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2

불교언론-46.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 법보신문

불교언론-46.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 법보신문



46.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현진 스님 승인 2019.12.11 10:38 호수 1516 댓글 0기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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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ā)는 남방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이를 북방불교에선 지(止, 사마타)와 관(觀, 위빠사나)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지관(止觀)수행은 북방불교에서도 중요한 수행법 가운데 하나이다.



지(止)란 수행함에 있어서 밖으로는 일체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안으로는 일체의 생각에 흔들리지 않은 채 마음을 특정의 대상에 쏟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관(觀)이란 ‘지’의 수행을 통해 얻은 고요한 마음의 상태에서 바른 지혜를 끌어내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가는 것을 말한다. 지관수행법은 흔히 흙탕물을 가라앉혀 맑힘[止]으로써 물속을 들여다볼[觀] 수 있다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지’는 초선부터 제4선까지 색계의 4가지 선정인 사선(四禪)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욕계를 벗어나 색계에 접어들면 욕망은 사라졌지만 일상적인 사유작용은 여전히 지속되며 욕망에서 벗어났다는 희열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 것을 초선(初禪)이라 한다. 그 다음 일상적인 사유작용도 가라앉고 집중된 마음의 상태인 삼매에 머물게 되는데, 그로 인한 희열감과 행복감은 느끼는 것이 제2선(第二禪)이다. 그리고 제3선(第三禪)에 가닿으면 모든 희열감이 사라지고 단지 평정된 마음에 머묾으로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출 수 있게 되며, 제4선(第四禪)에선 제3선에서 갖추어진 모든 것들이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선의 상태에 대해선 경전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수행하는 이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자신이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 점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관’은 있는 그대로를 알고서 바라보는 것인 여실지견(如實知見)을 통해 성취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사념처(四念處)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사념처란 수행자가 자신의 존재상황을 철저히 대상화시켜놓은 상태에서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으로 분류될 수 있는 존재일반이 일어나[生] 머무르다[住] 사라지는[滅] 것을 지긋이 주시함을 말한다. 수행자는 그럼으로써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다는 무상(無常)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인식된 고(苦)를 바탕으로 무아(無我)를 간파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解脫]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멀찌감치 단속직원이 다가오는데 차문을 열려고 키를 찾아도 보이지 않는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친구에게 건네는 ‘아이~ 좀, 가만히 생각해봐!’라는 말, 이 말속에 지관(止觀)수행의 개요가 오롯이 담겨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천태지의 선사를 만나 복잡다단해진 지관 수행의 방법이 모두 들어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止, 가만히)하고서 관(觀, 생각해보다)하란 말인 셈이니 그리 터무니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생활불교로는 원효 스님께서 한 마디 진언만 외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던 ‘나무아미타불’이 있고, 고난의 티베트 민족을 감싸 안고 있는 진언 ‘옴마니반메훔’, 그리고 일본의 일련 스님에 의해 창시되었다가 창가학회에 의해 제창된 ‘남묘호렌게꾜’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과 비교해 봐도 지관수행의 생활어인 ‘가만히 생각해보다’는 집중력을 길러주는 한 마디 진언(眞言)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수행(修行)에까지 나아가게 하는 실행력이 분명 덧대어 있다.



그렇다고 맨날 ‘가만히 생각해보라!’거나 ‘가만히 생각해보자!’를 되뇌기만 한다고 그 실행력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하게 가만히 생각해보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인 ‘가만히’와 ‘생각해보다’가 될 수 있을까? 궁리하다 결국엔 더 나은 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사선(四禪)에 근거하고 사념처(四念處)를 행하는 지관수행에 들어설 때 생활불교는 수행불교로 올곧게 전환될 수 있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