 불교 전통에서 말하는 생사의 문제가 사소한 문제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개인은 개체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교가 그 관심을 개인의 생사 문제에만 국한한다면, 스스로 제도적 종교로서의 존립 근거를 없애는 일이며 연기와 무아를 핵심으로 하는 불교의 세계관과도 맞지 않다. 사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을 어떤 특수한 심적 체험으로 환원해버린 것은 근대 서구적 관점의 영향 탓이다. (23p_‘깨달음’이라고 하는 오만과 편견)

P.59
한기총이 불러일으킨 주된 효과는 무수한 미시동원체들을 생성하고, 재활성화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미시적인 영역에서 이념적 적그리스도를 찾아내고, 그들을 향해 아낌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미시동원체들은 지난 1945~1960년에 공격적 개신교도들이 벌인 전면전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망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다시 내건 단체의 태동이다(단, 이들이 주로 공격을 퍼붓는 장이 사이버공간이라는 점에서, 과거 1940~1950년대의 공격적 기독교 신자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 극우적 미시동원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종북 마케팅의 자원이 되었다. 최근 이러한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신앙은 이념 프레임을 넘어서 무슬림을 적으로 삼는 인종주의적 프레임(제노포비아)과 성소수자를 적으로 하는 이성애주의적 프레임(호모포비아)으로 지형을 확장하고 있다. (59p_오늘의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 다시 전면전을 향한 망상)

P.92
개신교가 ‘타인이 악마다’라고 주장한다면, 가톨릭은 ‘나는 천사’라고 말한다. 자신이 천사라는 말이 타인은 악마라는 뜻을 논리적으로 포함하진 않지만, 정서적으로 타인을 나보다 아랫사람으로 얕잡아보기 쉽다. 가톨릭은 하느님이 주신 구원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덜 관용적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면서 권력을 독점하려 애쓰는 경향이 있다. 진실로 진리를 아는 사람은 권력을 멀리 할텐데 말이다. (92p_ 가톨릭교회가 보이는 권위주의의 두 모습)

P.153
신자유주의는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를 더 증가시킵니다. 또한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종교는 부자에 더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종교와 종교인들이 경영자 마인드에 빠지기 쉽습니다. 종교가 거대업체를 소유하고 경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종교 재단이 소유한 대학이나 병원이 그 좋은 예입니다. 종교는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워야 하는데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기본 원리를 채택해서 종교를 운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톨릭 주교들은 대부분 경영자 마인드에 투철합니다. 교구를 마치 사기업처럼 운영하여 수익을 내는 사업으로 보는 경우가 있고, 본당 신부들도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은 프랜차이즈 지점처럼 본당을 운영합니다. 지금 가톨릭은 무신론과 싸울 때가 아니고 신자유주의와 싸워야 합니다.(153p_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있는가_대담 중에서)

P.177
지금 한국 불교에는 감동이 없다. 종교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체에 비유하자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다. 로봇의 정교한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뒤뚱거리는 발걸음은 바라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생명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불교의 수행 문화를 살펴보면 불교가 지나치게 교리화 혹은 일종의 원리화되어 있어 일상의 가르침을 주지 못하고 있다. (177p_감성의 복권: 머리의 종교에서 가슴의 종교로)

P.220
개신교계에는 재건축의 신화가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빚을 내서라도 교회당을 크게 지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재건축의 신화는 교회의 성장뿐 아니라 교인 개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대형교회는 거대한 인맥 공장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그 인맥 공장의 일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도들도 기회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220p_성형사회의 그리스도교_대담 중에서)

P.241
그리스도교는 그 타자가 ‘저 높은’ 공간의 존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공간의 존재다. 신이 지극히 낮은 그곳으로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의 도래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높은 타자’라는 속성은 그리스도로 인해 사라지고, 그 신은 이미 ‘지극히 낮은 타
자’가 되었다. 요컨대 그리스도교 영성은 지극히 낮은 타자와 나/우리의 만남, 그로 인한 두 존재의 자기 초월적 유착을 가리키는 감성적 언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영성 현상에서 타자성의 몰락과는 다른 가치의 영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사회적 영성’이다. (241p_사회적 영성, 타자됨의 영성)

P.293
가난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 문제라는 겁니다. 또 가난한 사람은 종교가 다루는 여러 주제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종교는 가난한 사람을 편들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빌리자면,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폭력과 테러의 문제는 풀릴 수 없다고 합니다. 구조적 불평등이 무엇으로 인해 생겼는지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신도들에게 자꾸 ‘내 탓이오’라고 가르치는 것이 너무 못마땅합니다. 우리 탓이 아니고 너희 탓이야, 이런 말도 가르쳐줘야 해요. 그러면 이념이나 갈등 문제가 또 제기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정말 제대로 세상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확히 구분이 안 된다는 말로 포기할 것이 아니라, 기준이 흐릿하고 경계가 왔다갔다 변한다 하더라도 구조적 불평등이 누구 때문에 생기고 지속되는지 종교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293p_자유와 해방을 향하여_질의응답 중에서)

P.306
화쟁의 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견해가 일종의 조건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은 고통이다)와 같은 종교적 가르침도 예외는 아니다. 조건문이기 때문에 일정한 관점을 전제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그 견해가 설파되는 맥락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건이 없는 그리고 맥락을 떠난 절대적 견해는 없다. 특정한 의미와 맥락에서만 참일 수 있다. 그러나 진영논리는 견해의 조건성과 맥락을 용인하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는 무조건 옳고 상대의 견해는 무조건 틀렸다. 그러나 무조건의 견해는 없다. 화쟁의 개시개비는 모든 견해가 조건적임을 용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서로 충돌하는 배타적 견해를 양자택일의 갈등 국면으로 이해하지 않고 둘 다 맞는 말로 받아들일 때, 다시 말해서 모순을 용인할 때 상황을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다. (306p_원효의 화쟁론과 화쟁의 정치학)


저자 소개

지은이: 박병기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윤리학과 도덕교육 1>,<배려연구>,<지금, 한국의 종교> … 총 17종 (모두보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민윤리교육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 졸업(교육학 박사)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三學院) 수료(5년제) 서울도봉여자중학교 교사,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 〈주요 연구업적〉 『윤리학과 도덕교육 1·2』(1996, 2000, 인간사랑) 『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2003, 인간시랑) 『직업과 윤리』(2006, 방송대 출판부) 『아동인격교육론』(1999, 인간사랑, 역서) 외 다수

지은이: 김진호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지금, 한국의 종교>,<담임목사가 꿈꿔야 할 예배>,<그 집에서 만난 복음> … 총 53종 (모두보기)
제3시대그리소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자 민중신학자로 한국 교회와 사회에 대한 신학적·문화적 비평의 글을 쓰고 있다. 서강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했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민중신학자 안병무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연구원, 계간 《당대비평》 편집주간을 거쳐, 안병무 선생이 설립한 ‘한백교회’의 담임 목사를 지냈다. 인권연대가 수여하는 “올해의 종교인권상”(2011)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함께 읽는 신약성서》, 《실천적 그리스도교를 위하여》, 《예수 르네상스: 역사의 예수 연구의 새로운 지평》, 《예수 역사학: 예수로 예수를 넘기 위하여》, 《반신학의 미소》, 《리부팅 바울》이 있고, 공저로 《함께 읽는 구약성서》를 집필했다.

지은이: 조성택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지금, 한국의 종교>,<어떻게 살 것인가> … 총 13종 (모두보기)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했으며, U.C버클리에서 인도 초기 대승불교의 성립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 비교종교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위원회 상임위원 및 위원장을 지냈다.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이자 고려대 철학과 교수,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불교와 불교학: 불교의 역사적 이해』, 공저로 『인생교과서 부처』, 『석전과 한암,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말 하다』가 있다.

지은이: 성해영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동학의 재해석과 신문명의 모색>,<수운(水雲) 최제우의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다시 이어지다: 궁극의 욕망을 찾아서> … 총 17종 (모두보기)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열일곱 살에 뜻하지 않게 찾아온 신비적 합일 체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뒤늦게 종교학을 시작했다. 2003년에 종교학 석사학위를, 2008년에 미국 라이스대학교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 다. 지은 책으로 《A Happy Pull of Athene: An Experiential Reading of the Plotinian Henosis in the Enneads》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공저)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탄트라의 종교 사상 비교〉 〈수운水雲 종교체험의 비교종교학적 고찰〉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이 있다. 종교 체험의 비교 연구를 통해 영성과 종교성을 탐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다.

지은이: 김근수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예수 평전>,<평화의 예수>,<가난한 예수> … 총 16종 (모두보기)
해방신학연구소 소장. 평신도 신학자이며 가톨릭 인터넷신문 《가톨릭프레스》 초대 편집장을 맡았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신약성서를 전공했다.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대학교(UCA)에서 해방신학의 대가 혼 소브리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아시아인 제자가 되었다. 지은 책으로 〈마르코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마태오복음〉 해설서 《행동하는 예수》, 〈요한복음〉 해설서 《평화의 예수》, 〈루가복음〉 해설서 《가난한 예수》, 개혁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한국에 관해 쓴 《교황과 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스승 혼 소브리노의 대표작 《해방자 예수》 등이 있다. 2014년 8월 교황 방한 마지막 날, 주한 교황청 대사관에서 교황을 직접 알현하고, 저서 《교황과 나》를 헌정했다.

지은이: 정경일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일본의 종교문화와 비판불교>,<아픔 넘어>,<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 총 9종 (모두보기)
유니온신학대학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을 비교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민중신학회, 연구공동체 ‘평화와 신학’, ‘대구와 카레’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 Terrorism, Religion, and Global Peace, 『사회적 영성』, 『고통의 시대, 자비를 생각한다』, 『한국적 작은 교회론』, 『종교 안에서 종교를 넘다』,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신성한 목소리가 부른다』,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공역)와 『신성한 목소리가 부른다』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불교·개신교·가톨릭이 종교와 종교, 종교와 사회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 종교가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한국 3대 종교 간 최초의 화쟁적 대화
“싸우되, 평화롭게 싸우자”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꼽았다. 21세기, 한국의 3대 종교인 가톨릭·개신교·불교가 1년 가까이 포럼으로 만났다.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경계 너머, 지금 여기’의 주제로 말이다.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가 불교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기도 한 김진호 목사가 개신교를,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이자 가톨릭프레스 편집장이 가톨릭의 대표로 나섰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각각 내부자의 시선으로 비판하며, 각 종교의 문제점과 그 이유를 진단했다. 그러나 이들은 원효의 화쟁 사상처럼 싸우되 평화롭게 싸우며, 종교 간 경계를 넘나들면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이 책에서는 발제자 3인의 성역 없는 비판과 종교를 넘나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눈 논의와 대담, 그리고 청중들의 진지한 질문과 반론도 정리하여 함께 수록했다. 각각의 종교가 ‘무엇이 걱정인지’, ‘왜 걱정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총 아홉 차례에 걸쳐 발제와 토론, 질의응답으로 구성했다. 이른바 한국 3대 종교의 화쟁적 대화의 결과물이다.

‘너는 악마다’ 혐오를 양산하는 개신교
‘내가 천사다’ 권위주의에 의존하는 가톨릭
사회를 등진 채 깨달음만 추구하는 불교

개신교의 ‘불신지옥’의 외침은 일상화된 풍경이며 이따금 각종 반(反)집회, 극우 세력과의 연합, 혐오 발언 등의 주체로 한국 사회에 등장하고 있다. 사랑의 종교인 개신교는 왜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까? 독일 신학에서 한때 “과연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마찬가지의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세월호 이후 신학을 할 수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후 가톨릭은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가? 이는 한국의 근대화와 맞물려 수입된 개신교, 가톨릭 그리스도교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종교의 자리를 지키는 불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불교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조용한 암자에서 머물거나 고담준론을 베푸는 ‘큰스님’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가. 마치 ‘도인’을 연상케 하는 불교의 이미지가 덧입혀진 원인을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과, 이를 역수입한 한국 불교의 전통을 꼽는다.

종교개혁 500주년, 종교 간 대화 100주년
한국의 종교는 어디로 가야 하나

종교 간 대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회 참여적인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3·1 운동이다. 2019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3·1 운동은 천도교가 주도하고,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참여했다. 이는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 사회 문제를 직시하고, 민중의 고통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되었음을 상징한다. 불교·개신교·가톨릭이 서로 만난 《지금, 한국의 종교》는 사회 참여적인 종교 대화의 전통을 계승 및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17년, 루터와 칼뱅을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이한다. 악습과 부패에 물들어가던 구종교를 개혁하여 새로운 종교로 거듭났듯이, 한국의 종교도 개혁이 필요하다. 이 책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같은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 도서 소개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와 개신교, 가톨릭의 대화”

지구 한편에서는 종교전쟁까지 불사하는 IS가 활개를 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신도 수 감소가 증명하듯 세속화와 더불어 탈종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 사회도 근대화와 일본의 제국주의, 한국 전쟁과 분단을 거쳐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고 있다. 종교는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현상과 맞물려, 때로는 사회 현상을 주도하며 우리 앞에 현신한다. 그렇기에 개인적 신앙으로써의 종교만을 강조하는 것은 부족하며 제도적 종교를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종교는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의 실현과 화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회와 사찰은 대형화되고 있으며, 상품화된 영성을 중심으로 신앙은 상업화되고 있다. 종교적 권위를 빙자한 권력의 사유화는 종교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다. 이러한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또 걱정하는 한국의 3대 종교, 이른바 불교, 개신교, 가톨릭이 한자리에 모여 종교의 걱정거리를 토로하고 또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옳음‘들’의 화쟁
종교계와 한국 사회에 죽비를 내리치다

싸우되, 평화롭게 싸우는 ‘화쟁’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예화에서 잘 드러난다. 코끼리의 전모를 볼 수 없는 장님들은 각자 만지고 있는 부분이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원효는 이를 두고 모두 옳고, 또 모두 그르다고 말한다. 어떤 주장도 코끼리가 아닌 것을 언급하지 않으며, 누구도 코끼리의 전모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옳음들’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각각 종교에서 바라보는 ‘옳음들’이 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오만과 편견을 깨고, 도인불교에서 벗어나 ‘시민보살’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교회와 한 몸이라는, 신체 기관의 위계성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연결성에 중점을 두고 한 곳이 아프면 다른 곳도 아프게 된다는 관점에서 바울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가톨릭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들은 각자의 옳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며 옳음‘들’의 화쟁을 도모한다. 아울러 한국 사회에서 종교라는 커다란 코끼리를 더듬어 나가며, 앞으로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 나간다.
이 책의 토대가 되는 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한 종교학자 오강남은 “탈종교화 시대에 불교, 개신교, 가톨릭에 소속된 중견 학자들이 각기 종교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해 서로 경계를 넘어 의견을 교환하며 종교 활성화를 모색했다”라고 평하며 추천의 글을 썼다. 이 책은 각 종교의 지성인들이 종교계, 나아가 한국 사회에 내리치는 죽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2016. 11. 15일자 기사 보러가기


경향신문 2016. 11. 11일자 기사 보러가기


매일경제 2016. 11. 11일자 기사 보러가기


서울신문 2016. 11. 11일자 기사 보러가기


중앙일보 2016. 11. 12일자 기사 보러가기


연합뉴스 2016. 11. 10일자 기사 보러가기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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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사철  2020-01-30

행위가 배제되거나 행위를 결한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다. 지혜와 자비가 함께 동반되지 않는 깨달음은 일종의 신비 체험일 뿐 부처님이 보여 주신 본래적인 불교적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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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heret   2017-02-15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여름 성경학교도 다녀봤고 절밥도 먹어봤다. 어렸을 때 교회와 절에는 나쁜 인상이 없었다. 교회하면 활기차고 경쾌한 찬송가가 떠올랐고 절하면 맑은 물소리와 고즈넉이 울리는 목탁소리가 떠올랐다. 그런데 언제부터 교회를 생각하면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불쾌한 외침을, 절하면 소란스럽고 요란한 연등행사 마이크 소리를 떠올리게 되었을까?



요즘 종교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가 사회적 정의의 실현과 화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걱정하는 그리스도인과 불교인이 만나서 대화했다.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 종교, 가톨릭, 개신교, 불교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에 관하여 9차례에 걸쳐 열린 종교 포럼의 내용을 정리한 대담집이다.



불교는 ‘깨달음’을 출가 스님의 특수한 심적 체험으로 환원하여 불자들을 ‘관중’으로 만드는 깨달음의 권위주의를 지적한다. 깨달음을 신비화하는 도인불교를 지향해온 결과, 지혜만 추구할 뿐 실천하지 않는 종교가 되었다. 반대조차 하지 않는 방관주의, 또는 말로써 행동으로써 옮기지 않고 침묵으로 대신하는 냉소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도인불교에서 도인의 원조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실 ‘명행족(明行足)’, 지혜(明와) 실천(行을) 두루 갖춘 실천가였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 역사와 사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개신교는 적그리스도의 색출, 즉 타자의 악마화를 통해 ‘증오의 종교’로 자리 잡은 배타성이 가장 큰 문제다. 그 배타성의 배후는 무엇인가. ‘현실의 몸’을 부정하고 ‘이상적 몸’을 추구하는 의지와 행위다. 이상적인 몸의 추구는 더 강한 권력에의 욕구와 다름 아닌 것이 되었다. 그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대형교회다.



개신교의 해결 방법으로 ‘사회적 영성’을 들었다. 영성은 타자인 신과의 만남이며 두 존재의 유착이다. 두 존재가 하나로 붙어 서로 형질이 변화하는 상호적 자기초월의 체험이다. 사회적 영성은 타자됨의 영성이다. 나와 우리가 바뀌고 배제된 타자의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와 타자가 함께 체험하는 구원이고 해방인 것이다.



가톨릭교는 가톨릭교회가 최고라는 교회 권위주의와 가톨릭교회의 핵심은 성직자라는 성직자 권위주의를 지적했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는 터키 속담처럼 권력과 권위주의가 있는 곳에 부패도 있다. 자신을 최고로 내세우는 가짜 권위주의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봉사하는 진짜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



가톨릭에서 추구하는 신앙과 정의의 관계에서 자유와 해방은 핵심 주제다. 부패를 버리고, 희생자를 기억하며, 희생자들의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또 종교가 서로 진리를 강요하지 말고 서로 배울 것을 제안한다. 자유와 해방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없다. 어느 그릇에 담겨 있든지 진리의 물을 마시면 되며 그러려면 종교 간 협조가 필요하다.



포럼의 횟수와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다양한 내용을 다루지는 않지만, 그만큼 가장 관심이 갈만한 주제에 집중되어 무척 흥미롭다. 특히 불교가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한 원효의 ‘화쟁’이 인상적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일화로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는 개시개비(皆是皆非)’를 설명한다. 나의 옳음이 저들의 틀림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저들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옮음과 저들의 옮음이 다를 뿐이다. ‘온전한 코끼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정함으로써 갈등이라고 하는 모순적 상황을 더 큰 그림을 위한 전환의 에너지로 제시한다.



그러나 화쟁이 정치 갈등에서도 도움이 되는지, 사회적 강자와 약자 중에 누구에게 유리한 논리인가 하는 반문과 과연 화쟁이 논리적 허상이 아닌 실질적인 방법론인지 곧바로 의문이 제기된다. 이렇듯 다양한 의견을 동시에 접하여 독자 스스로 새로운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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