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8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4)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 - 에큐메니안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성숙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4)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4.05 16:01

지난 글에서는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에 대한 시작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시작과 더불어 후속 연구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한다. 이러한 후속 연구들 중에서 김승철(金承哲)의 『大地와 風: 東洋神學의 조형을 위한 解釋學的 試圖』(1994), 『解體的 글쓰기와 多元主義로 神學하기』(1998), 『無住와 放浪: 그리스도교 신학의 불교적 상상력』(2015)은 비록 본격적인 교토학파 소개서는 아니지만, 1990년대 이후 교토학파의 세계관과 논리를 소화한 한국 신학자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김승철 교수의 동양신학의 조형



『대지와 바람』에서는 불교적 세계관을 생명의 원천인 ‘대지’(존재의 근원, 신앙의 장소, 생명의 원천)에 비유하면서, 그 대지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조형되는 ‘동양신학’을 추구한다. 기존 서구의 신학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체하면서, 불교적 실재 이해에 기반한 신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아베 마사오(阿部正雄),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郞), 우에다 시즈테루(上田閑照) 등의 입장을 수용하거나 원용한다.

이들의 사상 자체를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원적 다원주의 신학’을 구성해내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대승불교 및 교토학파의 세계관을 녹여내고 있다.

이런 내용을 좀 더 깊게 담고 있는 책이 『해체적 글쓰기와 다원주의로 신학하기』이다. ‘일자(一者) 안에 다양성을 흡수시키려는 서구적 종교다원주의의 근간을 해체해, 다원주의도 다시 다원화시키는 방식으로 다양성의 현존을 도모하는 김승철의 시도는 교토학파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다른 책 『무주와 방랑: 기독교 신학의 불교적 상상력』(2015)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스즈키(鈴木) 사상의 키워드이기도 한 ‘즉비의 논리(卽非의 論理)’를 해체주의 신학에 접목시키면서 신학과 교토학파를 접근시킨다. 이 책의 일부인 “일본에서의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에서는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타키자와 카츠미(瀧澤克己)의 신학을 통해 불교와 기독교가 양쪽 전통에 모두 어울릴 수 있도록 시도하기도 한다. 20여 년 전부터 저술한 논문들의 모음집이지만, 『무주와 방랑』은 교토학파 철학을 신학 안에 녹여낸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이찬수 교수의 교토학파에 대한 체계적 소개



이찬수가 박사학위 논문 『神, 人間, 그리고 空: 칼 라너와 西谷啓治 비교 연구』(1997)의 교토학파 부분을 기반으로 출판한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京都學派와 그리스도교』(2003)에서는 니시다(西田), 니시타니(西谷), 타나베(田邊), 스즈키(鈴木) 등 대표적 교토학파 철학자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정리 및 소개하고 있다. 교토학파 주요 사상가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면서 그리스도교와의 심층적 소통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연구서이다. 부제에 담겨있듯이, 종교적 세계관 및 그에 대한 분석의 심층에서는 외형적 차이를 해소시키며 서로 만나게 해주는 공통의 논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논리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한국어로 된 관련 단행본 가운데 ‘교토학파’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된 유일한 연구서일 것이다.

이찬수의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2015)에서도 니시다, 타나베 등의 철학을 종합한 논문 등 교토학파 관련 글들을 4편 수록하고 있다. 교토학파를 위시해 불교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의 접목 가능성 및 두 종교가 동일한 논리 위에 있을 가능성을 탐색하며 분석하고 있는 글들이다.

길희성 교수의 정토사상 연구



교토학파 자체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상 안에 교토학파의 철학도 소화하고 있는 학자가 길희성(吉熙星)이다. 길희성의 『菩薩예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2004), 『일본의 정토사상』(1999) 등이 그 사례이다. 『보살예수』는 예수에게서 보살의 정신을, 보살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보는 논리를 심층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 교토학파의 ‘절대무’(181-184쪽) 개념을 가져오기도 한다.

『일본의 정토사상』에서는 교토학파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신란(親鸞)의 정토사상을 깊이 정리 및 분석하는 과정에 타나베(田邊)의 ‘참회도(懺悔道)로서의 철학’의 요지를 적용하기도 한다. ‘절대무’라든지, ‘참회도로서의 철학’이라는 표현과 내용을 인용하는 분량이나 회수는 적지만, 그 적용의 질은 매우 높다.

교토학파에 대한 정치학적 연구

이들은 대부분 종교간 대화, 특히 불교와 기독교간 대화를 통해 기존의 사유 체계를 넘어서는 종교적 세계관의 새로운 심층을 상상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에 비하면, 철학자 허우성(許祐盛)의 역작 『일본 근대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2000)은 니시다 기타로의 불교철학을 정치학적 관점까지 견지하면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교토학파를 종교철학적 차원에서 주로 연구하던 그 동안의 경향에 비해 이 책은 불교철학과 정치철학적 관점이 종합된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니시다의 종교철학이 일본의 군국주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