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2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찾아 가는 길에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찾아 가는 길에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찾아 가는 길에서




한남대 명예교수





엄밀히 살피고 따지면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참을 찾아 나가는 길이라고 본다. 혼자서 살든, 작은 가족이나 공동체나 또는 좀 큰 나라나 국제 간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 역시 참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그러고 보면 지금 온갖 지역에서 일어나는 국경갈등이나 경제갈등 같은 것들은 수준 낮은 단계의 살림살이 다툼에서 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 살림은 한 생명, 한 삶을 함께 꾸려나가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 인류의 역사가 진행돼 오는 과정이나 문명과정을 보면 점점 더 한 삶으로 가는 여정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경제, 정치, 군사, 과학, 학문, 예술, 종교 등의 차원들에서 보면 어느 하나도 개별국가나 작은 단위의 고립된 상태에서는 결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UN이란 조직을 만들고, G20이니 OECD니 하는 국제조직들이 비록 지금은 좀 삐거덕거리면서 나간다 할지라도 원래가 모든 나라들이나 족속들은 그들 개별단위로는 결코 참다운 삶을 꾸려나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일부 강대국이라는 것들이 벌이는 행태가 약소국가들이라는 집단들의 대응논리를 유발하면서 온갖 분야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다.

즉 자기들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아주 좁은 정책에 매어 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옳은 철학이나 사상의 실현에서가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어떤 욕심, 즉 권력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략에서 오는 오기스러운 행동의 표출이라고 본다. 그런데 모순스럽게도 개인들이나 개별국가들의 욕망충족을 위한 지나친 행동들은 이상스럽게 참에게 다가가는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놀라운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워 트럼프가 세계 모든 나라들과 벌이는 경제 전쟁이나 국경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그들 국민들의 속 좁은 이기주의를 촉발하여 계속 집권하겠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행동들은 다른 모든 나라들 역시 자기 나라 중심의 정치와 경제정책을 펼쳐야 함을 촉발한다. 그렇게 하면서 모든 나라들은 자기국가중심의 국수주의나 폐쇄주의로 나간다.

당분간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하여 과격한 일부 보수주의 경향의 지지와 박수를 받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와 같은 것들은 지나간 낡은 것들의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에서도 그렇게 좁은 테두리, 국가나 민족이나 종파라는 것의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참다운 삶, 서로 돕고 사이좋게 사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고 경험한다. 국수주의나 국가주의 입장에서 주장하던 세력이 물러간 뒤에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이 무섭고 무거운 자기중심주의의 행동 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렇게 시대는 밝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밝아지는 시대에 일어나는 참으로 불미스러운 사건들, 즉 범죄자를 홍콩에서 북경으로 인도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홍콩시민들의 거대한 시위, 난민이 되어 아메리카에 대한 꿈을 담고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려던 스물다섯 살의 아버지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딸 발레리아가 한 셔츠 속에 들어 있는 채 강물에 빠져 죽은 사건이나, 날마다 일어나는 난민들이 삶의 자리로 들어가려다가 수도 없이 많이 체포되고 되돌려 보내지는 사건들은 국경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참 삶의 자리에 등장하게 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런 데다가 최근 한 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기업에 기여한 것이 없기 때문에 동일한 임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인종차별발언에 융단폭격을 가하듯이 일반 여론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 밝은 세상을 일러주는 예다.


솔직히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퇴출되고 차별을 받는다면 그 기업들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은 너무나도 불을 보듯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경제에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에 동일한 임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인종차별의 발언은 그 스스로 정치계를 떠나겠다는 고별인사와 같은 성격의 망발이다. 참의 자리에서 볼 때 그것은 낡고 낡은 노예제시대에서나 나올, 그 소리로 표를 얻고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세상을 잘못 읽은 천박한 소리다.

참의 자리에서 본다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패권주의식의 지배논리와 대결논리에서 보면 놀라운 파격으로 보이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저께 판문점에서 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 트럼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등 대척점에 있는 세 나라 정상이 만난 깜짝스러운 일은 참의 자리에서 본다면 전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는 정겨운 장면이다.

언제나 갈등 당사자들이 만나서 평화로 가는 길을 논의할 때, 어떤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가 아니라 서로 살리고 존중하는 맘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의 길로 접어든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정치노선의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평화롭고 전쟁 없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참의 자리에서 다툼 없는 이야기를 속 열어놓고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무기를 가질 필요도 없고, 외부의 압력에 의하여 체제가 위협받을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몹시 어려운 경제제재를 펼칠 필요도 없다. 참의 자리는 단순한 자리다. 참의 자리에서 본다면, 언젠가는 국경이라는 것이 묽어지다가 사라지고, 국가나 민족이나 종파라는 것들도 묽어졌다가 사라질 것이다.

모든 정책들과 실천은 바로 이러한 참의 자리로 가고 있는 한 여정에 있다는 생각으로 펼쳐지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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