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8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3)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 - 에큐메니안






한국 내 교토학파 연구의 시작과 토대한국의 교토학파 연구 현황: 종교계 연구를 중심으로 (3)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승인 2019.03.29 18:55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 기독교권에서(아마 전 영역에 걸쳐서도) 교토학파를 다루었던 최초의 인물은 최태용(崔泰瑢, 1897-1950)으로 보인다. 그는 1920년부터 일본에 유학하면서 기독교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監三)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1924년 귀국 후 한국의 기성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을 했다.(1)

▲ 최태용 목사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일본 교토학파의 사상을 수용하고 이론화 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Getty Image


최태용의 교토학파 수용

1928년에 다시 도일해 메이지 가쿠인 대학(明治學院大學)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토학파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32년 귀국 후에 썼던 그의 글에는 니시다 기타로(Nishida Kitaro)가 말하는 장소론을 차용해 “아담의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장소에로의 옮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가 전개하는 논리의 구조가 니시다의 장소론 혹은 행위론과 거의 같다. 1936년도에는 니시다의 “절대모순적 자기동일”의 논리에 기대서 “다수와 한 개체는 부정적 관계”에 있으며 “한 개체 즉 다수”라는 논리를 통해 여러 ‘교파들’과 전체로서의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했다.

나아가 1946년 해방 정국에서 한국적 국민운동론을 만들고 실제로 국민운동을 펼치는 과정에 교토학파 사상가들의 제국이론을 차용하기도 했다. 최태용이 자신의 논리가 교토학파 철학자들에게서 왔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고, 그가 교토학파 자체를 연구했거나 체계적으로 소개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운동에 뛰어든 1940년대 후반의 강의록 『新國家觀』에 스즈키 시게타카(鈴木成高), 타나베 하지메(田邊元), 미키 기요시(三木淸)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상 안에는 분명히 교토학파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이미 1930년대에 교토학파의 논리를 일부 소화해 ‘국민’과 ‘국가’, ‘교파’와 ‘기독교’의 관계를 해명하고,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국민 통합을 통한 국가 구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구체적으로 농촌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던 그의 전력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홍정완, “해방 이후 남한 ‘국민운동’의 국가·국민론과 교토학파의 철학”(2010)에 잘 소개하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변선환 교수의 본격적인 교토학파 연구

한국 전쟁기를 지나 이른바 근대적 학문이 본격 시작될 때까지 한국에서 교토학파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선구자는 변선환(邊鮮煥, 1927~1995)이다. 토착화 신학 및 아시아 신학의 확립을 위해 종교간 대화를 시도했던 변선환은 스위스 바젤대학(University of Basel)에 늦은 나이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1976)에서 자신보다 젊은 일본의 신학자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1932~)의 신학을 다루었다.

▲ 일본 교토학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작고하신 고 변선환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Getty Image


귀국 후 감리교신학대학에 재직하면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 아베 마사오(阿部正雄) 등의 사상 전반을 한국 신학계에 소개했다. 그 영향력 하에서 최범철(崔範澈)이 석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절대무와 한스 발덴펠스의 겸허신학”(1986)를 발표했다. 또한 김광원(金光源)은 “발덴펠스의 생애와 사상”(1988)이라는 제목으로 불교와 소통할 수 있는 신학적 입장을 소개한 소논문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변선환의 직·간접 제자인 김승철( 金承哲), 이찬수(李贊洙) 등이 교토학파 사유체계를 중심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를 시도하면서, 점차 한국어로 된 본격적 연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의 번역과 출판

▲ 변선환 교수의 제자로 교토학파의 서적을 번역·출판하는데 가장 공을 쏟은 일본 난잔대학의 김승철 교수 ⓒ에큐메니안


한국에서의 교토학파 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획기적인 일은 1990년대 초·중반 불교계 출판사 ‘대원정사’(大圓精舍)가 후원하고 변선환(邊鮮煥), 김승철(金承哲) 등 기독교 신학자가 번역에 참여한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총서’가 발행되었던 일이다.

이 때 교토학파 관련 주요 저술들, 특히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의 『종교란 무엇인가』(1994), 한스 발덴펠스(Hans Waldenfels)의 『불교의 空과 하나님』(1993)이 번역되었다. 또한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의 『無神論』(1981)을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 타키자와 카츠미(瀧澤克己), 오다가키 마사야(小田垣雅也) 등의 신학적 응답과 엮어서 번역한 『無神論과 有神論』(1994)이 번역된다. 그리고 아베 마사오(阿部正雄)가 20여 년에 걸쳐 쓴 주요 논문들을 묶어 번역한 『禪과 現代哲學』(1996), 『禪과 現代神學』(1996), 『禪과 宗敎哲學』(1996)이 출판된다.

마지막으로 야기 세이이치(八木誠一)의 『바울과 정토불교, 예수와 선』(1998)이 번역되어 모두 8권의 주요 책들이 출판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교토학파가 본격 연구될 수 있는 기초가 놓이기 시작했다. 필자도 이 가운데 아베 마사오(Abe Masao, 阿部正雄) 저술의 한국어 번역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의 글들에서 사상적 도전을 제법 받기도 했다.

이 가운데 위 8 권의 책의 절반 가량을 한국어로 소개한 이는 김승철(金承哲)이다. 김승철의 노력으로 교토학파(京都學派)가 한국의 일반 종교 관련 연구자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김승철은 교토학파의 논리를 매개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화의 이론적 심층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출판사 사정으로 이 시리즈가 폐간되면서(2) 교토학파가 더 많은 이들에게 좀 더 깊게 소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이 출판물들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교토학파의 사상적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소규모지만 후속 연구로 이어졌다.

▲ 변선환 교수와 김승철 교수 등에 의해 번역된 출판된 교토학파 관련 서적들. 하지만 출판을 맡았던 대원정사의 폐간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에큐메니안


미주
(미주 1) 이것은 1935년 ‘기독교조선복음교회’(Korea Evangelical Church)라는 교단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미주 2) 불교전문 출판사에서 기독교 및 신학과 연관된 책을 내는데 대한 교단 내부의 오해 및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이찬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chansuyi@hanmail.net