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8

이찬수 〈평화와 신학〉 창립 포럼 “한국전쟁과 트라우마”

(7)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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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June ·


〈평화와 신학〉 창립 포럼 “한국전쟁과 트라우마”

〈평화와 신학〉은 한국전쟁 69주년을 하루 앞둔 6월 24일(월) 오후 7시에 명동 향린교회(담임목사 김희헌)에서 “한국전쟁과 트라우마”를 주제로 창립 포럼을 개최합니다. 양권석 신부(성공회대)의 사회로 이숙진(이화여대), 이상철(한백교회), 배근주(미국 데니슨대학교), 정경일(새길교회)의 발표와 토론이 있고, 조주경의 춤(“위로”)과 자우녕의 영상(“두려움의 지도”)도 함께합니다. 아울러 한완상 3.1운동 및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의 축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평화와 신학〉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정치외교적 평화를 넘어 정의로운 평화, 삶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신학담론—새로운 한반도 평화/통일신학, 사회적-영적 트라우마 극복, 타자의 평화체제 등의 주제—을 함께 탐구하고 모색하기 위해 결성된 연구공동체입니다. (문의: peaceandtheology@gmail.com 010-7291-3031)

일시: 2019년 6월 24일(월) 오후 7-9시
장소: 향린교회(명동)

이숙진_ "말하는 주체와 기억 공동체: 48년 체제와 여성"

제주4·3은 48년 국가형성기에 국민을 ‘적’으로 몰아 학살한 국가폭력의 기원적 사건이다. 긴 세월 동안 누가, 누구를, 왜, 얼마나 잔혹하게 도륙했는지 알면서도 진실은 발화될 수 없었다. 최근 깊은 침묵과 잊힌 기억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성폭력으로 인하여 “살아남았기에 더 고통스러웠던 4·3 제주여성들”의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성범죄 피해자들이 고발자로서 미투운동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우리사회의 공감적 청자 공동체 형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숙진은 ‘말하는 주체’와 공감적 청자들로 구성되는 기억의 공동체에 관심하면서, 4·3에서 5.18에 이르기까지 48년 체제하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이상철_ “48년 체제와 한국전쟁, 그날 이후 살아남은 ‘빗금 그어진 주체($)’들을 향한 레퀴엠”

정신분석학에서 상상계속 아이는 상징계로 진입할 때 상실과 거세를 경험한다. 그 과정을 지나온 주체를 라깡은 ‘빗금 그어진 주체($)’라 명하였다. 48년 체제와 한국전쟁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상징계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사회적 원죄의 진앙이다. 이상철은 한국전쟁이라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이후의 시대를 데리다의 표현을 빌어 와 ‘유령(haunting)의 세기’라 명명하면서, 원죄를 간직한 ‘빗금 그어진 주체($)’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추적한다.

배근주_ “미국의 ‘잊어버린 전쟁’에 대한 기억: 한국전쟁과 트랜스내셔널 트라우마”

한국전쟁은 미국의 전쟁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잊어버린 전쟁 (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한국전쟁은 왜 잊어버린 전쟁이 되었을까? 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과 그들의 자녀들, 미군과 결혼한 기지촌 여성들, 한인 입양아 등등 다양한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주체들은 이 잊어버린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을 재생산할까? 배근주는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칠레 음벰베(Achille Mbembe)의 개념인 ‘네크로폴리틱스(necropolitics)’를 통해 미국의 전쟁인 한국전쟁을 분석하고, 세대와 국경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기독교 윤리적으로 접근한다.

정경일_ “역사적 트라우마와 모든 죽은 이를 위한 애도”

한국전쟁은 내전화한 국제 이념전쟁이면서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죽인 “작은 전쟁들”의 총칭이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다. 참혹한 동족상잔의 트라우마는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어, ‘전쟁이 일상’이었던 세대의 후예는 ‘일상이 전쟁’인 세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이기적 개인주의, 경쟁적 생존주의, 탐욕적 물질주의는 한국전쟁 시대의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정경일은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돌아보고, 체제 사이의 ‘정치적 평화’ 너머 사람 사이의 ‘관계적 평화’를 위한 기억과 애도의 신학적 서사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